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 ‘스치면 죽는다?’ 황하나 제보자 극단적 선택 미스터리

‘안양 뽕쟁이’ 바티칸 킹덤 루트 노렸나

[일요시사 취재1팀] 오혁진 기자 = “황하나와 스치면 죽는다.” 남양유업 창업주 외손녀 황하나씨 측근이 한 말이다. 황씨는 수차례 마약을 투약한 혐의로 지난해 구속 기소돼 감옥살이 중이다. 황씨 측근의 말처럼 2020년 황씨의 남편은 극단적 선택을 했고 수도권 마약 총책으로 알려진 ‘바티칸 킹덤’ 사건에 연루된 사실이 드러났다. 그의 측근은 이외에도 여러 명이 세상을 등졌다고 주장한다. 석 달 전, 한 사람이 더 세상을 떠났다. 그는 기자와 인터뷰를 진행했던 황씨 마약 사건의 핵심 제보자였다.

동남아 3대 마약왕으로 불린 박왕열의 상선 ‘사라 김’ 김형렬이 붙잡혔다. 국내에 공급한 마약만 시가로 100억원 가까이 된다. 100만명이 넘게 투약할 수 있는 마약을 수년간 팔아온 것이다. 경찰은 황하나씨와 황씨의 전 연인인 가수 박유천씨가 이들로부터 마약을 구매해왔다고 봤다. 이 같은 사실을 언론에 알린 제보자는 여러 명이다. 충격적이지만 제보자 대부분은 비극적 결말을 맞았다.

“열심히 살겠다”
약속 못 지켜

‘황하나·바티칸 킹덤 마약 사건’ 핵심 제보자 A씨가 <일요시사>와 만난 건 2년 전이다. 그는 황씨의 남편인 오모씨의 친구이기도 했다. A씨는 기자에게 황씨의 목소리가 담긴 녹취와 마약 투약 정황 등 물적 증거를 건네줬다. 당시 A씨는 취재팀에 “나도 올바르게 살진 않았지만 내 친구들이라도 돕고 싶다”며 “황하나 사건 해결 좀 해달라. 내 친구들 꼭 좀 살려달라”고 청했다.

석 달 넘게 취재하는 사이 2020년 12월 오씨가 세상을 떠났다. 앞서 오씨는 기자와의 통화에서 “내가 죽으면 모든 진실이 밝혀질 것”이라고 말하기도 했다. <일요시사> 취재를 종합하면 오씨는 황씨와 함께 마약 투약 혐의로 2020년 9월 조사를 받았다.

당시 오씨는 “황하나가 잠을 자고 있을 때 몰래 필로폰 주사를 놨다”고 진술했다. 오씨는 그로부터 한 달 뒤 황씨와 혼인신고를 했다. 그는 사망 이틀 전인 2020년 12월22일, 서울 용산경찰서를 찾아가 앞서 경찰에 진술했던 내용 중 일부를 번복했다. 오씨는 “당시 황하나의 부탁을 받고 ‘거짓 진술’을 했다”고 자백했고 이틀 뒤인 24일 극단적인 선택으로 세상을 떠났다.


그런데 오씨가 남긴 유서에는 ‘황하나를 마약에 끌어들여 미안하다’는 취지의 글이 적혀있던 것으로 전해졌다. 사망 이틀 전 경찰에 자백했던 내용과는 상반된 셈이다. 이와 관련해 A씨는 통화에서 “극단적 선택을 할 사람이 아니다”며 “오씨가 마지막에 어떤 상태였고, 누구랑 연락했는지 다 밝혀졌으면 좋겠다”고 밝힌 바 있다.

황씨의 지인이자 국내 최대 규모 마약 조직의 일원으로 밝혀진 남모씨도 2020년 12월17일 극단적 선택을 시도해 중태에 빠졌다. 남씨는 현재도 원활한 의사소통이 불가능한 상태다.

오씨와 남씨는 같은 해 8월부터 10월까지 경기 수원 모처에서 황씨와 필로폰 등을 투약한 사이다. 결과적으로 황씨의 마약 투약 의혹을 입증해줄 두 남성이 모두 극단적 선택을 시도해 한 명은 의식불명에 빠졌고, 한 명은 사망했다.

‘죽마고우’를 떠나보낸 A씨는 술에 빠져 살았다. “서둘러 언론에 제보했어야 했다”는 죄책감에 시달렸고 우울증으로 인해 수차례 극단적 선택을 시도하려 했다.

그런 그가 세상을 떠난 건 불과 석 달 전이다. A씨와 친했던 인사들은 그가 필로폰에 손을 댔다고 입을 모은다. A씨와 친구였던 B씨는 “정신적으로 버티기 힘들다 보니 술로도 커버가 되지 않아 손대지 말아야 할 마약을 투약했던 것으로 알고 있다”고 전했다.

죄책감·우울증 겪다 석 달 전 세상 떠나
황 녹취·투약 정황 담긴 녹취 수차례 제보

다른 인사도 “그 친구 집에 가면 가끔 테이블에 흰색 가루가 있었다”며 “마약 투약을 하지 말라고 말려도 몰래 투약하니 알 수가 없었다”고 주장했다.


A씨가 가상화폐에 손을 댔다가 빚쟁이가 됐었다는 주장도 나왔다.

A씨에게 상당한 금액을 빌려준 적이 있다는 C씨는 “코인 관련해서 몇 번 얘기했던 적이 있는데 결국 수백만원을 돌려받지 못했다”며 “나 말고도 A씨에게 돈을 빌려준 사람이 꽤 있었다는 얘기를 여러 번 들었다”고 했다. 주변인들에게 돈을 빌린 A씨가 가상화폐로 수익을 내지 못해 빚더미에 앉게 되자 극단적 선택을 했다는 주장이다.

A씨는 지난 5월26일 마약류관리법 위반 혐의로 징역 8개월을 선고받고 법정구속된 ‘미스 맥심’ 출신인 엄모씨와도 친한 사이다. 엄씨는 수도권 마약 총책인 ‘바티칸 킹덤’ 이모씨와 연인 관계였다. 이씨는 ‘마약왕’이라고 불린 박왕열의 하선으로 수도권에서 상당한 양의 마약을 팔아치웠다.

엄씨와 A씨가 서로 마약을 주고받고 같이 투약한 적이 있는지는 확인되지 않았다. 그러나 이들 모두 언론에 남씨와 오씨 등이 필로폰을 끊지 못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리지 않았다. 황씨에 대한 복수심에 눈이 멀어 객관적 판단을 내리지 못했을 가능성이 있다는 지적이다.

수십만명이 동시에 투약할 수 있는 마약이 국내에 유통되면서 A씨가 마약을 구하는 것은 어렵지 않았을 것으로 보인다. 이씨를 통해 마약을 구하지 않았다고 하더라도 황씨 사건을 제보한 이후 친구를 잃은 죄책감에 시달려 정신적으로 힘들었을 상황을 고려하면 비상식적 판단을 할 수밖에 없었을 것으로 보인다.

A씨의 일부 지인들은 그가 강남에서 유명한 ‘뽕쟁이’라고 주장한다. 특히 마약 유통·공급 등으로 돈을 벌려 했다는 주장도 있다. 경찰 관계자는 “황하나와 바티칸 킹덤 수사 과정에서 마약 조직 일원으로 파악된 남씨 외에 A씨가 연루된 정황은 없었다”고 말했다.

경기도서
유명 약쟁이

A씨의 지인들은 A씨가 황씨와 박유천이 구입했던 통로로 마약을 구했을 것이라고 추정한다. 황씨가 마약을 구한 통로는 ‘바티칸 킹덤’ 이씨의 인맥이다. 이씨는 ‘텔레그램 마약왕’으로 불린 박왕열의 국내 총책이다. ‘전세계’라는 닉네임으로 활동한 박왕열은 자신을 중심으로 한 마약 조직, 일명 ‘전세계 그룹’을 만들었다.

박왕열은 2016년 필리핀에서 3명의 한국인을 살해했던 범죄자이기도 하다. 범죄 직후 필리핀 현지 경찰에 체포됐지만 두 번이나 탈옥에 성공했고, 2019년 말 자취를 감췄었다. 전세계 그룹이라는 마약 조직은 국내에도 수십 명의 총책과 판매책이 활동했다. 경찰에 이미 붙잡힌 전세계 그룹 관련자만 20명이 넘는다.

경남지방경찰청 수사로 전세계 그룹이 유통한 마약의 규모는 확인된 것만 50억원 정도다. 하지만 적발되지 않은 것이 훨씬 많다는 게 경찰 측 설명이다.

법무부는 뒤늦게 검거된 박왕열의 국내 송환을 추진했으나, 그가 필리핀 대법원에서 살인 혐의로 최근 장기 60년의 징역형을 선고받아 사실상 쉽지 않은 상황이다. 박왕열의 상선은 1974년생 베트남 마약상 김형렬로 텔레그램에서 ‘사라 김’이라는 이름으로 활동했다.

그는 동남아 등지에서 들여온 마약을 국내에 유통해왔다. 2020년 10월28일 박왕열이 필리핀 현지에서 경찰에 검거되면서 김형렬을 향한 수사기관의 압박 수위도 높아졌다.


경찰은 최근 김형렬이 베트남 호찌민에서 머문다는 첩보를 입수해 검거하고 지난달 19일 국내로 강제 송환했다. 경찰은 김형렬이 ‘동남아 3대 마약왕’으로 불린 마약 유통책 중 검거되지 않은 마지막 ‘총책’이었다고 밝혔다.

그간 국내에 유통한 마약은 확인된 것만 70억원어치로 향후 수사에 따라 규모는 더욱 커질 수 있다. 김형렬의 하선인 강모씨와 송모씨는 특정범죄가중처벌등에관한법률(향정) 위반 등으로 2020년 9월과 10월 법원에서 각각 징역 6년과 7년을 선고받았다.

강씨는 항소했지만 지난해 5월 대법원에서 형이 그대로 확정됐고, 송씨는 항소해 2심에서 징역 6년을 선고받은 뒤 지난해 3월 형이 확정됐다.

강씨와 송씨 모두 김형렬에게 필로폰을 건네받고 인천공항으로 입국하다 적발돼 검거됐다. 베트남에 있던 두 사람이 김형렬을 처음 알게 된 시점은 2019년 초쯤이다. 이후 김형렬은 “필로폰을 한국으로 가져다 팔아주면 일정한 수익금을 주겠다”고 제안했다. 대략적인 금액은 g당 10만원 정도로 파악된다.

김형렬은 2018년부터 텔레그램 등 SNS를 통해 활발히 마약을 판매해왔다. 그는 마약을 국내로 반입할 때마다 속칭 ‘지게꾼’이 늘 필요했다.

세 사람은 2020년 2월 베트남 호찌민에 있는 김형렬의 주거지서 필로폰 1kg(시가 1억700만원 상당)을 국내로 반입할 방법을 함께 의논했다. 처음 김형렬은 필로폰을 삼켜 체내에 은닉한 뒤 반입하는 방식을 제안했다. 이에 일회용 비닐장갑 손가락 부분에 필로폰을 소분해 담은 다음 실로 묶었는데, 이 같은 체내 은닉 방식은 사실상 불가능하다는 의견이 도출돼 포기했다.


수도권 총책 ‘킹덤’조직원 친구 “억울하다”
주변인들 가상화폐 제의 후 수익 못내 빚더미

결국 필로폰을 캐리어에 숨겨 입국하자는 결론에 이르렀다. 단, 필로폰을 비닐랩 등을 이용해 꽁꽁 포장한 뒤 ‘구슬 줄’로 여러 번 감는 방식이 사용됐다. 구슬공예품으로 위장한 셈이다.

베트남 공항에서 강씨와 송씨는 필로폰이 든 캐리어를 기내용 수화물로 등록했다. 그러나 공항 검색대에서 수색에 걸려 캐리어를 열게 된 상황이 발생했다. 검색대 직원이 많은 양의 구슬 줄을 의아하게 생각하던 터였다. 이때 송씨가 기지를 발휘했다.

휴대폰으로 ‘구슬공예’라는 단어를 검색한 뒤 이미지 등을 직원에게 보여주며 정상적인 물품이라는 점을 강조한 것이다.

이후 무사히 한국행 비행기에 오른 이들은 인천국제공항 세관의 벽을 넘진 못했다. 은닉한 필로폰이 적발됐으며, 이온 스캐너를 통해 손바닥에서도 필로폰이 검출되는 등 궁지에 몰린 끝에 결국 체포됐다. 이들의 소식을 몰랐던 김형렬은 당시 ‘배달 사고’가 났다는 생각에 텔레그램을 통해 독촉 메시지를 보냈던 것으로 파악됐다.

김형렬의 마약 밀수 행각이 일부 포착됐지만 드러나지 않은 행각과 규모는 훨씬 클 것이라는 게 경찰의 판단이다. 김형렬은 서울·경기·인천·강원·부산·경남 등 전국 13개 수사 관서에서 마약 유통 혐의로 수배 선상에 올랐으며, 국내 판매책 등 공범만 20여명, 확인된 유통 마약은 시가 70억여원에 이른다.

경찰은 김형렬을 붙잡는 데 성공하면서 이른바 ‘동남아 3대 마약왕’을 전원 검거했다고 밝혔다. 박왕열과 김형렬 외에도 탈북자 출신 마약 총책인 최모씨는 캄보디아서 검거돼 지난 4월 국내로 강제 송환됐다.

최씨는 2011년 탈북해 2018년 중국으로 출국했다. 이후 베트남·태국·캄보디아 등에서 국내에 있는 공범을 통해 속칭 ‘던지기’ 수법으로 필로폰 등 마약을 국내로 지속 밀반입했다. 지난해 7월 태국에서 붙잡혔으나, 보석금을 내고 석방된 뒤 또 다시 마약 판매를 이어갔다.

태국 법원의 재구금 추진에 종적을 감춘 최씨는 지난 1월 캄보디아에서 검거됐다. 그에 대한 마약 수배는 경찰과 검찰 포함 10건에 달했다.

황은 지금…
수원교도소

황씨는 마약 투약 혐의로 유죄가 선고된 후, 형 집행유예 기간 중 또 다시 마약을 투약한 혐의로 실형이 확정됐다. 지난 2월 대법원 2부(주심 이동원 대법관)는 마약류 관리에 관한 법률 위반(향정) 등 혐의로 기소된 황씨의 상고심에서 징역 1년8개월에 추징금 50만원을 명령한 원심을 그대로 확정, 유지했다.

황씨는 2020년 8월 지인들의 주거지와 모텔 등에서 필로폰을 4차례에 걸쳐 투약한 혐의로 재판에 넘겨졌다. 같은 해 11월29일 지인의 집에서 명품 벨트와 신발, 시가 등 500만원 상당의 물건을 훔친 혐의도 받았다.

당시 황씨는 2015년부터 2018년까지 3년간 전 연인인 박유천 등 지인과 함께 필로폰을 여러 차례 투약한 혐의로 재판에 넘겨져 2019년 이미 징역 1년에 집행유예 2년을 선고받았다.

1심 재판부는 황씨에게 징역 2년을 선고했지만, 2심 재판부는 지난해 11월 징역 1년 8개월을 선고하고 추징금 50만원을 내라고 명령했다.

2심 재판부는 “피고인은 집행유예 기간 중 범행을 저질렀다. ‘마약을 끊겠다’는 서류를 제출한 것이 집행유예의 중요한 참작 사유가 됐지만 또 다시 마약을 투약했다”고 지적하면서도 “일부 필로폰 투약을 인정하고, 절도 범행은 합의해 피해자가 처벌불원서를 제출했다”고 양형 이유를 밝혔다.

이후 황씨가 상고하면서 대법원으로 사건이 넘어왔지만, 대법원이 상고를 기각해 실형이 최종 확정됐다.

<일요시사> 취재를 종합하면 황씨는 현재 수원교도소에서 감옥살이를 이어가고 있다. 지난해 1월 구속된 그는 오는 9월에 출소할 예정이다. 그는 재판에서 “반성하고 있다. 시골에 가 살겠다”며 개과천선을 약속했다. 그러나 제보자들은 황씨가 옥살이 중에도 마약에 대한 생각을 이어가고 있다고 주장한다.


<hounder@ilyosisa.co.kr>

 

※우울감 등 말하기 어려운 고민이 있거나 주변에 이런 어려움을 겪는 가족·지인이 있을 경우 자살예방 상담전화 ☎1393, 정신건강 상담전화 ☎1577-0199, 희망의 전화 ☎129, 생명의 전화 ☎1588-9191, 청소년 전화 ☎1388, 청소년 모바일 상담 ‘다 들어줄 개’ 어플, 카카오톡 등에서 24시간 전문가의 상담을 받을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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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재인표 계승?’ 이재명정부 태양광 로드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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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요시사 취재1팀] 장지선 기자 = 전 세계적으로 기후 위기가 가시화되면서 에너지 정책은 범국가 차원에서 추진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힘을 얻고 있다. 최근 환경부 장관 후보자의 발언으로 이재명정부의 에너지 정책 방향이 윤곽을 드러내는 모양새다. 일각에서는 문재인정부의 태양광 사업이 어른거린다는 지적이 나온다. 지난 23일 대통령실은 “국회 기후위기특위에서 활동하는 등 미래 환경문제를 지속적으로 고민해온 3선 국회의원”이라고 소개하면서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 김성환 의원을 환경부 장관 후보자로 지명했다. 김 후보자는 22대 국회 기후위기특별위원회(위원장 한정애, 민주당) 위원으로 활동하며 탈원전·재생에너지 확대를 위한 노력을 해온 것으로 알려졌다. 대통령 대선공약 대통령실은 그가 “‘기후 위기는 모두의 생존 위기’라는 대통령의 문제의식을 잘 이해하고 그동안의 입법 경험을 바탕으로 환경문제에 적극 대응할 것”이라며 기대감을 드러냈다. 실제 김 후보자는 ‘고준위 방사성 폐기물 관리에 관한 특별법안’ ‘환경친화적 자동차의 개발 및 보급 촉진에 관한 법률 일부개정안’ 등을 발의한 바 있다. 이번 김 후보자의 지명으로 이재명정부의 환경 정책이 구체화되고 있는 모양새다. 김 후보자는 지난 24일 오전 인사청문회 준비 사무실이 마련된 서울 영등포구 여의도 이룸센터에서 기자들을 만나 “재생에너지 기반으로 모든 에너지 체계를 바꾸고 화석연료에 의존하지 않는 재생에너지 중심의 체계를 만들 것”이라고 밝혔다. 원전은 보조 에너지원으로 활용하겠다는 뜻도 비쳤다. 그는 ‘재생에너지를 늘리면 전기료가 오른다’는 우려에 대해 “전 세계적으로 균등화발전비용(같은 양의 전력을 생산하는 데 들어가는 비용)이 가장 싼 전원은 이미 풍력과 태양광”이라며 “다만 아직 한국에선 여러 기회 비용, 시간 비용, 금융 비용이 쌓여 상대적으로 비쌀 뿐이다. 실제 요금이 오를 일은 없다. 오히려 그런 식의 접근이 대한민국의 에너지 전환을 가로막고 있다”고 주장했다. 탈원전에 대해서는 “각 나라 특성에 따라 원전을 쓰는 나라가 있는데 한국도 탈원전을 바로 할 일은 아니라고 생각한다”며 “주 에너지원으로 재생에너지를 쓰고 원전을 보조 에너지원으로 쓰는 것이 (이재명정부의) 탈탄소 정책 기조”라고 말했다. 김 후보자는 이재명 대통령의 공약으로 신설 예정인 기후에너지부 장관으로도 거론되고 있다. 기후에너지부는 분리돼있는 기후와 에너지 관련 부처 업무를 통합한 조직이다. 그는 “기후에너지 문제를 어떻게 하는 게 가장 효과적인지 빠른 시일 내로 큰 방향을 잡겠다”며 “국정기획위원회에서 조직개편안을 검토하고 있는 사안”이라고 말했다. “신재생에너지로 전환 필요” “원전은 보조 에너지원으로” 환경부 장관 후보자가 에너지 ‘전환’을 예고하면서 일각에서는 문재인정부의 태양광 사업이 떠오른다는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문재인 전 대통령은 대선공약으로 신재생에너지 확대를 내세운 바 있다. 이를 세부적으로 진행하는 과정에서 태양광 사업이 크게 대두돼 국가 예산이 투입됐다. 문정부는 출범하면서 2030년까지 신재생에너지 비율을 20%까지 높이는 내용을 골자로 하는 ‘재생에너지 3020 이행계획’을 발표했다. 이에 따르면 정부는 신재생에너지 발전 비중을 늘리기 위해 설비를 확충하기로 했다. 태양광, 풍력발전소 등이다. 당시 내용대로면 총 110조원에 이르는 돈이 필요하다는 결론이 나왔다. 정부는 국가 예산과 공기업, 민간 등을 통해 자금을 조달하겠다는 계획을 세웠다. 문정부 임기 내내 전국 단위로 태양광 사업을 위한 지원금이 뿌려졌다. 당시 문정부는 신재생에너지 확대와 함께 탈원전 로드맵을 동시에 진행했다. 일부 원전이 영구적으로 정지됐고 짓고 있던 원전 공사가 중단됐다. 단계적 원전 감축 계획을 세우고 이를 신재생에너지로 대체하겠다는 취지였다. 문제는 이 과정에서 나온 잡음이다. 특히 태양광 사업을 둘러싼 각종 비리 의혹은 정권이 교체된 이후에도 문정부를 오랫동안 괴롭혔다. 국가 주력 사업이었던 만큼 정권이 바뀐 이후 새 정부의 표적이 된 상황에서 실제 문제가 드러난 것이다. 천문학적 예산 투입 윤석열정부는 신재생에너지 지원 사업에 대한 대대적인 점검을 진행했다. 윤정부 국무조정실은 일부 표본만 조사했는데도 불구하고 2000억원이 넘는 돈이 불법으로 사용된 정황이 드러났다고 발표했다. 당시 국무조정실 정부합동 부패예방추진단은 전국 12개 지자체와 한국전력, 한국에너지공단을 대상으로 ‘전력산업 기반기금 사업’ 운영 실태에 대한 합동 점검을 벌인 결과 총 2267건(2616억원)의 위법·부당 사례를 적발했다고 밝혔다. 해당 기금은 산업자원통상부(이하 산업부)가 전기 요금의 3.7%를 징수해 조성한 돈으로 태양광 등 신재생에너지 지원과 보급에 주로 사용됐다. 5년간 투입된 금액은 12조원에 이른다. 1차 조사에 따르면 신재생에너지 지원 사업에서 부적절한 대출과 보조금 부당 집행, 회계 부실 등이 적발됐다. 태양광 사업의 경우 점검 대상의 17%인 1129건에서 1847억원의 위법 대출 등이 확인됐다. 2차 점검에서는 적발 금액이 2배로 늘었다. 국무조정실은 2019~2021년 태양광 등 신재생에너지에 쓰인 금융지원사업(1조1325억원) 내역과 2017~2021년 보조금 지원 규모가 컸던 25개 지자체의 발전소 주변 지역 지원사업 등을 조사했다. 그 결과 금융지원 사업에서 4898억원, 발전소 주변 지역 지원 보조금 사업에서 574억원, 전력 분야 연구개발 지원사업에서 266억원, 기타 전력기금 사업에서 86억원의 부정 집행 사례가 나타났다. 당시 국무조정실 관계자는 “신재생에너지 지원금 대부분은 태양광 사업에 쓰였다”며 “가장 규모가 컸던 부정 금융지원 사업 사례 중 99%는 태양광 사업”이라고 말하기도 했다. 태양광 업자들은 허위 세금계산서를 발행해 불법 대출을 받았고 가짜 세금계산서로 공사비를 부풀려 지원금을 타냈다. 감사원 조사로 검찰 수사까지 대출을 받은 뒤 세금계산서를 취소, 축소하는 등 탈루가 의심되는 정황도 드러났다. 가짜로 버섯 재배 시설이나 곤충 사육 시설, 축사 등 농림축산업 시설을 만들어 놓고 신재생 시설을 짓겠다고 대출을 받은 경우도 있었다. 농지에 신재생 시설을 지을 때는 용도변경 등 인허가 절차가 필요하지 않고 생산한 전력을 팔 때 받을 수 있는 보조금 한도도 커진다는 점을 악용한 것이다. 한 마을회는 마을 창고를 짓겠다며 전력기금에서 돈을 받아 부지를 사들였지만 실제 창고는 짓지 않았고 부지는 마을회장이 6촌에게 되팔았다. 지방자치단체의 문제도 드러났다. 한 군은 타낸 보조금을 다 쓰지 못하고 약 24억원이 남자 이를 다른 계좌로 빼돌렸다가 적발됐다. 한 시는 보조금을 빼돌려 관용차를 사기도 했다. 감사원 조사도 이뤄졌다. 감사원은 2023년 11월 ‘신재생에너지 사업 추진 실태’ 감사 결과를 발표했다. 신재생에너지 사업의 목표와 이행, 인프라 구축, 관리 등 3개 분야로 나눠 추진 과정과 집행 전반을 들여다봤다. 감사원에 따르면 산업부는 2017년 신재생 발전 목표를 상향하면서 특단의 대책이 필요하다고 검토했지만 막상 후속 조치 이행에는 소홀했다. 감사원은 “톱다운(하향식) 방식으로 내려온 목표에 따라 무리한 계획이라도 수립해야 했다는 이유로 실현 가능성이 떨어지는데도 면밀한 검토 없이 강행되고 짧은 기간 내 일관성 없이 변경됨으로써 정책 혼선과 신뢰성 저하를 초래했다”고 지적했다. 윤석열정부서 전반적 점검 8000억 넘는 예산 줄줄 샜다 대통령의 대표 공약이었던 만큼 정부 부처가 이를 맞추기 위해 과도하게 정책을 추진했다는 것이다. 문정부가 신재생에너지 확대로 야기될 수 있는 전기요금 인상 가능성을 감췄다는 지적도 나왔다. 감사원 감사 결과에 따르면 산업부는 문정부의 국정 과제대로 신재생에너지 발전 비중을 늘릴 경우 2030년까지 전기요금을 40% 가까이 올려야 한다는 것을 알면서도 당시 청와대의 압박에 12년 동안 10.9%만 오를 것이라고 국민 부담을 축소했다. 태양광 사업의 여파는 여전히 계속되고 있다. 새만금 태양광 발전사업 비리 의혹을 수사 중인 검찰은 지난 1월 군산시청에 대한 추가 압수수색을 진행했다. 감사원 감사 결과 군산시 태양광 발전사업 수주 과정에서 뒷돈이 오간 정황이 포착됐고 이를 검찰에 수사 의뢰를 하면서 시작된 일이다. 당시 군산시장은 군산시가 1000억원 규모의 태양광 사업을 추진할 때 자신의 고교 동문이 대표로 있는 업체에 특혜를 준 혐의를 받고 있다. 해당 업체가 사업자금을 조달하는 금융사가 제시한 연대보증 조건을 충족하지 못했는데도 우선협상대상자로 선정해 계약 체결을 지시했다는 게 감사원의 판단이다. 앞서 검찰은 새만금 태양광 사업을 주도한 회사 대표를 알선수재 혐의로 기소했다. 그는 태양광 발전사업 과정에서 정·관계 인사에게 로비를 해주겠다며 뒷돈을 챙긴 것으로 알려졌다. 당시 그의 진술로 비리 의혹은 정치권으로까지 번졌다. 핵심 수사 대상에 올랐던 건설사 대표가 실종됐다가 시신으로 발견되는 일도 일어났다. 관련 시장은 반응 오는 중 이 대통령이 기후, 에너지 문제에 관심을 기울이고 김 후보자가 재생에너지를 언급하면서 관련 시장이 다시 들썩이는 모양새다. 실제 태양광 관련 주가가 오르는 등 주식시장에는 벌써부터 반응이 나타나고 있다. 윤정부는 문정부의 신재생에너지 사업을 통째로 부정하다시피 했다. 반대로 문정부의 정책을 다시 끄집어낸 이정부의 운명은 어떻게 될까? <jsjang@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