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통정리 끝’ 국민의힘 전대 남은 변수들

돌고 돌아 다시 친윤 대 비윤 

[일요시사 정치팀] 차철우 기자 = 후보 등록이 끝나는 등 본격적으로 국민의힘 전당대회의 막이 오르자, 당이 다시 시끄러워졌다. 얼추 당권주자들이 정리되는 모양새인데, 이 중 안철수 의원과 김기현 의원이 독보적이다. 그러나 이준석계가 대거 전당대회 출마를 선언하자 국민의힘에 여러 변수들이 난무하고 있다. 

국민의힘 전당대회가 연대 보증인과 윤심(윤석열 대통령의 의중)에 바짝 붙은 인물의 대결로 흘러가는 양상이다. 한 달가량 남은 전대는 양측간 점점 진흙탕 싸움으로까지 번졌다. 앞서 안철수 의원과 김기현 의원은 당 대표 후보로 큰 주목을 받지 못했다. 워낙 나경원·유승민 전 의원이 압도적으로 치고 나갔기 때문이다.

안 상승세
김 하락세

그러나 두 인물은 사실상 교통정리를 당했고 비윤(비 윤석열)계로 찍힌 뒤 불출마를 선언하면서 상황이 급변하는 중이다. 실제로 안·김 의원은 양강구도 체제를 형성했으며 비윤 세력은 거의 정리당했다. 관건은 두 인물 중 누가 나 전 의원과 유 전 의원의 표를 가져가느냐다. 

현재까지 이득을 본 인물은 안 의원이다. 나 전 의원이 불출마를 선언하자 안 의원의 지지율은 큰 폭으로 상승해40%대까지 지지율을 끌어올렸다. 직전 10% 초반에 머물던 것과는 대비되는 수치다. 나 전 의원의 고정 지지층이 안 의원에게로 옮겨간 것으로 해석이 가능하다. 

당내 일각에선 안 의원의 지지율이 갑자기 상승한 이유에 대해 ‘집단린치’라는 표현까지 나왔을 정도로 나 전 의원을 몰아내고 비윤으로 낙인찍힌 인물들을 무릎 꿇리게 한 반발효과 때문이라는 해석도 나온다. 


앞서 나 전 의원은 차기 당 대표 후보군 중 압도적인 지지율을 기록했던 바 있다. 인지도가 가장 높은 데다, 경쟁력도 가장 높은 인물로 분류됐다.

그러나 초선 의원들까지 연판장을 돌리고 친윤(친 윤석열)계 인사들의 잇단 공격이 계속되자, 결국 뜻을 접었다. 그에 반해 나 전 의원과 유 전 의원에 가려 안·김 의원은 존재감을 거의 발휘하지 못하고 있었다. 이런 탓에 안 의원은 꾸준히 중도 표심에 공을 들여왔다. 

특히 안 의원은 지속적으로 당원들을 만나거나 강연 등을 통해 지지를 호소하며 전국을 순회했다.

안 의원은 국민의힘을 개혁할 인물인 것으로 평가된다. 원래 국민의힘 출신도 아닌 안 의원이 당 대표에 당선될 경우, 그동안 자리 잡고 있던 국민의힘 세력은 불안에 빠질 수밖에 없다. 실제로 그는 당 대표가 되면 당을 개혁하겠다는 의지가 강하다.

지지율이 가파르게 상승하자 안 의원은 구태 정치, 사람 모으는 정치 등으로 김 의원을 흔들기 시작했다. 다만 안 의원도 안심할 수 있는 상황이 아니다. 안 의원을 중심으로 비윤계가 결집하기는 했지만 국민의힘 강성 지지층이 오히려 김 의원에게 쏠릴 수 있다는 이유 때문이다.

양강구도지만 둘 다 불안한 상황
나경원·유승민 지지율 흡수 관건

지난해 국민의힘에 입당한 안 의원으로써는 친윤계의 지지를 받고 있는 김 의원에 비해 당내 기반이 취약한 편이다. 안 의원과 제대로 대립각을 세우며 1위를 달리던 김 의원 역시 불안한 모습이다. 오르던 지지율이 더 이상 상승세를 보이지 않고 오히려 안 의원에 추월을 허용했기 때문이다.


김 의원은 안 의원에 비해 조직적인 면에서 유리한 조건들을 갖췄다. 우선 윤핵관(윤석열 핵심 관계자) 중의 윤핵관으로 평가받는 장제원 의원을 등에 업고, 윤석열 대통령의 선택을 받은 윤심 후보라고 강조하고 있다. 

그는 선거캠프 개소식서부터 세를 과시했다. 김 의원 개소식을 방문한 인물만 3000명에 달했을 정도다. 전·현직 의원도 40명이 넘게 방문해 김 의원에게 지지를 보냈다. 수도권 출정식에서 김 의원의 조직은 더욱 커졌는데 당시 모였던 인물만 8000명이 넘는 것으로 확인됐다. 

또 자신이 보수당을 끊임없이 지켜온 정통성 있는 후보라는 점을 강조하며 당내 현장 실무선까지 찾아 지속적으로 스킨십을 늘렸다. 이토록 광폭 행보를 갖고, 조직의 지원을 받는 김 의원이지만 지난달 31일, 김연경·남진 인증샷 논란과 최근 안 의원의 지지율 추월 여론조사에 불안감이 감지되기도 했다. 

두 인물은 1위 자리를 굳히기 위해 서로를 향해 맹공을 퍼붓고 있다. 안 의원은 김 의원을 향해 “청와대(대통령실)가 선거개입을 하고 있다” 등 맹렬히 공격 중인 가운데 김 의원은 “대통령 팔아 표를 모으려고 한 장본인”이라고 직격했다. 이에 안 의원은 김 의원이 먼저 팔았다는 식으로 대응하고 있다.

김 의원은 안 의원을 비윤 후보로 규정해버렸다. 김 의원은 유일한 친윤 후보지만, 안 의원에게 친윤 타이틀을 빼앗길 경우, 내세울만한 점이 딱히 없어지는 탓이다. 불안하기는 친윤계 의원들도 마찬가지다. 이제는 안 의원에게 비윤 꼬리표를 붙이기 위해 안간힘이다. 

여기저기
윤심 호소

또다시 2선으로 물러난 장 의원은 직접적으로 안 의원에게 비윤이라고 언급하지 않았으나, 안 의원을 에둘러 비판했다. 그는 “당 대표 경선서 거짓말하지 말라. 자신들의 정치적 이익을 위해 본인을 대통령 뜻까지 왜곡하는 사람으로 낙인 찍는다”고 밝혔다. 

그는 사무총장직 내정설로 공격 들어오는 것에 대해 “사실이 아니다”라며 김 의원의 부담을 덜어줬다. 장 의원뿐만 아니다. 친윤계 역시 안 의원의 과거 인수위원장 문제를 걸고 넘어지고 있다.

또 다른 친윤계 핵심 인사 중 한 명인 이철규 의원은 “대선이 끝난 뒤 윤 대통령은 단일화 정신에 입각해 안 의원에게 정부 운영에 참여할 기회를 줬다”며 “자신의 뜻대로 되지 않으면 국정과제 선정을 방기하고 혼란을 야기한 적 있다”고 강도 높게 타격했다.

친윤계는 안 의원을 당의 적으로 규정해 공격하고 있는 형국이다. 문제는 유 전 의원의 전대 불출마 선언이 하나의 변수로 작용하게 됐다는 점이다. 유 전 의원은 후보 등록일 직전까지 출마를 고민했으나, 결국 뜻을 접었다. 현실적으로 당선 가능성이 적은 데다, 변경된 룰마저 본인에게 불리해졌기 때문이다. 

대신 윤 대통령을 향한 비판은 여전하다. 당외에서 유 전 의원이 흔들면 당원들 역시 흔들리기 마련으로 비윤 세력 역시 한층 더 결집하게 되는 효과를 낳게 된다. 

앞서 직전 원내대표 선거서 비윤계는 파란을 일으켰다. 결과적으로 주호영 원내대표가 당선됐지만, 비윤계 조직의 가능성을 확인했던 바 있다. 유 전 의원이 이번 전대에 출마하지 않았으나 충분히 판을 뒤흔들 수 있는 존재다. 


그는 당권주자 중 대놓고 비윤임을 드러냈다. 이 같은 유 전 의원의 선언은 안 의원의 지지율에 적잖은 플러스 요인이 된다. 이 같은 이유로 비록 불출마를 선언했지만 유 전 의원은 절반의 성공을 거둔 것이나 진배없다. 그로 인해 비윤계가 한층 더 결집했기 때문이다. 

이번에도
비윤계 파란?

또 다른 변수는 4선 중진의 윤상현 의원이다. 윤 의원이 당선될 확률은 높지 않지만 이번 전대서 안·김 두 인물의 지지율을 가를 캐스팅 보트로 여겨지는 탓이다. 향후 안 의원과 김 의원 중 누가 윤 의원에게 손을 내밀지에 관심이 증폭되고 있는 가운데 앞서 윤 의원은 안 의원과 수도권 연대론을 내세웠던 바 있다. 

차기 총선을 염두에 뒀을 때 윤 의원이 끊임없이 설파 중인 수도권 연대론은 김 의원을 위태롭게 만들 수도 있다. 국민의힘은 차기 총선 승리가 간절한 만큼 울산에 지역구를 두고 있는 김 의원에게는 악수일 수밖에 없다. 

또 수도권 당원이 많이 늘어난 만큼 결선투표까지 가면 안 의원에게 표가 몰릴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양자 대결서도 현재 안 의원이 김 의원을 앞서고 있는 만큼, 결선투표까지 가게 될 경우 어느 후보도 당선을 장담할 수 없게 된 셈이다. 

윤심에게 유리하도록 개정한 결선투표제가 오히려 윤심 후보의 제 발등을 찍는 격이 될 수도 있다. 일각에선 전대 룰 개정이 오히려 자충수였다는 비판도 나온다. 보수 색채가 옅은 수도권 당원들도 여러 변수 중 하나로 거론되는 까닭이다.


또 다른 변수는 이준석계다. 이준석 전 대표는 당 대표서 물러난 뒤 한동안 잠행을 이어왔다. 그런 그가 후보 등록일(지난 3일)까지 본격적으로 SNS 정치를 재개했다. 이 전 대표는 “책을 다 썼다”며 전국 순회 북 콘서트도 예고하는 등 본격 활동에 나설 것임을 시사했다. 이번 전대에 직접은 아니더라도 뛰어들겠다는 의지로 읽힌다.

비대위 가처분으로 인한 효력 정지 이후 잠행에 들어간 지 약 4개월 만이다. 그는 당원권 정지 후 전국을 순회하며 당원들과 만났고, 당원 가입을 독려하는 등 일찍부터 미래를 대비했다. 

이 전 대표는 연초 이후 모습을 드러냈다. 신년 인터뷰를 갖고, 라디오 프로그램에도 출연했다. 전대 후보 등록에 앞서 이준석계 인사들의 출마 러시가 이어졌다. 당 대표 선거에는 천하람 순천갑 당협위원장이 출마를 선언했다.

대구 출생의 천 위원장은 이 전 대표의 측근으로 불린다. 변호사로 활동하고 있고, 이 전 대표 체제서 혁신위원을 맡았던 바 있다. 최고위원에는 김용태 전 최고위원, 허은아 의원이 출마를 선언했다.

이준석계 다수가 출마 러시
컷오프 통과하면 다시 혼란?

김 전 최고위원은 이미 직전 최고위원 중 한 명으로 이 전 대표 체제서 지도부를 지낸 경험을 가진 인물이며 허 의원 역시 대표적인 비윤계다.

그는 이번 당협 정비 과정 중 당협위원장을 김경진 조직위원장에게 자리를 내줬다. 이 전 대표는 작정하고 이들을 밀어줄 계획이며 김 전 최고위원과 허 의원의 후원회장까지 맡았다.

당내 일각에선 이 전 대표가 사실상 등판한 것과 다름이 없는 만큼 파괴력에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이 역시 전대 룰을 개편한 점이 한몫 차지한다. 이번 전대서 투표권을 갖는 당원은 80만명으로 이 전 대표 측에 따르면 그의 지지자는 15만명 이상이다. 

15만명은 충분히 판을 흔들 수 있는 결코 적지 않은 표다. 투표가 당원으로 한정돼있는 만큼 다시 한번 친윤, 비윤 구도로 전당대회를 끌고 갈 수 있다. 나·유 전 의원의 불출마 이후 비윤에 반발하고 있는 당원 표심이 적지 않은 점도 김 의원 입장에선 아킬레스건이다.

이 전 대표 측은 이런 계산들을 벌써 끝냈을 것으로 해석된다. 

이 전 대표는 자신의 적을 윤핵관으로 확실하게 규정한 바 있다. 이런 탓에 비윤 세력 결집 시 김 의원은 물론 안 의원의 지지율에까지 영향이 갈 수밖에 없을 것으로 보인다. 물론, 현실적으로 천 위원장이 당 대표로 당선될 가능성은 높지 않다.

그러나 컷오프 통과 시 그 자체만으로도 이준석계에겐 파란이다. 천 위원장을 지원하는 이 전 대표를 중심으로 다시 한번 비윤계가 뭉칠 수 있는 계기가 될 수도 있다. 여전히 이 전 대표의 세력이 ‘살아있음’을 증명하는 방식이기 때문이다.

이 전 대표의 최소 목표는 당 지도부에 이준석계 인사를 입성시키는 것으로 여겨진다. 최고위원 컷오프는 비교적 널널하다. 이준석계가 컷오프서 살아남고, 지도부에 입성하게 되면 김 의원이 대표에 당선되더라도 친윤 세력에 지속적인 타격을 줄 수 있다. 

이대론 
총선 패배?

이 경우, 비윤 최고위원들이 친윤 당 대표를 공격하는 등 당의 혼란 수습은 물 건너가게 된다. 정치권에서는 이 같은 국민의힘 혼란은 결국 차기 총선 패배로까지 이어질 수 있다고 보고 있다. 

이와 관련해 한 정치권 관계자는 “국민의힘 전대가 다른 의미에서 흥행은 하고 있다. 다만 흥행이 같은 당 인물끼리의 싸움으로 진흙탕이 됐다”며 “이런 식으로 자꾸 대립이 반복되면 결국 내년 총선이 위험하다”고 조언했다. 

<ckcjfdo@ilyosisa.co.kr>

<기사 속 기사> 안철수 압박하는 윤석열

국민의힘 안철수 의원이 당 대표 후보 지지율에서 1위를 기록하자, 윤석열 대통령이 김 의원에게 힘을 실어주는 모양새다.

주변 정리에 나서는 등 안 의원 압박을 통해서다. 

대통령실은 김영우 안철수 캠프 선대위원장을 대통령 직속 국민통합위원서 해촉했다.

대통령실이 김 전 의원을 해촉한 이유는 공직자가 중립의 의무를 지키지 않았기 때문이라고 밝혔다.

김 선대위원장의 해촉을 두고 일각에서는 나경원 전 의원 이후 또다시 윤 대통령이 당무 개입을 했다는 논란이 일었다. <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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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곡점’ 의정 갈등 엔드게임

[일요시사 취재1팀] 장지선 기자 = 구성원의 압도적인 지지로 당선된 수장이 반년 만에 끌려 내려왔다. 막말에 가까운 강한 발언과 제멋대로인 행보가 탄핵을 불렀다. 강성 수장이 물러나면서 변화를 기대하는 움직임이 일고 있다. 대화의 문이 열릴 것인가, 더 높은 벽이 쌓일 것인가. 임현택 대한의사협회(이하 의협) 전 회장이 3년 임기를 다 채우지 못하고 탄핵당했다. 지난 5월 취임 이후 6개월 만으로 의협 역사상 2번째, 최단기간 내 불명예 퇴진한 회장이 됐다. 첫 번째는 2014년 4월 임기 1년여를 앞두고 탄핵당한 노환규 전 회장이다. 두 번째 최단기간 의협은 지난 10일 오후 서울 용산구 의협회관서 임시대의원총회를 열고 임 전 회장의 불신임안을 처리했다. 참석 의원 224명 가운데 170명(75.9%)이 찬성했다. 반대는 50명, 기권 4명이다. 전체 대의원 249명 가운데 224명(91.1%)이 표결에 참여했다. 의협 정관에 따르면, 회장 불신임안은 제적 대의원 3분의 2 이상이 출석하고, 출석 대의원 3분의 2 이상이 찬성하면 가결된다. 지난 3월 임 전 회장은 선거서 유효 투표수 3만3084표 중 2만1646표를 받아 당선됐다. 65.43%의 압도적인 지지다. 의협 회장 선거는 정부의 의대 정원 증원 발표로 의정 갈등 수위가 높아지고 있을 무렵에 치러졌다. 전공의가 병원을 떠났고 정부가 ‘2000명’을 강조하던 시기였다. 의협 회원들은 강성 중의 강성으로 분류되는 임 전 회장에게 힘을 실었다. 임 전 회장의 어깨에 너무 힘이 들어갔던 것일까? 임 전 회장의 언행은 사사건건 도마 위에 올랐다. SNS에 올린 글, 공식 석상서 했던 발언 등이 막말 논란으로 번졌고, 단식투쟁 등의 행보는 ‘쇼’라는 비판을 받았다. 무엇보다 박단 대한전공의협의회(이하 대전협) 비대위원장과 갈등을 빚으면서 의료계 내부 분열을 조장한다는 지적이 뼈아팠다. 임 전 회장이 8개월 동안 보여준 모습은 고스란히 탄핵 사유가 됐다. 의협 회원 사이에서는 임 전 회장이 SNS로 막말과 실언을 해 의사단체의 명예를 훼손했다는 비판이 일었다. 또 ‘임 회장이 전공의 지원금을 빼돌렸다’는 허위 비방 글을 올린 시도의사회 임원에게 고소 취하 대가로 1억원을 요구한 사실이 녹취록을 통해 알려져 논란이 불거졌다. 특정 인물에 대한 수위 높은 비판은 여론의 역풍을 불렀다. 장상윤 대통령실 사회수석을 겨냥해 “정신분열증 환자 같은 개소리”라고 비난하는 글을 올렸다가 환자를 비하했다는 지적을 받았다. 임현택, 6개월 만에 탄핵당해 막말 논란·의대 증원 못 막아 또 2021년 한 의사가 80대 환자에게 ‘맥페란’ 주사제를 투여한 뒤 부작용이 나타나 기소된 재판에 대해서도 도 넘는 발언을 쏟아냈다. 이른바 ‘맥페란 재판’ 항소심서 판사가 1심의 금고 10개월에 집행유예 2년을 선고받은 해당 의사의 항소를 기각하자 “이 여자 제정신입니까?”라는 글을 SNS에 올린 것이다. 임 전 회장의 발언에 법원은 이례적으로 “재판장의 인격에 대한 심각한 모욕일 뿐 아니라 국민의 신뢰를 크게 훼손할 수 있는 매우 부적절한 행동”이라고 공개적으로 유감을 표명했다. 의대 정원 증원 집행정지와 관련해 기각·각하 결정을 내린 재판장이 ‘회유’받았을 것이라는 주장으로도 입길에 올랐다. 서울고등법원 재판부가 결정을 내린 다음 날 한 라디오 프로그램에 출연해 재판장의 실명을 거론하면서 “지난 정권에서는 고법 판사들이 차후 승진으로 법원장으로 갈 수 있는 그런 길이 있었는데 제도가 바뀐 다음에는 그런 통로가 막혀서 이분이 아마 어느 정도 대법관에 대한 회유가 있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있다” 말했다. 서울고법은 법원 명의로 입장문을 내고 “해당 단체장의 아무런 객관적 근거가 없는 추측성 발언은 재판장의 명예와 인격에 대한 심대한 모욕”이라면서 “사법부 독립에 관한 국민의 신뢰를 현저히 침해할 수 있는 매우 부적절한 언사다. 깊은 유감을 표명한다”고 밝혔다. 여기에 결정적으로 정부의 2025학년도 의대 증원을 막지 못한 점, 간호법 제정을 저지하지 못한 점이 탄핵 사유로 꼽혔다. 임 전 회장은 총회를 앞두고 의사 회원들에게 사과하고 페이스북 계정을 삭제하는 등 재신임을 호소했지만 반전은 없었다. 회장을 탄핵한 의협은 비대위원회 체제로 전환하고 지난 13일 새로운 회장 선거 전까지 단체를 이끌 비대위원장을 뽑았다. 그 결과 박형욱 대한의학회 부회장이 1차 투표서 총 유효 투표수 233표 중 123표(52.8%)를 얻어 과반으로 당선이 확정됐다. 임기는 내년 1월 차기 회장이 선출될 때까지다. 뒤늦게 호소했지만… 박형욱 비대위원장은 “정부는 의료 파탄이란 시한폭탄을 장착해놨다”며 “정말 대화를 원한다면 정부는 먼저 시한폭탄을 멈춰야 한다. 그래야 진정한 대화가 가능하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비대위원들의 합의에 기초해 입장과 행동을 결정할 것”이라며 “비대위 운영서 소외돼왔던 전공의들과 의대생들의 견해가 충분히 반영될 수 있게 하겠다”고 소감을 밝혔다. 임 전 회장이 물러나고 새로운 비대위원장이 등장하면서 의협의 투쟁 방향에 변화가 생길 가능성이 커졌다. 일각에서는 의협의 이번 행보를 의정 갈등의 중요한 변곡점으로 보고 있다. 강성 회장을 필두로 정부와 강하게 대립했던 이전 모습서 벗어나 대화에 참여할 것이라는 의견과 이전보다 더 수위 높은 대정부 투쟁이 예상된다는 의견으로 갈리는 중이다. 후자의 배경에는 대전협이 있다. 앞서 박단 비대위원장 등 전공의 70여명은 전날 의협 대의원들에게 “비대위원장으로 박형욱 교수를 추천한다”는 메시지를 보내 공개 지지 의사를 드러냈다. 대의원회서도 박단 비대위원장의 공개 지지에 대해 경고하는 등 잡음이 일었다. 하지만 결과적으로 대전협의 지지를 등에 업은 박형욱 비대위원장이 당선되면서 전공의의 영향력이 상대적으로 커질 수밖에 없는 상황이 됐다. 의협과 대전협의 공조가 본격화될 것이라는 관측이 나오는 이유다. 문제는 양측의 교류가 정부와의 대화로까지 이어질 수 있느냐는 점이다. 박형욱 비대위원장은 당선 소감부터 정부의 태도 변화를 요구하고 나섰다. 또 윤석열 대통령의 변화도 필요하다고 언급했다. 의정 갈등서 줄곧 선봉에 선 전공의들은 ‘의대 정원 증원 백지화’라는 요구사항서 앞으로도 뒤로도 움직인 적이 없다. 전공의의 행보는 의대생, 의대 교수 등에 영향을 미치고 있다. 영향력 커진 전공의 단체 의료계가 전공의 중심으로 굴러가고 있는 셈이다. 실제 대전협은 지난 11일 출범했던 여야의정협의체(이하 협의체)에 대해서도 부정적인 태도를 보인다. 협의체는 야당인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이 불참하고 의료계에서는 학술 단체인 대한의학회와 의대 학장 모임인 한국의과대학·의학전문대학원협회(KAMC)만 참석하는 등 ‘반쪽 출범’이라는 비판을 받았다. 협의체의 운영 기한은 올해 말까지로, 다음 달 22~23일 전에 의미 있는 결과를 낼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하겠다는 태도다. 하지만 박단 비대위원장은 협의체에 대해 ‘무의미하다’고 평가했다. 그는 협의체가 첫발을 뗀 11일 SNS에 “국민의힘 한동훈 대표는 전공의와 의대생, 당사자 없이 대화나 하겠다는 한가한 소리를 하고 있다”며 “한 대표는 2025년 의대 모집 정지와 업무개시명령 폐지에 대한 입장부터 명확히 밝히시길 바란다”고 일갈했다. 이어 “눈치만 보며 뭐라도 하는 척만 하겠다면 한동훈의 ‘여야의정 협의체’ 역시 임현택 전 의협 회장의 ‘올바른 의료를 위한 특별위원회(올특위)’와 결국 같은 결말일 것”이라고 우려했다. 올특위는 의료계의 입장을 하나로 모으기 위해 의협 주도로 구성한 범의료계 특별위원회다. 전공의와 의대생이 해당 위원회에 불참하면서 파행 운영되다 지난 7월 해체됐다. 정부는 협의체서 의료계가 제안한 내용에 대해 “진정성 있게 검토하겠다”는 견해를 밝혔다. 지난 11일 협의체서 의료계는 한국의학교육평가원 자율성 보장, 추가 합격 제한 등을 통한 2025학년도 의대 선발 인원 축소 등을 제안한 것으로 알려졌다. 정윤순 보건복지부 보건의료정책실장은 지난 14일 의사 집단행동 중앙재난안전대책본부(이하 중대본) 회의를 주재하면서 “마주 앉기까지 오랜 시간이 걸린 만큼 활발한 대화와 소통을 통해 누적된 갈등을 해소하고 신뢰를 회복해 국민이 원하는 결과를 끌어낼 수 있길 기대한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의협과 전공의 등 다른 의료계 단체의 참여를 호소했다. 박단 공개 지지 새 비대위원장 강경 투쟁이냐 VS 노선 변화냐 의료계 내부 상황은 크게 바뀌었지만 향후 상황은 여전히 ‘시계 제로(0)’ 상태다. 임 전 회장과 박단 비대위원장 간 갈등의 불씨도 여전히 살아있다. 대전협은 임 전 회장의 탄핵을 공개적으로 요청하는 등 ‘(임 전 회장과)같이 갈 수 없다’는 뜻을 분명히 밝힌 바 있다. 실제 대전협은 임 전 회장의 탄핵을 요청하면서 “이해와 소통이 가능한 새로운 회장을 필두로 의협과 대전협 두 단체가 향후 상호 연대를 구축할 수 있길 기대한다”는 입장문까지 냈다. 임 전 회장의 탄핵안 가결 직후 박 비대위원장이 “결국 모든 길은 바른 길로”라는 내용의 SNS 글을 올리기도 했다. 문제는 임 전 회장이 박단 비대위원장을 상대로 반격을 진행하고 있다는 점이다. 임 전 회장은 탄핵 사흘 만에 닫았던 페이스북 계정을 다시 열고 “박단과 그 뒤에서 박단을 배후 조종해 왔던 자들이 무슨 일을 해왔는지 전 의사 회원들에게 아주 상세히 밝히겠다”며 박단 비대위원장을 저격하는 글을 올렸다. 그러면서 “의협 대의원회 비대위원장과 의협 회장 선거가 더 이상 왜 필요한가”라면서 “박단이 의협 회장 겸 비대위원장을 맡아 모든 권한과 책임하에 의료 농단을 해결하면 된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지지해주셨던 모든 분에게 우선 사과의 말씀을 드린다”며 “이유가 어떻든 회장 취임 전부터 탄핵하겠다고 마음먹고 있던 자들에게 빌미를 주어 넘어간 것 자체가 제 잘못”이라고 주장했다. 또 의협의 근본적인 개혁의 첫걸음으로 의협 대의원회 폐지 등을 내용으로 하는 민법상의 사원총회를 개최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사원총회는 민법에 규정된 사단법인의 최고의사결정 기관이다. 의협 최고의결기구로 알려진 대의원총회보다 상위에 있고 정관의 규정으로 폐지할 수 없다. 사원총회는 이사가 필요하다고 생각하는 경우나 총 사원 5분의 1 이상이 회의의 목적 사항을 제시해 청구하는 경우 소집될 수 있다. 반격 시작 내부 갈등? 올해 2월 시작된 정부와 의료계의 갈등이 10개월째로 접어들었다. 온갖 말이 오갔지만 되짚어보면 조금도 좁혀지지 않은 평행선 상황이 계속되는 모양새다. 정부와 의료계의 대치 상황이 길어질수록 ‘의료 붕괴’는 가시화되고 있다. 한 의료계 관계자는 이렇게 말했다. “이제는 정말로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다.” <jsjang@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