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슈&인물> 전경련 새 수장 류진 풍산그룹 회장

  • 김민주 기자 alswn@ilyosisa.co.kr
  • 등록 2023.08.14 14:16:34
  • 호수 1440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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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파선 키 잡은 ‘동전의 제왕’

[일요시사 취재1팀] 김민주 기자 = 류진 풍산그룹 회장이 전국경제인연합회 제39대 회장으로 추대됐다. 전경련은 오는 22일 개최하는 임시총회서 기관명을 ‘한국경제인협회’로 바꾸고, 새 회장으로 류 회장을 추대할 것이라고 지난 7일 밝혔다. 임시총회서 추대안이 가결되면 류 회장은 2년간 한국경제인협회 회장직을 맡는다.

전국경제인연합회(이하 전경련)는 이병철 삼성그룹 창업주가 일본경제단체연합회를 모델로 삼고 다른 대기업을 모아 1962년 8월16일 창립했다. 이후 주요 민간기업체·금융기관·국책회사 등을 대상으로 회원을 확보했다. 민간종합경제단체로서 법적으로 사단법인의 지위를 갖고 있으며, 서울 영등포구 여의도에 전경련 회관을 두고 있다.

글로벌 단체
글로벌 인맥

전경련 회장직은 2년에 한 번씩 선출 방식으로 뽑는다. 이를 위해 400명에 달하는 전경련 회원은 회장 추천 절차를 밟는다. 이병철 삼성그룹 회장으로 시작해 정주영 현대그룹 회장, 구자경 LG그룹 회장, 최종현 SK그룹 회장, 김우중 대우그룹 회장, 조석래 효성그룹 회장 등 대체로 대기업 총수가 맡았다.

회원은 67개 제조업, 무역, 금융, 건설 등 업종별 단체와 공기업을 제외한 대표적인 대기업 436개로 구성돼있다. 전경련은 지난 5월18일 산하에 있는 한국경제연구원을 흡수 통합해 싱크탱크형 경제단체로 거듭나고, 기관명을 한국경제인협회로 바꾼다는 내용의 혁신안을 발표했다. 무려 55년 만의 교체다.

전경련은 류진 풍산그룹 회장을 회장직에 내정한 배경으로 “글로벌 무대서의 경험, 지식, 네트워크가 탁월하다. 새롭게 태어날 한국경제인협회가 글로벌 싱크탱크이자 명실상부 글로벌 중추 경제단체로 거듭나는 데 리더십을 발휘해줄 적임자”라고 강조했다.


제39대 전경련 회장이 된 류 회장은 어떤 인물일까? 류 회장은 1958년 3월, 경북 안동서 고 류찬우 풍산그룹 창업주의 막내아들로 조선시대 영의정을 지낸 서애 류성룡의 13대손이다. ‘가문을 욕보이면 안 된다’는 말을 듣고 자랐던 그는 사업을 하면서도 류성룡의 겸손함을 본받으려 했다.

일본서 초등학교부터 고등학교까지 국제학교에 다닌 그는 서울대 영문학과를 졸업하고 미국 다트머스대서 경영학 석사를 수료했다.

일본 유학 때 꿈은 야구선수였고 농구도 열심히 했다. 류 회장은 1982년 풍산 금속공업에 입사해 경영 수업을 받은 뒤 부친인 류 창업주가 별세하자 이듬해인 2000년 풍산그룹 회장에 올랐다. 류 창업주는 원래 첫째 아들 류청씨에게 회사를 물려주려고 했으나, 류청씨가 미국서 사업에 실패한 이후 후계 구도서 배제된 것으로 알려졌다.

류 회장이 풍산서 이뤄낸 업적은 많다. 미국 정·재계와 친분이 깊어 미국통으로 평가받는 류 회장의 인맥이 프랑스로 확장되기도 했다.

“글로벌 중추 경제단체로 만들 적임자”
미국 정‧재계 친분에 프랑스 인맥까지

지난 6월22일 대한상공회의소에 따르면, 풍산을 포함한 삼성전자, 현대자동차그룹, SK, LG, 한화, 대한항공, 효성 등 8개 그룹 회장단은 전날인 21일 프랑스 엘리제궁서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과 만났다. 재계 순위가 70위권 안팎인 풍산이 대통령 만남 자리에 이름을 올렸다는 점에서 방위산업 분야서 프랑스와의 협력 방안이 늘어날 것이라는 관측이 나왔다.

유럽은 지난해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으로 방산 분야에 대한 관심이 높아진 시장이다. 실제 우크라이나는 전쟁으로 월평균 35만발의 탄약을 소모하고 있지만, 우크라이나를 지원하는 미국의 탄약 생산량은 월 1만4000발에 불과하다.


유럽연합(EU)은 탄약 생산량을 연 100만발까지 확대한다는 계획을 추진 중이며, 우크라이나와 국경을 맞댄 폴란드는 한국 정부와 풍산에 현지 탄약공장을 설립해달라고 요청하기도 했다.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과의 면담으로 풍산이 유럽 내 생산거점 확보와 안정적 방산 수익 두 마리 토끼를 잡을 것이라는 관측이 나온다. 여기에 류 회장의 마당발 인맥이 풍산의 영업에도 힘을 실어줄 것이란 기대가 높아졌다.

류 회장은 조지 부시 전 미국 대통령과 인연이 각별하다. 이 인연은 류 회장 부인인 고 노신영 전 국무총리 둘째 딸 노혜경씨 덕이라는 의견이 있다. 

노 전 총리가 조지 부시 전 대통령을 알고 있었고, 사위인 류 회장에게 소개하면서 부시 가문과 친분을 쌓았다는 후문이다. 이런 인연으로 류 회장은 2018년 타계한 아버지 부시를 ‘대디(아빠)’라고 부를 정도로 가깝게 지냈다.

이 같은 인맥은 그의 업적으로 고스란히 나타났다. 2009년 조지 전 미국 대통령의 최고경영자 하계 포럼 특별강연은 류 회장이 직접 주선했다. 부시 전 대통령은 2009년 7월31일 제주에 도착해 전경연 회장단과 만찬 회동을 한 뒤 8월1일 CEO 포럼서 특별강연을 하고, 오후에는 재계 인사들과 골프도 쳤다.

부시 전 대통령은 같은 달 3일 풍산의 초청으로 안동시를 방문했고, 풍산고등학교서 특강을 하고 병산서원과 하회마을을 돌아봤다. 

이런 인맥을 이용해서 류 회장은 정권이 바뀔 때마다 우리 정부와 미국 간 가교 역할을 했다. 역대 대통령 방미에 단골로 수행하는 경제인 중 한 사람이다. 지난 4월 윤석열 대통령의 방미 일정에도 경제사절단으로 동행하며, 한미재계회의 7대 한국 측 위원장으로 활동했다.

재계에선 ‘동전의 제왕’으로 불리며 활발한 동전 외교를 펼치고 있다.

소탈한 성격
다양한 경험

이는 유년 시절 유학으로 다양한 경험을 쌓은 게 도움이 됐다. 류 회장은 일본서 자랐고, 미국서 대학원을 다녔던 덕분에 영어와 일본어에 능통하다. 일년 중 절반을 미국 출장을 다닐 정도로 해외 비즈니스에 주력했다. 가족들이 미국에 거주하고 있어서 45일 정도로 나눠 한국과 미국서 지낸다.

재계의 한 관계자는 “노 전 총리가 외무부 장관과 총리를 지내서 외교 인맥이 탄탄하다. 다만 집안 인맥을 이어받더라도 본인의 노력 없이는 관계를 지속할 수 없다. 류 회장이 해외 사정에 밝고 활달한 성격이다 보니 미 정·재계 인사들과 깊은 교류가 가능했던 것이다. 해외 출장에 비서를 대동하지 않고 혼자 짐을 들고 다닐 정도로 소탈한 성격”이라고 말했다.

풍산그룹은 혼맥으로 인해 정계 쪽 인사들과 인연이 깊다. 류 회장의 형인 류청씨는 1982년 박정희 전 대통령의 둘째 딸 박근령씨와 결혼해 대통령 집안의 사위가 됐다. 하지만 6개월 만에 파경을 맞게 돼, 류청씨는 일찌감치 사업서 손을 떼 현재 그룹과는 교류가 없다.


이런 상황에 더해 풍산그룹은 특혜를 누리고 있다.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이 최첨단 무기보다 재래식 무기를 기반으로 전개되면서 탄약‧포탄 수요가 세계적으로 급증했기 때문이다.

미국과 EU가 우크라이나에 1년 넘게 무기 지원을 지속해 자국 방어용 탄약 재고가 바닥을 드러내고 있는 가운데, 미국이 우방국인 한국에 포탄을 대여해 국내 유일의 탄약·포탄 제조기업인 풍산이 수혜를 누리고 있다는 분석도 나온다.

지난 5월1일 금융감독원 전자공시 시스템에 따르면 풍산은 올 1분기 매출 7711억원에 영업이익 590억원을 올렸다. 전년 동기 대비 매출은 0.4%, 영업이익은 19.5% 증가했다. 증권가에서는 올해 풍산이 방산 부문서 사상 최대 실적을 달성할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이종현 키움증권 애널리스트는 “풍산이 기존에 주력으로 탄약을 수출하던 미국과 중동 외에 유럽 지역까지 시장이 확대되고 있어 올해 방산 매출액은 사상 최고치를 경신할 것으로 예상된다. 방산 수익성은 내수보다 수출이 월등히 높아 이익구조가 개선될 것으로 기대된다”고 분석했다.

이렇게 승승장구하는 류 회장이지만, 구설수가 없었던 것은 아니다. 류 회장의 아들이 징집 대상에 속하는 나이라는 점을 들어 병역기피를 목적으로 미국 국적을 취득한 것 아니냐는 지적이 제기됐다. 류 회장의 부인과 아들이 한국 국적을 포기하고 미국 국적을 취득한 사실이 드러났기 때문이다. 

앞서 풍산그룹의 지주사 격인 풍산홀딩스는 2014년 5월9일 류 회장이 보유하고 있던 지분 8만6000주를 가족인 헬렌 노, 류성왜, 로이스 류에게 증여한다고 공시했다. 헬렌 노는 류 회장의 부인 노혜경씨며, 류성왜와 로이스 류는 그의 딸과 아들이다.


방산 부문
최대 실적

눈에 띄는 것은 노혜경씨와 류성곤씨가 미국인으로 돼있다는 점이었는데, 두 사람이 한국 국적을 포기하고 미국 국적을 취득한 것이다. 반면, 류성왜씨의 국적은 대한민국으로 표시돼있었다.

물론 미국 국적을 취득한 것은 큰 문제가 되진 않는다. 하지만 풍산그룹의 사업 포트폴리오와 류 회장 가문의 면면을 들여다보면 얘기가 다르다. 풍산그룹은 1970년 4월부터 한국조폐공사로부터 소전(무늬 또는 글자를 새겨 넣기 직전의 동전) 생산업체로 지정되면서 우리나라, 미국, 호주 등에도 납품할 만큼 급성장했다.

국내 민간기업으로는 처음으로 방위산업에 진출해 소구경 총탄부터 포탄까지 대한민국 국군이 쓰는 탄약의 국산화를 시작했고, 지능화와 정밀화 등을 통한 첨단 탄약 개발에도 적극적으로 나서는 등 국내 대표적인 방위산업체로 성장했다.

류 창업주가 ‘방위산업의 대부’로 불리는 동시에, 풍산그룹이 대표적인 방위산업체로 성장할 수 있었던 이유다.  

이외에도 류 회장은 선조 때부터 각별하게 나라를 사랑한 것으로 유명하다. 실제 류 회장은 “선조에 누가 되는 일은 절대 해서는 안 된다”는 류 창업주의 확고한 인생관을 면면히 이어오고 있으며, 류 창업주 역시 창업이념을 ‘사업보국(사업을 통해 나라에 보답한다)’으로 내걸었을 정도로 애국심이 남다르다.

더욱이 류 회장의 부인 노혜경씨는 노신영 전 국무총리의 차녀로, 한국의 명문가 집안이 한국 국적을 포기한 것은 다소 의아하다는 반응이 주를 이뤘다. 무엇보다 세간에서는 류 회장의 아들인 류성곤씨의 당시 나이가 22살(1993년생)에 미국 국적을 취득한 것은 병역기피를 위한 것 아니냐는 여론이 강했다.

이에 대해 풍산그룹 측은 “개인적인 사안”이라는 입장을 냈다. 풍산그룹 홍보실 관계자는 “국적 변경은 개인적인 판단에 의해서 이뤄진 지극히 개인적인 사안으로 (회사 입장서)특별히 언급할 것은 없다”고 말했다.

류 회장의 발목을 잡는 일이 또 있었다. 부산 센텀2지구 개발사업 관련 특혜 의혹을 받고 있던 풍산그룹이 과거 국방부로부터 헐값에 해당 부지를 매입했다는 공식 문서가 공개됐다. 개발이 진행될 경우 토지보상금이 5000억원에 육박한다.

재계 순위 70위권인데 왜?
아들 군대, 국유지 논란도

2018년 10월15일 국회 과학기술정보방송통신위원회 소속 민중당 김종훈 의원이 국방부로부터 제출받은 매매계약서와 합의서에 따르면, 1981년 당시 27만평 규모의 조병찬(현 풍산 부지) 부지였던 이 땅은 3년 거치 후 7년 균등 분할상환 조건으로 풍산이 259억원에 매각했다.

이 과정서 국유지를 비롯한 부동산, 각종 장비 및 운영자재 등의 동산, 사업권이 수의계약을 통해 풍산에 매도된 것이다. 해당 부지는 국방부가 헐값에 국유지를 매각했다는 특혜 의혹이 제기돼왔다. 방위산업 목적의 국유지인 이 땅은 풍산의 공장 부지와 건물 30여개를 제외하면 절반 이상이 개발제한에 묶여있다. 

해당 부지는 2015년 부산시와 풍산이 맺은 센텀2지구 첨단산업단지 양해각서(MOU)에 따라 현재 개발을 목전에 두고 있어 파장을 낳고 있다. 이날 공개된 매매계약서 8조7항에는 매매계약 이후 지정된 군수산업 목적을 폐기했을 경우 계약을 해제할 수 있다는 특약사항도 있었지만 1999년 4월9일 이유 없이 삭제됐다.

일각서 “방산기업인 풍산그룹이 기업 특성상 국방부와 밀착한 관계를 맺고 특혜를 받은 것 아니냐”고 꼬집는 이유도 이 부분 때문이다.

공정거래위원회가 일감 몰아주기 제재 대상을 대기업서 중견기업으로까지 확대하면서, 풍산그룹도 조사 대상서 피하기 어려운 상황이다. 풍산그룹은 이미 지난해 국세청 세무조사를 한 차례 받기도 했다.

풍산 부지 특혜 논란은 다시 불붙을 전망이다. 부산시가 ‘대체 부지’로의 이전을 추진하지만 수천억원에 달하는 매각 차익 특혜 논란을 해소할 공공 회수 방안은 사실상 없는 것으로 확인됐다. 풍산은 센텀2지구 사업으로 8000억원이 넘는 매각 차익을 기록할 전망이다.

류 회장이 전경련 회장으로 선임 전이지만 이미 외교부 출신 인사의 부회장 영입 논란이 이어지면서 시끄러운 상황이다. 최근 재계에 따르면 류 회장은 전경련 사무국의 상근 부회장으로 외무 관료 출신을 영입하고 본인은 전경련 부회장 당시 직책으로 해오던 대미 정계 네트워크 구축과 관리에 힘쓰겠다는 의지를 내비친 것으로 알려졌다.

이를 두고 재계 일각에서는 관료 출신 영입을 두고 전경련이 환골탈태를 통해 정경유착의 이미지를 벗겠다는 혁신안을 냈지만 실상은 예전 모습을 답습하는 꼴이라는 우려 목소리도 제기된다. 또 김병준 전경련 회장 직무대행이 오는 22일 임시총회를 기점으로 직무대행서 내려오는 대신 상근 고문으로 남겠다는 의지를 표명한 것으로 전해져 논란을 키우고 있다.

정경유착
환골탈태?

김 직무대행은 그간 차기 회장이 나타나더라도 고문이든, 자문이든 전경련에 남아 필요한 역할을 하겠다는 의중을 내비친 바 있다. 이를 두고 전경련 안팎으로 혁신을 위해 이름까지 고치는 마당에 김 직무대행이 상근 고문 자리에 남으면 정경유착의 전형적인 모양새로 비칠 수 있다며 볼멘소리가 쏟아지고 있다.

이에 대해 전경련 관계자는 “아직 부회장과 상근 고문 등에 대해서는 논의할 단계가 아니다. 이번 임시총회 안건으로 올라가지는 않을 것으로 본다. 우선 회장님을 선임한 이후 문제”라고 말을 아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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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예계 스캔들과 정치권 음모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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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요시사 취재1팀] 장지선 기자 = 한때 연예계를 떨게 했던 ‘마의 11월’이 다시 온 걸까? 매년 11월마다 연예계와 방송가에서 각종 이슈가 터진다는 말에서 비롯된 표현이다. 아슬아슬하게 11월은 넘기는가 싶더니 12월이 되자마자 연예계 이슈가 온 세상을 뒤덮었다. 동시다발로 터져 나온 연예계 사건·사고에 정작 중요한 이슈들이 가라앉고 있다. SNS에서 의혹이 제기되고, 이는 온라인 커뮤니티를 통해 게재된다. 얼마 가지 않아 기사로 보도된다. 유튜브 쇼츠로 제작돼 확산한다. 다시 온라인 커뮤니티에 올라온다. 방송으로 퍼진다. 방송분이 편집돼 다시 유튜브 영상으로 제작된다. 이 모든 과정에서 생산된 콘텐츠는 SNS를 통해 재생산된다. 다른 이슈가 불거진다. 반복된다. 하루 사이 연달아서 최근 이슈가 퍼지는 방식이다. 기사 등을 통해 정보가 대중에게 전달되던 시기는 이제 끝났다. 이제는 오히려 언론이 온라인 커뮤니티 글을 소스로 기사를 작성하는 판이다. 동시에 레거시 미디어를 통해 정보가 확산하던 시기도 지나간 지 오래다. 이제 모두가 유튜브로 이슈를 확인하고 댓글을 통해 의견을 표출한다. 문제는 온라인 커뮤니티에서 레거시 미디어로, 또다시 유튜브로 대표되는 뉴미디어로 정보가 전달되는 과정에서 자극도가 높아진다는 점이다. 동시에 확인되지 않은, 왜곡된 내용이 처음 올라온 정보에 덕지덕지 달라붙는다. 확산 속도 또한 어마어마하게 빠르다. 몇 시간이면 대형 온라인 커뮤니티 사이트를 비롯해 유튜브까지 퍼진다. 이 사이클은 무한정 돌아간다. 시간이 가면서 대중은 짧은 영상에 목말라 하고 있다. 분 단위의 영상보다는 초 단위 쇼츠에 더 열광한다. 영상 제작자는 조회수가 곧 돈이기에 대중의 입맛에 콘텐츠를 맞출 수밖에 없다. 도파민을 바라는 대중의 눈에 들기 위해선 흡인력 있는 영상을 만들어야 한다. 사실이든 아니든 그것은 중요하지 않다. 불과 일주일 새 연예계에서 동시다발로 이슈가 터졌다. 과거, 약물, 갑질, 조폭 의혹 등 언급되는 단어만으로 충격이 일었다. 여기에 의혹에 연루된 연예인의 면면이 전부 각 분야에서 잘 알려진 사람이라는 점은 이슈 확산에 기름을 부었다. 순식간에 커뮤니티와 유튜브 등이 불타올랐다. 배우 조진웅이 과거에 소년범이었다는 보도가 나왔다. 올해 광복절 경축식을 비롯해 정부 행사에 자주 얼굴을 드러냈던 터라 처음에는 반신반의하는 반응이 많았다. 비상계엄 사태 때에도 SNS에 글을 올리는 등 말할 때는 하는 이른바 ‘개념 연예인’으로 알려져 있어 대중은 조진웅의 반응을 기다렸다. 기사, SNS로 한꺼번에 유튜브 타고 빠른 확산 하지만 소년범이었던 과거가 사실로 드러나고 그가 은퇴를 선언하면서 상황은 걷잡을 수 없이 커졌다. 동시에 조진웅의 은퇴를 두고 ‘과거의 일’이라는 의견과 ‘피해자를 생각하라’는 의견이 대립하기 시작했다. 일부 진보 진영 정치인이 한두 마디씩 말을 보태면서 의견 대립은 정치권으로까지 번졌다. 여기에 소년범 의혹을 최초로 기사화한 언론의 보도 윤리도 도마 위에 올랐다. 개그우먼 박나래는 매니저 갑질 의혹과 불법 의료 시술 의혹이 동시에 불거졌다. 매니저들이 박나래를 상대로 고소했다는 보도가 나온 이후 줄줄이 이어진 후속 보도에서 드러난 의혹들이다. 박나래가 매니저들과 진실 공방을 벌이는 내용이 거듭해서 언론 보도, 유튜브 쇼츠 등으로 이어지면서 불씨가 꺼지지 않고 있다. 특히 불법 의료 시술 의혹은 ‘주사 이모’라는 존재가 등장하면서 판이 커질 기미를 보이고 있다. 주사 이모는 박나래에게 주사 등을 통해 투약한 인물로 추정된다. 해당 인물의 SNS가 공개되면서 몇몇 연예인이 연루 의혹을 받고 있다. 경찰 조사가 예정돼있어 장기전이 될 가능성이 커 보인다. 개그맨 조세호는 조폭 연루설에 휘말렸다. 조세호 의혹은 SNS를 통해 사진이 공개되면서 확산했다. 폭로자가 조세호와 조폭으로 추정되는 인물이 함께 찍은 사진을 올리고 글을 쓰면서 논란이 불거졌다. 그 여파로 조세호는 고정 출연하고 있던 <유 퀴즈 온 더 블럭>과 <1박 2일>에서 하차했다. 유명 연예인 도마 위에 아이돌 그룹 BTS의 정국과 에스파 윈터의 열애설도 비슷한 시기에 터졌다. 온라인 커뮤니티를 통해 두 사람이 비슷한 위치에 ‘커플 타투’를 했다는 의혹이 나왔다. 두 멤버의 소속사인 하이브와 SM엔터테인먼트는 ‘노코멘트’라고 입장을 밝혔다. 두 그룹이 높은 인기를 누리고 있는 만큼 계속 언급되는 중이다. 한 건만으로도 상당한 파급력을 지닐 사건이 연이어 터지면서 일각에서는 누군가가 민감한 이슈를 덮기 위해 연예계 사건·사고를 일부러 수면 위로 끌어올린 게 아니냐는 이른바 ‘음모론’이 제기되고 있다. 앞서 매년 11월마다 연예인 관련 사건이 일어나는 것을 두고 나왔던 이야기가 이번에 다시 나온 것이다. 정치나 사회 이슈와 비교해 연예계 관련 사건·사고 소식은 대중에게 직관적으로 다가가는 편이라 몰입도가 높다. 동시에 휘발성도 크다. 또 대중에게 잘 알려진 연예인일수록 사건의 파급력이 크다. 물론 연말연시를 앞두고 머리 아픈 이슈에 질린 대중에게 연예계 문제는 더할 나위 없이 흥미로운 소재라 말이 나오는 것일 뿐 확인된 바는 없다. 말 그대로 ‘도시괴담’에 가깝다는 뜻이다. 그럼에도 이번에는 상황이 묘하게 돌아가고 있다는 말이 심심찮게 보인다. 실제 여야가 한데 얽힌 것으로 추정되는 통일교 문제, 야당에서 강하게 반발 중인 국가보안법 폐지 논란 등이 연예계 이슈에 묻혀 대중의 관심에서 멀어지고 있다는 것이다. 3300만명이 넘는 고객의 개인정보가 유출된 쿠팡 사태도 그 사건 규모에 비해 관심도가 떨어지고 있다. 마의 11월 12월로? 통일교 관련 논란은 당초 야당인 국민의힘에 포커스가 집중됐다. 국민의힘 의원들이 통일교로부터 정치자금을 받았다는 의혹이다. 그러다 최근 그 범위가 여당인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으로까지 확대됐다. 윤영호 전 통일교 세계본부장이 통일교에서 금품을 제공한 정치인을 진술하면서 민주당 인사들도 입길에 올랐다. 민중기 특별검사팀은 지난 8월 윤 전 본부장으로부터 ‘통일교가 국민의힘 외에 민주당 소속 정치인들도 지원했다’는 취지의 진술을 확보했다. 윤 전 본부장이 언급한 인물 가운데 1명이 전재수 전 해양수산부 장관(당시 민주당 의원)이었다고 한다. 명품 시계 2개와 함께 수천만원을 한일 해저터널 추진 등 교단 숙원사업을 위해 줬다는 것이다. 금품수수 의혹이 보도되자 전 전 장관은 지난 11일, 전격 사의를 표명했다. 그는 “불법 금품수수는 없었다”면서 “장관직을 내려놓고 당당하게 응하는 것이 공직자로서 해야 할 처신”이라고 했다. 이어 “저와 관련된 황당하지만 전혀 근거 없는 논란”이라며 “해수부가 또는 이재명정부가 흔들려서는 안 된다”고 강조했다. 민주당 내부에서는 정권이 흔들릴 수도 있는 사안이라는 목소리도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그동안 통일교 관련 논란으로 국민의힘에 맹공을 퍼부었는데 역풍이 불 수 있다고 우려하고 있다. 실제 국민의힘은 ‘통일교 특검’을 주장하면서 민주당과 이 대통령을 몰아가는 중이다. 공수가 뒤바뀐 것이다. 범여권에서 추진 중인 국가보안법(이하 국보법) 폐지를 두고 정치권이 갈등을 빚고 있다. 국민의힘이 국보법 폐지에 강하게 반발하면서 여야 간 힘겨루기로 비화했다. 정치권 이슈 묻히고 쿠팡도 잠잠해지나? 지난 7일 민주당 민형배, 조국혁신당 김준형, 진보당 윤종오 의원은 국보법 폐지 법률안을 대표 발의했다. 의원들은 “국보법은 제정 당시 일본제국주의 치안유지법을 계승해 사상의 자유를 억압한 악법이라는 비판을 받아왔다”며 “국보법의 대부분 조항은 형법으로 대체 가능하며 남북교류협력법 등 관련 법률로도 충분히 규율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반면 국민의힘은 국보법 폐지를 용인할 수 없다는 입장이다. 국민의힘 송언석 원내대표는 ‘국가보안법 폐지, 누구를 위한 것인가’ 토론회에서 “국가정보원에서 대공수사권을 떼어내 경찰에 이관했지만 경찰은 그만한 준비가 제대로 안 돼 사실상 대공수사가 공중에 붕 뜬 느낌”이라며 “이런 상황에서 국보법을 폐지하려는 시도가 있다는 건 굉장히 심각한 일”이라고 지적했다. 연예계 이슈에 바로 직전 가장 큰 이슈였던 쿠팡 사태도 상대적으로 잠잠해졌다. 지난달 말 문자메시지 등을 통해 알려진 쿠팡 사태는 3370만명의 개인정보가 해외로 유출된 사건이다. 사실상 모든 고객의 정보가 털린 셈이다. 올 한 해 통신사, 카드사 등에서 개인정보 유출을 겪은 이용자는 또 한 번 직격탄을 맞았다. 쿠팡 사태는 해킹 등으로 정보가 유출된 여타 업체와 달리 전 직원의 소행으로 드러나면서 이커머스 업체의 보안 실태에 대한 불신으로 이어지고 있다. 동시에 2010년 창업 이래 이커머스 시장을 독점하다시피 한 쿠팡 생태계의 민낯이 낱낱이 알려졌다. 동시에 쿠팡에서 일어난 노동자 사망사고도 재조명받는 중이다. 지난 10일에는 박대준 쿠팡 대표가 사임했다. 쿠팡은 “최근의 개인정보 사태에 대해 국민께 실망하게 한 점에 대해 매우 송구스럽게 생각한다”며 “이번 사태의 발생과 수습 과정에서의 책임을 통감하고 모든 직위에서 물러나기로 했다”고 밝혔다. 사실상 경질이라는 의견이 많다. 당분간은 계속될 듯 일각에서는 음모론에서 한발 더 나아가 여당 쪽에서 연예계 이슈를 터트린 게 아니냐는 의심이 나오고 있다. 통일교 논란, 국보법 폐지, 쿠팡 논란 등 대형 이슈가 여당 쪽에 불리한 내용이 아니냐는 설명이다. 한편에서는 여야가 동시에 발을 걸치고 있는 사안인 만큼 특정 진영의 유불리를 따질 수 없다는 반박도 나온다. <jsjang@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