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천데이트폭력 사건 심층취재>③ 심영섭 DCU 상담심리학과 교수의 사건 분석

  • 최현목 기자 chm@ilyosisa.co.kr
  • 등록 2020.12.07 10:16:48
  • 호수 1300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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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존자를 죽일 수 있다”

[일요시사 취재2팀] 최현목 기자 = 부천데이트폭력 생존자는 사건 이전의 자신으로 돌아가기 위해 필사적이다. 심리상담은 그런 생존자가 잡을 수 있는 ‘지푸라기’이자, 사건의 원인을 밝혀줄 ‘열쇠’다. 지난달 21일 오후 4시 서울 ‘상담센터 사이’에서 심영섭 대구사이버대학교(DCU) 상담심리학과 교수의 주재로 진행된 생존자와의 상담에 <일요시사>는 관찰자로 참석했다. 본 상담의 내용은 생존자와 상담자 양쪽의 동의를 얻어 공개함을 밝힌다.
 

▲ ▲일요시사와 인터뷰 갖고 있는 심영섭 대구사이버대학교 상담심리학과 교수

부천데이트폭력 사건은 지난 2018년 10월초 생존자 김가은(가명)이 가해자 강정준(가명)으로부터 자신의 집에 한 달 동안 감금된 채 폭언·협박·폭행·성폭행 등을 당한 사건이다. 김가은은 세 차례 시도 끝에 탈출에 성공했고, 검거된 강정준(이하 가해자)은 유사강간 등의 혐의로 징역 2년6월, 강간 혐의로 징역 1년6월 등 총 4년형을 선고받고 복역 중이다.

적반하장 
민사소송

사건이 있은 지 2년이라는 시간이 지났지만, 김가은은 여전히 트라우마에 시달리며 사건 이전의 삶으로 돌아가지 못하고 있다(기사 참조: 부천데이트폭력 사건 심층취재① 지옥에서의 30일, http://www.ilyosisa.co.kr/news/articleView.html?idxno=223363).

김가은(이하 생존자)에 대한 심리상담은 취재진과의 인터뷰 일정보다 약 1시간30여분 먼저 시작됐다. 생존자는 속마음을 털어낸 듯 눈물을 훔치며 취재진이 배석한 장소로 자리를 옮겼다. 생존자에 대한 상담은 재판 부분에서 이어졌다. 눈물을 닦아낸 생존자는 분노하기 시작했다.

‘적반하장’이라는 단어는 취재진이 배석한 이후 상담 과정에서 가장 많이 언급된 단어다. 1시간 동안 총 8번 언급됐다. 약 8분당 1번꼴이다. 8번 모두 재판과 관련한 상황을 설명할 때 사용됐다.

생존자는 가해자에 대한 민사소송을 진행하고 있다(기사 참조: 부천데이트폭력 사건 심층취재② 끝나지 않은 악몽, http://www.ilyosisa.co.kr/news/articleView.html?idxno=223371). 생존자는 지난달 11일 변론기일에 직접 참관했다. 그리고 가해자의 진술을 들었다.

생존자는 이 과정에서 손이 떨리고 심장이 미칠 듯이 뛰는 경험을 했다고 털어놨다. 혹시나 자신의 뒷모습이라도 보일까 봐 재판이 끝나는 순간 화장실로 숨어들었다. 생존자는 그때 가장 극심한 불안 증상을 겪었다고 밝혔다.

상담을 주재한 심영섭 DCU 상담심리학과 교수는 이를 ‘프리즈 리스폰스(freeze response, 어떤 대상을 목격하거나 떠올릴 때 신체적·정신적으로 얼어붙는 현상)’라고 진단했다.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의 전형적인 증상 중 하나다. 다음은 상담 후 심 교수가 밝힌 생존자의 현재 상태다.

“전형적인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를 겪고 있습니다. 침습적 사고도 강렬하고요. 성격변화도 보입니다. 꿈으로 사건을 재경험하는 일도 겪고 있습니다. 프리즈 리스폰스라고 해서 가해자를 생각할 때 얼어붙어서 말이 안 나오는, 데이트폭력에 의한 전형적인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를 겪고 있는 상태라고 보면 됩니다.”

‘병리적 구타’ 소견…동물학대도
사이코패스와 달라, 차이점은?

‘침습적 사고’는 원치 않는 기억이 계속 떠오르는 현상을 뜻한다.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로 겪는 증상 중 하나다. 침습적 사고는 사고 주체의 행동에도 영향을 미친다. 생존자는 상담 중간에 고민이 있다고 털어놨다. 사건 이전과 달리 행동을 해야할 때 주저하게 된다는 고민이었다. 생존자는 그런 자신이 너무 답답하다고 말했다. 대표적으로 생존자는 가해자에 대한 추가 고소를 생각하고 있지만, 정작 행동으로 옮기지 못하고 있는 자기 자신을 납득하지 못하고 있었다.

“데이트폭력 생존자들은 다양한 증상들을 경험합니다. 처음에는 굉장히 위축돼있어요. 화조차도 못 내죠. 그러다가 세월이 흐르면 극심한 분노에 시달리기 시작합니다. 자괴감이 들거든요. 그 다음 단계는 굉장한 좌절감을 경험하게 됩니다. 극단적으로는 알코올 중독과 자살시도로까지 이어집니다.”

생존자는 데이트어플로 가해자를 알게 됐다. 유튜브 방송을 보던 중 호기심에 데이트어플을 시작했다. 가해자를 처음 만났을 때 생존자는 무섭다는 느낌은 받지 못했다고 회상했다. 첫인상이 조금 강해 보이긴 했지만, 평범한 20대 남성의 모습이었다. 심 교수는 이 사건에서 데이트어플이 ‘판타지’를 양산한다고 설명했다.

“생존자는 우연에 의해서라도 이성과 뭔가 다른 친밀한 관계를 맺을 가능성을 찾고 싶어 했던 것 같습니다. 생존자는 근본적으로 행복하게 가정을 이루고 좋은 남성에게서 보호받고 싶은 강한 욕구를 갖고 있습니다. 그런 욕구는 생존자의 아주 깊은 결핍에 기인합니다.”

생존자는 편모 가정에서 자랐다. 그런 생존자에게 외삼촌은 실질적인 아버지였다. 외삼촌은 어린 생존자에게 “친아빠처럼 생각하라”고 말했다. 고학력자인 외삼촌은 생존자에게 아버지이자 롤모델이었다. 생존자는 스스로 자기계발 욕구가 크다고 말했다. 공부하다가 궁금한 점이 있으면 논문을 찾아볼 정도로 학구적 성향을 보인다. 

“생존자는 외삼촌의 영향으로 남성에 대해 기본적으로 좋은 이미지를 갖고 있습니다. 학용품을 사주고 같이 장난도 치는 외삼촌을 보면서 자란 생존자가 남성을 경계하기는 힘들었을 겁니다.” 

그러나 가해자와의 만남은 생존자의 삶을 나락으로 떨어뜨렸다. 가해자가 폭력적 성향을 드러내기 시작한 시점은 생존자의 집에 눌러 살기 시작한 바로 그날부터였다. 그때부터 생존자는 탈출하기까지 약 한 달여 동안 최소 14회 이상 상습적으로 구타당했다. 폭력은 날이 갈수록 심해졌다. 맥주 잔, 청소기 봉대 등 손에 잡히는 모든 것이 무기가 됐다. 심 교수는 가해자가 ‘병리적 구타’ 성향을 갖고 있다고 분석했다. 

“가해자는 ‘패솔로지컬 배터러(pathological batterer, 병리적 구타자)’의 특성을 많이 갖고 있습니다. 단순히 욱하는 성격이 아니에요. 이런 사람들은 자기 분노조절이 전혀 안 돼요. 분노조절이 안 되면 계속 구타를 해야 하고요. 구타를 하는 행위 안에서 자신의 자존감이 회복되는 기이한 경험을 합니다. 보통의 사람들은 시험에 합격한다거나, 유능한 일을 할 때 자존감을 회복하잖아요? 그런데 병리적 구타 성향을 보이는 사람들은 구타라는 행위로 자신의 자존감을 회복합니다.”

침습적 사고
계속 떠올라

가해자의 폭력적 성향은 비단 생존자만을 향하지 않았다. 가해자는 생존자의 집에 눌러앉기 시작하고 얼마 지나지 않아 강아지 두 마리를 데려왔는데, 그 강아지들에게도 폭력을 행사하기 시작했다. 

생존자의 말에 의하면, 가해자는 강아지들을 귀여워하다가도 자신에게 조금이라도 으르렁거리면 미친 듯이 때렸다고 한다. 강아지들은 겁에 질려 오줌을 지렸다. 그 오줌을 치우는 일은 생존자의 몫이었다. 

동물학대 행위는 반사회적 인격장애인 ‘사이코패스’에게서 흔히 볼 수 있는 사례다. 그러나 심 교수는 병리적 구타자와 사이코패스 사이에는 분명한 차이점이 있다고 설명했다. 
 

“둘 모두 성격장애이긴 하지만, 분명한 차이점이 있습니다. 사이코패스는 살인을 유희처럼 즐깁니다. 자신이 신처럼 누군가의 생사를 앗아가는 것에 흥분을 느낍니다. 병리적 구타 증상은 열등감을 바탕으로 한 의심과 집착 증상을 보입니다. 그래서 상대적 약자에게 폭력을 행사해 자기 자신을 확인하려 들죠. 이춘재와 같은 사이코패스 계열이 살인을 목적으로 여성에게 접근하는 반면, 가해자와 같은 병리적 구타 계열은 자신보다 사회적 지위가 높은 신체적 약자를 길들이는 것을 목적으로 합니다.”

심 교수는 의심과 집착을 데이트폭력의 전조증상으로 꼽았다. 가해자는 생존자에게 카카오톡 메시지가 올 때마다 휴대폰을 확인하는 등의 집착을 보였다. 전화가 오면 자신의 옆에서 스피커폰으로 통화하라고 강요했다. 가해자는 혹시나 생존자에게 다른 남자로부터 연락이 오는지 지속적으로 의심했다. 

“처음에는 나에게 엄청 관심이 많다고 느낄 수 있습니다. 그러나 이는 사랑에 의한 관심과는 다릅니다. 현실을 왜곡해서 지나친 관심을 보이는 비합리적 행위가 전조증세입니다. 이때 빨리 관계를 끊어야 합니다.”

가해자는 의심과 집착 외에도 여성 혐오적 발언을 멈추지 않았다. 생존자는 가해자가 강아지들을 구타한 후 “이래서 옛말에 여편네랑 개XX는 하루에 한 번씩 매질이 필요하다는 말이 있는 거다”라고 말했다고 한다. 생존자를 구타하면서도 가해자는 “이 시간에도 자기 남편한테 맞아서 죽어가는 X들이 많을 거다. 내가 한국 남자의 진짜 무서움을 보여줄게”라고 위협했다.

이는 평소에도 마찬가지였다. 생존자의 표현을 빌리자면 “매일 ‘김치녀’ ‘한녀’가 문제다”라는 말을 입에 달고 살았다. 두 표현 모두 한국 여성을 비하하는 목적으로 사용되는 인터넷 신조어다. 

관심과 집착
구분부터 해야

가해자는 생존자가 눈을 마주치지 않을 때면 구타의 강도를 높였다. 그러면서 “프랑스에서 사귀었던 외국 여자들은 눈을 내리깔지 않았다”는 말을 반복했다. 대학에 진학하지 않은 가해자는 평소 자신이 프랑스 유학파라는 점을 생존자에게 유독 강조했다고 한다. 심 교수는 이를 합리화의 전형이라고 봤다. 

“생존자를 때릴 때 ‘김치녀’ ‘한녀’ 같은 단어들을 사용하는 것은 가해자가 문화적인 투사, 합리화를 하는 것뿐입니다. 어느 문화권에서든 병리적 구타 증상을 보이는 사람은 존재합니다. ‘프랑스에서 사귀었던 외국 여자들은 눈을 내리깔지 않았다’고 말하는 것은 때릴 이유를 찾는 것뿐입니다. 합리화죠. 때릴 때 눈을 마주치게 하는 점은 단지 상대가 너무 쉽게 풀이 죽거나 위축되면 재미가 없어서예요. 이런 사람들은 자신과 대등한 사람을 제압했다고 생각할 때 더욱 큰 희열을 느낍니다.”

생존자는 가해자가 폭력을 휘두를 때 저항도 해봤다고 토로했다. 막기도 하고 소리도 질러봤다. 그러나 돌아온 것은 더욱 심한 폭력이었다.

“일반적인 사람들이 봤을 때는 이해할 수 없을 겁니다. ‘소리 지르고 반항하면 안 때릴 것 아니냐’는 식으로 말할 거예요. 그러나 때리는 이유를 찾는 사람에게 저항은 진정한 해결책이 아닙니다. 가해자는 계속 합리화하며 ‘가스라이팅’을 했습니다.”

가스라이팅은 타인의 심리나 상황을 교묘하게 조작해 그 사람이 스스로 의심하게 만듦으로써 타인에 대한 지배력을 강화하는 행위를 의미한다. 가해자는 생존자를 만나기 이전에도 여자친구에게 폭력을 휘둘렀다. 생존자가 취재진에게 보여준 가해자의 이전 여자친구 편지에는 “이제는 때리지 않아줘서, 점점 노력해줘서 고맙다”는 문구를 확인할 수 있다. 심리학에서는 이를 ‘인지적 노예화’라고 칭한다.

“인지적으로 노예가 될 때까지 계속해서 여러 가지 이야기를 합니다. 이야기의 핵심은 ‘그래서 넌 맞을 만하다. 그래서 나는 때려야 한다’입니다. 때리고 맞는 것에 관한 합리화를 세뇌 수준으로 반복하죠. 그 밑바닥에는 열등감과 피해의식이 자리하고 있습니다. 예를 들어 아내를 때리는 남편이 ‘너만 없었으면 내가 성공했을 텐데, 너와 결혼해서 내가 이 모양 이 꼴로 산다’고 말하는 식입니다.”

전조 증상은 의심·집착
‘여성 혐오’ 성향도 보여

가해자는 폭력을 사용하는 와중에도 생존자에게 끊임없이 애정을 갈구했다. ‘여보’ ‘자기’ 같은 호칭은 물론이고, 구타 후에 “볼에 뽀뽀를 해달라”고 졸랐다. 이는 가해자가 상습특수상해 및 강간 혐의 등으로 징역 4년형을 선고받은 후에도 계속됐다. 가해자는 수감 중에도 생존자에게 수백 통의 편지를 보냈다. 내용은 연애편지를 방불케 한다.

“가해자가 마치 생존자와 결혼한 듯이 행동한 일은 폭력에 덧씌워진 ‘당의정(불쾌한 맛이나 냄새를 피하고 약물의 변질을 막기 위하여 표면에 당분을 입힌 정제)’이라고 보면 됩니다. 폭력은 굉장히 쓰잖아요. 그 쓴 맛을 못 느끼게 ‘사랑’이라는 달콤한 말로 코팅을 하는 원리라고 보면 됩니다. 절대 그 당의정이 가해자의 진심이라거나 나에 대한 일말의 애정이라고 생각하면 안 됩니다. 가해자가 폭력을 정당화하고 유지하기 위한 수단일 뿐입니다.”

생존자는 형사재판 과정에서 가해자에게 합의서를 써주고, 가해자 측으로부터 소정의 합의금을 받았다. 합의서는 ‘형사상 합의했다’는 내용의 ‘처벌불원서’다. 반대로 가해자는 ‘폭력을 행사하지 않겠다’는 각서를 썼다.

“생존자가 당시 합의서를 써주는 과정에 가스라이팅이 영향을 미쳤을 가능성이 매우 높습니다. 데이트폭력 사건에서 많이 일어나는 일입니다. 가해자는 사랑이라는 단어로 합리화해 생존자에게 ‘구원자 콤플렉스(어려움에 처한 누군가를 돕고자하는 심리상태를 일컫는 심리학적 용어)’를 자극합니다. ‘절대 안 때리겠다. 나는 개과선천했다’라는 식으로 가스라이팅하고, 그 말을 믿고 싶은 데이트폭력 생존자들은 마음을 누그러뜨려 합의서를 써주게 됩니다.”

가해자는 유사강간 등에 대한 재판이 끝난 후 돌변했다. 생존자와의 접견 과정에서 가해자는 “밖에 나가면 너를 죽여버리겠다”며 살인예고를 한 상태다. 생존자는 합의서를 써준 일을 후회하고 있다.

“병리적 구타 증상을 보이는 사람들은 실제로 살인을 할 확률이 꽤 있습니다. 너 때문에 내가 전과자가 됐다고, 내 인생이 망했다고 생각할 겁니다. 이 가해자 역시 2차 가해를 하거나 생존자를 살해할 가능성이 있습니다. 이 점을 굉장히 심각하게 생각해야 합니다. 특히 사법부와 경찰 쪽에서요.”

생존자는 미래를 그려볼 수 없는 상황이다. 가해자가 생존자의 명의로 약 2000만원을 대출받아 신용불량자로 전락했다. 이로 인해 채용이 취소되는 일도 겪었다. 생존자의 커리어는 한순간에 무너졌다. 생존자는 가해자를 만나기 이전으로 돌아갈 수 없다는 생각에 불안하다. 상담 과정에서 막막한 현실 속에 자신이 어찌해야 할지 모르겠다고 털어놨다. 생존자는 스스로에게 강한 압력을 가하고 있었다. 

피해의식
도 넘어

“생존자의 자아정체성 중에서 ‘커리어’가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하고 있습니다. 제대로 된 보살핌을 받지 못하는 환경에서 자란 생존자에게 스스로 문제를 해결하며 쌓아온 커리어가 매우 중요한 수단이자 위안이었던 것 같습니다. 그래서 커리어가 좌절됐다는 느낌이 생존자를 가장 고통스럽게 하는 근원으로 보입니다.”

생존자는 이전의 삶으로 돌아갈 수 있을 것인가.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를 극복하기까지는 수년의 시간이 필요하다고 한다.  

“몇 년의 시간이 걸립니다. 감기나 바이러스처럼 금세 낫지 않아요.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는 기억을 불로 지진 듯이 사건을 각인해 기억해두는 것입니다. 뇌가 스스로를 보호하기 위해 기억을 각인시켰다고 보면 됩니다. 우울증처럼 뇌의 생화학적 변화 때문에 일어나는 증상이 아니라 때론 구조적 변화까지도 동반합니다. 그래도 다행인 점은 생존자의 자아 강도가 높아 이 문제를 해결할 힘을 지녔다는 사실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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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독> 설계사 발목 잡는 ‘포괄양수도’ 함정

[단독] 설계사 발목 잡는 ‘포괄양수도’ 함정

[일요시사 취재1팀] 안예리 기자 = 보험설계사가 회사를 떠나더라도 자신이 모집·관리해 온 고객의 보험계약을 함께 옮길 수 있도록 해주겠다는 이른바 ‘포괄양수도’. 한 대형 보험대리점 산하 조직이 설계사를 영입하는 과정에서 퇴사 시 기존 관리계약을 양수도 방식으로 이관해 주겠다는 내용의 약정서를 작성했다. “나가도 기존 계약을 가져갈 수 있다”는 약속은 실제로 지켜질 수 있었을까. 보험설계사가 회사를 옮길 때 자신이 기존 회사에서 모집·관리하던 보험계약을 새 소속에서도 계속 담당할 수 있도록 넘겨받는 것을 업계에서는 흔히 ‘포괄양수도’라고 부른다. 설계사 입장에서는 이직 이후에도 기존 고객을 계속 관리할 수 있고, 계약 유지에 따라 발생하는 수수료 문제와도 연결될 수 있어 소속을 옮길 때 중요한 조건으로 꼽힌다. 양수도 약속 실행 미지수 다만 보험계약 자체가 설계사의 소유물인 것은 아니다. 보험계약의 당사자는 보험회사와 보험계약자이고, 보험설계사는 고객에게 상품을 설명하고 계약 체결을 중개한 대가로 보험사나 법조인보험대리점(GA)으로부터 약정된 수수료를 받는 구조다. 따라서 설계사가 자신이 모집한 계약에 대해 법적인 ‘소유권’을 갖고 있어 회사를 옮길 때 자유롭게 가져갈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예를 들어 한 설계사가 한 법인보험대리점에서 근무하면서 고객 100명의 보험계약을 모집했다고 가정해 보자. 설계사가 회사를 그만두고 다른 보험대리점으로 옮긴다고 해서 고객 100명의 보험계약이 자동으로 설계사를 따라 움직이는 것은 아니다. 보험계약 자체는 기존 보험사와 고객 사이에 그대로 유지되고, 설계사가 퇴사하면 기존 회사가 해당 계약을 관리하거나 다른 설계사를 담당자로 지정할 수 있다. 반대로 기존 회사와 설계사 사이에 계약 이관에 대한 합의가 있다면 상황이 달라질 수 있다. 설계사가 새 보험대리점으로 이동한 뒤에도 자신이 모집했던 계약을 계속 담당할 수 있도록 기존 회사에서 새 회사로 관리관계를 옮기는 절차를 밟을 수 있다. 이 과정에서 기존·신규 보험대리점 간 협의와 수수료 정산, 보험사 전산상 담당자 변경 등 실무적인 절차가 뒤따를 수 있다. 중요한 점은 이 같은 계약 이관을 보험업법 등이 일률적으로 보장하거나 금지하고 있지는 않다는 것이다. 보험설계사의 이직에 따른 계약 이관을 직접 규율하는 법령이 없어, 실제로 계약을 넘겨줄지 여부는 기본적으로 보험대리점과 설계사 사이의 계약이나 합의에 따라 결정되는 영역으로 해석된다. 설계사 영입 ‘계약 이관’ 약정 본사는 양수도 불허…엇갈린 방침 이 때문에 보험대리점이 설계사를 영입할 당시 “향후 다른 회사로 옮기더라도 기존 계약을 이관해 주겠다”고 약속했다면 해당 약정이 중요해진다. <일요시사> 취재에 따르면 인카금융서비스 내 인카다이렉트 산하 사업단은 설계사를 영입하는 과정에서 향후 퇴사할 경우 기존 관리계약을 양수도 방식으로 이관해 주겠다는 내용을 약정서에 담았다. <일요시사>가 확보한 ‘인카금융서비스(주) 사업단 부속 약정서’에는 인카다이렉트 사업단과 설계사 김모씨 사이의 구체적인 계약 조건이 적혀 있다. 눈에 띄는 것은 퇴사 이후의 계약 처리 방식이다. 약정서에는 “조직의 이동(퇴사) 시, 전체 관리계약의 양수도 조건으로 원활한 계약 이관 조치한다”고 명시돼있다. 설계사가 향후 조직을 떠나더라도 기존에 관리하던 계약을 이관할 수 있도록 하겠다는 취지다. 계약 이관뿐 아니라 퇴사 이후 남아 있는 수수료에 대한 내용도 포함됐다. 약정서에는 조직 이동 또는 퇴사 시 “미정산 잔여 유지수수료는 월지급 또는 퇴사 시점부터 1년이 되는 시점에 정산해 지급한다”고 적혀 있다. 영입 당시 지급 수수료율과 일부 시책 등 구체적인 보상 조건도 함께 약정됐다. 앞서 작성된 또 다른 부속 약정서에서도 비슷한 내용이 확인된다. 해당 문서 역시 조직 이동 또는 퇴사 시 전체 관리계약을 양수도 조건으로 이관하고, 남은 유지 수수료를 별도로 정산하도록 했다. 그런데 이 약정에서 한 가지 의문이 생긴다. 설계사에게 계약 이관을 약속한 주체는 인카금융서비스 본사가 아니라 인카다이렉트 산하 사업단이다. 인카다이렉트는 인카금융서비스 내에 편입된 영업 조직이다. 기존 다이렉트119가 인카금융서비스에 합병되면서 인카다이렉트라는 조직으로 편입됐고, 그 아래 다시 사업단과 본부 등 영업 조직이 구성돼있다. 계약 옮겨도 정산은 별개 앞서 김씨와 부속 약정을 체결한 사업단 역시 이 같은 인카다이렉트 산하 조직 중 하나다. 문제는 인카다이렉트 산하 사업단이 체결한 이 같은 약정이 인카금융서비스 본사의 방침과 맞아떨어졌느냐다. 인카금융서비스 본사는 지난 2024년 소속 조직에 포괄양수도를 허용하지 않는다는 취지의 방침을 전달했다. 김씨는 이후 본사의 방침과 자신이 체결한 약정 내용이 다르다는 사실을 알게 된 뒤 “본사에서는 안 된다고 하는 포괄양수도를 사업단이 어떻게 약정할 수 있는 것이냐”며 문제를 제기했다. 본사가 포괄양수도를 허용하지 않는다는 방침을 갖고 있었다면, 사업단이 설계사에게 향후 퇴사 시 전체 관리계약을 이관해 주겠다고 약정할 수 있었는지가 쟁점인 셈이다. 사업단 자체 판단만으로 계약 이관을 약속할 수 있었는지, 아니면 인카다이렉트나 인카금융서비스 차원의 권한이나 승인이 전제돼있었는지를 따져볼 필요가 있다는 것이다. 문제는 약정서에 ‘계약을 이관한다’고 적었다고 해서 실제 포괄양수도가 쉽게 이뤄지는 것은 아니라는 점이다. 계약을 넘기는 과정에서는 기존 소속 회사와 새로 옮길 회사, 보험사 등 여러 주체의 협의가 뒤따라야 하기 때문이다. 가령 한 설계사가 A법인보험대리점(GA)에서 B 대리점으로 옮기면서 기존에 관리하던 계약을 함께 가져가려 한다면, 우선 기존 GA가 해당 계약을 내보내는 데 협조해야 하고, 새 GA 역시 이를 받아 관리할 수 있는 상태여야 한다. 이후 실제 보험계약을 보유한 보험사 전산에서도 담당 조직이나 설계사 변경 등 필요한 절차가 이뤄져야 한다. 근저당 걸고 3년 만 이관 계약을 넘기는 과정에서는 돈 문제도 함께 정리해야 한다. 설계사에게 지급되는 수수료는 계약 체결 시점에 모두 끝나는 것이 아니라 유지 기간에 따라 나눠 지급되는 경우가 많다. 회사가 자체 재원으로 일부 수수료를 먼저 지급했거나 정착 지원금·시상금 등을 지급했다면, 퇴사 시 이를 어떻게 정산할지를 두고도 문제가 생길 수 있다. 실제 보험업계에서는 설계사가 다른 GA로 옮기는 과정에서 기존 소속 회사가 계약 이관에 협조하지 않아 분쟁으로 이어지는 경우도 반복돼 왔다. 계약 이관 여부를 일률적으로 정한 법적 기준이 없는 만큼, 기존 GA가 계약을 내보내지 않겠다고 판단할 경우 설계사가 이를 일방적으로 요구하기는 쉽지 않은 구조다. 기존 GA 입장에서도 계약이 빠져나가면 향후 해당 계약에서 발생하는 수수료 등 수익이 줄어들 수 있다. 설계사의 이직과 함께 기존 고객 계약까지 다른 회사로 넘어갈 경우, 회사가 관리하던 계약과 수익 기반을 함께 내주는 셈이어서 계약 이관에 소극적일 유인이 있다는 설명이다. ‘포괄양수도’가 가능하다고 해도 실제 진행은 쉽지만은 않다. 계약의 관리만 넘겨주는지, 남은 수수료까지 함께 정산하는지, 기존에 지급된 지원금이나 시상금에 환수 조건이 붙는지 등에 따라 설계사가 체감하는 조건은 크게 달라진다. 인카다이렉트 측 관리자들은 이와 관련해 포괄양수도가 불가능한 것은 아니라는 취지로 설명했다. 지난 8월 김씨와의 카카오톡 대화에서 한 관리자는 “인카다이렉트 양수도 100% 된다”며 “W금융이 대표적이고, 개인이든 지점이든 자신들이 계속분을 받기 위해 안 한 거지 원하는 분들 다 해드렸다”고 말했다. 이들의 설명대로라면 포괄양수도가 이뤄지지 않은 사례는 회사가 이를 거부해서가 아니라, 설계사나 조직이 기존 계약에서 계속 발생하는 수수료를 받기 위해 스스로 계약 이관을 선택하지 않은 경우라는 취지다. ‘100% 가능’ 철석같은 약속 실제 이관까지 절차 수두룩 하지만 <일요시사>가 확인한 W금융 측 설명은 달랐다. W금융 대표는 DM(다이렉트 메시지)에서 “포괄양수도를 받은 사실이 없다”고 전했다. “내가 과거 인카 측에서 해촉된 뒤 곧바로 포괄양수도를 받은 것은 아니”라고 설명했다. 인카다이렉트 측 설명처럼 퇴사와 동시에 기존 계약과 관련 권리가 한꺼번에 넘어온 것이 아니라, 해촉 이후 약 3년이 지나서야 기존에 관리하던 계약을 이관받았다는 것이다. 대표는 계약을 넘겨받는 과정에서도 별도의 조건이 뒤따랐다고 주장했다. 계약 이관 과정에서 근저당 설정 등의 부담이 있었고, 기존 계약에서 발생하는 유지 수수료 역시 충분히 정산받지 못했다는 설명이다. 다만 계약 이관을 어디까지 ‘포괄양수도’로 볼 것인지는 구분할 필요가 있다. 퇴사 이후 기존 계약 일부 또는 전부가 다른 회사로 이관됐다고 하더라도, 영입 당시 약속한 조건에 따라 즉시 계약과 잔여 수수료 등이 함께 이전된 것인지, 일정 기간이 지난 뒤 별도의 협의와 조건을 거쳐 이관된 것인지는 성격이 다를 수 있기 때문이다. 포괄양수도 사례로 W금융을 언급한 경위에 대해 당시 김씨와 대화를 나눴던 사업단 관리자에게도 확인을 요청했다. 해당 관리자는 <일요시사>와의 통화에서 “회사에서 전해 들은 내용을 그대로 전달했을 뿐”이라는 취지로 설명했다. 자신이 포괄양수도 가능 여부나 과거 사례를 직접 확인해 안내한 것은 아니라는 취지로 해석된다. 이후 A씨는 인카다이렉트를 떠나 같은 인카금융서비스 내 다른 조직으로 소속을 옮겨달라고 요청하는 한편, 포괄양수도 약정과 실제 운영 방식에 대한 문제를 SNS에 제기했다. 해당 내용이 알려지면서 논란이 커지자 인카다이렉트 측은 A씨의 게시물 등을 문제 삼았고, 결국 A씨는 ‘허위 사실 유포 및 회사 평판 리스크’ 등을 이유로 해촉 통보를 받은 상태다. 결국 문제는 인카다이렉트 산하 사업단이 설계사들에게 약정한 포괄양수도가 실제 100% 가능한 조건이었는지다. 또 본사의 방침과는 달리 ‘포괄양수도’에 대해 사업단이 자체적인 권한을 가지고 있는지도 쟁점이다. 방침 따로 약정 따로 인카다이렉트 측은 현재 회사 내부 규정상 설계사 퇴사에 따른 타사 계약 이관과 잔여 수수료 등을 일괄 이전하는 포괄양수도를 운영하지 않고 있다고 밝혔다. 다만 소비자가 직접 요청하는 경우에는 예외적으로 개별 계약 이관을 허용하고 있다는 설명이다. 산하 사업단에서 포괄양수도가 가능하다고 안내하거나 별도 약정을 체결했다는 부분에 대해서는 사실관계를 확인하겠다고 밝혔다. 회사 관계자는 <일요시사>와의 통화에서 “만약 그렇게 했다면 사업단에서 독단적으로 결정한 것”이라는 취지로 설명하며, 잘못된 안내가 사실로 확인될 경우 내부 조사와 필요시 제재가 이뤄질 수 있다고 말했다. <imsharp@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