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요시사 취재1팀] 김성민 기자 = 다음 달부터 초·중·고에 접수되는 학교폭력(이하 학폭) 사안은 교사가 아닌 ‘학교폭력 전담 조사관’(이하 학폭조사관)이 맡아 조사한다. 지난해 10월 ‘대통령-현장교원 간담회’서 “학폭 업무를 교사 업무서 빼달라”는 교사들의 요청에 따른 후속 정책이다. 공고 내용을 본 교사들은 “결국 우리보고 책임지라는 것”이라며 실망스러움을 드러냈다.
앞서 교육부는 학폭조사관으로 전직 경찰과 퇴직 교사 등 2700명을 선발해 전국 17개 시도교육청에 지원하겠다고 지난해 12월 발표했다. 이에 서울시교육청은 다음 달 2일부터 학교에 학교폭력 사안이 접수되면 전담 조사관이 해당 학교를 방문해 조사한다고 밝혔다. 그동안 학교폭력 업무를 맡은 교사가 학부모 악성 민원과 교권 침해에 시달리는 등 부작용이 끊이지 않아서다. 이에 교육부와 행정안전부, 경찰청이 도입에 나섰다.
눈칫밥만
학폭조사관 선발 대상은 학교폭력 업무나 생활지도, 학생 선도 경력이 있어야 한다. 공고문에 따르면, 퇴직 교원이나 교원자격증 소지자, 퇴직 경찰, 청소년 전문가, 사안 조사 경력자 등을 위촉할 예정이다. 지난달 29일부터 교육지원청 홈페이지를 통해 조사관 약 330명을 선발했으며, 서울 관내 11개 교육지원청별로 15~40명을 배치할 계획이다.
위촉된 학폭조사관에게 1학기 첫날부터 1년간 학교폭력 사안 조사와 보고서 작성, 심의위원회 관련 업무를 맡긴다. 교육지원청서 열리는 사례 회의나 학교폭력 대책심의위원회도 참석한다. 이렇게 하면 교원은 수업과 생활지도에 집중할 수 있게 된다는 게 교육청의 구상이다.
학폭조사관에게 지급되는 수당은 건당 18만원 안팎인 것으로 알려졌다. 지역이나 사안별로 최대 30만~40만원까지 지급될 전망이다.
실행까지 한 달도 채 남지 않은 가운데 실효성 논란에 휩싸이는 등 잡음에 휩싸였다. 모집공고를 본 교사들은 실망스럽다는 반응이다. 교사들이 학폭조사관의 면담 일정을 조율하고, 조사 과정에 참여하기 때문에 ‘있으나 마나’라는 입장이다.
‘학교폭력 전담조사관’이 아닌 ‘학교폭력 일부조사관’이라는 지적도 잇따른다. 특히, 사건 발생 초기 가해 학생과 피해 학생을 분리하고, 전담기구 심의위원회를 거쳐 최종 결과를 이행하기까지는 교사의 몫이다. 조사관은 객관적인 입장서 조사만 담당하게 되는 것이다.
일각에선 교사가 학폭조사관의 눈치까지 보게 생겼다는 한숨 섞인 반응도 나온다. 경기도 한 초등학교 교사 함모씨는 <일요시사>와 인터뷰서 “퇴직 경찰, 교원이 학폭 운영을 과연 얼마나 알 것인지 의문”이라며 “교사들과의 수평적인 관계보다는 수직적인 관계가 될 것”이라고 지적했다.
“전담? 일부만 개입” 시작부터 삐걱
교권 회복한다더니 “있으나 마나”
함씨는 과거 학교폭력 가해 학생을 강압적으로 제지했다며 아동학대 교사로 몰렸다. 충격을 받은 함씨는 이를 계기로 극단적인 선택도 시도했다. 아동학대를 주장한 학부모에게 합의금 2000만원을 요구받은 그는 학폭조사관 제도에 대해 회의적인 반응이다.
시시각각 발생하는 학폭 사건을 전국 교육청별 투입되는 학폭조사관 15명으로 해결하기란 역부족일지도 모른다. 교육부 자료를 취합하면 학교폭력 심의건수는 학폭위가 활성화된 2012년 2만4709건서 2013년 1만7749건(증감률 -28.2%)으로 줄었다.
이후 ▲2014년 1만9521건(10.0%) ▲2015년 1만9968건(2.3%) ▲2016년 2만3673건(18.6%) ▲2017년 3만1240건(32.0%) ▲2018년 3만2632건(4.5%)으로 증가세를 유지했다. 그러다 ‘학교장 자체해결제’가 도입되기 시작한 ▲2019년 3만1130건(-4.6%) ▲2020년 8357건(-73.2%)으로 줄다가 ▲2021년 1만5653건(87.3%) ▲2022년 2만3602건(50.8%)으로 다시 증가했다.
학폭으로 인한 교권 붕괴의 핵심은 학부모의 지나친 개입 즉, 교사의 권위 박탈서 비롯된다. 국가수사본부장에 임명됐다가 낙마한 정순신 변호사의 아들 정모씨의 학교폭력 사건이 대표적인 예시다. 정 변호사는 자신의 아들이 학폭 가해자로 지목돼 강제전학 위기에 처하자 책임을 회피했다.
아들의 진술서를 직접 작성하는 등 부정 행위가 드러나면서 공직 진출에 실패했다. 2017년 유명 자율형 사립고에 입학한 아들 정씨는 같은 기숙사 방에서 생활한 동급생 A씨에게 1학년 1학기부터 출신 지역 등을 이유로 언어폭력을 지속해서 가해 이듬해 전학 처분을 받았다.
이어 정 변호사 부부는 당시 미성년자였던 아들의 법정대리인으로서 전학 처분을 취소해달라는 행정소송을 냈다가 대법원까지 간 끝에 2019년 4월 최종 패소했다.
행정소송 판결문에 따르면 2018년 3월22일 학교폭력대책자치위원회(자치위) 회의서 정씨 측은 아들의 학교폭력이 ‘언어폭력’이었던 점을 방어 논리로 세웠다. 정 변호사 측은 “물리적으로 때린 것이 있으면 변명할 여지가 없겠지만 언어적 폭력이니 맥락이 중요한 것 같다”고 말했다.
해당 사립고 교사는 2018년 6월29일 강원도 학교폭력대책지역위원회 회의서 정씨의 진술 번복을 지적하며 “반성을 전혀 하지 않고 있다고 생각한다”며 “우리가 조금이라도 선도하려는 시도가 있을 때마다 어떻게든 책임 회피하는 모습을 보여줬다”고 증언했다.
검사 출신 변호사가 일으킨 교권 침해는 세간을 떠들썩하게 했다. 아들 정씨의 학폭 가해 사실 여부보다 권력자인 아버지의 이기적인 행동이 사건의 불씨를 키운 것이다.
현실적으로 1년에 수천, 수만건씩 일어나는 학폭 사안을 교육청별 인원으로 조사한다는 것은 무리다. 과연 실효성 있는 조사가 이뤄질지, 현장 교사에게 서류 업무를 맡기고 학폭조사관들은 판단만 할 것인지에 대한 의심이 든다는 반응도 잇따른다.
어렵게 모집한 학폭조사관을 단시간에 교육하다 보면 전문성을 확보하기 어렵다는 지적도 있다. 이에 따라 조사 방식도 학폭조사관마다 제각각일 우려가 크다.
교사-조사관 수직 관계 우려
학생 생활지도 개선안 실종
윤미숙 전국초등교사노조 대변인은 “학교폭력 전담 조사관이 누구냐에 따라서 사안 조사에 대한 내용이나 기술적인 부분이 차이가 크다”며 “교육적인 맥락에 대한 고려가 과연 제대로 될 것인가 하는 우려가 있다”고 밝혔다.
교육청 공고에 따르면 학폭조사관 제도가 서울 서이초등학교 사건 이후 무너진 교권 회복을 위함이라는 표현도 있다. ‘교권 침해’ 논란을 촉발한 서이초 교사 사망과 관련해 여전히 순직 인정을 촉구하는 집회가 진행 중이다.
지난해 7월18일 서이초서 초등학교 1학년 담임을 맡던 고인은 학교 내에서 극단적 선택을 한 채 발견됐다. 고인은 평소 학부모 민원과 문제 학생 지도에 고충을 겪은 것으로 알려졌지만, 경찰조사 결과 학부모 갑질 등 구체적인 혐의점은 발견하지 못했다.
한 초등학교 교사는 “서이초 교사는 순직 인정도 받지 못했다. 이 사건을 계기로 미흡한 제도를 도입했다는 것은 오히려 고인에 대한 모독”이라고 표현했다.
공고 내용을 본 교사들은 학폭조사관을 배치하기 전에 학생에 대한 생활지도를 개선한다는 내용이 없어 아쉽다는 입장이다. 특히, “교사 보호 관련 내용이 필요한데 자리 만들기만 하는 모양새로 비춰진다”고 말했다. 교사의 학교폭력담당 업무와 조사관의 업무가 구체적으로 제시되지 않아 내부 진통이 예상된다는 것이다.
학폭에 대해 교사와 학교가 느끼는 부담감의 실체가 무엇인지를 파악하고 있는지 의문이다.
실효성 논란
한편, 교육부는 학교폭력 전담 조사관 제도가 학교 현장에 잘 안착할 수 있도록 면밀히 준비하고 있다며, 앞으로 진행 상황을 점검하겠다고 밝혔다.
조희연 서울시교육감은 “학교폭력 전담 조사관 제도를 통해 교원의 업무 경감, 학교 교육력 회복을 기대한다”면서 “다만 학교장 자체 해결이 가능한 사안까지 모두 조사 대상이 돼 갈등이 확대되는 등 부작용을 최소화하기 위해 최선을 다하겠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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