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제의 인물> ‘가시방석’ 정몽규 대한축구협회장

한국축구를 그에게 맡겨도 될까

[일요시사=사회팀] 이광호 기자 = 홍명보 축구대표팀 감독이 결국 2014 브라질월드컵 성적부진의 책임과 크고 작은 실수로 인해 자신 사퇴를 선택했다. 월드컵 대표팀 단장을 맡았던 허정무 대한축구협회 부회장도 동반 사퇴했다. 들끓는 여론을 의식한 대한축구협회의 조치로 해석된다. 그러나 이들이 물러난다고 해서 ‘축피아’논란이 사라질 지는 의문이다. 총체적 난국에 빠진 한국축구를 바라보는 팬들의 가슴이 무너지고 있다. 힘 빠진 한국축구의 오늘, 정몽규 대한축구협회장은 과연 어떻게 풀어나갈까.

 
홍명보 축구대표팀 감독이 여론의 뭇매를 이기지 못하고 결국 사퇴했다. 홍 감독은 지난 10일 오전 10시 서울 종로구 신문로 축구회관 2층 회의실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오늘 책임지고 대표팀 감독자리를 떠나겠다. 앞으로 좀 더 발전한 사람이 되도록 노력하겠다”고 밝혔다. 그는 “사령탑을 맡은 1년 동안 많은 일이 있었고 나 때문에 많은 오해도 생겼다”며 “모든 게 내가 성숙하지 못해서 생긴 일이다. 팬들에게 죄송하다는 말씀을 드리고 싶다”고 덧붙였다.

음주가무 터지자
긴급 기자회견
 
특히 월드컵 최종명단을 확정하면서 불거진 ‘의리축구’에 대해서는 “월드컵을 준비하면서 어떤 감독도 그런 생각을 할 수는 없다. 절대 아니다”라며 “한국 축구 사령탑은 ‘독이든 성배’라는 점을 충분히 알고 시작했다. 팬들도 후임 사령탑에 많은 도움을 줬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이로써 지난해 6월24일 국가대표팀 감독으로 선임된 홍 감독은 382일 만에 지휘봉을 내려놓고 쓸쓸히 퇴장하게 됐다.
 
FIFA도 홍 감독 사퇴에 대해 입을 열었다. FIFA는 공식 홈페이지를 통해 홍 감독의 사퇴 소식을 전하며 “홍 감독이 ‘2014 브라질월드컵’에서 실망스러운 성적에 책임을 지고 물러났다”고 전했다. 특히 FIFA는 홍 감독의 사퇴가 박주영 등 선발기용의 실패 때문이라고 덧붙였다. FIFA 측은 “홍명보 감독은 선수 선발 과정부터 많은 비판을 받았다. 특히 월드컵서 한 골도 넣지 못 한 박주영의 선발기용이 그의 실패에 결정적인 영향을 미쳤다”고 설명했다.
 

애초 홍 감독은 브라질월드컵 조별리그 1무2패의 부진한 성적을 이유로 귀국 직후 거센 비판을 받음과 동시에 정몽규 대한축구협회장과의 면담에서 사퇴 의사를 내비쳤다. 그런데 정 회장을 비롯한 협회 고위 관계자들은 홍 감독을 설득했다. 2015년 1월 열리는 아시안컵까지 축구대표팀을 맡아달라는 부탁이었던 것이다. 그러나 정 회장은 홍명보 감독을 설득해 내년 1월 호주 아시안컵까지 유임하겠다는 입장을 지난 3일 허정무 부회장을 통해 전했다.
 
하지만 홍 감독이 지난 5월15일 대표팀의 훈련이 한창이던 시기에 경기도 성남시 분당구 운중동 일대의 땅을 구매했다는 사실이 최근 뒤늦게 언론에 알려지며 홍 감독을 향한 비판이 최고조에 달했다. 여기에 벨기에와의 월드컵 조별리그 마지막 경기가 끝난 다음 날인 지난달 28일 홍명보 감독과 선수들이 현지에서 가수를 끼고 음주 가무를 곁들인 회식을 한 동영상이 퍼지면서 홍 감독은 여론의 뭇매를 맞았다.
 
이번 월드컵 성적부진으로 물러나게 된 건 홍 감독만이 아니었다. 허정무 대한축구협회 부회장도 책임을 지고 동반 사퇴했다. 홍 감독의 인터뷰가 끝난 뒤 허 부회장도 기자회견을 자청해 “월드컵 대표팀 단장으로서 책임을 통감한다”며 “홍 감독과 동반 사퇴하기로 결심했다. 모든 책임은 축구협회가 떠안겠다”라고 밝혔다.
 
이어 허 부회장은 “월드컵 부진의 모든 책임은 떠나는 나와 홍 감독에게 돌렸으면 좋겠다”며 “팬들의 많은 사랑에 제대로 보답하지 못해 죄송하다”고 전했다. 홍 감독과 허 부회장이 동반 사퇴하면서 황보관 대한축구협회 기술위워장의 사퇴설까지 거론되기도 했다. 그만큼 팬들의 분노가 컸다.

축구협회 눈치게임
뒤늦은 대국민 사과
 
앞서 한국축구대표팀 공식 서포터즈 ‘붉은악마’는 2014 브라질월드컵 성적 부진과 관련해 대한축구협회 기술위원회의 책임론을 제기하고 나섰다. 붉은악마는 지난 3일 공식 홈페이지를 통한 성명서에서 “4년이 아닌 평생을 준비한 선수들이 월드컵을 마치고 돌아오는 길에 날아든 ‘엿 세례’를 받는 것을 보며 붉은악마 역시 마음이 아팠다”며 “화살을 홍명보 감독 개인에게 돌리고 싶지는 않다. 더욱 큰 책임과 원인은 바로 대한축구협회에 있다”고 주장했다.
 

이어 붉은악마는 “현 시점에서 중요한 것은 실망스러운 월드컵 성적에 대한 홍명보 감독의 책임을 묻는 것도 아니며, 유임에 대한 것도 아니다”라면서 “잘못된 일에 대한 원인을 정확하게 파악하고, 처절한 반성과 더불어 의혹이 있다면 오해의 소지가 없도록 명백히 밝히고, 밝은 미래를 향한 비전을 찾는 것이 지금 이 시점에 해야 할 일”이라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붉은악마는 기술위원회의 책임을 강력히 요구했다.
 
홍명보 허정무 등 수뇌부 줄줄이 사퇴
월드컵 부진 후폭풍…새판짜기 골머리
 
정 회장은 홍 감독과 허 부회장의 사퇴 기자회견 뒤 직접 대국민사과문을 발표했다. 정 회장은 “저를 비롯한 대한축구협회는 브라질월드컵 성적 부진에 이은 최근 일련의 사태로 여러분께 심려를 끼쳐 드리게 돼 무척 송구스럽게 생각한다”며 “대표팀의 월드컵 성적 부진에 대해 누구보다 책임을 통감한다. 월드컵 부진을 거울삼아 대한민국 축구는 더 큰 도약을 향한 준비를 하겠다”고 말했다.
 
이어 “향후 각급 대회에서 좋은 성적을 거둘 수 있도록 기술위원회 대폭 개편 등 쇄신책을 마련하겠다”며 “비록 실망하셨겠지만 국민 여러분의 지속적인 성원을 부탁드린다. 다시 한번 국민 여러분들에 깊은 사과말씀을 드린다”고 거듭 사과했다. 사과문 발표 이후에는 축구협회 관계자들이 모두 나와 고개를 숙였다. 축구협회는 기술위 개편 작업이 완료되는 대로 후임 축구대표팀 감독 선임 작업에 본격적으로 들어갈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축구 전문가들은 새 감독 선임보다 축구협회의 기술위원회 개혁이 더 시급하다고 입을 모은다. 일각에서는 오히려 지금이 기회라고 말한다. 외국인 감독을 선임할 적기라는 주장이다. 하지만 전문가들은 기술위원회만 정상화돼도 외국인 감독 선임 이상의 효과를 거둘 수 있다는 지적이다. 정 회장은 기술위를 대폭 개편하고 후임 감독도 조속히 선임하겠다고 밝혔다.
 
그러나 전문가들은 개편에 그치면 안 된다고 경고한다. ‘개혁’ 수준으로 기술위를 뜯어 고쳐야 한다는 것이다. 구체적으로 기술위원회를 완전히 독립시키고 비전을 제시할 수 있는 식견을 가진 전문가를 엄선해 그 자리에 앉혀 한국 축구의 로드맵을 제시하도록 해야 한다는 게 이들의 주장이다. 행정의 하부 조직이 아닌 기술위원장으로서의 권한을 가진 자리로 만들어야 한다는 것이다. 앞으로 축구협회의 변화는 정 회장 손에 달려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이번 축구협회의 대국민 사과는 이례적이었다고 할 수 있다. 대한축구협회는 2011년 사령탑 ‘밀실경질’ 파문, 직원비리, 2012년 런던올림픽 독도 세리머니에 대한 부적절한 대응 등 논란이 불거졌을 때도 고자세를 보였다. 축구협회를 수뇌부가 사유화한 까닭에 이런 현상이 계속 되풀이된다는 지적이 쏟아졌다. 실제로 축구협회는 완벽에 가까운 사조직 체계를 확보하고 있어 밀실논의, 불통행정이 될 가능성이 크다는 지적이 많다.

악순환의 고리
물러나면 끝?
 
축구협회는 대한체육회의 가맹단체이기는 하지만 받는 국고 지원금이 협회 예산의 1% 정도에 불과하다. 게다가 FIFA의 회원으로서 다른 종목의 경기단체와 달리 강도 높은 독립성을 보장받는다. 협회는 상급단체인 대한체육회의 승인 없이 보고만으로 협회 헌법에 해당하는 정관을 개정할 권한을 지니고 있을 정도다.
 
FIFA는 국가나 정치권이 회원 협회의 행정에 개입하면 자격을 정지하거나 박탈해 A매치를 치를 수 없도록 제재하고 있다. 실제로 축구협회는 2012년 잇따른 비리와 부실행정으로 국정감사에 책임자들이 소환됐을 때 국고가 전체 예산의 1%밖에 되지 않아 피감기관이 아니라는 점, FIFA가 보장한 독립성을 훼손한다는 점 등을 이유로 자료제출을 제대로 하지 않는 등 강한 거부감을 드러냈다.
 

아집 부리던 축구협회
결국 자충수에 ‘울상’
 
그러나 협회가 1000억원에 가까운 예산을 굴리는 주된 동력은 대표팀에 대한 국민의 절대적 지지인 까닭에 적지 않은 공공성을 가지고 있다는 데 이견이 없다. 기업들의 후원, 방송 중계권료 등 협회 예산의 상당 부분이 국민의 성원으로부터 나오기에 실질적으로는 사조직과는 거리가 멀다는 것이다. 이날 축구협회의 대국민 사과는 수뇌부가 협회 활동의 공공성을 인식하고 있다는 신호로 비쳐 주목을 받는다. 하지만 월드컵 부진에 대한 책임론을 피하기 위한 임기대응일 수도 있다는 우려도 그에 못지않게 많다. 
 
참패의 책임소재와 관련한 답변이 구체적이지 않다는 사실, 한국 축구에 대한 국민의 비판적인 자유게시판을 최근 폐쇄했다는 사실 등에서는 이날 사과가 ‘악어의 눈물’일지도 모른다는 해석도 나오고 있는 게 사실이다.
 
일각에서는 홍 감독과 허 부회장의 사퇴 기자회견은 사실 예정되어 있지 않았었다고 주장한다. 이들의 주장에 따르면 한 스포츠매체에서 얼마 전 현지 교민에 의해 축구대표팀의 음주가무 영상을 입수했다.
 
이후 한 기자가 이 영상을 확인했다. 그리고 축구협회 측에 음주가무 내용을 보도할 것이라고 통보했고, 축구협회는 대책을 논의한 끝에 기자회견을 급하게 준비했다는 것이다. 결국 울며 겨자 먹기 식으로 홍 감독과 허 부회장이 물러나면서 사건이 일단락됐다는 후문이다.
 

지도부가 물러나고 사과한다고 해서 모든 게 끝나는 건 아니다. 축구협회는 장기적인 안목으로 새판을 짜야한다. 제2의 조광래, 홍명보, 최강희가 나와선 안 되기 때문이다. 우선 축구대표팀은 당장 내년 1월 아시안컵에 나서야 한다. 월드컵 못지않게 중요한 대회다.
 
새 감독은 5∼6개월 정도만을 준비한 뒤 호주로 떠나야 한다. 턱없이 부족한 시간이다. 신임 감독에게도 부담이 될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감독 선임과 관련된 틀이 마련되지 않으면 같은 실수를 되풀이하게 될 것이라는 지적이 나온다. 과연 정 회장이 약속한 쇄신은 어떤 형태로 이루어질까.

한국 축구
쇄신 절실
 
정 회장은 지난해 1월 허승표, 김석한, 윤상현 후보를 꺾고 제52대 대한축구협회장에 당선됐다. 당시 축구협회 회장 선거는 사상 초유의 4파전으로 벌어지면서 스포츠계 안팎에서 뜨거운 주목을 받았다. 결과적으로 국제 행정, 소통과 화합을 강조했던 정 회장의 승리했다. 정 회장은 선거 투표권을 가진 24명의 대의원이 모두 참여한 가운데 1차 투표에서 7표를 획득하며 과반을 넘기지 못했으나 결선 투표에서 15표를 획득해 당선됐다. 
 
한편, 정치가로 활동 중인 브라질 축구 전설 호마라우(48)가 브라질 축구협회장을 향해 독설을 날려 주목을 받았다. 개최국 브라질은 지난 9일 독일과의 2014 브라질월드컵 준결승전에서 1-7로 대패했다. 경기 후 호마리우는 자신의 SNS를 통해 “브라질 축구는 점점 추락하고 있다. 그 이유는 축구를 어떻게 하는지도 모르는 사람이 회장이기 때문”이라고 비판했다. 이어 “그들은 고급스러운 집무실에서 자기들의 배만 채우려고 한다. 축구협회 회장인 호세 마리아 마린과 2015년부터 이어받을 마르코 폴로 델 네로는 감옥에 가야 한다”며 날을 세웠다.
 
 
<khlee@ilyosis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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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에 번진 핵잠 나비효과

일본에 번진 핵잠 나비효과

[일요시사 정치팀] 박형준 기자 = 한미 정상회담 팩트시트가 공개되자, 가장 큰 화제가 된 미국의 핵잠수함 건조 승인에 대해 “문구가 추상적이어서 모호하다”는 비판이 이어졌다. 이에 자극 받은 일본도 핵잠수함 도입을 준비하고 있다. 핵잠수함 건조를 현실화하지 않으면 “일본에 핵 보유 빌미를 제공하고, 고이즈미 신지로 방위상의 국내 정치용으로 활용하게 했다”는 비판이 제기될 가능성이 있다. 지난달 29일 진행된 한미 정상회담에서 타결된 한미 관세·안보 협상 팩트시트(공동 설명자료)가 지난 14일 공개됐다. 가장 큰 논란은 핵 추진 잠수함(이하 핵잠수함) 관련 합의 문구였다. 산 너머 산 구체성 없다 팩트시트를 통해 확인되는 핵잠수함 건조와 관련해선 “구체성이 없다”는 비판이 제기됐다. 팩트시트에 따르면, 미국은 ▲한국 민간·해군의 원자력 프로그램 ▲한미 원자력 협정에 부합하고 미국의 법적 요건을 준수하는 범위 내에서 한국의 평화적 이용을 위한 민간 우라늄 농축·사용 후 핵연료 재처리로 귀결될 절차 등을 지지한다. 이어 한국의 핵잠수함 건조를 승인하고, 한국과 조선 사업 요건 진전·연료 조달 방안 등을 포함해 긴밀히 협력한다. 미국은 한국의 핵잠수함 건조와 관련해 지지·승인·협력할 뿐이다. 이를 두고 위성락 국가안보실장은 같은 날 브리핑에서 “한미 정상의 논의는 처음부터 끝까지 한국에서 건조하는 게 전제였다”며 “우리 핵잠수함을 미국에서 건조하는 방안은 거론되지 않았다”고 주장했다. 반면 국민의힘 장동혁 대표는 같은 날 “구체적인 내용이 없다”며 “국내 건조 장소 합의는 팩트시트에 담기지 않았다”고 비판했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지난달 30일 기자들 앞에서 한국의 핵잠수함 건조 승인을 발표하면서 “필라델피아 조선소에서 건조될 것”이라며 “미국 조선업이 곧 대대적인 부활을 맞이할 것”이라고 말했다. 핵잠수함이 건조되려면, 산적한 현안을 모두 해결해야 한다. 팩트시트엔 건조 장소가 적시되지 않았다. 트럼프 대통령이 직접 필라델피아 조선소를 명시해 발표했기 때문에, 미국이 순순히 양보할 것으로 보이진 않는다. 같은 회담 결과를 두고 양국의 주장이 엇갈리는 자체가 논란이 되고 있다. 민간 우라늄 농축·사용 및 핵연료 재처리엔 ▲한미 원자력 협정 부합 ▲미국의 법적 요건 준수 ▲한국의 평화적 이용 등 단서가 붙는다. 기술 이전 과정에도 많은 난관이 기다리고 있다. 핵잠수함 보유국은 미국·영국·프랑스·러시아·중국·인도 등 6개국이다. <로이터통신>은 지난달 30일 “미국이 핵잠수함 기술을 공유한 사례는 1950년대 최우방국 영국과 협력한 사례밖에 없다”고 보도했다. <AP통신>은 “미국의 핵잠수함 기술은 미군이 보유한 가장 민감하고 철저히 보호돼온 기술”이라며 “가까운 동맹인 영국·호주와 체결한 핵잠수함 협정에서도 직접 기술 관련 내용은 포함되지 않았다”고 보도했다. 우리에겐 우라늄 농축·재처리 기술이 없어서 미국으로부터 핵연료를 공급받는 방안이 유력하게 거론된다. 하지만 연료 공급 장소·방식은 팩트시트에 명시되지 않았다. 연료 공급 방법을 확보하지 못하면, 핵잠수함을 만드는 의미가 없다. 핵잠 건조 추상적인데 “고정밀지도 내놔” 발 빠르게 비핵 3원칙 수정하려는 일본 미국의 법률 개정 절차도 거쳐야 한다. 미국 원자력법은 ‘미국이 다른 나라와 군사적 목적의 원자력 협력을 하려면, 원자력 협정을 체결해야 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따라서 한미 원자력 협정을 개정한 후 미국 상원의 동의를 얻어야 한다. 국제 무기 거래 규정도 상원의 동의를 얻어 개정해야 한다. 원자력 협정 개정이 팩트시트에 포함되지 않은 것에 대해선 “미국 에너지부의 반대 때문”이란 지적도 있다. 미국 일각에서 “한국이 자체 핵무장을 할 수도 있다”는 우려를 한단 것이다. 일각에선 “핵잠수함 건조 여부는 확정되지 않았는데, 우리는 미국에 고정밀지도를 넘겨야 하는 상황이 됐다”는 지적이 나온다. 팩트시트엔 ‘망 사용료·온라인 플랫폼 규제를 포함한 디지털 서비스 관련 법·정책에 있어 미국 기업이 차별당하거나 불필요한 장벽에 직면하지 않도록 보장할 것을 약속한다’는 내용이 있다. 또 “위치·재보험·개인정보에 대한 것을 포함해 정보의 국경 간 이전을 원활하게 할 것을 약속한다”는 내용도 있다. 미국 빅테크 기업들은 온라인플랫폼의 ▲자사 우대 ▲끼워팔기 ▲멀티호밍 제한 등을 막는 내용이 담긴 우리의 온플법 제정을 반대했다. 팩트시트를 따르면, 미국 빅테크 기업에 대한 규제가 어려워진다. 아울러 우리는 구글·애플이 요청하는 1:5000 축척 고정밀지도 국외 반출 요청을 수용해야 하는 상황에 직면했다. 정부는 애플이 요청한 지도 반출 여부를 다음 달에, 구글의 요청은 내년 2월 결정할 예정이다. 팩트시트에 게재된 합의 사항대로라면, 애플·구글의 요청을 수용해야 할 가능성이 크다. 국민의힘 박성훈 수석대변인은 지난 15일 논평을 통해 팩트시트 속 위험요소를 조목조목 지적했다. 박 대변인은 “정부는 ‘농·축산물 개방은 없다’고 말해 왔지만, 트럼프 대통령의 요구대로 농·축산물 개방 문구가 포함됐다”고 주장했다. 이어 “망 사용료·온라인 플랫폼 규제·고정밀 지도 반출 등 대한민국의 디지털 주권과 직결된 사안까지 미국의 요구를 반영해 슬그머니 끼워 넣었다”고 비판했다. 이어 “반도체 관세에 대해서도 ‘다른 나라보다 불리하지 않게 한다’는 모호한 문구만 있다”며 “경쟁국 대만과 비교해 어떻게 적용할지 등 구체적인 내용은 팩트 시트에 담기지 않았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250억달러(약 36조7183억원) 규모의 미국산 군사 장비를 5년 동안 구매하고, 주한미군에 대해 330억달러(약 48조4682억원)를 포괄적으로 지원하면, 천문학적인 재정 부담을 떠안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아울러 “핵잠수함 건조 과정은 결코 쉬운 과정이 아니라서 장밋빛 전망만 내세울 때가 아니”라고 강조했다. 고정밀지도 반출 가능성 실제로 일각에선 “핵잠수함 건조가 실현되기까지 많은 과정을 거쳐야 해서 실질은 아직 불투명하다”며 “선언이 지나치게 앞섰다”는 지적이 나온다. 문제는 핵잠수함 나비효과가 일본으로 번졌단 점이다. 미국이 우리의 핵잠수함 건조를 승인하자, 일본 정치권도 크게 술렁였다. 고이즈미 신지로 방위상은 지난 12일, 참의원 예산위원회에서 “미국·중국은 이미 핵잠수함을 갖고 있고, 지금은 핵잠수함을 보유하지 않은 한국·호주가 앞으로 보유하게 된다”며 “일본의 억지력·대응력을 강화하려면, 전고체·연료전지·원자력 등 다양한 동력원에 대해 폭넓게 논의하는 게 당연하다”고 말했다. 일본은 1967년 사토 에이사쿠 당시 총리가 선언했던 비핵 3원칙을 여전히 유지하고 있다. 비핵 3원칙은 “핵무기를 만들지도, 가지지도, 반입하지도 않는다”는 선언이다. 다카이치 사나에 총리는 일찍부터 핵무기 반입 금지 방침 완화를 주장했다. 기하라 미노루 관방장관도 같은 날 “현 시점에선 재검토 여부를 단정할 수 없다”고 말했다. 자유민주당(이하 자민당)은 발 빠르게 움직이고 있다. 다카이치 총리는 국회 연설에서 “내년 중 3대 안보 문서 개정을 위해 검토를 개시할 것”이라고 말했다. 일본의 3대 안보 문서는 ▲국가안보 전략 ▲국가방위 전략 ▲방위력 정비 계획 등을 말한다. 여기엔 비핵 3원칙이 모두 포함돼있다. 일본은 이미 지난 2022년 “반격 능력을 보유하고, 장거리 미사일 전력을 향상한다”는 내용을 3대 안보 문서에 포함했다. 묘한 것은 미국의 핵잠수함 건조 승인이 일본 국내 정치구도까지 뒤흔들 가능성이 있단 것이다. 고이즈미 방위상은 다카이치 총리가 선출될 당시 라이벌이었다. 지난달 4일 진행된 자민당 총재 선거 1차 투표에서 다카이치 총리는 183표(31.1%)를 얻었고, 고이즈미 방위상은 164표(27.8%)를 얻었다. 결선투표에선 다카이치 총리가 185표(54.3%)를, 고이즈미 방위상은 156표(45.7%)에 머물렀다. 하마터면 다카이치 총리는 자민당 총재·총리로 선출되지 못할 뻔했다. 고 아베 신조 전 총리의 후계자로 통하는 다카이치 총리에 반발한 공명당이 지난달 10일 자민당과의 연정에서 탈퇴했기 때문이다. 당시 공명당 사이토 데쓰오 대표는 고이즈미 방위상에 대해선 “정치자금 규제와 관련된 공명당의 처지를 이해하고 있었다”면서 호평했다. 고이즈미 방위상도 “지금까지 정책 실현에 대해 힘써 주신 것에 대해 감사와 경의를 표한다”고 화답했다. 미일 협력 중국 견제 다카이치 총리는 지난달 20일 기적적으로 일본유신회와의 각외 협력 형태의 연립 정권 구성에 합의했다. 각외 협력은 연립 정권 구성엔 합의하지만, 내각엔 참여하지 않는 형태를 말한다. 일본유신회가 제시한 조건은 ▲오사카 부수도 지정 구상 수용 ▲국회의원 정원 10% 감축 ▲기업·단체 후원 폐지 ▲평화 헌법 개정 ▲방위력 강화 등이었다. 자민당과 다카이치 총리는 이를 모두 수용했다. 다카이치 총리는 지난달 21일 내각을 출범시키면서 고이즈미 방위상을 임명했다. 가장 큰 정치적 의미는 ‘당내 정적 포용’이었다. ‘방위 관련 경력·경험이 전혀 없는 고이즈미 방위상을 임명해 기회를 제공한다’는 의미가 있다. 정반대의 의미를 강조하는 해석도 있다. “방위 관련 경력·경험이 없는 고이즈미를 현안이 산적한 방위성 장관으로 임명해 자멸을 유도한다”는 취지의 해석이다. 고이즈미 방위상에게 주어진 현안은 ▲미일 방위 협력 재조정 ▲자주적 방위력 강화 ▲후텐마 미군 기지 이전 ▲방위 장비 수출 운용지침 폐지 등이다. 이중 미일 방위 협력 재조정은 ‘중국 견제’라는 미국·일본의 공통 이해관계로부터 시작됐다. 일본은 군사력을 강화해 더 광범위한 지역에서 역할을 맡으려고 한다. 미국은 일본의 적극적인 역할을 통해 더 효율적으로 중국을 견제할 수 있다. 문제는 돈이다. 트럼프 대통령은 일본에 “방위비를 GDP(국내총생산)의 3.5%로 증액하라”고 요구했다. 다카이치 총리는 지난달 28일 진행된 미일 정상회담에서 트럼프 대통령에게 방위비 증액·방위력 강화 방침을 설명했다. 고이즈미 방위상은 다음 날 피트 헤그세스 미국 국방부 장관을 만나 “방위비를 올리겠다”고 말했다. 이어 일본 정부는 오는 2028년 3월까지 방위비를 GDP의 2%까지 늘리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 하지만 일본에서 방위 정책과 관련해 국내 정세와 가장 민감하게 맞물려 고이즈미 방위상을 곤란하게 할 사안이 있다. 바로 후텐마 미군 기지 이전이다. 일본 오키나와현 소재 후텐마 기지는 기나완시 시가지 한복판에서 시 면적의 1/4을 차지하고 있다. 후텐마 기지는 1945년 건설됐고, 일본에서 크고 작은 논란을 일으켰다. 오키나와현의 주민 중 상당수는 미군의 범죄와 소음 피해 등을 이유로 기지 이전을 요구하고 있다. ‘팩트시트’ 고이즈미 날개 다나 견제 압박 와중에 뜻밖의 호재 지난 2004년엔 후텐마 기지 소속 헬리콥터가 오키나와국제대학에 추락하는 등 사고도 여러 번 발생했다. 오키나와가 일본에 편입된 시점은 1879년이었다. 1945년부터 1972년까진 미국의 지배를 받았다. 따라서 오키나와에선 반미 감정이 강하고, 자민당 지지율이 낮은 편이다. 후텐마 기지와 관련해서도 일본 정부는 오키나와섬 내 나고시 헤노코 이전을 추진했지만, 오키나와 현·주민의 반대가 강해 진행되지 못하고 있다. 지난 2023년엔 다마키 데니 현지사가 방위성이 신청한 비행장 설계 변경 신청을 승인하지 않고 공사 중단을 요구했다. 후텐마 미군 기지 이전은 일본의 역사적 맥락과 맞물려 수십년 넘게 해결되지 못한 사안이다. 하지만 트럼프 대통령이 주도하는 중국 견제를 위한 새 안보 질서와 맞물려 고이즈미 방위상에게 정치적 압박을 가할 수도 있다. 아베 전 총리는 지난 2019년 고이즈미 방위상을 환경상으로 발탁했다. 이 임명에 대해선 “고이즈미 방위상의 정치적 무게를 키우면서도, 문제가 발생하면 그를 정치적으로 낙마시킬 수도 있다”는 평가가 나왔다. 고이즈미 방위상의 아버지인 고이즈미 준이치로 전 총리는 퇴임 이후 강력한 원자력 발전소 폐지론자가 됐다. “아버지의 활동이 아들의 정치적 미래를 흐리게 할 수 있어 고이즈미 방위상을 견제하는 묘수”란 평가도 있었다. 고이즈미 방위상은 “기후 변화 문제는 펀하고, 쿨하고, 섹시하게 대처해야 한다”는 등 적당히 괴상한 발언을 하는 등 바보 행세를 하면서 견제를 피했다. 한동안 일본에선 고이즈미 방위상이 진짜로 바보인지, 바보인 척 연기를 하는지 장난 섞인 논쟁이 오랫동안 이어졌다. 이후 고이즈미 방위상은 이시바 시게루 전 총리·고노 다로 전 외상과 연합해 이시바 내각 탄생에 큰 공을 세웠다. 이어 농림수산상으로서 쌀값 폭등 문제에 적극적으로 대처했다. 지난 2023년엔 자민당 내 정치자금 문제가 불거지자, 조기 의회 해산 및 총선거 진행을 적극적으로 제안한 후 선거대책위원장을 맡았다. 당시 자민당은 중의원 과반에 미달하는 의석을 얻었다. 하지만 일각에선 “더 큰 패배를 당하기 전에 적절한 시점에서 중의원 해산을 건의했다”며 긍정적 평가가 나오기도 했다. 방위상 취임 이후엔 어떻게 구 아베파·아소파의 견제를 피할 것인지 관심을 모았다. 하지만 미국이 우리의 핵잠수함 건조를 승인한 사안은 고이즈미 방위상에게 견제 수위를 낮추면서 자민당·내각의 협조를 얻을 수 있는 뜻밖의 호재로 다가왔다. 고이즈미 방위상이 일본의 핵잠수함 도입을 주도한다면, 유력한 차기 총리 후보가 될 수도 있다. 견제 회피 일거양득 우리의 핵잠수함 도입 추진이 일본 정치의 판도를 바꿀 수 있는 사안이 된 것이다. 만약 핵잠수함 도입 추진이 불확실해지면, 이재명정부는 이 때문에 더욱 큰 비판을 받을 수도 있다. “일본의 군비 증강에 빌미를 제공하고, 고이즈미 방위상의 정치적 미래를 위한 발판을 제공한 것”이란 비판이 따라올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한국의 핵잠수함 나비효과는 이렇게 일본으로 번졌다. <ctzxp@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