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슈&인물> 정교유착 의혹 정점 한학자

자식도 관리 못하면서 세계 평화?

[일요시사 취재1팀] 안예리 기자 = 최근 정치자금법 위반과 청탁금지법 위반 등 혐의로 한학자 통일교 총재가 구속됐다. 그동안 자신은 정치에 개입하지 않는다고 선을 그어왔던 한 총재가 교단 자금 로비 의혹으로 구속되면서 교단이 크게 흔들리고 있다.

한학자는 세계평화통일가정연합(이하 통일교)의 2대 총재다. 통일교 창설자 문선명의 배우자이자 후계자인 그는, 남편 사망 이후 교단을 실질적으로 이끌어왔다.

모태 신앙
기독교 집안

한 총재는 1943년 2월10일 평안남도 안주군 안주읍 신의리에서 태어났다. 그가 통일교에 몸을 담게 된 건 가정환경의 영향이 컸다. 어머니 홍순애는 장로교 신앙을 가진 독실한 기독교 집안 출신이었다.

외동딸이었던 한 총재는 어머니의 영향 아래서 자연스럽게 신앙 생활에 젖어들었다. 1950년 한국전쟁이 발발하자 가족은 피란길에 올라 남쪽으로 내려왔다. 한 총재는 여러 차례 학교를 옮겨 다니다가 초등학교를 마친 뒤 성요셉 간호학교에 진학했다.

그는 10대 시절, 통일교와 직접적인 인연을 맺게 된다. 처음 문선명을 본 것은 만 14세 무렵이었다. 교단 내부 증언에 따르면, 당시 어린 소녀였던 한 총재는 교단 집회에서 문선명을 멀리서 바라보는 수준이었지만 이후 교단 내에서 차츰 주목을 받기 시작했다.


당시 문선명은 이미 ‘메시아’를 자처하며 교세 확장에 나서고 있었고, 이를 가까이에서 접한 한 총재의 모친 홍순애는 그의 가르침에 깊이 매료됐다.

이후 홍순애는 교단 내에서 ‘대모님’으로 불리며 상당한 영향력을 발휘했다. 청평 수련원 등지에서 교인들의 영적·육적 치유를 담당한 것으로 알려져 있으며, 신도들은 홍순애가 신령한 기운을 지녔다고 믿었다. 모친의 입지 덕분인지 한 총재도 함께 교단 내에서 눈도장을 찍었다.

어린 시절부터 이미 교단 핵심부와 가까운 위치에 있었던 셈이다.

1960년 3월27일, 한 총재는 문선명과 약혼식을 올렸다. 당시 교단에서는 이 약혼식을 ‘가약식’이라 불렀고, 불과 보름여 뒤인 4월11일에 열린 결혼식을 ‘성혼식’으로 불렀다. 교단 내부에서는 이 두 의식을 혼인 절차가 아닌, 신학적인 의미가 담긴 중요한 단계로 해석했다.

가약식은 ‘하늘 앞에서의 약속’, 성혼식은 ‘인류 앞에서의 선언’이라는 의미를 부여했다.

당시 한 총재는 만 17세였으며, 문선명은 40세였다. 나이 차이가 23살에 달하는 결혼은 교단 안팎에서 적잖은 파장을 일으켰다. 교단은 이를 ‘참부모 성혼식’이라 부르며 통일교의 역사적인 순간으로 선포했다. 교인들은 성혼식을 통해 한 총재와 문선명이 인류의 영적 부모로 자리매김했다고 여겼다.

한 총재가 문선명의 배우자가 된 배경에는 여러 사정이 있었다. 문선명은 이미 1959년부터 계시에 따라 새로운 배우자를 맞이해야 한다고 밝히며 결혼 준비를 시작했다. 당시 교단 내에서는 한 총재 외에도 몇몇 신부 후보가 거론됐다. 대표적인 인물이 김명희, 윤정혜였다.


14세 무렵 문선명 처음 만나
말 많고 탈 많은 ‘7남 7녀’

김명희는 일본에서 선교활동을 맡았으나 사명을 완수하지 못했고, 윤정혜는 끝내 문선명에게 절대적 복종을 맹세하지 못하면서 자격을 상실했다. 이 같은 과정을 거쳐 한 총재가 최종 배우자로 확정됐다.

문선명은 한 총재를 직접 만나기 전, 그가 신부로서 갖출 자질이 있는지를 확인하기 위해 긴 시간을 들였다. 1960년 2월26일, 첫 대면 자리에서 9시간 동안 질문을 던지며 신앙과 소명 의식을 검증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후 한 총재는 교단 원로 최원복으로부터 한 달간 ‘신부 수업’을 받았다.

신부로서의 역할, 교단 지도자의 아내로서 지녀야 할 태도 등을 익히는 과정이었다.

결혼 직후 한 총재와 그의 모친 홍순애는 교단 내 신도들의 시기와 불만을 누그러뜨리기 위해 의도적으로 검소한 생활을 했다. 이들은 3년간 청빈한 삶을 유지하며 다른 신도들과 크게 다르지 않은 조건에서 생활했다고 전해진다. 이는 한 총재가 ‘교단의 어머니’로서 신뢰를 확보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했다.

그러나 결혼만으로 입지를 굳힐 수는 없었다. 교단 내부에서 문선명 부부가 ‘참부모’로서의 위치를 인정받고 확고히 자리 잡기까지는 7년이라는 시간이 필요했다. 이 기간은 교단의 교리와 상징을 재정립하고, 신도들로부터 신뢰를 쌓아가는 과정에 사용했다.

한 총재는 남편과 함께 교단 의례와 활동에 참여하면서 ‘참어머니’라는 호칭을 얻었고, 이후 교단의 핵심적 지도자로 자리 잡을 수 있는 토대를 다졌다.

두 사람 사이에서는 7남7녀, 총 14명의 자녀가 태어났다. 교단 내부에서는 이들이 ‘참가정’이라 불렸다. 한 총재가 많은 자녀를 둔 것에 비해 그중에 후계자로 낙점된 자식은 단 한 명도 없었다. 장남 문효진은 음악과 사업을 병행했다.

그는 미국과 한국을 오가며 헤비메탈 밴드 활동을 했고, 10여장의 음반을 발표하기도 했다. 동시에 연예기획사를 설립해 연예계 진출을 시도했으나 마약 투약과 폭행 논란에 휘말리면서 교단 안팎으로 구설에 올랐다.

당시 전처 홍난숙이 미국에서 문선명 일가에 대해 폭로하는 책 <In the Shadow of the Moons>을 쓰며 큰 파장을 일으켰다. 홍난숙은 참가정을 떠난 것을 ‘탈출’이라고 표현하기도 했다.

이후 문효진은 재혼하며 삶의 안정을 되찾는 듯했지만 2008년 서울 한남동 자택에서 심장마비로 세상을 떠났다. 차남 문흥진은 어린 시절부터 총재 부부가 각별히 아꼈던 아들이었다. 문선명이 ‘효자’라 칭할 정도였으나, 1984년 교통사고로 18세 나이에 요절했다. 교단은 그를 기리는 의미에서 사후 영혼 결혼식을 치렀다.

17세와 40세
영적 부모로


셋째 아들 문현진은 한때 유력한 후계자로 거론됐다. 미국 하버드대에서 공부한 그는 통일교 국제재단과 글로벌피스재단 등을 이끌며 경영 능력을 인정받았다. 그러나 교단 재정 운영과 교리 해석을 두고 어머니 한 총재와 충돌하면서 결국 결별 수순을 밟았다.

여의도 파크원 개발 등 대규모 자산을 둘러싼 소송전으로 이어졌고, 이 과정에서 독자 노선을 걷게 됐다.

넷째 아들 문국진은 통일교 계열사의 경영을 맡으며 한동안 내부 실권을 쥐었으나, 형제들과의 갈등과 내부 불신으로 결국 자리에서 물러났다. 이후 동생 문형진과 함께 미국으로 건너가 ‘세계평화통일성전(생츄어리 교회)’에 합류했다.

다섯째 아들 문권진은 비교적 조용히 지내며 별다른 활동을 하지 않았고, 여섯째 아들 문영진은 1999년 미국 네바다주 리노의 한 호텔에서 추락해 사망했다. 경찰은 자살 가능성을 언급했으나 당시 교단 측은 사고사라는 입장을 내놨다. 당시 그는 20대 청년으로, 결혼 후 얻은 딸은 형 문국진 가정으로 입양됐다.

막내아들인 일곱째 문형진도 후계자로 지목된 바 있다. 하버드대에서 종교학을 전공하고 세계회장 자리에 올랐지만, 한 총재와 갈등 끝에 교단에서 축출됐다. 그는 이후 미국 펜실베이니아 분파인 ‘생츄어리 교회’를 세우고 총기 무장 교리를 내세우며 논란을 일으켰다.

신도들이 총기를 들고 합동결혼식을 진행하는 장면은 미국 언론에서도 보도할 정도로 파장이 컸다.


딸들도 마찬가지다. 장녀 문예진은 결혼과 이혼을 겪으며 네 자녀를 뒀는데 통일교에서 활동은 하지 않았다. 둘째 딸은 태어난 지 8일 만에 세상을 떠났고, 셋째 딸 문인진은 미국 통일교 회장을 맡으며 활동에 나섰으나, 유부남과의 불륜 및 사생아 출산 사실이 드러나며 직위를 내려놓으며 결국 이혼 후 재혼했다.

넷째 딸 문은진은 승마 선수로 활동했으며 한때 국가대표로 선발되기도 했다. 하지만 가정사와 이혼 문제로 교단 내 입지가 약화됐다. 다섯째 딸 문선진은 2015년 7남 문형진이 물러난 뒤 세계회장직에 올라 교단을 대표했으나, 2019년 이후 자리에서 물러났다.

여섯째 딸 문연진은 미국 방송 프로그램에 출연해 스스로를 “재벌 2세”라 소개하며 화제를 모았다. 다큐멘터리 감독을 희망한다고 밝혔으나 교단과는 거리를 두는 모습이었다. 막내딸 문정진은 통일교와 관계없는 일반인과 결혼하며 교단 활동과는 선을 그었다.

교단에서는 이른바 ‘왕자의 난’으로 불린 후계 다툼이 벌어진 때가 있었는데, 3남 문현진은 교단 재정 투명성을 주장했으나 교권과 대립하며 배제됐고, 4남 문국진은 기업 운영을 맡았으나 내부 갈등으로 자리에서 물러났다. 7남 문형진은 후계자로 지목됐지만, 한 총재와의 갈등 끝에 교단을 떠나 미국에서 분파를 창립했다.

‘왕자의 난’
후계 다툼

결국 자녀 가운데 누구도 후계자로 자리를 굳히지 못했다.

2012년 9월 문선명이 세상을 떠난 뒤 교단은 잠시 혼란에 빠졌다. 창립자의 부재로 후계 구도가 불투명했기 때문었이다. 그러나 장례 기간 동안 한 총재가 교단을 대표해 외부 인사를 맞이하고 주요 행사를 주관하면서 자연스럽게 그에게 시선이 쏠렸다.

교단 내부에서도 ‘참어머니’를 중심으로 힘을 모아야 한다는 공감대가 빠르게 형성됐다.

이듬해 한 총재는 통일교 총재로 공식 취임했다. 취임 당시 그는 남편의 뜻을 이어 교단을 이끌어가겠다고 선언하며 조직 결속과 교세 유지를 강조했다. 이후 교단 산하 주요 조직의 업무를 맡으며 사실상 단일 지도 체제를 굳혔다.

선문학원 이사장으로 취임해 대학과 연구기관을 관리했고, 세계평화여성연합 총재로 활동하며 교단 여성 신도와 국제 활동을 아우르는 역할을 맡았다.

한 총재는 통일교의 주요 업무들을 차례로 장악하면서 교단 운영 전반은 한 총재 중심으로 재편됐다. 내부적으로는 ‘참어머니’라는 호칭을 내세워 권위를 강화했고, 대외적으로는 총재로 활동하며 입지를 공고히 했다. 그 결과 문선명 사후에 불거졌던 분열 가능성은 어느 정도 수습됐고, 주요 의사결정은 모두 한 총재의 손에서 이뤄지게 됐다.

통일교의 공식 명칭은 세계평화통일가정연합이다. 1954년 5월1일 서울 북학동에서 문선명에 의해 만들어졌다. 당시 이름은 ‘세계기독교통일신령협회’였으며, 기독교 교파의 분열을 극복하겠다는 취지로 출범했다. 이후 교세가 확장되면서 ‘세계평화통일가정연합’이라는 이름을 내걸게 된다.

문선명은 예수가 완수하지 못한 사명을 자신이 이어받아야 한다는 계시를 받았다고 했고, 이를 바탕으로 ‘참된 가정을 세워야 인류가 구원받는다’는 신학을 만들었다. 통일교의 모든 교리는 이 믿음에서 출발한다.

교리의 핵심은 <원리강론>이라는 경전에 담겼다. 하나님이 창조한 세상은 본래 완전했으나 아담과 하와의 타락으로 질서가 무너졌다고 본다. 인류 역사는 이를 회복하기 위한 ‘복귀’의 과정이며, 예수가 완성하지 못한 사명을 문선명이 이어받았다는 게 교단의 주장이다.

아담과 하와의 원죄를 끊고 하나님의 혈통을 되찾아야 구원이 완성된다는 논리다. ‘참부모’라는 개념도 여기에서 비롯됐다. 신도들은 이 부부를 통해 인류가 다시 태어나야 한다고 믿었다. 기존 기독교가 예수를 구세주로 바라보는 것과 달리, 통일교는 ‘참부모’의 출현이야말로 인류 구원의 열쇠라고 강조했다.

교단 자금 활용 정치권 로비 혐의 구속
대선 직전 ‘특별지시 프로젝트’ 추적

통일교 하면 떠오르는 장면 가운데 하나가 합동 결혼식이다. 교단은 이를 ‘축복식’이라 부른다. 수천쌍, 때로는 수만쌍의 신도들이 한날한시에 부부가 되는 의식이다. 교단은 이를 ‘축복식’이라 부르며, 신도 부부가 과거의 죄성을 끊고 하나님의 혈통을 잇는다고 설명한다.

1960년대부터 시작된 이 합동 결혼식은 세계의 관심을 받았다. 국적과 인종을 초월한 결혼은 통일교가 내세우는 ‘세계 평화’의 상징이기도 했다. 실제로 교단이 짝을 정해주는 경우가 많았고, 신도들은 이를 하나님의 뜻으로 받아들였다.

이 같은 독특한 의례는 교세 확장의 동력이 됐다. 가족 단위의 신도들을 만들고, 국제결혼을 통해 국경을 넘어선 네트워크를 형성했다. 교단은 이를 “하나님의 세계적 가정”이라 불렀고, 신도들은 이를 통해 새로운 정체성을 부여받았다.

통일교는 선문학원과 선문대학교를 비롯한 학교와 연구기관을 설립해 자체 인재를 양성했다. 여성 신도를 결집하기 위해 세계평화여성연합을 조직했고, 청년 조직도 운영하며 차세대 신도들을 교육했다.

언론사와 출판사를 세워 교단 메시지를 널리 퍼뜨렸으며, 예술단과 오케스트라를 운영하며 문화 활동에도 투자했다. 경제 활동도 활발했다. 문선명은 해양 산업을 강조하며 수산업에 손을 댔고, 무역과 건설, 식품 사업에도 진출했다. 한국뿐 아니라 일본, 미국 등 해외에서도 기업을 세우며 사업을 확장해 나갔다.

정치와의 관계도 빼놓을 수 없다. 통일교는 출범 이후 줄곧 반공주의를 내세웠다. 냉전이 격화되던 시기, 공산주의를 ‘사탄의 사상’으로 규정하며 국제 반공 연합을 후원했다. 이 과정에서 미국과 일본, 한국 정치권과 다양한 접점을 만들었다.

미국에서는 닉슨 대통령 시절부터 교단의 로비 문제가 언급됐고, 일본에서는 자민당 정치인들과 교류했다는 사실이 알려졌다. 한국에서도 집권 세력과의 연관성이 여러 차례 문제로 불거졌다.

이런 행보와 교리로 인해 통일교에 대한 세간의 비판은 상당하다. 기독교계는 통일교의 ‘참부모’ 교리가 정통 교리와 양립할 수 없다고 선을 그었다. 교단 운영 방식도 논란이었다. 신도들에게 고액의 헌금을 요구하거나, 영적 상품을 고가에 판매했다는 지적이 이어졌다.

일본에서는 피해자 가족 모임이 꾸려질 정도로 사회 문제가 됐다. 결국 일본 정부는 교단 법인 해산 절차를 밟기 시작했다. 미국과 유럽 일부에서는 통일교를 컬트, 즉 사이비 집단으로 분류했다. 폐쇄적이고 권위적인 조직 구조, 그리고 정치적·경제적 영향력 행사 방식이 문제로 지목됐다.

한편, 한 총재의 구속으로 통일교의 후계 구도가 다시 주목받고 있다. 교단은 공식적으로 “천애축승자를 중심으로 현 상황에 대비하겠다”고 밝혔다. 천애축승자는 장남 문효진의 아들 문신출·문신흥 형제를 말한다. 지난 4월13일 통일교가 ‘천원궁 천일성전 입궁식’을 열며 지명한 사실상의 후계자로 거론되는 인물들이다.

아들 대립
폭발 직전

현재 3남 문현진은 글로벌피스재단을 중심으로 독자 노선을 걷고 있고, 7남 문형진은 미국에서 생츄어리 교회를 운영하며 모친을 정면 비판하고 있는 상황이다. 전문가들은 구속 이후 아들들의 추가 폭로 가능성까지 언급하며, 교단의 향후 권력 재편이 불가피하다고 보고 있다.

<imsharp@ilyosis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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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독> 한신학원 이사의 수상한 영전

[단독] 한신학원 이사의 수상한 영전

[일요시사 취재1팀] 안예리 기자 = 한신학원 이사였던 A씨가 한신대학교 총장과 이사장을 상대로 고소장을 제출했다가 취하했다. 공교롭게도 고소를 취하하기 직전에 열린 이사회에서 그는 교육인사위원장으로 임명됐다. 그동안 무슨 일이 벌어진 걸까? 고소가 이뤄진 배경은 지난 5월22일 열린 한신대학교 이사회에서 비롯됐다. 이날 회의에는 총장을 비롯해 이사 17명이 참석했다. 당시 학교법인 한신학원의 감사가 “그동안 한신대에서 사내 공사를 한 금액이 70억원이 넘는데 모두 입찰을 피하기 위한 쪼개기 공사로, 수의계약으로 공사를 했다”고 보고하면서다. 학원 감사 내부 폭로 당시 감사의 충격적인 발언으로, 한신학원 이사 A씨는 고민 끝에 업무상 배임 및 횡령으로 한신대 총장과 이사장을 상대로 고소를 진행했다. A씨가 지적하는 부분은 세 가지다. 첫 번째로 한신학원 재산인 거제도 땅과 관련한 배임을 주장했다. 고소장에 따르면 한신학원은 거제시에 임야 약 55만평을 보유하고 있었고, 도로가 연결되지 않은 ‘맹지’로 분류된 해당 부지에 대해 논의 중이었다. 그 곳은 수익용 기본재산임에도 장기간 활용이 어려운 상태였다. 한신학원 측은 이 토지를 단순 보유할 경우 관리비만 지속적으로 발생하고 가치 상승도 제한적이라고 판단해 활용 방안을 모색 중이었다. 당시 M 건설은 2016년부터 경남 거제시 아주동 일원에서 ‘공공지원 민간임대주택사업’을 추진하고 있었다. 그런데 사업 대상 부지 중 일부가 학교법인 한신학원 소유의 임야로 포함돼있었고, 한신학원 역시 해당 지역 임야를 공동개발 방식으로 참여하기로 했다. 이에 따라 M 건설은 경상남도로부터 지구 지정에 대한 조건부 허가를 받았다. 그러나 사업 추진 과정에서 한신학원 이사들은 당시 이사장이 학원 소유 토지를 공공임대주택 개발에 제공하는 대가로 20억원을 받기로 했다는 사실을 용역업체 대표의 제보를 통해 알게 됐다. 이사회는 즉시 M 건설 측에 협상단을 파견해 토지에 대한 정당한 보상을 요구했지만, 협상은 결렬됐다. 이 사실을 뒤늦게 파악한 한신학원의 상급기관인 한국기독교장로회 총회(이하 기장총회)는 사업 자체를 중단시켰다. 이로 인해 M 건설은 한신학원 측의 토지 사용 승낙을 얻지 못하게 됐고, 결국 조건부 지구 지정이 취소될 위기에 놓이면서 개발사업은 사실상 좌초됐다. 이후, 한신학원 법인 산하 ‘한신영림운영위원회’는 열린 회의에서 해당 부지를 공공지원 민간임대주택 사업에 참여하는 형태로 개발하는 방안을 보고했다. 이 회의에는 삼부토건 관계자라고 주장하는 B씨와 C씨가 직접 참석해 사업 구조와 예상 수익, 한신학원의 참여 방식 등을 설명했다. 이들은 명함까지 주며 자신들을 “삼부토건 고문”과 “부사장”이라고 소개하며 접근했다. 한신대 상대로 업무상 배임·횡령 혐의 고소 불법 매각·쪼개기 공사·교비 횡령 의혹 제기 두 사람이 제안한 내용은 “삼부토건이 M 건설로부터 사업권을 인수해 시행하며, 한신학원은 부동산투자회사(REITs)에 현물출자하고 주식 지분을 배당받는 방식으로 수익을 창출한다”는 계획이었다. 이때 M 건설에도 B씨와 C씨가 접근했다. 이들은 “한신학원과 협의를 주선해 사업을 재개시키겠다”고 제안했다. M 건설은 이 제안을 믿고 2023년 8월 ‘사업시행대행 용역계약’을 체결했다. 계약조건은 B씨 측이 같은 해 9월20일까지 한신학원으로부터 토지 사용 승낙서를 받아오면 용역비를 지급한다는 내용이었다. M 건설은 계약금 명목으로 1억원을 지급했다. 같은 해 이사회는 한신영림운영위원회의 보고를 바탕으로 관련 헌의안을 기장총회에 제출하기로 했다. 한신학원은 기장총회가 한신대 운영을 위해 설립한 법인으로, 모든 사업은 기장총회의 허가가 필요하다. 보고서에는 구체적인 사업 예측치도 포함됐다. “지구 단위 승인을 거쳐 2종 일반주거지역으로 변경될 경우 평당 100만~150만원의 감정가가 예상되며, 현물출자 후 10년 임대 기간이 끝나 분양 전환 시 내부수익률(IRR)은 약 6.77% 이상”이라는 계산이었다. 하지만 기장총회는 “한신학원 소유 토지는 공공개발 참여 대신 현금 매매로 전환한다”는 결의를 내렸다. 한편, 약속된 기한이 지나도 M 건설에 토지 사용 승낙서는 발급되지 않았다. M 건설이 계약 해지를 통보하자 B씨 측은 “승낙서가 곧 발급된다”며 시간을 연장해달라고 요청했다. 그러나, 승낙서는 끝내 발급되지 않았다. M 건설은 곧바로 계약을 해지하고, 실제 B씨가 대표로 있는 S사를 상대로 계약금 1억원 반환소송을 제기했다. 이 시기 한신학원은 삼부토건에 이들의 신원을 확인했다. 삼부토건은 “B씨와 C씨는 우리 회사와 아무 관계가 없다”고 답변했다. 즉, 자신들을 삼부토건 관계자라고 밝힌 B씨와 C씨가 실제로는 삼부토건 관계자가 아니었다는 것이다. 삼부토건 본사는 “이들과 별도의 위임이나 계약관계를 맺은 사실이 없다”고 확인했다. 대형 건설사인 삼부토건의 이름을 내세워 사업을 추진하려 한 것이다. 실체 없는 부동산 리츠 이후 B씨는 자신의 배우자 명의의 P사로 이름을 바꿔 사업을 계속 추진했다. B씨 일행의 만행을 알게 된 M 건설은 지난해 3월, 한신학원에 ‘토지 매수의향서’를 보내 “거제 아주동 임야를 평당 50만원에 매수할 의사가 있다”고 전달했다. M 건설은 인근 토지를 이미 평당 44만원에 매입했다고 밝히며, 한신학원 토지는 “13% 이상 높은 가격으로 정당하게 매입하겠다”고 제안했다. 그러면서 “B씨는 신뢰할 수 없는 인물”이라고 경고했다. 그럼에도 한신학원은 같은 해 5월30일, B씨의 부인이 대표로 있는 P사와 ‘부동산 매매계약’을 체결했다. A씨는 “총장과 이사장이 이 제안을 알고도 이사회나 총회에 보고하지 않았다”면서 “M 건설의 제안이 있었음에도 총장과 이사장이 P사와 불공정한 계약을 맺었다”고 주장했다. 문제로 지적한 점은 계약 내용이었다. 부동산 매매계약서에 따르면 계약금 총액은 10억5000만원으로 명시됐지만, 실제 한신학원이 받은 금액은 1억원뿐이었다. 잔금 9억5000만원은 “4년 이내 부동산투자회사(REITs)와의 매매계약 재체결 시 지급한다”는 조건이 붙어 있었고, 심지어 한신학원은 받은 계약금 1억원을 매수인에게 반환하기로 명시돼있었다. 또 특약 사항에는 ‘매도인은 계약 체결 시 토지 사용 승낙서를 발급한다’는 내용도 포함됐다. 즉, 계약금 실수령액이 전체의 100분의 1에 불과한 상황에서 매수인이 토지를 사용할 수 있도록 허가한 셈이었다. 고소인은 이를 “매매계약을 가장한 사실상 사용 허가서”라고 주장했다. 한신학원 정관 시행세칙 제18조에는 “기본재산의 매도·증여·교환 또는 용도 변경 시에는 재적 이사 3분의 2 이상 찬성으로 이사회 의결을 거쳐 관할 관청 허가를 득해야 한다”고 명시돼있다. 그러나 고소인은 “삼부토건으로 의결된 사업을 P사로 변경하면서 이사회가 새로이 의결을 거치지 않았다”고 지적했다. 교육부 토지 처분 신고도 문제점으로 꼬집었다. 한신학원은 지난해 1월 교육부에 ‘수익용기본재산 처분 신고서’를 제출하면서 “감정가 이상(16억7000만원 이상)에 토지를 처분하고 대체 부동산을 구입하겠다”고 보고했다. 이후, 교육부는 이 신고를 ‘처분 허가’로 정정해 승인했으며 “1년 내 매각 완료, 대금 완납 전 소유권 이전 불가”를 조건으로 달았다. 그러나 P사와의 계약서에는 잔금 지급 시점이 명확히 적시되지 않았다. 이에 대해 고소인은 “교육부에는 단기 매각으로 보고하고 실제로는 장기 임대 형태로 계약했다”며 기망 가능성을 제기했다. 계약서상 ‘잔금 수령일’이 없고, 2차 계약금도 부동산투자회사와의 별도 계약 체결 이후로 미뤄져 있다. 쪼개기 공사? 교비도 횡령? 가장 큰 문제점은 잔금을 받기로 한 부동산투자회사가 존재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해당 회사는 현재 설립 예정으로 실체가 없는 곳이다. 게다가 사립학교법에 따르면 토지 사용 허락서는 교육부의 허락을 받아야만 사용이 가능하다. 하지만 이 토지 사용 허락서가 교육부에 신고되지 않은 채 발급됐다는게 A씨의 주장이다. 실제 교육부는 민원 답변을 통해" 해당 토지의 사용 승낙 신청을 접수하거나 허가한 내역이 없으며, 우리부 허가가 없는 토지 사용 승낙은 효력이 없다"고 못 박았다. 두 번째로, 한신대가 진행한 각종 시설공사와 관련해 수의계약 체결 과정의 절차 위반이 있었다는 의혹도 제기됐다. A씨는 “학교법인 및 산하 대학이 사립학교법과 학내 재정세칙에 따라 공개경쟁입찰을 원칙으로 해야 하는 공사계약을 다수 수의계약 형태로 처리했다”고 주장했다. 한신학원 정관과 세칙에는 ‘2000만원 이상의 공사는 공고를 해서 경쟁에 부하는 것을 원칙으로 하며, 2인 이상의 견적서와 시방서, 설계서를 징수해야 한다’고 명시돼있다. 그러나 한신대학교는 2022년부터 2024년 사이 약 40억원 규모의 공사 57건을 진행하는 과정에서 이 같은 절차를 대부분 생략했다는 게 A씨의 주장이다. <일요시사>가 입수한 법인 내부 감사보고서에 따르면 “2024년도 교내 공사 57건이 40억원에 진행됐다. 동일 공사인데도 나눠서 계약을 하고, 2억원까지 수의계약이 가능하다는 명목으로 쪼개기 공사와 공사 지정 업체의 중복이 발견되는 등 부실 흔적이 많다. 앞으로 전자입찰이 되도록 공사 입찰 규정을 반드시 만들기 바란다”고 지적했다. 이에 대해 A씨는 “공개경쟁입찰 방식으로 진행했다면 계약단가가 낮아져 수억원의 예산을 절감할 수 있었다”고 주장했다. 그러면서 “규정을 어긴 업무처리로 한신학원 및 한신대에 수억원의 재산상 손해를 입혔다”며 이를 업무상 배임 행위라고 주장했다. 세 번째로 한신대학교 교비 회계 자금이 학교 운영과 직접 관련 없는 법률 비용으로 사용됐다는 점도 지적했다. A씨는 “교비 회계는 학교 운영과 교육에 필요한 경비로만 사용할 수 있다고 명시돼있음에도, 교비 자금이 법적 분쟁 비용으로 전용됐다”고 강조했다. 문제가 된 것은 노무사 선임비용 약 6800만원이다. 고소장에 따르면, 한신대 총장은 2023년 고용노동부에 진정이 제기된 사건을 처리하는 과정에서 노무사 및 법률대리인 선임 비용을 교비 회계에서 지출했다. 해당 진정은 한신대 내부 인사·노무 관련 사안으로, 교직원 고용 문제 및 근로계약 분쟁에 대한 것이었다. 이사회 후 돌연 취하, 왜? 학원 교육인사위원장 임명 A씨는 이를 업무상 횡령에 해당하는 행위로 판단했다. 사립학교법에 따르면 ‘교비는 학생 교육에 직접 필요한 용도로만 집행해야 한다’고 규정한다. 따라서 법인 소송이나 노무 분쟁처럼 학교 운영 전반과 직접 관련이 없는 항목은 교비에서 부담하면 안 된다는 것이 고소인 측의 입장이다. 이 사건의 핵심 쟁점은 비용 지출의 성격이다. 즉 ‘노무사 선임이 학교 교육활동에 직접 관련된 행위인가’가 판단 기준이 된다. 실제로 올해 대법원은 노무법인 자문 비용을 교비회계 자금으로 집행한 행위를 업무상 횡령으로 판단하는 판결을 내렸다. 제주의 한 대학교 총장 A씨는 소속 교수가 자신을 상대로 국가인권위원회에 진정을 제기하자, 이에 대응하기 위해 변호사를 선임하고 그 비용 330만원을 포함해 총 1880만원의 변호사 비용을 교비 회계에서 지출한 혐의로 기소됐다. 재판부는 1심의 판단을 그대로 유지하며 “교수 및 노조 등과 관련한 분쟁 대응을 위한 변호사 비용은 학교의 교육활동과 직접적인 관련이 없다”며 업무상횡령죄가 성립한다고 판시했다. 현재 해당 고소 건은 취하된 상태다. 지난달 <일요시사>가 이 사건을 취재하던 과정에서 한신대 비서실을 통해 A씨가 고소를 취하한 사실을 확인했다. 이후 제보자 역시 “해당 이사가 면직 압박을 받고 고소를 취하했으며, 그 직후 인사위원장 보직을 받았다”고 말했다. <일요시사> 기자가 한신학원 관계자에게 확인한 결과 지난달 10일 인사위원장으로 임명됐고, 같은 달 11일부터 공식 업무가 시작됐다. 추가로 확보한 녹취에서 A씨는 고소를 취하한 이유에 대해 “이사회에서 강제로 면직시키겠다고 해서 어쩔 수 없었다”고 언급했다. 한신학원 인사위원회는 내부 교직원의 인사와 징계 등을 담당하는 핵심 기구로, 교육인사위원장은 실질적인 권한이 큰 자리로 알려져 있다. 통상 이사장은 교육인사위원장 출신 가운데에서 선출되는 경우가 많아, 해당 보직이 사실상 이사장 자리로 가는 주요 루트인 셈이다. 대가성 보직? 이사장 루트 한편, 한신대는 해당 고소 건에 대해 전면 부인했다. 한신대 관계자는 <일요시사>와의 전화 통화에서 “토지 매각 문제의 경우 한신학원의 문제고 한신대와 관련이 없다”고 말했다. 수의계약 문제에 대해서는 “법적으로 2억원 미만이면 가능하다”고 밝혔고, 교비 횡령 의혹은 “사건 조사 관련된 비용으로 지출된 부분이라 문제는 없다”고 설명했다. <imsharp@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