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잇단 해킹 사태’ 한국인터넷진흥원 커지는 책임론

  • 김성민 기자 smk1@ilyosisa.co.kr
  • 등록 2025.09.29 15:02:54
  • 호수 1551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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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커들 설치는데 법카로 유흥업소

[일요시사 취재1팀] 김성민 기자 = 최근 KT와 롯데카드사에서 대규모 해킹 및 개인정보 유출 사건이 발생해 불안감을 증폭시키고 있다. 반면, 이를 감독해야 할 한국인터넷진흥원 직원들이 법인 카드로 유흥업소 접대 비용을 지출하고, 음주 운전 징계 등 일탈 행위를 보이면서 보안 사고 대응 미비뿐 아니라 신뢰성에 대한 우려까지 감수하게 됐다.

KT는 최근 자사 통신망을 통해 발생한 소액결제 해킹 사고와 서버 침해 정황을 확인했다고 밝혔다. 외부 보안 기업과 함께 4개월간 전수조사 끝에 침해 흔적 4건, 의심 정황 2건을 발견했으며, 이를 지난 18일 오후 11시57분경 한국인터넷진흥원(이하, KISA)에 신고한 것으로 전해진다.

대규모 사고

KT는 해킹 사실을 인지한 지 약 3일 만에 KISA에 신고하면서 법정 신고 의무(24시간 이내)를 위반했다는 비판을 받았다. 초기 발표에서 “개인정보 유출은 없다”고 했으나, 조사 결과 국제이동가입자식별정보(IMSI) 등 민감한 정보가 유출된 사실이 확인되며 파장이 커졌다.

이번 해킹 사고는 처음이 아니다. KT 서버에는 2018년부터 올해까지 거의 매년 침해 흔적이 발견된 것으로 확인됐다. KT는 어떤 서버가 침해됐는지 외부 보안업체의 전수조사를 통해 파악했지만 자세한 내용은 공개할 수 없다는 입장이다.

연이은 피해 규모 번복과 은폐 의혹으로 비판 받는 KT가 보안과 관련된 정보를 투명하게 공개하지 않고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지난 23일 국회 과학기술정보방송통신위원회 소속 더불어민주당 이정헌 의원이 KISA로부터 보고받은 내용에 따르면 KT 서버는 2018년부터 올해까지 침해 흔적이나 의심 정황이 6건 있었다. KT가 SK텔레콤 해킹 사태 이후 외부 보안업체에 서버 전수조사를 맡긴 결과다.

해당 업체는 2018년과 2020년 운영 중이던 서버 2대에서 침해 의심 정황을 발견했고 2019년과 2021~2022년, 2024~2025년 서버 4대에서 침해 흔적을 포착했다. 2023년을 제외하고는 매년 서버 침해 시도가 있었고, 실제 침해 흔적까지 나온 것이다.

KISA는 침해 가능성이 있는 서버가 중복되는지 여부는 확인이 필요하다면서도 침해 방법은 SK텔레콤 해킹 당시 발견된 악성코드 ‘BPF 도어’ 방식은 아니라고 설명했다. SK텔레콤 해킹 이후 KT와 LG유플러스를 대상으로도 악성코드 여부를 조사했는데, 당시 발견되지 않았기 때문에 다른 종류의 침해로 분석하고 있는 것으로 풀이된다.

다만 KISA는 구체적으로 어떤 서버가 침해됐는지 등 조사 내용은 KT 측의 동의 없이 공개할 수 없다는 입장이다.

KT는 외부 조사 결과에 대해 알지 못한다고 의원실에 답했다. 지난 19일 KISA에 서버 침해 흔적 4건과 의심 정황 2건을 신고했다고 밝히고도 그 내용을 알지 못한다는 입장을 낸 것은 앞뒤가 맞지 않는다는 비판이 나온다.

경찰청 국가수사본부 사이버테러수사대는 KT 서버 침해 정황에 대한 내사(입건 전 조사)에 착수했다. 경찰은 KT가 KISA에 신고한 서버 침해 정황을 들여다보고 있다.

KISA 직원 33명 비위 징계 결정
내부 기강 해이···파면·정직 속출


이정헌 의원은 “KT가 외부에 맡겨 부랴부랴 전수조사한 결과 이미 2018년부터 거의 매년 서버가 해킹당했다는 정황이 포착됐다”며 “KT는 관련 자료를 투명하게 공개하고 당국은 신속 정확한 조사로 진상을 밝혀야 한다”고 강조했다.

당국이 이미 13년 전 펨토셀의 보안 취약성에 대해 연구를 진행하고도 대응 및 제도화에 소홀했다는 지적도 나왔다.

국민의힘 이상휘 의원에 따르면 KISA는 2012년 수행한 ‘펨토셀 및 GRX 보안 취약점에 대한 연구’에서 펨토셀이 가질 수 있는 보안 위협 29가지를 제시했다. 연구 보고서가 지목한 펨토셀 보안 위협 중에는 KT 소액결제 피해의 원인으로 지목되는 사례도 있었다.

사용자 인증 토큰 복제나 통신을 주고받는 두 주체 사이 공격자가 몰래 개입해 정보를 가로채거나 조작하는 중간자(MITM) 공격이다.

최근 롯데카드사 역시 온라인 결제 서버(WAS)를 해킹당해 200GB 규모의 고객 데이터가 탈취됐다. 피해자는 약 297만명, 이는 전체 회원의 약 30%에 달한다. 문제는 초동 대응 과정이다. 롯데카드는 초기 발표에서 유출 규모를 1.7GB라고 밝혔으나, 이후 실제 유출량이 수백GB에 달하는 것으로 확인되며 축소·은폐 의혹이 제기됐다.

유출 정보에는 카드 번호, 유효기간, 주민등록번호 등 금융 사기에 악용될 수 있는 핵심 데이터가 포함된 것으로 알려졌다.

이처럼 보안 사고가 연이어 발생하는 가운데, 감독기관인 KISA 내부에서도 심각한 기강해이가 드러났다. 최근 잇따르고 있는 통신사, 카드사 등에 대한 해킹으로 국민 불안이 증폭되고 있는 가운데 사이버 침해사고 대응을 총괄하는 KISA 직원들의 기강 해이는 심각한 수준이었다.

지난 22일 국회 과학기술정보방송통신위원회 간사인 더불어민주당 김현 의원이 KISA에서 받은 국정감사 자료에 따르면, 지난 2022년 6월부터 지난달까지 3년여간 직장 이탈, 음주 운전, 겸업 등 각종 비위로 징계를 받은 직원이 33명에 달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연도별로는 ▲2022년 2명 ▲2023년 25명 ▲2024년 3명 ▲2025년 지난달까지 3명 등이다. 징계 수위별로는 파면 2명, 정직 5명, 감봉 8명, 견책 18명 등이었다.

보안 컨트롤타워
신뢰성 붕괴 위기

한 KISA 2급 직원은 유흥업소와 숙박업소에서 법인카드를 수천만원대 결제에 사용해 2023년 7월 파면됐다. 3급 한 직원은 보건휴가를 내고 해외여행을 다녀왔다가 지난 2월 감봉 처분을 받았고, 4급 한 직원은 몰래 겸업해 온 사실이 드러나 지난달 견책 처분됐다.

2023년 11월에는 3급 3명, 4명 1명 등 4명이 음주 운전으로 적발돼 줄줄이 정직, 견책 등의 징계를 받았다.


최근 SK텔레콤과 KT 등 통신사, SGI서울보증, 롯데카드까지 해킹에 줄줄이 노출돼 사이버 침해 대응체계에 대한 국민 불안감이 높은 상황이다.

KISA에 접수된 해킹·바이러스 상담 건수도 ▲2022년 6만2471건 ▲2023년 4만8631건 ▲2024년 3만4149건 ▲2025년 지난 월까지 2만5967건에 달하는 등 사이버 침해에 대한 국민들의 우려와 걱정은 매년 수만건에 이른다. KISA가 해킹이나 바이러스 대응, 개인정보 보호 등을 위한 공공기관인 만큼 업무 행태를 개선해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김현 의원은 “개인정보 유출 등에 대한 국민적 우려가 크지만, 이에 적극 대응해야 할 KISA는 기강해이와 소극적 업무 행태 등을 개선하려는 노력을 보이지 않고 있다”며 “보안 기술자들이 해킹 기술을 쫓아가기도 벅찬 상황에서 KISA의 역할이 어느 때보다 중요한 만큼 감독기관인 과학기술정보통신부가 특단의 대책을 마련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KT·롯데카드 해킹 사건과 KISA 내부 비위 사태는 외부 사고와 내부 관리 실패가 동시에 드러난 이중 위기다. 기업의 보안 강화와 함께 감독기관의 내부 윤리 혁신, 구조 개편이 반드시 병행되어야 한다는 지적이 잇따르고 있다.

한 보안 전문가는 “외부 감독 이전에 내부부터 혁신해야한다”고 지적했다. 이번 사태가 KISA의 구조적 문제를 여실히 드러낸다고 지적한다. 피해 기업이 해킹 사실을 신고해야만 KISA가 대응할 수 있는 구조인데, 신고 지연·은폐 시 초동 대응 지연도 불가피하다.

제재 실효성도 부족하다. 정보통신망법 위반 시 과태료는 최대 3000만원 수준이 고작이다. 보안 투자보다 벌금 부담이 적어 예방할 의지가 약해질 수밖에 없다. 또 관할 소속도 민간 피해는 KISA, 금융기관의 해킹 피해는 금융보안원, 공공기관의 해킹 피해는 국가정보원 등으로 분리되는데, 중앙 컨트롤타워 부재로 신속 대응이 어려운 점도 있다.


법제 개편과 제도 개선 방향도 논의되고 있다. 국회와 정부 모두 대응책을 서두르고 있다. 이번 사태는 기업이 침해 사실을 숨기거나 신고를 미루면 정부가 신속히 대응할 수 없다는 점을 여실히 보여줬다.

대응의 한계

국회는 이미 제도 개선에 시동을 걸었다. 최민희 국회 과학기술정보방송통신위원장은 기업 신고 여부와 무관하게 정부가 침해 사고 조사를 개시할 수 있도록 하는 ‘정보통신망법’ 개정안을 발의했다. 개정안은 ‘침해 사고 조사심의위원회’를 신설해 해킹 정황이 발견되거나 중대한 사고가 발생했을 때 위원회 판단에 따라 정부가 즉시 조사할 수 있도록 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기업의 은폐와 지연을 원천 차단하겠다는 취지다.

<smk1@ilyosis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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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여발 사법 전쟁 ‘끝까지 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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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요시사 정치팀] 박형준 기자 = 국회 문턱을 넘은 내란 전담재판부 설치법이 사법부를 강타했다. 검찰은 1999년 특별검사제 도입 이후 권한을 조금씩 잃다가 올해 해체가 결정됐다. 검찰이 26년 전 느끼다가 현실이 된 불안을 이젠 사법부가 느낄 차례일지도 모른다.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 등 범여권이 지난 24일 내란 전담재판부 설치법을 국회 본회의에서 통과시켰다. 대법원은 지난 18일 “내란 사건만 맡는 전담재판부를 만들어 운영한다”는 취지의 예규 제정 방침을 밝혔다. 특별재판부 영장전담 법관 하지만 민주당 박수현 수석대변인은 같은 날 논평을 통해 ‘24일 처리 방침’을 밝혔다. 이날 법안 처리는 이미 예고된 결과였다. 박 대변인은 지난 21일 오전 기자 간담회에서도 “민주당은 국회 본회의에서 내란 전담재판부 설치법을 예정대로 처리할 것”이라고 밝혔다. 민주당이 원래 처리하려던 법안은 ‘내란 특별재판부 설치법’이었다. 이 법안이 통과됐다면, 12·3 비상계엄 관련 재판을 맡을 특별재판부가 설치되고, 영장 심사를 맡을 특별영장 전담 법관이 따로 배정됐을 것이다. 이들은 국회·판사회의·대한변호사협회가 3명씩 추천한 위원으로 구성되는 9인 규모의 추천위원회의 2배수 추천과 대법원장의 임명을 거칠 예정이었다. 아울러 상고심에선 윤석열 전 대통령이 임명했던 대법관은 모두 제척될 예정이었다. 하지만 내란 특별재판부 설치에 대해선 각계에서 위헌 논란을 제기했다. 그러자 민주당은 지난 16일 내용을 대폭 수정했다. 명칭도 특별재판부에서 전담재판부로 바뀌었다. 전담재판부 후보추천위원회는 법무부 장관·헌법재판소 사무처장 등 외부 인사를 제외한 후 법관으로만 구성될 예정이다. 추천위원회에 들어갈 법관 중엔 각급 판사회의·전국법관대표자회의가 포함된다. 전담재판부에 소속될 법관은 추천위원회·대법관회의를 거쳐 대법원장이 임명한다. 윤석열 전 대통령 등 12·3 비상계엄 주요 연루자들은 이미 형사재판 제1심을 받고 있다. 전담재판부는 항소심부터 맡을 예정이다. 대법원은 민주당의 공세에 맞서 반격에 나섰다. 대법원은 지난 18일 대법관 행정회의를 열어 ‘국가적 중요 사건에 대한 전담재판부 설치 및 심리 절차에 관한 예규’를 제정하기로 했다. 여기엔 “형법상 내란·외환죄와 군형법상 반란죄 사건을 전담해 집중 심리하는 전담재판부를 설치할 수 있다”는 내용이 포함된다. 대법원이 규정하는 전담재판부는 무작위 배당을 거쳐 사건을 배당받을 재판부가 지정되는 방식이다. 전담재판부로 지정된 재판부가 원래 맡던 재판은 다른 재판부로 재배당된다. 예규엔 “해당 재판부는 이후 내란·외환과 관련 없는 새로운 사건은 맡지 않는다”는 규정이 포함됐다. 하지만 민주당의 반응은 시큰둥했다. 박 대변인은 “사법부가 충분히 할 수 있는 일을 왜 이렇게 늦게 했느냐”며 “왜 그동안 국민을 불안과 혼란에 빠뜨렸느냐”고 비판했다. 이어 “국회의 입법권을 대법원의 예규 제정에 맞춰야 한다는 의견에 동의하지 않는다”고 강조했다. 내란 전담재판부 신설이 갖는 ‘진짜 함의’ 대법원 예규 제정…반격 혹은 타협안 제시 민주당 정청래 대표도 같은 날 최고위원회의 중 “대법원이 헐레벌떡 자체 안이라고 내놨다”며 “더 일찍 해야 하지 않았느냐. ‘조희대 사법부’답다는 생각이 든다”고 비판했다. 국내 헌정사에서 특별재판부는 단 2회만 설치됐다. 제헌헌법 부칙엔 “이 헌법을 제정한 국회는 단기 4278년 8월15일 이전의 악질적인 반민족 행위를 처벌하는 특별법을 제정할 수 있다”는 내용이 포함돼있었다. 이후 국회는 반민족행위처벌법 등을 제정하고, 반민족행위특별조사위원회(이하 반민특위)를 설치했다. 반민특위엔 특별검찰부와 특별재판부가 설치됐다. 특별검찰부는 검찰총장 등 9명으로 구성됐고, 특별재판부는 ▲국회의원 5명 ▲법조인 6명 ▲사회 저명 인사 5명 등 총 16명으로 구성됐다. 이들은 국회가 선출했다. 두 번째 특별재판부는 1960년 4·19 혁명 이후 개정된 제4차 개정 헌법을 근거로 설치됐다. 당시 개정 헌법엔 “3·15 부정선거 및 4·19 혁명 관련자들과 관련된 형사사건을 처리하기 위해 특별재판소와 특별검찰부를 둘 수 있다”는 취지의 부칙이 포함돼있었다. 이후 설치된 특별재판부는 부정선거관련자처벌법 제정을 거쳐 설치됐다. 민주당조차 ‘특별재판부’를 ‘전담재판부’로 수위를 낮춰 처리했다는 이유로 내란 특별재판부에 대해 불거진 위헌 시비를 거론한다. 법원은 ‘무작위 전산 재판 배당’ 원칙을 유지하고 있다. 따라서 “특정 재판부에 특정 재판을 배당한다”는 취지의 특별재판부에 대해선 기본적으로 위헌 시비가 불거질 가능성이 높다. 아직 헌법재판소가 관련 합헌·위헌 여부를 가린 적도 없다. 하지만 헌법 제27조는 “모든 국민은 헌법·법률이 정한 법관에 의해 공정한 재판을 받을 권리를 가진다”고, 제103조는 “법관은 헌법·법률에 의해 양심에 따라 독립해 재판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재판 배당의 무작위성은 재판에 대한 외부의 부당한 압력·영향력으로부터 법관을 보호해 재판의 공정성을 유지하기 위해 세운 원칙이다. 이는 위헌 시비가 불거진 핵심 이유였다. 그래서 과거엔 특별재판부를 설치하기 전에 개헌 과정 중 헌법 부칙에 그 근거를 규정했다. 헌법 부칙은 헌법 본문과 똑같은 효력을 가진다. 그래서 위헌 시비가 불거질 일은 없었다. 피해 가는 위헌 시비 하지만 위헌 시비를 피하려고 제시한 ‘내란 전담재판부’에 대해서도 논란이 이어졌다. 역설적으로 “기존 재판부 배당과 큰 차이가 없다”는 취지의 비판이 제기된 것이다. 사법부는 이미 무작위 배당의 예외를 운용하고 있다. ▲특허법원 ▲서울행정법원 ▲지역별 가정법원 등 특정 분야를 전문적으로 취급하는 법원이 따로 설치돼있는 것도 무작위 배당의 예외다. 또 각급 법원은 이미 지식 재산·환경·의료 등 특정 전문 분야를 전담할 재판부를 분류한다. 법원장 재량에 따라, 재판장들과의 협의를 거쳐 특정 사건은 ‘적시 처리 필요 중요 사건’으로 분류해 특정 재판부에 배당해서 신속한 재판 진행을 추진한다. 기소된 사건이 이미 진행 중인 재판과 사실 관계·쟁점·피고인이 같으면, 이미 진행 중인 재판을 담당하는 재판에 배당한다. 물론 민주당이 거둘 수 있는 실익이 아예 없는 것은 아니다. 정 대표는 민주당이 ‘특별’을 ‘전담’으로 바꿔가면서도 서둘러 개정안을 추진하는 이유를 분명히 짚었다. 그는 “조희대 대법원장의 사법부와 지귀연 서울중앙지법 부장판사의 재판부는 내란·외환 사건의 심리를 의도적으로 침대 축구하듯 질질 끌었다”며 “조 대법원장은 경고·조치를 해야 했다”고 주장했다. 이어 “보다 못한 입법부가 나서기 전에 사법부가 진작 내란 전담재판부를 설치했다면, 지난 1년 동안 허송세월하는 것을 보면서 국민이 분통 터지는 상황은 없었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정 대표의 주장 중 핵심 단어는 ‘조희대’와 ‘지귀연’이다. 민주당이 내란 특별재판부 설치를 추진할 당시 민주당 전현희 최고위원은 지난 9월 CBS 라디오 <김현정의 뉴스쇼>에 출연해 지 부장판사를 지칭해 “재판의 공정성에 의구심을 갖도록 하는 인사들을 전보·징계한다면, 굳이 내란 특별재판부를 만들기 위한 입법 조치를 할 필요가 있겠느냐”고 주장했다. 정 대표는 지난 15일 최고위원회의 도중 “조희대 사법부는 특검 수사 훼방꾼이 됐다”며 “조 대법원장이 지휘하는 대법원이 지난해 12월3일 내란에 동조한 건 아닌지 강한 의구심을 갖는다”고 지적했다. 사법행정사무를 총괄하는 조 대법원장의 권한 일부를 사실상 박탈하고, 지 부장판사를 내란 관련 재판에서 손 떼게 할 수 있다면, 민주당은 상당한 실익을 거둘 수 있다. 특히 중요한 것은 재판부 배당에 전국법관대표자회의를 개입시키는 것이다. 힘 실어준 진짜 이유? 전국법관대표자회의는 양승태 전 대법원장 재임 당시 사법행정권 남용 사태 이후인 지난 2018년 4월 “권한이 집중된 제왕적 대법원장을 견제하고, 법관의 독립성을 보장해야 한다”는 취지를 갖고 설치됐다. 보수 진영 일각에선 이를 일컬어 “지나치게 민주당에 친화적”이라고 비판한다. 전국법관대표자회의 설치 직후 첫 의장으로 선출됐던 최기상 당시 서울북부지법 부장판사는 현재 민주당 의원이다. 전국법관대표자회의는 지난 9월 민주당이 주장한 의제 ‘대법관 증원론’을 포함한 상고심 제도 개선 토론회를 개최했다. 이어 “사법부는 대법관 증원안을 경청하고 자성해야 한다”는 취지로 보고서를 작성·공개했다. 이 때문에 일각에선 전국법관대표자회의를 일컬어 “민주당에 힘을 설어주기 위해 토론회를 개최한 게 아니냐”는 비판 목소리도 제기됐다. 대법원의 이재명 대통령에 대판 파기환송 판결에 대해서도, 정 대표는 지난 9월 전국법관대표자회의에 “조 대법원장 사퇴 권고 등 사법부에 대한 국민적 신뢰 회복 방안을 논의해야 한다”고 요구했다. 일각에선 “대법원의 예규 제정은 반격”이라고 해석한다. 그 근거로는 “내란 전담재판부를 줄곧 반대하다가 갑자기 예규 제정을 밝힌 의도에 대한 의문이 제기된다”는 점을 들었다. 민주당은 내란 전담재판부 설치 외에도 기존 사법 체계를 모두 바꿀 만한 사법개혁안을 국회 본회의에서 통과시킬 준비를 하고 있다. 대법원의 예규 제정에 대해선 “민주당의 공세를 적절한 선에서 수용해 더 큰 공세에 대비하려는 의도”라고 보는 시선도 있다. 하지만 ‘특별재판부’가 ‘전담재판부’로 바뀌었다고 해서 다른 사법개혁안 통과 시도가 중단되는 것은 아니다. 법원으로선 기존 사법 체계를 모두 바꾸려는 민주당의 시도를 보면서 검찰이 해체되는 과정을 되새길 가능성이 아예 없는 건 아니다. 이미 민주당이 주도하는 사법개혁안 자체가 사실상 ‘기존 법원 해체’로 해석될 소지가 있다. 조금씩 권한 잃다 해체 결정 검 종착역은 헌재 최고법원 등극? 민주당 등 범여권이 검찰을 중대범죄수사청·공소청으로 분리해 완수했던 검찰 해체에 대해선 “헌법은 검찰 조직의 존재를 전제로 검찰총장의 존재를 규정했다”면서 위헌 논란을 제기하는 반대 측 의견이 있었다. 하지만 범여권은 이를 강행했다. 큰 틀에서 보면, 검찰은 ▲특별검사제도 도입 ▲검경 수사권 조정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이하 공수처) 설치 ▲중대범죄수사청·공소청 분리 등 과정을 거쳐 해체됐다. 최초의 특별검사(이하 특검)는 지난 1999년 김태정 전 검찰총장 부인에 대한 옷 로비 의혹과 한국조폐공사 노조 파업 유도 사건에 대해 진행됐던 최병모 특검이었다. 특검이 성립됐던 배경은 “검찰이 검찰총장의 부인이 연루된 사건을 제대로 수사할 수 있겠느냐”는 회의적인 시선이었다. 아울러 당시 국회 구도는 여소야대였다. 한나라당은 “사건을 축소·은폐했다”는 의혹이 제기되는 흐름을 타고 강하게 밀어붙여 특검법 제정을 주도했다. 이후 현재까지 개별 특검법은 총 16개가 통과됐고, 상설 특검은 6회 추진됐다. 검찰로서는 1999년 최병모 특검 설치가 수사권·기소권 독점이 무너지는 순간이었다. 현재까지 총 22회의 특검이 성립됐다는 것은 검찰에 대한 각계의 불신을 상징하는 중요 사실관계라고 할 수 있다. 그런데 이것이 끝은 아니었다. 검찰을 노리는 다음 단계는 검경 수사권 조정이었다. 최초의 검경 수사권 조정은 지난 2011년 진행됐다. 이명박 당시 대통령은 국무회의에서 사법경찰관이 검사의 수사 지휘에 이의를 제기하는 재지휘 건의 제도 신설 등의 내용이 담긴 안을 대통령령으로 제정해 의결했다. 지난 2016년엔 ▲진경준 게이트 ▲정운호 게이트 ▲김형준 전 부장검사의 스폰서 의혹 ▲최순실 게이트 등이 연이어 발생해 검찰의 신뢰도에 대한 강한 문제 제기가 이어졌다. 이는 문재인정부 출범 이후 장기간 논의된 검경 수사권 논의로 연결된다. 공수처도 설치됐다. 민주당 집권 후 노무현 전 대통령 사망 사건을 강하게 기억하는 지지자들의 비원을 외면하긴 어려웠던 측면도 있었다. 그렇게 검찰은 서서히 권한을 빼앗겼다. 그러다가 지난 9월에 이르러 검찰은 내년부터 중대범죄수사청과 공소청으로 갈라질 운명에 처했다. 특히 중대범죄수사청은 행정안전부로 옮겨진다. 서서히 권한을 빼앗기다가 끝내 해체를 앞둔 운명을 맞게 된 것이다. 민주당 등 범여권은 ▲법원행정처 폐지 ▲법 왜곡죄 도입 ▲대법관 증원 ▲재판소원 도입 등 사법개혁안을 시도하고 있다. 범여권이 사법개혁안을 모두 통과시킨다면, 사법부로서는 “검찰에 이어 사법부도 한순간에 와해된다”고 인식할 가능성을 배제하기 어렵다. 한순간에 와해된다 법원행정처가 없어지면 대법원장의 권한이 줄어든다. 법 왜곡죄가 도입되면, 판사의 재판도 법적 처벌 범위 안에 포함될 위험에 노출된다. 대법관이 늘어나 대법관의 권위·희소 가치가 줄어든 후 재판은 헌법소원 제기 범위 안에 포함된다. 최종 종착지는 헌법재판소가 대법원을 제친 후 최상위 사법기관으로 규정될 순간임을 배제하기 어렵다. 지난 24일은 사법부가 느낄 법한 공포가 처음 피부에 와닿은 날이었을 수도 있다. 새해엔 민주당과 사법부의 전쟁이 더욱 거칠게 진행될지도 모른다. <ctzxp@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