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 건국대-중앙약품판매 수상한 동업 추적

법 빈틈 파고든 케이팜 미스터리

[일요시사 취재1팀] 장지선 기자 = 사립대학 학교법인과 의약품 납품업체의 합작으로 만들어진 직영도매업체는 양쪽의 니즈를 모두 충족시킨다는 점에서 ‘황금알을 낳는 거위’나 다름없다. 이를 통해 학교법인은 배당수익을, 납품업체는 안정적인 수익구조를 확보할 수 있다. 하지만 그 이면에 불투명한 설립 과정, 리베이트 의혹 등 논란도 끊이지 않는다.

의료기관 직영도매업체 논란은 의약품 유통업계에서 1990년대부터 30여년간 이어진 해묵은 주제다. 의약품 유통업계는 ‘불법 리베이트’ 가능성을 들어 직영도매업체 설립을 금지해야 한다는 입장을 고수하고 있다. 반면 직영도매업체 설립을 지지하는 쪽에서는 현행법상 문제될 게 없다고 맞서는 중이다.

지분 49%
허점 노려

약사법 제47조4항은 ‘의약품 도매상은 특수한 관계에 있는 의료기관이나 약국에 직접 또는 다른 의약품 도매상을 통해 의약품을 판매해선 안 된다’고 명시하고 있다.

특히 의약품 도매상이 법인인 경우 해당 법인을 사실상 지배하고 있는 자(해당 법인의 총출연금액·총발행주식·총출자지분의 100분의 50을 초과해 출연 또는 소유하는 자 및 해당 법인의 임원 구성이나 사업운영 등에 대해 지배적인 영향력을 행사하는 자)는 의약품을 판매할 수 없다.

논란은 ‘총출자지분의 100분의 50을 초과’ 부분에서 불거진다. 사립대학 학교법인이 현행법의 빈틈을 교묘하게 파고들어 직영도매업체의 지분 49%를 확보, ‘사실상’ 지배력을 행사하고 있다는 의혹이 끊이지 않는 것.


의약품 유통업계는 약사법을 개정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지만 20대 국회에서도 회기 만료로 법안이 폐기되는 등 상황이 여의치 않다. 

2018년 유명 사립대학들을 중심으로 직영도매업체 설립 움직임이 포착됐다. 1991년부터 시작된 의약품 유통업계와 직영도매업체 간의 전쟁이 또다시 수면 위로 올라온 것이다. 2019년 교육부는 학교법인의 직영도매업체 설립에 대한 민원이 여러 차례 제기된 점을 들어 부속병원을 가진 전국 사립대학 36곳을 대상으로 의약품 납품업체 거래실태를 조사하기에 이른다. 

김경희 전 이사장-김장열 회장
학교법인-의약품 납품업체 합작

건국대병원을 산하에 둔 건국대 법인 역시 자료 제출을 요구받았다. 당시 건국대 법인은 2019년 6월에 설립된 의약품 도매업체 ‘케이팜’에 49%의 지분을 투자한 상태였다. 나머지 51%의 지분은 의약품 도매업체 중앙약품판매(35.7%)와 의약품 도매업체 제이팜코리아(15.3%)가 투자했다.

케이팜은 2019년 9월부터 본격적으로 건국대병원에 약을 납품하기 시작했다.

이후 3개월 만인 2019년 12월 케이팜을 둘러싼 논란이 불거졌다. 케이팜이 건국대병원 지하 창고를 사용하면서 임대료로 월 6000만원을 내고 있다는 의혹이 불거진 것인데 1년이면 7억2000만원 수준이다. 언론 보도에 따르면 주변 시세와 비교해 20~30배는 비싼 임대료를 지급하고 있는 셈이었다. 

당장 리베이트 의혹이 불거졌다. 업체가 병원에 의약품을 납품하는 조건으로 고가의 임대료를 지불하고 있다는 의혹이 나온 것이다. 일종의 우회 리베이트 의혹이다. 당시 건국대 법인은 임대료가 적정 수준이라고 해명한 바 있다. 이후 잠잠해지나 했던 케이팜 논란은 최근 그 설립 배경을 두고 다시 불붙는 모양새다.


특히 건국대 법인이 3억원을 출자해 100% 지분을 소유한 ㈜건국파트너십컴퍼니가 논란의 중심이 됐다. 건국파트너십컴퍼니는 건국대 법인이 2019년 4월 설립한 별도의 자회사다. 건국대 법인은 사립학교법 6조(사업)에 근거해 이사회 의결, 교육부 승인을 거쳐 건국파트너십컴퍼니를 설립했다고 밝혔다. 

업체들 손절
한 곳만 남겨

사립학교법 6조는 ‘학교법인은 그가 설치한 사립학교의 교육에 지장이 없는 범위에서 그 수익을 사립학교의 경영에 충당하기 위해 수익을 목적으로 하는 사업을 할 수 있다’고 명시하고 있다. 

이 과정에서 건국대 법인은 출자금 3억원에 대한 증여세를 낸 것으로 확인됐다. 세법에 따르면 학교법인이 전액 출자해 영리내국법인을 설립하는 경우 5% 초과부분을 취득하는 데 사용한 재산의 가액을 증여가액으로 해 증여세가 과세된다. 

건국대 법인이 증여세를 납부하면서까지 건국파트너십컴퍼니를 만든 배경을 두고 케이팜 설립을 위한 게 아니냐는 의혹이 제기됐다. 실제 두 회사는 각각 2019년 4월17일(건국파트너십컴퍼니)과 2019년 6월18일(케이팜) 등 2개월 간격으로 설립됐다. 

건국대 법인은 “건국파트너십컴퍼니는 장애인 일자리 창출과 고용 확대를 위해 설립했다”고 주장했다. 이어 “11명의 중증 장애인 직원을 고용해 교내의 2개 카페에서 비장애인과 근무하고 있다”며 “케이팜은 학교법인이 설립한 기관이 아니라 단지 건국파트너십컴퍼니가 지분 일부를 투자했을 뿐”이라고 설명했다.

건국파트너십컴퍼니의 대표이사는 건국대 법인 경영기획실장인 A씨가 맡고 있는 것으로 확인됐다. 경영전략과장인 B씨는 사내이사로 등록돼있다. 흥미로운 점은 건국파트너십컴퍼니가 주식회사 임에도 불구하고 A씨와 B씨가 급여를 받고 있지 않다는 사실이다. 두 사람은 학교법인을 통해서만 급여를 받고 있다. 

일반적으로 주식회사의 경우 경영상 책임 소재는 대표이사로 향한다. 가령 회사에서 횡령‧배임 등의 문제가 불거질 경우 대표이사는 피해갈 방법이 많지 않다. 직접 개입하지 않았더라도 회사에 문제가 생기면 도의적인 부분에서라도 책임론이 불거지는 게 대표이사 자리다.

‘직영도매업체’ 해묵은 논쟁
 건국대, 2019년 뛰어 들어

그럼에도 불구하고 A씨는 돈을 전혀 받지 않은 채 건국파트너십컴퍼니의 대표이사직을 수행하고 있는 셈이다.

건국대 법인은 “(A씨와 B씨는) 건국대 정관과 사립학교법 복무 관련 조항에 의거해 겸직 허가를 승인받아 무급 비상근직으로 근무하고 있다”며 “본 직무 수행에 지장이 없고, 개인 영리추구가 아닌 대학 전출금 수익 마련을 위해 근무 중”이라고 밝혔다.

또 건국대 홍보실 관계자는 “그 자리(경영기획실장)에서 근무했던 분들이 건국파트너십컴퍼니의 대표이사를 맡아왔다”며 “그들에게도 급여가 지급된 적은 없다”고 덧붙였다. 


케이팜 설립 과정에서 의구심을 자아내는 부분은 이뿐만이 아니다. 당초 건국대병원은 5~6개의 도매업체로부터 의약품을 공급받았다. 하지만 그중에서 건국파트너십컴퍼니와 함께 케이팜에 지분투자를 한 업체는 ㈜중앙약품판매 한 곳에 불과하다.

한 건국대 관계자는 “다른 업체와 계약을 연장하지 않는 방식으로 중앙약품판매만 남겼다”고 귀띔했다. 

다시 말해 건국대 법인의 출자를 통해 만들어진 건국파트너십컴퍼니는 설립 직후 중앙약품판매와 함께 지분을 투자해 케이팜을 출범시켰다. 이후 케이팜은 중앙약품판매로부터 사들인 의약품을 건국대병원에 재판매하는 방식으로 독점 공급하고 있다.

케이팜 설립 과정에서부터 건국대 법인과 중앙약품판매의 교감이 있었던 게 아니냐는 의혹이 제기되는 대목이다.

케이팜에 지분을 투자한 또 다른 업체인 제이팜코리아는 김장열 중앙약품판매 회장의 아들로 추정되는 인물이 대표이사를 맡고 있다. 해당 인물은 케이팜에도 사내이사로 이름을 올려둔 상태다. 중앙약품판매, 제이팜 코리아, 케이팜은 사무실 호수만 다를 뿐 같은 건물을 사용하고 있다. 

급여 없는
대표이사


케이팜의 지난해 매출은 518억원에 이른다. 이 중 거의 대부분의 매출이 건국대병원에서 나왔다. 2019년 매출 166억원 중 건국대병원으로부터 발생한 매출은 99.9%(166억원)에 달한다. 지난해의 경우 518억원의 매출 중 93.3%인 483억원이 건국대병원에서 나왔다.

케이팜이 건국대병원에 의약품을 공급하기 위해 설립된 업체로 볼 수 있는 부분이다.

이는 케이팜의 배당성향을 통해 더 뚜렷하게 확인된다. 케이팜은 배당에 있어서 ‘아낌없이 주는 나무’였다. 지난해 케이팜의 당기순이익은 12억원. 이 중 케이팜은 11억원을 배당했다. 지분대로면 건국파트너십컴퍼니는 5억5000만원가량을 배당금으로 받은 셈이다. 

앞서 2019년에도 케이팜은 당기순이익 3억3000만원 중 3억원을 배당했다. 2019년과 지난해 각각 배당성향은 88.9%, 91.1%로 고배당이 이뤄졌다. 100원을 벌었다면 90원을 주주에게 돌려준 셈이다. 이로써 건국파트너십컴퍼니는 케이팜 설립 2년 만에 출자금을 전부 회수한 것으로 추정된다.

여기에 케이팜은 중앙약품판매 매출 향상에도 기여 중이다. 케이팜은 지난해 중앙약품판매로부터 238억원가량의 의약품을 매입했다. 지난해 중앙약품판매 총매출의 31%에 달하는 수치다. 실제 중앙약품판매는 2019년 621억원에서 지난해 758억원으로 매출이 늘었다. 

눈길을 끄는 대목은 매출이 137억원 늘어나는 동안 매출총이익은 56억원에서 49억원으로 되레 줄었다는 점이다. 영업이익도 12억원에서 11억원으로 줄어들었다. 판매비와 관리비를 줄였음에도 불구하고 영업이익률이 1.9%에서 1.4%로 감소한 것이다.

납품업체는 매출 늘고
학교법인은 배당 받고

이 대목에서 중앙약품판매가 케이팜에 의약품을 싸게 공급한 게 아니냐는 추정이 나온다.

케이팜의 지분구조는 2019년 건국파트너십컴퍼니(49%), 중앙약품판매(35.7%), 제이팜코리아(15.3%)에서 지난해 건국파트너십컴퍼니(49%), 제이팜코리아(35.3%), 중앙약품판매(15.7%)로 바뀌었다. 중앙약품판매가 갖고 있던 주식 1만주가 제이팜코리아로 이동했다. 김 회장의 ‘아들 회사 챙기기’ 의혹이 불거질 수 있는 대목이다.

결론적으로 케이팜에 지분을 투자한 세 업체는 완벽한 ‘윈윈’ 상태의 계약을 맺은 셈이 됐다. 건국대 법인은 배당 수익, 중앙약품판매와 제이팜코리아는 고정적인 수익 통로를 확보한 것은 물론 배당 수익도 확보했다. 업체 모두 안정적 수익이 보장된 모양새다. 

하지만 케이팜에 지급하는 고액 임대료 논란은 현재진행형이다. 임대료를 통한 우회 리베이트 의혹은 아직 불식되지 않은 셈이다. 지난해 케이팜의 지급임차료는 6억7000만원에 달한다. 중앙빌딩 창고 임차료로 추정되는 1억2900만원을 제외하면 건국대병원 창고사용료로 5억4000만원가량을 쓰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단순 계산으로 월 4500만원 수준이다. 

2019년 12월 ‘월세 6000만원’ 논란과 비교하면 약간 줄어들긴 했지만 여전히 높다는 게 중론이다. 건국대 법인은 “케이팜에서 사용하는 창고는 한 군데가 아니고, 당시 논란이 된 이후 임대료 조정이 이뤄졌다”고 해명했다.

건국대 법인과 중앙약품판매 계열 업체들의 합작으로 탄생한 케이팜은 양측 입장에서는 최고의 결과물이라는 말이 나온다. 그 배경으로 김경희 전 건국대 이사장과 김장열 중앙약품판매 회장의 친분이 거론된다.

중앙약품판매는 1991년 설립 이래 건국대병원이 민중병원일 때부터 약을 납품해온 것으로 알려져 있다. 김 전 이사장은 2001년 1월 이사장에 취임해 2017년 4월 학교를 떠나기까지 15년 넘게 건국대 법인을 이끌었다. 한 건국대 관계자는 “두 사람은 법인 이사장과 병원 납품업체 회장으로 오랫동안 끈끈한 관계를 유지해온 것으로 알고 있다”고 말했다. 

20년 넘는
진한 인연?

건국대 법인은 “케이팜 설립은 2019년 상반기며, 김 전 이사장의 임기와는 무관하다”며 “지분투자 역시 김 전 이사장이나 김 회장과는 전혀 별개의 일”이라고 강조했다. 하지만 두 사람은 지난 5월에도 김 전 이사장의 단골 음식점인 서울 성북동 레스토랑에서 만난 사실이 확인된 바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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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엄 1년’ 여전히 요동치는 정치판

‘계엄 1년’ 여전히 요동치는 정치판

[일요시사 정치팀] 박희영 기자 = 2024년 12월3일 오후 10시27분, 윤석열 전 대통령이 비상계엄을 선포했다. 국가 최고 통수권자의 선택은 정치권을 넘어 대한민국 전역을 강타했다. 내란의 밤이 지나고 탄핵의 강을 건너 마침내 대선 정국까지 넘었다. 1년이라는 시간이 흘렀지만 여전히 여의도 곳곳에 계엄의 여파가 남아 있다. 그날 오후 10시 무렵 윤석열 전 대통령이 예산안 관련 긴급 발표를 진행할 예정이라는 정보지가 돌았다. 얼마 뒤 정장 복장으로 대통령실 브리핑룸 카메라 앞에 나타난 윤 전 대통령은 다소 격양된 어투로 당시 야당이었던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을 강하게 비판했다. 스스로 걸어간 자멸의 길 민주당이 주요 예산을 전액 삭감해 국가 기능을 훼손하고 대한민국을 공황 상태로 만들었다는 것이다. 그러더니 돌연 야당을 반국가 세력으로 몰아세웠다. 윤 전 대통령은 “북한 공산 세력의 위협으로부터 자유 대한민국을 수호하고 우리 국민의 자유와 행복을 약탈하고 있는 파렴치한 종북 반국가 세력을 일거에 척결하고 자유 헌정 질서를 지키기 위해 비상계엄을 선포한다”고 밝혔다. 1979년 이후 45년 만에 내려진 비상계엄이었다. 한 시간도 지나지 않아 국회가 봉쇄됐고 헬기를 타고 도착한 무장 군인들이 안으로 들이닥쳤다. 국회 밖에서는 시민이, 안에서는 야당 보좌진들이 군인과 대치하면서 그야말로 일촉즉발의 상황이 이어졌다. 먼저 국민의힘 한동훈 전 대표가 입장을 냈다. 한 전 대표는 윤 대통령의 비상계엄 선포에 대해 “대통령의 비상계엄 선포는 잘못된 것”이라며 “국민과 함께 막겠다”고 밝혔다. 이후 한 전 대표는 탄핵을 찬성한다는 의미의 ‘찬탄파’로 찍혀 친윤(친 윤석열)계의 거센 비난을 받았다. 민주당 당시 이재명 대표는 실시간 방송을 통해 “대통령의 불법적인 비상계엄 선포는 무효”라며 민주주의의 마지막 보루인 국회를 지키기 위해 신속히 국회로 와달라는 말을 남겼다. 내란 사태가 지나고 난 뒤 이 대통령은 이날을 회상하며 “이 상황을 최대한 빨리 많은 시민에게 알려야 한다는 생각에 실시간 방송을 시작했다”고 전했다. 뒤이어 국민의힘 추경호 전 원내대표가 비상 의총을 소집했다. 추 전 원내대표는 국회 예결위 회의장으로 의총을 소집했다가 10분 뒤 장소를 여의도 당사로 옮겼다. 그리고 약 20분 뒤 다시 국회 예결위장으로 바꿨다. 이는 현재 추 전 원내대표가 받는 ‘비상계엄 해제 표결 방해 의혹’과 연결된다. 다음 날 새벽인 4일 오전 1시 비상계엄 해제 요구안이 국회에 상정됐다. 국회경비대가 국회 출입을 통제하자 담을 넘어서 국회로 진입한 우원식 국회의장은 결의안 상정에 앞서 “(윤 전 대통령이) 계엄령을 선포하면 국회에 지체 없이 통보해야 한다는 의무조항이 있으나 통보가 없었고, 이는 대통령의 귀책사유”라며 “우리는 그와 관계없이 (비상계엄 해제 의결을 위한) 절차를 진행하겠다”고 말했다. 결의안은 여야 의원 190명이 참석한 가운데 190명 전원이 찬성해 가결됐다. 국회 본청에 투입됐던 계엄군은 철수했고 이로써 윤 전 대통령이 선포한 비상계엄은 약 세 시간 만에 무효가 됐다. 비상계엄의 끝은 탄핵 정국의 시작으로 이어졌다. 민주당을 비롯한 ▲조국혁신당 ▲개혁신당 ▲진보당 ▲기본소득당 ▲사회민주당 등 야6당은 계엄이 해제된 당일 ‘윤석열 대통령 탄핵소추안’을 국회에 제출했다. 이들은 윤 전 대통령의 비상계엄을 ‘내란’으로 규정하고 “하야하지 않으면 탄핵소추를 진행할 것”이라고 압박했다. 국민의힘은 탄핵 반대를 당론으로 추인했다. 2017년 박근혜 전 대통령이 탄핵되는 과정을 겪으며 당이 벼랑 끝까지 몰렸던 점 등을 의식했다는 해석에 힘이 실렸다. 대통령에서 내란수괴 피의자로 썩은줄 알면서도 못 놓는 윤 동아줄 이날을 기점으로 국민의힘에서는 분열의 조짐이 보였다. 탄핵을 반대하는 ‘반탄파’의 친윤계와 찬탄파 친한(친 한동훈)계로 당원들이 갈라서면서 내부 총질이 시작된 것이다. 당초 한 전 대표 역시 탄핵에 반대하는 입장이었지만 비상계엄 당시 자신을 포함한 주요 정치인을 체포하려고 한 정황이 드러나면서 입장을 선회한 것으로 보인다. 여기서부터 시작된 두 계파의 갈등 또한 현재진행형이다. 비상계엄이 선포된 나흘 뒤인 7일, 윤 전 대통령에 대한 탄핵소추안이 정족수 미달로 국회에서 부결돼 자동 폐기됐다. 재적 의원 300명 중 195명이 참석한 가운데 탄핵이 상정됐지만 국민의힘 의원 대다수가 불참하면서 투표가 불성립된 것이다. 이날 표결에 참여한 국민의힘 의원은 김예지, 김상욱, 안철수 의원뿐이었다. 민주당 박찬대 의원은 표결에 참여하지 않은 의원 105명의 이름을 한 명 한 명 호명하며 본회의장으로 와줄 것을 요구했다. 두 번째 탄핵소추안은 일주일 뒤인 14일 국회에 상정됐다. 당시 국민의힘은 “표결 참석을 제안한다”면서도 탄핵 반대 당론을 유지했다. 결국 300명 가운데 ▲찬성 204표 ▲반대 85표 ▲기권 3표 ▲무표 8표로 비상계엄이 선포된 지 11일 만에 윤 전 대통령에 대한 탄핵소추안이 가결됐다. 공은 헌법재판소(이하 헌재)로 넘어갔고 긴 진통 끝에 지난 4월4일 헌법재판관의 만장일치로 윤 전 대통령이 파면됐다. 현직 대통령의 파면에 따라 조기 대선이 치러졌고 민주당에서는 이변 없이 이재명 대표가 대선주자로 나섰다. 국민의힘에서는 여전히 찬탄파와 반탄파가 대립했고 어느 날 늦은 밤을 틈타 ‘대선후보 날치기’를 시도하는 등 웃지 못할 촌극도 벌어졌다. 민주당은 ‘내란 세력 청산’을 앞세웠다. 이 후보는 대통령으로 당선되면 비상 경제 대응 태스크포스(TF) 구성을 약속하는 등 경제 성장을 강조하면서도 “내란 세력의 죄는 단호하게 벌하겠다”고 강조했다. 민주당 역시 “이번 선거는 내란 정권에 대한 준엄한 심판”임을 강조하며 윤 전 대통령과 국민의힘 심판론을 부각시켰다. 두 번의 선거 강경파만 남았다 6·3 조기 대선 투표 결과 이재명 후보가 49.42%를 득표하면서 21대 대통령으로 선출됐다. 국민의힘 김문수 후보는 41.15%로 이 후보가 8.27%p 차이로 앞섰다. 계엄 극복과 내란 청산을 외친 민주당이 국민의 선택을 받은 것이다. 국민의힘이 윤 전 대통령과 완전히 절연하지 못한 점 또한 보수가 정권 재창출에 실패한 원인으로 꼽힌다. 탄핵 정국 당시 앞장서서 윤 전 대통령을 엄호한 국민의힘 윤상현 의원은 ‘윤석열 대통령 탄핵소추안 표결 불참’에 따른 역풍을 우려하던 당 의원에게 자신이 박 전 대통령 탄핵에 앞장서서 반대한 점을 언급하며 “나는 끝까지 갔다. 그때 욕 많이 먹었다. 그런데 1년 후에는 ‘윤상현 의리 있어 좋아’(라고 하면서) 무소속으로 나와도 다 찍어줬다”고 말했다. 김문수 후보 역시 대선 투표 직전까지 윤 전 대통령에게 단호히 탈당을 요구하지 못했다. 김 후보는 “대통령 탈당(여부)은 본인 뜻”이라며 “자기가(국민의힘이) 뽑은 대통령을 탈당시키는 방식으로 책임이 면책될 수 없고, 도리도 아니”라고 설명했다. 국민의힘은 대선에서 패배했지만 아직도 윤 전 대통령의 그림자로부터 벗어나지 못했다. 친윤계를 비롯한 중진 의원의 지역구가 보수의 심장인 TK(대구·경북)임을 고려했을 때, 윤 전 대통령과 결별하는 것은 핵심 지지층을 놓는 것과 같다는 우려에서다. 지난 8월 국민의힘 전당대회서도 반탄파인 장동혁 후보가 김문수 당 대표 후보를 누르고 당선됐다. 장 후보는 탄핵 정국 당시 극우 색채가 짙은 탄핵 반대 집회를 찾아가 강성 지지층에게 표심을 구애하는가 하면 찬탄파들을 향해 “내부 총질 세력과는 같이 갈 수 없다”는 발언도 서슴치 않았다. 당선 직후에는 “우파 시민들과 연대해 이재명정부를 끌어내리는 데 모든 것을 바치겠다”며 강경 노선을 예고하기도 했다. 그의 말처럼 장 대표는 지난 9월 장외투쟁을 통해 이정부와 본격적으로 각을 세우기 시작했다. 국민의힘이 장외투쟁에 나선 것은 ‘조국 사태’ 이후 6년 만이다. 당 지도부는 대구를 시작으로 전역을 돌며 여론전을 통해 반격에 나설 기회를 보고 있다. 민주당은 “내란 옹호 대선 불복 세력의 장외‘투정’”이라고 비꽜다. 마찬가지로 지난 8월 강성 지지층의 지지를 받아 대표로 당선된 정청래 대표는 “윤어게인 내란 잔당의 역사 반동을 국민과 함께 청산하겠다”며 국민의힘 청산을 강조했다. 강경파인 정 대표와 장 대표가 당권을 잡으면서 국회는 점차 극한으로 치달았다. 정면충돌 치킨 게임 계엄 1년을 앞두고는 민주당의 ‘내란 세력 척결’에 국민의힘이 ‘내란 팔이’라고 맞불을 놓는 지경에 이르렀다. 국민의힘 강경파 의원들의 입은 점점 더 거칠어지고 있고, 민주당은 그때마다 계엄 카드를 꺼내며 “내란 옹호 세력과 협치할 수 없다”고 반격했다. 내란 팔이라는 단어는 국민의힘 나경원 의원의 메시지로 시작됐다. 나 의원은 자신의 SNS를 통해 “특검 연장은 오로지 내란 정국을 연장하려는 민주당의 정략일 뿐”이라며 “내란팔이 없이는 국민의 마음을 얻을 자신도, 국정을 책임질 정책 능력도 없으니 이 지경”이라고 몰아세웠다. 민주당 주도로 ‘더 센 특검법’이 통과하자 이를 지적한 것이다. 나 의원은 “에라잇, 맨날 내란, 내란하다 보면 국민들도 결국 지쳐버릴 것”이라며 “소위 내란 약발도 곧 떨어질 것”이라고 주장했다. 한 여권 관계자는 “계엄 1년이 지나도록 제대로 된 사과나 해명도 없이 여전히 민주당 뒷다리만 잡는 게 국민의힘”이라며 “내란팔이라는 말을 하기 전에 그동안 국민의힘이 보여준 태도를 돌아보시라. 윤 전 대통령을 면회하기 위해 구치소로 뛰어간 것이며 극우 집회에서 마이크를 든 것까지, 사과의 기미가 전혀 없는 상황에서 벌써부터 ‘지겹다’는 경솔한 표현은 국민께 비판받을 일”이라고 지적했다. 오는 3일 계엄 1년 메시지를 통해 양당의 향배를 가늠할 수 있을 것이란 해석이 나오는 가운데 민주당은 정당해산 심판을 꺼내든 반면, 국민의힘은 메시지 톤을 놓고 여전히 갈팡질팡하면서 하나의 목소리를 내는 데 어려움을 겪고 있다. 민주당 정청래 대표는 지난달 26일 “내일(27일) 국회 본회의에서 추경호 전 원내대표 체포동의안 표결이 이뤄진다. 추 전 원내대표는 윤 전 대통령의 불법 계엄 당시 의원총회(이하 의총) 장소를 여러번 변경하며 국회의 계엄 해제 표결을 의도적으로 방해했다는 의혹을 받고 있다”며 “총을 든 계엄군이 국회 창문을 깨고 진입하는 긴박한 상황 속에서 의총 장소를 국회 밖으로 공지한다는 것은 상식적으로 납득할 수 없는 처사”라고 지적했다. 이어 “이것은 다분히 의도적이고 적극적인 계엄 해제 방해로밖에 볼 수 없는, 충분히 의심되는 상황”이라며 거듭 위헌정당 해산심판 청구의 필요성을 강조했다. 강경파만 살아남은 포스트 탄핵 여의도 계엄 1년 메시지, 여야 모두 주목 국민의힘 내에서는 메시지의 세기를 놓고 충돌 조짐이 보인다. 강성 지지층을 의식한 지도부는 강경 메시지를 주장한 반면, 원내지도부를 비롯한 일부 초선 의원들 사이에서는 사과를 포함한 톤다운된 메시지를 요구하는 등 온도 차가 생긴 것이다. 초선인 국민의힘 김용태 의원은 한 라디오를 통해 “지난해 극한 여야 대립 속에 다수 야당(민주당)의 입법 전횡이 있었던 것은 사실”이라면서도 “계엄으로 군대를 동원해서 정치적 문제를 해결하려 했던 건 국가 발전이나 국민통합, 보수 정치에 있어 전혀 도움이 되지 않았다. 불법적이고 무모하고 과격한 행동”이라고 주장했다. 이어 “그간 1년 동안 국민의힘이 비상계엄을 어떻게 생각해 왔는지 등에 대한 규명이 필요하다. 그것이 규명되면 사과와 반성은 당연한 일”이라며 “단순히 사과와 반성으로만 끝나서도 안 된다. 앞으로 국민의힘이 어떻게 바뀔 것인지에 대한 메시지까지 내놔야 한다”고 주장했다. 비상계엄이 지난 특수성을 감안하더라도 현재 여야가 보이는 양상은 박 전 대통령 탄핵 이후와 비슷하다는 평이다. 탄핵 이후 조기 대선에서 당선된 문재인 전 대통령은 해결 과제로 적폐 청산을 내걸었고, 이 대통령은 ‘내란 청산’을 주장했다. 사면초가인 국민의힘 상황 역시 10년 전 탄핵 후폭풍을 직면하고 분열한 새누리당과 닮아있다. 이듬해 6월 지방선거가 예정된 점까지, 지금의 여야가 과거를 그대로 답습할지 이목이 쏠린다. 당시 새누리당은 자유한국당으로 간판까지 교체했지만 2018년 지방선거에 참패하면서 국회 바닥에 무릎을 꿇고 국민에게 사죄했다. 지금 국민의힘이 어떤 선택을 하는지에 따라 내년 지방선거의 운명이 달라질 것이란 해석이 나오는 이유다. 이와 관련해 국민의힘 김재원 최고위원은 CBS 라디오에서 ‘중도층 등 외연 확장을 위해 계엄에 대한 사과가 필요하지 않느냐’는 진행자의 질문에 “투표율을 55%에서 60% 정도로 봤을 때 중도층은 투표를 하지 않는 계층일 경우가 많다. 오히려 진영에 속한 사람들이 투표한다”고 분석했다. 김 최고위원은 “정치 고관여층보다는 정치 무관심층을 따라가야 한다고 했을 때 어떤 일이 벌어질 건가. 보수는 아직도 분열돼있고 내부 싸움도 있는 상황에서 지금 당장 이동해 갔을 때 벌어질 손실도 굉장히 클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 같은 발언은 선거에 직면하면 중도층 포섭을 위한 전략을 세워야 하지만, 아직 당이 불안정한 만큼 중심이 되는 지지층을 단단히 잡아야 한다는 뜻으로 풀이된다. 10년 전 데자뷔? 비상계엄 사과 메시지에 대해서는 “우리가 배출한 대통령이 탄핵당한 것이 우리 숙명인데 그분들이 탈당했다고 해서 벗어나 지겠느냐”며 “자꾸 절연, 절연하는데 인연이 끊기겠느냐. 없어지지 않는다”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일회성 사과로 과거 잘못을 끊어내고 새롭게 출발할 수 있다고 믿는 것 자체가 잘못”이라며 “역사적 공과를 안고 가면서 우리가 어떤 정치를 할 것인가를 보다 고민하는 그런 모습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이어 “쉽게 사과하고 끝날 문제가 아니”라며 “사과하는 모습보다는 우리가 앞으로 이런 정치를 해나가고 국민에게 믿음을 드리겠다는 것이 더 낫다”고 주장했다. <hypak28@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