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삼기의 시사펀치> ‘권력 세탁’만 반복하는 농협

지난 9일 정부가 농협중앙회 강호동 회장과 핵심 간부들을 횡령·금품수수 혐의로 경찰에 수사 의뢰했다. 정부합동 특별감사 결과는 단순한 내부 비리 차원을 넘어선다. 선거 과정에서의 금품 제공 의혹, 공금 유용, 특혜성 대출과 수의계약, 분식회계, 채용 비리까지 불거지며 조직 운영 전반의 질서가 흔들리고 있다.

공적 조직의 신뢰가 무너질 때 국민이 받는 충격은 단순한 실망을 넘어 제도 전반에 대한 불신으로 이어진다. 농협은 지금 존재 이유와 운영 방식 모두를 근본부터 재점검해야 할 중대한 기로에 서 있다.

특별감사
중대 기로

농협은 단순한 기관이 아니다. 전국 농민과 조합원을 연결하는 최대 협동조합이자 농업·금융·유통·정책 집행을 떠받치는 국가적 기반 조직이다. 이런 기관에서 권력형 비리 의혹이 반복된다는 것은 조직 운영 구조에 근본적 결함이 있음을 의미한다. 지도부 교체 같은 상징적 조치만으로는 무너진 신뢰를 회복하기 어렵다.

지금 필요한 것은 ‘사람 교체’가 아니라 권력 구조를 해체하고 다시 설계하는 제도 개혁이다.

수사 의뢰가 의미하는 진짜 경고= 정부의 수사 의뢰는 단순히 사법 절차가 시작됐다는 의미를 넘어선다. 이는 공적 조직인 농협의 내부 통제 시스템이 자정 능력을 상실했을 가능성을 국가가 공식적으로 인정한 조치에 가깝다. 감사 결과가 사실로 확정될 경우 이번 사태는 농협 역사상 가장 심각한 지배구조 위기로 기록될 가능성이 높다. 내부 감시와 통제가 제대로 작동했다면 외부 수사로 확대될 사안은 애초에 발생하기 어려웠다.

공금이 선거 지원 세력에게 제공될 선물과 답례품 마련에 사용됐다는 의혹은 상징성이 크다. 예산이 공익 목적이 아니라 권력 유지 수단으로 전용됐다는 의미이기 때문이다. 협동조합 자산은 조합원 공동의 이익을 위해 사용돼야 하지만, 선거나 정치와 연결되는 순간 조직의 정체성은 훼손된다. 공적 예산이 사적 정치 행위와 결합하면 공공성과 투명성은 동시에 무너진다.

더 심각한 문제는 이런 논란이 이번이 처음이 아니라는 점이다. 농협은 과거에도 선거 과열과 금품수수, 내부 권력 갈등 문제로 여러 차례 사회적 비판을 받아왔다. 그때마다 제도 개선과 자정 노력을 약속했지만, 권력의 작동 방식과 이해관계 구조는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 이번 사태는 누적된 구조적 모순이 임계점을 넘으며 터져 나온 결과에 가깝다.

‘협동조합’이 ‘선거 조직’으로 변질된 현실= 협동조합의 본질은 조합원 중심의 민주적 통제와 공동 이익 실현이다. 그러나 농협 운영은 조합원 중심 구조보다 선거를 축으로 권력이 재편되는 정치 조직에 가깝다는 비판이 나온다. 조직 운영의 초점이 농업 경쟁력 강화와 조합원 지원이 아니라 선거 구도 관리와 세력 균형 유지로 이동하면 협동조합 정신은 약화될 수밖에 없다.

중앙회장 수사로 드러난 권력구조 민낯
“사람만 교체? 해체 후 다시 설계해야”

조합장 선거와 중앙회장 선거가 긴밀히 연결되면서 내부 정치화는 더욱 심화됐다. 선거는 정책 비전 경쟁이 아니라 지역 연합과 세력 규합, 줄 세우기 중심의 정치 행위로 변질될 가능성이 높다. 누가 더 많은 표를 동원할 수 있는지가 권력 획득의 기준이 되면 조직 역량은 선거 전략에 집중된다. 그 결과 경영 전문성과 정책 역량보다 정치적 영향력이 우선되는 왜곡이 발생한다.

이 같은 구조가 지속되면 조직의 에너지는 외부 경쟁력 강화가 아니라 내부 권력 유지에 소모된다. 농민 소득 향상과 유통 혁신, 금융 지원 확대 같은 본래의 과제는 후순위로 밀려난다. 조직의 존재 이유보다 내부 권력 지형이 더 중요한 가치로 작동하게 되는 것이다. 농민과 조합원을 위한 조직이 선거 승리를 위한 조직처럼 움직이는 상황이 반복되고 있다.

감독기관을 피감기관이 선출하는 구조적 모순= 농협 중앙회는 회원조합을 지도·감독하는 상위 기관으로, 예산 집행의 적정성과 경영 건전성, 인사 운영 전반에 대해 관리·감독 책임을 가진다. 그러나 역설적으로 중앙회장을 선출하는 권한은 회원조합 조합장들에게 집중돼있다. 감독 대상이 감독기관의 수장을 선출하는 구조는 본질적으로 이해 충돌 가능성을 내포한다. 강력한 내부 통제가 작동하기 어려운 제도적 한계가 발생하는 이유다.

중앙회장은 조합장들의 정치적 지지를 의식할 수밖에 없다. 감독 기능을 엄격히 행사할 경우 선거 기반이 흔들릴 수 있기 때문이다. 그 결과 중앙회는 규율자라기보다 이해관계를 조정하는 중재자 역할에 머무를 가능성이 커진다. 견제와 균형 대신 타협과 조정이 우선되는 구조가 형성된다. 제도상 감독 권한은 존재하지만 실제 집행력은 정치적 고려에 의해 제한된다.

이 같은 구조에서는 조직 내부 비리가 발생해도 단호한 조치를 취하기 어렵다. 감독 권한 행사 자체가 선거 이해관계와 직결되기 때문이다. 규정을 엄격히 적용할수록 정치적 반발이 커지는 역설적 상황이 반복된다. 결국 감독 기능은 형식화되고 실질적 통제력은 약화된다. 이는 권력 분산이 아니라 권력 유착 구조가 고착되는 과정에 가깝다.

강력한 통제
제도적 한계

중앙회장 권한 집중이 만든 권력의 그늘= 농협 중앙회장은 인사권과 예산권, 계열사 운영 전반에 이르기까지 광범위한 영향력을 행사한다. 권한 범위가 넓을수록 중앙회장 선거는 단순한 대표 선출을 넘어 조직 권력구조를 결정하는 정치 행위가 된다. 선거 결과가 인사 배치와 사업 배분, 예산 흐름을 좌우하면서 선거의 중요성은 과도하게 확대된다. 권력 집중은 선거 과열과 이해관계 동맹을 낳는 구조적 요인이다.

강력한 권한은 그에 상응하는 책임성과 투명성을 전제로 해야 한다. 그러나 내부 감시와 견제 장치가 충분히 작동하지 않으면 권한은 통제되지 않는 힘으로 변질된다. 인사권과 예산권이 특정 세력 관리 수단으로 활용될 위험도 커진다. 공적 권한이 조직 운영이 아니라 정치적 영향력 유지 도구로 전용되는 순간이다. 권력의 사유화는 협동조합 체제의 근간을 흔든다.

권한 집중 구조는 조직 내부 자율성과 혁신 동력도 약화시킨다. 다양한 의견이 반영되기보다 상층부 의중이 의사결정을 좌우하게 된다. 견제 장치가 약할수록 정책 결정은 폐쇄적으로 이뤄지고 책임 소재도 불분명해진다. 이는 장기적으로 조직 경쟁력 저하로 이어질 가능성이 크다. 권력 집중은 효율성이 아니라 경직성과 불투명성을 낳는다.

권력구조 바꾸지 않으면 제도 개선은 반복= 중앙회장 권한 집중 문제가 되풀이되는 이유는 권력이 형성되는 출발점이 바뀌지 않았기 때문이다. 선거를 통해 권력이 만들어지는 구조가 그대로 유지되는 한 인사권과 예산권을 둘러싼 이해관계 정치도 사라지기 어렵다. 선출 제도는 단순한 절차 문제가 아니라 권력구조를 설계하는 출발점이다. 권력이 형성되는 방식이 달라지지 않으면 이후의 통제 장치 역시 실효성을 갖기 어렵다.

결국 중요한 것은 선출 방식의 ‘이름’이 아니다. 권력이 얼마나 분산되고, 선거 이해관계가 감독 기능을 얼마나 침해하지 못하도록 설계되느냐가 개혁의 핵심 기준이다. 이 기준 위에서 각 제도의 장단점을 다시 살펴볼 필요가 있다.

조합원 직선제가 갖는 상징성과 현실적 한계= 조합원 직선제는 협동조합 민주주의의 이상에 가장 가까운 제도로 평가된다. 수백만 조합원이 직접 중앙회장을 선출하는 구조는 대표성 측면에서 강한 정당성을 지닌다. 권력 기반이 넓어질수록 특정 집단의 권력 독점 가능성은 낮아진다. 조합원 참여 확대는 협동조합 정체성 회복이라는 상징적 의미도 갖는다.

그러나 현실적 부담도 만만치 않다. 대규모 선거를 치르기 위해서는 막대한 행정 비용과 관리 인력이 필요하다. 선거 운동 과정에서 발생할 수 있는 금품 제공과 조직 동원 문제를 통제하기도 쉽지 않다. 규모가 커질수록 부정 행위 가능성이 구조적으로 사라진다고 보기도 어렵다. 형식적 민주성 확대가 곧 실질적 투명성으로 이어진다고 단정하기 어려운 이유다.

형식적 민주성
실질적 투명성

선거 방식보다 중요한 것은 권력 분산= 호선제는 이사회 구성원들이 회장을 선출하는 방식이다. 선거 과정의 과열 경쟁과 금권선거 가능성을 줄일 수 있다는 점에서 현실적 대안으로 거론된다. 선거 비용과 조직 내부 갈등을 완화하고 경영 안정성을 높일 수 있다는 장점도 있다. 권한이 이사회 중심으로 분산되면서 특정 인물에게 권력이 과도하게 집중되는 현상도 완화할 수 있다.

그러나 호선제는 현장 조합원 의사가 충분히 반영되지 못할 수 있다는 한계를 안고 있다. 소수 인원에 의해 지도부가 결정될 경우 폐쇄적 운영 구조가 고착될 가능성도 있다. 기득권 세력이 권력을 유지하는 통로로 활용할 수 있다는 우려도 존재한다. 효율성 중심 제도가 참여 민주주의 가치를 약화시킬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이 같은 한계를 보완하기 위한 절충안으로 선거인단 제도가 주목받는다. 조합장 1인에게 집중된 선출 권한을 분산해 다양한 대표가 참여하도록 설계하는 방식이다. 조합원 직선제와 호선제의 중간 형태로 대표성과 선거 관리 효율성을 동시에 고려할 수 있다. 선거 규모를 합리적으로 조정하면서도 조합원 의사를 폭넓게 반영할 수 있다는 점에서 현실적 대안으로 평가된다.

따라서 농협 개혁의 현실적 1단계는 조합장 1인에게 집중된 선출 권한을 완화하는 확대형 선거인단 제도 도입에서 출발해야 한다. 제도 개편의 본질은 선거 방식이 아니라 권력 형성 구조의 재설계에 있다.

독립 감사기구와 내부 통제 시스템의 재설계= 독립적 감사기구는 권력 집중을 견제하는 핵심 장치다. 감사 조직이 집행부 영향권에 놓이면 실질적 통제 기능을 기대하기 어렵다. 감사 인사권과 예산이 독립적으로 운영돼야만 권력남용을 감시할 수 있다. 조직 내부에서 발생하는 비리와 이해 충돌을 사전에 차단하는 역할도 수행해야 한다. 감사 독립성 확보는 투명성 강화의 출발점이다.

내부 통제 시스템 역시 전면적 재설계가 필요하다. 예산 집행과 사업 추진 절차를 투명하게 공개하고 외부 감시가 가능하도록 해야 한다. 수의계약과 특혜성 대출을 원천적으로 차단할 절차적 장치도 마련해야 한다. 의사결정 과정의 기록과 공개를 의무화하는 것도 중요한 과제다. 정보 공개 확대는 조직 신뢰 회복의 핵심 수단이다.

금품 제공·공금 유용·특혜 대출 의혹
수의계약·분식회계에 채용 비리까지

권한 집중 구조를 유지한 채 통제 장치만 강화하는 방식은 효과가 제한적이다. 권력 분산과 통제 시스템이 함께 작동해야 실질적 개혁 효과가 나타난다. 구조 개편 없이 부분적 장치만 도입하면 새로운 권력 카르텔이 형성될 위험도 있다. 제도와 구조가 동시에 변화해야 투명성이 확보된다.

농협 개혁이 농업 생존 전략과 직결되는 이유= 농협은 농민 경제활동의 핵심 기반이다. 금융 지원과 농산물 유통, 정책 사업 집행이 농협을 통해 이뤄진다. 조직 신뢰가 흔들리면 농민의 경제 활동 역시 직접적 영향을 받을 수밖에 없다. 농협 운영의 건전성은 곧 농업 생태계의 안정성과 연결된다.

고령화와 농촌 인구 감소, 이상기후로 인한 생산 불안정 속에서 농민들의 제도 의존도는 더욱 높아졌다. 농협은 농민들에게 사실상 마지막 안전망 역할을 하고 있다. 이런 기관이 불신을 받으면 농촌 경제 전반이 급속히 위축될 가능성이 크다. 농협 정상화는 농정 정책 실행력 회복과도 직결된다.

따라서 농협 개혁은 조직 쇄신 차원을 넘어 국가 전략 과제로 접근해야 한다. 협동조합 민주주의 회복은 농민 생존권 보장과 직결된다. 제도 신뢰가 회복돼야 농민들이 안심하고 경제활동을 이어갈 수 있다. 농협의 투명성과 책임성 강화는 농업 경쟁력 회복의 전제 조건이다.

‘사람 교체’ 아닌 ‘권력구조 해체’로 가야= 지도부 몇 명을 교체하는 방식으로는 무너진 신뢰를 회복하기 어렵다. 유사한 권력구조가 유지되는 한 비슷한 문제는 반복될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사람은 바뀌어도 권력이 형성되고 작동하는 방식이 같다면 결과도 달라지지 않는다. 구조개혁이 본질적 해법인 이유다.

선거 권력과 인사·예산 권한의 연결고리를 끊어야 한다. 권력 분산과 투명성 강화, 책임성 확보가 동시에 이뤄져야 한다. 중앙회장 선출 구조 개편은 출발점일 뿐이며 이후 권력 형성 메커니즘 전체를 재설계해야 한다. 제도 설계 단계부터 이해 충돌 가능성을 차단해야 한다.

농협 개혁의 본질은 ‘누가 회장이 되느냐’가 아니다. ‘회장이 어떻게 만들어지고 권력이 어떻게 통제되느냐’의 문제다. 구조를 바꾸지 못하면 개혁은 반복되는 이벤트로 소비될 가능성이 높다. 신뢰 회복은 구조적 투명성 확보에서 출발한다.

정부도 개혁 나섰지만, 구조 못 건드리면 한계는 분명= 정부 역시 농협 구조 문제의 심각성을 인식하고 제도 개선에 착수했다. 농림축산식품부는 ‘농협 개혁 추진단’을 통해 감사 독립성 강화와 금품선거 근절 방안을 제도화하고, 관련 법안을 이달 중 발의하겠다고 밝혔다. 내부 통제 시스템을 정비하고 자금·인사 운영의 투명성을 높이겠다는 방향은 진전된 조치다. 반복돼 온 ‘자정 약속’과 달리 정부가 직접 나섰다는 점에서도 의미가 있다.

그러나 제도 손질이 곧 구조 개편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감사 기능을 강화하더라도 권력 형성의 출발점이 그대로면 통제 장치는 한계에 부딪힐 가능성이 높다. 금품선거 방지 규정을 강화해도 중앙회장 권한 집중 구조가 지속되면 이해관계 정치는 다른 방식으로 반복될 수 있다. 규정은 강화됐지만 권력구조가 그대로라면 개혁은 ‘관리’ 수준에 머무를 위험이 있다.

권력이
사적으로

결국 이번 개혁 논의의 성패는 법률 조항의 숫자가 아니라 권력 형성 구조를 어디까지 재설계하느냐에 달려 있다. 선출 구조 개편과 권한 분산이 병행되지 않는다면 감사 독립성 강화 역시 제한적 효과에 그칠 수밖에 없다. 농협 개혁은 행정적 개선 과제가 아니라 권력구조를 다시 설계하는 정치·제도적 과제에 가깝다.

농협이 지금 바꿔야 할 것은 사람이 아니라, 구조다. 이는 권력이 사적으로 순환하지 못하게 만드는 구조다.

<skkim5961@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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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독> 경찰 압수 비트코인 ‘1400억’ 털린 내막

[단독] 경찰 압수 비트코인 ‘1400억’ 털린 내막

[일요시사 취재1팀] 김성민 기자 = 경찰이 압수한 비트코인 1700여개 중 1400개 이상이 사라졌다. 전체 피해액은 최소 1300억원에서 최대 1500억원 수준으로 추산된다. 충격적인 것은 탈취 시점과 방식, 그리고 접속 기기까지 모두 경찰 수사 과정과 맞물려 있다는 점이다. 단순 해킹으로 보기 어려운 정황이 잇따라 확인되면서 사건의 성격이 ‘내부 연루 의혹’으로 급격히 기울고 있다. 사건의 출발은 2021년 11월 광주경찰청 반부패경제범죄수사대의 불법 도박사이트 수사였다. 광주청 수사과 소속 경사 김모씨 등은 범죄수익은닉 혐의 압수수색영장을 집행하며 불법 도박장 개설 혐의 등을 받은 비트세븐 거래소 대표 이모씨의 블록체인닷컴 지갑에 접속했다. 6분 간격 연결고리 당시 경찰은 피의자 이씨의 블록체인닷컴 지갑 계정에 접속해 비트코인 1798개를 확인했다. 경찰은 같은 날 오전 11시58분부터 약 40분간 27차례에 걸쳐 135개를 이체하며 1차 압수를 진행했다. 이후 접속이 차단됐다고 주장했지만, 불과 몇 시간 뒤인 11월10일 새벽과 오후, 경찰청 사무실에서 추가로 185개를 더 이체했다. 총 320개가 ‘정식 압수’됐다. 문제는 그 다음이었다. 2021년 11월10일 오후 8시28분. 김 경사는 압수된 계정의 연동 이메일을 자신의 구글 계정으로 변경한다. 그리고 불과 12분 뒤인 8시40분부터, 지갑에 남아 있던 비트코인 1477개가 195차례에 걸쳐 외부 주소로 빠져나갔다. 압수 직후, 그것도 계정 권한이 경찰에게 완전히 넘어간 직후 벌어진 대규모 탈취였다. 블록체인닷컴이 제출한 IP 로그는 더욱 노골적이다. 11월9일부터 10일 오후 8시32분까지 모두 한국 IP를 사용한 수사관 접속 기록이다. 이후 마지막 김 경사의 접속 6분 뒤, 미국·우크라이나·캐나다 IP를 통한 접속이 연속으로 발생한다. VPN을 이용한 김 경사로 의심되는 ‘탈취자’의 접속이다. 수사관 로그인 → 6분 후 탈취 로그인 → 즉시 대량 이체로 이어진 것이다. 외부 해커의 우연한 침입이라 보기에는 타이밍이 지나치게 촘촘하고 정교하다. 결정적인 단서는 디바이스 로그다. 블록체인닷컴 측이 제공한 자료에 따르면, 해당 계정에는 단 두 종류의 기기만 기록돼있다. 하나는 윈도우 기반 데스크톱, 다른 하나는 안드로이드 모바일이다. 이 중 안드로이드 접속은 단 한 번, 우크라이나 IP를 통해 이뤄졌다. 나머지 탈취 접속은 모두 윈도우 데스크톱이다. 문제는 그 윈도우 기기다. 로그에는 수사관이 사용한 윈도우 기기 외에 다른 데스크톱 기록이 존재하지 않는다. 즉, 탈취자가 사용한 윈도우 PC가 별도 기기였다면 반드시 추가 로그가 남아야 하지만 그마저도 없다. 탈취 접속에 사용된 윈도우 기기가 수사관이 사용한 기기와 동일하다는 것이다. 수사관 접속 후 VPN 유출 시작 경찰이 사용한 기기가 쓰였다? 탈취 당시 상황도 석연치 않다. 계정 연동 이메일이 김 경사의 개인 계정으로 바뀐 직후 탈취가 시작됐다. 이 과정에서 최소 198건의 출금이 발생했다. 정상이라면 동일 수량의 알림 이메일이 수신돼야 한다. 그러나 김 경사의 이메일에는 단 7건만 남아 있다. 나머지 191건은 흔적조차 없다. 더욱이 김 경사는 당시 사무실에 남아 있었고, 탈취 시간 동안 계정 재접속을 시도했다고 진술했다. 그럼에도 본인 이메일로 전송된 출금 알림을 전혀 인지하지 못했다는 설명이다. 단순 실수로 보기엔 삭제 규모가 과도하다. 선택적 삭제 가능성이 제기되는 대목이다. 수사 협조 전문가 박모씨의 분석 자료에서도 이해하기 어려운 정황이 발견됐다. 박씨는 11월11일 저녁, 탈취 자금 흐름을 분석한 노드 자료를 김 경사에게 전달했다. 그런데 해당 자료에는 그 시점 기준 아직 발생하지 않은 미래 트랜잭션이 포함돼있었다. 실제 해당 거래는 다음 날 새벽에야 블록체인에 기록된 것으로 확인된다. 블록체인 구조상 발생하지 않은 거래를 사전에 확인하는 것은 원칙적으로 불가능하다. 이 때문에 해당 자료가 사후 수정됐거나, 탈취 경로를 사전에 알고 있었던 것 아니냐는 의혹이 제기된다. 이씨는 사건 발생 한 달 뒤 탈취 사실을 인지하고 검찰에 진정을 제기했다. 이후 추가 진정까지 제출했지만, 수사는 2024년까지 사실상 진행되지 않았다. 그러다 뒤늦게 수사가 이뤄졌고, 결과는 반전이었다. 탈취 의혹은 규명되지 않은 채, 오히려 피해자가 허위 고발을 했다며 무고 혐의로 기소된 것이다. 국가 수사기관이 압수한 비트코인이 경찰 손을 거친 직후 대량으로 사라졌으나, 코인의 주인은 구속되고 경찰은 의심에서 벗어났다. 단순 해킹이라 보기에는 시점과 방식, 그리고 이후 수사 흐름까지 모든 것이 비정상적이다. 법원도 이미 “누군가 계정에 접근해 비트코인을 이체했다”고 판단했고, 검찰은 수사 정보 유출 의혹까지 제기하고 경찰을 상대로 압수수색을 벌였다. 정작 탈취 의혹을 제기한 당사자는 무고 혐의로 법정에 서 있는 상황이다. ‘누가 훔쳤는가’라는 본질적 질문은 여전히 답을 얻지 못한 채 사건은 미궁으로 빠졌다. 알림 191건 흔적 없이… 경찰은 1일 전송 한도 때문에 압수가 며칠에 걸쳐 이뤄지는 사이, 이씨 측이 이를 빼돌렸다고 판단했다. 반면 이씨 측은 정반대 주장을 펼쳤다. 계정 접근권한을 사실상 장악한 수사기관 내부에서 탈취가 이뤄졌을 가능성을 제기한 것이다. 사건은 단순 범죄수익 환수 문제를 넘어 ‘압수된 국가 관리 자산이 어떻게 사라졌는가’라는 근본적 의문으로 확장됐다. 광주지법 항소심은 도박공간 개설과 범죄수익은닉 혐의 자체는 유죄로 인정하면서도, 사라진 1476개 비트코인에 대해서는 이씨의 책임을 인정하지 않았다. 재판부는 “누군가 이씨의 블록체인 계정에 접근해 당시까지 남아있던 비트코인 대부분을 다른 지갑으로 이체해 갔다”고 판시했다. 이는 곧 해당 비트코인의 이동 주체가 이씨로 특정되지 않았음을 의미한다. 그 결과 1심에서 600억원대에 달했던 불법 도박장 개설 혐의 등에 대한 추징금은 항소심에서 15억원 수준으로 대폭 줄어들었다. 이 판결은 중요한 함의를 갖는다. 법원이 최소한 “외부 혹은 제3자의 개입 가능성”을 인정했다는 점에서다. 즉, 단순히 피고인이 숨기거나 빼돌린 사건이 아니라, 압수된 계정에 대한 추가 접근이 있었고 실제 자산 이동이 발생했다는 사실 자체는 부정되지 않았다. 검찰 역시 이 사건을 단순히 피고인 책임으로만 보지 않았다. 2023년 11월 검찰은 광주경찰청과 서부경찰서를 상대로 압수수색을 실시했다. 수사 정보가 외부로 유출됐을 가능성과 압수 과정의 적법성을 확인하기 위한 조치였다. 이 과정에서 사건 브로커와 거액 자금 흐름까지 거론되며 사건은 더욱 복잡한 양상으로 번졌다. 단순한 도박사이트 수사가 아니라 수사 기밀, 로비, 가상자산 이동이 뒤엉킨 구조적 사건으로 확장된 것이다. 최근 공판에서는 또 다른 쟁점이 드러났다. 증인으로 출석한 전문가 박씨 측 인물은 사라진 비트코인의 이동 경로를 분석한 결과 특정 거래소 계열 지갑으로 이어지는 흐름이 확인된다며, 도박사이트 운영 세력이 직접 자금을 이동시켰을 가능성을 제기했다. 의심받는 수사관 반면 이씨 측은 사건 직후 오히려 검찰에 진정을 제기하며 탈취 의혹을 먼저 제기한 점을 강조하며, 스스로 범행을 저질렀다면 그런 행동을 할 이유가 없다고 반박했다. 또 블록체인닷컴 측 자료에 따르면 ‘탈취자’는 VPN을 이용해 해외 IP로 접속했으며, 일부 접속은 데스크톱 환경에서 이뤄진 것으로 분석됐다. 만약 이 분석이 사실이라면, 압수 과정에서 사용된 기기와 탈취에 사용된 기기가 동일하거나 밀접하게 연관됐을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는 주장이 제기된다. 다만 이 같은 기술적 분석은 현재까지 법원에서 확정된 사실이 아니라는 점에서 추가적인 검증이 필요한 상황이다. 이메일 기록 역시 의문을 키운다. 탈취 과정에서 수백건에 달하는 출금이 발생했다면 이에 상응하는 알림 메일이 존재해야 정상이다. 그러나 일부 기록만 남아 있고 상당수는 확인되지 않는다는 주장도 나온다. 만약 실제로 알림이 발송됐음에도 기록이 남아 있지 않다면, 이는 단순 오류가 아니라 의도적 삭제 가능성까지 의심할 수 있는 대목이다. 결국 이 사건은 세 가지 축으로 압축된다. 첫째, 경찰이 압수한 가상자산이 왜 완전히 확보되지 못했는가. 둘째, 압수 이후 누가 해당 계정에 접근해 자산을 이동시켰는가. 셋째, 그 과정에서 수사기관 내부 혹은 외부 세력의 개입이 있었는가다. 상식적으로 국가가 압수한 자산은 그 어떤 개인소유보다도 안전하게 보호돼야 한다. 그러나 이 사건에서는 정반대 결과가 나타났다. 압수 직후 대규모 자산이 사라졌고, 책임 소재는 규명되지 않았으며, 의혹을 제기한 당사자는 오히려 피고인 신분이 됐다. 계정 변경 직후 사라져 이메일 변경 직후 작업 이 사건이 단순한 형사사건을 넘어서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만약 압수된 자산조차 안전하게 관리되지 못한다면, 국가 형사사법 시스템에 대한 신뢰 자체가 흔들릴 수밖에 없다. 특히 가상자산과 같이 추적과 관리가 기술적으로 가능한 자산에서 이런 일이 발생했다는 점은 더욱 심각하다. 현재까지 드러난 정황만 놓고 보면, 이 사건은 ‘탈취’가 아니라 ‘내부 유출’ 가능성을 강하게 의심케 한다. 한편, 지난달 15일 재판에 증인으로 출석한 인물은 범행 주체가 경찰이 아니라 탈취범으로 지목된 이씨와 그의 아버지일 가능성이 크다는 취지로 증언했다. 광주지방법원 형사10단독 유형웅 판사는 범죄수익은닉의 규제 및 처벌 등에 관한 법률 위반 혐의 등을 받고 있는 이씨 부녀에 대한 속행 공판기일 재판을 열었다. 이씨 부녀는 2021년 11월 경찰 압수수색이 진행되던 중 자신의 블록체인 지갑에 있던 비트코인 1476개를 빼돌린 혐의로 기소됐다. 검사는 이날 A씨를 증인으로 신청해 신문했다. A씨는 과거 이씨 측 부탁을 받고 비트코인 환전에 도움 준 인물이다. 현재는 코인 관련 별도 사기 혐의로 보석 상태에서 재판을 받고 있다. A씨는 이날 검사의 질문을 받고 “이씨 지갑에서 사라진 비트코인 1400여개의 행방을 쫓기 위해 거래 내역을 분석한 결과, 비트세븐 거래소와 연결된 지갑이 다수 등장했다”고 말했다. 이어 “당시 경찰은 일일 전송 제한량이 걸려 있어 이씨 지갑에 있던 비트코인을 여러 날에 걸쳐 경찰 지갑으로 옮겨 압수했는데, 같은 시기 탈취범은 순식간에 이씨 지갑에 있던 비트코인 1400여개를 빼간 것으로 나타났다”고 증언했다. 그러면서 “경찰과 달리 이씨 지갑에서 순식간에 다량의 비트코인을 탈취해 간 점, 탈취된 비트코인 이동 경로에 비트세븐 거래소 지갑이 활용된 점을 고려할 때 탈취범은 비트세븐 거래소를 통제할 수 있는 사람들”이라며 사실상 이씨 부녀를 겨냥했다. 구속된 코인 주인 A씨가 언급한 비트세븐 거래소는 정상적인 가상자산 거래소가 아니라, 이씨 부녀가 해외에 서버를 두고 운영했던 도박사이트라는 주장이다. 비트세븐 거래소와 관련해 이씨는 도박공간 개설 혐의 등으로 대법원에서 유죄 판결을 확정받았다. 다만 해당 재판에서 사라진 비트코인 1476개에 관한 추징(현 시세 기준 약 1620억원) 책임은 인정되지 않아, 검찰은 범죄수익은닉 혐의를 적용해 이씨를 부친과 함께 추가 기소했다. A씨의 증언에 대해 이씨 부녀 측은 즉각 반박하는 대신 별도 의견서를 재판부에 제출하겠다고 밝혔다. <smk1@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