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삼기의 시사펀치> 더 이상 보좌진·매니저 뒤에 숨을 수 없는 사회

2025년 말, 관리 실패는 용납되지 않았다

2025년 말, 정치와 연예는 전혀 다른 언어를 쓰는 듯 보이면서도 똑같은 결말을 맞았다. 국회에서는 보좌진과의 갈등 끝에 더불어민주당 김병기 의원이 30일 원내대표직에서 하차했고, 방송가에서는 매니저와의 갈등이 수면 위로 떠오르며 방송인 박나래가 출연 중이던 프로그램에서 하차했다.

사건의 맥락은 달랐지만, 사회가 읽어낸 메시지는 하나였다. 더 이상 보좌진과 매니저 뒤에 숨을 수 없는 시대가 도래했다는 사실이다. 문제는 ‘누가 먼저 잘못했는가’가 아니라, 왜 이 갈등이 조정되지 못하고 하차로 끝났는가다.

정치에서 보좌진은 의원의 손과 발이다. 연예계에서 매니저는 연예인의 분신이다. 일정 관리, 대외 소통, 위기 대응까지 그들의 손을 거치지 않는 일이 거의 없다. 이 말은 곧 가장 많은 권한을 위임받은 존재라는 뜻이기도 하다.

그런데 이 가장 가까운 관계가 동시에 균열을 일으켰다. 이는 우연이 아니다. 권력과 명성이 커질수록 직접 통제는 줄어들고, 대신 ‘사람을 통한 관리’가 늘어난다. 문제는 그 관리가 시스템이 아니라 정서와 관성에 의존해 왔다는 점이다.

갈등은 쌓였고, 조정 장치는 없었으며, 결국 내부에서 폭발했다.

신기하게도 사건이 터질 때마다 “보좌진이 문제였다” “매니저가 선을 넘었다”는 말이 반복됐다. 이 문장은 늘 상부를 보호했다. 그러나 2025년 말의 우리 사회는 그 문장을 더 이상 받아들이지 않았다.


보좌진과 매니저는 독립된 인격체이자 노동자다. 그들이 감당해야 할 역할과 권한은 계약과 직무로 정해져 있다. 그 경계를 넘게 만든 것은 누구였는가. 지시가 불명확했고, 책임이 흐릿했으며, 갈등을 중재할 리더십이 부재했다면 그 책임은 결국 권력을 쥔 사람에게 귀속된다.

이런 사안을 개인 성향으로 축소하는 순간, 구조는 사라진다. “까다롭다” “예민하다” “사람을 잘 못 다룬다”는 말은 편리하지만 무책임하다. 그 순간 책임은 성격의 문제로 흐려지고, 관리 실패라는 본질은 교묘히 가려진다.

관리 실패는 성격의 문제가 아니라 시스템의 부재다. 정치인이 보좌진을 감정 노동자로 쓰고, 연예인이 매니저에게 사생활까지 떠맡기는 순간 갈등은 구조화된다. 이를 방치한 채 결과만 통제하려 들면, 남는 선택지는 하차뿐이다.

과거라면 사과문 한 장으로 봉합됐을 사건이다. 그러나 이번에는 달랐다. 왜였을까? 이유는 단순하다. 사회가 더 이상 ‘관리 실패’를 감내하지 않기 때문이다. 사과보다 구조를, 해명보다 책임의 주체를 먼저 묻는 단계로 넘어왔기 때문이다.

2025년 말의 한국 사회는 더 이상 결과만으로 책임을 판단하지 않았다. 성과가 좋았다는 이유로 과정의 실패를 눈감아 주지도 않았고, 사과했다는 이유로 구조적 문제를 덮어두지도 않았다. 지금 사회가 요구하는 책임은 ‘무슨 일이 벌어졌는가’가 아니라 ‘왜 그렇게 관리되었는가’에 대한 설명이다.

관리의 설계, 권한의 배분, 갈등의 조정 과정까지 책임의 범주로 들어왔다. 이것은 도덕적 엄격함의 강화가 아니라, 사회가 성숙 단계로 이동하고 있다는 신호다. 개인의 명성과 지위가 책임을 유예해주던 시대는 끝났고, 이제 책임은 역할과 구조를 따라 정확히 되돌아간다.

정치에서 신뢰는 곧 권력이다. 내부 관리에 실패한 권력은 외부 통제 역시 기대할 수 없다. 연예계에서 이미지는 자산이다. 관리되지 않은 이미지는 제작진과 플랫폼이 감당해야 할 리스크가 된다. 그래서 사과가 아니라 하차가 선택됐다. 이것은 개인의 결단이라기보다, 시스템의 판단이었다.


물론 그들에게 책임이 없다는 뜻은 아니다. 전문성 부족, 감정적 대응, 내부 갈등의 외부화는 분명 비판받아야 한다. 그러나 이것이 면죄부가 될 수는 없다. 문제의 일부를 책임진다고 해서, 문제의 전체를 떠안을 수는 없기 때문이다.

조직에서 문제가 반복된다면, 개인의 일탈이 아니라 관리 체계의 실패다. 권한을 위임했으면 통제와 지원도 함께 제공해야 한다. 이를 하지 못했다면, 결과에 대한 책임 역시 위에서 져야 한다. 리더십은 성과가 좋을 때가 아니라, 문제가 생겼을 때 존재 이유가 증명된다.

김병기 의원과 박나래의 하차가 비슷한 시기에 벌어진 것은 상징적이다. 이는 정치와 연예라는 영역을 넘어, 한국 사회 전반의 책임 감각이 이동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서로 다른 세계에서 같은 결론이 나왔다는 점이 이 변화의 깊이를 말해준다.

이제 사회는 “누가 결정했는가” “누가 관리했느냐”고 묻는다. 결과만이 아니라 과정, 성과만이 아니라 관계를 평가한다. 내부자의 목소리는 더 이상 소문이 아니라 증거가 된다. 침묵은 미덕이 아니라 위험 신호로 해석되는 시대가 됐다.

과거에는 인간관계로 버티는 구조가 통했다. 오래 함께했으니 참아라, 믿고 맡겼으니 문제 삼지 마라. 그러나 그 방식은 결국 누군가의 침묵과 희생 위에 서 있었다. 그 희생이 반복될수록 조직은 안정이 아니라 피로를 축적해 왔다.

이제 그 침묵이 깨지고 있다. 보좌진과 매니저는 더 이상 방패가 아니다. 가장 먼저 균열을 드러내는 경고등이다. 그 경고를 무시한 책임은 반드시 상부로 되돌아온다. 경고음을 끈다고 엔진 고장이 사라지지는 않는다.

김병기 의원과 박나래의 하차는 개인의 단순한 몰락담이 아니다. 이것은 관리하지 못한 권력이 어떻게 고립되는지 보여준 교본이다. 권력은 외부의 공격보다 내부의 균열에 더 취약하다는 사실을 다시 확인시킨다.

더 이상 보좌진과 매니저 뒤에 숨을 수 없다. 가장 가까운 사람을 관리하지 못한 권력은, 그 자체로 관리 자격을 의심받는다. 2025년 말의 우리 사회는 그것을 용납하지 않았다. 명성과 지위는 이제 보호막이 아니라 검증 대상이 됐다.

하차의 시대는 잔인하지만 명확하다. 책임을 관리하지 못하면, 자리도 지킬 수 없다. 이것이 지금 한국 사회가 정치와 연예 모두에게 던지는 동일한 경고다. 그리고 이 경고는 앞으로 더 자주, 더 많은 영역에서 반복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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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독> 황하나 ‘경찰 야당’ 의혹

[단독] 황하나 ‘경찰 야당’ 의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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