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 '주머니 속에' 유서 품고 다닌 순천 중학생 이야기

친구들이 때리고 어른들이 짓밟다

[일요시사 취재1팀] 장지선 기자 = 열세 살 아이는 유서를 품고 다녔다. 엄마는 열다섯 살 아이의 빈 의자를 보며 마음을 쓸어내린다. 가정이 붕괴되는 데 걸린 시간은 1년 남짓. 단란하고 화목했던 모습은 이제 과거가 됐다. 학교폭력이 한 가족의 삶을 할퀴어 버렸다.  

전남 순천의 ○○중학교 3학년인 민준이(가명)는 요즘 학교에 가지 않는다. 휴대폰만 보면서 밥도 먹지 않고 방에 틀어박혀 있다. 일 나간 엄마, 아빠에게 하루에도 20~30통씩 전화를 건다. 휴대폰이 없을 땐 끊임없이 먹거나 물건을 사달라고 조른다. 중학교에 들어간 지 1년6개월 만에 민준이는 180도 달라졌다. 

달라진 아이
악몽의 시간

경찰을 꿈꿨던 민준이는 이제 아무것도 되고 싶지 않다고 했다. 엄마는 민준이가 평범하게만 자랐으면 좋겠다고 간절히 바랐다. 모든 일은 지난해 7월 민준이의 중학교 2학년 담임선생님이 보낸 한 통의 문자에서 시작됐다. 1년6개월 동안 유서를 쓰고 버리기를 반복했던 민준이의 지난날이 드러난 순간이었다. 

새 친구를 사귄다는 기대감에 부풀었던 민준이의 중학교 생활은 2019년 입학 초부터 망가지기 시작했다. 또래에 비해 키가 작은 편인 민준이는 이유도 모른 채 괴롭힘의 대상이 됐다. 미술실, 화장실, 학교 뒤편 등에서 폭행이 이뤄졌다.

처음에는 친밀감의 표시로 생각했던 행위는 시간이 갈수록 더해지기만 했다. 


폭행은 집단으로 이뤄졌다. 민준이는 가해자들에게 붙잡힌 채 머리·배·명치 등을 얻어맞았다. 명치를 맞으면 죽을 듯이 아프다는 사실도 그때 알았다. 술래잡기라며 도망치게 한 후 붙잡아 두들겨 패는 일도 자주 일어났다. 가해자들은 8초를 셌다. 민준이는 사냥 당하는 초식동물 마냥 숨을 곳을 찾아 헤맸다.

딱 한 번 도서관에 숨은 날에만 무사할 수 있었다. 

가해자들은 민준이의 성기를 만졌다. 옷을 입은 채 민준이의 엉덩이에 자신의 성기를 비비기도 했다. 화장실은 악몽의 장소였다. 민준이가 일을 보고 있으면 화장실 문을 벌컥 열었다. 발을 걸어 넘어뜨린 후 화장실 바닥에 얼굴을 처박기도 했다.

화장실 바닥을 핥게 한 적도 있었다. 이후로 민준이는 학교 화장실을 이용하지 못했다.

민준이 엄마에 대한 입에 담지 못할 말이 오갔다. 외투나 필기구를 던진 후 주워오게 하는 건 일상이었다. 미술실에서 가장 구석진 자리는 민준이의 지정석이 됐다. 가해자들은 민준이를 그 자리로 몰아넣고 린치를 가했다. 미술실의 출입문은 하나 뿐. 그 자리로 몰리면 민준이는 더 이상 도망칠 수 없었다. 

폭행의 흔적이 몸을 뒤덮었다. 주먹으로 때리거나 꼬집는 등 다양한 방식의 폭행은 민준이의 몸에 멍과 상처를 남겼다. 폭행은 매일 같이 이어졌다. 어쩌다 하루 맞지 않을 때는 운이 좋다고 생각했다. 처음에는 저항도 하고 도망쳐도 봤지만 시간이 가면서 점점 체념했다.

술래잡기를 해도 처음과 달리 그냥 잡히는 쪽을 택했다.


부모님이 걱정하고 속상할까 집에서는 입을 꾹 다물었다. 목욕을 하던 중 온몸에 남은 멍을 보고 묻는 아빠에게 철봉을 하다 다쳤다고 둘러댔다. 힘든 일이 없느냐는 삼촌의 물음에도 괜찮다는 말만 반복했다. 대신 민준이가 매달린 건 1학년 담임선생님이었다.

민준이는 가해자들의 폭행이 도를 지나친다고 생각한 순간부터 수차례 담임선생님을 찾았다. 

“애들이 때리고 놀린다고 담임선생님에게 몇 번이나 말했어요. 그럴 때마다 담임선생님은 서로 ‘미안해’ 말하게 하고 끝냈어요. 맞은 건 난데 서로 사과하게 하고, 나도 똑같이 잘못했다고 말해서 속상했어요. 학폭위(학교폭력대책심의위원회)를 열어 달라는 말도 했지만 담임선생님은 들어주지 않았어요.”

“도와주세요”
교사도 외면

민준이는 자살을 생각했다. 혼자 방안에 앉아 유서를 썼다. ‘엄마, 아빠 사랑해요. 고맙습니다.’ ‘○○○, ○○○, ○○○, ○○○’(가해자들의 이름), ‘아이들의 괴롭힘이 힘들어서 죽습니다.’ 주머니에 유서를 넣고 다니다가 버리고, 다시 유서를 쓰기를 여러 차례 반복했다.

민준이는 그렇게 1년6개월을 철저한 고립 상태로 보냈다. 

가족들은 민준이의 변화를 대수롭지 않게 여겼다. 학원에서 집중하지 못하고, 성적이 떨어지는 것을 민준이의 집중력이 부족한 탓으로 생각했다. 배가 아프다며 2~3일에 한 번씩 조퇴하는 민준이를 보고 ‘왜 그렇게 배가 자주 아프냐’고 타박하기도 했다.

가족 모두를 불러놓고 ‘책상 밑에서 물 떨어지는 소리가 난다’고 했던 민준이의 말을 흘려들었다. 

엄마는 민준이를 굳게 믿었다. 무슨 일이 있으면 말해줄 것이라고, 심지어 누군가에게 피해를 끼쳤어도 엄마한테는 숨기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평소 순하고 다정했던 아들이 조금씩 폭력적으로 변해가고 짜증이 늘었지만 그마저도 중학교에 적응하는 과정이라고 여겼다.

달라진 환경에 어리광을 피우는 것이라고.

모든 사실이 드러났을 때 가족들이 죄책감에 몸부림친 건 이 때문이었다. 말로 표현만 하지 않았을 뿐 끊임없이 구조 신호를 보내던 민준이의 행동을 알아차리지 못했다는 미안함이 가족들을 덮쳤다. 특히 엄마는 민준이의 담임선생님과 자주 연락을 주고받던 터라 충격이 더욱 컸다. 

“민준이가 다른 애들이 놀린다고 몇 번 지나가듯 말하긴 했어요. 학교만 가려하면 머리가 아프다, 배가 아프다 말해서 이상하게 여기기도 했고요. 그때마다 담임선생님한테 문자를 보냈는데 학교에서는 아무 문제가 없다는 말만 돌아왔어요. 다른 애들의 놀림에 대해서도 담임선생님은 ‘민준이가 좀 예민한 거 같다’고 해서 오히려 아들을 탓했죠.” 


엄마는 담임선생님의 말을 믿고 민준이에게 조금만 더 참아보자고 다독였다. 민준이와 이야기한 날에는 둘이 부둥켜안고 울기도 했다. 민준이가 학교폭력 피해자라는 생각은 꿈에도 하지 못했다.

1학년 때 얼굴과 어깨 등에 나타났던 틱장애도 2학년 때는 사라졌다. 코로나19로 학교에 가는 날이 줄어 그랬다는 사실을 뒤늦게야 알아챘다.

부모님의 믿음은 지난해 7월 폭행을 당한 민준이를 걱정하는 2학년 담임선생님의 문자로 산산조각 났다. 문자를 발견한 가족들은 민준이에게 자초지종을 물었다. 그제야 민준이는 떠듬떠듬 학교폭력을 당했다는 사실을 털어놨다.

아들이 학대에 가까운 괴롭힘을 1년 넘게 당했다는 사실을 알게 된 부모님은 ‘멘붕’ 상태에 빠져들었다. 

처음에는 민준이가 거짓말을 하고 있다고 생각했다. 엄마는 그 당시 민준이의 말이 귀에 들어오지 않았다고 고백했다. 아들을 위로했어야 했는데 너무 큰 충격에 당일에는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고 자책했다. 아빠는 민준이 몸에 생긴 멍, 떨어지던 성적의 이유를 그제야 알아챘다.

가족들은 참담한 기분에 그날 밤 잠들지 못했다.


그날부터 민준이의 전쟁은 가족들의 전쟁이 됐다. 민준이의 진술과 학생부 사진을 대조해 찾아낸 가해자들은 12명에 달했다. 가해자들과 그 부모뿐만 아니라 학교, 교육청, 경찰서 등 가족들이 대응해야 할 대상은 너무나 많았다.

가족들 사이에 의견이 갈리기 시작했고 다툼이 잦아졌다. 

가족들 멘붕
참담한 심정

지난해 8월13일 순천교육청에서 열린 학교폭력대책심의위원회(이하 학폭위)는 가해자 12명이 2019년과 지난해 민준이를 상대로 교내외에서 신체폭력과 언어폭력 등을 가한 행위를 학교폭력으로 인정했다. 가해자들 가운데 2명은 전학 조치됐고, 나머지는 ▲학급 교체 ▲특별교육 이수 ▲사회봉사 ▲학교에서 봉사 등의 처분을 받았다. 

또 순천경찰서를 통해 고소한 건에 대해 2명은 검찰 송치, 나머지 10명은 14세 미만 촉법소년이라 광주 가정법원 소년부로 송치됐다. 민준이와 가족들이 가해자 12명 가운데 9명을 추가 고소한 건은 경찰에서 전원 불송치 처분했다.

하지만 검찰이 재수사 지휘를 내리면서 순천경찰서는 현재 이들에 대해 다시 수사 중이다.

학폭위 결과와 고소 결과가 나올 때까지 민준이와 가족들이 받은 상처는 이루 말할 수가 없었다. 가해자들과 그 부모들의 진정한 사과, 치료비 용도의 합의금 등을 요구했던 가족들은 학교, 교육청, 경찰의 대응 과정에서 2차 가해를 당했다고 주장했다.

민준이의 분노도 때린 가해자들보다 후속 대응을 하는 어른들로 옮겨가기 시작했다.

“민준이랑 같이 교장선생님을 찾아갔는데, 언론에는 알리지 말아 달라고 하시더라고요. 교육청에서 나오는 지원금이 다 끊긴다면서. 그 자리에서는 제대로 대꾸도 못했어요. 민준이가 ‘나 학교폭력 피해자 맞아? 왜 교장선생님은 지금 지원금 얘기를 해?’ 라고 말해 정말 미안해서 혼났어요.”

가해자들을 고소하는 과정에서도 경찰과 끊임없이 부딪쳤다. 민준이의 엉덩이에 성기를 비빈 가해자들을 성추행으로 고소하려는 것에 대해, 순천경찰서 여성청소년과 관계자는 ‘성추행은 (행위)하는 사람이 희열을 느껴야 하는데 (가해자들은)그런 게 없지 않냐’고 말했다고 주장했다. 

“처음 경찰에 갔을 때부터 이 건은 안 된다, 저 건도 안 된다 하셔서 가자마자 제가 울었어요. 민준이도 조사받는 내내 울었고요. 가해자들에 대한 조사도 한참 뒤에야 진행하시더라고요. 그것도 저희가 한 차례 항의를 하고 난 뒤였어요. 나중에 생각해보면 한 가해자 아버지가 순천경찰서에서 근무해서 그런 게 아닌가 싶은 생각도 들었어요.”

가해자들 가운데 1명은 민준이를 폭행 혐의로 고소하는 일까지 벌어졌다. 피해자가 가해자로 바뀌어 버린 것. 해당 가해자의 부모는 민준이가 자신의 아들에게 ▲돌을 던지고 ▲어깨로 부딪쳤다며 두 차례에 걸쳐 고소했다.

여러 차례 민준이의 집까지 찾아와 사과 의사를 밝혔던 부모였다. 

민준이를 가해자로 지목해 열린 첫 번째 학폭위에서 위원들은 ‘유보’ 조치를 내렸다. 경찰 조사가 진행 중인 만큼 결과를 보겠다는 입장이었다. 경찰은 당시 14세 미만 촉법소년이었던 민준이를 광주 가정법원 소년부로 송치했지만, 법원은 심리불개시 결정을 내렸다.

사건의 심리를 개시할 필요가 없다고 판단할 때 내리는 결정이다.

두 번째 학폭위는 피해자와 가해자(민준이) 사이의 입장이 완전히 상반되고 객관적 증거가 불충분하다는 이유로 ‘조치 없음’ 결정이 내려졌다. 아빠는 학폭위 개최에 크게 분노했다. 학폭위 위원들이 민준이가 피해자인 사건에 대한 고려 없이 기계적으로 위원회를 열었다는 주장이다. 

“제가 순천교육청에 찾아가서 빌었습니다. 아들이 커터칼로 자해를 하기 시작한 시점이었어요. 학폭위에 (가해자로) 참석하면 정말 확 그어버릴 것 같더라고요. 그래서 제발 아들의 피해 사실을 고려해 달라고 했습니다. 그런데 학폭위는 열렸고, 그날 위원장님이 ‘이전 이야기는 하지 말자’고 딱 자르시더라고요.”

학폭위에 참석한 민준이는 그 이후 수차례 자해했다. 아빠는 위원들의 질문에 엉엉 울면서 답변하는 민준이의 모습이 학대받은 고양이 같았다고 표현했다. 실제 만나본 민준이는 상처로 너덜너덜한 모습이었다. 취재진의 질문에 고개를 푹 수그린 채 작은 목소리로 대답했다.

그러면서도 민준이는 현재 가장 미운 사람을 묻는 질문에는 단호하게 말했다. 

“1학년 때 선생님이 가장 미워요. 그때 잘 해결됐으면 이 지경까지 오지 않았을 텐데. 지금은 성적이 완전 파탄 나서 꼴등 수준이에요. 그때 잘만 해결했으면 지금 그냥 행복하게 살고 있었을 텐데. 선생님이 가장 밉습니다.”  

민준이와 가족들은 1학년 담임선생님을 직무유기 혐의로 고소했다. 경찰은 담임선생님에 대해 증거불충분으로 인한 ‘혐의 없음’을 처분했다. 교장선생님에 따르면 해당 선생님은 ‘학교장 주의’ 징계를 받았으며, 6개월 휴직 후 인사 전보됐다. 

민준이의 상담을 맡았던 전남동부범죄피해자지원센터 상담위원은 “학교폭력 해결 과정에 있어서 학교에서 보여주는 모습이나 가해자들이 보상을 하고 사과하는 회복의 과정을 거치지 않고 어떻게 해서든지 빠져나가려 하는 모습, 오히려 민준이를 가해자로 만드는 모습 등이 모두 2차 가해죠. 여기서 오는 좌절감이 민준이와 가족을 망가뜨렸다고 볼 수 있죠.”

학교폭력 피해자의 방어막이 돼야 할 교육기관과 수사기관의 ‘방관자’적 대처는 피해자의 인생을 더욱 나락으로 끌어 내렸다. 민준이는 심리 상담 초기 환청이 들리고 환시가 보이는 조현증 증세가 나타나기도 했다. 현재는 사회공포증, 대인기피증, 후유장해 등을 앓고 있다.

끊임없이 뭔가를 사야 하는 충동도 여전하다. 

엄마의 상태도 좋지 않다. 민준이보다도 자살 위험 수치가 더욱 높았다. 상담위원에 따르면 엄마가 민준이에게 쏟아 붓던 애정이 좌절감으로 변했다. 민준이에게 나타난 정신병적 증세가 영원히 지속될까 두려움이 가득했다.

아들의 변화를 눈치 채지 못한 죄책감도 엄마를 옥죄고 있다. 10㎏ 넘게 살이 빠졌고 12가지가 넘는 정신과 약을 먹는 중이다. 

상담위원은 “그래도 일이 일어나기 전 가족 간의 유대가 상당했기 때문에 당시에 ‘저금’해둔 애정으로 지금 버티고 있는 것”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그 애정은 언제 바닥날지 모른다. 부부 사이에 이혼에 대한 언급이 여러 차례 나왔고, 한 살 터울의 민준이 누나는 학교와 독서실을 오가며 집에 있지 않으려 한다. 집안 곳곳에 걸려 있는 가족사진이 무색하게 민준이네 집 분위기는 한없이 무거웠다. 

이혼·불화
파탄난 가정

민준이도 가족들도 가해자들로부터 진정한 사과를 받고 싶다는 말을 연이어 했다. 일부 가해자들을 제외하고 나머지는 민준이와 가족들에게 그 어떤 사과의 말도 없었다고 한다. 학교나 경찰, 담임선생님도 마찬가지였다. 엄마만 매일 민준이에게 사과할 뿐이었다. “엄마가 먼저 알아주지 못해 미안해.”


<jsjang@ilyosisa.co.kr>

 

<기사 속 기사> 학교·경찰·담임 입장은? 
“아무도 사과하지 않았다”

▲학교 교장선생님 = 학교에서 취할 수 있는 조치는 다 취했다. 피해자와 가해자 사이에 합의금 액수 차이가 커서 합의가 잘 안된 걸로 알고 있다. 민준이 측에서 주장하는 언론에 대한 이야기는 사실이 아니다. 학교를 굉장히 열심히 운영하고 있기 때문에 잘못 알려지면 학교가 힘들어질 수 있다고 말한 것뿐이다.

“할 수 있는 건 다했다”

▲순천경찰서 = 1차 고소 건에 대해 가해자들의 비행사실을 인정해서 넘겼고, 2차 고소 건은 재수사 중이다. 피해자 측에서 주장하는 수사관의 부적절한 발언은 당사자 확인 결과 없었다고 한다. 또 가해자 가운데 1명의 아버지가 순천경찰서에서 근무한다는 내용은 담당자들은 전혀 모르고 있을뿐더러 확인도 안 된다.

▲1학년 담임선생님 = 민준이가 학교폭력 사실을 (나에게) 호소했고 (그게) 받아들여지지 않았다는 주장은 잘못됐다. 그 잘못된 주장으로 학교와 교육청에서 조사를 받아야 했고, 경찰조사까지 받았다. 경찰에서 모두 무혐의 처분을 받았기 때문에 더 할 말은 없다. <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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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독> 김건희 일가 연루 의혹 ‘선라이즈F&T’ 주주명부 공개

[단독] 김건희 일가 연루 의혹 ‘선라이즈F&T’ 주주명부 공개

[일요시사 취재1팀] 양동주 기자 = 소문이 어느덧 사실처럼 인식되고 있다. 명확한 물증이 없는 가운데 파편적인 의혹이 덧씌워진 양상은 좀처럼 바뀌지 않고 있으며, 흐름을 파악할 만한 유의미한 흔적이 이제야 겨우 나왔을 뿐이다. 증폭된 의혹 뒤편에서 여전히 진실은 빼꼼히 잘 보이지 않는다. 2010년 9월 설립된 ‘선라이즈에프앤티’는 황해경제자유구역에 자리 잡은 유일한 농산물 가공 업체로, 그간 심심치 않게 밀수 의혹을 받아왔다. 가공 목적으로 수입한 농산물을 가공 없이 시중에 유통시켜 엄청난 차익을 봤다는 꼬리표가 뒤따랐다. 의혹하는 눈초리 선라이즈에프앤티가 취급했던 대다수 농산물이 고관세 품목이라는 점은 이 같은 의혹을 부채질했다. 그간 선라이즈에프앤티는 ▲녹두 ▲콩나물콩 ▲다대기(혼합양념) ▲생강 ▲마늘 ▲참깨 ▲팥 ▲서리태 등 높은 세율이 붙는 고관세 품목을 주로 수입했던 것으로 파악되고 있다. 한 예로 콩나물콩의 경우 그대로 들여와 국내에 유통하면 487% 관세가 부과되지만, 콩나물 재배 목적으로 수입하면 27%만 반영된다. 평택세관에 몸담았던 다수의 전직 세관공무원이 기업 출범 및 운영에 관여했다는 점도 선라이즈에프앤티를 부정적으로 보게 만들었다. 심지어 선라이즈에프앤티 이사진에 포함됐던 특정 세관 출신 임원이 한때 다이아몬드 밀수 사건에 이름이 오르내린 사례도 존재한다. 수년 전부터는 김건희씨 일가와 선라이즈에프앤티를 동일선상에서 바라보는 경향이 강해졌다. 선라이즈에프앤티의 밀수 의혹을 수차례에 걸쳐 제기했던 공익 제보자 이성열씨가 재판에 연루되는 과정에서 김건희씨의 모친인 최은순씨가 거론됐던 게 이 같은 흐름에 불을 지핀 형국이다. 이런 가운데 정치평론가인 장성철 공론센터 소장이 최근 ‘평택항’을 언급하자, 김건희씨 일가와 선라이즈에프앤티 간 연관성은 사실처럼 받아들여질 정도가 됐다. 장 소장은 SBS라디오 <김태현의 뉴스쇼>가 운영하는 유튜브 방송에 출연해 김건희씨 일가의 수상한 물건 수입 의혹과 관련한 이야기를 전했다. 갈수록 증폭되는 평택 논란 이제야 공개된 소소한 흔적 장 소장은 “최은순씨가 주인으로 있는 농수산물 수입업체에서 이상한 것을 들고 오려고 하다가 걸려서 (김건희) 오빠와 김건희씨가 그것을 무마시키려고 여러 가지 이상한 (일들을 했다고 한다)”며 “어떤 물건인지 구체적으로 밝히지는 않았지만, 부적절한 물건인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고 말했다. 급기야 선라이즈에프앤티의 폐업이 알려지자, 의혹은 그야말로 걷잡을 수 없이 커진 양상이다. 선라이즈에프앤티는 국세청 사업자 과세 유형 조회 결과 지난 10일자로 폐업한 것으로 확인되고 있다. 폐업자로 조회된 지난 10일은 김건희 특검법이 공포된 시기와 맞물린다. 물론 꾸준히 의혹이 제기된 것과 별개로, 김건희씨 일가와 선라이즈에프앤티 간 연관성을 입증할 만한 확실한 단서는 없는 상황이다. 특히 주주명부가 지금껏 외부에 공개되지 않았다는 게 의혹과 진실을 구분 짓기 어렵게 만들고 있다. 이런 의미에서 <일요시사>가 최초 입수한 주주명부는 간접적으로나마 의문을 풀 수 있는 열쇠로 작용할 여지를 남긴다. 2022년 10월 작성된 ‘카리나에프앤티(선라이즈에프앤티에서 2020년 9월 상호 변경) 주주명부’를 검토한 결과 주주는 총 17명, 발행주식은 91만8400주(1주당 5000원)로 확인됐다. 2010년 9월 자본금 5억원으로 설립된 선라이즈에프앤티는 수차례 증자를 거쳤고, 해당 시기에 자본금을 45억9200만원으로 늘린 상태였다. 의문 해소 첫 단추 일단 주주명부에서는 김건희씨 일가의 이름을 찾을 수 없다. 대신 경영권 교체 과정이나마 엿볼 수 있을 뿐이다. 법인 등기와 주주명부를 교차 검증한 결과를 토대로 추정하면, 표면상 선라이즈에프앤티 지배 세력은 ‘전직 세관공무원(설립~2018년 중순)→지엔티에이치(~2020년 중순)→킴스에O엔O(~2022년 초순)→동OO앤에스(~2025년 6월)’ 순으로 변경된 흐름이다. 첫 번째 경영권 교체는 ‘펀딩하이 연체 사건’과 함께 발생했다. 펀딩하이는 중국·동남아시아에서 농산물을 수입하는 업체에 돈을 빌려 주고, 투자자들에게 15% 이상 수익을 보장하는 펀딩 상품으로 인기를 끌던 P2P 업체였다. 그러나 펀딩하이는 2018년 6월20일 ‘마늘 시즌2-17차(모집 금액 3억원, 차주 승리산업)’ 펀딩 상품의 연체를 시작으로 ▲세척 당근 시즌2-18차(모집금액 5억원, 차주 지엔티에이치) ▲김치 펀딩 2차(모집금액 1억2000만원, 차주 상아농산) ▲번데기 펀딩 1차(모집금액 1억8000만원, 차주 월량완코리아) 등에서 차주의 투자금 상환 실패를 알렸다. 연체 금액은 ▲지엔티에이치 29억원 ▲승리산업 33억원 ▲상아농산 11억8000만원 ▲월량완코리아 1억8000만원 등 총 75억6000만원에 달했다. 급기야 펀딩하이는 연체율 100%를 찍은 채 영업을 중단했다. 상환 실패 이후 차주 사이에 관련성이 드러났다. 지엔티에이치와 승리산업에서 대표이사였던 윤석호씨는 두 회사 지분을 각각 60%, 100% 보유 중이었다. 또한 월량완코리아 사내이사로도 등재돼있었다. 거듭되는 교체 수순 연체가 발생한 직접적인 사유는 선라이즈에프앤티를 대상으로 한 지분 투자였다. 지엔티에이치는 펀딩받은 금액을 농산물을 들여오는 데 쓰지 않고, 선라이즈에프앤티 주식을 매입하는 데 활용한 것으로 뒤늦게 확인됐다. 이를 계기로 지엔티에이치는 2018년 6월경 주식 16만1400주를 확보한 선라이즈에프앤티 최대주주로 올라섰다. 지엔티에이치가 지배력을 확보한 이후 선라이즈에프앤티 임원 명단에 변화가 목격됐다. 선라이즈에프앤티 초창기부터 함께했던 사내이사와 부친에 이어 회사에 몸담았던 대표이사를 대신해 지엔티에이치가 끌어들인 얼굴들이 등기임원 자리를 꿰찼다. 정작 지엔티에이치는 연체 발생 넉 달 후인 2018년 10월 보유 중이던 선라이즈에프앤티 주식을 ‘란릉현래보식품유한공사’에 넘겼다. 펀딩하이 투자자들과의 소송전이 불거지자 중국에 본거지를 둔 우군에 주식을 양도한 모양새였다. 두 번째 경영권 교체는 ‘킴스에O엔O’ 측이 선라이즈에프앤티의 주체로 올라서는 과정에서 발생한 것으로 보인다. 충청권에 본적을 둔 킴스에O엔O는 2022년 10월 기준 선라이즈에프앤티 주식 10만8200주를 확보한 것으로 확인됐다. 킴스에O엔O 대표이사의 친인척이 보유한 주식 13만2800주를 합산하면 우호 주식은 24만주 안팎이다. 기존 지엔티에이치 측 우호 세력(란릉현래보식품유한공사 16만1400주+마송재 3만주)과 비교해 5만주 가까이 격차를 벌린 셈이다. 킴스에O엔O 측이 선라이즈에프앤티 주식을 대량 매입한 시기는 2020년 중후반으로 추정된다. 이 무렵 선라이즈에프앤티 등기임원 구성이 크게 요동쳤다는 점을 통해 짐작 가능한 사안이다. 실제로 지엔티에이치가 지배력을 발휘하던 2018년 7월 대표이사에 선임됐던 김정일 대표는 2020년 3월 해임됐다. 2018년 9월 취임했던 또 다른 대표이사 역시 당해 10월을 넘기지 못한 채 사임했다. 쉽게 거두지 못하는 의심 의미심장 세력 교체 과정 공석이 된 주요 등기임원 자리는 킴스에O엔O 측 인물로 채워졌다. 킴스에O엔O 대표이사가 2020년 10월 선라이즈에프앤티 대표이사로 취임했고, 해당 시기에 사외이사, 감사 등 등기임원 전원이 새 얼굴로 교체됐다. 킴스에O엔O에 이어 지배 세력으로 등장한 곳은 식료품 제조업을 영위하는 동OO앤에스였다. 이 회사는 2022년 10월 기준 주주명부에 선라이즈에프앤티 주식 41만주(지분율 44.64%)를 보유한 단일 최대주주로 등재돼있다. 여기에 우호 세력(글로O포O 1만주+김성수 2만주+김종봉 788주)의 주식을 합산하면 지분율은 50%에 육박한다. 동OO앤에스는 사실상 선라이즈에프앤티를 인수하고자 만든 업체로 비쳐질 여지를 남긴다. 2022년 2월 출범 당시 자본금 10억원짜리였던 동OO앤에스는 불과 두 달 만인 2022년 4월14일 자본금을 21억원으로 두 배 이상 키웠다. 공교롭게도 동OO앤에스가 설립 이후 8개월 사이 선라이즈에프앤티 주식 41만주를 확보하는 과정에서 투입한 금액은 총 20억5000만원이었다. 이는 동OO앤에스 자본금 21억원이 선라이즈 주식 41만주를 매입하는 데 쓰였을 가능성에 주목하게 만든다. 게다가 선라이즈에프앤티는 기존 61만8400주였던 발행주식을 2022년 4월22일 91만8400주로 30만주 확대했다. 동OO앤에스가 자본금을 21억원으로 확충한 지 8일 만이다. 선라이즈에프앤티가 발행주식을 30만주 늘린 덕분에 동OO앤에스는 상대적으로 수월하게 주식 41만주를 확보한 형국이다. 동OO앤에스가 선라이즈에프앤티를 지배하는 위치로 올라설 무렵에 선라이즈에프앤티 임원 구성은 또 한 번 바뀌었다. 동OO앤에스 대표이사가 사내이사, 글로O포O 대표이사가 사외이사에 이름을 올렸고, 김성수 대표이사가 신규 선임됐다. 이후 김성수 대표는 선라이즈에프앤티 폐업 전까지 자리를 지킨 것으로 확인되고 있다. 되짚어보는 연결고리 한편 일각에서는 김건희씨 일가에서 선라이즈에프앤티에 영향력을 행사했다면 그 시기는 지엔티에이치 측이 지배력을 상실한 이후일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그나마 킴스에O엔O 혹은 동OO앤에스와의 연관성이 높다고 보는 것이다. 한 경찰 관계자는 “김건희씨 일가에서 선라이즈에프앤티에 관여한 직접적인 흔적이 발견되지 않았지만, 만약 영향력을 행사했다면 그 시기를 2021년 이후로 특정해볼 수 있을 것”이라며 “항간에 떠도는 마약 적발 여부는 2022년 근방으로 얘기가 오가는 상황”이라고 말했다. <heatyang@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