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청자 기죽이는 '집 자랑' 예능의 민낯

“자랑하려고 나온 건가?” 스타들의 화려한 일상

[일요시사 취재2팀] 함상범 기자 = 특정 연예인이 관찰 예능에 출연한 기사를 검색해보면, 흔히 보이는 제목으로 ‘한강뷰 공개’가 보인다. 요즘 관찰 예능에는 탁 트인 한강뷰를 공개하며, 성공한 삶을 누리는 장면이 지나칠 정도로 많이 보인다. 대한민국 국민이라면 누구나 한강 인근의 집에서 살고 싶지만, 턱없이 높아진 집값 탓에 꿈도 꾸기 힘들다. 그런 가운데 연예인들의 으리으리한 집을 보고 있으면 자연스럽게 박탈감이 느껴질 수밖에 없다. 

스타의 라이프를 엿보는 일은 국내 시청자들에겐 일상이 됐다. 채널마다 여러 작품의 관찰 예능을 제작하고 있으며, 꼭 관찰 예능이 아니더라도 스타의 집을 공개하는 프로그램이 적지 않다. 연예인들의 사생활을 들여다보는 프로그램이 늘어나면서, 그만큼 스타의 집은 물론 안방까지 살펴볼 수도 있게 됐다. 

시기심
질투

연예인의 직업적 특성상 스케줄이 없는 경우에는 집에만 있는 상황이 많을 뿐 아니라, 대중의 눈길이 부담돼 종일을 집에서만 보내는 경우도 있다. 그러다 보니 거실뿐 아니라 집 안 곳곳의 숨겨진 공간마저 시청자들에게 보여주게 된다. 

국내에서 사회적 문제로 가장 크게 손꼽히고 있는 부동산 이슈다 보니 미디어에서 자연스럽게 나오는 장면이 자극적으로 받아들여질 수밖에 없다. 괜한 시기심과 질투가 쌓이고 있고, 박탈감도 늘어난다. 

최근 커뮤니티를 찾아보면 자신이 살고 있는 집의 가격을 공개하는 사람도 적지 않다. 대부분 수년 전 3억원 정도에 산 아파트가 10억원 이상으로 높아졌다는 글이 많다. 엄청난 양의 은행 대출을 끼고 산 집이 수억원 이상 뛰었다는 내용이 대다수다. 


그렇다고 좋을 것도 없다. 주변 지역도 이미 엄청나게 올라서 아무리 높은 가격에 매매를 하더라도 세금을 떼고 나면 더 좋은 곳으로 이사할 수도 없는 형편이다. 오히려 비싸진 세금으로 숨만 턱턱 막힌다. 그나마 운이 좋게 집값이 오른 이들조차도 나아진 게 없는 게 한국의 현주소다.

이로 인해 갑자기 요동치는 집값이 전에 없던 계층을 만들어내고 있다는 우려가 나오기도 한다. 

그뿐만 아니라 지방에는 점점 인구가 줄어드는데 서울에는 인파가 몰리고 있어 악순환은 지속될 것으로 예상된다. 그러면서 부의 양극화는 점점 더 심해지고 있다. 서울에서 ‘내 집 마련’은 부의 상징이 돼버렸다. 한때는 대기업 브랜드 아파트만 해당한 ‘드림 하우스’가 서울 전역에 퍼지고 있는 것.

심지어 전세값마저 급등하고 있어 소시민이 마음은 더 팍팍해진다.

아울러 중국 내에서 세금을 피하고자 한국의 집에 눈을 돌린 중국인들의 자본마저 서울과 수도권에 투입되면서, 집값은 하늘 높은 줄 모르고 올라가고 있다. 정부에서 집값을 잡아보려 정책을 내놓고 있다. 그러나 더 좋은 곳에서 살고, 더 나은 삶을 살고자 하는 수백만 국민의 욕망을 몇 가지 정책으로 잡기에는 무리가 있어 보인다.

이러한 상황에 미디어는 끊임없이 스타의 화려한 집을 들춰내고 있다. 기본적으로 한강 경치나 남산뷰가 탁 트여있고, 유모차를 끌 수 있을 만큼 넓은 거실과 누가 봐도 좋은 최신형 가전이 즐비해 있다. 

훤히 보이는 탁 트인 뷰…우연의 일치?
“<나혼자 잘 산다>로 이름 바꾸던가요”


집 때문에 고민을 앓고 있는 시청자들의 현실적인 문제와 겹치면서 스타들의 집은 시기의 대상이 되거나, 박탈감의 이유가 된다. 그런 상황에 때아닌 불똥이 튄 곳이 MBC <나 혼자 산다>의 출연진이다. 

최근 전현무와 박나래, 화사, 이시언 등이 집 때문에 도마 위에 올랐다. 편한 이미지의 예능인들이 크고 좋은 집에 사는 모습을 보니, 불편함이 생긴 것. 시기와 질투심이 커져 비판의 대상으로 번졌다.

전현무가 <나혼자 산다>에서 공개한 새 아파트는 서울 삼성동에 위치한 ‘아이파크 삼성’으로 알려졌다. 이 아파트는 총 3개동 449세대의 단지로 공급면적 182~345㎡의 대형 평수로 구성됐으며, 가격은 가장 작은 평수가 47억원을 넘는다. 

화사가 사생활 보호를 위해 이사왔다는 ‘한남포도빌’은 7가구로 구성된 대형 고급빌라로, 매물가격은 30억원이다. 

한 매체의 단독 보도로 전해진 박나래가 경매로 낙찰받은 이태원동 소재의 단독주택은 대지면적 약 166평, 건물면적 약 97평으로 지하 1층, 지상 2층으로 이뤄졌다. 경매 시장에 48억원에 나왔고, 5명이 입찰에 참여했지만, 박나래가 55억1122만원을 써내면서 1순위로 낙찰받았다.

이미 하차한 이시언은 2016년 주택청약에 당첨돼 2018년 상도동에 있는 아파트로 이사했다. 당시 이시언이 약 7억원에 분양받은 아파트는 현재 평균 매매가 17억에 거래되고 있다.

걸어다니는 중소기업이라 불리는 연예인들이 수년 동안 노동을 통해 일궈낸 값으로 비싼 집을 사는 걸 비난할 수는 없다.

전현무는 국내 최고의 MC로서 10년 넘게 군림하면서, 무수히 많은 프로그램에 출연했다. 수없이 많은 방송을 재밌게 이끌었으며, 실패보다 성공한 프로그램이 많다. 뛰어난 입담으로 MC 영역에서는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존재였다.

상대적
박탈감

광고비를 제외해도 수백억원 단위의 출연료를 받은 것으로 짐작된다.

걸그룹 마마무의 멤버일 뿐 아니라 뛰어난 예능감으로 무대와 예능, 광고계를 휩쓴 화사나, 남성의 전유물이었던 예능계에서 여성 방송인으로 연예대상을 수상한 박나래 역시 국내 예능인 중 탑티어에 속하는 스타다. 

이시언의 경우에는 일반 시민들과 다름없이 청약에 당첨됐고, 집값이 오르는 거대한 흐름 속에서 혜택을 얻은 것뿐이다. 심지어 그는 해당 집에 거주하고 있어 문제가 될 것이 하나도 없다.


스타들이 화려하고 멋진 집에서 사는 것은 자연스러운 행보다. 오히려 돈을 쓰지 않는 것이 경제적인 측면에서 더 문제가 될 수 있다.

다만 이러한 것들이 방송을 통해 노출되면서, 시청자들에게는 어쩔 수 없는 박탈감을 전한다는 데 있다. 으리으리한 집이 공개될 때마다 나와는 다른 삶을 사는 스타들의 일상이 불편함으로 전환되고 있는 것.

일부 시청자들은 “<나 혼자 산다>말고 <나 혼자 잘 산다>로 이름을 바꿔라”라며 비난하기도 했다. 일각에서는 현실과 동떨어진 연예인들의 삶을 소개하면서, 최근 부동산 가격이 폭등해 내 집 마련에 어려움을 겪고 있는 서민들의 심정을 배려하지 못했다는 지적도 나온다. 

비단 <나 혼자 산다>만의 문제가 아니다. 방송은 아랑곳하지 않고 스타들의 집을 연신 공개한다. 

<나 혼자 산다>와 비슷한 포맷으로 스타들의 일상을 들여다보는 tvN <온앤오프>의 출연자들은 자연스럽게 커다란 집을 공개한다. 성시경, 엄정화 등 유명 스타들의 집은 입이 떡 벌어질 만큼 화려함을 자랑한다. 특히 운동장만한 테라스가 있는 엄정화의 집은 시간이 지나도 회자되고 있다. 

배우 윤진이가 출연한 회차 중 친구들에게 고민을 털어놓는 장면에서 한강이 훤히 보이는 풍경도 전파를 탔다. 의도성이 있었는지는 모르겠지만, 내용보다는 넓직한 한강이 더 눈에 들어오는 장면이다. 


한강뷰
남산뷰

유명인을 직접 만나 그들의 전문성을 접해보는 SBS <집사부일체> 역시 수많은 유명인의 집을 공개했다. 인물에 주로 초점이 맞추지만, 그들의 삶을 드러내는 집도 자연스럽게 비춘다. 인생과외가 초점이지만, 때때로 호화스러운 집과 그 집을 보며 감탄하는 출연진의 모습이 화면을 채운다.

MBC <전지적 참견 시점> 역시 함연지의 신혼집을 공개하는 과정에서 한강뷰가 펼쳐지는 멋진 집을 공개했고, <미운 우리 새끼>의 박수홍과 하석진 역시 한강이 탁 트인 아파트를 공개했다. 

스타들이 혼자 먹기 아까운 메뉴를 공개하면 평가단의 평가한 뒤 방송 다음 날 실제로 전국 편의점에 출시하는 프로그램인 <편스토랑> 역시 프로그램의 취지와 맞지 않게 멋진 집을 소개했다.

한다감은 랜선 집들이를 통해 한옥 친정집을 소개했다. 그 과정에서 ‘집 한 채만한 대문’이 화제가 되기도 했다. 이외에도 박정아와 전혜빈 등 출연자들의 집을 공개하기도 했다. 누구나 살고 싶은 이들의 집에 패널은 “최고의 뷰”라며 감탄하기 일쑤다.

일각에서는 예능에 자주 보이지 않던 스타가 갑작스럽게 출연하는 이유로 집을 매매할 목적이 있어서라는 주장이 나온다. 방송에서 집을 구석구석 보여주는 것만으로 엄청난 홍보효과가 있기 때문이다.

한 부동산 관계자는 “가끔 연예인들이 관찰 예능에 출연하는 배경에는 현재 사는 집을 매매할 목적이 있다”며 “집이 잘 팔리지 않을 때 예능에 출연해 공개하고 나면 현재 집값보다 더 좋은 금액으로 팔 수도 있기 때문이다. 방송이 ‘스타의 집 광고’를 해주는 것”이라고 말하기도 했다. 

집 팔려고 관찰 프로 출연도
“신기함서 식상함으로 변질”

그런 가운데 불편함과 부러움이 공존하는 사이에서 빈틈을 노리고 기획한 KBS2 <컴백홈>은 대중의 심리를 읽지 못한 채 종영했다. 청춘을 위로하고자는 목적으로 스타들의 옛날 집을 찾아가 무명시절의 추억을 들어보고, 현재 거주하고 있는 청춘과 대화하며 새롭게 인테리어를 해주는 방식으로 진행됐다. 결과는 참담했다.

이미 호화스러운 삶을 사는 스타의 옛 추억은 곱씹을수록 세입자와 시청자에겐 괴리감이 느껴질 수밖에 없다. 또 힘겨운 청춘을 돕는다는 취지로 새로운 인테리어해주는 것은, 결과적으로 해당 건물의 건물주와 인근 건물주들에게만 이득이 되는 행위라는 점에서 진정성 논란도 일었다.

기획 의도만으로 이 프로그램의 방향성을 나쁘게만 평가할 수 없지만, 경기 불안과 청년 실업, 치솟은 월세 등을 고려하지 않은 기획은 오히려 ‘청춘 코인’을 타려는 못된 속내로밖에 비치지 않았다. 결과적으로 차기 시즌을 예고하기 힘든 성적표로 마무리됐다.

KBS2 <슈퍼맨이 돌아왔다>는 출연진의 화려한 집은 물론 각종 PPL로도 논란이 됐다. 출연진이 찾는 음식점이나 다양한 식품, 심지어 어린이들이 갖고 노는 장난감과 교재까지 PPL로 드러난 바 있다.

일부 출연자의 화장대에 빼곡하게 놓인 화장품이나, 고가의 가전과 신제품까지도 방송에 쉽게 노출됐다. 워낙 심한 PPL 탓에 연예인들의 일상 공간이 시청자들에게 위화감을 조성한다는 의견이 나오기도 했다. 

볼거리?
위화감 조성

한 방송 관계자는 “연예인들의 화려한 사생활이 신기한 볼거리가 됐지만, 너무 많아져 이젠 식상함을 준다”며 “또 방송이 과도한 부동산 욕구를 부채질한다는 시각도 있다. 이제는 방송이 자제해야 하는 국면을 맞은 것 같다”고 말했다.


함상범 기자(intellybeast@ilyosisa.cokr)
 

<기사 속 기사> 월세 사는 스타들 이유는?
‘월 1000’의 비밀

tvN <온앤오프>에 출연 중인 가수 성시경은 5년 만에 이사를 했다고 전했다. 성시경은 이사를 오기 전인 용산구 한남동 집에서도 월세를 살았다고 밝혔다. 

한남동 소재의 공인중개소에 따르면 이 지역에 있는 고급빌라 월세는 800만원에서 1200만원 사이를 오간다. 한국부동산원 통계를 보면 서울 아파트의 평균 월세는 보증금 1억2000만원에 113만원 수준이다.

이에 비해 월 1000만원 수준의 월세는 1년으로 따지면 1억2000만원으로 적지 않은 금액이다. 1년 동안 1억원의 주거비를 지급한다는 것은 일반인에게는 쉽게 이해되지 않는 대목이다.

연예인들이 고액 월세를 사는 이유로 세금이 꼽힌다. 집을 사면 취득세를 내야하고 보유하면 재산세와 종부세 등의 세금을 내게 되는데 문제는 고가의 집을 보유할수록 내야 할 세금도 많다는 것.

연예인이 많이 사는 한남동 소재 아파트 가격은 2020년 1월 기준 65억원인데, 이를 기반으로 보유세를 계산하면 재산세는 약 2400만원, 종부세는 6300만원에 이른다. 총 1년에 8700만원에 해당한다.

“집값보다 무서운 세금 때문에”
연예인은 프리랜서, 월세 유리

정부의 공시가격 현실화 방안으로 인해 앞으로 내야될 세금은 더 늘어날 수 있다.

그뿐만 아니라 고가 주택 매매는 쉽게 이뤄지지 않는 데다 거래가 이뤄진다고 해도 양도세 등 추가로 내야 할 세금의 액수 역시 상당하기 때문에 고급 주택을 보유하는 것 자체가 부담될 수 있다는 관측이 나온다. 

또 연예인의 직업적 특성상 극성팬들이 집으로 찾아오는 경우가 많아, 잦은 이사를 하기도 한다는 점에서 월세가 다른 방식도 유리한 측면도 있다. 

또 연예인은 수입이 일정하지 않으며, 대중의 심리를 거스르게 하는 실수로 모든 방송을 하차하면서 수입이 없어질 수도 있다. 이런 위험을 감수하는 측면에서 집을 사기보다는 월세로 지내는 것이 더 낫다는 의견도 나온다.

한 방송 관계자는 “연예인은 수입이 일정하지 않은 사실상 프리랜서”라며 “어떤 일이 어떻게 벌어질지 모르기 때문에, 만약을 대비해 월세에 사는 것이 유리할 것”이라고 말했다. <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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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럼프 뒤통수로 다시 꼬인 한·미·일

트럼프 뒤통수로 다시 꼬인 한·미·일

[일요시사 취재1팀] 장지선 기자 = 불확실성의 시대에 가장 확실하다고 굳게 믿었던 관계에서 파열음이 나오고 있다. 새 정부 초기부터 보이기 시작한 적신호가 이제 눈 돌릴 수 없을 정도로 커진 모습이다. 어디서부터 균열이 시작된 걸까? 우리나라 외교는 한미동맹을 배경으로 진행됐다. 미국과 중국 사이에서 중립 외교를 꾀한 때도 있지만 대체로 한·미 혹은 한·미·일 관계가 우선시됐다. 하지만 최근 들어 우리나라와 미국이 삐걱거리는 모습이 자주 포착되고 있다. 상수였는데 변수됐나 지난 12일 미국 이민 당국에 체포·구금됐던 한국인 근로자 316명이 귀국했다. 이번에 구금된 한국인은 총 317명으로 남성 307명, 여성 10명이다. 이 가운데 1명은 잔류를 택했다. 지난 4일, 미국 이민 당국의 불법체류 및 고용 전격 단속에서 체포돼 포크스턴 구금시설 등에 억류된 지 8일 만이다. 이들은 미국 조지아주 엘러벨의 현대차그룹-LG에너지솔루션 합작 배터리 공장 건설 현장에서 일하던 중에 체포·구금됐다. 문제 해결을 위해 조현 외교부 장관이 미국을 급히 방문했다. 당초 이들은 지난 10일(현지시각)에 전세기를 타고 출국할 예정이었지만 ‘미국 측 사정’으로 지연됐다. 외교부는 이번에 체포·구금된 한국인이 향후 불이익을 받지 않도록 미국에 요청한 것으로 알려졌다. 외교부에 따르면, 조현 외교부 장관은 마코 루비오 미 국무부 장관에게 이들이 신체적 속박 없이 신속히 귀국하고 향후 미국에 재입국하는 데 불이익이 없게 해달라고 요청했고 미국 측으로부터 긍정적인 답을 받았다고 한다. 체포·구금된 한국인이 미국을 떠나는 방식을 두고 우리나라와 미국 간의 이견이 있었다. 우리나라는 ‘자진 출국’을, 미국은 ‘추방’을 언급한 것이다. 자진 출국 방식으로 귀국하면 향후 ‘5년 입국 제한’ 등의 불이익이 없다. 반면 추방 명령으로 미국을 떠나면 영구적으로 기록이 남아 최대 10년간 미국에 들어갈 수 없다. 지난 8일 크리스티 놈 미국 국토안보부 장관이 이번 사안과 관련해 “법대로 하고 있다. 그들은 추방될 것”이라고 말하면서 출국 형태에 대한 논란이 불거졌다. 다행히 미국 측과 조율이 이뤄지면서 자진 출국 형태로 귀국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외교부에 따르면 루비오 장관은 “트럼프 대통령도 이재명 대통령과 도출한 한미 정상회담의 성과를 높이 평가하고 있고, 이 사안에 대한 한국인의 민감성을 이해하고 있다. 특히 미국 경제·제조업 부흥을 위한 한국의 투자와 역할에 대해 긍정적으로 보고 있다”고 말했다. 한국인 체포·구금 사태 야 “700조원 줬는데도?” 그러면서 “트럼프 대통령이 한국 측이 원하는 바대로 가능한 한 이뤄질 수 있도록 신속히 협의하고 조치할 것을 지시했다”고 설명했다. 우리 정부의 노력으로 상황이 봉합되는 모양새지만 한국인 체포·구금 사태의 후폭풍이 상당할 것이라는 의견이 나오고 있다. 무엇보다 한국인 체포·구금 과정에서 드러난 미국 이민 당국의 모습을 두고 동맹을 고려하지 않은 처사라는 말이 나왔다. 실제로 미국 측은 한국인 체포 과정에서 수갑을 채웠고, 이들을 환경이 열악한 수용소에 구금했다. 야권에서 ‘외교 참사’가 일어났다고 목소리를 높이는 이유이기도 하다. 국민의힘 박성훈 수석대변인은 지난 6일, 한국인 체포·구금 사태 이후 내놓은 논평에서 “이재명정부는 700조원 선물 보따리를 미국에 안겼지만 회담은 공동성명조차 발표하지 못한 채 끝났다”며 “그 결과가 고스란히 현대차-LG 합작 공장 단속 사태로 돌아왔다”고 맹공을 퍼부었다. 그러면서 “국민 사이에서는 실컷 투자해 주고 뒤통수 맞은 것 아니냐는 분노의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며 “700조원에 달하는 투자를 약속해 놓고도 국민의 안전도, 기업 경쟁력 확보도 실패한 것이 이재명정부의 실용 외교 현실”이라고 비판했다. 우리나라는 관세 협상, 한미 정상회담 등을 통해 미국에 5000억달러(약 700조원)를 투자하겠다고 했다. 국민의힘 장동혁 대표도 지난 6일 페이스북에 글을 썼다. 수갑 채우고 수용소 넣고 장 대표는 “이번 사태는 단순한 불법체류자 단속을 넘어 앞으로 미국 내 한국 기업 현장과 교민 사회 전반으로 피해가 확산할 수 있다는 점에서 매우 심각한 사안”이라고 우려했다. 이어 “수많은 한국 기업이 미국 전역에서 공장을 건설하고 투자를 확대하는 상황에서 근로자들이 무더기로 체포되는 일이 되풀이된다면 국가적 차원의 리스크로 이어질 수밖에 없다”고 강조했다. 우리 정부는 이 같은 사태가 되풀이되지 않도록 미국 측과 방지책을 마련하겠다는 입장이다. 조 장관은 루비오 장관 등과 만난 자리에서 이번 사태의 재발 방지책과 대미 투자 한국 기업 관계자들의 비자 문제 등을 논의한 것으로 알려졌다. 외교부에 따르면 조 장관은 유사 사례 재발 방지를 위해 새로운 비자 카테고리를 만드는 등 다양한 방안 논의를 위한 ‘한미 외교부-국무부 워킹그룹’ 신설을 제의했다. 일각에서는 이번 사태를 한미 관계 차원에서 봐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한미 관계가 순탄하게 흘러가고 있지 않다는 신호로 봐야 한다는 설명이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당선 직후부터 관세 등을 무기로 전 세계를 흔들고 있는 것은 사실이지만, 이 과정에서 우리나라가 동맹 취급을 받지 못하고 있다는 지적은 끊임없이 제기된 바 있다. ‘삐걱거림’은 이정부 출범 초기부터 감지됐다. 미국 백악관은 이재명 대통령 당선과 관련해 처음 내놓은 메시지에서 중국을 언급해 ‘이례적’이라는 말을 들었다. 백악관은 지난 6월3일 한국 대선 결과에 대한 언론의 질문에 “한미동맹은 철통같이 유지된다”면서도 “한국은 자유롭고 공정한 선거를 진행했지만 미국은 전 세계 민주주의 국가들에 대한 중국의 개입과 영향력 행사에 대해서는 여전히 우려하며 반대한다”고 말했다. 백악관의 메시지를 두고 이정부에 대한 중국의 영향력 행사 견제, 실용 외교를 표방하는 이 대통령이 중국과 거리두기를 해야 한다는 압박 등 다양한 해석이 이어졌다. 당시 미국은 중국과 관세를 두고 이른바 ‘치킨게임’을 벌이고 있었다. 시간이 가면서 다소 소강상태가 되긴 했지만 갈등의 골은 여전히 남아 있다. 분위기만 화기애애? 관세 협상이나 한미 정상회담을 두고도 여전히 후폭풍이 계속되고 있다. 우리나라는 트럼프 대통령이 관세 협상 시한으로 정한 날짜를 하루 앞두고 미국과 타결을 이뤄냈다. 당초 한미FTA로 우리나라와 미국 사이의 관세는 일부 품목을 제외하고 ‘0’이었기에 타격은 불가피한 상황이었다. 트럼프 대통령이 서한을 통해 언급한 상호 관세 25%를 15%로 낮추는 데는 합의했지만 과정은 난항을 거듭했다. 루비오 장관의 방한이 취소되는가 하면 ‘한미 2+2 통상 협의’를 앞두고 미국 측의 취소로 구윤철 기획재정부 장관이 발길을 돌리는 일도 벌어졌다. 일본이 먼저 관세 협상을 마무리하면서 기준이 생기고 시간에 쫓기는 등 여의치 않은 상황이 지속됐다. 결국 미국과의 관세 협상은 일본과 비슷한 수준에서 정리됐고 동시에 천문학적인 수준의 대미 투자를 약속했다. 이때도 관세 협상 결과를 두고 이견이 나타났다. 우리 정부 측은 쌀, 소고기 등 농산물 개방은 없다고 주장했던 반면, 트럼프 대통령은 전면 개방을 말했다. 또 대미 투자의 방식에서도 서로 다른 생각을 보였다. 이견은 한미 정상회담을 거치고도 조율되지 않은 모양새다. 미국 측은 관세 협상 타결 결과를 발표하면서 이 대통령의 방미를 언급했고 실제 한미 정상회담이 열렸다. 정상회담은 화기애애한 분위기에서 치러졌다. 앞서 트럼프 대통령이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을 앞에 두고 면박을 주는 등의 돌발 행동을 보인 바 있어 우려가 제기됐지만 무난하게 마무리됐다는 평을 받았다. 문제는 명문화된 결과가 없다는 점이다. 지난달 25일 이 대통령과 트럼프 대통령은 워싱턴 D.C. 백악관에서 정상회담을 진행했지만 공동합의문은 발표하지 않았다. 역대 우리나라 대통령들은 정상회담 이후 공동성명을 통해 동맹의 성과와 협력 의제를 문서화해 왔다. 당선 메시지에 중국 언급 정상회담 합의문도 없어 당시 공동합의문이 나오지 않은 데 대해 ‘이례적’이라는 평가가 제기될 정도였다. 정상회담에서 각종 현안을 폭넓게 논의했지만 구체적 합의에 이르지 못한 결과였다. 특히 자동차 관세가 확정되지 않으면서 업계는 ‘불확실성’을 해소하지 못했다. 관세 협상에서 자동차 관세를 25%에서 15%로 낮추는 내용으로 타결했지만 문서로 명시되지 않은 것이다. 안보 문제 역시 마찬가지였다. 위성락 국가안보실장은 한미 정상회담 이후인 지난달 28일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공동발표문이 항상 있는 것은 아니”라며 “정상 간 논의 내용은 상당 부분 생중계됐고 나머지는 언론 브리핑을 통해 양국 국민에게 효과적으로 설명했다”고 말했다. 위 안보실장은 “문건을 만들어내기까지에 이르지는 못했지만 많은 공감대가 있었다. 그런 공감대를 바탕으로 추가 협의를 하면 마무리될 것”이라고 설명했다. 지난 8일 국회 외교통일위원회 전체회의에서 나온 조 장관의 발언은 조금 더 구체적이었다. 그는 “투자 부문에서 국민에게 큰 부담이 될 수 있어 수용하지 않았다”며 공동합의문이 발표되지 않은 이유에 대해 말했다. 이어 “미일 간 합의문 내용을 보면 왜 우리가 협상을 지연해 가면서까지 안을 만들고 있는지 이해될 것”이라고 부연했다. 일본은 관세 협상에서 제조업·항공우주·농업·에너지·자동차 등 분야에서 미국에 시장을 개방하고 5500억달러 규모의 대미 투자를 약속하는 내용의 합의를 진행했다. 또 합의 불이행 시 미국이 관세를 재조정할 수 있다는 조항이 담긴 것으로 알려지면서 ‘굴욕 협상’이라는 말도 나왔다. 조 장관은 “일본의 타결 협상안을 보면 우리가 비슷한 협상안을 받아들인다고 할 때 여러 문제점이 많다”며 “받아들일 수 없는 것을 분명히 하며 협상을 강하게 하다 보니 합의가 지연되고 있다”고 말했다. 반도체 품목 관세가 부과될 때 최혜국 대우가 불확실하다는 지적에 대해서도 “현재로서는 그렇다”고 인정했다. 불확실성 해소될까? 우리나라와 미국 사이에 자리한 불확실성이 여전히 해소되지 않고 있는 셈이다. 여기에 트럼프 대통령이 타국을 대하는 방식은 이제 변수를 넘어 상수가 되는 모양새다. 어디로 튈지 모르는 트럼프 대통령의 행보가 한미 관계를 더 흔들 가능성도 있는 상황이다. <jsjang@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