낙마 오광수 발목 잡은 ‘청담동 사기꾼’ 내막

  • 김성민 기자 smk1@ilyosisa.co.kr
  • 등록 2025.06.17 18:29:15
  • 호수 1536호
  • 댓글 0개

범죄수익 수억 변호비로?

[일요시사 취재1팀] 김성민 기자 = 오광수 전 대통령실 민정수석이 사의를 표명했다. 검사 시절 아내 부동산 차명 관리 등 위법을 저지른 사실이 뒤늦게 드러나 새 정부의 검증 실패가 드러났다. 2016년 900억 투자사기범 이희진의 변호를 맡은 사실도 재조명받고 있다. 그의 변호사 이력은 이른바, ‘범털’들과 함께했다.

지난 12일 오광수 전 민정수석이 사의를 표명했다. 오 전 수석은 지난 8일 임명된 직후 차명 부동산 보유, 차명 대출 의혹이 불거져 여권에서도 사퇴 요구가 제기됐다. 이에 부담을 느낀 오 전 수석이 스스로 물러나겠다는 뜻을 밝혔고, 이재명 대통령은 사의를 수용했다.

계속 나오는
의혹과 논란

앞서 오 전 수석의 부인은 대학 동문 A씨에게 부동산을 팔았는데, 실제로는 소유권을 돌려받기로 약정한 명의신탁이었다고 한다. 오 전 수석은 검사장으로 승진해 재산공개 대상이 된 뒤 이 부동산을 신고에서 누락시켜 논란을 키웠다. 고위 공직자 비리를 감시할 민정수석의 흠결이 드러난 것이다.

오 전 수석은 서울중앙지검 특수2부장으로 재직하던 지난 2007년 11월 A씨 명의로 저축은행으로부터 15억원을 대출받았다. 대출 담보는 오 전 수석 부인의 부동산이었고, 이를 A씨에게 명의 신탁했다. 오 전 수석은 대출금 전액을 자신이 사용하고 직접 반환할 것이라는 확인서도 A씨에게 따로 써줬다.

하지만 상환 과정에서 문제가 발생하자 저축은행 사주인 B씨가 자신이 실제 차용자라면서 2013년, 15억원 가운데 8억원을 갚았다. 2019년 A씨는 오 전 수석을 상대로 민사소송을 제기했다. 이에 법원은 오 전 수석이 A씨에게 2억7000만원을 갚으라고 판결했다.


부인 부동산 차명 관리 의혹에 부끄럽고 죄송하다고 했던 오 전 수석은 차명 대출 의혹에는 아직 입장을 내지 않았다. 대통령실 관계자는 “일부 부적절한 처신은 있었지만, 오 전 수석 본인이 안타까움을 잘 표하고 있다고 판단하고 있다”고 밝혀왔다.

여당에서도 비판이 이어졌다. 박지원 의원은 채널A 유튜브 방송에서 “재산 문제에 대해 투명하게 (하자는) 지금 젊은 세대하고 다르다. 굉장히 유감스러운 일”이라며 “대통령께서 지명한 인사이기 때문에 다른 새로운 것이 나오지 않는 한 국민들이 이해해주셨으면 좋겠다는 생각”이라고 말했다.

친구 바지 세워 15억 대출
아내 부동산 차명 관리 의혹

이 대통령의 핵심 참모로 인사 검증을 맡는 민정수석이 오히려 인사 논란 핵심에 놓이자 오 전 수석의 거취가 불투명할 것이라는 전망도 나온다. 이 대통령 측근인 김영진 의원은 SBS 라디오에서 “오 전 수석이 국민 눈높이에 적절했는지 얘기했고, 그에 따라 국민의 판단을 지켜보고 있다”고 말했다.

오 전 수석의 변호사 이력도 부정적 여론을 조성했다. ‘청담동 주식 부자’ 이희진의 변호를 맡았으며, 도이치모터스 공범과의 연결고리 의혹도 제기되기 때문이다.

일단 새 정부 출범의 기대감은 인사 검증에서부터 줄어든 분위기다. 민정수석은 대통령실의 인사와 사정 업무를 담당하는 핵심 보직이다. 국회 인사청문회 대상도 아니어서 임명되면 바로 업무를 시작하는 만큼, 사전 검증이 중요하다.

오 전 수석은 2013년 대구지검장을 지낸 검사 출신이다. 2016년 변호사로 개업한 후 법무법인 대륙아주에 있었다. 변호사 개업 후 문제적 행적은 2018년 법무법인 인월 시절로 거슬러 올라간다. 당시 인월의 공동대표였던 송창진은 도이치모터스 주가조작 사건의 핵심 인물 이종호를 변호했다.


이종호는 블랙펄인베스트먼트 대표로 “삼부 내일 체크”라는 발언으로 유명해진 인물이다. 여기서 ‘삼부’는 삼부토건을 지칭하는 것으로 분석된다. 이종호는 도이치모터스 주가조작의 설계자 역할을 했던 핵심 인물이다. 송창진이 이종호를 변호한 사실은 그가 공수처 부장검사로 임명된 후 문제가 됐다.

자신이 과거 변호했던 사건을 수사해야 하는 이해충돌 상황이 발생한 것이다. 결국 송창진은 채상병 사건 수사를 제대로 진행하지 않았다는 비판을 받으며 공수처를 떠났다.

구하는
과정이…

오 전 수석은 송창진과 함께 법무법인 인월을 공동으로 운영했다. 불편한 행적은 2016년 ‘청담동 주식 부자’ 이희진 사건에서도 드러난다. 이희진은 2015~2016년 미인가 금융투자업을 하며 비상장 주식을 추천한 뒤 선행 매매로 122억6000만원의 부당이득을 챙긴 혐의를 받았다.

2016년 7월24일 이희진 피해자 모임이 발족했고, 검찰은 그해 8월부터 수사에 착수해 9월5일 이희진을 긴급체포했다.

이희진이 변호사를 구하는 과정부터 석연치 않다. 이희진의 변호사 선임을 중개한 인물은 이준수다. 이준수는 도이치모터스 1차 주가조작 이후 계좌를 이어받아 윤석열 전 대통령 부인 김건희의 계좌를 관리했던 핵심 인물이다. 도이치모터스 사건의 핵심 공범이 이희진의 변호사 선임을 중개했다는 것이다.

그 결과 선임된 변호사가 바로 오 전 수석과 송창진이었다. 법원 기록에 따르면, 두 변호사는 검찰 수사 단계에서부터 이희진과 동생 이희문의 변호를 담당했다. 기소 이전부터 이미 변호인으로 선임돼있었다.

<더탐사>가 법무법인 대륙아주 직원과 통화한 내용에 따르면, 당시 오 전 수석 측에서도 이희진 사건을 맡은 사실을 인정했다. 다만 이준수의 소개가 아니라 “이희진이 직접 검색을 통해 찾아왔다”고 주장했다. 법원 사건 검색에서도 이희진과 이희문이 오 전 수석과 송창진을 변호인으로 선임한 것으로 나온다.

이준수는 변호사법 위반 혐의로 조사받았지만, 입건조차 되지 않았다. 도이치모터스 주가조작 사건 관련 조사도 마찬가지였다. 이는 이준수 뒤에 김건희와 오 전 수석이 있기에 검찰이 수사를 회피했을 가능성을 시사한다. 

다시 등장한
김건희 라인

보도에 따르면, 지난해 11월 서울중앙지법은 이희진에게 변호사를 알선하고 대가를 요구한 혐의를 받는 이준수에게 무죄를 선고했다. 이희진의 진술과 다른 증인들의 증언이 일치하지 않는다는 이유였다.

증인은 “착수금·성공 보수를 요구하는 말을 들은 사실이 없다”고 했다. 이희문도 “변호사 소개비 명목으로 2000만원을 줬다는 것을 몰랐다”고 증언했다. 재판부는 이희진이 “누구를 상대로 로비한다거나 술값 등을 쓴다고도 말하지 않았다”는 점을 믿기 어렵다고 판단했다.


주식 사기꾼 이희진은 전관 출신의 초호화 변호인단을 꾸려 눈길을 끌었다. 2016년 이희진의 변호인으로 이름을 올린 변호사는 모두 10명이다. 법조계에선 단일 사건에 10명의 변호사를 투입하는 건 이례적인 일이라고 한다.

앞서 검찰 수사 단계에서 이희진을 변호했던 변호사 4명은 검찰 출신이었다. 대구지검과 청주지검에서 지검장을 지낸 오 전 수석과 송창진 등이다. 변호인 대부분이 전관 출신이다.

지영철 변호사는 서울중앙지법·인천지법 부장판사와 사법연수원 교수를 지냈고, 손병준 변호사는 대전지법 부장판사 출신이다. 이주헌 변호사는 서울고법과 서울중앙지법, 수원지법 판사로 근무했다.

이 사건을 처음 배당받았던 서울남부지법 형사12합의부 최의호 부장판사와 학연으로 이어진 이들도 있다. 연수원 동기가 2명 있고 고등학교 후배가 1명 있다. 최 부장판사는 이 때문에 재판부 교체를 신청했다. 지금은 형사11부로 사건이 재배당됐다.

2016년 900억 투자사기 이희진
도이치모터스 이종수가 소개?

이처럼 화려한 경력의 전관 변호사들을 선임하는 데 드는 막대한 선임료의 출처도 의문이다. 검찰은 300억원대에 이르는 이희진의 재산을 추징 보전한 상태였다. 이희진은 자신의 명의로 된 재산을 처분하거나 사용할 수 없는 처지다.


과거 이희진은 자신의 재산을 1000억원대라고 과시해 왔다. 상당한 재산을 미리 빼돌렸을 가능성도 제기되고 있다. 이희진은 금융위원회로부터 금융투자업 인가를 받지 않고 투자매매사인 ‘미라클인베스트먼트’를 설립해 2014년 7월부터 1670억원어치의 주식을 사고 판 혐의(자본시장과 금융투자업에 관한 법률 위반)를 받고 있다.

또 수익을 보장해주겠다며 투자자들로부터 240억원을 모은 유사수신 혐의도 받고 있다. 그는 지난해 1월부터 지난 2월까지 자신이 미리 사둔 헐값의 비상장 주식을 회원들에게 비싸게 되팔아 150억원 이상을 챙겼다. 자신의 인지도를 높이려고 방송사 관계자에게 금품을 건네고 경제 방송에 주식투자 전문가로 출연했다는 사실이 검찰 조사에서 드러나기도 했다.

한편, 2013년 오 전 수석이 대구지검장으로 재직할 당시 윤 전 대통령은 대구고검에서 근무했다. 두 사람이 같은 지역에서 검찰 수뇌부로 활동하며 자연스럽게 접촉했을 것으로 추정된다. 건진법사가 포스코 관련 민원을 위해 오 전 수석을 만났다는 의혹도 제기됐다.

그러나 오 전 수석은 “포스코 관련 수사를 한 기억이 없다”며 “건진이라는 사람을 만난 적이 없다”고 부인했다. 대구지검에서 포스코 계열사 관련 수사가 있었던 것은 보도자료로 확인된 사실이다. 지검장이 보도자료까지 낼 정도의 큰 사건을 기억하지 못한다고 회피한 것이다.

수임료
얼마나?

이종호를 변호한 송창진과의 협업, 이준수를 통한 변호사 소개 의혹, 윤 전 대통령과의 관계 등을 고려할 때 오 전 수석이 적절했을지 의문이 든다. 이재명 대통령은 “시민의 힘으로 내란에 저항하고 희망의 세상을 연 국민이 역사적 대장정의 주역”이라고 강조했다. 개혁을 약속한 정부가 법조 카르텔과 연결된 인물을 핵심 보직에 앉힌 꼴이다.

<smk1@ilyosisa.co.kr>

 



배너






설문조사

진행중인 설문 항목이 없습니다.



<단독> ‘1조4000억’ 세운5구역 재개발 이사 없는 이사회 미스터리

[단독] ‘1조4000억’ 세운5구역 재개발 이사 없는 이사회 미스터리

[일요시사 취재1팀] 장지선 기자 = 1조4000억원 규모 초대형 사업에 ‘변수’가 등장했다. 사업 진행 과정에서 불거진 절차적 정당성에 시비가 붙었다. 법정 공방으로 비화됐던 문제는 이제 결론만 남은 상태다. ‘모로 가도 수익만 내면 된다’는 재개발·재건축 시장에 브레이크가 걸릴 가능성도 나오고 있다. 세운재정비촉진지구 5-1구역, 5-3구역 도시정비형 재개발사업(이하 세운5구역 재개발사업)을 둘러싼 논란이 가라앉지 않고 있다. 현재 확인된 소송만 ▲손해배상 청구 ▲특정경제범죄가중처벌 등에 관한 법률 위반(횡령) ▲이사회 결의 부존재 또는 무효 확인 등 3건에 이른다. 겉으로는 순탄하게 진행 중인 듯한 사업의 이면에 ‘복마전’이 펼쳐지고 있는 셈이다(<일요시사> 1539호 ‘<단독> 1조4000억원 세운5구역 재개발 복마전’(https://www.ilyosisa.co.kr/news/article.html?no=250331) 기사 참조). 꼬리에 꼬리 사법 리스크 세운5구역 재개발사업은 서울 중구 산림동 190-3번지 일원 7672㎡ 부지에 지상 37층 규모의 업무복합시설을 짓는 프로젝트다. ㈜이지스자산운용이 주주로 참여 중인 세운5구역 피에프브이(PFV)가 시행을, GS건설이 시공을 맡고 있다. 태영건설이 시공권과 지분을 갖고 있었지만 워크아웃에 돌입한 이후 GS건설이 인수했다. 대신자산운용이 업무시설에 대한 선매매 계약을 체결했다. 선매입 가격은 3.3㎡당 3500만원가량으로 계약금으로만 700억원을 낸 것으로 알려졌다. 이지스자산운용에 따르면, 현재 사업은 철거 단계로 예정대로 2030년에 개발이 끝나면 연면적 13만㎡가 넘는 최상급 오피스 건물이 들어서게 된다. 문제는 몇 년째 꼬리표처럼 따라붙고 있는 ‘사법 리스크’다. 검찰, 경찰에 고발된 몇몇 사건은 종결됐지만 일부는 법정 공방으로 번졌다. 눈여겨볼 대목은 송사에 휘말린 이들이 현재 세운5구역 재개발사업에 아무런 지분이 없는 ‘외부인’이라는 사실이다. 사업 초창기 기틀을 닦은 이른바 ‘개국공신’ 역할을 한 것은 맞지만 지금은 연결고리가 없는 상태다. 그런데도 이들의 송사에 세운5구역 재개발사업이 끊임없이 언급되는 이유는 시행을 맡은 이지스자산운용이 연루돼있기 때문이다. 이지스자산운용은 세운5구역 재개발사업에 자금 조달 역할로 합류했다. 부동산 매매, 분양 등을 하는 업체 대표 염모씨와 부동산 개발 관리 등을 하는 업체 공동대표 오모씨, 권모씨 등이 사업을 진행하는 과정에서 토지 매입 자금이 부족해지자 이지스자산운용을 끌어들였다. 세운5구역 재개발사업을 총괄하고 있는 이지스자산운용 관계자는 <일요시사>와의 만남에서 “(사업에 합류할 무렵 인허가 문제 등이) 어느 정도 진행돼있었고 저희가 투자하기 괜찮겠다고 생각했다. 돈을 투자해 진행하면 안정권으로 들어갈 수 있다고 판단해 진행한 것”이라고 말했다. 염씨가 대표로 있는 연합와이앤제이(이하 연합)와 이지스자산운용은 2019년 1월 공동사업 약정을 맺었다. 지분은 50대 50으로 맞췄다. 여기에 연합은 오씨, 권씨, 최씨, 박 전 이사 등과 따로 공동사업 약정을 맺었다. 지분 구조는 연합 50%, 오씨 30%, 권씨 10%, 최씨 7%, 박 전 이사 3% 등으로 구성됐다. 2030년 13만㎡ 업무복합시설 법정 공방 최소 3건 진행 중 2019년 6월 연합, 이지스자산운용, 국민은행(이지스펀드의 신탁사), 생보부동산신탁(현 교보자산신탁) 등은 주주협약서를 작성하고 ㈜세운5구역 PFV를 설립했다. 세운5구역 재개발사업을 위한 시행사가 정식으로 구성된 것이다. 당시 지분 구조는 연합 47.1%, 이지스자산운용(17.2%)+이지스펀드(29.9%) 47.1%, 생보부동산신탁 5.8% 등이다. 대표이사는 염씨가 맡기로 했고 연합과 이지스자산운용은 각 2명씩 이사를 추천해 총 4명으로 이사회가 구성됐다. 연합 측에서는 염 대표와 박 전 이사가 이사로 참여했다. 이 구성은 박 전 이사가 2020년 8월14일 이사직을 사임할 때까지 유지됐다. 이후 염 대표가 이지스자산운용에 지분을 넘기고 세운5구역 재개발사업에서 빠져나왔다. 현재 진행 중인 소송은 염 대표가 세운5구역 재개발사업에서 손을 떼는 과정에서 오간 돈, 이지스자산운용이 오씨와 권씨, 최씨 등에게 준 돈을 두고 불거졌다. 염 대표가 받은 378억원, 오씨 등 3명 등이 받은 94억원 등 약 480억원을 둘러싸고 소유권 논쟁이 진행 중이다. 세운5구역 PFV, 이지스자산운용은 돈을 지급한 주체라 송사에 연루돼있다. 이 소송은 당시 사업의 지분 구조를 정리하는 과정에서 일어난 일로 시작됐기에 어떤 결론이 나오든 세운5구역 재개발사업에 미칠 영향은 크지 않다는 의견이 있다. 하지만 최근 세운5구역 재개발사업 자체가 흔들릴 수 있는 소송이 수면 위로 올라왔다. 그동안 세운5구역 재개발사업에 ‘절차적 정당성’을 부여했던 이사회 관련 소송이 1심 판결을 앞두고 있는 것. 세운5구역 PFV 4명의 이사 가운데 1명이었던 박 전 이사는 2023년 9월 ‘이사회 결의 부존재 또는 무효 확인’ 소송을 제기했다. 2019년 6월20일부터 2020년 8월14일까지 이사로 재직하는 동안 단 한 차례도 이사회가 열리지 않았다는 내용이 골자다. 이 기간 세운5구역 PFV가 진행했다고 알려진 이사회는 16번이다. 480억원 두고 초기 멤버 갈등 박 전 이사는 “세운5구역 PFV는 상근 직원이 없고 등기임원의 보수도 없는 특수목적법인으로, 이사회는 업무 집행의 법률적 효력과 정당성을 보장해 주는 가장 중요한 기구이자 어쩌면 회사 그 자체일 수 있다”고 주장했다. 그런 이사회가 절차를 제대로 지키지 않은 채 진행됐으니 그 결의 내용은 무효라는 것이다. 그러면서 “세운5구역 PFV는 명목상 구성된 페이퍼컴퍼니였던 만큼 사업 과정에서 발생한 문제는 실질적인 경영 주체(이지스자산운용), 총괄 관계자가 책임져야 한다. 리모컨을 누른 사람(이지스자산운용)이 문제지, 리모컨(세운5구역 PFV)이 잘못이 아닌 것과 같다”며 “14개월 동안 이사로 재직하다가 정기총회도 거치지 않고 중도 사퇴한 건 더 가다간 걷잡을 수 없는 상황에 휘말릴 것 같아서였다”고 털어놨다. 박 전 이사는 이사회가 실제로 진행되지 않고 서류 작업을 통해 조작됐다는 점을 문제 삼았다. 그는 “상법에 따르면 이사회는 대면 혹은 컨퍼런스 콜 등의 방식으로 진행하게 돼있다. 어디에도 서면으로 진행해도 된다는 문구는 없다. 대표이사였던 염씨가 이사회를 소집 통지하는 과정에서 보낸 공문에도 정확하게 기재돼있다”고 주장했다. 상법 제391조(이사회의 결의방법)에 따르면 이사회 결의는 이사 과반수의 출석과 출석 이사의 과반수로 해야 한다. 다만 정관으로 그 비율을 높게 정할 수 있다. 그러면서 ‘정관에서 달리 정하는 경우를 제외하고 이사회는 이사의 전부 또는 일부가 직접 회의에 출석하지 않고 모든 이사가 음성을 동시에 송·수신하는 원격통신 수단에 의해 결의에 참가하는 것을 허용할 수 있다’고 명시하고 있다. 실제 <일요시사>가 입수한 ‘세운5구역 피에프브이 주식회사 이사회 소집통지’ 공문에 따르면 2020년 3월27일 오전 11시 이지스자산운용 회의실에서 이사회를 진행하겠다는 내용과 함께 ‘방법’ 부분에 ‘직접 참석 or 컨퍼런스 콜’이라는 문구가 쓰여 있다. 방어 근거 무너지나 박 전 이사는 해당 이사회에 참석한 적 없지만, 자신의 막도장을 이용해 의결이 이뤄진 것처럼 꾸몄다고 주장했다. 이사회 당일 다른 곳에 있던 적도 있다는 주장도 제기했다. 박 전 이사는 “2019년 3차 이사회 이사록을 보면 그해 10월31일 재적 이사 전원 출석으로 이사회가 개최된 것으로 기재돼있다. 하지만 당시 나는 지인들과 서울 강남구 수서동에서 스크린 골프를 치고 있었다. 물리적으로 1시간가량 차이 나는 곳에 있던 상황이다. 그런데도 이사회 결의는 이뤄졌다”고 강조했다. 박 전 이사는 이 내용을 가지고 서울영등포경찰서에 염 대표 등을 ‘배임’ ‘사문서 위조’ 등의 혐의로 고소했다. 하지만 경찰은 박 전 이사가 재직 당시 이사회 소집이나 의사록 작성 등에 대해 이의를 제기한 사실이 없다는 점 등을 들어 불송치 처분했다. 박 전 이사는 “사후에 통보식으로 이사회 의결 내용을 알았다고 해서 이사회 자체의 절차적 하자가 사라지는 건 아니지 않나”라고 반문했다. 그러면서 “경찰과 검찰은 물론 염 대표, 이지스자산운용 모두 물리적 행위 자체가 없었던, 그래서 의결 자체가 무효인 이사회를 무기로 각종 고소·고발건을 방어해 왔다”며 “이사회에서 특별 결의사항을 어떻게 처리해야 하는지 본인들이 체결한 공동사업약정서 등에 기재돼있는데도 그조차 무시했다”고 주장했다. 박 전 이사는 세운5구역 PFV가 토지를 매입하는 내용을 안건으로 다룬 이사회가 가장 문제라고 지적했다. 연합과 이지스자산운용이 맺은 공동사업약정서에 따르면 ‘승인된 사업계획에 포함되지 않은 자본적 지출’은 이사회 특별 결의사항으로 분류하고 있다. 또 특별 결의사항은 재적 이사 전원의 동의로 의결해야 한다고 명시했다. 법원 절차적 하자 인정하면 사업 자체 흔들릴 가능성도 연합 등이 토지를 매입하는 과정에서 ‘땅값 부풀리기’ 의혹이 제기됐다. 염 대표와 오씨 등이 재개발 구역의 땅을 사는 과정에서 특수관계인을 이용해 비싼 값에 매입했다는 의혹이다. 시행사가 직접 원주민에게 토지를 사는 방식이 아니라 그사이에 특수관계인을 끼워 넣어 차익을 봤다는 것이다. 당시 검찰은 불기소의 근거 중 하나로 이사회와 주주총회를 언급한 바 있다. 이지스자산운용 관계자도 <일요시사>와의 만남에서 “땅값은 사실 정해져 있는 게 아니지 않나. 재개발사업에서는 토지 확보가 중요하기 때문에 협의에 따라 하는 것이지, 정확한 시세가 있는 것도 아니다. 만약 너무 비싸게 샀다면 의사결정 과정을 통과하지 못했을 것”이라며 “의사회 결의는 무조건 다 있었고 더 큰 의사결정은 주주총회를 통해 진행했다”고 설명했다. 하지만 박 전 이사의 주장대로 이사회의 절차적 하자가 인정돼 그 존재 자체가 무효가 된다면 결의 내용 역시 ‘없던 일’이 될 가능성이 나오고 있다. 특히 이사회 관련 소송에 증인으로 참석한 당시 세운5구역 PFV 이사의 발언이 쟁점으로 떠올랐다. 4명의 이사 가운데 한 명이었던 그가 같은 이사였던 박 전 이사를 ‘전혀 모른다’는 취지로 증언한 것이다. 대면 혹은 컨퍼런스 콜 등 온·오프라인 이사회가 열리지 않았다는 박 전 이사의 주장에 힘이 실리는 대목이다. 박 전 이사는 “내가 증인으로 신청했다. 그런데 서로 얼굴 한번 본 적 없다. 만나기는커녕 전화 한 통 한 적 없다. 세운5구역 PFV 측은 그제야 대면 결의는 없었다고 인정하면서 서면 결의도 인정된다는 주장을 펼치고 있다. 재개발·재건축 조합에 서면으로 이사회 결의를 한다고 말하면 조합장이 당장 쫓겨날 것”이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이지스자산운영 측은 “해당 건은 소송이 진행 중인 사안으로 구체적인 내용에 대해 답변드리기 어려운 점 양해 부탁드리며 향후 법적 과정에서 투명하게 밝혀질 수 있도록 성실히 소명할 계획”이라고 입장을 전해왔다. 1심 판결 곧 나온다 일각에서는 세운5구역 재개발사업이 ‘도시 및 주거환경정비법(도정법)’에 위반될 소지도 있다는 주장이 나오고 있다. 재개발·재건축 경험이 풍부한 한 관계자는 “SPC가 설립되고 사업이 진행되는 과정에서 이사회 문제가 불거진 만큼 소송 결과에 따라 주무 관청의 인허가 문제로까지 번질 수 있다”고 말했다. <jsjang@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