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슈&인물> '씁쓸한 퇴장' 박영수 국정농단 특검

태블릿PC로 흥하고 포르쉐로 망했다

[일요시사 취재1팀] 김태일 기자 = 국정 농단 수사를 지휘했던 박영수 특별검사가 수산업자로부터 포르쉐 차량을 무상 제공받았다는 의혹을 부인하면서도 결국 사의를 표명해 지난 4년7개월 동안의 특검 생활에 마침표를 찍었다. 이를 두고 특검 출신 내에서는 일부의 모럴 해저드로 ‘공든 탑’이 허무하게 무너져 내렸다는 자조 섞인 목소리도 나온다.

박근혜 전 대통령을 기소하는 등 국정 농단 수사를 지휘했던 박영수 특별검사가 수산업자 김모씨로부터 포르쉐 차량을 무상 제공받았다는 의혹으로 결국 사의를 표명했다. 새롭게 부임하는 특검은 ‘문화계 블랙리스트’ 파기환송심과 문형표 전 국민연금공단 이사장 상고심을 담당하게 된다.

“책임 통감”
결국 사의

박 특검은 지난 7일 ‘사직의 변’이라는 입장문을 통해 “논란이 된 인물의 실체를 파악하지 못한 채 이모 부장검사에게 소개해준 부분 등에 대해 도의적인 책임을 통감한다”며 “직무 수행이 어렵다고 판단해 오늘 사표를 제출했다”고 밝혔다.

앞서 박 특검은 지난 5일 가짜 수산업자 관련 의혹에 대해 “아내의 차 구매을 위해 여러 차종을 검토하던 중 김씨가 이모 변호사를 통해 자신이 운영하는 렌터카 회사 차량의 시승을 권유했다”며 “며칠간 렌트하고 차량은 반납했고, 렌트비 250만원은 이 변호사를 통해 김씨에게 전달했다”고 입장문을 통해 밝힌 바 있다.

박 특검은 “현재 수사를 받고 있는 이모 부장검사를 김씨에게 소개해줬다는 부분은 사실”이라며 “포항지청으로 전보된 이 부장검사와의 식사 자리에서 지역 사정 파악에 도움을 받을 인물로 김씨를 소개하며 전화번호를 주고, 김씨에게는 이 부장검사가 그 지역에 생소한 사람이니 지역에 대한 조언을 해주라는 취지로 소개했다”고 밝히기도 했다.


박 특검은 “수많은 난관에도 지난 4년7개월간 혼신의 힘을 다해 국정 농단 의혹 사건의 실체가 규명되게 노력했다”며 “이 같은 일로 중도 퇴직하게 돼 아쉬운 마음 금할 길이 없고 죄송하다”고 거듭 사과했다.

차 무상 제공 의혹에 무너진 공든 탑
수산업자 리스트 거론되자 사의 표명

국정 농단 특검팀은 지난 2016년 12월21일 출범했다. 박영수 특검과 양재식·박충근·이용복·이규철 특검보, 윤석열 당시 수사팀장을 비롯해 파견검사 20명, 수사관 40명 등 역대 최대 규모로 구성된 특검이었다.

이들은 국정 농단 사건을 파헤쳐 수사 선상에 있던 인물 50여명을 재판에 넘겼다. 결국 박근혜 전 대통령은 총 징역 22년, 최순실(최서원으로 개명)씨는 징역 18년,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은 징역 2년6개월이라는 유죄 판결을 이끌어냈다.

박 특검과 함께 특검 추천으로 임명된 특검보 2명도 같은날 사의를 표명했다. 특검 조직을 재편할 필요가 있다는 점, 특검 궐위 시 특검보가 재판 등 소송행위를 독자적으로 할 수 없다는 점 등을 감안한 조치라는 설명도 덧붙였다.

특검팀이 사법정의를 내세우며 박 전 대통령을 비롯해 30명을 뇌물죄 등으로 기소하고, 주요 피고인에 대해 약 80년을 구형해놓고 정작 자신들은 뇌물 소지가 있는 금품을 받은 것에 대해 “특검의 내로남불”이라는 비판이 일고 있다.

특검 출신 내에서도 4년7개월간 쌓은 공이 일부의 모럴 해저드(도덕적 해이)로 허무하게 무너져 내렸다는 자조 섞인 목소리도 나왔다.


‘내로남불’
추락한 특검

박범계 법무부 장관은 경찰 수사와 별개로 이번 사건에 연루된 특검 근무 경력의 현직 검사에 대한 감찰을 지시해, 특검의 잘못된 처신이 검찰 조직 전체로 불똥이 튀는 모양새가 됐다.

경찰은 김씨가 박 특검을 연결고리로 이들과 관계를 맺었을 것으로 보고 수사를 확대하고 있다. 박 특검의 전날 사의 표명에 경찰 수사 확대가 결정적으로 영향을 미쳤을 거라는 게 법조계 분석이다.

검사장 출신의 한 변호사는 “박 특검이 젊은 후배 검사들에게 사기꾼을 소개해줬다는 데 가장 무겁게 책임을 느꼈을 것”이라며 “4년7개월이라는 짧지 않은 특검 기간에 쌓은 공이 도로아미타불이 된 꼴”이라고 비판했다. 

국정 농단 특검팀 출신의 한 변호사도 “고급 수입차와 시계, 선물 등 가치와 대가성 여부를 떠나 특검이 잘못된 처신을 한 건 사실”이라며 “더욱이 뇌물죄 등으로 국정 농단 사건을 단죄했던 특검에서 이런 일이 벌어져 국민적 상실감은 더 클 것”이라고 했다.

박 특검이 사의를 표명한 것과 관련해 야권도 강도 높게 비판하고 나섰다.

황보승희 국민의힘 수석대변인은 지난 7일 구두논평에서 “부적절한 로비 의혹의 당사자가, 법 정의를 이야기하며 또 다른 의혹을 조사한다는 것 자체가 어불성설”이라며 “박영수 특별검사의 사의 표명은 당연하다”고 말했다.

황보 수석대변인은 “박 특검이 ‘도의적 책임’을 운운했지만 고가의 수입 차량을 제공받은 것이 드러난 만큼 차제에 신속하고 철저한 수사를 통해 ‘법적 책임’의 여부도 분명히 가려져야 할 것”이라고 지적했다.

“구속하라”
강력 비판

홍경희 국민의당 수석부대변인도 이날 발표한 논평에서 “최순실 국정 농단 사건을 수사해온 박영수 특검의 이중적 행태가 드러났다”며 “상황에 따라서는 박 특검에 대한 구속 수사도 필요할 것”이라고 주장했다.

홍 수석부대변인은 “박 특검이 김모씨에게 받은 선물의 대가성 여부에 집중해야 한다”며 “만약 김모씨가 청탁을 빌미로 박 특검에게 대가성 선물을 제공하고 박 특검이 이를 수수했다면 뇌물 혐의가 성립된다”고 강조했다.

이어 “박 특검은 밝혀진 사실만으로도 자진사퇴가 아닌 파면이 마땅하다”며 “국민적 공분을 자아냈던 국정 농단 사건을 수사했던 특별검사가 어떻게 이렇게도 몰지각한 작태와 오염된 공직윤리를 가지고 있었는지 개탄스러울 따름”이라고 지적했다.


박근혜정부의 최순실 등 민간인에 의한 국정 농단 의혹 사건 규명을 위한 특별검사의 임명 등에 관한 법률(이하 특검법) 제14조 제2항에 따르면 대통령은 특검이 사망하거나 사퇴서를 제출하는 경우에는 지체 없이 이를 국회에 통보하고 임명 절차에 따라 후임 특별검사를 임명해야 한다.

따라서 문재인 대통령은 박 특검의 사퇴서가 수리되면 현재까지 마무리되지 않은 박근혜정부 국정 농단 사건 관련 재판들의 공소 유지를 위한 후임 특검 임명 절차에 들어가야 한다.

4년7개월 만에 불명예 퇴진
내로남불·모럴해저드 지적도

결국 새로 부임하는 특검은 ‘국정 농단 사건’에서 남은 재판의 공소 유지를 담당하게 된다. 현재 남아있는 ‘국정 농단 사건’ 재판은 ‘문화계 블랙리스트’ 관련 파기환송심과 문형표 전 국민연금공단 이사장 등의 상고심 총 2건이다.

박근혜정부 시절 특정 문화예술인 등에 대한 지원을 배제한 이른바 ‘문화계 블랙리스트’ 관련 혐의로 재판에 넘겨진 김기춘 전 청와대 비서실장과 조윤선 전 문화체육관광부 장관 등의 파기환송심은 서울고법에서 심리를 진행하고 있다.

삼성물산과 제일모직 합병에 찬성하도록 국민연금공단을 압박한 혐의로 재판에 넘겨진 문 전 이사장과 홍 전 본부장 사건은 2017년 11월 대법원에 접수된 뒤 현재까지 계류 중이다.


이 외에 우병우 전 청와대 민정수석의 국정 농단 방조 및 불법사찰 혐의 사건은 특검법 기한을 지나 기소돼 현재 검찰에서 공소 유지를 담당하고 있다. 우 전 수석은 항소심에서 징역 1년을 선고받고 불복해 상고심이 진행 중이다.

향후 특검은 이들 재판이 계속되는 기간까지는 공판에 출석하는 등 공소 유지를 담당하고, 재판 결과가 확정되면 10일 이내에 이를 대통령과 국회에 서면으로 보고한 뒤 특검법에 따라 당연 퇴직하게 된다.

남은 재판
후임 누구?

박 특검과 함께 2명의 특검보도 사퇴함에 따라 이른바 특검 ‘순장조’에는 1명의 특검과 2명의 특검보가 새로 합류할 것으로 예상된다. 이들의 활동기간은 남아있는 재판의 ‘확정판결 시’까지여서 길어도 1년을 넘지는 않을 것으로 예상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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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엄 1년’ 여전히 요동치는 정치판

‘계엄 1년’ 여전히 요동치는 정치판

[일요시사 정치팀] 박희영 기자 = 2024년 12월3일 오후 10시27분, 윤석열 전 대통령이 비상계엄을 선포했다. 국가 최고 통수권자의 선택은 정치권을 넘어 대한민국 전역을 강타했다. 내란의 밤이 지나고 탄핵의 강을 건너 마침내 대선 정국까지 넘었다. 1년이라는 시간이 흘렀지만 여전히 여의도 곳곳에 계엄의 여파가 남아 있다. 그날 오후 10시 무렵 윤석열 전 대통령이 예산안 관련 긴급 발표를 진행할 예정이라는 정보지가 돌았다. 얼마 뒤 정장 복장으로 대통령실 브리핑룸 카메라 앞에 나타난 윤 전 대통령은 다소 격양된 어투로 당시 야당이었던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을 강하게 비판했다. 스스로 걸어간 자멸의 길 민주당이 주요 예산을 전액 삭감해 국가 기능을 훼손하고 대한민국을 공황 상태로 만들었다는 것이다. 그러더니 돌연 야당을 반국가 세력으로 몰아세웠다. 윤 전 대통령은 “북한 공산 세력의 위협으로부터 자유 대한민국을 수호하고 우리 국민의 자유와 행복을 약탈하고 있는 파렴치한 종북 반국가 세력을 일거에 척결하고 자유 헌정 질서를 지키기 위해 비상계엄을 선포한다”고 밝혔다. 1979년 이후 45년 만에 내려진 비상계엄이었다. 한 시간도 지나지 않아 국회가 봉쇄됐고 헬기를 타고 도착한 무장 군인들이 안으로 들이닥쳤다. 국회 밖에서는 시민이, 안에서는 야당 보좌진들이 군인과 대치하면서 그야말로 일촉즉발의 상황이 이어졌다. 먼저 국민의힘 한동훈 전 대표가 입장을 냈다. 한 전 대표는 윤 대통령의 비상계엄 선포에 대해 “대통령의 비상계엄 선포는 잘못된 것”이라며 “국민과 함께 막겠다”고 밝혔다. 이후 한 전 대표는 탄핵을 찬성한다는 의미의 ‘찬탄파’로 찍혀 친윤(친 윤석열)계의 거센 비난을 받았다. 민주당 당시 이재명 대표는 실시간 방송을 통해 “대통령의 불법적인 비상계엄 선포는 무효”라며 민주주의의 마지막 보루인 국회를 지키기 위해 신속히 국회로 와달라는 말을 남겼다. 내란 사태가 지나고 난 뒤 이 대통령은 이날을 회상하며 “이 상황을 최대한 빨리 많은 시민에게 알려야 한다는 생각에 실시간 방송을 시작했다”고 전했다. 뒤이어 국민의힘 추경호 전 원내대표가 비상 의총을 소집했다. 추 전 원내대표는 국회 예결위 회의장으로 의총을 소집했다가 10분 뒤 장소를 여의도 당사로 옮겼다. 그리고 약 20분 뒤 다시 국회 예결위장으로 바꿨다. 이는 현재 추 전 원내대표가 받는 ‘비상계엄 해제 표결 방해 의혹’과 연결된다. 다음 날 새벽인 4일 오전 1시 비상계엄 해제 요구안이 국회에 상정됐다. 국회경비대가 국회 출입을 통제하자 담을 넘어서 국회로 진입한 우원식 국회의장은 결의안 상정에 앞서 “(윤 전 대통령이) 계엄령을 선포하면 국회에 지체 없이 통보해야 한다는 의무조항이 있으나 통보가 없었고, 이는 대통령의 귀책사유”라며 “우리는 그와 관계없이 (비상계엄 해제 의결을 위한) 절차를 진행하겠다”고 말했다. 결의안은 여야 의원 190명이 참석한 가운데 190명 전원이 찬성해 가결됐다. 국회 본청에 투입됐던 계엄군은 철수했고 이로써 윤 전 대통령이 선포한 비상계엄은 약 세 시간 만에 무효가 됐다. 비상계엄의 끝은 탄핵 정국의 시작으로 이어졌다. 민주당을 비롯한 ▲조국혁신당 ▲개혁신당 ▲진보당 ▲기본소득당 ▲사회민주당 등 야6당은 계엄이 해제된 당일 ‘윤석열 대통령 탄핵소추안’을 국회에 제출했다. 이들은 윤 전 대통령의 비상계엄을 ‘내란’으로 규정하고 “하야하지 않으면 탄핵소추를 진행할 것”이라고 압박했다. 국민의힘은 탄핵 반대를 당론으로 추인했다. 2017년 박근혜 전 대통령이 탄핵되는 과정을 겪으며 당이 벼랑 끝까지 몰렸던 점 등을 의식했다는 해석에 힘이 실렸다. 대통령에서 내란수괴 피의자로 썩은줄 알면서도 못 놓는 윤 동아줄 이날을 기점으로 국민의힘에서는 분열의 조짐이 보였다. 탄핵을 반대하는 ‘반탄파’의 친윤계와 찬탄파 친한(친 한동훈)계로 당원들이 갈라서면서 내부 총질이 시작된 것이다. 당초 한 전 대표 역시 탄핵에 반대하는 입장이었지만 비상계엄 당시 자신을 포함한 주요 정치인을 체포하려고 한 정황이 드러나면서 입장을 선회한 것으로 보인다. 여기서부터 시작된 두 계파의 갈등 또한 현재진행형이다. 비상계엄이 선포된 나흘 뒤인 7일, 윤 전 대통령에 대한 탄핵소추안이 정족수 미달로 국회에서 부결돼 자동 폐기됐다. 재적 의원 300명 중 195명이 참석한 가운데 탄핵이 상정됐지만 국민의힘 의원 대다수가 불참하면서 투표가 불성립된 것이다. 이날 표결에 참여한 국민의힘 의원은 김예지, 김상욱, 안철수 의원뿐이었다. 민주당 박찬대 의원은 표결에 참여하지 않은 의원 105명의 이름을 한 명 한 명 호명하며 본회의장으로 와줄 것을 요구했다. 두 번째 탄핵소추안은 일주일 뒤인 14일 국회에 상정됐다. 당시 국민의힘은 “표결 참석을 제안한다”면서도 탄핵 반대 당론을 유지했다. 결국 300명 가운데 ▲찬성 204표 ▲반대 85표 ▲기권 3표 ▲무표 8표로 비상계엄이 선포된 지 11일 만에 윤 전 대통령에 대한 탄핵소추안이 가결됐다. 공은 헌법재판소(이하 헌재)로 넘어갔고 긴 진통 끝에 지난 4월4일 헌법재판관의 만장일치로 윤 전 대통령이 파면됐다. 현직 대통령의 파면에 따라 조기 대선이 치러졌고 민주당에서는 이변 없이 이재명 대표가 대선주자로 나섰다. 국민의힘에서는 여전히 찬탄파와 반탄파가 대립했고 어느 날 늦은 밤을 틈타 ‘대선후보 날치기’를 시도하는 등 웃지 못할 촌극도 벌어졌다. 민주당은 ‘내란 세력 청산’을 앞세웠다. 이 후보는 대통령으로 당선되면 비상 경제 대응 태스크포스(TF) 구성을 약속하는 등 경제 성장을 강조하면서도 “내란 세력의 죄는 단호하게 벌하겠다”고 강조했다. 민주당 역시 “이번 선거는 내란 정권에 대한 준엄한 심판”임을 강조하며 윤 전 대통령과 국민의힘 심판론을 부각시켰다. 두 번의 선거 강경파만 남았다 6·3 조기 대선 투표 결과 이재명 후보가 49.42%를 득표하면서 21대 대통령으로 선출됐다. 국민의힘 김문수 후보는 41.15%로 이 후보가 8.27%p 차이로 앞섰다. 계엄 극복과 내란 청산을 외친 민주당이 국민의 선택을 받은 것이다. 국민의힘이 윤 전 대통령과 완전히 절연하지 못한 점 또한 보수가 정권 재창출에 실패한 원인으로 꼽힌다. 탄핵 정국 당시 앞장서서 윤 전 대통령을 엄호한 국민의힘 윤상현 의원은 ‘윤석열 대통령 탄핵소추안 표결 불참’에 따른 역풍을 우려하던 당 의원에게 자신이 박 전 대통령 탄핵에 앞장서서 반대한 점을 언급하며 “나는 끝까지 갔다. 그때 욕 많이 먹었다. 그런데 1년 후에는 ‘윤상현 의리 있어 좋아’(라고 하면서) 무소속으로 나와도 다 찍어줬다”고 말했다. 김문수 후보 역시 대선 투표 직전까지 윤 전 대통령에게 단호히 탈당을 요구하지 못했다. 김 후보는 “대통령 탈당(여부)은 본인 뜻”이라며 “자기가(국민의힘이) 뽑은 대통령을 탈당시키는 방식으로 책임이 면책될 수 없고, 도리도 아니”라고 설명했다. 국민의힘은 대선에서 패배했지만 아직도 윤 전 대통령의 그림자로부터 벗어나지 못했다. 친윤계를 비롯한 중진 의원의 지역구가 보수의 심장인 TK(대구·경북)임을 고려했을 때, 윤 전 대통령과 결별하는 것은 핵심 지지층을 놓는 것과 같다는 우려에서다. 지난 8월 국민의힘 전당대회서도 반탄파인 장동혁 후보가 김문수 당 대표 후보를 누르고 당선됐다. 장 후보는 탄핵 정국 당시 극우 색채가 짙은 탄핵 반대 집회를 찾아가 강성 지지층에게 표심을 구애하는가 하면 찬탄파들을 향해 “내부 총질 세력과는 같이 갈 수 없다”는 발언도 서슴치 않았다. 당선 직후에는 “우파 시민들과 연대해 이재명정부를 끌어내리는 데 모든 것을 바치겠다”며 강경 노선을 예고하기도 했다. 그의 말처럼 장 대표는 지난 9월 장외투쟁을 통해 이정부와 본격적으로 각을 세우기 시작했다. 국민의힘이 장외투쟁에 나선 것은 ‘조국 사태’ 이후 6년 만이다. 당 지도부는 대구를 시작으로 전역을 돌며 여론전을 통해 반격에 나설 기회를 보고 있다. 민주당은 “내란 옹호 대선 불복 세력의 장외‘투정’”이라고 비꽜다. 마찬가지로 지난 8월 강성 지지층의 지지를 받아 대표로 당선된 정청래 대표는 “윤어게인 내란 잔당의 역사 반동을 국민과 함께 청산하겠다”며 국민의힘 청산을 강조했다. 강경파인 정 대표와 장 대표가 당권을 잡으면서 국회는 점차 극한으로 치달았다. 정면충돌 치킨 게임 계엄 1년을 앞두고는 민주당의 ‘내란 세력 척결’에 국민의힘이 ‘내란 팔이’라고 맞불을 놓는 지경에 이르렀다. 국민의힘 강경파 의원들의 입은 점점 더 거칠어지고 있고, 민주당은 그때마다 계엄 카드를 꺼내며 “내란 옹호 세력과 협치할 수 없다”고 반격했다. 내란 팔이라는 단어는 국민의힘 나경원 의원의 메시지로 시작됐다. 나 의원은 자신의 SNS를 통해 “특검 연장은 오로지 내란 정국을 연장하려는 민주당의 정략일 뿐”이라며 “내란팔이 없이는 국민의 마음을 얻을 자신도, 국정을 책임질 정책 능력도 없으니 이 지경”이라고 몰아세웠다. 민주당 주도로 ‘더 센 특검법’이 통과하자 이를 지적한 것이다. 나 의원은 “에라잇, 맨날 내란, 내란하다 보면 국민들도 결국 지쳐버릴 것”이라며 “소위 내란 약발도 곧 떨어질 것”이라고 주장했다. 한 여권 관계자는 “계엄 1년이 지나도록 제대로 된 사과나 해명도 없이 여전히 민주당 뒷다리만 잡는 게 국민의힘”이라며 “내란팔이라는 말을 하기 전에 그동안 국민의힘이 보여준 태도를 돌아보시라. 윤 전 대통령을 면회하기 위해 구치소로 뛰어간 것이며 극우 집회에서 마이크를 든 것까지, 사과의 기미가 전혀 없는 상황에서 벌써부터 ‘지겹다’는 경솔한 표현은 국민께 비판받을 일”이라고 지적했다. 오는 3일 계엄 1년 메시지를 통해 양당의 향배를 가늠할 수 있을 것이란 해석이 나오는 가운데 민주당은 정당해산 심판을 꺼내든 반면, 국민의힘은 메시지 톤을 놓고 여전히 갈팡질팡하면서 하나의 목소리를 내는 데 어려움을 겪고 있다. 민주당 정청래 대표는 지난달 26일 “내일(27일) 국회 본회의에서 추경호 전 원내대표 체포동의안 표결이 이뤄진다. 추 전 원내대표는 윤 전 대통령의 불법 계엄 당시 의원총회(이하 의총) 장소를 여러번 변경하며 국회의 계엄 해제 표결을 의도적으로 방해했다는 의혹을 받고 있다”며 “총을 든 계엄군이 국회 창문을 깨고 진입하는 긴박한 상황 속에서 의총 장소를 국회 밖으로 공지한다는 것은 상식적으로 납득할 수 없는 처사”라고 지적했다. 이어 “이것은 다분히 의도적이고 적극적인 계엄 해제 방해로밖에 볼 수 없는, 충분히 의심되는 상황”이라며 거듭 위헌정당 해산심판 청구의 필요성을 강조했다. 강경파만 살아남은 포스트 탄핵 여의도 계엄 1년 메시지, 여야 모두 주목 국민의힘 내에서는 메시지의 세기를 놓고 충돌 조짐이 보인다. 강성 지지층을 의식한 지도부는 강경 메시지를 주장한 반면, 원내지도부를 비롯한 일부 초선 의원들 사이에서는 사과를 포함한 톤다운된 메시지를 요구하는 등 온도 차가 생긴 것이다. 초선인 국민의힘 김용태 의원은 한 라디오를 통해 “지난해 극한 여야 대립 속에 다수 야당(민주당)의 입법 전횡이 있었던 것은 사실”이라면서도 “계엄으로 군대를 동원해서 정치적 문제를 해결하려 했던 건 국가 발전이나 국민통합, 보수 정치에 있어 전혀 도움이 되지 않았다. 불법적이고 무모하고 과격한 행동”이라고 주장했다. 이어 “그간 1년 동안 국민의힘이 비상계엄을 어떻게 생각해 왔는지 등에 대한 규명이 필요하다. 그것이 규명되면 사과와 반성은 당연한 일”이라며 “단순히 사과와 반성으로만 끝나서도 안 된다. 앞으로 국민의힘이 어떻게 바뀔 것인지에 대한 메시지까지 내놔야 한다”고 주장했다. 비상계엄이 지난 특수성을 감안하더라도 현재 여야가 보이는 양상은 박 전 대통령 탄핵 이후와 비슷하다는 평이다. 탄핵 이후 조기 대선에서 당선된 문재인 전 대통령은 해결 과제로 적폐 청산을 내걸었고, 이 대통령은 ‘내란 청산’을 주장했다. 사면초가인 국민의힘 상황 역시 10년 전 탄핵 후폭풍을 직면하고 분열한 새누리당과 닮아있다. 이듬해 6월 지방선거가 예정된 점까지, 지금의 여야가 과거를 그대로 답습할지 이목이 쏠린다. 당시 새누리당은 자유한국당으로 간판까지 교체했지만 2018년 지방선거에 참패하면서 국회 바닥에 무릎을 꿇고 국민에게 사죄했다. 지금 국민의힘이 어떤 선택을 하는지에 따라 내년 지방선거의 운명이 달라질 것이란 해석이 나오는 이유다. 이와 관련해 국민의힘 김재원 최고위원은 CBS 라디오에서 ‘중도층 등 외연 확장을 위해 계엄에 대한 사과가 필요하지 않느냐’는 진행자의 질문에 “투표율을 55%에서 60% 정도로 봤을 때 중도층은 투표를 하지 않는 계층일 경우가 많다. 오히려 진영에 속한 사람들이 투표한다”고 분석했다. 김 최고위원은 “정치 고관여층보다는 정치 무관심층을 따라가야 한다고 했을 때 어떤 일이 벌어질 건가. 보수는 아직도 분열돼있고 내부 싸움도 있는 상황에서 지금 당장 이동해 갔을 때 벌어질 손실도 굉장히 클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 같은 발언은 선거에 직면하면 중도층 포섭을 위한 전략을 세워야 하지만, 아직 당이 불안정한 만큼 중심이 되는 지지층을 단단히 잡아야 한다는 뜻으로 풀이된다. 10년 전 데자뷔? 비상계엄 사과 메시지에 대해서는 “우리가 배출한 대통령이 탄핵당한 것이 우리 숙명인데 그분들이 탈당했다고 해서 벗어나 지겠느냐”며 “자꾸 절연, 절연하는데 인연이 끊기겠느냐. 없어지지 않는다”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일회성 사과로 과거 잘못을 끊어내고 새롭게 출발할 수 있다고 믿는 것 자체가 잘못”이라며 “역사적 공과를 안고 가면서 우리가 어떤 정치를 할 것인가를 보다 고민하는 그런 모습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이어 “쉽게 사과하고 끝날 문제가 아니”라며 “사과하는 모습보다는 우리가 앞으로 이런 정치를 해나가고 국민에게 믿음을 드리겠다는 것이 더 낫다”고 주장했다. <hypak28@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