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요시사 취재1팀] 김성민 기자 = 귀성길 열차의 매진 행렬은 당연시 여겨지고 있다. 한국철도공사(코레일) 앱에는 “철도노조 태업으로 일부 열차가 중지 및 지연될 수 있다”고 적혀 있다. 마치 전국철도노동조합(철도노조)의 생떼가 이용객들에게 불편을 초래한 것처럼 읽힌다. 시민들은 철도노조의 목소리에 귀 기울일 여유가 없을 뿐이다. 철도노조는 법과 규정을 엄격히 준수하며 규탄의 목소리를 동시에 내겠다고 했다.
코레일이 운영하는 고속철도(KTX) 이용객이 개통 이후 19년 만에 10억명을 돌파했다. 한국 5000만 국민 한 사람당 20번씩 KTX를 탄 셈이다. 빠른 이동수단을 타려면 비행기 아니면 고속철도밖에 선택지가 없다 보니 사실상 선택지가 부족하다.
수십년간 수요분석을 해왔지만, 이용의 불편함은 해소되지 않고 있다. 국토부의 철도 쪼개기 민영화 추진과 SR 부당특혜 등의 졸속행정을 수수방관한 책임의 결과다.
입 닫은 정부
지난달 27일 오전, 부산발 수서행 SRT 312 열차가 정비 문제로 1시간 이상 출발이 지연됐다. 평소 SRT에 문제가 생길 경우, 협약에 따라 KTX가 수서역까지 대신 운행한다. 실제로 지난 4월과 11월에도 SRT 대신 KTX가 대체 투입돼 운행됐다.
이번엔 국토부가 KTX 대체 투입을 거부했다. 결국 SRT 312 열차는 두 개 열차를 하나로 연결하는 확장 작업을 한 뒤에야 부산역을 출발했다. 뒤따라온 후속 열차도 각각 36분, 42분 지연 출발했다.
이날 열차 정비가 늦어진 건 철도노조가 그달 24일부터 준법투쟁에 들어갔기 때문이었다. 철도노조는 앞서 국토부가 부산발 수서행 SRT를 축소해 전라선 등에 투입한다고 밝히자, 이를 민영화 시도로 보고 준법투쟁에 돌입했다.
철도노조는 부산발 수서행 열차 지연에 대해 “노조가 지난달 24일부터 수서 KTX를 요구하며 준법투쟁에 돌입한 것과 무관하지 않다”고 밝혔다.
현재 서울과 부산을 오가는 고속철도는 코레일의 KTX와 주식회사 SR이 운영하는 SRT가 있다. SRT가 수서역에 놓이면서 부산 가는 강남권 주민들이 서울역을 찾는 번거로움이 사라졌다. 특히 부산에서는 강남을 가기가 훨씬 편해져 SRT 승객 수요가 상당히 높은 편이다.
국토부는 7월26일부터 운행 중인 수서-부산 고속열차를 11.4% 축소해 전라·경전·동해선에 투입한다고 발표했다. 국토부의 경부선 SRT 감축 정책이 발표되자 부산시민들과 철도노조는 시민 불편만 가중시킨다고 지적했다.
국토부는 ‘민원 해결’을 이유로 내세웠지만, 해결책이 될지 의문이다. SRT 경부선을 감축해 전라·경전·동해선에 투입해도 운행은 고작 하루 왕복 2회뿐이다. 오히려 수서행 SRT가 줄어들면서 부산시민들만 불편해졌다. 국토부는 2개 차량을 연결하던 열차를 1개씩 나눠서 운행하는 꼼수를 택했다. 이를 통해 “평일에 10회 정도 감축하지만, 주말은 축소하지 않는다”고 해명했다.
일반열차 사라지고
고속열차 투자 과중
철도노조는 “현재 운행 중인 열차가 각각 1개 열차로 운행되기 때문에 결국 좌석 절반이 사라지는 것”이라며 “절반 잘라서 나눠 태운다고 좌석난이 해결되느냐”고 반박했다.
국토부에서는 서울발 부산행 KTX를 증편하는 방안도 검토 중이라는 말도 나온다. 그러나 수서행 KTX 추가가 아니라면 강남권 시민들이 서울역을 찾는 불편을 겪게 된다. 애초에 이를 해소하기 위해 출발한 SRT인데 원점으로 돌아가게 생겼다.
철도노조는 가장 손쉬운 대안은 수서행 KTX 추가라는 입장이다. 노조에 따르면, SRT 고속철도 차량은 KTX가 빌려준 차량으로 도색만 했을 뿐, 기술적인 차이도 없다. 추가적인 면허발급도 필요 없다. 국토부의 결정만 있으면 운행이 가능하다.
노조는 “수서행 KTX를 운행하면 두 개 열차를 붙여 운행하는 ‘중련’ 열차도 가능해 현재 부족한 좌석난을 해소할 수 있다”며 “수서와 서울행 열차를 연결해 운행하다가 천안아산역 등 중간서 분리해 서울과 수서로 운행하면 효율성도 늘어날 수 있다”고 대안을 제시했다.
그러면서 “현재 10% 할인혜택을 SRT에만 적용하고 있는데, 수서 KTX가 운행되면 똑같이 할인혜택을 적용해 같은 열차를 이용하면서 차별을 겪지 않도록 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철도 민영화 반대 측에서는 공공제에 속하는 철도를 민영화하려는 건 그 취지를 왜곡하는 길이라고 주장한다. 표값이 싸고, 탄소 배출이 적고, 정시성까지 보장되는 철도는 대중교통의 대표적인 수단이다.
해외 사례를 살펴보면 지역 파괴의 원인이 됐다. 일본의 경우, 철도민영화 이후 지역 소멸이 가속화됐다. 지방 시민들이 공공인프라에 접속할 기회가 사라졌기 때문이다. 즉 민영화가 진행된다면 수요가 많은 고속철도에 불균형한 투자가 이뤄지고, 무궁화호 같은 일반열차는 사라질 수밖에 없다는 의미다.
세계는 통합 추세
“왜 우리만 분리?”
고속열차 투자 과중은 이미 일어난 현상이다. 2018년에는 장항선만 운행하던 새마을호가 30여년의 역사를 마감했다.
피해는 고스란히 서민들의 몫이다. 일부 열차는 운행구간이 단축돼 값싼 무궁화호를 타고 서울로 올라가기가 어려워졌다. 철도 민영화가 지역·소득별 다양성을 저해한다는 뜻이다. 게다가 고속열차 승객이 몰리는 시간에는 이마저도 몇 주 전부터 입석까지 매진되는 일이 흔하다. 대체안으로 선택할 수 있는 일반열차의 소멸이 낳은 결과다.
코레일은 객차 부족 문제를 해소하기 위해 지난 2018~2019년 ITX-새마을과 유사한 시속 150km급 간선형 전기동차를 발주했다. 하지만 차량 제작사의 납품 지연으로 2021년 운행을 시작했어야 할 차량이 지난해 늦봄에서야 처음으로 출고됐다.
우여곡절 끝에 일반열차의 수요를 채울 수 있는 새로운 열차가 투입됐다. 지난달 25일 진행된 명명식을 통해 탄생한 ‘ITX-마음’이라는 간선형 전기동차다. 일반열차 수요를 충족하기 위한 노력은 철도 민영화로 인해 물거품이 될 공산이 크다. 철도노조는 국토부와 협상 테이블을 마련하기 위해 준법투쟁에 돌입한 것이다.
철도 민영화의 출발은 10년 전으로 거슬러 간다. 박근혜정권은 철도 경쟁력을 높인다는 이유로 KTX를 쪼개 SRT를 만들었다.
철도노조는 코레일서 SR 분리로 발생한 중복 비용이 지난 8년간 대략 3200억원이라고 밝혔다. 여기에 이자비용만 800억원이다. SR의 유지보수, 차량 내 서비스, 불편 신고 콜센터 등 대부분을 코레일이 지원한다. 철도의 공공성을 위해 공기업이 의무를 실현하는 것이다.
협상 결렬
고속열차도 대부분 코레일서 빌린다. SR에 부채가 급증하면 정부가 수천억원을 투입해 메워준다. 정부가 부담하는 SR 특혜 지원만 3590억원으로 추산하고 있다. 문제는 SR이 경쟁력도, 자생력도 없다는 점이다. 철도노조는 “국토부는 경쟁이라지만 SR은 철도공사에 운영 대부분을 의존하는 ‘기생’이다”며 “쪼개서 운영할 필요가 없다”고 주장하고 있다.
철도 선진국인 유럽도 분리와 민영화 등을 추진한 바 있다. 하지만 부채 증가와 서비스 질 저하 등이 발생하면서 ‘통합’으로 바뀌는 추세다. 한국만 ‘분리’를 고집하는 건 후진적 양상이다.
백남희 철도노조 선전국장은 <일요시사>와 통화서 “시민 불편을 해소하기 위해 당장해야 하는 것은 수서까지의 KTX 운행”이라고 강조했다. 이어 “원희룡 국토부 장관은 사회적 공론화를 통해서 문제를 해결할 수 있도록 대화에 응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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