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권발’ 윤석열 제거 플랜

그냥 나갈래? 끌려 나갈래?

[일요시사 취재1팀] 장지선 기자 = 다음달 25일이면 윤석열 검찰총장이 취임한 지 1년이다. 불과 1년 사이에 윤 총장에 대한 평가는 크게 바뀌었다. 임기 반환점도 돌지 않은 상황서 이미 ‘식물총장’으로 전락했다는 말도 나온다. 윤 총장은 법에 보장된 2년 임기를 채울 수 있을까?
 

시작은 나쁘지 않았다. 지난해 6월17일 문재인 대통령은 당시 서울지방검찰청장이던 윤석열 검찰총장을 검찰총장 후보로 지명했다. 문 대통령의 인사에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은 ‘환영’ 입장을, 자유한국당(현 미래통합당, 이하 통합당)은 ‘코드 인사’라는 엇갈린 입장을 내놨다. 당시 민주당 홍익표 수석대변인은 브리핑을 통해 “윤 후보자는 검사로 재직하는 동안 각종 권력형 비리와 부정부패 수사에서 탁월한 성과를 거뒀다”며 “부당한 외압에도 흔들림 없이 원칙을 지킴으로써 검찰 내부는 물론 국민적 신망도 얻었다”고 치켜세웠다. 

처음에는
환영하더니…

반면 당시 통합당 민경욱 대변인은 “문재인정부가 들어서자마자 윤 후보자는 서울중앙지검장에 올랐고, 이후 야권 인사들을 향한 강압적인 수사와 압수수색 등으로 자신이 ‘문재인 사람’임을 몸소 보여줬다”며 “그러던 그가 이제 검찰총장의 옷으로 갈아입게 됐다”고 비판했다. 

이어 “검찰의 정치적 중립과 수사의 독립성은 날 샌 지 오래다. 청와대는 하명을 했고 검찰은 이에 맞춰 칼춤을 췄다”며 “이제 얼마나 더 크고 날카로운 칼이 반정부 단체, 반문(반 문재인) 인사들에게 휘둘려 질 것인가”라고 덧붙였다. 

실제 윤 총장의 청문회서 저격수를 자처한 통합당 의원들의 공격에, 민주당 의원들은 방어에 나섰다. 통합당이 도덕성을 이유로 윤 총장의 자진사퇴를 촉구할 때에도 민주당은 문제가 없다는 입장을 고수했다. 여야 간 이견으로 윤 총장의 청문보고서는 채택되지 않았지만 문 대통령은 윤 총장을 43대 검찰총장으로 임명했다.


지난해 7월25일 문 대통령은 윤 총장을 ‘우리 윤 총장’이라고 칭하며 신임을 표했다. 문 대통령은 “우리 윤 총장은 권력형 비리에 대해 권력에 휘둘리지 않고 권력의 눈치도 보지 않고, 사람에 충성하지 않는 자세로 아주 공정하게 처리해 국민의 희망을 받았는데 그런 자세를 끝까지 지켜달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그런 자세가 살아있는 권력에 대해서도 똑같은 자세가 돼야 한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라며 “청와대든 정부든 또는 집권여당이든 권력형 비리가 있다면 정말 엄정한 자세로 임해주길 바란다. 그래야만 검찰의 정치적 중립을 국민이 체감하게 되고 권력형 부패도 막을 수 있는 길”이라고 강조했다. 

윤 총장에 대한 문 대통령과 민주당의 지지와 신뢰는 1년이 채 지나기도 전에 180도 달라졌다. 지난해 8월 문 대통령이 조국 전 법무부 장관을 장관 후보자로 지명한 이후부터 생기기 시작한 골은 점점 깊어지는 모양새다. 당시 윤 총장과 검찰은 압수수색을 시작으로 조 전 장관 수사에 뛰어들었다.

한명숙 전 총리 진정 사건 
민주당서 ‘자진사퇴’ 발언

조국 수호와 검찰 개혁을 주장하는 시민들이 서초동으로, 문재인·조국 사퇴를 주장하는 시민들은 광화문으로 집결했다. 이때부터 민주당서 윤 총장에 대한 비판이 흘러나오기 시작했다. 검찰 개혁에 대한 목소리가 높아진 시점도 비슷하다. 조 전 장관에 이어 추미애 장관이 법무부 수장으로 입성하고부터는 검찰 인사를 비롯해 윤 총장 주변부로 압박이 들어갔다. 

윤 총장은 기소권으로 맞섰다. 지난 1월 조 전 장관의 아들에게 허위 인턴증명서를 발급해 대학의 업무를 방해한 혐의를 받고 있는 열린민주당 최강욱 대표를 전격 기소했고, 청와대의 울산시장 선거 개입·하명수사 의혹과 관련해 백원우 전 청와대 민정비서관 등 13명을 무더기로 기소했다.
 

▲ 추미애 법무부 장관 ⓒ고성준 기자

임종석 전 청와대 비서실장도 소환해 조사했다. 


그러자 21대 총선 과정서 윤 총장을 대하는 민주당과 통합당의 자세가 바뀌었다. 통합당은 ‘윤석열 지키기’에 나섰고 열린민주당 등 범여권에선 ‘윤석열 때리기’로 맞섰다. 순식간에 공수가 바뀐 것이다. 실제 이번 총선서 윤 총장은 그 누구보다 높은 관심을 받았다. ‘조국 이슈’가 불거지면서 자연스럽게 윤 총장이 따라 나온 것.

통합당 김종인 비상대책위원장은 총선 전 윤 총장에 대해 “가장 정직하고 나라에 충성하고 있다”고 평가했다. 그는 CBS 라디오 <김현정의 뉴스쇼>에 출연해 “법을 법대로 집행했다고 생각을 해서 윤석열을 검찰총장으로 만들었다. 그런데 윤 총장이 조국 사태서 ‘법대로 하겠다’고 하니까 윤 총장을 계속해서 공격하는 것이 현 정부의 모습 아닌가”라고 비판했다. 

지난 총선서 범여권으로 분류된 열린민주당 최강욱 대표(당시 후보)는 총선 전 윤 총장의 부인 김건희씨를 자본시장법 위반과 사문서위조 및 사기죄 공범 혐의로, 윤 총장의 장모 최모씨에 대해선 특정경제범죄가중처벌법상 사기 및 의료법 위반 혐의로 고발했다. 

이때까지만 해도 윤 총장의 거취를 두고 논란이 크게 불거지진 않았다. 하지만 총선서 민주당이 국회 의석의 과반을 차지하고 압도적으로 승리하면서 윤 총장의 거취 문제가 수면 위로 확실하게 떠올랐다. 민주당 의원들의 입에서 ‘자진사퇴’라는 말이 나오기 시작한 것이다. 한명숙 전 국무총리의 뇌물수수 사건에 대한 검찰의 위증교사 의혹 감찰 문제를 두고 갈등이 불거지는 과정에서였다.

조국 이후
완전히 돌변

한 전 총리 사건 재판 때 검찰 측 증인으로 법정서 증언했던 A씨는 지난 4월 검찰 수사팀이 거짓 진술을 강요했다는 취지로 법무부에 진정을 냈다. 이 진정 사건을 어디에서 맡을지를 두고 윤 총장과 추 장관의 갈등이 심화됐다. 

추 장관은 해당 진정을 대검 감찰부서 조사하도록 지시했고, 윤 총장은 징계 시효가 지났다는 이유로 서울중앙지검 인권감독실에 배당했기 때문이다. 윤 총장이 진정 사건을 대검 감찰부에 배당하면서 사태는 봉합되는 방향으로 갔지만 이 과정서 윤 총장에 대한 비판의 목소리가 높아졌다. 

민주당 설훈 최고위원은 지난 19일 최고위원회가 끝난 뒤 기자들과 만난 자리서 “하루 이틀도 아니고 추미애 법무부 장관과 각을 세운 지 얼마나 됐느냐. 그런 상황서 행정이 제대로 돌아가겠느냐”며 “적어도 책임 있는 자세를 갖춘 사람이라면, 나라면 물러나겠다”고 말했다. 이어 “(검찰총장의) 임기 보장과 상관없이(법무부 장관과의) 갈등이 이렇게 일어나면 물러나는 것이 상책”이라고도 했다. 
 

▲ ‘함구령’ 내린 이해찬 더불어민주당 대표 ⓒ문병희 기자

윤 총장 거취에 대해서 민주당 지도부가 언급한 첫 사퇴 요구다. 설 최고위원은 YTN 라디오 <노영희의 출발 새아침>서도 “윤 총장이 정부와 적대적 관계라고까지 하기는 지나치지만 어쨌든 각을 세운 건 만천하가 아는 사실”이라고 비판하면서 “장모 사건 등으로 조금 진중하나 했더니 이렇게 또 장관과 각을 세우는 것은 잘못됐다. 조만간 결판을 지어야 한다”고 말했다. 

민주당 김용민 의원은 페이스북을 통해 “대검 인권부는 조사 권한이 없는데 조사 총괄을 맡기겠다는 것은 상급자인 법무부 장관의 지시를 위반한 월권행위”라며 “윤 총장이 무리수를 두는 이유는 어떻게든 (제 식구)봐주기를 하겠다는 의지의 표현”이라고 비판했다.

앞서 김 의원은 유튜브 채널 ‘시사발전소’서 “윤 총장은 검찰개혁의 필요성을 보여주는 상징적인 인물”이라며 “검찰 기득권 지키기에 몰두하고 있다”고 말했다. 또 “윤 총장이 검찰 역사상 가장 최악의 검찰총장이 될 거란 생각이 든다”고도 했다. 

민주당 이해찬 대표가 지난 22일 비공개 최고위원회서 “누가 묻더라도 윤 총장에 대한 이야기는 하지 마라. 이름도 거명하지 않겠다”며 함구령을 내렸다. 이어 “문제가 있으면 국회 법제사법위원회 차원서 대응하면 된다”고 말했다. 


이제 겨우
취임 1년

이 대표의 ‘입단속’에도 민주당 김두관 의원은 지난 23일 자신의 페이스북에 “윤 총장만큼 검찰 개혁의 필요성을 온몸으로 보여주는 사례를 찾기 어렵다. 자신의 장모 혐의는 물론 검찰 제 식구 감싸기와 야당의 명백한 비리 사건은 수사조차 하지 않고 있다”고 지적했다. 

장외서도 윤 총장에 대한 비판이 거세다.

더불어시민당의 공동대표를 지낸 우희종 서울대 교수는 지난 22일 자신의 페이스북에 “총선 결과를 진지하게 받아들인다면 윤 총장 세력이나 유착 언론들이 윤 총장에 대한 사퇴 요구가 마치 라임 사태 등에 연루된 정권이 이를 덮으려고 하는 것인양 연계하며 버텨선 안 된다”며 “윤 총장도 문 대통령을 위해 일한다고 했다면 임명권자의 부담을 덜어드리는 차원서 결단해야 한다”고 촉구했다. 

열린민주당 최강욱 대표도 지난 22일 국회 최고위원회서 “이제 권부에 성역이란 없다. 눈 밝은 시민들은 검찰총장을 응시하고 있다”며 “진실과 정의를 거스를 수 없는 상황을 직시하고 이제 껍질을 벗고 응답할 것을 촉구한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꼼수를 반복하는 양치기 소년 같은 태도를 반복한다면 주권자가 더 이상 용납하지 않을 것”이라며 “대검 인권부장이 인권감독관실과 대검 감찰과를 통솔하듯이 조사를 담당하도록 한 윤 총장의 지시는 법무부 장관의 지시를 어기는 것”이라고 직접 비판했다. 
 

▲ 추미애 법무부 장관 ⓒ고성준 기자

한 전 총리 사건, 검언유착 의혹 사건의 전문수사자문단 소집 결정 등을 이유로 윤 총장과 갈등을 빚고 있는 추 장관은 지난 24일 공개석상서 윤 총장에 대한 비판 목소리를 냈다.

추 장관은 이날 오전 경기 과천청사 대회의실서 열린 제57회 법의 날 정부포상 전수식 축사 당시 “(국민으로부터)권한을 위임받은 자가 각종 예규 또는 위임 취지에 반하고 있다”며 “자기 편의적으로 조직을 이끌어가기 위해 법 기술을 부리고 있어 대단히 유감”이라고 윤 총장을 에둘러 비판했다. 

문 거리 두기…추 우회적 비판
국민 여론은 사퇴 반대 우세

문 대통령은 지난 22일 제6차 공정사회반부패정책협의회에 참석한 추 장관과 윤 총장에게 “지난주 법무부와 검찰서 동시에 인권 수사를 위한 태스크포스가 출범했다”며 “권력기관 스스로 주체가 돼 개혁에 나선 만큼 ‘인권수사의 원년으로 만들겠다’는 각오대로 서로 협력해 달라”고 당부했다. 

이날 협의회는 민주당서 윤 총장의 사퇴 요구가 제기되던 시점에 이뤄진 터라 관심을 모았다. 하지만 문 대통령의 발언이 원론적인 수준에 그치면서 민주당 이 대표의 ‘함구령’처럼 윤 총장 거취 논란에 대해 거리를 두려는 게 아니냐는 해석을 낳았다. 

문 대통령의 당부에도 추 장관은 윤 총장에 대한 불편한 심기를 감추지 않았다. 지난 26일 추 장관은 검언유착 의혹 사건의 당사자로 지목된 한동훈 부산고검 차장검사에 대한 직접 감찰권을 행사하겠다고 나섰다. 한 검사장은 윤 총장의 최측근으로 분류된다.

그러면서 추 장관은 26일 국회서 열린 초선의원 혁신포럼에 참석해 “윤 총장이 제 지시를 절반 잘라 먹었다”며 “장관 말을 겸허히 들으면 좋게 지나갈 일을 지휘랍시고 일을 더 꼬이게 만들었다”고 맹공을 퍼부었다. 

범야권은 범여권의 공세에 ‘윤 총장 지키기’로 맞서는 모양새다. 국민의당 안철수 대표는 지난 22일 윤 총장에 대한 여권 일각의 사퇴 공세와 관련해 야권의 공동 대응을 제안했다. 그는 “민주당은 윤 총장에 대한 핍박을 즉각 중단하라”고 촉구한 뒤 “양심적인 범야권의 뜻을 모아 윤 총장 탄압금지와 법무부 장관의 공정한 직무수행을 촉구하는 국회 결의안을 공동 제출하자”고 요구했다. 

통합당 김종인 비대위원장은 민주당의 윤 총장 비판 공세에 “제발 좀 쓸데없는 언행을 삼가면 고맙겠다”고 질타했다. 그러면서 “직분을 성실히 수행하려고 애쓰는 검찰총장, 감사원장에 대해 정치권이 지나치게 간섭하고 국회가 딱한 언사를 행사하고 있다”며 “이렇게 해선 대한민국 민주주의 발전에 큰 장애요인으로 작용할 뿐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지적했다. 

여권 치고
야권 막고

윤 총장은 여러 공세에도 불구하고 ‘자진사퇴’는 없다는 입장을 고수해왔다. 국민여론도 사퇴 반대 쪽으로 살짝 기울어 있다. <데일리안>이 여론조사 전문기관 알앤써치에 의뢰해 지난 22∼23일 양일간 국민 1032명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 44%가 여권이 제기한 윤 총장의 사퇴 주장에 ‘반대한다’고 답했다. 찬성한다는 38.9%에 그쳤다.(자세한 내용은 알앤써치 홈페이지 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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탈세보다 무서운 산재와의 전쟁

탈세보다 무서운 산재와의 전쟁

[일요시사 취재1팀] 장지선 기자 = 이재명 대통령이 ‘산재와의 전쟁’을 선포했다. 건설 현장에서 근로자가 사망하는 사건을 줄이겠다는 취지다. 이 대통령이 칼을 휘두르자 기업은 납작 엎드렸다. 이 대통령의 행보를 보는 시각은 엇갈린다. 산재 사망사고가 끊이지 않는 만큼 단호한 조치가 필요하다며 환영하는 의견과 구조적 문제를 뒤로하고 기업 ‘잡도리’만 하고 있다는 의견 등이다. 건설업계에 칼바람이 불고 있다. 미국발 관세나 국내 경기 문제가 아니다. 산업재해(이하 산재)가 건설 현장을 뒤흔드는 중이다. 대통령은 여러 현안 중 산재로 인한 사망사고 근절을 국정 과제 첫머리에 올린 듯한 모습이다. 대통령 한마디 이재명 대통령이 반복되는 산재 사망사고의 고리를 끊겠다고 나섰다. 산재 사망사고가 발생한 기업을 법과 제도를 통해 처벌하겠다고 선언했다. 발언 수위도 나날이 세지고 있다. 본보기가 된 기업은 대통령이 일으킨 칼바람을 온몸으로 맞는 모양새다. 지난 5월 고용노동부가 발표한 1분기 ‘산업재해 현황 부가 통계’에 따르면 올해 1~3월 재해 조사 대상 사고 사망자는 총 137명(잠정)으로 지난해 같은 기간(138명)보다 1명(0.7%) 줄었다. 사망사고 건수도 같은 기간 136건에서 129건으로 7건(5.1%) 감소했다. 업종별로는 제조업이 29명으로 지난해보다 2명, 기타 업종(건설업과 제조업 이외 업종)이 38명으로 6명 감소했지만 건설업은 71명으로 오히려 7명 늘었다. 노동부는 부산 기장군 건설 현장 화재와 서울-세종고속도로 교량 붕괴 등 대형 사고의 영향으로 건설업 사망자 수가 증가했다고 분석했다. 지난 2월14일 부산 기장군 반얀트리 리조트 신축 공사장에서 불이 나 6명이 숨졌다. 또 같은 달 25일, 경기도 안성시 서울-세종고속도로 건설 현장 교량 상판 구조물이 붕괴해 4명이 목숨을 잃는 사고가 일어났다. 규모별로는 상시 근로자 50인(건설 업종은 공사 금액 50억원) 미만 사업장에서 올해 1분기 사망자는 83명으로 지난해보다 5명(6.4%), 사망사고 건수는 83건으로 7건(9.2%) 늘었다. 반면 50인 이상 대형 사업장과 대규모 공사 현장에선 사망자 54명, 사고 건수 46건으로 각각 6명, 14건 줄었다. 사망사고 유형별로는 ‘추락’ 62명, ‘끼임’ 11명, ‘물체에 맞음’ 16명으로 지난해와 비교해 각각 1명, 7명, 5명 감소했다. 화재와 폭발로는 10명, ‘붕괴’ 사고로는 11명이 목숨을 잃었다. 지자체별로는 경기(31명), 서울(17명), 경북(15명), 부산·전남(12명), 경남(11명), 충남(9명), 강원·울산(6명) 순으로 많았다. 산재로 인한 사망은 건설 현장에서 일어날 수 있는 최악의 사고다. 정부는 산재 사망사고를 줄이기 위한 각종 대책을 내놨다. 2022년 1월부터 시행된 중대재해처벌법(이하 중처법)도 그중 하나다. 중처법은 근로자의 사망사고 등 중대 재해가 발생했을 때 기업의 경영 책임자 등이 안전 보건 관리 체계 구축 등 의무를 위반한 것으로 확인되면 처벌하도록 하는 내용이 골자다. 취임 이후부터 직접 챙겨 국정 운영 계획에도 포함 문제는 실효성이다. 중처법이 시행된 이후에도 건설 현장에서 근로자가 죽는 일이 계속 일어나고 처벌은 ‘솜방망이’ 수준에 그친다는 지적이 끊이지 않았다. 결국 이 대통령이 칼을 빼 들었다. 이 대통령은 지난 12일 “비용을 아끼기 위해 누군가의 목숨을 빼앗는 것은 일종의 미필적 고의에 의한 살인, 또는 사회적 타살”이라고 비판했다. 필요하면 법을 개정해서라도 ‘산재 공화국’이라는 오명을 벗겠다는 뜻도 밝혔다. 이 대통령은 이날 국무회의에서 “일상적으로 산업 현장을 점검해서 필요한 안전조치를 하지 않고 작업하면 엄정하게 제지해야 하지 않을까 싶다”며 “제도가 있는 범위 내에서 할 수 있는 최대의 조치를 해달라”고 주문했다. 사고 위험이 큰 업무를 하청과 외주를 통해 해결하는 ‘위험의 외주화’ 현상에 대해서도 지적했다. 이 대통령의 산재 사망사고 근절 ‘드라이브’는 점진적으로 거세지고 있다. 초기에는 주무 부처에 대책을 요구했다면 최근에는 직접 목소리를 내고 움직이는 식이다. 대통령이 직접 나서서 산재를 줄이라고 지시했는데도 불구하고 사망사고가 이어지자 특유의 행동력을 보이고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실제 이 대통령이 고용노동부에 산재 관련 종합 대책을 주문한 뒤에도 ▲인천 맨홀 작업 노동자 질식사 ▲포스코이앤씨 노동자 끼임사 ▲경기 의정부 아파트 신축 현장 노동자 추락사 등의 사고가 일어났다. 불과 한 달 새 일어난 일이다. 지난달 6일 인천 계양구 병방동의 한 도로 맨홀 안에서 지하 시설물 조사 작업 중이던 노동자 1명이 의식을 잃고 1명은 실종됐다. 이들은 결국 사망했다. 조사 결과 이 사고는 용역 계약 위반에 따라 허가 절차 없이 진행하다가 발생한 인재로 드러났다. 법으로도 안 됐는데… 숨진 근로자는 산소 마스크 등 안전 장비를 제대로 착용하지 않은 채 작업하다 유독가스에 중독된 것으로 알려졌다. 당시 이 대통령은 “현장 안전 관리에 미흡한 점이 있었는데 철저히 밝히고 법령 위반 여부가 있었는지를 조사해 책임자를 엄중히 조치하라”며 “후진국형 산업재해가 다시는 발생하지 않도록 현장 안전관리를 정비하고 사전 지도·감독을 강화하는 등 관련 부처도 특단의 조처를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하지만 지난달 28일 포스코이앤씨가 시공하는 경남 함양-울산고속도로 의령나들목 공사 현장에서 사면 보강 작업을 하던 60대 근로자가 천공기(지반을 뚫는 건설기계)에 끼어 숨지는 사고가 일어났다. 포스코이앤씨 시공 현장에서만 올해 들어 4번째 일어난 사망사고다. 지난 1월 경남 김해 아파트 신축 현장 추락사고, 경기도 광명 신안산선 건설 현장 붕괴사고, 대구 주상복합 신축 현장 추락사고 등도 줄을 이었다. 이 대통령은 “똑같은 방식으로 사망사고가 나는 것은 결국 죽음을 용인하는 것이고 아주 심하게 얘기하면 법률적 용어로 미필적 고의에 의한 살인”이라고 질타했다. 그러면서 “(산재 사망사고가 나면) 여러 차례 공시하도록 해서 투자를 안 하고 주가가 폭락하게 (해야 한다)”고도 말했다. 여름휴가를 마치고 복귀 첫 일성도 산재 관련 발언이었다. 이 대통령은 “앞으로 모든 산업재해 사망사고는 최대한 빠른 속도로 대통령에게 직보하라”고 지시했다. 산재 사망사고를 직접 챙기겠다는 의지를 다시 한번 천명한 것이다. 사과문 내고 또 반복되다 지난 9일 강유정 대통령실 대변인을 통해 전해진 이 대통령의 발언은 전날인 8일 경기 의정부 신축 아파트 공사 현장에서 안전망 철거 작업을 하던 50대 근로자가 6층 높이에서 떨어져 숨진 사고가 영향을 미쳤다. 이 대통령이 선포한 ‘산재와의 전쟁’에 기업은 바짝 얼어붙은 상황이다. 지난달 25일 경기 시흥 SPC 삼립 공장을 방문해 ‘중대산업재해 발생 사업장 현장 간담회’를 열었다. 해당 공장은 지난 5월 50대 여성 노동자가 작동 중인 컨베이어벨트에 끼어 사망했고 2022년과 2023년에도 여성 노동자가 각각 소스 교반기와 반죽 기계에 끼어 숨지는 등 중대 산재가 빈번하게 일어났던 곳이다. 이 대통령은 이날 간담회에서 SPC 근로자의 노동 시간 등을 자세히 물었다. 그러면서 “(산재가) 심야에 대체적으로 발생하고 12시간씩 4일간 일하다 보면 사실 심야 시간에 힘들다. 주의력이 떨어질 수밖에 없다”며 “심야 장시간 노동 때문에 생긴 일로 보여진다”고 말했다. 이 대통령의 지적에 SPC 회장을 비롯해 그룹 관계자들이 쩔쩔맨 것으로 전해졌다. SPC그룹은 이 대통령이 다녀간 지 이틀 만인 지난달 27일, 8시간 초과 야근을 폐지하겠다는 대책을 내놨다. 제품 특성상 필수적인 품목 외에는 야간 생산을 최대한 없애 공장 가동 시간을 축소하겠다는 것이다. 또 주간 근무 시간도 점진적으로 줄여 장시간 근무로 인한 피로 누적, 집중력 저하, 사고 위험 등을 사전에 차단하겠다고 밝혔다. 포스코이앤씨는 지난달 29일 담화문을 내고 고개를 숙였다. 정희민 전 대표이사는 “어제(28일) 사고 직후 모든 현장에서 즉시 모든 작업을 중단했고 전사적 긴급 안전 점검을 실시해 안전히 확실하게 확인되기 전까지 무기한 작업을 중지하도록 했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협력업체를 포함한 모든 근로자의 안전이 최우선 가치가 되도록 필요한 자원과 역량을 총동원해 근본적인 쇄신 계기로 삼겠다”며 “또다시 이런 비극이 발생하는 일이 없도록 사즉생의 각오와 회사의 명운을 걸고 안전 체계의 전환을 이뤄내겠다”고 말했다. 하지만 정 전 대표의 사과는 엿새 만에 또다시 일어난 사고로 빛이 바랬다. 지난 4일 오후 경기 광명시 옥길동 광명-서울고속도로 민간투자사업 제1공구 현장에서 미얀마 국적 30대 근로자가 감전돼 심정지 상태로 발견됐다. 이 근로자는 병원으로 이송된 지 8일 만인 지난 12일 의식을 회복했다. 높아진 발언 수위·제재 조치 “왜 기업만 잡도리?” 의견도 정 전 대표는 사의를 표명하고 물러났다. 연이어 산재사고가 일어난 포스코이앤씨는 ‘본보기’가 될 가능성이 커진 상황이다. 일단 이 대통령은 포스코이앤씨에 대한 건설 면허 취소, 공공 입찰 금지 등 법률상 가능한 방안을 모두 찾아서 보고하라는 지시를 내린 바 있다. 국내 건설 면허 취소는 현행 건설산업기본법상 최고 수위의 징계다. 1994년 성수대교 붕괴 책임이 있던 동아건설산업에 내려진 사례가 유일하다. 건설 면허가 취소되면 신규 사업을 할 수 없고, 다시 면허를 취득한다고 해도 수주 이력이 없기 때문에 관급공사를 따내는 것이 사실상 불가능하다. 경찰은 사고 관련 수사 전담팀을 만들고 고용노동부 안양지청과 함께 포스코이앤씨와 하청업체에 대한 압수수색에 돌입했다. DL건설도 대표이사를 비롯한 임원진 전원이 공사 현장에서 발생한 사망사고에 책임을 지고 일괄 사표를 제출하는 등 납작 엎드렸다. 특히 이 대통령이 휴가에서 돌아와 산재 관련 발언을 한 직후 터진 사고여서 충격파가 더 컸다. DL건설에서 사표를 제출한 임직원은 80여명, 공사를 중단한 현장은 44곳에 이른다. 이재명정부는 산재사고로 인한 사망자 비율을 2030년까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평균 수준인 1만명당 0.29명까지 끌어내리는 방안을 추진하기로 했다. 지난해 우리나라에서 발생한 산재로 인한 사망자 비율은 1만명당 0.39명으로 OECD 평균을 크게 웃도는 실정이다. 이 같은 내용은 ‘이재명정부 국정 운영 5개년 계획’에 포함됐다. 이 대통령이 지난달 수석보좌관 회의에서 “전 세계에서 또는 OECD 국가 중 산업재해율, 사망재해율이 가장 높다는 불명예를 이번 정부에서 반드시 끊어내겠다”고 의지를 드러낸 부분을 국정과제로 담은 것이다. 구조 문제 나 몰라라 일각에서는 이 대통령이 지나치게 건설업계만 잡고 있다는 지적도 제기된다. 관련 법과 제도가 시행되고 있는데도 사망사고가 끊이지 않는다면 구조적인 문제도 살펴봐야 한다는 것이다. 수주 경쟁이 과열되면서 저가 입찰이 늘고 안전관리에 소홀해지는 점이 산재로 이어지는 식의 고리를 끊어야 진정한 의미의 ‘근절’이 이뤄질 것이라는 분석도 있다. <jsjang@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