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 '구렁이 담 넘듯' 건국대 봐주기 인사의 비밀

대법서 유죄 받았는데 ‘복직 콜’

[일요시사 취재1팀] 장지선 기자 = 건국대가 학교 안팎에서 불거진 논란으로 몸살을 앓고 있다. 전임 이사장이 ‘가짜 수산업자’ 사건에서 중심 인물로 떠오른 데 이어 학교 내부에서는 인사 논란이 터졌다. 건국대 관계자들 사이에서는 ‘학교가 나락으로 가고 있다’는 탄식이 나오고 있다. 

건국대는 지난해 8월 말 불거진 ‘옵티머스 펀드 120억원 투자’ 사건으로 최악의 하반기를 보냈다. 교육부가 현장 조사를 나왔고, 국정감사에서 교육부 장관이 직접 건국대의 옵티머스 펀드 투자에 대해 ‘사립학교법 위반’이라고 말하는 등 학교 이미지가 바닥으로 떨어졌다.

각종 논란에
이미지 나락

잠잠해지나 싶더니 ‘가짜 수산업자’ 사건에 건국대가 언급됐다. 건국대 충주병원 노조의 고발과 교육부의 의뢰로 검찰이 들여다보던 옵티머스 펀드 120억원 투자 사건과 관련해 수사 무마 청탁 의혹이 불거진 것. 이 과정에서 김경희 전 건국대 이사장이 핵심 인물로 부상했다. 

김 전 이사장은 가짜 수산업자 김태우가 소개해준 현직 검사 등과 골프 회동을 갖고 서울 성북동 레스토랑에서 식사를 했다. 이들은 지난해 8월15일, 10월31일 등 두 차례에 걸쳐 만남을 가졌다. 이 자리에는 건국대 교수, 언론인 등도 참석한 것으로 알려졌다. 

검찰은 5월 건국대의 옵티머스 펀드 120억원 투자 사건과 관련해 사립학교법 위반과 특가법상 횡령·배임 혐의를 받은 유자은 이사장과 최종문 전 더클래식500 사장을 증거불충분으로 인한 ‘혐의 없음’으로 처분했다. 


검찰은 건국대가 옵티머스 펀드에 투자한 120억원의 성격을 수익용 기본재산이 아니라 보통재산으로 봤다. 기본재산은 투자 과정에서 학교법인 이사회 의결이나 교육부의 허가가 필요하지만 보통재산은 이 같은 절차를 거치지 않아도 된다. 

하지만 법원의 판단은 달랐다. 지난달 23일 서울행정법원 행정3부는 건국대 학교법인이 교육부 징계를 취소해 달라며 제기한 소송에서 원고 패소 판결을 내렸다. 검찰과 반대로 교육부의 손을 들어준 것이다. 

교육부는 지난해 11월 건국대에 ▲이사장과 법인 감사의 임원 취임 승인 취소 절차 추진 ▲이사 5명 경고 조치 ▲법인 전·현직 실장 2명 징계, 더클래식500 사장 등 4명 중징계 ▲재발 방지 대책 요구 등을 처분한 바 있다.

가짜 수산업자 사건으로 
때 아닌 주목받는 와중에…

법원은 임대보증금이 부동산과 달리 학교 기본재산에 해당하지 않는다는 건국대의 주장을 일부 받아들이면서도, 임대보증금을 펀드 투자에 쓰기 위해선 교육부 허가가 필요하다고 판단했다. 원금이 손실돼 임대보증금을 반환하지 못하면 기본재산이 감소할 위험이 있다는 이유에서였다.

법원은 투자금의 성격보다 관할청의 허가 여부에 초점을 맞춘 것이다. 

지난달에는 국민권익위원회에서 대검찰청으로 송부한 김 전 이사장 등의 ‘임대보증금 393억원 배임·횡령 의혹’ 역시 검찰에서 무혐의 처분이 났다. 검찰과 법원, 앞서 감사원 및 교육부의 판단이 엇갈리면서 김 전 이사장이 주도한 모임의 성격이 중요한 고리로 떠올랐다.


건국대 충주병원 노조는 검찰의 불기소 처분에 불복해 항고를, 건국대는 행정소송 1심에서 패소한 데 불복해 항소한 상태다. 건국대는 법정 소송과 함께 전임 이사장을 둘러싼 의혹까지 떠안은 신세가 됐다.

그렇다고 내부사정이 좋은 것도 아니다. 대법원에서 유죄 판결을 받은 전임 노조위원장이 학교로 돌아온 건을 두고 논란이 빚어졌다. 논문 문제로 교육부의 중징계 요구를 받은 인사가 학교법인의 중요 요직을 차지하고 있는 점도 지적받고 있다.

전 건국대 직원 노조위원장 홍모씨는 7월 말경 학교로 돌아왔다. 앞서 6월 대법원은 금융실명거래법 위반 및 정보통신망법상 명예훼손 등의 혐의로 기소된 홍씨에게 징역 8개월, 집행유예 2년의 원심을 확정 판결했다. 

홍씨 사건은 2013년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그는 2013년 4월 카드사 콜센터를 통해 김 전 이사장과 김진규 전 건국대 총장의 법인카드 사용명세서를 받았다. 당시 홍씨는 김 전 이사장과 김 전 총장이 부적절한 관계라고 주장하면서 카드사 콜센터에 법인카드 번호와 사업자등록번호를 말하는 방식으로 사용명세서를 요구했다. 

밖에서는
전 이사장이

여기에 두 사람이 법인카드를 이용해 골프를 치고 해외여행을 가는 등 부적절한 관계였다는 주장을 이메일로 유포해 명예를 훼손한 혐의도 더해졌다. 홍씨의 혐의를 두고 재판부의 판단은 다섯 차례에 걸쳐 나왔다. 1~3심, 파기환송심, 대법원 재상고심이다. 

1심은 홍씨가 금융실명법을 위반했고, 허위사실을 유포해 명예를 훼손했다며 징역 8개월을 선고했다. 다만, 김 전 이사장이 법인카드를 개인적 용도로 사용했다는 내용은 공공의 이익에 부합한다며 무죄로 판단했다. 

당시 1심 재판부는 “피해자들의 불륜을 인정할 객관적 자료가 없고 소문에 불과한 내용을 확인 절차 없이 단정적인 표현을 사용해 적시해 허위사실 적시에 해당한다”며 “법인카드 거래 정보는 금융실명거래정보에 해당하고 노조위원장에게 받을 권한이 있다고 보기 어렵다”고 설명했다. 

2심은 “홍씨가 제공받은 법인카드 사용명세서에 사용일자, 가맹점명, 거래승인일시 등이 기재돼있었던 것으로 보이나 금융실명법 규정을 종합해 볼 때 이들 정보가 금융실명법 제4조 제1항에 따른 비밀보장의 대상이 된다고 볼 수 없다”며 금융실명법 위반 부분을 무죄로 판단했다. 

그러면서 “홍씨 등이 개인적 이익이 아닌 학교법인을 위한다는 생각에 범행에 이른 것으로 보인다”며 징역 8개월에 집행유예 2년으로 감형했다.

하지만 2심 재판부의 판단은 대법원에서 뒤집혔다. 쟁점은 신용카드 사용명세서가 비밀보장의 대상이 되는지 여부였다. 대법원은 신용카드 사용명세서가 비밀보장의 대상이 된다고 판단, 재판을 유죄 취지로 돌려보냈다. 

대법원은 “금융실명법은 비밀보장의 대상이 되는 ‘거래 정보 등’을 금융거래에 대한 정보 또는 자료가 아니라 금융거래의 ‘내용’에 대한 정보 또는 자료로 규정하고 있다”며 “신용카드 업자와 가맹점 사이 또는 신용카드 업자와 신용카드 회원 사이에 예금이나 금전으로 수입이 발생하거나 상환이 이뤄진다면 이는 금융실명법이 정한 ‘금융거래’에 해당한다”고 해석했다.


안에서는
교직원이

이어 “신용카드 거래내역은 금융거래인 ‘상환’이나 ‘수입’의 내용에 해당하고 신용카드 사용내역은 금융거래의 내용에 대한 정보 또는 자료에 해당한다”며 “신용카드 사용명세서 등이 금융실명법에 따른 비밀보장의 대상에 해당하지 않는다고 본 원심은 잘못”이라고 판시했다. 

파기환송심은 대법원의 판결 취지에 따라 금융실명법 위반을 유죄로 판단하면서도 형량은 징역 8개월에 집행유예 2년을 유지했다. 홍씨는 재상고했지만 대법원은 지난 6월 원심 판결이 옳다며 판결을 확정했다. 

김 전 이사장 시절 2번의 파면 끝에 복직해 직원으로 근무 중이던 홍씨는 대법원 판결과 동시에 ‘당연퇴직’ 사유가 발생해 학교를 떠났다. 사립학교법 제70조의3(사무직원 당연퇴직)에 따르면 사무직원의 당연퇴직은 국가공무원법 제56조에 의거, 금고 이상의 형의 선고유예를 받은 경우에 당연퇴직 사유가 발생한다. 

건국대 정관 83조(자격)에도 ▲금고 이상의 형을 받고 그 집행이 종료되거나 집행을 받지 않기로 확정된 후 5년을 경과하지 않은 자 ▲금고 이상의 형을 받고 그 집행유예의 기간이 완료된 날로부터 2년을 경과하지 않은 자 ▲금고 이상의 형의 선고유예를 받은 경우에 그 선고유예 기간 중에 있는 자 등은 당연히 퇴직한다고 명시했다. 

하지만 홍씨는 한 달여 뒤인 지난 7월29일 산학협력단 참사 직급으로 인사발령을 받았다. 건국대 홍보실 관계자는 지방노동위원회의 화해 권고에 따라 노조와 학교가 합의해 홍씨를 복직시켰다는 입장을 밝혔다. 


학교법인 건국대 산하기관 노조협의회는 지난 11일 ‘홍○○ 전임 노조위원장의 복직을 환영한다’는 제목의 성명서를 내고 “건국대가 정관에 따라 홍씨를 당연퇴직 처분한 것은 부당해고”라고 주장했다. 

그러면서 “대학노동조합과 대학본부 간에 체결한 단체협약에서 건국학원 정상화 운동 과정에서 발생한 사안들을 이유로 홍 전 위원장을 포함한 조합원들에게 일체의 책임을 묻지 않기로 합의한 이상, 위 당연퇴직 처분은 부당해고에 해당될 수밖에 없었다”고 강조했다.

반면 일부 건국대 관계자들은 홍씨의 복직이 사립학교법 위반이라고 주장했다. 대법원 확정 판결이 나왔고, 이를 근거로 사립학교법을 적용해 당연퇴직이 된 것을 한 달 만에 뒤집는 것은 어불성설이라는 입장이다.

이 사안을 두고 교육부에 민원을 제기한 A씨는 “사립학교법을 위반하면서까지 이런 행위를 한 유자은 이사장, 전영재 총장, 노조위원장과 이 위법한 행위에 동조한 학교법인 이사장 비서실장, 총장 비서실장, 인사담당 총무처장 등을 엄격하게 감사해 허물어진 사립학교 인사 위상을 바로 세우고, 해당자들 전원을 형사고발과 파면해주길 바란다”고 강조했다. 

사립학교법 위반 VS 부당해고
논문 문제 교수는 핵심 요직에

교육부 사립대학정책과 관계자는 해당 민원에 대해 건국대에 소명자료를 요청한 상태라고 밝혔다. 건국대 소명 자료가 도착하는 대로 사실관계를 파악하겠다는 입장이다. 흥미로운 점은 홍씨가 김 전 이사장의 명예를 훼손했다는 혐의로 대법원에서 유죄 판결을 받았음에도 불구하고 딸인 유 이사장이 그를 구제했다는 사실이다.

건국대 내부에서 불거진 인사 논란은 여기서 그치지 않았다. 교육부가 고교생인 친딸을 자기가 쓴 논문의 저자로 넣은 부총장 출신의 원모 교수에게 중징계를 요구한 사실이 확인됐다. 해당 사건은 건국대 관계자들의 국민권익위원회 신고로 시작됐다.

신고인은 “지난해 10월경 건국대 원 교수가 2013년 학술지에 실은 논문에 해당 교수 자녀로 추정되는 이름을 공동저자로 등재했다”면서 “2018년 4월 교육부가 ‘공동등재된 저자 중 원씨가 원 교수의 자녀인지’를 묻는 공문을 건국대에 보낸 시점에 논문 공동 저자란에서 자녀로 추정되는 이름이 사라진 채 올라왔다”고 신고했다. 

이후 교육부에서 실태조사를 진행했고 그 결과 원 교수에게 중징계를 요구하는 공문이 건국대에 내려간 것이다. 교육부 학술진흥과 관계자는 “감사 내용이기 때문에 자세히 말해줄 수는 없다”면서도 “신고 내용의 사실관계가 파악돼 건국대에 통보했고 후속조치 중에 있다”고 밝혔다.

원 교수는 논문 문제가 불거지면서 LH 혁신위원 자리에서도 위태로워졌다. 지난달 6일 원 교수가 LH 혁신위원으로 위촉된 사실이 뒤늦게 알려졌다. 건국대 관계자들이 LH에 원씨가 논문 문제로 교육부의 중징계를 받은 인사라는 사실을 전하자 LH는 “빠르게 조치하겠다”는 답변을 내놓았다.

LH 홍보실 관계자는 “혁신위원장을 비롯한 외부 위원들과 이 사안을 논의 중”이라고 밝혔다. 이어 “원 교수는 해당 논란이 발생한 이후 7월 혁신위원회에는 참여하지 않았다”며 “8월에도 혁신위원회가 예정돼있어 조만간 결론이 날 것으로 예상된다”고 전했다. 

그럼에도 원 교수는 여전히 학교법인의 핵심 요직을 지키고 있다. 지난해 8월 교육부총장에 임명됐던 원 교수는 현재 학교법인 경영기획국장을 맡고 있을 뿐만 아니라 수익사업체인 더클래식500의 사장도 겸하고 있다. 옵티머스 펀드 120억원 투자 논란에 휘말린 최종문 사장이 사퇴한 자리다.

바람 잘날
없는 학교

한 건국대 관계자는 “경영기획국장은 학교법인에서 가장 핵심 요직”이라면서 “원 교수가 더클래식500 사장을 겸임하기 시작한 건 교육부의 중징계 요구 이후”라고 주장했다. 관계자의 주장대로면 건국대는 원 교수의 논문 문제가 일정 부분 사실로 드러난 이후, 그를 수익사업체 사장에 앉힌 셈이다. 

건국대 홍보실 관계자는 “(원 교수의)징계 문제는 확인해 줄 수 없다”고 답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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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에 번진 핵잠 나비효과

일본에 번진 핵잠 나비효과

[일요시사 정치팀] 박형준 기자 = 한미 정상회담 팩트시트가 공개되자, 가장 큰 화제가 된 미국의 핵잠수함 건조 승인에 대해 “문구가 추상적이어서 모호하다”는 비판이 이어졌다. 이에 자극 받은 일본도 핵잠수함 도입을 준비하고 있다. 핵잠수함 건조를 현실화하지 않으면 “일본에 핵 보유 빌미를 제공하고, 고이즈미 신지로 방위상의 국내 정치용으로 활용하게 했다”는 비판이 제기될 가능성이 있다. 지난달 29일 진행된 한미 정상회담에서 타결된 한미 관세·안보 협상 팩트시트(공동 설명자료)가 지난 14일 공개됐다. 가장 큰 논란은 핵 추진 잠수함(이하 핵잠수함) 관련 합의 문구였다. 산 너머 산 구체성 없다 팩트시트를 통해 확인되는 핵잠수함 건조와 관련해선 “구체성이 없다”는 비판이 제기됐다. 팩트시트에 따르면, 미국은 ▲한국 민간·해군의 원자력 프로그램 ▲한미 원자력 협정에 부합하고 미국의 법적 요건을 준수하는 범위 내에서 한국의 평화적 이용을 위한 민간 우라늄 농축·사용 후 핵연료 재처리로 귀결될 절차 등을 지지한다. 이어 한국의 핵잠수함 건조를 승인하고, 한국과 조선 사업 요건 진전·연료 조달 방안 등을 포함해 긴밀히 협력한다. 미국은 한국의 핵잠수함 건조와 관련해 지지·승인·협력할 뿐이다. 이를 두고 위성락 국가안보실장은 같은 날 브리핑에서 “한미 정상의 논의는 처음부터 끝까지 한국에서 건조하는 게 전제였다”며 “우리 핵잠수함을 미국에서 건조하는 방안은 거론되지 않았다”고 주장했다. 반면 국민의힘 장동혁 대표는 같은 날 “구체적인 내용이 없다”며 “국내 건조 장소 합의는 팩트시트에 담기지 않았다”고 비판했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지난달 30일 기자들 앞에서 한국의 핵잠수함 건조 승인을 발표하면서 “필라델피아 조선소에서 건조될 것”이라며 “미국 조선업이 곧 대대적인 부활을 맞이할 것”이라고 말했다. 핵잠수함이 건조되려면, 산적한 현안을 모두 해결해야 한다. 팩트시트엔 건조 장소가 적시되지 않았다. 트럼프 대통령이 직접 필라델피아 조선소를 명시해 발표했기 때문에, 미국이 순순히 양보할 것으로 보이진 않는다. 같은 회담 결과를 두고 양국의 주장이 엇갈리는 자체가 논란이 되고 있다. 민간 우라늄 농축·사용 및 핵연료 재처리엔 ▲한미 원자력 협정 부합 ▲미국의 법적 요건 준수 ▲한국의 평화적 이용 등 단서가 붙는다. 기술 이전 과정에도 많은 난관이 기다리고 있다. 핵잠수함 보유국은 미국·영국·프랑스·러시아·중국·인도 등 6개국이다. <로이터통신>은 지난달 30일 “미국이 핵잠수함 기술을 공유한 사례는 1950년대 최우방국 영국과 협력한 사례밖에 없다”고 보도했다. <AP통신>은 “미국의 핵잠수함 기술은 미군이 보유한 가장 민감하고 철저히 보호돼온 기술”이라며 “가까운 동맹인 영국·호주와 체결한 핵잠수함 협정에서도 직접 기술 관련 내용은 포함되지 않았다”고 보도했다. 우리에겐 우라늄 농축·재처리 기술이 없어서 미국으로부터 핵연료를 공급받는 방안이 유력하게 거론된다. 하지만 연료 공급 장소·방식은 팩트시트에 명시되지 않았다. 연료 공급 방법을 확보하지 못하면, 핵잠수함을 만드는 의미가 없다. 핵잠 건조 추상적인데 “고정밀지도 내놔” 발 빠르게 비핵 3원칙 수정하려는 일본 미국의 법률 개정 절차도 거쳐야 한다. 미국 원자력법은 ‘미국이 다른 나라와 군사적 목적의 원자력 협력을 하려면, 원자력 협정을 체결해야 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따라서 한미 원자력 협정을 개정한 후 미국 상원의 동의를 얻어야 한다. 국제 무기 거래 규정도 상원의 동의를 얻어 개정해야 한다. 원자력 협정 개정이 팩트시트에 포함되지 않은 것에 대해선 “미국 에너지부의 반대 때문”이란 지적도 있다. 미국 일각에서 “한국이 자체 핵무장을 할 수도 있다”는 우려를 한단 것이다. 일각에선 “핵잠수함 건조 여부는 확정되지 않았는데, 우리는 미국에 고정밀지도를 넘겨야 하는 상황이 됐다”는 지적이 나온다. 팩트시트엔 ‘망 사용료·온라인 플랫폼 규제를 포함한 디지털 서비스 관련 법·정책에 있어 미국 기업이 차별당하거나 불필요한 장벽에 직면하지 않도록 보장할 것을 약속한다’는 내용이 있다. 또 “위치·재보험·개인정보에 대한 것을 포함해 정보의 국경 간 이전을 원활하게 할 것을 약속한다”는 내용도 있다. 미국 빅테크 기업들은 온라인플랫폼의 ▲자사 우대 ▲끼워팔기 ▲멀티호밍 제한 등을 막는 내용이 담긴 우리의 온플법 제정을 반대했다. 팩트시트를 따르면, 미국 빅테크 기업에 대한 규제가 어려워진다. 아울러 우리는 구글·애플이 요청하는 1:5000 축척 고정밀지도 국외 반출 요청을 수용해야 하는 상황에 직면했다. 정부는 애플이 요청한 지도 반출 여부를 다음 달에, 구글의 요청은 내년 2월 결정할 예정이다. 팩트시트에 게재된 합의 사항대로라면, 애플·구글의 요청을 수용해야 할 가능성이 크다. 국민의힘 박성훈 수석대변인은 지난 15일 논평을 통해 팩트시트 속 위험요소를 조목조목 지적했다. 박 대변인은 “정부는 ‘농·축산물 개방은 없다’고 말해 왔지만, 트럼프 대통령의 요구대로 농·축산물 개방 문구가 포함됐다”고 주장했다. 이어 “망 사용료·온라인 플랫폼 규제·고정밀 지도 반출 등 대한민국의 디지털 주권과 직결된 사안까지 미국의 요구를 반영해 슬그머니 끼워 넣었다”고 비판했다. 이어 “반도체 관세에 대해서도 ‘다른 나라보다 불리하지 않게 한다’는 모호한 문구만 있다”며 “경쟁국 대만과 비교해 어떻게 적용할지 등 구체적인 내용은 팩트 시트에 담기지 않았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250억달러(약 36조7183억원) 규모의 미국산 군사 장비를 5년 동안 구매하고, 주한미군에 대해 330억달러(약 48조4682억원)를 포괄적으로 지원하면, 천문학적인 재정 부담을 떠안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아울러 “핵잠수함 건조 과정은 결코 쉬운 과정이 아니라서 장밋빛 전망만 내세울 때가 아니”라고 강조했다. 고정밀지도 반출 가능성 실제로 일각에선 “핵잠수함 건조가 실현되기까지 많은 과정을 거쳐야 해서 실질은 아직 불투명하다”며 “선언이 지나치게 앞섰다”는 지적이 나온다. 문제는 핵잠수함 나비효과가 일본으로 번졌단 점이다. 미국이 우리의 핵잠수함 건조를 승인하자, 일본 정치권도 크게 술렁였다. 고이즈미 신지로 방위상은 지난 12일, 참의원 예산위원회에서 “미국·중국은 이미 핵잠수함을 갖고 있고, 지금은 핵잠수함을 보유하지 않은 한국·호주가 앞으로 보유하게 된다”며 “일본의 억지력·대응력을 강화하려면, 전고체·연료전지·원자력 등 다양한 동력원에 대해 폭넓게 논의하는 게 당연하다”고 말했다. 일본은 1967년 사토 에이사쿠 당시 총리가 선언했던 비핵 3원칙을 여전히 유지하고 있다. 비핵 3원칙은 “핵무기를 만들지도, 가지지도, 반입하지도 않는다”는 선언이다. 다카이치 사나에 총리는 일찍부터 핵무기 반입 금지 방침 완화를 주장했다. 기하라 미노루 관방장관도 같은 날 “현 시점에선 재검토 여부를 단정할 수 없다”고 말했다. 자유민주당(이하 자민당)은 발 빠르게 움직이고 있다. 다카이치 총리는 국회 연설에서 “내년 중 3대 안보 문서 개정을 위해 검토를 개시할 것”이라고 말했다. 일본의 3대 안보 문서는 ▲국가안보 전략 ▲국가방위 전략 ▲방위력 정비 계획 등을 말한다. 여기엔 비핵 3원칙이 모두 포함돼있다. 일본은 이미 지난 2022년 “반격 능력을 보유하고, 장거리 미사일 전력을 향상한다”는 내용을 3대 안보 문서에 포함했다. 묘한 것은 미국의 핵잠수함 건조 승인이 일본 국내 정치구도까지 뒤흔들 가능성이 있단 것이다. 고이즈미 방위상은 다카이치 총리가 선출될 당시 라이벌이었다. 지난달 4일 진행된 자민당 총재 선거 1차 투표에서 다카이치 총리는 183표(31.1%)를 얻었고, 고이즈미 방위상은 164표(27.8%)를 얻었다. 결선투표에선 다카이치 총리가 185표(54.3%)를, 고이즈미 방위상은 156표(45.7%)에 머물렀다. 하마터면 다카이치 총리는 자민당 총재·총리로 선출되지 못할 뻔했다. 고 아베 신조 전 총리의 후계자로 통하는 다카이치 총리에 반발한 공명당이 지난달 10일 자민당과의 연정에서 탈퇴했기 때문이다. 당시 공명당 사이토 데쓰오 대표는 고이즈미 방위상에 대해선 “정치자금 규제와 관련된 공명당의 처지를 이해하고 있었다”면서 호평했다. 고이즈미 방위상도 “지금까지 정책 실현에 대해 힘써 주신 것에 대해 감사와 경의를 표한다”고 화답했다. 미일 협력 중국 견제 다카이치 총리는 지난달 20일 기적적으로 일본유신회와의 각외 협력 형태의 연립 정권 구성에 합의했다. 각외 협력은 연립 정권 구성엔 합의하지만, 내각엔 참여하지 않는 형태를 말한다. 일본유신회가 제시한 조건은 ▲오사카 부수도 지정 구상 수용 ▲국회의원 정원 10% 감축 ▲기업·단체 후원 폐지 ▲평화 헌법 개정 ▲방위력 강화 등이었다. 자민당과 다카이치 총리는 이를 모두 수용했다. 다카이치 총리는 지난달 21일 내각을 출범시키면서 고이즈미 방위상을 임명했다. 가장 큰 정치적 의미는 ‘당내 정적 포용’이었다. ‘방위 관련 경력·경험이 전혀 없는 고이즈미 방위상을 임명해 기회를 제공한다’는 의미가 있다. 정반대의 의미를 강조하는 해석도 있다. “방위 관련 경력·경험이 없는 고이즈미를 현안이 산적한 방위성 장관으로 임명해 자멸을 유도한다”는 취지의 해석이다. 고이즈미 방위상에게 주어진 현안은 ▲미일 방위 협력 재조정 ▲자주적 방위력 강화 ▲후텐마 미군 기지 이전 ▲방위 장비 수출 운용지침 폐지 등이다. 이중 미일 방위 협력 재조정은 ‘중국 견제’라는 미국·일본의 공통 이해관계로부터 시작됐다. 일본은 군사력을 강화해 더 광범위한 지역에서 역할을 맡으려고 한다. 미국은 일본의 적극적인 역할을 통해 더 효율적으로 중국을 견제할 수 있다. 문제는 돈이다. 트럼프 대통령은 일본에 “방위비를 GDP(국내총생산)의 3.5%로 증액하라”고 요구했다. 다카이치 총리는 지난달 28일 진행된 미일 정상회담에서 트럼프 대통령에게 방위비 증액·방위력 강화 방침을 설명했다. 고이즈미 방위상은 다음 날 피트 헤그세스 미국 국방부 장관을 만나 “방위비를 올리겠다”고 말했다. 이어 일본 정부는 오는 2028년 3월까지 방위비를 GDP의 2%까지 늘리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 하지만 일본에서 방위 정책과 관련해 국내 정세와 가장 민감하게 맞물려 고이즈미 방위상을 곤란하게 할 사안이 있다. 바로 후텐마 미군 기지 이전이다. 일본 오키나와현 소재 후텐마 기지는 기나완시 시가지 한복판에서 시 면적의 1/4을 차지하고 있다. 후텐마 기지는 1945년 건설됐고, 일본에서 크고 작은 논란을 일으켰다. 오키나와현의 주민 중 상당수는 미군의 범죄와 소음 피해 등을 이유로 기지 이전을 요구하고 있다. ‘팩트시트’ 고이즈미 날개 다나 견제 압박 와중에 뜻밖의 호재 지난 2004년엔 후텐마 기지 소속 헬리콥터가 오키나와국제대학에 추락하는 등 사고도 여러 번 발생했다. 오키나와가 일본에 편입된 시점은 1879년이었다. 1945년부터 1972년까진 미국의 지배를 받았다. 따라서 오키나와에선 반미 감정이 강하고, 자민당 지지율이 낮은 편이다. 후텐마 기지와 관련해서도 일본 정부는 오키나와섬 내 나고시 헤노코 이전을 추진했지만, 오키나와 현·주민의 반대가 강해 진행되지 못하고 있다. 지난 2023년엔 다마키 데니 현지사가 방위성이 신청한 비행장 설계 변경 신청을 승인하지 않고 공사 중단을 요구했다. 후텐마 미군 기지 이전은 일본의 역사적 맥락과 맞물려 수십년 넘게 해결되지 못한 사안이다. 하지만 트럼프 대통령이 주도하는 중국 견제를 위한 새 안보 질서와 맞물려 고이즈미 방위상에게 정치적 압박을 가할 수도 있다. 아베 전 총리는 지난 2019년 고이즈미 방위상을 환경상으로 발탁했다. 이 임명에 대해선 “고이즈미 방위상의 정치적 무게를 키우면서도, 문제가 발생하면 그를 정치적으로 낙마시킬 수도 있다”는 평가가 나왔다. 고이즈미 방위상의 아버지인 고이즈미 준이치로 전 총리는 퇴임 이후 강력한 원자력 발전소 폐지론자가 됐다. “아버지의 활동이 아들의 정치적 미래를 흐리게 할 수 있어 고이즈미 방위상을 견제하는 묘수”란 평가도 있었다. 고이즈미 방위상은 “기후 변화 문제는 펀하고, 쿨하고, 섹시하게 대처해야 한다”는 등 적당히 괴상한 발언을 하는 등 바보 행세를 하면서 견제를 피했다. 한동안 일본에선 고이즈미 방위상이 진짜로 바보인지, 바보인 척 연기를 하는지 장난 섞인 논쟁이 오랫동안 이어졌다. 이후 고이즈미 방위상은 이시바 시게루 전 총리·고노 다로 전 외상과 연합해 이시바 내각 탄생에 큰 공을 세웠다. 이어 농림수산상으로서 쌀값 폭등 문제에 적극적으로 대처했다. 지난 2023년엔 자민당 내 정치자금 문제가 불거지자, 조기 의회 해산 및 총선거 진행을 적극적으로 제안한 후 선거대책위원장을 맡았다. 당시 자민당은 중의원 과반에 미달하는 의석을 얻었다. 하지만 일각에선 “더 큰 패배를 당하기 전에 적절한 시점에서 중의원 해산을 건의했다”며 긍정적 평가가 나오기도 했다. 방위상 취임 이후엔 어떻게 구 아베파·아소파의 견제를 피할 것인지 관심을 모았다. 하지만 미국이 우리의 핵잠수함 건조를 승인한 사안은 고이즈미 방위상에게 견제 수위를 낮추면서 자민당·내각의 협조를 얻을 수 있는 뜻밖의 호재로 다가왔다. 고이즈미 방위상이 일본의 핵잠수함 도입을 주도한다면, 유력한 차기 총리 후보가 될 수도 있다. 견제 회피 일거양득 우리의 핵잠수함 도입 추진이 일본 정치의 판도를 바꿀 수 있는 사안이 된 것이다. 만약 핵잠수함 도입 추진이 불확실해지면, 이재명정부는 이 때문에 더욱 큰 비판을 받을 수도 있다. “일본의 군비 증강에 빌미를 제공하고, 고이즈미 방위상의 정치적 미래를 위한 발판을 제공한 것”이란 비판이 따라올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한국의 핵잠수함 나비효과는 이렇게 일본으로 번졌다. <ctzxp@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