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흥민 미끼로' 악덕 에이전트 사기 추적

  • 구동환 기자 9dong@ilyosisa.co.kr
  • 등록 2022.05.02 14:57:57
  • 호수 1373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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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럽팀 보내줄게 6000만원 가져와"

[일요시사 취재1팀] 구동환 기자 = ‘선수에게 돈을 달라고 하는 에이전트는 사기꾼’이라는 말이 축구 맘들 사이에서 돌고 있다. 일부 악덕 에이전트들이 국내에서 꽃을 피우지 못한 선수들에게 접근해 유럽팀으로 이적시켜 줄 테니 금전을 요구하고 있다는 것이다. 

대부분의 축구 꿈나무들은 제2의 손흥민을 꿈꾼다. 하지만 한국에서 엘리트 축구선수로 성장해 K리그 1부 선수가 될 확률은 0.8%에 불과한 실정이다. 이들의 꿈을 이용해 돈만 받고 모르쇠로 돌변하는 에이전트 사기가 성행하고 있다.

말라죽는 
축구 꿈나무

A씨는 초등학생 때부터 축구공을 가지고 놀았다. A씨 어머니는 “초등학교 축구부 감독이 찾아와 축구선수로 키워보겠다고 했다. 감독은 ‘아들이 공을 가지고 노는 모습을 보고 가능성을 봤다’는 말이 와닿았다”고 말했다. 

A씨는 초·중학교에서 줄곧 주전선수로 뛰며 탄탄대로의 길을 걷는 듯했다. 하지만 고등학생이 되자 입지가 흔들렸다. 감독이 자주 교체되면서 팀에 적응하지 못하는 모습도 보였다. 

2020년 A씨는 광주에 위치한 모 대학교에 입학해 축구선수의 꿈을 키워갔다. 대학교 축구부였던 A씨는 다른 지도자 소개로 B씨를 알게 되면서 대학교 축구부에서 나왔다. 


A씨 어머니는 B씨가 실력도 보지 않은 채 “제대로 키워주겠다”는 말만 반복했다고 주장했다. A씨 가족은 축구 인맥 추천으로 알게 된 것이니 믿고 따라가는 수밖에 없었다. 축구선수의 꿈을 이어가기 위해선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으로 도전해야 했다. 

A씨는 “나를 잘 아는 감독님의 후배로 알고 있었다. 테스트도 하지 않았지만 그래도 믿을 수 밖에 없었다”며 당시 상황을 전했다. A씨와 부모는 B씨의 말을 철석같이 믿었다.

해외 진출 견적서 확인 결과 숙식 1800만원, 보험 100만원, 비자 2회 300만원, 담당 매니저 2명 2600만원, 소속사 1200만원 등을 합쳐 총 6000만원의 비용이 들었다. 

같은 해 10월, A씨 어머니는 B씨 개인계좌로 해당 비용을 송금했는데 그는 A씨와 A씨 어머니에게 유럽 현지 상황을 잘 아는 사람이라며 C씨를 소개해 줬다. 

이듬해 1월, A씨와 A씨 어머니는 C씨를 만나 면담을 가졌다. A씨에 따르면 “C씨는 외국에서 1~2년간 생활하라”는 얘기만 했으며 크로아티아팀에 대한 얘기보다는 ‘두세 군데 팀을 알아봐야 한다’”고 말했다. 

지난해 2월 중순 A씨는 본인 또래의 다른 축구선수와 함께 크로아티아 자그레브 공항으로 떠났다. 공항에는 C씨와 함께 일한다는 외국인 D씨가 마중을 나왔다. A씨는 D씨 안내에 따라 크로아티아에서 지내게 될 숙소로 향했다. 

이적 조건 숙식·보험 명목으로 수천만원 송금
말만 번지르르 현지서 방치…돈만 받고 모르쇠


A씨는 “내가 지낸 곳은 사람이 없는 빌라였다. 시차 적응을 이유로 일주일 동안 아무것도 하지 않았다”며 “일주일 후 나랑 같이 온 선수는 크로아티아 2부 리그 프로팀인 NK 라드닉 세스베테팀으로 가면서 헤어졌다. 난 걸어서 15분 거리에 있는 2부 리그 NK 두브라바(이하 두브라바) 자그레브로 가게 됐다”고 말했다.

통상 축구선수는 새 둥지를 틀 때 계약서 작성과 함께 팀 유니폼을 제공받는다. A씨도 이를 기대했지만 유니폼은커녕 계약서도 작성하지 않았다. 그는 두브라바 팀원들과 같이 훈련했지만, 마음 한편으로는 불안한 마음도 지울 수 없었다. 

A씨는 “계약서나 유니폼 같은 경우는 C씨에게 확인하니 운동 먼저 하고 있으란 얘기를 했다”며 “C씨의 ‘지금 크로아티아에 없으니 입국하면 계약서, 유니폼을 해결해주겠다’는 말만 믿었다”고 설명했다. 

풀백 포지션이었던 A씨는 묵묵히 훈련에 참여했다. 팀내 영어로 소통이 가능한 한국선수가 있어 A씨는 함께 어울려 지내기도 했다. A씨는 2주간의 적응 기간을 마친 후 컨디션을 회복했다. 다른 선수들과 비교해 뒤떨어지는 면도 없었고 주전으로서 경쟁력이 출중했지만 그의 경기 출전은 이뤄지지 않았다. 

두 달 후인 4월 C씨는 A씨가 있는 크로아티아로 돌아왔다. 결국 A씨가 C씨에게 요청했던 계약서 작성과 유니폼 지급 관련된 약속은 이행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C씨는 시간만 질질 끌었으며 훈련복이 따로 없어 공용 훈련복을 사용해야 했다. 시간만 끌던 C씨는 다시 A씨 곁을 떠났다. 

경기 출전을 하지 못하던 A씨는 감독과 코치진에 18세 이하 팀으로 가겠다고 말했다. 한국 나이로는 20세지만 외국 나이로는 18세이기 때문에 내려갈 수 있었다. 

“키워주겠다”
솔깃한 제안

A씨는 “같은 팀원이었던 한국인에게 C씨에 대한 안 좋은 이야기를 들었다. 나에게 ‘4년 전 C씨에게 사기당해서 들어왔다. C씨는 회사를 바꾸고 계속 사기를 치고 있다’고 말해줬다”고 설명했다.

두브라바는 A씨 출전 당시 18개팀 리그 중 8~10위권에 사이에 있는 중위권 팀이었다. A씨는 C씨로부터 크로아티아 프로팀으로의 이적 시 조건이 ▲선수 출퇴근 ▲레스토랑 이용 등이었지만 A씨의 식사 환경은 열악했다. 빌라 내에서 밥을 해먹거나 인근 패스트푸드점에서 햄버거로 끼니를 때우기도 했다. 

5월 말 크로아티아 리그 종료를 얼마 남기지 않고 A씨는 감독과 코치진에게 말한 뒤 한국으로 복귀했다. A씨는 부모와 함께 크로아티아서 축구선수의 꿈을 이어갈지, 한국서 다시 도전할지 고민에 고민을 거듭했다.

이 무렵 A씨 어머니는 B씨로부터 연락을 받았다. A씨는 B씨가 운영하는 4부리그 격인 구단서 훈련하며 시간을 보냈다. B씨는 C씨에게 비용을 전달했으나, 제대로 된 곳에 쓰지 않았다고 A씨 어머니에게 사실을 털어놨다.

A씨는 “해당 팀 소속은 아닌 채 또 다른 숙소에서 10명 정도 모여 같이 훈련했다. B씨는 새로운 감독과 코치를 섭외해 숙소비만 받고 훈련을 진행했다. 운동한 지 두 달 정도 지났을 때 선수들을 불러 면담을 진행했다. 또 중국팀으로 가보는 것은 어떠냐는 것이었다”고 설명했다. 


<일요시사>가 입수한 녹취록에 따르면 B씨는 A씨에게 “중국 2부리그서 한국선수를 구한다는 연락이 왔다. 조건은 유럽 경험이 있는 한국인이며 이적료 없이 연봉은 20만달러(당시 한화 2억3000만원)이”라고 말했다. 이어 “대한체육회에서 비자를 내줄 수 있다고 하고 사이드(측면 윙어나 측면 수비)를 볼 줄 알아야 한다. 리그 재정도 탄탄해서 한국에 있는 것보다 훨씬 더 조건이 괜찮을 것 같다”고 말했다.

그는 “10월에 들어가서 4주간 격리하고 11월부터 훈련하게 되면 내년부터 뛸 수 있을 것이다. 우리 소속사 애들을 입단시키려는데 조건에 맞는 선수가 너(A씨)밖에 없다”며 “상황이 딱 맞는다. 지금 중국은 마스크 쓰지도 않는 상황이다. 아직 팀은 정하지 않았고 서너 군데 팀을 만날 생각이다. 부모 의견보다 네 생각이 중요하니 한 번 잘 생각해보라”고 설득했다. 

또 “10월에 입국해 한 달간 격리 후 11월에 용병 전지훈련을 갈 것이다.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다. 네가 동의하면 프로필이 들어가는 중국 쪽에 들어간다. 비자랑 해서 호텔 격리 비용에 3000만원이 들어간다. 비자가 나오면 프로필을 넣을 수 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연봉은 2억원부터 시작이며 9억원 미만으로 책정돼 1월부터 들어오며 1년씩 계약이 된다. 몸값이 떨어지는 건 없다. 한국에선 연봉이 2400이지만 중국에서 더 받을 수 있다”며 “경험을 쌓으면 군대도 해결될 것으로 보인다. 중국은 무조건 용병을 구하기 때문에 이적료 없을 때 이적하는 것이다. 돈은 둘째치고 축구다운 축구를 할 기회가 주어졌다. 확실성이 떨어지는 한국보다 중국을 추천한다”고 제안했다. 

군대도 해결
달콤한 유혹

A씨가 답변을 머뭇거리자 B씨는 “크로아티아 가서 얻은 거라곤 이력뿐이었다. (현지)텃세도 있었지만 이력을 얻어왔으니 활용해야 한다. 이력을 활용하기 위해서는 연봉 받으면서 뛸 수 있는 곳으로 가야지. 네 맘도 어떤지 잘 안다”며 한 번 해보는 게 낫지 않나. 크로아티아랑은 상황이 다르다. 크로아티아에서는 눈에 띄지 않았지만 중국에서는 유럽파 한국인이기 때문에 주목한다”고 강조했다.


아울러 “그런 대우를 받으면서 뛰는 게 낫지 않을까 싶다. 이적할 수 있을 때 해야지. 그 타이밍을 놓치면 애매해진다”며 “중국에서 올림픽을 하게 돼 비자를 내주지 않는다. 하지만 한국은 대한체육회에서 비자를 내주기 때문에(더 좋은 선수로 성장할 수 있는) 기회”라고 조언했다. 

B씨는 크로아티아서 몸과 마음고생을 했던 A씨 사정을 언급하면서 솔깃한 제안을 했다.

그는 “크로아티아는 이력을 쌓기 위해 간 것이고 지금은 (중국서)오퍼를 던진 상황이다. 네가 생각하는 것처럼 중국은 낙후된 곳도 아니다. 리그 체계는 크로아티아보다 낫다”며 “다른 선수들은 가고 싶어도 가지 못한다. 거기 가면 한국인 교수가 있다. 같이 케어해줄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학생 선수로 둔갑해서 프로구단으로 입단시키겠다. 슈퍼리그는 좀 어렵고 갑급리그가 맞다. 최고 연봉은 500 위안(한화 약 8억원)으로, 우리나라 선수는 김신욱이 9억원”이라며 “리그 규모도 엄청 크고 타이밍도 괜찮다. 지금 4명을 (중국으로)입단시키려는 데 1억2000만원이 필요하다”고 언급했다.

그러면서 “본인이 비자 비용 3000만원을 내고 본인 추후에 연봉을 가져가라는 의미다. 가고 싶어도 못 가는 선수가 많다. 한국서 도전하면 K3나 K4나 가야 하는데 마스크도 쓰지 않는다. (재정도)탄탄한 중국리그가 괜찮다”고 권유했다. 

그는 “유럽 경험이 없는 애들은 지원도 못한다. 갑급리그가 2부라 해도 관중이 많다. 서정원 감독도 2부리그인 청두 룽청 구단을 맡고 있고 옌볜 푸더(당시 연변FC)를 이끌고 2부에서 1부리그로 승격시킨 적이 있다”며 “유럽을얼마나 잘 다녀왔냐. K리그 기다리다가 안 되면 어떡할 거냐. 외국 다녀온 거 써먹을 타이밍이다. 국내는 어려우니 생각을 잘해보라”고 다독였다. 

“연봉 9억까지 받을 수 있다”
중국 프로팀 입단 제의도

A씨 어머니는 B씨 팀에서 A씨를 데리고 나왔다. A씨가 운동할 데가 없어 방황하다가 A씨 어머니는 C씨와 연락이 닿았다. B씨와 따로 일한다고 밝힌 C씨는 A씨 어머니에게 해외팀 이적을 명분으로 또 금전을 요구했다. A씨 어머니는 아들을 위해 2200만원을 송금했다. 

C씨는 A씨와 지인 2명을 대동해 총 4명이 함께 공항으로 갔다. 지난번과는 달리 같이 갔기에 A씨의 불안함은 조금씩 줄어들었지만, 그 순간뿐이었다.

A씨는 “지난번과 다르게 완전 시골이었다. 통역사 1명만 남기고 나머지 2명은 또 다른 곳으로 갔다. 일주일 정도 훈련하니까 발뒤꿈치에 물집이 생겨 휴식을 취했다”며 “몸이 괜찮아져서 운동하려고 했는데 의욕이 사라졌다. 성인팀이 아니라 청소년 같았다. 수준이 너무 맞지 않아 한국으로 돌아오고 싶은 마음이 컸다. 팀 이름도 기억이 나지 않을 정도로 지옥 같은 시간이었다”고 고충을 토로했다. 

A씨 어머니는 C씨와 연락을 시도해 돈을 다시 돌려달라고 요구했다. 하지만 C씨는 시간만 질질 끌면서 되돌려주지 않았다. A씨 어머니 입장에선 2번이나 당한 셈이었다. A씨 어머니는 C씨에게 카카오톡과 전화를 시도했지만 C씨는 전화를 받지 않았다. B씨로부터는 3000만원을 되돌려받았다. 

A씨 학부모는 “아들(A씨) 말고도 또 다른 피해자가 몇몇 있다. 어머니들끼리 송금한 돈 액수를 합치면 2억원이 넘는다. 제대로 잘된 선수도 없고 대부분이 축구를 그만둔 것으로 알고 있다”고 말했다. A씨는 C씨에게 송금한 금액을 다시 돌려달라고 요구했다. C씨는 시간을 지체하며 “송금하겠다”고 했지만 약속은 지켜지지 않고 있다. 

B씨는 “과거 프리랜서인 C씨와 같이 일한 적이 있는데 지금은 안 하고 있다. 유럽 진출과 관련해서는 C씨가 담당해 견적을 냈고 제게 제안했다”며 “C씨가 학부모에게 설명하고 유럽으로 데려갔고 계약도 그가 한 것이다. 금전적인 부분은 그가 집행했고 그에게 돈을 더 빌려준 상황”이라고 말했다. 

이어 “학부모로부터 회사가 돈을 받았고 금전 부분 지출은 C씨가 맡았다. 회사가 받은 돈은 다 C씨에게 다 줬다. 부모님도 돈을 내고 회사에도 돈을 내니 금전적인 손해가 일어나는 상황이었다”며 “유럽에 있던 C씨로부터 전화가 왔다. 조건도 좋고 한국선수를 받아준다고 하니 견적을 받아주겠다고 해서 한국 와서 학부모를 설득해서 데려간 것”이라고 해명했다. 

그는 “나중에 금전적인 손해가 너무 커 C씨와 일을 그만하게 됐다. 결론적으로 우리도 C씨에게 속은 셈”이라며 억울해했다. <일요시사>는 C씨에게 연락을 시도했지만 연락이 닿지 않았다.

한 축구계 관계자는 “A씨 같은 피해 사례가 몇 명 더 있는 것으로 들었다. A씨가 피해를 보면 또 다른 선수를 섭외해 그 돈으로 메꾸는 ‘돌려막기 형식’으로 알고 있다”며 “프로팀 연습생 1~2년만 뛰면 구단 계약서를 써주겠다고 하지만 약속을 지키지 않는다. 계속 기간만 연장하면서 돈만 받아낸다. 선수 생활비, 이동 비용 등을 명목으로 계속 돈을 요구한다”고 말했다.

연습생
돌려막기

이어 “B씨도 소문이 좋지 않다. 대학교에 입학시켜주겠다고 미끼를 던진 뒤 약속을 지키지 않는 것으로 알고 있다. 그 미끼를 문 축구선수 대부분이 축구화를 벗은 것으로 전해 들었다. 해외팀으로 입단해 성공하는 케이스는 없다고 보면 된다”고 설명했다.


<9dong@ilyosis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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닻 올린 ‘2차 계엄’ 수사 큰 그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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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요시사 취재1팀] 오혁진 기자 = 내란 특검팀이 2차 계엄 의혹에 대한 실마리를 풀기 시작했다. 비상계엄 선포 다음 날인 지난해 12월4일 새벽에 무슨 일이 있었는지가 핵심이다. 법무부와 민정수석실 간 교감과 이날, 군 수뇌부의 움직임은 구체적으로 드러나지 않았다. 당시 상황을 재구성 중인 특검팀은 윤석열 전 대통령을 재소환할 방침이다. 내란 특검팀(특별검사 조은석)은 비상계엄 선포 이후의 상황을 재구성해 왔다. 법무부와 민정수석실의 역할은 수면 위로 올라오지 않고 있다. 특히 2차 계엄 논의 여부는 여전히 의혹에 그치고 있다. 박성재 전 법무부 장관과 김주현 전 민정수석이 무엇을 위한 법률을 검토했는지가 포인트가 될 전망이다. 안가 회동 정조준 특검팀은 지금까지 12·3 내란이 어떻게 준비됐는지에 대해 수사력을 집중했다. 북풍 공작과 평양 무인기 침투 작전, 국군정보·방첩사령부의 움직임 등이 상당 부분 사실로 확인됐다. 내란 이후의 상황을 수사하기 시작한 특검팀은 지난달 24일 오전 10시 박 전 장관을 소환 조사했다. 내란중요임무종사 혐의를 받는 박 전 장관은 13시간가량 조사를 받고 귀가했다. 박 전 장관은 내란 당일 대통령 집무실에서 계엄 선포 계획을 가장 먼저 들은 국무위원 중 한 명이다. 이후 법무부로 돌아와 실·국장 회의를 열고 검찰국에 ‘합동수사본부 검사 파견 검토’ 지시를 내렸다는 의혹이 제기됐다. 계엄 당일 법무부 출입국본부에 출국금지팀을 대기시키라고 지시한 혐의도 적용됐다. 계엄 이후에는 정치인 등 수용을 위해 교정본부에 수용 여력 점검 및 공간 확보를 지시한 혐의도 있다. 특검팀은 이를 뒷받침할 만한 근거로 그가 지난해 12월3일 오후 11시쯤 대통령실에서 정부과천청사로 이동하면서 통화한 내역을 확보했다. 박 전 장관이 통화한 인물은 임세진 전 검찰과장, 배상업 전 출입국·외국인정책본부장, 신용해 전 교정본부장, 심우정 전 검찰총장 등이다. 임 전 과장은 박 전 장관과의 통화를 마치고 검사·수사관 인사를 담당하는 실무진 2명에게 전화를 걸었고, 배 전 본부장은 출국금지·출입국 관련 담당자들에게 연락했다. 신 전 본부장은 김문태 전 서울구치소장과 연락을 취했다. 박 전 장관은 이후 간부 회의를 열어 관련 논의를 한 것으로 조사됐다. 이후 다음 날 한상대 전 검찰총장과 연락하기도 했다. 한 전 총장은 퇴직 검사 모임인 검찰동우회 회장으로 윤석열 전 대통령과 탄핵 당시 가장 많이 연락한 인물이다. 국회 계엄 해제 요구안 의결 이후에는 김 전 수석과 비화폰으로 통화한 것으로 조사됐다. 특검팀은 두 사람이 2차 계엄 등 후속 대책을 논의했다고 보고 있다. 박 전 장관 측은 김 전 수석에게 포고령에 문제가 있으며 국회가 의결했으니 국무회의를 신속히 소집해 계엄을 해제해야 한다고 전했다는 입장이다. 박성재·김주현 곧바로 2차 계엄 법률 검토? 용산 CCTV 속 최측근들 메모 후 문건 만지작 특검팀은 박 전 장관이 ▲계엄사령부 산하 합동수사본부 검사를 파견하라고 검찰국에 지시 ▲출입국본부 ‘출국금지팀’ 대기 지시 ▲교정본부 수용 여력 점검 및 공간 확보 지시 등을 추진했다고 판단한다. 조사를 마친 박 전 장관은 “제가 한 일에 대해 소상하게 다 말씀드렸다”며 “통상적인 업무 수행에 대한 다른 평가를 하는 것에 대해 제가 알고 있는 모든 내용을 상세하게 말씀드렸다”고 했다. 이어 “장관으로 재직하면서 지속적으로 특검법의 위헌성에 대해 지적을 했었는데, 이 부분이 현재 특검법에도 시정되지 않은 채 시행되고 있다고 생각한다”며 “그 점은 문제가 있다고 생각한다”고 언급했다. ‘어떤 내용을 (특검에) 말했느냐’는 취재진 질문에 “의문이 제기되는 모든 점에 대해 상세히 말씀드렸다”고 답했다. ‘혐의를 전면 부인하는지’ 묻자 “나는 항상 업무를 했을 뿐”이라고 했다. ‘5급 이상 간부들에게 비상대기를 지시했다’는 주장에는 “부당한 지시를 한 적이 없다”고 했다. ‘구치소장 연락 지시’ 관련 질문에는 “질문이 어디에 근거한 것인지 알 수 없다”고 말했다. ‘수용 지시가 계엄과 관련됐느냐’는 질문에는 “누구에게도 체포·구금하라는 지시를 한 사실이 없다”고 답변했다. 특검팀은 윤 전 대통령이 비상계엄 선포 직전 국무회의를 열기 위해 일부 국무위원을 용산 대통령실로 소집했을 때의 CCTV 영상도 확보했다. 박 전 장관은 대통령실 대접견실에서 A4 용지에 직접 내용을 메모하고 특정 문건을 들여다봤다고 한다. 특검팀은 그가 윤 전 대통령 등으로부터 문건 형태로 계엄 이후 법무부가 해야 할 조치 등을 지시받고 현장에서 이를 직접 정리했을 가능성을 의심하고 있다. 앞서 계엄 선포 당일 대통령실에 모인 일부 국무위원 등은 윤 전 대통령으로부터 계엄 이후 조치 사항이 담긴 문건을 직접 전달받았다. 최상목 전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은 계엄 이후 가동할 비상입법기구 예산 편성 등을 지시받았고, 이상민 전 행정안전부 장관은 <경향신문> 등 언론사에 단전·단수 조치하라는 지시를 받은 것으로 조사됐다. “지시를 한 사실 없다” 조태열 전 외교부 장관은 ‘공관을 통해 대외 관계를 안정화시키라’는 지시를 받았다. 박 전 장관 측은 윤 전 대통령으로부터 개별 지시 문건을 받지 않았고 통상적인 절차에 따라 법무부에 지시를 내렸다고 주장하고 있다. 그는 지난달 24일 특검 조사에서도 A4 용지에 메모했는지 등에 대해 “기억나지 않는다”고 진술한 것으로 전해졌다. 박 전 장관 측은 이날 “해당 CCTV 장면을 보여달라”는 취지의 의견서를 특검에 제출했다. 특검팀이 김 전 수석을 소환한 건 지난 7월 초다. 그는 지난해 12월4일 서울 삼청동에 위치한 대통령 안전가옥(안가)에서 이상민 전 행정안전부 장관, 박 전 장관, 이완규 전 법제처장 등과 계엄 관련 법률 검토를 했다는 의혹을 받는다. 모두 윤 전 대통령과는 고교·대학 및 검찰 동기나 선·후배로 윤석열정부 최고위직 법률가들이다. 지난해 말부터 정치권에서 “비상계엄 수사 등 법률적 대응 방안 또는 제2의 내란 모의 가능성을 논의한 것 아니냐”는 의혹을 제기하자 이들은 국회와 경찰 조사에서 “연말에 얼굴 보자는 취지였다”(박성재 전 장관), “신세 한탄이나 하자는 자리였고, 법률을 검토할 겨를도 없었다”(이상민 전 장관)며 의혹을 부인했다. 그러나 검찰과 경찰은 이 자리에 한정화 전 법률비서관이 동석한 사실을 확인했다. 주변 CCTV 등 안가 회동 참석자들을 확인하는 과정에서 한 전 비서관의 존재를 인지하고 소환 조사까지 진행했다. 특검팀은 삼청동 안가 모임 성격을 ▲비상계엄 선포 절차 사후 보완 ▲대통령 탄핵 대비 법적 대응 논리 개발 자리 등으로 보고 있다. 특히 내란 국정조사 청문회에서 나온 관련자 진술의 위법성을 면밀히 검토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박 전 장관과 김 전 수석, 이 전 처장 등은 안가 회동 이후 휴대전화를 바꿨다. 류혁 전 법무부 감찰관은 지난 3월 <일요시사>와의 인터뷰에서 “윤 전 대통령 최측근으로 꼽히는 김주현 전 민정수석, 박성재 전 법무부 장관 등 밑에서 일하던 검찰 고위 관계자들은 대통령을 ‘운명 공동체’로 생각한다”며 “박 전 장관이나 김 전 수석에 대해서는 검찰이 적극적으로 수사하지 않았다. 이들에 대해 합리적이고 납득할 만한 수사 결론이 나오지 않으면 국민이 받아들이겠나. 모든 의혹이 해소될 때까지 그 사람들에 대한 수사는 계속돼야 한다. 이들은 죽을 때까지 수사선상서 벗어날 수 없을 것”이라고 비판한 바 있다. 증거 이미 폐기했다? 특검팀은 과거 검찰 비상계엄 특별수사본부가 작성했던 수사보고서도 확보한 것으로 확인됐다. <일요시사>가 입수한 검찰 특수본 수사보고서의 제목은 ‘2차 비상계엄 가능성에 대한 의혹 등 정리 보고’다. 수사보고서에는 “12·4 국회에서 계엄 해제 요구 결의안이 통과되고 난 직후, 윤 대통령이 계엄사령부 상황실로 찾아가 김용현 국방부 장관에게 ‘왜 국회의원들을 잡지 않았느냐’ ‘내가 다시 계엄을 할 테니 그때는 철저히 준비해서 국회부터 장악하라’라고 지시한 정황”이 있다고 적혔다. 해당 의혹은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에서 처음 제기했다. 민주당은 지난해 12월6일 비상 의원총회에서 윤 전 대통령이 비상계엄 2차 발령을 준비했다는 정황을 공개했다. 검찰이 이 같은 민주당의 의혹 제기와 관련해 수사 필요성이 있다고 판단한 것이다. 이와 관련해 검찰은 수사보고서에 “계엄사령관인 박안수 육군참모총장은 윤 대통령, 김용현 장관과 함께 합참 지휘통제실 내 별도의 방에 들어갔다고 국방위 현안 질의에서 답한 바 있으나 대화 내용은 기억나지 않는다고 발언했으나 박 총장이 답변한 날인 12월5일은 윤 대통령의 위와 같은 발언이 공개되지 않은 시점”이라며 박 전 총장에 대해 조사 필요가 있다고 적었다. 검찰은 수사보고서에서 시민단체와 언론사 보도 등 2차 계엄 의혹과 관련한 의혹 확인이 필요하다고 밝혔다. 육군 복수 부대에 지휘관 휴가 통제 지침이 내려졌고 비상계엄 선포 이후 경계 태세가 유지되고 있다는 의혹과 계엄 둘째 날 지방 공수여단의 서울 진입 계획이 있었다는 육군특수전사령부 간부의 언론사 인터뷰 등이 그 근거다. 검찰은 윤 전 대통령과 김용현 전 국방부 장관이 곽종근 전 특수전사령관에게 ‘국회 문을 열고 들어가 의사당 내 의원들을 밖으로 이탈시킬 것’이라고 동일한 명령을 내렸지만, 지시가 이행되지 않아 2차 계엄이 준비됐을 가능성이 있다고 봤다. 12월4일 새벽 중요…검도 “수사 필요” 인정 자료 이미 사라졌나…용산 PC 전부 포맷 확인 검찰은 수사보고서에 “윤 대통령의 ‘국회의원 이탈 명령이 제대로 시행되지 않자 김 장관에게 위와 같은 발언(왜 국회의원들을 잡지 않았느냐)을 했을 가능성이 충분히 있어 보이고, 이와 더불어 ‘추가 계엄 선포’와 관련된 발언을 했을 가능성도 있어 보이므로 관련 내용 수사 필요성 있음”이라고 적었다. 특검팀은 대통령실 고위 간부들이 조직적으로 2차 계엄 관련 자료를 폐기했다고 보고 있다. 지난달 18일 정진석 전 대통령실 비서실장을 참고인 신분으로 소환한 특검팀은 정 전 실장에게 계엄 이후의 상황을 따져 물은 것으로 파악됐다. 정 전 실장은 불법 계엄 전후 윤석열 전 대통령을 가까이서 보좌했다. 그는 계엄 선포 직전 서울 용산 대통령실에 있었다. 국무위원은 아니지만 계엄 선포 전 국무회의에 신원식 전 국가안보실장과 함께 참석했다. 이튿날 새벽에 계엄 해제 국무회의가 열리기 전, 윤 전 대통령이 합동참모본부 전투통제실에 머물 때 찾아가 만나기도 했다. 정 전 실장은 지난해 12월4일 국회가 계엄 해제 요구 결의안을 의결한 이후 윤 전 대통령, 박 전 총장, 김 전 장관 등과 함께 합동참모본부 전투통제실 내 결심지원실에 함께 있었던 것으로 조사됐다. 그는 국회에서 계엄 해제 요구 결의안이 의결된 후 국민의힘 추경호 전 원내대표와도 통화했다. 추 전 원내대표는 앞서 “지난해 12월4일 오전 2시58분쯤 정 전 실장에게 전화를 걸어 국회 계엄 해제 요구 결의안이 정부에 도착했음을 확인하고 정부의 신속한 계엄 해제 조치를 촉구했다”고 밝혔다. 정 전 실장은 대통령실 윗선이 계엄 증거를 조직적으로 은폐했다는 의혹에도 연루돼있다. 특검은 지난 4월 대통령실 컴퓨터(PC) 전체 초기화 계획이 정 전 실장의 지시로 실행됐을 가능성을 살펴보고 있다. 특검팀은 앞서 별도 전담팀을 꾸려 정 전 실장 관련 의혹을 수사해 왔다. 특검팀은 이날 정 전 실장을 상대로 계엄 당시 국무회의와 대통령실 상황, 추 전 원내대표와의 통화 경위 등을 조사한 것으로 알려졌다. 시간이 부족하다 특검팀은 박 전 총장도 참고인 신분으로 재조사했다. 앞서 박 전 총장은 계엄 당시 계엄사령관으로서 불법 포고령을 발령한 혐의(내란중요임무종사) 등으로 구속 기소됐다. 박 전 총장도 국회가 비상계엄 해제 요구 결의안을 의결한 뒤 윤 전 대통령, 김 전 장관 등과 합참 결심지원실에 함께 있었다. <hounder@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