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 '주머니 속에' 유서 품고 다닌 순천 중학생 이야기

친구들이 때리고 어른들이 짓밟다

[일요시사 취재1팀] 장지선 기자 = 열세 살 아이는 유서를 품고 다녔다. 엄마는 열다섯 살 아이의 빈 의자를 보며 마음을 쓸어내린다. 가정이 붕괴되는 데 걸린 시간은 1년 남짓. 단란하고 화목했던 모습은 이제 과거가 됐다. 학교폭력이 한 가족의 삶을 할퀴어 버렸다.  

전남 순천의 ○○중학교 3학년인 민준이(가명)는 요즘 학교에 가지 않는다. 휴대폰만 보면서 밥도 먹지 않고 방에 틀어박혀 있다. 일 나간 엄마, 아빠에게 하루에도 20~30통씩 전화를 건다. 휴대폰이 없을 땐 끊임없이 먹거나 물건을 사달라고 조른다. 중학교에 들어간 지 1년6개월 만에 민준이는 180도 달라졌다. 

달라진 아이
악몽의 시간

경찰을 꿈꿨던 민준이는 이제 아무것도 되고 싶지 않다고 했다. 엄마는 민준이가 평범하게만 자랐으면 좋겠다고 간절히 바랐다. 모든 일은 지난해 7월 민준이의 중학교 2학년 담임선생님이 보낸 한 통의 문자에서 시작됐다. 1년6개월 동안 유서를 쓰고 버리기를 반복했던 민준이의 지난날이 드러난 순간이었다. 

새 친구를 사귄다는 기대감에 부풀었던 민준이의 중학교 생활은 2019년 입학 초부터 망가지기 시작했다. 또래에 비해 키가 작은 편인 민준이는 이유도 모른 채 괴롭힘의 대상이 됐다. 미술실, 화장실, 학교 뒤편 등에서 폭행이 이뤄졌다.

처음에는 친밀감의 표시로 생각했던 행위는 시간이 갈수록 더해지기만 했다. 


폭행은 집단으로 이뤄졌다. 민준이는 가해자들에게 붙잡힌 채 머리·배·명치 등을 얻어맞았다. 명치를 맞으면 죽을 듯이 아프다는 사실도 그때 알았다. 술래잡기라며 도망치게 한 후 붙잡아 두들겨 패는 일도 자주 일어났다. 가해자들은 8초를 셌다. 민준이는 사냥 당하는 초식동물 마냥 숨을 곳을 찾아 헤맸다.

딱 한 번 도서관에 숨은 날에만 무사할 수 있었다. 

가해자들은 민준이의 성기를 만졌다. 옷을 입은 채 민준이의 엉덩이에 자신의 성기를 비비기도 했다. 화장실은 악몽의 장소였다. 민준이가 일을 보고 있으면 화장실 문을 벌컥 열었다. 발을 걸어 넘어뜨린 후 화장실 바닥에 얼굴을 처박기도 했다.

화장실 바닥을 핥게 한 적도 있었다. 이후로 민준이는 학교 화장실을 이용하지 못했다.

민준이 엄마에 대한 입에 담지 못할 말이 오갔다. 외투나 필기구를 던진 후 주워오게 하는 건 일상이었다. 미술실에서 가장 구석진 자리는 민준이의 지정석이 됐다. 가해자들은 민준이를 그 자리로 몰아넣고 린치를 가했다. 미술실의 출입문은 하나 뿐. 그 자리로 몰리면 민준이는 더 이상 도망칠 수 없었다. 

폭행의 흔적이 몸을 뒤덮었다. 주먹으로 때리거나 꼬집는 등 다양한 방식의 폭행은 민준이의 몸에 멍과 상처를 남겼다. 폭행은 매일 같이 이어졌다. 어쩌다 하루 맞지 않을 때는 운이 좋다고 생각했다. 처음에는 저항도 하고 도망쳐도 봤지만 시간이 가면서 점점 체념했다.

술래잡기를 해도 처음과 달리 그냥 잡히는 쪽을 택했다.


부모님이 걱정하고 속상할까 집에서는 입을 꾹 다물었다. 목욕을 하던 중 온몸에 남은 멍을 보고 묻는 아빠에게 철봉을 하다 다쳤다고 둘러댔다. 힘든 일이 없느냐는 삼촌의 물음에도 괜찮다는 말만 반복했다. 대신 민준이가 매달린 건 1학년 담임선생님이었다.

민준이는 가해자들의 폭행이 도를 지나친다고 생각한 순간부터 수차례 담임선생님을 찾았다. 

“애들이 때리고 놀린다고 담임선생님에게 몇 번이나 말했어요. 그럴 때마다 담임선생님은 서로 ‘미안해’ 말하게 하고 끝냈어요. 맞은 건 난데 서로 사과하게 하고, 나도 똑같이 잘못했다고 말해서 속상했어요. 학폭위(학교폭력대책심의위원회)를 열어 달라는 말도 했지만 담임선생님은 들어주지 않았어요.”

“도와주세요”
교사도 외면

민준이는 자살을 생각했다. 혼자 방안에 앉아 유서를 썼다. ‘엄마, 아빠 사랑해요. 고맙습니다.’ ‘○○○, ○○○, ○○○, ○○○’(가해자들의 이름), ‘아이들의 괴롭힘이 힘들어서 죽습니다.’ 주머니에 유서를 넣고 다니다가 버리고, 다시 유서를 쓰기를 여러 차례 반복했다.

민준이는 그렇게 1년6개월을 철저한 고립 상태로 보냈다. 

가족들은 민준이의 변화를 대수롭지 않게 여겼다. 학원에서 집중하지 못하고, 성적이 떨어지는 것을 민준이의 집중력이 부족한 탓으로 생각했다. 배가 아프다며 2~3일에 한 번씩 조퇴하는 민준이를 보고 ‘왜 그렇게 배가 자주 아프냐’고 타박하기도 했다.

가족 모두를 불러놓고 ‘책상 밑에서 물 떨어지는 소리가 난다’고 했던 민준이의 말을 흘려들었다. 

엄마는 민준이를 굳게 믿었다. 무슨 일이 있으면 말해줄 것이라고, 심지어 누군가에게 피해를 끼쳤어도 엄마한테는 숨기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평소 순하고 다정했던 아들이 조금씩 폭력적으로 변해가고 짜증이 늘었지만 그마저도 중학교에 적응하는 과정이라고 여겼다.

달라진 환경에 어리광을 피우는 것이라고.

모든 사실이 드러났을 때 가족들이 죄책감에 몸부림친 건 이 때문이었다. 말로 표현만 하지 않았을 뿐 끊임없이 구조 신호를 보내던 민준이의 행동을 알아차리지 못했다는 미안함이 가족들을 덮쳤다. 특히 엄마는 민준이의 담임선생님과 자주 연락을 주고받던 터라 충격이 더욱 컸다. 

“민준이가 다른 애들이 놀린다고 몇 번 지나가듯 말하긴 했어요. 학교만 가려하면 머리가 아프다, 배가 아프다 말해서 이상하게 여기기도 했고요. 그때마다 담임선생님한테 문자를 보냈는데 학교에서는 아무 문제가 없다는 말만 돌아왔어요. 다른 애들의 놀림에 대해서도 담임선생님은 ‘민준이가 좀 예민한 거 같다’고 해서 오히려 아들을 탓했죠.” 


엄마는 담임선생님의 말을 믿고 민준이에게 조금만 더 참아보자고 다독였다. 민준이와 이야기한 날에는 둘이 부둥켜안고 울기도 했다. 민준이가 학교폭력 피해자라는 생각은 꿈에도 하지 못했다.

1학년 때 얼굴과 어깨 등에 나타났던 틱장애도 2학년 때는 사라졌다. 코로나19로 학교에 가는 날이 줄어 그랬다는 사실을 뒤늦게야 알아챘다.

부모님의 믿음은 지난해 7월 폭행을 당한 민준이를 걱정하는 2학년 담임선생님의 문자로 산산조각 났다. 문자를 발견한 가족들은 민준이에게 자초지종을 물었다. 그제야 민준이는 떠듬떠듬 학교폭력을 당했다는 사실을 털어놨다.

아들이 학대에 가까운 괴롭힘을 1년 넘게 당했다는 사실을 알게 된 부모님은 ‘멘붕’ 상태에 빠져들었다. 

처음에는 민준이가 거짓말을 하고 있다고 생각했다. 엄마는 그 당시 민준이의 말이 귀에 들어오지 않았다고 고백했다. 아들을 위로했어야 했는데 너무 큰 충격에 당일에는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고 자책했다. 아빠는 민준이 몸에 생긴 멍, 떨어지던 성적의 이유를 그제야 알아챘다.

가족들은 참담한 기분에 그날 밤 잠들지 못했다.


그날부터 민준이의 전쟁은 가족들의 전쟁이 됐다. 민준이의 진술과 학생부 사진을 대조해 찾아낸 가해자들은 12명에 달했다. 가해자들과 그 부모뿐만 아니라 학교, 교육청, 경찰서 등 가족들이 대응해야 할 대상은 너무나 많았다.

가족들 사이에 의견이 갈리기 시작했고 다툼이 잦아졌다. 

가족들 멘붕
참담한 심정

지난해 8월13일 순천교육청에서 열린 학교폭력대책심의위원회(이하 학폭위)는 가해자 12명이 2019년과 지난해 민준이를 상대로 교내외에서 신체폭력과 언어폭력 등을 가한 행위를 학교폭력으로 인정했다. 가해자들 가운데 2명은 전학 조치됐고, 나머지는 ▲학급 교체 ▲특별교육 이수 ▲사회봉사 ▲학교에서 봉사 등의 처분을 받았다. 

또 순천경찰서를 통해 고소한 건에 대해 2명은 검찰 송치, 나머지 10명은 14세 미만 촉법소년이라 광주 가정법원 소년부로 송치됐다. 민준이와 가족들이 가해자 12명 가운데 9명을 추가 고소한 건은 경찰에서 전원 불송치 처분했다.

하지만 검찰이 재수사 지휘를 내리면서 순천경찰서는 현재 이들에 대해 다시 수사 중이다.

학폭위 결과와 고소 결과가 나올 때까지 민준이와 가족들이 받은 상처는 이루 말할 수가 없었다. 가해자들과 그 부모들의 진정한 사과, 치료비 용도의 합의금 등을 요구했던 가족들은 학교, 교육청, 경찰의 대응 과정에서 2차 가해를 당했다고 주장했다.

민준이의 분노도 때린 가해자들보다 후속 대응을 하는 어른들로 옮겨가기 시작했다.

“민준이랑 같이 교장선생님을 찾아갔는데, 언론에는 알리지 말아 달라고 하시더라고요. 교육청에서 나오는 지원금이 다 끊긴다면서. 그 자리에서는 제대로 대꾸도 못했어요. 민준이가 ‘나 학교폭력 피해자 맞아? 왜 교장선생님은 지금 지원금 얘기를 해?’ 라고 말해 정말 미안해서 혼났어요.”

가해자들을 고소하는 과정에서도 경찰과 끊임없이 부딪쳤다. 민준이의 엉덩이에 성기를 비빈 가해자들을 성추행으로 고소하려는 것에 대해, 순천경찰서 여성청소년과 관계자는 ‘성추행은 (행위)하는 사람이 희열을 느껴야 하는데 (가해자들은)그런 게 없지 않냐’고 말했다고 주장했다. 

“처음 경찰에 갔을 때부터 이 건은 안 된다, 저 건도 안 된다 하셔서 가자마자 제가 울었어요. 민준이도 조사받는 내내 울었고요. 가해자들에 대한 조사도 한참 뒤에야 진행하시더라고요. 그것도 저희가 한 차례 항의를 하고 난 뒤였어요. 나중에 생각해보면 한 가해자 아버지가 순천경찰서에서 근무해서 그런 게 아닌가 싶은 생각도 들었어요.”

가해자들 가운데 1명은 민준이를 폭행 혐의로 고소하는 일까지 벌어졌다. 피해자가 가해자로 바뀌어 버린 것. 해당 가해자의 부모는 민준이가 자신의 아들에게 ▲돌을 던지고 ▲어깨로 부딪쳤다며 두 차례에 걸쳐 고소했다.

여러 차례 민준이의 집까지 찾아와 사과 의사를 밝혔던 부모였다. 

민준이를 가해자로 지목해 열린 첫 번째 학폭위에서 위원들은 ‘유보’ 조치를 내렸다. 경찰 조사가 진행 중인 만큼 결과를 보겠다는 입장이었다. 경찰은 당시 14세 미만 촉법소년이었던 민준이를 광주 가정법원 소년부로 송치했지만, 법원은 심리불개시 결정을 내렸다.

사건의 심리를 개시할 필요가 없다고 판단할 때 내리는 결정이다.

두 번째 학폭위는 피해자와 가해자(민준이) 사이의 입장이 완전히 상반되고 객관적 증거가 불충분하다는 이유로 ‘조치 없음’ 결정이 내려졌다. 아빠는 학폭위 개최에 크게 분노했다. 학폭위 위원들이 민준이가 피해자인 사건에 대한 고려 없이 기계적으로 위원회를 열었다는 주장이다. 

“제가 순천교육청에 찾아가서 빌었습니다. 아들이 커터칼로 자해를 하기 시작한 시점이었어요. 학폭위에 (가해자로) 참석하면 정말 확 그어버릴 것 같더라고요. 그래서 제발 아들의 피해 사실을 고려해 달라고 했습니다. 그런데 학폭위는 열렸고, 그날 위원장님이 ‘이전 이야기는 하지 말자’고 딱 자르시더라고요.”

학폭위에 참석한 민준이는 그 이후 수차례 자해했다. 아빠는 위원들의 질문에 엉엉 울면서 답변하는 민준이의 모습이 학대받은 고양이 같았다고 표현했다. 실제 만나본 민준이는 상처로 너덜너덜한 모습이었다. 취재진의 질문에 고개를 푹 수그린 채 작은 목소리로 대답했다.

그러면서도 민준이는 현재 가장 미운 사람을 묻는 질문에는 단호하게 말했다. 

“1학년 때 선생님이 가장 미워요. 그때 잘 해결됐으면 이 지경까지 오지 않았을 텐데. 지금은 성적이 완전 파탄 나서 꼴등 수준이에요. 그때 잘만 해결했으면 지금 그냥 행복하게 살고 있었을 텐데. 선생님이 가장 밉습니다.”  

민준이와 가족들은 1학년 담임선생님을 직무유기 혐의로 고소했다. 경찰은 담임선생님에 대해 증거불충분으로 인한 ‘혐의 없음’을 처분했다. 교장선생님에 따르면 해당 선생님은 ‘학교장 주의’ 징계를 받았으며, 6개월 휴직 후 인사 전보됐다. 

민준이의 상담을 맡았던 전남동부범죄피해자지원센터 상담위원은 “학교폭력 해결 과정에 있어서 학교에서 보여주는 모습이나 가해자들이 보상을 하고 사과하는 회복의 과정을 거치지 않고 어떻게 해서든지 빠져나가려 하는 모습, 오히려 민준이를 가해자로 만드는 모습 등이 모두 2차 가해죠. 여기서 오는 좌절감이 민준이와 가족을 망가뜨렸다고 볼 수 있죠.”

학교폭력 피해자의 방어막이 돼야 할 교육기관과 수사기관의 ‘방관자’적 대처는 피해자의 인생을 더욱 나락으로 끌어 내렸다. 민준이는 심리 상담 초기 환청이 들리고 환시가 보이는 조현증 증세가 나타나기도 했다. 현재는 사회공포증, 대인기피증, 후유장해 등을 앓고 있다.

끊임없이 뭔가를 사야 하는 충동도 여전하다. 

엄마의 상태도 좋지 않다. 민준이보다도 자살 위험 수치가 더욱 높았다. 상담위원에 따르면 엄마가 민준이에게 쏟아 붓던 애정이 좌절감으로 변했다. 민준이에게 나타난 정신병적 증세가 영원히 지속될까 두려움이 가득했다.

아들의 변화를 눈치 채지 못한 죄책감도 엄마를 옥죄고 있다. 10㎏ 넘게 살이 빠졌고 12가지가 넘는 정신과 약을 먹는 중이다. 

상담위원은 “그래도 일이 일어나기 전 가족 간의 유대가 상당했기 때문에 당시에 ‘저금’해둔 애정으로 지금 버티고 있는 것”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그 애정은 언제 바닥날지 모른다. 부부 사이에 이혼에 대한 언급이 여러 차례 나왔고, 한 살 터울의 민준이 누나는 학교와 독서실을 오가며 집에 있지 않으려 한다. 집안 곳곳에 걸려 있는 가족사진이 무색하게 민준이네 집 분위기는 한없이 무거웠다. 

이혼·불화
파탄난 가정

민준이도 가족들도 가해자들로부터 진정한 사과를 받고 싶다는 말을 연이어 했다. 일부 가해자들을 제외하고 나머지는 민준이와 가족들에게 그 어떤 사과의 말도 없었다고 한다. 학교나 경찰, 담임선생님도 마찬가지였다. 엄마만 매일 민준이에게 사과할 뿐이었다. “엄마가 먼저 알아주지 못해 미안해.”


<jsjang@ilyosisa.co.kr>

 

<기사 속 기사> 학교·경찰·담임 입장은? 
“아무도 사과하지 않았다”

▲학교 교장선생님 = 학교에서 취할 수 있는 조치는 다 취했다. 피해자와 가해자 사이에 합의금 액수 차이가 커서 합의가 잘 안된 걸로 알고 있다. 민준이 측에서 주장하는 언론에 대한 이야기는 사실이 아니다. 학교를 굉장히 열심히 운영하고 있기 때문에 잘못 알려지면 학교가 힘들어질 수 있다고 말한 것뿐이다.

“할 수 있는 건 다했다”

▲순천경찰서 = 1차 고소 건에 대해 가해자들의 비행사실을 인정해서 넘겼고, 2차 고소 건은 재수사 중이다. 피해자 측에서 주장하는 수사관의 부적절한 발언은 당사자 확인 결과 없었다고 한다. 또 가해자 가운데 1명의 아버지가 순천경찰서에서 근무한다는 내용은 담당자들은 전혀 모르고 있을뿐더러 확인도 안 된다.

▲1학년 담임선생님 = 민준이가 학교폭력 사실을 (나에게) 호소했고 (그게) 받아들여지지 않았다는 주장은 잘못됐다. 그 잘못된 주장으로 학교와 교육청에서 조사를 받아야 했고, 경찰조사까지 받았다. 경찰에서 모두 무혐의 처분을 받았기 때문에 더 할 말은 없다. <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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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 터질’ 11월 국회 막전막후

‘박 터질’ 11월 국회 막전막후

[일요시사 정치팀] 박희영 기자 = 9월 정기국회 첫날부터 한복과 상복으로 기싸움을 벌이던 여의도 전쟁은 현재 진행형이다. 12월 정기국회 종료까지 겨우 한 달 남았지만 여야 간의 파열음은 여전하다. 더불어민주당은 개혁 추진 동력을 얻기 위해 압박 수위를 높이고 있다. 이에 질세라 국민의힘은 야당으로서 거대 여당의 폭주에 맞서겠다며 맞불을 놨다. 고성과 퇴장이 난무하던 이재명정부 첫 국정감사(이하 국감)가 종합감사만 남긴 채 막바지에 돌입했다. 수많은 안건 속에서도 처음부터 끝까지 언급된 건 김현지·조희대 두 사람의 이름이다. 여전히 베일에 싸인 김현지 제1대통령실 부속실장과 사퇴 압박에도 꼿꼿하게 버티는 조희대 대법원장을 둘러싼 국감 후폭풍이 이어질 전망이다. 김현지 조희대 오는 6일 열리는 국회 운영위원회가 대통령실을 대상으로 한 종합감사에 김 실장 이름을 증인으로 올렸지만 끝내 불발됐다. 그동안 국민의힘은 김 실장을 증인으로 불러 모든 의혹을 검증해야 한다고 주장했고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은 “감사가 아닌 정치공세”라며 이를 거부했다. 민주당은 김 실장이 국감 당일 오전 또는 오후 1시까지만 출석할 수 있다고 밝혔고 ‘반반 출석’ 논란을 키웠다. 국민의힘 김은혜 의원은 “김현지 증인 출석을 놓고 민주당이 내놓은 안은 오전 출석, 오후 불출석이라고 하는데 국감이 치킨인가? 반반 출석하게”라며 “김 실장 한 사람을 지키려고 하니 이런 코미디가 나오는 것”이라고 비꼬았다. 국민의힘이 ‘김현지 흔들기’에 나서자 민주당은 조 대법원장을 도마 위에 올렸다. 민주당은 “국감이 끝난 이후 사법개혁을 처리하겠다”며 조 대법원장이 스스로 거취를 정할 수 있는 데드라인을 그어줬다. 민주당 전현희 최고위원은 “이번 사법개혁안은 제왕적 대법원장의 전횡을 막고 재판의 민주적 절차를 강화하기 위한 사법정상화법이다. 사법 독립성과 책임성을 두텁게 하고 국민의 공정한 재판받을 권리를 보장하기 위한 최소한의 안전장치”라며 사법부 장악 논란을 사전에 잠재웠다. 조국혁신당(이하 혁신당)은 조 대법원장에 대한 탄핵 시도를 이어가고 있다. 혁신당 조국 비상대책위원장은 “대법원이 조 대법원장의 사퇴 요구를 외면할 경우 탄핵을 포함한 모든 법적·정치적 수단을 강력히 추진하겠다”며 으름장을 놨다. 두 사람의 이름은 오는 12월 정기국회를 마치고 해를 넘겨서도 호명될 것으로 보인다. 여야 모두 내년에 있을 지방선거를 겨냥해 상대편의 아킬레스건을 물고 늘어지겠다는 전략이다. 한 야권 관계자는 “김건희 특검이 12월까지 갈 것으로 봤는데 조희대라는 새로운 공격 포인트가 생겼다. 민주당이 쉽게 놔주지 않을 것”이라며 “‘내란 세트’로 묶어서 지방선거까지 끌고 가겠다는 심산이다. 내란이라는 키워드만큼 국민의힘을 공격하기 좋은 소재가 없다”고 말했다. 이어 “반면에 민주당은 부동산 실책이 뼈아프다. 그걸 덮기 위해 조 대법원장을 계속해서 끌어들일 것”이라며 “국민의힘 권성동 의원과 추경호 의원에 대한 수사가 이뤄지면 이제 그쪽을 노리지 않겠나? 여아가 머리채만 안 잡았지, 아마 역대급 국회가 될 것”이라고 예상했다. 여야 ‘사이좋게’ 하나씩 쥔 약점 특검 앞 권성동·추경호 운명은? 추 의원은 지난달 30일 국회의 계엄해제 의결을 방해한 혐의로 첫 조사를 받았다. 특검은 당시 원내대표였던 추 의원을 비롯한 국민의힘 지도부가 의원총회 장소를 여러 차례 변경함으로써 고의로 표결을 방해했는지를 들여다볼 예정이다. 이날 추 의원은 조은석 내란특검에서 진행되는 1차 피의자 소환조사에 응해 “무도한 정치 탄압”이라며 “당당하게 특검에 임하겠다”고 밝혔다. 정치자금법 위반 혐의로 구속 수감 중인 권성동 전 원내대표의 첫 재판은 오는 3일로 예정돼있다. 권 전 원내대표는 불법 정치자금 1억원을 수수한 혐의를 받아 구속 상태로 재판에 넘겨졌다. 이처럼 각종 악재가 국민의힘을 단단히 휘감자 부동산으로 한차례 휘청한 민주당이 반사이익 효과를 볼 것이란 해석이 나온다. 여기에 여론조사 대납 의혹을 받는 오세훈 서울시장과 정치 브로커 명태균씨의 대질이 오는 8일 예정돼 내년 6월 치러질 지방선거 판까지 흔들 수 있을지 귀추가 주목된다. 오는 5일부터 시작되는 내년도 예산안 심사를 놓고 긴장감이 고조된다. 이정부 출범 후 첫 예산 심사로 국민의힘은 지역사랑 상품권 등 이 대통령의 트레이드마크인 지역 화폐를 겨냥해 맹공을 펼칠 것으로 보인다. 올해 두 차례에 걸쳐 민주당 주도로 추경이 국회를 통과하면서 국민의힘이 크게 반발했고, 지난 8월 정부 예산안이 공개되면서 본격적으로 ‘이재명식 포퓰리즘’ 프레임 굳히기에 나섰다. 국회 예산결산특별위원회는 오는 5일 있을 예산안 공청회를 시작으로 6∼7일 이틀간 종합정책질의를 실시할 예정이다. 10~11일에는 경제부처, 12∼13일에는 비경제부처 부별 심사가 진행되고 17일에는 소위원회 예산안의 감·증액을 심사하는 예산안조정소위가 가동된다. 각 소위의 논의를 거친 예산안은 전체회의 의결을 통해 본회의에 상정된다. 예산안 국회 본회의 처리 법정 시한은 매년 12월2일이지만 늘 그렇듯 여야의 예산 샅바싸움으로 해당 날짜를 넘길 것이란 관측이 나온다. 앞서 정부는 지난 8월 728조원의 예산을 편성했다. 올해 본예산에 견줬을 때 8.1% 늘어난 규모다. 이 대통령은 초혁신 경제 분야 등에 큰 폭으로 투자해 경제의 마중물 역할을 하겠다는 방침이다. 예산안이 의결되던 날 이 대통령은 “지금은 어느 때보다 재정의 적극적 역할이 필요한 시점”이라며 “씨앗을 빌려서라도 뿌려서 농사를 준비하는 게 상식이고 순리”라고 말했다. 역대급 규모 쩐의 전쟁 이어 “현재 우리 경제는 신기술 주도의 산업 경제 혁신, 그리고 외풍에 취약한 수출 의존형 경제의 개선이라는 두 가지 과제를 동시에 안고 있다”며 “국무회의에서 의결되는 내년도 예산안은 이런 두 가지 과제를 동시에 해결하고 경제 대혁신을 통해 회복과 성장을 이끌어내기 위한 마중물”이라고 설명했다. 가장 눈에 띄는 점은 AI 투자다. 그동안 이 대통령은 AI 3대 강국을 강조한 만큼 예산 역시 이에 맞춰 전년 대비 3배 이상 증가한 10조1000억원으로 책정했다. 자동차·조선, 반도체 등 주요 산업에 AI를 접목하고 휴머노이드 로봇용 AI 모델 등 ‘피지컬 AI’ 분야에도 집중 투자를 예고했다. 과학기술 연구개발(R&D) 예산은 지난해보다 19.3% 증가한 35조3000억원이다. 역대 규모인 이번 예산 중 10조6000억원이 AI·바이오·콘텐츠·방산·에너지·제조 등 6대 첨단산업의 핵심 기술개발을 지원하기 위해 투입된다. 이 중에서도 국민의힘은 26조2000억원으로 책정된 ‘민생경제 회복과 사회연대경제 기반 구축’ 부문을 눈여겨보고 있다. 정부는 24조원 규모로 지역사랑상품권 발행을 지원하고 지역별 여건을 고려해 국비 보조율을 상향 조정하겠다는 방침을 세웠다. 민주당은 24조원은 총 발행되는 상품권의 액면가이며 이 중 3~7%를 예산으로 지원하는 방식이라고 설명했다. 디지털 온누리상품권 예산은 4000억원으로 도합 4조5000억원 규모로 책정됐다. 또 정부는 연 매출 1억400만원 미만인 소상공인 230만개 사에 경영안정 바우처 25만원을 지급하겠다고 밝혔다. 예산안이 발표되자 국민의힘은 곧바로 ‘국민 부담 가중 청구서’라고 반박했다. 국민의힘 박성훈 수석대변인은 “이정부 예산이 올해보다 8.1% 늘어난 728조원 규모로 편성됐다. 조세감면까지 포함하면 실질 지출은 무려 808조5000억원에 달한다”며 “내년도 국가채무는 1415조원, 2029년에는 무려 1789조 원으로 폭증할 전망이다. GDP 대비 국가채무 비율은 올해 49.1%에서 내년 51.6%, 2029년에는 58%까지 치솟는다”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지난 문재인정부 5년 동안 국가채무 비율이 33.9%에서 46.8%로 뛰어올랐는데 이정부는 걷잡을 수 없이 불어나는 나랏빚을 통제하기는커녕, 폭발 직전까지 끌어올릴 심산”이라고 지적했다. 민주당은 “거짓 선동”이라며 민생 최우선에 초점을 맞췄다고 반박했다. ‘올려’ ‘내려’ 본회의 난타전 쟁점 법안 처리 여부도 관전 포인트다. 민주당은 사법개혁을 위한 법 왜곡죄를, 국민의힘은 이정부의 부동산을 겨냥한 재건축초과이익환수제 폐지를 밀어붙이고 있다. 앞서 민주당과 혁신당은 각각 법 왜곡죄를 발의했다. 해당 법안은 판·검사가 증거를 조작하거나 사실관계를 왜곡하는 등 잘못된 사실관계에 법을 적용해 기소나 유죄 판결을 내리는 경우 처벌토록 하는 내용이 핵심이다. 현재 법 왜곡죄는 국회 법제사법위원회(이하 법사위) 소위원회에 계류 중이다. 민주당 김현정 원내대변인은 지난달 28일 국정감사 대책 회의 후 기자들과 만나 사법개혁안에 대해 “이번달 까지 (입법을) 마무리하겠다”고 밝혔다. 민주당 백혜련 사법개혁특별위원장도 MBC 라디오를 통해 “특위에서 낸 5대 개혁안은 상당한 공감대가 이미 이뤄져 있다”며 “당내, 국민적으로 그리고 법원과도 대법관 증원 문제 빼고는 의사소통이 이뤄졌다. 법사위 논의 과정을 거친다고 한다면 이번 정기국회 내 충분히 처리 가능하다”고 밝혔다. 민주당 정청래 대표 역시 최고위원회의에서 “민주당은 개혁 골든타임을 절대로 실기하지 않고 연내에 반드시 마무리 짓겠다”며 힘을 실었다. 헌법 제84조이자 형사소송법 개정안인 ‘대통령 재판중지법’에도 군불을 땠다. 법사위 국감에서 국민의힘 송석준 의원이 “이 대통령 파기환송심은 다시 기일을 잡아 (재개)할 수 있느냐” 고 물은 데 대해 김대웅 서울고등법원장이 “이론적으로는 그렇다. 불가능한 것은 아니다”라고 답한 것이 도화선이 됐다. 헌법 제84조는 ‘대통령은 내란·외환죄를 제외하고는 재직 중에 발생한 범죄로 형사상 소추를 받지 않는다’고 규정한다. 당시 사법 리스크 족쇄를 풀지 못한 이재명 대표의 당선이 확실시되자 ‘대통령의 불소추특권’ 조항을 놓고 여러 갈래의 해석이 제기됐다. 민주당은 법안이 당론은 아니라면서도 향후 사법부의 행동에 따라 결정하겠다고 압박에 나섰다. 민주당 박상혁 의원은 YTN 라디오를 통해 “많은 국민이 지난 국감에서 서울고등법원장의 발언을 보고 깜짝 놀라셨을 것”이라며 “벌써 몇 달째 계류 중인 법안을 처리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있다. 국민이 만들어주신 대통령을 지켜야 한다는 생각을 자연스럽게 할 수밖에 없다”고 주장했다. 사법개혁? 부동산? 마음은 지선 노발대발 ‘쇼츠각’ 잡는 의원들 거대 여당인 민주당이 의석수로 법안을 통과시킨다면 국민의힘은 막아낼 도리가 없다. 대신 국민의힘은 부동산 규제를 파고들면서 이정부의 가장 아픈 곳을 찔렀다. 국민의힘은 민주당을 향해 이번 정기국회에서 재건축초과이익환수제(이하 재초환) 폐지 법안을 여야 합의로 처리하자고 제안했다. 재건축 활성화의 핵심인 재초환은 재건축으로 얻은 초과이익에 부담금을 부담하는 규제다. 앞서 민주당은 재초환 폐지 가능성을 언급했다가 “당 차원의 결정은 아니”라며 입장을 선회했다. 10·15 부동산 대책 발표 후 예상보다 후폭풍이 크자 신중론을 내세운 것이다. 여당의 갈지자 부동산 행보가 오히려 시장 혼란을 부추겼다는 비판이 나오는 지점이다. 국민의힘 김도읍 정책위의장은 국회에서 열린 국정감사 대책회의에서 “민주당이 10·15 부동산 대책 발표 이후 국민적 비난과 여론의 뭇매로 궁지에 몰리자 이제야 국민의힘이 줄곧 주장해 온 재초환 폐지를 검토하겠다고 한다”며 “이미 김은혜 의원이 법안을 발의해 놨다. 정기국회에서 재초환 폐지 법안을 여야 합의로 신속 처리하자”고 말했다. 하지만 김윤덕 국토교통부 장관이 국감에서 재초환 유지 방향에 공감한다는 뜻을 밝히면서 여야 간 이견만 커지는 모양새다. 민주당 이연희 의원이 국회 국토교통위원회 국정감사에서 “재초환 폐지는 투기 광풍을 불러올 조치기 때문에 결코 안 된다. 반드시 유지해야 한다”고 말했고 이에 김 장관은 “공감하고 있다”고 답변했다. 민주당은 재초환 폐지를 정기국회 내 처리하자는 국민의힙 요구에 대해 “원내 중심의 대화를 기대한다”며 협상의 여지를 열어뒀다. 다만 더 이상 부동산 문제로 자책골을 넣어서는 안 된다는 여론이 강한 만큼 국민 여론을 충분히 반영하겠다는 방침이다. 문제는 여당인 민주당이 언제까지나 ‘신중하게’ 입장을 보류할 수 없다는 점이다. 부동산 시장 혼란이 가중될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오지만 “국민의힘 페이스에 말려들어가서는 안 된다”는 기류가 흐르는 만큼 돌파구를 모색해야 한다. 어느 각도에서 보더라도 여야의 강대강 대치는 불가피해 보인다. 지난달 26일 국회가 이례적으로 국감 도중 본회의를 열고 비쟁점 민생 법안 70여건을 일괄 처리하면서 협치의 물꼬가 트이나 싶었지만 또다시 서로를 향해 날을 세우는 형국이다. 앞서 민주당은 APEC 주간을 앞두고 국민의힘을 향해 “무정쟁 주간을 갖자”고 제안했으나 국민의힘은 “경제 참사·부동산 참사를 덮기 위한 침묵 강요이자 정치적 물타기”라고 오히려 비판 수위를 높였다. 김도읍 정책위의장은 “이정부와 민주당이 독선과 독재를 멈추고 정치를 회복시키면 정쟁은 없어진다”고 훈수했다. 손 내밀어도 고개만 팽 한 정치권 관계자는 “여당인 민주당은 정부의 외교 성과를 띄우고 야당인 국민의힘은 야당으로서 잘한 것과 아쉬운 것을 구분해 견제해야 하는데 지금 의원 한 명 한 명이 국회를 자기 정치의 장으로 쓰고 있다”며 “내년 지방선거 영향이 크다. 선거를 앞뒀는데 어떤 정당이든 서로 의견을 받아들이는 모습을 보여주기는 쉽지 않을 것”이라며 회의감을 내비쳤다. <hypak28@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