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삼기의 시사펀치> ‘권력 세탁’만 반복하는 농협

지난 9일 정부가 농협중앙회 강호동 회장과 핵심 간부들을 횡령·금품수수 혐의로 경찰에 수사 의뢰했다. 정부합동 특별감사 결과는 단순한 내부 비리 차원을 넘어선다. 선거 과정에서의 금품 제공 의혹, 공금 유용, 특혜성 대출과 수의계약, 분식회계, 채용 비리까지 불거지며 조직 운영 전반의 질서가 흔들리고 있다.

공적 조직의 신뢰가 무너질 때 국민이 받는 충격은 단순한 실망을 넘어 제도 전반에 대한 불신으로 이어진다. 농협은 지금 존재 이유와 운영 방식 모두를 근본부터 재점검해야 할 중대한 기로에 서 있다.

특별감사
중대 기로

농협은 단순한 기관이 아니다. 전국 농민과 조합원을 연결하는 최대 협동조합이자 농업·금융·유통·정책 집행을 떠받치는 국가적 기반 조직이다. 이런 기관에서 권력형 비리 의혹이 반복된다는 것은 조직 운영 구조에 근본적 결함이 있음을 의미한다. 지도부 교체 같은 상징적 조치만으로는 무너진 신뢰를 회복하기 어렵다.

지금 필요한 것은 ‘사람 교체’가 아니라 권력 구조를 해체하고 다시 설계하는 제도 개혁이다.

수사 의뢰가 의미하는 진짜 경고= 정부의 수사 의뢰는 단순히 사법 절차가 시작됐다는 의미를 넘어선다. 이는 공적 조직인 농협의 내부 통제 시스템이 자정 능력을 상실했을 가능성을 국가가 공식적으로 인정한 조치에 가깝다. 감사 결과가 사실로 확정될 경우 이번 사태는 농협 역사상 가장 심각한 지배구조 위기로 기록될 가능성이 높다. 내부 감시와 통제가 제대로 작동했다면 외부 수사로 확대될 사안은 애초에 발생하기 어려웠다.

공금이 선거 지원 세력에게 제공될 선물과 답례품 마련에 사용됐다는 의혹은 상징성이 크다. 예산이 공익 목적이 아니라 권력 유지 수단으로 전용됐다는 의미이기 때문이다. 협동조합 자산은 조합원 공동의 이익을 위해 사용돼야 하지만, 선거나 정치와 연결되는 순간 조직의 정체성은 훼손된다. 공적 예산이 사적 정치 행위와 결합하면 공공성과 투명성은 동시에 무너진다.

더 심각한 문제는 이런 논란이 이번이 처음이 아니라는 점이다. 농협은 과거에도 선거 과열과 금품수수, 내부 권력 갈등 문제로 여러 차례 사회적 비판을 받아왔다. 그때마다 제도 개선과 자정 노력을 약속했지만, 권력의 작동 방식과 이해관계 구조는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 이번 사태는 누적된 구조적 모순이 임계점을 넘으며 터져 나온 결과에 가깝다.

‘협동조합’이 ‘선거 조직’으로 변질된 현실= 협동조합의 본질은 조합원 중심의 민주적 통제와 공동 이익 실현이다. 그러나 농협 운영은 조합원 중심 구조보다 선거를 축으로 권력이 재편되는 정치 조직에 가깝다는 비판이 나온다. 조직 운영의 초점이 농업 경쟁력 강화와 조합원 지원이 아니라 선거 구도 관리와 세력 균형 유지로 이동하면 협동조합 정신은 약화될 수밖에 없다.

중앙회장 수사로 드러난 권력구조 민낯
“사람만 교체? 해체 후 다시 설계해야”

조합장 선거와 중앙회장 선거가 긴밀히 연결되면서 내부 정치화는 더욱 심화됐다. 선거는 정책 비전 경쟁이 아니라 지역 연합과 세력 규합, 줄 세우기 중심의 정치 행위로 변질될 가능성이 높다. 누가 더 많은 표를 동원할 수 있는지가 권력 획득의 기준이 되면 조직 역량은 선거 전략에 집중된다. 그 결과 경영 전문성과 정책 역량보다 정치적 영향력이 우선되는 왜곡이 발생한다.

이 같은 구조가 지속되면 조직의 에너지는 외부 경쟁력 강화가 아니라 내부 권력 유지에 소모된다. 농민 소득 향상과 유통 혁신, 금융 지원 확대 같은 본래의 과제는 후순위로 밀려난다. 조직의 존재 이유보다 내부 권력 지형이 더 중요한 가치로 작동하게 되는 것이다. 농민과 조합원을 위한 조직이 선거 승리를 위한 조직처럼 움직이는 상황이 반복되고 있다.

감독기관을 피감기관이 선출하는 구조적 모순= 농협 중앙회는 회원조합을 지도·감독하는 상위 기관으로, 예산 집행의 적정성과 경영 건전성, 인사 운영 전반에 대해 관리·감독 책임을 가진다. 그러나 역설적으로 중앙회장을 선출하는 권한은 회원조합 조합장들에게 집중돼있다. 감독 대상이 감독기관의 수장을 선출하는 구조는 본질적으로 이해 충돌 가능성을 내포한다. 강력한 내부 통제가 작동하기 어려운 제도적 한계가 발생하는 이유다.

중앙회장은 조합장들의 정치적 지지를 의식할 수밖에 없다. 감독 기능을 엄격히 행사할 경우 선거 기반이 흔들릴 수 있기 때문이다. 그 결과 중앙회는 규율자라기보다 이해관계를 조정하는 중재자 역할에 머무를 가능성이 커진다. 견제와 균형 대신 타협과 조정이 우선되는 구조가 형성된다. 제도상 감독 권한은 존재하지만 실제 집행력은 정치적 고려에 의해 제한된다.

이 같은 구조에서는 조직 내부 비리가 발생해도 단호한 조치를 취하기 어렵다. 감독 권한 행사 자체가 선거 이해관계와 직결되기 때문이다. 규정을 엄격히 적용할수록 정치적 반발이 커지는 역설적 상황이 반복된다. 결국 감독 기능은 형식화되고 실질적 통제력은 약화된다. 이는 권력 분산이 아니라 권력 유착 구조가 고착되는 과정에 가깝다.

강력한 통제
제도적 한계

중앙회장 권한 집중이 만든 권력의 그늘= 농협 중앙회장은 인사권과 예산권, 계열사 운영 전반에 이르기까지 광범위한 영향력을 행사한다. 권한 범위가 넓을수록 중앙회장 선거는 단순한 대표 선출을 넘어 조직 권력구조를 결정하는 정치 행위가 된다. 선거 결과가 인사 배치와 사업 배분, 예산 흐름을 좌우하면서 선거의 중요성은 과도하게 확대된다. 권력 집중은 선거 과열과 이해관계 동맹을 낳는 구조적 요인이다.

강력한 권한은 그에 상응하는 책임성과 투명성을 전제로 해야 한다. 그러나 내부 감시와 견제 장치가 충분히 작동하지 않으면 권한은 통제되지 않는 힘으로 변질된다. 인사권과 예산권이 특정 세력 관리 수단으로 활용될 위험도 커진다. 공적 권한이 조직 운영이 아니라 정치적 영향력 유지 도구로 전용되는 순간이다. 권력의 사유화는 협동조합 체제의 근간을 흔든다.

권한 집중 구조는 조직 내부 자율성과 혁신 동력도 약화시킨다. 다양한 의견이 반영되기보다 상층부 의중이 의사결정을 좌우하게 된다. 견제 장치가 약할수록 정책 결정은 폐쇄적으로 이뤄지고 책임 소재도 불분명해진다. 이는 장기적으로 조직 경쟁력 저하로 이어질 가능성이 크다. 권력 집중은 효율성이 아니라 경직성과 불투명성을 낳는다.

권력구조 바꾸지 않으면 제도 개선은 반복= 중앙회장 권한 집중 문제가 되풀이되는 이유는 권력이 형성되는 출발점이 바뀌지 않았기 때문이다. 선거를 통해 권력이 만들어지는 구조가 그대로 유지되는 한 인사권과 예산권을 둘러싼 이해관계 정치도 사라지기 어렵다. 선출 제도는 단순한 절차 문제가 아니라 권력구조를 설계하는 출발점이다. 권력이 형성되는 방식이 달라지지 않으면 이후의 통제 장치 역시 실효성을 갖기 어렵다.

결국 중요한 것은 선출 방식의 ‘이름’이 아니다. 권력이 얼마나 분산되고, 선거 이해관계가 감독 기능을 얼마나 침해하지 못하도록 설계되느냐가 개혁의 핵심 기준이다. 이 기준 위에서 각 제도의 장단점을 다시 살펴볼 필요가 있다.

조합원 직선제가 갖는 상징성과 현실적 한계= 조합원 직선제는 협동조합 민주주의의 이상에 가장 가까운 제도로 평가된다. 수백만 조합원이 직접 중앙회장을 선출하는 구조는 대표성 측면에서 강한 정당성을 지닌다. 권력 기반이 넓어질수록 특정 집단의 권력 독점 가능성은 낮아진다. 조합원 참여 확대는 협동조합 정체성 회복이라는 상징적 의미도 갖는다.

그러나 현실적 부담도 만만치 않다. 대규모 선거를 치르기 위해서는 막대한 행정 비용과 관리 인력이 필요하다. 선거 운동 과정에서 발생할 수 있는 금품 제공과 조직 동원 문제를 통제하기도 쉽지 않다. 규모가 커질수록 부정 행위 가능성이 구조적으로 사라진다고 보기도 어렵다. 형식적 민주성 확대가 곧 실질적 투명성으로 이어진다고 단정하기 어려운 이유다.

형식적 민주성
실질적 투명성

선거 방식보다 중요한 것은 권력 분산= 호선제는 이사회 구성원들이 회장을 선출하는 방식이다. 선거 과정의 과열 경쟁과 금권선거 가능성을 줄일 수 있다는 점에서 현실적 대안으로 거론된다. 선거 비용과 조직 내부 갈등을 완화하고 경영 안정성을 높일 수 있다는 장점도 있다. 권한이 이사회 중심으로 분산되면서 특정 인물에게 권력이 과도하게 집중되는 현상도 완화할 수 있다.

그러나 호선제는 현장 조합원 의사가 충분히 반영되지 못할 수 있다는 한계를 안고 있다. 소수 인원에 의해 지도부가 결정될 경우 폐쇄적 운영 구조가 고착될 가능성도 있다. 기득권 세력이 권력을 유지하는 통로로 활용할 수 있다는 우려도 존재한다. 효율성 중심 제도가 참여 민주주의 가치를 약화시킬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이 같은 한계를 보완하기 위한 절충안으로 선거인단 제도가 주목받는다. 조합장 1인에게 집중된 선출 권한을 분산해 다양한 대표가 참여하도록 설계하는 방식이다. 조합원 직선제와 호선제의 중간 형태로 대표성과 선거 관리 효율성을 동시에 고려할 수 있다. 선거 규모를 합리적으로 조정하면서도 조합원 의사를 폭넓게 반영할 수 있다는 점에서 현실적 대안으로 평가된다.

따라서 농협 개혁의 현실적 1단계는 조합장 1인에게 집중된 선출 권한을 완화하는 확대형 선거인단 제도 도입에서 출발해야 한다. 제도 개편의 본질은 선거 방식이 아니라 권력 형성 구조의 재설계에 있다.

독립 감사기구와 내부 통제 시스템의 재설계= 독립적 감사기구는 권력 집중을 견제하는 핵심 장치다. 감사 조직이 집행부 영향권에 놓이면 실질적 통제 기능을 기대하기 어렵다. 감사 인사권과 예산이 독립적으로 운영돼야만 권력남용을 감시할 수 있다. 조직 내부에서 발생하는 비리와 이해 충돌을 사전에 차단하는 역할도 수행해야 한다. 감사 독립성 확보는 투명성 강화의 출발점이다.

내부 통제 시스템 역시 전면적 재설계가 필요하다. 예산 집행과 사업 추진 절차를 투명하게 공개하고 외부 감시가 가능하도록 해야 한다. 수의계약과 특혜성 대출을 원천적으로 차단할 절차적 장치도 마련해야 한다. 의사결정 과정의 기록과 공개를 의무화하는 것도 중요한 과제다. 정보 공개 확대는 조직 신뢰 회복의 핵심 수단이다.

금품 제공·공금 유용·특혜 대출 의혹
수의계약·분식회계에 채용 비리까지

권한 집중 구조를 유지한 채 통제 장치만 강화하는 방식은 효과가 제한적이다. 권력 분산과 통제 시스템이 함께 작동해야 실질적 개혁 효과가 나타난다. 구조 개편 없이 부분적 장치만 도입하면 새로운 권력 카르텔이 형성될 위험도 있다. 제도와 구조가 동시에 변화해야 투명성이 확보된다.

농협 개혁이 농업 생존 전략과 직결되는 이유= 농협은 농민 경제활동의 핵심 기반이다. 금융 지원과 농산물 유통, 정책 사업 집행이 농협을 통해 이뤄진다. 조직 신뢰가 흔들리면 농민의 경제 활동 역시 직접적 영향을 받을 수밖에 없다. 농협 운영의 건전성은 곧 농업 생태계의 안정성과 연결된다.

고령화와 농촌 인구 감소, 이상기후로 인한 생산 불안정 속에서 농민들의 제도 의존도는 더욱 높아졌다. 농협은 농민들에게 사실상 마지막 안전망 역할을 하고 있다. 이런 기관이 불신을 받으면 농촌 경제 전반이 급속히 위축될 가능성이 크다. 농협 정상화는 농정 정책 실행력 회복과도 직결된다.

따라서 농협 개혁은 조직 쇄신 차원을 넘어 국가 전략 과제로 접근해야 한다. 협동조합 민주주의 회복은 농민 생존권 보장과 직결된다. 제도 신뢰가 회복돼야 농민들이 안심하고 경제활동을 이어갈 수 있다. 농협의 투명성과 책임성 강화는 농업 경쟁력 회복의 전제 조건이다.

‘사람 교체’ 아닌 ‘권력구조 해체’로 가야= 지도부 몇 명을 교체하는 방식으로는 무너진 신뢰를 회복하기 어렵다. 유사한 권력구조가 유지되는 한 비슷한 문제는 반복될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사람은 바뀌어도 권력이 형성되고 작동하는 방식이 같다면 결과도 달라지지 않는다. 구조개혁이 본질적 해법인 이유다.

선거 권력과 인사·예산 권한의 연결고리를 끊어야 한다. 권력 분산과 투명성 강화, 책임성 확보가 동시에 이뤄져야 한다. 중앙회장 선출 구조 개편은 출발점일 뿐이며 이후 권력 형성 메커니즘 전체를 재설계해야 한다. 제도 설계 단계부터 이해 충돌 가능성을 차단해야 한다.

농협 개혁의 본질은 ‘누가 회장이 되느냐’가 아니다. ‘회장이 어떻게 만들어지고 권력이 어떻게 통제되느냐’의 문제다. 구조를 바꾸지 못하면 개혁은 반복되는 이벤트로 소비될 가능성이 높다. 신뢰 회복은 구조적 투명성 확보에서 출발한다.

정부도 개혁 나섰지만, 구조 못 건드리면 한계는 분명= 정부 역시 농협 구조 문제의 심각성을 인식하고 제도 개선에 착수했다. 농림축산식품부는 ‘농협 개혁 추진단’을 통해 감사 독립성 강화와 금품선거 근절 방안을 제도화하고, 관련 법안을 이달 중 발의하겠다고 밝혔다. 내부 통제 시스템을 정비하고 자금·인사 운영의 투명성을 높이겠다는 방향은 진전된 조치다. 반복돼 온 ‘자정 약속’과 달리 정부가 직접 나섰다는 점에서도 의미가 있다.

그러나 제도 손질이 곧 구조 개편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감사 기능을 강화하더라도 권력 형성의 출발점이 그대로면 통제 장치는 한계에 부딪힐 가능성이 높다. 금품선거 방지 규정을 강화해도 중앙회장 권한 집중 구조가 지속되면 이해관계 정치는 다른 방식으로 반복될 수 있다. 규정은 강화됐지만 권력구조가 그대로라면 개혁은 ‘관리’ 수준에 머무를 위험이 있다.

권력이
사적으로

결국 이번 개혁 논의의 성패는 법률 조항의 숫자가 아니라 권력 형성 구조를 어디까지 재설계하느냐에 달려 있다. 선출 구조 개편과 권한 분산이 병행되지 않는다면 감사 독립성 강화 역시 제한적 효과에 그칠 수밖에 없다. 농협 개혁은 행정적 개선 과제가 아니라 권력구조를 다시 설계하는 정치·제도적 과제에 가깝다.

농협이 지금 바꿔야 할 것은 사람이 아니라, 구조다. 이는 권력이 사적으로 순환하지 못하게 만드는 구조다.

<skkim5961@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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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마불사’ 국힘 생존 방정식

‘대마불사’ 국힘 생존 방정식

[일요시사 정치팀] 박형준 기자 = 법원이 주호영 국회부의장의 대구시장 경선 컷오프 관련 가처분 신청을 기각했다. 그러자 주 부의장은 국민의힘 장동혁 대표를 강하게 비판하면서 항고할 뜻을 내비쳤다. 주 부의장의 강경 대응은 저조한 국민의힘 지지율과 맞물려 혼란상을 더욱 극적으로 비추고 있다. 과연 국민의힘이란 ‘대마’는 ‘불사’의 존재일까? 주호영 국회부의장이 국민의힘 대구시장 경선에서 컷오프된 것에 반발해 지난달 26일 법원에 가처분을 신청했다. 서울남부지법 민사합의51부(수석부장판사 권성수)는 지난 3일 이를 기각했다. 그러자 주 부의장은 곧바로 자신의 페이스북을 통해 법원 결정에 반발했다. 법원 결정 바로 반발 주 부의장은 “저는 그동안 이번 컷오프가 절차·내용 모두 중대한 문제가 있다고 지적해 왔다”며 “법원의 판단과 별개로 이번 공천 과정이 과연 당원·시민의 눈높이에 맞는 공정하고 민주적인 절차였는지는 여전히 엄중하게 따져 물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결국 주 부의장은 지난 6일 항고를 제기했다. 이어 지난 8일엔 국회에서 기자회견을 열어 “항고심 판단을 끝까지 지켜본 후 제 거취에 대한 최종 판단을 내리겠다”고 밝혔다. 이에 대해선 일각에서 제기했던 무소속 출마설을 일단 유보한 것이라는 해석이 나왔다. 이어 주 부의장은 “항고심 판단을 기다린다고 해서 이번 공천 난맥상과 국민의힘 장동혁 대표 체제의 책임을 덮고 가겠단 뜻은 결코 아니”라며 “이런 공천 구조를 만든 세력과 절대로 타협하지 않겠다”고 강조했다. 아울러 “공천은 충성의 대가나 숙청의 도구가 아닌, 오직 국민 앞에 가장 경쟁력 있고 책임 있는 후보를 세우는 과정”이라고 주장하는 등 자신을 컷오프한 것을 ‘숙청’이라고 암시했다. 주 부의장이 대구시장 출마에 강한 의지를 드러낸 것에 대해선 여러 해석이 나오고 있다. 6선인 주 부의장은 대구 수성에서만 국회의원을 지냈다. 대구 수성을에서는 4선을 지냈고, 수성갑에선 재선에 성공했다. 이 중 4선을 했던 지난 2016년 총선 수성을 선거에선 친박(친 박근혜)계 주도로 공천을 받지 못해 무소속 출마를 했음에도 불구하고, 여유 있게 이겼다. 문제는 주 부의장이 당내 최다선인 6선 의원 겸 국회부의장이라는 것으로부터 비롯된다. 명예가 곧 실권을 보장하진 않는다. 아울러 주 부의장이 차기 총선에서도 같은 지역구에 출마해 7선에 도전하면, 이에 대한 비판이 제기될 수도 있다. 같은 6선인 국민의힘 조경태 의원과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 조정식 의원은 각각 부산 사하을·경기 시흥을을 지역구로 두고 있다. 부산은 이미 격전지가 된 데다 조 의원은 민주당계 정당과 국민의힘 소속으로 각각 3선 했고, 경기 시흥을은 수도권이다. 국민의힘의 안정된 텃밭으로 분류되는 대구 수성을에서 7선에 도전하는 것과는 상황이 다르다. 설령 7선에 성공한다고 하더라도, 오는 6월 지방선거에서도 참패 가능성이 제기되는 국민의힘이 2년 후 총선에서 다수당이 된다는 보장도, 국회의장이 되리라는 보장도 하기 어렵다. 오는 2028년 총선까지 연일 떠들썩하게 이어지는 계파 갈등을 어느 정도 안정시킨 후 대안 야당으로 발돋움하면서 이재명정부가 실정으로 지지율이 폭락하는 상황이 겹쳐야 승리를 노려볼 수 있다. 주 부의장이 국회의장에 도전하는 것도 현실적으로는 가능성이 희박하다. 불확실한 국회의장…‘텃밭 7선’ 대신 대구? 연이은 공천 가처분 세례 속 서울 지지율 13% 따라서 주 부의장이 대구시장 출마에 집념을 불태우는 것은 필연이다. 대선 패배 후 대구시장에 출마해 당선됐던 홍준표 전 대구시장의 전례도 있다. 주 부의장으로선 “나라고 출마 하지 말라는 법이 어디에 있느냐”고 판단해도 무리가 아니란 분석이 있다. 대구시장으로서 임기를 마친 후 대권에 도전하거나 당내에서 영향력을 행사하는 그림을 그리는 것도 무리는 아니다. 이 가능성은 일명 ‘주한 연대설’로 통하는 국민의힘 한동훈 전 대표와의 연대설 때문에 불거졌다. 이는 국민의힘 이정현 전 공천관리위원장이 주 부의장을 컷오프한 직후 불거졌다. “주 부의장이 무소속으로 대구시장에 출마해 대구 수성갑에서 재보궐선거가 진행되면, 한 전 대표가 여기에 출마하는 형식으로 연대한다”는 설이다. 한 전 대표 측으로선 손해 볼 게 없다. 한 전 대표는 지난달 25일 채널A <정치시그널>에 출연해 “주 부의장은 보수 재건이 필요하다고 공감하면서 나서겠다고 했다”며 “우린 이미 연대하고 있는 게 아니냐”고 주장했다. 반면 주 부의장은 신중한 반응을 내비쳤다. 그는 지난달 26일 기자들을 만나던 중 주한 연대설 관련 질문을 받자 “제 코가 석 자인데 딴 생각할 여지가 있겠느냐”고 답변했다. 다만 무소속 대구시장 출마 가능성에 대해선 “모든 경우의 수에 대해 준비하고 있다”고 답변했다. 따라서 주한 연대설 성립 가능성 자체를 배제한 것은 아니라는 해석이 나왔다. 주 부의장의 항고 제기는 국민의힘의 치명적 문제 하나를 외부로 노출했다. 국민의힘에선 당내 처분에 대해 연이어 법원으로 달려가는 흐름이 이어지고 있다. 가깝게는 주 부의장과 김영환 충북도지사가 컷오프에 대한 가처분을 신청했다. 김 지사는 주 부의장과 달리 가처분이 인용돼 경선에 참여할 수 있게 됐다. 멀게는 국민의힘 김종혁 전 최고위원·배현진 의원에 대해 각각 결정했던 제명·당원권 정지 1년 징계의 효력도 법원에서 정지됐다. 4건의 가처분 모두 서울남부지법 민사합의51부에서 판단했다. 재판부는 주 부의장 건에 대해서만 국민의힘의 손을 들어줬다. 장 대표는 김 지사가 신청한 가처분이 인용된 다음 날인 지난 1일 기자들과 만나 “법원이 정치에 너무 깊숙이 개입하고 있다”며 “재판장이 국민의힘에 와서 공천관리위원장과 윤리위원장을 하면 될 것 같다”고 비판했다. 국민의힘의 현 상황에 대해선 “정치의 사법화가 심각할 정도로 진행된 것 같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공천 관련 갈등이 이어지는 가운데, 국민의힘의 지방선거 승리 가능성을 어둡게 하는 신호들은 계속 이어지고 있다. 한국갤럽은 지난달 31일부터 지난 2일까지 전국 만 18세 이상 1001명을 상대로 이동통신 3사가 제공한 무선전화 가상번호를 무작위로 추출해 전화 조사원이 직접 인터뷰하는 방식으로 진행한 여론조사 결과를 공개했다. 이에 따르면, 민주당 지지율은 48%로, 국민의힘 지지율은 18%로 집계됐다. 제 코가 석 잔데… 서울에선 민주당 지지율이 51%로, 국민의힘 지지율은 13%로 집계됐다. 부산·울산·경남에서도 민주당 지지율은 42%로, 국민의힘의 지지율은 27%로 집계됐다(자세한 내용은 중앙선거여론조사심의위원회 홈페이지에서 확인 바람). 영원한 격전지 서울에서도 양당의 지지율 격차가 크게 벌어지는 여론조사 결과 수치가 공개되자, 국민의힘의 현 상황에 대한 지적이 날로 거세게 일어나고 있다. <조선일보>는 지난 4일 자 사설을 통해 “국민의힘은 지금 수도권에서 후보를 찾기가 쉽지 않다고 한다”며 “현행법상 15% 이상 득표해야 선거 비용을 전액 보전받을 수 있는데 그에 미치지 못할까 걱정한다는 것”이라며 현실을 짚었다. 이어 “말로만 ‘윤석열 전 대통령과의 절연’을 선언했을 뿐 실제로는 반대로 하고 있다”며 “공천 혼란에 대해서도 가처분을 인용한 법원 탓만 할 뿐, 어떻게 수습하고 책임질지 방향을 제시하지 않고 있다”는 등 장 대표를 강하게 비판했다. <조선일보>의 주장대로라면, 수습·책임을 맡을 당 대표는 보이지 않는 셈이다. 해당 매체는 “어렵게 나선 후보들은 국민의힘 상징색인 빨간색을 포기하고 흰색 점퍼를 입고 다닌다”며 “인구가 1300만명에 달하고 국회의원 의석수도 가장 많은 경기도에선 지사 출마자를 구하지 못해 공천을 차일피일 미루고 있다”는 현실도 짚었다. <조선일보>가 짚은 국민의힘의 현실은 신체를 통제할 두뇌 없이 거대한 군집을 이룬 채 각자의 역할을 맡은 군집 생물에 비유할 수 있다. 대표적으로 관해파리를 들 수 있다. 관해파리는 겉으로 볼 땐 덩치 큰 해파리처럼 보이지만, 실제로는 각각의 역할을 맡은 독립 개체들이 모인 군집이다. 이 개체들은 먹이 섭취·이동·번식 등 각각의 역할만을 담당한다. 각각의 개체들은 생존을 위해 서로 연결돼있지만, 이들을 하나로 통합하는 뇌는 없다. 개체 중 누군가가 제 역할을 못하면 모두 죽는다. 단세포생물인 점균류도 먹이를 찾을 때, 각자의 세포가 알아서 효율적인 길을 찾는다. 이를 통제할 뇌는 없지만, 화학적 신호를 주고받으면서 최적의 경로를 결정한다. 그런데 잘못된 경로를 찾으면 방향을 틀 능력이 없는 것으로 알려졌다. 남는 것은 군집 전체가 굶어 죽는 일이다. 페로몬을 통해 신호를 주고받는 군대개미 집단도 선봉에 선 개미가 길을 잃으면 모든 개미가 원을 그리다가 지쳐 죽는다. 제 역할 못하면… 이탈리아의 정치학자 조반니 사르토리는 원심적 경쟁 이론을 주장했다. 보통의 민주주의 국가에선 정당이 중도층의 표심을 얻기 위해 노력한다. 하지만 강경한 여당과 무책임한 야당이 양립할 땐 정당이 중도층을 설득하기보다 진영 결집에 따른 조직표 구성에 몰두한다. 이런 구도에선 중도층이 정치에서 배제되고, 정치적 대화도 단절된다. 이런 상황에선 후보자들은 당의 승리와 중도 확장을 포기하고, 강성 핵심 지지층의 지지를 얻으려고 노력한다. 중도층이 정치에 냉담해지면서 설득 가능 대상으로 강성 핵심 지지층만 남기 때문이다. 가성비 높은 선택이 될 수밖에 없다. 아울러 후보자들이 지도부를 거부하면서 강성 핵심 지지층에게만 구애하는 각자도생에 몰두한다. 이는 결국 자신들만의 세계에 빠지는 악순환으로 이어진다. 국민의힘의 지방선거 준비 과정에서 서울시장·경기도지사 경선에선 구인난에 빠졌지만, 대구시장·경북도지사 경선은 열기가 과도한 것도 이와 비슷하다. 특히 대구시장 경선엔 국회부의장·경제부총리·원내대표 등 당정의 핵심을 지낸 인사들이 모두 출마했기 때문에 더욱 눈에 띄고 있다. 미국의 정치학자 리처드 카츠와 아일랜드의 정치학자 피터 메어는 정당을 카르텔·프랜차이즈 기업에 비유하는 독특한 이론을 발표했다. 카츠와 메어는 “현대 정당이 시민의 자발적 후원보다 국가의 정당 보조금·공천권 등 국가의 자원에 의존해 서로 담합한다”고 주장했다. 그러면서 중앙당과 지역구 후보의 관계를 본사와 가맹점주 관계로 규정했다. 따라서 중앙당이 자원을 적절히 배분하지 못하거나, 시장에서 자원의 가치가 폭락하면 가맹점주의 불만이 폭발한다고 주장했다. 이들의 주장을 매개로, 캐나다의 정치학자 켄 카티는 “정당이 실제로 프랜차이즈 시스템으로 바뀌고 있다”고 주장했다. 카티에 따르면, 정당은 브랜드로서만 기능하고, 선거에선 후보가 중앙의 브랜드를 빌려온다. 공천은 결국 이들 간 계약 관계 역할을 한다. 이는 실제 정치적 현상으로 드러나고 있다. 오세훈 서울시장은 지난 2일 서울 쌍문역 일대 쌍리단길을 방문했다. 오 시장의 현장 방문에 동행한 국민의힘 소속 서울시의원들과 도봉구의원들은 국민의힘의 상징색 빨간색이 아닌 흰색 점퍼를 입었다. 오 시장도 서울시 로고가 새겨진 흰색 점퍼를 입고 현장을 돌아다녔다. 지난달 31일 진행된 국민의힘 서울시장 본경선 후보들 대상 첫 토론회에서도 후보들은 장 대표를 비판했다. 이들은 “흰색 점퍼에 눈이 간다면 동그라미 푯말을, 빨간색 점퍼에 눈이 간다면 엑스 푯말을 들어달라”는 진행자의 요구에 일제히 엑스 푯말을 들었다. 오세훈 ‘흰색 점퍼’ 현장행 “빨간색 입고 싶다” 대우그룹·프랑스 사회당 등 한순간에 망한 대마들 하지만 말은 날카로웠다. 오 시장은 “빨간색 점퍼를 입고 싶은 마음을 엑스 푯말을 들어 표현해 봤다”고 말했다. 미래통합당 윤희숙 전 의원은 “흰색 옷을 입어야 하는 사람은 장 대표”라며 “이번 공천이 마무리되면 백의종군을 결심해 달라”고 요구했다. 국민의힘 박수민 의원은 “빨간 당 출신이 빨간색을 안 입는 자기모순은 이해할 수 없다”면서도 “장 대표가 확장하지 못했다면 후보들이 확장하면 된다”고 주장했다. 이들은 지난달엔 장 대표의 지원 유세에 대해서도 부정적인 의견을 밝혔다. 본사에 대한 가맹점주들의 집단행동이라고 표현할 수도 있다. 서울시당위원장을 맡은 배 의원도 지난 3일 자신의 페이스북을 통해 “국민의힘의 서울 지지율 13%의 주역 장동혁 지도부가 기초단체장 후보를 못 구한 지역의 후보를 구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지방선거 패배 가능성이 내·외부에서 연이어 제기되고 있지만, 국민의힘 지도부에 대해선 “변화할 의지도, 대책도 없는 것 같다”는 평이 나온다. 이 같은 상황은 카츠와 메어가 이미 이론적으로 짚었다. 이들은 “카르텔 정당은 국가 자원을 독점하기 때문에 ‘우리는 망하지 않는다’는 착각에 빠지기 쉽다”고 지적했다. 바둑으로 치면, 국민의힘은 여러 개의 돌로 넓게 자리 잡은 곤마인 ‘대마’와 비슷하다. 시사 분야에서 관용적으로 잘 쓰는 표현 중 하나는 ‘대마불사’다. “대기업이나 대형 금융기관은 국가의 지원을 받아 망하지 않는다”는 관용 표현이다. 그런데 우리나라의 1990년대 후반 IMF 금융위기는 대마불사로부터 비롯됐다. 가장 충격적이었던 상황은 당시 재계 2위였던 대우그룹의 해체였다. 김우중 당시 회장은 ‘세계 경영’이라면서 해외 업체를 공격적으로 인수했다. 그러다 IMF 금융위기를 맞아 구조조정을 거쳤지만, 삼성자동차를 받고 대우전자를 주는 빅딜 과정에서 엄청난 빚을 져 결국 워크아웃을 선언했다. 김 전 회장도 해외로 도피했다. 대우그룹은 그렇게 해체됐다. 국제 정치에서도 예외가 아니다. 1990년대 초반 캐나다의 집권당 진보보수당은 경제 실정과 내부 갈등 끝에 구심력을 잃고 연이은 당원 탈당 사태를 겪었다. 그 결과 150석을 넘게 보유했던 거대 여당이 선거 한번에 2석만 건지는 참패를 당해 역사 속으로 사라졌다. 프랑스에서도 프랑수아 올랑드 전 대통령의 낮은 지지율을 극복하지 못했던 사회당은 지난 2017년 대선을 앞두고 강경한 좌파 성향 브누아 아몽 대선후보를 선출했다. 그러자 사회당 소속 정치인 다수는 에마뉘엘 마크롱 대통령이 창당했던 신생 정당 앙 마르슈로 옮겼고, 당은 선거에서도 참패했다. 반대로 민주당은? 민주당은 대구시장 선거 승리를 위해 대구에서 일정한 기반을 갖추고 있고 선거 승리 경험도 있는 김부겸 전 총리를 대구시장 후보로 선출했다. 이어 지난 8일엔 민주당 정청래 대표가 김 후보와 함께 대구 농수산물도매시장을 방문하는 등 승리 의지를 드러냈다. 구인난을 겪고 있는 국민의힘과 달리, 민주당에선 추미애 의원이 치열한 경선 끝에 경기도지사 후보로 선출돼 주목받고 있다. 대마불사는 과연 영원한 걸까. 대마불사만 믿고 배짱 영업을 해도 되는 걸까. 대우그룹 해체는 국민의힘에 어떤 의미를 줄까. <ctzxp@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