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슈&인물> 학폭 진실게임 송하윤

어쩌다 100억 소송까지?

[일요시사 취재1팀] 안예리 기자 = 배우 송하윤이 학창 시절 학교폭력 의혹과 관련해 100억원대 손해배상소송 위기에 놓였다. 피해를 주장하는 고교 동창 A씨가 정신적 피해와 무고에 따른 명예 실추 등을 이유로 최근 손해배상소송을 준비 중이라고 밝히면서다.

논란은 지난해 4월 JTBC <사건반장>에 송하윤의 학폭 의혹이 보도되면서 시작됐다. 당시 A씨는 방송을 통해 “2004년 여름, 반포고등학교 2학년이던 내가 3학년 선배 송하윤에게 불려가 90분간 뺨을 맞았다”고 폭로했다.

90분간
뺨 때려

그는 “점심시간에 학교 뒤 놀이터로 끌려가 이유도 모르는 채 뺨을 맞았다”며 “당시 송하윤은 나보다 한 학년 위였고, 남자친구가 학교 일진이었기 때문에 저항조차 할 수 없었다”고 밝혔다. A씨는 사건 직후 송하윤이 또 다른 폭행 사건에 연루돼 강제 전학을 갔다고 덧붙였다.

방송 직후 파장은 일파만파 커졌다. 각종 커뮤니티와 SNS에는 송하윤의 과거 졸업 사진과 학창 시절 얘기가 빠르게 퍼졌다.

일부 동창이라 주장하는 이들이 “송하윤이 친구를 집단으로 따돌리고 때려서 (친구가) 전학 갔다”고 추가 폭로성 글을 올리기도 했고, 또 다른 동창은 “송하윤이 가담하지 않았다고는 못한다”고 증언했다. 이 과정에서 ‘부천 대장 김미선’이라는 과거 별칭과 학창 시절 일화까지 재조명되며 논란은 눈덩이처럼 불어났다.


논란이 커지자 송하윤의 소속사 킹콩 by 스타쉽은 곧바로 입장을 내고 의혹을 일축했다. 소속사는 “배우 본인에게 확인한 결과, A씨와는 일면식도 없으며 모든 주장은 사실무근”이라고 강조했다. 또 반포고에서 다른 학교로 전학한 사실 자체는 인정했지만 “전학 사유가 학폭은 아니었다”고 선을 그었다.

하지만 같은 날 오후, 소속사 측은 “송하윤이 학폭에 휘말린 적은 있지만 가해자는 아니었다”는 취지의 보충 설명을 내놨다. 이 과정에서 ‘강제전학이냐, 자발적 전학이냐’는 해석이 갈리며 혼란은 더욱 커졌다.

이 사건의 가장 큰 쟁점은 송하윤의 고교 전학 사유다. A씨는 2004년 당시 반포고에 다니던 송하윤이 동급생 집단 폭행 사건에 연루돼 학교폭력대책위원회에서 ‘제8호 강제 전학’ 처분을 받았다고 주장했다.

그는 반포고와 교육청에 정보공개를 청구했지만, 행정청은 “학생징계위원회 회의록은 원칙적으로 공개할 수 없다”며 비공개 결정을 내렸다. A씨는 “만약 징계 사실이 없다면 ‘문서 없음’으로 통보했을 것”이라며, 이는 곧 징계 기록이 존재한다는 방증이라고 주장했다.

반면 송하윤 측은 전혀 다른 설명을 내놨다. 송하윤 소속사는 “강제전학은 허위 주장”이라며 “학군 문제 등 개인적 사유에 따른 전학이었다”고 맞섰다.

A씨는 논란 이후 온라인 커뮤니티에 입장문을 내며 대응 수위를 높였다.

“이유 모른 채 뺨 맞아”
동창 추가 폭로 이어져


그는 입장문에서 “고교 졸업 6개월 뒤 미국으로 이민 갔지만, 20년이 지난 뒤 한 예능프로그램에서 송하윤이 활동하는 모습을 봤다”며 “그때 일이 눈앞에 선명하게 지나가는 느낌으로 식은땀이 났다. 안 보이면 그나마 잊고 살아가려 노력할 수 있겠지만, 눈앞에서 TV에 나와서 과거와는 반대되는 행동을 보며 화가 났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처음부터 공론화시킬 생각은 없었다”고 전했다.

A씨는 처음에는 진정성 있는 사과를 받고자 송하윤 측에 연락을 시도했다.

그러나 “소속사에 당사자한테 직접 진정성 있는 사과와 폭행의 이유를 들으면 입 닫겠다는 각서까지 작성하겠다고 기한까지 주며 전달했지만, 당사자랑 연락이 안 된다는 믿을 수 없는 얘기를 했다”며 “계속 연락한다고 해결될 상황이 아니라고 생각했다”며 공론화하게 된 이유를 설명했다.

이후 송하윤 측은 별다른 대응을 하지 않았고 사건은 일단락되는 듯했다.

그러다가 지난 7월, 송하윤의 법률대리인 법무법인 지음은 “송하윤은 과거 학폭을 저지른 사실이 없다”며 A씨를 명예훼손·업무방해 혐의로 형사 고소했다고 밝히면서 재조명됐다. 지음 측은 “다수 증거를 수집했고, A씨의 허위 주장에 단호히 대응 중”이라며 “A씨가 현재 미국에 거주 중이라 경찰 수사에 불응하고 있다. 지난 5월 경찰이 정당한 사유 없는 불출석을 이유로 A씨에 대한 지명통보 처분을 내렸고, 수배자 명단에 등록했다”고 주장했다.

이에 A씨는 온라인 커뮤니티에 장문의 글을 게재해 송하윤과 그의 법률대리인 법무법인 지음을 상대로 한 법적 대응 계획을 밝혔다.

그는 “송하윤 측이 12개월간 아무런 대응을 하지 않다가 지난 3월 형사 고소했고, 5월에는 수사기관이 ‘수사 중지’와 ‘피의자 중지’ 결정을 내렸다. 그런데 지난 7월 들어 돌연 저를 ‘수배자’ ‘피의자’로 규정하며 무고 혐의로 추가 고소했다”고 법적 대응 사유를 밝혔다.

경찰이 A씨에게 내린 ‘지명통보 처분’은 2개월 이상 해외 체류로 조사가 곤란할 때 수사를 일시 중단하고, 입국 시 즉시 통보받는 행정 절차로 이는 강제 수배와는 다른 조치다.

A씨는 경찰과 나눈 대화 캡처를 공개하며 “지명통보는 수배자와 다르다는 걸 직접 확인했다. 수배자 명단에 등재됐다는 언론 보도는 과장”이라고 주장했다. 이어 “지명통보와 지명수배는 전혀 다른 개념인데도 소속사가 왜곡해 ‘수배자 프레임’을 씌우고 있다”고 반박했다.

“이미 서면 진술과 자료를 제출했고, 화상·서면 방식으로도 수사에 협조했다”는 그는 “피해자인 내가 수백만원의 항공료와 체류비를 부담하며 한국에 가야 할 이유는 없다”고 강조했다.

A씨는 이 같은 행위가 “피해자를 범죄자로 몰아가는 2차 가해”라며 반발했고, 송하윤 및 법률대리인을 상대로 민·형사상 소송과 함께 100억원대 손해배상 청구를 준비 중이라고 밝혔다. 그는 정신적 피해, 무고로 인한 명예 실추, 반론권 박탈, 국제 체류 비용 등을 세부 항목으로 제시하며 구체적 금액까지 나열했다.


강제 아니고
자발적 전학?

이에 대해 송하윤 측은 A씨의 귀국을 전제로 “항공료, 호텔비, 교통비 등 경비 전액을 지원하겠다”고 입장을 밝혔다. A씨도 “경비 전액 지원이라는 표현은 과장됐고, 실제로는 일부 정산에 불과하다”며 제안을 일거에 거절했다.

학폭 논란이 이어지자, 대중의 관심은 자연스레 송하윤의 과거로 옮겨갔다. 송하윤(본명 김미선)은 1986년 12월2일 경기도 부천시 중동에서 태어났다. 부모와 남동생이 있는 평범한 가정에서 성장했지만, 어린 시절은 다소 특별한 환경 속에서 보냈다.

부모가 생업에 매달리면서 유년 시절 상당 부분을 외할머니의 손에서 자랐다고 직접 밝힌 바 있다.

송하윤은 신도초등학교, 부명중학교를 거쳐 여러 차례 전학을 경험하며 고등학교 시절을 보내다가, 중원고등학교와 반포고등학교를 거쳐 구정고등학교에서 학업을 마쳤다. 고등학교 재학 시절, 예상치 못한 계기로 연예계에 인연을 맺게 됐다.

송하윤의 남동생 친구가 우연히 그의 사진을 미니홈피(당시 2000년대 초반 SNS 성격의 개인 홈페이지)에 올렸고, 이를 본 방송 관계자가 직접 학교로 찾아오면서 데뷔 제의가 이뤄졌다. 특별한 준비 과정 없이, 우연히 찍힌 사진 한 장이 계기가 되어 그는 잡지 모델로 활동을 시작하게 된다. 이 무렵 본명 대신 ‘김별’이라는 예명을 사용하며 2004년부터 패션지와 잡지를 중심으로 모델 활동을 이어갔다.


2005년, MBC <베스트극장-태릉선수촌>에 출연하면서 본격적으로 연기자의 길에 들어섰다. 당시에는 아직 ‘김별’이라는 이름이 주로 알려졌고, 통통 튀고 귀여운 이미지로 대중에게 각인됐다. 하지만 송하윤은 이후 인터뷰에서 “김별이라는 이름이 배우로서는 너무 아기 같다는 평가를 들었다”고 회상했다.

실제로 송하윤은 9년 동안 ‘김별’이라는 이름을 쓰며 활동했지만, 배우로서의 이미지가 자리 잡는 데는 한계가 있었다. 주목할 만한 연기 활동이 있었음에도, 대중에게는 예명 자체가 가볍게 들린다는 지적이 따라다녔다.

이에 대해 송하윤은 “처음에는 소속사에서 이름 변경을 권유했지만, 오랫동안 써온 이름을 버리는 것이 쉽지 않았다”고 밝힌 바 있다. 그러나 송하윤은 배우로서 보다 성숙한 이미지를 만들기 위해 결국 개명을 결심한다.

2012년 SBS 드라마 <유령> 출연을 계기로 송하윤이라는 이름을 쓰기 시작했다. ‘여름 햇빛’이라는 뜻을 담은 이 이름은 이전보다 성숙하고 따뜻한 이미지를 전달하며 배우로서 새로운 국면을 맞이하는 계기가 됐다.

이후 인터뷰에서 송하윤은 “예명 변경이 단순히 이름을 바꾸는 수준이 아니라, 배우로서 다시 시작한다는 마음가짐을 담은 선택이었다”고 말했다.

그러나 예명을 바꾸었다고 해서 연기자의 길이 순탄했던 것만은 아니었다. 개명 전후 시점, 송하윤은 소속사 문제와 맞물려 연기 활동을 중단할 생각까지 했다고 털어놓은 적이 있다.

부천 대장
‘김미선?’

영화 <나는 공무원이다> 개봉 당시 가진 인터뷰에서 송하윤은 “소속사 문제로 한때 연기를 그만둘까 심각하게 고민했지만, 작품을 하면서 마음을 치유받았다”고 말했다. 배우로서의 정체성과 진로에 대해 깊이 흔들리던 시기였지만, 현장에서 연기를 이어가며 다시 마음을 다잡을 수 있었다는 것이다.

이후 송하윤은 JYP엔터테인먼트로 소속사를 옮기며 새로운 환경에서 활동을 이어갔다. 대형 기획사에서 차근차근 배우로서 기반을 다질 기회를 얻게 된 것이다. 특히 JYP 시절은 향후 본격적인 주연급 배우로 성장하는 과정에서 중요한 발판이 됐다는 평가가 많다.

송하윤은 인터뷰에서 화려한 스타덤이나 빠른 성공보다는, 꾸준히 연기를 이어가고 싶다는 기본적인 의지가 자신의 원동력이었음을 밝혔다. 우연한 계기로 연예계에 데뷔했지만, 그 이후 연기자의 길을 꾸준히 걸어왔기에 현재까지 올 수 있었다는 것이다.

송하윤은 오랜 무명 시절을 견뎌야 했다. 이름을 김별에서 송하윤으로 바꾼 뒤에도 주목받는 데 한동안 시간이 걸렸다. 그러나 꾸준히 조연·단역부터 차근차근 연기를 이어가며 자신만의 필모그래피를 쌓아나갔다.

2005년 MBC <베스트극장-태릉선수촌>으로 정식 데뷔했지만, 이후 몇 년 동안은 인지도를 확보하지 못한 채 주로 단역이나 짧은 비중의 조연으로 활동했다. 영화 <러브하우스> <아기와 나> <다세포 소녀> 등 여러 작품에서 얼굴을 비쳤고, 드라마 <유령>을 비롯한 다양한 작품에 출연하며 경험을 쌓았다.

하지만 다작 출연에도 무명의 시간은 끝나지 않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송하윤은 연기를 중단하지 않았다. 2015년 MBC 드라마 <내 딸, 금사월>은 송하윤이 배우로서 자리를 잡을 수 있게 만들어준 작품이다.

극 중 주오월역을 맡은 송하윤은 원래 중간에 하차할 예정이었지만, 시청자들의 호응과 극적 전개상 필요성으로 인해 마지막 회까지 출연하게 됐다. 송하윤 특유의 섬세한 연기와 캐릭터 해석 덕분이었다. 방송 후에도 그는 “원래는 길게 가지 않을 캐릭터였는데, 끝까지 갈 수 있어서 감사하다”고 소회를 밝힌 바 있다.

배우로서 얼굴을 알리게 작품은 2017년 KBS2 드라마 <쌈, 마이웨이>다. 극 중 송하윤은 또 다른 변신을 보여줬다. 백설희역으로 출연해 안재홍과 연인으로 호흡을 맞추며, ‘현실 커플’의 모습을 세밀하게 그려냈다. 애교 많고 헌신적인 연인의 모습부터 연애 과정에서 겪는 갈등과 눈물 연기까지 폭넓게 소화했다.

학폭 ‘8호 처분’ 강제 전학 주장
진실 공방 1년…결국 법정 공방으로

이 작품이 시청자들에게 크게 사랑받으면서 송하윤도 배우로서 인지도를 높일 수 있게 됐다.

또 같은 해 SBS 주말드라마 <언니는 살아있다!>에서는 세라 박역으로 특별 출연하며 강렬한 인상을 남겼다. 주오월과는 정반대되는 성격의 캐릭터로, 짧은 등장에도 불구하고 존재감을 과시했다. 이 작품으로 송하윤은 지금까지 연기와는 색다른 매력을 보여줬다.

2018년 영화 <완벽한 타인>에서는 이서진과 부부로 출연하며 스크린에서도 입지를 넓혔다. <완벽한 타인>은 개봉 당시 큰 흥행을 기록했던 작품이다. 영화 속에서 드라마에서의 친근한 이미지와는 달리 차분하면서도 안정적인 호흡을 보여주며 호평받았다.

다만 <완벽한 타인> 이후 한동안 뚜렷한 성과를 내지 못했다는 점은 아쉬움으로 남았다. 하지만 송하윤은 꾸준히 다양한 장르의 작품에 출연하며 활동을 이어갔고, 결국 다시 한번 주목받게 될 운명의 작품을 만나게 된다.

2024년 방영된 tvN 드라마 <내 남편과 결혼해줘>는 송하윤의 전성기를 열었다. 이 작품은 동명의 웹툰을 원작으로, 남편과 절친의 배신으로 살해당한 주인공이 과거로 회귀해 복수를 펼치는 이야기다. 송하윤은 극 중 강지원(박민영)의 절친이자, 동시에 남편 박민환(이이경)을 빼앗는 정수민 역을 맡았다.

정수민은 표면적으로는 다정하고 착한 이미지를 내세우지만, 내면은 집착과 열등감으로 가득 찬 캐릭터였다. 친구의 삶을 무너뜨리고 대신 그 자리를 차지하려는 욕망에 차 있었으나, 결국 자신이 선택한 남편에게 파멸당하는 아이러니한 운명을 안고 있다.

송하윤은 이 캐릭터를 통해 새로운 이미지를 얻게 됐다.

시청자들은 “송하윤이 이렇게까지 악역에 잘 어울릴 줄 몰랐다”는 반응을 보였다. 과거 착하고 사랑스러운 캐릭터로 주로 사랑받던 이미지와 정반대였기 때문이다. 작품이 방영되는 동안 온라인 커뮤니티에는 “정수민을 너무 미워하게 됐다” “송하윤의 연기가 너무 리얼하다”는 반응이 이어졌다.

송하윤은 종영 후 가진 인터뷰에서 “연기에 권태기가 왔었다”고 고백했다. 그는 “계속 제자리걸음을 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어 힘들었다”며 “악역을 해보고 싶었는데 정수민이란 캐릭터가 주어져 행운이라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촬영 과정에서의 몰입은 신체적 부담으로도 이어졌다.

그는 “분노 연기를 하다 보면 실제로 혈압이 오르고, 따귀를 맞는 장면에서도 아픔보다 화가 더 크게 밀려왔다”고 회상했다. 또 첫 촬영 당시 병원 신을 찍으며 극도의 긴장과 몰입 탓에 두드러기까지 났다고 털어놓기도 했다.

송하윤은 드라마 종영 후 JTBC 예능 프로그램 <아는 형님> 출연 방송 말미에 “여기 아니면 말할 기회가 없을 것 같았다”며 갑자기 자리에서 일어나 시청자들에게 감사 인사를 전했다.

전성기 맞고
곧바로 추락

울먹이며 “연기자의 꿈은 그저 연기하는 것인데, 이렇게 많은 사랑을 받아 너무 기쁘다”고 말해 출연진과 시청자들의 마음을 울렸다. 이 장면은 크게 화제가 됐다. 비록 전성기를 맞은 뒤 곧바로 학폭 논란에 휘말리며 추락했지만, 일부 네티즌들은 “연기에 대한 마음만큼은 진심으로 보인다” “연기력이 아깝다”는 반응을 보이고 있다. 반면 또 다른 이들은 “학교폭력은 결코 가벼운 잘못이 아니다” “그렇게 살지 말았어야 했다”는 비판을 이어가고 있다.

<imsharp@ilyosis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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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웃사이더’ 정청래 인싸 플랜

‘아웃사이더’ 정청래 인싸 플랜

[일요시사 정치팀] 박희영 기자 = 국회에서 더불어민주당 정청래 대표의 독주가 이어지고 있다. 당원의 명령인 개혁을 완수하기 위한 질주다. 당의 ‘아웃사이더’였던 그가 당을 휘어잡기까지 수많은 당원이 등을 밀어줬다. 비주류에서 주류 ‘인싸’로 자리 잡기 위한 정 대표의 다음 스텝이 주목된다.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 정청래 대표의 행보가 매섭다. 윤석열정부에서 막힌 과제를 해치우는 동시에 공약이었던 각종 개혁을 빠르게 완수해야 하기 때문이다. 그동안 정 대표는 같은 당 박찬대 의원보다 덜 알려졌다는 평이 나오지만 국회 법제사법위원회(이하 법사위) 위원장으로서 보여준 ‘사이다’ 면모가 주목받으면서 강성 지지층의 환호를 받았다. 정청래가 걸어온 길 비주류였던 그가 당 대표가 되기까지의 여정은 결코 평범하지 않았다. 21대 국회 때는 이재명 대표 체제에서 수석 최고위원을 지냈고, 22대 국회에선 법사위원장으로서 국민의힘에 호통을 치며 유튜브 단골 주제가 됐다. 당시 정 대표는 국민의힘이 반대하는 쟁점 법안을 밀어붙이고 상대편 의원과 대립하는 모습을 보여주며 인기를 끌었다. 그동안 정 대표는 언론 대신 페이스북이나 트위터, 유튜브 등 SNS를 통해 지지자와 직접 소통해 왔다. 민주당 박찬대 의원보다 주목도가 떨어진다는 평이 나오지만 팬덤 정치에 최적화된 모습을 보여줬다. 정 대표는 최근에도 자신을 둘러싼 의혹과 청-명 프레임에 대해 직접 입장을 밝혔다. 그는 SNS에 ‘언론의 자유와 횡포 그리고 언론의 게으름의 관성’이라는 제목의 글을 통해 “조국 전 대표의 사면·복권을 놓고 일부 언론에서 ‘정청래 견제론’을 말한다. 실소를 자아내게 한다. 근거 없는 주장일뿐더러 사실도 아니다. 상식적인 수준에서 바로 반박이 가능하다”고 밝혔다. 이어 “정청래는 김어준이 밀고, 박찬대는 이재명 대통령이 밀었다는 식의 가짜 뉴스가 이 논리의 출발”이라며 “어심이 명심을 이겼다는 황당한 주장, 그러니 정청래가 이재명 대통령과 싸울 것이란 가짜 뉴스에 속지 말기 바란다”고 당부했다. 그러면서 “이재명 대통령과 각을 세울 일이 1도 없다. 당정대가 한 몸처럼 움직여 반드시 이재명정부를 성공시킬 생각이 100(이다)”이라고 덧붙였다. 계파 갈등 프레임이 씌워질 조짐이 보이자 이를 사전에 차단한 것으로 풀이된다. 정 대표의 정치적 뿌리를 따지자면 친노(친 노무현)에 가깝다. 그러나 문재인 전 정부서는 친문(친 문재인), 이재명 대표 체제에서는 친명(친 이재명)으로 분류되는 등 계파색이 비교적 옅은 편이다. 1989년 미국 대사관저 점거 농성을 주도한 혐의로 2년형을 선고받은 등 학생 운동권 출신이지만, 대표 운동권인 민주당 86 그룹과의 친분을 공개적으로 과시하지 않았다. 따라서 정 대표는 당의 주류보다 비주류에 가깝다는 게 여의도에 떠도는 평이다. 친문? 친명? 오히려 ‘계파 청산파’ “잘못된 586 문화 배운 97도 청산” 전당대회가 한참이던 당시 한 민주당 의원은 “사석에서 만난 정 의원은 아주 뚝심 있는 사람이었다. 박찬대 의원은 특유의 재치로 호감을 얻는 편이라면 정 의원은 부드러운 카리스마로 할 말은 제대로 하는 캐릭터”라며 “그래서 계파를 분류하기 어려운 것 같다. 나만의 길을 가는 것 같으면서도 한번 정한 길은 꺾지 않고 걷는 사람”이라고 설명했다. 오히려 정 대표는 ‘계파 청산’을 외치는 인물이다. 그는 당 대표 후보이던 당시 “국민께서 비판하시는 586의 운동권 문화는 청산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한 라디오에 출연해서는 “계파는 당을 좀먹는 독약”이라며 강도 높게 비판하기도 했다. 그는 “정파와 노선은 필요하지만, 계파는 없어져야 한다. 저 스스로 계파에 가입하지 않고, 그런 데서도 저는 안 불러준다”고 말했다. 이어 “저는 586의 질서, 운동권의 수직적 관계가 싫었다. 그런 분들과 몰려 다니는 게 너무 비생산적”이라며 “586의 안 좋은 문화를 따라 배운, 너무 빨리 늙어버린 97 세대들의 그런 것도 청산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정 대표가 민주당의 수장이 될 수 있었던 것은 당원들의 요구를 파악해 발 빠르게 움직였기 때문이다. 8·2 전당대회에서 정 대표는 당선 이후 “이 대통령이 대통령이 된 것은 민주당 주류가 바뀌었단 뜻이고, 민주당에서 정청래가 대표가 됐다는 것은 당의 주인인 당원들이 당의 운명을 결정하는 시대가 왔다는 상징적인 사건”이라고 해석했다. 이날 전당대회를 “예전에는 당원들이 국회의원 눈치를 봤지만, 이제는 국회의원들이 당원 눈치를 봐야 하는 지극히 정상적인 ‘민주당의 민주화’가 드디어 그 깃발을 높이 든 8·2 전당대회”라고 자평하기도 했다. 이처럼 정 대표를 탄탄히 받쳐주는 건 여의도 인맥이 아닌 당원이었다. 정 대표는 이들을 대주주 삼아 힘을 키워 주류로 자리 잡고 있다. 최근에는 당원권에 힘을 쏟으며 역사상 처음으로 ‘평당원 최고위원’ 선출을 시도하는가 하면 당원 주권 정당 실현을 강조하기 위해 ‘대의원 1인1표제’를 띄우기도 했다. 대의원 1인1표제는 당원들의 권한을 대폭 향상하는 방안이다. 정 대표는 지난 18일 열린 국회 당원주권 정당특위 출범식에서 “10년 넘게 당원주권정당, 1인1표를 주장해 왔지만, 아직까지도 열리지 않았다”며 “헌법에서 얘기하고 있는 평등 선거가 민주당에서도 구현이 될 수 있도록 서둘러야 한다”고 강조했다. 3대 개혁 풀가동 이어 “대한민국 헌법에는 평등 선거가 명시돼있고, 많은 선거에서 1인1표가 행사되지만 유독 더불어민주당에선 누구는 1표, 누구는 17표를 행사한다”며 “헌법적으로 보나 상식적으로 보나 매우 부끄러운 일”이라고 지적했다. 이재명정부가 국민주권시대를 강조하는 만큼 이에 발맞추기 위해서라도 민주당은 권리당원의 권리를 보장하고 상징적인 ‘1인1표’ 시대를 반드시 열어야 한다는 주장이다. 이 밖에도 정 대표는 당헌·당규 개정을 비롯한 ▲평당원 선출 준비 지원 ▲연말 당원 콘서트 지원 등을 약속했다. 당원의 힘이 커질 수록 정 대표의 정치적 입지도 넓어진다. 정 대표는 연일 국민의힘 때리기에 집중하며 당원으로부터 지지를 받았고, 민주당의 목표로 3대 개혁 완수를 내걸었다. 이는 비주류였던 자신의 정체성을 부각시키기 위한 전략으로도 읽힌다. 이 대통령이 ‘사이다’ 발언으로 당권까지 올랐다면 정 대표는 각종 특위를 띄우며 거침없는 개혁가의 모습을 굳히겠다는 것이다. 정 대표는 강성 지지층의 요구에 따라 검찰개혁에 속도를 내고 있다. 검찰청을 폐지하는 대신 가칭 중대범죄수사청(중수청)과 공소청을 신설하는 정부조직법 개정안을 다음 달 국회 본회의에서 처리하겠다는 방침을 세웠다. 정 대표는 지난달 21일 의원총회에서 이 대통령과 당 지도부의 만찬 회동을 언급하며 “검찰청 폐지, 공소청·중수청 설립을 담은 정부조직법을 9월 내 본회의에서 처리하자고 당과 대통령실이 입장을 같이했다”고 밝혔다. 아울러 그는 “약속드린대로 추석 귀향길 뉴스에서 ‘검찰청은 폐지됐다’ ‘검찰청은 역사 속으로 사라지게 됐다’는 기쁜 소식을 국민 여러분께 전해드릴 수 있도록 당에선 최선을 다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신임 법제사법위원회 위원장으로 선출된 추미애 의원 역시 “법사위원장 선출은 검찰과 언론, 사법개혁 과제를 완수하라는 국민의 명령으로 받아들이고 있다”며 전폭적으로 힘을 실었다. 이를 뒷받침하기 위한 위원회도 속속들이 들어섰다. 우선 민주당은 ‘국민주권 검찰정상화 특별위원회’를 발족시켰다. 정 대표는 출범식 및 1차 회의에 참석해 “지금의 시대적 과제는 내란 종식, 내란 척결, 이정부 성공에 있다”며 “가장 시급히 해야 할 개혁 중 개혁이 검찰개혁”이라며 “개혁도 골든타임을 놓친다면 저항이 거세져서 좌초되고 말 것이기 때문에 시기가 중요하다”고 거듭 강조했다. 특위의 주요 과제로는 ▲수사·기소 완전 분리 ▲국민 주권 실현 및 민생 뒷받침 등을 제시했다. 새로운 구심점 이어 언론개혁특별위원회를 출범시키고 언론 보도에 대한 ‘징벌적 손해배상제도’를 추석 전까지 도입하겠다고 약속했다. 이는 언론의 허위·조작 보도에 대해 피해자에게 손해액의 최대 5배 배상을 의무화하는 법적 장치다. 언론뿐만 아니라 ‘유튜버’도 포함하는 안이 논의되는 것으로 전해진다. ‘국민중심 사법개혁특별위원회’도 출범했다. 정 대표는 “대법관의 증원과 추천 방식을 변경하는 내용의 사법개혁안을 추석 전까지 처리하겠다”고 밝혔다. 구석구석 눈도장을 찍기 위한 지역별 공략에도 나섰다. 지난 21일 호남발전특별위원회를 출범시키고 “다들 대한민국 민주화에 대해서 호남이 기여한 바가 지대하다는데, 국가는 ‘호남을 위해서 무엇을 했는가’에 대한 답을 이제 할 때가 되지 않았나”라고 꼬집었다. 정 대표는 “호남만 발전시키면 되겠느냐”며 영남발전특위도 띄웠다. 이는 내년 6월에 있을 지방선거를 대비해 대구·경북 등의 표밭을 다지기 위함으로 풀이된다. 광폭 행보를 보이는 정 대표를 구심점으로 신흥 세력이 탄생할 것이란 관측이 제기된다. 정 대표는 계파 정치와 거리를 두겠다고 거듭 밝혔지만, 권력자의 주변에 사람이 모이는 것은 당연하다는 해석이다. 정 대표의 편에 선 동료 의원들에게도 시선이 쏠린다. 전당대회에서 정 대표를 공식적으로 지지했거나 개혁 선봉에 함께 섰던 의원 등이다. 정 대표가 당권 도전을 선언한 국회 기자회견장에는 장경태·최기상·문정복·임오경·양문석 의원 등이 자리했다. 여의도 이야기를 종합하면, 정 대표는 ‘당원 중심 정당’ 철학에 부합하는 인사로 장 의원을 꼽았다. 현재 장 의원은 평단원 최고위원 선출 절차를 위한 특위위원장을 맡고 있다. 최민희 의원은 정 대표를 공개 지지한 인물이다. 당시 정 대표가 수박 논란에 휩싸였을 당시 최 의원은 “심하게 비난받는 정청래 후보를 지켜보면 짠하다”며 “비난에도 역비난하지 않고 여전히 유쾌·상쾌하게 선거운동하는 정 후보를 격하게 지지한다”고 공개적으로 밝혔다. 이 밖에도 한민수·김영환·이성윤 의원은 경선 유세 현장에 함께하며 힘을 실어줬다. 왼쪽으로 붙는 민주당…좁아지는 공간 강성 지지층 등에 업고 개혁가의 길로 개혁가의 길을 걷는 정 대표의 존재감이 커지자 일각에서는 조기 대선을 거치며 ‘중도 보수론’으로 넓혀놨던 민주당의 정치 공간이 다시 좁아지고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정 대표의 강경한 태도가 민주당의 기조가 된다면 야당과의 협치는 기대하기 어렵다는 평이다. 실제 정 대표는 “악수는 사람하고만 한다”며 국민의힘을 척결 대상으로 대하고 있다. 김대중 전 대통령 서거 16주기 추모식에서 정 대표는 국민의힘 송언석 비상대책위원장(이하 비대위원장)과 악수는커녕 인사조차 나누지 않았다. 송 비대위원장 역시 적대감을 드러내면서 그야말로 ‘국회 빙하기’ 시대가 열렸다. 여당인 민주당은 좌우를 넓게 아우르는 정당이 돼야 앞으로 다가올 선거에서 유리한 구도를 유지할 수 있다. 지금처럼 국민의힘이 보수로서 역할을 하지 못할 때 왼쪽은 조국혁신당, 진보당 등에 맡겨둔 채 중도 보수를 자처해야 한다는 설명이다. 하지만 당원의 힘으로 대표가 된 만큼 그는 개혁을 완수하기까지 지금과 같은 태도를 유지할 것으로 보인다. 이에 민주당 상임고문단도 “집권여당은 당원만 바라보고 정치를 해선 안 된다”며 우려를 표하기도 했다. 정세균 전 국무총리는 당 상임고문단 간담회에서 “정당의 주인은 당원이어야 한다는 데 공감한다”면서도 “우리 국민은 당원만으로 구성된 것이 아니”라고 밝혔다. 문희상 전 국회의장도 “내란의 뿌리를 뽑기 위해 전광석화처럼, 폭풍처럼 몰아쳐 처리하겠다는 대목에 전적으로 동의한다. 하지만 잊지 말아야 할 것은 과유불급이다. 의욕이 앞서 결과를 내는 게 지리멸렬한 것보다는 훨씬 나으나, 지나치면 안 된다”고 조언했다. 또 다른 민주당으로 민주당 사정을 잘 아는 한 관계자는 “‘포스트 이재명’ ‘이재명 키즈’가 아닌 새로운 인물이 나타나야 한다”고 조언했다. 정 대표가 민주당의 새로운 길을 열어야 당이 계속해서 순환하는 등 건강하게 유지될 수 있다는 설명이다. 이어 “민주당의 주류는 강성 지지층이다. 당원이 당을 좌지우지하는데 그들의 숫자가 얼마가 되든 목소리가 커 여론을 만드는 것”이라며 “이 주류의 흐름에 올라탄 사람이 정 대표다. 이 대통령이 대표이던 때와는 다른 모습의 민주당을 보게 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hypak28@ilyosisa.co.kr> <기사 속 기사> 아직 남은 정 견제 세력 더불어민주당 정청래 대표가 SNS에 올렸다 곧바로 삭제한 게시글이 화제다. 민주당은 지난달 19~20일 양일간 경주를 찾아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APEC) 정상회의 준비 상황을 점검했는데 정 대표가 마치 천마총 금관을 쓰고 있는 듯한 착시 사진이 문제가 된 것이다. 정 대표가 금관을 직접 착용한 것은 아니지만 온라인 커뮤니티 등에서 “이재명 대통령의 시에 왕 노릇을 한다” “벌써 왕인 것처럼 군다” 등 거친 비판이 쏟아졌다. 현재 해당 사진은 삭제됐지만 8·2 전당대회 때 불거진 박찬대 의원과의 앙금이 아직 남은 게 아니냐는 뒷말이 나온 이유다. <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