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질기고 질긴’ 택배 파업의 이면

  • 김민주 기자 alswn@ilyosisa.co.kr
  • 등록 2022.02.28 16:39:08
  • 호수 1364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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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에 발목 잡힌 92% 어쩌나

[일요시사 취재1팀] 김민주 기자 = 택배 파업이 벌써 두 달째다. 이를 바라보고 있는 비노조 택배 노동자와 시민들은 염증을 느낀 지 오래다. 비단 택배 파업으로 생긴 불편함 때문만이 아니다. 파업 현장은 불법과 폭력이 난무하고 있고, 이런 이유로 이들은 ‘택배 파업 쟁점이 무엇이든 간에’ 속히 해결되길 원한다. 

지난해 6월22일 택배산업 이해관계집단과 시민사회단체 지도자, 그리고 정당 관계자 등이 참여한 가운데 ‘2차 택배기사 과로사 대책을 위한 사회적 합의기구 합의문’이 발표됐다.  이 합의문에는 택배기사들의 ▲분류 작업 배제 약속 ▲고용보험 및 산재보험 가입 활성화 ▲주당 60시간 근무 초과 금지 등 장시간 노동 완화 방안 ▲운송 위탁계약 체결 ▲택배 적정 요금 등이 들어있었다.

날아간
합의문

당시 합의안을 ‘택배 기사 사회적 합의 이정표’라고 칭했다. 그러나 이 합의문이 발표된 지 6개월이 지난 뒤 택배노조의 장기간 파업이 시작된다. 

합의문은 제대로 이행되지 않았다. 특히 합의문에는 “정부는 사회적 합의사항의 원활한 이행을 위해 이를 지속적 점검, 관리 및 지원한다”고 명시돼 있지만, 택배기사의 과로사는 계속됐다. 유성욱 전국택배노동조합(이하 택배노조) CJ대한통운 본부장은 지난해 12월24일 물류 전문 매체에서 택배 파업의 이유를 설명했다.

지난해 4월 CJ대한통운은 택배 노동자 처우개선을 위해 판가 인상을 단행했다. 그중 51원만 분류작업과 사회보험 지원에 사용하고 나머지는 회사 이익으로 사용한 것이다.


또한 국토부가 지난해 12월2일에 발표한 ‘생활물류법에서 정한 표준계약서’의 부속합의서에는 택배기사들의 과로사 원인으로 지목된 ▲당일 배송 ▲주 6일제 근무 ▲터미널 도착 상품 전부 배송 등의 내용이 여전히 들어 있었기 때문이다.

CJ대한통운과 정부가 택배 노동자의 과로사를 방관하고 있다는 것이다.

택배노조 파업은 지난해 12월23일 민주노총에서 총파업 찬반투표 결과 93.6%로 찬성이 가결되면서 결정돼 28일에 시작됐다.

이들은 택배 파업을 통해 다섯 가지의 요구사항을 전했다.

이는 ▲표준계약서의 부속합의서 폐지 ▲택배 판가 인상을 택배기사에게 사용할 것 ▲택배기사들이 허리 부상을 당하기 쉬운 저상 탑차에 대한 대책 ▲별도 운임과 수수료 폐지 ▲CJ대한통운의 택배노조 인정이다. 이 파업은 무기한 파업으로 ‘최소 한 달 이상 두 달까지 지속한다는 각오’로 시작됐다.

불법이 난무하는 파업 현장
다수 반대편 목소리 들어보니…

택배노조 집계에 따르면 2020년부터 지난해까지 22명의 택배 노동자가 과로사했다. 파업이 진행되는 과정에는 지난해 12월에 뇌출혈로 쓰러졌던 쿠팡 물류센터 노동자가 사망하는 일도 있었다.


택배노조는 1인 시위, 기자회견, 결의대회와 함께 물과 소금을 먹지 않는 아사 단식, CJ대한통운 본사 무단 점거 농성, 곤지암 허브 점거, 상경 투쟁, 선거법 위반까지 행사하는 실정이다. 

택배노조의 불법 무단 점거는 계속되고 있다. 우선, CJ대한통운 본사 무단 점거는 50일째 이어갔다. 처음에는 1층과 3층을 동시에 점거했으나 진입 11일 만에 3층 점거는 해제하고 1층만 점거했다.

건물에는 현수막을 여러 개 걸었다. 지난 22일 오전 10시쯤에는 경기 광주시 CJ대한통운 곤지암허브터미널에서 전국택배노동조합 조합원 100여명이 간선 차량의 출차를 막고 터미널 내부로 진입하기도 했다.

이 과정에서 간선 차량 출차 시간이 평소에 비해 4시간 가까이 지연됐고, 각 지역 터미널로의 배송에 차질이 빚어졌다. 

CJ대한통운·CJ프레시웨이는 택배노조를 상대로 ‘택배기사 노동조합이 본사를 점거하는 행위를 못하게 해달라’고 가처분을 신청한 상황이다.

끝나길 
기다리다

사측 대리인은 ▲노조의 본사 건물 점유 해제 ▲1층 계단 앞 천막 등을 철거 명령 ▲노조 측 이행 강제를 위한 간접강제금 부과를 요청했다고 설명했다.

이어 적법한 쟁의로 이뤄진 점거가 아니기 때문에 건물 점거 자체를 정당화할 근거가 없다고 덧붙였다. 서울중앙지법 민사합의51부(부장판사 진보성)는 이달 말이나 다음 달 초에 결론을 내리겠다고 밝혔다.

선거법 위반 사례도 계속되고 있다. 일반 집회는 방역지침에 따라 인원이 299명으로 제한된 데 비해 선거운동은 선거법에 따라 참여 인원에 제한을 두지 않는다. 방역수칙과 집합금지 규정도 적용받지 않는다.

택배노조는 지난 16일 오후 CJ대한통운 본사 앞에서 사회적 합의 이행과 파업사태 해결을 촉구하는 ‘촛불 문화제’를 열었다. 

주최 측 추산 800여명의 인원이 집결했지만, 경찰과의 마찰은 없었다. 경찰은 ‘촛불 문화제’가 일반 집회가 아닌 선거운동으로 신고됐다고 밝혔다.

300명이 넘는 택배노조의 농성은 많이 벌어졌다. 이는 방역지침에 따라 불법 집회가 되지만, 근처에 있던 진보당 김재연 대선후보가 출정 연설을 해 선거 유세 형식으로 전환되면서 진행이 가능했다.


김 후보의 선거 유세차량을 옆에 대규모 집회를 연 적도 있다. 2000여명이 넘는 인원이 집회에 참여한 적도 있다.

쌓여가는 불법 행위에 비노조 택배 노동자들은 피로감을 호소하고 있다. 현재 이들은 뜻하지 않는 손실을 감수할 수밖에 없는 상황으로, 속히 택배노조의 파업이 끝나길 기다리고 있다. 택배노조의 파업 이후 가장 큰 피해는 업무량이 감소한 것이다.

매출 30% 이상 줄어들어
소상공인 피해도 심각해

통상적으로 매년 11월부터 1월은 10~15% 택배 물량이 늘어나면서 수입도 증가한다. 하지만 파업이 시작된 이후 전년 대비 매출이 30% 이상 줄었다.

이 문제에 대해 김슬기 비노조택배연합 대표는 거래처들이 이탈했기 때문에 적게 잡아도 30% 이상 빠졌다고 설명했다.

택배노조에 대한 비판도 있었다.


김 대표는 “CJ대한통운은 법률이 허락하는 한 서비스 개선을 위한 노력을 하겠다고 밝혔고, 택배노조는 대화하자고 한다 ”며  이 와중에 택배노조는 대리점주에게 연차를 주거나 1일 연차수당 20만원, 택배노조만을 위한 사무실과 회의실 만들기 등의 불가능한 요구를 하고 있다 ”고 주장했다.

이어 “택배노조는 CJ대한통운에 고소·고발을 취하하라고 했다. 자신들의 죄를 면책받고 책임지지 않으려는 모습”이라며 “택배노조는 경비원을 밀어내고 문을 깨고 들어가 CJ대한통운 본사를 불법으로 점거했다. 이런 상황에서 경찰은 뭘 하고 있는 건지”라고 답답한 심정을 토로했다.

피해 복구는
비노조의 몫

이밖에도 김 대표는 SNS에 노조 조끼를 입은 사람이 택배를 위아래로 내려치는 영상을 올리기도 했다. 댓글에는 김 대표를 응원하는 글이 줄을 이었다. 

국민청원에도 택배노조를 반대하는 글이 있다. 자신을 택배 노동자라고 설명한 A씨는 택배노조와 개인사업자 파업쟁의권들을 강력하게 처벌해달라고 요청하고 있다.

A씨는 우선 택배노조가 주장하는 과로사 문제를 반대했다. 코로나19 이후 택배 물량이 증가하면서 육체적 업무 강도가 늘어난 것은 맞지만, 이미 분류작업은 택배 노동자가 하지 않도록 분류 도우미를 배치했다는 것이다. 

A씨는 오전에 분류작업을 마치고 배송을 시작한다고 설명하며, 구역의 규모와 업무수행 능력에 따라 개인의 업무량이 결정된다고 전했다.

가장 중요한 점은 그 누구도 택배 노동자에게 업무를 강요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택배 노동자는 개입사업자인 특수고용형태 종사자다.

그 때문에 배달과 집화 수량에 따라 자신이 일한 만큼 돈을 받는 것이지, 누군가의 지시를 통해 일하는 형태가 아니다. 

A씨는 택배노조의 업무 행태도 지적했다. A씨의 설명에 따르면 택배 노동자는 보통 아침 9시에서 10시 사이에 터미널에 도착하고 오전 11시 전에 배송을 시작한다.

이후에도 평균 1시간에서 2시간 정도 추가적으로 택배 하차가 진행되지만, 택배노조는 파업쟁의권이 있어서 자신들이 배송을 원할 때만 배송을 한다는 것이다. 

2년 동안 과로사 22명
업무량은 개인이 선택

이런 상황에서도 파업으로 생긴 피해 때문에 회사는 택배노조에게 아무런 말을 할 수 없다. 결국 택배노조에 속한 택배 노동자에게 택배가 배정됐다는 이유 하나만으로, 소비자는 늦어지는 택배를 기다릴 수 밖에 없다.

A씨는 이런 상황에 택배노조가 원하는 ‘당일배송 금지’와 ‘토요일 휴무’가 보장되면 소비자들의 피해가 커질 것을 염려했다.

또 한국의 택배회사는 4곳이고 가격과 서비스가 달라서, 소상공인들이 택배회사를 선택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택배노조 파업 중단 및 처벌을 촉구하는 이도 있었다. B씨는 CJ대한통운 택배 노동자는 2만여명인데, 파업에 참여한 노동자는 1650여명인 8%라고 지적했다.

즉, 소수의 움직임에 국민들의 권리와 재산이 훼손된다는 것이다. 이어 CJ대한통운과 계약한 판매업체 피해에 대해서도 밝혔다.

택배 파업이 시작된 후, 다수의 판매업체는 다른 택배사로 대체해 물건을 발송하고 있다. 그러나 해당 지역이 CJ대한통운만 들어오면 계약을 파기할 수도 없어서 소비자에게 일일이 주문 취소 안내를 해야 하는 실정이다. 

B씨는 “‘전국 규모 장기 파업’ ‘대체 인력을 통한 반송 및 운송 업무 방해’ ‘밤낮없는 택배 지키기’ 등의 행위가 누구를 위한 행위인지 모르겠다”며 “택배 노동자 8%가 택배노조의 권리를 찾기 위해 타인의 권리를 침해하고 훼손하는 행위는 정당하지 않고 인정할 수 없다. 이른 시일 내 파업을 중단하지 않을 경우 택배노조 탄압이 정당하다고 본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시민들 역시 불편함을 토로하고 있다. 인터넷에 ‘택배 파업 지역’을 검색하면 매일 추가되는 파업 지역과 ‘파업 철회 지지한다’는 글을 쉽게 볼 수 있고 택배 파업으로 인한 피해 사례도 속속들이 올라오고 있다.

해결책이 보이지 않는 상황에서 정부가 손 놓고 있는 것 아니냐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정부가
해결해야

시민 C씨는 “새벽 배송, 총알 배송 같은 것이 최근에 많이 생겼다. 나도 일을 하고 있으니 택배 노동자들이 힘들다는 것을 안다. 그래서 처음에는 택배노조의 파업을 이해했다”면서도 “그런데 알아보니 택배 노동자들이 권리를 받지 않는 것도 아니었고 월급도 굉장히 많았다. 택배노조 파업 때문에 피해가 막심하다. 정부는 왜 노조의 파업에 관대한 것인지 이해할 수 없다”고 말했다.
 

<alswn@ilyosis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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합당은 민주당 내부에서도 받아들일 의사가 있어야 진행될 수 있다. 자신들에게 미칠 영향을 생각하면서 합의점에 도달하면 합당 여부를 결정할 것이다. “대통령 있는데 당대표가 어떻게 의사 관철?” “장동혁은 대권 욕심 갖고 계속 변화할 것” -국민의힘 안철수 의원이 이끌던 국민의당과 혁신당은 총선을 치르면서 호남에서 선전해 존재감을 드러냈다. 내년 지방선거에서 호남 민심이 어떤 선택을 할 거라고 보나? ▲두고 봐야 안다. 호남 민심은 제19대 대선에선 안 의원이 아니라 문재인 전 대통령을 선택했다. 호남 유권자들은 상당히 전략적으로 투표한다. 그들은 정권 재창출이 가능한 후보에게 표를 몰아준다. 그러니 선거를 치러봐야 알 수 있다. 지금은 뭐라고 얘기하기 어렵다. -장 대표가 취임하자, 강경 보수 유튜버들은 “군소 보수 정당에 지방자치단체장 30석을 내놓으라”고 요구하고 있다. “국민의힘과 강경 보수 유튜버들이 너무 밀착한다”는 일각의 주장에 대해선 어떻게 생각하는가? ▲국민의힘이 계속 지금과 같은 자세를 유지하면, 희망이 별로 보이지 않는다. 국민의힘은 지난해 12월 비상계엄 사태와 윤석열 전 대통령 파면 이후 우리 정치 지형이 어떻게 변하고 있는지 냉철하게 분석해야 한다. 변화가 있어야 국민의 지지를 얻을 수 있다고 생각한다. 요즘처럼 강경 보수로 회귀하면, 희망이 있다고 보이진 않는다. -장 대표는 강경 보수와의 밀착과 중도층 공략 사이에서 계속 의견이 바뀐다. ▲장 대표에게도 정치적 목표가 있을 텐데 그는 목표 달성을 위해 많은 변화를 할 수 있는 능력이 있다. 강경 보수의 지원을 받아 당 대표가 됐지만, 자신의 정치적 지향점을 어떻게 결정할지 잘 생각해 봐야 한다. 만약 “지나치게 강경 보수와 밀착하면 안 된다”고 생각하면, 어느 정도는 그들과 선을 그을 필요가 있다. 하지만 선을 긋는 데 한계가 있을 것이다. 이를 극복하지 못하면, 그에게는 크게 정치적 기대를 하기 힘들다고 본다. -개혁신당 이준석 대표는 “장 대표가 용꿈을 꾸고 있다”고 평가한다. ▲장 대표도 어차피 당 대표가 됐으니, 대권 욕심을 가질 것이다. 정치인은 언제나 시대 변화에 적응해야 한다. 장 대표 스스로 “변화하는 능력이 있다”고 생각한다면, 계속 많이 변할 것이다. -국민의힘 한동훈 전 대표는 장 대표가 당선되면서 위상이 많이 훼손됐다. 비상계엄 사태 이후 한 전 대표의 행보를 어떻게 평가하는가? ▲국민의힘 당원들은 상당한 분노에 차 있었기 때문에 갑자기 강경해졌다. 세월이 흘러 당원들이 당을 위해 어떤 역할을 해야 하는지 알게 되면, 또 변할 수도 있다. 지금 상황만으로 판단하기엔 굉장히 이르다. 한 전 대표가 당시 여당 대표로서 비상계엄 선포 직후 반대 의견을 밝히면서 윤 전 대통령 탄핵소추에 찬성한 것은 굉장히 용기 있는 행동이라고 생각한다. 그가 앞으로 어떻게 정치적으로 발전할지는 아직 모르겠다. 그래도 국민의힘에선 가장 올바른 판단을 했다고 본다. -장 대표가 한 전 대표에 대한 강경한 태도를 바꾸지 않고 있다. ▲장 대표로선 당연히 한 전 대표를 국민의힘에서 쫓아내고 싶을 것이다. 그런데 쫓아낼 수 있겠는가? 어떻게 쫓아내겠나? 오늘의 장 대표는 한 전 대표 덕분에 존재하는 것이다. -이 대표는 국민의힘 안철수 의원, 오세훈 서울시장 등과 지방선거에서 연대할 가능성을 내비친다. ▲뻔한 사람들끼리 하는 거라서 큰 효과가 있을 것 같진 않다. 모두 국민의힘 사람이거나 국민의힘 출신인데 특별한 효과가 있겠는가? -진영 간 대결 구도가 성별·세대 갈등 구도로 번졌다. 정치권 원로로서 어떻게 생각하는가? ▲그건 어쩔 수 없는 것이다. 시대·사회·경제 구조가 변하고, 새 기술이 도입되면 의견이 분분할 수밖에 없다. 국민 사이에 형성되는 ‘그룹’을 조화시킬 수 있는 정치적 능력이 필요하다. 이런 능력이 없는 사람은 정치적으로 성공할 수 없다. “이준석·안철수·오세훈? 뻔한 사람들” “국힘, 강경 보수로? 희망 보이지 않아” -일부 정치인은 갈등을 이용해 정치적 영향력을 확대하면서 후원금을 벌고 있다. ▲큰 도움이 되진 않을 것이다. 갈등을 전체적으로 포괄한 후 최대공약수를 찾아 정치해야 한다. -과거 정치와 현재 정치의 가장 큰 변화와 차이점은? ▲못 살던 시절엔 먹고사는 게 가장 중요해서 경제가 가장 큰 영향을 미쳤다. 그런데 먹고사는 문제가 어느 정도 해결된 지금은 국민의 의식 구조가 과거와 다르다. 이 시대의 젊은 세대는 우리 국민 중 성숙도가 가장 높다. 정보를 활용할 수 있는 능력도 가장 좋다. 이들은 공정하지 못하고, 불평등하며, 민주적이지 않은 것에 크게 저항한다. 세대별로 약간의 차이가 있을 수밖에 없다. 누군가는 이를 두고 “극우화됐다”고 하지만, 그렇게 생각하면 안 된다. -4050 남성이 2030 남성에게 가장 불만을 품는 부분은 “너희는 왜 국민의힘을 지지하면서 보수화되느냐”는 것이다. ▲2030 남성은 국민의힘을 지지하는 게 아니다. 최근 국민의힘은 장외 집회를 하고 있는데, 이들은 이런 걸 별로 좋아하지 않을 것이다. 이들은 너무 소란을 피우는 것 자체를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 흔히들 “장 자크 루소가 얘기하는 계몽주의가 프랑스 대혁명을 낳았다”고 한다. 그런데 그 계몽주의가 뭔가? 성숙지 못한 국민을 성숙하게 만들어서 사회를 변화시킨다는 것이다. 우리 국민의 성숙도는 매우 높아졌다. 이 때문에 윤 전 대통령의 비상계엄도 실패했다. 국민의 의식 수준이 높아지면, 정치가 이를 따라가야 하는데, 접근을 제대로 못하고 있다. -정계의 킹메이커로 알려졌다. 대통령의 가장 중요한 덕목은 무엇인가? ▲대통령은 정직해야 한다. 시대 변화에 민감하게 적응할 수 있어야 한다. 우리 대통령들이 모두 실패한 원인은 너무 탐욕스러웠고, 시대 변화를 제대로 못 따라갔다는 것이었다. -최근 한국 정치·사회에서 작게나마 희망을 봤거나 “아직은 희망이 있다”고 생각하거나 그 반대가 된 일이 있다면? ▲우리나라의 제일 시급한 과제는 아주 극단적인 양극화 현상이다. 이를 완화하지 않으면, 한국 정치는 국민통합을 이룰 수 없다. 우리는 초고령화 사회로 가고 있고, 출산율은 매우 낮다. 경제의 역동성이 거의 없어지고 있다. 정치인이 말로만 소통·통합을 외친들 아무 소용이 없다. -추석 연휴를 앞둔 <일요시사> 독자에게 남길 덕담 한마디가 있다면? ▲대통령을 선출하는 기준이 여론조사에 휩쓸리는 식으로 정해지면, 문제가 복잡해진다. 윤 전 대통령도 그렇게 대통령에 당선됐다. 오랫동안 검사였던 사람이 지도자가 된 사례가 세계적으로 별로 없다. 이들은 남의 부정적인 측면만 따지는 사람들이다. 그래서 창의적·긍정적 역할을 하기 힘든 사람들이다. 제가 그를 호의적으로 봤던 것도 큰 잘못이었다. 당시 국민의힘엔 대통령감이 없었다. 그래서 저는 윤 전 대통령의 여론조사 지지율이 높은 것을 일컬어 “별의 순간을 잡았다”고 말했다. 결국 윤 전 대통령은 제가 우려했던 행동을 했다. 저는 이승만 전 대통령 외엔 모든 대통령을 만나봤다. 직접 자문도 했고, 대통령 선거에 참여한 적도 있다. 이 경험을 토대로 <왜 대통령은 실패하는가>라는 책도 출간했다. 이들이 실패한 원인은 초심을 관철하지 못했단 것이었다. 박근혜·윤석열 전 대통령이 파면된 이유를 생각해야 한다. 이미 우리나라에선 오래전에 보수·진보가 사라졌다. 지난 1997년 김대중 전 대통령이 당선됐던 제15대 대선도 보수·진보의 싸움이 아니었다. 모두 보수였다. 1980년대 운동권 출신들은 정치권에 진출한 후 스스로 대단한 진보를 자처했다. 그런데 이들은 진보의 뜻도 모른다. 이들은 정권을 네 번 잡을 동안 양극화 하나도 해결하지 못하고 있다. 이들이 무슨 진보 정권인가? 국민이 정치 상황을 냉철하게 관찰하시고 올바른 선택을 하는 자세를 갖추셔야 한다. 대통령·국회의원도 결국 국민이 선출한다는 사실을 잊지 마시길 바란다. <ctzxp@ilyosisa.co.kr> <hypak28@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