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요시사 취재1팀] 장지선 기자 = 문재인 대통령의 임기가 막바지에 이르면서 정부부처 장관들, 이른바 ‘순장조’의 운명에 관심이 쏠리고 있다. 차기 대선이 임박하면서 상대적으로 이들의 존재감은 희미해지는 모양새다. 기세 좋게 입성한 장관도 상황은 비슷하다.
역대 정부를 통틀어 검찰총장과 법무부 장관이 이렇게 유명세를 탄 경우가 있을까. 검찰과 법무부의 수장은 한때 ‘전쟁’이라고 불릴 만큼 대립했고, 한때는 손발 잘 맞는 ‘동지’처럼 지냈다.
검 잡는
선봉장
문재인정부에서 검찰은 적폐 청산의 칼이면서 개혁해야 할 기관이었다. 박근혜 전 대통령의 탄핵 이후 국민 사이에서 사회 각 분야의 적폐를 해소해야 한다는 움직임이 일었다. 문재인 대통령의 당선은 국민의 그런 의지가 반영된 결과였다.
문 대통령은 임기 시작과 동시에 검찰개혁에 강한 드라이브를 걸었다. 검찰의 기소 독점 체제를 깨고 권한을 분산하는 작업을 시작한 것이다. 여권은 검찰개혁 법안 입법화로 발을 맞췄다.
정부조직법에 따라 법무부 장관은 검찰, 행형, 인권 옹호, 출입국 관리, 그 밖에 법무에 관한 사무를 관장한다. 검찰청법에도 법무부 장관은 검찰사무의 최고 감독자로서 검사를 지휘한다고 돼있다. 다시 말해 검찰 ‘길들이기’의 선봉장은 법무부 장관이 맡게 되는 셈이다.
다만 검찰청법은 법무부 장관이 구체적 사건에 대해서는 검찰총장만을 감독한다고 명시했다. 이 부분을 두고 검찰총장과 법무부 장관이 미묘한 힘겨루기를 벌인 적도 있다. 국민의힘 윤석열 대선후보는 검찰총장 시절 국정감사에서 “검찰총장은 법무부 장관의 부하가 아니다”라고 말해 파장을 일으켰다.
추·윤 대전 이후 발탁
검찰개혁 외치며 입성
추미애 당시 법무부 장관이 윤 후보의 수사지휘권을 박탈하는 지휘권을 발동한 것이 부당하다는 취지의 발언을 하는 과정에서 나온 말이다. 전문가들 사이에서는 검찰총장은 법무부 장관 아래로 봐야 한다는 해석이 중론이었지만 일각에서는 검찰의 독립성을 감안해 통상적인 상명하복 관계와는 다르다는 의견도 나왔다.
추 전 장관과 윤 후보는 ‘추윤 대전’이라는 말이 나올 만큼 큰 갈등을 빚었다.
윤 후보는 당초 문정부에서 가장 파격적인 승진을 거듭한 인물 가운데 한 사람이다. 박 전 대통령 시절 한직으로 좌천됐다가 박근혜-최순실 국정 농단 특검팀에 합류해 부활의 날개짓을 시작하더니 문정부 들어 서울중앙지검장-검찰총장이라는 꽃길을 걸었다.
꽃길이 가시밭길로 변한 건 윤 후보가 조국 전 법무부 장관 가족 비리 의혹을 수사하면서부터다. 윤 후보의 검찰은 조 전 장관이 법무부 장관으로 지명되고 불거진 가족 비리 의혹에 칼을 댔다. 동시다발적인 압수수색을 시작으로 수사 포문을 연 것.
이때부터 여권을 중심으로 검찰개혁의 목소리가 커지기 시작했다.
조 전 장관에 이어 추 전 장관이 취임하면서 검찰과 법무부의 갈등이 가속화됐다. 추 전 장관은 ‘검찰 대학살’로 회자되는 검찰 인사를 시작으로 윤 후보와 대립각을 세웠다. 수사지휘권 발동, 검찰총장에 대한 징계 요구, 징계위원회 개최, 직무정지, 행정소송 등 사상 초유의 일이 하루가 멀다 하고 일어났다.
전쟁 벌인
수장들
추 전 장관의 후임으로 법무부 장관에 낙점된 인물이 바로 박범계 당시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 국회의원이다. 박 장관이 법무부 장관으로 지명되면서 기대와 우려가 동시에 터져 나왔다.
윤 후보와 사법연수원 동기(23기)라는 점에서 검찰총장과 법무부 장관 사이에 관계 재정립이 이뤄질 것이라는 기대와 ‘추미애 시즌 2’일 것이라는 우려가 제기됐다.
박 장관은 취임 일성으로 검찰개혁을 강조했다. 그는 지난해 2월1일 취임식에서 “국민의 명령인 검찰개혁을 위한 한 걸음을 이제 막 내디뎠을 뿐”이라며 “권력기관 개혁 과제를 더욱 가다듬고 발전시켜 나가야 한다”고 말했다. 또 경찰과 상호 협력을 통해 국민의 인권보호는 물론 각종 범죄 대응에 최선을 다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후 1년, 박 장관은 지난달 28일 취임 1주년을 맞았다. 박 장관의 1년에 대한 평가는 엇갈린다. 활발한 민생 개선 행보에 박수를 보내는 목소리도 있지만 정치적 중립성에 있어서는 낙제점이라는 지적도 만만찮다. 대선과 맞물리면서 취임 초 호랑이 같은 기세는 사라지고 이제 존재감조차 희미해지고 있다는 말도 있다.
박 장관은 취임 첫 행보로 당시 코로나19 확진자가 대거 발생한 서울 동부구치소를 방문했다. 당시 그는 “코로나 방역이 민생”이라며 법무부가 아닌 동부구치소로 출근한 바 있다.
이 같은 행보는 지난해 총 112회 현장 방문으로 이어졌다. 일선 지청과 구치소, 보호관찰소 등을 두루 살피면서 현장의 목소리를 들으려 한 부분은 긍정적으로 평가받는다.
반면 취임 첫 검찰 인사 때부터 시작된 잡음은 여전히 끊이지 않고 있다. 지난해 2월 신현수 당시 민정수석이 재직 40여일 만에 사의를 표명했다. 신 전 수석은 문정부 유일의 검찰 출신 민정수석으로 문 대통령의 오랜 측근으로 알려져 있다. 그는 최악으로 치달은 검찰과 법무부의 관계 재정립을 위한 인사였다.
문제가 발생한 건 검찰 고위간부 인사 과정에서다. 박 장관이 신 전 수석과 충분한 조율을 거치지 않고 인사안을 발표했다는 것. 인사안을 두고 법무부와 청와대 민정수석실 간에 이견이 있었는데, 의견 차가 최종 조율되지 않은 상태에서 법무부 인사안이 대통령 선까지 올라가 확정된 것으로 전해졌다.
청와대는 법무부와 민정수석실 간에 이견이 있었다는 점은 인정하면서도 민정수석 패싱은 아니라는 입장을 전했다. 신 전 수석은 청와대의 만류에도 사의를 거두지 않았고 결국 사표는 수리됐다.
임기 말엔
안 통하네
그보다 앞서 박 장관과 윤 후보가 만난 자리에서도 검찰 인사와 관련된 논의가 이뤄졌지만, 윤 후보의 요구사항은 받아들여지지 않았다고 한다. 문정부 관련 수사를 뭉개고 있다는 의혹을 받아온 이성윤 당시 서울중앙지검장(현 서울고검장)의 거취를 두고 의견이 엇갈린 것으로 전해졌다.
결국 이 고검장은 유임됐고 이후 같은 해 6월 인사에서 서울고검장으로 영전했다.
6월 검찰 중간간부 인사 때는 문정부 관련 사건을 이끌었던 수사팀장이 대거 교체됐다. 청와대 기획사정 의혹 사건, 월성 원전 경제성 평가 조작 사건, 청와대 선거개입 의혹 사건, 조국 전 법무부 장관 가족 비리 사건 등을 맡았던 검사들은 자리 이동이 이뤄졌다.
검찰 직제개편과 맞물려 역대 최대 규모로 이뤄진 검찰 중간간부 인사에서 친정권으로 분류되거나 박 장관의 참모들이 주요 요직에 오른 반면 이른바 ‘윤석열 라인’으로 분류됐거나 정권 수사를 맡았던 인사들은 좌천성 발령을 받았다.
최근 박 장관은 중대재해 관련 외부 전문가를 대검 검사급(검사장)으로 임용하려던 계획을 철회했다. 그는 중대재해 대응 능력 강화를 위해 노동 분야에 전문성을 가진 인사를 외부 공모 형식으로 검사장급 보직에 발탁하겠다고 밝혔다.
하지만 검찰 내부에서 반발이 일었다. 수사 지휘 라인에 외부 인사를 보임한 전례가 없다는 점을 들었다. 검사장 ‘알박기’ 논란이 함께 불거졌다. 김오수 검찰총장도 반대 의견을 냈다. 결국 박 장관은 계획을 철회하고 검사장 공모를 중단했다. 문정부 임기 말 인사 논란에 부담을 느껴 결정을 선회했다는 분석도 나온다.
첫 검찰 인사부터 패싱 논란
100회 넘는 민생행보 긍정적
‘정치인 장관’이라는 한계를 벗어나지 못했다는 지적도 제기된다. 민주당 3선 국회의원인 박 장관은 지명 때부터 정치적 중립성 논란이 따라붙었다. 박 장관이 한명숙 전 국무총리 사건과 관련해 감찰을 지시했을 때도 마찬가지였다.
한 전 총리 수사팀의 모해위증 교사 의혹 사건은 한 전 총리에게 돈을 건넨 혐의로 기소된 한신건영 대표 고 한만호씨와 함께 수감됐던 재소자 최모씨‧김모씨가 당시 수사팀으로부터 ‘한씨가 뇌물을 준 게 맞다는 취지로 증언하라는 압박을 받았다’고 주장하면서 시작됐다.
최씨는 2020년 4월 법무부에 진정을 냈고 사건은 서울중앙지검을 거쳐 대검 감찰부에서 맡았다.
대검 감찰부는 “합리적 의사결정 과정을 거쳐 혐의를 인정할 증거가 부족하다고 판단했다”며 무혐의 처분했다. 박 장관의 재심 지시로 이뤄진 대검회의(대검부장·고검장 회의)에서도 의혹을 받는 재소자들에 대한 불기소 결정이 내려졌다.
이 과정에서 박 장관은 역대 4번째, 문정부 들어서만 3번째 수사지휘권을 발동한 바 있다.
이어 박 장관은 감찰 카드를 꺼내들기에 이른다. 한 전 총리 수사팀의 모해위증 교사 의혹 사건을 두고 검찰의 수사 관행을 문제 삼아 법무부와 대검의 합동감찰을 지시한 것. 당시 검찰 안팎에서는 박 장관의 감찰 지시를 두고 ‘한명숙 구하기’라는 비판이 나왔다.
지난해 7월 박 장관은 합동 감찰 결과를 발표하면서 “한명숙 사건의 수사기록을 보면 공소가 제기된 이후에도 참고인들이 검찰에 100회 이상 소환돼 증언할 내용 등에 대해 미리 조사받은 사실이 확인됐다”며 “부적절한 ‘증언 연습’이라고 볼 수 있으며 증인의 기억이 오염되거나 왜곡될 가능성도 매우 높다”고 말했다. 그러면서도 “절차적 정의가 지켜지지 않은 것은 아쉽지만 혐의 유무에 대해서는 판단하지 않았다”고 답했다.
대검의 무혐의 처분을 뒤집지는 않겠다는 뜻이다.
성공?
실패?
박 장관은 큰 이변이 일어나지 않는 한 문정부 마지막 법무부 장관이 될 가능성이 높다. 임기 말로 갈수록 정부 부처 장관의 존재감은 희미해지게 마련이다. 일각에서는 양당 후보가 모두 검찰 수사 선상에 올라 있는 초유의 상황에서 선거 개입으로 비쳐질 만한 행보를 보이지 않는 것이라는 분석도 있다. 역대 68번째 법무부 장관인 그는 향후 어떤 평가를 받게 될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