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H 사태’ 검찰이 쥔 양날의 검

쓰리고냐 독박이냐 

[일요시사 취재1팀] 장지선 기자 = ‘LH 사태’ 수사에 검찰이 투입됐다. 그동안 검찰 참여를 제한했던 정부가 결국 입장을 선회했다. 검찰은 늦게나마 대규모 수사팀을 꾸리고 부동산 투기 의혹 수사에 나섰다. 검찰은 실력 발휘와 독박이라는 ‘양날의 검’을 쥐게 된 셈이다. 

▲ LH 사태 수사를 위해 검찰이 팔을 걷어붙인 가운데 검찰 수사가 ‘양날의 검’이 될 수도 있다는 말도 나온다. ⓒ박성원 기자

지난달 2일 한국토지주택공사(LH) 직원들의 광명·시흥 신도시 투기 의혹이 제기됐다. 국토교통부(이하 국토부)가 2월24일 광명과 시흥을 3기 신도시로 발표한 지 일주일 만이다. 국토부와 LH는 전수조사에 착수했다. 문재인 대통령도 연일 메시지를 내고 부동산 투기 근절을 외쳤다. 

큰 판 벌리고
결과 ‘맹탕’

정부합동조사단(이하 합조단)이 출범하고 경찰청 국가수사본부 특별수사단(이하 특수단)이 편성됐다. 정부합동특별수사본부(이하 특수본)도 설치됐다. 하지만 이 과정에서 검찰은 철저하게 배제됐다. 초기 합조단에 부동산 수사 전문 검사가 1명 파견돼 법률 지원 역할을 한 게 전부였다. 

올해 1월1일부터 시행된 검경 수사권 조정으로 검찰은 6대 범죄(부패·경제·공직자·선거·방위사업·대형참사) 외에 직접 수사권이 제한됐다. 검찰은 수사 과정에서 직접 수사가 가능한 범죄 혐의가 발견될 때만 나설 수 있는 상황이다. 

수사 초기 단계부터 경찰의 능력에 대한 우려가 나왔다. 검찰은 1·2기 신도시 투기 의혹 관련 수사를 주도해 성과를 낸 바 있다. 검찰의 부동산 수사 경험을 바탕으로 LH 사태를 수사해야 한다는 여론이 일었다. 정치권에서도 검찰 투입이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나왔다.


하지만 정부는 검찰 투입에 대해 회의적인 입장을 고수했다. 

지난달 11일 정부는 LH 직원들에 대한 1차 전수조사 결과를 발표했다. 정세균 국무총리는 이날 총 20명의 투기 의심 사례를 확인했다고 밝혔다. 당초 민변과 참여연대가 제기한 투기 의심 직원 13명 외에 7명이 추가로 적발된 것이다. 정부의 1차 전수조사 결과 발표는 LH 사태로 성난 민심에 기름을 부었다.

LH 사태가 대통령 지지율과 4·7 재보선에 악재로 작용하자 정부와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은 부랴부랴 총력전을 당부했다. 검사와 수사권을 투입하기로 한 것도 그 일환이다. 일각에서는 검찰 투입을 두고 ‘뒷북’이라는 비판이 나오고 있다. 경찰이 지난 한 달 동안 이렇다 할 성과를 내지 못하자 뒤늦게 검찰의 힘을 빌리려 한다는 지적이다. 

지지율 흔들리고 재보선까지
수사 성과 없자 뒤늦게 SOS

정 총리는 지난달 29일 정부서울청사에서 열린 ‘제7차 공정사회 반부패정책협의회’에서 “45개 검찰청에 부동산 투기사범 전단수사팀을 편성해 500명 이상의 검사, 수사관을 투입할 것”이라고 밝혔다. 수사 인력을 2000명 이상으로 대폭 확대하고 전국적으로 부동산 투기사범을 철저히 색출하겠다는 입장이다. 

이어 “검·경 간 긴밀한 협조 아래 부동산 투기 사범을 엄정히 사법처리하겠다”며 “투기 비리 공직자는 전원 구속수사를 원칙으로 하고, 법정 최고형을 구형할 것이다. 이들이 취득한 범죄 수익은 몰수·추징 보전을 통해 전액 환수하겠다”고 약속했다. 

그러면서 “검찰은 법이 허용하는 범위에서 적극적으로 직접 수사를 할 것”이라며 “부동산 부패 관련 송치사건 및 검찰 자체 첩보로 수집된 6대 중대범죄는 직접 수사하도록 하겠다. 기존의 부동산 부패사건도 재검토해 혐의 발견 시 직접 수사하겠다”고 전했다. 
 

▲ 대검찰청 ⓒ고성준 기자

대검은 전국 검찰청마다 부장검사 1명, 평검사 3~4명, 수사관 6~8명으로 구성된 1개 부급 규모의 ‘부동산 투기 사범 전담 수사팀’을 편성하기로 했다. 최대 560명 규모의 수사 인력이 부동산 투기 수사에 투입될 예정이다. 당초 LH 사태가 불거졌을 때 경기도 광명·시흥 관할청(수원지검 안산지청)에만 소규모 전담 수사팀을 꾸린 것과 비교해 대폭 확대된 것이다. 

여기에 투기 공직자 전원 구속과 법정 최고형 구형 원칙을 밝혔다. 대검찰청은 지난달 30일 일선 검찰청에 ‘부동산 투기 근절 총력대응 방안’을 지시했다. 지시에는 구속영장 청구와 구형, 공소 유지 관련 대책이 주로 담긴 것으로 알려졌다. 공직자 범죄 혐의가 발견될 때까지 수사 전면에 나서기 어렵다는 점을 고려한 조치로 풀이된다. 

구속 수사
법정 최고형

또 대검은 최근 5년 내 이미 처분이 끝난 부동산 투기 사건을 다시 검토해 필요하면 추가 수사에 착수하기로 했다. 6대 범죄에 포함되지 않더라도 ‘재기수사 명령’에 의한 사건은 형사법에 따라 검찰이 수사할 수 있다. 재기수사는 처음 사건을 맡은 검찰청의 상급청이 추가 수사의 필요성을 판단, 해당 검찰청으로 하여금 사건을 다시 수사하게 하는 것을 뜻한다. 

박범계 법무부 장관은 지난달 31일 검찰을 향해 “주어진 여건과 환경 속에서 말 그대로 명운을 걸고 부동산 적폐를 뿌리뽑아야 한다는 각오로 임해줬으면 한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특수본을 중심으로 한 경찰의 수사가 절대로 중요하고 검찰도 충분히 유기적인 협력을 해야 한다”며 “송치 이후 검찰이 나머지 수사를 할 수도 있고 범죄수익 환수, 공소유지 등이 다 중요하다”고 전했다.

조남관 검찰총장 직무대행(대검 차장검사)은 지난달 31일 LH 사태에 대한 검찰 수사와 관련 “법령상 한계라든가 실무상 어려움은 잘 알고 있으나 국가비상상황인 만큼 책임 있는 자세로 지혜를 모아주기를 기대한다”고 말했다.
 

▲ 박범계 법무부 장관 ⓒ고성준 기자

이어 “중대한 부동산 투기 범죄는 기본적으로 공적 정보와 민간 투기세력의 자본이 결합하는 구조로 이뤄지며 이 부패 고리를 끊을 필요성이 크다”고 덧붙였다. 

검찰 입장에선 ‘실력 발휘’를 할 수 있는 장이 펼쳐진 상황이다. 1989년 노태우정부는 성남시 분당·고양시 일산·부천시 중동·안양시 평촌·군포시 산본 등 5개 지역에 신도시를 건설하겠다는 계획을 발표했다.

과거 사건 수사
대검, 궁여지책

정부 발표 이후 부동산 가격이 폭등하자 1990년 2월 검찰은 합동수사본부를 설치해 대대적인 수사에 돌입했다. 당시 부동산 투기 사범 1만3000여명이 적발됐고 이 중 987명이 구속됐다. 금품 수수와 문서 위조 등에 연루돼 구속된 공직자는 131명에 달했다.

2003년 노무현정부가 발표한 2기 신도시 조성 때에도 비슷했다. 2기 신도시는 경기 김포·인천 검단·화성 동탄1~2·평택 고덕·수원 광교·성남 판교·서울 송파(위례)·양주 옥정·파주 운정 등 수도권 10개 지역과 충청권 2개 지역(아산·도안) 등 총 12곳이다.


이들 지역에서 또 다시 부동산 투기가 극성을 부리자 검찰은 2005년 7월 두 번째 합수본을 설치했다. 당시 검찰이 단속한 부동산 투기 사범 중 공무원 27명이 적발됐다. 공무원 일부는 직무상 알게 된 개발 예정지 정보를 이용해 땅을 집단으로 매입한 뒤 형질을 불법 변경하는 방식으로 시세 차익을 꾀했다.

LH 사태에 대한 검찰의 수사 의지와는 별개로 제약 역시 많은 상황이다. 검경 수사권 조정에 따라 검찰은 경제·부패·공직자 범죄라 해도 4급 이상 공무원과 공공기관 임원급 이상, 3000만원 이상 뇌물 범죄에 대해서만 수사가 가능하다. 초기부터 수사에 뛰어든 1·2기 신도시 투기 의혹 사건과는 다른 양상이라는 뜻.

대검이 과거 사건에 대한 재기수사를 꺼내든 것도 같은 맥락이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검찰 내부에서는 불만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수사 초기 단계부터 철저하게 검찰을 배제하더니 경찰이 수사 성과를 내지 못하고 국민 여론이 부정적으로 변하자 그제야 손을 내민다는 볼멘소리도 나온다. 권한은 주지 않으면서 책임만 강요하는 게 아니냐는 지적도 있다. 

1·2기 신도시 때랑 양상 달라
내부에서는 “권한 없이 책임만”

일각에서는 LH 사태와 관련해 이후에 불거질 수 있는 ‘부실수사’ 논란에 검찰 책임론을 얹으려는 게 아니냐는 분석도 나온다. 검찰에도 수사를 맡겼는데 별다른 성과를 내지 못했다는 이유로 검찰에 이른바 ‘독박’을 씌우려는 게 아니냐는 의심의 눈초리다. 검찰 내부에서도 성과를 내기엔 이미 늦은 상황에서 비판만 받을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오고 있다. 


실제 여권에서는 이미 LH 사태가 불거진 직후부터 ‘검찰 책임론’을 제기한 바 있다. 민주당 이낙연 상임선대위원장은 지난달 14일 “작년 7월 추미애 전 법무부 장관이 부동산 범죄를 수사하라고 검찰에 지시했다. 그러나 검찰은 아무 것도 하지 않았다”며 LH 사태의 책임을 검찰에 돌렸다. 
 

▲ 정세균 국무총리

그는 지난달 16일에도 한 라디오 프로그램에 출연해 “작년 7월에 추 전 장관이 기획부동산과 전문 사모펀드 등 금융 투기 자본의 불법행위, 개발 제한지역과 농지 등에 대한 무허가 개발행위, 차명거래 행위, 불법 부동산 중개행위 등 부동산 투기 범죄를 엄단하라고 지시했는데, 검찰이 별로 한 일이 없다”고 비판했다.

추 전 장관도 “부동산 시장의 부패는 검찰 책임”이라고 공세를 펼쳤다. 지난달 14일 추 전 장관은 자신의 SNS에 ‘검찰 공화국과 부패 공화국은 동전의 양면’이라는 제목의 글을 올리고 ‘부동산 시장의 부패 사정이 제대로 되지 못한 데는 검찰의 책임이 가장 크다고 할 것’이라고 주장했다. 

또 부산 해운대 엘시티 특혜 분양 의혹을 언급하며 “검찰은 강산이 두 번 바뀌는 세월 동안 어쩌면 하나도 변하지 않았을까. 이영복(엘시티 회장)과 같은 부동산 불패 신화를 조장한 세력은 바로 막강한 수사·기소 권한을 가지고도 제대로 수사·기소를 하지 않고 유착한 검찰”이라고 비판했다. 

앞서 박범계 법무부 장관조차 지난달 11일 “3기 신도시 얘기는 2018년부터 있었고, 부동산이나 아파트 투기는 이미 2~3년 전부터 문제가 됐는데 (검찰이)수사권이 있을 때는 뭘 했느냐고 지적하지 않을 수 없다”고 말해 검찰 내부에서 비판의 목소리가 나오기도 했다. 

처음엔
검찰 탓

국민의힘 윤희숙 의원은 지난달 30일 자신의 SNS에 “검찰 500명을 포함, 수사팀을 2000명으로 늘린다고 한다. 770명 매머드급 합수본을 출범시킨다고 적극 홍보한 게 언젠데 이젠 2000명인가. 한 달 동안 접근금지시켰던 검찰은 500명이나 지금 투입한다니. 그럼 도대체 뭐가 문제인지”라고 비판했다. 그러면서 “왜 수사를 망치게 될 고집을 부렸는지 가타부타 설명이 있어야 할 것 아니냐”고 추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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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례가 뭐죠?” MZ가 바꾼 추석 풍경

“차례가 뭐죠?” MZ가 바꾼 추석 풍경

[일요시사 취재1팀] 안예리 기자 = 우리에게 추석은 차례를 지내거나 귀향을 하는 것이 익숙한 명절이었다. 그러나 최근 몇 년 사이 명절을 보내는 방식이 크게 달라졌다. 특히 차례를 지내는 비중은 줄어들고 MZ세대를 중심으로 긴 연휴를 활용한 여행, 단기 아르바이트, 자기계발 등을 하는 것이 새로운 문화로 자리 잡고 있다. 최근 여론 조사 결과에 따르면 추석에 차례를 지내겠다고 응답한 비율은 40%대 초반에 그쳤다. 절반 이상은 차례를 지내지 않겠다고 답한 것이다. 불과 한 세대 전만 해도 당연하게 여겨지던 차례와 제사가 더 이상 필수가 아니게 된 셈이다. 알바 우선 통계청 조사에서도 명절 의례를 간소화하거나 아예 하지 않는 가정이 해마다 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차례를 지내는 대신 긴 연휴를 여행으로 보내려는 수요가 뚜렷하게 증가했다. 한국인 1000명을 대상으로 한 여행 중개 플랫폼 스카이스캐너 설문조사에 따르면 응답자의 약 77%가 이번 추석 연휴에 여행 계획을 세웠다고 응답했다. 특히 해외여행 비중이 크게 늘었다. 10년 전 대비 명절 여행에 긍정적인 인식이 37%에서 70%로 2배 가까이 상승했다. 검색 데이터에 따르면, 추석 연휴 기간 인기 여행지는 일본(43.1%)이 1위였고, 이어 베트남(13.2%), 중국(9.6%), 태국(7.5%), 대만(6.2%) 순이었다. 도시별로는 일본 후쿠오카(20.2%)가 가장 높은 검색 비율을 기록했으며, 오사카(18.3%), 도쿄(15.4%), 방콕(8.9%), 타이베이(8.0%)가 뒤를 이었다. 여행을 가지 않고 명절 연휴를 일터에서 보내는 사람들도 많아졌다. 긴 연휴를 활용해 “돈을 벌겠다”는 사람들이 늘면서 단기 아르바이트 수요도 급증했다. 당근마켓과 같은 알바 커뮤니티와 플랫폼에는 “추석 알바 구합니다”라는 글이 다수 올라왔다. 한 20대 청년은 “쉬는 날이 길어 잠깐이라도 일을 하려 한다”고 밝혔고, 한 대학생은 “여행 경비를 마련하기 위해 선물세트 포장 알바에 지원했다”고 말했다. 특히 명절 기간에는 업무강도가 높아 평균 시급의 1.5배를 지급하는 경우가 많다. 평상시에 근무할 때보다 더 많은 돈을 벌 수 있는 기회이기도 하다. 이 때문에 많은 청년들이 명절 시즌 알바를 노리고 있다. 이 같은 상황에 맞춰 구인·구직 플랫폼들은 ‘추석 알바 채용관’을 운영하며 수요를 모으고 있다. 백화점과 대형 마트, 도·소매점과 전통시장에서 단기 인력을 모집하고, 선물용 고기·과일 세트 포장, 택배 상·하차, 진열·판매 등의 일자리가 집중적으로 생겨났다. 절반 이상 “안 지내요” 77%가 여행 계획 세워 지난해 추석 구인 구직 사이트 알바천국 조사에서는 응답자 중 절반 이상(53.9%)이 단기 용돈 벌이를 위해, 22.2%는 고물가로 인한 지출 부담 때문에, 18.2%는 여행 경비나 등록금 등 목돈 마련을 위해 명절 알바를 계획했다고 답했다. 이는 명절을 단순히 휴식 시간으로 보내지 않고, 생계와 목표 달성을 위한 수단으로 활용하는 사람들이 늘고 있음을 보여준다. 집에 머무는 사람들 사이에서는 ‘자기계발하며 추석 나기’가 새로운 문화로 자리 잡고 있다. 혼자 추석을 보내는 일명 ‘혼추족’ 중에는 독서나 온라인 강의, 어학 공부, 자격증 준비 등에 연휴를 투자하는 사례가 늘고 있다. 스터디 카페와 도서관을 찾는 이용객이 증가했다는 조사도 나왔다. 일부 출판사나 문화 기획사에서는 명절 연휴에 맞춰 북콘서트 같은 행사를 열기도 했다. 명절이 휴식 기간만이 아닌 스스로를 계발할 수 있는 기회로 활용되고 있는 것을 알 수 있는 대목이다. 이 같은 양상은 가족 모임에도 영향을 받았다. MZ세대는 가족·친척 모임을 스트레스로 인식하는 경우가 많다. 한 청년은 “친척들과 모이면 취업·결혼 얘기 등으로 잔소리를 들어 스트레스를 받는 경우가 많은데, 그러느니 차라리 그 시간에 자기계발을 하는 것이 더 유익하다”고 말했다. 과거처럼 친척 모임에 시간을 할애하기보다, 필요한 경우에만 가족을 만나고 나머지 시간에는 개인활동에 집중하는 방식이다. 연휴를 도심에서 보내는 ‘혼추족’을 겨냥해 유통·외식업계도 다양한 이벤트를 내놓고 있다. 수도권 맛집 가이드, 추석맞이 전시·공연, 집콕형 OTT·게임 프로모션 등이 대표적이다. 편의점과 HMR(가정 간편식) 업체는 명절 한정 도시락·한상 차림 제품을 늘리고, 명절 기간 반값·카드 제휴 할인 등 단기 판촉을 강화하고 있다. 추석 선물 시장도 과거와는 다른 양상을 보이고 있다. 예전에는 굴비·한우·고급 과일 세트 등 전통 품목이 중심이었지만, 최근에는 실속형·소포장 선물세트가 늘었다. 대표적으로 대형마트에서는 고급 커피·차 세트, 수제 디저트처럼 가볍게 주고받을 수 있는 소포장 구성이 인기를 끌고 있다. “일과 자기계발이 더 유익해” 명절 스트레스 가족 모임 불참 온라인몰에서는 올리브 오일, 참기름, 견과류, 꿀 등 건강 지향 소품목 세트가 매출 상위에 오르기도 했다. 실속형·소포장 선물을 찾는 배경에는 고물가 부담과 1~2인 가구 증가가 있다. 소비자들은 예전처럼 고가 선물을 준비하기보다, 실용적이고 보관이 편리한 상품을 선택하는 경향을 보인다. 또 명절을 함께 보내는 가족 규모가 줄면서 필요한 양만큼만 담긴 선물세트가 ‘부담 없는 선택’으로 자리 잡았다. 가격 대비 효용을 중시하는 MZ세대 소비자층도 이 같은 흐름을 이끌고 있다. 모바일 선물하기 판매는 전년 추석 대비 두 배 이상 늘었고, 온라인몰도 같은 기간 선물세트 매출이 2배 가까이 증가했다. 편의점 앱을 통한 선물세트 매출은 연중 대비 100% 이상 신장세가 관측됐고, 패션·라이프스타일 플랫폼의 선물하기 거래액도 두 자릿수 증가를 이어가고 있다. 마켓컬리는 추석 기간 한시 선물하기 서비스를 운영하며 홍삼·화장품 등 선물 품목을 확장했다. 명절 식문화 자체도 간편화 된 흐름이 뚜렷하다. 1인 가구 1012만명, 2인 가구 600만명으로 소규모 가구가 크게 늘어난 가운데, 대형마트의 간편 차례상 매출은 최근 3년 연속 증가했다. 편의점의 냉장·냉동 HMR 매출은 두 자릿수 증가했고, 명절 한정 도시락은 1인 가구 밀집 상권에서 판매 비중이 높았다. 이번 추석에도 이런 흐름에 맞춰 대형 마트는 간편 차례상·냉동 밀키트 대형 할인전을, 편의점 4사는 명절 도시락 출시와 제휴 할인행사를 연달아 내놓고 있다. 밀키트와 같은 간편식의 수요가 증가한 데에는 물가 상승이 영향을 미쳤다. 소비자 설문에선 추석 전체 지출 예산이 평균 71만2000원으로 전년 대비 26%가량 늘었다는 응답이 나왔다. 지출 중에는 부모 용돈·선물 비중이 절반을 웃돌았고, 차례상 비용·내식 비용도 적지 않았다. 품목별로 과일·수산물·햅쌀·송편 등의 차례상 음식 가격 부담이 커지면서, 수입 축산물 고려 비율도 늘었다. 이 때문에 “차례상 형식을 간소화하자”는 분위기가 형성됐다. 선택의 시대 추석을 준비하는 한 30대 가정주부는 “지금은 시대가 많이 바뀌어서 차례를 안 지내거나 설에 한 번만 지내는 집이 많다. 고물가 시대에 음식을 다 준비하는 것은 부담되는 것 같다. 그런 형식적인 것은 간소화하더라도 차례를 지내는 행위에 의미가 있으니 상관없는 것 같다”고 말했다. <imsharp@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