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론재갈법' 야누스 민주당 막가는 노림수

정녕 독박이 두렵지 않은가

[일요시사 취재1팀] 장지선 기자 = 문재인정부는 스스로 ‘촛불 정부’라 칭했다. 박근혜-최순실 게이트의 진상규명을 위해 촛불을 든 시민들의 지지로 만들어진 정부라는 뜻이다. 박근혜-최순실 게이트는 언론 보도에서 시작됐다. 문정부 역시 그 공을 잊지 않았지만 출범 4년차 들어서면서 언론에 재갈을 물리려 하고 있다.

지난 19일 언론중재법 개정안이 국회 문화체육관광위원회(이하 문체위) 전체회의를 통과했다. 문체위는 이날 오후 전체회의를 열고 ‘언론중재 및 피해구제 등에 관한 법률 일부 개정안’을 위원회 대안으로 상정해 가결했다. 

일사천리
밀어붙여

전체 위원 16명 중 찬성은 9명이었다.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 소속 위원들과 열린민주당 김의겸 의원이 찬성표를 던졌다. 국민의힘 위원들은 상임위원장석을 에워싸고 반대 입장을 표명했지만 도종환 위원장은 그대로 기립 표결을 진행했다. 

언론중재법 개정안은 고의·중과실에 의한 허위·조작 보도 등 ‘가짜 뉴스’에 대해 최대 5배까지 징벌적 손해배상을 강제하는 것을 골자로 한다. 언론사가 허위·조작 보도를 한 경우 매출의 1만분의 1(하한선)부터 1000분의 1(상한선)까지 배상액이 부과될 수 있다.

배상액 선정이 어려울 경우 1억원까지 부과 가능하다.


법조계에서는 발생한 손해 정도와 무관하게 언론사의 매출액을 기준으로 배상액을 산출하는 방식은 위헌이라는 지적이 나온다. 손해배상액에 하한선을 두는 것이 기본 법리와 어긋난다는 입장이다.

정정보도 시 기존 보도와 동일한 시간·분량 및 크기로 싣도록 규정하는 내용도 포함됐다. 정정 대상의 내용이 기존 보도의 일부일 경우 분량을 기존 보도 대비 절반 수준으로 하도록 했다.

특히 인터넷의 경우 정정보도 청구만 받아도 무조건 청구 사실을 해당 기사에 병기한다는 내용이 포함됐다. 정정 요건이 되는지 따지기 전에 오보 낙인이 찍힐 수 있다는 우려가 제기된다.

허위·조작 보도와 관련된 기준이 모호하다는 지적도 있다. ‘중과실 추정’ 조항도 명확성이 떨어진다. 대법원은 공공의 이익을 위한 보도가 진실하지 않더라도 진실이라고 믿을 만한 상당한 이유가 있으면 책임을 면제한다는 취지로 판단했다.

김의겸 의원 동원해 강행 처리
언론·시민단체 반발 나몰라라

하지만 언론중재법 개정안에는 취재 과정에서 법률을 위반해 보도하거나 계속·반복적으로 허위·조작 보도를 한 경우, 제목과 기사 내용이 달라 제목을 왜곡하는 경우, 사진 등 시각 자료와 기사 내용이 달라 왜곡하는 경우에 중과실이 있는 것으로 추정할 수 있다고 돼있다.

이때 입증 책임은 언론사에 있다. 일반적으로 손해를 받았다고 주장하는 쪽에 입증 책임이 있던 이전까지의 사법체계 개념과는 다른 방향이다. 이 때문에 언론사에 입증 책임을 부과하는 것은 위헌 소지가 있다는 주장이 나왔다.


민주당은 우려가 제기될 만한 부분을 일부 반영해 수정했다는 입장이다. 이날 가결된 언론중재법 개정안은 징벌적 손해배상 청구 대상에서 고위공직자와 기업 임원 등을 배제하고 입증 책임을 피해자(원고)로 명확히 하는 등 ‘표현의 자유’ 위축 우려를 일부 반영했다. 

그러면서 징벌적 손해배상의 근거가 되는 ‘고의 또는 중과실’을 추정할 수 있도록 한 6개 조항을 4개 조항(▲보복적·반복적인 허위·조작 보도로 피해 가중 ▲허위·조작 보도로 회복하기 어려운 손해 ▲정정·추후 보도를 충분한 검증절차 없이 복제·인용 ▲기사의 본질적인 내용과 다르게 제목·시각 자료를 조합해 왜곡)으로 압축했다는 입장이다.

개념이 모호해 악용 가능성이 제기된 부분이다. 

국민의힘 간사인 이달곤 의원은 “많은 야당 의원이 기립 요구인지 거수 요구인지도 제대로 못 듣고 앉아 있었는데도 여당 의원들을 기립시켰고, 김의겸 의원이 제일 먼저 기립했다”며 “교조주의” “불법 표결” “의회 폭거”라고 성토했다. 

야 반발
역부족?

민주당의 언론중재법 개정안 강행 처리에 언론 관련 단체들과 시민단체들도 크게 반발했다. 국내 언론 7개 단체(관훈클럽, 대한언론인회, 한국기자협회, 한국신문방송편집인협회, 한국신문협회, 한국여기자협회, 한국인터넷신문협회)는 이날 공동성명을 통해 “언론에 재갈 물린 위헌적 입법 폭거를 규탄한다”고 밝혔다. 

이들은 언론중재법 개정안 처리 과정을 두고 “반대의 목소리는 조금도 용납할 수 없다는 오만함의 극치를 보여주고 있다”며 “절차적 정당성을 상실했으며 국회법의 취지를 무시한 반민주적 행태, 과거 군사정권 시절보다 못한 수준의 국격”이라고 강하게 비판했다.

또 언론중재법 개정안 폐기를 요구하면서 “요구가 받아들여지지 않을 경우 헌법재판소에 위헌 소송을 내는 등 모든 법적 수단을 동원해 저지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방송기자연합회, 전국언론노동조합, 한국기자협회, 한국PD연합회 등 언론 단체도 “‘언론개혁’이라는 이름 아래 최대한 기득권을 지키겠다는 노골적인 의사 표시”라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오늘 강행 처리로 민주당은 또 다시 언행 불일치와 내로남불의 늪으로 스스로 걸어 들어가고 말았다”며 “문재인정부 언론개혁의 민낯을 보여준 중대한 변곡점으로 판단한다”고 덧붙였다. 

시민단체들도 비판의 목소리를 냈다. 언론개혁시민연대는 “민주적 절차를 무력화한 채 의석수를 등에 업고 법안을 밀어붙였다”고 지적했다. 개정안을 수정해 표결한 것에 대해서도 “법안 내용을 수정했다고 주장하지만 강행 처리를 위한 요식행위였을 뿐”이라고 비판했다. 

8월 처리
가능성↑

민주언론시민연합(민언련)은 민주당의 수정 개정안에 “시민피해 구제를 높이기 위한 핵심 내용은 포함되지 않았다”고 유감의 뜻을 밝혔다. 특히 고의‧중과실 추정 조항에 대해 전면 수정을 요구한 것과 관련 “여전히 문제를 안은 채 일부만 수정됐다”며 “입증책임 배분 요건을 보완하고 언론의 비판적 역할을 위축시킬 우려가 있는 내용을 전면 수정하라는 요구가 수용되지 않은 것도 심히 유감”이라고 밝혔다. 


언론중재법 개정안은 닷새 숙려 기간을 거쳐 국회 법제사법위원회로 넘어간다. 법안 심사의 ‘마지막 관문’인 법사위를 통과할 경우, 이르면 25일 본회의에 상정된다. 민주당은 언론중재법 개정안을 8월 안에 처리하겠다는 입장을 공고히 하고 있다. 지난 6월24일 민주당 김용민 의원 등이 언론중재법 개정안을 발의한 지 두 달 만이다. 

청와대 역시 민주당의 법안 처리에 힘을 싣는 모양새다. 청와대는 민주당이 언론중재법 개정안 처리를 두고 “잘못된 언론 보도로 본 피해를 구제하는 데 실효성을 높이기 위한 입법적 노력도 필요하다고 본다”는 입장을 내놨다. 

청와대 핵심 관계자는 이날 서면브리핑을 통해 ‘언론중재법에 대해 세계신문협회나 국제언론인협회 등에서도 언론 자유 위축을 우려하는 목소리가 높다’는 질문에 이같이 답했다. ‘국회에서 논의할 사안’이라며 원론적 입장만 내놨던 청와대가 개정안 추진의 필요성을 언급한 것이다. 

고의·중과실 조항 수정했지만…
“요식 행위 불과해” 비판 나와

이 관계자는 “헌법 제21조와 신문법 제3조에서 언론의 자유와 독립을 두텁게 보장하면서도 언론에게 타인의 명예나 권리 또는 공중도덕이나 사회윤리를 침해하면 안 된다는 사회적 책임도 명시하고 있듯이 잘못된 언론 보도로 인한 피해구제가 충분하지 않다”고 했다. 그러면서도 “구체적인 방안은 국회의 심도 있는 논의를 통해 결정될 사안”이라고 덧붙였다. 

야당과 언론계·시민단체의 강한 반발에도 불구하고 민주당이 언론중재법 개정안을 강행 처리한 것을 두고 여러 해석이 나오고 있다. 대선이 7개월 남짓 남은 상황에서 언론을 적으로 돌리면서까지 법안을 처리하는 이유가 있을 것이라는 주장이다.


민주당은 표면상으로는 ‘허위·조작 보도로 인한 피해 구제’를 언론중재법 개정안 처리 명분으로 내세웠다. 하지만 실제 민주당의 눈은 내년 대선에 가 있다는 주장이 나온다. 오는 10월 대선후보 선출 전 언론중재법 개정안을 처리해 최종 후보의 부담을 덜어주려 한다는 분석이다.

또 내년 대선을 앞두고 언론이 후보 검증을 위해 내놓을 비판적 보도를 막기 위해 미리 선제공격을 한 게 아니냐는 주장이 심심찮게 제기된다. 

실제 일부 민주당 지지층 사이에서는 노무현 전 대통령 서거, 조국 사태, 4·7 재보궐선거 패배 등이 언론 보도에서 비롯됐다는 시각이 존재한다. 민주당의 강성 지지층들은 검찰개혁과 함께 언론개혁이 필요하다는 의견을 끊임없이 내비쳤다. 이런 요구가 재보궐선거에서 민주당이 완패한 이후 급속도로 커졌다는 것.

민주당이 정치권 안팎의 거센 비판에도 법안을 밀어붙이는 배경엔 지지층의 분노도 포함돼있다는 주장이다. 재보선 참패로 사실상 검찰개혁이 물 건너 간 상황에서 분노한 지지층을 달래고 규합하기 위해 언론개혁이라는 당근을 제시했다는 분석이 나온다. 

욕먹어도
괜찮다고?

다시 말해 언론중재법 개정안을 강행 처리했을 때 제기될 비판보다 법안을 포기했을 때 이뤄질 지지층 이탈이 민주당에는 더 악재로 보였다는 뜻이다. 정권재창출에 사활을 걸고 있는 상태에서 핵심 지지층이 등을 돌리면 대선 로드맵 자체가 망가질 수 있다는 분석을 한 것으로 보인다.


<jsjang@ilyosisa.co.kr>

 

<기사 속 기사> 또 다른 민주당 입법 폭주
‘언론법에 가려졌지만…’

더불어민주당은 언론중재법 개정안뿐만 아니라 ‘탄소중립기본법 제정안’ ‘사립학교법 개정안’ 등도 일사천리로 의결했다.  민주당의 입법 폭주에 우려가 제기된다. 

지난 18일 환경노동위원회는 법안소위원회, 안건조정위원회, 전체회의를 잇따라 열고 탄소중립기본법 제정안을 의결했다.

온실가스 감축목표 수치를 두고 여야 간 이견이 나왔지만 감축 목표 수치를 35% 이상으로 수정한 뒤 여당 단독으로 처리했다. 

교육위원회도 이날 사립학교 교원의 신규채용 시험을 교육청에 의무적으로 위탁하게 하는 사립학교법 개정안 등 회부된 법안 7건의 의결을 강행했다. <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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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여발 사법 전쟁 ‘끝까지 간다’

거여발 사법 전쟁 ‘끝까지 간다’

[일요시사 정치팀] 박형준 기자 = 국회 문턱을 넘은 내란 전담재판부 설치법이 사법부를 강타했다. 검찰은 1999년 특별검사제 도입 이후 권한을 조금씩 잃다가 올해 해체가 결정됐다. 검찰이 26년 전 느끼다가 현실이 된 불안을 이젠 사법부가 느낄 차례일지도 모른다.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 등 범여권이 지난 24일 내란 전담재판부 설치법을 국회 본회의에서 통과시켰다. 대법원은 지난 18일 “내란 사건만 맡는 전담재판부를 만들어 운영한다”는 취지의 예규 제정 방침을 밝혔다. 특별재판부 영장전담 법관 하지만 민주당 박수현 수석대변인은 같은 날 논평을 통해 ‘24일 처리 방침’을 밝혔다. 이날 법안 처리는 이미 예고된 결과였다. 박 대변인은 지난 21일 오전 기자 간담회에서도 “민주당은 국회 본회의에서 내란 전담재판부 설치법을 예정대로 처리할 것”이라고 밝혔다. 민주당이 원래 처리하려던 법안은 ‘내란 특별재판부 설치법’이었다. 이 법안이 통과됐다면, 12·3 비상계엄 관련 재판을 맡을 특별재판부가 설치되고, 영장 심사를 맡을 특별영장 전담 법관이 따로 배정됐을 것이다. 이들은 국회·판사회의·대한변호사협회가 3명씩 추천한 위원으로 구성되는 9인 규모의 추천위원회의 2배수 추천과 대법원장의 임명을 거칠 예정이었다. 아울러 상고심에선 윤석열 전 대통령이 임명했던 대법관은 모두 제척될 예정이었다. 하지만 내란 특별재판부 설치에 대해선 각계에서 위헌 논란을 제기했다. 그러자 민주당은 지난 16일 내용을 대폭 수정했다. 명칭도 특별재판부에서 전담재판부로 바뀌었다. 전담재판부 후보추천위원회는 법무부 장관·헌법재판소 사무처장 등 외부 인사를 제외한 후 법관으로만 구성될 예정이다. 추천위원회에 들어갈 법관 중엔 각급 판사회의·전국법관대표자회의가 포함된다. 전담재판부에 소속될 법관은 추천위원회·대법관회의를 거쳐 대법원장이 임명한다. 윤석열 전 대통령 등 12·3 비상계엄 주요 연루자들은 이미 형사재판 제1심을 받고 있다. 전담재판부는 항소심부터 맡을 예정이다. 대법원은 민주당의 공세에 맞서 반격에 나섰다. 대법원은 지난 18일 대법관 행정회의를 열어 ‘국가적 중요 사건에 대한 전담재판부 설치 및 심리 절차에 관한 예규’를 제정하기로 했다. 여기엔 “형법상 내란·외환죄와 군형법상 반란죄 사건을 전담해 집중 심리하는 전담재판부를 설치할 수 있다”는 내용이 포함된다. 대법원이 규정하는 전담재판부는 무작위 배당을 거쳐 사건을 배당받을 재판부가 지정되는 방식이다. 전담재판부로 지정된 재판부가 원래 맡던 재판은 다른 재판부로 재배당된다. 예규엔 “해당 재판부는 이후 내란·외환과 관련 없는 새로운 사건은 맡지 않는다”는 규정이 포함됐다. 하지만 민주당의 반응은 시큰둥했다. 박 대변인은 “사법부가 충분히 할 수 있는 일을 왜 이렇게 늦게 했느냐”며 “왜 그동안 국민을 불안과 혼란에 빠뜨렸느냐”고 비판했다. 이어 “국회의 입법권을 대법원의 예규 제정에 맞춰야 한다는 의견에 동의하지 않는다”고 강조했다. 내란 전담재판부 신설이 갖는 ‘진짜 함의’ 대법원 예규 제정…반격 혹은 타협안 제시 민주당 정청래 대표도 같은 날 최고위원회의 중 “대법원이 헐레벌떡 자체 안이라고 내놨다”며 “더 일찍 해야 하지 않았느냐. ‘조희대 사법부’답다는 생각이 든다”고 비판했다. 국내 헌정사에서 특별재판부는 단 2회만 설치됐다. 제헌헌법 부칙엔 “이 헌법을 제정한 국회는 단기 4278년 8월15일 이전의 악질적인 반민족 행위를 처벌하는 특별법을 제정할 수 있다”는 내용이 포함돼있었다. 이후 국회는 반민족행위처벌법 등을 제정하고, 반민족행위특별조사위원회(이하 반민특위)를 설치했다. 반민특위엔 특별검찰부와 특별재판부가 설치됐다. 특별검찰부는 검찰총장 등 9명으로 구성됐고, 특별재판부는 ▲국회의원 5명 ▲법조인 6명 ▲사회 저명 인사 5명 등 총 16명으로 구성됐다. 이들은 국회가 선출했다. 두 번째 특별재판부는 1960년 4·19 혁명 이후 개정된 제4차 개정 헌법을 근거로 설치됐다. 당시 개정 헌법엔 “3·15 부정선거 및 4·19 혁명 관련자들과 관련된 형사사건을 처리하기 위해 특별재판소와 특별검찰부를 둘 수 있다”는 취지의 부칙이 포함돼있었다. 이후 설치된 특별재판부는 부정선거관련자처벌법 제정을 거쳐 설치됐다. 민주당조차 ‘특별재판부’를 ‘전담재판부’로 수위를 낮춰 처리했다는 이유로 내란 특별재판부에 대해 불거진 위헌 시비를 거론한다. 법원은 ‘무작위 전산 재판 배당’ 원칙을 유지하고 있다. 따라서 “특정 재판부에 특정 재판을 배당한다”는 취지의 특별재판부에 대해선 기본적으로 위헌 시비가 불거질 가능성이 높다. 아직 헌법재판소가 관련 합헌·위헌 여부를 가린 적도 없다. 하지만 헌법 제27조는 “모든 국민은 헌법·법률이 정한 법관에 의해 공정한 재판을 받을 권리를 가진다”고, 제103조는 “법관은 헌법·법률에 의해 양심에 따라 독립해 재판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재판 배당의 무작위성은 재판에 대한 외부의 부당한 압력·영향력으로부터 법관을 보호해 재판의 공정성을 유지하기 위해 세운 원칙이다. 이는 위헌 시비가 불거진 핵심 이유였다. 그래서 과거엔 특별재판부를 설치하기 전에 개헌 과정 중 헌법 부칙에 그 근거를 규정했다. 헌법 부칙은 헌법 본문과 똑같은 효력을 가진다. 그래서 위헌 시비가 불거질 일은 없었다. 피해 가는 위헌 시비 하지만 위헌 시비를 피하려고 제시한 ‘내란 전담재판부’에 대해서도 논란이 이어졌다. 역설적으로 “기존 재판부 배당과 큰 차이가 없다”는 취지의 비판이 제기된 것이다. 사법부는 이미 무작위 배당의 예외를 운용하고 있다. ▲특허법원 ▲서울행정법원 ▲지역별 가정법원 등 특정 분야를 전문적으로 취급하는 법원이 따로 설치돼있는 것도 무작위 배당의 예외다. 또 각급 법원은 이미 지식 재산·환경·의료 등 특정 전문 분야를 전담할 재판부를 분류한다. 법원장 재량에 따라, 재판장들과의 협의를 거쳐 특정 사건은 ‘적시 처리 필요 중요 사건’으로 분류해 특정 재판부에 배당해서 신속한 재판 진행을 추진한다. 기소된 사건이 이미 진행 중인 재판과 사실 관계·쟁점·피고인이 같으면, 이미 진행 중인 재판을 담당하는 재판에 배당한다. 물론 민주당이 거둘 수 있는 실익이 아예 없는 것은 아니다. 정 대표는 민주당이 ‘특별’을 ‘전담’으로 바꿔가면서도 서둘러 개정안을 추진하는 이유를 분명히 짚었다. 그는 “조희대 대법원장의 사법부와 지귀연 서울중앙지법 부장판사의 재판부는 내란·외환 사건의 심리를 의도적으로 침대 축구하듯 질질 끌었다”며 “조 대법원장은 경고·조치를 해야 했다”고 주장했다. 이어 “보다 못한 입법부가 나서기 전에 사법부가 진작 내란 전담재판부를 설치했다면, 지난 1년 동안 허송세월하는 것을 보면서 국민이 분통 터지는 상황은 없었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정 대표의 주장 중 핵심 단어는 ‘조희대’와 ‘지귀연’이다. 민주당이 내란 특별재판부 설치를 추진할 당시 민주당 전현희 최고위원은 지난 9월 CBS 라디오 <김현정의 뉴스쇼>에 출연해 지 부장판사를 지칭해 “재판의 공정성에 의구심을 갖도록 하는 인사들을 전보·징계한다면, 굳이 내란 특별재판부를 만들기 위한 입법 조치를 할 필요가 있겠느냐”고 주장했다. 정 대표는 지난 15일 최고위원회의 도중 “조희대 사법부는 특검 수사 훼방꾼이 됐다”며 “조 대법원장이 지휘하는 대법원이 지난해 12월3일 내란에 동조한 건 아닌지 강한 의구심을 갖는다”고 지적했다. 사법행정사무를 총괄하는 조 대법원장의 권한 일부를 사실상 박탈하고, 지 부장판사를 내란 관련 재판에서 손 떼게 할 수 있다면, 민주당은 상당한 실익을 거둘 수 있다. 특히 중요한 것은 재판부 배당에 전국법관대표자회의를 개입시키는 것이다. 힘 실어준 진짜 이유? 전국법관대표자회의는 양승태 전 대법원장 재임 당시 사법행정권 남용 사태 이후인 지난 2018년 4월 “권한이 집중된 제왕적 대법원장을 견제하고, 법관의 독립성을 보장해야 한다”는 취지를 갖고 설치됐다. 보수 진영 일각에선 이를 일컬어 “지나치게 민주당에 친화적”이라고 비판한다. 전국법관대표자회의 설치 직후 첫 의장으로 선출됐던 최기상 당시 서울북부지법 부장판사는 현재 민주당 의원이다. 전국법관대표자회의는 지난 9월 민주당이 주장한 의제 ‘대법관 증원론’을 포함한 상고심 제도 개선 토론회를 개최했다. 이어 “사법부는 대법관 증원안을 경청하고 자성해야 한다”는 취지로 보고서를 작성·공개했다. 이 때문에 일각에선 전국법관대표자회의를 일컬어 “민주당에 힘을 설어주기 위해 토론회를 개최한 게 아니냐”는 비판 목소리도 제기됐다. 대법원의 이재명 대통령에 대판 파기환송 판결에 대해서도, 정 대표는 지난 9월 전국법관대표자회의에 “조 대법원장 사퇴 권고 등 사법부에 대한 국민적 신뢰 회복 방안을 논의해야 한다”고 요구했다. 일각에선 “대법원의 예규 제정은 반격”이라고 해석한다. 그 근거로는 “내란 전담재판부를 줄곧 반대하다가 갑자기 예규 제정을 밝힌 의도에 대한 의문이 제기된다”는 점을 들었다. 민주당은 내란 전담재판부 설치 외에도 기존 사법 체계를 모두 바꿀 만한 사법개혁안을 국회 본회의에서 통과시킬 준비를 하고 있다. 대법원의 예규 제정에 대해선 “민주당의 공세를 적절한 선에서 수용해 더 큰 공세에 대비하려는 의도”라고 보는 시선도 있다. 하지만 ‘특별재판부’가 ‘전담재판부’로 바뀌었다고 해서 다른 사법개혁안 통과 시도가 중단되는 것은 아니다. 법원으로선 기존 사법 체계를 모두 바꾸려는 민주당의 시도를 보면서 검찰이 해체되는 과정을 되새길 가능성이 아예 없는 건 아니다. 이미 민주당이 주도하는 사법개혁안 자체가 사실상 ‘기존 법원 해체’로 해석될 소지가 있다. 조금씩 권한 잃다 해체 결정 검 종착역은 헌재 최고법원 등극? 민주당 등 범여권이 검찰을 중대범죄수사청·공소청으로 분리해 완수했던 검찰 해체에 대해선 “헌법은 검찰 조직의 존재를 전제로 검찰총장의 존재를 규정했다”면서 위헌 논란을 제기하는 반대 측 의견이 있었다. 하지만 범여권은 이를 강행했다. 큰 틀에서 보면, 검찰은 ▲특별검사제도 도입 ▲검경 수사권 조정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이하 공수처) 설치 ▲중대범죄수사청·공소청 분리 등 과정을 거쳐 해체됐다. 최초의 특별검사(이하 특검)는 지난 1999년 김태정 전 검찰총장 부인에 대한 옷 로비 의혹과 한국조폐공사 노조 파업 유도 사건에 대해 진행됐던 최병모 특검이었다. 특검이 성립됐던 배경은 “검찰이 검찰총장의 부인이 연루된 사건을 제대로 수사할 수 있겠느냐”는 회의적인 시선이었다. 아울러 당시 국회 구도는 여소야대였다. 한나라당은 “사건을 축소·은폐했다”는 의혹이 제기되는 흐름을 타고 강하게 밀어붙여 특검법 제정을 주도했다. 이후 현재까지 개별 특검법은 총 16개가 통과됐고, 상설 특검은 6회 추진됐다. 검찰로서는 1999년 최병모 특검 설치가 수사권·기소권 독점이 무너지는 순간이었다. 현재까지 총 22회의 특검이 성립됐다는 것은 검찰에 대한 각계의 불신을 상징하는 중요 사실관계라고 할 수 있다. 그런데 이것이 끝은 아니었다. 검찰을 노리는 다음 단계는 검경 수사권 조정이었다. 최초의 검경 수사권 조정은 지난 2011년 진행됐다. 이명박 당시 대통령은 국무회의에서 사법경찰관이 검사의 수사 지휘에 이의를 제기하는 재지휘 건의 제도 신설 등의 내용이 담긴 안을 대통령령으로 제정해 의결했다. 지난 2016년엔 ▲진경준 게이트 ▲정운호 게이트 ▲김형준 전 부장검사의 스폰서 의혹 ▲최순실 게이트 등이 연이어 발생해 검찰의 신뢰도에 대한 강한 문제 제기가 이어졌다. 이는 문재인정부 출범 이후 장기간 논의된 검경 수사권 논의로 연결된다. 공수처도 설치됐다. 민주당 집권 후 노무현 전 대통령 사망 사건을 강하게 기억하는 지지자들의 비원을 외면하긴 어려웠던 측면도 있었다. 그렇게 검찰은 서서히 권한을 빼앗겼다. 그러다가 지난 9월에 이르러 검찰은 내년부터 중대범죄수사청과 공소청으로 갈라질 운명에 처했다. 특히 중대범죄수사청은 행정안전부로 옮겨진다. 서서히 권한을 빼앗기다가 끝내 해체를 앞둔 운명을 맞게 된 것이다. 민주당 등 범여권은 ▲법원행정처 폐지 ▲법 왜곡죄 도입 ▲대법관 증원 ▲재판소원 도입 등 사법개혁안을 시도하고 있다. 범여권이 사법개혁안을 모두 통과시킨다면, 사법부로서는 “검찰에 이어 사법부도 한순간에 와해된다”고 인식할 가능성을 배제하기 어렵다. 한순간에 와해된다 법원행정처가 없어지면 대법원장의 권한이 줄어든다. 법 왜곡죄가 도입되면, 판사의 재판도 법적 처벌 범위 안에 포함될 위험에 노출된다. 대법관이 늘어나 대법관의 권위·희소 가치가 줄어든 후 재판은 헌법소원 제기 범위 안에 포함된다. 최종 종착지는 헌법재판소가 대법원을 제친 후 최상위 사법기관으로 규정될 순간임을 배제하기 어렵다. 지난 24일은 사법부가 느낄 법한 공포가 처음 피부에 와닿은 날이었을 수도 있다. 새해엔 민주당과 사법부의 전쟁이 더욱 거칠게 진행될지도 모른다. <ctzxp@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