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질기고 질긴’ 택배 파업의 이면

  • 김민주 기자 alswn@ilyosisa.co.kr
  • 등록 2022.02.28 16:39:08
  • 호수 1364호
  • 댓글 0개

8%에 발목 잡힌 92% 어쩌나

[일요시사 취재1팀] 김민주 기자 = 택배 파업이 벌써 두 달째다. 이를 바라보고 있는 비노조 택배 노동자와 시민들은 염증을 느낀 지 오래다. 비단 택배 파업으로 생긴 불편함 때문만이 아니다. 파업 현장은 불법과 폭력이 난무하고 있고, 이런 이유로 이들은 ‘택배 파업 쟁점이 무엇이든 간에’ 속히 해결되길 원한다. 

지난해 6월22일 택배산업 이해관계집단과 시민사회단체 지도자, 그리고 정당 관계자 등이 참여한 가운데 ‘2차 택배기사 과로사 대책을 위한 사회적 합의기구 합의문’이 발표됐다.  이 합의문에는 택배기사들의 ▲분류 작업 배제 약속 ▲고용보험 및 산재보험 가입 활성화 ▲주당 60시간 근무 초과 금지 등 장시간 노동 완화 방안 ▲운송 위탁계약 체결 ▲택배 적정 요금 등이 들어있었다.

날아간
합의문

당시 합의안을 ‘택배 기사 사회적 합의 이정표’라고 칭했다. 그러나 이 합의문이 발표된 지 6개월이 지난 뒤 택배노조의 장기간 파업이 시작된다. 

합의문은 제대로 이행되지 않았다. 특히 합의문에는 “정부는 사회적 합의사항의 원활한 이행을 위해 이를 지속적 점검, 관리 및 지원한다”고 명시돼 있지만, 택배기사의 과로사는 계속됐다. 유성욱 전국택배노동조합(이하 택배노조) CJ대한통운 본부장은 지난해 12월24일 물류 전문 매체에서 택배 파업의 이유를 설명했다.

지난해 4월 CJ대한통운은 택배 노동자 처우개선을 위해 판가 인상을 단행했다. 그중 51원만 분류작업과 사회보험 지원에 사용하고 나머지는 회사 이익으로 사용한 것이다.

또한 국토부가 지난해 12월2일에 발표한 ‘생활물류법에서 정한 표준계약서’의 부속합의서에는 택배기사들의 과로사 원인으로 지목된 ▲당일 배송 ▲주 6일제 근무 ▲터미널 도착 상품 전부 배송 등의 내용이 여전히 들어 있었기 때문이다.

CJ대한통운과 정부가 택배 노동자의 과로사를 방관하고 있다는 것이다.

택배노조 파업은 지난해 12월23일 민주노총에서 총파업 찬반투표 결과 93.6%로 찬성이 가결되면서 결정돼 28일에 시작됐다.

이들은 택배 파업을 통해 다섯 가지의 요구사항을 전했다.

이는 ▲표준계약서의 부속합의서 폐지 ▲택배 판가 인상을 택배기사에게 사용할 것 ▲택배기사들이 허리 부상을 당하기 쉬운 저상 탑차에 대한 대책 ▲별도 운임과 수수료 폐지 ▲CJ대한통운의 택배노조 인정이다. 이 파업은 무기한 파업으로 ‘최소 한 달 이상 두 달까지 지속한다는 각오’로 시작됐다.

불법이 난무하는 파업 현장
다수 반대편 목소리 들어보니…

택배노조 집계에 따르면 2020년부터 지난해까지 22명의 택배 노동자가 과로사했다. 파업이 진행되는 과정에는 지난해 12월에 뇌출혈로 쓰러졌던 쿠팡 물류센터 노동자가 사망하는 일도 있었다.

택배노조는 1인 시위, 기자회견, 결의대회와 함께 물과 소금을 먹지 않는 아사 단식, CJ대한통운 본사 무단 점거 농성, 곤지암 허브 점거, 상경 투쟁, 선거법 위반까지 행사하는 실정이다. 

택배노조의 불법 무단 점거는 계속되고 있다. 우선, CJ대한통운 본사 무단 점거는 50일째 이어갔다. 처음에는 1층과 3층을 동시에 점거했으나 진입 11일 만에 3층 점거는 해제하고 1층만 점거했다.

건물에는 현수막을 여러 개 걸었다. 지난 22일 오전 10시쯤에는 경기 광주시 CJ대한통운 곤지암허브터미널에서 전국택배노동조합 조합원 100여명이 간선 차량의 출차를 막고 터미널 내부로 진입하기도 했다.

이 과정에서 간선 차량 출차 시간이 평소에 비해 4시간 가까이 지연됐고, 각 지역 터미널로의 배송에 차질이 빚어졌다. 

CJ대한통운·CJ프레시웨이는 택배노조를 상대로 ‘택배기사 노동조합이 본사를 점거하는 행위를 못하게 해달라’고 가처분을 신청한 상황이다.

끝나길 
기다리다

사측 대리인은 ▲노조의 본사 건물 점유 해제 ▲1층 계단 앞 천막 등을 철거 명령 ▲노조 측 이행 강제를 위한 간접강제금 부과를 요청했다고 설명했다.

이어 적법한 쟁의로 이뤄진 점거가 아니기 때문에 건물 점거 자체를 정당화할 근거가 없다고 덧붙였다. 서울중앙지법 민사합의51부(부장판사 진보성)는 이달 말이나 다음 달 초에 결론을 내리겠다고 밝혔다.

선거법 위반 사례도 계속되고 있다. 일반 집회는 방역지침에 따라 인원이 299명으로 제한된 데 비해 선거운동은 선거법에 따라 참여 인원에 제한을 두지 않는다. 방역수칙과 집합금지 규정도 적용받지 않는다.

택배노조는 지난 16일 오후 CJ대한통운 본사 앞에서 사회적 합의 이행과 파업사태 해결을 촉구하는 ‘촛불 문화제’를 열었다. 

주최 측 추산 800여명의 인원이 집결했지만, 경찰과의 마찰은 없었다. 경찰은 ‘촛불 문화제’가 일반 집회가 아닌 선거운동으로 신고됐다고 밝혔다.

300명이 넘는 택배노조의 농성은 많이 벌어졌다. 이는 방역지침에 따라 불법 집회가 되지만, 근처에 있던 진보당 김재연 대선후보가 출정 연설을 해 선거 유세 형식으로 전환되면서 진행이 가능했다.

김 후보의 선거 유세차량을 옆에 대규모 집회를 연 적도 있다. 2000여명이 넘는 인원이 집회에 참여한 적도 있다.

쌓여가는 불법 행위에 비노조 택배 노동자들은 피로감을 호소하고 있다. 현재 이들은 뜻하지 않는 손실을 감수할 수밖에 없는 상황으로, 속히 택배노조의 파업이 끝나길 기다리고 있다. 택배노조의 파업 이후 가장 큰 피해는 업무량이 감소한 것이다.

매출 30% 이상 줄어들어
소상공인 피해도 심각해

통상적으로 매년 11월부터 1월은 10~15% 택배 물량이 늘어나면서 수입도 증가한다. 하지만 파업이 시작된 이후 전년 대비 매출이 30% 이상 줄었다.

이 문제에 대해 김슬기 비노조택배연합 대표는 거래처들이 이탈했기 때문에 적게 잡아도 30% 이상 빠졌다고 설명했다.

택배노조에 대한 비판도 있었다.

김 대표는 “CJ대한통운은 법률이 허락하는 한 서비스 개선을 위한 노력을 하겠다고 밝혔고, 택배노조는 대화하자고 한다 ”며  “ 이 와중에 택배노조는 대리점주에게 연차를 주거나 1일 연차수당 20만원, 택배노조만을 위한 사무실과 회의실 만들기 등의 불가능한 요구를 하고 있다 ”고 주장했다.

이어 “택배노조는 CJ대한통운에 고소·고발을 취하하라고 했다. 자신들의 죄를 면책받고 책임지지 않으려는 모습”이라며 “택배노조는 경비원을 밀어내고 문을 깨고 들어가 CJ대한통운 본사를 불법으로 점거했다. 이런 상황에서 경찰은 뭘 하고 있는 건지”라고 답답한 심정을 토로했다.

피해 복구는
비노조의 몫

이밖에도 김 대표는 SNS에 노조 조끼를 입은 사람이 택배를 위아래로 내려치는 영상을 올리기도 했다. 댓글에는 김 대표를 응원하는 글이 줄을 이었다. 

국민청원에도 택배노조를 반대하는 글이 있다. 자신을 택배 노동자라고 설명한 A씨는 택배노조와 개인사업자 파업쟁의권들을 강력하게 처벌해달라고 요청하고 있다.

A씨는 우선 택배노조가 주장하는 과로사 문제를 반대했다. 코로나19 이후 택배 물량이 증가하면서 육체적 업무 강도가 늘어난 것은 맞지만, 이미 분류작업은 택배 노동자가 하지 않도록 분류 도우미를 배치했다는 것이다. 

A씨는 오전에 분류작업을 마치고 배송을 시작한다고 설명하며, 구역의 규모와 업무수행 능력에 따라 개인의 업무량이 결정된다고 전했다.

가장 중요한 점은 그 누구도 택배 노동자에게 업무를 강요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택배 노동자는 개입사업자인 특수고용형태 종사자다.

그 때문에 배달과 집화 수량에 따라 자신이 일한 만큼 돈을 받는 것이지, 누군가의 지시를 통해 일하는 형태가 아니다. 

A씨는 택배노조의 업무 행태도 지적했다. A씨의 설명에 따르면 택배 노동자는 보통 아침 9시에서 10시 사이에 터미널에 도착하고 오전 11시 전에 배송을 시작한다.

이후에도 평균 1시간에서 2시간 정도 추가적으로 택배 하차가 진행되지만, 택배노조는 파업쟁의권이 있어서 자신들이 배송을 원할 때만 배송을 한다는 것이다. 

2년 동안 과로사 22명
업무량은 개인이 선택

이런 상황에서도 파업으로 생긴 피해 때문에 회사는 택배노조에게 아무런 말을 할 수 없다. 결국 택배노조에 속한 택배 노동자에게 택배가 배정됐다는 이유 하나만으로, 소비자는 늦어지는 택배를 기다릴 수 밖에 없다.

A씨는 이런 상황에 택배노조가 원하는 ‘당일배송 금지’와 ‘토요일 휴무’가 보장되면 소비자들의 피해가 커질 것을 염려했다.

또 한국의 택배회사는 4곳이고 가격과 서비스가 달라서, 소상공인들이 택배회사를 선택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택배노조 파업 중단 및 처벌을 촉구하는 이도 있었다. B씨는 CJ대한통운 택배 노동자는 2만여명인데, 파업에 참여한 노동자는 1650여명인 8%라고 지적했다.

즉, 소수의 움직임에 국민들의 권리와 재산이 훼손된다는 것이다. 이어 CJ대한통운과 계약한 판매업체 피해에 대해서도 밝혔다.

택배 파업이 시작된 후, 다수의 판매업체는 다른 택배사로 대체해 물건을 발송하고 있다. 그러나 해당 지역이 CJ대한통운만 들어오면 계약을 파기할 수도 없어서 소비자에게 일일이 주문 취소 안내를 해야 하는 실정이다. 

B씨는 “‘전국 규모 장기 파업’ ‘대체 인력을 통한 반송 및 운송 업무 방해’ ‘밤낮없는 택배 지키기’ 등의 행위가 누구를 위한 행위인지 모르겠다”며 “택배 노동자 8%가 택배노조의 권리를 찾기 위해 타인의 권리를 침해하고 훼손하는 행위는 정당하지 않고 인정할 수 없다. 이른 시일 내 파업을 중단하지 않을 경우 택배노조 탄압이 정당하다고 본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시민들 역시 불편함을 토로하고 있다. 인터넷에 ‘택배 파업 지역’을 검색하면 매일 추가되는 파업 지역과 ‘파업 철회 지지한다’는 글을 쉽게 볼 수 있고 택배 파업으로 인한 피해 사례도 속속들이 올라오고 있다.

해결책이 보이지 않는 상황에서 정부가 손 놓고 있는 것 아니냐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정부가
해결해야

시민 C씨는 “새벽 배송, 총알 배송 같은 것이 최근에 많이 생겼다. 나도 일을 하고 있으니 택배 노동자들이 힘들다는 것을 안다. 그래서 처음에는 택배노조의 파업을 이해했다”면서도 “그런데 알아보니 택배 노동자들이 권리를 받지 않는 것도 아니었고 월급도 굉장히 많았다. 택배노조 파업 때문에 피해가 막심하다. 정부는 왜 노조의 파업에 관대한 것인지 이해할 수 없다”고 말했다.
 

<alswn@ilyosisa.co.kr>

 



배너

관련기사

29건의 관련기사 더보기






설문조사

진행중인 설문 항목이 없습니다.



‘입맛대로’ 양당의 선동 역사학

‘입맛대로’ 양당의 선동 역사학

[일요시사 정치팀] 박형준 기자 = 정치가 역사·문화를 소비하는 방식은 진영마다 다르다. 하지만 결론을 먼저 정해놓고 사실과 검증을 뒤따르게 만든다는 공통점은 있다. 더불어민주당 일각은 정치적으로 친화적인 영화에 역사적 의미와 권위를 부여하고, 국민의힘 일각은 이미 확립된 역사적 판단을 다시 논쟁의 영역으로 끌어낸다. 서로 다른 길을 걷지만 종착지는 같다. 양당의 ‘선동 역사학’은 결국 반지성주의를 마주보게 한다. 영화사에 걸작으로 남은 선전·선동 영화로 구소련의 1925년 작 <전함 포템킨>과 나치 독일의 1935년 작 <의지의 승리>를 거론할 수 있다. 이 영화들은 관의 전폭적인 제작 지원을 받은 관제 영화였지만, 당시로서는 참신하고도 획기적인 촬영 기법을 통해 극한의 선전·선동을 수행하면서 역사에 남았다. 말보다 강한 장면 <전함 포템킨>은 각각의 쇼트를 연결하면 제3의 감정·개념이 발생한다는 판단 아래 몽타주 기법을 선보였다. 포템킨 전함의 수병이 먹을 고기에 구더기가 득실거리면, 구 러시아 제국의 체제가 부패했다는 감각이 만들어진다. 오데사 계단에서 벌어지는 학살극은 군인들의 군화와 겁에 질린 사람들의 얼굴 등을 빠르게 교차하며 묘사한다. 이어 어머니가 쓰러지고 아기를 태운 유모차 한 대가 계단을 내려간다. 실제 화면에 등장하는 폭력의 양보다 관객이 체험하는 학살의 규모가 훨씬 크게 느껴지는 것이다. <의지의 승리>는 아돌프 히틀러의 초월적 지도자상을 시종일관 강조한다. 하지만 직접 강조하지는 않는다. 히틀러가 탄 비행기가 구름 위를 날아오고, 그 아래로는 독일의 도시가 펼쳐져 있다. 비행기가 착륙한 후에는 히틀러가 등장한다. 그야말로 웅장한 신의 강림이다. 이어 펼쳐지는 것은 ‘하나의 지도자’와 질서정연한 수십만의 군중이다. 이 구도에 개인은 없다. 지도자와 군중은 하나의 유기체처럼 움직이는 민족 공동체인 것이다. “전체주의가 옳다”는 말 대신 ‘하나의 지도자’와 수많은 사람이 완벽하게 하나가 되는 장면을 보여준다. 이렇듯 권위주의 체제에서는 국가가 문화 생산·배급에 직접 개입해 선전·선동을 수행할 수 있었다. 나치 독일도 영화산업을 강하게 통제·지원하면서 영화를 이데올로기 전달 수단으로 적극 이용했다. 하지만 자유민주주의 국가에서는 정부·정당이 특정 영화를 직접 주문 제작해 자신의 역사관을 주입하는 방식은 일반적이지 않다. 정치와 문화는 보다 간접적으로 만난다. 대표적인 방법은 정치인이 특정 영화를 관람한 후 의미를 부여하거나 공개적으로 추천·평가하는 것이다. 반대로 자신이 두둔하는 영화가 비판을 받으면 “표현의 자유를 침해한다”고 규정하면서 방어하기도 한다. 자신의 세계관과 친화적인 작품에 정치적 의미를 부여하면서 공개적으로 찬양·추천·옹호하고, 작품이 가진 정치적 메시지의 확산을 돕는 것이다. 정치적 지위와 진영의 상징 자본을 이용해 특정 작품에 역사적·도덕적 권위를 부여하는 방향이라고 볼 수 있다. 영화 <암살자(들)> 개봉 이후 많은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 정치인이 영화를 두둔하면서 표현의 자유를 언급했다. 하지만 작품의 역사적 암시를 둘러싼 반발도 거세다. <암살자(들)>은 육영수 여사를 암살한 범인 문태광(박정민 분)을 움직였을 수도 있는 배후로 ‘중정 윗선’을 거론한다. ‘중정 윗선’은 중의적인 의미를 가진 말이다. ‘중앙정보부 내 윗선’으로 해석하면 신직수 당시 중앙정보부장 등 간부들로 해석할 수 있다. 반대로 ‘중앙정보부를 움직이는 더 높은 권력’으로 해석하면 박정희 당시 대통령까지 연상할 수 있다. 영화는 영화라더니 픽션에 역사 입히는 정치 예술의 진영 가치화…국힘에 대가·책임·처벌? 연출자 허진호 감독은 지난 2일 JTBC <뉴스룸>에 출연해 “이 영화가 박정희 대통령이 암살을 지시한 영화라는 어떤 재단을 해놓고 보신다면 그렇게 보일 수도 있겠지만, 저는 애초부터 분리해서 생각했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영화에서는 “권력을 지키는 게 아내의 목숨보다 중요하다면?”이라는 대사가 나온다. 이 때문에 허 감독의 해명에도 불구하고 논란은 가라앉지 않고 있다. 아울러 당시 사건과 직접적인 인과관계가 없는 <동아일보> 자유언론실천선언을 사건과 하나의 서사로 연결해 의문을 제기하는 주인공들에게 정당성을 부여한다. 그런데 유신 정권의 언론탄압은 이전부터 존재했고 자유언론운동도 이미 진행되고 있었다. 오히려 긴급조치는 육 여사 사망 이후 일부 해제됐고, 유신 비판 운동은 이후 더욱 확산됐다. 이 같은 ‘시간차 눈속임’ 때문에 허 감독의 해명에도 불구하고 논란이 이어지는 측면이 있다. 또 제작사 하이브미디어코프가 <야당> <남산의 부장들> <메이드 인 코리아> <서울의 봄> 등 군사 정권·정보기관·권위주의 시대의 권력을 비판적으로 다룬 영화·드라마를 반복적으로 제작해온 점도 논란을 증폭시키는 배경으로 자리 잡는다. 이 때문에 보수 진영에서는 작품 자체를 넘어 제작사의 역사관을 의심하는 반응까지 나오고 있다. 민주당 정치인의 <암살자(들)> 두둔도 영화에 대한 비판과 함께 강해지고 있다. 민주당 박지원 의원은 지난 5일 자신의 페이스북을 통해 “<암살자(들)> 극우 정치권 홍보가 아니라 작품성으로 매일 매진 매진!”이라며 “대박 납니다. 신납니다”라고 썼다. 이어 “극우들이 바라는 대로 육영수 여사도 제작하고 박정희 대통령의 편력도 만들면 히트? 육 여사님은 우아하시겠지만, 박정희의 편력은?”이라며 “영화는 영화입니다”라고 덧붙였다. 같은 당 서영교 의원도 같은 날 자신의 페이스북에 주연 배우 유해진씨가 자택 앞 시위에 대해 강경 대응하기로 결정했다는 언론 보도를 공유하면서 “극우와 국힘(국민의힘)에 그 대가를! 책임을! 처벌을!”이라고 적었다. 그러면서 “극우 그리고 국힘, 그 영화 보기는 했나? 보면 감동할 걸? 영화 진짜 잘 만들었어. 작품성 최고!”라고 강조했다. 나치 독일의 문화·예술관은 정치적 세계관을 최상위 가치에 둔 후 그 세계관에 얼마나 기여하는지에 따라 문화·예술의 가치를 평가했다. 우호적인 문화에는 권위를 부여했고 적대적인 문화에는 ‘퇴폐적’이라는 낙인을 찍고 배제했다. 물론 민주주의 국가 정치인의 영화 추천과 국가 권력으로 문화 생산 자체를 통제했던 나치의 문화 정책은 그 성격과 강도가 전혀 다르다. 비교할 수 있는 것은 정치적 세계관이 예술의 가치 판단에 개입하는 방식이다. 예술의 진영화 박 의원은 먼저 “영화는 영화”라고 전제하면서도 “양식 있는 국민 모두가 관람하는 게 영화를 살리고 유해진을 돕는 길”이라면서 <암살자(들)> 재관람 캠페인까지 제안했다. <암살자(들)>의 흥행 추이도 정치적 공방의 일부로 해석했다. 박 의원은 <암살자(들)>을 정치적 연대 행위의 매개물로 만들었다. 예술작품을 진영 연대의 상징으로 소비한다는 측면에서 나치 문화 정치와 추상적인 공통점이 있다는 비판을 받을 소지가 있다. 작품의 미학적·역사적 타당성을 독립적으로 평가하는 게 아니라 ‘누가 공격하고, 우리 진영이 방어해야 할 작품인지’라는 정치적 좌표가 작품의 가치 판단에 개입하기 때문이다. 일종의 ‘예술의 진영적 가치화’라고 할 수 있다. 서 의원의 발언은 “국민의힘과 극우는 책임·처벌의 대상이고, 그들이 공격하는 문화상품은 감동적이고 작품성이 뛰어난 작품”이라는 문장으로 독해될 수 있다. 겉으로는 유씨의 자택 앞 시위에 대한 책임·처벌을 주장한 것으로 볼 수도 있다. 다만 문법적으로는 ‘극우’뿐 아니라 국민의힘까지 책임과 처벌의 대상으로 병렬해 놓은 것으로도 읽힌다. 서 의원은 긍정적 문화와 부정적 정치집단을 한 문맥 안에 동시에 설정했는데 의미심장한 대목이다. 나치는 자신의 세계관에 맞는 작품에 ‘건강한 독일 예술’이라는 권위를 부여하면서 반대편에는 ‘퇴폐적’ ‘볼셰비키적’ ‘유대적’이라는 정치적·도덕적 낙인을 찍었다. 박 의원은 개인적 영화 감상을 진영적 집단행동으로 전환했다. 서 의원은 정치적 가치 판단과 미학적 가치 판단을 결합했다. 예술을 정치·진영의 영역으로 확장해 그 작품을 공격하는 반대 세력과의 전투를 동시에 이야기한 것이다. 이들의 미학적 평가는 정치적 소속감과 분리돼 제시되지 않았다. 이들 외에도 민주당에서는 최민희·김영배·노종면·박성준·전용기·강득구 의원 등이 영화 <암살자(들)>을 두둔했다. 이들의 논리는 대체로 묘한 긴장 관계를 형성한다. 겉으로는 “영영봐(영화는 영화로 봐)”를 거론하고 ‘표현의 자유’를 명분으로 내세우면서, 일부는 “역사를 되돌아보는 뜻깊은 시간”이라며 작품에 실제 역사적 의미까지 부여하기 때문이다. 역사적 정확성에 대한 책임은 ‘픽션’이라는 말로 낮추면서 작품의 정치적·도덕적 권위는 ‘역사적 성찰’이라는 말로 높이는 셈이다. 아리스토텔레스는 <시학> 9장에서 시인의 일은 실제로 일어난 일을 단순 기록하는 것이 아니라 개연성 또는 필연성에 따라 일어날 수 있는 일을 구성하는 것이라고 봤다. 허구의 힘은 사실을 마음대로 바꾸는 데 있는 게 아니라 개연성을 통해 인간과 세계에 대한 보편적인 인식을 만들어내는 데 있다. 그래서 문학에서는 핍진성이 중요하다. 허 감독은 분명히 ‘박 전 대통령 사주설을 암시한다’는 해석을 부인했지만 사주설을 암시하는 독해는 반복적으로 발생하고 있다. 그렇다면 감독의 의도만으로 작품이 실제 만들어낸 독해를 봉합하기는 어려워진다. 책임은 빼고 권위 높이고 영화가 어떤 추론을 만들어냈느냐는 문제에 더 강한 의미가 붙었고, 그 의미를 정치인들이 다시 증폭시키고 있다. 예술의 자율성보다 사상적·사회적 기능을 우선했던 일제강점기 카프의 목적문학론도 일부 연상되는 대목이다. <암살자(들)>을 연일 비판하는 국민의힘도 여기서 자유롭지는 못하다. 국민의힘에서는 전신 자유한국당 시절부터 5·18 광주민주화운동을 비하·왜곡하는 발언들을 반복해 왔기 때문이다. 지난 2019년 열린 공청회에서 자유한국당 이종명 전 의원은 “5·18은 폭동이었다가 정치 세력 때문에 민주화운동이 됐다”고 주장했다. 자유한국당 김순례 전 의원도 “5·18 유공자는 괴물 집단”이라고 주장했다. 국민의힘 이진숙 의원은 최근 5·18을 성역화했다고 주장하는 인사들이 참여한 토론회를 개최해 논란을 불렀다. 국민의힘 김태규 의원은 지난달 30일 JTBC 유튜브 채널 ‘장르만 여의도’에 출연해 “윤석열은 내란이냐, 아니냐?”라는 질문에 “아니”라고 답변했다. 이어 “전두환은 내란이냐”라는 질문에도 “내란 아니다. 저는 아니라고 생각한다”고 답변했다. 김 의원은 판사 출신이다. 대법원 전원합의체는 1997년 전두환·노태우씨에 대해 12·12 군사 반란과 5·18 과정의 내란죄를 확정했다. 당시 대법원은 신군부가 군 지휘권과 정보기관을 장악하고 비상계엄 전국 확대·국보위 설치 등을 통해 헌법기관의 권능을 강압적으로 무력화했다고 판단했다. 논란이 되자 김 의원은 지난 2일 입장문을 통해 “제 발언은 비록 진의는 그렇지 않더라도 오해를 초래할 빌미를 제공한 부분에 대해 유감으로 생각하고 있다”며 “앞으로 표현에 더욱 신중을 기하겠다”고 밝혔다. 김 의원이 “윤석열·전두환은 내란이 아니”라고 주장한 계기는 영화 <암살자(들)> 비판 과정에서 비롯됐다. 김 의원 스스로도 “발언을 한 현장은 영화 <암살자(들)>이 객관적으로 입증된 사실을 문제 삼아 패륜적이고 반인륜적인 영화를 창작이라는 허울 속에서 만든 것을 문제 삼는 자리였다”고 밝혔다. 이어 “6·25나 육영수 여사 저격 사건과 같은 사안에 대해서는 창작의 자유라는 핑계 뒤에 숨어서 무자비한 난도질을 하고, 5·18에 대해서는 형사 처벌이 가능한 입법을 만들어 성역화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는 취지였다”고 덧붙였다. 다시 흔드는 5·18…판결보다 정치적 확신 금기 파괴의 정치학…확신이 검증 이긴다? 유감을 표하면서도 김 의원은 ‘5·18 성역화’라는 문제의식은 유지했다. 영화라는 장르 예술의 틀을 빌려 역사적 의미를 확장하는 민주당 일부의 방식과 달리, 국민의힘 일부에서는 확립된 역사적 판단 자체를 다시 논쟁의 영역으로 돌리려는 특징이 나타난다. 이 같은 ‘금기 파괴의 정치’는 나치 돌격대가 보여준 행동주의적 정치 문법의 일부를 연상시킨다. 물론 오늘날 정치인의 발언과 준군사 조직이 행사했던 물리적 폭력을 동일시할 수는 없다. 비교 가능한 것은 복잡한 현실을 적과 아군으로 단순화하고 논증·절차보다 진영의 확신과 행동성을 앞세우는 태도다. 국민의힘 일각에서 제기하는 ‘5·18 성역화’ 프레임 역시 역사적 사실의 재검증과 별개로 “남들이 말하지 못하는 것을 내가 말한다”는 금기 파괴 자체에 정치적 가치를 부여할 수 있다. “우리의 정치적 적이 독점한 역사이므로 다시 깨뜨려야 한다”는 식으로 접근한다면, 무엇을 새로 밝혀냈느냐보다 금기에 도전했다는 행동성 자체가 중요해진다. 양당이 역사·문화를 정치적으로 소비하는 방식은 서로 다르지만 반지성주의로 수렴한다는 공통점이 있다. 이미 필요한 정치적·도덕적 결론을 정한 후 지식을 그 목적에 종속시키는 것이다. 이 회로는 진영적 욕망 → 동기화된 추론 → 반증 저항 → 독립적인 검증 절차의 가치 하락 → 반지성주의 순서로 움직인다. 정치학·정치심리학 연구에서 반지성주의는 대체로 전문가·지식인·전문적 지식에 대한 일반화된 불신 또는 가치 절하를 뜻한다. 동기화된 추론 자체가 곧 반지성주의인 것은 아니다. 그러나 자신에게 불리한 전문가 판단과 판결, 검증 절차의 권위를 지속적으로 낮추는 방향으로 이어지면 반지성주의와 만날 수 있다. 한쪽은 진영에 친화적인 역사 서사를 접하면서 사실성과 허구의 경계를 느슨하게 허용하고, 작품의 역사적 효용을 적극적으로 소비하거나 권장한다. 다른 한쪽은 대법원 확정 판결과 축적된 역사 연구보다 정치적 확신을 우선시해 기존 판단 자체를 다시 의견의 영역으로 되돌리려고 한다. 양당 일부 정치인의 역사 소비가 ‘선동 역사학’이라 부를 만한 정치 문법으로 기울고 있는 셈이다. 진실 판정을 내 손 안에? 정치가 진실을 판정할 권리를 자신에게 가져오려고 하는 순간 좌우를 막론하고 반지성주의가 시작된다. 원하는 정치적 결론 때문에 증거의 자격 자체를 선택적으로 인정하거나 거부한다면, 이 역시 반지성주의다. 반지성주의는 나치 정치 문화의 핵심 태도 중 하나였다. 무엇이 진실인지 독립적으로 탐구하도록 두지 않고 어떤 역사와 예술에 권위를 부여할지를 정치적 세계관이 결정했다. 양당은 그렇게 서로 반지성주의와 선동 역사학으로 마주 보고 서 있다. <ctzxp@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