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인’ 윤석열 ‘대권’ 큰그림

이낙연 잡고 이재명 맞장 뜬다

[일요시사 취재1팀] 장지선 기자 = 윤석열 검찰총장이 검찰을 떠났다. 문재인 대통령은 윤 총장이 사의를 표명한 지 1시간 만에 수용 의사를 밝혔다. 야인이 된 윤 총장 앞에 놓인 선택지는 많지 않지만 그의 선택에 따라 재보궐선거는 물론 대선까지 요동칠 것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대선을 1년 남짓 앞둔 상황에서 윤 총장이 또 다시 태풍의 눈으로 떠올랐다.
 

▲ 윤석열 전 검찰총장

윤석열 검찰총장이 지난 4일 전격 사퇴 의사를 밝혔다.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 등 여권에서 추진 중인 중대범죄수사청(이하 중수청) 입법 추진을 반대하며 직을 던진 것. 지난 2일 언론 인터뷰, 3일 대구 방문 발언, 4일 사의 표명 등 중수청에 대한 작심 비판 발언을 쏟아낸 지 이틀 만에 내린 결정이다. 

작심 발언
이틀 만에

윤 총장은 이날 대검철창 청사 현관 앞에서 “오늘 총장을 사직하려고 한다”면서 “이 나라를 지탱해 온 헌법정신과 법치 시스템이 파괴되고 있다. 그 피해는 오로지 국민에게 돌아갈 것”이라고 우려했다. 그러면서 “우리 사회가 오랜 세월 쌓아 올린 상식·정의가 무너지는 것을 더 이상 지켜보기 어렵다”고 말했다. 

이어 “검찰에서 제 역할은 여기까지”라며 “지금까지 해왔듯이 앞으로도 제가 어떤 위치에 있든지 자유민주주의와 국민을 보호하는 데 온 힘을 다하겠다”고 강조했다. 또 “그동안 저를 응원하고 지지해주셨던 분들, 제게 날 선 비판을 주셨던 분들 모두에게 감사드린다”고 덧붙였다. 

윤 총장은 지난 2일 언론 인터뷰를 시작으로 중수청 입법에 대해 반대 목소리를 내왔다. 중수청법은 검·경 수사권 조정으로 검찰에 남은 6개의 범죄 수사권조차 완전히 폐지하자는 취지의 법안이다. 윤 총장은 지난 3일 대구고검·지검을 방문한 자리에서 “‘검수완박’(검찰 수사권 완전 박탈)은 부패를 완전히 판치게 하는 ‘부패완판’”이라고 비판했다. 


윤 총장이 2년 임기를 4개월여 앞두고 물러나면서 1988년 검찰총장 임기제가 시행된 뒤 취임한 22명의 검찰총장 중 임기를 채우지 못한 14번째 검찰 수장이 됐다. 추·윤 갈등이 극에 달한 상황에서도 자리를 지킨 윤 총장이었기에 임기를 마칠 것이라는 관측이 우세했지만 결국 중도 사퇴를 선택했다. 

문재인 대통령은 윤 총장이 사의를 표명한 지 1시간 만에 즉각 수용했다. 정만호 청와대 국민소통수석은 이날 춘추관 브리핑을 통해 “문 대통령은 윤 총장의 사의를 수용했다”고 짧은 입장문을 발표했다. 정치적 중립성을 지켜야 하는 검찰총장이 공개 사의 표명을 통해 정치적 색깔을 드러냈다는 점에서 사표 수리를 미룰 필요가 없다는 뜻이 강하게 반영됐다는 분석이다.  

중수청 반대 명분으로 사의
문 대통령 초스피드로 수용

지난 1월18일 문 대통령은 신년 기자회견에서 “윤 총장은 문재인정부의 검찰총장”이라고 말한 바 있다. 추미애 당시 법무부 장관과의 갈등 국면을 마무리하고 임기가 끝날 때까지 직을 다하라는 시그널로 풀이됐다. 그러면서 “윤 총장이 정치를 염두에 두고 정치할 생각을 하면서 지금 검찰총장 역할을 하고 있다고 생각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문 대통령은 윤 총장의 사의 수용 이후 신현수 민정수석의 사표도 바로 수리했다. 신 전 수석은 검찰 고위간부 인사를 두고 박범계 법무부 장관과 갈등은 빚은 후 여러 차례 사의를 밝힌 바 있다. 후임 민정수석에는 김진국 감사원 감사위원을 임명했다. 민정수석에 다시 비 검찰출신을 임명하면서 검찰개혁 의지를 드러냈다는 말이 나오고 있다. 
 

▲ 문재인 대통령

윤 총장은 사퇴 의사를 밝힌 후 검찰 내부망에 ‘검찰가족께 드리는 글’을 올려 고별인사를 남겼다. 그는 “오늘 검찰총장의 직을 내려놓는다”며 “여러분들과 함께 ‘공정한 검찰, 국민의 검찰’을 목표로 최선을 다했지만 더 이상 검찰이 파괴되고 반부패시스템이 붕괴되는 것을 지켜만 볼 수는 없었다”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검찰 수사권 폐지와 중수청 설치는 검찰개혁이 아니다”라며 “이는 대한민국 법치주의를 심각하게 훼손하는 것”이라고 비판했다. 이어 “수사와 재판 실무를 제대로 해보지 않은 사람들은 이런 졸속 입법이 나라를 얼마나 혼란에 빠뜨리는지 모를 것”이라며 “국민들의 생활과 직접 관련돼 있기 때문에 한번 잘못 설계되면 국민 전체가 고통을 받게 된다”고 지적했다. 


그는 “지금껏 총장직을 수행할 수 있었던 것은 모두 여러분들의 덕분”이라며 “동요하지 말고 항상 국민을 섬기는 자세로 본연의 업무에 최선을 바란다”고 당부했다. 

민정수석도
사표 수리

그간 윤 총장의 중도 사퇴를 주장해왔던 민주당은 그의 이번 행보에 맹비난을 퍼부었다.

민주당 허영 대변인은 지난 4일 국회 소통관 브리핑에서 “국민의 신뢰를 받는 기관이 될 때까지 검찰 스스로 개혁 주체가 돼 중단 없는 개혁을 하겠다던 윤 총장의 취임사는 거짓이었음이 드러났다”고 말했다. 

허 대변인은 “사람에 충성하지 않는다는 윤 총장은 오로지 검찰이라는 권력기관에 충성하며 이를 공정과 정의로 포장해왔다”며 “검찰의 선택적 정의와 선택적 수사는 살아있는 권력에 대한 수사이고 검찰의 제 식구 감싸기는 윤석열 죽이기로 포장하며 정치검찰의 능력을 보여왔다”고 비판했다. 

반면 국민의힘은 윤 총장의 사퇴에 대해 “대한민국의 상식과 정의가 무너진 것을 확인한 참담한 날”이라는 논평을 내놨다.

국민의힘 배준영 대변인은 “윤 총장이 결국 직을 내려놓았다. 사욕과 안위가 먼저인 정권의 공격에 맞서는 데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었을 것”이라며 “헌법정신과 법치시스템이 파괴되는 것을 지켜볼 수밖에 없었던 검찰총장의 회한이 짐작된다”고 전했다.
 

▲ 박범계 법무부 장관 ⓒ박성원 기자

이어 “문재인정권의 ‘우리 윤 총장님’이 사퇴하면, 정권의 폭주를 막을 마지막 브레이크가 없어지는 셈이다. 정권의 썩은 부위를 도려낼 수술용 메스가 없어지는 격”이라며 “정권의 핵심과 그 하수인들은 당장 희희낙락할지 몰라도, 이제 앞으로 오늘 윤 총장이 내려놓은 결과의 무게를 감당해야 할 것”이라고 경고했다. 

윤 총장 사의를 두고 여야가 극과 극의 입장을 내놓은 셈이다.

일각에선 윤 총장의 사퇴가 사실상 정계 진출 선언이라는 분석이 나오고 있다. 윤 총장은 지난해 추미애 전 법무부 장관과 1년 가까이 갈등을 빚으면서 잠재적 대선주자로 떠오른 바 있다. 추 전 장관과의 갈등이 극에 달할 무렵에는 이재명 경기도지사, 이낙연 민주당 대표를 제치고 여론조사 1위에 오르기도 했다. 

여, 비난
야, 떨떠름

실제 윤 총장이 검찰총장직을 버리고 야인으로 돌아가겠다는 선언을 하면서 정치권이 요동치고 있다. 4·7 재보궐선거를 불과 한 달 앞둔 상황에서 여야는 윤 총장의 선언이 서울·부산시장 선거에 미칠 영향을 가늠하는 데 관심을 쏟고 있다. 특히 여권의 경우 가덕도 신공항, 재난지원금 이슈 등이 윤 총장 이슈에 모두 잠식될 상황에 처했다.


민주당은 박영선 전 중소벤처기업부 장관을, 국민의힘은 오세훈 전 서울시장을 서울시장 후보로 결정했다. 현재 서울시장 선거에서 가장 관심을 모으고 있는 이슈는 국민의힘 후보자와 국민의당 안철수 대표의 단일화였다. 민주당 박 후보에 맞설 야권 단일후보를 뽑는 문제를 두고 기싸움이 한창이었던 것. 

이 와중에 ‘윤석열 이슈’가 불거지면서 선거판은 안갯속으로 들어가는 모양새다.

국민의힘 박형준 후보가 타 후보에 비해 높은 지지율을 기록하고 있는 부산시장 선거와는 딴판이다. 서울시장 선거의 경우 여야 일대 일 구도로 선거가 치러진다면 쉽게 승자를 예측할 수 없을 정도로 박빙인 상황에서 정치권은 윤 총장의 사퇴가 어느 쪽에 유리할지를 두고 셈 계산에 나선 상황이다. 
 

▲ 추미애 전 법무부 장관 ⓒ고성준 기자

엠브레인퍼블릭·케이스탯리서치·코리아리서치·한국리서치 등 4개 여론조사기관이 지난달 22일부터 24일까지 조사한 2월 4주차 전국지표조사에 따르면 재보선 성격에 대해 ‘국정 안정론’이라고 응답한 비율이 43%, ‘정권 심판론’이라고 응답한 비율은 40%로 팽팽했다(자세한 내용은 중앙선거여론조사심의위원회 홈페이지 참조).

대선을 바라보는 여야의 속내는 더 복잡하다. 현재 대선주자 구도는 이재명 경기도지사를 선두로 민주당 이낙연 대표가 그 뒤를 따르고 있다. 야권에서는 변변한 후보조차 내세우지 못하고 있다. 윤 총장은 그 사이에서 대선지지율 3위권에 안착해 있다. 보수 잠룡이 전멸하다시피 한 야권 입장에서는 마냥 반길 수 없는 대목이다.

실제 윤 총장의 사퇴에 대선주자들이 말을 보탰다. 이 지사는 지난 4일 KBS1 라디오 <주진우 라이브>에 출연해 “한 명의 국민으로서 정치적 자유를 충분히 누리고 표현도 충분히 하고 결국 정치를 할 것으로 판단된다”며 “합리적 경쟁을 통해 국민에게 도움이 되는 정치 활동을 하면 좋겠다”고 말했다.


정치권 후폭풍에 촉각 세워
재보궐·대선판 요동칠 듯

그러면서도 “착잡하다. 선축된 권력으로부터 임명된 공직자의 책임을 강조하고 싶다”며 “검찰이 있는 죄를 덮고 없는 죄를 만들며 권력을 행사하는 적폐 노릇을 하지 않았느냐는 점에 대해 인식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민주당 이 대표는 윤 총장 사퇴에 대해 “상식적이지 않은 뜬금없는 처신”이라며 비판했다.

정세균 국무총리는 “정치를 하려고 하는가 보다, 하는 느낌은 있었다”며 유감을 표했다. 그는 4일 오후 정부서울청사 합동브리핑실에서 “대단히 유감스럽게 생각한다”고 윤 총장 사퇴에 대해 언급했다. 이어 “물론 내가 예상을 하지는 않았다”며 “윤 총장이 임기 내내 대통령님의 국정철학을 잘 받들고 국민들의 여망인 검찰개혁을 잘 완수해주기를 기대했었는데 이런 일이 일어났다”고 말했다. 

일각에선 윤 총장의 사퇴 시점이 절묘했다는 분석이 나온다.
 

▲ 최강욱 열린민주당 대표 ⓒ고성준 기자

열린민주당 최강욱 대표가 발의한 이른바 ‘윤석열 출마금지법’을 피해갔기 때문이다. 최 대표는 지난해 12월 ‘현직 검사나 법관이 공직선거 후보자로 출마하려면 1년 전까지 사직해야 한다’는 내용을 담은 검찰청법·법원조직법 개정안을 발의했다. 현행 공직선거법에 따르면 판·검사가 선거에 출마하려면 선거일 90일 전에만 사퇴하면 되는 것을 대폭 강화한 것이다. 

이 법이 통과됐다면 윤 총장은 오는 9일까지 물러나야 내년 대선(2022년 3월9일)에 나설 수 있다. 최 대표가 법안을 발의할 당시 윤 총장은 대권지지율 1위를 달리고 있었다.

당시 야권에선 최 대표가 발의한 법안을 두고 ‘윤석열 죽이기 완결판’이라고 비판한 바 있다. 최 대표는 윤 총장 사퇴 이후 자신의 페이스북에 “설마 제가 발의했지만 아직 통과되지도 않은 ‘판·검사 출마제한법’ 때문에 오늘을 택한 건 아니겠지요?”라고 올렸다. 

출마방지법
5일 전에…

윤 총장이 당장 대선 행보에 나설 것이라고 보는 시각은 많지 않다. 하지만 대선을 앞두고 1년여 전에 검찰총장 직을 내려놓은 만큼 충분한 시간을 거쳐 거취 표명을 할 것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당장 이번 재보궐선거에서 어떤 움직임을 취할 것이라는 예측도 제기된다. 이미 선거 정국에 들어선 상황에 윤 총장이 또다시 태풍의 눈이 될 전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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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석특집 대담> 정치 9단 김종인 대한민국을 묻다

[추석특집 대담] 정치 9단 김종인 대한민국을 묻다

[일요시사 정치팀] 박형준·박희영 기자 = 국민의힘 김종인 전 비상대책위원장은 더불어민주당의 검찰개혁에 대해 “검찰을 3개로 찢어놓는다고 해서, 검찰이 정상적으로 돌아갈 것이란 확신은 못하겠다”고 비판했다. 김 전 비대위원장은 국민의힘에 대해서도 “강경 보수로 회귀하면, 희망이 있다고 보이진 않는다”고 경고했다. 국민의힘 김종인 전 비상대책위원장은 개혁신당 공천관리위원장을 끝으로 정치에 직접 개입하지 않고 있다. <일요시사>는 추석 연휴를 앞두고 김 전 비대위원장을 만나 그가 제시하는 정국 진단 결과와 향후 우리 정치가 나아가야 할 길을 들었다. 다음은 김 전 비대위원장과의 일문일답. -출범 100일을 넘긴 이재명 정부를 어떻게 평가하는가? ▲100일 동안 별 탈 없이 무난하게 잘했다고 본다. 국민과 소통하려고 애를 많이 썼다. -추석을 앞두고 지급된 2차 민생회복 소비쿠폰에 대한 의견은? ▲민생 경제가 굉장히 어렵고, 우리나라의 총수요가 낮아졌다. 한국은행이 진단한 올해 성장률도 0.9%밖에 안 된다. 쿠폰을 풀면, 약간의 소비 촉진 효과는 있을 것이다. 하지만 우리 경제가 당면한 문제를 해결하기엔 부족하다. -이재명 대통령과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정상회담은 겉보기엔 훈훈했다. 하지만 미국 정부의 3500억달러 투자 펀드 조성 요구와 노동자 317명 추방 등 사태와 맞물려 이 대통령에 대한 비판 여론이 불거졌다. ▲우리 경제 부처 장관들이 미국 월가를 이해하지 못한 채 막연하게 생각한 것 같다. 그래서 “미국의 요구는 보증·대출을 거쳐 이행하면 될 것”이라고 이해한 것 같다. 근본적인 시각 차이 때문에 협상이 타결되지 못했다. 그런데 국민에겐 마치 타결된 것 같은 인상을 줬다. 한 달도 안 돼 사실이 드러났기 때문에 국민은 의아하게 생각할 수밖에 없다. -트럼프 대통령과 함께하는 미국의 MAGA 진영은 우리나라 일각의 부정선거론을 지지하면서 “한국이 공산주의에 진입하고 있다”고 주장한다. 어떻게 보는가? ▲그들은 미국이 어떻게 위대한 나라가 됐는지 이해하지 못했다. 트럼프의 MAGA 프로젝트는 성공하기 힘들다고 생각한다. 우리와도 관계가 없다. “MAGA 진영이 우리 정치에 개입할 것”이란 믿음은 국내 보수 진영의 희망 사항일 뿐이다.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은 검찰 해체를 서둘러 마무리하려고 한다. 민주당이 새로 구상하는 검찰 체계에 대한 평가는? ▲큰 의미를 부여하지 않는다. 검찰의 문제는 지금까지 권력자가 검찰을 이용해 자신의 권력을 유지하려고 한 것으로부터 비롯된다. 이 때문에 검찰도 못된 버릇이 들어 이렇게 됐다. 개혁보다 “검찰을 어떻게 활용하느냐”가 진짜 문제다. 검찰을 3개로 찢어놓는다고 해서, 검찰이 정상적으로 돌아갈 것이란 확신은 못하겠다. -이 대통령이 노태우 전 대통령의 장남 재헌씨를 주중대사로 임명했다. 노 대사가 어떤 역할을 할 것 같은가? ▲노 전 대통령은 한중 수교를 이끌었다. 노 대사는 동아시아문화센터 이사장으로서 한중 문화 교류와 관련된 많은 역할을 했다. 이 대통령이 이를 참작해 중국 대사로 임명하는 신선한 인사를 한 것 같다. 이 대통령도 자신에게 정치적으로 유리하다고 생각했으니 노 대사를 임명했을 것이다. -최근 민주당의 내부 구도를 놓고 ‘김어준 상왕설’이 불거지고 있다. 이 주장은 정국을 강경하게 이끄는 민주당 정청래 대표의 대응과 맞물리고 있는데… ▲김어준씨가 유튜브를 시청하는 일정 부류엔 영향력을 행사할 것이다. 그런데 대중에게 크게 영향력을 행사한다고 보진 않는다. 대통령이 엄연히 있기 때문이다. ‘상왕설’은 너무 과장된 얘기라고 생각한다. -최근 특검 수사 기간 연장과 관련해 정 대표와 민주당 김병기 원내대표가 충돌했다. ▲내부 의견 충돌 때문에 일어난 사건이다. 내가 보기엔 김 원내대표가 독단적으로 합의한 것 같진 않다. 합의 후 강성 지지층이 반발해서 문제가 생겼다. 그래서 합의를 파기하려다 보니 두 사람 사이에 갈등이 생겼다. 그 자체가 대단히 중요하다고 생각하진 않는다. -이 대통령과 정 대표는 과거에 갈등이 많았고, 최근 민주당에 대해선 “친명과 구 친문이 갈등하는 게 아니냐”는 얘기가 나온다. ▲그건 다 괜히 하는 소리다. 대통령이 엄연히 있는데, 당 대표가 대통령을 상대로 자신의 의사를 관철하기가 쉽진 않다. -민주당 일각에선 조국혁신당(이하 혁신당)에 합당을 요구하는 목소리가 나온다. ▲혁신당 조국 비대위원장은 목표가 정해진 사람이다. 합당이 그 목표 실현에 유리할지 많이 생각할 것이다. 아울러 조 비대위원장으로선 혁신당만으로 전국 단위 선거를 치를 수 있을지 고민할 텐데, 상황에 직면하면 합당 여부를 정하지 않겠나? 합당은 민주당 내부에서도 받아들일 의사가 있어야 진행될 수 있다. 자신들에게 미칠 영향을 생각하면서 합의점에 도달하면 합당 여부를 결정할 것이다. “대통령 있는데 당대표가 어떻게 의사 관철?” “장동혁은 대권 욕심 갖고 계속 변화할 것” -국민의힘 안철수 의원이 이끌던 국민의당과 혁신당은 총선을 치르면서 호남에서 선전해 존재감을 드러냈다. 내년 지방선거에서 호남 민심이 어떤 선택을 할 거라고 보나? ▲두고 봐야 안다. 호남 민심은 제19대 대선에선 안 의원이 아니라 문재인 전 대통령을 선택했다. 호남 유권자들은 상당히 전략적으로 투표한다. 그들은 정권 재창출이 가능한 후보에게 표를 몰아준다. 그러니 선거를 치러봐야 알 수 있다. 지금은 뭐라고 얘기하기 어렵다. -장 대표가 취임하자, 강경 보수 유튜버들은 “군소 보수 정당에 지방자치단체장 30석을 내놓으라”고 요구하고 있다. “국민의힘과 강경 보수 유튜버들이 너무 밀착한다”는 일각의 주장에 대해선 어떻게 생각하는가? ▲국민의힘이 계속 지금과 같은 자세를 유지하면, 희망이 별로 보이지 않는다. 국민의힘은 지난해 12월 비상계엄 사태와 윤석열 전 대통령 파면 이후 우리 정치 지형이 어떻게 변하고 있는지 냉철하게 분석해야 한다. 변화가 있어야 국민의 지지를 얻을 수 있다고 생각한다. 요즘처럼 강경 보수로 회귀하면, 희망이 있다고 보이진 않는다. -장 대표는 강경 보수와의 밀착과 중도층 공략 사이에서 계속 의견이 바뀐다. ▲장 대표에게도 정치적 목표가 있을 텐데 그는 목표 달성을 위해 많은 변화를 할 수 있는 능력이 있다. 강경 보수의 지원을 받아 당 대표가 됐지만, 자신의 정치적 지향점을 어떻게 결정할지 잘 생각해 봐야 한다. 만약 “지나치게 강경 보수와 밀착하면 안 된다”고 생각하면, 어느 정도는 그들과 선을 그을 필요가 있다. 하지만 선을 긋는 데 한계가 있을 것이다. 이를 극복하지 못하면, 그에게는 크게 정치적 기대를 하기 힘들다고 본다. -개혁신당 이준석 대표는 “장 대표가 용꿈을 꾸고 있다”고 평가한다. ▲장 대표도 어차피 당 대표가 됐으니, 대권 욕심을 가질 것이다. 정치인은 언제나 시대 변화에 적응해야 한다. 장 대표 스스로 “변화하는 능력이 있다”고 생각한다면, 계속 많이 변할 것이다. -국민의힘 한동훈 전 대표는 장 대표가 당선되면서 위상이 많이 훼손됐다. 비상계엄 사태 이후 한 전 대표의 행보를 어떻게 평가하는가? ▲국민의힘 당원들은 상당한 분노에 차 있었기 때문에 갑자기 강경해졌다. 세월이 흘러 당원들이 당을 위해 어떤 역할을 해야 하는지 알게 되면, 또 변할 수도 있다. 지금 상황만으로 판단하기엔 굉장히 이르다. 한 전 대표가 당시 여당 대표로서 비상계엄 선포 직후 반대 의견을 밝히면서 윤 전 대통령 탄핵소추에 찬성한 것은 굉장히 용기 있는 행동이라고 생각한다. 그가 앞으로 어떻게 정치적으로 발전할지는 아직 모르겠다. 그래도 국민의힘에선 가장 올바른 판단을 했다고 본다. -장 대표가 한 전 대표에 대한 강경한 태도를 바꾸지 않고 있다. ▲장 대표로선 당연히 한 전 대표를 국민의힘에서 쫓아내고 싶을 것이다. 그런데 쫓아낼 수 있겠는가? 어떻게 쫓아내겠나? 오늘의 장 대표는 한 전 대표 덕분에 존재하는 것이다. -이 대표는 국민의힘 안철수 의원, 오세훈 서울시장 등과 지방선거에서 연대할 가능성을 내비친다. ▲뻔한 사람들끼리 하는 거라서 큰 효과가 있을 것 같진 않다. 모두 국민의힘 사람이거나 국민의힘 출신인데 특별한 효과가 있겠는가? -진영 간 대결 구도가 성별·세대 갈등 구도로 번졌다. 정치권 원로로서 어떻게 생각하는가? ▲그건 어쩔 수 없는 것이다. 시대·사회·경제 구조가 변하고, 새 기술이 도입되면 의견이 분분할 수밖에 없다. 국민 사이에 형성되는 ‘그룹’을 조화시킬 수 있는 정치적 능력이 필요하다. 이런 능력이 없는 사람은 정치적으로 성공할 수 없다. “이준석·안철수·오세훈? 뻔한 사람들” “국힘, 강경 보수로? 희망 보이지 않아” -일부 정치인은 갈등을 이용해 정치적 영향력을 확대하면서 후원금을 벌고 있다. ▲큰 도움이 되진 않을 것이다. 갈등을 전체적으로 포괄한 후 최대공약수를 찾아 정치해야 한다. -과거 정치와 현재 정치의 가장 큰 변화와 차이점은? ▲못 살던 시절엔 먹고사는 게 가장 중요해서 경제가 가장 큰 영향을 미쳤다. 그런데 먹고사는 문제가 어느 정도 해결된 지금은 국민의 의식 구조가 과거와 다르다. 이 시대의 젊은 세대는 우리 국민 중 성숙도가 가장 높다. 정보를 활용할 수 있는 능력도 가장 좋다. 이들은 공정하지 못하고, 불평등하며, 민주적이지 않은 것에 크게 저항한다. 세대별로 약간의 차이가 있을 수밖에 없다. 누군가는 이를 두고 “극우화됐다”고 하지만, 그렇게 생각하면 안 된다. -4050 남성이 2030 남성에게 가장 불만을 품는 부분은 “너희는 왜 국민의힘을 지지하면서 보수화되느냐”는 것이다. ▲2030 남성은 국민의힘을 지지하는 게 아니다. 최근 국민의힘은 장외 집회를 하고 있는데, 이들은 이런 걸 별로 좋아하지 않을 것이다. 이들은 너무 소란을 피우는 것 자체를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 흔히들 “장 자크 루소가 얘기하는 계몽주의가 프랑스 대혁명을 낳았다”고 한다. 그런데 그 계몽주의가 뭔가? 성숙지 못한 국민을 성숙하게 만들어서 사회를 변화시킨다는 것이다. 우리 국민의 성숙도는 매우 높아졌다. 이 때문에 윤 전 대통령의 비상계엄도 실패했다. 국민의 의식 수준이 높아지면, 정치가 이를 따라가야 하는데, 접근을 제대로 못하고 있다. -정계의 킹메이커로 알려졌다. 대통령의 가장 중요한 덕목은 무엇인가? ▲대통령은 정직해야 한다. 시대 변화에 민감하게 적응할 수 있어야 한다. 우리 대통령들이 모두 실패한 원인은 너무 탐욕스러웠고, 시대 변화를 제대로 못 따라갔다는 것이었다. -최근 한국 정치·사회에서 작게나마 희망을 봤거나 “아직은 희망이 있다”고 생각하거나 그 반대가 된 일이 있다면? ▲우리나라의 제일 시급한 과제는 아주 극단적인 양극화 현상이다. 이를 완화하지 않으면, 한국 정치는 국민통합을 이룰 수 없다. 우리는 초고령화 사회로 가고 있고, 출산율은 매우 낮다. 경제의 역동성이 거의 없어지고 있다. 정치인이 말로만 소통·통합을 외친들 아무 소용이 없다. -추석 연휴를 앞둔 <일요시사> 독자에게 남길 덕담 한마디가 있다면? ▲대통령을 선출하는 기준이 여론조사에 휩쓸리는 식으로 정해지면, 문제가 복잡해진다. 윤 전 대통령도 그렇게 대통령에 당선됐다. 오랫동안 검사였던 사람이 지도자가 된 사례가 세계적으로 별로 없다. 이들은 남의 부정적인 측면만 따지는 사람들이다. 그래서 창의적·긍정적 역할을 하기 힘든 사람들이다. 제가 그를 호의적으로 봤던 것도 큰 잘못이었다. 당시 국민의힘엔 대통령감이 없었다. 그래서 저는 윤 전 대통령의 여론조사 지지율이 높은 것을 일컬어 “별의 순간을 잡았다”고 말했다. 결국 윤 전 대통령은 제가 우려했던 행동을 했다. 저는 이승만 전 대통령 외엔 모든 대통령을 만나봤다. 직접 자문도 했고, 대통령 선거에 참여한 적도 있다. 이 경험을 토대로 <왜 대통령은 실패하는가>라는 책도 출간했다. 이들이 실패한 원인은 초심을 관철하지 못했단 것이었다. 박근혜·윤석열 전 대통령이 파면된 이유를 생각해야 한다. 이미 우리나라에선 오래전에 보수·진보가 사라졌다. 지난 1997년 김대중 전 대통령이 당선됐던 제15대 대선도 보수·진보의 싸움이 아니었다. 모두 보수였다. 1980년대 운동권 출신들은 정치권에 진출한 후 스스로 대단한 진보를 자처했다. 그런데 이들은 진보의 뜻도 모른다. 이들은 정권을 네 번 잡을 동안 양극화 하나도 해결하지 못하고 있다. 이들이 무슨 진보 정권인가? 국민이 정치 상황을 냉철하게 관찰하시고 올바른 선택을 하는 자세를 갖추셔야 한다. 대통령·국회의원도 결국 국민이 선출한다는 사실을 잊지 마시길 바란다. <ctzxp@ilyosisa.co.kr> <hypak28@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