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주당 가르는 ‘극성 친문’ 내막

같이 걸을까 따로 달릴까

[일요시사 정치팀] 김정수 기자 = 더불어민주당이 소란스럽다. 재보선 참패 원인을 테이블에 놓고 나서부터다. 민주당 의원들로서는 스스로에게서 잘못을 찾는 격이었다. 쉽지 않았지만 이들은 소신 발언을 이어갔다. 하지만 돌아온 건 강성 당원들의 수위 높은 비난이었다. 당을 향한 충정으로 감안할 수 있겠지만, 이번엔 다르다는 지적이다. 또 의원들의 시각차가 분명해지면서 당내 갈등으로 번지는 분위기다.

4·7 재보궐선거 후폭풍이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을 그대로 관통하고 있다. 1년짜리 서울·부산 시장이었다는 자기합리화에 빠지려 해도, 표 차이는 간과하기 어려웠다. 민주당이 주요 선거에서 참패한 건 2016년 총선 이후 5년 만이다.

5년 만에
판정패

당은 즉각 외형적 쇄신 절차에 돌입했다. 우선 지도부가 총 사퇴했다. 김태년 당시 당 대표 대행은 “국민들께서 됐다고 할 때까지 당 내부 공정과 정의를 바로세우겠다”고 밝혔다. 이어 민주당은 비상대책위원회 체제로 돌아섰고, 어수선한 분위기를 수습하기 위해 전당대회와 원내대표 선거를 앞당겼다.

다음은 내형적 쇄신이었다. 민주당 의원들의 자성이 뒤따랐다. 첫 출발은 민주당 2030 초선 의원들이 끊었다. 하지만 이들의 반성문은 곧 당내 갈등으로 비화됐다. 왜일까?

오영환·이소영·장경태·장철민·전용기 의원은 지난 9일 “조국 전 법무부 장관이 검찰개혁의 대명사라고 생각했지만, 그 과정에서 국민들이 분노하고 분열한 것은 아닌가 반성한다”고 밝혔다.


‘조국’은 민주당 내에서 성역화된 금기어다. 평소 검찰개혁을 주장했던 그는 법무부 장관으로 취임한 뒤 검찰의 압수수색을 받았다. 그의 가족들까지 수사선상에서 자유롭지 못했다. 결국 그는 사퇴를 결정했다.

국민은 갈라섰다. 서초동 집회가 대표적이다. 한 쪽에서는 조국 수호를, 다른 한 쪽에서는 조국 퇴진을 외쳤다. 정치권도 마찬가지였다. 민주당은 조국을 끌어안았고, 국민의힘은 조국 때리기에 나섰다.

민주당의 방어는 필사적이었다. 소신 발언으로 조 전 장관에게 사과를 요구했던 금태섭 전 의원은 징계를 받았다. 이 사건으로 금 전 의원은 민주당을 떠났다.

여론은 다시 격렬하게 갈라섰다. 조 전 장관의 부인 정경심씨가 1심 판결에서 징역 4년을 선고받아서다. 특히, 자녀의 부정입학 의혹에 대해선 모두 유죄 판결을 받았다. 하지만 민주당은 오히려 검찰개혁을 최우선 의제로 못 박았다.

선거 패배 이후 ‘초선 5적’으로 시끌
소신 vs 주류 이어 친문 vs 비문 구도?

이런 배경 아래 초선 의원들의 이른바 ‘조국 발언’은 큰 파장을 일으켰다. 특히 ‘문빠’로 통하는 강성 당원들 사이에서 그랬다. 이들은 5명의 초선 의원들을 향해 ‘초선 5적’이라며 비난 수위를 높였다. 구한말 매국노 을사오적에 빗댄 표현이다.

‘초선족’이라는 비아냥도 쏟아졌다. 초선과 조선족을 합친 말이다.


강성 당원들의 비판에 민주당이 발칵 뒤집혔다. 초선 5인에 대한 ‘문자 폭탄’도 그렇지만 무엇보다도 당내 갈등이 불거졌기 때문이다. 쇄신이라는 전제 하에 소신 발언을 냈지만 이를 입막음한 것과 다름없다는 입장과 당심이 곧 민심이기에 살펴야 한다는 입장이 첨예하게 맞붙었다.

강성 당원들이 이른바 친문 진영에 속하는 만큼 친문 의원과 비문 의원의 대결로 이어지는 것 아니냐는 우려도 제기됐다.

민주당 중진 의원들은 강성 당원들의 이번 행위를 ‘당의 발전을 저해하는 행위’라고 명명했다. 5선의 변재일·안민석·이상민 의원과 4선 노웅래·안규백·정성호 의원은 공동 성명서를 통해 이같이 밝혔다. 

이들은 지난 15일 “자기 생각과 조금이라도 다른 의견에 대해서는 불문곡직하고 적대시하는 것”이라며 “초선 의원들이 선거 참패에 대한 반성 차원에서 제기한 의견을 있는 그대로 경청하고, 타당한 내용이면 당의 정책 기조에 적극 반영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돌 맞을 일이 있다면 중진 의원들이 더 큰 책임으로 대신 맞겠다며 초선 의원들을 감쌌다. 앞서 지난 13일 민주당 권리당원 게시판에는 초선 5인을 향해 ‘초선의 난’ ‘배은망덕’이라는 표현과 함께 권리당원 성명서가 게재된 바 있다.

중진 의원들은 “초선 의원들이 선거 참패에 대한 반성 차원에서 제기한 의견을 있는 그대로 경청하고, 타당한 내용이면 당의 정책 기조에 적극 반영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입막음?
민심?

이들이 직접 나선 데에는 앞서 초선 5인 중 한 명인 장경태 의원의 사과문이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는 분석이 나온다. 장 의원이 강성 당원들의 문자 폭탄을 견디지 못해 사과하는 사건이 벌어졌기 때문이다.

장 의원은 반성문 발표 이후 같은 날 지인들에게 문자메시지를 보내며 “진심으로 미안하다”며 “조 전 장관께서 고초를 겪으실 때 그 짐을 저희가 떠안았어야 했는데 그러지 못했다”고 전한 것으로 알려졌다. 

친문 의원들은 강성 당원들을 감싸며 오히려 초선 5인의 행동이 적절하지 못했다는 입장을 공개적으로 밝혔다.

민주당 김경협 의원은 지난 12일 CBS 라디오 <김현정의 뉴스쇼>와의 인터뷰에서 초선 5인의 반성문에 대해 “선거에 지면 100가지의 이유가 만들어진다”며 “이런 식의 분석은 실제로 이후에 해법을 마련하는 데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평가절하했다.

민주당 소신파로 분류되는 조응천 의원은 비대위에 목소리를 높였다.


조 의원은 지난 14일 도종환 비상대책위원장에게 “폭력적으로 쇄신을 막는 행위를 좌시하지 말고, 소수 강성 지지층들로부터 다수 당원과 뜻있는 젊은 의원들을 보호하라”고 촉구했다. 쇄신을 위해 꾸려진 비대위라면 당내 소신 발언을 귀담아 들어야 한다는 지적이었다.

조 의원은 비대위에게 폭력적 언행을 수수방관하지 말라며 따져 물었다.

민주당을 발칵 뒤집은 초선 5인의 이른바 ‘조국 반성문’ 이후 재선 의원과 3선 의원들도 연이어 반성문을 발표했다. 하지만 선수가 높아질수록 초선 의원들이 발표한 조 전 장관에 대한 언급은 사라졌다.

지난 12일 모인 민주당 재선 의원들은 당이 나가야 할 길에 대해 논의한 뒤 49명의 입장문을 발표했다. 이들은 “2030을 비롯한 초선 의원들의 반성 메시지에 적극 공감한다”고 운을 뗐다.

자신들의 생각과 다른 목소리를 듣는 것에 부족했다는 점을 언급하며 사실상 초선 의원들에게 위로의 메시지를 건넨 것이다. 

이들은 “정치개혁 과정에서 민생에 소홀했으며, 과오를 인정하는 것에 정정당당하지 못했다. 깊이 반성하고 성찰한다”고 덧붙였다.

하지만 초선 의원들의 반성문과 비교했을 때 ‘맹탕’에 지나지 않는다는 지적이 있었다. 물론 재선 의원 49명이 공동으로 이름을 올린 만큼, 이해관계와 공감대 형성에 어려움을 겪었을 것이란 시각이 존재한다. 그럼에도 민주당의 금기어인 조 전 장관은 언급되지 않았다.


이튿날 모인 3선 의원들은 더욱 엎드린 자세를 취했다. 이날 이들은 당의 중추로써 재보선에 확인된 민심에 큰 책임을 갖고 반성한다고 밝혔다. 하지만 이뿐, 초·재선 의원에 비해서는 무게감이 오히려 줄었다는 비판이 제기됐다. 

실제로 윤관석 의원은 ‘조국 사태에 대해 별도 언급이 있었냐’는 질문에 “없었다”고 대답했다. 또 일부 강성 당원들의 초선 의원 공개 비판에 대해 “당심” “당을 위한 관심과 충정”이라고 설명했다. 사실상 초선 의원이 아닌 당원들을 감싼 셈이다.

서영교 의원 역시 “누구를 탓 하지 말고 우리에게 책임이 있다”며 에둘러 표현했다.

관심과 충정
제식구 감싸기

앞서 민주당 소신파로 분류되는 박용진 의원은 지난 11일 초선 의원들의 반성문에 대해 “초선 의원님들의 용기에 경의를 표한다”고 힘을 실어준 바 있다. 하지만 선수가 올라갈수록 당원들을 감싸거나 초선 의원들을 지적하는 이야기들이 흘러나오는 형국이다.

강성 당원들의 발언에 민주당이 이토록 내분 아닌 내분을 겪는 까닭은 뭘까. 강성 당원들의 탄생 시점과 그간 이들이 민주당에서 어떤 역할을 했는지에 대해 살펴보면 그 이유를 짐작할 수 있다.

수위 높은 비난을 쏟아내는 이들은 지난 2012년 대선에서 출발했다. 당시 문재인 대통령은 대권에 도전했다. 앞서 노사모(노무현을 사랑하는 사람들의 모임)와 범진보 진영 지지자들은 노무현 전 대통령이 세상을 떠나는 비극을 맞은 바 있다.

문 대통령은 노 전 대통령의 정치적 동지인 만큼 이들을 지지하기 위한 굳건한 팬덤이 꾸려지기 시작한 것이다. 

노 전 대통령을 지켜주지 못해 미안하다며 자책했던 이들은, 문 대통령 만큼은 꼭 지켜내자는 공감대 속에 대거 당원으로 가입했다. 이후 당의 비공식적 주류로 활동하기 시작했다.

강성 당원들의 수는 2000~3000명으로 추산된다. 민주당 전체 당원 170만명 가운데 소수에 불과하다. 하지만 이들이 어떻게 비공식적 주류가 된 것일까. 민주당의 지도부를 뽑는 전당대회 등을 살펴보면 고개가 끄덕여진다.

당 대표와 최고위원을 뽑는 전당대회에서는 강성 당원들의 표심이 승패를 가른다. 이들은 비록 소수에 불과하지만 집단 행동력은 타의 추종을 불허할 정도라는 게 중론이다.

민주당 지도부 선출은 대의원 45%, 권리당원 40%, 국민 10%, 일반 당원 5%의 비중으로 이뤄진다. 지난해 8월 전당대회에서 최고위원 경선 가운데 권리당원 득표율이 가장 높았던 5명의 후보가 모두 당선된 사례가 대표적이다.

현재 민주당은 전당대회를 앞두고 있다. 이 와중에 발생한 ‘초선 5적 사건’에 출마자들의 입장이 각기 다른 것도 강성 당원의 힘을 방증한다는 지적이다.

2012 대선 이후 결집한 ‘팬덤’
차기 지도부 주목…혁신? 정체?

우선 송영길 의원은 ‘바람직한 행태가 아니다’라고 쓴소리를 냈다. 송 의원은 지난 15일 “견해가 다르다고 해당 행위로 규정하고 공격하는 행위는 당의 건강성을 해치는 것”이라고 비판했다. 이어 이를 묵과하는 것에 대해 국민들의 이견이 수렴될 통로가 차단되는 것이라고 했다. 그는 ‘민심 이반’으로 이어질 수 있다고 지적하기도 했다.

송 의원은 “온전하게 열린 정당으로 발전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하지만 홍영표 의원의 입장은 달랐다. 문자폭탄에 민심이 담겨 있다는 것이다. 홍 의원은 이날 CBS 라디오에서 “제가 정치인 중에서 문자폭탄을 가장 많이 받는 사람 중 하나”라며 “문자가 절대로 한 목소리로만 오지 않는다”고 말했다.

문자폭탄이라 하더라도 이를 민심의 소리로 듣는다는 설명이었다. 

우원식 의원 역시 비슷한 입장을 내놨다. 우 의원은 “강성 지지층이 다양한 의견을 표출할 수 있는 분위기를 억압한다고 해서 그들의 표현을 막는다는 것 자체가 모순”이라며 “당원을 구분하고 선 긋는 것에 반대한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당원들 모두 ‘진심 당원’인 것이라고 강조했다.

비단 당 대표 선거를 앞둔 후보들의 목소리만 다른 것은 아니다. 민주당 원내대표 선거에 출마했던 의원들 역시 서로 이견을 보였다.

박완주 의원은 지난 14일 한 언론 인터뷰에서 “당이 그동안 침묵하고 방관했다”고 꼬집었다. 강성 당원의 행위가 건전한 논의를 위협한다고도 지적했다. 박 의원은 이튿날 KBS 라디오에서도 “과대한 당심, 왜곡된 당심에 대해서는 원내대표를 떠나 중진으로서 교정하고 수정하는 게 바람직하다”고 강조했다. 

반면 윤호중 의원은 지난 14일 언론 인터뷰에서 “의원들에게 자유롭게 의사를 전달할 수 있다는 방향 자체는 긍정적”이라면서도 “열혈 지지자분들께 당부드리고 싶은 건 (의원들이)개별 현안마다 각자 다른 입장을 가질 수도 있다는 것”이라고 밝혔다.

강성 당원들의 표현에 대해 언급하면서도 이들의 행위 자체는 부정하지 않은 셈이다. 이들 중 윤 의원이 지난 16일 민주당 원내대표로 선출되면서 귀추가 주목된다.

당권 따라
결정될까

민주당은 재보선 참패 이후 일주일 넘는 시간 동안 강성 당원 눈치보기에 쇄신 논의가 이뤄지지 못했다는 지적을 받고 있다. 앞서 비대위가 꾸려졌을 때에도 비대위원장이 친문 중진인 도 의원으로 정해지면서 ‘김 빠진다’는 비판이 일기도 했다. 그래서인지 정치권 안팎에서는 민주당의 차기 당 대표가 누가 될지에 대해 주목하고 있다. 쇄신의 길로 걸어갈지, 도로 친문으로 회귀할지에 대해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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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엄 1년’ 여전히 요동치는 정치판

‘계엄 1년’ 여전히 요동치는 정치판

[일요시사 정치팀] 박희영 기자 = 2024년 12월3일 오후 10시27분, 윤석열 전 대통령이 비상계엄을 선포했다. 국가 최고 통수권자의 선택은 정치권을 넘어 대한민국 전역을 강타했다. 내란의 밤이 지나고 탄핵의 강을 건너 마침내 대선 정국까지 넘었다. 1년이라는 시간이 흘렀지만 여전히 여의도 곳곳에 계엄의 여파가 남아 있다. 그날 오후 10시 무렵 윤석열 전 대통령이 예산안 관련 긴급 발표를 진행할 예정이라는 정보지가 돌았다. 얼마 뒤 정장 복장으로 대통령실 브리핑룸 카메라 앞에 나타난 윤 전 대통령은 다소 격양된 어투로 당시 야당이었던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을 강하게 비판했다. 스스로 걸어간 자멸의 길 민주당이 주요 예산을 전액 삭감해 국가 기능을 훼손하고 대한민국을 공황 상태로 만들었다는 것이다. 그러더니 돌연 야당을 반국가 세력으로 몰아세웠다. 윤 전 대통령은 “북한 공산 세력의 위협으로부터 자유 대한민국을 수호하고 우리 국민의 자유와 행복을 약탈하고 있는 파렴치한 종북 반국가 세력을 일거에 척결하고 자유 헌정 질서를 지키기 위해 비상계엄을 선포한다”고 밝혔다. 1979년 이후 45년 만에 내려진 비상계엄이었다. 한 시간도 지나지 않아 국회가 봉쇄됐고 헬기를 타고 도착한 무장 군인들이 안으로 들이닥쳤다. 국회 밖에서는 시민이, 안에서는 야당 보좌진들이 군인과 대치하면서 그야말로 일촉즉발의 상황이 이어졌다. 먼저 국민의힘 한동훈 전 대표가 입장을 냈다. 한 전 대표는 윤 대통령의 비상계엄 선포에 대해 “대통령의 비상계엄 선포는 잘못된 것”이라며 “국민과 함께 막겠다”고 밝혔다. 이후 한 전 대표는 탄핵을 찬성한다는 의미의 ‘찬탄파’로 찍혀 친윤(친 윤석열)계의 거센 비난을 받았다. 민주당 당시 이재명 대표는 실시간 방송을 통해 “대통령의 불법적인 비상계엄 선포는 무효”라며 민주주의의 마지막 보루인 국회를 지키기 위해 신속히 국회로 와달라는 말을 남겼다. 내란 사태가 지나고 난 뒤 이 대통령은 이날을 회상하며 “이 상황을 최대한 빨리 많은 시민에게 알려야 한다는 생각에 실시간 방송을 시작했다”고 전했다. 뒤이어 국민의힘 추경호 전 원내대표가 비상 의총을 소집했다. 추 전 원내대표는 국회 예결위 회의장으로 의총을 소집했다가 10분 뒤 장소를 여의도 당사로 옮겼다. 그리고 약 20분 뒤 다시 국회 예결위장으로 바꿨다. 이는 현재 추 전 원내대표가 받는 ‘비상계엄 해제 표결 방해 의혹’과 연결된다. 다음 날 새벽인 4일 오전 1시 비상계엄 해제 요구안이 국회에 상정됐다. 국회경비대가 국회 출입을 통제하자 담을 넘어서 국회로 진입한 우원식 국회의장은 결의안 상정에 앞서 “(윤 전 대통령이) 계엄령을 선포하면 국회에 지체 없이 통보해야 한다는 의무조항이 있으나 통보가 없었고, 이는 대통령의 귀책사유”라며 “우리는 그와 관계없이 (비상계엄 해제 의결을 위한) 절차를 진행하겠다”고 말했다. 결의안은 여야 의원 190명이 참석한 가운데 190명 전원이 찬성해 가결됐다. 국회 본청에 투입됐던 계엄군은 철수했고 이로써 윤 전 대통령이 선포한 비상계엄은 약 세 시간 만에 무효가 됐다. 비상계엄의 끝은 탄핵 정국의 시작으로 이어졌다. 민주당을 비롯한 ▲조국혁신당 ▲개혁신당 ▲진보당 ▲기본소득당 ▲사회민주당 등 야6당은 계엄이 해제된 당일 ‘윤석열 대통령 탄핵소추안’을 국회에 제출했다. 이들은 윤 전 대통령의 비상계엄을 ‘내란’으로 규정하고 “하야하지 않으면 탄핵소추를 진행할 것”이라고 압박했다. 국민의힘은 탄핵 반대를 당론으로 추인했다. 2017년 박근혜 전 대통령이 탄핵되는 과정을 겪으며 당이 벼랑 끝까지 몰렸던 점 등을 의식했다는 해석에 힘이 실렸다. 대통령에서 내란수괴 피의자로 썩은줄 알면서도 못 놓는 윤 동아줄 이날을 기점으로 국민의힘에서는 분열의 조짐이 보였다. 탄핵을 반대하는 ‘반탄파’의 친윤계와 찬탄파 친한(친 한동훈)계로 당원들이 갈라서면서 내부 총질이 시작된 것이다. 당초 한 전 대표 역시 탄핵에 반대하는 입장이었지만 비상계엄 당시 자신을 포함한 주요 정치인을 체포하려고 한 정황이 드러나면서 입장을 선회한 것으로 보인다. 여기서부터 시작된 두 계파의 갈등 또한 현재진행형이다. 비상계엄이 선포된 나흘 뒤인 7일, 윤 전 대통령에 대한 탄핵소추안이 정족수 미달로 국회에서 부결돼 자동 폐기됐다. 재적 의원 300명 중 195명이 참석한 가운데 탄핵이 상정됐지만 국민의힘 의원 대다수가 불참하면서 투표가 불성립된 것이다. 이날 표결에 참여한 국민의힘 의원은 김예지, 김상욱, 안철수 의원뿐이었다. 민주당 박찬대 의원은 표결에 참여하지 않은 의원 105명의 이름을 한 명 한 명 호명하며 본회의장으로 와줄 것을 요구했다. 두 번째 탄핵소추안은 일주일 뒤인 14일 국회에 상정됐다. 당시 국민의힘은 “표결 참석을 제안한다”면서도 탄핵 반대 당론을 유지했다. 결국 300명 가운데 ▲찬성 204표 ▲반대 85표 ▲기권 3표 ▲무표 8표로 비상계엄이 선포된 지 11일 만에 윤 전 대통령에 대한 탄핵소추안이 가결됐다. 공은 헌법재판소(이하 헌재)로 넘어갔고 긴 진통 끝에 지난 4월4일 헌법재판관의 만장일치로 윤 전 대통령이 파면됐다. 현직 대통령의 파면에 따라 조기 대선이 치러졌고 민주당에서는 이변 없이 이재명 대표가 대선주자로 나섰다. 국민의힘에서는 여전히 찬탄파와 반탄파가 대립했고 어느 날 늦은 밤을 틈타 ‘대선후보 날치기’를 시도하는 등 웃지 못할 촌극도 벌어졌다. 민주당은 ‘내란 세력 청산’을 앞세웠다. 이 후보는 대통령으로 당선되면 비상 경제 대응 태스크포스(TF) 구성을 약속하는 등 경제 성장을 강조하면서도 “내란 세력의 죄는 단호하게 벌하겠다”고 강조했다. 민주당 역시 “이번 선거는 내란 정권에 대한 준엄한 심판”임을 강조하며 윤 전 대통령과 국민의힘 심판론을 부각시켰다. 두 번의 선거 강경파만 남았다 6·3 조기 대선 투표 결과 이재명 후보가 49.42%를 득표하면서 21대 대통령으로 선출됐다. 국민의힘 김문수 후보는 41.15%로 이 후보가 8.27%p 차이로 앞섰다. 계엄 극복과 내란 청산을 외친 민주당이 국민의 선택을 받은 것이다. 국민의힘이 윤 전 대통령과 완전히 절연하지 못한 점 또한 보수가 정권 재창출에 실패한 원인으로 꼽힌다. 탄핵 정국 당시 앞장서서 윤 전 대통령을 엄호한 국민의힘 윤상현 의원은 ‘윤석열 대통령 탄핵소추안 표결 불참’에 따른 역풍을 우려하던 당 의원에게 자신이 박 전 대통령 탄핵에 앞장서서 반대한 점을 언급하며 “나는 끝까지 갔다. 그때 욕 많이 먹었다. 그런데 1년 후에는 ‘윤상현 의리 있어 좋아’(라고 하면서) 무소속으로 나와도 다 찍어줬다”고 말했다. 김문수 후보 역시 대선 투표 직전까지 윤 전 대통령에게 단호히 탈당을 요구하지 못했다. 김 후보는 “대통령 탈당(여부)은 본인 뜻”이라며 “자기가(국민의힘이) 뽑은 대통령을 탈당시키는 방식으로 책임이 면책될 수 없고, 도리도 아니”라고 설명했다. 국민의힘은 대선에서 패배했지만 아직도 윤 전 대통령의 그림자로부터 벗어나지 못했다. 친윤계를 비롯한 중진 의원의 지역구가 보수의 심장인 TK(대구·경북)임을 고려했을 때, 윤 전 대통령과 결별하는 것은 핵심 지지층을 놓는 것과 같다는 우려에서다. 지난 8월 국민의힘 전당대회서도 반탄파인 장동혁 후보가 김문수 당 대표 후보를 누르고 당선됐다. 장 후보는 탄핵 정국 당시 극우 색채가 짙은 탄핵 반대 집회를 찾아가 강성 지지층에게 표심을 구애하는가 하면 찬탄파들을 향해 “내부 총질 세력과는 같이 갈 수 없다”는 발언도 서슴치 않았다. 당선 직후에는 “우파 시민들과 연대해 이재명정부를 끌어내리는 데 모든 것을 바치겠다”며 강경 노선을 예고하기도 했다. 그의 말처럼 장 대표는 지난 9월 장외투쟁을 통해 이정부와 본격적으로 각을 세우기 시작했다. 국민의힘이 장외투쟁에 나선 것은 ‘조국 사태’ 이후 6년 만이다. 당 지도부는 대구를 시작으로 전역을 돌며 여론전을 통해 반격에 나설 기회를 보고 있다. 민주당은 “내란 옹호 대선 불복 세력의 장외‘투정’”이라고 비꽜다. 마찬가지로 지난 8월 강성 지지층의 지지를 받아 대표로 당선된 정청래 대표는 “윤어게인 내란 잔당의 역사 반동을 국민과 함께 청산하겠다”며 국민의힘 청산을 강조했다. 강경파인 정 대표와 장 대표가 당권을 잡으면서 국회는 점차 극한으로 치달았다. 정면충돌 치킨 게임 계엄 1년을 앞두고는 민주당의 ‘내란 세력 척결’에 국민의힘이 ‘내란 팔이’라고 맞불을 놓는 지경에 이르렀다. 국민의힘 강경파 의원들의 입은 점점 더 거칠어지고 있고, 민주당은 그때마다 계엄 카드를 꺼내며 “내란 옹호 세력과 협치할 수 없다”고 반격했다. 내란 팔이라는 단어는 국민의힘 나경원 의원의 메시지로 시작됐다. 나 의원은 자신의 SNS를 통해 “특검 연장은 오로지 내란 정국을 연장하려는 민주당의 정략일 뿐”이라며 “내란팔이 없이는 국민의 마음을 얻을 자신도, 국정을 책임질 정책 능력도 없으니 이 지경”이라고 몰아세웠다. 민주당 주도로 ‘더 센 특검법’이 통과하자 이를 지적한 것이다. 나 의원은 “에라잇, 맨날 내란, 내란하다 보면 국민들도 결국 지쳐버릴 것”이라며 “소위 내란 약발도 곧 떨어질 것”이라고 주장했다. 한 여권 관계자는 “계엄 1년이 지나도록 제대로 된 사과나 해명도 없이 여전히 민주당 뒷다리만 잡는 게 국민의힘”이라며 “내란팔이라는 말을 하기 전에 그동안 국민의힘이 보여준 태도를 돌아보시라. 윤 전 대통령을 면회하기 위해 구치소로 뛰어간 것이며 극우 집회에서 마이크를 든 것까지, 사과의 기미가 전혀 없는 상황에서 벌써부터 ‘지겹다’는 경솔한 표현은 국민께 비판받을 일”이라고 지적했다. 오는 3일 계엄 1년 메시지를 통해 양당의 향배를 가늠할 수 있을 것이란 해석이 나오는 가운데 민주당은 정당해산 심판을 꺼내든 반면, 국민의힘은 메시지 톤을 놓고 여전히 갈팡질팡하면서 하나의 목소리를 내는 데 어려움을 겪고 있다. 민주당 정청래 대표는 지난달 26일 “내일(27일) 국회 본회의에서 추경호 전 원내대표 체포동의안 표결이 이뤄진다. 추 전 원내대표는 윤 전 대통령의 불법 계엄 당시 의원총회(이하 의총) 장소를 여러번 변경하며 국회의 계엄 해제 표결을 의도적으로 방해했다는 의혹을 받고 있다”며 “총을 든 계엄군이 국회 창문을 깨고 진입하는 긴박한 상황 속에서 의총 장소를 국회 밖으로 공지한다는 것은 상식적으로 납득할 수 없는 처사”라고 지적했다. 이어 “이것은 다분히 의도적이고 적극적인 계엄 해제 방해로밖에 볼 수 없는, 충분히 의심되는 상황”이라며 거듭 위헌정당 해산심판 청구의 필요성을 강조했다. 강경파만 살아남은 포스트 탄핵 여의도 계엄 1년 메시지, 여야 모두 주목 국민의힘 내에서는 메시지의 세기를 놓고 충돌 조짐이 보인다. 강성 지지층을 의식한 지도부는 강경 메시지를 주장한 반면, 원내지도부를 비롯한 일부 초선 의원들 사이에서는 사과를 포함한 톤다운된 메시지를 요구하는 등 온도 차가 생긴 것이다. 초선인 국민의힘 김용태 의원은 한 라디오를 통해 “지난해 극한 여야 대립 속에 다수 야당(민주당)의 입법 전횡이 있었던 것은 사실”이라면서도 “계엄으로 군대를 동원해서 정치적 문제를 해결하려 했던 건 국가 발전이나 국민통합, 보수 정치에 있어 전혀 도움이 되지 않았다. 불법적이고 무모하고 과격한 행동”이라고 주장했다. 이어 “그간 1년 동안 국민의힘이 비상계엄을 어떻게 생각해 왔는지 등에 대한 규명이 필요하다. 그것이 규명되면 사과와 반성은 당연한 일”이라며 “단순히 사과와 반성으로만 끝나서도 안 된다. 앞으로 국민의힘이 어떻게 바뀔 것인지에 대한 메시지까지 내놔야 한다”고 주장했다. 비상계엄이 지난 특수성을 감안하더라도 현재 여야가 보이는 양상은 박 전 대통령 탄핵 이후와 비슷하다는 평이다. 탄핵 이후 조기 대선에서 당선된 문재인 전 대통령은 해결 과제로 적폐 청산을 내걸었고, 이 대통령은 ‘내란 청산’을 주장했다. 사면초가인 국민의힘 상황 역시 10년 전 탄핵 후폭풍을 직면하고 분열한 새누리당과 닮아있다. 이듬해 6월 지방선거가 예정된 점까지, 지금의 여야가 과거를 그대로 답습할지 이목이 쏠린다. 당시 새누리당은 자유한국당으로 간판까지 교체했지만 2018년 지방선거에 참패하면서 국회 바닥에 무릎을 꿇고 국민에게 사죄했다. 지금 국민의힘이 어떤 선택을 하는지에 따라 내년 지방선거의 운명이 달라질 것이란 해석이 나오는 이유다. 이와 관련해 국민의힘 김재원 최고위원은 CBS 라디오에서 ‘중도층 등 외연 확장을 위해 계엄에 대한 사과가 필요하지 않느냐’는 진행자의 질문에 “투표율을 55%에서 60% 정도로 봤을 때 중도층은 투표를 하지 않는 계층일 경우가 많다. 오히려 진영에 속한 사람들이 투표한다”고 분석했다. 김 최고위원은 “정치 고관여층보다는 정치 무관심층을 따라가야 한다고 했을 때 어떤 일이 벌어질 건가. 보수는 아직도 분열돼있고 내부 싸움도 있는 상황에서 지금 당장 이동해 갔을 때 벌어질 손실도 굉장히 클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 같은 발언은 선거에 직면하면 중도층 포섭을 위한 전략을 세워야 하지만, 아직 당이 불안정한 만큼 중심이 되는 지지층을 단단히 잡아야 한다는 뜻으로 풀이된다. 10년 전 데자뷔? 비상계엄 사과 메시지에 대해서는 “우리가 배출한 대통령이 탄핵당한 것이 우리 숙명인데 그분들이 탈당했다고 해서 벗어나 지겠느냐”며 “자꾸 절연, 절연하는데 인연이 끊기겠느냐. 없어지지 않는다”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일회성 사과로 과거 잘못을 끊어내고 새롭게 출발할 수 있다고 믿는 것 자체가 잘못”이라며 “역사적 공과를 안고 가면서 우리가 어떤 정치를 할 것인가를 보다 고민하는 그런 모습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이어 “쉽게 사과하고 끝날 문제가 아니”라며 “사과하는 모습보다는 우리가 앞으로 이런 정치를 해나가고 국민에게 믿음을 드리겠다는 것이 더 낫다”고 주장했다. <hypak28@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