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슈&인물> 정교유착 의혹 정점 한학자

자식도 관리 못하면서 세계 평화?

[일요시사 취재1팀] 안예리 기자 = 최근 정치자금법 위반과 청탁금지법 위반 등 혐의로 한학자 통일교 총재가 구속됐다. 그동안 자신은 정치에 개입하지 않는다고 선을 그어왔던 한 총재가 교단 자금 로비 의혹으로 구속되면서 교단이 크게 흔들리고 있다.

한학자는 세계평화통일가정연합(이하 통일교)의 2대 총재다. 통일교 창설자 문선명의 배우자이자 후계자인 그는, 남편 사망 이후 교단을 실질적으로 이끌어왔다.

모태 신앙
기독교 집안

한 총재는 1943년 2월10일 평안남도 안주군 안주읍 신의리에서 태어났다. 그가 통일교에 몸을 담게 된 건 가정환경의 영향이 컸다. 어머니 홍순애는 장로교 신앙을 가진 독실한 기독교 집안 출신이었다.

외동딸이었던 한 총재는 어머니의 영향 아래서 자연스럽게 신앙 생활에 젖어들었다. 1950년 한국전쟁이 발발하자 가족은 피란길에 올라 남쪽으로 내려왔다. 한 총재는 여러 차례 학교를 옮겨 다니다가 초등학교를 마친 뒤 성요셉 간호학교에 진학했다.

그는 10대 시절, 통일교와 직접적인 인연을 맺게 된다. 처음 문선명을 본 것은 만 14세 무렵이었다. 교단 내부 증언에 따르면, 당시 어린 소녀였던 한 총재는 교단 집회에서 문선명을 멀리서 바라보는 수준이었지만 이후 교단 내에서 차츰 주목을 받기 시작했다.


당시 문선명은 이미 ‘메시아’를 자처하며 교세 확장에 나서고 있었고, 이를 가까이에서 접한 한 총재의 모친 홍순애는 그의 가르침에 깊이 매료됐다.

이후 홍순애는 교단 내에서 ‘대모님’으로 불리며 상당한 영향력을 발휘했다. 청평 수련원 등지에서 교인들의 영적·육적 치유를 담당한 것으로 알려져 있으며, 신도들은 홍순애가 신령한 기운을 지녔다고 믿었다. 모친의 입지 덕분인지 한 총재도 함께 교단 내에서 눈도장을 찍었다.

어린 시절부터 이미 교단 핵심부와 가까운 위치에 있었던 셈이다.

1960년 3월27일, 한 총재는 문선명과 약혼식을 올렸다. 당시 교단에서는 이 약혼식을 ‘가약식’이라 불렀고, 불과 보름여 뒤인 4월11일에 열린 결혼식을 ‘성혼식’으로 불렀다. 교단 내부에서는 이 두 의식을 혼인 절차가 아닌, 신학적인 의미가 담긴 중요한 단계로 해석했다.

가약식은 ‘하늘 앞에서의 약속’, 성혼식은 ‘인류 앞에서의 선언’이라는 의미를 부여했다.

당시 한 총재는 만 17세였으며, 문선명은 40세였다. 나이 차이가 23살에 달하는 결혼은 교단 안팎에서 적잖은 파장을 일으켰다. 교단은 이를 ‘참부모 성혼식’이라 부르며 통일교의 역사적인 순간으로 선포했다. 교인들은 성혼식을 통해 한 총재와 문선명이 인류의 영적 부모로 자리매김했다고 여겼다.

한 총재가 문선명의 배우자가 된 배경에는 여러 사정이 있었다. 문선명은 이미 1959년부터 계시에 따라 새로운 배우자를 맞이해야 한다고 밝히며 결혼 준비를 시작했다. 당시 교단 내에서는 한 총재 외에도 몇몇 신부 후보가 거론됐다. 대표적인 인물이 김명희, 윤정혜였다.


14세 무렵 문선명 처음 만나
말 많고 탈 많은 ‘7남 7녀’

김명희는 일본에서 선교활동을 맡았으나 사명을 완수하지 못했고, 윤정혜는 끝내 문선명에게 절대적 복종을 맹세하지 못하면서 자격을 상실했다. 이 같은 과정을 거쳐 한 총재가 최종 배우자로 확정됐다.

문선명은 한 총재를 직접 만나기 전, 그가 신부로서 갖출 자질이 있는지를 확인하기 위해 긴 시간을 들였다. 1960년 2월26일, 첫 대면 자리에서 9시간 동안 질문을 던지며 신앙과 소명 의식을 검증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후 한 총재는 교단 원로 최원복으로부터 한 달간 ‘신부 수업’을 받았다.

신부로서의 역할, 교단 지도자의 아내로서 지녀야 할 태도 등을 익히는 과정이었다.

결혼 직후 한 총재와 그의 모친 홍순애는 교단 내 신도들의 시기와 불만을 누그러뜨리기 위해 의도적으로 검소한 생활을 했다. 이들은 3년간 청빈한 삶을 유지하며 다른 신도들과 크게 다르지 않은 조건에서 생활했다고 전해진다. 이는 한 총재가 ‘교단의 어머니’로서 신뢰를 확보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했다.

그러나 결혼만으로 입지를 굳힐 수는 없었다. 교단 내부에서 문선명 부부가 ‘참부모’로서의 위치를 인정받고 확고히 자리 잡기까지는 7년이라는 시간이 필요했다. 이 기간은 교단의 교리와 상징을 재정립하고, 신도들로부터 신뢰를 쌓아가는 과정에 사용했다.

한 총재는 남편과 함께 교단 의례와 활동에 참여하면서 ‘참어머니’라는 호칭을 얻었고, 이후 교단의 핵심적 지도자로 자리 잡을 수 있는 토대를 다졌다.

두 사람 사이에서는 7남7녀, 총 14명의 자녀가 태어났다. 교단 내부에서는 이들이 ‘참가정’이라 불렸다. 한 총재가 많은 자녀를 둔 것에 비해 그중에 후계자로 낙점된 자식은 단 한 명도 없었다. 장남 문효진은 음악과 사업을 병행했다.

그는 미국과 한국을 오가며 헤비메탈 밴드 활동을 했고, 10여장의 음반을 발표하기도 했다. 동시에 연예기획사를 설립해 연예계 진출을 시도했으나 마약 투약과 폭행 논란에 휘말리면서 교단 안팎으로 구설에 올랐다.

당시 전처 홍난숙이 미국에서 문선명 일가에 대해 폭로하는 책 <In the Shadow of the Moons>을 쓰며 큰 파장을 일으켰다. 홍난숙은 참가정을 떠난 것을 ‘탈출’이라고 표현하기도 했다.

이후 문효진은 재혼하며 삶의 안정을 되찾는 듯했지만 2008년 서울 한남동 자택에서 심장마비로 세상을 떠났다. 차남 문흥진은 어린 시절부터 총재 부부가 각별히 아꼈던 아들이었다. 문선명이 ‘효자’라 칭할 정도였으나, 1984년 교통사고로 18세 나이에 요절했다. 교단은 그를 기리는 의미에서 사후 영혼 결혼식을 치렀다.

17세와 40세
영적 부모로


셋째 아들 문현진은 한때 유력한 후계자로 거론됐다. 미국 하버드대에서 공부한 그는 통일교 국제재단과 글로벌피스재단 등을 이끌며 경영 능력을 인정받았다. 그러나 교단 재정 운영과 교리 해석을 두고 어머니 한 총재와 충돌하면서 결국 결별 수순을 밟았다.

여의도 파크원 개발 등 대규모 자산을 둘러싼 소송전으로 이어졌고, 이 과정에서 독자 노선을 걷게 됐다.

넷째 아들 문국진은 통일교 계열사의 경영을 맡으며 한동안 내부 실권을 쥐었으나, 형제들과의 갈등과 내부 불신으로 결국 자리에서 물러났다. 이후 동생 문형진과 함께 미국으로 건너가 ‘세계평화통일성전(생츄어리 교회)’에 합류했다.

다섯째 아들 문권진은 비교적 조용히 지내며 별다른 활동을 하지 않았고, 여섯째 아들 문영진은 1999년 미국 네바다주 리노의 한 호텔에서 추락해 사망했다. 경찰은 자살 가능성을 언급했으나 당시 교단 측은 사고사라는 입장을 내놨다. 당시 그는 20대 청년으로, 결혼 후 얻은 딸은 형 문국진 가정으로 입양됐다.

막내아들인 일곱째 문형진도 후계자로 지목된 바 있다. 하버드대에서 종교학을 전공하고 세계회장 자리에 올랐지만, 한 총재와 갈등 끝에 교단에서 축출됐다. 그는 이후 미국 펜실베이니아 분파인 ‘생츄어리 교회’를 세우고 총기 무장 교리를 내세우며 논란을 일으켰다.

신도들이 총기를 들고 합동결혼식을 진행하는 장면은 미국 언론에서도 보도할 정도로 파장이 컸다.


딸들도 마찬가지다. 장녀 문예진은 결혼과 이혼을 겪으며 네 자녀를 뒀는데 통일교에서 활동은 하지 않았다. 둘째 딸은 태어난 지 8일 만에 세상을 떠났고, 셋째 딸 문인진은 미국 통일교 회장을 맡으며 활동에 나섰으나, 유부남과의 불륜 및 사생아 출산 사실이 드러나며 직위를 내려놓으며 결국 이혼 후 재혼했다.

넷째 딸 문은진은 승마 선수로 활동했으며 한때 국가대표로 선발되기도 했다. 하지만 가정사와 이혼 문제로 교단 내 입지가 약화됐다. 다섯째 딸 문선진은 2015년 7남 문형진이 물러난 뒤 세계회장직에 올라 교단을 대표했으나, 2019년 이후 자리에서 물러났다.

여섯째 딸 문연진은 미국 방송 프로그램에 출연해 스스로를 “재벌 2세”라 소개하며 화제를 모았다. 다큐멘터리 감독을 희망한다고 밝혔으나 교단과는 거리를 두는 모습이었다. 막내딸 문정진은 통일교와 관계없는 일반인과 결혼하며 교단 활동과는 선을 그었다.

교단에서는 이른바 ‘왕자의 난’으로 불린 후계 다툼이 벌어진 때가 있었는데, 3남 문현진은 교단 재정 투명성을 주장했으나 교권과 대립하며 배제됐고, 4남 문국진은 기업 운영을 맡았으나 내부 갈등으로 자리에서 물러났다. 7남 문형진은 후계자로 지목됐지만, 한 총재와의 갈등 끝에 교단을 떠나 미국에서 분파를 창립했다.

‘왕자의 난’
후계 다툼

결국 자녀 가운데 누구도 후계자로 자리를 굳히지 못했다.

2012년 9월 문선명이 세상을 떠난 뒤 교단은 잠시 혼란에 빠졌다. 창립자의 부재로 후계 구도가 불투명했기 때문었이다. 그러나 장례 기간 동안 한 총재가 교단을 대표해 외부 인사를 맞이하고 주요 행사를 주관하면서 자연스럽게 그에게 시선이 쏠렸다.

교단 내부에서도 ‘참어머니’를 중심으로 힘을 모아야 한다는 공감대가 빠르게 형성됐다.

이듬해 한 총재는 통일교 총재로 공식 취임했다. 취임 당시 그는 남편의 뜻을 이어 교단을 이끌어가겠다고 선언하며 조직 결속과 교세 유지를 강조했다. 이후 교단 산하 주요 조직의 업무를 맡으며 사실상 단일 지도 체제를 굳혔다.

선문학원 이사장으로 취임해 대학과 연구기관을 관리했고, 세계평화여성연합 총재로 활동하며 교단 여성 신도와 국제 활동을 아우르는 역할을 맡았다.

한 총재는 통일교의 주요 업무들을 차례로 장악하면서 교단 운영 전반은 한 총재 중심으로 재편됐다. 내부적으로는 ‘참어머니’라는 호칭을 내세워 권위를 강화했고, 대외적으로는 총재로 활동하며 입지를 공고히 했다. 그 결과 문선명 사후에 불거졌던 분열 가능성은 어느 정도 수습됐고, 주요 의사결정은 모두 한 총재의 손에서 이뤄지게 됐다.

통일교의 공식 명칭은 세계평화통일가정연합이다. 1954년 5월1일 서울 북학동에서 문선명에 의해 만들어졌다. 당시 이름은 ‘세계기독교통일신령협회’였으며, 기독교 교파의 분열을 극복하겠다는 취지로 출범했다. 이후 교세가 확장되면서 ‘세계평화통일가정연합’이라는 이름을 내걸게 된다.

문선명은 예수가 완수하지 못한 사명을 자신이 이어받아야 한다는 계시를 받았다고 했고, 이를 바탕으로 ‘참된 가정을 세워야 인류가 구원받는다’는 신학을 만들었다. 통일교의 모든 교리는 이 믿음에서 출발한다.

교리의 핵심은 <원리강론>이라는 경전에 담겼다. 하나님이 창조한 세상은 본래 완전했으나 아담과 하와의 타락으로 질서가 무너졌다고 본다. 인류 역사는 이를 회복하기 위한 ‘복귀’의 과정이며, 예수가 완성하지 못한 사명을 문선명이 이어받았다는 게 교단의 주장이다.

아담과 하와의 원죄를 끊고 하나님의 혈통을 되찾아야 구원이 완성된다는 논리다. ‘참부모’라는 개념도 여기에서 비롯됐다. 신도들은 이 부부를 통해 인류가 다시 태어나야 한다고 믿었다. 기존 기독교가 예수를 구세주로 바라보는 것과 달리, 통일교는 ‘참부모’의 출현이야말로 인류 구원의 열쇠라고 강조했다.

교단 자금 활용 정치권 로비 혐의 구속
대선 직전 ‘특별지시 프로젝트’ 추적

통일교 하면 떠오르는 장면 가운데 하나가 합동 결혼식이다. 교단은 이를 ‘축복식’이라 부른다. 수천쌍, 때로는 수만쌍의 신도들이 한날한시에 부부가 되는 의식이다. 교단은 이를 ‘축복식’이라 부르며, 신도 부부가 과거의 죄성을 끊고 하나님의 혈통을 잇는다고 설명한다.

1960년대부터 시작된 이 합동 결혼식은 세계의 관심을 받았다. 국적과 인종을 초월한 결혼은 통일교가 내세우는 ‘세계 평화’의 상징이기도 했다. 실제로 교단이 짝을 정해주는 경우가 많았고, 신도들은 이를 하나님의 뜻으로 받아들였다.

이 같은 독특한 의례는 교세 확장의 동력이 됐다. 가족 단위의 신도들을 만들고, 국제결혼을 통해 국경을 넘어선 네트워크를 형성했다. 교단은 이를 “하나님의 세계적 가정”이라 불렀고, 신도들은 이를 통해 새로운 정체성을 부여받았다.

통일교는 선문학원과 선문대학교를 비롯한 학교와 연구기관을 설립해 자체 인재를 양성했다. 여성 신도를 결집하기 위해 세계평화여성연합을 조직했고, 청년 조직도 운영하며 차세대 신도들을 교육했다.

언론사와 출판사를 세워 교단 메시지를 널리 퍼뜨렸으며, 예술단과 오케스트라를 운영하며 문화 활동에도 투자했다. 경제 활동도 활발했다. 문선명은 해양 산업을 강조하며 수산업에 손을 댔고, 무역과 건설, 식품 사업에도 진출했다. 한국뿐 아니라 일본, 미국 등 해외에서도 기업을 세우며 사업을 확장해 나갔다.

정치와의 관계도 빼놓을 수 없다. 통일교는 출범 이후 줄곧 반공주의를 내세웠다. 냉전이 격화되던 시기, 공산주의를 ‘사탄의 사상’으로 규정하며 국제 반공 연합을 후원했다. 이 과정에서 미국과 일본, 한국 정치권과 다양한 접점을 만들었다.

미국에서는 닉슨 대통령 시절부터 교단의 로비 문제가 언급됐고, 일본에서는 자민당 정치인들과 교류했다는 사실이 알려졌다. 한국에서도 집권 세력과의 연관성이 여러 차례 문제로 불거졌다.

이런 행보와 교리로 인해 통일교에 대한 세간의 비판은 상당하다. 기독교계는 통일교의 ‘참부모’ 교리가 정통 교리와 양립할 수 없다고 선을 그었다. 교단 운영 방식도 논란이었다. 신도들에게 고액의 헌금을 요구하거나, 영적 상품을 고가에 판매했다는 지적이 이어졌다.

일본에서는 피해자 가족 모임이 꾸려질 정도로 사회 문제가 됐다. 결국 일본 정부는 교단 법인 해산 절차를 밟기 시작했다. 미국과 유럽 일부에서는 통일교를 컬트, 즉 사이비 집단으로 분류했다. 폐쇄적이고 권위적인 조직 구조, 그리고 정치적·경제적 영향력 행사 방식이 문제로 지목됐다.

한편, 한 총재의 구속으로 통일교의 후계 구도가 다시 주목받고 있다. 교단은 공식적으로 “천애축승자를 중심으로 현 상황에 대비하겠다”고 밝혔다. 천애축승자는 장남 문효진의 아들 문신출·문신흥 형제를 말한다. 지난 4월13일 통일교가 ‘천원궁 천일성전 입궁식’을 열며 지명한 사실상의 후계자로 거론되는 인물들이다.

아들 대립
폭발 직전

현재 3남 문현진은 글로벌피스재단을 중심으로 독자 노선을 걷고 있고, 7남 문형진은 미국에서 생츄어리 교회를 운영하며 모친을 정면 비판하고 있는 상황이다. 전문가들은 구속 이후 아들들의 추가 폭로 가능성까지 언급하며, 교단의 향후 권력 재편이 불가피하다고 보고 있다.

<imsharp@ilyosis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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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춤 추는 이정현 마이웨이

칼춤 추는 이정현 마이웨이

[일요시사 정치팀] 박형준 기자 = 국민의힘 이정현 공천관리위원장이 거침없이 칼을 휘두르고 있다. 주호영 국회부의장·김영환 충북도지사가 이 공관위원장의 칼에 희생됐다. 변방의 이방인이어서 휘둘러야 했던 칼의 운명은 반복되고 있다. 그는 왜 칼을 휘두르는 걸까? 국민의힘 이정현 공천관리위원장(이하 공관위원장)이 지난 13일 “여러 의견을 존중하는 과정에서 제가 생각했던 방향을 더는 추진하기 어렵다고 판단했다”면서 사퇴했다가 이틀 후 번복했다. 이 공관위원장은 사퇴했던 이유를 구체적으로 밝히지 않았다. 이틀 후 또 번복 정치권 안팎에선 대체로 이 공관위원장의 갑작스러운 사퇴의 주요 원인으로 오세훈 서울시장과의 갈등을 주된 원인으로 거론했다. 오 시장은 ▲윤석열 전 대통령과의 절연에 소극적인 지도부 혁신 ▲혁신적인 선거대책위원회 조기 출범 등을 요구하면서 지방선거 공천 기간 내 후보 등록을 하지 않았다. 이 공관위원장의 사퇴 번복에는 장 대표가 큰 역할을 한 것으로 알려졌다. 그는 사퇴 번복 후 “장 대표가 지난 14일 공천 혁신을 완수해 달라면서 공천 관련 전권을 맡긴다는 뜻을 전해왔다”고 밝혔다. 따라서 이 공관위원장의 사퇴는 대체로 ‘무력 시위’로 해석되고 있다. 결국 오 시장은 지난 17일 국민의힘 서울시장 경선 후보로 등록했다. 복귀한 이 공관위원장은 ‘장 대표가 부여한 공천 관련 전권’을 거침없이 휘둘렀다. 지난 16일에 “국민의힘 공천관리위원회(이하 공관위)는 박형준 부산시장 공천 컷오프를 검토하고 있다”는 소식을 전했다. “박 시장을 컷오프하고, 국민의힘 주진우 의원을 단수공천하자”고 주장한 핵심은 이 공관위원장이었다. 그러자 부산에 지역구를 둔 국민의힘 의원들이 장 대표를 방문해 항의했고, 장 대표는 박 시장·주 의원 간 경선을 결정했다. 같은 날 공천이 날아간 현역 광역자치단체장은 김영환 충북도지사였다. 공관위는 김 지사를 컷오프한 이유를 구체적으로 밝히지 않았다. 그저 “김 지사의 공적·업적을 부정·평가절하 하기 위한 게 결코 아니”라면서 시대 교체·세대 교체를 언급했다. 정치권에선 ▲만 70세 고령 ▲수뢰 혐의로 경찰 수사를 받는 등 사법 리스크 ▲재임 중 각종 발언 논란 등 대체로 김 지사의 약점이 컷오프의 실제 이유 아니겠느냐는 추측이 돌고 있다. 김 지사는 곧바로 “특정인을 두고 면접을 진행하다니 기가 막힌다”면서 일각에서 거론됐던 ‘국민의당 김수민 전 의원 충북도지사 후보 내정설’을 암시했다. 김 전 의원은 지난 2024년부터 1년 동안 충북 정무부지사를 지냈다. 김 지사는 지난 18일엔 서울남부지법에 공천 배제 효력 정지 가처분을 신청했다. 이어 다음 날 진행된 심문에서 “이 공관위원장이 김 전 의원에게 개인적으로 연락해서 출마 여부를 타진했다”며 “절차적 정당성이 파기됐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공관위는 이와 상관없이 지난 20일 김 지사를 제외한 경선 구도를 확정했다. 이 공관위원장은 국민의힘 대구시장 후보 공천과 관련해서도 존재감을 드러냈다. 공관위는 지난 22일 국민의힘 대구시장 후보 경선과 관련해 주호영 국회부의장·이진숙 전 방송통신위원장을 공천에서 배제했다. 광주시장 출마 아닌 공관위원장 지방선거와 묶인 운명의 끝은? 대구시장 후보 경선에 대해선 한동안 “국민의힘 최은석 의원 공천이 사실상 내정된 게 아니냐”는 설이 돌아다녔다. 그러자 최 의원은 지난 21일 자신의 페이스북을 통해 “이 공관위원장은 공천 심사 면접에서 처음 만났다”면서 이를 강하게 부인했다. 주 부의장은 공천 배제에 크게 반발했다. 그는 공천 배제 가능성이 거론되던 지난 17일 자신의 페이스북을 통해 “대구를 공천 실험장으로 삼으면 안 된다”며 “대구시장을 더불어민주당에 상납하려는 거냐”고 비판했다. 이어 “이 공관위원장은 대구의 자존심을 더 이상 짓밟지 말라”고 요구했다. 하지만 주 부의장 공천 배제는 지난 22일 확정됐다. 그는 지난 25일 가처분 신청과 무소속 출마 가능성을 언급했다. 일각에서 의아하게 해석하는 지점은 유튜버 고성국씨 등 강경 보수 진영에서 강하게 지지했던 이 전 위원장이 공천에서 배제됐다는 것이다. 이를 두고, “추 의원이 국민의힘 대구시장 후보로 확정돼 의원직에서 물러나면, 이 전 위원장이 추 의원의 지역구 대구 달성 재보궐선거에 출마하는 게 아니냐”는 설이 나왔다. 반대로 “주 부의장이 무소속으로서 대구시장 선거에 출마하면, 국민의힘 한동훈 전 대표가 주 부의장의 지역구인 대구 수성갑에 출마하는 것 아니냐”는 설도 나오고 있다. 국민의힘 친한(친 한동훈)계 일원으로 거론되는 국민의힘 박정하 의원은 지난 24일 MBC 라디오 <김종배의 시선집중>에 출연해 “주 부의장의 공천 배제엔 감정이 어느 정도 반영돼있는 게 아니냐는 생각을 하지 않고선 해석이 잘 안 된다”며 “장 대표의 생각도 분명히 들어가 있다고 본다”고 주장했다. 이어 주 부의장과 한 전 대표의 연대설에 대해서도 “한 전 대표가 보수 재건 후 당에 돌아오는 길을 찾아가는 길에 있어선 주 부의장의 선택 여하에 따라 모든 가능성을 다 열어 검토할 것이라고 본다”면서 연대설을 부정하진 않았다. 장 대표는 지난 23일 국민의힘 대구시당을 방문해 “공천 관련 모든 것은 당 대표인 제 책임”이라면서 공천 내정설에 대한 간접적인 의견을 밝혔다. 이어 “시민이 납득할 수 있는 경선을 치르겠다는 말씀을 드렸고, 당 대표로서 역할을 하겠다”고 밝혔다. 하지만 광역지방자치단체장 경선 상황·흐름에 대해선 “영남권 기성 중진과 반 장동혁 성향 인사를 배제하는 방향으로 가는 게 아니냐”는 의문이 나오고 있다. 일각에선 장 대표와 이 곤공관위원장이 각각 ‘굿 캅’과 ‘배드 캅’으로 역할을 분담한다고 의심하고 있다. 의외의 연대설 이 공관위원장의 활동 방향을 놓고, 일각에선 그가 “사실상 장 대표의 칼 역할을 하고 있다”고 보고 있다. 그의 삶과 정치 활동은 국민의힘 주류 정치인과 많이 다르다. 국민의힘은 영남을 주된 지역 기반으로 두고 있지만, 이 공관위원장은 전남 곡성 출신이다. 그가 태어나 자란 곡성에서도 특히 위치가 외진 목사동면 동암리로 알려졌다. 그는 고등학생 시절부터 정치에 관심을 둔 것으로 알려졌고, 정계 입문 계기는 그의 고향을 지역구로 두고 국회의원으로 활동했던 민주정의당 구용상 전 의원의 비서관으로 발탁된 것이었다. 구 전 의원이 지난 1988년 제13대 총선에서 낙선한 후 이 공관위원장은 민주정의당의 말단 간사로 특채됐다. 영남 기반 정당의 호남 출신 당직자였던 그는 훗날 “늘 근본 없는 놈 취급을 받았다”고 주장했다. 그로부터 26년 후 그는 고향 전남 순천·곡성에서 진행된 재보궐선거에서 새누리당 후보로 당선되는 이변을 일으켰고, 다시 2년이 지나선 새누리당 대표로 당선됐다. 당선 이후 그의 28년에 대해선 “한 편의 드라마” 혹은 “인간 승리”라는 평가도 나왔다. 이 공관위원장에겐 2명의 이 위원장이 있다. 그는 재보궐선거 당시 49.43%를 득표해 40.32%를 득표한 당시 새정치민주연합 서갑원 후보를 물리쳤다. 이 후보의 당선엔 서 후보와 노관규 전 순천시장의 갈등도 큰 영향을 미쳤다는 분석이 있다. 하지만 정치적 흐름만을 탄 결과라고 보기 어렵다는 판단도 있다. 고향 곡성에서 이 공관위원장에 대한 지지세가 높아 70% 이상 득표를 한 것으로 알려졌다. 아울러 그는 새누리당이 아닌 ‘곡성 출신 이정현’을 내세워 자전거를 타고 지역구를 누볐다. 당시 그는 스스로 ‘머슴’ 혹은 ‘촌놈’을 자처했다. 그러면서 “고향을 위해 미치도록 일하고 싶다”며 “죽도록 부려먹다가 못하면 그때 쓰레기통에 다시 넣으시더라도 이번 한번만큼은 제 손을 한 번 잡아달라”고 호소하는 등 지역의 호감을 얻는 발언을 이어나간 영향도 컸던 것으로 분석됐다. 비판·조롱 낯설게하기 지난 2016년 총선에선 지역구 조정 영향으로, 이 공관위원장은 전남 순천에 출마했다. 고향이 아닌 지역구에 출마한 것은 일견 불리할 수도 있는 선택이었다. 하지만 그는 44.54%를 득표해 당선됐다. 그는 재보선 당선 이후 매주 지역구를 방문해 현장을 누빈 것으로 알려졌다. 아울러 당시 야권이었던 더불어민주당·국민의당에서 모두 후보를 출마시킨 구도의 영향도 호재로 작용한 것으로 전해졌다. 이 공관위원장은 지난 2022년 지방선거에선 국민의힘 전남도지사 후보로 출마해 선거 비용 보전액 하한선 15%를 넘기는 18.81%를 득표해 “선전했다”는 평가를 받았다. 그런데 그는 중앙 정치에선 다른 모습을 보여준다. 그가 중앙 정치에서 큰 물의를 일으켰을 때 그 원인은 대체로 설화였다. 청와대 홍보수석비서관으로 재직했던 2014년엔 길환영 당시 KBS 사장에게 연락해 “세월호 참사 관련 해경에 대한 비판을 지금은 자제해 달라”고 요구한 게 2년여가 흐른 후 뒤늦게 알려져 물의를 일으켰다. 이는 방송 편성 관련 규제·간섭을 금지한 방송법 위반 행위가 될 위험이 있었는데 실제로 그는 벌금형을 확정받았다. 새누리당 최고위원이었던 지난 2015년엔 광주를 방문해 ‘광주 비하’로 해석될 수 있는 발언을 했다. 당시 그는 “광주 시민이 이정현이를 쓰레기통에 버렸다”며 “박근혜 대통령이 나 같은 쓰레기를 끄집어내서 탈탈 털어 청와대 정무수석·홍보수석을 시켜주는 배려를 했다”고 주장했다. 박 전 대통령에게 과잉 충성하는 이 공관위원장의 모습이나 발언은 지금도 쉽게 찾을 수 있다. 새누리당 대통령 후보였던 박 전 대통령은 지난 2012년 9월 과거사 사과 기자회견에서 회견문을 읽은 후 고개 숙여 인사했다. 당시 상황을 촬영한 사진 중에 후보 공보단장이었던 이 공관위원장이 “질의 시간을 가지면 안 된다”는 의미로 손가락으로 X 표시를 만드는 사진도 있다. 새누리당 대표였던 지난 2016년 11월엔 야권이 박 전 대통령의 임기 단축 협상을 거절하고 탄핵소추를 추진하자 “그 사람들이 탄핵을 실천하면 뜨거운 장에 손을 집어넣겠다”고 반발해 한동안 이 공관위원장을 조롱하는 합성 사진이 범람했다. 정치인은 대체로 선거 현장·당내 투쟁에선 정반대의 모습을 보여준다. 일부 정치인은 그 간극이 커서 주목받는다. 이 공관위원장의 태도는 “상대방에게 진정성 있게 몰입한다”는 장점이 될 수도 있다. 하지만 상황에 따라 그 진정성 있는 몰입은 정반대의 이미지를 연출한다. 지역구에선 유권자들이 전통적인 지역 구도에 따른 관성을 무시하고 그를 지지하는 이변으로 이어진다. 반대로 중앙 정치에선 지지자들의 환호와 반대파의 비판·조롱으로 나뉜다. 주호영·김영환 치니 한동훈 꿈틀…나비효과? 마구 휘두르고 장동혁이 수습…굿 캅 배드 캅? 20세기 독일 철학자 마르틴 하이데거의 존재론에 따르면, 이 공관위원장은 ‘호남 출신 보수정당 소속’으로 던져졌다. 이는 그 스스로 선택한 것이지만, 주어진 운명이 그를 던진 측면도 있다. 던져진 상황을 극복하는 것은 그의 선택이 부여한 운명이었다. 이 때문에 이 공관위원장은 고향에선 ‘친근한 고향 사람’이 돼 선거에 임하면서 국회의원으로 당선됐다. 하지만 보수정당에 뿌리내릴 수 있도록 그를 발탁한 사람은 박 전 대통령이다. 박 전 대통령에 대한 충성은 그 스스로 선택해 자신의 삶을 던진 것으로 볼 수 있다. ‘영남 출신 엘리트’ 주축으로 구성된 국민의힘 기준에서 이 공관위원장은 변방의 이방인이다. <조선일보> 양상훈 주필은 지난 2016년 8월 이 공관위원장이 새누리당 대표에 당선된 후 그에 관한 칼럼을 썼다. 양 주필에 따르면, 이 공관위원장은 당직자 시절 자신보다 어린 당 출입기자로부터 반말을 들어가면서 그의 심부름을 했다. 변방의 이방인이었기 때문에 그에 대한 태도는 훨씬 ‘편하게’ 나왔을 가능성을 배제하기 어렵다. 하지만 그는 지금도 국민의힘에 있다. 러시아 문예비평가 빅토르 슈클로프스키는 시 창작과 관련해 ‘낯설게하기’란 이론을 창안했다. “익숙한 대상을 생경하게 바라보면서 그 본질을 시로 표현할 수 있다”는 취지의 이론이다. 그런데 이 공관위원장은 존재 자체가 ‘낯설게하기’였다. 고향에선 보수 정당 소속이기 때문에 낯설다. 보수 정당에선 호남 출신인 그의 존재는 낯설면서도 동시에 강렬하다. 공천관리위원장으로서 시행하는 주요 정치인 컷오프도 그가 낯선 존재이기 때문에 더욱 부각된다. 박 전 대통령에 대한 그의 충성도 반대파·비판자의 관점에선 개종자의 열정·과잉 사회화로 보일 여지가 있다. 개종자의 열정은 원래 특정 집단 소속이 아니었던 사람이 집단에 들어간 이후 기존 구성원보다 더 근본주의적인 태도로 열정을 쏟아붓는 현상을 말한다. 이는 대체로 “난 원래 이 집단 사람이 아니었다”는 불안을 해소하기 위해 진행된다. 그에게는 늘 ‘근본’과 관련된 비판을 받으면 안 된다는 불안감이 있기 때문이다. 과잉 사회화도 뒤늦은 주류 문법 학습 때문에 유연성을 발휘하기보다 집단의 규범을 그대로 집행하려는 경향으로 이어지는 측면을 일컫는다. 개종자의 열정·과잉 사회화를 상징하는 역사 속 인물로는 긍정적인 측면에선 한때 유대교 바리새파에서 촉망받았다가 예수의 가르침을 전파한 사도 바울을 언급할 수 있다. 부정적인 측면에선 20세기 소련의 공안 탄압을 상징하는 라브렌티 베리야를 언급할 수 있다. 조지아 출신인 베리야는 이오시프 스탈린에게 발탁된 후 대숙청을 진두지휘했던 니콜라이 예조프를 몰아내고 방첩기관 NKVD의 수장이 됐다. 지금도 베리야는 공안 탄압을 상징한다. 특정 집단에 기반이 없는 이방인이 그 집단에서 생존하기 위해 누군가의 ‘칼’이 되는 것은 숙명에 가깝다. 숙명적으로 묶인 운명 이 공관위원장은 원래 광주·전남통합시장 출마를 준비했다가 국민의힘 공천관리위원장으로 임명됐다. 그는 임명된 직후 군복을 연상시키는 야전상의를 입고 다시 등장했다. 사실상 장 대표의 칼로써 공천을 진두지휘하면서 그의 정치적 운명은 지방선거에 묶였다. 그의 운명은 여전히 칼인 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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