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불어민주당 주도로 21일 중대범죄수사청법이 통과됐다. 하루 전인 20일에는 공소청법이 국회를 통과했다. 이제 검찰청은 정부조직법 개정을 통해 오는 10월2일이면 역사 속으로 사라지고, 기소와 중대범죄 수사를 각각 맡는 새로운 형사사법 체계가 출범하게 된다. 제도적으로는 ‘수사·기소 분리’라는 오랜 개혁 과제가 완성된 것이다.
그러나 제도 설계의 방향과 별개로 또 하나의 질문이 남는다. 국민의힘 주장대로 공소청장과 중수청장을 선출하는 방식이 정부와 여당에 유리하게 짜여 있다면, 이 새로운 권력 역시 특정 네트워크에 의해 좌우되는 것 아니냐는 우려다. 이 경우 검찰 권력의 분산이 곧 권력의 투명성을 의미하지 않고, 오히려 새로운 체계 속에서 ‘연결 권력’이 더 정교하게 작동할 수 있다.
‘엔추파도스(enchufados)’라는 말이 있다. 스페인어로 ‘플러그를 꽂다’라는 뜻에서 나온 표현이다. 권력에 연결된 사람들이 특혜를 얻는 구조를 가리킨다. 능력이나 경쟁이 아니라 연줄과 충성, 권력자와의 친분 관계가 지위와 기회를 결정하는 방식이다. 공정한 제도가 약해질 때 등장하는 연결 권력의 전형적인 모습이다.
베네수엘라는 이 연결 권력이 국가를 어떻게 무너뜨리는지를 극단적으로 보여준 사례다. 한때 남미 최고 수준의 경제력을 자랑하던 산유국이었지만 권력이 경제를 장악하면서 상황은 급변했다. 권력 핵심과 연결된 집단이 국영기업 요직과 정부 계약을 독점했고 자원 배분은 시장이 아니라 내부 네트워크를 통해 이뤄졌다. 국가는 ‘기회의 사회’가 아니라 ‘연줄의 사회’로 변질됐다.
우고 차베스와 니콜라스 마두로정권을 거치며 이 구조는 더욱 공고해졌다. 정권에 충성하는 인사들이 국영 석유기업과 외환 배분 권한을 장악했고 달러 배정과 수입 허가권은 막대한 특권이 됐다. 환율 차익은 권력 주변 인물들의 부를 키웠고, 연결되지 못한 기업은 생존 자체가 어려워졌다. 경제는 생산 경쟁이 아니라 ‘연결 경쟁’으로 바뀌었다.
엔추파도스의 본질은 ‘권력의 사유화’다. 권력이 인사를 장악하고 인사가 자원을 독점하며 그 자원 독점이 다시 권력을 강화하는 순환이 만들어진다. 이 고리는 법과 제도를 무력화한다. 공정 경쟁은 사라지고 충성 경쟁만 남는다. 정치는 공적 책임의 영역이 아니라 사적 이익의 통로로 변질된다.
겉으로는 제도가 작동하는 것처럼 보일 수 있다. 선거도 있고 의회도 있으며 언론도 존재한다. 그러나 실제 권력 이동과 공정 배분은 보이지 않는 내부 네트워크에서 결정된다. 능력이 아니라 연결이 기준이 되는 순간 사회의 역동성은 급격히 떨어진다. 새로운 인재의 진입 통로는 막히고 기존 권력층만 재생산된다. 국가는 서서히 활력을 잃는다.
우리나라 역시 이 문제에서 완전히 자유롭다고 말하기 어렵다. 특히 1980~2000년대 고도 성장 시기에는 학연·지연·혈연 중심의 인사 문화가 사회 곳곳에 뿌리내려 있었다. 공공기관과 금융권, 대기업 채용에서 ‘누구를 아느냐’가 중요한 기준으로 작동하던 시기가 분명 존재했다. 정치권에서도 계파와 측근 중심의 인사가 반복되며 공정성 논란이 이어졌다.
지금의 한국은 분명 과거와 달라졌다. 채용 과정의 투명성이 강화됐고 정보 공개도 확대됐다. 시민 감시와 언론 검증도 훨씬 강해졌다. 과거처럼 노골적인 특혜 구조가 작동하기 어려운 환경이 됐다. 그러나 연결 권력이 완전히 사라졌다고 보기는 어렵다.
폐쇄적 인사 관행, 보이지 않는 추천 문화, 회전문 인사 논란은 여전히 반복된다. 법적으로 문제가 없더라도 국민 정서가 납득하지 못하는 인사와 결정이 등장한다. 공정에 대한 기대가 높아진 만큼 작은 불신도 크게 증폭된다.
이 문제는 단순한 윤리 문제가 아니라 국가 경쟁력의 문제다. 능력 있는 인재가 기회를 얻지 못하면 조직 경쟁력은 약해진다. 공정한 경쟁이 보장되지 않으면 구성원의 동기부여도 떨어진다. 사회 전체의 생산성과 혁신 동력도 약해진다. 결국 피해는 국민 모두에게 돌아간다.
최근 정부와 여당은 다양한 개혁 법안을 추진해 왔다. 그러나 개혁의 본질은 법의 숫자가 아니라 권력 작동 방식의 투명성에 있다. 제도가 아무리 정교해도 권력 주변의 연결 네트워크가 그대로 남아 있다면 개혁은 쉽게 왜곡된다.
이제는 분명히 말해야 한다. 검찰을 해체하고 공소청과 중수청을 만드는 것 자체가 개혁의 완성은 아니다. 그 권력을 누가, 어떤 방식으로, 어떤 네트워크를 통해 장악하느냐가 더 중요하다. 만약 인사 설계가 특정 권력에 유리하게 짜여 있다면, 이번 개편은 ‘권력 분산’이 아니라 ‘권력 재배치’에 불과할 수 있다.
공소청법과 중수청법의 인사 설계를 보면 겉으로는 추천위원회를 통한 분산형처럼 보이지만 실제 결정 권한은 장관과 대통령으로 수렴된다. 추천 단계부터 정치적 영향력이 개입될 여지가 있고, 의결 방식 역시 야당 동의 없이 후보를 정할 수 있는 구조다. 여기에 법무부 장관의 제청권과 대통령의 최종 임명권이 결합되면 인사의 출발과 종착이 모두 행정부 안에 놓이게 된다.
결국 제도는 독립 기관의 외형을 갖추고 있지만 실제로는 권력 의중이 반영될 수 있는 메커니즘이며, 인사 설계가 바뀌지 않는 한 또 다른 연결 권력이 형성될 가능성을 피하기 어렵다.
그래서 개혁의 다음 단계는 명확하다. 이해충돌 방지를 넘어 권력 네트워크 자체를 통제하는 ‘엔추파도스 방지’다. 개인의 사익이 아니라 권력 주변 인맥 구조를 제도적으로 차단해야 한다. 그래야 제도 개편이 권력 내부에서 왜곡되지 않고 실제로 작동할 수 있다.
필자가 제안하는 방향은 단순하다. 인사 추천 과정의 100% 전면 공개, AI 기반 인사 네트워크 분석, 낙하산 인사 제한, 사법·수사기관 인사의 실질적 독립성 확보, 권력 영향력 경로의 투명화다. 이 다섯 가지 원칙만 지켜져도 연결 권력의 상당 부분은 제도적으로 차단할 수 있다.
특히 새롭게 출범하는 공소청과 중수청은 출발부터 이 원칙이 적용돼야 한다. 그렇지 않다면 이들 기관은 ‘검찰을 대체하는 독립 기관’이 아니라 ‘새로운 연결 권력의 거점’으로 변질될 수 있다. 출범 초기 설계가 곧 권력의 성격을 결정한다는 점에서 지금이 가장 중요한 순간이다.
베네수엘라의 교훈은 단순하다. 권력이 사적으로 연결되는 순간 국가는 외부가 아니라 내부에서 무너진다. 그 붕괴는 어느 날 갑자기가 아니라 조용히, 그러나 되돌릴 수 없게 진행된다.
검찰은 사라질 수 있다. 그러나 연결 권력은 쉽게 사라지지 않는다. 이번 개혁의 성패는 법안 통과가 아니라 권력의 연결을 끊는 설계에 달려 있다. 그 기준을 넘지 못한다면 검찰은 사라져도 연결 권력은 그대로 남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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