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천데이트폭력 사건 심층취재>③ 심영섭 DCU 상담심리학과 교수의 사건 분석

  • 최현목 기자 chm@ilyosisa.co.kr
  • 등록 2020.12.07 10:16:48
  • 호수 1300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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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존자를 죽일 수 있다”

[일요시사 취재2팀] 최현목 기자 = 부천데이트폭력 생존자는 사건 이전의 자신으로 돌아가기 위해 필사적이다. 심리상담은 그런 생존자가 잡을 수 있는 ‘지푸라기’이자, 사건의 원인을 밝혀줄 ‘열쇠’다. 지난달 21일 오후 4시 서울 ‘상담센터 사이’에서 심영섭 대구사이버대학교(DCU) 상담심리학과 교수의 주재로 진행된 생존자와의 상담에 <일요시사>는 관찰자로 참석했다. 본 상담의 내용은 생존자와 상담자 양쪽의 동의를 얻어 공개함을 밝힌다.
 

▲ ▲일요시사와 인터뷰 갖고 있는 심영섭 대구사이버대학교 상담심리학과 교수

부천데이트폭력 사건은 지난 2018년 10월초 생존자 김가은(가명)이 가해자 강정준(가명)으로부터 자신의 집에 한 달 동안 감금된 채 폭언·협박·폭행·성폭행 등을 당한 사건이다. 김가은은 세 차례 시도 끝에 탈출에 성공했고, 검거된 강정준(이하 가해자)은 유사강간 등의 혐의로 징역 2년6월, 강간 혐의로 징역 1년6월 등 총 4년형을 선고받고 복역 중이다.

적반하장 
민사소송

사건이 있은 지 2년이라는 시간이 지났지만, 김가은은 여전히 트라우마에 시달리며 사건 이전의 삶으로 돌아가지 못하고 있다(기사 참조: 부천데이트폭력 사건 심층취재① 지옥에서의 30일, http://www.ilyosisa.co.kr/news/articleView.html?idxno=223363).

김가은(이하 생존자)에 대한 심리상담은 취재진과의 인터뷰 일정보다 약 1시간30여분 먼저 시작됐다. 생존자는 속마음을 털어낸 듯 눈물을 훔치며 취재진이 배석한 장소로 자리를 옮겼다. 생존자에 대한 상담은 재판 부분에서 이어졌다. 눈물을 닦아낸 생존자는 분노하기 시작했다.

‘적반하장’이라는 단어는 취재진이 배석한 이후 상담 과정에서 가장 많이 언급된 단어다. 1시간 동안 총 8번 언급됐다. 약 8분당 1번꼴이다. 8번 모두 재판과 관련한 상황을 설명할 때 사용됐다.


생존자는 가해자에 대한 민사소송을 진행하고 있다(기사 참조: 부천데이트폭력 사건 심층취재② 끝나지 않은 악몽, http://www.ilyosisa.co.kr/news/articleView.html?idxno=223371). 생존자는 지난달 11일 변론기일에 직접 참관했다. 그리고 가해자의 진술을 들었다.

생존자는 이 과정에서 손이 떨리고 심장이 미칠 듯이 뛰는 경험을 했다고 털어놨다. 혹시나 자신의 뒷모습이라도 보일까 봐 재판이 끝나는 순간 화장실로 숨어들었다. 생존자는 그때 가장 극심한 불안 증상을 겪었다고 밝혔다.

상담을 주재한 심영섭 DCU 상담심리학과 교수는 이를 ‘프리즈 리스폰스(freeze response, 어떤 대상을 목격하거나 떠올릴 때 신체적·정신적으로 얼어붙는 현상)’라고 진단했다.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의 전형적인 증상 중 하나다. 다음은 상담 후 심 교수가 밝힌 생존자의 현재 상태다.

“전형적인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를 겪고 있습니다. 침습적 사고도 강렬하고요. 성격변화도 보입니다. 꿈으로 사건을 재경험하는 일도 겪고 있습니다. 프리즈 리스폰스라고 해서 가해자를 생각할 때 얼어붙어서 말이 안 나오는, 데이트폭력에 의한 전형적인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를 겪고 있는 상태라고 보면 됩니다.”

‘병리적 구타’ 소견…동물학대도
사이코패스와 달라, 차이점은?

‘침습적 사고’는 원치 않는 기억이 계속 떠오르는 현상을 뜻한다.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로 겪는 증상 중 하나다. 침습적 사고는 사고 주체의 행동에도 영향을 미친다. 생존자는 상담 중간에 고민이 있다고 털어놨다. 사건 이전과 달리 행동을 해야할 때 주저하게 된다는 고민이었다. 생존자는 그런 자신이 너무 답답하다고 말했다. 대표적으로 생존자는 가해자에 대한 추가 고소를 생각하고 있지만, 정작 행동으로 옮기지 못하고 있는 자기 자신을 납득하지 못하고 있었다.

“데이트폭력 생존자들은 다양한 증상들을 경험합니다. 처음에는 굉장히 위축돼있어요. 화조차도 못 내죠. 그러다가 세월이 흐르면 극심한 분노에 시달리기 시작합니다. 자괴감이 들거든요. 그 다음 단계는 굉장한 좌절감을 경험하게 됩니다. 극단적으로는 알코올 중독과 자살시도로까지 이어집니다.”


생존자는 데이트어플로 가해자를 알게 됐다. 유튜브 방송을 보던 중 호기심에 데이트어플을 시작했다. 가해자를 처음 만났을 때 생존자는 무섭다는 느낌은 받지 못했다고 회상했다. 첫인상이 조금 강해 보이긴 했지만, 평범한 20대 남성의 모습이었다. 심 교수는 이 사건에서 데이트어플이 ‘판타지’를 양산한다고 설명했다.

“생존자는 우연에 의해서라도 이성과 뭔가 다른 친밀한 관계를 맺을 가능성을 찾고 싶어 했던 것 같습니다. 생존자는 근본적으로 행복하게 가정을 이루고 좋은 남성에게서 보호받고 싶은 강한 욕구를 갖고 있습니다. 그런 욕구는 생존자의 아주 깊은 결핍에 기인합니다.”

생존자는 편모 가정에서 자랐다. 그런 생존자에게 외삼촌은 실질적인 아버지였다. 외삼촌은 어린 생존자에게 “친아빠처럼 생각하라”고 말했다. 고학력자인 외삼촌은 생존자에게 아버지이자 롤모델이었다. 생존자는 스스로 자기계발 욕구가 크다고 말했다. 공부하다가 궁금한 점이 있으면 논문을 찾아볼 정도로 학구적 성향을 보인다. 

“생존자는 외삼촌의 영향으로 남성에 대해 기본적으로 좋은 이미지를 갖고 있습니다. 학용품을 사주고 같이 장난도 치는 외삼촌을 보면서 자란 생존자가 남성을 경계하기는 힘들었을 겁니다.” 

그러나 가해자와의 만남은 생존자의 삶을 나락으로 떨어뜨렸다. 가해자가 폭력적 성향을 드러내기 시작한 시점은 생존자의 집에 눌러 살기 시작한 바로 그날부터였다. 그때부터 생존자는 탈출하기까지 약 한 달여 동안 최소 14회 이상 상습적으로 구타당했다. 폭력은 날이 갈수록 심해졌다. 맥주 잔, 청소기 봉대 등 손에 잡히는 모든 것이 무기가 됐다. 심 교수는 가해자가 ‘병리적 구타’ 성향을 갖고 있다고 분석했다. 

“가해자는 ‘패솔로지컬 배터러(pathological batterer, 병리적 구타자)’의 특성을 많이 갖고 있습니다. 단순히 욱하는 성격이 아니에요. 이런 사람들은 자기 분노조절이 전혀 안 돼요. 분노조절이 안 되면 계속 구타를 해야 하고요. 구타를 하는 행위 안에서 자신의 자존감이 회복되는 기이한 경험을 합니다. 보통의 사람들은 시험에 합격한다거나, 유능한 일을 할 때 자존감을 회복하잖아요? 그런데 병리적 구타 성향을 보이는 사람들은 구타라는 행위로 자신의 자존감을 회복합니다.”

침습적 사고
계속 떠올라

가해자의 폭력적 성향은 비단 생존자만을 향하지 않았다. 가해자는 생존자의 집에 눌러앉기 시작하고 얼마 지나지 않아 강아지 두 마리를 데려왔는데, 그 강아지들에게도 폭력을 행사하기 시작했다. 

생존자의 말에 의하면, 가해자는 강아지들을 귀여워하다가도 자신에게 조금이라도 으르렁거리면 미친 듯이 때렸다고 한다. 강아지들은 겁에 질려 오줌을 지렸다. 그 오줌을 치우는 일은 생존자의 몫이었다. 

동물학대 행위는 반사회적 인격장애인 ‘사이코패스’에게서 흔히 볼 수 있는 사례다. 그러나 심 교수는 병리적 구타자와 사이코패스 사이에는 분명한 차이점이 있다고 설명했다. 
 

“둘 모두 성격장애이긴 하지만, 분명한 차이점이 있습니다. 사이코패스는 살인을 유희처럼 즐깁니다. 자신이 신처럼 누군가의 생사를 앗아가는 것에 흥분을 느낍니다. 병리적 구타 증상은 열등감을 바탕으로 한 의심과 집착 증상을 보입니다. 그래서 상대적 약자에게 폭력을 행사해 자기 자신을 확인하려 들죠. 이춘재와 같은 사이코패스 계열이 살인을 목적으로 여성에게 접근하는 반면, 가해자와 같은 병리적 구타 계열은 자신보다 사회적 지위가 높은 신체적 약자를 길들이는 것을 목적으로 합니다.”

심 교수는 의심과 집착을 데이트폭력의 전조증상으로 꼽았다. 가해자는 생존자에게 카카오톡 메시지가 올 때마다 휴대폰을 확인하는 등의 집착을 보였다. 전화가 오면 자신의 옆에서 스피커폰으로 통화하라고 강요했다. 가해자는 혹시나 생존자에게 다른 남자로부터 연락이 오는지 지속적으로 의심했다. 


“처음에는 나에게 엄청 관심이 많다고 느낄 수 있습니다. 그러나 이는 사랑에 의한 관심과는 다릅니다. 현실을 왜곡해서 지나친 관심을 보이는 비합리적 행위가 전조증세입니다. 이때 빨리 관계를 끊어야 합니다.”

가해자는 의심과 집착 외에도 여성 혐오적 발언을 멈추지 않았다. 생존자는 가해자가 강아지들을 구타한 후 “이래서 옛말에 여편네랑 개XX는 하루에 한 번씩 매질이 필요하다는 말이 있는 거다”라고 말했다고 한다. 생존자를 구타하면서도 가해자는 “이 시간에도 자기 남편한테 맞아서 죽어가는 X들이 많을 거다. 내가 한국 남자의 진짜 무서움을 보여줄게”라고 위협했다.

이는 평소에도 마찬가지였다. 생존자의 표현을 빌리자면 “매일 ‘김치녀’ ‘한녀’가 문제다”라는 말을 입에 달고 살았다. 두 표현 모두 한국 여성을 비하하는 목적으로 사용되는 인터넷 신조어다. 

관심과 집착
구분부터 해야

가해자는 생존자가 눈을 마주치지 않을 때면 구타의 강도를 높였다. 그러면서 “프랑스에서 사귀었던 외국 여자들은 눈을 내리깔지 않았다”는 말을 반복했다. 대학에 진학하지 않은 가해자는 평소 자신이 프랑스 유학파라는 점을 생존자에게 유독 강조했다고 한다. 심 교수는 이를 합리화의 전형이라고 봤다. 

“생존자를 때릴 때 ‘김치녀’ ‘한녀’ 같은 단어들을 사용하는 것은 가해자가 문화적인 투사, 합리화를 하는 것뿐입니다. 어느 문화권에서든 병리적 구타 증상을 보이는 사람은 존재합니다. ‘프랑스에서 사귀었던 외국 여자들은 눈을 내리깔지 않았다’고 말하는 것은 때릴 이유를 찾는 것뿐입니다. 합리화죠. 때릴 때 눈을 마주치게 하는 점은 단지 상대가 너무 쉽게 풀이 죽거나 위축되면 재미가 없어서예요. 이런 사람들은 자신과 대등한 사람을 제압했다고 생각할 때 더욱 큰 희열을 느낍니다.”


생존자는 가해자가 폭력을 휘두를 때 저항도 해봤다고 토로했다. 막기도 하고 소리도 질러봤다. 그러나 돌아온 것은 더욱 심한 폭력이었다.

“일반적인 사람들이 봤을 때는 이해할 수 없을 겁니다. ‘소리 지르고 반항하면 안 때릴 것 아니냐’는 식으로 말할 거예요. 그러나 때리는 이유를 찾는 사람에게 저항은 진정한 해결책이 아닙니다. 가해자는 계속 합리화하며 ‘가스라이팅’을 했습니다.”

가스라이팅은 타인의 심리나 상황을 교묘하게 조작해 그 사람이 스스로 의심하게 만듦으로써 타인에 대한 지배력을 강화하는 행위를 의미한다. 가해자는 생존자를 만나기 이전에도 여자친구에게 폭력을 휘둘렀다. 생존자가 취재진에게 보여준 가해자의 이전 여자친구 편지에는 “이제는 때리지 않아줘서, 점점 노력해줘서 고맙다”는 문구를 확인할 수 있다. 심리학에서는 이를 ‘인지적 노예화’라고 칭한다.

“인지적으로 노예가 될 때까지 계속해서 여러 가지 이야기를 합니다. 이야기의 핵심은 ‘그래서 넌 맞을 만하다. 그래서 나는 때려야 한다’입니다. 때리고 맞는 것에 관한 합리화를 세뇌 수준으로 반복하죠. 그 밑바닥에는 열등감과 피해의식이 자리하고 있습니다. 예를 들어 아내를 때리는 남편이 ‘너만 없었으면 내가 성공했을 텐데, 너와 결혼해서 내가 이 모양 이 꼴로 산다’고 말하는 식입니다.”

전조 증상은 의심·집착
‘여성 혐오’ 성향도 보여

가해자는 폭력을 사용하는 와중에도 생존자에게 끊임없이 애정을 갈구했다. ‘여보’ ‘자기’ 같은 호칭은 물론이고, 구타 후에 “볼에 뽀뽀를 해달라”고 졸랐다. 이는 가해자가 상습특수상해 및 강간 혐의 등으로 징역 4년형을 선고받은 후에도 계속됐다. 가해자는 수감 중에도 생존자에게 수백 통의 편지를 보냈다. 내용은 연애편지를 방불케 한다.

“가해자가 마치 생존자와 결혼한 듯이 행동한 일은 폭력에 덧씌워진 ‘당의정(불쾌한 맛이나 냄새를 피하고 약물의 변질을 막기 위하여 표면에 당분을 입힌 정제)’이라고 보면 됩니다. 폭력은 굉장히 쓰잖아요. 그 쓴 맛을 못 느끼게 ‘사랑’이라는 달콤한 말로 코팅을 하는 원리라고 보면 됩니다. 절대 그 당의정이 가해자의 진심이라거나 나에 대한 일말의 애정이라고 생각하면 안 됩니다. 가해자가 폭력을 정당화하고 유지하기 위한 수단일 뿐입니다.”

생존자는 형사재판 과정에서 가해자에게 합의서를 써주고, 가해자 측으로부터 소정의 합의금을 받았다. 합의서는 ‘형사상 합의했다’는 내용의 ‘처벌불원서’다. 반대로 가해자는 ‘폭력을 행사하지 않겠다’는 각서를 썼다.

“생존자가 당시 합의서를 써주는 과정에 가스라이팅이 영향을 미쳤을 가능성이 매우 높습니다. 데이트폭력 사건에서 많이 일어나는 일입니다. 가해자는 사랑이라는 단어로 합리화해 생존자에게 ‘구원자 콤플렉스(어려움에 처한 누군가를 돕고자하는 심리상태를 일컫는 심리학적 용어)’를 자극합니다. ‘절대 안 때리겠다. 나는 개과선천했다’라는 식으로 가스라이팅하고, 그 말을 믿고 싶은 데이트폭력 생존자들은 마음을 누그러뜨려 합의서를 써주게 됩니다.”

가해자는 유사강간 등에 대한 재판이 끝난 후 돌변했다. 생존자와의 접견 과정에서 가해자는 “밖에 나가면 너를 죽여버리겠다”며 살인예고를 한 상태다. 생존자는 합의서를 써준 일을 후회하고 있다.

“병리적 구타 증상을 보이는 사람들은 실제로 살인을 할 확률이 꽤 있습니다. 너 때문에 내가 전과자가 됐다고, 내 인생이 망했다고 생각할 겁니다. 이 가해자 역시 2차 가해를 하거나 생존자를 살해할 가능성이 있습니다. 이 점을 굉장히 심각하게 생각해야 합니다. 특히 사법부와 경찰 쪽에서요.”

생존자는 미래를 그려볼 수 없는 상황이다. 가해자가 생존자의 명의로 약 2000만원을 대출받아 신용불량자로 전락했다. 이로 인해 채용이 취소되는 일도 겪었다. 생존자의 커리어는 한순간에 무너졌다. 생존자는 가해자를 만나기 이전으로 돌아갈 수 없다는 생각에 불안하다. 상담 과정에서 막막한 현실 속에 자신이 어찌해야 할지 모르겠다고 털어놨다. 생존자는 스스로에게 강한 압력을 가하고 있었다. 

피해의식
도 넘어

“생존자의 자아정체성 중에서 ‘커리어’가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하고 있습니다. 제대로 된 보살핌을 받지 못하는 환경에서 자란 생존자에게 스스로 문제를 해결하며 쌓아온 커리어가 매우 중요한 수단이자 위안이었던 것 같습니다. 그래서 커리어가 좌절됐다는 느낌이 생존자를 가장 고통스럽게 하는 근원으로 보입니다.”

생존자는 이전의 삶으로 돌아갈 수 있을 것인가.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를 극복하기까지는 수년의 시간이 필요하다고 한다.  

“몇 년의 시간이 걸립니다. 감기나 바이러스처럼 금세 낫지 않아요.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는 기억을 불로 지진 듯이 사건을 각인해 기억해두는 것입니다. 뇌가 스스로를 보호하기 위해 기억을 각인시켰다고 보면 됩니다. 우울증처럼 뇌의 생화학적 변화 때문에 일어나는 증상이 아니라 때론 구조적 변화까지도 동반합니다. 그래도 다행인 점은 생존자의 자아 강도가 높아 이 문제를 해결할 힘을 지녔다는 사실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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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동발’ 한국 경제 파장 막전막후

‘중동발’ 한국 경제 파장 막전막후

[일요시사 취재1팀] 한상진 기자 = 미국이 이스라엘과 함께 이란을 공격하기로 결정하고, 지난달 28일 실행에 옮겼다. 이 같은 결정 배경에는 여러 가지 이유가 복합적으로 작용했다. ‘이란 핵 보유 가능성 차단’ ‘이란 정권교체’ ‘중동지역 미국 영향력 강화’ ‘석유 패권 우위’ 등이다. 아울러 이란 석유의 상당 부분을 수입하는 중국 견제 효과까지 노린 것으로 보인다. 미국은 지난해부터 이란과 8차례에 걸쳐 핵 협상을 진행했다. 이란 측에서 트럼프정부에 큰 사업적 이익을 제안하기도 하면서 상당한 진전을 봤다는 평가도 나왔다. 하지만 이란이 핵 능력에 대한 완전한 포기를 약속하지 않으면서, 미국은 이란 수뇌부 제거 없이는 이를 달성하기 어렵다고 판단한 것으로 해석된다. 이란 공습 이틀 후인 지난 2일(현지시각) 37년간 이란 최고 지도자로 군림해 온 아야톨라 알리 하메네이가 사망했다. 공습 결정 여러 요인 하메네이는 지난 1979년 이슬람 혁명 이후 혁명수비대 및 국방 관련 요직을 거치며 권력기반을 다졌다. 이후 국회의원과 이슬람공화당 지도부를 역임했고, 지난 1981년 대통령에 선출돼 두 차례 연임하며 정치적 입지를 강화했다. 그는 엄격한 이슬람 율법에 따라 대내적으로 여성, 종교적 소수자를 탄압하며 억압적인 정책을 펼쳤다. 이란 내에서 발생하는 시위에 대해서도 잇달아 강경하게 진압했다. 지난 2009년 강경파인 마무드 아마디네자드가 대통령으로 당선되자 반발하는 시위를 비롯해, 지난 2022년 히잡을 제대로 쓰지 않았다는 이유로 붙잡힌 22세 쿠르드족 여성 마흐사 아미니가 의문사하며 촉발된 대규모 반정부 시위 등을 강경하게 진압했다. 특히 올해 초 대규모 반정부 시위에서는 이슬람혁명수비대(IRGC)와 바시즈민병대를 동원해 무차별적 유혈 진압을 밀어붙였다. 이 시위는 이란 핵개발에 따른 서방의 제재가 수년간 이어지며 경제난이 누적됐고, 테헤란 상인들의 항의가 대규모 반정부시위로 번진 것이었다. 이란 당국은 이 사태로 인한 사망자를 3117명으로 집계했지만, 외부에서는 3만명 이상이 사망한 것으로 추산하고 있다. 하메네이의 사망으로 이란 내 정치 지형은 크게 변할 것으로 보인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군사행동이 끝난 후 이란인들에게 “여러분의 정부를 장악하라”고 촉구했다. 미국이 직접 나서 정권교체를 하는 것은 아니지만, 올해 초 있었던 대대적인 반정부 시위의 불길이 다시 붙으면 친미 정권 수립으로 이어질 것이라 기대하는 분위기다. 트럼프정부는 글로벌 에너지 패권을 추구하고 있다. 이번 공습으로 이란산 원유에 대한 일정한 영향력을 갖게 될 가능성이 있다. 베네수엘라산 원유처럼 직접 모든 것을 통제하지는 않더라도, 향후 이란의 정치적 주도권을 잡는 세력이 원유 문제에서 미국의 영향력을 받아들이는 방식으로 타협할 가능성이 크다. 미·이 전쟁 여파 국내 강타 금융, 산업 등 전방위 요동 이렇게 되면 이미 세계 최대 산유국인 미국은, 세계 최대 석유 매장량을 보유하고 있는 베네수엘라에 이어 중동지역 원유 생산에도 관여하게 된다. 석유수출국기구(OPEC)를 훨씬 넘어서는 시장 영향력을 갖게 되는 것이다. 미국·이스라엘과 이란 간 전쟁은 우리 경제 전반에 큰 영향을 끼쳤다. 우선 증시가 크게 출렁였다. 지난 3일 코스피가 역대 최대 낙폭(452.22포인트)을 기록했고, 상장사 전체 시가총액은 하루 사이 377조원 넘게 줄었다. 주요 코피스 종목도 일제히 하락세를 보였다. 한국거래소에 따르면 유가증권시장 시가총액은 이날 종가 기준 4769조4000억원으로 전 거래일인 지난달 27일 대비 376조9396억원 감소했다. 삼성전자는 시가총액이 전 거래일 대비 약 126조6803억원 감소했다. 주가는 이날 9.88% 급락하며 5거래일 만에 20만원 선을 내줬다. SK하이닉스도 100만원 선이 깨지며, 시총이 86조9497억원(11.50%) 줄었다. 이 밖에 현대차(-11.72%), LG에너지솔루션(-7.96%), 삼성바이오로직스(-5.46%) 등 주요 기업들의 시총 감소분이 상대적으로 컸다. 반면 방산주는 급등하는 모습을 보였다. 한화에어로스페이스는 주가가 19.83% 오른 143만2000원, 한화시스템은 29.14% 오른 14만6700원을 기록하며 사상 최고가를 경신했다. LIG넥스원은 11.15% 오른 68만8000원을 기록하며 상한가에 거래를 마쳤다. 이날 코스피 지수는 투자심리가 악화하며 7.24% 급락한 5791.91에 거래를 마쳤다. 유가증권시장에서는 외국인이 5조1708억원을 순매도하며 지수를 끌어 내렸다. 기관도 8817억원 매도 우위를 보였다. 미국과 이란의 전면전 여파로 인한 불안감이 이날 장 마감까지 이어지며 매도세를 자극한 것으로 보인다. 이날 유가증권시장에서는 외국인이 5조1708억원을 순매도하며 지수를 끌어 내렸고, 기관도 8817억원 매도 우위를 보였다. 미국과 이란 전쟁의 여파로 인한 불안감이 이날 장 마감까지 이어지며 매도세를 자극한 것으로 풀이된다. 이로 인해 지난 3일과 4일 이틀 연속 매도 사이드카(프로그램 매도호가 일시중지)가 발동되기도 했다. 금융권 직격타 코스피 매도 사이드카가 발동된 건 지난달 6일 이후 한 달 만이다. 지난 4일 오전 9시25분 기준 코스피 지수는 189.43포인트(3.27%) 내린 5602.48에 거래되고 있다. 지수는 199.32포인트(3.44%) 내린 5592.59에 개장했다. 코스닥지수는 35.83포인트(3.15%) 내린 1101.87에 거래 중이다. 지수는 전날보다 25.62포인트(2.25%) 내린 1112.08에 개장했다. 환율 역시 급등했다. 미국·이스라엘의 이란 공습 이후 중동 불확실성이 커지면서 위험 자산 회피 심리로 원·달러 환율이 한때 1500원을 돌파했다. 1500원 돌파는 지난 2009년 금융위기 이후 17년 만이다. 4일 외환시장에서 원·달러 환율은 전 거래일보다 12.9원 오른 1479.0원에 개장했다. <로이터통신>에 따르면 이날 오전 0시20분쯤 원·달러 환율이 야간 거래에서 심리적 저항선인 1500원을 넘어섰다. 환율은 1506원까지 올랐다가 다시 1500원 밑으로 하락했다. 미국·이스라엘의 이란 공습으로 시작된 중동 사태가 장기화할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오자, 안전자산 선호 심리가 강화돼 환율이 급등한 것으로 풀이된다. 국내 산업계도 고환율에 따른 환경 변화에 촉각을 세우고 있다. 통상 원·달러 환율이 오르면 수출 단가 측면에서 이익을 줄 수 있지만, 원자재 수입 가격 상승과 결합할 경우 실질적인 부담이 커지게 된다. 반도체와 조선 업종은 단기 방어가 가능하다는 평가가 나오지만 항공과 철강은 비용 부담이 직격탄이 될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수출 주력 품목인 반도체의 경우 현재 시장의 공급 제약 국면이 지속되고 있다. 이에 따라 원가 상승 일정 부분을 제품 가격에 반영할 수 있는 상황이다. 조선의 경우 수주 산업인 만큼 이미 3년치 이상의 일감을 확보하고 있어, 고환율 영향은 적을 것으로 보인다. 기존에 수주한 선박을 건조해 선주사에 인도하는 구조라, 이미 3~4년치의 수주 잔고를 확보한 상태다. 따라서 현재 환율 흐름에 큰 영향을 받지 않는다. 아울러 조선 업계 특성상 달러로 수주 계약을 체결하기 때문에 단기적 관점에서 환율 상승은 실적에 긍정적으로 작용할 수 있다. 자동차의 경우 양날의 검이다. 미국 수출 및 매출이 늘어나고 있어 달러 강세가 수익성 개선으로 이어질 수 있는 반면, 자동차 한 대에 수백개 이상의 부품이 들어가는 만큼 원자재 부담이 상존한다. 다른 업종 대비 상대적으로 부담은 덜하지만, 역시 환율 시장의 상황을 예의주시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업종 별로 희비 교차 항공의 경우 항공기 리스료, 정비료 등 주요 비용이 달러로 결제되는 만큼 업계 긴장감이 고조되고 있다. 특히 3~4월은 항공업계 전통적 비수기다. 개학과 함께 공휴일이 적어 여객 수요가 일시적으로 둔화되기 때문이다. 항공기 이용률이 낮은 상황에서 환율 상승은 수익성 악화로 이어질 수 있다. 아울러 소비자 부담도 확대돼 수요 위축이 나타날 수 있다. 보통 항공사들의 유류할증료는 1개월 시차를 두고 항공권 가격에 반영된다. 다음 달에 항공권을 구매할 경우 인상된 유류할증료가 적용될 가능성이 있다. 철강업계는 중동 정세 불안으로 인해 에너지 가격이 크게 상승하는 가운데, 고환율 부담까지 겹치며 이중고를 겪고 있다. 철강은 업종 특성상 환율 상승으로 수입 원자재 가격이 올라도 이를 철강 제품 가격에 즉시 반영하기 구조다. 그만큼 수익성이 악화할 수 있다. 정유업계에는 환율 상승이 단기적으로는 긍정적이다. 달러 상승에 따라 비용이 증가하지만, 수출할 때에도 높아진 달러가 적용돼 비용 부담이 상쇄된다. 특히 이전에 저렴하게 사들인 원유에 대한 재고 평가이익 인식은 재무적 개선으로 이어진다. 원유 재고 평가이익은 정유사가 보유한 원유(재고) 가치가 시세 변동으로 장부상에 이익으로 올라가 실적에 반영되는 현상을 뜻한다. 유가 상승 시 저가로 산 원유 가치가 올라가는 것이다. 기름값도 급등세를 보였다. 지난 4일 한국석유공사 유가정보시스템 오피넷 자료에 따르면 이날 오후 7시 기준 서울 지역 휘발유 평균 판매가격은 전날보다 L당 56.9원 오른 1845.4원으로 집계됐다. 서울 휘발유 평균 가격이 1800원을 넘어선 것은 지난해 12월18일(1802.7원) 이후 약 2개월 반 만이다. 주가·환율·유가 변동 산업계 직결 모건스탠리 “수출지향 한국 더 민감” 같은 기간 전국 평균 휘발유 가격 역시 L당 61.6원 상승한 1784.6원을 기록했다. 경유 가격 상승 폭은 더 컸다. 서울 지역 경유 평균 판매가는 1811.2원으로 전날보다 103.8원 뛰었다. 전국 평균 경유 가격도 1741.8원으로 하루 만에 1700원을 돌파했다. 싱가포르 석유 제품 시장가에 연동된 국내 주유소 가격은 통상 2∼3주 차이를 두고 국제 유가 변동이 반영된다. 다만 전쟁 확산 우려 등에 따라 주유 수요가 늘고 환율 변수까지 겹치면서 가격 상승 압력이 더욱 커지고 있는 것으로 풀이된다. 지난달 28일 미국·이스라엘이 이란과의 전쟁을 시작한 이후 국제 유가는 빠르게 상승하고 있다. 지난 2일 이란혁명수비대(IRGC)가 호르무즈 해협 통과를 시도하는 선박을 공격하겠다고 공식 경고하면서 호르무즈 해협이 사실상 봉쇄됐기 때문이다. 호르무즈 해협은 전 세계 원유 물동량의 약 20%를 차지하고 있다. 정부도 미국·이스라엘과 이란 간 전쟁을 틈타 기름값을 과도하게 올리는 주유소들을 제재하기 위해 ‘최고가격 지정’ 작업에 착수했다. 주유소 담합 조사 등 시간이 필요한 조치에 앞서, 즉각적인 가격 통제에 나선 것이다. 또 주유소 담합 적발 시 ‘가격 재결정 명령’을 내리기로 하는 등 유가 잡기 총력전에 나섰다. 구윤철 부총리 겸 재정경제부 장관은 지난 5일 민생물가 특별관리 관계 장관 태스크포스(TF)를 주재하고 ‘중동 사태에 편승한 시장교란 행위 근절 방안’ 등을 논의했다. 구 부총리는 이날 “현재 국내 석유류 수급 상황은 안정적이며 국제 가격의 국내 반영 시차 등을 고려할 때 아직 국내 가격에 실질적 영향을 줄 시점은 결코 아니다”며 “석유류 최고 가격의 지정 등을 포함해 가능한 모든 행정 조치를 활용해 철저히 대응하겠다”고 강조했다. 이는 앞서 이재명 대통령이 임시 국무회의에서 석유 판매가격의 최고 가격 지정을 지시한 데 따른 후속조치다. 이란이 호르무즈 해협을 봉쇄한 가운데, 미국 투자은행 모건스탠리는 수입산 석유·가스 의존도가 높은 아시아 국가들이 전쟁에 따른 경제적 여파가 심각할 수 있다고 전망했다. 특히 한국 경제가 중국보다 원유·천연가스 가격 상승에 따른 하방 위험에 노출돼있다는 평가가 나온다. 지난 2일(현지시각) 모건스탠리의 아시아 수석 이코노미스트 체탄 아야 등은 전날 보고서를 통해 이같이 전망했다. 보고서는 “아시아 국가들은 제조업 비중이 높고 수출 지향 경제인 만큼 유럽이나 미국에 비해 유가 변동에 더 민감하다”고 설명했다. 이러다 진짜 대전 터지면… 이어 석유·가스 무역적자 수준을 근거로 한국을 포함해 태국·대만·인도 등이 상대적으로 성장 측면에서 하방 위험에 노출돼있다고 지적했다. 다만 “이번 전쟁에 따른 아시아의 전체적 여파는 유가 상승 수준과 고유가 지속 기간에 달려있다”면서 “현재까지는 관리할 수 있는 수준”이라고 진단했다. <jins.h@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