Update. 2025.10.22 01:01
정치의 온도는 여론조사보다 이름에서 먼저 읽힌다. 요즘 정치권을 뒤흔드는 두 이름은 김현지와 김민수다. 공교롭게도 이 둘의 이름 끝자는 ‘지’와 ‘수’다. 상명대 경제학과와 상지대 법학과 출신의 쌍김(상김)은 지금 대한민국 정치의 수준을 가늠하게 하는 ‘정치 지수’의 주인공이 됐다. 김현지는 대통령실 총무비서관 출신으로 현재 제1부속실장이다. 최근까지 총무비서관 외 공식 직책도, 명확한 개인 정보도 잘 드러나지 않았다. 그러나 이 대통령의 성남시장 시절부터 수십 년 동안 대통령 주변에서 인사와 행사 실무를 맡았다는 소문이 퍼지면서 급부상한 인물이다. 특히 국정감사 출석 문제를 두고 여야가 충돌하면서, 그의 이름은 단숨에 ‘정권의 투명도’를 가늠하는 지표로 떠올랐다. 대통령실은 ‘개인 신상’이라며 방어에 나섰지만, 국민에겐 아직까지 국감 출석을 하지 않고 있는 김현지가 비선의 그림자로 비치고 있다. 박정훈 국민의힘 의원은 지난 20일 KT 자료를 근거로, “김 실장이 국감 첫날인 지난 13일 기존 사용하던 아이폰14 휴대전화를 아이폰17로 교체했고, 대장동 의혹이 불거졌던 때도 휴대전화 번호를 변경했다”며 “김 실장이 이 대통령의 대장동 의혹 관련 결정적 순간
알부민은 우리 몸의 피 속에서 혈액이 새지 않도록 삼투압을 유지하고, 약과 영양분을 필요한 장기로 정확히 운반하는 단백질이다. 예를 들어 우리가 약을 복용했을 때 알부민은 눈에는 눈약을, 위에는 위약을 보내주는 역할을 한다. 덕분에 몸은 균형을 되찾고, 생명은 질서를 유지한다. 하지만, 우리 정치엔 알부민 역할을 하는 정치인이 없다. 국민의 목소리를 필요한 곳에 전달하고, 여야의 갈등 사이를 중재하며, 사회의 균형을 잡아주는 정치인이 없다. 각자의 입장만 주장하고, 소통은 안 되고, 정당은 병들다보니, 정작 여론을 흘려 보내야 할 정치는 정쟁의 벽에 막혀 제자리에서 썩어간다. 정치는 본래 소통과 순환이 핵심이다. 국민의 요구가 국회로, 국회의 결정이 현장으로 흘러가야 한다. 그러나 지금의 정치는 삼투압이 작동되지 않아 정보는 한쪽으로 몰리고, 비판만 난무하고, 책임은 떠밀고 있다. 서로의 필요를 읽고 연결해주는 알부민형 정치인이 없기 때문이다. 민심은 아래에서 터져 나오는데, 대화의 통로가 막히고, 권력은 위로만 모이고 있다. 그 결과는 명확하다. 여야는 서로의 논리만 내세우고, 국민의 삶은 정체된 체액처럼 무거워진다. 정치의 삼투압이란 권력과 책임의 균형,
지난주 수요일 모 교수의 출판기념회에 초대받고 돈암동에 위치한 예약형 레스토랑 ‘89번가’를 찾았다. 참석자 중 필자와 공무원 여성 한 명만 빼고 모두 70년대생이었다. 저자의 책 소개가 간단히 끝나고, 주로 70년대생들의 학창시절 이야기가 시작됐다. 특히 병원 원장, 방송국 부장, 그리고 건축사무소 소장이 대화의 주인공이었다. 그런데 필자는 그들의 대화 속에서 “1989년 대학에 입학하자마자 선배 권유로 거리에 나가 데모를 했다”는 말을 듣고, 그 순간 시간을 36년 전으로 돌려 1989년을 회상했다. 1989년, 그해는 한 시대의 경계였다. 동과 서를 가르던 베를린 장벽이 무너졌고, 한국의 청년들이 거리에서 민주주의의 마지막 벽을 허문 해였다 당시 한국의 청년들은 권력을 향해 돌을 던진 게 아니라, 민주주의를 완성하기 위해 목소리를 던졌다. 80년 광주의 피로 시작된 시대의 싸움이 89년 청춘들에 의해 마침표가 찍힌 것이다. 그들은 더 이상 저항의 세대가 아니라, 완성을 위한 세대였다. 그해 6월 전국 곳곳의 대학가엔 최루탄 냄새가 남아 있었지만, 거리의 공기는 이전과 달랐다. 그 때부터 사람들은 더 이상 두려움 대신 토론을, 증오 대신 연대를 말하기 시
요즘 편의점에 가보면 진열대엔 ‘1+1’ ‘2+1’ 상품이 즐비하다. 표면적으론 하나를 사면 하나 더 주고, 두 개를 사면 하나 더 주는 할인이지만, 실제는 소비 심리를 자극하는 불편한 경제학이다. 편의점은 1+1 판매 전략을 통해 공짜의 유혹으로 즉각 구매를 유도하고, 2+1 판매 전략을 통해 묶음 소비로 더 큰 매출을 확보한다. 1+1은 ‘심리의 마케팅’, 2+1은 ‘체감의 착시경제’라 할 수 있다. 필자는 편의점에서 ‘1+1’ ‘2+1’ 문구를 볼 때마다 마치 고객을 위한 것처럼 포장하면서 자신들의 이익을 위해 고객의 심리를 이용한다는 생각이 들어 불쾌했다. 그런데 문제는 정부가 이 단순한 상술 경제학에 물들어 있다는 점이다. 편의점에서나 볼 법한 이 구조가 국가 정책에 반영되고 있다는 건 정부가 정책을 상품으로 생각해 할인으로 포장하고, 국민을 소비자처럼 여기고 있다는 증거다. 이재명정부 들어 정부의 정책 패턴은 점점 더 ‘할인 정치’의 성격을 띠고 있는 것 같다. 그래서 심리적 혜택을 앞세운 1+1 정책이 많다. 1+1 청년 정책, 1+1 돌봄 정책, 1+1 서민가계 정책, 1+1 민심 정책, 1+1 세대 정책 등이다. 즉, 지하철·버스 이용 청년에
국정감사 전까지만 해도 뉴스의 중심은 늘 더불어민주당 정청래 대표와 국민의힘 장동혁 대표였다. 이 두 여야 대표는 각자의 방식으로 ‘정치의 전면’에 섰고, 언론은 매일 그들의 발언을 헤드라인으로 다뤘다. 그러나 막상 국감이 시작되자 두 대표는 신기할 정도로 조용하다. 여야 대표가 동시에 국감에서 잠잠한 이유는 국감이 끝날 때가지 내년 지방선거 공천 룰의 구도를 잡아야 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두 대표에게 국감장은 ‘국감 쇼윈도’에 불과하고, 진짜 정치 현장은 여의도 뒷방 회의실이다. 두 대표는 국감이 시작도 안 된 지난주 자신의 의중이 반영된 공천 룰을 언론에 흘렸다. 정 대표는 이달 초, 직접 컷오프 최소화와 권리당원 강화를 강조했고, 장 대표는 지난 10일 출범한 총괄기획단을 통해 오픈프라이머리(국민참여경선)를 주장했다. 즉 정 대표는 당원의 힘으로, 장 대표는 국민의 손으로 지방정치의 주도권을 잡겠다고 선언한 것이나 마찬가지다. 민주당의 정 대표가 내세운 원칙은 명확하다. 8·2 전당대회서도 밝혔듯이 컷오프를 최소화하고, 공천 과정에서 권리당원의 표 비중을 확대하겠다는 전략이다. 이는 현장 당원 중심 정당으로의 회귀를 밝힌 것이라 할 수 있다. 민주당은
LG전자 인도법인 LG Electronics India가 지난 14일, 인도 증권시장에 신규 상장했다. 인도 진출 28년 만의 증시 입성으로 LG전자는 이를 통해 1조8000억원 규모의 현금을 확보하게 됐다. 인구가 많고 가전 보급률은 낮아 ‘슈퍼 블루오션’으로 불리는 인도 시장에 맞춤형 전략을 확대하는 동시에 인도를 ‘글로벌 사우스 전략’의 핵심 거점으로 삼겠다는 게 LG전자의 전략이다. 이날 LG전자 조주완 사장은 인도 뭄바이 국립증권거래소에서 열린 LG전자 인도법인 상장식에서 ‘인도를 위해, 인도에서, 인도를 세계로’라는 비전을 발표했다. LG전자는 먼저 ‘인도를 위해’ 인도 소비자 취향과 라이프스타일을 고려해 특화 제품을 선보이겠다는 방침이다. LG전자는 이날 인도 고객을 위해 기획한 특화 가전 라인업을 전격 공개하기도 했다. 인도 특화 가전은 현지 구매력을 고려한 가격, 인도의 생활 환경과 방식에 맞춘 특화 기능 및 디자인 등을 두루 갖췄다는 게 LG전자의 설명이다. LG전자는 그동안 모기 퇴치 에어컨이나 세탁물 종류와 무게를 감지하는 인공지능(AI) 모터 등 생활 환경을 반영한 특화 제품을 지속적으로 선보였다. 코노라 팬데믹 이후 더딘 회복세를 보
지난달 하늘나라로 가신 고모님은 병상에 누워서도 매일 예능프로그램 <나는 자연인이다>를 보셨다고 한다. 해당 프로그램은 단순한 오락이 아니라, 고통 속에서 삶을 버티게 한 의식이었고, 아픈 몸이 다시 자연과 연결되는 통로였을 것이다. <나는 자연인이다>를 통해 고모님은 “나는 아직 살아 있다”는 감각을 되찾으셨는지도 모른다. SBS와 MBN의 인기 프로그램 <나는 자연인이다>는 10년 넘게 꾸준히 사랑을 받아왔다. 도시를 떠나 자연 속에서 사는 자연인들의 이야기가 시청자에게 위로를 주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제는 그 위로의 방식에 질문을 던질 때가 됐다. 왜 늘 실패한 노인, 혼자 사는 노인만 산으로 가야 하는가? 왜 성공한 노인, 행복한 부부 노인은 화면에 나오지 못하는가? 프로그램 속 인물들은 대부분 도시에서 실패한 노인들이다. 사업이 망했거나, 가족과의 관계가 끊겼거나 병으로 쓰러진 뒤 삶을 포기한 이들이 많다. 이들이 자연 속에서 새 삶을 찾는 과정은 감동적이지만, 동시에 한국 사회가 노년을 바라보는 시선의 단면을 드러낸다. 노인은 패배자여야만 감동의 주인공이 되는 구조 말이다. 하지만 현실의 노인 세대는 그렇게 단순하지
현재 산업단지와 수도권 외곽에는 텅 빈 물류센터들이 무척 많다. 코로나 시기 폭증했던 전자상거래 물량을 감당하기 위해 너도나도 지었지만, 소비 둔화와 경기침체가 겹치며 상당수가 공실로 방치되고 있는 것이다. 인천·서부권역의 일부 저온 물류센터는 공실률이 60%를 넘었고, 지식산업센터와 복합물류시설 역시 임차인을 구하지 못해 불 꺼진 건물이 늘고 있다. 한때 ‘황금알’로 불리던 물류센터가 이제는 유휴 자산이 되고 말았다. 이 유휴 물류 인프라를 어떻게 다시 살릴 것인가는 물류업계의 문제만이 아닌 국가 차원의 과제가 됐다. 필자는 그 해답의 실마리를 코트라(KOTRA, 한국무역진흥공사)에서 찾아야 한다고 생각한다. 바로 코트라가 한국 내에 ‘역(逆)물류 거점’을 구축하는 것이다. 코트라는 그동안 한국 기업의 수출을 돕는 조력자였다. 특히 해외 120여개 무역관과 공동물류센터를 통해 중소기업의 상품을 해외 창고에 보관하고, 현지 바이어와 소비자에게 직접 배송하는 시스템을 구축해 국내 중소기업의 수출을 도왔다. 덕분에 한국 중소기업 수출의 문턱은 낮아졌고, 한국 상품은 세계의 쇼핑몰로 진입할 수 있었다. 코트라의 해외 공동물류센터가 지난 반세기 동안 ‘수출형 물류
최근 몇 년 사이 캄보디아에서 한국인을 대상으로 한 납치 및 감금 범죄가 크게 늘고 있다. 취업 사이트나 SNS 등에서 고소득 보장을 미끼로 입국을 유도한 뒤 강제로 주식 리딩방이나 보이스피싱 같은 사기 범죄에 끌어들이고, 마지막엔 피해자 가족에게 금품 송금을 강요하는 방식이다. 캄보디아에서 한국인 피해는 2022년 10건 수준에서 지난해 220건, 올해 8월까지 330건으로 급증하는 등 파장이 걷잡을 수 없이 커지고 있다. 지난 7월 우리나라 대학생이 “캄보디아에 가서 은행 통장을 팔면 큰돈을 벌 수 있다”는 지인의 제안을 받고 캄보디아 프놈펜에 갔다가 납치 및 감금을 당한 후 결국 주검으로 발견됐다. 9월에도 캄보디아 프놈펜 번화가 카페에서 50대 한국인 남성이 괴한들에게 납치와 감금, 고문을 당하는 사건이 발생했다. 같은 달 캄보디아로 5박6일간 여행을 떠났던 40대 한국인 남성도 현지에서 실종 후 혼수 상태로 현지 병원 중환자실에서 발견됐다. 캄보디아는 앙코르와트, 시엠립, 프놈펜 등 세계적 명소, 저렴한 물가, 아름다운 자연경관으로 유명한 동남아시아 대표 관광지 중 하나다. 한국인도 해마다 15~17만명이 꾸준히 방문해 왔고, 최근 범죄 우려 등으로
국회 17개 상임위원회가 13일부터 31일까지 이재명정부 첫 국정감사에 나선다. 3대 특검을 필두로 내란 청산과 대법원 현장 국감, 검찰개혁, 한미 관세 협상, 정부 전산망 마비와 홈플러스 사태 등 정치와 경제 현안을 놓고 여야의 치열한 공방이 예상된다. 김현지 대통령실 1부속실장의 인사와 이배용 전 국가교육위원장의 금거북 의혹, 체포됐다가 풀려난 이진숙 전 방통위원장의 논란도 마찬가지다. 즉 이번 국감은 법제사법위원회, 운영위원회, 방송통신위원회, 행정안전위원회가 주목받을 것으로 예상된다. 그러나 필자는 올해 국회 국감에서 가장 주목받아야 할 대상은 단연 국방위원회여야 한다고 생각한다. 타 상임위는 대부분 여야 공방에 초점이 맞춰졌지만, 국방위는 우리나라 안보와 직결되는 현안을 다루고, 특히 64년 만에 처음으로 문민 장관이 국방부를 맡아, 우리나라 국방이 안전한가를 점검해야 하기 때문이다. 최근 북한은 무인기 침투, 전술핵 위협, 위성 발사 등으로 한반도 긴장을 다시 끌어올리고 있다. 올해 초 공개된 신형 전술핵 탑재 미사일은 명백한 도발이자, 한국의 방위체계를 시험하려는 전략적 압박이다. 지난 10일에는 노동당 창건 80주년 기념 열병식에서 신형 대륙간
최근 일부 강성 진보 성향 유튜브를 중심으로 법무부와 검찰 인사를 둘러싼 왜곡과 과장이 빠르게 확산되고 있다. 그러나 막상 내용을 들여다보면, 확인되지 않은 주장과 소문이 마치 사실인 양 유포되며 여론을 오도하고 있는 것이다. 이러한 주장들은 현실과 전혀 맞지 않으며, 근거 없는 추측에 불과하다. 유튜브의 알고리즘은 중립보다는 극단을 선호한다. 시청자들이 듣고 싶은 말을 더 자주 더 강하게 해주는 콘텐츠가 상단에 노출된다. 그 결과 정치 성향에 따라 우리 편의 정의만이 강화되고 사실의 균형은 무너진다. 법무부나 검찰 인사는 제도적 안정성과 사법 체계의 중립성을 좌우하는 중대 사안이지만, 일부 채널은 이를 정권의 음모로 포장한다. 조회수는 올라가지만, 국민의 법치 신뢰는 그만큼 떨어진다. 법무부나 검찰 인사는 결코 장관 혼자 결정하지 않는다. 인사 절차는 대통령의 재가를 거치는 헌법상 권한이며, 인사안을 만들기까지는 인사위원회, 대통령실 민정라인 등 다층적인 절차가 존재한다. 즉, “한 사람이 좌지우지한다”는 주장은 행정 구조를 무시한 정치적 단순화다. 특히 중견 이상 검사 인사는 대통령실과 협의를 거치는 것이 관행이고, 이재명 대통령 역시 이러한 절차를 철저
행복한 사람도 명절이 끝나면 허전하다. 그러나 소외된 사람은 그 허전함이 때로 삶의 벽처럼 느껴진다. 명절 끝이 단지 ‘휴식의 끝’이 아니라, ‘고독의 시작’이 되고 만다. 특히 가족과 친지를 만나고 조상을 기리는 추석 연휴가 끝나면, 우리 사회의 고독은 오랫동안 계속된다. 필자는 아버지를 일찍 여읜 뒤 어린 시절 시골에서 어머니와 누나랑 함께 할머님을 모시고 살았다. 당시 우리 집은 할머님을 모시고 산 덕에 매년 추석이면 도시에서 친지들이 찾아와 북적거렸다. 집안에 활기가 돌고, 웃음과 대화가 끊이지 않았다. 그러나 친척들이 떠나고 추석 연휴가 끝나고 나면, 우리 집은 다시 고요해졌다. 어린 나에게 그 순간은 유난히 크게 다가왔고, 그래서 명절 끝마다 허탈감을 경험해야 했다. 며칠 전 고모님을 하늘나라로 보낸 사촌 누나도 비슷한 이야기를 했다. 이혼 후 고모님과 단둘이 살았던 누나는 장례를 치르고 난 후 형제들이 다 떠나고 혼자 남은 집안의 고요가 참을 수 없이 낯설고 공허했다고 했다. 추석 연휴가 끝나면 도시는 다시 일상의 소음으로 가득 찬다. 그러나 그 소음 속에 묻힌 사람들의 마음은 한층 더 외롭고 쓸쓸하다. 추석 연휴 동안 모처럼 가족과 친지가 함께
추석 명절이면 필자는 “추석은 조선 초기 천문과학기술자 장영실이 만들었다”며 “추석날 하늘의 보름달을 볼 때 장영실을 생각해야 한다“고 열변을 토했던 중학교 과학 선생님을 잊지 못한다. 과학 선생님의 주장은 “추석은 달의 주기와 낮밤의 길이가 바뀌는 자연의 시간과 농경 문화가 합쳐져 생긴 절기인데, 장영실이 혼천의와 간의대를 만들어 달의 주기를 예측했고, 앙부일구(해시계), 자격루(물시계)를 만들어 자연의 시간을 측정했고 측우기를 만들어 비의 양를 측정해 농경문화에 적용했기 때문에 후손들이 추석을 풍요롭게 누릴 수 있다”는 것이었다. 추석에 뜨는 보름달이 민속 신앙이자 농경 문화의 상징이었지만, 장영실에겐 우주를 연구하는 천문학적 계산의 대상이었다. 그래서 지금도 장영실의 이름은 우주에서 빛나고 있는 것이다. 그런데 최근 해군이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APEC) 회의가 열리는 10월 말을 전후해 우리 독자기술로 처음 개발한 3600톤급 중형 잠수함 ‘장영실함' 진수식을 갖는다고 밝혀, 필자는 의아해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동안 해군은 장보고, 홍범도 등 역사 속 호국 영웅들의 이름을 잠수함 명칭으로 사용해 왔지만, 이번부터 과학자의 이름도 사용하는 것으로 지침
이번 추석 연휴 기간 정신의학과 강도형 교수의 <감정시계>를 읽으면서 필자는 한국 출판계가 문학 중심의 한국 도서 해외 수출을 넘어, 한국 사회의 독특한 정서와 심리적 고민을 담은 비문학 도서도 세계로 내보내야 한다고 생각했다. 2016년 한강 작가가 한국인 최초로 세계적 권위의 맨부커상을 수상한 이후 한국 문학의 세계화는 더 이상 낯선 이야기가 아니다. 최근 몇 년간 한국 소설과 시가 아시아와 미국, 유럽을 중심으로 잇달아 번역·출간되면서 K-문학은 국제 문학계의 주목을 받아왔다. 그러나 K-문학의 확장은 소설과 시에만 국한되지 않는다. 이제는 심리학과 정신의학을 아우르는 교양서, 곧 비문학 도서의 수출이 K-문학의 저변을 확장하는 중요한 열쇠가 되고 있다. 필자는 최근 그 대표적인 대상으로 떠오르는 책이 지난달 출간된 서울대 정신의학과 강도형 교수의 <감정시계>라고 생각한다. <감정시계>는 감정을 뇌의 전기적 신호나 화학물질의 결과 대신 몸 전체에 분포된 감각의 언어로 설명한 획기적인 책이다. 특히 정신 분석과 심리학적 성찰을 결합해 감정의 구조를 탐색한다는 점에서 차별화된다. 저자는 인간의 감정을 시간의 흐름 속에서 이해
현대인은 사람과 사람과의 관계가 과거 어느 때보다 긴밀하게 연결돼있는 시대를 살고 있다. 스마트폰 하나로 지구 반대편 사람과 실시간 대화가 가능하고, 수많은 소셜 네트워크가 하루에도 수십억건의 소통을 만들어내고 있다. 그러나 아이러니하게도, 이렇게 스피드하고 다양한 연결이 가능한 사회 속에서 현대인은 정작 단절된 삶을 살아가고 있다. 특히 세대 간 단절된 체 자기들 세대의 리그에서만 살아가고 있다. 어느 사회나 세대 간 연결이 약해지면 위기를 맞는다. 노년층은 돌봄의 공백 속에 고립되고, 청년층은 사회적 지지망 없이 불안정한 삶을 견뎌야 한다. 더 나아가 세대 갈등은 정치적 양극화로 번지고, 복지 재정 부담을 둘러싼 갈등은 세대 전쟁으로 치닫는다. 결국 세대 단절은 개인의 불행을 넘어 국가적 위험 요인이 된다. 지금까지 우리나라를 지탱해 온 힘은 늘 ‘세대 간 연결’이었다. 자식은 부모를 돌보고, 부모 세대는 다음 세대의 길을 열어줬다. 노인은 지혜로움을, 청년은 활력과 도전을 제공하며 서로의 빈 곳을 채워 왔다. 특히 우리나라의 세대 간 연결은 추석이 그 시작이자 기반이었다. 그러나 지금은 추석의 의미가 퇴색되면서 세대 간 연결이 점점 약해지고 있어 안타깝
올해 추석연휴는 3일 개천절, 4일 토요일, 5-7일 추석연휴, 8일 추석 대체공휴일, 9일 한글날까지 이어져 총 7일간이다. 비록 10일이 임시공휴일로 지정되지 않았지만, 쉬는 기업이 많고, 연차를 낸 직장인들이 많아 국민이 느끼는 추석연휴는 3일부터 12일까지 10일간이다. 역대급 황금연휴다. 명절 연휴가 길어지는 이유는 대체공휴일 때문이다. 올해 추석연휴가 7일로 된 것도 8일이 대체공휴일이어서다. 만약 대체공휴일 제도가 없었다면 올해 추석연휴는 황금연휴가 아닌 징검다리연휴였을 것이다. 대체공휴일은 지난 2014년 처음 도입됐다. 설연휴, 추석연휴, 어린이날이 주말이나 다른 공휴일과 겹칠 경우, 그 다음 첫 번째 비공휴일을 휴일로 보전하는 제도다. 이후 대체공휴일은 3·1절, 광복절, 개천절, 한글날에 이어 부처님오신날, 성탄절까지 그 대상이 확대됐다. 공휴일에 관한 법률 제3조(대체공휴일) 2항에 의하면, 대체공휴일의 지정 및 운영에 관한 사항은 대통령령으로 정하고 있다. 그래서 대체공휴일은 자동 지정이 아니라, 행정안전부가 전년도 12월에 해당 연도 공휴일을 검토해 올린 안이 국무회의를 거쳐 대통령이 재가해야만 비로소 공휴일이 된다. 다시 말해, 대
1960년대는 대한민국 역사에서 가장 왕성한 출산의 시대였다. 이때 태어난 베이비붐 세대는 산업화를 일궜고 민주화를 이뤄냈으며, 지금은 어른이 됐다. 하지만 베이비붐 세대가 80세 이상 초고령층으로 진입하는 2040년대 이후, 우리 앞에 놓일 가장 큰 사회적 과제는 ‘국민연금의 지속 가능성’이다. 보험 전문가들은 2025년 3월 국민연금 개혁 이전 제도를 유지할 경우, 국민연금 기금은 베이비붐 세대가 80세 이상으로 넘어가는 시기와 겹치는 2050년대 중반부터 고갈된다고 수차례 경고해 왔다. 2040년대 이후엔 수급자가 급격히 늘어나고 보험료를 낼 젊은 세대는 줄어드는 구조적 불균형이 심화되기 때문이다. 지금도 “내가 낸 돈을 돌려받을 수 있을까”라는 불안이 크지만, 그때는 더 심각해질 수밖에 없다. 일본은 2004년 ‘매크로경제 슬라이드’를 도입해 물가나 임금이 올라도 연금 급여는 덜 오르도록 자동 장치를 만들었다. 독일은 연금 산식에 ‘지속가능성 계수’를 집어넣어, 부양비가 나빠지면 자동으로 급여가 줄도록 했다. 스웨덴은 아예 ‘명목확정기여(NDC)’ 제도로 바꿔서, 기대수명이 늘면 개인 연금액이 자동으로 줄어들게 만들었다. 이들 나라가 공통적으로 택한
이재명 대통령은 국정감사를 며칠 앞둔 지난 29일, 김현지 대통령실 총무비서관을 제1부속실장으로, 김남준 제1부속실장을 대변인으로 옮기는 이례적인 인사를 단행했다. 측근 그룹인 ‘성남·경기 라인’의 핵심인 두 사람이 정부 출범 3개월여 만에 자리를 교체한 것이다. 겉으로는 조직 정비이자 역할 재조정이라지만, 속내는 그렇게 단순하지 않다. 국감 국면에서 정치적 부담을 안고도 인사를 단행한 까닭을 곱씹어볼 필요가 있다. 이번 인사는 국민의힘이 김현지 비서관의 국감 출석을 요구하고, 민주당이 거부하는 상황 속에서 이뤄졌다. 대통령실의 인사·예산을 담당하는 총무비서관은 매년 국감에 출석해 왔지만, 김 비서관은 국회 출석을 다소 불편해하는 분위기다. 총무비서관은 역대 정부에서 국감 증인 출석이 관례여서 야당은 당연히 이번에도 김 비서관을 증인석에 앉히려 하고 있다. 그러나 대통령실은 그의 의지에 따라 이를 막고 싶었을 것이다. 제1부속실장은 대통령 수행과 일정 관리가 주된 임무인 만큼 국감 출석 전례가 드물다. 또 김 비서관을 국회에 부르려면 더불어민주당 동의도 필요하기 때문에 그의 국회 출석 가능성은 상당히 낮다. 따라서 이번 보직 이동이 야당의 공세를 희석시키려는
이재명 대통령은 28일 오후 국가정보자원관리원 화재로 인한 국가 전산망 장애 사태와 관련해, 중앙재난안전대책본부 회의를 열고, 국정 책임자로서 송구하다며 사과했다. 그는 국가 전산망에 이중 운영 체계가 없었다는 것이 이해가 되지 않는다며, 원점부터 철저히 조사하라고 당부했다. 하지만, 곧바로 전 정부를 향해 날선 비판을 가했다. 이번 사태는 지난 2023년 대규모 전산망 장애 사태와 양상이 매우 유사하다는 지적이 많다며, 전 정부가 2년이 지나도록 국가 전산망 보호를 게을리한 게 아니냐고 윤석열정부를 공격했다. 윤석열 전 대통령은 임기 내내 무슨 문제가 생기면 ‘전 정부 탓’이라는 말을 자동 반사처럼 쏟아냈다. 이에 이 대통령은 이런 구태를 답습하지 않겠다고 했고, 지금까진 대체적으로 전 정부 탓을 하지 않았다. 그런데 국정자원 화재 사태로 결국 이 대통령도 전 정부 탓을 하고 말았다. 국민 앞에서 책임 대신 변명을 한 셈이다. 정권이 바뀌면 당연히 전 정부의 문제를 지적할 수 있다. 그러나 위기와 사고 앞에서 “우리 잘못 아니다, 전임 잘못”이라는 태도는 무책임의 극치다. 국민이 듣고 싶은 건 핑계가 아니라 해결책이다. 현 정부가 권력을 쥐고 있는 한, 모
우리나라에는 4만여개의 사단법인이 등록돼있다. 중앙정부 허가 법인만 7000여개, 지방자치단체 허가 법인은 3만개가 넘는다. 이들은 문화·예술, 학술·복지, 체육·환경 등 각 분야에서 공익을 내세우며 출발한 단체들이다. 그러나 이름은 ‘비영리’고, 간판은 ‘공익’을 내세우지만, 그 속내를 들여다보면 과연 공익을 위한 사단법인인지 의문이 든다. 현대는 투명성이 중요한 시대인데, 아직도 일부 사단법인은 상 장사를 하면서 공익보다 사익을 챙기고 있다. 이들 때문에 “돈만 내면 상을 받을 수 있다”는 정서가 사회적 관습이 된 지 오래다. 이들이 주는 상은 심사위원회라는 허울을 쓰지만, 실상은 비용 납부 여부가 당락을 결정한다. 정부의 감독도 문제다. 허가를 내주고 관리는 대충한다. 수만개 사단법안을 일일이 점검할 역량이 없다는 핑계다. 회계 보고는 형식적이고, 부실 운영에 대한 허가 취소는 극히 드물다. 그 결과 사단법인은 공익의 탈을 쓰고 사익을 추구하는 무풍지대가 됐다. 사단법인은 세제 혜택과 사회적 신뢰라는 공공 자산을 바탕으로 운영돼야 한다. 그러나 지금처럼 방치되면 피해는 국민이 떠안게 된다. 공익의 이름으로 세워진 제도가 공익을 해치는 아이러니, 이것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