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슈&인물> 월클 손흥민 키워낸 손웅정

유력한 차기 국대 감독?

[일요시사 취재1팀] 오혁진 기자 = “말씀 중에 죄송하다. 흥민이 절대 월드클래스 아니다.” 손흥민 선수의 아버지인 손웅정 감독이 과거 언론 인터뷰에서 한 말이다. 해당 영상은 영상은 조회 수가 300만회를 넘었고, 이를 코믹하게 패러디한 영상들도 수십만 조회 수를 기록 중이다. 심지어 손 감독이 현역 시절 프로축구 선수로 활약한 옛 모습이 담긴 영상도 조회 수가 200만회를 넘었다. 아들이 아시아 최고의 축구선수라고 평가받고 있음에도 손 감독의 겸손은 지금도 이어지고 있다. 해외 매체와 유명 축구 감독들의 극찬도 끊이지 않을 정도다.

손웅정 감독은 오래전부터 방송과 강연, 언론사 등 인터뷰 요청을 여러 차례 받아왔으나 대부분 거절해왔다. 본인이 운영하는 축구 아카데미에서 열린 행사나 운영 등으로 불가피한 경우가 아니면 언론의 스포트라이트를 받으려 하지 않는다. 

모든 것은
기본서 시작

손 감독의 주변인들은 손 감독이 ‘항상 겸손해야 한다’는 철학이 몸에 밴 사람이라고 입을 모은다. 자신이 맡은 일을 끝내지 않으면 외부 일정조차 함부로 잡지 않는 인생을 수십년간 지켜왔다는 설명이다.

손 감독의 인생관은 그의 자전 에세이를 보면 알 수 있다. 지난해 10월 출간한 <모든 것은 기본에서 시작한다>는 지난 5월부터 다시 판매량이 3~5배씩 늘기 시작했다. 최근에는 각 서점 베스트셀러 순위에서 역주행을 벌이고 있다.

지난 7일 손 감독의 사인회가 열렸는데 팬층은 어린이부터 중년·노년층까지 남녀노소 할 것 없이 다양했다. 1시간 정도로 예정된 사인회는 1시간을 훌쩍 넘겨서 끝났다. 그의 에세이를 본 팬들은 “철학과 내공이 대단하다” “한 명의 수도승을 만난 느낌”이라고 감탄하기도 했다.


지난 12일에는 신경호 강원교육감이 “춘천에 손흥민 거리가 조성됐으면 한다”고 제안하자 손 감독은 “몇 년 전부터 그런 얘기가 있었지만 그건 아니다”라고 단호히 선을 그으며 “은퇴하면 누가 이름이나 불러줄지 모르겠다”고 답했다.

그는 왜 이렇게 몸을 사릴까. 손 감독의 지인들은 “원래 지나칠 정도로 겸손함이 몸에 밴 사람에다 아들에게 폐 끼치는 걸 극도로 경계한다”며 “‘손흥민 아빠라며 나댄다’는 말을 듣는 것을 가장 꺼린다”고 입을 모았다. 어느덧 60대지만 어딜 가든 90도로 깍듯이 인사하는 모습도 축구팬들 사이에서 자주 회자된다.

손 감독의 끝없는 겸손과 저자세는 단순한 겉치레나 리스크 회피가 아닌 삶을 지탱하는 철학이다. 그가 말하는 삶을 대하는 올바른 태도는 ‘인파출명저파비’다. ‘사람은 이름나는 것을 두려워해야 하고, 돼지는 살찌는 것을 두려워해야 한다’는 것이다.

팬들은 “월드 스타가 된 손흥민이 한결같이 겸손한 태도를 유지하는 것도 다 이런 아버지의 철학 덕분”이라며 엄지를 치켜세운다.

한 문화평론가는 “조금이라도 유명해지면 그 유명세로 돈이나 인기를 얻으려는 풍토가 강하지 않으냐”며 “손 감독과 손흥민의 겸손한 행보는 이와는 정반대인데다 그런 태도가 한결같이 이어지다 보니 더 큰 호응을 얻는 양상”이라고 말했다.

“아직 아니다” 겸손이 만든 레전드
“인성이 기본…흥민이 더 노력해야”

손 감독은 1962년 충청남도 서산군 안지면 산동리 도비산 자락에 있는 마을에서 태어났다. 어린 시절 마을을 “하루에 버스가 단 한 번 오는 궁벽한 곳”이라고 표현했다.


손 감독이 강조하는 지독한 성실과 노력은 넉넉지 않은 형편에서 축구를 시작한 만큼 정말 잘하고 싶다는 욕심에서 나온 것으로 보인다. 학창 시절 별명이 ‘숙소 귀신’ ‘연습벌레’였을 정도로 다른 친구들이 방과 후 친구도 만나고 여가를 누릴 시간에 본인은 오로지 훈련과 숙소에서의 휴식에만 매진한 것으로 알려졌다.

그는 초등학교 6학년 때 축구를 시작해 상무 축구단, 현대 호랑이(현 울산 현대), 일화 천마(현 성남 FC)에서 프로 선수 생활을 했다. 프로 통산 37경기 7골. 자신의 현역 시절에 대해 손 감독은 “삼류 선수” “천둥에 놀라 뛰는 개처럼 두서없이 뛰었다”고 평가한다.

하지만 축구계 평가는 다르다. 제38회 청룡기쟁탈 전국 중·고교 축구선수권대회에 춘천고 선수로 출전한 손 감독은 영광고와의 시합에서 생애 첫 공식 해트트릭이자 대회 첫 해트트릭을 기록했다. 당시 전문가들은 “1m72㎝에 63㎏. 축구선수로는 비교적 단신이지만 문전에서의 순발력과 슈팅 처리, 드리블이 고교 정상급인 반면, 100m를 12초로 뛰는 스피드를 순간적으로 적절히 조절하지 못하는 것이 흠”이라고 평가했다.

또 그의 자전 에세이와 축구계 인사들의 얘기를 들어보면 손 감독의 말은 과한 겸손이라고 한다.

손 감독은 초등학교 시절 교회 대항 축구대회에 출전하면서 처음 그라운드를 밟았는데, 당시 맹활약해 단박에 학교 축구부 감독으로부터 스카웃 제의를 받았다. 불의를 보면 참지 못하는 성미 탓에 학교 진학과 소속팀을 찾는 데 어려움을 겪었고 그럴 때마다 손 감독의 재능과 성실함을 높게 사는 지도자들이 도움의 손길을 보냈다.

1990년 아킬레스건이 끊어지는 심각한 부상으로 결국 28세 젊은 나이에 현역에서 은퇴했다.

후로 다시 지독한 가난을 겪어야 했다. 아내와 자식들을 먹여 살리기 위해 생활체육시설 헬스 트레이너를 하고, 그걸로도 벌이가 충분치 않아 주말에는 공사판에 나갔다. 방과 후 체육교실 강사, 학교시설 관리 등 네 식구가 먹고살기 위해 닥치는 대로 일을 해야 했다. 

당시 상황에 대해 손 감독은 ‘가장으로서 당연히 해야 할 일’이라고 생각했다. 자신의 축구 이상에 미치지 못한 현역 시절을 합리화하는 대신 처절한 성찰을 통해 아들에게는 철저히 기본기를 중시하는 축구 교육을 시켰고, 그 결과 손흥민은 세계 최고 반열의 선수로 성장했다.

지독한 가난
혹독한 훈련

손흥민은 “나의 축구는 온전히 아버지의 작품”이라고 말했다.

손 감독은 자신의 에세이를 통해 “지고 메고 공사판 비계를 오르면서 처음에는 누가 알아볼까 봐 내심 위축되는 기분이 들었다. ‘프로선수로 뛰던 손웅정이 막노동판에서 일한다’고 수군대는 소리도 들려왔다”면서도 “하지만 시간이 가면서 남들이 하는 소리에 잠깐이나마 마음을 빼앗겼다는 것 자체가 부끄러워졌다”고 회상했다.

이어 “날 때부터 프로선수였던 것도 아닌데, 프로로 좀 뛰었다고 그런 마음을 품다니 우스웠다. 일이 창피한 게 아니라 그걸 창피해했다는 것이 창피한 거였다. 살아가는 길이 하나뿐인 것도 아닌데, 왜 당당하고 떳떳하지 못했나. 내가 삶에 교만하고 오만하다는 증거였다”고 술회했다.


손 감독의 일정은 손흥민을 지원하는 것 외에는 운동, 축구, 청소, 책읽기가 전부인 것으로 알려졌다. 그의 철학 중 또 다른 핵심은 ‘무욕’과 ‘행복’ ‘자기 주도적 삶’이다.

손 감독은 “자신들이 원하는 삶을 살길 바랐다. 그 길에 돈이 따라오면 좋은 것이고, 안 따라와도 할 수 없는 일이다. 물론 경제적인 문제는 매우 중요하다. 그 문제로 호되게 고생도 해본 나”라며 “하지만 미래에 대한 불확실함 속에서 미리 걱정만 하고 전전긍긍하는 삶은 온전한 삶이 아니다. 주도적으로 내 삶의 방향을 세우고, 돈에 매몰되는 것이 아닌 나만의 시간도 벌면서 자기가 진짜 좋아하는 일을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운동선수에게 승패만큼 중요한 것이 없다고 생각하겠지만, 행복에 초점을 맞추고 보면 승패에 연연하는 마음을 초월할 수 있다”며 “오늘 경기가 잘 풀리지 않았다 해도 오늘 축구를 할 수 있었음에 감사할 수 있는 선수, 오늘 경기가 잘 풀렸다면 그 행복감을 만끽하는 선수, 돈과 명예를 떠나 공을 찰 수 있음에 감사와 행복을 느끼는 선수, 멀리 봤을 때 나는 이것이 답이라 생각한다. 아이들의 일에 실패란 없다. 오직 경험만이 있을 뿐”이라고 전했다.

손흥민의 수입에 대해서도 굉장히 엄격한 태도를 보인다. 손 감독은 “흥민이가 번 돈에 대해서도 철저히 선을 긋는다. 내가 자식이 번 돈을 가져다 쓰면 자식에게 떳떳할 수 있겠느냐”며 “내가 왜 자식 눈치를 보며 살겠는가. 흥민이가 어렵게 번 돈은 통장에 잘 넣어놓고 항상 확인할 수 있도록 한다. 노력한 것들이 흔적이 되고 자국으로 남을 수 있도록 보호해줘야 한다. 그래야 동기 부여가 된다”고 밝혔다.

손 감독과 손흥민 모두 훌륭한 축구선수가 되기 위해선 ‘기본기’가 중요하다고 강조한다. 손 감독은 “캄캄한 방 안에서도 밥숟가락이 저절로 입에 들어가는 경지 정도는 돼야 한다”고 말한다.

실제로 그는 손흥민이 초등학교 3학년 때부터 중학교 졸업 때까지 드리블, 리프팅 등 철저하게 공을 다루는 기술 위주로 훈련을 시켰다. 오른발잡이였던 아들이 왼발도 잘 쓸 수 있도록 양말을 신거나 바지를 입을 때, 축구화 끈을 묶을 때도 왼쪽부터 하도록 유도했다.


손흥민은 독일 함부르크 시절, 아버지의 지도로 현재의 슈팅 기술을 완성했다. 2011년 여름엔 매일 1000개씩 슛 연습을 했다. 위치를 옮겨가면서 오른발로 500번, 왼발로 500번씩 때렸던 덕분에 이젠 왼발 슈팅이 더 편하게 느껴질 정도가 됐다.

“돈 벌라고
가르친 거 아냐”

손 감독은 “불 꺼진 방 안에서 밥숟가락이 입으로 들어가는 경지. 그런 경지에 이르러서야 축구선수는 공을 좀 다룬다 말할 수 있다. 흥민이는 기본기를 채우기 위해 7년의 세월이 걸렸다. 365일 쉬지 않았다. 방학 때 친척집에 놀러 가는 일도 없었다. 죽을 때까지 놓지 말아야 하는 가치가 ‘겸손’과 ‘성실’”이라고 했다.

이 같은 ‘기본기 강조’ 때문이었을까. 손흥민은 2021~2022 잉글랜드 프리미어리그(EPL) 득점왕에 오르면서 전문가들의 찬사를 받았다. 그럴 만한 것이 EPL은 현존하는 세계 최고의 축구 무대로 꼽힌다. 720명의 선수는 각국의 대표선수급으로 이들 중에서 득점 1위를 차지했다는 것은 상상하기 힘들었던 일이다.

손 감독은 손흥민이 축구선수로서 기본기를 다지는 것 외에 흔들림 없이 훈련을 받을 수 있도록 노력하고 있다.

손흥민이 2008년 독일 분데스리가 함부르크 유소년팀에 입단했을 때 일이다. 혼자 독일로 간 손흥민이 한동안 향수병에 시달려 힘들어하자 손 감독은 아들을 위해 독일로 날아갔다. 그는 손흥민의 팀 훈련 전, 매일 새벽에 웨이트트레이닝을 시키면서 함께 훈련했다. 손흥민이 프리미어리그에서 뛰는 지금도 손 감독은 여전히 아들과 함께 영국 런던에서 웨이트트레이닝을 소화하고 있다.

손 감독은 아들이 점점 이름을 알리고 유명해질 때도 엄격한 시선을 거두지 않았다. 2018 러시아월드컵을 앞두고 한 인터뷰에서 “(손흥민은)절대 월드 클래스가 아니다. 그래서 흥민이한테 많이 강조하는 게 겸손이었다”고 언급했다.

또 손흥민이 2010년 독일 분데스리가 데뷔전에서 최연소 골을 터뜨리자 “아들이 하루만 기억상실증에 걸리게 해달라고 기도했다”고 고백하기도 했다.

손 감독은 아들이 첫 골로 감정에 휘둘릴까 봐 주변 평가를 보지 못하게 노트북도 주지 않았던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런 손 감독의 엄격함은 아들에게 절제를 가르쳤을 뿐 아니라 한결같이 자기관리를 할 수 있도록 도움을 줬다.

팬들은 손 감독의 매력으로 ‘솔선수범 리더십’을 꼽는다. 손 감독은 어린 손흥민을 가르칠 때도 항상 시범을 먼저 보이고 훈련을 똑같이 했다. 그가 손축구아카데미 선수들에게 팔굽혀펴기를 시키면서 자신도 똑같이 하는 모습이 담긴 영상에는 “살면서 저런 스승은 본 적이 없다” “정말 존경한다”는 댓글이 줄줄이 달려있다.

손 감독은 책에서 “아이들과 ‘함께’ 운동하는 게 나의 훈련 철칙이다. 아이들에게만 시키고 팔짱 끼고 서 있지 않는다”고 밝혔다. 실제로 손흥민도 어린 시절 혹독한 훈련에 대해 “아버지가 옆에서 똑같이 훈련하니 멈출 수가 없었다”고 말했다.

아킬레스건 부상…28세 현역 은퇴
아내·자녀 먹여 살리려 노동 감행

손 감독은 “흥민이가 어렸을 때부터 함께 축구를 하면서 축구선수로 성공하거나 프로선수가 돼서 어느 정도 돈을 벌 것이라는 생각은 결단코 해본 적이 없다”고 했다. 아들을 엄하게 가르친 이유가 결코 자신의 욕심이나 부모로서의 욕심이 아니었다는 것이다. 그보다 “축구선수로 경기장에서 제 기량을 마음껏 뽐내는 게 가장 큰 행복이기 때문”이라고 했다.

엄하게 가르쳐 제대로 된 선수가 돼야 축구선수로서 더 큰 행복을 누릴 수 있다는 설명이다.

훈련 때는 엄한 아버지였지만 부자 사이가 돈독한 이유에 대해 손 감독은 “혼을 내고 반드시 사후 수습을 했기 때문”이라며 “감정에 휘둘려 혼내거나 인격을 훼손하지 않는 것. 어찌 보면 당연한 것들을 지키려 노력했다”고 했다.

손 감독의 매서운 인상 탓에 일부에선 손웅정·손흥민 부자를 권위적인 관계로 오해하곤 한다. 하지만 이는 훈련할 때 한정이다. “축구를 벗어나면 두 사람은 서슴없이 농담을 주고받는 절친한 친구 같은 모습”이라는 게 두 사람을 지켜본 주변인들의 얘기다.

축구계에서는 “두 부자의 성격적 케미가 좋다”는 평가가 있다. 손 감독이 매사 진지하고 엄격한 반면, 손흥민은 낙천적이고 붙임성이 좋아 서로 성장의 시너지를 만들어냈다는 것이다.

손 감독을 두고 팬들은 “무서워 보이지만 아들밖에 모르는 ‘츤데레’ 같다”고 입을 모은다. 손 감독은 늘 경기에 나서는 아들을 안아주며 “오늘도 마음 비우고 욕심 버리고 승패를 떠나서 행복한 경기를 하고 오라”고 말한다.

한국 축구는 과거 우수한 자질의 유소년을 어린 시절 때부터 망가뜨린다는 비판을 받았다. 뼈와 근육이 완전히 발달하지 않은 상태서 당장 이기기 위한 소모품으로 활용했다는 것이다. 가령 주력이 빠른 선수는 측면을 파고들어 크로스를 올리고, 키가 크면 헤딩으로 골문을 노리도록 분업화하는 경우다.

손 감독이 손흥민을 학교 운동부에 보내지 않고 직접 가르친 것은 본인이 부상으로 일찍 프로선수 생활을 접어야 했던 아픔에서 나왔던 것으로 해석된다. 트래핑·패스·킥·드리블을 나중에 훈련시키고, 유럽 무대에 진출해서는 체격이 큰 선수들과 대결하기 위해 본격적으로 웨이트 훈련을 한 것도 경험에서 나온 것으로 볼 수 있다.

국내로 눈을 돌려보면 과거보다는 축구 훈련 방식이나 환경이 많이 나아졌다. 대한축구협회는 초등학교 경기 방식을 8대8로 바꿨다. 개인 능력과 기본기를 강조하기 위한 것이다. 하지만 여전히 경기나 대회 출전을 위한 훈련이 주를 이루고 있는 것도 사실이다.

주말 리그와 전국대회 등 경기에 초점을 두게 되면 아무래도 기본기 훈련은 소홀할 수밖에 없다.

해외 축구 유학을 돕기 위해 과거 대한축구협회 설명회에서 “현지 적응을 위해 어학 준비를 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학부형들한테 아이디어를 준 사례가 있다. 당시 조언에 따라 어려운 형편에도 독일어 강사를 수소문해 아들에 붙여준 학부모는 손 감독이 유일했다.

축구를 잘하기 위해서라면 항상 꼼꼼하게 준비하고 대처하는 모습을 볼 수 있다.

물론 손흥민을 훈련시키는 과정은 스파르타식이었다는 것을 부인할 수는 없다. 손 감독처럼 특별한 아버지 아래서 축구를 배울 수 있는 선수들도 많지 않을 것이다. 더욱이 요즘에는 아이들을 강하게 훈련시키기도 힘들다. 이런 측면에서 이들의 신뢰와 존경의 관계는 특수한 사례로 남을 것이다.

손 감독은 “아이들을 정말 혹독하게 키운 데 대해 변명할 생각은 없다. 다만 공 차겠다는 아이들을 위해 내 깜냥 안에서 제대로 된 교육이라고 생각하는 것을 실천했을 뿐”이라고 말한 바 있다.

결과적으로 그는 큰 울림을 남겼다. 황보관 대한축구협회 기술본부장은 “손흥민이 프리미어리그 최종 38라운드 노리치시티전에서 터트린 감아차기 골은 감각에서 나온 것”이라며 “손흥민이 그 지역에 들어가면 공을 잡은 순간부터 슈팅까지 자동적으로 연결된다. 그것은 아무도 할 수 없는 것이며, 그 바탕 위에서 창조적 플레이가 가능하다”고 평가했다.

기본에 충실할 때 잠재력이 폭발하고, 그 위에서 새로운 축구 세계가 열린다는 설명이다.

한국 축구
새로운 기준?

김대길 해설위원은 “손흥민의 아버지는 초등학교나 중학교 축구 문화에서 기본기에 절대적인 시간을 확보해야 한다는 메시지를 줬다. 말 뿐이 아니라 현실화할 수 있도록 축구협회부터 지도자, 학부모까지 절실한 과제로 생각할 필요가 있다”고 조언했다.


<hounder@ilyosis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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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춤 추는 이정현 마이웨이

칼춤 추는 이정현 마이웨이

[일요시사 정치팀] 박형준 기자 = 국민의힘 이정현 공천관리위원장이 거침없이 칼을 휘두르고 있다. 주호영 국회부의장·김영환 충북도지사가 이 공관위원장의 칼에 희생됐다. 변방의 이방인이어서 휘둘러야 했던 칼의 운명은 반복되고 있다. 그는 왜 칼을 휘두르는 걸까? 국민의힘 이정현 공천관리위원장(이하 공관위원장)이 지난 13일 “여러 의견을 존중하는 과정에서 제가 생각했던 방향을 더는 추진하기 어렵다고 판단했다”면서 사퇴했다가 이틀 후 번복했다. 이 공관위원장은 사퇴했던 이유를 구체적으로 밝히지 않았다. 이틀 후 또 번복 정치권 안팎에선 대체로 이 공관위원장의 갑작스러운 사퇴의 주요 원인으로 오세훈 서울시장과의 갈등을 주된 원인으로 거론했다. 오 시장은 ▲윤석열 전 대통령과의 절연에 소극적인 지도부 혁신 ▲혁신적인 선거대책위원회 조기 출범 등을 요구하면서 지방선거 공천 기간 내 후보 등록을 하지 않았다. 이 공관위원장의 사퇴 번복에는 장 대표가 큰 역할을 한 것으로 알려졌다. 그는 사퇴 번복 후 “장 대표가 지난 14일 공천 혁신을 완수해 달라면서 공천 관련 전권을 맡긴다는 뜻을 전해왔다”고 밝혔다. 따라서 이 공관위원장의 사퇴는 대체로 ‘무력 시위’로 해석되고 있다. 결국 오 시장은 지난 17일 국민의힘 서울시장 경선 후보로 등록했다. 복귀한 이 공관위원장은 ‘장 대표가 부여한 공천 관련 전권’을 거침없이 휘둘렀다. 지난 16일에 “국민의힘 공천관리위원회(이하 공관위)는 박형준 부산시장 공천 컷오프를 검토하고 있다”는 소식을 전했다. “박 시장을 컷오프하고, 국민의힘 주진우 의원을 단수공천하자”고 주장한 핵심은 이 공관위원장이었다. 그러자 부산에 지역구를 둔 국민의힘 의원들이 장 대표를 방문해 항의했고, 장 대표는 박 시장·주 의원 간 경선을 결정했다. 같은 날 공천이 날아간 현역 광역자치단체장은 김영환 충북도지사였다. 공관위는 김 지사를 컷오프한 이유를 구체적으로 밝히지 않았다. 그저 “김 지사의 공적·업적을 부정·평가절하 하기 위한 게 결코 아니”라면서 시대 교체·세대 교체를 언급했다. 정치권에선 ▲만 70세 고령 ▲수뢰 혐의로 경찰 수사를 받는 등 사법 리스크 ▲재임 중 각종 발언 논란 등 대체로 김 지사의 약점이 컷오프의 실제 이유 아니겠느냐는 추측이 돌고 있다. 김 지사는 곧바로 “특정인을 두고 면접을 진행하다니 기가 막힌다”면서 일각에서 거론됐던 ‘국민의당 김수민 전 의원 충북도지사 후보 내정설’을 암시했다. 김 전 의원은 지난 2024년부터 1년 동안 충북 정무부지사를 지냈다. 김 지사는 지난 18일엔 서울남부지법에 공천 배제 효력 정지 가처분을 신청했다. 이어 다음 날 진행된 심문에서 “이 공관위원장이 김 전 의원에게 개인적으로 연락해서 출마 여부를 타진했다”며 “절차적 정당성이 파기됐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공관위는 이와 상관없이 지난 20일 김 지사를 제외한 경선 구도를 확정했다. 이 공관위원장은 국민의힘 대구시장 후보 공천과 관련해서도 존재감을 드러냈다. 공관위는 지난 22일 국민의힘 대구시장 후보 경선과 관련해 주호영 국회부의장·이진숙 전 방송통신위원장을 공천에서 배제했다. 광주시장 출마 아닌 공관위원장 지방선거와 묶인 운명의 끝은? 대구시장 후보 경선에 대해선 한동안 “국민의힘 최은석 의원 공천이 사실상 내정된 게 아니냐”는 설이 돌아다녔다. 그러자 최 의원은 지난 21일 자신의 페이스북을 통해 “이 공관위원장은 공천 심사 면접에서 처음 만났다”면서 이를 강하게 부인했다. 주 부의장은 공천 배제에 크게 반발했다. 그는 공천 배제 가능성이 거론되던 지난 17일 자신의 페이스북을 통해 “대구를 공천 실험장으로 삼으면 안 된다”며 “대구시장을 더불어민주당에 상납하려는 거냐”고 비판했다. 이어 “이 공관위원장은 대구의 자존심을 더 이상 짓밟지 말라”고 요구했다. 하지만 주 부의장 공천 배제는 지난 22일 확정됐다. 그는 지난 25일 가처분 신청과 무소속 출마 가능성을 언급했다. 일각에서 의아하게 해석하는 지점은 유튜버 고성국씨 등 강경 보수 진영에서 강하게 지지했던 이 전 위원장이 공천에서 배제됐다는 것이다. 이를 두고, “추 의원이 국민의힘 대구시장 후보로 확정돼 의원직에서 물러나면, 이 전 위원장이 추 의원의 지역구 대구 달성 재보궐선거에 출마하는 게 아니냐”는 설이 나왔다. 반대로 “주 부의장이 무소속으로서 대구시장 선거에 출마하면, 국민의힘 한동훈 전 대표가 주 부의장의 지역구인 대구 수성갑에 출마하는 것 아니냐”는 설도 나오고 있다. 국민의힘 친한(친 한동훈)계 일원으로 거론되는 국민의힘 박정하 의원은 지난 24일 MBC 라디오 <김종배의 시선집중>에 출연해 “주 부의장의 공천 배제엔 감정이 어느 정도 반영돼있는 게 아니냐는 생각을 하지 않고선 해석이 잘 안 된다”며 “장 대표의 생각도 분명히 들어가 있다고 본다”고 주장했다. 이어 주 부의장과 한 전 대표의 연대설에 대해서도 “한 전 대표가 보수 재건 후 당에 돌아오는 길을 찾아가는 길에 있어선 주 부의장의 선택 여하에 따라 모든 가능성을 다 열어 검토할 것이라고 본다”면서 연대설을 부정하진 않았다. 장 대표는 지난 23일 국민의힘 대구시당을 방문해 “공천 관련 모든 것은 당 대표인 제 책임”이라면서 공천 내정설에 대한 간접적인 의견을 밝혔다. 이어 “시민이 납득할 수 있는 경선을 치르겠다는 말씀을 드렸고, 당 대표로서 역할을 하겠다”고 밝혔다. 하지만 광역지방자치단체장 경선 상황·흐름에 대해선 “영남권 기성 중진과 반 장동혁 성향 인사를 배제하는 방향으로 가는 게 아니냐”는 의문이 나오고 있다. 일각에선 장 대표와 이 곤공관위원장이 각각 ‘굿 캅’과 ‘배드 캅’으로 역할을 분담한다고 의심하고 있다. 의외의 연대설 이 공관위원장의 활동 방향을 놓고, 일각에선 그가 “사실상 장 대표의 칼 역할을 하고 있다”고 보고 있다. 그의 삶과 정치 활동은 국민의힘 주류 정치인과 많이 다르다. 국민의힘은 영남을 주된 지역 기반으로 두고 있지만, 이 공관위원장은 전남 곡성 출신이다. 그가 태어나 자란 곡성에서도 특히 위치가 외진 목사동면 동암리로 알려졌다. 그는 고등학생 시절부터 정치에 관심을 둔 것으로 알려졌고, 정계 입문 계기는 그의 고향을 지역구로 두고 국회의원으로 활동했던 민주정의당 구용상 전 의원의 비서관으로 발탁된 것이었다. 구 전 의원이 지난 1988년 제13대 총선에서 낙선한 후 이 공관위원장은 민주정의당의 말단 간사로 특채됐다. 영남 기반 정당의 호남 출신 당직자였던 그는 훗날 “늘 근본 없는 놈 취급을 받았다”고 주장했다. 그로부터 26년 후 그는 고향 전남 순천·곡성에서 진행된 재보궐선거에서 새누리당 후보로 당선되는 이변을 일으켰고, 다시 2년이 지나선 새누리당 대표로 당선됐다. 당선 이후 그의 28년에 대해선 “한 편의 드라마” 혹은 “인간 승리”라는 평가도 나왔다. 이 공관위원장에겐 2명의 이 위원장이 있다. 그는 재보궐선거 당시 49.43%를 득표해 40.32%를 득표한 당시 새정치민주연합 서갑원 후보를 물리쳤다. 이 후보의 당선엔 서 후보와 노관규 전 순천시장의 갈등도 큰 영향을 미쳤다는 분석이 있다. 하지만 정치적 흐름만을 탄 결과라고 보기 어렵다는 판단도 있다. 고향 곡성에서 이 공관위원장에 대한 지지세가 높아 70% 이상 득표를 한 것으로 알려졌다. 아울러 그는 새누리당이 아닌 ‘곡성 출신 이정현’을 내세워 자전거를 타고 지역구를 누볐다. 당시 그는 스스로 ‘머슴’ 혹은 ‘촌놈’을 자처했다. 그러면서 “고향을 위해 미치도록 일하고 싶다”며 “죽도록 부려먹다가 못하면 그때 쓰레기통에 다시 넣으시더라도 이번 한번만큼은 제 손을 한 번 잡아달라”고 호소하는 등 지역의 호감을 얻는 발언을 이어나간 영향도 컸던 것으로 분석됐다. 비판·조롱 낯설게하기 지난 2016년 총선에선 지역구 조정 영향으로, 이 공관위원장은 전남 순천에 출마했다. 고향이 아닌 지역구에 출마한 것은 일견 불리할 수도 있는 선택이었다. 하지만 그는 44.54%를 득표해 당선됐다. 그는 재보선 당선 이후 매주 지역구를 방문해 현장을 누빈 것으로 알려졌다. 아울러 당시 야권이었던 더불어민주당·국민의당에서 모두 후보를 출마시킨 구도의 영향도 호재로 작용한 것으로 전해졌다. 이 공관위원장은 지난 2022년 지방선거에선 국민의힘 전남도지사 후보로 출마해 선거 비용 보전액 하한선 15%를 넘기는 18.81%를 득표해 “선전했다”는 평가를 받았다. 그런데 그는 중앙 정치에선 다른 모습을 보여준다. 그가 중앙 정치에서 큰 물의를 일으켰을 때 그 원인은 대체로 설화였다. 청와대 홍보수석비서관으로 재직했던 2014년엔 길환영 당시 KBS 사장에게 연락해 “세월호 참사 관련 해경에 대한 비판을 지금은 자제해 달라”고 요구한 게 2년여가 흐른 후 뒤늦게 알려져 물의를 일으켰다. 이는 방송 편성 관련 규제·간섭을 금지한 방송법 위반 행위가 될 위험이 있었는데 실제로 그는 벌금형을 확정받았다. 새누리당 최고위원이었던 지난 2015년엔 광주를 방문해 ‘광주 비하’로 해석될 수 있는 발언을 했다. 당시 그는 “광주 시민이 이정현이를 쓰레기통에 버렸다”며 “박근혜 대통령이 나 같은 쓰레기를 끄집어내서 탈탈 털어 청와대 정무수석·홍보수석을 시켜주는 배려를 했다”고 주장했다. 박 전 대통령에게 과잉 충성하는 이 공관위원장의 모습이나 발언은 지금도 쉽게 찾을 수 있다. 새누리당 대통령 후보였던 박 전 대통령은 지난 2012년 9월 과거사 사과 기자회견에서 회견문을 읽은 후 고개 숙여 인사했다. 당시 상황을 촬영한 사진 중에 후보 공보단장이었던 이 공관위원장이 “질의 시간을 가지면 안 된다”는 의미로 손가락으로 X 표시를 만드는 사진도 있다. 새누리당 대표였던 지난 2016년 11월엔 야권이 박 전 대통령의 임기 단축 협상을 거절하고 탄핵소추를 추진하자 “그 사람들이 탄핵을 실천하면 뜨거운 장에 손을 집어넣겠다”고 반발해 한동안 이 공관위원장을 조롱하는 합성 사진이 범람했다. 정치인은 대체로 선거 현장·당내 투쟁에선 정반대의 모습을 보여준다. 일부 정치인은 그 간극이 커서 주목받는다. 이 공관위원장의 태도는 “상대방에게 진정성 있게 몰입한다”는 장점이 될 수도 있다. 하지만 상황에 따라 그 진정성 있는 몰입은 정반대의 이미지를 연출한다. 지역구에선 유권자들이 전통적인 지역 구도에 따른 관성을 무시하고 그를 지지하는 이변으로 이어진다. 반대로 중앙 정치에선 지지자들의 환호와 반대파의 비판·조롱으로 나뉜다. 주호영·김영환 치니 한동훈 꿈틀…나비효과? 마구 휘두르고 장동혁이 수습…굿 캅 배드 캅? 20세기 독일 철학자 마르틴 하이데거의 존재론에 따르면, 이 공관위원장은 ‘호남 출신 보수정당 소속’으로 던져졌다. 이는 그 스스로 선택한 것이지만, 주어진 운명이 그를 던진 측면도 있다. 던져진 상황을 극복하는 것은 그의 선택이 부여한 운명이었다. 이 때문에 이 공관위원장은 고향에선 ‘친근한 고향 사람’이 돼 선거에 임하면서 국회의원으로 당선됐다. 하지만 보수정당에 뿌리내릴 수 있도록 그를 발탁한 사람은 박 전 대통령이다. 박 전 대통령에 대한 충성은 그 스스로 선택해 자신의 삶을 던진 것으로 볼 수 있다. ‘영남 출신 엘리트’ 주축으로 구성된 국민의힘 기준에서 이 공관위원장은 변방의 이방인이다. <조선일보> 양상훈 주필은 지난 2016년 8월 이 공관위원장이 새누리당 대표에 당선된 후 그에 관한 칼럼을 썼다. 양 주필에 따르면, 이 공관위원장은 당직자 시절 자신보다 어린 당 출입기자로부터 반말을 들어가면서 그의 심부름을 했다. 변방의 이방인이었기 때문에 그에 대한 태도는 훨씬 ‘편하게’ 나왔을 가능성을 배제하기 어렵다. 하지만 그는 지금도 국민의힘에 있다. 러시아 문예비평가 빅토르 슈클로프스키는 시 창작과 관련해 ‘낯설게하기’란 이론을 창안했다. “익숙한 대상을 생경하게 바라보면서 그 본질을 시로 표현할 수 있다”는 취지의 이론이다. 그런데 이 공관위원장은 존재 자체가 ‘낯설게하기’였다. 고향에선 보수 정당 소속이기 때문에 낯설다. 보수 정당에선 호남 출신인 그의 존재는 낯설면서도 동시에 강렬하다. 공천관리위원장으로서 시행하는 주요 정치인 컷오프도 그가 낯선 존재이기 때문에 더욱 부각된다. 박 전 대통령에 대한 그의 충성도 반대파·비판자의 관점에선 개종자의 열정·과잉 사회화로 보일 여지가 있다. 개종자의 열정은 원래 특정 집단 소속이 아니었던 사람이 집단에 들어간 이후 기존 구성원보다 더 근본주의적인 태도로 열정을 쏟아붓는 현상을 말한다. 이는 대체로 “난 원래 이 집단 사람이 아니었다”는 불안을 해소하기 위해 진행된다. 그에게는 늘 ‘근본’과 관련된 비판을 받으면 안 된다는 불안감이 있기 때문이다. 과잉 사회화도 뒤늦은 주류 문법 학습 때문에 유연성을 발휘하기보다 집단의 규범을 그대로 집행하려는 경향으로 이어지는 측면을 일컫는다. 개종자의 열정·과잉 사회화를 상징하는 역사 속 인물로는 긍정적인 측면에선 한때 유대교 바리새파에서 촉망받았다가 예수의 가르침을 전파한 사도 바울을 언급할 수 있다. 부정적인 측면에선 20세기 소련의 공안 탄압을 상징하는 라브렌티 베리야를 언급할 수 있다. 조지아 출신인 베리야는 이오시프 스탈린에게 발탁된 후 대숙청을 진두지휘했던 니콜라이 예조프를 몰아내고 방첩기관 NKVD의 수장이 됐다. 지금도 베리야는 공안 탄압을 상징한다. 특정 집단에 기반이 없는 이방인이 그 집단에서 생존하기 위해 누군가의 ‘칼’이 되는 것은 숙명에 가깝다. 숙명적으로 묶인 운명 이 공관위원장은 원래 광주·전남통합시장 출마를 준비했다가 국민의힘 공천관리위원장으로 임명됐다. 그는 임명된 직후 군복을 연상시키는 야전상의를 입고 다시 등장했다. 사실상 장 대표의 칼로써 공천을 진두지휘하면서 그의 정치적 운명은 지방선거에 묶였다. 그의 운명은 여전히 칼인 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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