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폭 낙인’ 지우는 가해자들 논란

빨간줄 생활기록부 세탁한다고?

[일요시사 취재 1팀] 차철우 기자 = 최근 연예 소속사에선 소속 연예인들에게 생활기록부(이하 생기부)를 요구한다. 자체적으로 연예인들의 학교폭력 사실 여부를 ‘셀프 검증’하겠다는 것. 하지만 사실 여부를 입증하는 게 쉽지 않다. 학교폭력으로 조치사항을 받은 생기부 기록은 이미 지워졌기 때문이다. 
 

▲ ⓒpixabay

학교폭력 피해 학생은 “시간이 지나도 잊을 수 없다”며 고통을 호소한다. 몸과 마음에 입은 상처를 치료할 방법이 없기 때문이다. <학교생활기록 작성 및 관리지침>에 따르면 퇴학을 제외한 학교폭력 가해 조치사항은 졸업 직후 또는 졸업한 지 2년이 지나면 삭제가 가능하다.

깨끗하게∼

지난 2월25일 청와대 국민청원 게시판에 ‘학교폭력 가해학생의 생기부 이력 삭제 권한을 피해자에게 주세요’라는 청원글이 올라왔다. 청원인은 “반성의 정도에 따라 졸업 시 삭제할 수 있는 것은 피해 학생과 가해학생의 관계를 전혀 고려하지 않은 행동”이라며 “피해 학생은 평생 상처를 안고 살아가게 된다. 학교폭력에 대한 이력은 피해 학생과 부모가 동의했을 경우에 수정, 삭제가 가능하도록 개선해야 한다”고 가해학생 중심으로 이뤄진 조치사항 삭제 권한을 비판했다.

실제 학교폭력 가해학생은 자신의 잘못으로 생긴 조치사항을 지울 수 있는 권한이 있다.

<2021학년도 학교생활기록부 기재요령>에 따르면 가해학생의 낙인을 방지한다는 명목으로 행동상의 긍정적 변화가 있을 경우, 폭력 사건에 대한 조치사항을 스스로 삭제 가능하다. 


조치사항 ▲1호(서면 사과) ▲2호(피해 학생 접촉, 협박 및 보복행위 금지) ▲3호(교내봉사) ▲7호(반 교체) 등은 생기부 영역 중 행동특성 및 종합의견에 기록하고, 해당 조치사항들은 졸업과 동시(졸업 이후 2월 말 사이 졸업생 학적 반영 이전)에 즉시 삭제된다.

▲4호(사회봉사) ▲5호(전문가에 의한 특별 교육 이수 또는 심리치료) 조치사항은 출결 상황, 특기사항에 기록하며 ▲8호(전학)는 인적·학적사항, 특기사항에 기록한다. 해당 조치사항 역시 졸업일로부터 2년 후 자동 삭제되거나 졸업 직전 학교폭력 전담기구의 심의를 거쳐 졸업과 동시에 삭제할 수 있다. 

유예, 면제, 자퇴, 휴학 등으로 학적이 정지된 경우도 학적 유지를 가정해 졸업생과 동일한 절차에 따라 삭제 가능하다. 가장 높은 수위의 조치사항인 ▲9호(퇴학)를 제외한 모든 항목을 생기부에서 지울 수 있다.

과거에 학교폭력 조치사항은 생기부에 5년간 기록했지만, 2013년 교육청이 ‘낙인의 우려가 있다’며 졸업하고 2년 뒤 삭제가 가능하도록 했다. 2019년부터는 경미한 폭력으로 받은 조치사항(1호·4호·5호)은 기록하지 않도록 규정이 바뀌었다. 

퇴학 제외 학교폭력 가해 조치사항
졸업 직후 또는 2년 지나면 삭제 가능

학교는 폭력 사건으로 가해학생이 조치를 받으면 졸업할 때 삭제 가능하다는 사실을 알린다. 가해학생이 졸업 후 직접 학교에 전화해 생기부에 기록된 조치사항의 삭제를 요청하면 삭제해준다. 자신이 받은 조치사항과 관련해 전화하지 않더라도 조치사항은 시간이 지나면 자동 삭제된다. 

학교폭력 가해학생 조치사항 관리대장은 보존기간인 2년이 지나면 폐기한다. 폐기되는 순간 가해학생이 폭력과 관련해 받은 조치사항은 더 이상 기록에 없다. 또 현재 규정집 내 조치사항 삭제에 관해 피해 학생이 관여할 수 있는 권한은 없다.


교육부 관계자는 “변경된 규정에 대해 인권위원회의 권고사항이 있어 생기부 삭제가 가능하도록 결정된 것이며 학교 의견을 충분히 고려한 사항”이라고 설명했다. 

일각에선 실제 학교생활을 하고 있는 학생들의 목소리가 매우 부족하다는 비판이 나온다. 사건의 당사자는 가해학생과 피해 학생인데, 어른들끼리 이를 해결하는 것은 무리라는 주장이다.
 

가해학생의 낙인을 우려해 조치사항 삭제를 논하려면 가장 먼저 학생의 눈높이에서 조치사항을 다시 신설해야 하고, 잘못에 대해 제대로 된 처벌이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많다. 가해학생의 진심 어린 반성, 피해자에게 사과하는 모습과 피해 학생과의 합의가 있어야 조치사항의 삭제를 논할 수 있다는 지적이다. 

반면, 가해학생이 아직 어리기 때문에 기회를 줘야 한다는 의견도 있다. 어려서부터 죄인으로 낙인이 찍히면 사회에 진출하기 어려울 것이라는 반응이다. 가해학생이 개선 의지를 보이면 새로운 기회를 부여해야 한다는 것이다. 

2019년 학교폭력 사건 처리 절차 및 과정 실태조사 관련 설문에서 생기부서의 학생의 선도 조치사항 삭제 관련 문항에 전체 학생 중 73.8%가 삭제에 반대한다는 응답을 보였다.

이상한 규정

학교폭력에 대한 조치는 지금도 크게 달라진 점이 없다. 조항, 규정의 신설 및 위원회 구성은 사건이 터진 뒤에야 논의된다. 학교폭력을 근절하겠다는 말만 반복하는 현실이다. 지금 이 순간에도 피해 학생은 학교폭력으로 인한 피해를 누구에게도 말하지 못하고 혼자 감내하고 있다. 가해학생의 앞날만 우려하고 상처 입은 피해 학생을 위한 장치와 제도를 제대로 마련하지 않으면 같은 일이 반복될 것이라는 우려 섞인 시선이 많다. 


<ckcjfdo@ilyosisa.co.kr>


<기사 속 기사> 학폭 해결되지 않는 이유

그동안 학교는 자체 심의위원회를 통해 사건 처리를 했지만, 교사의 과한 업무 부담으로 자체적 해결이 어렵다는 비판이 많았다.

결국 지난 2020년 3월 학교폭력 예방 및 대책을 위해 교육지원청마다 ‘학교폭력대책심의 위원회(이하 학폭위)’가 결성됐다.

교사, 학부모, 전문가 등으로 위원회를 구성해 학교폭력을 근절하자는 목적을 가지고 교육청으로 상향 이관됐지만, 여기에도 여전히 비판적 시각이 다수다. 

조치사항은 여전히 삭제 가능하고 기구의 실효성에 대한 의문도 많다. 학교폭력 문제를 해결할 외부 전문가가 부족하기 때문이라는 지적이다. 


강득구 의원실이 조사한 2020년 시도별 학폭위 위원 구성 현황'에 따르면 전국 177개 교육지원청의 학폭위 위원으로 위촉된 5232명 중 부모가 2079명으로 전체 위원 비율 중 37.6%를 차지했고, 교원 19%, 경찰 12.6%다. 

의사, 교수, 연구원, 활동가 등 전문가 집단 비율은 10%보다 적다. 그중 학교폭력 전문의 교수와 연구원은 1.2%, 의사는 0.7%, 청소년 보호활동 전문가 비율은 6.3%에 그쳤다.

이런 현실에 강 의원은 “청소년 전문가가 부족하기 때문에 학교폭력이 해결되지 않는다”며 “외부 전문가 참여를 더욱 확대해 학교폭력을 근절해야 한다”고 전문가 참여의 필요성을 강조했다. <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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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약 수사 외압’ 의혹 산으로 가는 속사정

‘마약 수사 외압’ 의혹 산으로 가는 속사정

[일요시사 취재1팀] 오혁진 기자 = 마약 수사 외압 의혹이 제기된 지 2년이 지났다. 대통령실과 검찰이 어떻게 개입했는지는 구체적으로 드러나지 않았다. 유통·공급책들의 진술도 뒤집혔다. 백해룡 경정이 제기한 의혹이 과도했던 게 아니냐는 지적이 나오는 이유다. 사건에 연루된 세관 직원들도 수년간 겪은 억울함을 주장하고 나섰다. 사건은 점점 미궁 속으로 빠지는 분위기다. “거짓말할 사람은 아닌데….” <일요시사>와 만난 한 경찰의 말이다. 그는 2년 전 서울 영등포경찰서 형사2과장이던 백해룡 경정과 마약 사건을 수사했다. 필로폰 74kg이라는 역대급 성과를 내 기뻐하던 수사팀의 분위기는 침울하다. 실제 누가 외압을 행사했고 개입했는지 의구심을 가지는 경찰도 많았으나 이제는 아니다. 과도한 의혹? 백 경정은 지금까지 마약 수사 외압 의혹 사건이 벌어진 원인으로 윤석열정부 대통령실과 검찰을 지목했다. 직접 노만석 전 검찰총장 권한대행과 통화했던 녹취를 언급하면서 검찰이 사건 수사에 외압을 행사했다고 주장했다. 당시 백 경정 수사팀에 지휘권이 없는 인사들이 수차례 연락을 취한 점은 석연치 않은 대목이다. 대장동 항소 포기 사태와 비교해보면 ‘압력을 넣었다’는 맥락은 일치하지만 누가 압력을 행사했고 어떻게 대통령실과의 접촉 등이 이뤄졌는지는 드러나지 않고 있다. 두 사건 모두 용산이 개입한 게 아니냐는 의혹에 그치고 있다. 백 경정 팀의 수사에 허점이 있던 걸까? 백 경정이 지휘한 영등포서 마약수사팀이 말레이시아 조직의 마약 유통 과정을 들여다봤던 건 2년 전이다. 당시 수사팀은 “세관의 협조가 있었다”는 취지의 진술을 확보하고 믿을 수 없었다. 당시 수사팀에 합류했던 한 경찰 관계자는 <일요시사>에 “허위 진술이 아니냐고 의견을 개진한 사람도 있었으나 진술이 상당히 구체적이었고, 진술한 당사자가 허위로 진술할 이유도 없었다”고 말했다. 수사팀은 조직원을 데리고 진술 검증을 위해 직접 공항을 찾아가 현장 조사에 나섰다. 조직원들은 공항에서 자신들이 들어온 과정을 상세하게 설명했고 지원해준 세관 직원들의 얼굴까지 기억했다. 이들은 말레이시아 마약 조직 총책이 미리 준비해둔 옷을 입게 한 뒤 사진을 찍으며 “한국에 있는 보스에게 보내면 사진이 세관에 전달돼 세관 직원들이 옷을 보고 너희를 찾을 것”이라고 말했다고 한다. 실제 한국 세관 직원 2명의 사진을 위챗 채팅방에 올렸다. 조직원들은 총책의 말을 믿고 온몸에 마약을 감은 채 말레이시아 쿠알라룸푸르 공항으로 향했다. 출국 심사는 순조로웠다. 아무런 제지 없이 2023년 1월27일 인천공항에 도착할 수 있었다. 조직원들은 공항에서 세관 직원이 손을 흔들며 인사했고, 이들의 안내를 받아 입국장으로 향했다고 한다. 이들이 탄 대한항공 항공편은 ‘일제 검역’ 대상으로 지정돼있었다. 반드시 검역구역을 통과해야 했는데 세관 측의 도움으로 검역을 거치지 않고 세관 구역으로 빠져나오는 게 가능했다. 영등포서 마약수사팀 의견 통일 안 돼 운반책들 “세관 도움 없었다” 주장 번복 조직원들과 현장 조사까지 마친 수사팀은 세관에 대한 대대적인 수사에 나섰지만 관세청은 반대했다. 마약 조직의 허위 진술이라고 판단한 관세청은 영등포서의 브리핑에서 세관이 언급되는 걸 막으려 했던 건 사실이다. 관세청에 따르면 공항에서 말레이시아 유통책들에게 먼저 말을 건네고 이들을 인솔한 혐의를 받는 세관 직원의 경우 입국 당일 연차를 사용 중이었다. 관세청은 그의 GPS와 사진 기록 등을 토대로 실제 다른 지역에 있었음을 객관적으로 확인했다고 한다. 수사팀은 조직원들과 세관 직원들의 금전거래 여부를 확인하기 위해 서울남부지검에 압수수색영장을 신청했으나 “대가를 주고받았다는 구체적 진술이 없다”는 이유로 기각됐다. 수사팀은 “마약 유통책들은 하부 조직원들에 불과해 조직 총책과 세관 직원들 사이 대가 관계를 구체적으로 진술할 수 없다”고 반발했다. 수사팀은 다른 가족 명의로 돈을 받을 가능성이 크기 때문에 계좌를 폭넓게 들여다봐야 한다고 봤다. 백 경정은 과거 <일요시사>와의 인터뷰에서 “수사팀이 압수한 마약 총량은 74kg이다. 시가로 2000억원이 넘고 필로폰 단일 적발 압수량으로는 다섯 손가락 안에 들 정도”라며 “서울경찰청 차원에서 ‘세관’이 언급되면 안 된다거나 관련 내용을 삭제하라고 했다”고 강조했다. 백 경정은 당시 서울경찰청 생활안전부장이었던 조병노 경무관과 통화하기도 했다. 조 경무관은 임성근 전 해병대 1사단장 구명 로비 창구로 의심받는 해병대 단톡방 멤버를 통해 인사 청탁한 의혹을 받고 있다. 또 도이치모터스 주가조작 사건 공범 이종호 전 블랙펄인베스트먼트 대표가 언급한 인물이기도 했다. 백 경정은 당시 전화 통화에서 “저도 수사만 하는 사람인데 뭘 알겠나? 수사만 하는 것인데 일하다가 (숨이) 턱턱 막히고 그런다”며 “들리는 얘기들이 ‘대통령실에서 알게 돼 심각하게 보고 있다’ 이런 얘기를 듣고 제가 심적 부담을 얼마나 느끼겠느냐”라고 말하자, 조 경무관은 “대통령실에서 또 연락이 왔나요?”라고 되물었다. 뒤집힌 분위기 백 경정은 같은 달 김찬수 전 영등포경찰서장이 전화를 걸어와 “이 사건 용산에서 알고 있다” “심각하게 보고 있다. 브리핑을 연기하라”고 지시했다고 주장했다. 김 전 서장은 이후 대통령실 행정관으로 영전하게 된다. 이 같은 여러 압박을 받은 백 경정은 결국 언론 브리핑을 앞두고 보도자료를 수정했다고 토로했다. 마약 수사는 주로 마약 유통·전달책의 첩보로 시작된다. 사정기관에 첩보를 제공하는 이들을 ‘야당’이라고 부른다. 이들은 형량 거래인 ‘플리바게닝’을 통해 허위 사실을 진술할 때가 있다. 베테랑 수사관들도 이들의 주장을 검증하다가 헛수고하는 경우가 적지 않다. 경찰 출신의 한 변호사는 “마약 수사에서 가장 어려운 게 물적 증거가 부족할 때다. 실제 검찰이든 경찰이 국정원의 첩보 또는 야당의 정보에 의존하다가 뒤통수를 맞는다”고 말했다. 실제로 백 경정팀에 “세관의 협조가 있었다”고 진술했던 운반책 3명은 최근 급작스레 진술을 뒤집었다. 이들은 검경 합동수사단 조사에서 “세관 직원이 밀수를 도운 적 없다” “오래된 사건이라 기억이 잘 나지 않는다”고 진술했다. 백 경정이 주장해온 의혹의 뿌리가 흔들린 셈이다. 서울동부지검에 구성된 합동수사단도 백 경정이 제기한 의혹을 재검증하고 있는 것으로 확인됐다. 백 경정 수사팀에 합류했던 한 경찰 관계자는 “마약 운반책들의 진술에 대해 조금 더 의심했어야 했다. 신중하지 못했던 것 같다”면서도 “그렇다고 백 경정의 판단이 100% 틀렸다고 볼 수도 없다. 수사 과정에서 수상한 부분이 많았던 건 사실 아니냐. 의혹이 말끔하게 해소됐으면 한다”고 했다. 마약 운반책들을 도왔다는 의혹을 받는 인천공항본부 세관 직원은 여러 명이다. 직원 대부분은 백 경정팀 수사에 적극적으로 대응하지 않았다. 우리가 마약 공범? 익명을 요구한 세관 직원 A씨는 <일요시사>에 “공황장애에 걸린 직원도 있고 확실하지도 않은 운반책들의 진술에 대해 ‘사실이지 않느냐’고 따져 묻는 경찰도 있었다. 그 자체가 우리가 범죄자라고 전제한 수사”라며 “2년이 지나도 나오는 게 없지 않나. 운반책들도 진술을 뒤집었다고 하는데 이젠 진상규명이 됐으면 한다”고 토로했다. 마약 운반책들은 백 경정팀 조사에서 세관 직원들이 공항 밖 택시 승강장까지 동행했다고 진술한 바 있다. 그러나 진술에서 언급된 날 지목된 세관 직원들은 공항 건물 밖으로 나갔다 오지 않았다고 한다. 실제 출입 기록에도 나오지 않는다. 세관 직원 안내로 바닥에 그려진 ‘그린 라인(초록색 줄)’을 따라 검사를 받지 않고 공항 밖으로 나왔다는 진술에도 의심이 필요하다. 다른 세관 직원 B씨는 “운반책들이 2023년 1월에 그린 라인을 따라서 공항 밖으로 나갔다고 하는데 그린 라인은 그해 5월에야 생겼다. 조금만 유심히 들여다보고 수사했다면 운반책들의 진술 중 거짓말이 있다는 걸 알았을 것”이라고 주장했다. 관세청 측은 “마약 조직들이 운반책을 안심시키기 위해 세관 직원을 포섭해 놨다고 거짓말하는 경우가 많다”고 밝혀 왔다. 유엔 국제마약통제위원회(INCB)도 “부정부패에 대한 허위 증언이 마약 단속 공무원에 대한 신뢰를 떨어뜨리고 범죄 단속을 위한 노력을 무력화할 수 있다”고 경고한다. 다만 수사가 진행되자 일부 세관 직원이 휴대전화를 여러 번 초기화한 이유는 오리무중이다. 한 경찰 관계자는 “그때 수사했을 때 직원 폰을 압수해 분석했는데 초기화된 걸 확인했었고 과거 자료가 전혀 없는 상태였다. 해당 직원은 직접 초기화한 후 사설 포렌식 업체에 찾아가 복구가 가능한지 확인하기도 했다”며 “사생활과 관련된 영상이 있다면서 휴대전화를 초기화했다고 주장하다가 세관과 관련된 인사에 대한 의전 영상이 있다면서 말을 바꿨다”고 했다. 이 관계자는 “세관이 마약 운반책들을 뒤에서 은밀하게 도왔다는 의구심이 강할 수밖에 없었던 이유다. 그 상황에 누가 의심을 안 하겠나”고 강조했다. 세관 직원들 “2년간 범죄자 취급···억울” 휴대전화 초기화는? 수상한 점 여전히 존재 백 경정의 합수단 파견은 본래 지난 14일까지였다. 그러다 전날인 13일, 경찰청은 서울동부지검 합동수사단에 파견된 백 경정의 파견 기간을 돌연 2개월 연장했다. 내년 1월14일까지로 늘린 것이다. 앞서 동부지검은 지난 10일과 12일 두 차례에 걸쳐 대검찰청에 백 경정 파견의 연장과 관련해 협의를 요청한 바 있다. 대검찰청은 동부지검의 요청을 검토한 뒤 경찰청에 연장을 요청했다. 동부지검은 백 경정을 팀장으로 한 별도의 수사팀을 구성했고 본인과 관련 없는 사건을 수사하도록 전결권을 부여했다. 그는 합수단에 합류한 지 약 한 달 만인 이날부터 형사사법정보시스템(KICS·킥스) 사용 권한을 받아 본격 수사에 착수했다. 하지만 백 경정의 바람도 그리 오래가진 못했다. 수사관 4명 중 2명이 원대 복귀했고 인원은 충원되지 않고 있는 형국이다. 백 경정은 “두 사람이 파견 기한 만료 전 복귀 의사를 밝혔는데, 파견 만료로 원대 복귀됐다”고 밝혔다. 이들은 백 경정에게 “개인 사정이 있어 파견을 이어가기 어렵다”고 한 것으로 전해졌다. 백 경정은 “계속 수사에 차질을 겪어 왔다. 검찰은 압수수색에 스무명이 넘게 나가는 상황에서 남은 3명이 수사를 이어가겠나”라며 “팀을 꾸렸으면 적어도 수사가 이뤄질 수 있도록 구성은 갖춰줘야 하는 것 아니냐”고 반문했다. 동부지검 관계자는 “어렵게 파견 인력을 확보했었다”면서 “백 경정의 충원 의사를 대검에 전달했지만 인력은 보내는 쪽인 경찰에서 결정할 문제”라고 말했다. 백 경정과 동부지검 간 갈등은 끝나지 않는 모양새다. 백 경정은 최근 14일 A4 용지 12장 분량의 자체 보도자료를 만들어 개인 명의로 배포했다. 그는 “형사사법정보시스템(KICS) 사용 권한을 받았고 파견도 2개월 연장됐다”면서 “조만간 사건번호를 생성해 수사에 착수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그는 자신이 주도할 수사 범위에 ▲세관 마약 연루 의혹 ▲검찰의 마약 밀수 사건 은폐 ▲대통령실과 경찰 지휘부의 수사 외압 의혹 등을 포함한다고 했다. 이 중 수사 외압 의혹은 합수단 지휘 책임이 있는 임은정 서울동부지검장이 지난달 파견 온 백 경정에게 별도 수사팀을 내줄 당시 수사 대상에서 제외한 분야다. 공중분해 위기 지속 영등포경찰서에서 세관 연루 의혹을 캐던 백 경정이 스스로 외압 피해자라 주장하며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이하 공수처)에 경찰 지휘부 등을 고발한 사건이라 직접 수사하면 공정성 논란이 불거질 우려가 커서다. 동부지검은 백 경정의 보도자료에 대해 “우리와 협의한 내용이 아니며 기존 수사 범위에서 변화가 없다”고 강조했다. 동부지검 관계자는 “공직자 이해충돌방지법상 경찰도 자신과 이해관계가 얽힌 사건은 회피하도록 규정돼있다”며 “자신이 당사자인 사건은 수사할 수 없다”고 강조했다. <hounder@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