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 ‘이 난리통에…’ 자리 비운 배구협회장 막전막후

뒤집어진 배구판…수장은 사라졌다

[일요시사 취재1팀] 장지선 기자 = 프로배구 ‘2020-2021 V리그’가 막을 내렸다. 이제 배구팬들의 관심은 국제대회로 향하고 있다. 여자배구 국가대표팀이 출전하는 발리볼네이션스리그(VNL), 도쿄올림픽 등 국가대항전이 코앞이다. 하지만 국가대표팀 지원을 맡고 있는 대한배구협회 회장이 3월부터 모습을 보이지 않고 있다.

배구계는 이번 ‘2020-2021 V리그’ 기간 동안 천국과 지옥을 오갔다. 리그 시작 전 ‘배구 여제’ 김연경(흥국생명)이 11년 만에 국내 복귀를 결정하면서 여자배구에 대한 관심이 커졌다. 국민 스포츠로 불리는 프로야구만큼 프로배구도 외형적으로 성장할 것이라는 기대감이 팽배했다.

높아진 인기
충격의 학폭

이번 시즌 여자배구는 겨울스포츠 왕좌를 노릴 만큼 양적으로 크게 성장했다. 코로나19 팬데믹 여파에 무관중(포스트시즌은 10% 관중 입장)으로 열린 V리그는 올해 역대 최고 시청률을 기록했다. 여자부는 닐슨코리아 기준 평균 시청률이 경기당 1.23%로 지난 시즌 대비 0.18% 올랐다.

남녀부 통틀어 역대 최고 평균 시청률이다.

하지만 리그 중반 이재영·이다영(흥국생명) 쌍둥이 자매의 학교폭력 의혹이 불거졌다. 이다영의 SNS로 이미 배구계 내부가 어수선한 상황에서 터진 학폭 의혹은 엄청난 폭발력을 보였다. V리그 간판선수로 이름을 날리던 이재영·이다영 자매에 대한 여론이 악화되면서 비난이 쇄도했다. 


다른 선수들의 학폭 의혹이 연쇄적으로 터져 나왔고 과거 사건도 다시 수면 위로 올라왔다. 확인되지 않은 정보와 추측이 난무했고, SNS를 통한 폭로전이 이어졌다. V리그의 인기는 학폭 의혹으로 찬물을 맞았다.

한동안 경기 내용보다 외적인 요소로 언급되던 V리그는 순위 결정전이 치열해지면서 반등의 기회를 잡았다. 리그 시작 전에는 ‘어우흥(어차피 우승은 흥국생명)’이라는 말이 있었지만, 리그 후반에 이르러서는 그 말이 무색할 만큼 포스트시즌 진출과 정규리그 우승을 두고 물고 물리는 경기가 이어졌다. 

또 이재영·이다영 자매의 시즌 아웃, 센터 김세영(현재 은퇴)의 부상 등 주전 선수 3명이 빠진 흥국생명의 경기가 높은 관심을 끌었다. 이재영·이다영 자매가 V리그를 떠난 이후 전패가 예상됐던 흥국생명이 김연경의 고군분투로 예상 밖의 선전을 보이면서 응원의 목소리가 높아진 것. 

이후 V리그는 배구팬들의 관심과 응원 속에서 막을 내렸다. GS칼텍스는 V리그 여자부 사상 최초로 트래블(KOVO컵·정규리그·챔피언결정전 우승)을 달성했고, 흥국생명도 준우승이라는 값진 결과를 얻었다.

남자부는 대한항공이 정규리그와 챔피언결정전을 석권하면서 통합우승을 이뤄냈다.

국내리그가 마무리되면서 최근에는 국제대회를 위한 국가대표 선수 선발이 진행되고 있다. 지난해 1월 도쿄올림픽 출전권을 확보한 여자배구 국가대표팀은 5월 ‘2021 FIVB 여자 발리볼네이션스리그(VNL)’에서 손발을 맞춘 뒤 7월 도쿄올림픽에 출전한다.

양적 성장 이뤘지만 
내부 문제도 터졌다


남자배구는 도쿄올림픽 출전권을 따내지 못했다. 

스테파노 라바리니 감독이 이끄는 여자배구 국가대표팀은 김연경(레프트), 김희진(라이트), 양효진(센터), 안혜진(세터), 오지영(리베로) 등 선수 18명과 코칭스태프 10명으로 구성됐다. 이들은 다음달 21일 VNL 개최지인 이탈리아 리미니로 향할 예정이다.

이 대회에서 도쿄올림픽에 출전할 최종 엔트리 12명이 정해진다. 

문제는 국가대표팀을 지원하는 대한민국배구협회(이하 배협) 회장이 현재 자리를 비우고 있다는 점이다. <일요시사> 취재 결과 오한남 배협 회장은 지난 3월부터 한국에 없는 것으로 확인됐다. 지난 1월 연임에 성공하고 불과 한 달 반 만에 자리를 비운 셈이다. 

VNL, 올림픽을 앞두고 배협 수장이 자리를 비운 상황에 대해 배구계 안팎에서는 비판의 목소리가 제기되고 있다. 이재영·이다영 사건으로 오 회장이 고발을 당하는 등 학폭 의혹의 불씨도 아직 꺼지지 않았다.

이재영·이다영 자매가 이달 초 자필 사과문을 삭제하고 학폭 폭로자를 고소하겠다는 뜻을 비치면서 학폭 의혹은 또 다시 재점화 된 상황이다.

시민단체 서민민생대책위원회는 “오 회장이 이재영·이다영 자매 학폭 의혹의 진실 여부에 대한 국민들과 배구팬들의 의혹을 신속히 해소시키려 노력하기보다 일부 언론보도만을 근거로 자체 진상조사도 없이 국가대표 박탈 조치를 내렸다”고 주장했다. 

그러면서 “(오 회장과 배협이) 이 사건에 대해 책임지는 모습보다 회피하려는 자세를 보이고 있다”며 오 회장을 위력에 의한 업무방해죄, 명예훼손, 권리행사 방해 등을 이유로 경찰청 국가수사본부에 고발했다. 

국가대항전
코앞인데…

배구계에는 배협, 한국배구연맹, 한국실업배구연맹 등의 단체가 있다. 배협은 아마추어 선수들과 국가대표팀을 지원한다. 한국배구연맹은 한국프로배구를 총괄하며 V리그와 KOVO컵 프로배구대회를 주관한다. 조원태 한진그룹 회장이 총재를 맡고 있다. 김금규 회장의 한국실업배구연맹은 실업배구팀을 관장한다.

이재영·이다영 자매의 학폭 의혹이 불거졌을 당시 구단(흥국생명)·한국배구연맹·배협의 징계 및 입장이 각각 따로 나온 것도 그 때문이다. 당시 한국배구연맹은 학폭 연루자를 프로무대에 들이지 않겠다는 규정을 신설했지만 이재영·이다영 자매에게는 적용하지 않기로 해 배구팬들의 비난을 받은 바 있다.

배협은 ‘국가대표 선발 무기한 제외’라는 입장을 밝혔다. 


한 배구계 관계자에 따르면 오한남 회장은 이재영·이다영 자매에 대한 배협의 입장을 결정하고 난 후 출국했다. 행선지는 바레인. 오 회장은 바레인 국가대표팀 감독, 바레인 한인회 회장 등을 지냈을 정도로 바레인과 인연이 깊다.

바레인에서 한식당과 호텔을 운영하는 사업가이기도 하다. 이번 출국도 개인 사업 때문인 것으로 알려졌다. 

배협 사무처 관계자는 “회장님이 한국에 없는 것은 맞다. 사업 때문에 바레인에 가셨다”면서도 “실무는 직원들이 하고 있기 때문에 공백은 없다”는 입장을 밝혔다. 이어 “메신저나 이메일, 전화 등을 통해 매일 업무 보고를 드리고 있다”며 “지금도 회장님께 드릴 보고 자료를 만들고 있다”고 덧붙였다.

이 관계자는 “백신 2차 접종 문제로 5월 중순쯤 (한국에)들어오실 것”이라고 전했다.

일각에서는 배협 회장은 ‘명예직’일 뿐이라는 항변도 나왔다. 배협 정관 24조 ‘임원의 직무’ 조항에 따르면 ‘회장은 협회를 대표하고 그 업무를 총괄하며 무보수 비상근 명예직으로 한다’고 돼있다. 어떤 부분에 방점을 찍느냐에 따라 오 회장의 부재를 다르게 해석할 수 있다는 설명이다.

사업 때문?
백신 때문?


또 다른 배구계 관계자는 “여느 때였다면 오 회장의 부재가 크게 문제가 되지 않았을 것”이라면서도 “VNL, 올림픽 같은 굵직한 대회를 앞두고 있는 상황에서 회장의 부재는 아쉬운 부분이 있다”고 전했다. 그러면서 “국가대표팀 코로나19 백신접종, 불투명한 올림픽 개최 여부 등 예측 불가능한 상황이 일어날 수 있는 만큼 자리를 지켰어야 한다”고 지적했다. 

여자배구는 올림픽에서의 선전을 발판으로 현재 인기에 다다랐다. 2012년 런던올림픽 4위, 2016년 리우올림픽 8강 등 기대 이상의 성적을 거두면서 국민적인 지지를 받았다. 김연경을 중심으로 모든 선수들이 똘똘 뭉쳐 얻은 결과였다.

김연경은 런던올림픽에서 메달을 따지 못했음에도 MVP로 선정돼 세계적인 선수임을 증명한 바 있다.

하지만 이 과정에서 배협의 역할은 없었다. 배협은 국가대표팀을 지원하는 조력자가 아니라 방해자라는 지적을 받았다. 특히 리우올림픽에서 배협의 지원 부족으로 국가대표팀이 열악한 환경에서 경기를 치른 사실이 드러났다.

세계 8강이라는 빛나는 성적 뒤에 이 같은 어려움이 있었다는 사실에 배구팬들은 물론 국민적 분노가 들끓었다.

당시 국가대표팀은 감독, 코치, 전력분석관 그리고 선수 12명까지 16명으로 구성됐다. 한국 선수단에 배정된 AD카드가 부족했기 때문이다. 통역조차 없어 중계방송을 위해 현장답사를 왔던 모 아나운서가 기자회견에서 통역을 하는 황당한 일이 벌어졌다.

1명의 트레이너가 12명의 선수를 모두 책임져야 했고, 전력분석관은 AD카드가 없어 동행하지 못했다.

리우올림픽 8강 뒤에
배협은 흑역사 쌓아

리우올림픽 일정을 마친 이후 귀국길에서도 사달이 났다. 국가대표팀은 한국 선수단이 귀국하는 전세기를 이용할 계획이었지만 8강에서 탈락하면서 일찍 한국에 들어오게 됐다. 그런데 표가 없다는 이유로 16명이 4차례로 나눠 귀국하게 된 것. 

또 당시 배협은 새로운 회장을 선출하는 선거를 치르고 있었다. 2016년 8월9일 국가대표팀이 러시아에 3대 1로 패하던 날, 배협은 회장 선거를 실시해 서병문 전 중소기업중앙회 수석부회장을 신임 회장으로 선출했다. 국가대표팀에 대한 지원도 부족한 상황에서 하필 그 시기에 회장 선거를 치러야 했냐는 비판이 빗발쳤다. 

2014년 인천 아시안게임에서 금메달을 따낸 여자배구 국가대표팀의 회식이 김치찌개 집에서 이뤄진 사실까지 드러났다. 당시 국가대표팀은 20년 만에 중국을 꺾고 우승을 일궈냈다. 국가대표팀에 대한 홀대 논란이 한꺼번에 불거지면서 배협은 공공의 적으로 떠올랐다.

분노한 누리꾼에 의해 배협 홈페이지가 마비되는 사태까지 일어났다.

배협은 입장문을 내고 “AD카드 전체 규모가 줄었기 때문에 추가 확보가 어려운 여건이었다” “통역은 조직위로부터 지원받아 업무를 처리하고 있었다” “전세기 편으로 귀국할 예정이었지만 일정이 없던 대표팀이 조기 귀국을 원했다” “정부의 경기단체 통합방침과 대한체육회 회장 선거 일정에 따라 협회 회장 선거를 마쳐야 했다” 등의 해명을 내놨다. 

하지만 올림픽 지원 문제와 함께 배협 내부의 잡음이 끊임없이 터져 나왔고, 서병문 회장은 결국 2016년 12월 임시 대의원총회에서 불신임안이 가결되면서 배협 역사상 최초로 탄핵되는 불명예를 안았다. 그리고 2017년 4월 서 회장이 제기한 대표자 해임결의 효력정지 가처분 신청이 기각되면서 사실상 해임이 확정됐다. 

탄핵 회장
후임이면서…

이후 2017년 6월30일 열린 배협 회장 선거에서 당선된 인물이 바로 오 회장이었다. 그는 지난 1월18일 연임에 성공해 2024년 1월까지 배협을 이끌게 됐다. 당시 그는 “코로나19로 배구를 비롯한 스포츠 전체가 위중한 상황이다. 막중한 사명감과 책임감으로 한국배구가 한단계 더 도약할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하겠다”며 “여자대표팀이 도쿄올림픽에서 메달을 획득할 수 있도록 지원에 최선을 다하겠다”는 포부를 밝힌 바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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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제성 없는 ‘내란 TF’ 겉핥는 내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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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요시사 취재1팀] 오혁진 기자 = 이재명정부가 내란을 방조하거나 간접적으로 가담한 이들을 가리기 위해 TF를 구성했다. 내년 1월까지 공무원 75만명을 대상으로 참여·협조 여부를 조사한다. 일부 기관은 자체적으로 판단해 TF를 구성하는 걸 두고 고민하고 있다. TF는 강제성이 없으며, 이미 조사를 끝내 인사에 반영한 기관도 존재한다. 헌법 존중 정부 혁신 TF(태스크포스)는 중앙행정기관 49곳에 구성됐다. 구체적으로 각 부처 25곳이 포함됐다. TF는 총 48개다. 활동 목표가 인사에 합리적으로 반영하기 위한 것이라지만 각 기관 안팎에서 논란이 일고 있다. 사실상 내란 특검팀(조은석 특별검사)의 연장선이 아니냐는 것이다. 방조·간접 가담자들 김민석 국무총리는 지난달 24일 TF 실무 책임자들과 첫 간담회를 갖고 “TF의 조사 활동은 대상, 범위, 기간, 언론 노출, 방법 모두 절제돼야 한다”고 말했다. 김 총리는 이날 정부서울청사에서 열린 간담회에서 “절제하지 못하는 TF 활동과 구성원은 즉각 바로잡겠다”면서 “TF 활동의 유일한 목표는 인사에 합리적으로 반영하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앞서 이 TF는 공무원 75만명의 ‘내란 참여·협조’ 여부를 개인 휴대전화까지 제출받아 조사한다는 방침 등이 인권침해란 논란이 일었다. 총리실에 설치된 ‘총괄 TF’는 이날까지 부처 25곳을 포함한 기관 49곳에서 TF 48개가 출범했다. 국무조정실·국무총리비서실로 구성된 총리실에 단일 TF가 설치되면서 TF 숫자는 하나 줄었다. TF는 대부분 10~15명으로 구성됐지만, 전체 인원이 많은 국방부(53명), 경찰청(30명), 소방청(19명) 등은 대규모 조사단을 꾸렸다. TF 48개의 총인원은 정부 내부 인사 536명을 포함해 661명에 달한다. TF 48개 중 32개에 외부 인사 125명이 참여했고 그중 76명(60.8%)은 법조인, 31명(24.8%)은 학자, 18명(14.4%)은 시민단체 관계자 등이 참여했다. TF는 ‘내란의 사전 모의나 실행, 사후 정당화, 은폐’를 한 공무원은 ‘내란 참여’로, ‘내란의 일련의 과정에 물적·인적 지원을 도모하거나 실행’한 공무원은 ‘내란 협조’를 한 것으로 보기로 했다. 적발된 공무원에게는 내년 2월13일까지 ‘징계’나 ‘승진 배제’ 같은 인사 조치할 방침이다. 또 ‘내란 행위 제보 센터’를 설치해 동료 공무원들에게 제보·투서를 받고, 의심 공무원은 개인 휴대전화를 들여다보기로 했다. 한 정부 관계자는 “의혹이 상당하다고 판단되면 대상자의 휴대전화를 제출받아 들여다볼 예정이다. 의혹이 상당한 데도 조사에 협조하지 않으면 수사 의뢰까지 가능한 선을 정했다”고 말했다. 법조계에서는 TF 조사 권한을 두고 이견이 나온다. 형사가 아닌 행정 절차이지만 일반적인 조사가 아닌 만큼 행정법이 지켜져야 한다는 분석이 지배적이다. 공무원 75만명 전방위 조사 문제없나 형소법 원칙 유명무실…권력남용 소지 한 서초동 변호사는 “영장 없는 조사를 두고 많은 문제 제기가 이뤄질 수밖에 없다. 행정조사기본법에 따르면 인사상 불이익으로 압박하거나 진술을 강요하면 직권남용 혐의가 성립될 수 있다. 최소한의 범위를 규정하고 조사해야 하는데 TF가 정한 선이 어느 지점까지인지가 핵심일 것 같다”고 조언했다. 국회도 과거 비슷한 문제를 지적한 바 있다. 국회입법조사처는 2022년 발간한 ‘권력적 행정조사의 쟁점 및 개선 과제’ 보고서에서 행정조사 과정에서 영장주의·진술거부권이 침해될 수 있다고 분석했다. 행정조사에서 수집된 자료가 수사기관으로 넘어가 형사 처벌 근거로 활용되는 경우가 적지 않다. 형사소송법상 원칙이 유명무실해지고, 국가권력이 남용될 소지도 있다. 업무용 PC나 이메일에서는 변호사와 상담한 내용까지 확보되는 사례도 있어 변호인의 조력을 받을 권리가 위축될 가능성도 있다. 행정조사 위법성과 관련해서는 판례도 존재한다. 지난 2012년 서울고법은 기관이 업무용 휴대전화 통화 기록과 문자메시지를 동의 없이 확보해 공무원을 해임한 사건에서 이를 위법한 증거수집으로 보지 않았다. 법원은 기관이 통신비를 부담했고, 감사 목적이 공익적이었다고 판단했다. 대법원도 상고를 기각했다. 조직 내부 감사는 세무조사·공정거래위원회 조사·근로감독 등과 달리 별도의 법적 근거가 불명확한 경우가 많아 조사의 한계 역시 모호하다는 평가도 나온다. 정부 차원의 대규모 내부 감사가 법적 문제를 일으킨 선례 역시 많지 않다. 민간인의 TF 참여도 새로운 논란이다. 정부는 감사부서 공무원 외에 민간인을 포함하거나 아예 외부 전문가로만 구성된 TF를 둘 수 있다는 지침을 내렸다. 명확한 법적 근거 없이 민간인이 공무원에 대해 조사권을 행사하는 셈인데, 정부는 TF 설치를 위한 별도 입법을 마련하지 않았다. 논란 불구 조사 시작 공직사회는 뒤숭숭한 분위기다. 조사 기준이 모호해 억울한 문책 인사가 발생할 수 있다는 우려가 적지 않다. 반면 계엄을 방관했거나 동조한 세력을 처벌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상당하다. 핵심 조사 대상으로 거론되는 기관은 기획재정부·국방부·행정안전부·경찰·검찰·법무부 등이다. 기재부의 경우 최상목 전 기재부 장관 겸 경제부총리가 대통령 권한대행까지 겸했다. 최 전 장관이 12·3 비상계엄 당시 윤석열 전 대통령으로부터 국가비상입법기구 예비비 편성 등 계엄 지시 문건 등을 받고 1급 고위직들을 소집해 회의를 연 바 있어, 당시 회의에 참석했던 이들이 조사 대상이 될 것으로 보인다. 지난 10월 국회 국정감사 때 김동일 전 예산실장과 신중범 전 대통령실 경제금융비서관 등이 아시아개발은행(ADB)과 아시아거시경제감시기구(AMRO)로 파견되기 직전 명예 퇴직금을 수령한 것을 두고 ‘해외도피’ 논란이 제기되기도 했다. 외교부는 이번 국감에서 비상계엄 직후 대통령실이 외교부 장관 명의로 ‘합법적 계엄’이란 내용의 공문을 주미한국대사관에 보내고, 이를 ‘3급 기밀’로 지정한 점을 지적받은 바 있다. TF가 가동되면서 외교부 인사는 사실상 ‘중단’ 상태다. 외교부는 애초 올해 말까지 1급 인사를 마무리할 계획이었지만, TF 활동이 시작되면서 어렵게 됐다. 새 정부가 출범한 지 반년이 다 되어가지만, 그동안 외교부 실·국장 및 재외 공관장 인사가 거의 이뤄지지 않았다. 외교부 인사는 특임 대사 임명과도 맞물려 있지만 인사 속도는 더디기만 하다. 특히 현 정부는 특임 대사를 확대하려는 움직임을 보이고 있어 외교부는 신경을 곤두세우고 있다. 특임 대사는 직업 외교관이 아닌 전문가·정치인·학자 등을 대통령이 재외공관장으로 임명하는 제도다. 주요 공관장 인사가 늦어지면서 사안이 터졌을 때 제대로 대응할 수 있느냐는 우려가 나오고 있다. 지난 9월 미국 조지아주 현대자동차·LG에너지솔루션의 합작 배터리 공장 건설 현장에서 발생한 한국인 불법구금 사태 당시에도 조지아주를 관할하는 주애틀란타총영사직은 공석이었고, 캄보디아 사태 때도 주캄보디아 대사직이 비어있었다. 필요는 한데… 이중 감사 검찰 TF는 최근 검찰 내부망인 ‘이프로스’에 다음 달 12일까지 제보용 익명 게시판과 별도의 이메일 계정을 통해 관련 제보를 받겠다고 공지했다. 단장은 구자현 검찰총장 대행이 김성동 대검 감찰부장과 주혜진 대검 감찰1과장이 각각 부단장과 팀장을 맡아 10여명이 참여했다. 법무부에 설치된 TF 역시 같은 날 공지를 게시했다. 법무부에선 정성호 법무부 장관이 TF 단장을 맡고 내외부 인사 10여명이 구성원으로 참여한다. 법무부는 내부 익명 게시판을 통해 제보를 접수하는 한편, 검찰과 별도의 이메일 계정을 개설해 운영할 예정이다. 경찰은 경무관 승진, 총경 인사를 앞두고 숨죽이는 분위기다. 앞서 계엄 수사로 조지호 경찰청장 등 수뇌부가 재판에 넘겨졌지만, 계엄 당시 국회 출입 통제나 체포조 투입에 관여됐던 간부 상당수는 기소를 피했다. 국방부는 이중 감사 논란이 일고 있다. 이미 12개 기관을 대상으로 내부 감사를 진행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안규백 국방부 장관은 취임 직후 감사관실 주도로 중령급 이상 간부를 전수 조사해 지난주 보고서를 대통령실에 제출했고, 이는 이번 3성 장군 인사에도 반영된 것으로 알려졌다. 국방부는 총리실의 지시에 따라 기존 감사자료를 제출하는 수준에서 협조할 것으로 알려졌다. 감사관실은 조사본부를 합류시켜 TF를 꾸릴 것으로 보인다. 지난 국방부의 자체 감사는 합참 현역 장교뿐 아니라 본부 군무원과 민간 공무원까지 포함한 대대적 감사였다. 지난 9월 진영승 합참의장 취임 이후, 권대원 합참차장을 제외한 합참 장군 전원과 2년 이상 근무한 중령·대령에 대한 대규모 인적 쇄신이 실제로 단행됐다. 합참의 지시에 따라 장교들의 진급이 보류되거나 보직이 변경됐다. 국정원은 이미 이종석 국정원장 취임 이후 직원들의 비상계엄 관련 여부 등 내부 조사를 마쳤다. 특히 의무적으로 TF를 구성해야 하는 기관이 아니다. 국정원은 지난 8월 첫 1급 인사를 단행하고 최근까지 2∼4급 인사를 마무리했다. 애매한 의혹 제기 투서 남발 우려 일부 기관 자체 판단 별도 TF 설치 이 인사는 이 원장 취임 이후 진행한 내부 조사 결과를 반영한 것으로 전해졌다. 앞서 국정원은 이 원장 취임 두 달 만인 8월 1급 간부 20여명의 인사를 단행하면서 그간 정권이 바뀐 뒤 1급 간부를 모두 교체하던 관행과 달리 윤석열정부에서 임명된 간부들을 일부 유임시켰다. 국정원은 대통령 직속 기관이다. TF 설치를 두고 대통령실이 직접 관리할 수 있다. 정부 관계자는 “본래 정권이 바뀔 때마다 신임 국정원장이 취임하면 국정원은 윗선 지침이 없어도 원장 지시하에 내부적으로 감찰이나 조사를 철저하게 해 왔다”며 “대통령실에서 직접 관리해 TF 조사가 이뤄져도 추가로 드러날 문제는 없을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국회 정보위원회 간사인 더불어민주당 박선원 의원은 지난달 4일, 국정원 국정감사 이후 브리핑에서 “국정원이 불법적 비상계엄 상황에서 내란·외환 정보수집 기능이 제대로 작동하지 못했다는 점을 인정했다”면서 “국정원은 국정원법 4조에 따라 내란죄·외환유치 관련 자료를 특검에 이미 제출했고 계엄 시 국정원 역할 재정비와 실효적 안보조사체계 복원을 추진하겠다고 보고했다”고 밝힌 바 있다. “인권침해 진정이 들어온 기구를 인권위가 설치하면 모순”이란 이유로 TF 설치를 거부했던 국가인권위원회는 TF 구성 반대 의결 과정에서 절차상 흠결이 지적되자 다음 전원위원회에 다시 상정해 논의하기로 했다. 앞서 인권위와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이하 공수처) 등 독립기관은 TF 설치를 자율적으로 판단하기로 정해졌다. 안창호 인권위원장은 지난달 24일 열린 제21차 전원위원회에서 “정부에서 부처 내 헌법존중 TF를 자율적으로 만들라는 권고가 있는데 어떻게 할 것이냐”고 위원들에게 물었다. 이에 한석훈 위원이 구두로 안건 발의를 제안했다. 이후 안건 발의자로 참여한 김용원·이한별 위원 포함 발의자 세 명과 강정혜·김용직 위원, 안 위원장 등 6인이 ‘TF 구성 반대’에 손을 들면서 의결됐다. 부역자 남았나 인권위 안팎에선 자율적 설치라고 해도, TF 설립 취지에 비쳐 조사 대상이 될 수 있는 위원들이 안건을 즉석에서 상정해 반대 의결까지 한 건 부적절했다는 비판도 나왔다. 특히 반대 의견을 낸 안 위원장과 김용원 위원 등은 지난 2월 ‘윤석열 방어권 안건’ 의결에 찬성해 특검에 내란 선동·선전 혐의로 고발된 상태다. <hounder@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