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풍비박산' 대선 패배 후폭풍

당 깨지고 감옥 간다?

[일요시사 정치팀] 정인균 기자 = 오는 9일에 드디어 대통령이 누구인지 정해진다. 양당은 선대위 인물들을 중심으로 새로운 정부 내각을 미리 그려보는 등 기분 좋은 상상의 나래를 펼치고 있다. 그러나 승자가 있으면 패자도 있는 법. 누구도 패배의 상황은 그려 보지 않는다. 선거에서 지면 누가 어떤 책임을 져야할지 계산해보는 것 역시 양당이 할 일이다.

초보 정치인은 선거에서 이기는 방법만을 연구하지만, 고단수 정치인은 선거에서 잘 지는 방법까지 함께 연구한다. 각 선대위에 포진돼있는 고단수 정치 전략가들 또한 요즘 ‘잘 지는 방법’을 한창 연구 중이다. 대선 승리만큼 중요한 게 피해를 최소화하며 지는 것이라는 것을 누구보다 잘 알기 때문이다.

선거는 
또 있다

경험 많은 정치인들은 선거에서 지더라도, 다음 선거가 또 돌아온다는 것을 그동안 무수히 많이 경험했다. 이번 대선에는 유난히 ‘역대급’이라는 수식어가 따라다닌다.

이렇게 대선후보의 흠결이 많이 있던 적도 없었고, 이렇게 지지층이 결집되지 못했던 적도 없었기 때문이다.

후보 개개인의 ‘역대급’ 리스크는 그동안 경험하지 못했던 대선판을 짜내고 있다. 지난 몇 달 동안 양측의 선대위는 그야말로 산전수전을 다 겪었다. 후보들이 개개인의 비리 문제에 고개 숙이는 모습은 이미 유권자들에게 익숙한 뉴스가 됐고, 양 선대위는 각종 문제 끝에 저마다의 쇄신 과정을 거쳐야 했다.


경선에 참여했던 경쟁자들은 각자의 방법으로 최종 대선후보를 견제해왔다. 어수선한 분위기 속에서 두 후보가 패배의 성적표를 받아든다면, 후폭풍은 전례 없는 수준이 될 것이다.

지금 선대위에 참여하고 있는 양당 주요 인사들에 대한 쇄신부터 이뤄질 것이라는 의견이 나오는 중이고, 최악의 경우 당명 교체까지 갈 것이라는 예측이 정계에 떠돌고 있다.

이만큼 ‘가볍지 않은’ 이번 대통령선거에서 얻을 것과 잃을 것을 치열하게 계산해야 한다. 승자가 있으면 패자도 있기 마련이다.

이런 계산 속에서 누군가는 분명히 선거 패배에 대한 책임을 져야 한다. 후보 본인은 물론이고, 그를 도왔던 공신 모두 선거 패배에 대한 책임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더불어민주당의 경우, 이들은 경선 과정에서부터 이재명계와 이낙연계, 둘로 갈라져서 싸워왔다.

이낙연 전 대표를 도왔던 정운현 전 공보단장은 최근 국민의힘 윤석열 대선후보에 대한 지지를 선언하며 아직도 캠프 사이의 앙금이 남은 모습을 보여주기도 했다. 이낙연 캠프 측에서는 이재명 대선후보를 당 지도부가 경선에서 대놓고 밀어주고 있다고 주장했다.

끝까지 경합을 벌였던 민주당 이낙연 전 대표 측은 “처음부터 송영길 대표는 이재명 후보를 도아왔다”고 공공연하게 발언한 바 있다. 당시 이 후보와 송 대표 측은 크게 반발했지만 국민 여론은 이 전 대표 측의 발언에 더욱 공감했다.

실제로 두 사람의 전략적 연대가 지난해 초부터 이뤄져왔기 때문이다. 당시만 해도 여당 내 1위 대선후보 주자와 당 대표 3파전에 참전 주자였던 이 후보, 송 대표는 전략적인 연대를 형성했다. 


‘86그룹’(80대 학번, 60년대생)이라는 교집합 이외엔 큰 공통분모가 없었기에 많은 사람들은 둘의 연대를 의아해했지만, 곧 ‘반 이낙연’이라는 명분 때문이라는 것이 보도되자 모두가 고개를 끄덕였다.

역대급 초박빙 선거…후유증도 역대급?
이재명에 줄 댄 민 의원들 물갈이 조짐

당 대표를 노리고 있던 송 대표는 친문(친 문재인) 계파가 내세운 홍영표 의원과 민평련계의 우원식 의원을 앞지를 ‘세력’이 필요했다. 어느 쪽의 지지도 받지 못했던 송 대표가 택한 길은 ‘반문(반 문재인)’ ‘반 이낙연’ 전략이었다.

자신은 어느 계파에도 속해있지 않은 투명한 후보이기에 본인에게 표를 달라는 것이었다.

여기에 호응한 것이 이 후보다. 여권 대선주자 여론조사에서 이 전 대표를 오차범위 밖으로 따돌리며 승승장구했지만, 누구보다 당내 세력이 필요한 입장이었기 때문이다.

실제로 본격적인 당권 경쟁이 시작되기 전, 이 후보는 주변인들에게 ‘누구를 도와줘야 할지’ 수차례 자문을 구했다고 전해진다.

3개의 선택지에서 이 후보가 송 대표의 손을 들어준 것은 본인의 이익 때문이었다.

‘적통’에 과하게 집착하는 친문에서 대권주자로 클 수가 없기에, 또 과거에 비해 많이 ‘약해진’ 민평련계의 지지를 얻는다 해도 크게 힘이 될 것 같지는 않았기에, 남아 있는 단 하나의 선택지인 송 대표를 선택했다.

‘친문’계에는 이미 이 전 대표가 대권주자로 내정돼있었다. 이 후보가 친문 의원들 모두를 설득해 이 전 대표를 이겨내는 것은 고작 몇 개월의 시간으론 불가능했다.

여의도에서 정치해본 경험이 없는 ‘0’선 의원인 이 후보에게 주어진 시간은 전당대회 후 경선 시작 전까지인 고작 3개월뿐이었다.

민평련계는 김근태 의원의 별세 이후, 힘이 많이 약해진 집단으로 평가받는다.

제 18대 대선에서 손학규 전 의원을 과반 이상 지지했던 이들은 이후 주요 인사들이 여러 갈래로 진영을 이탈하며 갈 길을 잃은 상황이다. 또, 집단 특성상 정치적으로 큰 결단을 내는 데에도 인색하다. 


일부 평론가들은 이것이 이들 계파가 아직도 존재하고 있는 이유라고 평가하지만, 사실 이 부분이 오히려 이들의 최대 약점이라는 의견에 더 많은 사람이 동의하고 있다.

“책임질 일이 없다”는 말은 그만큼의 권한을 가져본 적 없는 집단이라는 소리와 똑같은 뜻이기 때문이다.

이처럼 어쩔 수 없던 선택을 해야만 했던 이 후보는 송 대표의 전략적 연대를 펼쳐 크게 성공했다. 둘은 현재 각각 최종 대선후보, 당 대표 자리까지 올라왔다.

할 수 없이
상부상조

민주당 지도부는 경선 과정에서 중립을 지켰다고 주장하지만, 경선 후 상대 후보 측에서 볼멘소리가 나왔던 만큼, 송 대표가 완벽하게 공정을 지켰다고 평가하기는 무리가 있다.

따라서 대선 패배 시, 가장 책임을 져야하는 것은 송 대표를 필두로 내세운 민주당 내 ‘이재명계’ 의원들이다. 이를 잘 알고 있는 송 대표는 지난 1월25일 기자회견을 열고, 불출마 선언과 재보궐선거에 무공천할 뜻을 내비친 바 있다.


대선에서 지면 곧 본인과 본인의 계파 모두가 당내 입지가 곤란해질 것이라는 것을 알았기에, 본인의 살을 내어주는 결단을 내린 것이다.

친문계와 민평련계에 속하지 못한 이재명계 의원은 약 40~50명으로 파악된다.

선대위에서 상대적으로 눈에 많이 띄고 있는 우상호 의원도 여기에 속한다. 우 의원 역시 이미 불출마를 선언한 상태로, 정당 내에서 계파정치의 혁신을 줄곧 외쳐왔다. 당내 입지가 적어진 이들 모두 대선 패배의 결과를 책임지거나 계파를 이탈해 다른 쪽에 줄을 서야 하는 입장이다. 

국민의힘의 경우도 민주당만큼 어지러운 상황을 마주하고 있다. 대선 몇 주 전에서야 가까스로 원팀 모양새는 갖췄지만, 국민의힘은 민주당보다 더 많은 내홍을 겪었다.

가장 큰 원인은 윤석열의 측근들, 이른바 ‘윤석열 핵심 관계자’(윤핵관)와 이준석 대표, 김종인 전 비대위원장과의 갈등이다.

‘세력’ 없이 당 대표로 추대된 이 대표는 경선이 끝나고 나서 부터 국민의힘 선대위에 크고 작은 논란을 만들어왔다.

줄곧 윤 후보와 그의 측근들을 비판하며 쇄신의 목소리를 높였던 이 대표는 윤핵관들을 콕콕 찝으며 언급한 뒤, 선대위를 박차고 나간 바 있다. 나간 횟수도 두 차례나 된다.

처음 선대위를 박차고 나간 것은 지난해 11월 말에 이르러서다.

‘이대남(20대 남자)’표의 결집을 완성한 윤 후보는 ‘이대녀(20대 여자)’표도 노리기 위해 이수정 교수와 신지예 전 정치네트워크 대표를 영입했다.

영입 과정에서 이 대표는 언론 인터뷰에서 “윤핵관이 경기대학교 이수정 교수를 영입했고, 이 교수가 이를 수락했다는 사실을 언론을 통해 알게 됐다”며 “지금까지 우리 당이 선거를 위해 준비했던 과정과 방향이 반대되는 것이고, 지지층의 재구성과 전략의 재구성을 의미하는 것”이라고 강도 높게 비난했다.

윤 후보와 가치관이 다르다는 것을 공개적으로 드러냄과 동시에 본인 스스로 설로만 돌던 ‘당 대표 패싱’을 자인한 셈이다.

여론조사에서 홍준표 후보에게 밀렸던 윤 후보가 국민의힘의 최종 대선후보가 될 수 있었던 데에는 당내의 세력을 본인 쪽으로 규합한 점이 컸다.

이 과정에서 윤 후보는 자의 반 타의 반으로 본인의 관계자를 다수 양산해냈다. 권성동, 장제원, 윤한홍 의원이 대표적이다. 

권 의원은 어렸을 때부터 윤 후보와 알고 지낸 죽마고우 사이로 널리 알려져 있다. 경선 내내 윤 후보의 비서역할을 수행하던 그는 당 영입부터 대통령 후보 출마, 그리고 대선 본선에서까지 지대한 영향력을 행사해왔다. 현재 국민의힘에서 실세 중 실세로 평가받는 그는 선대위의 꽃이라 할 수 있는 비서실장직에 임명되기도 했다.

윤핵관 3명
저마다 인연

장 의원은 경선부터 윤 후보를 지켜온 수문장으로 “내가 직접 윤석열을 검증했다”며 정치에 막 입문한 윤 후보의 어깨에 날개를 달아줬다.

실제로, 2018년 국회법제사법위원으로 일했던 장 의원은 당시 검찰총장으로 일했던 윤 후보에게 매서운 질문의 공격을 던졌던 것으로 유명하다.

그는 윤 후보의 가족 비리와 본인 비리를 차례차례 밝히며 국회 인사청문회서 윤 후보를 공격했다. 

래퍼인 아들 노엘이 음주운전 문제를 일으키며 난처한 상황에 빠지자, 장 의원은 당시 윤 후보에게 캠프에서 물러날 뜻을 내비쳤다고 한다.

그러나, 여기서 윤 후보는 끝까지 만류하며 그의 사표 수리를 마지막까지 뒤로 미뤘다. 이때 만들어진 끈끈한 인연은 아직까지 계속되고 있다.

최근 이뤄진 국민의당 안철수 대표와의 단일화 회동에서도 장 의원은 윤 후보의 ‘전권 대리인’ 역할을 맡으며 윤-안 단일화를 이끌어낸 바 있다.

윤한홍 의원과 윤 후보와의 인연은 윤 후보가 추미애 전 법무부 장관과 대립각을 세울 때부터 이어졌다. 당시 검찰개혁을 시도하던 추 전 장관은 윤 후보와 크게 마찰을 빚은 바 있다.

이때 윤 후보를 윤 의원이 도와줬다. 윤 의원은 법사위 소속으로 추 전 장관의 저격수 역할을 맡아 그 공로를 인정받았다. 윤 의원도 경선이 시작되자마자 윤석열 캠프에 합류에 전략 기획부총장을 맡았다.

이 대표가 지난해 12월 초, 김 전 비대위원장과 함께 돌아올 당시 윤 후보는 “윤핵관들을 선대위에서 모두 물러나게 하겠다”며 초강수를 띄었다. 이때 이들은 공식적인 자리에서 모두 물러난 것처럼 보였다.

그러나 국민의힘 관계자들은 아직 그들이 물밑에서 핵심적인 역할을 수행하고 있다고 보고 있다. 이번 윤·안 회동에서 활약한 장 의원만 보더라도, 이들의 의심이 다분히 합리적이라는 것을 엿볼 수 있다.

윤석열 문고리 3인방 행보 주목
잘 질 준비에 들어간 고단수들

당 대표와 대선후보 측근 간의 기싸움은 여러 모로 국민의힘의 많은 지지층을 이탈시켰다. 국민의힘을 지키고 있는 기득권과 이를 쇄신하고자 하는 젊은 당 대표, 그리고 그가 데리고 온 김 전 비대위원장 간의 줄다리기는 많은 이들을 지치게 만들었다. 

이 과정에서 상당수 표가 야권의 또 다른 후보였던 안 전 대표에게 가기도 했다. 일각에서는 “윤 후보를 문정부가 만들었다고 광고하지만, 안 후보를 빅3로 올려놓은 것은 윤핵관과 이 대표”라는 평가를 내놓기도 했다.

끝내 단일화에 성공한 것처럼 보이나, 이들의 이탈세가 완전히 다시 돌아왔을지는 미지수다.

안 후보와의 단일화 시점은 여론조사 발표가 금지되는 기간, 이른바 ‘깜깜이 기간’ 직전인 지난 3일에서야 이뤄졌기 때문이다. 깜깜이 기간 직전까지 안 후보의 지지율은 10%에 근접해있었다.

산술적으로 계산한다면 약 10%의 지지도가 윤 후보에게 돌아가야 맞겠지만, 많은 정치 평론가들은 그렇지는 않을 것이라고 예측하고 있다.

선거 패배 시 안 그래도 세력이 없었던 이 대표의 입지는 곧바로 사퇴설로 불거질 전망이다. 홍보전에서 톡톡한 역할을 했다고는 하지만, 대표로서 당내 통합을 이뤄내지 못했고, 마지막에 합류한 안 대표와의 단일화에서도 걸림돌 역할만 했을 뿐, 활약이 미미했기 때문이다.

심지어 안 대표는 단일화 기자회견에서 이 대표를 향해 “그 사람이 무슨 말을 하는지 들어본 적이 없다”며 이 대표에 존칭도 붙이지 않고 거리를 뒀다.

윤핵관 3인과 ‘친윤(친 윤석열)계’ 의원들은 저마다의 책임을 지고 물러나야할 상황이다.

특히 윤 후보의 문고리 3인방이라고 알려진 ‘권성동·장제원·윤한홍 의원’은  당내 주류에서 ‘비주류’로 갈 가능성이 높아진다.

친윤계가 절대 다수인 국민의힘 특성상 윤 후보에게 줄을 댄 모두가 책임질 일은 피해가겠지만, 누군가는 선거 패배에 대한 책임을 져야 하기 때문이다.

최악보단
차악으로
 

선거의 패배 시나리오를 그리는 일은 매우 고통스러운 일이다. 하지만 생각하기 싫어 외면하고 방치한다면, 더 최악의 시나리오가 그려진다. 하기 싫은 일을 마주할 때 본인의 약점은 줄어든다. 양 캠프의 대다수는 승리한다는 확신을 갖고 선거운동에 임해야겠지만 조금 더 현명한 정치 원로들이라면, 졌을 경우 또한 철저히 대비해야 한다.


<ingyun@ilyosisa.co.kr>

 

<기사 속 기사> 심상정은 어떻게 될까?

양강 후보에 비해 당선 가능성이 상대적으로 낮은 정의당 심상정 후보는 선거 후를 어떻게 대비하고 있을까.

심 후보는 기대 이하의 지지율을 등에 안고 선거운동을 진행하고 있다.

그는 지지율 부진에 낙담해 지난달 초 칩거에 들어간 후 선대위 전면 쇄신 카드를 꺼내들었다. 

그러나, 아직까지도 큰 반전은 이뤄내지 못하고 있는 중이다.

일각에서는 ‘이번이 심 후보의 마지막 대선’이라는 의견을 조심스레 내비치고 있다.

이번 대선이 네 번째인 심 후보는 이제 본인의 뜻을 이어줄 다음 정의당의 대통령 후보를 물색해야 한다.

심 후보의 숙원인 다당제 실현과 노동자들에 대한 인권개혁을 이뤄줄 정의당의 다음 대선주자가 누가 될지 정의당 지지자들은 기대하고 있다. <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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벼랑 끝 국민의힘 뒤집기와 자충수

벼랑 끝 국민의힘 뒤집기와 자충수

[일요시사 정치팀] 박형준 기자 = 국민의힘 장동혁 대표는 비상계엄 1주년을 맞아 페이스북에 사과 입장을 밝혔다. 국민의힘 원내 지도부도 기자회견을 열고 고개를 숙였다. 사과는 짧았지만, 더불어민주당에 대한 비난은 길었다. 사과 의견을 통해 확인되는 국면 전환 노림수는 ‘한동훈을 제외한 빅텐트’인 걸까? 국민의힘 공보실은 지난 2일 오후 10시54분 출입기자들에게 지난 3일 지도부 일정을 공지했다. 공보실에 따르면, 지도부의 일정은 ‘통상 일정’이었다. 공개 외부 일정이 없단 의미다. 지난 3일은 윤석열 전 대통령의 비상계엄 선포 1주년이었다. 통상의 의미는? 지도부의 공개 외부 일정이 없단 것은 국민의힘 장동혁 대표의 비상계엄 관련 공개 사과 및 기자회견 일정이 없었단 의미로 해석될 수 있었다. 장 대표는 지난 3일 오전 자신의 페이스북을 통해 사과 의견을 밝혔다. 장 대표는 “윤 전 대통령의 비상계엄은 의회 폭거에 맞서기 위한 계엄이었다”는 등 “정당화하는 것 아니냐”는 지적을 받을 소지가 있는 주장부터 제시했다. 윤 전 대통령 파면에 대해서도 “한국 정치의 연속된 비극을 낳았고, 국민과 당원들께 실망과 혼란을 드렸다”는 등 ‘탄핵 반대’ 의견을 유지했다. 장 대표에 따르면, 국민의힘의 잘못은 하나로 뭉쳐 제대로 싸우지 못했다는 부분이었다. 자신에 대해서도 “당 대표로서 책임을 통감한다”고 강조했다. “장 대표가 사과하지 않을 것”이란 예상은 같은 날 오전 4시50분경 이정재 서울중앙지법 영장전담 부장판사가 국민의힘 추경호 의원의 구속영장을 기각하면서 확실시됐다. 장 대표는 페이스북 게시글에서도 “추 의원 구속영장 기각은 어둠의 1년이 지나고 두터운 장막이 걷히고, 새로운 희망의 길이 열리는 신호탄”이라면서 대정부 투쟁에 의미를 부여했다. 장 대표는 “이재명정권의 대한민국 해체 시도를 국민과 함께 막아야 한다”고 주장했다. 장 대표가 사과 불가는 지난달 28일 대구에서 진행된 국민의힘 장외집회에서 어느 정도 예고된 것이었다. 당시 그는 “비상계엄에 대한 책임을 무겁게 통감한다”면서도 “우리가 흩어지고 분열한 결과, 이재명정권이 탄생했단 것을 기억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어 “책임을 무겁게 통감한다”면서도 이재명 대통령과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을 비난하는 내용으로 연설 대부분을 채웠다. 5일 간격으로 같은 얘기를 반복한 것이었다. 당시 장 대표가 주장한 민주당에 대한 비난의 핵심 내용은 ▲의회 폭거·국정 방해 ▲무모한 적폐 몰이에 따른 공무원 사찰 위협 ▲폭거로 인한 민생 파탄·국가 시스템 붕괴 ▲내란 몰이 등이었다. 비상계엄 1주년에 강조된 “민주당 폭거” 국면 전환·결집 노리는 선 사과·후 비난? 국민의힘의 비상계엄 관련 사과는 ▲송언석 원내대표 ▲유상범·김은혜 원내부대표 ▲최수진·최은석 원내대변인 등 원내 지도부 차원에서 나왔다. 송 원내대표 등은 지난 3일 국회에서 기자회견을 열어 “국민께 큰 충격을 드린 비상계엄 발생을 막지 못한 데 대해 국민의힘 국회의원 모두는 무거운 책임을 통감하고 있다”며 “국민 여러분께 다시 한번 진심으로 사과드린다”고 말했다. 이어 군인·공직자·의료인·자영업자 등 비상계엄 선포 피해자들에게 “깊은 위로와 사과의 말씀을 드린다”고 고개 숙였다. 하지만 이후의 메시지는 이재명정부·민주당 비판 등 장 대표의 주장과 크게 차이가 없는 내용이었다. 송 원내대표는 “국민의힘 의원들은 패배의 아픔을 딛고 분열과 혼란의 과거를 넘어서 다시 거듭나겠다”며 “소수당이지만 처절하게 다수 여당과 정권에 맞서 싸우겠다”고 강조했다. 이전까지 국민의힘에서 장 대표에게 공개적으로 대국민 사과를 요구한 정치인은 오세훈 서울시장과 김용태·김재섭·권영진·엄태영·이성권·조은희 의원 등이었다. 국민의힘 양향자 최고위원은 지난달 29일 대전에서 진행된 장외집회 중 “국민의힘은 불법 계엄을 방치했으니, 반성해야 한다”고 주장했다가 일부 지지자들의 강한 항의를 받았다. 김재섭 의원은 지난달 28일 YTN 라디오 <더 인터뷰>에 출연해 “당 지도부의 사과가 없으면 제 나름의 사과를 해야 할 것 같다”며 “같이 메시지를 낼 국민의힘 의원들이 약 20명은 된다”고 주장했다. 이는 곧 “연판장을 돌리거나 기자회견을 할 수도 있다”는 압박으로 해석될 가능성이 있었다. 오 시장도 같은 날 채널A <김진의 돌직구 쇼>에 출연해 “중도층의 마음을 얻기 위해서라도 당 차원의 사과가 필요하다”며 “공당이라면 반성문을 쓰는 게 도리”라고 주장했다. 결국 이들은 당과 무관하게 대국민 사과를 했다. 오 시장은 지난 3일 자신의 페이스북을 통해 “국민의힘 소속 중진 정치인이자, 서울시민의 일상을 책임지는 시장으로서 그 책임을 무겁게 받아들인다”며 “그날의 충격과 실망을 기억하는 모든 국민께 거듭 사과의 말씀을 드린다”고 밝혔다. 국민의힘 의원 25명은 지난 3일 국회에서 “비상계엄 선포 당시 집권여당의 일원으로서 비상계엄을 미리 막지 못하고 국민께 커다란 고통과 혼란을 드린 점에 대해 거듭 국민 앞에 고개 숙여 사죄드린다”면서 ▲헌법재판소의 윤 전 대통령 파면 결정 존중 ▲윤 전 대통령과의 정치적 단절 ▲국민의힘 체질 개선·재창당 수준의 혁신 등을 약속했다. 이어지는 각자 플레이 장 대표에게 대국민 사과를 요구한 후 자체적으로 대국민 사과 성명을 발표한 국민의힘 정치인들은 대체로 수도권에 기반을 둔 소장파다. 이들 중 국민의힘이 강경 보수 정당으로 자리매김하면 가장 큰 손해를 볼 정치인으로는 오 시장과 김재섭·김용태 의원이 거론된다. 오 시장은 높은 개인 인기를 바탕으로 민주당의 서울시장 탈환 공세에 맞서고 있다. 김재섭 의원의 지역구 서울 도봉갑은 원래 민주당 텃밭이었다. 김 의원은 지난해 총선 당시 민주당 후보로 출마한 안귀령 대통령실 부대변인을 1094표 앞서 어렵게 이겼다. 지난해 12월7일 국민의힘의 윤 전 대통령 탄핵소추 표결 집단 이탈에 동참했을 때도 지역구에서 규탄 집회가 개최되는 등 홍역을 치렀다. 김용태 의원도 경기 가평·포천에서 민주당 후보로 출마한 박윤국 한국도자재단 이사장에 2774표 앞서 어렵게 금배지를 다는 데 성공했다. 국민의힘에 대해선 “강경 보수화가 진행된다”는 지적이 각계에서 이어지고 있다. 이 우려는 장 대표가 지난달 16일 유튜브 채널 ‘이영풍 TV’에 출연해 ▲자유통일당 ▲우리공화당 ▲자유민주당 ▲자유와혁신 등 원외 강경 보수 4당과의 지방선거 연대 가능성을 언급하면서 깊어졌다. 장 대표는 지난달 28일 개혁신당과의 연대 가능성에 대해선 “지금은 연대를 논의할 때가 아니”라면서 선을 그었다. 최근 국민의힘에선 “한동훈 전 대표를 축출하려는 것 아니냐”는 의문을 제기할 만한 밑그림을 계속 그리고 있다. 국민의힘 여상원 윤리위원장은 지난달 17일 사의를 표명했다. 여 위원장은 “당에서 ‘물러나면 좋겠다’는 연락이 왔다”며 “굳이 능욕당하면서 자리를 지킬 필요가 없다고 판단돼 원하는 대로 하겠다고 답했다”고 주장했다. 일각에선 이를 두고 “윤리위원회가 ‘계파 갈등 조장’을 이유로 윤리위에 넘겨진 국민의힘 김종혁 전 최고위원에 대해 주의 조치만 내린 것 때문 아니냐”고 의심하고 있다. 국민의힘 우재준 청년 최고위원은 지난달 30일 자신의 페이스북을 통해 “원하는 결론을 내리지 않았다고 윤리위원장을 사퇴시키는 게 정당한 일이냐”며 “내란 특별재판부를 만드는 민주당과 뭐가 다르냐”고 정면 비판했다. 이어 국민의힘 당무감사위원회는 지난달 28일 “당원 게시판 의혹에 대한 조사 절차에 착수했다”고 밝혔다. 당원 게시판 의혹은 “국민의힘 당원 게시판에 올라온 윤 전 대통령 부부 비방글 작성에 한 전 대표 가족이 연루된 게 아니냐”는 의혹이다. 장 대표는 취임 직후 “사실관계를 명확하게 밝혀 당원에게 알릴 것”이라는 방침을 밝혔던 바 있다. 윤 전 대통령 부부는 정치적으로 몰락해 서울구치소에 갇혔고, 형사재판을 받고 있다. 국민의힘이 당원 게시판 의혹을 밝혀낸 후 거둘 수 있는 실익으로는 “한 전 대표를 국민의힘에서 쫓아내고, 친한(친 한동훈)계를 무력화시킬 수 있다”는 것이 거론된다. 구 친윤(친 윤석열)계가 거둘 수 있는 이익이다. 한 전 대표에 대해선 보수 성향 유권자 사이에서도 호불호가 명확하게 나뉜다. 하지만 한 전 대표는 윤 전 대통령과 정치적으로 갈등하면서 비상계엄 해제에 동참했던 이력이 있다. 이 때문에 한 전 대표는 “국민의힘이 강경 보수 일색이 되는 걸 막는 방파제·상징”이란 분석이 오랫동안 있어왔다. 친한계로 거론되는 국민의힘 의원 중 상당수는 수도권에 지역구를 둔 소장파라는 분석이 나온다. 윤리위원장 쫓아낸 이유 윤 전 대통령의 비상계엄 선포에 대해선 “윤 전 대통령이 정치에서 폭력을 동원하는 것에 무슨 의미가 있는지 잘 몰랐던 것 아니냐”는 의문이 제기됐다. 정치의 본질은 대화·토론·협상이다. 영국 하원에선 20세기 초까지 의원이 총칼을 이용해 결투·난투를 했다. 물리적 폭력이 아닌 ‘언어폭력’ 선에서 공방을 이어가는 정치 문화는 제2차 세계 대전 이후 정착됐다. 윤 전 대통령의 비상계엄 선포가 전 세계에 줬던 충격은 민주주의가 충분히 성숙했다고 믿었던 대한민국에서 군을 동원해 정적을 제거하려던 사태가 발생했다는 것이었다. 장 대표·송 원내대표는 사과 메시지를 먼저 짧게 발표하면서 이재명정부·민주당 비판은 길게 이어가는 형식의 사과 의견을 밝혔다. 사과엔 ▲직접적인 반성 ▲분명한 잘못 인정 ▲재발 방지 약속 ▲보상 약속 등 4개의 원칙이 제기됐는데 “상대방 비판에 더 중점을 둔 사과는 역설적으로 ‘반성을 하는 게 맞느냐’는 비판으로 이어질 소지가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이명박 전 대통령은 지난 2008년 광우병 촛불시위 당시 대국민 사과를 했고, 박근혜 전 대통령은 지난 2016년 최순실 게이트가 불거진 후 대국민 사과를 했다. 이 전 대통령은 “모든 것이 제 불찰이고, 국민께 송구스럽게 생각한다”며 “미국산 쇠고기 수입 협상·후속 조치 중 국민의 마음을 헤아리는 데 미흡했고, 우려를 덜어드리지 못한 점에 대해 깊이 사과드린다”고 말했다. 박 전 대통령은 “국정을 꼼꼼하게 챙겨보고자 하는 순수한 마음으로 한 일”이라며 “이유 여하를 막론하고 국민 여러분께 심려를 끼쳐 놀라고 마음 아프게 해드린 점에 대해 송구스럽게 생각한다”면서 “국민께 깊이 사과드린다”고 말했다. 하지만 이 전 대통령은 당시 크게 불거졌던 각종 우려를 ‘괴담’으로 규정지었다. 이 때문에 촛불 시위 세력이 제시한 재협상 시한과 맞물린 시점에서 사과가 나온 점을 감안할 때 국면 전환을 위한 명분 쌓기 아니냐는 비판을 받았다. 박 전 대통령은 이미 각종 의혹이 광범위하게 제기돼 근거 자료들까지 제시되는 시점에서 “취임 후 일정 기간 일부 자료들에 대해 최순실씨의 의견을 들은 적은 있지만, 청와대 보좌 체계가 완비된 이후에는 그만뒀다”고 주장했다. 이로써 박 전 대통령의 해명은 신뢰를 잃었다. 장 대표·송 원내대표의 사과도 두 전직 대통령의 사과처럼 자신의 주장을 뒤에 배치한 후 더 큰 비중을 부여하는 형식을 유지했다. 비상계엄 1주년에 강조된 “민주당 폭거” 국면 전환·결집 노리는 선 사과·후 비난? 이런 사과 형식은 국면 전환·지지층 결집 목적을 가진 이들이 활용한 사례가 많다. 대표적인 예로, 고대 로마에서 율리우스 카이사르가 암살된 후 있었던 마르쿠스 브루투스·마르쿠스 안토니우스의 연설이 꼽힌다. 카이사르 살해를 주동한 브루투스는 “카이사르에 대한 내 사랑은 카이사르를 사랑하는 다른 분보다 절대 뒤떨어지지 않는다고 단언한다”고 선언한 후 “로마를 더 사랑해서 카이사르를 죽였다”고 주장했다. 이어 “나라를 위해 눈물을 머금고 가장 사랑하는 친구를 죽였다”고 강조했다. 안토니우스는 “카이사르 암살에 가담한 사람들은 모두 존경할 만한 분들”이라고 선언한 후 카이사르를 찬양하면서 그의 유언장을 공개했다. 유언의 핵심 내용은 “내 재산을 로마 시민에게 기증한다”는 것이었다. 또 카이사르가 살해당할 당시 입었던 칼자국과 피로 얼룩진 옷도 공개했다. 흥분한 로마 시민은 암살자들의 집을 습격했다. 얼마 지나지 않아 안토니우스·아우구스투스는 로마 정국을 장악했다. 불리한 내용을 먼저 짧게 거론한 후 유리한 내용을 장황하게 거론하는 형식은 정치적 목적을 위해 즐겨 이용된다. 장 대표·송 원내대표가 짧은 사과 의견을 밝힌 후 이재명정부·민주당을 비중 있게 비판한 것도 강경 보수 세력에겐 강한 인상을 줄 가능성이 있다. 특히 장 대표는 비상계엄의 원인을 ‘의회 폭거’라고 규정했다. 이에 따르면, 윤 전 대통령은 카이사르가 된다. 비상계엄 해제에 찬성해 사실상 윤 전 대통령 몰락에 가담한 한 전 대표와 친한계는 브루투스 일당이 되는 구도가 그려질 가능성을 배제하기 어렵다. 그렇다면 강경 보수 세력은 당원 게시판 의혹에 대해 어떤 의견을 제시할지 어렵지 않게 예상할 수 있다. 공나형 전남대 학술연구교수는 지난 2022년 발표한 논문 <대통령의 공적 사과 담화에서 드러나는 ‘개입’ 양상>에서 김영삼 전 대통령이 지난 1993년 쌀 시장 개방을 수용하면서 밝힌 대국민 사과와 박 전 대통령의 최순실 게이트 관련 대국민 사과를 분석했다. 공 교수는 김 전 대통령의 사과문에 대해선 “선의로 행한 행위가 어쩔 수 없는 부정적인 결과로 이어졌다고 강조하면서 결과의 부정성에 관여하는 자신의 의도의 비중을 제거했다”고 분석했다. 박 전 대통령의 사과문에 대해선 “자기 고백이 많은 분량을 차지하지만, 그 고백의 원인이 되는 행위에 대해선 소극적”이라고 분석했다. 12월3일 조용히 장 대표·송 원내대표의 사과도 “어쩔 수 없었다”는 항변과 상대방 비판을 내용으로 채웠다. 그러면서 민주당 심판·보수 재건·대여 투쟁을 강조했다. 결국 두 사람의 답은 ‘한 전 대표를 제외한 빅텐트’ 방침 재확인으로 보인다. 국민의힘의 12월3일은 이렇게 조용히 지나갔다. <ctzxp@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