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 명지대 400억 위험한 땅 거래 내막

돈 급해 봐주고 눈 감았다

[일요시사 취재1팀] 남정운 기자 = 또 다시 파산 위기에 내몰린 명지학원. 알려진 채무만 해도 2200억원이 넘는다. 명지학원은 명지전문대학교 유휴용지를 매각·개발해 채무를 변제하겠다는 회생안을 내놨다. 구성원들은 실현 가능성을 따지기 전부터 불안한 마음이 앞선다. 앞서 명지대가 비슷한 절차를 졸속으로 밟다가 교육부로부터 ‘퇴짜’를 맞은 전례가 떠올라서다.

명지학원은 명지대학교와 명지전문대학, 명지초·중·고교 등을 운영하는 학교법인이다. 재학생이 3만명에 이를 정도로 법인 규모가 크다. 2000년대 초반까지는 2조원대의 수익 사업체를 보유하며 안정적인 재정상태를 유지했지만, 무리한 부동산 개발과 전임 이사장의 재단 사유화 시도 등 여러 악재가 겹치면서 자본잠식 상태에 빠졌다.

파산 위기
탈출구는?

이후 채권자들에게 파산신청 2번, 회생신청 1번을 당하는 등 우여곡절을 겪어왔다.

서울회생법원이 이달 초 명지학원 회생절차(채권자인 서울보증보험(SGI)이 신청) 중단 결정을 내렸다. 잠시 잠잠했던 파산 위기설이 다시 고개를 들었다. 명지학원은 지난 10일 입장문을 내고 “파산 수순을 밟는 것이 아니라 다음 달 회생을 재신청할 것”이라며 황급히 수습에 나섰다.

관련 법에 따르면 명지학원이 채무자 자격으로 회생을 다시 신청할 수 있다. 사실상 파산을 막을 수 있는 마지막 기회라는 관측이 나온다.

교육계에서는 명지학원 회생안에 각종 수익용 재산과 더불어 명지전문대 부지를 매각, 총 1700억원을 우선 변제한다는 계획이 담길 것으로 보고 있다. 명지대와 명지전문대를 통합하고, 명지전문대 유휴용지에 아파트 등을 개발한다는 구상이다.

명지학원은 투자자문회사 측에 의뢰해 25억~50억원의 출자금으로 500억원 이상의 개발 수익을 얻을 수 있다는 결과를 받은 것으로 알려졌다. 1700억원 변제 계획 중 약 3분의 1에 해당하는 규모다.

명지학원 구성원 일부는 이 같은 결정이 알려지자 우려의 시선을 보내고 있다. 명지학원이 이미 지난해 다른 유휴용지를 매각 시도하는 과정에서 교육부에 ‘퇴짜’를 맞은 전력이 있기 때문이다.

<일요시사> 취재 결과, 당시 교육부는 오히려 먼저 나서서 유휴용지 매각을 권유·허가할 정도로 매각에 협조적이었다. 하지만 명지학원이 불법적 절차를 동원해 졸속 매각을 추진하자, 교육부가 매각허가를 다시 취소한 것으로 파악됐다.

명지학원은 2020년 교육용 기본재산 5건 매각을 추진했다. 당시 매물은 경기도 용인시 처인구 남동 582-3 등 16개 필지(면적 36만5273㎡)와 서울특별시 서대문구 남가좌동 12-1·12-13번지(면적 172㎡) 등이다. 이들은 모두 사용되지 않는 유휴용지였다.

재정 불안한데 대규모 공사 강행
‘급전’ 확보하려 불법 정황 포착

사립학교법에 따르면 교육에 직접 사용되는 재산인 교육용 기본재산은 유휴재산일 경우에만 처분할 수 있다.

교육부는 명지학원 측에 절세 및 교육 자금 마련을 이유로 유휴용지를 처분할 것을 권유했다. 교육 재산 처분에는 교육부 허가가 필요하므로, 매각허가 등의 제도적 지원도 뒷받침됐다.

명지학원으로서는 마다할 이유가 없었다. 명지학원은 이 매물들로 2020년 5월15일과 29일, 두 번에 걸쳐 일반 경쟁입찰을 진행했다. 하지만 매물들의 입지가 그다지 좋지 않아서 두 입찰 모두 유찰됐다.

명지학원은 경쟁입찰에서 수의계약으로 매각 방식을 변경했다. 기약 없는 기다림은 약 1년 동안 이어졌다. 지난해 봄이 돼서야 매수자가 나타났다.

명지학원과 개발사 A사는 지난해 5월13일 경기도 용인시 처인구 남동 소재 15개 필지에 대한 토지매매계약을 체결했다. 매매 규모가 435억8000만원에 달하는 대형 계약이었다. A사는 계약 당일 매물들에 매매 예약 가등기를 걸었다.

그로부터 석 달 뒤, 양측은 소유권이전등기를 마쳤다. 그때까지 명지학원 측이 받은 돈이라고는 소유권이전 당시 받은 계약금 명목의 20억원이 전부였다. 소유권이전 당일, A사는 개인 2명에게 매매예약 가등기를 마쳤다. 명지학원 측에 건네야 할 매매대금이 415억8000만원 남은 상황이었다.

명지대학교 공동대책위원회(이하 공대위)는 “400억원어치 땅을 20억원에 팔아넘겼다”고 비판했다. 아울러 명지학원의 등기 이전 사실 은폐·매각 잔금 지불기일 임의 연장 등의 배임 의혹을 추가로 제기했다. 그해 11월24일에는 해당 의혹과 대학 위기 책임을 이유로 총장 퇴진을 요구하는 성명을 발표하기도 했다.

발등에 불
불법 동원

심지어 이 같은 거래 행태는 관련 법 위반이다. 교육부령인 사학기관 재무‧회계 규칙 제46조에는 ‘관할청의 허가를 받아 그 재산을 처분한 때는 처분대금을 완수하지 않고는 당해 재산의 소유권을 이전하지 못한다’고 명시돼있다.

또한 공대위에 따르면 명지학원은 교육 재산 처분 뒤 한 달 안에 그 결과를 교육부에 보고해야 한다는 규정도 준수하지 않았다.

당시 명지학원은 “담당 직원의 잘못된 판단과 행동으로 벌어진 일”이라며 총장‧법인 책임론을 일축했다. 이어 “현재 매각과 관련해 모든 민형사상 방법을 동원하고 있을 뿐 아니라, 상대편 관계자에 대한 압박과 협상을 시도하는 등 조속한 문제 해결에 최선을 다하고 있다”고 해명했다.

공대위는 즉각 반발했다. 공대위 관계자는 “400억원이 넘는 돈이 오가는 계약 과정을 총장과 이사장 등이 몰랐다고 해도 문제고, 알면서 묵인했어도 문제”라며 “구성원들이 정상화를 위해 기울여온 노력을 물거품으로 만드는 행동”이라고 규탄했다.

앞서 명지학원은 한 직원의 ‘실수’로 벌어진 일을 법인이 적극적인 법적 조치를 통해 되돌려놓겠다는 취지로 해명했다. 그런데 그 해명과 배치되는 사실이 <일요시사> 취재 과정에서 속속 포착됐다. 관련 정황들을 종합해보면, 지난해 명지학원에는 의도적으로 불법·졸속 절차를 밟을만한 동기가 분명히 존재했다.

당시 명지학원은 자금 마련이 시급했다. 재정 확보가 어려운 상황에서 대규모 개발을 강행했기 때문이다.

2019년 1월, 명지대학교는 인문캠퍼스에 새 건물을 짓기 시작했다. 명지대학교 관계자에 따르면 ‘교육복합관’이라고 명명된 이 건물을 짓는 데 500억원이 넘는 비용이 들어갔다. 명지대학교 홈페이지에도 “공사 도급액만 380억원에 달한다”고 적혀 있다.

교육복합관은 건축면적 1221평·건축 연면적 9277평 규모의 대형 건물로 지난해 8월 말에 완공됐다.

구성원들은 이 건물의 필요성을 문제 삼지 않는다. 인문 캠퍼스의 부족한 교육시설 보강을 위해 필요했다는 의견이 대다수다. 다만 건설 시점이 상당히 부적절했다는 설명이다. 명지학원의 재정상태는 이 건물의 첫삽을 뜨기 훨씬 전부터 위태로운 상황이었다.

해명 진위 논란
‘입 닫은’ 재단

그런 상황에서 대형 건물을 짓겠다고 하니, 구성원들의 걱정이 이만저만이 아니었던 것.

아니나 다를까, 명지학원은 이 건물이 지어지는 동안 채권자들에게 2번의 파산신청과 1번의 회생신청을 당하며 법정관리 체제에 돌입했다. 건물이 절반 정도 지어진 시점에 떨어진, 어쩌면 예정된 ‘날벼락’이었다. 명지대에 가해지는 자금 압박은 더욱 거세졌다.

공대위 관계자는 “원래 사립학교들이 건물을 지을 때는 교육부 산하 사학진흥재단에서 저금리 융자를 받는다”며 “그런데 법인이 회생절차에 들어가 그걸(융자를) 못 받게 되면서 남은 건설 비용을 학교 적립금으로 충당할 수밖에 없었다”고 설명했다. 

씁쓸한 비보였다. 명지대는 재단의 재정적 지원에 기댈 수 없는 상황에서 주로 학생 등록금과 외부 발전 기금에 의존하고 있다. 하루 벌어 하루 살기도 힘든 와중에, 겨우 모아놨던 곳간이 털린 격이었다.

그간 답보상태였던 유휴용지 매각이 급물살을 탄 시점은 교육복합관 준공이 마무리되던 때와 겹친다. 돈이 가장 간절했을 때, 돈을 주겠다는 이가 등장한 셈이다. 심지어 금액 규모도 비슷했다. 공대위 관계자의 표현을 빌리자면 학교로서는 놓칠 수 없는 기회를 맞았다.

그는 뒤이어 “그동안 ‘애물단지’였던 유휴용지를 매각한다는 방침에 반대한 구성원은 없었다”면서도 “저렇게 급매할 수밖에 없는 상황을 자초한 걸 지지해줄 사람도 없을 것”이라고 꼬집었다.

한편 부동산 업계와 법조계에서는 ‘실수’로 포장된 소유권 이전 과정을 두고 “대규모 개발에서 종종 보이는 패턴”이라고 분석했다. 비슷한 규모의 거래 관행과 상당히 겹쳐 보인다는 지적이다.

논란 일자 ‘직원 실수’ 해명
교육부 반대에 결국 백지화?

김중훈 한유주택개발 대표는 “자주 있는 일은 아니지만 어느 정도 규모가 있어서 일시에 토지대금을 지불하기 어려울 때 보이는 패턴”이라며 “이전받은 소유권으로 대출을 일으켜 잔금을 완납하는 방식”이라고 설명했다.

사인 간 거래에서는 이 같은 소유권이전이 불법이 아니기에 가능한 일이다.

종합법률사무소 ‘법도’의 부동산 담당 변호사는 “잔금을 치르기 전에 소유권이전등기하는 행위는 거래 당사자 간에 이뤄지는 거래행위로 그 자체로는 법률상 하자 행위라 볼 수 없다”며 “위험성을 내포할 수 있는 여지가 거래를 제한하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라고 전했다.

그러면서도 “하지만 통상적으로 잔금이 완납되지 않은 소유권이전의 경우 제3자에 대한 재매도나 재산권 행사의 제한 등의 문제가 발생할 수 있다”고 경고했다. 교육부 역시 이 맥락에서 ‘잔금 완납 후 소유권이전’ 원칙을 고수하고 있다.

아울러 적어도 ‘등기사항전부증명서’상에서는 명지학원 측이 취한 ‘법적 조치’ 흔적을 볼 수 없었다. <일요시사>는 관련 토지등기의 말소사항까지 모두 검토했다. 과거에 있었던 각종 신탁·가처분 등기들은 확인할 수 있었지만, 이번 소유권이전 이후에 갱신된 등기는 없었다.

소유권이 넘어간 지 6개월째. 명지학원은 아직도 잔금을 회수하지 못했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각종 불법 행위를 인지한 교육부가 돌연 매각허가를 취소해버렸다. 매각 사업이 백지화될 위기에 놓인 것이다.

교육부 관계자는 “지난해 11월에 열흘간 시행했던 명지대 종합 감사 과정에서 규정 위반 사실을 인지했다”며 “이에 12월29일 자로 ‘올해 안에 잔금을 회수하지 않으면 매각허가를 취소하겠다’는 내용의 공문을 발송했다. 명지대가 잔금 회수에 실패하면서 매각허가는 올해 1월 1일부로 자동 취소됐다”고 밝혔다.

명지대는 허가 취소 사실을 시인했다. 명지대 관계자는 “올해 부로 해당 부지 매각허가가 취소된 것은 맞다”고 답했다.

다만 매각 계획이 백지화된 것은 아니라고 강조했다. 그는 “조만간 다시 매각 계획을 수립해 교육부에 전달할 예정”이라며 “일시적인 답보상태에 놓인 것은 맞지만 재개할 수 있을 것으로 본다”고 전했다.

이 관계자는 당시 해명 진위에 대한 질문엔 “계약은 학교랑 한 게 맞지만, 전반적인 대응은 법인에서 진행해서 잘 모르겠다”는 답변이 돌아왔다.

이후 <일요시사>는 명지학원 측과 지속적으로 연락을 시도했지만 끝내 닿지 않았다. 최근 불거진 논란들 탓인지, 명지학원 사무실 문은 평일 오후 2시에도 굳게 잠겨있었다.

생사 기로서
반면교사로

돌아 나오는 길에 또 다른 명지대 관계자와 연락이 닿았다. 그는 이 일을 이미 잘 알고 있었다. 그는 “회생안에도 유휴용지 매각 계획이 포함된다고 들었다. 그 일을 반면교사 삼아야 한다”며 “이번 한 번만큼은 욕심과 불법 없이, 교육부 지침을 준수하면서 원활하게 매각했으면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jeongun15@ilyosis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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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마불사’ 국힘 생존 방정식

‘대마불사’ 국힘 생존 방정식

[일요시사 정치팀] 박형준 기자 = 법원이 주호영 국회부의장의 대구시장 경선 컷오프 관련 가처분 신청을 기각했다. 그러자 주 부의장은 국민의힘 장동혁 대표를 강하게 비판하면서 항고할 뜻을 내비쳤다. 주 부의장의 강경 대응은 저조한 국민의힘 지지율과 맞물려 혼란상을 더욱 극적으로 비추고 있다. 과연 국민의힘이란 ‘대마’는 ‘불사’의 존재일까? 주호영 국회부의장이 국민의힘 대구시장 경선에서 컷오프된 것에 반발해 지난달 26일 법원에 가처분을 신청했다. 서울남부지법 민사합의51부(수석부장판사 권성수)는 지난 3일 이를 기각했다. 그러자 주 부의장은 곧바로 자신의 페이스북을 통해 법원 결정에 반발했다. 법원 결정 바로 반발 주 부의장은 “저는 그동안 이번 컷오프가 절차·내용 모두 중대한 문제가 있다고 지적해 왔다”며 “법원의 판단과 별개로 이번 공천 과정이 과연 당원·시민의 눈높이에 맞는 공정하고 민주적인 절차였는지는 여전히 엄중하게 따져 물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결국 주 부의장은 지난 6일 항고를 제기했다. 이어 지난 8일엔 국회에서 기자회견을 열어 “항고심 판단을 끝까지 지켜본 후 제 거취에 대한 최종 판단을 내리겠다”고 밝혔다. 이에 대해선 일각에서 제기했던 무소속 출마설을 일단 유보한 것이라는 해석이 나왔다. 이어 주 부의장은 “항고심 판단을 기다린다고 해서 이번 공천 난맥상과 국민의힘 장동혁 대표 체제의 책임을 덮고 가겠단 뜻은 결코 아니”라며 “이런 공천 구조를 만든 세력과 절대로 타협하지 않겠다”고 강조했다. 아울러 “공천은 충성의 대가나 숙청의 도구가 아닌, 오직 국민 앞에 가장 경쟁력 있고 책임 있는 후보를 세우는 과정”이라고 주장하는 등 자신을 컷오프한 것을 ‘숙청’이라고 암시했다. 주 부의장이 대구시장 출마에 강한 의지를 드러낸 것에 대해선 여러 해석이 나오고 있다. 6선인 주 부의장은 대구 수성에서만 국회의원을 지냈다. 대구 수성을에서는 4선을 지냈고, 수성갑에선 재선에 성공했다. 이 중 4선을 했던 지난 2016년 총선 수성을 선거에선 친박(친 박근혜)계 주도로 공천을 받지 못해 무소속 출마를 했음에도 불구하고, 여유 있게 이겼다. 문제는 주 부의장이 당내 최다선인 6선 의원 겸 국회부의장이라는 것으로부터 비롯된다. 명예가 곧 실권을 보장하진 않는다. 아울러 주 부의장이 차기 총선에서도 같은 지역구에 출마해 7선에 도전하면, 이에 대한 비판이 제기될 수도 있다. 같은 6선인 국민의힘 조경태 의원과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 조정식 의원은 각각 부산 사하을·경기 시흥을을 지역구로 두고 있다. 부산은 이미 격전지가 된 데다 조 의원은 민주당계 정당과 국민의힘 소속으로 각각 3선 했고, 경기 시흥을은 수도권이다. 국민의힘의 안정된 텃밭으로 분류되는 대구 수성을에서 7선에 도전하는 것과는 상황이 다르다. 설령 7선에 성공한다고 하더라도, 오는 6월 지방선거에서도 참패 가능성이 제기되는 국민의힘이 2년 후 총선에서 다수당이 된다는 보장도, 국회의장이 되리라는 보장도 하기 어렵다. 오는 2028년 총선까지 연일 떠들썩하게 이어지는 계파 갈등을 어느 정도 안정시킨 후 대안 야당으로 발돋움하면서 이재명정부가 실정으로 지지율이 폭락하는 상황이 겹쳐야 승리를 노려볼 수 있다. 주 부의장이 국회의장에 도전하는 것도 현실적으로는 가능성이 희박하다. 불확실한 국회의장…‘텃밭 7선’ 대신 대구? 연이은 공천 가처분 세례 속 서울 지지율 13% 따라서 주 부의장이 대구시장 출마에 집념을 불태우는 것은 필연이다. 대선 패배 후 대구시장에 출마해 당선됐던 홍준표 전 대구시장의 전례도 있다. 주 부의장으로선 “나라고 출마 하지 말라는 법이 어디에 있느냐”고 판단해도 무리가 아니란 분석이 있다. 대구시장으로서 임기를 마친 후 대권에 도전하거나 당내에서 영향력을 행사하는 그림을 그리는 것도 무리는 아니다. 이 가능성은 일명 ‘주한 연대설’로 통하는 국민의힘 한동훈 전 대표와의 연대설 때문에 불거졌다. 이는 국민의힘 이정현 전 공천관리위원장이 주 부의장을 컷오프한 직후 불거졌다. “주 부의장이 무소속으로 대구시장에 출마해 대구 수성갑에서 재보궐선거가 진행되면, 한 전 대표가 여기에 출마하는 형식으로 연대한다”는 설이다. 한 전 대표 측으로선 손해 볼 게 없다. 한 전 대표는 지난달 25일 채널A <정치시그널>에 출연해 “주 부의장은 보수 재건이 필요하다고 공감하면서 나서겠다고 했다”며 “우린 이미 연대하고 있는 게 아니냐”고 주장했다. 반면 주 부의장은 신중한 반응을 내비쳤다. 그는 지난달 26일 기자들을 만나던 중 주한 연대설 관련 질문을 받자 “제 코가 석 자인데 딴 생각할 여지가 있겠느냐”고 답변했다. 다만 무소속 대구시장 출마 가능성에 대해선 “모든 경우의 수에 대해 준비하고 있다”고 답변했다. 따라서 주한 연대설 성립 가능성 자체를 배제한 것은 아니라는 해석이 나왔다. 주 부의장의 항고 제기는 국민의힘의 치명적 문제 하나를 외부로 노출했다. 국민의힘에선 당내 처분에 대해 연이어 법원으로 달려가는 흐름이 이어지고 있다. 가깝게는 주 부의장과 김영환 충북도지사가 컷오프에 대한 가처분을 신청했다. 김 지사는 주 부의장과 달리 가처분이 인용돼 경선에 참여할 수 있게 됐다. 멀게는 국민의힘 김종혁 전 최고위원·배현진 의원에 대해 각각 결정했던 제명·당원권 정지 1년 징계의 효력도 법원에서 정지됐다. 4건의 가처분 모두 서울남부지법 민사합의51부에서 판단했다. 재판부는 주 부의장 건에 대해서만 국민의힘의 손을 들어줬다. 장 대표는 김 지사가 신청한 가처분이 인용된 다음 날인 지난 1일 기자들과 만나 “법원이 정치에 너무 깊숙이 개입하고 있다”며 “재판장이 국민의힘에 와서 공천관리위원장과 윤리위원장을 하면 될 것 같다”고 비판했다. 국민의힘의 현 상황에 대해선 “정치의 사법화가 심각할 정도로 진행된 것 같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공천 관련 갈등이 이어지는 가운데, 국민의힘의 지방선거 승리 가능성을 어둡게 하는 신호들은 계속 이어지고 있다. 한국갤럽은 지난달 31일부터 지난 2일까지 전국 만 18세 이상 1001명을 상대로 이동통신 3사가 제공한 무선전화 가상번호를 무작위로 추출해 전화 조사원이 직접 인터뷰하는 방식으로 진행한 여론조사 결과를 공개했다. 이에 따르면, 민주당 지지율은 48%로, 국민의힘 지지율은 18%로 집계됐다. 제 코가 석 잔데… 서울에선 민주당 지지율이 51%로, 국민의힘 지지율은 13%로 집계됐다. 부산·울산·경남에서도 민주당 지지율은 42%로, 국민의힘의 지지율은 27%로 집계됐다(자세한 내용은 중앙선거여론조사심의위원회 홈페이지에서 확인 바람). 영원한 격전지 서울에서도 양당의 지지율 격차가 크게 벌어지는 여론조사 결과 수치가 공개되자, 국민의힘의 현 상황에 대한 지적이 날로 거세게 일어나고 있다. <조선일보>는 지난 4일 자 사설을 통해 “국민의힘은 지금 수도권에서 후보를 찾기가 쉽지 않다고 한다”며 “현행법상 15% 이상 득표해야 선거 비용을 전액 보전받을 수 있는데 그에 미치지 못할까 걱정한다는 것”이라며 현실을 짚었다. 이어 “말로만 ‘윤석열 전 대통령과의 절연’을 선언했을 뿐 실제로는 반대로 하고 있다”며 “공천 혼란에 대해서도 가처분을 인용한 법원 탓만 할 뿐, 어떻게 수습하고 책임질지 방향을 제시하지 않고 있다”는 등 장 대표를 강하게 비판했다. <조선일보>의 주장대로라면, 수습·책임을 맡을 당 대표는 보이지 않는 셈이다. 해당 매체는 “어렵게 나선 후보들은 국민의힘 상징색인 빨간색을 포기하고 흰색 점퍼를 입고 다닌다”며 “인구가 1300만명에 달하고 국회의원 의석수도 가장 많은 경기도에선 지사 출마자를 구하지 못해 공천을 차일피일 미루고 있다”는 현실도 짚었다. <조선일보>가 짚은 국민의힘의 현실은 신체를 통제할 두뇌 없이 거대한 군집을 이룬 채 각자의 역할을 맡은 군집 생물에 비유할 수 있다. 대표적으로 관해파리를 들 수 있다. 관해파리는 겉으로 볼 땐 덩치 큰 해파리처럼 보이지만, 실제로는 각각의 역할을 맡은 독립 개체들이 모인 군집이다. 이 개체들은 먹이 섭취·이동·번식 등 각각의 역할만을 담당한다. 각각의 개체들은 생존을 위해 서로 연결돼있지만, 이들을 하나로 통합하는 뇌는 없다. 개체 중 누군가가 제 역할을 못하면 모두 죽는다. 단세포생물인 점균류도 먹이를 찾을 때, 각자의 세포가 알아서 효율적인 길을 찾는다. 이를 통제할 뇌는 없지만, 화학적 신호를 주고받으면서 최적의 경로를 결정한다. 그런데 잘못된 경로를 찾으면 방향을 틀 능력이 없는 것으로 알려졌다. 남는 것은 군집 전체가 굶어 죽는 일이다. 페로몬을 통해 신호를 주고받는 군대개미 집단도 선봉에 선 개미가 길을 잃으면 모든 개미가 원을 그리다가 지쳐 죽는다. 제 역할 못하면… 이탈리아의 정치학자 조반니 사르토리는 원심적 경쟁 이론을 주장했다. 보통의 민주주의 국가에선 정당이 중도층의 표심을 얻기 위해 노력한다. 하지만 강경한 여당과 무책임한 야당이 양립할 땐 정당이 중도층을 설득하기보다 진영 결집에 따른 조직표 구성에 몰두한다. 이런 구도에선 중도층이 정치에서 배제되고, 정치적 대화도 단절된다. 이런 상황에선 후보자들은 당의 승리와 중도 확장을 포기하고, 강성 핵심 지지층의 지지를 얻으려고 노력한다. 중도층이 정치에 냉담해지면서 설득 가능 대상으로 강성 핵심 지지층만 남기 때문이다. 가성비 높은 선택이 될 수밖에 없다. 아울러 후보자들이 지도부를 거부하면서 강성 핵심 지지층에게만 구애하는 각자도생에 몰두한다. 이는 결국 자신들만의 세계에 빠지는 악순환으로 이어진다. 국민의힘의 지방선거 준비 과정에서 서울시장·경기도지사 경선에선 구인난에 빠졌지만, 대구시장·경북도지사 경선은 열기가 과도한 것도 이와 비슷하다. 특히 대구시장 경선엔 국회부의장·경제부총리·원내대표 등 당정의 핵심을 지낸 인사들이 모두 출마했기 때문에 더욱 눈에 띄고 있다. 미국의 정치학자 리처드 카츠와 아일랜드의 정치학자 피터 메어는 정당을 카르텔·프랜차이즈 기업에 비유하는 독특한 이론을 발표했다. 카츠와 메어는 “현대 정당이 시민의 자발적 후원보다 국가의 정당 보조금·공천권 등 국가의 자원에 의존해 서로 담합한다”고 주장했다. 그러면서 중앙당과 지역구 후보의 관계를 본사와 가맹점주 관계로 규정했다. 따라서 중앙당이 자원을 적절히 배분하지 못하거나, 시장에서 자원의 가치가 폭락하면 가맹점주의 불만이 폭발한다고 주장했다. 이들의 주장을 매개로, 캐나다의 정치학자 켄 카티는 “정당이 실제로 프랜차이즈 시스템으로 바뀌고 있다”고 주장했다. 카티에 따르면, 정당은 브랜드로서만 기능하고, 선거에선 후보가 중앙의 브랜드를 빌려온다. 공천은 결국 이들 간 계약 관계 역할을 한다. 이는 실제 정치적 현상으로 드러나고 있다. 오세훈 서울시장은 지난 2일 서울 쌍문역 일대 쌍리단길을 방문했다. 오 시장의 현장 방문에 동행한 국민의힘 소속 서울시의원들과 도봉구의원들은 국민의힘의 상징색 빨간색이 아닌 흰색 점퍼를 입었다. 오 시장도 서울시 로고가 새겨진 흰색 점퍼를 입고 현장을 돌아다녔다. 지난달 31일 진행된 국민의힘 서울시장 본경선 후보들 대상 첫 토론회에서도 후보들은 장 대표를 비판했다. 이들은 “흰색 점퍼에 눈이 간다면 동그라미 푯말을, 빨간색 점퍼에 눈이 간다면 엑스 푯말을 들어달라”는 진행자의 요구에 일제히 엑스 푯말을 들었다. 오세훈 ‘흰색 점퍼’ 현장행 “빨간색 입고 싶다” 대우그룹·프랑스 사회당 등 한순간에 망한 대마들 하지만 말은 날카로웠다. 오 시장은 “빨간색 점퍼를 입고 싶은 마음을 엑스 푯말을 들어 표현해 봤다”고 말했다. 미래통합당 윤희숙 전 의원은 “흰색 옷을 입어야 하는 사람은 장 대표”라며 “이번 공천이 마무리되면 백의종군을 결심해 달라”고 요구했다. 국민의힘 박수민 의원은 “빨간 당 출신이 빨간색을 안 입는 자기모순은 이해할 수 없다”면서도 “장 대표가 확장하지 못했다면 후보들이 확장하면 된다”고 주장했다. 이들은 지난달엔 장 대표의 지원 유세에 대해서도 부정적인 의견을 밝혔다. 본사에 대한 가맹점주들의 집단행동이라고 표현할 수도 있다. 서울시당위원장을 맡은 배 의원도 지난 3일 자신의 페이스북을 통해 “국민의힘의 서울 지지율 13%의 주역 장동혁 지도부가 기초단체장 후보를 못 구한 지역의 후보를 구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지방선거 패배 가능성이 내·외부에서 연이어 제기되고 있지만, 국민의힘 지도부에 대해선 “변화할 의지도, 대책도 없는 것 같다”는 평이 나온다. 이 같은 상황은 카츠와 메어가 이미 이론적으로 짚었다. 이들은 “카르텔 정당은 국가 자원을 독점하기 때문에 ‘우리는 망하지 않는다’는 착각에 빠지기 쉽다”고 지적했다. 바둑으로 치면, 국민의힘은 여러 개의 돌로 넓게 자리 잡은 곤마인 ‘대마’와 비슷하다. 시사 분야에서 관용적으로 잘 쓰는 표현 중 하나는 ‘대마불사’다. “대기업이나 대형 금융기관은 국가의 지원을 받아 망하지 않는다”는 관용 표현이다. 그런데 우리나라의 1990년대 후반 IMF 금융위기는 대마불사로부터 비롯됐다. 가장 충격적이었던 상황은 당시 재계 2위였던 대우그룹의 해체였다. 김우중 당시 회장은 ‘세계 경영’이라면서 해외 업체를 공격적으로 인수했다. 그러다 IMF 금융위기를 맞아 구조조정을 거쳤지만, 삼성자동차를 받고 대우전자를 주는 빅딜 과정에서 엄청난 빚을 져 결국 워크아웃을 선언했다. 김 전 회장도 해외로 도피했다. 대우그룹은 그렇게 해체됐다. 국제 정치에서도 예외가 아니다. 1990년대 초반 캐나다의 집권당 진보보수당은 경제 실정과 내부 갈등 끝에 구심력을 잃고 연이은 당원 탈당 사태를 겪었다. 그 결과 150석을 넘게 보유했던 거대 여당이 선거 한번에 2석만 건지는 참패를 당해 역사 속으로 사라졌다. 프랑스에서도 프랑수아 올랑드 전 대통령의 낮은 지지율을 극복하지 못했던 사회당은 지난 2017년 대선을 앞두고 강경한 좌파 성향 브누아 아몽 대선후보를 선출했다. 그러자 사회당 소속 정치인 다수는 에마뉘엘 마크롱 대통령이 창당했던 신생 정당 앙 마르슈로 옮겼고, 당은 선거에서도 참패했다. 반대로 민주당은? 민주당은 대구시장 선거 승리를 위해 대구에서 일정한 기반을 갖추고 있고 선거 승리 경험도 있는 김부겸 전 총리를 대구시장 후보로 선출했다. 이어 지난 8일엔 민주당 정청래 대표가 김 후보와 함께 대구 농수산물도매시장을 방문하는 등 승리 의지를 드러냈다. 구인난을 겪고 있는 국민의힘과 달리, 민주당에선 추미애 의원이 치열한 경선 끝에 경기도지사 후보로 선출돼 주목받고 있다. 대마불사는 과연 영원한 걸까. 대마불사만 믿고 배짱 영업을 해도 되는 걸까. 대우그룹 해체는 국민의힘에 어떤 의미를 줄까. <ctzxp@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