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종석발’ 386 용퇴론

박수칠 때 떠나? 남아?

[일요시사 정치팀] 설상미 기자 = 차기 대권후보로 꼽혔던 임종석 전 대통령비서실장이 21대 총선 불출마를 전격 발표했다. 임 전 실장은 현 정부의 핵심 실세로 86그룹을 대표하는 인물이다. 그의 갑작스런 선언으로 ‘86그룹 용퇴론’이 불거지면서 여의도엔 최근 ‘세대교체론’의 바람이 불고 있다.
 

▲ 임종석 전 대통령비서실장

임종석 전 대통령비서실장이 총선을 5개월여 앞두고 돌연 총선 불출마를 선언했다. 86그룹의 ‘대표주자’로 꼽히는 임 전 실장의 선언이 여권의 세대교체론에 방아쇠를 당겼다는 평가가 나온다. 임 전 실장은 지난 17일 페이스북에 “제도권 정치를 떠나 원래의 자리로 돌아가려 한다”며 “앞으로의 시간은 다시 통일운동에 매진하고 싶다”고 밝혔다.

돌연…
불출마

임 전 실장은 “예나 지금이나 저의 가슴에는 항상 같은 꿈이 자리 잡고 있다. 한반도 평화와 남북의 공동 번영. 제겐 꿈이자 소명인 그 일을 이제는 민간 영역서 펼쳐보려 한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그는 “대선 캠페인부터 비서실장까지 문재인 대통령님과 함께한 2년 남짓한 시간이 제 인생 최고의 기쁨이고 보람이었다”며 “50 중반의 나이에 새로운 도전을 한다는 게 두렵기도 하다. 두려움을 설렘으로 바꾸며 가장 하고 싶은 일을 향해 뛰어가겠다”고 적었다.

임 전 실장은 2000년 김대중정부 시절 ‘젊은피 수혈론’으로 국회에 입성해 2017년 문재인정부가 출범될 때 ‘2인자’ 자리인 대통령비서실장으로 임명됐다. 그는 지난 1월에 대통령비서실장직서 물러난 뒤, 내년 총선서 종로 출마를 위해 은평구서 종로로 이사한 것으로 알려졌다.


86그룹(80년대 학번, 60년대생)을 대표하는 거물급 정치인으로 자리잡은 그가 내년 총선서 ‘정치 1번지’로 꼽히는 종로에 출마해, 차기 대권 후보군 반열에 오를 것이라는 관측이 무성했다. 갑작스런 불출마 선언은 진정성 있는 정계 은퇴가 아니라 더 ‘큰 그림’을 그리며 승부수를 띄운 것이라는 해석이 나오고 있는 이유다.

정치권에선 ‘조국 정국’ 이후 86그룹 운동권은 ‘정치 기득권’이라는 비판이 크게 일고 있는 상황서 임 전 실장이 느끼는 부담감이 적지 않았을 것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 우상호 전 원내대표는 TBS <김어준의 뉴스공장>에 출연해 “조 전 장관 사태 파동 이후에 우리 세대에 대해 이런저런 질타가 쏟아졌지 않나. 국회의원 탐욕을 갖고 움직이는 것처럼 보이느니, 진짜 하고 싶었던 통일운동으로 돌아가자는 식의 마음 정리를 해온 게 아닌가 싶다”고 분석했다.

종로를 맡고 있는 같은 당 정세균 의원(6선)과의 지역구 조율 실패도 불출마 원인이 된 것으로 보인다. 현재 정 의원은 7선 도전을 위해 지역구 활동에 박차를 가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때가 됐다” 세대교체 방아쇠
임의 큰 그림? 아름다운 선택?

정 의원이 종로를 내줄 의사가 없다는 게 명백해진 상황서 임 전 실장이 다른 지역구로 옮기는 것도 모양새가 빠지니 잠시 물러나 있겠다는 것이다. 그에게는 남북 정상회담의 주역을 맡았던 경혐과 서울시 정무부시장 경력이 있다. 이를 살려 2022년 지방선거서 서울시장 출마 또는 차기 통일부장관 입각 등 시나리오를 나름대로 그린 후 불출마를 선언했을 것이라는 분석이다.

양정철 민주연구원장과 임 전 비서실장의 갈등설도 불출마 원인으로 꼽힌다. 양 원장은 최근 민주당 의원들과 만난 자리서 “청와대 출신 출마자가 너무 많아 당내 불만과 갈등 요소가 될 수 있다”고 말한 것으로 전해진다. 청와대 인사들이 청와대 출신 경력을 총선서 정치적인 경쟁력으로만 활용하는 데 유감을 표명한 것으로 해석된다.
 

▲ 이인영 더불어민주당 원내대표

임 전 실장의 의도와 상관 없이 총선을 준비하는 청와대 인사들에겐 ‘청와대 출신이라고 해서 지역구를 정리하거나 챙겨주지 않는다’는 메세지를 분명하게 알리는 계기가 됐다.


86그룹은 1960년대에 태어나 1980년대 민주화운동과 학생운동으로 민주주의 쟁취에 앞장서면서 비교적 이른 나이에 정계에 입문, 현재 정치권의 주류 세력으로 자리잡아 어엿한 중진 의원들로 성장했다.

민주당 86그룹 중 재선 및 중진의원은 이인영 원내대표를 포함해 박홍근·송영길·안민석·김태년·우상호·우원식·윤호중·조정식·최재성 등이 포함돼있다. 큰 물갈이 폭과 참신한 인적쇄신은 선거서 당의 승리를 이끄는 주요 변수로 꼽히는 만큼 이들은 매 선거철마다 ‘물갈이’ 대상으로 거론돼왔지만 당 지도부가 이를 강요할 수는 없다.

임 전 실장이 ‘자기 희생’을 먼저 보여줌으로써 당내에서 인적쇄신의 정당성은 이미 확보된 셈이다.

“적극적으로
놓아야 된다”

쇄신론에 불을 지폈던 민주당 이철희 의원 역시 임 전 실장의 불출마에 대해 ‘아름다운 선택’이라며 당내 86그룹 정치인들을 향해 이제는 물러날 때가 됐다고 주장했다.

이 의원은 CBS 라디오 <김현정의 뉴스쇼>서 “개개인이 역량 있는 사람들은 더 할 수 있을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하나의 세대, 그룹으로서는 저는 마침표를 찍을 때가 됐다고 본다”고 언급했다. 이 의원은 “정치권이 국회를 너무 독점하기보다는 젊은 세대에게 문을 열어줘야 한다”고 주장하기도 했다. 그는 “더 적극적으로는 386이라고 하는 86그룹이 퇴출돼야 한다”고 덧붙였다.

2030세대 청년 정치인의 유입이 끊겨 있어 대표성이 현저히 떨어지는 국회에 세대교체론을 과감히 요구한 셈이다. 또, 평등과 공정을 외치는 청년들이 많아진 만큼 후배 정치인들에게 시대의 문제를 풀 역할을 물려줘야 한다는 의미로 해석된다. 

86그룹 용퇴론을 성찰과 반성의 의미로 받아들여야 한다는 의견도 나온다. 민주당 김종민 의원은 KBS <김경래의 최강시사>서 “지난 30년간 386그룹이 정치권의 주역으로 있으면서 혁신에 얼마나 성과를 거뒀는지에 대해 근본적으로 돌아봐야 한다”고 했다. 김 의원은 “불출마만이 좋은 선택은 아니다”라며 맹목적인 중진, 86그룹 퇴진설에 우려를 표했다.
 

▲ 우상호 더불어민주당 의원

반면 쇄신론의 대상으로 꼽힌 의원들의 불만도 거세다. 86그룹 의원들이 기득권화 및 세대교체 대상으로 분류된 점에 동의하기 어렵다는 분위기도 당내 어느 정도 형성돼있다. 대표적인 86그룹의 핵심축인 민주당 이인영 원내대표는 “모든 사람이 다 나가야 하는 것은 아니지 않느냐”며 86그룹 용퇴론 확산에는 선을 긋는 모습을 보였다.

민주당 우원식 의원은 페이스북에 "(86그룹이)그동안 쌓아온 역량을 충분히 발휘할 수 있도록 길을 열어주고 힘을 모아줘야 한다”며 “이런 시기에 근거 없이 386, 586을 기득권 집단으로 매도하는 것은 결과적으로 우리 민주개혁 세력을 분열시키게 될 것”이라고 우려했다.

불쾌감
표출도

또 다른 86그룹 민주당 우 전 원내대표 역시 불편한 기색을 드러냈다. 우 의원은 TBS 라디오서 “조국 전 법무부장관 사태 파동 이후에 우리 세대에 대해서 이런 저런 질타가 쏟아졌는데, 우리가 무슨 자리를 놓고 정치 기득권화돼있다고 말하는 것에 대해 모욕감을 느낀다”고 말했다. 또 다른 86그룹 민주당 박홍근 의원은 “윗세대 선배들을 만들기 위해 노력했지, 주역이 돼 일해본 경험이 없다. 어느 세대는 안 된다며 선거를 앞두고 한바탕 제사상의 희생양으로 삼는 것은 온당치 않다”며 청산 대상으로 지목받는 것에 대한 불쾌감을 강하게 표출했다.


민주당의 한 의원도 “86그룹은 국회의원을 직업 삼아 하는 게 아니라 정치를 통해 이루고 싶은 뜻이 있는 사람들이 많다”며 “단지 오래 했다는 이유로 나가라고 하면 당내서 공감대를 얻지 못할 것”이라고 지적했다. 이어 “지역구만 챙기는 다선 의원을 정리하기 위해 특정 세대를 겨냥한 쇄신 요구를 띄울 수는 있다”고 덧붙였다.

현재 50대인 86그룹이 은퇴할 나이가 아니라는 점에서 50년대생인 중진의원들이 용퇴 대상이 돼야 한다는 목소리도 불거지고 있다. 86그룹의 용퇴가 아니라 중진 용퇴 쪽에 무게를 실어야 한다는 의견이다. 민주당 초선의원들이 이해찬 대표를 따로 만나 ‘중진 용퇴론’에 대한 필요성을 강력하게 피력한 것으로 전해진다.

당장 임 전 실장과 종로 지역구를 두고 다퉜던 정 의원에 대한 쓴소리도 나오고 있다.

한 민주당 초선 의원은 “국회의장까지 하고도 그 자리를 더 하겠다고 버티는 게 후배 입장에선 참 민망하다. 자유한국당에선 김세연 의원(3선)이 불출마를 선언했는데, 여당은 뭐 하고 있느냐는 말이 나올 수밖에 없다”며 “이참에 정치 풍토가 잡혔으면 좋겠다. 정말 양보해서 4선까지 한 사람은 5선에 도전하지 않았으면 한다”고 말했다.
 

▲ 21대 총선 불출마를 선언했던 이철희 더불어민주당 의원

이런 가운데 비례대표로 20대 국회 입성한 이용득 의원이 내년 총선 불출마 선언을 했다. 이 의원은 은퇴 선언문을 통해 “현재 대한민국 정치환경에서는 국회의원을 한 번 더 한다고 해서 의미 있는 사회 변화를 만들어낼 수 없다”며 “직접 경험해보니 우리 정치에는 한계점이 있다”고 비판했다.

‘조국 정국’ 민낯 보인 86그룹
물갈이 폭보단 ‘판갈이' 중요


민주당 의원 128명 중 3선 이상 중진은 38명, 전체의 30%를 차지한다. 이 대표는 현재 당내서 최소 25명의 의원이 불출마할 것으로 파악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현재까지는 민주당 현역 의원 중 공개적으로 21대 총선 불출마를 공식화한 의원은 이해찬 대표, 이철희·표창원·이용득 의원과 진영 행정안전부장관, 박영선 중소벤처기업부장관, 문희상 국회의장 7명이다.

7선의 이 대표는 지난해 8월 전당대회 때 “튼튼하게 당을 닦아 재집권할 기반을 마련하는 게 저의 마지막 역사적 소임”이라며 일찌감치 불출마 선언을 했다. 민주당 출신이지만 국회의장은 당적을 가질 수 없어 현재 무소속 신분인 문희상 국회의장(6선)도 내년 총선에 나가지 않기로 했다. 원혜영(5선)·백재현(3선) 의원 등도 불출마를 검토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아울러 문 대통령의 복심으로 불리는 양정철 민주연구원장, 백원우 부원장 역시 이미 총선 불출마 의사를 이미 밝혔다. 정기국회가 종료되는 내달 10일부터 21대 국회의원 예비 후보 등록신청 시작인 내달 17일을 전후로 불출마 선언 러시는 계속될 것으로 예상된다.

일각에선 물갈이 폭보다는 젊은 세대에게 문을 열어주는, 제대로 된 ‘판갈이’를 마련하는게 필요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86그룹은 2000년 당시 김대중 전 대통령의 ‘젊은피 수혈론’의 결단으로 정계에 대거 진출했다. 반면 2019년 현재는 청년 정치인들이 정계 입성을 위해 올라야 할 현실 정치의 벽은 너무 높다. 이는 정치 입문에 혜택을 받았던 86그룹이 청년 정치인 세대를 키우는 작업에 소홀했음을 방증한다고 볼 수 있는 대목이다.

또. 조국 정국을 겪으면서 청년세대는 86그룹의 기만과 위선의 민낯을 보게 됐다. 진짜 쇄신을 위해서는 ‘공정’과 ‘평등’을 외치는 청년들 사이서 86그룹의 용퇴론을 요구하는 목소리가 계속해 터져 나오는 원인을 찾아야 한다.

청년 정치인
키우는 작업

민주당 지도부는 인재영입 과정서 ‘청년세대에 대한 기회 부여’ 등을 원칙으로 제시했다. 이를 위해 86그룹의 기득권화에 담긴 본질을 파악하는 데 집중할 계획이다. 아울러 당내 평가 과정을 통한 중진의원들의 명예로운 퇴진의 방식을 강구하고, 본인의 결단에 따른 질서 있는 세대교체가 병행돼야 할 것으로 보인다.
 



배너






설문조사

진행중인 설문 항목이 없습니다.


‘변곡점’ 의정 갈등 엔드게임

‘변곡점’ 의정 갈등 엔드게임

[일요시사 취재1팀] 장지선 기자 = 구성원의 압도적인 지지로 당선된 수장이 반년 만에 끌려 내려왔다. 막말에 가까운 강한 발언과 제멋대로인 행보가 탄핵을 불렀다. 강성 수장이 물러나면서 변화를 기대하는 움직임이 일고 있다. 대화의 문이 열릴 것인가, 더 높은 벽이 쌓일 것인가. 임현택 대한의사협회(이하 의협) 전 회장이 3년 임기를 다 채우지 못하고 탄핵당했다. 지난 5월 취임 이후 6개월 만으로 의협 역사상 2번째, 최단기간 내 불명예 퇴진한 회장이 됐다. 첫 번째는 2014년 4월 임기 1년여를 앞두고 탄핵당한 노환규 전 회장이다. 두 번째 최단기간 의협은 지난 10일 오후 서울 용산구 의협회관서 임시대의원총회를 열고 임 전 회장의 불신임안을 처리했다. 참석 의원 224명 가운데 170명(75.9%)이 찬성했다. 반대는 50명, 기권 4명이다. 전체 대의원 249명 가운데 224명(91.1%)이 표결에 참여했다. 의협 정관에 따르면, 회장 불신임안은 제적 대의원 3분의 2 이상이 출석하고, 출석 대의원 3분의 2 이상이 찬성하면 가결된다. 지난 3월 임 전 회장은 선거서 유효 투표수 3만3084표 중 2만1646표를 받아 당선됐다. 65.43%의 압도적인 지지다. 의협 회장 선거는 정부의 의대 정원 증원 발표로 의정 갈등 수위가 높아지고 있을 무렵에 치러졌다. 전공의가 병원을 떠났고 정부가 ‘2000명’을 강조하던 시기였다. 의협 회원들은 강성 중의 강성으로 분류되는 임 전 회장에게 힘을 실었다. 임 전 회장의 어깨에 너무 힘이 들어갔던 것일까? 임 전 회장의 언행은 사사건건 도마 위에 올랐다. SNS에 올린 글, 공식 석상서 했던 발언 등이 막말 논란으로 번졌고, 단식투쟁 등의 행보는 ‘쇼’라는 비판을 받았다. 무엇보다 박단 대한전공의협의회(이하 대전협) 비대위원장과 갈등을 빚으면서 의료계 내부 분열을 조장한다는 지적이 뼈아팠다. 임 전 회장이 8개월 동안 보여준 모습은 고스란히 탄핵 사유가 됐다. 의협 회원 사이에서는 임 전 회장이 SNS로 막말과 실언을 해 의사단체의 명예를 훼손했다는 비판이 일었다. 또 ‘임 회장이 전공의 지원금을 빼돌렸다’는 허위 비방 글을 올린 시도의사회 임원에게 고소 취하 대가로 1억원을 요구한 사실이 녹취록을 통해 알려져 논란이 불거졌다. 특정 인물에 대한 수위 높은 비판은 여론의 역풍을 불렀다. 장상윤 대통령실 사회수석을 겨냥해 “정신분열증 환자 같은 개소리”라고 비난하는 글을 올렸다가 환자를 비하했다는 지적을 받았다. 임현택, 6개월 만에 탄핵당해 막말 논란·의대 증원 못 막아 또 2021년 한 의사가 80대 환자에게 ‘맥페란’ 주사제를 투여한 뒤 부작용이 나타나 기소된 재판에 대해서도 도 넘는 발언을 쏟아냈다. 이른바 ‘맥페란 재판’ 항소심서 판사가 1심의 금고 10개월에 집행유예 2년을 선고받은 해당 의사의 항소를 기각하자 “이 여자 제정신입니까?”라는 글을 SNS에 올린 것이다. 임 전 회장의 발언에 법원은 이례적으로 “재판장의 인격에 대한 심각한 모욕일 뿐 아니라 국민의 신뢰를 크게 훼손할 수 있는 매우 부적절한 행동”이라고 공개적으로 유감을 표명했다. 의대 정원 증원 집행정지와 관련해 기각·각하 결정을 내린 재판장이 ‘회유’받았을 것이라는 주장으로도 입길에 올랐다. 서울고등법원 재판부가 결정을 내린 다음 날 한 라디오 프로그램에 출연해 재판장의 실명을 거론하면서 “지난 정권에서는 고법 판사들이 차후 승진으로 법원장으로 갈 수 있는 그런 길이 있었는데 제도가 바뀐 다음에는 그런 통로가 막혀서 이분이 아마 어느 정도 대법관에 대한 회유가 있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있다” 말했다. 서울고법은 법원 명의로 입장문을 내고 “해당 단체장의 아무런 객관적 근거가 없는 추측성 발언은 재판장의 명예와 인격에 대한 심대한 모욕”이라면서 “사법부 독립에 관한 국민의 신뢰를 현저히 침해할 수 있는 매우 부적절한 언사다. 깊은 유감을 표명한다”고 밝혔다. 여기에 결정적으로 정부의 2025학년도 의대 증원을 막지 못한 점, 간호법 제정을 저지하지 못한 점이 탄핵 사유로 꼽혔다. 임 전 회장은 총회를 앞두고 의사 회원들에게 사과하고 페이스북 계정을 삭제하는 등 재신임을 호소했지만 반전은 없었다. 회장을 탄핵한 의협은 비대위원회 체제로 전환하고 지난 13일 새로운 회장 선거 전까지 단체를 이끌 비대위원장을 뽑았다. 그 결과 박형욱 대한의학회 부회장이 1차 투표서 총 유효 투표수 233표 중 123표(52.8%)를 얻어 과반으로 당선이 확정됐다. 임기는 내년 1월 차기 회장이 선출될 때까지다. 뒤늦게 호소했지만… 박형욱 비대위원장은 “정부는 의료 파탄이란 시한폭탄을 장착해놨다”며 “정말 대화를 원한다면 정부는 먼저 시한폭탄을 멈춰야 한다. 그래야 진정한 대화가 가능하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비대위원들의 합의에 기초해 입장과 행동을 결정할 것”이라며 “비대위 운영서 소외돼왔던 전공의들과 의대생들의 견해가 충분히 반영될 수 있게 하겠다”고 소감을 밝혔다. 임 전 회장이 물러나고 새로운 비대위원장이 등장하면서 의협의 투쟁 방향에 변화가 생길 가능성이 커졌다. 일각에서는 의협의 이번 행보를 의정 갈등의 중요한 변곡점으로 보고 있다. 강성 회장을 필두로 정부와 강하게 대립했던 이전 모습서 벗어나 대화에 참여할 것이라는 의견과 이전보다 더 수위 높은 대정부 투쟁이 예상된다는 의견으로 갈리는 중이다. 후자의 배경에는 대전협이 있다. 앞서 박단 비대위원장 등 전공의 70여명은 전날 의협 대의원들에게 “비대위원장으로 박형욱 교수를 추천한다”는 메시지를 보내 공개 지지 의사를 드러냈다. 대의원회서도 박단 비대위원장의 공개 지지에 대해 경고하는 등 잡음이 일었다. 하지만 결과적으로 대전협의 지지를 등에 업은 박형욱 비대위원장이 당선되면서 전공의의 영향력이 상대적으로 커질 수밖에 없는 상황이 됐다. 의협과 대전협의 공조가 본격화될 것이라는 관측이 나오는 이유다. 문제는 양측의 교류가 정부와의 대화로까지 이어질 수 있느냐는 점이다. 박형욱 비대위원장은 당선 소감부터 정부의 태도 변화를 요구하고 나섰다. 또 윤석열 대통령의 변화도 필요하다고 언급했다. 의정 갈등서 줄곧 선봉에 선 전공의들은 ‘의대 정원 증원 백지화’라는 요구사항서 앞으로도 뒤로도 움직인 적이 없다. 전공의의 행보는 의대생, 의대 교수 등에 영향을 미치고 있다. 영향력 커진 전공의 단체 의료계가 전공의 중심으로 굴러가고 있는 셈이다. 실제 대전협은 지난 11일 출범했던 여야의정협의체(이하 협의체)에 대해서도 부정적인 태도를 보인다. 협의체는 야당인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이 불참하고 의료계에서는 학술 단체인 대한의학회와 의대 학장 모임인 한국의과대학·의학전문대학원협회(KAMC)만 참석하는 등 ‘반쪽 출범’이라는 비판을 받았다. 협의체의 운영 기한은 올해 말까지로, 다음 달 22~23일 전에 의미 있는 결과를 낼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하겠다는 태도다. 하지만 박단 비대위원장은 협의체에 대해 ‘무의미하다’고 평가했다. 그는 협의체가 첫발을 뗀 11일 SNS에 “국민의힘 한동훈 대표는 전공의와 의대생, 당사자 없이 대화나 하겠다는 한가한 소리를 하고 있다”며 “한 대표는 2025년 의대 모집 정지와 업무개시명령 폐지에 대한 입장부터 명확히 밝히시길 바란다”고 일갈했다. 이어 “눈치만 보며 뭐라도 하는 척만 하겠다면 한동훈의 ‘여야의정 협의체’ 역시 임현택 전 의협 회장의 ‘올바른 의료를 위한 특별위원회(올특위)’와 결국 같은 결말일 것”이라고 우려했다. 올특위는 의료계의 입장을 하나로 모으기 위해 의협 주도로 구성한 범의료계 특별위원회다. 전공의와 의대생이 해당 위원회에 불참하면서 파행 운영되다 지난 7월 해체됐다. 정부는 협의체서 의료계가 제안한 내용에 대해 “진정성 있게 검토하겠다”는 견해를 밝혔다. 지난 11일 협의체서 의료계는 한국의학교육평가원 자율성 보장, 추가 합격 제한 등을 통한 2025학년도 의대 선발 인원 축소 등을 제안한 것으로 알려졌다. 정윤순 보건복지부 보건의료정책실장은 지난 14일 의사 집단행동 중앙재난안전대책본부(이하 중대본) 회의를 주재하면서 “마주 앉기까지 오랜 시간이 걸린 만큼 활발한 대화와 소통을 통해 누적된 갈등을 해소하고 신뢰를 회복해 국민이 원하는 결과를 끌어낼 수 있길 기대한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의협과 전공의 등 다른 의료계 단체의 참여를 호소했다. 박단 공개 지지 새 비대위원장 강경 투쟁이냐 VS 노선 변화냐 의료계 내부 상황은 크게 바뀌었지만 향후 상황은 여전히 ‘시계 제로(0)’ 상태다. 임 전 회장과 박단 비대위원장 간 갈등의 불씨도 여전히 살아있다. 대전협은 임 전 회장의 탄핵을 공개적으로 요청하는 등 ‘(임 전 회장과)같이 갈 수 없다’는 뜻을 분명히 밝힌 바 있다. 실제 대전협은 임 전 회장의 탄핵을 요청하면서 “이해와 소통이 가능한 새로운 회장을 필두로 의협과 대전협 두 단체가 향후 상호 연대를 구축할 수 있길 기대한다”는 입장문까지 냈다. 임 전 회장의 탄핵안 가결 직후 박 비대위원장이 “결국 모든 길은 바른 길로”라는 내용의 SNS 글을 올리기도 했다. 문제는 임 전 회장이 박단 비대위원장을 상대로 반격을 진행하고 있다는 점이다. 임 전 회장은 탄핵 사흘 만에 닫았던 페이스북 계정을 다시 열고 “박단과 그 뒤에서 박단을 배후 조종해 왔던 자들이 무슨 일을 해왔는지 전 의사 회원들에게 아주 상세히 밝히겠다”며 박단 비대위원장을 저격하는 글을 올렸다. 그러면서 “의협 대의원회 비대위원장과 의협 회장 선거가 더 이상 왜 필요한가”라면서 “박단이 의협 회장 겸 비대위원장을 맡아 모든 권한과 책임하에 의료 농단을 해결하면 된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지지해주셨던 모든 분에게 우선 사과의 말씀을 드린다”며 “이유가 어떻든 회장 취임 전부터 탄핵하겠다고 마음먹고 있던 자들에게 빌미를 주어 넘어간 것 자체가 제 잘못”이라고 주장했다. 또 의협의 근본적인 개혁의 첫걸음으로 의협 대의원회 폐지 등을 내용으로 하는 민법상의 사원총회를 개최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사원총회는 민법에 규정된 사단법인의 최고의사결정 기관이다. 의협 최고의결기구로 알려진 대의원총회보다 상위에 있고 정관의 규정으로 폐지할 수 없다. 사원총회는 이사가 필요하다고 생각하는 경우나 총 사원 5분의 1 이상이 회의의 목적 사항을 제시해 청구하는 경우 소집될 수 있다. 반격 시작 내부 갈등? 올해 2월 시작된 정부와 의료계의 갈등이 10개월째로 접어들었다. 온갖 말이 오갔지만 되짚어보면 조금도 좁혀지지 않은 평행선 상황이 계속되는 모양새다. 정부와 의료계의 대치 상황이 길어질수록 ‘의료 붕괴’는 가시화되고 있다. 한 의료계 관계자는 이렇게 말했다. “이제는 정말로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다.” <jsjang@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