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는 순환이다. 오늘의 여당은 내일의 야당이 되고, 오늘의 야당은 다시 권력을 쥔다. 그런데 한국 정치의 아이러니는 이 단순한 사실을 늘 잊는 데서 시작된다. 권력은 바뀌는데 태도는 바뀌지 않는다. 아니, 더 정확히 말하면 태도는 바뀌지만 원칙은 없다. 그래서 같은 법을 두고도 입장이 뒤집히고, 그 과정에서 정책의 일관성은 사라진다.
정치는 돌고 도는데 정치는 늘 ‘지금만’ 생각한다.
우리 정치에는 ‘여당이 법을 추진하면 야당은 반대하고, 정권이 바뀌면 입장이 뒤집히는’ 오랜 패턴이 있다. 여당일 때는 “국정 운영을 위한 필수 법”이라던 주장이 야당이 되면 “권력 남용”이 되고, 반대로 야당일 때 “독주 입법”이라고 비판하던 법이 집권 후에는 “개혁 과제”로 부활한다.
이 반복은 단순한 정치 공방이 아니라 제도 설계의 신뢰를 무너뜨리는 구조다. 국민은 법을 기억하는 것이 아니라 정치의 모순을 기억한다.
대표적인 사례가 기업 지배구조와 관련된 상법 개정 논쟁이다. 과거 더불어민주당은 야당 시절 기업 규제 강화를 강하게 주장하며 상법 개정을 밀어붙였다. 그러나 집권 이후에는 시장 충격과 투자 위축을 고려해 속도 조절을 했다.
반대로 국민의힘은 집권 시절 기업 자율성과 시장 원리를 강조했지만, 야당이 된 이후에는 특정 사안에서 규제 논리를 다시 꺼내 드는 모습을 보였다. 입장은 바뀌었지만 기준은 없었다.
금융 정책에서도 이 같은 모순은 반복된다. 금산분리, 자사주 매각, 금융지주 규제 같은 이슈에서 민주당은 야당 시절 강력한 규제를 주장했지만, 집권 이후에는 시장 영향과 투자 심리를 고려하는 현실적 접근을 병행하고 있다.
반면 국민의힘은 집권 시절 규제 완화를 강조했지만, 야당이 된 이후에는 정부 견제를 위해 규제 논리를 일부 수용하고 있다. 결국 정책이 아니라 위치가 입장을 결정하는 구조다.
사법제도 개편에서는 이 반복이 더 분명하게 드러난다. 민주당은 야당 시절부터 검찰개혁을 주장했고, 집권 이후 공소청법과 중대범죄수사청법을 통해 수사·기소 분리 구조를 제도화했다. 이 법안들은 이미 국회를 통과했다. 국민의힘은 이에 대해 권력 편향성과 졸속 입법을 비판하고 있지만, 정권이 바뀌면 이 제도를 그대로 활용할 가능성 역시 부정할 수 없다.
정치의 아이러니는 바로 여기서 발생한다.
이 지점에서 중요한 발언이 나왔다. 국민의힘 송언석 원내대표는 22일 KBS <일요진단> 프로에서 “조작 기소 국정조사를 반대해도 설계해야 하기 때문에 참여하게 됐다”고 말했다. 이 내용은 단순한 발언이 아니라 한국 정치의 수준을 가르는 기준이다. 반대는 누구나 할 수 있다. 그러나 설계는 미래를 보는 정치만이 할 수 있다.
이 말은 선언이 아니라 이미 행동으로 확인된 선택이다. 윤석열정부 시기 검찰의 조작 기소 의혹을 규명하기 위한 국정조사 특별위원회가 20일 첫 전체회의를 열며 본격 가동에 들어갔을 때 국민의힘은 전날까지 특위 참여 여부를 두고 내부 이견을 보였지만 결국 참여하기로 결정했다.
그리고 송 대표는 국회에서 필리버스터가 진행되고 있는 이날 아침, 그 이유를 묻는 질문에 대해 설계에 참여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의미로 답했다.
이 장면은 한국 정치가 어디로 가야 하는지를 압축적으로 보여준다. 반대만 하면 결과는 남이 만든 틀을 따라가는 것에 불과하다. 그러나 참여는 다르다. 구조를 바꾸고, 권한을 나누고, 견제 장치를 심는 과정에 직접 개입하는 것이다. 정치는 결과에 대한 비판이 아니라 결과를 만드는 설계 과정에서 완성된다.
그래서 이 발언은 단순한 정치적 수사가 아니다. 야당이 ‘비판 세력’에 머물 것인지, 아니면 ‘설계 세력’으로 진화할 것인지 가르는 분기점이다. 지금 한국 정치에 부족한 것은 반대의 목소리가 아니라 설계의 능력이다. 그리고 그 기준은 이미 제시됐다. 반대가 아니라 설계다.
공소청법과 중수청법은 지난 20일과 21일 통과됐다. 조작 기소 국정조사도 22일 의결됐다. 그렇다면 지금 필요한 것은 ‘막을 것인가’가 아니라 ‘어떻게 만들 것인가’다. 야당이 계속 반대만 한다면 이 제도의 설계 권한은 온전히 여당에 귀속된다.
그러나 설계에 참여한다면 이야기는 달라진다. 인사 구조, 권한 배분, 견제 장치, 투명성 기준을 통해 이 제도를 ‘권력의 도구’가 아니라 ‘권력의 견제 장치’로 바꿀 수 있다.
정치는 결과보다 구조가 중요하다. 한번 만들어진 제도는 정권을 넘어 작동한다. 여당에 유리해 보이는 법도 정권이 교체되면 지금 야당에게 유리하게 작동할 수 있다. 이 단순한 사실을 이해하지 못하면 정치는 반복되는 자기부정에 빠진다. 지금 반대했던 법을 나중에 다시 들고 나오는 정치, 그것이 바로 한국 정치의 고질적 모순이다.
선거제도나 국민투표법처럼 룰을 바꾸는 법도 마찬가지다. 이런 제도는 특정 정권이 아니라 정치 전체의 구조를 바꾼다. 그런데도 여야는 늘 단기적인 유불리로 접근한다. 그러나 선거제도는 한번 바뀌면 최소 10년 이상 영향을 미친다.
지금 불리하다고 반대한 제도가 다음 선거에서는 자당에 유리하게 작용할 수도 있다. 정치에서 가장 위험한 판단은 ‘이번 선거’만 보는 것이다.
결국 문제는 정치의 시간 개념이다. 한국 정치는 지나치게 짧은 시간 안에서 움직인다. 총선과 대선이라는 이벤트에만 집중하다 보니 4년과 5년을 하나의 전략으로 보지 못한다. 그러나 정치는 연결된 흐름이다. 오늘 만든 법은 다음 정권이 사용하고, 그 다음 정권까지 영향을 준다. 이 구조를 이해하지 못하면 ‘정치적 자해’가 반복된다.
야당이 모든 법안을 반대하는 모습은 국민에게 두 가지로 읽힌다. 하나는 “우리는 집권할 생각이 없다”는 신호이고, 다른 하나는 “집권하면 다시 바꾸겠다”는 선언이다. 두 경우 모두 정치에 대한 신뢰를 무너뜨린다. 국민은 정책의 내용보다 정치의 일관성을 본다. 번복은 곧 불신으로 이어진다.
그래서 송 원내대표의 발언은 단순한 조언이 아니라 전략이다. “반대해도 설계에 참여한다.”는 이 말은 야당을 향한 메시지이면서 동시에 한국 정치 전체에 던지는 질문이다. 우리는 언제까지 반대의 정치에 머물 것인가, 아니면 설계의 정치로 넘어갈 것인가.
특히 공소청과 중수청 같은 권력기관은 더 그렇다. 이 기관이 특정 정권의 도구가 될지, 아니면 권력을 견제하는 시스템이 될지는 지금의 설계에 달려 있다. 야당이 이를 외면하면 그 결과는 미래의 자신에게 돌아온다. 반대로 설계에 참여하면 권력 구조 자체를 바꿀 수 있다. 정치의 수준은 반대의 강도가 아니라 설계의 깊이에서 결정된다.
정치는 돌고 돈다. 이 단순한 사실을 이해하는 순간 전략은 달라진다. 지금의 여당도 언젠가는 야당이 되고, 지금의 야당도 다시 권력을 잡을 수 있다. 그렇다면 지금의 선택은 곧 미래의 자당에 돌아올 수 있다는 점을 염두에 두고, 법을 만들 때도, 반대할 때도 정확한 기준을 가져야 한다.
향후 4년, 그리고 5년을 동시에 보는 정치가 필요하다. 총선과 대선을 하나의 흐름으로 보고 그 사이에 만들어지는 제도를 전략적으로 설계해야 한다. 그것이 정당의 생존 전략이자 국가의 안정성을 높이는 길이다. 지금의 정치가 이 기준을 놓친다면, 우리는 같은 논쟁을 반복하고 같은 법을 두 번 만드는 비효율에서 벗어나지 못할 것이다.
정치는 결국 시간과의 싸움이다. 길게 보면 이기고, 짧게 보면 진다. 지금만 보는 정치가 아니라 다음을 준비하는 정치가 필요하다. 그리고 그 출발점은 이미 나왔다. 반대가 아니라 설계다. 이제 그 말을 실천할 차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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