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명 옥죄는 세 가지 족쇄

네 번째 죽음이 불러온 당 대표 불가론

[일요시사 정치팀] 정인균 기자 = 또 죽었다. 네 번째 죽음이다. 우연도 세 번이 겹치면 필연이 된다고 했는데, 그런 우연이 자그마치 네 번이나 겹쳤다. 이번 죽음에 그동안 꿈쩍 않던 더불어민주당 지지자들조차 동요하기 시작했다. 민주당 이재명 의원과 관련된 ‘사건 참고인들의 죽음’ 이야기다. 유독 이 의원 관련 수사에서만 여러 사람이 세상을 떠났다. 이런 분위기 때문일까. 민주당 전당대회 1차 컷오프 결과가 이 의원 입장에서 최악으로 나왔다. 순항 중이었던 이 의원의 당 대표 항해에 태풍이 몰아치려 한다.

더불어민주당 이재명 의원은 지난달부터 ‘김혜경씨 법인카드 유용’ 의혹을 받아 경찰로부터 수사를 받고 있었다. 수사가 한창이던 지난달 26일, 사건과 관련 있던 참고인 A씨가 숨진 채 발견됐다. A씨의 죽음이 알려지자 정치권과 대중은 일제히 의심 섞인 눈초리를 이 의원에게 쏘아댔다. 왜 하필 또다시 이 의원의 수사 관련자가 죽느냐는 의심이었다. 

끄떡 않던 
지지자들도…

A씨의 죽음과 관련해 논란이 끊이지 않자 이 의원이 사건에 대해 직접 입을 열었다. 그는 지난달 30일 전당대회 선거운동 차 들린 강릉시에서 지지자들을 만나 “아무 관계도 없는 일을 특정인한테 엮는다”며 “무당의 나라가 돼서 그런지”라고 푸념했다.

이어 “아무 관계도 없는 사람이 검찰, 경찰의 강압 수사를 견디다 못하고 돌아가셨다. 그게 이재명과 무슨 상관이 있느냐”고 지지자들에게 되물었다. 관계자가 죽은 지 4일 만에 나온 최초의 관련 발언이었다. 

그의 말대로 경찰 측은 수사 당시 26일 숨진 A씨가 해당 사건과 크게 관련 없는 것으로 봤었다. 수사를 맡은 경기남부경찰청 관계자는 사망 보도 직후 “A씨는 여러 참고인 중 한 명으로 조사를 받은 것은 맞지만 A씨에 대한 추가 조사 계획도 없었다”며 그가 주요 참고인이 아니라는 점을 분명히 했다.


A씨를 주요 참고인인 배모씨의 ‘지인’ 정도로만 인식하고 있던 경찰은 오히려 그의 죽음이 ‘의아’했다고 밝혔다. 그러나 이 의아함은 며칠 뒤에 바로 풀렸다. A씨가 주요 참고인으로 인식될 만큼 이 의원과의 연결고리가 더러 밝혀졌기 때문이다.

세 사람의 관계를 이해하려면, A씨와 배씨의 관계부터 알아야 한다. A씨는 2009년부터 2018년까지 성남지역 정보요원으로 활동한 기무사의 일원이었다. 이 의원이 성남시장으로 일하던 당시와 시기가 겹친다.

그는 당시 이 의원의 수행비서 역할을 하던 배씨와 이때 처음 연을 튼 것으로 알려졌다. 배씨와 A씨는 후에 이 의원을 돕자는 뜻을 함께하며 가까이 지내온 것으로 전해졌다.

한편, 배씨는 이 의원이 변호사로 일하던 시절부터 함께한 그의 최측근이다. 이 의원이 성남시장에 당선된 후부터는 비서실에서 일한 것으로 알려졌으며, 경기도지사 시절에는 경기도청 별정직 5급 공무원으로 채용됐다.

지난 수십년 동안 이 의원 곁을 한 번도 떠나지 않은 셈이다.

그렇다면 김씨의 법카 횡령 사건에 A씨는 어떻게 끼어든 것일까. 연결고리는 김씨의 '법인카드 유용 방법'이었다. 김씨가 유용했다고 알려진 법인카드는 본래 한도가 걸려있는 카드다. 이 때문에 한도가 걸렸을 때 여러 애로사항이 있었는데, 김씨는 다수의 개인카드로 금액을 선결제한 뒤 취소하는 방식을 사용했다는 의심을 받고 있다.

취소한 뒤 한도가 풀린 법인 카드로 재결제하는 방식이었는데, 이 과정에 사용된 개인카드 중에 A씨 카드와 배씨의 카드도 섞여 있었다. 다시 말해, A씨는 법인카드를 횡령하는 데 일조한 일종의 ‘참고인’ 수준이었던 것이다.


여기서 A씨가 본인은 “카드만 빌려줬을 뿐 횡령은 모르는 일”이라 증언했다면, 수사는 더 이뤄지지 않을 가능성이 컸던 상황이다. 실제로 여기까지가 경찰이 알고 있던 A씨에 대한 정보의 전부였다. 

압도적인 권리당원 투표율인데…
앞으로 터질 악재들로 위태위태?

그러나 A씨의 죽음이 알려진 후, 언론 보도를 통해 이 의원과의 추가 연결고리가 속속 드러나고 있다. 우선 A씨가 이 의원이 주재한 회의에 수차례 참석한 사실이 확인됐다.

이 의원이 ‘관련이 전혀 없다’고 주장했던 A씨는 2014년 12월 ‘통합방위협의회 4분기 회의’와 2016년 2월, 6월에 열린 통합방위협의회에도 참석했다. 적어도 서너 차례는 이 의원과 대면 회의를 한 사이였던 것이다.

또, 이 의원의 아들에 대한 편의를 봐줬다는 의혹도 받는다. A씨는 이 의원의 아들이 공군 기본군사훈련단 인사행정처 행정병으로 복무하던 당시에 성남 국군수도병원안에 있는 안보상담소에서 근무했다.

이 당시에는 이 의원 아들의 국군수도병원 특혜 입원 논란이 있던 시기와도 겹친다. 겹치는 시기 때문에 일각에서는 A씨가 이 의원의 아들 입원 문제에도 개입해 있을 것이라는 의혹을 쏟아내고 있는 중이다.

그가 극단적인 선택을 한 장소는 세 사람 간 연결고리의 화룡점정이다.

A씨가 숨진 채 발견된 장소는 경기도 수원시 영통구에 위치한 한 빌라였는데, 등기부등본 확인 결과 이곳을 매입한 소유주는 배씨였다.

최근까지 A씨가 이 의원의 최측근인 배씨 소유의 빌라에서 생활했었고, 그곳에서 수사받던 중 그곳에서 극단적인 선택을 한 것이다. 배씨와 이 의원, 그리고 A씨가 아직도 관련됐다는 의혹이 재점화되는 부분이 여기다. 

A씨와 이 의원이 가까운 사이였다는 사실이 밝혀지자 여권에서는 속으로 하던 의심을 겉으로 꺼내기 시작했다. 국민의힘 하태경 의원은 지난달 28일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이 의원의 기운이 참 어둡다. 주변에 자꾸 안 좋은 일이 일어난다”며 "가까운 사람들도 그렇고, 같이 일했던 사람들도 수사과정에서 유독 죽는 분이 많아지고 있다“고 지적했다.

지속되는 참고인의 죽음에 민주당 지지자들 또한 하나둘 의심을 싹틔우기 시작했다.

지난 2일 민주당사에서 <일요시사>와 만난 한 지지자는 “지난 대선에서 이 의원을 적극적으로 지지하며 운동했었지만, 지금은 그(이 의원)가 대표되는 것을 반대한다”며 “그런 의심(참고인의 연이은 죽음)이 드는 것이 당연한 것이 아닌가? 좀 무섭다”고 말했다.


압도적 선거 결과에도
동요되는 당심과 민심

지난해와 올해 초에 이 의원과 관련된 주요 참고인 세 명이 더 숨진 건 잘 알려진 사실이다.

지난해 12월10일에는 대장동 개발사업자 선정 1차 심사위원이었던 유한기 전 성남도시개발공사 개발사업본부장이 세상을 떠났고, 같은 달 21일에는 김문기 전 성남도시개발공사 개발사업 1처장은 극단적인 선택을 했다.

김 전 처장 또한 민간사업자를 선정하는 평가에 심사위원으로 참여했던 인물이다. 올해 1월에는 이 의원의 변호사비 대납 의혹 최초 제보자인 시민단체 대표 이씨가 숨진 채 발견된 사건이 있었다.

대선 때까지 세 명, 또 전당대회에 앞서 한 명이 추가로 세상을 떠나면서 이 의원을 바라보는 사람들의 시각도 점점 달라져간다. 대선 전까지는 ‘우연이겠지’ 치부하던 일들이 주요 선거를 앞두고 다시 벌어지니 ‘우연이 아닌가’란 생각을 하는 것이다.

사실 여부를 떠나, 지속되는 관련 ‘참고인의 죽음’에 이 의원의 표는 계속 떨어져나가는 중이다.


민주당 전당대회 당 대표 선거 본선에서는 대의원 30%, 권리당원 40%, 일반 국민 여론조사 25%, 여론조사 5%를 반영한다.

권리당원 30%는 이 의원의 대세가 변화 없이 굳혀지는 분위기지만, 투표권이 센 대의원을 포함한 나머지 70%는 여론의 동향에 많이 휘둘린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이 의원은 전당대회가 한창인 셋째 주에 경찰의 수사 결과 발표라는 대형 악재를 앞두고 있다. 경찰이 발표하겠다고 공언한 사건은 김씨의 법카 횡령 의혹인데, 여기서 치명적인 결과가 나온다면 국민 여론은 흔들리기 마련이다.

<일요시사> 취재 결과, 이 의원은 지난 컷오프 때도 ‘압도적인’ 표 차는 기록하지 못했다는 것이 확인됐다. 민주당 비대위 내부 관계자는 <일요시사>와의 전화통화에서 “정확한 표 차이는 말씀드릴 수 없지만 1위와 2위의 표 차가 생각보다 크게 나지 않았다”고 말했다.

이 관계자는 구체적인 순위와 득표율은 당헌·당규상 밝힐 수 없다고 했지만, 1위가 예상되는 이 의원과 2위의 유력 후보 박용진 의원과의 표 차가 많이 나지 않았다는 말을 우회적으로 했다.

박주민 의원
탈락은 왜?

가뜩이나 차이가 적게 난 선거에서 ‘경찰 수사 결과’라는 악재가 덮칠 경우 뒤집힐 수도 있는 상황이라는 게 야권 내부의 일반적인 시각이다.

한창 진행 중인 전당대회에서 ‘비명(비 이재명)계’에 유리한 몇 가지 변수가 더해지면 ‘어대명’ ‘확대명’이라는 친명(친 이재명)계 지지자들의 바람은 이뤄지지 않을 가능성이 크다.

비명계 측에서 가장 크게 기대하고 있는 유리한 변수는 당 대표 후보들끼리의 단일화다. 지난달 28일 있었던 1차 컷오프 발표 현장에서 이 의원 측은 마냥 웃을수만은 없는 결과를 받아들여야 했다.

이 의원의 예비 경선 통과는 기정사실이었으나 같이 통과된 후보 중 의외의 인물이 섞여 있었기 때문이다. 재선의 강훈식 의원이다.

강 의원은 당초 낮은 인지도와 옅은 계파 색깔로 1차 컷오프 통과가 기대되던 인물은 아니었다. 여의도에선 2강·2박의 ‘97그룹’ 의원들 중 박용진 의원과 박주민 의원의 통과를 점치고 있었다. 당내 영향력이나 인지도를 고려하면 이 둘의 통과 가능성이 가장 컸었기 때문이다.

모두의 예상대로 박용진 의원은 컷오프를 통과했으나, 박주민 의원은 강 의원에 밀리며 탈락했다. 여기에는 최근 입장을 ‘모호하게’ 튼 박주민 의원의 노선이 한몫했다고 전해진다. 

박주민 의원이 속한 97그룹은 젊은 의원들이 당의 쇄신을 책임질 개혁파로서 인식돼 계파색을 굳이 따지자면 비명계에 더 가까웠다. 그러나 박주민 의원은 지난 대선 경선 당시 이재명 캠프의 총괄본부장을 지낸 이력이 있다. 본선에서 ‘억지로’ 이 의원의 대선을 도운 것이 아니라 경선 과정부터 그의 곁을 지켜온 셈이다.

경선 때부터 이 의원을 도운 다수의 의원들은 보통 ‘친명계’로 인식된다. 친명계로 인식되던 박주민 의원이 개혁파로 분류되기 시작한 건 지난 지방선거 때부터다.

그는 서울시장 후보에 뛰어들며 당시 예비후보였던 민주당 송영길 전 대표에게 쓴소리를 하는 등 점차 비명계의 색깔을 내기 시작했다. 

서울시 의원 20명이 모여 송 전 대표의 출마를 반대하는 성명을 낼 때도 박주민 의원이 주도한 것으로 알려졌다. 송 전 대표는 친명계의 좌장격 인물로, 그에게 쓴소리를 낸다는 것은 곧 친명 전체와 등을 지겠다는 것과 똑같은 의미였다.

그러나 당내에서는 그가 전당대회를 앞두고 다시금 친명계 노선을 탄다는 의심을 보내고 있다. 97그룹 중 3명의 의원이 일찌감치 당 대표에 입후보하고 선거운동을 펼칠 때, 박주민 의원만은 끝까지 고심하며 전대 출마를 미뤄왔다.

컷오프 결과 친명계에 최악
최고위 컷오프도 ‘비등비등’

후보 마감 며칠을 앞두고 박주민 의원이 후보 등록을 하자 정계에서는 ‘이재명의 페이스메이커를 위해’라는 해석을 내놓기 시작했다.

이는 박 의원이 그동안 이 의원을 옹호하는 발언을 지속적으로 해왔던 탓이다. 그는 공개적인 자리에서 “이재명 한 사람에게 (선거)패배의 책임을 돌리는 것은 부당한 일”이라며 “주된 초점은 왜 우리가 176석을 얻고도 지난 2년 동안 할 것이라고 기대받았던 걸 하지 못했나”라고 이 의원을 두둔했다.

또 지난달 12일에는 라디오 인터뷰에 나와서 “(이 의원과)둘이서 새벽까지 술을 마셨다”고 발언해 둘이 가까운 사이인 것을 대중에게 재확인시켰다.

친명 측에서는 그런 박 의원이 컷오프를 함께 통과한 뒤 당 대표 선거 중간에 이 의원과 단일화할 것으로 내다보고 있었다. 

따라서 이 때문에 친명계 입장에서는 강 의원의 컷오프 통과가 매우 뼈아픈 결과다. 강 의원은 박주민 의원처럼 ‘포섭 가능한’ 후보가 아니기 때문이다. 그는 박용진 의원과의 단일화 가능성이 더 높은 비명계 의원이다. 당 대표로의 길이 뚜렷했던 이 의원에게 박주민 의원의 컷오프 탈락은 의외의 변수였다.

최고위원 컷오프 결과 또한 친명계의 입맛대로 되지 않았다. 이번 전당대회 최고위원 예비 경선에는 역대 최다 인원인 17명이 출마했다.

원내 10명, 원외 7명이었는데 모두가 주목하고 있었던 후보군은 원내서 나온 10명의 의원들이다. 그동안 원외서 컷오프를 통과한 사례가 극히 적기 때문에, 10명의 의원 중 몇 명의 친명계 의원이 통과될지 관심 있게 지켜보고 있었다. 

친명계로 알려진 최고위원 예비후보는 정청래·양이원영·이수진·서영교·박찬대·장경태 의원이었다. 당초 전원 통과 예상과는 달리 이·양이 의원은 탈락의 고배를 마셨다. 친명계에선 총 4명이 통과한 것이다.

비명계 측에에서도 고민정·윤영찬·송갑석·고영인 의원의 동수가 통과했다.

대세로 알려진 ‘친명계’의 세가 예상만큼 두드러지지 못한 셈이다. 4:4로 비등비등한 결과가 나온 것에 대해 비명계 측은 안도의 한숨을 돌렸고, 친명계 측은 씁쓸한 표정을 지어야 했다. 총 5명이 입성하게 될 지도부에 비명계 4명 전원이 들어가는 것도 아예 배제할 수 없는 경우의 수이기 때문이다.

경찰 수사 결과 발표, 박주민 의원의 컷오프 탈락, 최고위원에서 압도적이지 못한 승리는 이 의원의 당 대표행을 방해하는 악재들이다. ‘이기는 민주당’을 만들겠다던 이 의원은 사실 그동안 이겼던 적이 단 한 번도 없다.

또 지면
3연패

그가 진두지휘한 선거에서 민주당은 국민의힘에 늘 지기만 했다. 이번 전대서조차 패배한다면 이 의원은 회복할 수 없는 큰 타격을 입게 된다. 그동안 정치적 타격을 수차례 경험한 이 의원이 이번에도 ‘정면돌파’를 택하며 이겨나갈 수 있을지, 끝내 당 대표에 탈락하며 다시 한 번 ‘선거 패배’의 아이콘이 될지 귀추가 주목된다.
 

<ingyun@ilyosisa.co.kr>

 



배너






설문조사

진행중인 설문 항목이 없습니다.



‘전한길 유니버스’ 절대 불가능한 이유

‘전한길 유니버스’ 절대 불가능한 이유

[일요시사 정치팀] 박형준 기자 = 국민의힘에 입당한 한국사 강사 전한길씨가 국민의힘 행사에서 영향력을 과시하다가 큰 물의를 일으켰다. 전씨는 국민의힘에서 ‘보수의 김어준’을 꿈꾸는 것 같다. 전씨는 과연 김씨가 15년 동안 구축했던 영향력을 단번에 얻을 수 있을까? 국민의힘에 입당한 한국사 강사 전한길씨가 지난 8일, 대구 EXCO에서 진행된 국민의힘 전당대회 대구·경북지역 합동연설회에서 큰 물의를 일으켰다. 전씨는 지난 3월 창간한 <전한길뉴스> 소속 언론인 자격으로 참석했다. 선거판 난장판 하지만 전씨는 언론 취재의 한계를 넘어 반탄(탄핵 반대) 성향 후보들의 연설 도중 응원하면서 분위기를 띄웠다. 반대로 찬탄(탄핵 찬성) 성향 당 대표·최고위원 후보들이 연설할 때마다 “내부 총질” 혹은 “배신자” 등 원색 비난을 했다. 이날 김근식 최고위원 후보는 전씨를 직접 지칭해 “부정선거 음모론에 빠지고, 계엄을 계몽령이라고 정당화하는 사람들과 어떻게 같이 투쟁할 수 있겠느냐”면서 비난했다. 그러자 전씨는 김 후보에게 욕설하면서 자신의 지지자들을 격동시켰다. 찬탄 성향 조경태 당 대표 후보가 연설할 땐 자리에서 일어나 한 손을 들고 항의하는 등 지지자들의 조 후보 비난을 유도했다. 그러자, 찬탄 성향 일부 당원들이 전씨에게 물병을 던지면서 항의했다. 한 당원은 전씨에게 “난 20년 차 당원인데, 입당한 지 한 달밖에 안 된 당신이 왜 이런 난동을 부리느냐”고 따져 물었다. 국민의힘 지도부는 전씨의 전당대회 출입을 막기 위해 대의원이 아닌 일반 당원의 행사장 출입을 금지했다. 이어 전씨에 대한 징계 가능성도 내비쳤다. 그러자 전씨는 <전한길뉴스> 발행인 신분을 내세워 “언론 탄압”이라며 반발했다. 이처럼 전씨는 국민의힘 당원과 언론인이란 신분을 왕래하면서 국민의힘 전당대회에 개입하고 있다. 지난달 31일과 지난 7일엔 시사평론가 고성국씨 등과 함께 주최한 ‘자유 우파 유튜브 연합 토론회’에 각각 장동혁·김문수 당 대표 후보를 출연시켜 ‘면접’을 보는 위력을 국민의힘 내외에 과시했다. 특정 진영의 강경파를 대상으로 언론사·유튜브 채널 등을 운영하면서 힘을 과시하는 모델로는 방송인 김어준씨가 있다. 김씨는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의 친문(친 문재인) 강경파 성향 당원·지지자를 대상으로 라디오·유튜브 방송을 진행하면서 당 전체를 좌지우지하는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다. 당 대표 후보들을 면접하는 형식은 김씨가 지난해 3월 자신의 유튜브 방송 ‘김어준의 다스뵈이다’에 민주당 총선 후보자였던 이언주·전현희 의원과 안귀령 대통령실 부대변인을 출연시켜 객석의 청중에게 큰절을 시킨 것과 비슷하다. 김씨가 지난 6월 기획·진행한 ‘더 파워풀’ 콘서트엔 ▲문재인 전 대통령 ▲민주당 정청래 대표 ▲김민석 국무총리 등 다수의 민주당 내 유력 정치인이 참석했다. 입당하자마자 영향력 과시 물의 당원·언론인 오가며 전대 개입 김씨는 지난 2011년 팟캐스트 방송 ‘나는 꼼수다’ 공동 진행자로 활동하면서부터 민주당에 대한 영향력을 키워왔다. 물론 김씨가 15년 동안 구축한 영향력을 전씨가 단기간에 얻긴 어렵다. 이 때문인지 전씨는 국민의힘에 입당하자마자 ‘10만 당원 양병설’ 등을 주장하면서 당 대표 선거에 출마할 가능성을 내비쳤다. 하지만 국민의힘 전당대회에 출마하기 위해선 당비를 3개월 이상 납부하고, 연 1회 이상 교육을 받은 책임당원이어야 한다. 전씨는 지난 6월 온라인으로 입당했고, 당 대표 후보 등록일은 지난달 30일부터 단 이틀 동안이었다. 따라서 전씨는 당 대표 선거에 출마할 수 없었다. 출마 길이 막힌 전씨는 전당대회에서 당원·언론인 신분을 교차하면서 자신을 따르는 당원들을 선동해 영향력을 과시하려고 한다. 하지만 전씨는 김씨가 민주당에서 막강한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게 된 구조를 이해하지 못한 것으로 보인다. 민주당과 주변 진영 전체를 둘러싼 질서는 20세기 초·중반에 활동했던 이탈리아 사회주의자 안토니오 그람시의 헤게모니 이론이 갖는 틀과 비슷하다. 그람시는 “자본주의는 견고하게 발전할 것”이라는 대전제를 토대로 “언론·문화 등 각 분야에 진지를 구축해 참호전으로써 상대 세력을 약화해야 한다”는 사상을 정리했다. 각 분야에 구축한 진지는 결정적인 시기에 전개할 기동전의 전초기지 역할을 한다. 자본주의 구조가 뿌리내리면서 러시아 2월·10월 혁명과 같이 한순간에 모든 것을 뒤집는 혁명은 사실상 불가능해졌다. 그람시는 주도권 다툼으로써 체제 내 혁명을 추구하는 취지의 사상을 구체화했다. 우리나라에선 소련 해체가 가시화되던 1980년대 후반부터 기존 노동운동에 문화·예술운동을 접목하는 단체가 활동하는 등 각계에서 다른 방향의 노동운동을 전개하는 것으로부터 시작된다. 민주당을 받치는 양대 축은 각계의 시민단체들과 진보 성향 매체들이다. 대규모 정치 이벤트가 진행될 땐 민주당 지원 사격을 맡으면서, 정치적 명분과 정당성을 구축·홍보하는 역할을 맡는다. 또 민주당에 인력을 공급하는 역할도 한다. 주요 선거 등 대규모 기동전이 필요한 상황에선 각자의 진지에서 일시에 뛰쳐나와 물량을 공급하는 식이다. 이 같은 구조를 상징하는 사람이 민주당 윤미향 전 의원이다. 정의기억연대 대표로 오랫동안 활동하던 윤 전 의원은 민주당을 통해 국회의원이 됐지만, 횡령 의혹이 유죄로 확정돼 의원직을 잃었다. 같은 당 추미애 의원 등 민주당 일각에선 윤 전 의원의 사면을 강하게 지지했고, 결국 8·15 광복절특사를 통해 사면·복권됐다. 민주당과 그람시 하지만 시민단체와 매체는 대중을 직접 동원하기가 어려운 데다, 매체는 언론 고유의 한계가 있다. 시민단체 역시 시민들의 참여가 부실하다는 핸디캡을 떠안을 수밖에 없는 구조적 문제도 존재해 왔다. 이 때문에 삼각 구조를 받쳐줄 또 하나의 하부 구조가 필요했다. 이 문제를 해결해준 사람이 바로 김씨였다. 김씨는 지난 1998년 ‘안티 <조선일보>’라는 깃발을 내걸고 <딴지일보>를 창간한 후 풍자·B급 정서·유머를 지향해오고 있다. 당시 <딴지일보>에선 포장마차에서 어묵을 찍어 먹는 용도로 내는 간장의 위생 상태를 취재해 기사화하거나 국가혁명당 허경영 명예대표의 대권 도전 과정을 풍자하는 등 ‘신선한 B급 정서’를 지향해 독자적인 인기를 누렸다. 하지만 한편으로 김씨에게 평생 따라다닐 놀림거리를 남겼다. 김씨가 <딴지일보>의 채무를 해결하기 위해 여성용 성인용품을 판매했고, 성인남녀의 만남을 중개하는 사이트를 개설했던 탓이다. 보수 성향 유권자들은 여전히 김씨를 비판하면서 당시의 전력을 함께 언급한다. 이후 김씨는 ▲황우석 박사 옹호 ▲영화감독 겸 코미디언 심형래씨 옹호 등 숱한 논란을 일으켰다. 특히 황 박사 옹호는 그럴 듯한 음모론을 제시하면서도 설득력 있는 근거는 제시하지 않는 김씨의 특성과 깊이 맞물린다. 당시의 논란도 김씨에 대한 비판론을 형성하는 중심축이다. 그랬던 김씨가 막강한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게 된 계기로는 크게 2가지를 들 수 있다. 하나는 ‘문재인 대통령 만들기’를 처음 시작했다는 것이었고, 다른 하나는 팟캐스트 ‘나는 꼼수다’ 공동 진행자 중 1명으로 활동했단 것이었다. 김씨는 당시 민주당 백원우 의원이 노무현 전 대통령 영결식장에서 이명박 당시 대통령에게 거친 항의를 말리고 고개 숙여 사과하는 문 전 대통령을 주목했다. 이후 김씨는 문 전 대통령의 킹메이커를 자처했고, 이는 ‘나는 꼼수다’ 진행 이후 문 전 대통령의 대세론으로 이어졌다. ‘나는 꼼수다’는 김씨 특유의 B급 정서·음모론이 이명박정부에 대한 다양한 불만과 맞물려 대성했던 방송이었다. ‘나는 꼼수다’는 현재까지 이어지는 김씨의 성향을 구체화한 방송이라고 볼 수도 있다. 해당 팟캐스트의 상징으로 통하는 “쫄지 마”는 여전히 회자된다. ‘나는 꼼수다’는 구체적인 사실관계 검증엔 큰 관심을 두지 않았다. 명확한 당파성을 매개로 특정 정당·진영 사람들이 선호할 음모론과 괴담을 이미 밝혀진 사실관계와 섞어 전달하는 것에 집중했다. 진실과 거짓의 경계선을 적당히 왕래하면서 민주당 지지를 극대화하는 것이 주된 목적이었다. 영웅과 악당들 이는 집단의식으로 연결됐고, 김씨에겐 거대한 영향력을, 민주당엔 거대한 지지 집단을 만들어줬다. 김씨는 ‘나는 꼼수다’를 통해 단순·명쾌한 이분 구도를 완성했다. 그를 선호하는 민주당 지지자의 정치관은 “보수진영이란 거대한 악에 맞서 싸운다”는 것이다. 이는 정의로운 주인공이 지구 정복을 노리는 악당의 무리에 맞서 싸우는 어린이용 만화의 서사와 크게 다르지 않다. 아울러 현재 민주당 핵심 지지 세대로 알려진 4050세대가 미국의 마블 시네마틱 유니버스를 선호하는 것과 연결해볼 수 있다. 이 세계관엔 초월적인 힘을 갖고 모든 생명체의 절반을 죽여 우주를 정화하려는 악당에 맞서는 영웅들이 등장한다. 이 세계관에 결정적인 영향을 준 사건은 지난 2009년 노무현 전 대통령 사망사건이었다. 이들에게 노 전 대통령 사망사건은 거대 악당과 싸워야 하는 당위성을 제공해주는 절대적인 명분이었다. 김씨가 이 사건에 주목하고, 상주로서 백 전 의원의 항의를 제지하던 문 전 대통령을 주목한 것은 당연한 순서였다. 우리 고전문학 중 전설은 김씨의 평소 주장과 비슷한 서사 구조를 띠고 있다. 전설은 능력이 뛰어난 주인공이 현실의 한계에 좌절하고 무너지는 비극적인 구조를 취한다. 또 설득력을 부여해야 많은 사람에게 퍼질 수 있어서 실제 존재하는 지역·지명을 매개로 그럴듯하게 전개된다. 여기엔 각박한 현실을 바꿔줄 새로운 영웅의 출현을 기대하는 민중의 소망이 담겨있다. 그래서 조선시대엔 “정씨 성을 가진 영웅이 새 나라를 만들어 왕이 될 것”이란 취지의 예언서가 오랫동안 돌아다녔다. 김씨의 주장은 21세기판 전설이라고 할 수 있다. 김씨는 민주당과 주변 진영을 취약한 상황에서 거대한 악에 도전하는 영웅으로 묘사하고, 지지자들은 그 영웅담에 환호한다. 그러면서 “거대한 악에 맞서 싸우는 영웅을 또 잃을 수 없다”는 공감대를 공유한다. 그들은 “대통령을 지켜야 한다”는 같은 목표를 공유한다. 김씨는 ‘김어준 유니버스’ 혹은 ‘민주 유니버스’를 만들었고, 지지자들은 관객을 넘어선 참여자로서 희열과 보람을 느낀다. <한국일보>는 지난 2017년 이들의 세계관을 소개하면서 “대통령이 국민을 지켜야지, 왜 국민이 대통령을 지켜야 하느냐”고 비판했다. 완전히 다른 ‘B급 정서’ 카타르시스·도파민 차이 김씨는 ▲세월호 고의 침몰설 ▲천안함 피격 사건 관련 가짜 뉴스 살포 ▲코로나19 대구 확산설 등 주장을 이어가면서 지지자들에게 정치적 카타르시스와 도파민을 제공했다. 그들이 김씨를 통해 느낀 카타르시스와 도파민은 고스란히 민주당의 정치적 자양분이 됐다. 그래서 총선 출마 후보들은 김씨가 보는 앞에서 지지자들에게 큰절을 해야 했다. 윤석열 전 대통령이 지난해 12월 비상계엄을 선포하면서 체포 대상 중 1명으로 김씨를 지목했던 것은 김씨에게 엄청난 이익이 됐다. 당시 계엄군은 김씨가 진행하는 유튜브 채널 ‘김어준의 겸손은 힘들다 뉴스공장’ 스튜디오 주변을 통제했다. 김씨는 지난해 12월13일 국회에서 “계엄군이 국민의힘 한동훈 전 대표를 사살한 후 북한 소행으로 공작하려고 했다”면서 “정보 출처는 국내에 대사관이 있는 우방국”이라고 주장했다. 이후 “그 우방국은 미국 아니냐”는 의문이 제기됐지만, 미국은 국무부·주한미국대사관을 통해 이를 부인했다. 반면 민주당 최민희 의원은 자신의 페이스북을 통해 “‘김어준님’의 증언을 허구로 단정하고 비난부터 하는 것은 무모하다”고 주장했다. 국민의힘과 보수 세력은 민주당과 그 주변 세력처럼 정교한 조직체를 만들지 못했다. 보수 세력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스피커 역할은 전씨와 전광훈 사랑제일교회 목사가 맡고 있다. 하지만 이들은 김씨처럼 진영 전체를 들썩일 수 있는 정치적 유머 감각과 설득력을 갖추지 못했다. 카타르시스와 도파민을 제공하지도 못한다. 이 때문에 이들의 주장은 강경 보수 지지자들 외 국민 사이에서 웃음거리로 전락한 지 오래고, 국민의힘 내부서도 강하게 비판한다. 국민의힘이 지난 2022년 대선과 지방선거에서 이겼을 당시엔 민주당에 비판적인 2030세대 남성과 6070세대를 아울러 민주당을 지지하는 4050세대와 2030세대 여성을 포위한다는 ‘세대포위론’ 전략이 제시됐다. 그러나 윤 전 대통령과 개혁신당 이준석 대표가 불화 끝에 결별하면서 이 연합은 얼마 가지 못해 해체됐다. 당시 승리를 주도했던 국민의힘 지지층은 이 대표 특유의 합리주의를 지지하는 젊은 유권자와 강경 보수를 지향하는 노년 유권자로 분열됐다. 전씨는 많은 공무원 제자를 거느린 유명 한국사 강사였다. 따라서 적절히 순화된 주장과 교묘하게 선정한 정치적 입지를 섞어서 정치 전면에 나섰더라면, ‘보수의 김어준’이 될 수도 있었다. 하지만 전씨는 김씨와 달리 그럴듯한 이야기를 구성하고 유머를 섞는 능력을 보여준 적이 없다. 전씨의 옛 제자들은 그를 강하게 비판하고 있다. 절대로 정치 전면에 나서지 않는 김씨와 달리, 직접 국민의힘에 입당해 당 대표 선거에 출마하려 하는 등 적당히 선을 긋지도 않는다. 정치인들이 알아서 자신의 스튜디오에서 큰절을 하게 만드는 김씨와 달리, 전씨는 스스로 영향력을 과시하기 위해 전당대회서 눈에 띄는 행동을 했다. 전에겐 없는 것들 무엇보다 김씨가 “이 대통령을 능가하는 영향력을 가진 것 아니냐”는 설까지 나올 정도로 강력한 영향력을 구축하기까지 15년이 걸렸단 사실도 제대로 통찰하지 못한 것으로 보인다. 결정적으로 국민의힘은 정치 구조를 통찰하지 못해 민주당이 장기간 공들여 구축한 정치 구조체를 갖추지 못했다. 그런데도 전씨는 ‘전한길 유니버스’ 제작을 멈추지 않는다. 과연 전씨는 ‘보수의 김어준’이 될 수 있을까? <ctzxp@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