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천데이트폭력 사건 심층취재>⑤ 국회도 외면했다

사각지대에 놓인 생존자들

[일요시사 취재2팀] 설상미 기자 = 사랑이라는 미명하에 저질러지는 데이트폭력. ‘데이트’라는 말이 무색할 만큼 악랄하고 잔혹하다. 국회에서는 데이트폭력과 관련된 법안이 여러 차례 발의됐으나, 모두 ‘임기 만료 폐기’됐다. 숨죽인 생존자들이 기댈 곳은 어디에도 없다.
 

▲ 인터뷰 갖고 있는 류호정 정의당 의원 ⓒ고성준 기자

여론의 환기는 생존자들의 희생을 담보로 했다. 2017년 여자친구를 구타한 뒤 트럭으로 돌진했던 ‘신당동 데이트폭력 사건’이 그랬고, 지난달 휴대폰으로 여자친구의 머리를 찍어 내렸던 ‘부산 덕천 지하상가 데이트폭력 사건’이 그랬다. 파장은 일파만파였다. 하지만 잠시 뿐이었다. 생존자들을 위한 법은 여전히 국회의 문턱을 넘지 못하고 있다.

문턱

국회가 아예 손을 놓고 있었던 건 아니다. 20대 국회까지 발의된 데이트폭력 법안은 총 6건. 데이트폭력 생존자들에 대한 보호·지원을 골자로 한다. 하지만 국회가 막을 내리면서 법안은 모두 ‘임기 만료 폐기’된 상태다.

데이트폭력 법안이 처음 등장한 때는 19대 국회 임기 말인 2016년 2월이다.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 박남춘 전 의원이 ‘데이트폭력범죄의 처벌 등에 관한 특례법’을 대표발의했다. 이후 20대 국회에서는 표창원·함진규·신보라 전 의원이 데이트폭력 법안을 발의했다. 하지만 법안은 본회의에도 상정되지 못했다.

국회의 유일한 성과는 ‘여성폭력방지기본법’에서 데이트폭력을 여성폭력의 하나로 명시한 점이다. 해당 법안에서는 데이트폭력을 당한 이들에 대한 보호·지원을 국가의 책임으로 보고 있다. 하지만 이는 명시적 조항에 불과해, 데이트폭력 생존자들에게 실질적인 도움을 주지 못하는 실정이다.


우선 데이트폭력에 대한 법적 정의부터 정립할 필요가 있다. 일반적으로는 가족의 형태가 아닌 연인 사이에서 상대방에게 행한 폭력행위를 말한다. 남성보다 여성이 더 많이 당하는 것으로 조사됐다.

하지만 연인의 여러 형태가 존재하는 만큼 구체적인 범주를 정해야 한다. 예컨대 연인이 아닌 친밀한 관계에서 데이트를 했을 경우, 교제가 끝난 경우 등에 대한 논의가 필요하다.

일각에서는 사랑을 기반으로 한 관계에 공권력이 개입되는 것을 회의적으로 바라본다. 1998년 가정폭력 특별법이 제정됐을 때도 그랬다. 가정폭력을 형법이 아닌 별도법으로 처리하는 것에 논란이 일었다. 당시에도 국회, 정부, 학계의 치열한 토론을 거쳤다.

가정폭력과 데이트폭력은 매우 비슷한 양상을 보인다. 두 폭력 모두 친밀하고 특별한 관계에서 이뤄진다는 점에서 생존자들에게 치명적 결과를 초래할 수 있다. 또 사적인 공간에서 폭력이 벌어지는 경우가 대다수다. 따라서 범죄가 쉽게 은폐될 수 있고, 폭력이 장기화될 가능성이 높다.

데이트폭력 생존자들은 가해자의 보복을 가장 두려워한다. 용기를 내어 수사기관을 찾아가도 결국 가해자에 대한 처벌을 망설이게 된다. 그 사이 희생된 생존자도 있다.

2018년 서울 관악구에서 폭행으로 9차례나 형사 입건된 가해자는 생존자를 다시 찾아가 살해했다. 당시 생존자는 가해자의 처벌을 원치 않는다고 했고, 수사기관은 가해자를 풀어줬다.

이는 연인 관계의 폭행 범죄가 ‘반의사불벌죄’이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데이트폭력 생존자가 가해자의 처벌을 원치 않을 경우 수사기관의 수사나 처벌이 어렵다. 데이트폭력 범죄에는 기존 형법이 적용되기 때문이다.


발의 6건…통과는 ‘0건’
류호정 의원 입법 예고

데이트폭력 생존자들에게 가장 필요한 것은 가해자로부터의 철저한 격리다. 가해자들은 생존자들의 신상 정보와 행동 반경을 꿰뚫고 있다. 살인 및 성폭력과 같은 보복범죄가 쉽게 자행될 수 있는 이유다.

가정폭력 생존자의 경우 사법경찰관리가 ‘접근금지 명령’과 같은 긴급 임시조치를 내릴 수 있다. 위반 시 유치장 송치도 가능하다. 물론 데이트폭력 생존자도 가해자에 대해 접근금지 가처분신청을 할 수 있다. 하지만 여러 절차가 필요한 만큼 최소 2개월 이상의 물리적인 시간이 소요된다. 법원은 가해자가 접근금지 결정을 위반할 때마다 생존자에게 일정 금액을 지급하도록 하지만, 이는 사후약방문에 불과하다.

또 경찰에서 데이트폭력 생존자들에게 지급하는 스마트워치(신변보호용 위치 추적장치)마저 부족한 상황으로 알려졌다.

이외에도 수사기관에 의한 2차 피해 우려가 있다. 수사기관에서 합의를 종용하거나 생존자에게 탓을 돌리는 경우도 다수다. 지난 7월 부산에서 데이트폭력을 당한 생존자가 검찰 수사관으로부터 합의를 종용받는 등 2차 피해를 겪는 경우도 있었다. 당시 생존자는 형사조정을 원치 않는다는 의사를 표시했음에도, 가해자와 조정실에서 단둘이 대면해야 했다.
 

▲ 류호정 정의당 의원 ⓒ고성준 기자

전문가들은 데이트폭력이 갖는 특수성 때문에 데이트폭력 방지 법안이 시급하다고 입을 모은다. 더불어 국회의 ‘책임론’도 함께 일고 있다. 21대 총선 당시 여야 모두 젠더 폭력 방지법 마련을 약속했다. 하지만 현재까지 국민의힘 윤영석 의원만이 유일하게 데이트폭력 관련 법안을 발의한 상태다.

<일요시사>는 부천데이트폭력 사건을 보도하기로 결정한 뒤, 정의당 류호정 의원실과 해당 사건에 대한 논의를 거쳤다. 의원실은 데이트폭력과 관련된 법안을 내년 1월에 발의하기로 결정했다.

류 의원은 수사 기관이 데이트폭력 범죄를 인지하면 수사에 착수할 수 있도록 하는 법안을 발의할 예정이다. ‘가스라이팅(정서적 학대)’을 당한 생존자가 가해자에 대한 처벌을 원하지 않더라도 수사기관은 가해자를 처벌할 수 있게 되는 것이다.

이외에도 데이트폭력 개념을 알리는 등 사전 예방 교육제도를 도입할 것을 예고했다. 이는 부천데이트폭력 생존자가 여러 차례 강조한 내용이다. 생존자는 데이트 폭력과 관련된 공익광고를 본 뒤, 본인이 전형적인 데이트폭력 생존자임을 인지했다. 데이트폭력 가해자들의 전조증상을 알았더라면 생존자가 그 지독한 굴레에서 좀 더 일찍 벗어났을 수도 있다.

류 의원은 지난 1일 <일요시사>와의 인터뷰에서 데이트폭력 피해에 대해 “법과 제도의 허점 때문에 생기는 시민들의 고통”이라며 “지금까지 관련 법안이 제대로 처리되지 않은 것에 대해서 국회가 반성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그는 “생존자들에게 가장 필요한 법적 조치 중 하나가 가해자로부터의 분리 및 치료라고 생각한다”며 임시조치 규정의 필요성을 피력하기도 했다.

류 의원은 “다양한 데이트 폭력에 대한 인식을 개선하고 생존자들이 보호받을 수 있도록 21대 국회가 최선의 노력을 다하겠다”고 약속했다.

책임론


지난달 26일에는 류 의원과 부천데이트폭력 생존자와의 만남이 이뤄졌다. 생존자와의 미팅은 2시간가량 이어졌다. 2년이 지났지만, 생존자는 여러 차례 눈물을 보였다. 국회를 나설 때쯤 생존자는 “누군가가 이야기를 들어주는 것만으로도 충분한 위로가 됐다”고 고마워했다. 류 의원은 “당신은 틀리지 않았고, 당신은 혼자가 아니다. 생존자의 책임이 아니라는 말을 하고 싶다”고 답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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벼랑 끝 국민의힘 뒤집기와 자충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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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요시사 정치팀] 박형준 기자 = 국민의힘 장동혁 대표는 비상계엄 1주년을 맞아 페이스북에 사과 입장을 밝혔다. 국민의힘 원내 지도부도 기자회견을 열고 고개를 숙였다. 사과는 짧았지만, 더불어민주당에 대한 비난은 길었다. 사과 의견을 통해 확인되는 국면 전환 노림수는 ‘한동훈을 제외한 빅텐트’인 걸까? 국민의힘 공보실은 지난 2일 오후 10시54분 출입기자들에게 지난 3일 지도부 일정을 공지했다. 공보실에 따르면, 지도부의 일정은 ‘통상 일정’이었다. 공개 외부 일정이 없단 의미다. 지난 3일은 윤석열 전 대통령의 비상계엄 선포 1주년이었다. 통상의 의미는? 지도부의 공개 외부 일정이 없단 것은 국민의힘 장동혁 대표의 비상계엄 관련 공개 사과 및 기자회견 일정이 없었단 의미로 해석될 수 있었다. 장 대표는 지난 3일 오전 자신의 페이스북을 통해 사과 의견을 밝혔다. 장 대표는 “윤 전 대통령의 비상계엄은 의회 폭거에 맞서기 위한 계엄이었다”는 등 “정당화하는 것 아니냐”는 지적을 받을 소지가 있는 주장부터 제시했다. 윤 전 대통령 파면에 대해서도 “한국 정치의 연속된 비극을 낳았고, 국민과 당원들께 실망과 혼란을 드렸다”는 등 ‘탄핵 반대’ 의견을 유지했다. 장 대표에 따르면, 국민의힘의 잘못은 하나로 뭉쳐 제대로 싸우지 못했다는 부분이었다. 자신에 대해서도 “당 대표로서 책임을 통감한다”고 강조했다. “장 대표가 사과하지 않을 것”이란 예상은 같은 날 오전 4시50분경 이정재 서울중앙지법 영장전담 부장판사가 국민의힘 추경호 의원의 구속영장을 기각하면서 확실시됐다. 장 대표는 페이스북 게시글에서도 “추 의원 구속영장 기각은 어둠의 1년이 지나고 두터운 장막이 걷히고, 새로운 희망의 길이 열리는 신호탄”이라면서 대정부 투쟁에 의미를 부여했다. 장 대표는 “이재명정권의 대한민국 해체 시도를 국민과 함께 막아야 한다”고 주장했다. 장 대표가 사과 불가는 지난달 28일 대구에서 진행된 국민의힘 장외집회에서 어느 정도 예고된 것이었다. 당시 그는 “비상계엄에 대한 책임을 무겁게 통감한다”면서도 “우리가 흩어지고 분열한 결과, 이재명정권이 탄생했단 것을 기억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어 “책임을 무겁게 통감한다”면서도 이재명 대통령과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을 비난하는 내용으로 연설 대부분을 채웠다. 5일 간격으로 같은 얘기를 반복한 것이었다. 당시 장 대표가 주장한 민주당에 대한 비난의 핵심 내용은 ▲의회 폭거·국정 방해 ▲무모한 적폐 몰이에 따른 공무원 사찰 위협 ▲폭거로 인한 민생 파탄·국가 시스템 붕괴 ▲내란 몰이 등이었다. 비상계엄 1주년에 강조된 “민주당 폭거” 국면 전환·결집 노리는 선 사과·후 비난? 국민의힘의 비상계엄 관련 사과는 ▲송언석 원내대표 ▲유상범·김은혜 원내부대표 ▲최수진·최은석 원내대변인 등 원내 지도부 차원에서 나왔다. 송 원내대표 등은 지난 3일 국회에서 기자회견을 열어 “국민께 큰 충격을 드린 비상계엄 발생을 막지 못한 데 대해 국민의힘 국회의원 모두는 무거운 책임을 통감하고 있다”며 “국민 여러분께 다시 한번 진심으로 사과드린다”고 말했다. 이어 군인·공직자·의료인·자영업자 등 비상계엄 선포 피해자들에게 “깊은 위로와 사과의 말씀을 드린다”고 고개 숙였다. 하지만 이후의 메시지는 이재명정부·민주당 비판 등 장 대표의 주장과 크게 차이가 없는 내용이었다. 송 원내대표는 “국민의힘 의원들은 패배의 아픔을 딛고 분열과 혼란의 과거를 넘어서 다시 거듭나겠다”며 “소수당이지만 처절하게 다수 여당과 정권에 맞서 싸우겠다”고 강조했다. 이전까지 국민의힘에서 장 대표에게 공개적으로 대국민 사과를 요구한 정치인은 오세훈 서울시장과 김용태·김재섭·권영진·엄태영·이성권·조은희 의원 등이었다. 국민의힘 양향자 최고위원은 지난달 29일 대전에서 진행된 장외집회 중 “국민의힘은 불법 계엄을 방치했으니, 반성해야 한다”고 주장했다가 일부 지지자들의 강한 항의를 받았다. 김재섭 의원은 지난달 28일 YTN 라디오 <더 인터뷰>에 출연해 “당 지도부의 사과가 없으면 제 나름의 사과를 해야 할 것 같다”며 “같이 메시지를 낼 국민의힘 의원들이 약 20명은 된다”고 주장했다. 이는 곧 “연판장을 돌리거나 기자회견을 할 수도 있다”는 압박으로 해석될 가능성이 있었다. 오 시장도 같은 날 채널A <김진의 돌직구 쇼>에 출연해 “중도층의 마음을 얻기 위해서라도 당 차원의 사과가 필요하다”며 “공당이라면 반성문을 쓰는 게 도리”라고 주장했다. 결국 이들은 당과 무관하게 대국민 사과를 했다. 오 시장은 지난 3일 자신의 페이스북을 통해 “국민의힘 소속 중진 정치인이자, 서울시민의 일상을 책임지는 시장으로서 그 책임을 무겁게 받아들인다”며 “그날의 충격과 실망을 기억하는 모든 국민께 거듭 사과의 말씀을 드린다”고 밝혔다. 국민의힘 의원 25명은 지난 3일 국회에서 “비상계엄 선포 당시 집권여당의 일원으로서 비상계엄을 미리 막지 못하고 국민께 커다란 고통과 혼란을 드린 점에 대해 거듭 국민 앞에 고개 숙여 사죄드린다”면서 ▲헌법재판소의 윤 전 대통령 파면 결정 존중 ▲윤 전 대통령과의 정치적 단절 ▲국민의힘 체질 개선·재창당 수준의 혁신 등을 약속했다. 이어지는 각자 플레이 장 대표에게 대국민 사과를 요구한 후 자체적으로 대국민 사과 성명을 발표한 국민의힘 정치인들은 대체로 수도권에 기반을 둔 소장파다. 이들 중 국민의힘이 강경 보수 정당으로 자리매김하면 가장 큰 손해를 볼 정치인으로는 오 시장과 김재섭·김용태 의원이 거론된다. 오 시장은 높은 개인 인기를 바탕으로 민주당의 서울시장 탈환 공세에 맞서고 있다. 김재섭 의원의 지역구 서울 도봉갑은 원래 민주당 텃밭이었다. 김 의원은 지난해 총선 당시 민주당 후보로 출마한 안귀령 대통령실 부대변인을 1094표 앞서 어렵게 이겼다. 지난해 12월7일 국민의힘의 윤 전 대통령 탄핵소추 표결 집단 이탈에 동참했을 때도 지역구에서 규탄 집회가 개최되는 등 홍역을 치렀다. 김용태 의원도 경기 가평·포천에서 민주당 후보로 출마한 박윤국 한국도자재단 이사장에 2774표 앞서 어렵게 금배지를 다는 데 성공했다. 국민의힘에 대해선 “강경 보수화가 진행된다”는 지적이 각계에서 이어지고 있다. 이 우려는 장 대표가 지난달 16일 유튜브 채널 ‘이영풍 TV’에 출연해 ▲자유통일당 ▲우리공화당 ▲자유민주당 ▲자유와혁신 등 원외 강경 보수 4당과의 지방선거 연대 가능성을 언급하면서 깊어졌다. 장 대표는 지난달 28일 개혁신당과의 연대 가능성에 대해선 “지금은 연대를 논의할 때가 아니”라면서 선을 그었다. 최근 국민의힘에선 “한동훈 전 대표를 축출하려는 것 아니냐”는 의문을 제기할 만한 밑그림을 계속 그리고 있다. 국민의힘 여상원 윤리위원장은 지난달 17일 사의를 표명했다. 여 위원장은 “당에서 ‘물러나면 좋겠다’는 연락이 왔다”며 “굳이 능욕당하면서 자리를 지킬 필요가 없다고 판단돼 원하는 대로 하겠다고 답했다”고 주장했다. 일각에선 이를 두고 “윤리위원회가 ‘계파 갈등 조장’을 이유로 윤리위에 넘겨진 국민의힘 김종혁 전 최고위원에 대해 주의 조치만 내린 것 때문 아니냐”고 의심하고 있다. 국민의힘 우재준 청년 최고위원은 지난달 30일 자신의 페이스북을 통해 “원하는 결론을 내리지 않았다고 윤리위원장을 사퇴시키는 게 정당한 일이냐”며 “내란 특별재판부를 만드는 민주당과 뭐가 다르냐”고 정면 비판했다. 이어 국민의힘 당무감사위원회는 지난달 28일 “당원 게시판 의혹에 대한 조사 절차에 착수했다”고 밝혔다. 당원 게시판 의혹은 “국민의힘 당원 게시판에 올라온 윤 전 대통령 부부 비방글 작성에 한 전 대표 가족이 연루된 게 아니냐”는 의혹이다. 장 대표는 취임 직후 “사실관계를 명확하게 밝혀 당원에게 알릴 것”이라는 방침을 밝혔던 바 있다. 윤 전 대통령 부부는 정치적으로 몰락해 서울구치소에 갇혔고, 형사재판을 받고 있다. 국민의힘이 당원 게시판 의혹을 밝혀낸 후 거둘 수 있는 실익으로는 “한 전 대표를 국민의힘에서 쫓아내고, 친한(친 한동훈)계를 무력화시킬 수 있다”는 것이 거론된다. 구 친윤(친 윤석열)계가 거둘 수 있는 이익이다. 한 전 대표에 대해선 보수 성향 유권자 사이에서도 호불호가 명확하게 나뉜다. 하지만 한 전 대표는 윤 전 대통령과 정치적으로 갈등하면서 비상계엄 해제에 동참했던 이력이 있다. 이 때문에 한 전 대표는 “국민의힘이 강경 보수 일색이 되는 걸 막는 방파제·상징”이란 분석이 오랫동안 있어왔다. 친한계로 거론되는 국민의힘 의원 중 상당수는 수도권에 지역구를 둔 소장파라는 분석이 나온다. 윤리위원장 쫓아낸 이유 윤 전 대통령의 비상계엄 선포에 대해선 “윤 전 대통령이 정치에서 폭력을 동원하는 것에 무슨 의미가 있는지 잘 몰랐던 것 아니냐”는 의문이 제기됐다. 정치의 본질은 대화·토론·협상이다. 영국 하원에선 20세기 초까지 의원이 총칼을 이용해 결투·난투를 했다. 물리적 폭력이 아닌 ‘언어폭력’ 선에서 공방을 이어가는 정치 문화는 제2차 세계 대전 이후 정착됐다. 윤 전 대통령의 비상계엄 선포가 전 세계에 줬던 충격은 민주주의가 충분히 성숙했다고 믿었던 대한민국에서 군을 동원해 정적을 제거하려던 사태가 발생했다는 것이었다. 장 대표·송 원내대표는 사과 메시지를 먼저 짧게 발표하면서 이재명정부·민주당 비판은 길게 이어가는 형식의 사과 의견을 밝혔다. 사과엔 ▲직접적인 반성 ▲분명한 잘못 인정 ▲재발 방지 약속 ▲보상 약속 등 4개의 원칙이 제기됐는데 “상대방 비판에 더 중점을 둔 사과는 역설적으로 ‘반성을 하는 게 맞느냐’는 비판으로 이어질 소지가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이명박 전 대통령은 지난 2008년 광우병 촛불시위 당시 대국민 사과를 했고, 박근혜 전 대통령은 지난 2016년 최순실 게이트가 불거진 후 대국민 사과를 했다. 이 전 대통령은 “모든 것이 제 불찰이고, 국민께 송구스럽게 생각한다”며 “미국산 쇠고기 수입 협상·후속 조치 중 국민의 마음을 헤아리는 데 미흡했고, 우려를 덜어드리지 못한 점에 대해 깊이 사과드린다”고 말했다. 박 전 대통령은 “국정을 꼼꼼하게 챙겨보고자 하는 순수한 마음으로 한 일”이라며 “이유 여하를 막론하고 국민 여러분께 심려를 끼쳐 놀라고 마음 아프게 해드린 점에 대해 송구스럽게 생각한다”면서 “국민께 깊이 사과드린다”고 말했다. 하지만 이 전 대통령은 당시 크게 불거졌던 각종 우려를 ‘괴담’으로 규정지었다. 이 때문에 촛불 시위 세력이 제시한 재협상 시한과 맞물린 시점에서 사과가 나온 점을 감안할 때 국면 전환을 위한 명분 쌓기 아니냐는 비판을 받았다. 박 전 대통령은 이미 각종 의혹이 광범위하게 제기돼 근거 자료들까지 제시되는 시점에서 “취임 후 일정 기간 일부 자료들에 대해 최순실씨의 의견을 들은 적은 있지만, 청와대 보좌 체계가 완비된 이후에는 그만뒀다”고 주장했다. 이로써 박 전 대통령의 해명은 신뢰를 잃었다. 장 대표·송 원내대표의 사과도 두 전직 대통령의 사과처럼 자신의 주장을 뒤에 배치한 후 더 큰 비중을 부여하는 형식을 유지했다. 비상계엄 1주년에 강조된 “민주당 폭거” 국면 전환·결집 노리는 선 사과·후 비난? 이런 사과 형식은 국면 전환·지지층 결집 목적을 가진 이들이 활용한 사례가 많다. 대표적인 예로, 고대 로마에서 율리우스 카이사르가 암살된 후 있었던 마르쿠스 브루투스·마르쿠스 안토니우스의 연설이 꼽힌다. 카이사르 살해를 주동한 브루투스는 “카이사르에 대한 내 사랑은 카이사르를 사랑하는 다른 분보다 절대 뒤떨어지지 않는다고 단언한다”고 선언한 후 “로마를 더 사랑해서 카이사르를 죽였다”고 주장했다. 이어 “나라를 위해 눈물을 머금고 가장 사랑하는 친구를 죽였다”고 강조했다. 안토니우스는 “카이사르 암살에 가담한 사람들은 모두 존경할 만한 분들”이라고 선언한 후 카이사르를 찬양하면서 그의 유언장을 공개했다. 유언의 핵심 내용은 “내 재산을 로마 시민에게 기증한다”는 것이었다. 또 카이사르가 살해당할 당시 입었던 칼자국과 피로 얼룩진 옷도 공개했다. 흥분한 로마 시민은 암살자들의 집을 습격했다. 얼마 지나지 않아 안토니우스·아우구스투스는 로마 정국을 장악했다. 불리한 내용을 먼저 짧게 거론한 후 유리한 내용을 장황하게 거론하는 형식은 정치적 목적을 위해 즐겨 이용된다. 장 대표·송 원내대표가 짧은 사과 의견을 밝힌 후 이재명정부·민주당을 비중 있게 비판한 것도 강경 보수 세력에겐 강한 인상을 줄 가능성이 있다. 특히 장 대표는 비상계엄의 원인을 ‘의회 폭거’라고 규정했다. 이에 따르면, 윤 전 대통령은 카이사르가 된다. 비상계엄 해제에 찬성해 사실상 윤 전 대통령 몰락에 가담한 한 전 대표와 친한계는 브루투스 일당이 되는 구도가 그려질 가능성을 배제하기 어렵다. 그렇다면 강경 보수 세력은 당원 게시판 의혹에 대해 어떤 의견을 제시할지 어렵지 않게 예상할 수 있다. 공나형 전남대 학술연구교수는 지난 2022년 발표한 논문 <대통령의 공적 사과 담화에서 드러나는 ‘개입’ 양상>에서 김영삼 전 대통령이 지난 1993년 쌀 시장 개방을 수용하면서 밝힌 대국민 사과와 박 전 대통령의 최순실 게이트 관련 대국민 사과를 분석했다. 공 교수는 김 전 대통령의 사과문에 대해선 “선의로 행한 행위가 어쩔 수 없는 부정적인 결과로 이어졌다고 강조하면서 결과의 부정성에 관여하는 자신의 의도의 비중을 제거했다”고 분석했다. 박 전 대통령의 사과문에 대해선 “자기 고백이 많은 분량을 차지하지만, 그 고백의 원인이 되는 행위에 대해선 소극적”이라고 분석했다. 12월3일 조용히 장 대표·송 원내대표의 사과도 “어쩔 수 없었다”는 항변과 상대방 비판을 내용으로 채웠다. 그러면서 민주당 심판·보수 재건·대여 투쟁을 강조했다. 결국 두 사람의 답은 ‘한 전 대표를 제외한 빅텐트’ 방침 재확인으로 보인다. 국민의힘의 12월3일은 이렇게 조용히 지나갔다. <ctzxp@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