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청자 기죽이는 '집 자랑' 예능의 민낯

“자랑하려고 나온 건가?” 스타들의 화려한 일상

[일요시사 취재2팀] 함상범 기자 = 특정 연예인이 관찰 예능에 출연한 기사를 검색해보면, 흔히 보이는 제목으로 ‘한강뷰 공개’가 보인다. 요즘 관찰 예능에는 탁 트인 한강뷰를 공개하며, 성공한 삶을 누리는 장면이 지나칠 정도로 많이 보인다. 대한민국 국민이라면 누구나 한강 인근의 집에서 살고 싶지만, 턱없이 높아진 집값 탓에 꿈도 꾸기 힘들다. 그런 가운데 연예인들의 으리으리한 집을 보고 있으면 자연스럽게 박탈감이 느껴질 수밖에 없다. 

스타의 라이프를 엿보는 일은 국내 시청자들에겐 일상이 됐다. 채널마다 여러 작품의 관찰 예능을 제작하고 있으며, 꼭 관찰 예능이 아니더라도 스타의 집을 공개하는 프로그램이 적지 않다. 연예인들의 사생활을 들여다보는 프로그램이 늘어나면서, 그만큼 스타의 집은 물론 안방까지 살펴볼 수도 있게 됐다. 

시기심
질투

연예인의 직업적 특성상 스케줄이 없는 경우에는 집에만 있는 상황이 많을 뿐 아니라, 대중의 눈길이 부담돼 종일을 집에서만 보내는 경우도 있다. 그러다 보니 거실뿐 아니라 집 안 곳곳의 숨겨진 공간마저 시청자들에게 보여주게 된다. 

국내에서 사회적 문제로 가장 크게 손꼽히고 있는 부동산 이슈다 보니 미디어에서 자연스럽게 나오는 장면이 자극적으로 받아들여질 수밖에 없다. 괜한 시기심과 질투가 쌓이고 있고, 박탈감도 늘어난다. 

최근 커뮤니티를 찾아보면 자신이 살고 있는 집의 가격을 공개하는 사람도 적지 않다. 대부분 수년 전 3억원 정도에 산 아파트가 10억원 이상으로 높아졌다는 글이 많다. 엄청난 양의 은행 대출을 끼고 산 집이 수억원 이상 뛰었다는 내용이 대다수다. 


그렇다고 좋을 것도 없다. 주변 지역도 이미 엄청나게 올라서 아무리 높은 가격에 매매를 하더라도 세금을 떼고 나면 더 좋은 곳으로 이사할 수도 없는 형편이다. 오히려 비싸진 세금으로 숨만 턱턱 막힌다. 그나마 운이 좋게 집값이 오른 이들조차도 나아진 게 없는 게 한국의 현주소다.

이로 인해 갑자기 요동치는 집값이 전에 없던 계층을 만들어내고 있다는 우려가 나오기도 한다. 

그뿐만 아니라 지방에는 점점 인구가 줄어드는데 서울에는 인파가 몰리고 있어 악순환은 지속될 것으로 예상된다. 그러면서 부의 양극화는 점점 더 심해지고 있다. 서울에서 ‘내 집 마련’은 부의 상징이 돼버렸다. 한때는 대기업 브랜드 아파트만 해당한 ‘드림 하우스’가 서울 전역에 퍼지고 있는 것.

심지어 전세값마저 급등하고 있어 소시민이 마음은 더 팍팍해진다.

아울러 중국 내에서 세금을 피하고자 한국의 집에 눈을 돌린 중국인들의 자본마저 서울과 수도권에 투입되면서, 집값은 하늘 높은 줄 모르고 올라가고 있다. 정부에서 집값을 잡아보려 정책을 내놓고 있다. 그러나 더 좋은 곳에서 살고, 더 나은 삶을 살고자 하는 수백만 국민의 욕망을 몇 가지 정책으로 잡기에는 무리가 있어 보인다.

이러한 상황에 미디어는 끊임없이 스타의 화려한 집을 들춰내고 있다. 기본적으로 한강 경치나 남산뷰가 탁 트여있고, 유모차를 끌 수 있을 만큼 넓은 거실과 누가 봐도 좋은 최신형 가전이 즐비해 있다. 

훤히 보이는 탁 트인 뷰…우연의 일치?
“<나혼자 잘 산다>로 이름 바꾸던가요”


집 때문에 고민을 앓고 있는 시청자들의 현실적인 문제와 겹치면서 스타들의 집은 시기의 대상이 되거나, 박탈감의 이유가 된다. 그런 상황에 때아닌 불똥이 튄 곳이 MBC <나 혼자 산다>의 출연진이다. 

최근 전현무와 박나래, 화사, 이시언 등이 집 때문에 도마 위에 올랐다. 편한 이미지의 예능인들이 크고 좋은 집에 사는 모습을 보니, 불편함이 생긴 것. 시기와 질투심이 커져 비판의 대상으로 번졌다.

전현무가 <나혼자 산다>에서 공개한 새 아파트는 서울 삼성동에 위치한 ‘아이파크 삼성’으로 알려졌다. 이 아파트는 총 3개동 449세대의 단지로 공급면적 182~345㎡의 대형 평수로 구성됐으며, 가격은 가장 작은 평수가 47억원을 넘는다. 

화사가 사생활 보호를 위해 이사왔다는 ‘한남포도빌’은 7가구로 구성된 대형 고급빌라로, 매물가격은 30억원이다. 

한 매체의 단독 보도로 전해진 박나래가 경매로 낙찰받은 이태원동 소재의 단독주택은 대지면적 약 166평, 건물면적 약 97평으로 지하 1층, 지상 2층으로 이뤄졌다. 경매 시장에 48억원에 나왔고, 5명이 입찰에 참여했지만, 박나래가 55억1122만원을 써내면서 1순위로 낙찰받았다.

이미 하차한 이시언은 2016년 주택청약에 당첨돼 2018년 상도동에 있는 아파트로 이사했다. 당시 이시언이 약 7억원에 분양받은 아파트는 현재 평균 매매가 17억에 거래되고 있다.

걸어다니는 중소기업이라 불리는 연예인들이 수년 동안 노동을 통해 일궈낸 값으로 비싼 집을 사는 걸 비난할 수는 없다.

전현무는 국내 최고의 MC로서 10년 넘게 군림하면서, 무수히 많은 프로그램에 출연했다. 수없이 많은 방송을 재밌게 이끌었으며, 실패보다 성공한 프로그램이 많다. 뛰어난 입담으로 MC 영역에서는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존재였다.

상대적
박탈감

광고비를 제외해도 수백억원 단위의 출연료를 받은 것으로 짐작된다.

걸그룹 마마무의 멤버일 뿐 아니라 뛰어난 예능감으로 무대와 예능, 광고계를 휩쓴 화사나, 남성의 전유물이었던 예능계에서 여성 방송인으로 연예대상을 수상한 박나래 역시 국내 예능인 중 탑티어에 속하는 스타다. 

이시언의 경우에는 일반 시민들과 다름없이 청약에 당첨됐고, 집값이 오르는 거대한 흐름 속에서 혜택을 얻은 것뿐이다. 심지어 그는 해당 집에 거주하고 있어 문제가 될 것이 하나도 없다.


스타들이 화려하고 멋진 집에서 사는 것은 자연스러운 행보다. 오히려 돈을 쓰지 않는 것이 경제적인 측면에서 더 문제가 될 수 있다.

다만 이러한 것들이 방송을 통해 노출되면서, 시청자들에게는 어쩔 수 없는 박탈감을 전한다는 데 있다. 으리으리한 집이 공개될 때마다 나와는 다른 삶을 사는 스타들의 일상이 불편함으로 전환되고 있는 것.

일부 시청자들은 “<나 혼자 산다>말고 <나 혼자 잘 산다>로 이름을 바꿔라”라며 비난하기도 했다. 일각에서는 현실과 동떨어진 연예인들의 삶을 소개하면서, 최근 부동산 가격이 폭등해 내 집 마련에 어려움을 겪고 있는 서민들의 심정을 배려하지 못했다는 지적도 나온다. 

비단 <나 혼자 산다>만의 문제가 아니다. 방송은 아랑곳하지 않고 스타들의 집을 연신 공개한다. 

<나 혼자 산다>와 비슷한 포맷으로 스타들의 일상을 들여다보는 tvN <온앤오프>의 출연자들은 자연스럽게 커다란 집을 공개한다. 성시경, 엄정화 등 유명 스타들의 집은 입이 떡 벌어질 만큼 화려함을 자랑한다. 특히 운동장만한 테라스가 있는 엄정화의 집은 시간이 지나도 회자되고 있다. 

배우 윤진이가 출연한 회차 중 친구들에게 고민을 털어놓는 장면에서 한강이 훤히 보이는 풍경도 전파를 탔다. 의도성이 있었는지는 모르겠지만, 내용보다는 넓직한 한강이 더 눈에 들어오는 장면이다. 


한강뷰
남산뷰

유명인을 직접 만나 그들의 전문성을 접해보는 SBS <집사부일체> 역시 수많은 유명인의 집을 공개했다. 인물에 주로 초점이 맞추지만, 그들의 삶을 드러내는 집도 자연스럽게 비춘다. 인생과외가 초점이지만, 때때로 호화스러운 집과 그 집을 보며 감탄하는 출연진의 모습이 화면을 채운다.

MBC <전지적 참견 시점> 역시 함연지의 신혼집을 공개하는 과정에서 한강뷰가 펼쳐지는 멋진 집을 공개했고, <미운 우리 새끼>의 박수홍과 하석진 역시 한강이 탁 트인 아파트를 공개했다. 

스타들이 혼자 먹기 아까운 메뉴를 공개하면 평가단의 평가한 뒤 방송 다음 날 실제로 전국 편의점에 출시하는 프로그램인 <편스토랑> 역시 프로그램의 취지와 맞지 않게 멋진 집을 소개했다.

한다감은 랜선 집들이를 통해 한옥 친정집을 소개했다. 그 과정에서 ‘집 한 채만한 대문’이 화제가 되기도 했다. 이외에도 박정아와 전혜빈 등 출연자들의 집을 공개하기도 했다. 누구나 살고 싶은 이들의 집에 패널은 “최고의 뷰”라며 감탄하기 일쑤다.

일각에서는 예능에 자주 보이지 않던 스타가 갑작스럽게 출연하는 이유로 집을 매매할 목적이 있어서라는 주장이 나온다. 방송에서 집을 구석구석 보여주는 것만으로 엄청난 홍보효과가 있기 때문이다.

한 부동산 관계자는 “가끔 연예인들이 관찰 예능에 출연하는 배경에는 현재 사는 집을 매매할 목적이 있다”며 “집이 잘 팔리지 않을 때 예능에 출연해 공개하고 나면 현재 집값보다 더 좋은 금액으로 팔 수도 있기 때문이다. 방송이 ‘스타의 집 광고’를 해주는 것”이라고 말하기도 했다. 

집 팔려고 관찰 프로 출연도
“신기함서 식상함으로 변질”

그런 가운데 불편함과 부러움이 공존하는 사이에서 빈틈을 노리고 기획한 KBS2 <컴백홈>은 대중의 심리를 읽지 못한 채 종영했다. 청춘을 위로하고자는 목적으로 스타들의 옛날 집을 찾아가 무명시절의 추억을 들어보고, 현재 거주하고 있는 청춘과 대화하며 새롭게 인테리어를 해주는 방식으로 진행됐다. 결과는 참담했다.

이미 호화스러운 삶을 사는 스타의 옛 추억은 곱씹을수록 세입자와 시청자에겐 괴리감이 느껴질 수밖에 없다. 또 힘겨운 청춘을 돕는다는 취지로 새로운 인테리어해주는 것은, 결과적으로 해당 건물의 건물주와 인근 건물주들에게만 이득이 되는 행위라는 점에서 진정성 논란도 일었다.

기획 의도만으로 이 프로그램의 방향성을 나쁘게만 평가할 수 없지만, 경기 불안과 청년 실업, 치솟은 월세 등을 고려하지 않은 기획은 오히려 ‘청춘 코인’을 타려는 못된 속내로밖에 비치지 않았다. 결과적으로 차기 시즌을 예고하기 힘든 성적표로 마무리됐다.

KBS2 <슈퍼맨이 돌아왔다>는 출연진의 화려한 집은 물론 각종 PPL로도 논란이 됐다. 출연진이 찾는 음식점이나 다양한 식품, 심지어 어린이들이 갖고 노는 장난감과 교재까지 PPL로 드러난 바 있다.

일부 출연자의 화장대에 빼곡하게 놓인 화장품이나, 고가의 가전과 신제품까지도 방송에 쉽게 노출됐다. 워낙 심한 PPL 탓에 연예인들의 일상 공간이 시청자들에게 위화감을 조성한다는 의견이 나오기도 했다. 

볼거리?
위화감 조성

한 방송 관계자는 “연예인들의 화려한 사생활이 신기한 볼거리가 됐지만, 너무 많아져 이젠 식상함을 준다”며 “또 방송이 과도한 부동산 욕구를 부채질한다는 시각도 있다. 이제는 방송이 자제해야 하는 국면을 맞은 것 같다”고 말했다.


함상범 기자(intellybeast@ilyosisa.cokr)
 

<기사 속 기사> 월세 사는 스타들 이유는?
‘월 1000’의 비밀

tvN <온앤오프>에 출연 중인 가수 성시경은 5년 만에 이사를 했다고 전했다. 성시경은 이사를 오기 전인 용산구 한남동 집에서도 월세를 살았다고 밝혔다. 

한남동 소재의 공인중개소에 따르면 이 지역에 있는 고급빌라 월세는 800만원에서 1200만원 사이를 오간다. 한국부동산원 통계를 보면 서울 아파트의 평균 월세는 보증금 1억2000만원에 113만원 수준이다.

이에 비해 월 1000만원 수준의 월세는 1년으로 따지면 1억2000만원으로 적지 않은 금액이다. 1년 동안 1억원의 주거비를 지급한다는 것은 일반인에게는 쉽게 이해되지 않는 대목이다.

연예인들이 고액 월세를 사는 이유로 세금이 꼽힌다. 집을 사면 취득세를 내야하고 보유하면 재산세와 종부세 등의 세금을 내게 되는데 문제는 고가의 집을 보유할수록 내야 할 세금도 많다는 것.

연예인이 많이 사는 한남동 소재 아파트 가격은 2020년 1월 기준 65억원인데, 이를 기반으로 보유세를 계산하면 재산세는 약 2400만원, 종부세는 6300만원에 이른다. 총 1년에 8700만원에 해당한다.

“집값보다 무서운 세금 때문에”
연예인은 프리랜서, 월세 유리

정부의 공시가격 현실화 방안으로 인해 앞으로 내야될 세금은 더 늘어날 수 있다.

그뿐만 아니라 고가 주택 매매는 쉽게 이뤄지지 않는 데다 거래가 이뤄진다고 해도 양도세 등 추가로 내야 할 세금의 액수 역시 상당하기 때문에 고급 주택을 보유하는 것 자체가 부담될 수 있다는 관측이 나온다. 

또 연예인의 직업적 특성상 극성팬들이 집으로 찾아오는 경우가 많아, 잦은 이사를 하기도 한다는 점에서 월세가 다른 방식도 유리한 측면도 있다. 

또 연예인은 수입이 일정하지 않으며, 대중의 심리를 거스르게 하는 실수로 모든 방송을 하차하면서 수입이 없어질 수도 있다. 이런 위험을 감수하는 측면에서 집을 사기보다는 월세로 지내는 것이 더 낫다는 의견도 나온다.

한 방송 관계자는 “연예인은 수입이 일정하지 않은 사실상 프리랜서”라며 “어떤 일이 어떻게 벌어질지 모르기 때문에, 만약을 대비해 월세에 사는 것이 유리할 것”이라고 말했다. <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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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동발’ 한국 경제 파장 막전막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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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요시사 취재1팀] 한상진 기자 = 미국이 이스라엘과 함께 이란을 공격하기로 결정하고, 지난달 28일 실행에 옮겼다. 이 같은 결정 배경에는 여러 가지 이유가 복합적으로 작용했다. ‘이란 핵 보유 가능성 차단’ ‘이란 정권교체’ ‘중동지역 미국 영향력 강화’ ‘석유 패권 우위’ 등이다. 아울러 이란 석유의 상당 부분을 수입하는 중국 견제 효과까지 노린 것으로 보인다. 미국은 지난해부터 이란과 8차례에 걸쳐 핵 협상을 진행했다. 이란 측에서 트럼프정부에 큰 사업적 이익을 제안하기도 하면서 상당한 진전을 봤다는 평가도 나왔다. 하지만 이란이 핵 능력에 대한 완전한 포기를 약속하지 않으면서, 미국은 이란 수뇌부 제거 없이는 이를 달성하기 어렵다고 판단한 것으로 해석된다. 이란 공습 이틀 후인 지난 2일(현지시각) 37년간 이란 최고 지도자로 군림해 온 아야톨라 알리 하메네이가 사망했다. 공습 결정 여러 요인 하메네이는 지난 1979년 이슬람 혁명 이후 혁명수비대 및 국방 관련 요직을 거치며 권력기반을 다졌다. 이후 국회의원과 이슬람공화당 지도부를 역임했고, 지난 1981년 대통령에 선출돼 두 차례 연임하며 정치적 입지를 강화했다. 그는 엄격한 이슬람 율법에 따라 대내적으로 여성, 종교적 소수자를 탄압하며 억압적인 정책을 펼쳤다. 이란 내에서 발생하는 시위에 대해서도 잇달아 강경하게 진압했다. 지난 2009년 강경파인 마무드 아마디네자드가 대통령으로 당선되자 반발하는 시위를 비롯해, 지난 2022년 히잡을 제대로 쓰지 않았다는 이유로 붙잡힌 22세 쿠르드족 여성 마흐사 아미니가 의문사하며 촉발된 대규모 반정부 시위 등을 강경하게 진압했다. 특히 올해 초 대규모 반정부 시위에서는 이슬람혁명수비대(IRGC)와 바시즈민병대를 동원해 무차별적 유혈 진압을 밀어붙였다. 이 시위는 이란 핵개발에 따른 서방의 제재가 수년간 이어지며 경제난이 누적됐고, 테헤란 상인들의 항의가 대규모 반정부시위로 번진 것이었다. 이란 당국은 이 사태로 인한 사망자를 3117명으로 집계했지만, 외부에서는 3만명 이상이 사망한 것으로 추산하고 있다. 하메네이의 사망으로 이란 내 정치 지형은 크게 변할 것으로 보인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군사행동이 끝난 후 이란인들에게 “여러분의 정부를 장악하라”고 촉구했다. 미국이 직접 나서 정권교체를 하는 것은 아니지만, 올해 초 있었던 대대적인 반정부 시위의 불길이 다시 붙으면 친미 정권 수립으로 이어질 것이라 기대하는 분위기다. 트럼프정부는 글로벌 에너지 패권을 추구하고 있다. 이번 공습으로 이란산 원유에 대한 일정한 영향력을 갖게 될 가능성이 있다. 베네수엘라산 원유처럼 직접 모든 것을 통제하지는 않더라도, 향후 이란의 정치적 주도권을 잡는 세력이 원유 문제에서 미국의 영향력을 받아들이는 방식으로 타협할 가능성이 크다. 미·이 전쟁 여파 국내 강타 금융, 산업 등 전방위 요동 이렇게 되면 이미 세계 최대 산유국인 미국은, 세계 최대 석유 매장량을 보유하고 있는 베네수엘라에 이어 중동지역 원유 생산에도 관여하게 된다. 석유수출국기구(OPEC)를 훨씬 넘어서는 시장 영향력을 갖게 되는 것이다. 미국·이스라엘과 이란 간 전쟁은 우리 경제 전반에 큰 영향을 끼쳤다. 우선 증시가 크게 출렁였다. 지난 3일 코스피가 역대 최대 낙폭(452.22포인트)을 기록했고, 상장사 전체 시가총액은 하루 사이 377조원 넘게 줄었다. 주요 코피스 종목도 일제히 하락세를 보였다. 한국거래소에 따르면 유가증권시장 시가총액은 이날 종가 기준 4769조4000억원으로 전 거래일인 지난달 27일 대비 376조9396억원 감소했다. 삼성전자는 시가총액이 전 거래일 대비 약 126조6803억원 감소했다. 주가는 이날 9.88% 급락하며 5거래일 만에 20만원 선을 내줬다. SK하이닉스도 100만원 선이 깨지며, 시총이 86조9497억원(11.50%) 줄었다. 이 밖에 현대차(-11.72%), LG에너지솔루션(-7.96%), 삼성바이오로직스(-5.46%) 등 주요 기업들의 시총 감소분이 상대적으로 컸다. 반면 방산주는 급등하는 모습을 보였다. 한화에어로스페이스는 주가가 19.83% 오른 143만2000원, 한화시스템은 29.14% 오른 14만6700원을 기록하며 사상 최고가를 경신했다. LIG넥스원은 11.15% 오른 68만8000원을 기록하며 상한가에 거래를 마쳤다. 이날 코스피 지수는 투자심리가 악화하며 7.24% 급락한 5791.91에 거래를 마쳤다. 유가증권시장에서는 외국인이 5조1708억원을 순매도하며 지수를 끌어 내렸다. 기관도 8817억원 매도 우위를 보였다. 미국과 이란의 전면전 여파로 인한 불안감이 이날 장 마감까지 이어지며 매도세를 자극한 것으로 보인다. 이날 유가증권시장에서는 외국인이 5조1708억원을 순매도하며 지수를 끌어 내렸고, 기관도 8817억원 매도 우위를 보였다. 미국과 이란 전쟁의 여파로 인한 불안감이 이날 장 마감까지 이어지며 매도세를 자극한 것으로 풀이된다. 이로 인해 지난 3일과 4일 이틀 연속 매도 사이드카(프로그램 매도호가 일시중지)가 발동되기도 했다. 금융권 직격타 코스피 매도 사이드카가 발동된 건 지난달 6일 이후 한 달 만이다. 지난 4일 오전 9시25분 기준 코스피 지수는 189.43포인트(3.27%) 내린 5602.48에 거래되고 있다. 지수는 199.32포인트(3.44%) 내린 5592.59에 개장했다. 코스닥지수는 35.83포인트(3.15%) 내린 1101.87에 거래 중이다. 지수는 전날보다 25.62포인트(2.25%) 내린 1112.08에 개장했다. 환율 역시 급등했다. 미국·이스라엘의 이란 공습 이후 중동 불확실성이 커지면서 위험 자산 회피 심리로 원·달러 환율이 한때 1500원을 돌파했다. 1500원 돌파는 지난 2009년 금융위기 이후 17년 만이다. 4일 외환시장에서 원·달러 환율은 전 거래일보다 12.9원 오른 1479.0원에 개장했다. <로이터통신>에 따르면 이날 오전 0시20분쯤 원·달러 환율이 야간 거래에서 심리적 저항선인 1500원을 넘어섰다. 환율은 1506원까지 올랐다가 다시 1500원 밑으로 하락했다. 미국·이스라엘의 이란 공습으로 시작된 중동 사태가 장기화할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오자, 안전자산 선호 심리가 강화돼 환율이 급등한 것으로 풀이된다. 국내 산업계도 고환율에 따른 환경 변화에 촉각을 세우고 있다. 통상 원·달러 환율이 오르면 수출 단가 측면에서 이익을 줄 수 있지만, 원자재 수입 가격 상승과 결합할 경우 실질적인 부담이 커지게 된다. 반도체와 조선 업종은 단기 방어가 가능하다는 평가가 나오지만 항공과 철강은 비용 부담이 직격탄이 될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수출 주력 품목인 반도체의 경우 현재 시장의 공급 제약 국면이 지속되고 있다. 이에 따라 원가 상승 일정 부분을 제품 가격에 반영할 수 있는 상황이다. 조선의 경우 수주 산업인 만큼 이미 3년치 이상의 일감을 확보하고 있어, 고환율 영향은 적을 것으로 보인다. 기존에 수주한 선박을 건조해 선주사에 인도하는 구조라, 이미 3~4년치의 수주 잔고를 확보한 상태다. 따라서 현재 환율 흐름에 큰 영향을 받지 않는다. 아울러 조선 업계 특성상 달러로 수주 계약을 체결하기 때문에 단기적 관점에서 환율 상승은 실적에 긍정적으로 작용할 수 있다. 자동차의 경우 양날의 검이다. 미국 수출 및 매출이 늘어나고 있어 달러 강세가 수익성 개선으로 이어질 수 있는 반면, 자동차 한 대에 수백개 이상의 부품이 들어가는 만큼 원자재 부담이 상존한다. 다른 업종 대비 상대적으로 부담은 덜하지만, 역시 환율 시장의 상황을 예의주시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업종 별로 희비 교차 항공의 경우 항공기 리스료, 정비료 등 주요 비용이 달러로 결제되는 만큼 업계 긴장감이 고조되고 있다. 특히 3~4월은 항공업계 전통적 비수기다. 개학과 함께 공휴일이 적어 여객 수요가 일시적으로 둔화되기 때문이다. 항공기 이용률이 낮은 상황에서 환율 상승은 수익성 악화로 이어질 수 있다. 아울러 소비자 부담도 확대돼 수요 위축이 나타날 수 있다. 보통 항공사들의 유류할증료는 1개월 시차를 두고 항공권 가격에 반영된다. 다음 달에 항공권을 구매할 경우 인상된 유류할증료가 적용될 가능성이 있다. 철강업계는 중동 정세 불안으로 인해 에너지 가격이 크게 상승하는 가운데, 고환율 부담까지 겹치며 이중고를 겪고 있다. 철강은 업종 특성상 환율 상승으로 수입 원자재 가격이 올라도 이를 철강 제품 가격에 즉시 반영하기 구조다. 그만큼 수익성이 악화할 수 있다. 정유업계에는 환율 상승이 단기적으로는 긍정적이다. 달러 상승에 따라 비용이 증가하지만, 수출할 때에도 높아진 달러가 적용돼 비용 부담이 상쇄된다. 특히 이전에 저렴하게 사들인 원유에 대한 재고 평가이익 인식은 재무적 개선으로 이어진다. 원유 재고 평가이익은 정유사가 보유한 원유(재고) 가치가 시세 변동으로 장부상에 이익으로 올라가 실적에 반영되는 현상을 뜻한다. 유가 상승 시 저가로 산 원유 가치가 올라가는 것이다. 기름값도 급등세를 보였다. 지난 4일 한국석유공사 유가정보시스템 오피넷 자료에 따르면 이날 오후 7시 기준 서울 지역 휘발유 평균 판매가격은 전날보다 L당 56.9원 오른 1845.4원으로 집계됐다. 서울 휘발유 평균 가격이 1800원을 넘어선 것은 지난해 12월18일(1802.7원) 이후 약 2개월 반 만이다. 주가·환율·유가 변동 산업계 직결 모건스탠리 “수출지향 한국 더 민감” 같은 기간 전국 평균 휘발유 가격 역시 L당 61.6원 상승한 1784.6원을 기록했다. 경유 가격 상승 폭은 더 컸다. 서울 지역 경유 평균 판매가는 1811.2원으로 전날보다 103.8원 뛰었다. 전국 평균 경유 가격도 1741.8원으로 하루 만에 1700원을 돌파했다. 싱가포르 석유 제품 시장가에 연동된 국내 주유소 가격은 통상 2∼3주 차이를 두고 국제 유가 변동이 반영된다. 다만 전쟁 확산 우려 등에 따라 주유 수요가 늘고 환율 변수까지 겹치면서 가격 상승 압력이 더욱 커지고 있는 것으로 풀이된다. 지난달 28일 미국·이스라엘이 이란과의 전쟁을 시작한 이후 국제 유가는 빠르게 상승하고 있다. 지난 2일 이란혁명수비대(IRGC)가 호르무즈 해협 통과를 시도하는 선박을 공격하겠다고 공식 경고하면서 호르무즈 해협이 사실상 봉쇄됐기 때문이다. 호르무즈 해협은 전 세계 원유 물동량의 약 20%를 차지하고 있다. 정부도 미국·이스라엘과 이란 간 전쟁을 틈타 기름값을 과도하게 올리는 주유소들을 제재하기 위해 ‘최고가격 지정’ 작업에 착수했다. 주유소 담합 조사 등 시간이 필요한 조치에 앞서, 즉각적인 가격 통제에 나선 것이다. 또 주유소 담합 적발 시 ‘가격 재결정 명령’을 내리기로 하는 등 유가 잡기 총력전에 나섰다. 구윤철 부총리 겸 재정경제부 장관은 지난 5일 민생물가 특별관리 관계 장관 태스크포스(TF)를 주재하고 ‘중동 사태에 편승한 시장교란 행위 근절 방안’ 등을 논의했다. 구 부총리는 이날 “현재 국내 석유류 수급 상황은 안정적이며 국제 가격의 국내 반영 시차 등을 고려할 때 아직 국내 가격에 실질적 영향을 줄 시점은 결코 아니다”며 “석유류 최고 가격의 지정 등을 포함해 가능한 모든 행정 조치를 활용해 철저히 대응하겠다”고 강조했다. 이는 앞서 이재명 대통령이 임시 국무회의에서 석유 판매가격의 최고 가격 지정을 지시한 데 따른 후속조치다. 이란이 호르무즈 해협을 봉쇄한 가운데, 미국 투자은행 모건스탠리는 수입산 석유·가스 의존도가 높은 아시아 국가들이 전쟁에 따른 경제적 여파가 심각할 수 있다고 전망했다. 특히 한국 경제가 중국보다 원유·천연가스 가격 상승에 따른 하방 위험에 노출돼있다는 평가가 나온다. 지난 2일(현지시각) 모건스탠리의 아시아 수석 이코노미스트 체탄 아야 등은 전날 보고서를 통해 이같이 전망했다. 보고서는 “아시아 국가들은 제조업 비중이 높고 수출 지향 경제인 만큼 유럽이나 미국에 비해 유가 변동에 더 민감하다”고 설명했다. 이러다 진짜 대전 터지면… 이어 석유·가스 무역적자 수준을 근거로 한국을 포함해 태국·대만·인도 등이 상대적으로 성장 측면에서 하방 위험에 노출돼있다고 지적했다. 다만 “이번 전쟁에 따른 아시아의 전체적 여파는 유가 상승 수준과 고유가 지속 기간에 달려있다”면서 “현재까지는 관리할 수 있는 수준”이라고 진단했다. <jins.h@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