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론재갈법' 야누스 민주당 막가는 노림수

정녕 독박이 두렵지 않은가

[일요시사 취재1팀] 장지선 기자 = 문재인정부는 스스로 ‘촛불 정부’라 칭했다. 박근혜-최순실 게이트의 진상규명을 위해 촛불을 든 시민들의 지지로 만들어진 정부라는 뜻이다. 박근혜-최순실 게이트는 언론 보도에서 시작됐다. 문정부 역시 그 공을 잊지 않았지만 출범 4년차 들어서면서 언론에 재갈을 물리려 하고 있다.

지난 19일 언론중재법 개정안이 국회 문화체육관광위원회(이하 문체위) 전체회의를 통과했다. 문체위는 이날 오후 전체회의를 열고 ‘언론중재 및 피해구제 등에 관한 법률 일부 개정안’을 위원회 대안으로 상정해 가결했다. 

일사천리
밀어붙여

전체 위원 16명 중 찬성은 9명이었다.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 소속 위원들과 열린민주당 김의겸 의원이 찬성표를 던졌다. 국민의힘 위원들은 상임위원장석을 에워싸고 반대 입장을 표명했지만 도종환 위원장은 그대로 기립 표결을 진행했다. 

언론중재법 개정안은 고의·중과실에 의한 허위·조작 보도 등 ‘가짜 뉴스’에 대해 최대 5배까지 징벌적 손해배상을 강제하는 것을 골자로 한다. 언론사가 허위·조작 보도를 한 경우 매출의 1만분의 1(하한선)부터 1000분의 1(상한선)까지 배상액이 부과될 수 있다.

배상액 선정이 어려울 경우 1억원까지 부과 가능하다.


법조계에서는 발생한 손해 정도와 무관하게 언론사의 매출액을 기준으로 배상액을 산출하는 방식은 위헌이라는 지적이 나온다. 손해배상액에 하한선을 두는 것이 기본 법리와 어긋난다는 입장이다.

정정보도 시 기존 보도와 동일한 시간·분량 및 크기로 싣도록 규정하는 내용도 포함됐다. 정정 대상의 내용이 기존 보도의 일부일 경우 분량을 기존 보도 대비 절반 수준으로 하도록 했다.

특히 인터넷의 경우 정정보도 청구만 받아도 무조건 청구 사실을 해당 기사에 병기한다는 내용이 포함됐다. 정정 요건이 되는지 따지기 전에 오보 낙인이 찍힐 수 있다는 우려가 제기된다.

허위·조작 보도와 관련된 기준이 모호하다는 지적도 있다. ‘중과실 추정’ 조항도 명확성이 떨어진다. 대법원은 공공의 이익을 위한 보도가 진실하지 않더라도 진실이라고 믿을 만한 상당한 이유가 있으면 책임을 면제한다는 취지로 판단했다.

김의겸 의원 동원해 강행 처리
언론·시민단체 반발 나몰라라

하지만 언론중재법 개정안에는 취재 과정에서 법률을 위반해 보도하거나 계속·반복적으로 허위·조작 보도를 한 경우, 제목과 기사 내용이 달라 제목을 왜곡하는 경우, 사진 등 시각 자료와 기사 내용이 달라 왜곡하는 경우에 중과실이 있는 것으로 추정할 수 있다고 돼있다.

이때 입증 책임은 언론사에 있다. 일반적으로 손해를 받았다고 주장하는 쪽에 입증 책임이 있던 이전까지의 사법체계 개념과는 다른 방향이다. 이 때문에 언론사에 입증 책임을 부과하는 것은 위헌 소지가 있다는 주장이 나왔다.


민주당은 우려가 제기될 만한 부분을 일부 반영해 수정했다는 입장이다. 이날 가결된 언론중재법 개정안은 징벌적 손해배상 청구 대상에서 고위공직자와 기업 임원 등을 배제하고 입증 책임을 피해자(원고)로 명확히 하는 등 ‘표현의 자유’ 위축 우려를 일부 반영했다. 

그러면서 징벌적 손해배상의 근거가 되는 ‘고의 또는 중과실’을 추정할 수 있도록 한 6개 조항을 4개 조항(▲보복적·반복적인 허위·조작 보도로 피해 가중 ▲허위·조작 보도로 회복하기 어려운 손해 ▲정정·추후 보도를 충분한 검증절차 없이 복제·인용 ▲기사의 본질적인 내용과 다르게 제목·시각 자료를 조합해 왜곡)으로 압축했다는 입장이다.

개념이 모호해 악용 가능성이 제기된 부분이다. 

국민의힘 간사인 이달곤 의원은 “많은 야당 의원이 기립 요구인지 거수 요구인지도 제대로 못 듣고 앉아 있었는데도 여당 의원들을 기립시켰고, 김의겸 의원이 제일 먼저 기립했다”며 “교조주의” “불법 표결” “의회 폭거”라고 성토했다. 

야 반발
역부족?

민주당의 언론중재법 개정안 강행 처리에 언론 관련 단체들과 시민단체들도 크게 반발했다. 국내 언론 7개 단체(관훈클럽, 대한언론인회, 한국기자협회, 한국신문방송편집인협회, 한국신문협회, 한국여기자협회, 한국인터넷신문협회)는 이날 공동성명을 통해 “언론에 재갈 물린 위헌적 입법 폭거를 규탄한다”고 밝혔다. 

이들은 언론중재법 개정안 처리 과정을 두고 “반대의 목소리는 조금도 용납할 수 없다는 오만함의 극치를 보여주고 있다”며 “절차적 정당성을 상실했으며 국회법의 취지를 무시한 반민주적 행태, 과거 군사정권 시절보다 못한 수준의 국격”이라고 강하게 비판했다.

또 언론중재법 개정안 폐기를 요구하면서 “요구가 받아들여지지 않을 경우 헌법재판소에 위헌 소송을 내는 등 모든 법적 수단을 동원해 저지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방송기자연합회, 전국언론노동조합, 한국기자협회, 한국PD연합회 등 언론 단체도 “‘언론개혁’이라는 이름 아래 최대한 기득권을 지키겠다는 노골적인 의사 표시”라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오늘 강행 처리로 민주당은 또 다시 언행 불일치와 내로남불의 늪으로 스스로 걸어 들어가고 말았다”며 “문재인정부 언론개혁의 민낯을 보여준 중대한 변곡점으로 판단한다”고 덧붙였다. 

시민단체들도 비판의 목소리를 냈다. 언론개혁시민연대는 “민주적 절차를 무력화한 채 의석수를 등에 업고 법안을 밀어붙였다”고 지적했다. 개정안을 수정해 표결한 것에 대해서도 “법안 내용을 수정했다고 주장하지만 강행 처리를 위한 요식행위였을 뿐”이라고 비판했다. 

8월 처리
가능성↑

민주언론시민연합(민언련)은 민주당의 수정 개정안에 “시민피해 구제를 높이기 위한 핵심 내용은 포함되지 않았다”고 유감의 뜻을 밝혔다. 특히 고의‧중과실 추정 조항에 대해 전면 수정을 요구한 것과 관련 “여전히 문제를 안은 채 일부만 수정됐다”며 “입증책임 배분 요건을 보완하고 언론의 비판적 역할을 위축시킬 우려가 있는 내용을 전면 수정하라는 요구가 수용되지 않은 것도 심히 유감”이라고 밝혔다. 


언론중재법 개정안은 닷새 숙려 기간을 거쳐 국회 법제사법위원회로 넘어간다. 법안 심사의 ‘마지막 관문’인 법사위를 통과할 경우, 이르면 25일 본회의에 상정된다. 민주당은 언론중재법 개정안을 8월 안에 처리하겠다는 입장을 공고히 하고 있다. 지난 6월24일 민주당 김용민 의원 등이 언론중재법 개정안을 발의한 지 두 달 만이다. 

청와대 역시 민주당의 법안 처리에 힘을 싣는 모양새다. 청와대는 민주당이 언론중재법 개정안 처리를 두고 “잘못된 언론 보도로 본 피해를 구제하는 데 실효성을 높이기 위한 입법적 노력도 필요하다고 본다”는 입장을 내놨다. 

청와대 핵심 관계자는 이날 서면브리핑을 통해 ‘언론중재법에 대해 세계신문협회나 국제언론인협회 등에서도 언론 자유 위축을 우려하는 목소리가 높다’는 질문에 이같이 답했다. ‘국회에서 논의할 사안’이라며 원론적 입장만 내놨던 청와대가 개정안 추진의 필요성을 언급한 것이다. 

고의·중과실 조항 수정했지만…
“요식 행위 불과해” 비판 나와

이 관계자는 “헌법 제21조와 신문법 제3조에서 언론의 자유와 독립을 두텁게 보장하면서도 언론에게 타인의 명예나 권리 또는 공중도덕이나 사회윤리를 침해하면 안 된다는 사회적 책임도 명시하고 있듯이 잘못된 언론 보도로 인한 피해구제가 충분하지 않다”고 했다. 그러면서도 “구체적인 방안은 국회의 심도 있는 논의를 통해 결정될 사안”이라고 덧붙였다. 

야당과 언론계·시민단체의 강한 반발에도 불구하고 민주당이 언론중재법 개정안을 강행 처리한 것을 두고 여러 해석이 나오고 있다. 대선이 7개월 남짓 남은 상황에서 언론을 적으로 돌리면서까지 법안을 처리하는 이유가 있을 것이라는 주장이다.


민주당은 표면상으로는 ‘허위·조작 보도로 인한 피해 구제’를 언론중재법 개정안 처리 명분으로 내세웠다. 하지만 실제 민주당의 눈은 내년 대선에 가 있다는 주장이 나온다. 오는 10월 대선후보 선출 전 언론중재법 개정안을 처리해 최종 후보의 부담을 덜어주려 한다는 분석이다.

또 내년 대선을 앞두고 언론이 후보 검증을 위해 내놓을 비판적 보도를 막기 위해 미리 선제공격을 한 게 아니냐는 주장이 심심찮게 제기된다. 

실제 일부 민주당 지지층 사이에서는 노무현 전 대통령 서거, 조국 사태, 4·7 재보궐선거 패배 등이 언론 보도에서 비롯됐다는 시각이 존재한다. 민주당의 강성 지지층들은 검찰개혁과 함께 언론개혁이 필요하다는 의견을 끊임없이 내비쳤다. 이런 요구가 재보궐선거에서 민주당이 완패한 이후 급속도로 커졌다는 것.

민주당이 정치권 안팎의 거센 비판에도 법안을 밀어붙이는 배경엔 지지층의 분노도 포함돼있다는 주장이다. 재보선 참패로 사실상 검찰개혁이 물 건너 간 상황에서 분노한 지지층을 달래고 규합하기 위해 언론개혁이라는 당근을 제시했다는 분석이 나온다. 

욕먹어도
괜찮다고?

다시 말해 언론중재법 개정안을 강행 처리했을 때 제기될 비판보다 법안을 포기했을 때 이뤄질 지지층 이탈이 민주당에는 더 악재로 보였다는 뜻이다. 정권재창출에 사활을 걸고 있는 상태에서 핵심 지지층이 등을 돌리면 대선 로드맵 자체가 망가질 수 있다는 분석을 한 것으로 보인다.


<jsjang@ilyosisa.co.kr>

 

<기사 속 기사> 또 다른 민주당 입법 폭주
‘언론법에 가려졌지만…’

더불어민주당은 언론중재법 개정안뿐만 아니라 ‘탄소중립기본법 제정안’ ‘사립학교법 개정안’ 등도 일사천리로 의결했다.  민주당의 입법 폭주에 우려가 제기된다. 

지난 18일 환경노동위원회는 법안소위원회, 안건조정위원회, 전체회의를 잇따라 열고 탄소중립기본법 제정안을 의결했다.

온실가스 감축목표 수치를 두고 여야 간 이견이 나왔지만 감축 목표 수치를 35% 이상으로 수정한 뒤 여당 단독으로 처리했다. 

교육위원회도 이날 사립학교 교원의 신규채용 시험을 교육청에 의무적으로 위탁하게 하는 사립학교법 개정안 등 회부된 법안 7건의 의결을 강행했다. <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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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당발 검찰과의 전쟁 막전막후

여당발 검찰과의 전쟁 막전막후

[일요시사 정치팀] 박희영 기자 = 검찰의 대장동 항소 포기 후폭풍이 거세다. 더불어민주당과 검찰의 시각이 크게 엇갈리면서 서로를 향해 날을 겨누는 형국이다. 검찰청은 내년 9월 폐지될 시한부 운명이지만, 더불어민주당은 ‘검찰개혁’을 필두로 이참에 검찰의 뿌리를 뽑겠다는 방침이다. 국민의힘을 등에 업고 버티기에 나선 검찰의 반발 또한 만만치 않아 당분간 양측 간의 힘겨루기가 이어질 전망이다. 지난 7일 서울중앙지검이 대장동 사건에 대한 항소 시한을 넘기면서 논란에 불이 붙었다. 서울중앙지검이 특정경제범죄 가중처벌법상 배임 등 혐의로 기소된 유동규 전 성남도시개발공사 기획본부장을 비롯해 ▲남욱 변호사 ▲화천대유 대주주 김만배씨 ▲정민용 변호사 ▲정영학 회계사 등 대장동 일당에 대한 1심 판결에 항소하지 않은 것이다. 꺾이거나 되치거나 검찰이 항소를 포기하면서 ‘불이익변경 금지 원칙’에 따라 피고인에게 더 무거운 형을 선고할 수 없게 됐다. 대장동 개발 비리로 발생한 범죄수익의 국고 환수 규모가 축소될 것이란 해석에도 힘이 실린다. 화살은 곧바로 이재명 대통령에게로 향했다. 이 대통령은 대장동 사건에서 이해충돌방지법 위반 혐의 등을 받는데, 이미 대장동 민간업자 재판에서 무죄가 나온 만큼 항소 포기로 인해 추가로 다툴 여지를 차단했다는 게 국민의힘의 설명이다. 여기에 대통령실이 항소 포기에 개입했다는 의혹을 제기하면서 ‘이재명 면죄부’라고도 주장했다. 국민의힘 곽규택 대변인은 “대통령실 민정수석실 비서관 4명 중 3명, 법무부 장관 정책보좌관, 법제처장, 국정원 기조실장까지 모두 이 대통령의 변호인 출신”이라며 “이 대통령과 사법연수원 동기인 정성호 법무부 장관은 대장동 사건 주요 피고인 정진상, 김용, 이화영 등을 특별 면회하면서 ‘검찰은 증거가 없다’는 발언으로 회유를 시도한 인물”이라고 주장했다. 보수 성향인 ‘한반도 인권과 통일을 위한 변호사 모임’ 역시 “국가의 유례없는 사법 정의 포기 사태는 이재명정부의 책임”이라며 “공소 사실의 핵심에 무죄 선고가 난 사건에 검찰이 항소를 포기한 전례를 찾기 어렵다. 대통령의 어깨가 한결 가벼워진 것은 부인하지 못할 것”이라고 밝혔다. 이정부 출범 이후 대검찰청 차장검사로 승진한 노만석 검찰총장을 겨냥해서는 책임론이 불거졌다. 법조계에 따르면 항소 시한을 앞두고 서울중앙지검은 대장동 일동에 대해 일부 무죄가 선고되는 등 다툼의 여지가 있는 1심 판결에 대해 “관행대로 항소해야 한다”는 의견을 냈지만, 이를 전해 들은 대검 수뇌부가 받아들이지 않은 것으로 알려지면서 팔이 안으로 굽은 게 아니냐는 지적이다. 이에 노 대행은 지난 9일 “대장동 사건은 일선 검찰청의 보고를 받고 통상의 중요 사건의 경우처럼 법무부의 의견도 참고한 후 해당 판결의 취지 및 내용, 항소 기준, 사건의 경과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해 항소를 제기하지 않는 것이 타당하다고 판단했다”며 “검찰총장 대행인 저의 책임하에 서울중앙지검장과의 협의를 거쳐 숙고 끝에 내린 결정”이라고 설명했다. 정성호 법무부 장관 역시 대장동 일동에 대해 검찰의 구형량보다 높은 형량이 선고된 만큼 항소 포기가 ‘적절한 판단’이었다는 점을 강조하며 “항소 포기 지시는 없었다”고 일축했다. 화약고에 불붙인 ‘항소 포기’ 후폭풍 이재명·노만석·정성호 몽땅 도마 위로 정 장관은 지난 12일 국회에서 열린 예산결산특별위원회 전체 회의에 출석해 ‘(이진수) 법무부 차관에게 대장동 사건 관련으로 어떤 지시를 했느냐’는 국민의힘 배준영 의원의 질문에 “노 검찰총장 직무대행에게 지휘권을 행사할 수도 있으니 항소를 알아서 포기하라는 지시를 한 적이 없다”고 답했다. 이어 정 장관은 총 3번 정도 대장동 사건에 관해 이야기했다고 언급하며 “(두 번째인) 11월6일 목요일에는 국회에서 예결위 종합질의가 있어 국회에 왔는데, 예결위 끝나고 대검에서 항소할 필요성이 있다고 한 의견을 들었다”며 “당시 ‘중형이 선고됐는데 신중한 판단을 해야 하지 않는가’란 정도의 이야기만 하고 돌아갔다”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다음 날인 11월7일에도 마찬가지”라며 “저녁에 예결위가 잠시 휴정돼 검찰에서 항소할 것 같다는 구두 보고를 식사 중에 받았고, 그날 저녁 예결위가 끝난 후 최종적으로 항고하지 않았다는 보고를 받았다”고 부연했다. ‘신중하게 판단하라’는 대목을 놓고 국민의힘은 “신중한 검토(판단)가 곧 항소 포기인지 철저히 조사해야 한다”며 법무부가 사실상 외압을 행사한 것이라고 주장했다. 국민의힘 송언석 원내대표는 “신중하게 판단하라는 이 8글자에 모든 것이 함축적으로 들어가 있다”며 “법무부 장관이 개인적인 견해임을 전제로 하며 검찰에 지시한 것과 마찬가지”라고 지적했다. 대장동 사건 수사·공판팀을 이끌었던 일선 검사를 중심으로 반발이 걷잡을 수 없이 확산됐다. 김영석 대검찰청 감찰1과 검사는 검찰 내부망 이프로스를 통해 “검찰 역사상 일부 무죄가 선고되고 엄청난 금액의 추징이 선고되지 않은 사건에서 항소 포기를 한 전례가 있었나”라며 이번 결정으로 대장동 일당 등 민간업자에게 수천억원 상당의 범죄수익이 돌아간 점을 꼬집었다. 대장동 사건의 수사·공판팀을 이끌었던 강백신 대구고검 검사도 “항소 포기로 남욱·정영학을 상대로는 범죄수익을 단 한 푼도 환수할 수 없게 됐고, 김만배를 상대로는 당초 예상 금액의 1/10에 불과한 금액만 추징 선고가 이뤄졌음에도 이를 묵과할 수밖에 없게 됐다”고 지적했다. 기막힌 타이밍 검찰 안팎에서 책임론이 확산하자 결국 노 대행은 항소 포기 논란이 불거진 지 닷새 만에 사의를 표명했다. 그러자 일선 검사들은 ‘검찰총장 권한대행께 추가 설명을 요청드린다’는 제목의 글을 통해 항소 포기 과정에 대한 상세 설명을 요구하는 입장문을 냈다. 해당 입장문은 박재억 수원지검장을 비롯해 ▲박현준 서울북부지검장 ▲박영빈 인천지검장 ▲박현철 광주지검장▲임승철 서울서부지검장 ▲김창진 부산지검장 등 검사장 18명 명의로 작성됐다. 이들은 “서울중앙지검장은 명백히 항소 의견이었지만 검찰총장 권한대행의 항소 포기 지시를 존중해 최종적으로 공판팀에 항소 포기를 지시했다”며 “검찰총장 권한대행을 상대로 항소 의견을 관철하지 못하고 책임지고 사직한다는 입장을 밝혔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반면 검찰총장 권한대행이 어제 배포한 입장문에 따르면 서울중앙지검의 항소 의견을 보고받고 법무부의 의견도 참고한 뒤 해당 판결의 취지 및 내용, 항소 기준, 사건의 경과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해 항소를 제기하지 않는 것이 타당하다고 판단했다”며 “검찰총장 권한대행의 책임 하에 서울중앙지검장과 협의를 거쳐 숙고 끝에 항소 포기를 지시했다는 것”이라고 짚었다. ▲하담미 수원지검 안양지청장 ▲최행관 부산지검 동부지청장 ▲신동원 대구지검 서부지청장 등 8개 대형 지청을 이끄는 지청장들도 집단 성명을 냈다. 이들은 “이번 대장동 사건 항소 포기 지시는 그 결정에 이른 경위가 충분히 설명되지 않는다면 검찰이 지켜야 할 가치, 검찰의 존재 이유에 돌이킬 수 없는 치명적인 상처를 남기게 될 것”이라며 “그간 중앙지검장과 검찰총장 권한대행의 입장문, 법무부 장관의 설명만으로는 항소를 포기한 구체적 경위가 설명되지 않는다”고 꼬집었다.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은 “법적·행정적 모든 수단을 총동원해 정치 검사들의 반란을 분쇄하겠다”며 검찰의 집단 반발을 ‘항명’이라고 규정하고 이에 대한 징계를 예고했다. 현재 일반 공무원은 6단계 징계 처분(파면·해임·강등·정직·감봉·견책)이 가능하지만, 검사는 파면에 해당하는 징계 규정이 없다. 검사에 대한 징계는 검사징계법에 따라 이뤄지는데, 이를 ‘검사 특혜법’이라고 지적하며 폐지하겠다는 설명이다. 민주당 김병기 원내대표는 “정치 검사들의 반란에 철저하게 책임을 묻겠다”며 사실상 검찰과의 전쟁을 선포했다. 김 원내대표는 “정 법무부 장관께 강력히 요청한다. 항명 검사장 전원을 즉시 보직 해임하고 이들이 의원면직하지 못하게 징계 절차를 바로 개시하라”며 “항명에 가담한 지청장과 일반 검사들도 마찬가지”라고 강조했다. 이후 김 원내대표가 검사징계법 폐지 법률안·검찰청법 개정안을 각각 국회에 제출하면서 사실상 검찰 징계는 당론으로 추진될 전망이다. 항소 포기 논란 이후 박재억 수원지검장에 이어 송강 광주고검장이 연달아 사의를 표명했지만 민주당은 “사표를 수리하지 말고 징계 절차를 밟아야 한다”며 퇴로를 막았다. 항명? 투쟁? 법무부 내부에서 집단행동에 나선 일부 검사장을 대상으로 평검사 보직이동을 하거나 국가공무원법 위반 등으로 형사 처벌하는 방안을 검토 중인 것으로 전해지면서 또 다른 문제가 불거졌다. 검찰 측에서는 “보복용 강등”이라는 거센 반발이 나오지만 법무부는 “검사장은 직급이 아닌 보직”이라는 점을 강조하며 강등·징계로 볼 수 없다고 주장했다. 민주당은 검사장의 집단행동을 비판하며 징계의 타당성을 주장했지만, 일선 검사들은 항소 포기 판단 경위에 대해 추가 설명을 요청한 것이 어떻게 항명이냐며 갑론을박이 이어지는 상황이다. 그동안 민주당 의원들이 앞다퉈 일선 검사장을 향해 “빨리 나가라”고 윽박지르던 것과 달리 최근 지도부는 숨 고르기에 돌입한 모양새다. 국민의힘이 계속해서 이정부와 대장동을 엮어 공격하는가 하면, 이 대통령의 UAE(아랍에미리트) 순방 성과가 묻힐 수 있다는 점을 고려해 톤 조절에 나선 것으로 보인다. 민주당 정청래 대표와 김병기 원내대표는 이 대통령이 순방을 떠난 17일부터 이틀간 공개 석상에서 검사 항명, 징계 등 관련 현안에 대해 일절 언급하지 않았다. 민주당 전현희 최고위원 등 일부 최고위원이 내란전담재판부 도입을 주장했으나 당은 “지도부 차원의 의견은 아니”라며 거리를 뒀다. 정 법무부 장관 역시 지난 18일 출근길에 기자들과 만나 검사장 징계 검토 관련 질문에 “어떤 것이 좋은 방법인지 고민을 많이 하고 있다. 가장 중요한 건 국민을 위해 법무부나 검찰이 안정되는 것”이라며 신중한 자세를 택했다. 낮은 볼륨을 유지하는 지도부와 달리 의원 개개인의 목소리는 점점 커지고 있다. 민주당 김현정 원내대변인은 한 라디오를 통해 정 법무부 장관의 ‘검찰조직 안정’ 발언에 대한 질문에 “아무 일 없었던 듯이 넘어가는 것이 조직의 안정을 위해서 도움이 되는 방법은 아니”라고 답했다. 이어 “정 법무부 장관은 법무부와 검찰 전체를 총괄하는 수장이기 때문에 고민이 있으신 것 같다”면서도 “다만 중요한 것은 원칙”이라고 강조했다. 이는 현재 민주당이 내세우는 원칙은 항명 검사에 대한 징계로, 그 원칙을 지키는 것이 국민 여론이라는 발언으로 해석된다. 몰아붙이던 지도부 잠시 숨 고르기 이제는 각개전투…검사들도 ‘부글’ 민주당이 다수 석을 차지한 국회 법제사법위원회(이하 법사위)에서는 ‘집단 항명 검사장 18인’ 전원을 고발하는 기자회견을 진행했다. 항소 포기 결정에 반발하는 검사장 18명을 겨냥해 “헌정 질서의 근본인 공무원의 정치적 중립과 검찰조직의 지휘 감독체계를 정면으로 무너뜨린 사건”이라고 비판하며 법적 조치에 나선 것이다. 지난 19일 법사위 여당 간사인 김용민 의원은 조국혁신당·무소속 의원과 함께 기자회견을 통해 이같이 밝히며 “검찰의 집단 항명은 정치적 집단행동으로 헌정 질서를 훼손하는 중대 범죄”라고 지적했다. 이어 “이들의 행동은 단순한 의견 개진이 아니었으며 법이 명백히 금지한 공무의 집단행위, 즉 집단적 항명”이라고 규정했다. 이어 “피고발인 18명은 모두 각 검찰청을 대표하는 검사장급 고위 공무원으로서 정치적 중립성이 누구보다 강하게 요구되는 위치에 있다”며 “그런데 이들은 서로 합의해 공동성명을 작성하고 이를 동시에 내부망과 언론에 공개했다. 이는 다수가 결집해 실력으로 주장을 관철하려는 집단적 압력 행위”라고 말했다. 민주당의 압박이 거세지자 일각에서는 이 대통령의 임기가 끝난 뒤 검사들이 반격에 나설 것이란 우려가 나온다. 권력이 교체됨에 따라 검사의 태도 역시 손바닥 뒤집듯 바뀌고, 만일 보수 세력에게 정권이 넘어갈 경우 검사의 날이 다시 이 대통령을 향할 것이란 점에서다. 한 정치권 관계자는 “내년 10월 해체 예정인 검찰청이지만 막강한 권력을 지니던 시절의 관행을 버리지 못한다면 이들을 중심으로 정치 검찰의 모습을 한 또 다른 집단이 탄생할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고 지적했다. 대통령실은 “검사 인사권은 법무부에 있다”며 이번 사안에 직접 개입하지 않겠다는 태도를 유지하고 있다. 논란의 중심으로부터 최대한 거리를 유지하며 대통령실이 직접적으로 관여하지 않았다는 점을 부각한 것으로 풀이된다. 한 민주당 관계자 역시 “‘대통령실 외압’은 궁지에 몰린 국민의힘의 프레임”이라며 “만약 5년 뒤에 검찰이 반기를 들면 그때는 (이 대통령의 거취를) 국민 여론에 맡기면 된다. 지난 몇 년간 수십번의 압수수색과 조사가 이뤄졌고, 그 결과를 전부 국민이 지켜봤다”고 설명했다. 피바람 과도기 이 모든 과정을 놓고 최요한 정치 평론가는 “과도기”라고 설명했다. 최 평론가는 <일요시사>를 통해 “검찰이 하나의 권력으로 등장해 민주주의를 유린했다. 그 대상을 개혁하는 일은 굉장히 어려운 문제고, 이정부는 그걸 시스템으로 헤쳐나가는 중”이라고 말했다. 이어 “개혁은 혁명보다 훨씬 어려운 일이다. 혁명은 싹을 자르면 되지만 그건 민주주의가 아니”라며 “검사 징계, 검찰개혁을 놓고 같은 진보라 하더라도 결이 다르지 않나. 다양한 논의와 의견을 두들겨 맞춰서 하나의 안을 만드는 게 쉽지 않다”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개혁안은 보수도 일정 정도 동의를 해야 한다. 그런 점에서 시스템 개혁이라는 건 단칼에 두부처럼 잘리는 게 아닐뿐더러 이정부가 끝날 때까지 (개혁을) 시도하는, 많은 시간이 걸리는 일일 수도 있다”고 부연했다. <hypak28@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