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요시사 취재1팀] 서진 기자 = 전국민주노동조합총연맹이 들고 일어난 새벽 배송 ‘제한’ 논란이 눈덩이처럼 커지고 있다. 새벽 배송 시장 규모가 7년 사이 15조가량 늘어났다. 30배 불어난 몸집을 감당하기 어려운 걸까? 사안을 둘러싼 노동계는 흔들리고 있다. 지난달 28일 언론 보도가 이어지자 유통업계와 소비자 단체, 그리고 현직 택배 기사들이 반발하기 시작했다.
전국민주노동조합총연맹(이하 민주노총) 산하 택배노조가 제시한 새벽 배송 제한 대책은 지난달 22일 더불어민주당 주도로 출범한 협의체 ‘택배 사회적 대화 기구’ 회의에서 나왔다. 새벽 배송이 제한될 경우 이어질 연쇄 피해에 소비자는 좌우지간 좌불안석이다.
누구 맘대로?
‘택배 사회적 대화 기구’란 정부·여당, 노동계, 쿠팡과 컬리 등이 참여해 택배 노동자의 근무 환경 개선과 그 해법을 논의하는 협의체로 지난 9월 마련됐다. 2021년 이후 세 번째인 이번 만남의 화두는 ‘새벽 배송’이었다.
사회적 대화 기구 출범 당시 슬로건은 ‘속도보다 생명’이었다. 심야 배송을 두고 노동자 건강권과 직업 선택의 자유라는 큰 두 갈래에서 이들은 이견을 좁히지 못하고 있다.
택배노조는 주간조(오전 9시~오후 8시)와 야간조(오후 10시~오전 7시)로 배송 조를 개편해 심야 시간대(자정~오전 5시)에는 근무를 제한하고, 오전 5시 출근 및 오후 3시 출근 등 주간조를 만들자고 주장했다. 즉 오전 5시 출근 조가 긴급한 새벽 배송을 할 수 있도록 하자는 안이다.
택배노조는 지난달 30일 일각에서 제기된 ‘새벽 배송 전면 금지’ 논란에 대해 소비자가 불편할 것이라는 우려를 반박했다. 택배노조 관계자는 “새벽 배송의 위험을 제거하면서도, 국민이 가졌던 편의도 유지하자는 게 대전제”라며 ‘전면 금지’라는 잘못된 정보가 사회적 논의를 흐릿하게 만들고 있다고 밝혔다.
택배노조 설명에 따르면 현재 쿠팡 심야 배송 노동자는 하루 3차례(저녁 8시30분, 밤 12시30분, 새벽 3시30분) 캠프에 들어가 분류·배송 작업을 반복한다.
택배노조는 이 중 초심야 시간대 배송을 새벽 5시 이후로 조정해 노동자의 건강권을 보호하자는 게 이번 제안 안의 취지다. 긴급 품목 배송은 오전 5시 이후에도 유지해 소비자 불편은 최소화할 수 있다는 것이다.
택배노조는 야간 노동이 생체리듬을 파괴하고 심혈관질환 등 심각한 건강문제를 유발한다는 의학적 근거를 토대로, 심야 시간 배송 제한이 불가피하다고 주장하고 있다.
생체리듬 파괴에 제한 불가피 주장
“맞벌이 부부나 자영업자는 어쩌나”
반복적인 야간 노동이 의학적으로 위험한 것은 자명하다. 이재명정부도 출범부터 산재 사망사고를 줄이기 위한 각종 대책을 내놓으며 산재와의 전쟁을 선포한 바 있다.
그러나 “새벽 배송 말고도 새벽에 일하는 여타 직업군은 왜” “맞벌이 부부나 자영업자는 새벽 배송 사라지면 어쩌나”하는 반발도 만만치 않다.
사회적 대화가 있은 후 쿠팡파트너스연합회(이하 CPA)는 지난 3일에 공식 반대 입장을 냈다. 이들은 “택배 노동자들의 현실과 실제 상황을 외면한 채 정치적 선동에만 치중하고 있다”고 주장하며 “새벽 배송이 아니라 사회적 대화를 폐지해야 할 판”이라고 비판했다.
더불어 CPA는 긴급 실시한 설문조사를 공개했다. CPA 소속 새벽 배송 기사 2405명 중 93%가 새벽 배송 금지에 반대하며, 이 중 70%는 새벽 배송을 규제할 경우 다른 야간 일자리를 찾겠다고 답했다고 밝혔다.
쿠팡 노조 소속 새벽 배송 기사 A씨는 새벽 배송을 제한해 과로사를 막자는 안에 대해 “기사가 쉬면 누군가는 그 지역을 추가 배송해야 한다”며 민노총이 내세우는 주장이 현실적으로 실행하기에 어려운 부분이 많아 보인다고 지적했다.
이어 “새벽 배송 제한은 해외직구 플랫폼 알리와 테무에 일을 빼앗기는 것과 연관된 주장처럼 보인다”고 비판했다.
결국 당사자인 택배 기사들에게는 이번 제안이 일자리와 직결되는 문제인 만큼, 택배 산업 규모 자체가 줄어들 것이라는 걱정이 커진 것으로 해석된다.
하충효 한국노동조합총연맹(이하 한노총) 택배 산업본부 대외협력본부장은 지난 5일 <일요시사>와의 전화 통화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택배 노동자의 생계와 건강권 사이의 균형”이라고 말했다. 하 본부장은 “현장 기사들은 초심야 배송 제한에 반대하는 의견이 많지만, 야간 노동이 건강에 미치는 악영향 등이 확인되면서 주 5일 근무제 도입 등 개선책을 마련 중”이라고 설명하기도 했다.
그러나 실질적인 수입 감소 우려가 크기 때문에 ▲야간 근무시간 최대 50시간 제한 ▲특수 건강검진 의무화 ▲수당 인상 등 체계적인 건강 관리와, 건강상 이유로 야간 근무가 어려운 노동자들의 ▲주간 근무 전환 ▲상병수당 등 정부 지원 확대가 단계적으로 이뤄져야 한다고 강조했다.
논란 일자 금지 아닌 제한
택배기사 대량 해고 대책은?
새벽 배송 논쟁이 불거진 배경은 사안의 중대성 때문이다. 쿠팡 멤버십 가입자 등을 감안하면 이용자 수만 1500만명 이상으로 집계된다. 그러나 이용자가 늘어난 만큼 산업재해도 증가하는 추세다.
지난해 5월 숨진 정슬기씨는 사망 전 주 6일 동안 새벽 배송을 하며 주 73시간을 일했다. 정씨가 사망 전 원청인 쿠팡로지스틱스(CLS) 직원과 나눈 카카오톡 대화에서 “개처럼 뛰고 있다”고 답한 사실이 알려져 사회적 공분을 샀다.
지난 3일 <박재홍의 한판승부>에서 국민의힘 한동훈 전 대표와 정의당 장혜영 전 의원이 맞붙었다. 야간 배송의 노동 강도, 건강에 미치는 위험 등 많은 부분에서 이견을 보였다.
장 전 의원은 “작년에 안타깝게 돌아가신 고(故) 정슬기님이 쿠팡 택배 노동자셨고, 과로사하셨다”며 “그분이 오후 8시 반에 출근해 아침 7시까지 야간 배송을 했고 그 안에서 3회차 배송을 했다. 물류가 쌓인 캠프와 배송 구역을 세 번 왔다 갔다 하면서 179개의 택배를 운송했다”고 주장했다.
반면 한 전 대표는 “과로는 이미 만연한 문제고 새벽 배송에 국한된 문제는 아니다. 새벽 배송하는 분들이 강요받아 선택한 것이 아니다”며 “교통 상황이 야간에 뚫리고, 주차하기 편하고, 엘리베이터에서 주민을 마주칠 필요가 없다. 그리고 수입이 많다. 그렇기 때문에 야간 업무를 선택하는 것”이라고 반박했다.
지난 4일 한 전 대표는 자신의 SNS에 “민노총이 새벽 배송 금지를 추진하는 데는 실제 숨은 동기가 있다. 새벽 배송 영역은 쿠팡 위주라서 아직 민노총이 장악하고 있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라고 주장했다.
진짜 의도는?
근로복지공단이 과로사 판정을 할 때 야간 노동에는 30%를 가산한다. 생체리듬을 어기면서 새벽 근로를 하고 싶은 사람은 없을 것이다. 그러나 문제는 택배노조의 제안을 시행했을 때 서비스가 언제까지 유지될 수 있는가다.
장 전 의원은 “저는 소비자의 선택을 비난하지 않으며, 택배 기사들의 직업 선택의 자유도 존중한다”고 밝혔다. 이해 당사자들은 최선의 선택으로 노동자의 건강권을 함께 지킬 수 있는 절체절명의 방안이 필요할 때라고 지적하고 있다.
<jen9@ilyosisa.co.kr>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