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유통업계가 쿠팡의 새벽 배송을 사실상 금지해야 한다는 일부 노동단체의 주장으로 들끓고 있다.
관련 업계에 따르면 전국민주노동조합총연맹(민주노총) 산하 전국택배노동조합(택배노조) 등은 지난달 22일, 더불어민주당이 주도하는 택배 사회적 대화기구에서 초심야시간 배송 제한 방안을 제시했다. 이들은 “새벽 배송이 전면 금지는 아니”라면서도 “건강권을 고려해 조기 출근조와 오후 출근조로 나눠 주간으로 배송하자는 제안”이라고 설명했다.
이를 두고 일부 노조에서 ‘건강권’을 이유로 민간 기업의 택배 시스템에 ‘배 내놔라 감 내놔라’하는 것은 온당치 않다는 비판 목소리도 나온다. 양대 노총인 한국노총도 부정적인 입장이다. 김동명 한국노총 위원장은 “새벽 배송 전면 금지안에 동의하지 않는다”며 “단계적으로 개선해야 할 문제”라고 지적했다.
‘택배기사들의 건강권 확보’라는 새벽 배송 금지 취지는 다소 그럴듯해 보인다. 노동자의 휴식권을 보장하고, 심야 물류로 인한 사회적 비용을 줄이겠다는 것으로 해석된다.
하지만 정책은 명분만으로 유지되지 않는다. 현실을 무시한 채 이뤄지는 행정은 결국 소비자 불편, 일자리 감소, 산업 경쟁력 약화라는 역효과를 낳기 마련이다. 이번 금지 조치야말로 그 대표적 사례가 될 수도 있다.
쿠팡의 새벽 배송은 단순한 ‘편의 서비스’가 아니다. 이미 수백만명의 소비자들의 생활 패턴 속에 깊이 자리 잡은 일상이다. 맞벌이 부부, 육아 가정, 심야 근무자들은 ‘밤에 주문하면 아침에 도착하는’ 이 시스템에 의존해오고 있다. 신선식품을 포함한 생활 필수품을 정시 출근 전 받아볼 수 있다는 매력은 사회 전체의 효율을 한층 끌어올렸다.
이 같은 생활 혁신은 민간의 경쟁을 통해 자생적으로 발전한 결과다. 이를 노동 단체가 나서서 막겠다는 것은 소비자 선택권의 침해이자 시장 역행적 조치가 아닐 수 없다. 이들이 내세우고 있는 논리는 ‘심야 노동의 위험성’이다.
물론 새벽 배송 노동자들의 근로 환경이 열악한 부분은 분명 존재한다. 그러나 이를 개선하는 방법은 ‘금지’가 아니라 ‘보호’여야 한다. 근로시간 제한, 안전장비 의무화, 휴식시간 보장 등 제도적 장치를 통해 노동권을 지키는 것이다. 서비스 자체를 없애는 것은 가장 손쉬운 방식이지만, 그만큼 가장 무책임한 방식이기도 하다.
더 큰 문제는 형평성이다. ‘새벽 배송’을 이유로 쿠팡 같은 민간 기업만 규제하는 동안, 우정사업본부나 일부 대형 유통업체는 여전히 야간 물류를 수행한다. 새벽 시간대에 움직이는 택배 트럭, 편의점 물류, 온라인 마켓 배송망은 모두 같은 원리로 운영된다.
특정 기업을 표적 삼은 듯한 규제는 공정 경쟁의 원칙에도 어긋난다. 기술과 물류 효율을 무기로 성장해온 한국 이커머스 산업에 대한 ‘규제의 역풍’은 곧 투자 위축과 고용 감소로 이어질 수 있다.
현실적으로도 새벽 배송 중단은 수많은 근로자의 일자리를 위협한다. 쿠팡의 물류센터와 배송망에는 직·간접적으로 수만명이 종사하고 있다. 이들 중 상당수는 새벽 시간대 근무를 자발적으로 선택한 사람들이다. 낮에는 다른 일을 하거나 가사·육아를 병행하기 위해 밤에 일하는 이들도 적지 않다.
‘근로자의 건강권’을 이유로 이들의 경제적 선택권마저 박탈한다면, 그것이 과연 진정한 보호인지 묻지 않을 수 없다.
게다가 쿠팡의 새벽 배송은 단순한 배송 편의 이상의 산업적 의미를 지닌다. 실시간 재고 관리, AI 기반 수요 예측, 자동화 물류 시스템 등 첨단기술이 결합된 고효율 물류 모델로, 해외에서도 벤치마킹할 만큼 높은 평가를 받는다.
새벽 배송을 막는 것이 기술 혁신의 실험장을 폐쇄하는 것과 별반 다르지 않은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세계가 24시간 움직이는 디지털 경제 시대로 나아가는 마당에, ‘밤에는 일하지 말라’는 구시대적 규제는 글로벌 경쟁력에 찬물을 끼얹는 일이다.
정부도 이들의 주장을 방관해서는 곤란하다.
앞서 지난 4일, 김영훈 고용노농부 장관은 일부 노동계의 ‘새벽 택배 배송 금지’ 요구에 대해 “사회적 대화를 통해 합리적 방안을 모색해야 한다”며 원론적인 입장을 내는 데 그쳤다. 김 장관은 지난달 30일, 국회 기후노동위원회 국정감사에선 “이미 필수 생활 서비스로 자리 잡았고 산업 파급력도 크다”면서도 “신중히 검토해야 한다”고 애매모호한 말을 남겼다.
정부의 역할은 혁신의 속도를 늦추는 것이 아닌, 그 과정에서 발생하는 부작용을 최소화하는 것이다. 새벽 배송이 문제라면 무조건 금지가 아니라 개선이 해법이다. 물류 노동자의 휴게 공간을 확충하고, 안전 기준을 강화하며, 심야 운전자의 교통 안전을 제도적으로 보완하면 된다.
그렇게 해야 소비자의 편익도 지키면서 노동자의 권익도 보호할 수 있다.
‘밤에는 일하지 말라’는 규제는 결국 ‘낮에도 경쟁하지 말라’는 신호로 받아들여질 수도 있다. 혁신을 막는 사회는 성장의 동력을 잃기 마련이다. 소비자가 원하는 서비스가 있다면, 그 시장을 성숙하게 관리하고 공정하게 발전시키는 것이 정부의 책무요 역할이다.
지금 필요한 것은 규제가 아닌 균형 잡힌 시각이다. 정부나 정치권은 명분의 포장지 뒤에 숨은 불합리를 직시해야 한다. 새벽을 멈추게 하는 순간, 우리 사회의 혁신도 함께 셧다운될 수밖에 없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