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소불위’ 박범계 법무부 장관 플랜

혹시 했더니 역시 ‘추미애 시즌2’

[일요시사 취재1팀] 장지선 기자 = ‘혹시나 했는데, 역시나였다.’ 박범계 법무부 장관과 윤석열 검찰총장 사이에 제2의 ‘추·윤 갈등’이 일어날 조짐이 보이고 있다. 이번에도 ‘검찰 인사’가 뇌관으로 떠올랐다. 검찰과 법무부의 대립을 넘어 청와대로도 사안이 번지는 모양새다.
 

▲ 박범계 법무부 장관 ⓒ박성원 기자

2020년 내내 정치권을 달군 ‘추·윤 갈등’이 또다시 재현될 기미가 보인다. 검찰 인사를 둘러싼 박범계 법무부 장관과 윤석열 검찰총장의 파워 싸움이 청와대 민정수석실로까지 번졌다. 추‧윤 갈등의 봉합을 위해 정부 출범 이후 처음으로 검찰 출신 민정수석을 뽑은 청와대로선 난감한 상황에 처했다. 

인사 불똥
청와대로

박 장관은 지난달 25일 인사청문회에서 “조국 전 장관과 추미애 장관이 이어온 형사·공판부 검사 우대라는 대원칙을 존중하고 가다듬겠다”면서도 “검찰총장이 실재하는 이상 당연히 인사하면서는 총장 의견을 들어야 한다”고 검찰 인사에 대한 입장을 밝혔다. 추미애 전 장관은 검찰 인사 과정에서 윤 총장의 의견을 청취하지 않아 ‘윤석열 패싱’ 논란에 휩싸인 바 있다. 

추 전 장관은 지난해 1월 취임과 동시에 검찰 인사를 단행했다. ‘검찰 대학살’이라고 불릴 만큼 대대적인 인사 발표였다. 당시 검찰 인사를 두고 ‘검찰청법 제34조 1항’이 논란의 중심으로 떠올랐다. 

검찰청법 제34조 1항은 ‘검사의 임명과 보직은 법무부 장관의 제청으로 대통령이 한다. 이 경우 법무부 장관은 검찰총장의 의견을 들어 검사의 보직을 제청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하지만 추 전 장관이 인사 과정에서 윤 총장의 의견을 듣지 않으면서 검찰청법 위반 논란이 불거졌다.


지난해 1월과 8월 추 전 장관이 단행한 검찰 인사에서 윤 총장의 측근들이 전부 잘려나갔고, 문정부 관련 수사를 맡은 검사들도 여럿 좌천됐다. 그 자리는 이른바 ‘추미애 라인’으로 불리는 친정부 검사들이 차지했다. 문정부 들어 검찰 내 요직을 두루 거친 이성윤 서울중앙지검장을 비롯해 심재철 서울남부지검장(전 법무부 검찰국장) 등이다. 

추‧윤 갈등의 서막이라고 할 수 있는 검찰 인사 논란 이후 추 전 장관과 윤 총장은 사사건건 대립했다. 추 전 장관은 윤 총장에 수사지휘권을 발동했고, 헌정 사상 초유의 검찰총장에 대한 징계 청구 및 직무정지 명령 등을 진행했다. 검찰징계위원회는 윤 총장에 대한 ‘정직 2개월’ 징계를 의결했으며 문재인 대통령은 이를 재가했다. 

검찰 고위간부 인사 기습 단행
검찰총장·민정수석 패싱 논란

윤 총장은 소송을 제기했고, 법원에서 두 차례나 그의 손을 들어주면서 추 전 장관은 물론 문 대통령까지 타격을 입었다. 1년여 동안 이어진 법무부 장관과 검찰총장의 갈등에 국정 지지율이 하락했고 국민들은 피로감을 호소했다. 

박 장관은 추·윤 갈등을 매듭짓고 법무부와 검찰 간 관계 재정립을 위한 일종의 ‘구원투수’ 역할을 해주리라는 기대를 받았다. 윤 총장과 사법연수원 23기 동기인 박 장관이 검찰과 원만한 관계를 유지할 것이라는 전망이 나오기도 했다. 

박 장관은 2013년 11월 윤 총장이 국정원 댓글 사건 수사 중 징계를 받자, 자신을 ‘범계 아우’로 칭하며 “윤석열 형, 형을 의로운 검사로 칭할 수밖에 없는 대한민국과 검찰의 현실이 너무 슬프다”는 글을 SNS(사회관계망서비스)에 올리기도 했다. 
 

▲ 윤석열 검찰총장

검찰 출신을 민정수석에 앉힌 것도 같은 맥락이다. 문정부는 민정수석에 학자 출신(조국), 감사원 출신(김조원, 김종호)을 발탁하는 등 검찰 출신은 배제해왔다. 신현수 민정수석은 2004년 노무현정부 당시 청와대 사정비서관을 하면서 당시 민정수석·시민사회수석을 지낸 문 대통령과 인연을 맺었다. 


문제는 훈풍이 부나 했던 법무부와 검찰 사이에 또다시 갈등의 불씨가 피어오르고 있다는 점이다. 이뿐만 아니라 이번 갈등의 불씨는 청와대로까지 번지고 있다. 검찰 인사 과정에서 검찰총장과 민정수석 패싱 논란이 제기된 것.

박 장관은 지난 7일 휴일인 일요일에 기습적으로 검찰 인사를 발표했다. 

갈등 봉합
물 건너가

대검검사급 검사 4명을 전보 조치한 이번 인사는 최소한도 규모로 진행됐다. 이날 인사에서 이성윤 서울중앙지검장은 유임됐고, 심재철 법무부 검찰국장은 서울남부지검장으로 이동했다. 심 국장의 경우 사실상 영전성 인사로 평가됐다.

법무부 검찰국장은 이정수 서울남부지검 검사장이 맡게 됐다. 공석이었던 대검 기조부장에는 조종태 춘천지검 검사장이, 춘천지검 검사장으로는 김지용 서울 고검 차장이 전보됐다. 법무부는 “종전 인사 기조를 유지하며 공석 충원 외 검사장급 승진 없이 전보를 최소화했다”고 입장을 밝혔다. 

법무부의 휴일 인사 발표는 대검은 물론 윤 총장도 전혀 모르고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이성윤 서울중앙지검장 교체·한동훈 검사장 복귀 등을 요구했던 윤 총장의 인사 의견도 대부분 반영되지 않았다고 한다. 지난 2일과 5일 두 차례에 걸쳐 진행된 박 장관과 윤 총장의 회동이 ‘보여주기식’이었다는 비판이 제기됐다. 

박 장관은 지난 2일 윤 총장과의 만남 이후 “협의가 아니라 의견 청취였다는 점을 분명히 하려고 한다”고 강조한 바 있다. 검찰총장의 의견을 듣긴 했지만 인사제청권은 자신에게 있다는 점을 분명히 한 부분이다. 박 장관은 검찰 인사 발표 이후 “총장 입장에선 다소 미흡하다고 생각할 수도 있겠지만 최대한 애를 썼다”고 말했다.

여기에 신 수석이 검찰 인사 과정에서 법무부와의 이견을 이유로 사의를 표하면서 청와대가 논란의 중심에 등장했다.

청와대 고위관계자는 지난 17일 춘추관에서 “검찰 인사 과정에서 검찰과 법무부 사이의 견해가 달랐다”며 “그것을 조율하는 과정에서 이견이 있었다”고 설명했다. 이어 “그 과정에서 민정수석께서 사표가 아니고 사의를 몇 차례 표시했고 그때마다 대통령께서 만류했다”고 전했다. 

수사권 뺏고
식물총장화

언론보도 등을 종합하면 검찰 고위간부 인사에서 신 수석이 배제됐고, 검찰 중간간부 인사 과정에서도 그의 의견이 크게 반영되지 않아 갈등을 빚은 것으로 보인다. 이날 청와대의 발표는 이 같은 논란을 공식 확인해준 셈이다. 그러면서도 청와대는 신 수석과 이광철 민정비서관 등의 내부 갈등설에 대해서는 부인한 상태다. 

검찰의 백운규 전 산업통상자원부 장관 구속영장 청구가 검찰 인사 과정에 영향을 미친 게 아니냐는 분석도 제기된다. 월성원전 1호기 경제성 조작 의혹 사건 수사가 청와대 코앞까지 치고 들어오면서 위기의식을 느낀 청와대와 여권에서 친정부 검사를 요직에 배치하는 법무부안에 힘을 실었다는 것이다. 실제 백 전 장관에 대한 구속영장은 법원에서 기각됐지만 여권에서는 구속영장 청구 자체만으로도 강한 반발이 있었다. 
 

▲ 신현수 청와대 민정수석

인사 문제로 또다시 검찰과 법무부의 갈등이 부각되면서 박 장관의 법무부가 ‘추미애 시즌2’가 되는 게 아니냐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오는 7월24일 윤 총장의 임기가 끝날 때까지 검찰과 법무부 사이의 긴장 관계는 계속될 것이라는 분석이 힘을 얻고 있다. 특히 여권에서 검찰의 권한을 줄이는 방안을 법제화하려는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은 ‘중대범죄수사청’ 논의를 본격화하고 있다. 올해부터 부패·경제·공직자·선거·방위사업·대형참사범죄 등 6개 범죄 분야에 한정된 검찰의 직접 수사개시권을 모두 폐지한다는 게 골자다. 6개 범죄에 대한 수사권을 중대범죄수사청에 넘기고 검찰은 영장청구와 기소만 담당하게끔 한다는 것이다. 

올해 1월 시행된 검·경 수사권 조정안과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공수처)법으로 검찰의 수사권과 기소권이 분할됐다. 일반 범죄에 대한 수사권은 경찰에, 고위공직자에 대한 수사권과 기소권은 공수처로 넘어갔다. 수사권과 기소권이 조정된 지 한 달 만에 검찰의 수사권을 모두 폐지하겠다는 법안이 나온 것이다.

여, 검찰 해체 법안 준비 중
수사권 조정 한 달 만에 또?

민주당 박주민 의원은 지난 16일 <김종배의 시선집중>과의 인터뷰에서 “2월 중 중대범죄수사청 설치 법안을 완성해 6월 중 입법 완료하겠다”며 구체적 시기를 언급했다. 

민주당 황운하 의원이 대표발의한 중대범죄수사청 설치 법안에 따르면, 대검은 해체되고 검찰총장의 직위도 고등공소청장으로 격하된다. 검찰의 이름도 공소청으로 바뀐다. 중대범죄수사청 법안이 통과되면 사실상 검찰 해체로 이어진다는 분석이 나오는 이유다.


중대범죄수사청이 신설되면 국민의 혼란이 커질 것이라는 우려가 제기된다. 검찰과 경찰, 공수처, 중대범죄수사청까지 사건 초기 단계부터 어떤 기관이 맡게 될지를 두고 우왕좌왕할 가능성이 생길 수 있다.

이를 두고 법조계에선 “비효율적인 수사 기능 중복으로 혼란과 피해만 가중시킬 것”이라는 지적이 나온다. 
 

▲ 문재인 대통령

민주당은 검찰청법 제34조 1항, 검찰 인사를 단행할 때 법무부 장관이 검찰총장의 의견을 듣도록 규정한 법을 손보려는 움직임도 보이고 있다. 추 전 장관에 이어 박 장관 법무부에서도 검찰 인사 과정에서 윤 총장 패싱 논란이 불거진 만큼 향후 이를 사전에 예방하겠다는 취지다.

일각에선 ‘검찰총장 힘빼기’ ‘식물총장 고착화’ 등의 지적의 목소리도 들린다.

민주당 검찰개혁 특위 대변인인 오기형 의원은 지난 17일 <아시아경제>와의 통화에서 “검찰 인사를 할 때 섣불리 판단하지 않도록 숙려하고 자문을 받는 등 절차적으로 보완하는 방안을 논의 중”이라며 “인사권은 국민이 뽑아준 대의기구가 민주적 정당성을 갖고 행사하는 것이므로, 만약 검찰총장이 인사권을 행사한다면 민주주의 질서에 반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중간간부도
총장 배제?

한편 검찰 중간간부 인사가 또 다른 뇌관이 될 수 있다는 관측이 나온다. 통상 법무부는 고위간부 인사 후 일주일 뒤에 중간간부 인사를 해왔다. 하지만 신 수석 사의 표명 등의 문제가 불거지면서 예상과 달리 중간간부 인사가 다소 늦춰질 수 있다는 전망이 나온다. 고위간부 인사에 이어 중간간부 인사에서도 윤 총장 패싱 논란이 불거지면 법무부와 검찰 간의 대립각은 더 첨예해질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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탈세보다 무서운 산재와의 전쟁

탈세보다 무서운 산재와의 전쟁

[일요시사 취재1팀] 장지선 기자 = 이재명 대통령이 ‘산재와의 전쟁’을 선포했다. 건설 현장에서 근로자가 사망하는 사건을 줄이겠다는 취지다. 이 대통령이 칼을 휘두르자 기업은 납작 엎드렸다. 이 대통령의 행보를 보는 시각은 엇갈린다. 산재 사망사고가 끊이지 않는 만큼 단호한 조치가 필요하다며 환영하는 의견과 구조적 문제를 뒤로하고 기업 ‘잡도리’만 하고 있다는 의견 등이다. 건설업계에 칼바람이 불고 있다. 미국발 관세나 국내 경기 문제가 아니다. 산업재해(이하 산재)가 건설 현장을 뒤흔드는 중이다. 대통령은 여러 현안 중 산재로 인한 사망사고 근절을 국정 과제 첫머리에 올린 듯한 모습이다. 대통령 한마디 이재명 대통령이 반복되는 산재 사망사고의 고리를 끊겠다고 나섰다. 산재 사망사고가 발생한 기업을 법과 제도를 통해 처벌하겠다고 선언했다. 발언 수위도 나날이 세지고 있다. 본보기가 된 기업은 대통령이 일으킨 칼바람을 온몸으로 맞는 모양새다. 지난 5월 고용노동부가 발표한 1분기 ‘산업재해 현황 부가 통계’에 따르면 올해 1~3월 재해 조사 대상 사고 사망자는 총 137명(잠정)으로 지난해 같은 기간(138명)보다 1명(0.7%) 줄었다. 사망사고 건수도 같은 기간 136건에서 129건으로 7건(5.1%) 감소했다. 업종별로는 제조업이 29명으로 지난해보다 2명, 기타 업종(건설업과 제조업 이외 업종)이 38명으로 6명 감소했지만 건설업은 71명으로 오히려 7명 늘었다. 노동부는 부산 기장군 건설 현장 화재와 서울-세종고속도로 교량 붕괴 등 대형 사고의 영향으로 건설업 사망자 수가 증가했다고 분석했다. 지난 2월14일 부산 기장군 반얀트리 리조트 신축 공사장에서 불이 나 6명이 숨졌다. 또 같은 달 25일, 경기도 안성시 서울-세종고속도로 건설 현장 교량 상판 구조물이 붕괴해 4명이 목숨을 잃는 사고가 일어났다. 규모별로는 상시 근로자 50인(건설 업종은 공사 금액 50억원) 미만 사업장에서 올해 1분기 사망자는 83명으로 지난해보다 5명(6.4%), 사망사고 건수는 83건으로 7건(9.2%) 늘었다. 반면 50인 이상 대형 사업장과 대규모 공사 현장에선 사망자 54명, 사고 건수 46건으로 각각 6명, 14건 줄었다. 사망사고 유형별로는 ‘추락’ 62명, ‘끼임’ 11명, ‘물체에 맞음’ 16명으로 지난해와 비교해 각각 1명, 7명, 5명 감소했다. 화재와 폭발로는 10명, ‘붕괴’ 사고로는 11명이 목숨을 잃었다. 지자체별로는 경기(31명), 서울(17명), 경북(15명), 부산·전남(12명), 경남(11명), 충남(9명), 강원·울산(6명) 순으로 많았다. 산재로 인한 사망은 건설 현장에서 일어날 수 있는 최악의 사고다. 정부는 산재 사망사고를 줄이기 위한 각종 대책을 내놨다. 2022년 1월부터 시행된 중대재해처벌법(이하 중처법)도 그중 하나다. 중처법은 근로자의 사망사고 등 중대 재해가 발생했을 때 기업의 경영 책임자 등이 안전 보건 관리 체계 구축 등 의무를 위반한 것으로 확인되면 처벌하도록 하는 내용이 골자다. 취임 이후부터 직접 챙겨 국정 운영 계획에도 포함 문제는 실효성이다. 중처법이 시행된 이후에도 건설 현장에서 근로자가 죽는 일이 계속 일어나고 처벌은 ‘솜방망이’ 수준에 그친다는 지적이 끊이지 않았다. 결국 이 대통령이 칼을 빼 들었다. 이 대통령은 지난 12일 “비용을 아끼기 위해 누군가의 목숨을 빼앗는 것은 일종의 미필적 고의에 의한 살인, 또는 사회적 타살”이라고 비판했다. 필요하면 법을 개정해서라도 ‘산재 공화국’이라는 오명을 벗겠다는 뜻도 밝혔다. 이 대통령은 이날 국무회의에서 “일상적으로 산업 현장을 점검해서 필요한 안전조치를 하지 않고 작업하면 엄정하게 제지해야 하지 않을까 싶다”며 “제도가 있는 범위 내에서 할 수 있는 최대의 조치를 해달라”고 주문했다. 사고 위험이 큰 업무를 하청과 외주를 통해 해결하는 ‘위험의 외주화’ 현상에 대해서도 지적했다. 이 대통령의 산재 사망사고 근절 ‘드라이브’는 점진적으로 거세지고 있다. 초기에는 주무 부처에 대책을 요구했다면 최근에는 직접 목소리를 내고 움직이는 식이다. 대통령이 직접 나서서 산재를 줄이라고 지시했는데도 불구하고 사망사고가 이어지자 특유의 행동력을 보이고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실제 이 대통령이 고용노동부에 산재 관련 종합 대책을 주문한 뒤에도 ▲인천 맨홀 작업 노동자 질식사 ▲포스코이앤씨 노동자 끼임사 ▲경기 의정부 아파트 신축 현장 노동자 추락사 등의 사고가 일어났다. 불과 한 달 새 일어난 일이다. 지난달 6일 인천 계양구 병방동의 한 도로 맨홀 안에서 지하 시설물 조사 작업 중이던 노동자 1명이 의식을 잃고 1명은 실종됐다. 이들은 결국 사망했다. 조사 결과 이 사고는 용역 계약 위반에 따라 허가 절차 없이 진행하다가 발생한 인재로 드러났다. 법으로도 안 됐는데… 숨진 근로자는 산소 마스크 등 안전 장비를 제대로 착용하지 않은 채 작업하다 유독가스에 중독된 것으로 알려졌다. 당시 이 대통령은 “현장 안전 관리에 미흡한 점이 있었는데 철저히 밝히고 법령 위반 여부가 있었는지를 조사해 책임자를 엄중히 조치하라”며 “후진국형 산업재해가 다시는 발생하지 않도록 현장 안전관리를 정비하고 사전 지도·감독을 강화하는 등 관련 부처도 특단의 조처를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하지만 지난달 28일 포스코이앤씨가 시공하는 경남 함양-울산고속도로 의령나들목 공사 현장에서 사면 보강 작업을 하던 60대 근로자가 천공기(지반을 뚫는 건설기계)에 끼어 숨지는 사고가 일어났다. 포스코이앤씨 시공 현장에서만 올해 들어 4번째 일어난 사망사고다. 지난 1월 경남 김해 아파트 신축 현장 추락사고, 경기도 광명 신안산선 건설 현장 붕괴사고, 대구 주상복합 신축 현장 추락사고 등도 줄을 이었다. 이 대통령은 “똑같은 방식으로 사망사고가 나는 것은 결국 죽음을 용인하는 것이고 아주 심하게 얘기하면 법률적 용어로 미필적 고의에 의한 살인”이라고 질타했다. 그러면서 “(산재 사망사고가 나면) 여러 차례 공시하도록 해서 투자를 안 하고 주가가 폭락하게 (해야 한다)”고도 말했다. 여름휴가를 마치고 복귀 첫 일성도 산재 관련 발언이었다. 이 대통령은 “앞으로 모든 산업재해 사망사고는 최대한 빠른 속도로 대통령에게 직보하라”고 지시했다. 산재 사망사고를 직접 챙기겠다는 의지를 다시 한번 천명한 것이다. 사과문 내고 또 반복되다 지난 9일 강유정 대통령실 대변인을 통해 전해진 이 대통령의 발언은 전날인 8일 경기 의정부 신축 아파트 공사 현장에서 안전망 철거 작업을 하던 50대 근로자가 6층 높이에서 떨어져 숨진 사고가 영향을 미쳤다. 이 대통령이 선포한 ‘산재와의 전쟁’에 기업은 바짝 얼어붙은 상황이다. 지난달 25일 경기 시흥 SPC 삼립 공장을 방문해 ‘중대산업재해 발생 사업장 현장 간담회’를 열었다. 해당 공장은 지난 5월 50대 여성 노동자가 작동 중인 컨베이어벨트에 끼어 사망했고 2022년과 2023년에도 여성 노동자가 각각 소스 교반기와 반죽 기계에 끼어 숨지는 등 중대 산재가 빈번하게 일어났던 곳이다. 이 대통령은 이날 간담회에서 SPC 근로자의 노동 시간 등을 자세히 물었다. 그러면서 “(산재가) 심야에 대체적으로 발생하고 12시간씩 4일간 일하다 보면 사실 심야 시간에 힘들다. 주의력이 떨어질 수밖에 없다”며 “심야 장시간 노동 때문에 생긴 일로 보여진다”고 말했다. 이 대통령의 지적에 SPC 회장을 비롯해 그룹 관계자들이 쩔쩔맨 것으로 전해졌다. SPC그룹은 이 대통령이 다녀간 지 이틀 만인 지난달 27일, 8시간 초과 야근을 폐지하겠다는 대책을 내놨다. 제품 특성상 필수적인 품목 외에는 야간 생산을 최대한 없애 공장 가동 시간을 축소하겠다는 것이다. 또 주간 근무 시간도 점진적으로 줄여 장시간 근무로 인한 피로 누적, 집중력 저하, 사고 위험 등을 사전에 차단하겠다고 밝혔다. 포스코이앤씨는 지난달 29일 담화문을 내고 고개를 숙였다. 정희민 전 대표이사는 “어제(28일) 사고 직후 모든 현장에서 즉시 모든 작업을 중단했고 전사적 긴급 안전 점검을 실시해 안전히 확실하게 확인되기 전까지 무기한 작업을 중지하도록 했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협력업체를 포함한 모든 근로자의 안전이 최우선 가치가 되도록 필요한 자원과 역량을 총동원해 근본적인 쇄신 계기로 삼겠다”며 “또다시 이런 비극이 발생하는 일이 없도록 사즉생의 각오와 회사의 명운을 걸고 안전 체계의 전환을 이뤄내겠다”고 말했다. 하지만 정 전 대표의 사과는 엿새 만에 또다시 일어난 사고로 빛이 바랬다. 지난 4일 오후 경기 광명시 옥길동 광명-서울고속도로 민간투자사업 제1공구 현장에서 미얀마 국적 30대 근로자가 감전돼 심정지 상태로 발견됐다. 이 근로자는 병원으로 이송된 지 8일 만인 지난 12일 의식을 회복했다. 높아진 발언 수위·제재 조치 “왜 기업만 잡도리?” 의견도 정 전 대표는 사의를 표명하고 물러났다. 연이어 산재사고가 일어난 포스코이앤씨는 ‘본보기’가 될 가능성이 커진 상황이다. 일단 이 대통령은 포스코이앤씨에 대한 건설 면허 취소, 공공 입찰 금지 등 법률상 가능한 방안을 모두 찾아서 보고하라는 지시를 내린 바 있다. 국내 건설 면허 취소는 현행 건설산업기본법상 최고 수위의 징계다. 1994년 성수대교 붕괴 책임이 있던 동아건설산업에 내려진 사례가 유일하다. 건설 면허가 취소되면 신규 사업을 할 수 없고, 다시 면허를 취득한다고 해도 수주 이력이 없기 때문에 관급공사를 따내는 것이 사실상 불가능하다. 경찰은 사고 관련 수사 전담팀을 만들고 고용노동부 안양지청과 함께 포스코이앤씨와 하청업체에 대한 압수수색에 돌입했다. DL건설도 대표이사를 비롯한 임원진 전원이 공사 현장에서 발생한 사망사고에 책임을 지고 일괄 사표를 제출하는 등 납작 엎드렸다. 특히 이 대통령이 휴가에서 돌아와 산재 관련 발언을 한 직후 터진 사고여서 충격파가 더 컸다. DL건설에서 사표를 제출한 임직원은 80여명, 공사를 중단한 현장은 44곳에 이른다. 이재명정부는 산재사고로 인한 사망자 비율을 2030년까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평균 수준인 1만명당 0.29명까지 끌어내리는 방안을 추진하기로 했다. 지난해 우리나라에서 발생한 산재로 인한 사망자 비율은 1만명당 0.39명으로 OECD 평균을 크게 웃도는 실정이다. 이 같은 내용은 ‘이재명정부 국정 운영 5개년 계획’에 포함됐다. 이 대통령이 지난달 수석보좌관 회의에서 “전 세계에서 또는 OECD 국가 중 산업재해율, 사망재해율이 가장 높다는 불명예를 이번 정부에서 반드시 끊어내겠다”고 의지를 드러낸 부분을 국정과제로 담은 것이다. 구조 문제 나 몰라라 일각에서는 이 대통령이 지나치게 건설업계만 잡고 있다는 지적도 제기된다. 관련 법과 제도가 시행되고 있는데도 사망사고가 끊이지 않는다면 구조적인 문제도 살펴봐야 한다는 것이다. 수주 경쟁이 과열되면서 저가 입찰이 늘고 안전관리에 소홀해지는 점이 산재로 이어지는 식의 고리를 끊어야 진정한 의미의 ‘근절’이 이뤄질 것이라는 분석도 있다. <jsjang@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