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지 않는 이경규, 40년 인기 비결

환갑 넘어도 MZ세대 흡수

[일요시사 취재2팀] 함상범 기자 = 예능인 이경규는 국내 예능계의 대부로 통한다. 1960년생으로 환갑의 나이를 넘겼음에도, 10·20세대와 소통하는 유일무이한 연예인이다. 끊임없이 시도하고 변화한다. 시대의 흐름에 뒤처지지 않는다. 단군 이래 처음 등장한 신인류라 불리는 MZ세대마저 흡수한 60대라는 평가가 나온다. 수십년이 지나도 변하지 않는 이경규의 인기 비결을 짚어봤다.

2016년 MBC <무한도전>의 예능 총평에 출연한 이경규는 “예능의 끝은 다큐멘터리가 될 것”이라고 언급했다. 짜고 치는 코미디가 아니라 인물의 실체를 드러내는 예능이 대세를 이룰 것이라는 예측이었다. 

사랑 받는 이유

그의 예언은 얼마 지나지 않아 현실이 됐다. 스타의 일상을 온전히 담아내 이를 지켜보는 이른바 관찰 예능이 예능계의 주요 콘텐츠가 됐다. 방송가는 소재와 설정만 조금씩 틀어 관찰 예능을 찍어내기 바빴다. 대다수 연예인과 셀럽이 카메라 앞에서 민낯을 여과 없이 보여줬다. 

이제는 조금만 진정성이 없어도 시청자들에게 외면받는다. 혹여 편집으로 조작을 시도했다간 철퇴를 맞는다. 예능과 다큐멘터리의 경계는 맞닿았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이경규는 예언할 뿐 아니라 몸소 예언의 영역에 뛰어들었다. MBC <마이 리틀 텔레비전>에서는 방송 최초로 누워서 촬영하는 ‘눕방’을 시도했으며, 자신이 좋아하는 반려견, 낚시, 요리 분야에 뛰어들었다. KBS2 <개는 훌륭하다>에서는 강아지에 대한 애정을, 채널A <도시어부>에서는 낚시에 대한 진심을 드러냈다.


KBS2 <편스토랑>에서는 라면을 비롯한 다양한 요리를 선보이는 데 재능을 뽐냈다. 

이경규의 매력은 진심과 유머의 아슬아슬한 줄타기에서 나온다. 인간이라면 보편적으로 갖고 있을 속물 근성을 슬그머니 꺼내놓는 데 탁월한 고수다. 유재석이 선한 이미지의 포지션이라면, 이경규는 철저하게 자신을 악으로 포장한다. 

지지하는 정당이 있냐는 질문에 ‘집권당’이라고 말하고, 자신을 내친 프로그램과 제작진엔 어김없이 분노한다. 기대했던 연예 대상에서 수상에 실패한 것에 앙심을 품고 타 방송사 프로그램에서 뒷담화를 한다. 2020년 수상이 유력했던 <KBS 연예 대상>에서 김숙이 대상을 받은 것에 분명히 서운함을 드러낸 것이 그 예다.

지난해에는 시상식에 참석하지도 않았다.

그 모습이 진짜와 가짜를 오가는 교묘한 지점에 있어 웃음을 준다. 그렇다고 시청자들이 불편할 포인트는 절대 만들지 않는다.

전매특허인 호통 개그는 그를 악한 인물로 보이게 하는 무기다. 진실로 짜증스러운 눈빛과 복식에 올라오는 강력한 호통은 진짜로 화난 건 아닌가 싶게 주위를 주목하게 한다. 하지만 그 호통이 논란까지는 이어지지 않는다. 곧바로 적절한 유머와 위트가 뒤따르기 때문이다.

이제는 그가 호통만 쳐도 큰 웃음이 이어질 거란 예측에 미소가 번진다.


악으로 포장한 혁신적 자세 ‘엄지척’
예언을 현실로 만드는 예능계의 대부 

고정 MC가 아닌 게스트로 나오는 프로그램에서 이경규는 ‘시청률 치트키’다. 그가 나온다고 하면 커뮤니티는 기대감에 차오른다. 분명 웃길 것이라는 확신이 들어서다. 확신은 현실이 된다. 그는 타 프로그램의 출연자들과 쉽게 어우러지며, 늘 회자될만한 명장면을 만든다.

최소 20세에서 30세 이상 차이 나는 후배들과 허물없이 소통한다. 

그 속에는 40년 넘게 방송밥을 먹으며 갈고 닦은 통찰이 있다. 후배 예능인이 재미없는 리액션이나 말을 하는 경우에 강력한 호통을 보이고, 뼈를 때리는 혹평을 던진다. 감정적이거나 이기적인 욕망은 보이지 않는다. 그저 더도 덜도 없이 냉혹할 뿐이다. 혹평을 받는 인물은 비록 마음은 아프지만, 기분이 나쁘지는 않다.

건설적인 비판인데다가, 워낙 더 보탤 것도 없이 정확하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후배들과 트러블이 생기지도 않다. 이경규는 당근과 채찍을 적절히 분배하는 능력을 마스터했다. 

카카오TV <찐경규>에서 이혼한 탁재훈에게 “너가 바람피워서 그런 거 아냐”라고 눈을 부라리다가도 “탁재훈이야말로 진짜 딴따라”라며 엄지를 치켜든다. 지상렬에겐 <도시어부>에서 밀려난 것으로 놀리고 30년 동안 대표작이 하나 없다고 나무라다가도 “지상렬 자체가 프로그램이라 그래”라며 후배의 서글픈 마음을 헤아린다.

해당 장면은 시청자들에게도 감동과 공감을 일으켜 수백만 조회 수를 찍었다. 

박미선, 이영자, 박나래, 송은이, 김숙과 비교하며 자신의 재능에 의문을 품으며 스스로 채찍을 치는 장도연에겐 “넌 티키타카가 좋은 MC다. 한국의 오프라 윈프리는 네가 될 거야”라며 엄청난 칭찬을 쏟아낸다. 

여러 장점이 있는 이경규의 가장 큰 덕목은 도전자 정신이다. 정치인을 예능 카메라 앞에 세운 것도, 새벽까지 텐트에서 기다리다 숨어 있는 양심을 발견한 것도 이경규다. 방송사의 전유물이었던 예능이 새로운 플랫폼에서 부상하자 기꺼이 달려간다. 

카카오TV <찐경규>는 그가 얼마나 혁신적인 방송인인지 보여주는 방송이다. 1년4개월 동안 매주 방송하면서 카카오TV가 자리를 잡도록 이바지한 킬러 콘텐츠가 됐다. <찐경규>는 어떤 분야든 가리지 않았으며, 거의 모든 소재를 통해 이경규를 실험했다.

최근 시즌2를 기약하며 휴지기에 들어간 <찐경규>는 성공한 웹예능의 대표성을 띤다. 


그 속에는 방송인으로서 열정과 사명감을 앞세워 새로운 것에 거부감 없이 뛰어드는 이경규가 있다. 그 프로의식이 60세가 넘도록 인기를 유지하는 이유로 꼽힌다. 

2010년 KBS2 <남자의 자격>으로 연예 대상을 수상한 이경규는 수상소감으로 “후배들이 자신이 걸어온 길을 조금 더 편안히 갈 수 있도록 무소의 뿔처럼 달려가겠다”고 했다. 

당근과 채찍

같은 직업을 가진 후배들이 좀 더 편하게 웃음을 줄 수 있도록 새로운 길을 만들겠다는 의지이자 다짐이다. 그리고 강산이 변했을 최근까지 그는 자신의 말을 지키기 위해 쉼 없이 내달리고 있다. 


<intellybeast@ilyosis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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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벼랑 끝’ 장동혁 옹립의 정치학

‘벼랑 끝’ 장동혁 옹립의 정치학

[일요시사 정치팀] 박형준 기자 = 국민의힘 구 친윤(친 윤석열)계 핵심으로 분류됐던 윤한홍 의원이 국민의힘 장동혁 대표를 강하게 비판했다. 하지만 장 대표는 흔들리면서도 흔들리지 않는다. 이들의 공개 갈등엔 ‘옹립의 정치학’이 숨어 있다. 특정 세력이 정변을 일으키거나 지도자 교체를 시도할 때, 가장 중요하게 여기는 것은 지도자 옹립이다. 그 과정에서 정치적 정당성·생존 본능이 적절하게 조화해야 한다. 그래서 복잡한 조건이 가미된다. 지도자 옹립을 위한 조건으로는 대체로 ▲적절한 상징성 ▲새 기득권이 될 주도 세력과의 조화 ▲지도자의 약한 권력 의지 등을 들 수 있다. 아무나 못 갖는 지도자 조건 이 중 가장 어려운 숙제는 ‘지도자의 약한 권력 의지’라고 할 수 있다. 새 지도자가 자신의 정치적 의지를 강하게 밀어붙이면, 새 기득권 세력과의 충돌은 불가피하기 때문이다. 반대로 새 지도자는 자신의 생존을 도모해야 한다. 생존 본능은 강한 권력 의지로 연결된다. 자신만의 새로운 비전을 실천하려는 정치적 의지가 강할 수도 있다. 이 때문에 자신을 옹립한 주도 세력과 마찰한 사례는 역사적으로 빈번하다. 왕은 왕권을 강화하려고 했고, 귀족은 이를 막으려고 했다. 삼국시대부터 조선시대에 이르기까지, 왕과 귀족은 끊임없이 정치적 다툼을 벌였다. 이 때문에 많은 왕이 교체돼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졌다. 옹립된 지도자는 대체로 권위가 약하다. 옹립된 지도자는 지배 질서가 규정한 정통성이 약한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그리고 옹립되는 과정 자체가 지도자로선 주도 세력에게 빚을 진 격이 되는 사례도 많다. 조선 태종은 정변을 일으켜 아버지를 몰아낸 후 즉위했다. 태종은 태조의 다섯 번째 아들이었다. 적장자 승계를 중시하는 유교 질서에선 도저히 후계자가 될 수 없었다. 하지만 태조는 막내아들을 세자로 책봉하는 악수를 뒀고, 사병을 혁파하려고 했다. 새 질서를 왕이 직접 부정하는 사태가 발생했고, 기득권 세력의 기반을 침범하려고 한 것이다. 태종은 적장자 대접을 받던 형 정종을 세자·왕으로 옹립한 후 형의 양자로서 왕위를 승계해 질서를 지키는 모양새를 갖췄다. 제1차 왕자의 난에서 주축은 주도 세력이 동원한 사병이었는데, 태종은 이들에게 빚을 진 셈이다. 하지만 그는 주도 세력 중 상당수를 정계에서 일시 퇴출시킨 후 사병을 혁파했다. 자신과 왕조의 생존을 유지하기 위한 안전판을 확실하게 확보한 것이다. 경제적 이권까지 거둬들이려고 해선 생존을 담보할 수 없다. 태종은 공신들이 저지르는 각종 비행을 적당한 선에서 눈감아줬다. 태종의 킹메이커 하륜은 도성 안에 조성된 신덕왕후의 능이 이장되자, 주변의 좋은 땅을 선점하기 위해 사위들을 동원했다. 하륜에겐 지금도 유능한 신하·부정부패의 상징이란 평가가 함께 따라다닌다. 조선 중종도 형 연산군 폐위 이후 옹립된 임금이었다. 엉겁결에 왕위에 올라 큰 빚을 졌기 때문에 중종은 공신들을 통제할 수 없었다. 하지만 핵심 공신들은 얼마 지나지 않아 병사했다. 이후 중종은 조광조·김안로 등 대리인을 내세웠다가 토사구팽하는 정치술을 반복했다. 너무 유능해도, 너무 무능해도 안 된다 출마설 도는 주호영·윤한홍의 장 직격 조광조 일파는 중종이 한밤중에 비상계엄을 선포하면서 숙청됐다. 김안로는 아들의 초례가 예정된 날 체포됐다. 주도 세력으로선 왕이 너무 유능하거나 정치에 밝으면 곤란하다. 그렇다고 너무 무능하거나 막 나가도 안 된다. 지나치게 막 나가서 폐위된 대표적인 왕은 고려 충혜왕이었다. 충혜왕은 아버지 충숙왕이 양위해서 즉위했다. 당시 고려 왕은 원나라 사신이 하루아침에 폐위해 귀양을 보낼 수 있을 정도로 권위가 없었다. 고려 친원파의 권력은 왕보다 더 강했다. 그리고 고려엔 원나라 제2황후 기황후의 오빠 기철이 있었다. 고려 왕은 정상적으로 즉위하더라도 원나라·친원파가 사실상 인준해야 왕 노릇을 할 수 있었다. 즉위하는 임금마다 옹립된 지도자나 다름없었다. 충혜왕은 즉위 후 아무나 성폭행하는 기행을 저질렀다. 성폭행 대상 중엔 서모 경화공주도 있었다. 이 사실은 원나라 사신에게도 알려졌다. 결국 충혜왕은 폐위돼 귀양 가던 중 사망했다. 한편으로 충혜왕은 폭력배들을 자신의 측근 세력으로 양성한 후 권문세족이 독점하던 유통구조 개선을 통해 재정을 확충하려고 했다. 아울러 권문세족의 사유지를 혁파하려 하는 등 이들의 경제기반을 뒤흔들려고 했다. 충혜왕이 폐위된 결정적인 계기는 기철의 건의였다. 원나라는 기철의 건의를 받아들여 충혜왕을 폐위했다. 충혜왕은 폐위되던 순간 사신으로부터 발길질을 당하는 수모를 겪기도 했다. 윤석열 전 대통령이 주도했던 12·3 비상계엄 1주년을 맞아, 국민의힘 의원 25명은 사과 성명을 발표했다. 이들 대부분은 소장파 성향의 초·재선 의원들이었다. 이들은 지난 1년 동안 꾸준히 당에 비상계엄 관련 사과와 당의 혁신을 요구했기 때문에 딱히 특별할 것은 없었다. 하지만 ‘원조 친윤’ 중 1명으로 평가받는 국민의힘 3선 윤한홍 의원이 국민의힘 장동혁 대표에게 비상계엄 관련 사과를 요구한 것은 이례적이었다. 윤 의원은 지난 5일 진행된 국민의힘 ‘이재명정권 6개월 국정평가 회의’ 도중 장 대표에게 “윤 전 대통령과의 인연과 골수 지지층의 손가락질을 다 벗어던지고, 계엄 굴레에서 벗어나자”고 요구했다. 이어 “국민의힘은 비상계엄이 잘못됐단 인식을 아직도 못한다는 평가를 받고 있는데 계엄을 벗어던지고, 국민께 어이없는 판단의 부끄러움을 사과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장 앞에서 사과 요구 이는 장 대표가 지난 3일 비상계엄에 대해 사과하지 않고 “비상계엄은 의회 폭거에 맞서려던 계엄이었다”고 주장한 것에 대한 반박이었다. 장 대표는 이날 윤 의원의 비판을 들은 후 고개만 살짝 숙인 채 굳은 표정을 유지했다. 국민의힘 6선 주호영 국회부의장도 장 대표를 강하게 비판했다. 주 부의장은 지난 8일 대구 지역 언론인과의 정책토론회 중 장 대표를 일컬어 “자기 편을 단결시키는 과정을 밟다가 중도가 도망간다면 잘못된 방법”이라고 주장했다. 이어 “장 대표는 ‘12월3일까진 지켜봐 달라’고 말했고, 그 이후엔 민심에 따르는 조치가 있을 거라고 기대했지만, 그런 말을 하지 않아서 당내 반발이 많다”고 강조했다. 주 부의장은 “윤 전 대통령은 폭정을 거듭하다가 탄핵당했다”며 “비상계엄도 김건희 여사 특검을 막으려던 것이 아닌가 짐작만 할 뿐”이라는 등 윤 전 대통령도 강하게 비판했다. 주 부의장과 윤 의원은 광역자치단체장 선거 출마 가능성이 있다는 공통점이 있다. 주 부의장은 이날 대구시장 출마 가능성에 대해 “준비는 많이 해왔고, 이른 시일 안에 의견을 결정하겠다”고 밝혔다. 윤 의원은 지난 2021년 경남도지사 출마 의사를 내비쳤다가 입장을 선회했던 바 있다.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이 지난 2월 공개한 명태균씨의 전화 통화 녹취엔 “윤 전 대통령과 김건희 여사가 윤 의원의 경남도지사 출마를 막았다”는 취지의 대화가 공개됐다. 지방선거를 약 6개월 앞두고 있는 시점이었다. 주 부의장처럼 출마 가능성을 암시한 것이 아니라고 하더라도, 지방선거는 국회의원에게는 매우 중요한 정치적 이벤트다. 국회의원이 지역구에서 이익을 거두는 방법엔 ▲지역구 내 지방선거 공천 ▲중앙정치에 지역 이해관계 반영 등이 있다. 지방선거에선 국회의원이 공천·조직 동원 등에 행사하는 영향력이 절대적이다. 민주당 이상헌 의원은 기초의원 공천 대가로 수천만원을 받은 정치자금법 위반 혐의로 기소돼 징역형 집행유예를 선고받고, 현재 항소심 재판을 받고 있다. 새누리당(현 국민의힘) 박순자 전 의원도 기초의원 공천 대가로 수천만원을 받은 혐의가 유죄로 인정돼 지난 3월 징역형을 확정받았다. 힘 못 쓰는 2가지 이유 국민의힘 대표를 지냈던 개혁신당 이준석 대표는 지난 2월 <일요시사>와 만나 “국민의힘은 김종인 선거대책위원장·이준석 대표 체제 외엔 선거에서 이겨본 적이 없다”고 단언했다. 실제로 국민의힘은 지난 2016년 이후 지난 2022년 대선·지방선거 외엔 참패를 거듭했다. 국민의힘이 선거에서 힘을 못 쓰는 이유로는 크게 2가지가 거론된다. 하나는 자체적으로 선거 후보를 양성하는 게 아니라, 선거가 임박해 외부 명망가를 데려와 주요 선거 후보로 옹립하는 특성이다. 다른 하나는 영남·강원 등 핵심 텃밭에 자리 잡아 중앙정치보다 지역구 기반 다지기에 집중하는 정치인 집단이다. 세간에선 이들을 일명 ‘언더 찐윤’이라고 부른다. 하지만 선거 참패가 이어지면, 중앙정치에 끼칠 수 있는 영향력도 줄어든다. 영향력이 줄면, 지역의 이익을 중앙정치에 반영하기 어렵다. 국회의원이 지역구에서 이익을 거둘 방법·영향력을 모두 잃는다는 것은 언더 찐윤 의원들에게 매우 치명적이다. 아무리 중앙정치·전국 단위 선거에 큰 관심을 두지 않는다고 하더라도, 정당이 정권 획득 가능성이 아예 없는 수준으로 추락하는 것은 매우 곤란하다. 그 정당에 소속된 국회의원과 이해관계를 교환해야 할 이유가 사라지기 때문이다. 21세기 이후 국민의힘에서 배출한 대선후보는 ▲한나라당 이회창 전 총재 ▲이명박·박근혜·윤석열 전 대통령 ▲홍준표 전 대구시장·김문수 전 고용노동부 장관 등이다. 이들의 대체적인 공통점은 ▲전국적 인지도 ▲정치적 상징성 ▲낮은 당 장악력 등이다. 대선 출마 당시 “당 장악력이 낮다”는 평가를 받지 않았던 대선후보는 이 전 총재·박 전 대통령밖에 없었다. “당 장악력이 낮다”는 명제는 국민의힘 친윤계 의원들에게 매우 중요했다. 당 장악력이 높은 대통령·대권주자는 의원들과 굳이 이익을 주고받을 필요성을 느끼지 못한다. 언더 찐윤 성향 의원들은 국민의힘 유승민 전 의원·국민의힘 한동훈 전 대표·국민의힘 안철수 의원·이 대표 등 수도권에 기반해 중도 공략 의지가 강한 정치인과의 불화가 잦다. 이들과 이해관계·성향·기질이 다르기 때문이다. 다른 것이 많아서 당권을 다투거나 알력이 있을 가능성도 큰데, 결국 화합하기 어렵다. 살기 위해 충돌하는 장 VS 친윤 “우리끼리 총구 안 돼” 의견 고수 언더 찐윤 의원들이 언론 노출을 꺼리는 성향도 ‘당 장악력이 낮은 적절한 대권주자’를 선호하는 현상과 맞물린다. 언더 찐윤의 관점으로 보자면, 윤 전 대통령은 자멸해서 사라졌다. 한 전 대표·안 의원은 수도권 엘리트 성향이 강하다. 지난 8월 당 대표 선거에 출마했던 국민의힘 조경태 의원은 언더 찐윤 성향 의원들을 청산 대상으로 지목했다. 이런 상황에서 두드러진 사람이 바로 장 대표였다. 장 대표는 정치 경력이 짧으면서도 한 전 대표와 결별한 이력이 있다. 지난 2월엔 백봉신사상을 수상할 정도로 신사적 이미지도 강했다. 국민의힘 내 강성 보수 성향 당원들은 장 대표를 선택했다. 이후 장 대표는 범보수 대권주자로 주목받았다. 코리아정보리서치가 지난 6일부터 이틀 동안 전국 만 18세 이상 남녀 1000명을 대상으로 진행한 범보수 차기 대선후보 적합도 여론조사에서도 21.3%의 지지를 얻어 1위를 차지했다. 하지만, 장 대표에겐 정치적 기반이 없다. 대권주자에게 필요한 것은 독자적인 정치 기반이다. 대선에 출마하지 않더라도, 독자적인 정치 기반이 없으면 정치 생명을 길게 유지할 수 없다. 장 대표는 장외집회 개최 위주로 정치활동을 이어갔다. 장외집회에선 이재명 대통령을 강하게 비난하는 강성 발언을 주로 내놨다. 국민의힘 양향자 최고위원은 지난달 29일 대전 장외집회에서 “윤 전 대통령의 비상계엄은 불법이었고, 국민의힘은 그 불법을 방치했다”고 주장했다가 강경 보수 성향 당원의 비난을 받았다. 장 대표와 국민의힘 김민수 최고위원은 국민의힘을 강경 보수의 길로 이끄는 ‘투톱’이다. 그런데 지방선거를 6개월 앞둔 시점이기 때문에 둘 사이에 충돌이 일어난다. 지방선거는 이들의 정치적 삶과 죽음을 좌우할 가능성이 있다. 장 대표와 국민의힘 의원들이 충돌하는 결정적인 지점은 살고자 하는 의지다. 윤 의원이 장 대표를 비판했다는 사실은 “국민의힘 구 친윤계가 장 대표를 통제불능으로 인식했을 가능성이 있다”는 분석으로 연결된다. 강경 보수 성향이 짙어지면, 선거의 캐스팅보트로 인식되는 중도층의 선택을 받지 못한다. 친윤계 의원들에겐 당과 개인의 이익이 모두 줄어드는 악순환으로 이어질 가능성을 배제하기 어렵다. 조 의원은 지난 8월 <일요시사>와 만나 “강경 보수 성향 유권자들의 선택지는 어차피 국민의힘밖에 없다”면서 중도 공략 중요성을 강조했다. 이것이 지방선거를 6개월 앞두고, 친윤계 의원들이 장 대표를 강하게 비판한 이유와 맞물릴 가능성이 크다. 장 대표의 실질적 임기는 지방선거 결과에 달렸다. 따라서 장 대표에게 주어진 시간은 6개월 정도다. 장 대표는 이 안에 강경 보수 세력을 자신의 독자적인 기반으로 삼으려 할 가능성을 배제하기 어렵다. 옹립하는 세력과 옹립되는 수장은 각자의 삶과 죽음이 걸려 있어 긴장 관계가 될 수밖에 없다. 장 대표에 대해선 “국민의힘, 나아가 보수 진영의 진정한 1인자가 될 만한 기반이 부족하다”는 다수의 분석이 나온다. 장 대표와 친윤계의 이해관계는 여기서 엇갈릴 가능성을 배제하기 어렵다. 남은 6개월 빠듯한 시간 새누리당 정옥임 전 의원은 지난 9일 CBS 라디오 <박재홍의 한판승부>에 출연해 “주 부의장은 신중한 사람이지만 현실감각이 굉장히 빠르다”며 “장 대표는 화장을 지운 여자의 얼굴처럼 다 보여줘서 장 대표 체제 종언은 이제 뚜껑만 열리면 된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장 대표에게 남은 시간은 불과 6개월이다. 부족한 것은 결국 시간이다. 하지만 장 대표는 윤 의원·주 부의장의 비판에 “우리끼리 총구를 겨눠선 안 된다”며 “싸워야 할 대상은 이재명 독재정권”이라고 반박했다. 장 대표는 흔들리고 있지만, 한편으로는 흔들리지 않고 있다. 장 대표와 구 친윤계는 과연 타협점을 찾을 수 있을까? <ctzxp@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