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삼기의 시사펀치> 가르시아 보면 트럼프가 보인다

인도양 ‘불침 항모’와 미국 해외기지 제국의 본질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시선이 북극에서 인도양으로 이동했다. 한때 그린란드를 “사야 한다”고 주장하던 그는 이제 인도양 한복판의 디에고 가르시아를 정조준하고 있다. 영국이 차고스 제도의 주권을 모리셔스에 이양한다는 합의에 대해 그는 “정말 바보 같은 짓”이라고 공개적으로 비난했다.

이 발언은 단순한 외교적 견해 차이가 아니다. 미국이 세계를 관리하는 방식과 힘의 철학을 드러낸 장면이다. 표면적 이유는 이란이다. 핵 협상이 결렬될 가능성, 중동 긴장의 재점화, 장기전에 대비한 전략 계산이 깔려 있다.

정치적
통제력

그러나 이 문제의 본질은 폭격 거점 확보 여부가 아니다. 미국은 왜 냉전이 끝난 지 수십년이 지났음에도 여전히 70여개국에 800개 가까운 해외기지를 유지하는가. 디에고 가르시아는 그 질문의 응축판이다. 이 섬을 이해하면 미국의 질서 설계 방식을 읽을 수 있다.

북극서 인도양으로 이동한 안보의 중심= 트럼프는 영국의 주권 이양 합의를 “GREAT STUPIDITY”라고 표현했다. 이미 99년 임대와 연장 옵션으로 기지 사용이 장기 보장된 상황인데도 그는 ‘통제권 상실’이라는 프레임을 강조했다. 이는 법적 안전장치보다 정치적 통제력을 더 신뢰하는 사고방식이다.

계약이 아니라 힘이 안보를 보장한다는 인식이 배경에 깔려 있다. 그의 언어는 협정 문장을 넘어선 권력의 언어다.

그는 이 문제를 그린란드와 연결했다. 북극은 상징적 공간이었다면, 디에고 가르시아는 실전 거점이다. 영토 소유라는 상징 정치에서 실제 작전 반경을 확보하는 전략 정치로 무대가 이동했다. 북극의 상징에서 인도양의 작전 기지로, 안보의 중심축이 이동한 것이다. 이는 세계 전략 구상의 우선순위가 바뀌었음을 의미한다.

이 변화의 배경에는 이란이 있다. 트럼프는 협상 결렬 시 디에고 가르시아가 필요할 수 있다고 직접 언급했다. 이는 외교적 경고가 아니라 군사 옵션을 공개적으로 거론한 것이다. 협상장에서 가장 강력한 메시지는 말이 아니라 준비된 기지다. 그 준비가 바로 디에고 가르시아다.

위치가 곧 전략이 되는 섬= 디에고 가르시아는 인도양 중앙 차고스 제도의 최대 환초(고리 모양으로 배열된 산호초로, 안쪽은 얕은 바다를 이루고 바깥쪽은 큰 바다와 닿아 있고, 태평양과 인도양에 분포)다. 지리적으로 보면 고립된 섬이지만 전략적으로는 교차로다.

그래서 ‘불침 항모’라는 표현이 붙는다. 이동하는 항공모함과 달리, 이 섬은 가라앉지 않는 고정형 항모다. 특히 중동·동아프리카·남아시아를 동시에 사정권에 두는 절묘한 위치에 있다.

이곳에는 장거리 활주로와 항만, 정비·보급 시설이 결합돼있다. 장거리 폭격기, 공중 급유기, 정보수집 자산이 반복 운용될 수 있는 구조다. 단발 타격이 아니라 지속 가능한 작전을 가능하게 한다. 전쟁은 순간의 승부가 아니라 체력의 싸움이라는 점에서 이 섬의 가치는 커진다.

지도를 점으로 보면 작은 환초지만, 반경으로 보면 거대한 영향권이다. 위기가 발생하는 모든 지점을 하나의 허브로 묶는 공간이다. 이란이든 홍해든 동아프리카든 동일한 후방에서 관리할 수 있다. 그래서 디에고 가르시아는 특정 국가를 겨냥한 기지가 아니라 위기 통합 플랫폼이다.

99년 임대계약이 남긴 역설= 영국과 모리셔스는 주권을 모리셔스에 이양하되 99년 임대 조건으로 기지를 유지하기로 합의했다. 연장 옵션까지 포함하면 사실상 139년 사용이 가능하다. 표면적으로는 탈식민화와 안보를 동시에 달성하는 절충안이다. 법적 구조만 보면 안정성이 확보된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국제사법재판소는 영국의 차고스 통치를 불법으로 판단했고, 유엔 총회도 이를 지지했다. 영국은 국제법적 압박을 완화하기 위해 합의라는 출구를 택했다. 이는 양보가 아니라 국제정치적 방어 전략이었다. 합의를 통해 기지의 장기 존속을 정당화하려는 계산이 깔려 있었다.

그린란드서 디에고로 옮겨간 이유?
이란 장기전 대비한 전략 계산 깔려

국제법의 흐름을 거스르기보다 제도 안으로 흡수해 버티겠다는 현실적 선택이었다.

트럼프는 이 법적 안정성을 정치적 불안정성으로 재해석했다. 정권교체와 국제 여론의 변화가 임대 구조를 흔들 수 있다는 주장이다. 계약은 종이에 쓰이지만, 정치는 감정과 힘에 좌우된다는 논리다. 그래서 그는 임대보다 통제를 강조한다. 문서상의 보장보다 권력의 직접 지배가 더 안전하다는 그의 세계관이 드러나는 대목이다.

인권 문제가 흔드는 군사 기지= 1960~1970년대 차고스 주민들은 미·영 군사기지 건설 과정에서 강제로 이주됐다. 이들은 모리셔스와 세이셸 등지로 흩어졌고, 수십년간 귀환을 요구해왔다. 이 문제는 단순한 과거사가 아니다. 디에고 가르시아의 현재와 미래를 결정하는 정치적 변수다. 군사기지는 활주로 위에 세워졌지만, 그 아래에는 강제 이주의 기억이 묻혀 있다.

유엔 인종차별철폐위원회(CERD)는 합의 비준 중단과 차고스 주민의 참여·귀환권 보장을 촉구했다. 이는 단순 권고가 아니라 국제사회가 인권 문제를 안보 의제와 연결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주권 이양이 탈식민화의 완성이 되려면, 원주민 권리 문제도 함께 해결돼야 한다는 요구다. 인권이 기지의 안정성을 재단하는 시대다.

인권 문제는 군사적 취약점보다 더 치명적일 수 있다. 국제 여론이 악화되면 동맹국 의회 비준이 지연되고, 소송이 이어지며, 기지의 정당성이 약화된다. 활주로는 튼튼해도 정치적 기반이 흔들리면 장기 지속성은 위태로워진다. 디에고 가르시아의 진짜 불안정성은 군사력이 아니라 도덕적·법적 정당성의 문제다.

장기전은 후방의 안정성이 좌우= 이란과의 충돌이 단기 공습에 그치지 않을 경우, 전쟁은 체력전으로 전환된다. 중동 인근 기지는 이란의 미사일과 드론 사정권 안에 있다. 반면 디에고 가르시아는 그 위협 반경 바깥에 위치한다. 후방에서 안정적으로 출격과 급유, 정비를 반복할 수 있는 공간이다. 장기전의 승패는 바로 이런 ‘지속성’에서 갈린다.

전쟁은 한 번의 타격이 아니라 반복 가능한 작전 능력의 문제다. 폭격기와 공중 급유기, 정보 자산이 안전하게 회전할 수 있어야 한다. 디에고 가르시아는 그 회전율을 보장하는 허브다. 그래서 이 섬은 공격 거점이 아니라 전쟁 지속의 엔진이다. 미국이 이 섬을 포기하지 않으려는 이유다.

트럼프가 이란을 언급하며 이 기지를 강조한 것은 협상용 압박이기도 하다. “군사 옵션은 준비돼있다”는 메시지를 공개적으로 던진 것이다. 협상은 외교관이 하지만, 신뢰를 만드는 것은 군사적 준비 태세다. 디에고 가르시아는 협상의 배후에 놓인 실질적 카드다.

인도양서 벌어지는 힘의 재배치= 인도양은 세계 에너지 수송과 해상 교통의 대동맥이다. 중동 원유와 가스, 아프리카 자원, 유럽과 아시아를 잇는 물류가 이 바다를 통과한다. 중국의 해군력 확대와 ‘일대일로’ 전략은 이 해역과 맞물린다. 미국은 인도태평양 전략의 일환으로 이 바다의 통제력을 유지하려 한다. 디에고 가르시아는 그 전략의 고정점이다.

이 섬을 잃는 것은 단순한 기지 상실이 아니라 해양 질서의 균형 축을 약화시키는 일이다.

직접 지배
세계관

기지는 단순한 군사시설이 아니다. 영향력을 묶어두는 닻이다. 닻이 빠지면 해역에서의 발언권도 약해진다. 디에고 가르시아는 인도양에서 미국의 존재감을 상징한다. 그래서 이 작은 환초는 전략적 상징성이 크다. 상징은 곧 억지력이며, 억지력은 곧 질서 유지의 신호다. 국제정치에서 상징은 실제 전력만큼이나 강한 메시지를 갖는다.

트럼프가 중국과 러시아를 거론한 것은 과장된 수사일 수 있다. 그러나 인도양에서의 힘의 경쟁은 현실이다. 중국 해군의 활동 반경은 점점 넓어지고 있고, 러시아도 해양 존재감을 유지하려 한다. 미국은 이 공간을 비워두지 않겠다는 신호를 보낸다.

디에고 가르시아는 그 신호의 핵심이다. 이 섬은 단순한 환초가 아니라 패권 균형의 표시판이다. 그 존재 자체가 힘의 배치를 말해준다.

800개 해외기지가 보여주는 전략= 미국은 전 세계 70여개국에 약 800개 가까운 해외기지를 유지해 왔다. 냉전이 끝난 뒤에도 이 구조는 완전히 해체되지 않았다. 이는 단순한 관성의 문제가 아니다. 전진 전략이라는 사고가 미국 안보 정책의 뼈대기 때문이다. 미국은 전쟁이 끝나도 기지를 철수하지 않고, 위기가 사라져도 거점을 유지해 왔다.

그 이유는 ‘위협은 사라지지 않고 형태만 바뀐다’는 전략적 믿음 때문이다.

전진 전략은 위협을 본토가 아니라 전방에서 관리하겠다는 발상이다. 잠재적 갈등을 미국 영토 밖에서 억제한다는 개념이다. 기지는 단순한 병력 주둔지가 아니라 억지력의 신호다. 동맹을 묶고 질서를 유지하는 구조적 장치다.

전방 배치는 군사적 대응 시간을 줄이고, 위기 발생 시 즉각적 개입을 가능하게 한다. 또 이는 동맹국들에게 미국의 개입 의지를 눈에 보이게 증명하는 상징적 장치이기도 하다.

비판도 적지 않다. 해외기지가 오히려 긴장을 고착화하고 분쟁 개입을 유도한다는 지적이다. 현지 사회와의 마찰, 비용 부담, 정치적 반발도 반복된다. 그러나 미국은 기지를 줄이면 불확실성이 커진다고 본다. 그래서 비용과 비판에도 불구하고 체제를 유지한다. 디에고 가르시아는 그 철학의 압축된 상징이다. 작은 섬 하나에 미국 전략 사고의 구조가 집약돼있다.

국제법과 군사력이 교차하는 전선= 이 섬에는 국제법, 인권, 동맹이라는 세 개의 전선이 동시에 얽혀 있다. 어느 하나만으로는 설명되지 않는다. 국제사법재판소 판결과 유엔 권고, 차고스 주민의 권리 문제, 그리고 미·영 동맹의 전략적 이해가 교차한다. 각각의 전선은 서로 다른 논리와 시간표를 갖고 움직인다. 군사적 판단은 신속하지만, 국제법은 느리고 인권 문제는 감정과 도덕의 영역을 건드린다.

영국은 법적 정당성을 회복하기 위해 합의를 선택했다. 트럼프는 정치적 통제력을 우선시한다. 모리셔스는 탈식민화의 완성을 주장한다. 각자의 논리가 서로 다른 층위에서 충돌한다. 영국은 국제법의 압박을 완화하려 하고, 미국은 전략적 유연성을 확보하려 하며, 모리셔스는 역사적 정의를 강조한다.

전략적
유연성

같은 섬을 두고도 각자가 바라보는 좌표는 전혀 다르다. 이 시각 차이가 갈등의 깊이를 키운다.

따라서 디에고 가르시아는 단순한 군사기지가 아니다. 국제정치의 교차로이자 시험대다. 활주로 위에서는 전투기가 이륙하지만, 그 아래에서는 국제법과 외교가 충돌한다. 인권의 언어와 안보의 언어가 서로 다른 방향을 가리킨다. 이 복합성이 이 섬을 더 민감하게 만든다. 작은 환초가 거대한 질서의 긴장을 압축해 보여주는 공간이 됐다.

한국도 이 전략 지도 위에 있다= 디에고 가르시아 논쟁은 한국과 무관하지 않다. 미국이 해외기지를 단순한 군사시설이 아니라 ‘질서 유지의 전진기지’로 본다면, 주한미군 역시 같은 구조 안에 있다. 한국은 동북아의 전진 전략 축이다. 미국의 기지 철학이 유지되는 한, 한반도 역시 그 체계의 일부다.

문제는 우리가 이를 단순한 동맹 차원이 아니라 구조적 전략의 일부로 인식하느냐에 있다.

인도태평양 전략은 단순한 대중국 견제 정책이 아니다. 해상교통로, 에너지 수송, 글로벌 공급망을 관리하는 구조적 전략이다. 디에고 가르시아가 인도양의 고정축이라면, 한국은 동북아의 연결 축이다. 두 축은 하나의 전략 지도 위에 있다.

한국은 선택의 외부에 있지 않다. 전략적 거리 두기 역시 그 지도 안에서 계산되는 변수일 뿐이다.

한국 경제의 생명선은 해상교통로다. 중동 에너지, 유럽 교역, 아프리카 원자재가 인도양을 통과한다. 디에고 가르시아가 흔들리면 인도양 질서가 흔들리고, 그 파장은 한국 무역과 안보에 직결된다. 공급망 충격과 에너지 가격 변동은 곧 국내 경제의 불안으로 이어질 수 있다.

따라서 이 섬의 논쟁은 남의 이야기가 아니다. 한국은 관전자라기보다 연결된 이해당사자다.

제국의 방식인가 질서의 관리인가= 미국은 스스로를 제국이라 부르지 않는다. 대신 ‘동맹 네트워크’와 ‘규칙 기반 질서’를 말한다. 그러나 70여개국, 800개 가까운 해외기지는 제국적 스케일을 연상시킨다. 영토를 직접 소유하지 않더라도 거점을 통해 공간을 관리하는 방식은 고전적 제국과 닮아 있다. 디에고 가르시아는 그 불편한 질문을 다시 꺼내게 만든다.

인도양 ‘불침 항모’
해외기지 제국 본질

제국은 소유로 통제하고, 질서 관리자는 동맹으로 조정한다. 트럼프의 언어는 후자보다 전자에 가깝다. 그는 계약의 안정성보다 직접 통제의 확실성을 선호한다. 임대 구조가 유지돼도 주권이 이동하면 위험이 커진다고 본다. 이는 미국 전략 내부에 잠재해 있던 제국적 충동을 노출하는 장면이다.

워싱턴 내부에는 또 다른 흐름이 존재한다. 펜타곤은 전진 배치를 유지하되 동맹 틀을 강조하고, 국무부는 국제법적 정당성을 관리하려 한다. 미국 내부에도 ‘제국 모델’과 ‘동맹 질서 모델’의 긴장이 공존한다. 디에고 가르시아는 그 갈림길 위에 놓여 있다. 이 섬은 미국이 어떤 방식으로 세계를 관리할 것인가를 묻는 전략적 시험대다.

계약보다 통제 택하는 시대= 국제질서는 오랫동안 계약의 언어 위에 세워져 왔다. 조약과 임대, 동맹 협정은 힘을 제도 안에 묶는 장치였다. 영국과 모리셔스의 99년 임대 합의도 그 연장선에 있다. 법적 안정성을 확보하고 국제사회의 압박을 완화하려는 절충이었다. 힘을 직접 행사하기보다 규칙 속에 고정하려는 시도였다.

그러나 트럼프는 이 틀 자체를 신뢰하지 않는다.

그의 메시지는 단순하다. 계약은 종이에 남지만, 힘은 현장에 남는다는 것이다. 임대 조건이 아무리 길어도 주권 이동은 곧 불확실성이라고 본다. 정권교체와 국제 여론, 정치 변수는 언제든 합의를 흔들 수 있다고 판단한다. 그래서 그는 합의보다 통제를 강조한다. 이는 국제법 중심 질서에 대한 불신의 표현이다. 힘이 제도를 압도하기 시작하면 질서의 성격도 바뀐다.

계약을 불신하는 강대국은 결국 자신이 만든 질서도 불신하게 된다. 국제법은 느리지만 예측 가능성을 보장한다. 통제는 빠르지만 반발과 비용을 키운다. 단기적 안정이 장기적 불안을 낳을 수 있다. 불침 항모는 가라앉지 않을지 모르지만, 정당성을 잃은 체제는 스스로 균열을 만든다. 힘은 공간을 지킬 수 있지만, 정당성 없이는 질서를 오래 지키지 못한다.

불침 항모 넘어 불침 체제 향해= 미국이 디에고 가르시아를 고집하는 이유는 단순한 폭격 거점 확보가 아니다. 위기 상황에서도 작전 체계가 흔들리지 않는 고정축을 원하기 때문이다. 불침 항모는 물리적 시설이 아니라 전략적 체계다. 이는 전쟁의 유무와 상관없이 유지돼야 할 억지 구조다.

결국 미국은 섬을 지키려는 것이 아니라 체계를 지키려는 것이다. 그 체계가 무너지면 미국의 전진 전략 전체가 흔들릴 수 있다는 계산이 깔려 있다.

트럼프의 태도 변화는 감정이 아니라 철학이다. 임대보다 통제, 합의보다 소유를 선호하는 사고다. 그러나 힘만으로 유지되는 질서는 장기적으로 정당성을 확보하기 어렵다. 국제법과 인권의 압박을 무시한 통제는 또 다른 불안정을 낳을 수 있다.

통제의 언어가 강해질수록 정당성의 기반은 더 중요해진다. 힘과 정당성의 균형을 잃는 순간, 전략은 오히려 스스로를 잠식할 위험을 안게 된다.

대한민국도
지도 위에

인도양의 작은 환초는 지금 세계 질서의 압축판이다. 미국은 이 섬을 지키려 한다. 그러나 지키는 방식에 따라 질서는 강화될 수도, 균열될 수도 있다. 디에고 가르시아는 단순한 기지가 아니라 미국식 세계 질서의 시험대다. 이 시험은 단지 군사력이 아니라 전략 철학의 지속 가능성을 묻고 있다.

결국 질문은 하나다. 미국은 힘으로 질서를 지킬 것인가, 아니면 질서 속에서 힘을 정당화할 것인가. 기지를 지키는 것은 쉽다. 질서를 지키는 것은 훨씬 어렵다.

<skkim5961@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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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점점’ 더 깊은 늪에 빠진 국민의힘

‘점점’ 더 깊은 늪에 빠진 국민의힘

[일요시사 정치팀] 박형준 기자 = 국민의힘 지방선거 공천에선 인물난 속에서도 조직표를 놓지 못하는 흔적들이 감지된다. 서울시장 경선 참여자들은 장동혁 대표의 지원 유세에 난감해하고 있다. 조직표에 기반한 정당이 집권하지 못했던 과거 사례들은 국민의힘을 더 깊은 늪으로 몰고 있다. 리얼미터·한국갤럽이 지난달 각각 진행한 여론조사에 따르면, 이재명 대통령·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의 지지율은 높지만, 국민의힘의 지지율은 저조한 것으로 나타났다. 리얼미터가 발표한 이 대통령의 지지율은 62.2%로 확인됐다. 이 조사는 지난달 23일부터 27일까지 5일 동안 전국 만 18세 이상 유권자 2513명을 대상으로 진행됐다. 가면 갈수록 지지율 격차 민주당 지지율은 51.1%로 집계됐고, 국민의힘 지지율은 30.6%로 집계됐다. 이 조사는 지난달 26일부터 27일까지 이틀 동안 전국 18세 이상 유권자 1006명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다. 두 조사 모두 무선 자동응답 방식을 활용해 무작위 생성 표집틀을 통한 임의 전화걸기 방법으로 실시했다(자세한 내용은 중앙선거여론조사심의위원회 홈페이지 참조). 한국갤럽도 비슷한 기간 동안 유사한 조사를 진행했다. 한국갤럽이 발표한 이 대통령 지지율은 65%였다. 정당 지지율은 민주당 46%로 집계됐고, 국민의힘은 19%로 집계됐다. 이 조사는 지난달 24일부터 26일까지 3일 동안 전국 만 18세 이상 유권자 1000명을 대상으로 진행됐다. 두 조사 모두 무작위로 추출된 무선전화 가상번호에 전화 조사원이 인터뷰하는 방식으로 진행됐다(자세한 내용은 중앙선거여론조사심의위원회 홈페이지 참조). 이 조사 결과들을 놓고 “민주당과 국민의힘 간 지지율 격차가 상당하다”는 평가가 나온다. 이는 지방선거에서 언제나 중요한 승부처로 거론되는 서울시장·경기도지사 선거와 관련해 국민의힘이 인물난을 겪고 있는 현 상황에서도 확인할 수 있다. 국민의힘에선 양향자 최고위원·새누리당 함진규 전 의원 등 2명이 경기도지사 선거 출마를 선언했다. 민주당에서 김동연 경기도지사·추미애 의원·한준호 의원이 치열한 경쟁을 하는 것과 대비된다. 이 때문에 국민의힘에선 유승민 전 의원에게 지속해서 출마를 권유했다. 국민의힘으로선 “중도 성향 유권자에게도 설득력이 있다”는 평가를 받는 유 전 의원이 경기도지사 후보로 적임이란 판단을 한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유 전 의원은 “국민의힘 의원들이 지난달 윤석열 전 대통령과의 절연을 선언한 이후에도 당의 강경 노선에 큰 변화가 없다”는 인식을 가진 것으로 알려졌다. 그는 지난달 27일 서해수호의 날 기념식에서 만났던 국민의힘 장동혁 대표의 출마 권유에도 “불출마한다는 생각엔 변화가 없다”면서 끝내 거절했다. 그러자 양 최고위원은 같은날 KBS 라디오 <세상의 모든 정보 윤인구입니다>에 출연해 “정당·국가 운영과 공천은 원칙·절차적 정당성 확보가 중요하다”며 “어떤 분이 제게 ‘절대로 떠밀려서 나오는 선거는 하면 안 된다’고 말했는데, 확실한 소명 의식을 가진 사람이 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국민의힘 이정현 전 공천관리위원장은 지난달 30일 자신의 페이스북을 통해 “공천이 마무리되는 대로 당이 필요로 하는 가장 어려운 곳에서 제 역할을 다할 준비를 하겠다”며 “아무도 가지 않으려는 곳에서 또 다른 역할을 할 것”이라고 썼다. 이는 전남·광주통합특별시장 출마 암시로 해석됐고, “유 전 의원에게도 출마를 간접 압박하는 것”이란 해석도 나왔다. 겹치는 악재에 강경 보수 조직표 의존? 장동혁 지원 유세? 각지 후보들 ‘난색’ 하지만 유 전 의원은 불출마 의사를 바꾸지 않았다. 이 전 위원장은 지난달 31일 “유 전 의원의 뜻을 존중하기로 했다”며 “현재 신청하신 훌륭한 두 분을 포함해 여러 방안을 검토할 것”이라고 밝혔다. 이어 “지방선거 공천이 사실상 완료됐다”며 전남·광주통합특별시장 출마를 선언한 후 사퇴했다. 부산에선 국민의힘 주진우 의원과 부산시장 후보 경선을 치러야 하는 박형준 부산시장이 손영광 울산대 교수를 공동선대본부장으로 임명했다. 손 교수는 윤 전 대통령 탄핵 반대 집회를 주도한 손현보 목사의 아들이다. 이는 박 시장이 직접 지난달 24일 CBS 라디오 <박성태의 뉴스쇼>에 출연해 “손 교수는 역량이 뛰어난 사람이고, 누구의 아들이라고 매도하는 건 바람직하지 않다”고 해명해야 할 정도로 큰 논란이 됐다. 박 시장은 국민의힘 내에서 합리적 보수 이미지가 강한 인물로 평가된다. 손 교수 영입에 대해선 “경선을 앞두고, 부산에서 막강한 영향력을 가진 대형 교회 조직표를 의식한 것 아니냐”는 분석이 나오고 있다. 대구시장 후보 경선에서 공천 배제된 이진숙 전 방송통신위원장에 대해서도 여러 해석이 나오고 있다. 이 전 위원장은 지난달 29일 대구 삼성라이온즈파크에서 진행된 2026 KBO리그 개막전을 방문해 ‘대구시장 예비후보 이진숙’이란 어깨띠를 두르고 시민들에게 인사했다. 이에 대해선 “이 전 위원장이 대구시장 선거에 무소속 출마할 수도 있다”는 관측이 나오고 있다. 반대로 “국민의힘이 이 전 위원장의 공천 자체를 배제한 것으로 보이지 않는다”는 분석도 있다. 국민의힘 나경원 의원은 지난달 24일 자신의 페이스북을 통해 “이 전 위원장은 정권의 무도함에 맞선 최전선 투사”라며 “대구시장 후보에 현역 의원이 공천되면, 그 지역구 재보궐선거에 이 전 위원장을 공천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 전 위원장을 경기도지사 후보로 공천해야 한다”는 주장도 있다. 국민의힘 조광한 최고위원은 지난달 26일 기자들을 만나 “이 전 위원장이 경기도지사 후보로도 추천되고 있다”며 “이 전 의원장의 결심 여하에 따라 선택지가 굉장히 다양하다고 본다”고 주장했다. 이 전 위원장은 경기도지사 공천 가능성은 강하게 부정하고 있다. 이 전 위원장은 지난달 25일 <조선일보> 유튜브 채널에 출연해 “경기도지사 출마는 사실상 불가능하다”며 “제 인지도 하나만 달랑 갖고 경기도지사를 하겠다는 건 경기도민에 대한 우롱”이라고 주장했다. 그러자 <경기일보>는 지난달 27일 ‘국힘, 경기지사가 경선 탈락자 처리장이냐’는 제목의 사설을 공개했다. 이 사설엔 “국민의힘 경기도지사 후보 경선에 나선 주자는 중량감·연고성 등이 모두 부족하다는 평가를 받는 2명”이라며 “급기야 대구시장 탈락자 차출설도 나오는데, 이쯤 되면 경기도민 모욕 아니냐”고 비판했다. 낮은 당 지지율과 공천 과정의 잡음이 이어지면서 급기야 지방선거 출마자들이 장 대표의 지원 유세에도 난감해하는 상황도 이어졌다. 유권자에게 “공개적 절윤 선언과 달리 인적 절연이 제대로 안 되고 있다”는 인상을 준 영향이라고 분석되고 있다. 7년 만에 대표 거부 오세훈 서울시장은 지난달 27일 SBS 라디오 <김태현의 정치쇼>에 출연해 “저도 장 대표를 선거 유세에 모시고 싶다”면서도 “변신한 모습으로 와주시면 감사하겠다”고 말했다. 서울시장 선거 출마를 선언한 국민의힘 박수민 의원도 지난달 26일 같은 프로그램에 출연해 “장 대표의 지원 유세는 조금 예민한 문제”라며 “시민 눈높이에서 해결할 것”이라고 주장했다. 이어 “선거는 후보가 시민이 듣고 싶어 하는 말을 잘 전하는 시민을 위한 시간”이라며 “장 대표는 노선형 정치인이 됐으므로, 정책 선거 현장이 정치 선거로 비화하면 유불리를 떠나 서울시민께 도리가 아니라고 생각한다”고 설명했다. 그러다 논란이 이어지자 지난 1일엔 의견을 바꿔 채널A 라디오 <정치시그널>에 출연해 “저는 국민의힘이 확장해야 한다는 것에 공감대가 확실히 있다고 생각한다”며 “정공법을 선택하겠다”고 말했다. 주요 선거 후보들이 당 대표의 지원 유세에 난감해하는 것은 지난 2018년 지방선거 당시 주요 후보들이 자유한국당 대표였던 홍준표 전 대구시장의 지원 유세를 거부한 상황을 연상시킨다. 낮은 지지율과 혼란을 거듭하는 국민의힘의 현 상황에 대해선 “이미 예고됐던 것”이란 분석이 나온다. 국민의힘은 윤석열 전 대통령이 지난 2024년 12월 비상계엄을 선포한 이후 대규모 집회 개최 및 참여 등 강경 보수 행보를 유지했다. 당시 진행됐던 대규모 집회는 손 목사·전광훈 사랑제일교회 담임목사·유튜버 전한길씨 등이 주도했다. 울림이 큰 방에서 나는 소리는 메아리가 돼 돌아온다. 이는 특정 성향·신념이 일치하는 사람들이 모여 비슷한 정보·주장을 계속 접하면서 그 의견이 굳어지는 현상을 비유하는 데 활용된다. 이를 두고 에코 체임버 현상이라고 한다. 보통은 SNS에서 일어나지만, 최근엔 정치권에서도 구조화되고 있다. 정치인의 관점에서 대규모 집회에서 동원한 인파·우호적인 사이트에서 확인할 수 있는 열렬한 지지는 쉽게 눈에 띈다. 선거에선 이게 독이 되는 경우가 많다. 후보의 캠프에선 이를 유권자의 보편적 정서로 착각하는 경우가 비일비재하기 때문이다. 아울러 최근엔 당원투표의 비중이 높아지고 있다. 당원의 뜻이 공천에 반영되면, 정당의 민주적 구조가 탄탄해진다. 하지만 조직표 동원 경선이 될 위험이 커진단 치명적인 단점도 있다. 당내 강경파·특정 조직의 관성은 중도층·무당층까지 포함하는 전체 민심과 방향이 다른 경우가 많다. 집권은 불가능 후보도 선거를 치르면서 조직표를 움직이는 지역 토착 세력·강경 지지층을 만나는 과정에서 현장 분위기를 착각한다. 설령 당선되더라도 이들의 포로가 되는 경우가 많다. 이와 같은 확증 편향 현상은 “누구나 현실을 볼 수 있는 것은 아니다. 대부분 사람은 자신이 보고 싶은 현실만을 본다”던 고대 로마 정치인 율리우스 카이사르의 격언이 현재진행형임을 알 수 있게 한다. 조직표는 장단점이 명확하게 나뉜다. 일정한 득표를 보장하는 것은 분명한 장점이다. 하지만 득표 이상의 목표 달성을 불가능하게 만든다. 전형적인 사례는 일본 공명당이다. 공명당은 창가학회란 종교를 배경으로 두고 있다. 덕분에 공명당은 엄청난 조직력을 동원할 수 있다. 창가학회 회원 1명은 강력한 선거운동원이 된다. 그 1명은 주변 지인 모두에게 공명당 선거운동을 한다고 보면 된다. 정치와 종교의 결합이 흔히 발생하는 중요한 원인이다. 일본 자유민주당(이하 자민당)은 공명당과 연정을 하면서 창가학회·공명당의 조직력을 토대로 많은 정치적 이익을 얻었다. 공명당 후보가 출마하지 않는 지역구에선 그 조직력이 고스란히 자민당 후보의 선거 조직이 됐기 때문이다. 하지만 공명당은 종교 기반 정당이기 때문에 그 틀을 벗어나긴 어려웠다. 그래서 공명당이 정치적으로 확장할 수 있는 최대치는 집권당의 연정 파트너였다. 공명당과 손을 잡았다고 무조건 선거에서 좋은 결과를 얻는다고 보긴 어렵다. 이는 지난 2월 진행된 제51회 일본 중의원 의원 총선거(이하 중원선)에서 확인할 수 있었다. 제1야당 입헌민주당(이하 입민당)은 자민당과 결별한 공명당과 손잡고 ‘중도개혁연합’이란 선거 연대를 구성했다. 하지만 선거 결과는 참혹했다. 입민당·공명당은 원래 총 169석을 보유했지만, 선거 결과 49석만 확보하는 대참패를 당했다. 이 중 입민당이 확보한 의석수는 21석에 불과했다. 중도개혁연합이 해체되면 각각 28석을 확보한 공명당·국민민주당이 제1야당 반열에 오를 수 있을 정도의 대참패였다. 조직력보다 더 중요한 것은 민심이란 걸 보여준 선거였다. 경기도지사 후보 인물난…유승민은 거듭 고사 손현보 아들 등장·컷오프 이진숙 못 놓는 이유? 절대로 몰락하지 않는 안정적인 하한선을 보유했지만, 상한선·기대치도 낮은 사례로 일본 공명당만 있는 것은 아니다. 성향이 강한 특정 집단을 기반으로 유지되는 정당은 그에 대한 다른 유권자의 거부감 때문에 집권이 불가능하다. 대표적인 사례로는 ▲독일 좌파당 ▲영국 민주연합당 ▲이스라엘의 샤스·유대교 토라 연합 등을 거론할 수 있다. 독일 좌파당은 독일 통일 이후 구동독 지역 사회주의 통합당 후신이 모여 조직됐다. 따라서 구동독 지역의 고령 유권자·옛 공산당 관료·강성 노동계급 등이 핵심 지지층을 이루고 있다. 이런 연유로 구동독 지역에선 큰 영향력을 행사하지만, 전체 민심과 조화를 이루긴 어렵고, 주요 정당의 연정 파트너로 주로 거론된다. 영국 민주연합당은 북아일랜드 강성 개신교·연합주의자 조직에 기반한다. 이들의 강경한 종교 성향은 잉글랜드·스코틀랜드 등의 정서와 많이 멀다. 따라서 이들도 북아일랜드 지역 정당 겸 주요 정당의 연정 파트너로 거론된다. 지난 2017년엔 영국 보수당이 과반 확보에 실패하자 민주당과 신임 공급 협약을 맺고 정부를 구성할 수 있었다. 이스라엘의 샤스·유대교 토라 연합은 이스라엘 내 극단적인 유대교 원칙주의자들로서 사회적 민폐라고 거론되는 하레디를 기반으로 구성된 정당이다. 이들은 사회적인 활동보다 경전 공부에 몰두한다. 극단적인 일부 하레디는 19세기 생활 양식을 고집하고, 일체 생산 활동을 하지 않면서 정부 보조금에 의존한다. 이들은 출산율이 높아 이스라엘 재정에 부담을 주지만, 이스라엘 내 유대인 인구 비율 유지를 고려하면, 정부가 이들을 지원하지 않을 수 없는 측면도 있다. 이들은 랍비의 지시에 따라 절대적인 투표 성향을 유지한다. 이스라엘의 보수 정당 리쿠드당은 이들과의 연정을 통해 조직표를 동원한다. 일본 자민당은 원래 다양한 성향의 여러 파벌이 모여 구성된 특성을 역설적으로 정권 유지 비결로 활용했다. 총리를 배출하는 회파만 바뀌어도 국정 기조가 바뀌어 유권자에게 정권교체 체감을 주는 유사 정권교체 효과가 발생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지난 2월 중의원 의원 선거 대승은 자민당으로서도 기존과 다른 형태였다. ▲다카이치 사나에 총리의 기민한 유튜브·SNS 활용 ▲실용적 포퓰리즘으로 통하는 사나에노믹스 등 다카이치 총리의 개인 팬덤이 강력하게 형성된 것이 승리로 연결됐다. 공명당 등 해외 사례 표면적으로는 국민의힘은 이미 지난 2월에 입증된 자민당의 승리 비결을 외면하고, 공명당의 길을 선택한 것으로 보인다. 주요 후보들이 당 대표 지원 유세에 신중한 반응을 보이는 것 자체가 국민의힘이 ‘더 깊은 늪’에 들어가는 것을 보여주고 있다는 일면일 수도 있다. 국민의힘은 늪에서 나올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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