낙마 오광수 발목 잡은 ‘청담동 사기꾼’ 내막

  • 김성민 기자 smk1@ilyosisa.co.kr
  • 등록 2025.06.17 18:29:15
  • 호수 1536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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범죄수익 수억 변호비로?

[일요시사 취재1팀] 김성민 기자 = 오광수 전 대통령실 민정수석이 사의를 표명했다. 검사 시절 아내 부동산 차명 관리 등 위법을 저지른 사실이 뒤늦게 드러나 새 정부의 검증 실패가 드러났다. 2016년 900억 투자사기범 이희진의 변호를 맡은 사실도 재조명받고 있다. 그의 변호사 이력은 이른바, ‘범털’들과 함께했다.

지난 12일 오광수 전 민정수석이 사의를 표명했다. 오 전 수석은 지난 8일 임명된 직후 차명 부동산 보유, 차명 대출 의혹이 불거져 여권에서도 사퇴 요구가 제기됐다. 이에 부담을 느낀 오 전 수석이 스스로 물러나겠다는 뜻을 밝혔고, 이재명 대통령은 사의를 수용했다.

계속 나오는
의혹과 논란

앞서 오 전 수석의 부인은 대학 동문 A씨에게 부동산을 팔았는데, 실제로는 소유권을 돌려받기로 약정한 명의신탁이었다고 한다. 오 전 수석은 검사장으로 승진해 재산공개 대상이 된 뒤 이 부동산을 신고에서 누락시켜 논란을 키웠다. 고위 공직자 비리를 감시할 민정수석의 흠결이 드러난 것이다.

오 전 수석은 서울중앙지검 특수2부장으로 재직하던 지난 2007년 11월 A씨 명의로 저축은행으로부터 15억원을 대출받았다. 대출 담보는 오 전 수석 부인의 부동산이었고, 이를 A씨에게 명의 신탁했다. 오 전 수석은 대출금 전액을 자신이 사용하고 직접 반환할 것이라는 확인서도 A씨에게 따로 써줬다.

하지만 상환 과정에서 문제가 발생하자 저축은행 사주인 B씨가 자신이 실제 차용자라면서 2013년, 15억원 가운데 8억원을 갚았다. 2019년 A씨는 오 전 수석을 상대로 민사소송을 제기했다. 이에 법원은 오 전 수석이 A씨에게 2억7000만원을 갚으라고 판결했다.


부인 부동산 차명 관리 의혹에 부끄럽고 죄송하다고 했던 오 전 수석은 차명 대출 의혹에는 아직 입장을 내지 않았다. 대통령실 관계자는 “일부 부적절한 처신은 있었지만, 오 전 수석 본인이 안타까움을 잘 표하고 있다고 판단하고 있다”고 밝혀왔다.

여당에서도 비판이 이어졌다. 박지원 의원은 채널A 유튜브 방송에서 “재산 문제에 대해 투명하게 (하자는) 지금 젊은 세대하고 다르다. 굉장히 유감스러운 일”이라며 “대통령께서 지명한 인사이기 때문에 다른 새로운 것이 나오지 않는 한 국민들이 이해해주셨으면 좋겠다는 생각”이라고 말했다.

친구 바지 세워 15억 대출
아내 부동산 차명 관리 의혹

이 대통령의 핵심 참모로 인사 검증을 맡는 민정수석이 오히려 인사 논란 핵심에 놓이자 오 전 수석의 거취가 불투명할 것이라는 전망도 나온다. 이 대통령 측근인 김영진 의원은 SBS 라디오에서 “오 전 수석이 국민 눈높이에 적절했는지 얘기했고, 그에 따라 국민의 판단을 지켜보고 있다”고 말했다.

오 전 수석의 변호사 이력도 부정적 여론을 조성했다. ‘청담동 주식 부자’ 이희진의 변호를 맡았으며, 도이치모터스 공범과의 연결고리 의혹도 제기되기 때문이다.

일단 새 정부 출범의 기대감은 인사 검증에서부터 줄어든 분위기다. 민정수석은 대통령실의 인사와 사정 업무를 담당하는 핵심 보직이다. 국회 인사청문회 대상도 아니어서 임명되면 바로 업무를 시작하는 만큼, 사전 검증이 중요하다.

오 전 수석은 2013년 대구지검장을 지낸 검사 출신이다. 2016년 변호사로 개업한 후 법무법인 대륙아주에 있었다. 변호사 개업 후 문제적 행적은 2018년 법무법인 인월 시절로 거슬러 올라간다. 당시 인월의 공동대표였던 송창진은 도이치모터스 주가조작 사건의 핵심 인물 이종호를 변호했다.


이종호는 블랙펄인베스트먼트 대표로 “삼부 내일 체크”라는 발언으로 유명해진 인물이다. 여기서 ‘삼부’는 삼부토건을 지칭하는 것으로 분석된다. 이종호는 도이치모터스 주가조작의 설계자 역할을 했던 핵심 인물이다. 송창진이 이종호를 변호한 사실은 그가 공수처 부장검사로 임명된 후 문제가 됐다.

자신이 과거 변호했던 사건을 수사해야 하는 이해충돌 상황이 발생한 것이다. 결국 송창진은 채상병 사건 수사를 제대로 진행하지 않았다는 비판을 받으며 공수처를 떠났다.

구하는
과정이…

오 전 수석은 송창진과 함께 법무법인 인월을 공동으로 운영했다. 불편한 행적은 2016년 ‘청담동 주식 부자’ 이희진 사건에서도 드러난다. 이희진은 2015~2016년 미인가 금융투자업을 하며 비상장 주식을 추천한 뒤 선행 매매로 122억6000만원의 부당이득을 챙긴 혐의를 받았다.

2016년 7월24일 이희진 피해자 모임이 발족했고, 검찰은 그해 8월부터 수사에 착수해 9월5일 이희진을 긴급체포했다.

이희진이 변호사를 구하는 과정부터 석연치 않다. 이희진의 변호사 선임을 중개한 인물은 이준수다. 이준수는 도이치모터스 1차 주가조작 이후 계좌를 이어받아 윤석열 전 대통령 부인 김건희의 계좌를 관리했던 핵심 인물이다. 도이치모터스 사건의 핵심 공범이 이희진의 변호사 선임을 중개했다는 것이다.

그 결과 선임된 변호사가 바로 오 전 수석과 송창진이었다. 법원 기록에 따르면, 두 변호사는 검찰 수사 단계에서부터 이희진과 동생 이희문의 변호를 담당했다. 기소 이전부터 이미 변호인으로 선임돼있었다.

<더탐사>가 법무법인 대륙아주 직원과 통화한 내용에 따르면, 당시 오 전 수석 측에서도 이희진 사건을 맡은 사실을 인정했다. 다만 이준수의 소개가 아니라 “이희진이 직접 검색을 통해 찾아왔다”고 주장했다. 법원 사건 검색에서도 이희진과 이희문이 오 전 수석과 송창진을 변호인으로 선임한 것으로 나온다.

이준수는 변호사법 위반 혐의로 조사받았지만, 입건조차 되지 않았다. 도이치모터스 주가조작 사건 관련 조사도 마찬가지였다. 이는 이준수 뒤에 김건희와 오 전 수석이 있기에 검찰이 수사를 회피했을 가능성을 시사한다. 

다시 등장한
김건희 라인

보도에 따르면, 지난해 11월 서울중앙지법은 이희진에게 변호사를 알선하고 대가를 요구한 혐의를 받는 이준수에게 무죄를 선고했다. 이희진의 진술과 다른 증인들의 증언이 일치하지 않는다는 이유였다.

증인은 “착수금·성공 보수를 요구하는 말을 들은 사실이 없다”고 했다. 이희문도 “변호사 소개비 명목으로 2000만원을 줬다는 것을 몰랐다”고 증언했다. 재판부는 이희진이 “누구를 상대로 로비한다거나 술값 등을 쓴다고도 말하지 않았다”는 점을 믿기 어렵다고 판단했다.


주식 사기꾼 이희진은 전관 출신의 초호화 변호인단을 꾸려 눈길을 끌었다. 2016년 이희진의 변호인으로 이름을 올린 변호사는 모두 10명이다. 법조계에선 단일 사건에 10명의 변호사를 투입하는 건 이례적인 일이라고 한다.

앞서 검찰 수사 단계에서 이희진을 변호했던 변호사 4명은 검찰 출신이었다. 대구지검과 청주지검에서 지검장을 지낸 오 전 수석과 송창진 등이다. 변호인 대부분이 전관 출신이다.

지영철 변호사는 서울중앙지법·인천지법 부장판사와 사법연수원 교수를 지냈고, 손병준 변호사는 대전지법 부장판사 출신이다. 이주헌 변호사는 서울고법과 서울중앙지법, 수원지법 판사로 근무했다.

이 사건을 처음 배당받았던 서울남부지법 형사12합의부 최의호 부장판사와 학연으로 이어진 이들도 있다. 연수원 동기가 2명 있고 고등학교 후배가 1명 있다. 최 부장판사는 이 때문에 재판부 교체를 신청했다. 지금은 형사11부로 사건이 재배당됐다.

2016년 900억 투자사기 이희진
도이치모터스 이종수가 소개?

이처럼 화려한 경력의 전관 변호사들을 선임하는 데 드는 막대한 선임료의 출처도 의문이다. 검찰은 300억원대에 이르는 이희진의 재산을 추징 보전한 상태였다. 이희진은 자신의 명의로 된 재산을 처분하거나 사용할 수 없는 처지다.


과거 이희진은 자신의 재산을 1000억원대라고 과시해 왔다. 상당한 재산을 미리 빼돌렸을 가능성도 제기되고 있다. 이희진은 금융위원회로부터 금융투자업 인가를 받지 않고 투자매매사인 ‘미라클인베스트먼트’를 설립해 2014년 7월부터 1670억원어치의 주식을 사고 판 혐의(자본시장과 금융투자업에 관한 법률 위반)를 받고 있다.

또 수익을 보장해주겠다며 투자자들로부터 240억원을 모은 유사수신 혐의도 받고 있다. 그는 지난해 1월부터 지난 2월까지 자신이 미리 사둔 헐값의 비상장 주식을 회원들에게 비싸게 되팔아 150억원 이상을 챙겼다. 자신의 인지도를 높이려고 방송사 관계자에게 금품을 건네고 경제 방송에 주식투자 전문가로 출연했다는 사실이 검찰 조사에서 드러나기도 했다.

한편, 2013년 오 전 수석이 대구지검장으로 재직할 당시 윤 전 대통령은 대구고검에서 근무했다. 두 사람이 같은 지역에서 검찰 수뇌부로 활동하며 자연스럽게 접촉했을 것으로 추정된다. 건진법사가 포스코 관련 민원을 위해 오 전 수석을 만났다는 의혹도 제기됐다.

그러나 오 전 수석은 “포스코 관련 수사를 한 기억이 없다”며 “건진이라는 사람을 만난 적이 없다”고 부인했다. 대구지검에서 포스코 계열사 관련 수사가 있었던 것은 보도자료로 확인된 사실이다. 지검장이 보도자료까지 낼 정도의 큰 사건을 기억하지 못한다고 회피한 것이다.

수임료
얼마나?

이종호를 변호한 송창진과의 협업, 이준수를 통한 변호사 소개 의혹, 윤 전 대통령과의 관계 등을 고려할 때 오 전 수석이 적절했을지 의문이 든다. 이재명 대통령은 “시민의 힘으로 내란에 저항하고 희망의 세상을 연 국민이 역사적 대장정의 주역”이라고 강조했다. 개혁을 약속한 정부가 법조 카르텔과 연결된 인물을 핵심 보직에 앉힌 꼴이다.

<smk1@ilyosis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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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혼자 꾸는’ 장동혁 용꿈

‘혼자 꾸는’ 장동혁 용꿈

[일요시사 정치팀] 박형준 기자 = 이재명 대통령의 임기 초반 난맥상이 이어지지만, 더불어민주당과 국민의힘의 지지율 격차는 더욱 벌어지고 있다. 국민의힘 장동혁 대표는 용꿈을 꾸지만, 새 비전을 제시하지 못한 채 강경 보수 세력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장 대표에게 그와 용꿈을 함께 꿀 수 있는 창조적 소수가 없는 이유는 뭘까? 국민의힘은 지난달 장외투쟁에 집중했다. 지난달 21일엔 대구에서, 지난달 28일엔 서울에서 각각 개최했다. 국민의힘 장동혁 대표는 지난 2일 기자간담회에서 “장외투쟁을 통해 정부·여당의 잘못을 국민에게 알렸다”며 “그 과정에서 정부·여당의 지지율이 하락했다면 소기의 목적을 달성한 것이고, 지지층 결집으로 싸울 동력도 확보했다”고 주장했다. 벌어지는 지지율 격차 하지만 외부의 평가는 다르다. 보수 신문 <조선일보>는 지난달 23일 사설에서 “스마트폰과 각종 미디어가 발달한 시대라서 국민은 정치권 소식을 실시간으로 보고 듣는다”며 “장외투쟁은 시대에 뒤떨어졌다는 느낌을 준다”고 비판했다. 추석 연휴 직전인 지난 2일 오후엔 이진숙 전 방송통신위원장이 체포됐다가 지난 4일 체포적부심이 인용돼 석방됐다. 김건희 여사의 경기 양평군 공흥지구 개발사업 개입 의혹과 관련해 김건희 특검에 소환돼 조사를 받았던 고 정희철 단월면장도 “특검이 강압 수사를 했다”는 취지의 자필 메모를 남긴 채 같은 날 사망했다. 이후 국민의힘은 국회에 정 면장의 분향소를 차렸고, 의원들이 돌아가면서 빈소를 지키고 있다. 지난달 6일 방송된 JTBC 예능 프로그램 <냉장고를 부탁해>엔 이재명 대통령 부부가 출연했다. 이 방영분은 지난달 26일 발생한 국가정보자원관리원 화재 사건 이후인 지난달 28일 촬영됐다. 이를 두고, 국민의힘 주진우 의원은 “국가적 재난 때문에 지금도 국민은 피해를 보고 있는데, 한가하게 예능 촬영하고 있었다면, 이 대통령은 대통령 자격이 없다”고 주장하면서 추석 연휴 내내 쟁점화를 주도했다. 하지만 국민의힘의 대여 투쟁엔 힘이 붙지 않는다. 리얼미터가 <에너지경제신문> 의뢰로 지난 1일부터 2일까지 전국 18세 이상 유권자 1008명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 국민의힘 지지율은 전주 대비 2.4% 하락한 35.9%로 확인됐다. 47.2%의 지지를 얻은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보다 11.3% 뒤처지는 수치였다. 이는 장 대표의 자화자찬과는 다른 결과라고 할 수 있다. 그동안 이 대통령과 민주당엔 ▲검찰 해체 시도 ▲조희대 대법원장과의 갈등 ▲이 대통령의 예능프로 출연 논란 ▲김현지 제1부속실장 관련 논란 등 악재가 이어졌다. 그런데도 지지율 격차가 10% 이상 벌어진 결과가 나온 것이다. 정의화 전 국회의장은 지난 13일 장 대표와 상임고문단의 오찬 회동에 참석해 그 이유를 설명했다. 정 전 의장은 장 대표에게 “과거 안하무인 정치 행태를 보여온 보수 정당의 잘못이 크다는 걸 인정해야 하고, 깊은 반성과 성찰도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이어 “국민의힘 한동훈 전 대표·개혁신당 이준석 대표·국민의힘 유승민 전 의원 등과 함께 못할 이유가 없다. 새 지도부는 용광로 같은 화합의 정치를 만들어내길 바란다”며 “부정선거론이나 ‘윤 어게인’ 같은 낡은 의제와 결별하고, 민생을 살피면서 국가 미래 비전을 제시하는 데 온 힘을 다해주길 바란다”고 강조했다. 답 없는 장외투쟁에 멀어지는 대권 ‘밖에서’ 집착… 본질 “사람 없어서” 정 전 의장의 발언 중 핵심은 한 전 대표를 향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장 대표는 지난해 12월 윤석열 전 대통령에 대한 탄핵소추와 관련해 의견이 엇갈려 한 전 대표와 결별했다. 장 대표는 지난달 <연합뉴스>와의 인터뷰에서 “한 전 대표를 지지하는 분들이 무차별적으로 저를 비난·모욕·배척하는데 어떻게 정치 행보를 같이 할 수 있겠느냐”고 비판했다. 장 대표는 취임 직후엔 자신의 당 대표 당선을 도운 강경 보수 성향 유튜버들의 반발을 감수하면서 당내 중도 성향으로 평가받는 김도읍 의원을 정책위의장으로 발탁하는 등 중도 공략을 고려하는 것으로 보였다. 유튜버 고성국씨는 이에 크게 반발하면서 “많은 분이 ‘김도읍이 웬 말이냐’고 비판하는데, 김 의원은 그런 비판을 받을 만하다”고 주장했다. 고씨는 “국민의힘은 자유통일당 등 원외 보수 정당에 지방자치단체장 30석을 양보하라”고 요구했다. 장 대표는 이들의 요구를 일체 무시하면서 이들의 영향력 감소를 시도하는 것으로 보였다. 한때는 “공천 청탁을 받고 있다”고 주장하는 등 “보수의 김어준 반열에 오르려는 것 아니냐”는 평가까지 들었던 전한길씨도 최근엔 전당대회 당시의 기세는 보여주지 못하고 있다. 그런데 장 대표는 추석 연휴이던 지난 7일, 서울의 한 극장에서 다큐멘터리 영화 <건국전쟁 2>를 관람했다. <건국전쟁 2>는 1947년부터 군·경찰·서북청년단 등과 남조선노동당이 제주도에서 번갈아 이어간 학살 사건인 4·3 사건을 다뤘다. 이를 연출한 김덕영 감독은 주로 남조선노동당의 학살 위주로 내용을 구성했다. 김 감독은 평소 이승만 전 대통령을 지지하면서 부정선거론을 주장해 왔던 인물이다. 4·3 사건은 국가 폭력을 상징하는 전형적인 사건이기 때문에 여전히 민감하다. 하지만 국민의힘과 보수 진영 일각에선 잊을 만하면 양민 학살을 부정하거나 군경의 대응을 찬양하는 움직임이 있었다. 장 대표의 <건국전쟁 2> 관람은 보수 정당 수장이 4·3 사건에 대한 국가 책임을 부정하는 것으로 해석될 소지를 남긴다. 아울러 국가 책임을 부정하는 주장을 수시로 제시하는 세력은 강경 보수 세력이다. 이런 대응은 이재명 대통령을 비판하는 사람들에게 “국민의힘이 대안이 될 수 있다”는 믿음을 주지 못하고 있다. 이는 국민의힘 지지율 추세로 확인할 수 있다. 추석 연휴 전까지 집중했던 장외투쟁도 장 대표 스스로 직접 전면에 나서 여론을 움직이려 한다는 취지로 해석됐다. 하지만 장 대표가 강경 보수 진영의 지원을 토대로 당선됐던 것 자체가 강경 보수 외 유권자에겐 큰 호감을 주지 못하는 족쇄가 되고 있다. 윤 전 대통령의 비상계엄 선포 이후 국민의힘에서 가장 큰 문제가 됐던 것은 당내 쇄신이었다. 기행은 멈췄지만… 특검 3개(김건희·내란·채 상병)가 국민의힘을 동시에 겨냥하는 현 상황은 모두 윤 전 대통령의 그림자로부터 비롯된 것이었다. 따라서 국민의힘엔 ▲부정선거론 근절 ▲강경 보수 세력의 영향력 제거 ▲중도 공략 등 산적한 숙제가 있었다. 장 대표가 무시 전술로써 강경 보수 세력의 영향력을 서서히 줄이고 있지만, 유권자로선 만족을 느끼기 어렵다. 정권을 맡을 수 있는 정당으로 다시 도약하기 위해선 확실한 절연이 필요했다. 하지만 장 대표 스스로 <건국전쟁2>를 관람하면서 그동안 구사했던 무시 전술도 그 진의를 의심받을 가능성이 열렸다. “당내 쇄신이 아닌 자신의 영향력 확대만을 위한 무시였느냐”는 의심이다. 특정 세력의 지원을 받은 수장이 수성을 위해서 해야 할 일은 대개 토사구팽이다. 현대에 이르러서도 정치력을 높이 평가받는 역사적 인물들은 적절한 토사구팽을 통해 수성기를 열었다는 공통점이 있다. 장 대표 취임 이후의 국민의힘이 이전과 달라진 게 전혀 없는 것은 아니다. 장 대표 취임 이전 국민의힘은 권영세 전 비상대책위원장·권성동 전 원내대표가 일명 ‘쌍권 체제’를 구성해 ▲대선후보 심야 교체 시도 ▲자체 개혁안에 대한 특정 계파의 조직적 저항 등 기행을 저지르면서 여론의 손가락질을 받았다. 장 대표 취임 이후의 국민의힘에서 이런 기행은 잘 보이지 않으나, 그 이상으로 나아가질 못하고 있다. 이는 재보궐선거 당선으로 국회에 입성해 재선 의원이 된 지 불과 1년여가 지난 장 대표의 짧은 정치 경험 등 부실한 정치 기반으로부터 비롯되는 문제라고 할 수 있다. 개혁신당 이준석 대표는 장 대표에 대해 꾸준히 “용꿈을 꾸고 있다”고 평가한다. 장 대표도 이를 직접 부인하진 않는다. 그런데 용꿈은 특정 정치인 1명이 특출나다는 이유만으로 꿀 수 있는 꿈이 아니다. 장 대표는 아직 “용꿈을 꿀 만큼 특출난 정치인”이란 평가를 받고 있지 못하다. 용꿈을 현실로 구현하기 위해선 ▲시대적 사명 구현 ▲강한 개혁 의지 ▲구체적 개혁 대안 제시 ▲강도 높은 자체 혁신 ▲추상적 비전을 구체화할 수 있는 전문가 집단 구성 등 요소가 필요하다. 용꿈은 용이 되려는 사람과 이를 뒷받침하는 집단의 상호 작용으로 현실이 된다. 전문가 집단은 추상적 비전을 구체적 개혁 대안으로 제시해야 하고, 용꿈을 꾸는 사람은 구체적 개혁 대안을 현실에서 구현해 민심의 호응을 얻어야 한다. 부실한 정치 기반 역사학자 아놀드 토인비는 저서 <역사의 연구>를 통해 ‘창조적 소수’라는 개념으로 용꿈을 현실화하는 과정을 이론화했다. 토인비는 문명의 순환을 통해 역사의 변혁 과정을 설명했다. 그에 따르면, 문명이 쇠퇴하거나 낯선 도전에 직면했을 때 이를 극복하면서 새로운 발전을 꿈꾸는 집단이 나타난다. 토인비는 이들에게 ‘창조적 소수’라는 이름을 붙였다. 장 대표가 강경 보수와의 관계에 명확하게 선 긋지 못한 채 장외투쟁에 집중하는 것에 대한 해답도 있다. 토인비는 창조적 소수가 새로운 발전을 이끌 수 있는 비결로 혁신적인 구상을 제시했다. 혁신적인 구상을 통해 세상에 충격을 주면서 위기를 극복할 수 있는 동력을 확보해야 한다. 이는 우리 역사에서도 충분히 확인할 수 있다. 진골 귀족들 간 왕위 쟁탈전이 장기간 이어져 중앙정부가 지방 통제 능력을 잃었던 통일신라 말기엔 후삼국시대가 이어졌다. 이때까지만 해도 이미 멸망한 고구려·백제가 통치했던 지역에선 유민 의식이 유지되고 있었다. 고려 태조 왕건이 후백제 견훤을 물리칠 수 있었던 이유 중 하나는 정치적 비전이었다. 왕건은 ‘삼한일통’이란 구호를 내걸면서 신라에 우호적인 관점을 유지했다. 이는 신라를 무력으로 함락해 경애왕을 살해한 후 신라의 각종 기술자를 후백제로 압송했던 견훤의 대응과는 완전히 다른 것이었다. 견훤의 대응에 분노했던 신라 호족은 고려로 기울었고, 이는 왕건이 후삼국을 통일하게 된 결정적 밑거름이 됐다. 훗날 고려는 원나라의 간접 지배와 권문세족의 수탈로 인해 저물었다. 권문세족이 산과 강을 경계로 대농장을 소유하면서, 조세·부역을 직접 감당하는 평민의 경제 기반이 무너졌다. 조선 태조 이성계는 2000명 규모의 사병 집단 가별초를 거느린 대부호였다. 그는 경제력과 군사력을 기반으로 왜구와의 전쟁에서 대활약해 실력자로 부상했다. 그의 막료로 가담한 정도전·조준·남은·윤소종은 당시 새로운 흐름이었던 성리학을 배운 신진사대부였다. 이들 중 조준은 권문세족의 토지 겸병을 막을 수 있는 방편으로 과전법을 제시했다. 과전법은 권문세족의 토지를 모두 몰수해 국유화한 후 전·현직 관료에게 경기도에 한정해 세금을 거둘 수 있는 권리를 부여하는 제도였다. 과전법은 이성계의 막강한 권력·군사력을 기반으로 실현됐고, 그가 새 왕조의 문을 열 수 있었던 결정적 계기가 됐다. 과전법이 시행돼 백성들이 춤을 추면서 기뻐할 때, 국왕 즉위 이전부터 대토지를 보유했던 고려 마지막 임금 공양왕은 아쉬움의 눈물을 흘렸다. 고려가 왜 멸망했고, 조선이 왜 개창될 수 있었는지 잘 보여주는 한 장면이다. “싸울 동력 확보” 자화자찬 “이미 한계만 노출” 평가도 이성계의 등장 이전 강력한 권력과 군사력을 가졌던 사람은 최씨 무신정권을 열었던 최충헌이었다. 그런데 최충헌은 정치개혁과 체질 개심엔 전혀 관심이 없었다. 그는 정예 병력을 자신의 사병 조직에 포함할 뿐, 거란 유민의 고려 침공을 방치했다. 거란 유민은 당시 떠오르던 몽골과의 협력을 통해 물리칠 수 있었다. 하지만 이는 늑대를 몰아내고 호랑이를 불러들였을 뿐이었다. 최충헌 사후 닥친 국난은 여몽 전쟁이었다. 최우 등 최충헌의 후계자들은 임시 수도 강화도에서 오로지 정권 보위에만 집중했다. 그들은 몽골군이 쳐들어오면 항복한 후 몽골군이 철군하면 항복 조건을 어기는 행태를 반복했다. 그러는 사이 백성들은 각자도생해야 했다. 최씨 정권이 몰락한 후 집권했던 무신 집권자들도 이 행태를 반복했다. 그들이 국난 극복을 등한시한 결과, 고려는 몽골이 중국을 접수한 후 세운 원나라의 간섭을 장기간 받아야 했다. 이는 현대 정치에서도 예외가 아니다. 역대 정권은 모두 새로움을 강조하는 슬로건을 제시했다. 김영삼 전 대통령은 군정 종식을, 김대중 전 대통령은 최초의 수평적 정권교체를, 노무현 전 대통령은 사람 사는 세상을, 이명박 전 대통령은 경제위기 극복을, 문재인 전 대통령은 적폐 청산을, 이 대통령은 내란 종식을 제시했다. 토인비가 문명의 순환을 강조했던 이유는 성공하거나 많은 것을 누리면 나태해지는 인간의 속성과 관련돼있다. 토인비는 “성공한 창조자는 다음 단계에서 다시 창조자가 되기 어렵다”고 주장했다. 그 이유로는 “성공 자체가 큰 흠결이 되기 때문”이라며 “이미 성공했기 때문에 노를 젓는 손을 쉬고 있어서 사회 발전에 쓸모를 다했다”고 설명했다. 국민의힘에선 김용태 전 비대위원장과 윤희숙 전 혁신위원장이 당 체질을 개선할 혁신안을 발표한 후 실행하려고 했다. 하지만 일명 ‘언더 찐윤’으로 통하는 영남권 일부 국민의힘 의원들은 조직적으로 이를 방해했다. 이를 똑똑히 목격한 장 대표는 지방선거 승리를 외치면서도 당내 혁신에 대해선 언급하지 않는다. 오히려 당 주류와 반목하는 한 전 대표와 친한계(친 한동훈)를 겨냥해 패널 인증제를 언급하는 등 당 주류의 영향력을 고착화하는 방안을 발표했다. 누구나 꿈꿔도 이룰 수 없는… 하지만 여론은 국민의힘의 혁신과 중도 확장을 바라고 있다. 이 때문에 이재명정부의 초반 난맥상에도 불구하고, 민주당과 국민의힘의 지지율 격차는 더욱 커지고 있다. 용꿈을 함께 실현할 창조적 소수는 하루아침에 만들어지지 않는다. 자기 사람은 진득하게 비전을 통해 설득하면서 만들어진다. 장 대표에게 필요한 것은 “국정감사 이후엔 어디서 장외투쟁을 하느냐”가 아니라 “왜 내 주변엔 사람이 없어서 내가 직접 장외투쟁을 해야 하느냐”는 것이다. 용꿈은 누구나 꿀 수 있지만, 아무나 이룰 수는 없다. <ctzxp@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