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면초가’ 윤석열의 출구전략

‘사방이 적’ 동네북 신세

[일요시사 취재1팀] 장지선 기자 = 윤석열 검찰총장에 대한 여론이 롤러코스터를 타고 있다. 정치권의 경우, 한쪽에선 윤 총장을 추켜세우고 다른 한쪽에선 사퇴하라고 윽박지르는 중이다. 처가서 불거진 의혹은 쉽사리 가라앉을 기미를 보이지 않고 언론 역시 윤 총장을 정조준하고 있다. 사면초가에 빠졌다.
 

▲ 윤석열 검찰총장

윤석열 검찰총장은 박근혜-문재인정부를 거치면서 가장 드라마틱한 변화를 겪은 인물로 꼽힌다. 한직을 전전하던 좌천 검사는 국정 농단 사태 특검 수사팀장으로, 서울중앙지검장에 파격 발탁된 데 이어 검찰총장에까지 올랐다.

신뢰받다
공적으로

박근혜정부 당시 윤 총장은 채동욱 당시 검찰총장의 요청으로 국정원 댓글사건 특별수사팀장에 투입됐다. 그는 검찰 수뇌부의 반대에도 국정원 직원들에 대한 압수수색과 체포영장을 집행했다.

그 여파로 1개월 정직의 징계를 받았고 인사 과정서 한직으로 꼽히는 대구고검으로 좌천됐다. 2013년 국정감사서 황교안 당시 국무총리와 조영곤 당시 서울중앙지검장 등의 수사 외압을 폭로했다. 이 과정서 나는 사람에게 충성하지 않는다는 말을 남겨 화제가 되기도 했다.

박정부서 한직을 전전하던 윤 총장은 박근혜-최순실게이트 특검 당시 수사팀장으로 화려하게 부활했다. 이후 문재인정부서 서울중앙지검장으로 깜짝 발탁됐다.


뒤이어 문재인 대통령은 지난해 6월 윤 총장을 문무일 검찰총장에 이어 차기 검찰총장으로 지명했다. 검찰총장 임기제가 도입된 1988년 이후 고검장을 거치지 않고 검찰총장으로 직행한 첫 사례다. 윤 총장은 전임 문 전 총장보다 연수원 기수가 5기나 낮은 기수 파괴인사였다.

지난해 7월 인사청문회서 더불어민주당과 자유한국당(현 미래통합당)은 윤 총장(당시 후보자)의 적격성 여부를 놓고 공방을 벌였다. 집권여당인 민주당은 윤 후보자의 적격성이 증명됐다며 인사청문회 경과보고서를 채택해야 한다고 주장했고, 한국당은 윤 후보자의 자진사퇴를 촉구하며 맞섰다.

인사청문회 경과보고서는 채택되지 않았지만 문 대통령은 윤 총장의 임명을 강행했다. 문 대통령은 지난해 725일 윤 총장에게 임명장을 수여하는 자리서 권력형 비리에 대해 정말 권력에 휘둘리지 않고 눈치도 보지 않고 사람에 충성하지 않는 자세로 아주 공정하게 처리해 국민의 희망을 받으셨는데, 그런 자세를 끝까지 지켜주기 바란다고 당부했다.

청와대와 대립 때도 버텼는데…
가족·측근 논란으로 최대 위기

이어 그런 자세가 살아있는 권력에 대해서도 같아야 한다고 생각하기에 청와대든 정부든 집권여당이든 권력형 비리가 있다면 엄정한 자세로 임해주시길 바란다고 주문했다.

그러면서국민은 검찰이 근본적으로 변화하길 바라고 있다내부적으로는 그동안 보여왔던 정치 검찰의 행태를 청산하고 무소불위 권력이 아니라 민주적 통제를 받으면서 국민을 주인으로 받드는 검찰이 되길 바란다고 검찰 개혁에 대해서도 언급한 바 있다.

문정부의 신임을 한 몸에 받고 검찰총장 임기를 시작한 윤 총장은 불과 두 달 만에 집권여당은 물론 청와대와 각을 세우기 시작했다. 문 대통령이 지난해 8월 조국 전 장관을 법무부장관 후보자로 지명한 이후부터다. 사모펀드, 웅동학원, 입시비리 등 조 전 장관과 그의 가족을 둘러싼 의혹들이 쏟아지기 시작했고, 검찰이 수사에 뛰어들면서 판이 커졌다.
 

▲ 추미애 법무부장관

문 대통령이 조 전 장관의 임명을 강행하고 검찰도 수사를 계속하면서 대립각이 커졌다. 집권여당과 청와대서 윤석열 검찰에 대한 비판의 목소리가 나오기 시작했다. 검찰 개혁에 대한 목소리도 이어졌다. 서초동과 광화문으로 나뉘어 조국 수호, 조국 퇴진을 외치는 집회가 열리는 등 갈등은 극한으로 치달았다.

조 전 장관이 사퇴한 이후에도 청와대와 정부 인사를 향한 검찰의 칼날은 무뎌지지 않았다. 오히려 청와대 울산시장 선거개입·하명 수사 의혹, 라임자산운용의 사모펀드 환매 중단사태 등을 수사하면서 관련 의혹을 받고 있는 청와대 관계자들을 기소하는 등 수사에 박차를 가했다.

이 과정서 조 전 장관의 후임인 추미애 법무부장관과 사사건건 대립했다. 추 장관이 인사권을 무기로 윤 총장의 손발을 자르면, 검찰이 기소권을 내세워 청와대 관계자들을 재판에 넘기는 식이다. 그 사이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공수처), ·경 수사권 조정안 등 검찰의 힘을 빼놓는 법안이 국회 문턱을 넘었다.

장모·아내
가족 논란

검찰이 살아있는 권력에 대한 수사를 진행하자 윤 총장에 대한 사퇴 압박이 거세졌다.

하지만 윤 총장은 자진사퇴는 없다는 입장을 고수한 채 검찰 수사를 진두지휘했다. 문제는 사건 수사에 대한 반작용으로 사퇴 압박이 들어왔던 이전과는 달리, 최근에는 윤 총장 주변서 불거진 여러 의혹이 그에게 칼이 돼 돌아오고 있다는 점이다. 정치권, 언론 심지어 검찰 내부서까지 윤 총장을 비토하는 목소리가 흘러나온다.

시작은 장모 최씨와 아내 김건희씨 등 윤 총장의 처가를 둘러싼 논란이다. 윤 총장의 처가 논란은 언론, 국정감사, 인사청문회 등에서 이미 수차례에 걸쳐 불거진 바 있다. 그때마다 윤 총장은 “관여하지 않았다” “잘 모른다” 등의 말로 해명했다. 하지만 방송을 통해 해당 논란이 한 번 더 불거지고 청와대 국민청원까지 등장하면서 상황이 반전됐다.

검찰은 최씨의 예금 잔고증명서 위조 의혹을 두고 수사에 나섰고 지난달 27일 불구속 기소했다. 사문서 위조, 위조 사문서 행사, 부동산 설명법 위반 혐의를 받고 있는 최씨의 재판은 오는 14일 열린다.

설상가상으로 한 검찰 수사관이 윤 총장의 퇴진을 요구하는 글을 검찰 내부통신망 이프로스에 올렸다.
 

▲ 대검찰청

수원지검 강력부 A 수사관은 지난 7일 오후 “총장님과 가족분들이 의심을 받고 있는 상황서 우리 조직과 총장님이 사랑하시는 일부 후배 검사님들을 위해, 그리고 우리나라를 위해서 또한 총장님의 가족들을 위해서도 그만 직에서 물러나시는 것이 맞다고 생각한다”고 적었다. 그는 “총장님이 받는 의심은 다른 직원들이 받는 의심과는 차원이 다르다”며 “총장님은 우리 조직의 대표이고 얼굴이시기 때문”이라고 덧붙였다.

그러면서 “총장님의 장모님과 사모님이 의심받는 상황서 누가 조사를 하더라도 총장님이 조사를 하신 것”이라며 “설령 보고를 받지 않겠다고 해서 그게 무슨 의미가 있을까 생각했다”고 전했다.

검언유착?
휘말린 측근?


이날 비례 위성정당 열린민주당 최강욱·황희석·조대진 비례대표 후보들이 윤 총장의 아내 김씨와 장모 최씨를 검찰에 고발했다. 이들은 검찰이 수사를 제대로 진행하지 않고 축소하거나 생략한다면 올 7월 출범하는 공수처서 직무 태만 등 여러 문제를 짚을 수밖에 없다고 주장했다. 김씨의 주가조작 혐의는 권오수 도이치모터스 회장이 20102011년 자사 주가를 인위적으로 조종했던 과정에 김씨가 쩐주로 참여했다는 의혹에 대한 것이다.

최강욱 후보와 황희석 후보는 이전부터 윤 총장과 검찰에 대한 날선 비판을 쏟아내 왔다. 청와대 공직기강비서관 출신의 최 후보는 법무법인 청맥 변호사로 있던 201710월 조 전 장관의 아들 조모씨의 인턴활동 확인서를 허위로 발급해준 혐의로 재판에 넘겨졌다.

최 후보는 검찰의 기소를 날치기 기소라고 비판했다. 그는 지난달 30CBS라디오 <김현정의 뉴스쇼>에 출연해 윤 총장이 저에 대한 날치기 기소를 포함해 법을 어기고 있는 게 한두 가지가 아니다라며 공수처가 설치되면 윤 총장 부부가 수사 대상 1호가 될 수도 있지 않을까 싶다고 말했다.
 

▲ 청와대 ⓒ문병희 기자

윤 총장을 둘러싼 논란은 이뿐만이 아니다. MBC서 채널A 기자의 녹취록을 보도하면서 측근 논란이 불거졌다.

MBC는 지난달 31일 채널A 법조팀 기자 B씨가 금융사기죄로 서울 남부구치소에 수감 중인 신라젠의 전 대주주 이철 밸류인베스트먼트코리아 전 대표 측에 유시민 노무현재단 이사장을 칠 수 있는 비위사실을 제공해줄 것을 강요했다고 보도했다.

이 과정서 B 기자는 윤 총장의 최측근 검사장과의 친분을 과시한 것으로 알려졌다. B 기자의 취재 과정서 언급된 유시민 이사장은 지난 3MBC라디오 <김종배의 시선집중>에 출연해 언론을 컨트롤하는 고위 검사와 법조 출입기자는 같이 뒹군다이렇게 막장으로 치닫는 언론 권력과 검찰 권력의 협잡에 대한 특단의 조치 없이는 문제가 해결되지 않을 것이라고 지적했다.


법무부 직접 감찰 가능성 나와
추미애 장관과 대놓고 싸우나?

법무부 전 인권국장 출신의 황 후보는 자신의 페이스북에 B 기자가 이철 전 대표에게 보냈다는 편지를 일부 공개하고 편지에 드러나는 것처럼 윤 총장이 등장한다모종의 기획에 윤 총장이 개입하고 있음을 엿볼 수 있다고 주장했다.

윤 총장은 한동수 대검 감찰본부장이 B 기자와 유착 의혹이 불거진 C 검사장에 대한 감찰 착수 의사를 밝히자 자체 조사가 우선이라며 반대 입장을 보였다. 그러면서 녹취록 전문 내용을 파악하고 감찰 혐의가 있으면 감찰 여부를 결정하다는 뜻을 전했다고 한다.
 

앞서 대검찰청은 채널AC 검사장이 의혹을 부인했다는 내용의 1차 보고를 법무부에 전달했다이후 채널AMBC에 기자와 제보자와의 녹음파일 등 관련 자료를 제출해 달라고 요청했다. 하지만 법무부는 채널A와 검사장의 입장만 전달하는 수준의 1차 보고가 불충분한다고 판단하고, 지난 2일 재조사를 지시했다.

재조사 결과에 따라서는 법무부서 직접 감찰에 나설 가능성도 거론된다. 지난해 10월 조 전 장관은 검찰에 대한 법무부의 직접 감찰 범위를 확대하는 방향으로 감찰 규정을 개정한 바 있다.

법무부 감찰규정 제52검찰서 자체 감찰을 수행하지 않기로 결정한 경우 감찰 대상자가 대검 감찰부 업무를 지휘·감독하는 지위에 있는 경우 검찰의 자체 감찰로는 공정성을 인정받기 어렵다고 보일 때 직접 감찰에 나설 수 있도록 하고 있다. 법무부가 직접 감찰에 나설 경우 윤 총장과 추 장관의 갈등이 또 다시 수면 위로 올라올 가능성도 제기된다.

진상 조사
수사 확대

민주언론시민연합(이하 민언련)은 지난 7일, B 기자와 C 검사장을 서울중앙지검에 고발했다. 이철 전 대표에게 유 이사장의 비위를 제보하라고 요구하면서 응하지 않을 시 형사상 불이익을 암시한 점이 협박죄에 해당한다는 주장이다. 민언련은 B 기자가 아직 신원이 정확히 드러나지 않은 C 검사장과 논의해 이 같은 일을 진행했다고 보고 함께 고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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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한길 유니버스’ 절대 불가능한 이유

‘전한길 유니버스’ 절대 불가능한 이유

[일요시사 정치팀] 박형준 기자 = 국민의힘에 입당한 한국사 강사 전한길씨가 국민의힘 행사에서 영향력을 과시하다가 큰 물의를 일으켰다. 전씨는 국민의힘에서 ‘보수의 김어준’을 꿈꾸는 것 같다. 전씨는 과연 김씨가 15년 동안 구축했던 영향력을 단번에 얻을 수 있을까? 국민의힘에 입당한 한국사 강사 전한길씨가 지난 8일, 대구 EXCO에서 진행된 국민의힘 전당대회 대구·경북지역 합동연설회에서 큰 물의를 일으켰다. 전씨는 지난 3월 창간한 <전한길뉴스> 소속 언론인 자격으로 참석했다. 선거판 난장판 하지만 전씨는 언론 취재의 한계를 넘어 반탄(탄핵 반대) 성향 후보들의 연설 도중 응원하면서 분위기를 띄웠다. 반대로 찬탄(탄핵 찬성) 성향 당 대표·최고위원 후보들이 연설할 때마다 “내부 총질” 혹은 “배신자” 등 원색 비난을 했다. 이날 김근식 최고위원 후보는 전씨를 직접 지칭해 “부정선거 음모론에 빠지고, 계엄을 계몽령이라고 정당화하는 사람들과 어떻게 같이 투쟁할 수 있겠느냐”면서 비난했다. 그러자 전씨는 김 후보에게 욕설하면서 자신의 지지자들을 격동시켰다. 찬탄 성향 조경태 당 대표 후보가 연설할 땐 자리에서 일어나 한 손을 들고 항의하는 등 지지자들의 조 후보 비난을 유도했다. 그러자, 찬탄 성향 일부 당원들이 전씨에게 물병을 던지면서 항의했다. 한 당원은 전씨에게 “난 20년 차 당원인데, 입당한 지 한 달밖에 안 된 당신이 왜 이런 난동을 부리느냐”고 따져 물었다. 국민의힘 지도부는 전씨의 전당대회 출입을 막기 위해 대의원이 아닌 일반 당원의 행사장 출입을 금지했다. 이어 전씨에 대한 징계 가능성도 내비쳤다. 그러자 전씨는 <전한길뉴스> 발행인 신분을 내세워 “언론 탄압”이라며 반발했다. 이처럼 전씨는 국민의힘 당원과 언론인이란 신분을 왕래하면서 국민의힘 전당대회에 개입하고 있다. 지난달 31일과 지난 7일엔 시사평론가 고성국씨 등과 함께 주최한 ‘자유 우파 유튜브 연합 토론회’에 각각 장동혁·김문수 당 대표 후보를 출연시켜 ‘면접’을 보는 위력을 국민의힘 내외에 과시했다. 특정 진영의 강경파를 대상으로 언론사·유튜브 채널 등을 운영하면서 힘을 과시하는 모델로는 방송인 김어준씨가 있다. 김씨는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의 친문(친 문재인) 강경파 성향 당원·지지자를 대상으로 라디오·유튜브 방송을 진행하면서 당 전체를 좌지우지하는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다. 당 대표 후보들을 면접하는 형식은 김씨가 지난해 3월 자신의 유튜브 방송 ‘김어준의 다스뵈이다’에 민주당 총선 후보자였던 이언주·전현희 의원과 안귀령 대통령실 부대변인을 출연시켜 객석의 청중에게 큰절을 시킨 것과 비슷하다. 김씨가 지난 6월 기획·진행한 ‘더 파워풀’ 콘서트엔 ▲문재인 전 대통령 ▲민주당 정청래 대표 ▲김민석 국무총리 등 다수의 민주당 내 유력 정치인이 참석했다. 입당하자마자 영향력 과시 물의 당원·언론인 오가며 전대 개입 김씨는 지난 2011년 팟캐스트 방송 ‘나는 꼼수다’ 공동 진행자로 활동하면서부터 민주당에 대한 영향력을 키워왔다. 물론 김씨가 15년 동안 구축한 영향력을 전씨가 단기간에 얻긴 어렵다. 이 때문인지 전씨는 국민의힘에 입당하자마자 ‘10만 당원 양병설’ 등을 주장하면서 당 대표 선거에 출마할 가능성을 내비쳤다. 하지만 국민의힘 전당대회에 출마하기 위해선 당비를 3개월 이상 납부하고, 연 1회 이상 교육을 받은 책임당원이어야 한다. 전씨는 지난 6월 온라인으로 입당했고, 당 대표 후보 등록일은 지난달 30일부터 단 이틀 동안이었다. 따라서 전씨는 당 대표 선거에 출마할 수 없었다. 출마 길이 막힌 전씨는 전당대회에서 당원·언론인 신분을 교차하면서 자신을 따르는 당원들을 선동해 영향력을 과시하려고 한다. 하지만 전씨는 김씨가 민주당에서 막강한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게 된 구조를 이해하지 못한 것으로 보인다. 민주당과 주변 진영 전체를 둘러싼 질서는 20세기 초·중반에 활동했던 이탈리아 사회주의자 안토니오 그람시의 헤게모니 이론이 갖는 틀과 비슷하다. 그람시는 “자본주의는 견고하게 발전할 것”이라는 대전제를 토대로 “언론·문화 등 각 분야에 진지를 구축해 참호전으로써 상대 세력을 약화해야 한다”는 사상을 정리했다. 각 분야에 구축한 진지는 결정적인 시기에 전개할 기동전의 전초기지 역할을 한다. 자본주의 구조가 뿌리내리면서 러시아 2월·10월 혁명과 같이 한순간에 모든 것을 뒤집는 혁명은 사실상 불가능해졌다. 그람시는 주도권 다툼으로써 체제 내 혁명을 추구하는 취지의 사상을 구체화했다. 우리나라에선 소련 해체가 가시화되던 1980년대 후반부터 기존 노동운동에 문화·예술운동을 접목하는 단체가 활동하는 등 각계에서 다른 방향의 노동운동을 전개하는 것으로부터 시작된다. 민주당을 받치는 양대 축은 각계의 시민단체들과 진보 성향 매체들이다. 대규모 정치 이벤트가 진행될 땐 민주당 지원 사격을 맡으면서, 정치적 명분과 정당성을 구축·홍보하는 역할을 맡는다. 또 민주당에 인력을 공급하는 역할도 한다. 주요 선거 등 대규모 기동전이 필요한 상황에선 각자의 진지에서 일시에 뛰쳐나와 물량을 공급하는 식이다. 이 같은 구조를 상징하는 사람이 민주당 윤미향 전 의원이다. 정의기억연대 대표로 오랫동안 활동하던 윤 전 의원은 민주당을 통해 국회의원이 됐지만, 횡령 의혹이 유죄로 확정돼 의원직을 잃었다. 같은 당 추미애 의원 등 민주당 일각에선 윤 전 의원의 사면을 강하게 지지했고, 결국 8·15 광복절특사를 통해 사면·복권됐다. 민주당과 그람시 하지만 시민단체와 매체는 대중을 직접 동원하기가 어려운 데다, 매체는 언론 고유의 한계가 있다. 시민단체 역시 시민들의 참여가 부실하다는 핸디캡을 떠안을 수밖에 없는 구조적 문제도 존재해 왔다. 이 때문에 삼각 구조를 받쳐줄 또 하나의 하부 구조가 필요했다. 이 문제를 해결해준 사람이 바로 김씨였다. 김씨는 지난 1998년 ‘안티 <조선일보>’라는 깃발을 내걸고 <딴지일보>를 창간한 후 풍자·B급 정서·유머를 지향해오고 있다. 당시 <딴지일보>에선 포장마차에서 어묵을 찍어 먹는 용도로 내는 간장의 위생 상태를 취재해 기사화하거나 국가혁명당 허경영 명예대표의 대권 도전 과정을 풍자하는 등 ‘신선한 B급 정서’를 지향해 독자적인 인기를 누렸다. 하지만 한편으로 김씨에게 평생 따라다닐 놀림거리를 남겼다. 김씨가 <딴지일보>의 채무를 해결하기 위해 여성용 성인용품을 판매했고, 성인남녀의 만남을 중개하는 사이트를 개설했던 탓이다. 보수 성향 유권자들은 여전히 김씨를 비판하면서 당시의 전력을 함께 언급한다. 이후 김씨는 ▲황우석 박사 옹호 ▲영화감독 겸 코미디언 심형래씨 옹호 등 숱한 논란을 일으켰다. 특히 황 박사 옹호는 그럴 듯한 음모론을 제시하면서도 설득력 있는 근거는 제시하지 않는 김씨의 특성과 깊이 맞물린다. 당시의 논란도 김씨에 대한 비판론을 형성하는 중심축이다. 그랬던 김씨가 막강한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게 된 계기로는 크게 2가지를 들 수 있다. 하나는 ‘문재인 대통령 만들기’를 처음 시작했다는 것이었고, 다른 하나는 팟캐스트 ‘나는 꼼수다’ 공동 진행자 중 1명으로 활동했단 것이었다. 김씨는 당시 민주당 백원우 의원이 노무현 전 대통령 영결식장에서 이명박 당시 대통령에게 거친 항의를 말리고 고개 숙여 사과하는 문 전 대통령을 주목했다. 이후 김씨는 문 전 대통령의 킹메이커를 자처했고, 이는 ‘나는 꼼수다’ 진행 이후 문 전 대통령의 대세론으로 이어졌다. ‘나는 꼼수다’는 김씨 특유의 B급 정서·음모론이 이명박정부에 대한 다양한 불만과 맞물려 대성했던 방송이었다. ‘나는 꼼수다’는 현재까지 이어지는 김씨의 성향을 구체화한 방송이라고 볼 수도 있다. 해당 팟캐스트의 상징으로 통하는 “쫄지 마”는 여전히 회자된다. ‘나는 꼼수다’는 구체적인 사실관계 검증엔 큰 관심을 두지 않았다. 명확한 당파성을 매개로 특정 정당·진영 사람들이 선호할 음모론과 괴담을 이미 밝혀진 사실관계와 섞어 전달하는 것에 집중했다. 진실과 거짓의 경계선을 적당히 왕래하면서 민주당 지지를 극대화하는 것이 주된 목적이었다. 영웅과 악당들 이는 집단의식으로 연결됐고, 김씨에겐 거대한 영향력을, 민주당엔 거대한 지지 집단을 만들어줬다. 김씨는 ‘나는 꼼수다’를 통해 단순·명쾌한 이분 구도를 완성했다. 그를 선호하는 민주당 지지자의 정치관은 “보수진영이란 거대한 악에 맞서 싸운다”는 것이다. 이는 정의로운 주인공이 지구 정복을 노리는 악당의 무리에 맞서 싸우는 어린이용 만화의 서사와 크게 다르지 않다. 아울러 현재 민주당 핵심 지지 세대로 알려진 4050세대가 미국의 마블 시네마틱 유니버스를 선호하는 것과 연결해볼 수 있다. 이 세계관엔 초월적인 힘을 갖고 모든 생명체의 절반을 죽여 우주를 정화하려는 악당에 맞서는 영웅들이 등장한다. 이 세계관에 결정적인 영향을 준 사건은 지난 2009년 노무현 전 대통령 사망사건이었다. 이들에게 노 전 대통령 사망사건은 거대 악당과 싸워야 하는 당위성을 제공해주는 절대적인 명분이었다. 김씨가 이 사건에 주목하고, 상주로서 백 전 의원의 항의를 제지하던 문 전 대통령을 주목한 것은 당연한 순서였다. 우리 고전문학 중 전설은 김씨의 평소 주장과 비슷한 서사 구조를 띠고 있다. 전설은 능력이 뛰어난 주인공이 현실의 한계에 좌절하고 무너지는 비극적인 구조를 취한다. 또 설득력을 부여해야 많은 사람에게 퍼질 수 있어서 실제 존재하는 지역·지명을 매개로 그럴듯하게 전개된다. 여기엔 각박한 현실을 바꿔줄 새로운 영웅의 출현을 기대하는 민중의 소망이 담겨있다. 그래서 조선시대엔 “정씨 성을 가진 영웅이 새 나라를 만들어 왕이 될 것”이란 취지의 예언서가 오랫동안 돌아다녔다. 김씨의 주장은 21세기판 전설이라고 할 수 있다. 김씨는 민주당과 주변 진영을 취약한 상황에서 거대한 악에 도전하는 영웅으로 묘사하고, 지지자들은 그 영웅담에 환호한다. 그러면서 “거대한 악에 맞서 싸우는 영웅을 또 잃을 수 없다”는 공감대를 공유한다. 그들은 “대통령을 지켜야 한다”는 같은 목표를 공유한다. 김씨는 ‘김어준 유니버스’ 혹은 ‘민주 유니버스’를 만들었고, 지지자들은 관객을 넘어선 참여자로서 희열과 보람을 느낀다. <한국일보>는 지난 2017년 이들의 세계관을 소개하면서 “대통령이 국민을 지켜야지, 왜 국민이 대통령을 지켜야 하느냐”고 비판했다. 완전히 다른 ‘B급 정서’ 카타르시스·도파민 차이 김씨는 ▲세월호 고의 침몰설 ▲천안함 피격 사건 관련 가짜 뉴스 살포 ▲코로나19 대구 확산설 등 주장을 이어가면서 지지자들에게 정치적 카타르시스와 도파민을 제공했다. 그들이 김씨를 통해 느낀 카타르시스와 도파민은 고스란히 민주당의 정치적 자양분이 됐다. 그래서 총선 출마 후보들은 김씨가 보는 앞에서 지지자들에게 큰절을 해야 했다. 윤석열 전 대통령이 지난해 12월 비상계엄을 선포하면서 체포 대상 중 1명으로 김씨를 지목했던 것은 김씨에게 엄청난 이익이 됐다. 당시 계엄군은 김씨가 진행하는 유튜브 채널 ‘김어준의 겸손은 힘들다 뉴스공장’ 스튜디오 주변을 통제했다. 김씨는 지난해 12월13일 국회에서 “계엄군이 국민의힘 한동훈 전 대표를 사살한 후 북한 소행으로 공작하려고 했다”면서 “정보 출처는 국내에 대사관이 있는 우방국”이라고 주장했다. 이후 “그 우방국은 미국 아니냐”는 의문이 제기됐지만, 미국은 국무부·주한미국대사관을 통해 이를 부인했다. 반면 민주당 최민희 의원은 자신의 페이스북을 통해 “‘김어준님’의 증언을 허구로 단정하고 비난부터 하는 것은 무모하다”고 주장했다. 국민의힘과 보수 세력은 민주당과 그 주변 세력처럼 정교한 조직체를 만들지 못했다. 보수 세력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스피커 역할은 전씨와 전광훈 사랑제일교회 목사가 맡고 있다. 하지만 이들은 김씨처럼 진영 전체를 들썩일 수 있는 정치적 유머 감각과 설득력을 갖추지 못했다. 카타르시스와 도파민을 제공하지도 못한다. 이 때문에 이들의 주장은 강경 보수 지지자들 외 국민 사이에서 웃음거리로 전락한 지 오래고, 국민의힘 내부서도 강하게 비판한다. 국민의힘이 지난 2022년 대선과 지방선거에서 이겼을 당시엔 민주당에 비판적인 2030세대 남성과 6070세대를 아울러 민주당을 지지하는 4050세대와 2030세대 여성을 포위한다는 ‘세대포위론’ 전략이 제시됐다. 그러나 윤 전 대통령과 개혁신당 이준석 대표가 불화 끝에 결별하면서 이 연합은 얼마 가지 못해 해체됐다. 당시 승리를 주도했던 국민의힘 지지층은 이 대표 특유의 합리주의를 지지하는 젊은 유권자와 강경 보수를 지향하는 노년 유권자로 분열됐다. 전씨는 많은 공무원 제자를 거느린 유명 한국사 강사였다. 따라서 적절히 순화된 주장과 교묘하게 선정한 정치적 입지를 섞어서 정치 전면에 나섰더라면, ‘보수의 김어준’이 될 수도 있었다. 하지만 전씨는 김씨와 달리 그럴듯한 이야기를 구성하고 유머를 섞는 능력을 보여준 적이 없다. 전씨의 옛 제자들은 그를 강하게 비판하고 있다. 절대로 정치 전면에 나서지 않는 김씨와 달리, 직접 국민의힘에 입당해 당 대표 선거에 출마하려 하는 등 적당히 선을 긋지도 않는다. 정치인들이 알아서 자신의 스튜디오에서 큰절을 하게 만드는 김씨와 달리, 전씨는 스스로 영향력을 과시하기 위해 전당대회서 눈에 띄는 행동을 했다. 전에겐 없는 것들 무엇보다 김씨가 “이 대통령을 능가하는 영향력을 가진 것 아니냐”는 설까지 나올 정도로 강력한 영향력을 구축하기까지 15년이 걸렸단 사실도 제대로 통찰하지 못한 것으로 보인다. 결정적으로 국민의힘은 정치 구조를 통찰하지 못해 민주당이 장기간 공들여 구축한 정치 구조체를 갖추지 못했다. 그런데도 전씨는 ‘전한길 유니버스’ 제작을 멈추지 않는다. 과연 전씨는 ‘보수의 김어준’이 될 수 있을까? <ctzxp@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