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산업자-건국대 옵티머스 커넥션 의혹

이사장 사건 무마에 입김?

[일요시사 취재1팀] 장지선 기자 = 검사와 경찰 간부, 언론인 등에게 금품을 제공했다고 폭로한 ‘가짜 수산업자’ 김모씨 사건이 일파만파로 확산되고 있다. 심지어 건국대의 옵티머스 투자 사건에도 김씨의 이름이 등장했다.

‘가짜 수산업자’ 김모씨는 2016년 1억여원 상당의 사기 혐의로 기소돼 징역 2년을 선고받고 복역하던 중 이듬해 12월30일 특별사면됐다. ‘생계형 사기’로 교도소에 들어갔던 김씨는 지난 4월 100억원대 사기 혐의로 기소됐다. 불과 몇 년 사이에 사기 액수가 100배 이상 불어난 것이다.

생계형 잡범
대형 사기꾼

김씨는 2018년 6월부터 올해 1월까지 ‘선동 오징어’(배에서 잡아 바로 얼린 오징어) 투자를 미끼로 7명의 피해자로부터 116억2000여만원을 받아 챙긴 혐의(특정경제범죄가중처벌법상 사기)로 재판에 넘겨졌다. 그는 “선동 오징어에 투자하면 수개월 안에 3~4배 수익을 낼 수 있다”고 피해자들을 속였으나 실제 선박을 운용하거나 오징어 매매 사업을 하지 않았던 것으로 조사됐다. 

미래통합당(현 국민의힘) 김무성 전 의원의 형이 86억4000여만원, 전직 언론인 송모씨가 17억4000여만원을 김씨에게 투자했다가 피해를 봤다. 그는 과거 사기죄로 복역하던 중 구치소에서 만난 송씨의 소개로 김 전 의원의 형을 알게 됐다.

여기에 김씨는 지난해 12월 한 사기 피해자가 투자금을 돌려달라고 항의하자 자신의 수행원들과 함께 피해자를 협박(공동협박)하고, 올해 1월 같은 피해자가 과거 자신에게 팔았던 승용차를 회수하자 차를 받아내도록 수행원들을 교사한 혐의도 받고 있다. 


그는 경찰 조사 과정에서 최근 부부장검사로 강등된 이모 전 서울남부지검 부장검사, 직위해제된 포항 남부경찰서장, 이동훈 전 <조선일보> 논설위원, 엄성섭 TV조선 앵커 등에게 금품을 제공했다고 폭로했다.

김씨의 폭로에서 시작된 사건은 걷잡을 수 없이 번져가는 모양새다. 박근혜정부 국정 농단 수사를 이끈 박영수 특별검사가 김씨로부터 포르쉐 렌터카와 수산물 등을 받은 사실을 인정하고 지난 7일 자진사퇴했다. 박 특검 외에 특검팀 수사지원단장도 김씨의 선물제공 대상에 포함된 것으로 전해졌다. 

지난해 8월말 수면 위로
교육부, 검찰 수사 의뢰

정치권 인사들의 이름도 여야를 가리지 않고 등장하고 있다.

국민의힘 주호영 의원, 박지원 국가정보원장, 열린민주당 정봉주 전 의원 등이 거론됐다. 구치소에서 만난 송씨와 인연이 이어지면서 각계 유력 인사들과 친분을 쌓은 것으로 보인다. 송씨는 기자 생활을 오래 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김씨의 손길이 서울의 한 사립대에도 뻗쳤다는 의혹이 나왔다.

<한국일보>는 지난 7일 경찰이 김씨가 해당 사립대 이사장 관련 사건을 무마하는 데 개입했다는 단서를 잡고 수사 중이라고 보도했다. 김씨가 이사장 측에 연결해준 현직 부장검사의 직무 관련성을 따져보며 뇌물죄 적용 여부를 검토 중이라는 내용이다. 


해당 사건은 건국대가 옵티머스 펀드에 120억원을 투자한 것을 말한다. 당시 건국대는 옵티머스 펀드의 환매 중단으로 120억원을 날릴 위기에 처한 상태였다. 또 투자 과정에서 절차상 문제가 드러나면서 교육부의 검찰 고발이 이뤄졌다.

이 사건을 김씨가 소개해준 부장검사가 무마했다는 의혹이 제기된 것이다. 

전방위로
로비했나

건국대의 옵티머스 펀드 투자 사건은 지난해 8월말 처음 수면 위로 올라왔다. 지난해 8월28일 민주노총 전국보건의료산업노동조합 충주지역본부 충주병원지부는 건국대 산하 수익사업체인 ‘더클래식500’에서 옵티머스 펀드에 120억원을 투자했다가 손실을 봤다는 의혹을 제기했다. 

노조 측은 “사학기관에서 사모펀드에 투자하는 것을 원칙적으로 금지하고 있고, 학교 법인 재산의 용도변경은 교육부 장관의 허가를 얻어야 가능하다”고 주장했다. 옵티머스 펀드에 투자하는 과정에서 이사회 의결이 이뤄지지 않았고, 이는 사립학교법 위반과 공금 횡령‧배임에 해당할 수 있다는 주장이다. 

교육부는 건국대의 사학법 위반 여부를 확인하기 위해 현장조사에 나섰다. 노조는 유자은 건국대 이사장과 최종문 더클래식500 대표를 사립학교법 위반과 특정경제범죄가중처벌법상 횡령‧배임 등의 혐의로 검찰에 고발했다. 

건국대의 옵티머스 펀드 투자 건은 지난해 국감에서도 이슈가 됐다. 유은혜 사회부총리 겸 교육부 장관은 지난해 10월26일 국회 종합감사에서 건국대의 옵티머스 펀드 투자는 사립학교법 위반이라는 입장을 밝혔다. 

당시 국민의힘 조경태 의원은 건국대가 이사회와 교육부 허가 없이 옵티머스 펀드에 투자한 점을 지적하면서 “건국대는 이번이 처음이 아닌 상습적”이라며 “앞서 2017년 감사원으로부터 임대보증금 393억원을 보전하라는 지적을 받았다”고 비판했다.

유 장관은 “원칙과 절차에 따라 엄중히 처리할 것”이라고 말했다. 

120억원
회수했다

유 이사장은 지난해 국감 증인으로 참석해 “(건국대의)옵티머스 펀드 투자 사실은 언론 보도 이후 내부 보고를 통해 알게 됐다”며 “이전에는 전혀 몰랐다”고 입장을 밝힌 바 있다. 이후 교육부는 건국대의 옵티머스 펀드 투자에 대해 “건국대 법인이 수익용 기본재산을 부당하게 관리해 더클래식500이 투자 손실을 보고, 이사회를 부실하게 운영했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유 이사장과 건국대 법인 감사에 대해 임원 취임 승인 취소 절차를 추진하고, 이사 5명에 대해선 경고 조치를 내렸다. 유 이사장과 최 사장에 대해서는 배임 혐의로 검찰에 수사도 의뢰했다. 


건국대는 ‘학교도 피해자’라고 항변했다. 이어 “옵티머스 투자로 피해를 본 다른 여러 기업과 마찬가지로 더클래식500 역시 펀드 사기 판매의 피해자”라면서 “학교법인은 투자 손실을 최소화하기 위해 모든 법적 수단을 동원하고 자산관리 강화를 위해 제도도 개선하겠다”고 전했다. 

검찰은 지난 5월27일 유 이사장과 최 사장이 받고 있던 사립학교법 위반과 횡령·배임 혐의 등에 대해 증거불충분을 이유로 ‘혐의 없음’, 불기소 처분했다. 그러면서 건국대 측이 투자한 임대보증금 120억원을 기본재산에 속하지 않는 ‘보통재산’으로 판단했다. 투자할 때 관할청의 허가가 없어도 무관하다고 본 것이다. 

또 투자금을 개인 용도로 사용하지 않았고, 손실을 끼친 부분 역시 고의성을 입증할 수 없기 때문에 횡령·배임 혐의가 성립되지 않는다고 봤다. 같은 달 25일, NH투자증권에서 옵티머스 일반투자자를 대상으로 원금 전액을 반환하기로 한 것도 검찰의 판단에 영향을 미쳤다는 분석이 나온다.

검찰, 증거불충분 무혐의 처분
‘가짜 수산업자’가 검사 연결?

실제 건국대는 옵티머스 펀드에 투자한 120억원을 전액 회수한 것으로 알려졌다. 

노조 측은 강하게 반발했다. 노조는 “검찰의 이런 처분은 사립학교 운영을 관리·감독하는 교육부 입장에도 전면 위배되는 판단일 뿐만 아니라 교육기관인 사학에 만연해 있는 사학비리를 조장하는 결과를 가져오게 될 것”이라고 비난했다. 이어 “검찰의 이러한 판단을 규탄하며 검찰의 공정한 수사를 촉구하는 항고장을 서울고검에 제출할 예정”이라고 했다. 


최근 논란이 되는 부분은 검찰의 처분에 김씨의 입김이 들어갔는지 여부다. <한국일보>에 따르면 김씨는 지난해 8월 김경희 건국대 전 이사장과 A 부장검사의 골프 회동을 주선했다. 이 과정에서 옵티머스 펀드 투자 건과 관련해 A 부장검사에게 도움을 요청했다는 것.

이들이 만난 시점은 건국대의 옵티머스 펀드 투자 사건이 언론을 통해 알려지기 한 달여 전이다. 

건국대 측은 김 전 이사장 등이 골프 회동을 가진 시점과 교육부 고발, 검찰 수사 등이 시기상으로 맞지 않는다는 입장이다. 쟁점이 되는 부분은 골프 회동 과정에서 옵티머스 펀드 투자 건과 관련해 청탁이 있었는지, A 부장검사가 실제 영향력을 발휘했는지 여부 등이다. 직무관련성에 따라 뇌물죄가 적용될 수 있는 사안이다.

골프장서
무슨 얘기?

건국대 사정에 밝은 한 관계자는 “당시 검찰이 불기소 처분을 내려서 정말 놀랐는데, 이런 의혹이 있을 것이라곤 생각도 못했다”며 “확실한 수사가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건국대 측은 <일요시사>와의 통화에서 “(관련 사안에 대해)따로 할 말은 없다. 죄송하다”고 답했다. 


<jsjang@ilyosisa.co.kr>

 

<기사속기사> ‘가짜 수산업자’ 김씨 인맥의 중심
전직 언론인 송모씨 누구?

‘가짜 수산업자’ 김씨의 인맥은 전직 언론인 송모씨와 만나면서 넓어지기 시작했다. 김씨와 송씨가 인연을 맺은 건 구치소 수감 시절. 김씨는 특별사면으로 출소한 이후에도 송씨와 인연을 이어가며 그 친분을 토대로 이른바 유력 인사들을 소개받았다. 

송씨는 부산 지역 일간지와 서울의 월간지 기자 출신으로 언론계에서 잔뼈가 굵은 인물이다.

교도소서 만난 인연
건대 특임교수 출신?

오랜 기자 생활로 여야 정치인을 비롯해 각계각층 인사들과 친분이 두터운 것으로 알려져 있다. 경북 지역에서 총선 출마를 준비하다가 선거법 위반으로 징역형을 선고받아 복역했다. 

최근 ‘옵티머스 펀드 투자 사건’ 수사 무마 의혹이 불거진 건국대 언론홍보대학원에서 특임교수를 지낸 것으로 전해진다. 건국대 한 관계자는 “학교법인에서 대외협력실 실장을 한 것으로도 알고 있다”고 말했다. <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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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승자박’ 정청래 리더십 위기

‘자승자박’ 정청래 리더십 위기

[일요시사 정치팀] 박희영 기자 = 더불어민주당 정청래 대표의 리더십이 위기다. 1인1표제가 통과된 이후 힘을 받나 싶더니, 조국혁신당과의 합당 문제와 2차 종합특검 후보 논란 등 악재가 겹치면서 연임에 적신호가 켜졌다. 이재명 대통령도 시시각각 리더십 시험대에 올랐지만 결국 대권가도의 길을 걸었다. 정 대표도 무사히 ‘이재명의 길’을 걸을 수 있을까? 지난 10일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이 조국혁신당(이하 혁신당)과의 합당 논의를 ‘일시 중지’하기로 결론지었다. 늦은 시간까지 이어진 의원총회서 민주당 의원들은 대체로 지방선거 전 합당 추진을 중단하자는 의견을 낸 것으로 전해진다. 충분한 논의 없이 합당을 띄워 당을 혼란스럽게 하고, 당·청 관계까지 어색해진 만큼 ‘정청래 책임론’이 불거지면서 리더십은 타격을 입게 됐다. 더 좁아진 운신의 폭 이날 정 대표는 국회에서 비공개 최고위원회의를 연 뒤 브리핑에서 “오늘 민주당 긴급 최고위와 함께 지방선거 전에 합당 논의를 중단하기로 결정했다”고 밝혔다. 대신 지방선거 후 통합을 추진하기 위한 ‘연대와 통합을 위한 추진준비위원회(이하 통합추진준비위)’ 구성을 결정하고, 혁신당에도 준비위를 구성할 것을 제안했다. 정 대표는 “당 대표로서 혁신당과 통합을 제안한 것은 오직 지방선거 승리와 이재명정부의 성공을 위한 충정이었다”며 “그러나 통합 제안이 당 안팎에서 많은 우려와 걱정을 가져왔고, 통합을 통한 상승 작용 또한 어려움에 처한 것이 사실”이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여러 자리에서 의원들의 말씀을 경청했고 민주당 지지층 여론조사 지표도 꼼꼼히 살피는 과정에서 더 이상 혼란을 막아야 한다는 당 안팎의 여론을 무겁게 받아들이지 않을 수 없었다”고 설명했다. 당을 혼란케 한 점에 대해서도 사과했다. 정 대표는 “그동안 통합 과정에서 있었던 모든 일들은 저의 부족함 때문”이라며 “국민 여러분과 민주당 당원들, 혁신당 당원들께 사과드린다”고 고개를 숙였다. 당초 이달 13일 입장을 밝히겠다던 혁신당은 날짜를 앞당겨 지난 11일 긴급 최고위원회를 열고 사안에 대해 입을 열었다. 혁신당 조국 대표는 통합추진준비위 구성에 동의하며 6월 지방선거 연대 가능성을 열어뒀다. 민주당을 향한 뼈있는 말도 이어졌다. 조 대표가 “선거 후에는 통합의 의미가 무엇인지 확인하고 내용과 방식에 대한 논의를 책임감 있게 이어가야 할 것”이라고 강조한 것이다. 그동안 혁신당은 민주당에 흡수되는 방법을 피하고자 했던 만큼 합치는 방식에 대한 합의점을 찾는 것이 합당의 최대 과제로 남아있다. 조 대표는 “양당 간 회동이 이뤄지면 먼저 민주당이 제안한 연대가 지방선거에서의 연대인지 아니면 추상적 구호로서의 연대인지 확인해야 한다”며 “지방선거 연대가 맞다면 추진준비위에서 그 원칙과 방법을 정할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이 모든 과정에서 양당은 상호 신뢰와 존중을 강화하는 방향으로 진행해야 한다”며 “특정 정치인 개인과 계파의 이익이라는 관점에서 접근하면 반드시 역효과가 난다. 국민과 양당 당원께 또다시 실망을 드리고 말 것”이라고 경고했다. 제동 걸린 민주당-혁신당 합당…다음 복안은? ‘쌍방울 변호인’까지…제대로 꽂힌 ‘2연타’ 조 대표는 정 대표의 사과를 수용하겠다는 입장도 밝혔다. 조 대표는 “정 대표께서 혁신당 당원에게 표명한 사과를 받아들인다”며 “혁신당 당원은 당으로 향해지는 비방과 모욕에 큰 상처를 입었다. 다시는 이런 일이 없어야 한다”고 밝혔다. 혁신당 박병언 선임대변인도 회견 후 기자들과 만나 “(민주당이) 단순히 연대라고만 표현했는데 우당 간 레토릭적 연대를 의미하는지, 실질적으로 두 당이 지선을 치러낸다는 선거 연대인지 분명히 하는 것이 좋을 것 같다”며 민주당의 답변을 요구했다. 앞서 민주당은 합당이 아닌 ‘지선 이후 통합’이라는 단어를 썼는데, 민주당의 답변에 따라 향후 당의 대응이 달라질 것으로 풀이된다. 합당 논의가 중지되면서 당이 숨 고르기에 들어가나 싶더니 2차 종합특검으로 추천된 전준철 변호사가 새로운 불씨가 됐다. 민주당이 추천한 전 변호사는 2023년 ‘불법 대북 송금 사건’으로 구속 기소된 김성태 전 쌍방울 회장 등의 변호인으로 선임된 인물이다. 1심 이후 사임했지만, 친명(친 이재명)계에서는 “이재명 죽이기” “제2의 체포동의안 사태” 등 격하게 반발했다. 친청(친 정청래)계로 분류되는 이성윤 최고위원이 전 변호사를 추천하면서 반발이 더욱 거세졌다는 해석이 나온다. 전 변호사는 검사 시절 김건희 주가조작 사건, 한동훈 채널A 사건 등을 담당했다. 이 최고위원은 “(전 변호사가) 윤석열·김건희 수사를 할 때 서슬 퍼런 윤 총장하에서도 결코 소신을 굽히지 않고 강직하게 수사했다”며 “이번 2차 종합특검의 중요성에 비춰 적임자로 판단했다”고 설명했다. 이어 “정확한 팩트 확인 없이 전 변호사가 김성태 대북 송금 조작 의혹 사건을 변호했고, 그런 변호사를 추천함으로써 마치 정치적 음모가 있는 것처럼 의혹이 확산하는 것을 매우 안타깝게 생각한다”고 주장했다. 정·이 차이는? ‘윤정부에서 탄압을 받은 변호사’를 강조했지만, 민주당을 설득시킬 명분이 부족했다는 지적이 나온다. 그러자 이 최고위원은 “이번 2차 종합특검 추천 과정에서 조금 더 세밀하게 살피지 못한 것을 유감스럽게 생각하고, 앞으로는 더 세심히 살피겠다”고 사과했다. 정 대표도 거듭 고개를 숙였다. 정 대표는 해당 사태를 인사 검증 실패에 따른 ‘사고’로 규정하고 “당에서 벌어지고 있는 모든 일의 책임은 당 대표인 저에게 있다. 대단히 죄송하다”며 사과의 뜻을 밝혔다. 지도부가 진화에 나섰지만 사태는 이 최고위원을 향한 사퇴 압박으로 이어졌다. 이번 사태가 단순한 인사 사고가 아닌 정청래 체제를 향한 불만이 표면화된 결과라는 해석이 나온다. 합당 무산과 후보자 논란으로 정 대표의 리더십이 2연타를 맞으며 8월 전당대회를 앞두고 연임 가능성도 불투명해졌다. 정 대표는 직접 연임 여부를 밝히지 않았지만 1인1표제 등 당원의 힘을 강화하는 작업에 공을 들이며 대권주자로 나서기 위한 입지를 다지고 있다는 해석이 우세했다. 혁신당과의 합당 이후 지방선거를 승리로 이끈다면 공은 정 대표에게 돌아간다. 그 성과를 토대로 대표 연임에 성공한 뒤 차기 대권까지 밟는 이른바 ‘이재명의 길’을 염두에 뒀다는 것이다. 여의도가 바라본 이재명의 길은 순탄치만은 않았다. 친문(친 문재인)계가 민주당을 꽉 쥐던, 시절 그는 한 줌의 계파도 없이 고군분투하며 기득권에 맞섰다. 온건파 사이에서 파격적인 개혁을 앞세워 당원들의 갈증을 해소했고, 이들을 ‘개딸(개혁의 딸)’로 묶어 본격적인 팬덤 정치에 나섰다. 당 대표 시절에는 대선에 출마하려는 대표의 사퇴 시한인 ‘대선 1년 전’에 예외를 두는 내용의 당헌을 바꾸면서 극심한 내홍에 시달렸다. 그럼에도 당시 이재명 대표는 자신 있게 뜻을 밀어붙였고 전당대회서 최종 득표율 85.4%로 연임에 성공했다. 리더십 심폐소생 권력의 정점에 선 이 대통령이 걸어온 길은 비주류에서 주류로 거듭나고 싶어하는 정치인들의 ‘롤모델’로 자리 잡았다. 정 대표는 그런 거친 이재명의 길 초입에 들어섰다. 한 정치권 관계자는 “‘사이다 화법’으로 지지 세력을 키우는 시도는 이 대통령과 매우 유사하다. 이 대통령도 성공하지 못했던 1인1표제를 정 대표는 해냈다”면서도 “서둘렀던 게 문제다. 합당도 시기가 적절하지 못했다”고 아쉬움을 드러냈다. 이어 “이 대통령은 당 대표이던 시절부터 모든 것이 순차적으로 맞아떨어졌다. 그때는 민주당이 야당이었고 윤석열·김건희라는 공공의 적이 있으니 친명과 비명(비 이재명)이 매일같이 싸워도 봉합할 명분이 충분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이 대통령과 정 대표의 차이는 측근의 유무다. 이 대통령은 성남시장일 때부터 함께해 온 이른바 ‘성남 라인’이 존재했고, 김현지 대통령비서실 제1부속실장 등 측근이라고 부를 수 있는 사람이 존재했다”며 “친청을 자처하는 의원들이 있지만 이들을 측근이라고는 볼 수 없다. 김어준·유승민 두 사람이 정 대표에게 영향을 주는 인물로 꼽히지만, 그들조차도 자기 정치에 당 대표를 쓰는 느낌이 든다. 누가 중심이고, 누가 휘둘리는지 알 수가 없다”고 지적했다. 또 다른 승부수를 던지지 않는 한 지방선거가 정 대표의 마지막 리더십 시험대가 될 것이란 관측에 힘이 실린다. 지방선거에 사활을 걸어 ‘압승’을 끌어낸다면 무너진 리더십을 다지는 건 물론 8월 전당대회 출마 명분까지 얻을 수 있다. 당장은 정 대표가 타격을 받았지만 선거 국면을 통과하면서 과오가 희석되는 흐름에 기대를 건 셈이다. 민주당은 오는 4월 중순까지 모든 지방선거 공천을 마무리하겠다는 방침을 세웠다. 다만 경선 규칙과 공천 룰 등을 두고 계파 간 갈등이 재점화할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모든 권력에는 비판이 따르기 마련”이라는 한 정치권 관계자의 말처럼 반대 여론을 찬성 여론으로 바꾸는 과정에서 리더십이 판가름 난다. 시계를 돌려 2024년 4월, 이 대통령 역시 당 대표이던 시절 공천 시즌을 앞두고 ‘비명횡사’ 논란에 휩싸였다. 현역 의원 의정평가 하위 20% 통보를 박은 이는 6명으로 모두 비명계였던 만큼 의원들 대다수가 ‘친명’을 내세워 마케팅을 이어갔다. 이, 비주류서 180석 야당 대표로 지선 앞둔 대표님의 큰 그림은? 공천 갈등은 당 지지율 하락으로 이어졌고 민주당이 패배했던 2012년 총선이 되풀이될 것이란 당내 우려가 커졌다. 하루가 멀다고 나오는 사퇴 요구에 이 대표는 “툭 하면 사퇴 요구를 하는 분들이 있는데, 그런 식으로 사퇴하면 1년 내내 대표를 바꿔야 한다”며 오히려 강경한 태도를 보였다. 친명과 비명 간의 갈등은 “환골탈태 과정에서 생기는 약간의 진통”으로 진단했다. 이 대표의 리더십이 총선의 최대 걸림돌로 여겨졌지만, 180석 공룡 야당을 탄생시키면서 여론을 뒤집었다. 정 대표 역시 “비 온 뒤에 땅이 굳는다고 (합당 논란을) 전화위복의 기회로 삼아 지방선거 승리에 올인하겠다”며 반전의 기회를 모색하고 있다. 그러나 어떤 기습 행동으로 당을 흔들지 종잡을 수 없어 잃어버린 신임을 되찾는 것이 지방선거를 앞둔 첫 번째 과제로 여겨진다. 정 대표는 ‘억울한 컷오프를 최소화하는 것’에 방점을 찍었다. 지난 11일에는 “공천 과정 전반의 불공정·불합리한 사례를 사전에 점검해 신뢰받는 공천 시스템을 구축하고자 노력하겠다”며 공천신문고 구성 안건을 의결했다. 이날 민주당 박수현 수석대변인은 “민주당이 합당 과정에 여러 가지 내홍을 겪고 걱정을 끼쳐드렸지만 그런 와중에도 할 일은 빈틈없이 해왔다”며 “민주당은 공정한 경선을 통한 공천, 투명한 공천이 지방선거 승리의 요체임을 여러 차례 밝혀왔다. 당 대표의 이 같은 의지가 (공천신문고) 제도를 통해서 충실히 반영되고 있다는 점을 다시 한번 말한다”고 강조했다. 정 대표가 ‘이재명 모델’로 노선을 잡았지만 ‘제2의 ○○○’이라는 꼬리표가 오히려 발목을 잡을 것이란 우려가 나온다. 대선을 앞두고 과감하게 오른쪽으로 핸들을 꺾은 이 대통령의 ‘중도 보수’ 전략까지 정 대표가 따라 할 수 있겠냐는 점에서다. 한 민주당 관계자는 “문재인 전 대통령에 실망한 사람들이 정권교체에 손을 들어줬다. 이 대통령이 임기를 마칠 때 즈음이면 정권 유지든 교체든 국민의 마음속에 새로운 잣대가 세워질 것”이라며 “시간이 걸리더라도 좌우 통합을 이뤄낼 지도자를 원할지, 지금보다 조금 더 강경한 지도자를 원할지는 현 정부에 달려 있다. 그 시대에 맞는, 또 국민이 원하는 사람이 차기 대권주자로 분류될 것”이라고 봤다. 신선한 뉴페이스? 이어 “이 대통령은 후임자를 키우지 않는다고 한다. 미래의 민주당은 당 대표도, 차기 대권주자도 ‘포스트 이재명’이 아닌 새로운 모델이 필요하다”며 “이 대통령의 행보가 잘못됐다는 것이 아니라 이재명 그림자에만 메어서는 민주당이 앞으로 나아갈 수 없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hypak28@ilyosisa.co.kr> <기사 속 기사> 극단으로 치닫는 여야 갈등 지난 12일 이재명 대통령이 설을 앞두고 민생 회복과 국정 안정을 위한 초당적 협력 방안을 논의하기 위해 여야 대표를 오찬에 초대했지만, 약속 시간을 한 시간 앞두고 국민의힘 장동혁 대표가 불참을 통보했다. 장 대표는 “(이번 회동이) 부부 싸움하고 둘이 화해하겠다고 옆집 아저씨 불러놓는 꼴이라는 것을 충분히 알고 있었다”며 불쾌한 기색을 드러냈다. 이어 “오늘 회동에 가면 여야 합치를 위해 무슨 반찬을 내놨고, 쌀에 무슨 잡곡을 섞었고 그런 것들로 오늘 뉴스를 다 덮으려 할 것”이라며 “대한민국 사법시스템 무너지는 소리를 덮기 위해 여야 대표와 대통령이 악수하는 사진으로 모든 걸 다 덮으려 할 것”이라고 주장했다. 전날 밤 민주당이 추진하는 이른바 ‘재판소원법’과 ‘대법관증원법’이 국민의힘 반발 속에 여당의 주도로 국회 법제사법위원회 전체회의를 통과한 것에 대한 불만을 표현한 것으로 풀이된다. 이에 정청래 대표는 SNS를 통해 “국민과 대통령에 대한 예의는 눈곱만큼도 없는 국민의힘의 작태에 경악한다”며 “본인이 요청할 때는 언제고 약속 시간 직전에 이 무슨 결례인가. 국민의힘, 정말 ‘노답(답이 없음)’”이라고 강하게 비판했다. 청와대도 “이번 회동은 국정 현안에 대한 소통과 협치를 위한 자리였다. 그런 취지를 살릴 수 있는 기회를 놓쳤다는 데 깊은 아쉬움을 전했다”고 밝혔다. <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