‘윤석열 잡을’ 삼각편대 작계

개혁위 던지면 법무부 띄우고 민주당 내친다

[일요시사 취재1팀] 장지선 기자 = 윤석열 검찰총장이 ‘삼면초가’ 상태에 빠졌다. 어느 쪽으로도 답이 없는 상태다. 신임 검사들 앞에서 강한 어조로 소신껏 발언했지만 ‘식물총장’서 벗어날 가능성은 거의 없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여기에 법무부가 단행한 검찰인사로 또 한 방 세게 맞은 모양새다.
 

▲ 윤석열 검찰총장 ⓒ문병희 기자

윤석열 검찰총장이 한 달 만에 침묵을 깨고 작심발언을 터트렸다. 신임 검사들을 만난 자리서 한 말이지만, 발언이 향하는 방향은 추미애 법무부 장관과 집권여당인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실제 정치권은 윤 총장 발언의 배경과 속내를 두고 저마다 목소리를 내고 있다.

한 달 만에…
저마다 목소리

지난 3일 윤 총장은 대검찰청서 열린 신임 검사 신고식서 “우리 헌법의 핵심 가치인 자유민주주의는 평등을 무시하고 자유만 중시하는 것이 아니다”라고 말했다. 이어 “이는 민주주의라는 허울을 쓰고 있는 독재와 전체주의를 배격하는 진짜 민주주의를 말한다”며 “자유민주주의는 법의 지배를 통해서 실현된다”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누구에게나 공평하고 정의롭게 법 집행을 해야 한다”며 “특히 부정부패와 권력형 비리는 국민 모두가 잠재적 이해 당사자와 피해자라는 점을 명심하고 어떠한 경우에도 외면하지 않고 당당히 맞서 국민으로부터 위임받은 법 집행 권한을 엄정하게 행사해야 한다”고 신임 검사들에게 당부했다. 

채널A 기자의 강요미수 의혹 사건, 이른바 검언유착 의혹 사건과 관련해 추 장관이 수사지휘권을 발동한 이후 침묵을 지켜온 윤 총장의 첫 대외 발언이다. 윤 총장은 그동안 검찰 관련 현안에 대해 어떤 입장도 내지 않았다.


최측근인 한동훈 검사장(법무연수원 연구위원)을 둘러싼 문제에 대해서도 입을 열지 않았다. 

윤 총장은 신임검사 신고식서 권력형 비리에 대한 언급과 함께 ‘독재’라는 수위 높은 표현을 사용했다. 윤 총장이 검찰을 둘러싼 법무부와 민주당의 행태에 강한 불만을 드러낸 게 아니냐는 분석이 제기된다. 일각에선 권력형 비리에 대한 지속적인 수사 의지를 드러냈다는 분석도 있다.

윤 총장의 이 같은 발언에 민주당은 예민하게 반응했다. 실제로 민주당 의원들은 윤 총장에 대한 비판을 쏟아내고 있다. 이들이 문제 삼은 부분은 ‘독재 배격’. 일부 의원들은 윤 총장의 발언이 정치적이라고 비판했고, 당 외부에선 검찰총장 탄핵까지 언급됐다. 

민주당의 비례대표 정당인 더불어시민당 공동대표를 지낸 건국대 최배근 교수는 “미래통합당의 검찰, 정치 검찰임을 공개적으로 선언한 것”이라며 “정치를 하려면 검찰 옷을 벗어야 하기에 민주당은 윤 총장을 탄핵하고 추미애 법무부 장관은 그를 징계해야 한다”고 성토했다. 

검 개혁 구체적 방안 제시
조국 전 장관 때 2기 출범

지난 5일에는 민주당 지도부서 윤 총장의 공개 사퇴 요구가 나왔다. 민주당 설훈 최고위원은 이날 국회서 열린 민주당 최고위원회의서 “윤 총장이 지난 3일 신임 검사 신고식서 독재와 진짜 민주주의 발언을 한 것은 문재인정부가 민주주의가 아닌 독재 전체주의란 주장으로 해석된다”며 “문재인정부라는 주어만 뺀 교묘한 주장”이라고 비판했다. 

이어 “이제 윤 총장은 물러나야 한다”며 “문재인정부를 독재와 전체주의라면서 검찰총장직을 유지한다면 이는 독재와 전체주의 대열에 합류하는 것과 뭐가 다르냐. 물러나서 본격적인 정치의 길로 들어서는 것이 현명할 것”이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반면 미래통합당(이하 통합당)은 “사람에게 충성하지 않는 칼잡이 윤석열의 귀한을 환영한다”며 긍정적인 메시지를 냈다.

통합당 김은혜 대변인은 “정권의 충견이 아닌 국민의 검찰을 만들겠다는 의지로 해석한다”며 “윤 총장의 의지가 진심이 되려면 조국, 송철호, 윤미향, 라임과 옵티머스 사태 등 살아있는 권력에 숨죽였던 수사를 되살려야 한다”고 밝혔다.
 

▲ 추미애 법무부 장관 ⓒ고성준 기자

윤 총장의 발언에 정치권이 들썩이고 있지만 지속성은 그리 길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조국 전 법무부 장관에 대한 검찰의 대대적인 수사 이후 법무부의 ‘검찰 힘 빼기’는 가속화됐고 추 장관은 검찰 인사를 통해 윤 총장의 수족을 모두 잘라냈다. 민주당은 입법으로 검찰 개혁을 거드는 중이다. 윤 총장의 이번 발언이 식물총장의 마지막 외침일 수도 있다는 뜻이다.

실제 윤 총장은 현재 법무·검찰개혁위원회(이하 검찰개혁위), 법무부, 민주당이라는 ‘버뮤다 삼각지대’에 빠져있다. 검찰개혁위가 권고안을 통해 검찰 개혁의 필요성을 제기하면 법무부가 이를 수용하고 민주당서 법을 개정하는 방식이다. 특히 민주당이 법제사법위원회(이하 법사위)를 장악했고, 의석도 과반인만큼 입법 부문은 일사천리다. 

여 “사퇴”
야 “환영”

‘검찰총장 권한을 축소하라’는 검찰개혁위의 권고안을 법무부가 하루 만에 수용 의사를 밝힌 뒤, 민주당서 검찰청법 개정안을 준비한 게 대표적이다. 지난달 27일 검찰개혁위는 검찰총장의 권한을 분산하기 위해 구체적 수사지휘권을 없애야 한다는 권고안을 내놨다. 또 법무부 장관의 수사지휘는 검찰총장이 아닌 고검장에게 하도록 법을 바꾸라고 권고했다. 

‘법무부 장관은 검찰사무의 최고 감독자로서 일반적으로 검사를 지휘·감독하고 구체적 사건에 대하여는 검찰총장만을 지휘·감독한다’는 검찰청법 8조를 개정하라는 것이다. 검찰인사 과정서도 검찰총장이 아닌 검찰인사위원회의 의견을 들으라고 했다. 현행 검찰청법은 법무부 장관이 인사를 할 때 검찰총장의 의견을 들어야 한다. 

법무부는 검찰개혁위의 권고 다음날인 지난달 28일 “형사사법의 주체는 검찰총장이 아닌 검사다. 검찰총장에 집중된 권한을 분산하도록 개혁할 필요가 있다”며 “수사 지휘체계 다원화 등 근본적인 변화에 대한 논의인 만큼 개혁위 권고안 등을 참고해 심층적인 검토를 해나갈 예정”이라고 수용 의사를 보였다. 

그 다음날에는 민주당 김용민 의원이 현재 장관급으로 대우받고 있는 검찰총장을 차관급으로 명문화하고 총장의 인사개입권을 제한하는 내용의 검찰청법 개정안을 발의했다. 김 의원은 “현재 검찰총장은 법률적 근거 없이 장관급으로 대우받고 있다”며 “중앙행정기관의 조직·직무범위 등을 규정한 검찰청법에는 총장을 장관급으로 대우한다는 규정이 없다”고 지적했다. 

이어 검찰인사 과정서 법무부 장관이 검찰총장의 의견을 들어 검사 보직을 제청하도록 하는 현행 인사규정에 대해서도 “법률로 명시할 필요가 없는 내용을 법률로 만들면서 소모적인 논란과 분쟁의 씨앗이 되고 있는 상황”이라며 검찰총장의 의견을 듣도록 하는 부분을 삭제했다.
 

▲ 김용민 더불어민주당 의원 ⓒ문병희 기자

김 의원은 조 전 장관 시절 검찰개혁위 위원으로 활동한 바 있다.


검찰 개혁은 문정부의 최대 화두였다. 문재인 대통령은 검찰 개혁의 핵심으로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이하 공수처) 설립을 언급했다. 대선 후보 당시 1호 공약이기도 했다. 문정부는 검찰 개혁의 구체적 실행방안을 마련하기 위해 2017년 8월9일 검찰개혁위를 만들었다.

1기 검찰개혁위(한인섭 위원장)는 ▲법무부 탈검찰화 ▲공수처 신설 ▲검·경 수사권 조정안 ▲검사장 관련 제도 및 운용의 시정 ▲검사의 타 기관 파견 최소화 ▲공안 기능의 재조정 ▲검찰 내 성폭력 ▲젠더 폭력 관련법 재정비 등의 권고안을 내놨다. 

말만 하면
이뤄진다?

1기 검찰개혁위 권고안 중 공수처 신설, 검·경 수사권 조정 등의 사안은 입법을 통해 근거가 만들어졌다. 인사청문회법·국회법 개정안·공수처장 후보추천위원회 운영규칙 제정안 등 이른바 공수처 후속 3법도 법사위를 거쳐 지난 4일 국회 본회의를 통과했다. 

조 전 장관은 취임과 동시에 2호 지시로 2기 검찰개혁위(김남준 위원장)를 발족시켰다. 2기 검찰개혁위는 검찰 현안에 적극적으로 권고안을 내고 인사개혁안을 제시하는 등 검찰 개혁에 힘을 실었다. 

2기 검찰개혁위는 지난해 10월1일 ‘검찰 직접수사 축소’ ‘형사·공판부로의 중심 이동’을 골자로 하는 첫 번째 권고안을 시작으로 지난 5일까지 모두 21차례 권고안을 냈다. 첫 번째 권고안은 3개월 뒤인 올해 1월 검찰 직제개편을 통해 현실화됐다. 추 장관이 법무부 장관에 취임한 직후였다. 


그 결과 서울중앙지검 반부패수사부는 기존 4곳서 2곳으로 축소됐고, 전문 사건에 대한 주요 전담수서부서들도 몸집이 줄어들었다. 서울중앙지검 조세범죄조사부와 과학기술범죄수사부는 형사부로 전환됐고 비직제 수사단으로 ‘저승사자’로 불리며 각종 금융·증권 사건을 수사했던 서울남부지검 증권범죄합동수사단도 사라졌다. 

공공수사부는 기존 11개청 13개부서 7개청 8개부로 축소됐다. 서울중앙지검 공공수사3부와 서울남부·의정부·울산·창원 등 4개청 5개 공공수사부는 형사부로 전환했다. 서울중앙지검 총무부는 공판부로, 외사부는 형사부로 바뀌었다. 인천·부산지검 등 공항·항만 소재지로 외사 사건이 많은 곳만 부서를 유지하겠다는 것이다. 
 

▲ ⓒ문병희 기자

검찰 내부를 발칵 뒤집어 놓은 검언유착 의혹 사건과 관련해서도 검찰개혁위는 긴급 권고안을 낸 바 있다. 지난달 2일 검찰개혁위는 검언유착 의혹 수사의 적정성을 논의하는 전문수사자문단(이하 전문자문단) 소집을 앞두고 이를 중단해야 한다는 권고안을 냈다. 

검찰개혁위는 “전문자문단은 규정상 대검과 일선 검찰청 간에 중요사건 처리 등과 관련한 다양한 의견이 존재해 전문적인 자문을 바탕으로 협의가 필요할 때 소집할 수 있다”며 “이번 대검의 전문자문단 소집은 검찰 지휘부의 ‘제 식구 감싸기’ ‘사건 관계자들의 수사 흔들기’ ‘검찰 내부 알력 다툼’의 도구로 변질됐다는 점에서 비판이 되고 있다”고 지적했다. 

추 장관은 검찰개혁위의 권고를 사실상 받아들여 이날 윤 총장의 검언유착 의혹 수사 배제를 골자로 하는 수사지휘권을 발동했다. 천정배 법무부 장관에 이어 15년 만이자 헌정 사상 두 번째 수사지휘권 발동이다. 대검과 법무부의 갈등은 극한까지 치닫다가 윤 총장이 수사지휘권을 수용하는 모양새를 취하면서 간신히 봉합됐다. 

인사·검찰총장 권한 축소
통합당 “답정너 위원회”

추 장관의 두 번째 검찰 정기인사 역시 검찰개혁위 권고안을 배경으로 하고 있다. 앞서 검찰개혁위는 지난 5월18일 18차 권고안서 형사·공판부 검사를 중심으로 임용하는 내용을 골자로 하는 ‘검사 인사제도 개혁안’을 내놨다. 

권고안에는 검찰의 중심을 형사·공판부로 이동하기 위해선 기관장인 검사장과 지청장을 형사·공판부 경력검사로 다수 채워야 한다는 내용이 담겼다. 전체 검찰 내 분야별 검사 비중을 반영해 기관장의 60% 이상을 형사·공판부 경력검사를 임용하라고 권고했다.

법무부는 지난 6일 인사서 윤 총장을 보좌하는 대검 부장급 간부 5명을 7개월 만에 교체했다. 검언유착 의혹 사건 수사를 진두지휘한 이정현 서울중앙지검 1차장은 검사장으로 승진, 대검 공공수사부장에 임명됐다. 삼성그룹 승계 의혹 등의 수사 지휘를 맡아온 신성식 서울중앙지검 3차장도 대검 반부패강력부장으로 승진했다.

관심을 모았던 이성윤 서울중앙지검장은 유임됐다. 
 

법무부는 이번 인사에 대해 “형사·공판부서 묵묵히 맡은 바 소임을 다해온 검사들을 적극 우대하는 한편 민생과 직결된 형사 분야의 공인 전문검사를 발탁했다”며 “여성 검사의 검사장 발탁과 주요 보임을 통해 차별 없는 균형 인사를 도모했다”고 배경을 밝혔다.  

‘특수부 힘 빼기’는 문 정부 내내 이어진 검찰 개혁 주요 과제였다. 지난해 10월 조 전 장관은 윤 총장이 제안한 서울중앙지검 등 3개 검찰청을 제외한 전국 특수부 폐지안을 담은 관련 개혁안을 제시했다. 서울중앙지검, 대구지검, 광주지검 3개청에만 특수부를 남기고, 해당 부서 명칭은 반부패수사부로 변경하는 안이 핵심이었다.

다 날아간
총장 측근

일각에선 검찰개혁위가 법무부나 민주당에 명분을 만들어주고 있다는 지적이 제기된다. 검찰개혁위를 통해 검찰 개혁에 대한 정당성을 확보한 다음 법무부나 민주당서 이를 현실화하고 있다는 것이다. 통합당은 검찰총장 권한 축소를 권고한 검찰개혁위를 비판하는 과정서 “결국 법무·검찰개혁위원회란 애초부터 검찰장악이라는 목적을 정해둔 ‘답정너 위원회’임이 다시 한 번 입증됐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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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한길 유니버스’ 절대 불가능한 이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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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요시사 정치팀] 박형준 기자 = 국민의힘에 입당한 한국사 강사 전한길씨가 국민의힘 행사에서 영향력을 과시하다가 큰 물의를 일으켰다. 전씨는 국민의힘에서 ‘보수의 김어준’을 꿈꾸는 것 같다. 전씨는 과연 김씨가 15년 동안 구축했던 영향력을 단번에 얻을 수 있을까? 국민의힘에 입당한 한국사 강사 전한길씨가 지난 8일, 대구 EXCO에서 진행된 국민의힘 전당대회 대구·경북지역 합동연설회에서 큰 물의를 일으켰다. 전씨는 지난 3월 창간한 <전한길뉴스> 소속 언론인 자격으로 참석했다. 선거판 난장판 하지만 전씨는 언론 취재의 한계를 넘어 반탄(탄핵 반대) 성향 후보들의 연설 도중 응원하면서 분위기를 띄웠다. 반대로 찬탄(탄핵 찬성) 성향 당 대표·최고위원 후보들이 연설할 때마다 “내부 총질” 혹은 “배신자” 등 원색 비난을 했다. 이날 김근식 최고위원 후보는 전씨를 직접 지칭해 “부정선거 음모론에 빠지고, 계엄을 계몽령이라고 정당화하는 사람들과 어떻게 같이 투쟁할 수 있겠느냐”면서 비난했다. 그러자 전씨는 김 후보에게 욕설하면서 자신의 지지자들을 격동시켰다. 찬탄 성향 조경태 당 대표 후보가 연설할 땐 자리에서 일어나 한 손을 들고 항의하는 등 지지자들의 조 후보 비난을 유도했다. 그러자, 찬탄 성향 일부 당원들이 전씨에게 물병을 던지면서 항의했다. 한 당원은 전씨에게 “난 20년 차 당원인데, 입당한 지 한 달밖에 안 된 당신이 왜 이런 난동을 부리느냐”고 따져 물었다. 국민의힘 지도부는 전씨의 전당대회 출입을 막기 위해 대의원이 아닌 일반 당원의 행사장 출입을 금지했다. 이어 전씨에 대한 징계 가능성도 내비쳤다. 그러자 전씨는 <전한길뉴스> 발행인 신분을 내세워 “언론 탄압”이라며 반발했다. 이처럼 전씨는 국민의힘 당원과 언론인이란 신분을 왕래하면서 국민의힘 전당대회에 개입하고 있다. 지난달 31일과 지난 7일엔 시사평론가 고성국씨 등과 함께 주최한 ‘자유 우파 유튜브 연합 토론회’에 각각 장동혁·김문수 당 대표 후보를 출연시켜 ‘면접’을 보는 위력을 국민의힘 내외에 과시했다. 특정 진영의 강경파를 대상으로 언론사·유튜브 채널 등을 운영하면서 힘을 과시하는 모델로는 방송인 김어준씨가 있다. 김씨는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의 친문(친 문재인) 강경파 성향 당원·지지자를 대상으로 라디오·유튜브 방송을 진행하면서 당 전체를 좌지우지하는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다. 당 대표 후보들을 면접하는 형식은 김씨가 지난해 3월 자신의 유튜브 방송 ‘김어준의 다스뵈이다’에 민주당 총선 후보자였던 이언주·전현희 의원과 안귀령 대통령실 부대변인을 출연시켜 객석의 청중에게 큰절을 시킨 것과 비슷하다. 김씨가 지난 6월 기획·진행한 ‘더 파워풀’ 콘서트엔 ▲문재인 전 대통령 ▲민주당 정청래 대표 ▲김민석 국무총리 등 다수의 민주당 내 유력 정치인이 참석했다. 입당하자마자 영향력 과시 물의 당원·언론인 오가며 전대 개입 김씨는 지난 2011년 팟캐스트 방송 ‘나는 꼼수다’ 공동 진행자로 활동하면서부터 민주당에 대한 영향력을 키워왔다. 물론 김씨가 15년 동안 구축한 영향력을 전씨가 단기간에 얻긴 어렵다. 이 때문인지 전씨는 국민의힘에 입당하자마자 ‘10만 당원 양병설’ 등을 주장하면서 당 대표 선거에 출마할 가능성을 내비쳤다. 하지만 국민의힘 전당대회에 출마하기 위해선 당비를 3개월 이상 납부하고, 연 1회 이상 교육을 받은 책임당원이어야 한다. 전씨는 지난 6월 온라인으로 입당했고, 당 대표 후보 등록일은 지난달 30일부터 단 이틀 동안이었다. 따라서 전씨는 당 대표 선거에 출마할 수 없었다. 출마 길이 막힌 전씨는 전당대회에서 당원·언론인 신분을 교차하면서 자신을 따르는 당원들을 선동해 영향력을 과시하려고 한다. 하지만 전씨는 김씨가 민주당에서 막강한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게 된 구조를 이해하지 못한 것으로 보인다. 민주당과 주변 진영 전체를 둘러싼 질서는 20세기 초·중반에 활동했던 이탈리아 사회주의자 안토니오 그람시의 헤게모니 이론이 갖는 틀과 비슷하다. 그람시는 “자본주의는 견고하게 발전할 것”이라는 대전제를 토대로 “언론·문화 등 각 분야에 진지를 구축해 참호전으로써 상대 세력을 약화해야 한다”는 사상을 정리했다. 각 분야에 구축한 진지는 결정적인 시기에 전개할 기동전의 전초기지 역할을 한다. 자본주의 구조가 뿌리내리면서 러시아 2월·10월 혁명과 같이 한순간에 모든 것을 뒤집는 혁명은 사실상 불가능해졌다. 그람시는 주도권 다툼으로써 체제 내 혁명을 추구하는 취지의 사상을 구체화했다. 우리나라에선 소련 해체가 가시화되던 1980년대 후반부터 기존 노동운동에 문화·예술운동을 접목하는 단체가 활동하는 등 각계에서 다른 방향의 노동운동을 전개하는 것으로부터 시작된다. 민주당을 받치는 양대 축은 각계의 시민단체들과 진보 성향 매체들이다. 대규모 정치 이벤트가 진행될 땐 민주당 지원 사격을 맡으면서, 정치적 명분과 정당성을 구축·홍보하는 역할을 맡는다. 또 민주당에 인력을 공급하는 역할도 한다. 주요 선거 등 대규모 기동전이 필요한 상황에선 각자의 진지에서 일시에 뛰쳐나와 물량을 공급하는 식이다. 이 같은 구조를 상징하는 사람이 민주당 윤미향 전 의원이다. 정의기억연대 대표로 오랫동안 활동하던 윤 전 의원은 민주당을 통해 국회의원이 됐지만, 횡령 의혹이 유죄로 확정돼 의원직을 잃었다. 같은 당 추미애 의원 등 민주당 일각에선 윤 전 의원의 사면을 강하게 지지했고, 결국 8·15 광복절특사를 통해 사면·복권됐다. 민주당과 그람시 하지만 시민단체와 매체는 대중을 직접 동원하기가 어려운 데다, 매체는 언론 고유의 한계가 있다. 시민단체 역시 시민들의 참여가 부실하다는 핸디캡을 떠안을 수밖에 없는 구조적 문제도 존재해 왔다. 이 때문에 삼각 구조를 받쳐줄 또 하나의 하부 구조가 필요했다. 이 문제를 해결해준 사람이 바로 김씨였다. 김씨는 지난 1998년 ‘안티 <조선일보>’라는 깃발을 내걸고 <딴지일보>를 창간한 후 풍자·B급 정서·유머를 지향해오고 있다. 당시 <딴지일보>에선 포장마차에서 어묵을 찍어 먹는 용도로 내는 간장의 위생 상태를 취재해 기사화하거나 국가혁명당 허경영 명예대표의 대권 도전 과정을 풍자하는 등 ‘신선한 B급 정서’를 지향해 독자적인 인기를 누렸다. 하지만 한편으로 김씨에게 평생 따라다닐 놀림거리를 남겼다. 김씨가 <딴지일보>의 채무를 해결하기 위해 여성용 성인용품을 판매했고, 성인남녀의 만남을 중개하는 사이트를 개설했던 탓이다. 보수 성향 유권자들은 여전히 김씨를 비판하면서 당시의 전력을 함께 언급한다. 이후 김씨는 ▲황우석 박사 옹호 ▲영화감독 겸 코미디언 심형래씨 옹호 등 숱한 논란을 일으켰다. 특히 황 박사 옹호는 그럴 듯한 음모론을 제시하면서도 설득력 있는 근거는 제시하지 않는 김씨의 특성과 깊이 맞물린다. 당시의 논란도 김씨에 대한 비판론을 형성하는 중심축이다. 그랬던 김씨가 막강한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게 된 계기로는 크게 2가지를 들 수 있다. 하나는 ‘문재인 대통령 만들기’를 처음 시작했다는 것이었고, 다른 하나는 팟캐스트 ‘나는 꼼수다’ 공동 진행자 중 1명으로 활동했단 것이었다. 김씨는 당시 민주당 백원우 의원이 노무현 전 대통령 영결식장에서 이명박 당시 대통령에게 거친 항의를 말리고 고개 숙여 사과하는 문 전 대통령을 주목했다. 이후 김씨는 문 전 대통령의 킹메이커를 자처했고, 이는 ‘나는 꼼수다’ 진행 이후 문 전 대통령의 대세론으로 이어졌다. ‘나는 꼼수다’는 김씨 특유의 B급 정서·음모론이 이명박정부에 대한 다양한 불만과 맞물려 대성했던 방송이었다. ‘나는 꼼수다’는 현재까지 이어지는 김씨의 성향을 구체화한 방송이라고 볼 수도 있다. 해당 팟캐스트의 상징으로 통하는 “쫄지 마”는 여전히 회자된다. ‘나는 꼼수다’는 구체적인 사실관계 검증엔 큰 관심을 두지 않았다. 명확한 당파성을 매개로 특정 정당·진영 사람들이 선호할 음모론과 괴담을 이미 밝혀진 사실관계와 섞어 전달하는 것에 집중했다. 진실과 거짓의 경계선을 적당히 왕래하면서 민주당 지지를 극대화하는 것이 주된 목적이었다. 영웅과 악당들 이는 집단의식으로 연결됐고, 김씨에겐 거대한 영향력을, 민주당엔 거대한 지지 집단을 만들어줬다. 김씨는 ‘나는 꼼수다’를 통해 단순·명쾌한 이분 구도를 완성했다. 그를 선호하는 민주당 지지자의 정치관은 “보수진영이란 거대한 악에 맞서 싸운다”는 것이다. 이는 정의로운 주인공이 지구 정복을 노리는 악당의 무리에 맞서 싸우는 어린이용 만화의 서사와 크게 다르지 않다. 아울러 현재 민주당 핵심 지지 세대로 알려진 4050세대가 미국의 마블 시네마틱 유니버스를 선호하는 것과 연결해볼 수 있다. 이 세계관엔 초월적인 힘을 갖고 모든 생명체의 절반을 죽여 우주를 정화하려는 악당에 맞서는 영웅들이 등장한다. 이 세계관에 결정적인 영향을 준 사건은 지난 2009년 노무현 전 대통령 사망사건이었다. 이들에게 노 전 대통령 사망사건은 거대 악당과 싸워야 하는 당위성을 제공해주는 절대적인 명분이었다. 김씨가 이 사건에 주목하고, 상주로서 백 전 의원의 항의를 제지하던 문 전 대통령을 주목한 것은 당연한 순서였다. 우리 고전문학 중 전설은 김씨의 평소 주장과 비슷한 서사 구조를 띠고 있다. 전설은 능력이 뛰어난 주인공이 현실의 한계에 좌절하고 무너지는 비극적인 구조를 취한다. 또 설득력을 부여해야 많은 사람에게 퍼질 수 있어서 실제 존재하는 지역·지명을 매개로 그럴듯하게 전개된다. 여기엔 각박한 현실을 바꿔줄 새로운 영웅의 출현을 기대하는 민중의 소망이 담겨있다. 그래서 조선시대엔 “정씨 성을 가진 영웅이 새 나라를 만들어 왕이 될 것”이란 취지의 예언서가 오랫동안 돌아다녔다. 김씨의 주장은 21세기판 전설이라고 할 수 있다. 김씨는 민주당과 주변 진영을 취약한 상황에서 거대한 악에 도전하는 영웅으로 묘사하고, 지지자들은 그 영웅담에 환호한다. 그러면서 “거대한 악에 맞서 싸우는 영웅을 또 잃을 수 없다”는 공감대를 공유한다. 그들은 “대통령을 지켜야 한다”는 같은 목표를 공유한다. 김씨는 ‘김어준 유니버스’ 혹은 ‘민주 유니버스’를 만들었고, 지지자들은 관객을 넘어선 참여자로서 희열과 보람을 느낀다. <한국일보>는 지난 2017년 이들의 세계관을 소개하면서 “대통령이 국민을 지켜야지, 왜 국민이 대통령을 지켜야 하느냐”고 비판했다. 완전히 다른 ‘B급 정서’ 카타르시스·도파민 차이 김씨는 ▲세월호 고의 침몰설 ▲천안함 피격 사건 관련 가짜 뉴스 살포 ▲코로나19 대구 확산설 등 주장을 이어가면서 지지자들에게 정치적 카타르시스와 도파민을 제공했다. 그들이 김씨를 통해 느낀 카타르시스와 도파민은 고스란히 민주당의 정치적 자양분이 됐다. 그래서 총선 출마 후보들은 김씨가 보는 앞에서 지지자들에게 큰절을 해야 했다. 윤석열 전 대통령이 지난해 12월 비상계엄을 선포하면서 체포 대상 중 1명으로 김씨를 지목했던 것은 김씨에게 엄청난 이익이 됐다. 당시 계엄군은 김씨가 진행하는 유튜브 채널 ‘김어준의 겸손은 힘들다 뉴스공장’ 스튜디오 주변을 통제했다. 김씨는 지난해 12월13일 국회에서 “계엄군이 국민의힘 한동훈 전 대표를 사살한 후 북한 소행으로 공작하려고 했다”면서 “정보 출처는 국내에 대사관이 있는 우방국”이라고 주장했다. 이후 “그 우방국은 미국 아니냐”는 의문이 제기됐지만, 미국은 국무부·주한미국대사관을 통해 이를 부인했다. 반면 민주당 최민희 의원은 자신의 페이스북을 통해 “‘김어준님’의 증언을 허구로 단정하고 비난부터 하는 것은 무모하다”고 주장했다. 국민의힘과 보수 세력은 민주당과 그 주변 세력처럼 정교한 조직체를 만들지 못했다. 보수 세력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스피커 역할은 전씨와 전광훈 사랑제일교회 목사가 맡고 있다. 하지만 이들은 김씨처럼 진영 전체를 들썩일 수 있는 정치적 유머 감각과 설득력을 갖추지 못했다. 카타르시스와 도파민을 제공하지도 못한다. 이 때문에 이들의 주장은 강경 보수 지지자들 외 국민 사이에서 웃음거리로 전락한 지 오래고, 국민의힘 내부서도 강하게 비판한다. 국민의힘이 지난 2022년 대선과 지방선거에서 이겼을 당시엔 민주당에 비판적인 2030세대 남성과 6070세대를 아울러 민주당을 지지하는 4050세대와 2030세대 여성을 포위한다는 ‘세대포위론’ 전략이 제시됐다. 그러나 윤 전 대통령과 개혁신당 이준석 대표가 불화 끝에 결별하면서 이 연합은 얼마 가지 못해 해체됐다. 당시 승리를 주도했던 국민의힘 지지층은 이 대표 특유의 합리주의를 지지하는 젊은 유권자와 강경 보수를 지향하는 노년 유권자로 분열됐다. 전씨는 많은 공무원 제자를 거느린 유명 한국사 강사였다. 따라서 적절히 순화된 주장과 교묘하게 선정한 정치적 입지를 섞어서 정치 전면에 나섰더라면, ‘보수의 김어준’이 될 수도 있었다. 하지만 전씨는 김씨와 달리 그럴듯한 이야기를 구성하고 유머를 섞는 능력을 보여준 적이 없다. 전씨의 옛 제자들은 그를 강하게 비판하고 있다. 절대로 정치 전면에 나서지 않는 김씨와 달리, 직접 국민의힘에 입당해 당 대표 선거에 출마하려 하는 등 적당히 선을 긋지도 않는다. 정치인들이 알아서 자신의 스튜디오에서 큰절을 하게 만드는 김씨와 달리, 전씨는 스스로 영향력을 과시하기 위해 전당대회서 눈에 띄는 행동을 했다. 전에겐 없는 것들 무엇보다 김씨가 “이 대통령을 능가하는 영향력을 가진 것 아니냐”는 설까지 나올 정도로 강력한 영향력을 구축하기까지 15년이 걸렸단 사실도 제대로 통찰하지 못한 것으로 보인다. 결정적으로 국민의힘은 정치 구조를 통찰하지 못해 민주당이 장기간 공들여 구축한 정치 구조체를 갖추지 못했다. 그런데도 전씨는 ‘전한길 유니버스’ 제작을 멈추지 않는다. 과연 전씨는 ‘보수의 김어준’이 될 수 있을까? <ctzxp@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