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흥민 미끼로' 악덕 에이전트 사기 추적

  • 구동환 기자 9dong@ilyosisa.co.kr
  • 등록 2022.05.02 14:57:57
  • 호수 1373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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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럽팀 보내줄게 6000만원 가져와"

[일요시사 취재1팀] 구동환 기자 = ‘선수에게 돈을 달라고 하는 에이전트는 사기꾼’이라는 말이 축구 맘들 사이에서 돌고 있다. 일부 악덕 에이전트들이 국내에서 꽃을 피우지 못한 선수들에게 접근해 유럽팀으로 이적시켜 줄 테니 금전을 요구하고 있다는 것이다. 

대부분의 축구 꿈나무들은 제2의 손흥민을 꿈꾼다. 하지만 한국에서 엘리트 축구선수로 성장해 K리그 1부 선수가 될 확률은 0.8%에 불과한 실정이다. 이들의 꿈을 이용해 돈만 받고 모르쇠로 돌변하는 에이전트 사기가 성행하고 있다.

말라죽는 
축구 꿈나무

A씨는 초등학생 때부터 축구공을 가지고 놀았다. A씨 어머니는 “초등학교 축구부 감독이 찾아와 축구선수로 키워보겠다고 했다. 감독은 ‘아들이 공을 가지고 노는 모습을 보고 가능성을 봤다’는 말이 와닿았다”고 말했다. 

A씨는 초·중학교에서 줄곧 주전선수로 뛰며 탄탄대로의 길을 걷는 듯했다. 하지만 고등학생이 되자 입지가 흔들렸다. 감독이 자주 교체되면서 팀에 적응하지 못하는 모습도 보였다. 

2020년 A씨는 광주에 위치한 모 대학교에 입학해 축구선수의 꿈을 키워갔다. 대학교 축구부였던 A씨는 다른 지도자 소개로 B씨를 알게 되면서 대학교 축구부에서 나왔다. 


A씨 어머니는 B씨가 실력도 보지 않은 채 “제대로 키워주겠다”는 말만 반복했다고 주장했다. A씨 가족은 축구 인맥 추천으로 알게 된 것이니 믿고 따라가는 수밖에 없었다. 축구선수의 꿈을 이어가기 위해선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으로 도전해야 했다. 

A씨는 “나를 잘 아는 감독님의 후배로 알고 있었다. 테스트도 하지 않았지만 그래도 믿을 수 밖에 없었다”며 당시 상황을 전했다. A씨와 부모는 B씨의 말을 철석같이 믿었다.

해외 진출 견적서 확인 결과 숙식 1800만원, 보험 100만원, 비자 2회 300만원, 담당 매니저 2명 2600만원, 소속사 1200만원 등을 합쳐 총 6000만원의 비용이 들었다. 

같은 해 10월, A씨 어머니는 B씨 개인계좌로 해당 비용을 송금했는데 그는 A씨와 A씨 어머니에게 유럽 현지 상황을 잘 아는 사람이라며 C씨를 소개해 줬다. 

이듬해 1월, A씨와 A씨 어머니는 C씨를 만나 면담을 가졌다. A씨에 따르면 “C씨는 외국에서 1~2년간 생활하라”는 얘기만 했으며 크로아티아팀에 대한 얘기보다는 ‘두세 군데 팀을 알아봐야 한다’”고 말했다. 

지난해 2월 중순 A씨는 본인 또래의 다른 축구선수와 함께 크로아티아 자그레브 공항으로 떠났다. 공항에는 C씨와 함께 일한다는 외국인 D씨가 마중을 나왔다. A씨는 D씨 안내에 따라 크로아티아에서 지내게 될 숙소로 향했다. 

이적 조건 숙식·보험 명목으로 수천만원 송금
말만 번지르르 현지서 방치…돈만 받고 모르쇠


A씨는 “내가 지낸 곳은 사람이 없는 빌라였다. 시차 적응을 이유로 일주일 동안 아무것도 하지 않았다”며 “일주일 후 나랑 같이 온 선수는 크로아티아 2부 리그 프로팀인 NK 라드닉 세스베테팀으로 가면서 헤어졌다. 난 걸어서 15분 거리에 있는 2부 리그 NK 두브라바(이하 두브라바) 자그레브로 가게 됐다”고 말했다.

통상 축구선수는 새 둥지를 틀 때 계약서 작성과 함께 팀 유니폼을 제공받는다. A씨도 이를 기대했지만 유니폼은커녕 계약서도 작성하지 않았다. 그는 두브라바 팀원들과 같이 훈련했지만, 마음 한편으로는 불안한 마음도 지울 수 없었다. 

A씨는 “계약서나 유니폼 같은 경우는 C씨에게 확인하니 운동 먼저 하고 있으란 얘기를 했다”며 “C씨의 ‘지금 크로아티아에 없으니 입국하면 계약서, 유니폼을 해결해주겠다’는 말만 믿었다”고 설명했다. 

풀백 포지션이었던 A씨는 묵묵히 훈련에 참여했다. 팀내 영어로 소통이 가능한 한국선수가 있어 A씨는 함께 어울려 지내기도 했다. A씨는 2주간의 적응 기간을 마친 후 컨디션을 회복했다. 다른 선수들과 비교해 뒤떨어지는 면도 없었고 주전으로서 경쟁력이 출중했지만 그의 경기 출전은 이뤄지지 않았다. 

두 달 후인 4월 C씨는 A씨가 있는 크로아티아로 돌아왔다. 결국 A씨가 C씨에게 요청했던 계약서 작성과 유니폼 지급 관련된 약속은 이행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C씨는 시간만 질질 끌었으며 훈련복이 따로 없어 공용 훈련복을 사용해야 했다. 시간만 끌던 C씨는 다시 A씨 곁을 떠났다. 

경기 출전을 하지 못하던 A씨는 감독과 코치진에 18세 이하 팀으로 가겠다고 말했다. 한국 나이로는 20세지만 외국 나이로는 18세이기 때문에 내려갈 수 있었다. 

“키워주겠다”
솔깃한 제안

A씨는 “같은 팀원이었던 한국인에게 C씨에 대한 안 좋은 이야기를 들었다. 나에게 ‘4년 전 C씨에게 사기당해서 들어왔다. C씨는 회사를 바꾸고 계속 사기를 치고 있다’고 말해줬다”고 설명했다.

두브라바는 A씨 출전 당시 18개팀 리그 중 8~10위권에 사이에 있는 중위권 팀이었다. A씨는 C씨로부터 크로아티아 프로팀으로의 이적 시 조건이 ▲선수 출퇴근 ▲레스토랑 이용 등이었지만 A씨의 식사 환경은 열악했다. 빌라 내에서 밥을 해먹거나 인근 패스트푸드점에서 햄버거로 끼니를 때우기도 했다. 

5월 말 크로아티아 리그 종료를 얼마 남기지 않고 A씨는 감독과 코치진에게 말한 뒤 한국으로 복귀했다. A씨는 부모와 함께 크로아티아서 축구선수의 꿈을 이어갈지, 한국서 다시 도전할지 고민에 고민을 거듭했다.

이 무렵 A씨 어머니는 B씨로부터 연락을 받았다. A씨는 B씨가 운영하는 4부리그 격인 구단서 훈련하며 시간을 보냈다. B씨는 C씨에게 비용을 전달했으나, 제대로 된 곳에 쓰지 않았다고 A씨 어머니에게 사실을 털어놨다.

A씨는 “해당 팀 소속은 아닌 채 또 다른 숙소에서 10명 정도 모여 같이 훈련했다. B씨는 새로운 감독과 코치를 섭외해 숙소비만 받고 훈련을 진행했다. 운동한 지 두 달 정도 지났을 때 선수들을 불러 면담을 진행했다. 또 중국팀으로 가보는 것은 어떠냐는 것이었다”고 설명했다. 


<일요시사>가 입수한 녹취록에 따르면 B씨는 A씨에게 “중국 2부리그서 한국선수를 구한다는 연락이 왔다. 조건은 유럽 경험이 있는 한국인이며 이적료 없이 연봉은 20만달러(당시 한화 2억3000만원)이”라고 말했다. 이어 “대한체육회에서 비자를 내줄 수 있다고 하고 사이드(측면 윙어나 측면 수비)를 볼 줄 알아야 한다. 리그 재정도 탄탄해서 한국에 있는 것보다 훨씬 더 조건이 괜찮을 것 같다”고 말했다.

그는 “10월에 들어가서 4주간 격리하고 11월부터 훈련하게 되면 내년부터 뛸 수 있을 것이다. 우리 소속사 애들을 입단시키려는데 조건에 맞는 선수가 너(A씨)밖에 없다”며 “상황이 딱 맞는다. 지금 중국은 마스크 쓰지도 않는 상황이다. 아직 팀은 정하지 않았고 서너 군데 팀을 만날 생각이다. 부모 의견보다 네 생각이 중요하니 한 번 잘 생각해보라”고 설득했다. 

또 “10월에 입국해 한 달간 격리 후 11월에 용병 전지훈련을 갈 것이다.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다. 네가 동의하면 프로필이 들어가는 중국 쪽에 들어간다. 비자랑 해서 호텔 격리 비용에 3000만원이 들어간다. 비자가 나오면 프로필을 넣을 수 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연봉은 2억원부터 시작이며 9억원 미만으로 책정돼 1월부터 들어오며 1년씩 계약이 된다. 몸값이 떨어지는 건 없다. 한국에선 연봉이 2400이지만 중국에서 더 받을 수 있다”며 “경험을 쌓으면 군대도 해결될 것으로 보인다. 중국은 무조건 용병을 구하기 때문에 이적료 없을 때 이적하는 것이다. 돈은 둘째치고 축구다운 축구를 할 기회가 주어졌다. 확실성이 떨어지는 한국보다 중국을 추천한다”고 제안했다. 

군대도 해결
달콤한 유혹

A씨가 답변을 머뭇거리자 B씨는 “크로아티아 가서 얻은 거라곤 이력뿐이었다. (현지)텃세도 있었지만 이력을 얻어왔으니 활용해야 한다. 이력을 활용하기 위해서는 연봉 받으면서 뛸 수 있는 곳으로 가야지. 네 맘도 어떤지 잘 안다”며 한 번 해보는 게 낫지 않나. 크로아티아랑은 상황이 다르다. 크로아티아에서는 눈에 띄지 않았지만 중국에서는 유럽파 한국인이기 때문에 주목한다”고 강조했다.


아울러 “그런 대우를 받으면서 뛰는 게 낫지 않을까 싶다. 이적할 수 있을 때 해야지. 그 타이밍을 놓치면 애매해진다”며 “중국에서 올림픽을 하게 돼 비자를 내주지 않는다. 하지만 한국은 대한체육회에서 비자를 내주기 때문에(더 좋은 선수로 성장할 수 있는) 기회”라고 조언했다. 

B씨는 크로아티아서 몸과 마음고생을 했던 A씨 사정을 언급하면서 솔깃한 제안을 했다.

그는 “크로아티아는 이력을 쌓기 위해 간 것이고 지금은 (중국서)오퍼를 던진 상황이다. 네가 생각하는 것처럼 중국은 낙후된 곳도 아니다. 리그 체계는 크로아티아보다 낫다”며 “다른 선수들은 가고 싶어도 가지 못한다. 거기 가면 한국인 교수가 있다. 같이 케어해줄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학생 선수로 둔갑해서 프로구단으로 입단시키겠다. 슈퍼리그는 좀 어렵고 갑급리그가 맞다. 최고 연봉은 500 위안(한화 약 8억원)으로, 우리나라 선수는 김신욱이 9억원”이라며 “리그 규모도 엄청 크고 타이밍도 괜찮다. 지금 4명을 (중국으로)입단시키려는 데 1억2000만원이 필요하다”고 언급했다.

그러면서 “본인이 비자 비용 3000만원을 내고 본인 추후에 연봉을 가져가라는 의미다. 가고 싶어도 못 가는 선수가 많다. 한국서 도전하면 K3나 K4나 가야 하는데 마스크도 쓰지 않는다. (재정도)탄탄한 중국리그가 괜찮다”고 권유했다. 

그는 “유럽 경험이 없는 애들은 지원도 못한다. 갑급리그가 2부라 해도 관중이 많다. 서정원 감독도 2부리그인 청두 룽청 구단을 맡고 있고 옌볜 푸더(당시 연변FC)를 이끌고 2부에서 1부리그로 승격시킨 적이 있다”며 “유럽을얼마나 잘 다녀왔냐. K리그 기다리다가 안 되면 어떡할 거냐. 외국 다녀온 거 써먹을 타이밍이다. 국내는 어려우니 생각을 잘해보라”고 다독였다. 

“연봉 9억까지 받을 수 있다”
중국 프로팀 입단 제의도

A씨 어머니는 B씨 팀에서 A씨를 데리고 나왔다. A씨가 운동할 데가 없어 방황하다가 A씨 어머니는 C씨와 연락이 닿았다. B씨와 따로 일한다고 밝힌 C씨는 A씨 어머니에게 해외팀 이적을 명분으로 또 금전을 요구했다. A씨 어머니는 아들을 위해 2200만원을 송금했다. 

C씨는 A씨와 지인 2명을 대동해 총 4명이 함께 공항으로 갔다. 지난번과는 달리 같이 갔기에 A씨의 불안함은 조금씩 줄어들었지만, 그 순간뿐이었다.

A씨는 “지난번과 다르게 완전 시골이었다. 통역사 1명만 남기고 나머지 2명은 또 다른 곳으로 갔다. 일주일 정도 훈련하니까 발뒤꿈치에 물집이 생겨 휴식을 취했다”며 “몸이 괜찮아져서 운동하려고 했는데 의욕이 사라졌다. 성인팀이 아니라 청소년 같았다. 수준이 너무 맞지 않아 한국으로 돌아오고 싶은 마음이 컸다. 팀 이름도 기억이 나지 않을 정도로 지옥 같은 시간이었다”고 고충을 토로했다. 

A씨 어머니는 C씨와 연락을 시도해 돈을 다시 돌려달라고 요구했다. 하지만 C씨는 시간만 질질 끌면서 되돌려주지 않았다. A씨 어머니 입장에선 2번이나 당한 셈이었다. A씨 어머니는 C씨에게 카카오톡과 전화를 시도했지만 C씨는 전화를 받지 않았다. B씨로부터는 3000만원을 되돌려받았다. 

A씨 학부모는 “아들(A씨) 말고도 또 다른 피해자가 몇몇 있다. 어머니들끼리 송금한 돈 액수를 합치면 2억원이 넘는다. 제대로 잘된 선수도 없고 대부분이 축구를 그만둔 것으로 알고 있다”고 말했다. A씨는 C씨에게 송금한 금액을 다시 돌려달라고 요구했다. C씨는 시간을 지체하며 “송금하겠다”고 했지만 약속은 지켜지지 않고 있다. 

B씨는 “과거 프리랜서인 C씨와 같이 일한 적이 있는데 지금은 안 하고 있다. 유럽 진출과 관련해서는 C씨가 담당해 견적을 냈고 제게 제안했다”며 “C씨가 학부모에게 설명하고 유럽으로 데려갔고 계약도 그가 한 것이다. 금전적인 부분은 그가 집행했고 그에게 돈을 더 빌려준 상황”이라고 말했다. 

이어 “학부모로부터 회사가 돈을 받았고 금전 부분 지출은 C씨가 맡았다. 회사가 받은 돈은 다 C씨에게 다 줬다. 부모님도 돈을 내고 회사에도 돈을 내니 금전적인 손해가 일어나는 상황이었다”며 “유럽에 있던 C씨로부터 전화가 왔다. 조건도 좋고 한국선수를 받아준다고 하니 견적을 받아주겠다고 해서 한국 와서 학부모를 설득해서 데려간 것”이라고 해명했다. 

그는 “나중에 금전적인 손해가 너무 커 C씨와 일을 그만하게 됐다. 결론적으로 우리도 C씨에게 속은 셈”이라며 억울해했다. <일요시사>는 C씨에게 연락을 시도했지만 연락이 닿지 않았다.

한 축구계 관계자는 “A씨 같은 피해 사례가 몇 명 더 있는 것으로 들었다. A씨가 피해를 보면 또 다른 선수를 섭외해 그 돈으로 메꾸는 ‘돌려막기 형식’으로 알고 있다”며 “프로팀 연습생 1~2년만 뛰면 구단 계약서를 써주겠다고 하지만 약속을 지키지 않는다. 계속 기간만 연장하면서 돈만 받아낸다. 선수 생활비, 이동 비용 등을 명목으로 계속 돈을 요구한다”고 말했다.

연습생
돌려막기

이어 “B씨도 소문이 좋지 않다. 대학교에 입학시켜주겠다고 미끼를 던진 뒤 약속을 지키지 않는 것으로 알고 있다. 그 미끼를 문 축구선수 대부분이 축구화를 벗은 것으로 전해 들었다. 해외팀으로 입단해 성공하는 케이스는 없다고 보면 된다”고 설명했다.


<9dong@ilyosis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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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곡점’ 의정 갈등 엔드게임

‘변곡점’ 의정 갈등 엔드게임

[일요시사 취재1팀] 장지선 기자 = 구성원의 압도적인 지지로 당선된 수장이 반년 만에 끌려 내려왔다. 막말에 가까운 강한 발언과 제멋대로인 행보가 탄핵을 불렀다. 강성 수장이 물러나면서 변화를 기대하는 움직임이 일고 있다. 대화의 문이 열릴 것인가, 더 높은 벽이 쌓일 것인가. 임현택 대한의사협회(이하 의협) 전 회장이 3년 임기를 다 채우지 못하고 탄핵당했다. 지난 5월 취임 이후 6개월 만으로 의협 역사상 2번째, 최단기간 내 불명예 퇴진한 회장이 됐다. 첫 번째는 2014년 4월 임기 1년여를 앞두고 탄핵당한 노환규 전 회장이다. 두 번째 최단기간 의협은 지난 10일 오후 서울 용산구 의협회관서 임시대의원총회를 열고 임 전 회장의 불신임안을 처리했다. 참석 의원 224명 가운데 170명(75.9%)이 찬성했다. 반대는 50명, 기권 4명이다. 전체 대의원 249명 가운데 224명(91.1%)이 표결에 참여했다. 의협 정관에 따르면, 회장 불신임안은 제적 대의원 3분의 2 이상이 출석하고, 출석 대의원 3분의 2 이상이 찬성하면 가결된다. 지난 3월 임 전 회장은 선거서 유효 투표수 3만3084표 중 2만1646표를 받아 당선됐다. 65.43%의 압도적인 지지다. 의협 회장 선거는 정부의 의대 정원 증원 발표로 의정 갈등 수위가 높아지고 있을 무렵에 치러졌다. 전공의가 병원을 떠났고 정부가 ‘2000명’을 강조하던 시기였다. 의협 회원들은 강성 중의 강성으로 분류되는 임 전 회장에게 힘을 실었다. 임 전 회장의 어깨에 너무 힘이 들어갔던 것일까? 임 전 회장의 언행은 사사건건 도마 위에 올랐다. SNS에 올린 글, 공식 석상서 했던 발언 등이 막말 논란으로 번졌고, 단식투쟁 등의 행보는 ‘쇼’라는 비판을 받았다. 무엇보다 박단 대한전공의협의회(이하 대전협) 비대위원장과 갈등을 빚으면서 의료계 내부 분열을 조장한다는 지적이 뼈아팠다. 임 전 회장이 8개월 동안 보여준 모습은 고스란히 탄핵 사유가 됐다. 의협 회원 사이에서는 임 전 회장이 SNS로 막말과 실언을 해 의사단체의 명예를 훼손했다는 비판이 일었다. 또 ‘임 회장이 전공의 지원금을 빼돌렸다’는 허위 비방 글을 올린 시도의사회 임원에게 고소 취하 대가로 1억원을 요구한 사실이 녹취록을 통해 알려져 논란이 불거졌다. 특정 인물에 대한 수위 높은 비판은 여론의 역풍을 불렀다. 장상윤 대통령실 사회수석을 겨냥해 “정신분열증 환자 같은 개소리”라고 비난하는 글을 올렸다가 환자를 비하했다는 지적을 받았다. 임현택, 6개월 만에 탄핵당해 막말 논란·의대 증원 못 막아 또 2021년 한 의사가 80대 환자에게 ‘맥페란’ 주사제를 투여한 뒤 부작용이 나타나 기소된 재판에 대해서도 도 넘는 발언을 쏟아냈다. 이른바 ‘맥페란 재판’ 항소심서 판사가 1심의 금고 10개월에 집행유예 2년을 선고받은 해당 의사의 항소를 기각하자 “이 여자 제정신입니까?”라는 글을 SNS에 올린 것이다. 임 전 회장의 발언에 법원은 이례적으로 “재판장의 인격에 대한 심각한 모욕일 뿐 아니라 국민의 신뢰를 크게 훼손할 수 있는 매우 부적절한 행동”이라고 공개적으로 유감을 표명했다. 의대 정원 증원 집행정지와 관련해 기각·각하 결정을 내린 재판장이 ‘회유’받았을 것이라는 주장으로도 입길에 올랐다. 서울고등법원 재판부가 결정을 내린 다음 날 한 라디오 프로그램에 출연해 재판장의 실명을 거론하면서 “지난 정권에서는 고법 판사들이 차후 승진으로 법원장으로 갈 수 있는 그런 길이 있었는데 제도가 바뀐 다음에는 그런 통로가 막혀서 이분이 아마 어느 정도 대법관에 대한 회유가 있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있다” 말했다. 서울고법은 법원 명의로 입장문을 내고 “해당 단체장의 아무런 객관적 근거가 없는 추측성 발언은 재판장의 명예와 인격에 대한 심대한 모욕”이라면서 “사법부 독립에 관한 국민의 신뢰를 현저히 침해할 수 있는 매우 부적절한 언사다. 깊은 유감을 표명한다”고 밝혔다. 여기에 결정적으로 정부의 2025학년도 의대 증원을 막지 못한 점, 간호법 제정을 저지하지 못한 점이 탄핵 사유로 꼽혔다. 임 전 회장은 총회를 앞두고 의사 회원들에게 사과하고 페이스북 계정을 삭제하는 등 재신임을 호소했지만 반전은 없었다. 회장을 탄핵한 의협은 비대위원회 체제로 전환하고 지난 13일 새로운 회장 선거 전까지 단체를 이끌 비대위원장을 뽑았다. 그 결과 박형욱 대한의학회 부회장이 1차 투표서 총 유효 투표수 233표 중 123표(52.8%)를 얻어 과반으로 당선이 확정됐다. 임기는 내년 1월 차기 회장이 선출될 때까지다. 뒤늦게 호소했지만… 박형욱 비대위원장은 “정부는 의료 파탄이란 시한폭탄을 장착해놨다”며 “정말 대화를 원한다면 정부는 먼저 시한폭탄을 멈춰야 한다. 그래야 진정한 대화가 가능하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비대위원들의 합의에 기초해 입장과 행동을 결정할 것”이라며 “비대위 운영서 소외돼왔던 전공의들과 의대생들의 견해가 충분히 반영될 수 있게 하겠다”고 소감을 밝혔다. 임 전 회장이 물러나고 새로운 비대위원장이 등장하면서 의협의 투쟁 방향에 변화가 생길 가능성이 커졌다. 일각에서는 의협의 이번 행보를 의정 갈등의 중요한 변곡점으로 보고 있다. 강성 회장을 필두로 정부와 강하게 대립했던 이전 모습서 벗어나 대화에 참여할 것이라는 의견과 이전보다 더 수위 높은 대정부 투쟁이 예상된다는 의견으로 갈리는 중이다. 후자의 배경에는 대전협이 있다. 앞서 박단 비대위원장 등 전공의 70여명은 전날 의협 대의원들에게 “비대위원장으로 박형욱 교수를 추천한다”는 메시지를 보내 공개 지지 의사를 드러냈다. 대의원회서도 박단 비대위원장의 공개 지지에 대해 경고하는 등 잡음이 일었다. 하지만 결과적으로 대전협의 지지를 등에 업은 박형욱 비대위원장이 당선되면서 전공의의 영향력이 상대적으로 커질 수밖에 없는 상황이 됐다. 의협과 대전협의 공조가 본격화될 것이라는 관측이 나오는 이유다. 문제는 양측의 교류가 정부와의 대화로까지 이어질 수 있느냐는 점이다. 박형욱 비대위원장은 당선 소감부터 정부의 태도 변화를 요구하고 나섰다. 또 윤석열 대통령의 변화도 필요하다고 언급했다. 의정 갈등서 줄곧 선봉에 선 전공의들은 ‘의대 정원 증원 백지화’라는 요구사항서 앞으로도 뒤로도 움직인 적이 없다. 전공의의 행보는 의대생, 의대 교수 등에 영향을 미치고 있다. 영향력 커진 전공의 단체 의료계가 전공의 중심으로 굴러가고 있는 셈이다. 실제 대전협은 지난 11일 출범했던 여야의정협의체(이하 협의체)에 대해서도 부정적인 태도를 보인다. 협의체는 야당인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이 불참하고 의료계에서는 학술 단체인 대한의학회와 의대 학장 모임인 한국의과대학·의학전문대학원협회(KAMC)만 참석하는 등 ‘반쪽 출범’이라는 비판을 받았다. 협의체의 운영 기한은 올해 말까지로, 다음 달 22~23일 전에 의미 있는 결과를 낼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하겠다는 태도다. 하지만 박단 비대위원장은 협의체에 대해 ‘무의미하다’고 평가했다. 그는 협의체가 첫발을 뗀 11일 SNS에 “국민의힘 한동훈 대표는 전공의와 의대생, 당사자 없이 대화나 하겠다는 한가한 소리를 하고 있다”며 “한 대표는 2025년 의대 모집 정지와 업무개시명령 폐지에 대한 입장부터 명확히 밝히시길 바란다”고 일갈했다. 이어 “눈치만 보며 뭐라도 하는 척만 하겠다면 한동훈의 ‘여야의정 협의체’ 역시 임현택 전 의협 회장의 ‘올바른 의료를 위한 특별위원회(올특위)’와 결국 같은 결말일 것”이라고 우려했다. 올특위는 의료계의 입장을 하나로 모으기 위해 의협 주도로 구성한 범의료계 특별위원회다. 전공의와 의대생이 해당 위원회에 불참하면서 파행 운영되다 지난 7월 해체됐다. 정부는 협의체서 의료계가 제안한 내용에 대해 “진정성 있게 검토하겠다”는 견해를 밝혔다. 지난 11일 협의체서 의료계는 한국의학교육평가원 자율성 보장, 추가 합격 제한 등을 통한 2025학년도 의대 선발 인원 축소 등을 제안한 것으로 알려졌다. 정윤순 보건복지부 보건의료정책실장은 지난 14일 의사 집단행동 중앙재난안전대책본부(이하 중대본) 회의를 주재하면서 “마주 앉기까지 오랜 시간이 걸린 만큼 활발한 대화와 소통을 통해 누적된 갈등을 해소하고 신뢰를 회복해 국민이 원하는 결과를 끌어낼 수 있길 기대한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의협과 전공의 등 다른 의료계 단체의 참여를 호소했다. 박단 공개 지지 새 비대위원장 강경 투쟁이냐 VS 노선 변화냐 의료계 내부 상황은 크게 바뀌었지만 향후 상황은 여전히 ‘시계 제로(0)’ 상태다. 임 전 회장과 박단 비대위원장 간 갈등의 불씨도 여전히 살아있다. 대전협은 임 전 회장의 탄핵을 공개적으로 요청하는 등 ‘(임 전 회장과)같이 갈 수 없다’는 뜻을 분명히 밝힌 바 있다. 실제 대전협은 임 전 회장의 탄핵을 요청하면서 “이해와 소통이 가능한 새로운 회장을 필두로 의협과 대전협 두 단체가 향후 상호 연대를 구축할 수 있길 기대한다”는 입장문까지 냈다. 임 전 회장의 탄핵안 가결 직후 박 비대위원장이 “결국 모든 길은 바른 길로”라는 내용의 SNS 글을 올리기도 했다. 문제는 임 전 회장이 박단 비대위원장을 상대로 반격을 진행하고 있다는 점이다. 임 전 회장은 탄핵 사흘 만에 닫았던 페이스북 계정을 다시 열고 “박단과 그 뒤에서 박단을 배후 조종해 왔던 자들이 무슨 일을 해왔는지 전 의사 회원들에게 아주 상세히 밝히겠다”며 박단 비대위원장을 저격하는 글을 올렸다. 그러면서 “의협 대의원회 비대위원장과 의협 회장 선거가 더 이상 왜 필요한가”라면서 “박단이 의협 회장 겸 비대위원장을 맡아 모든 권한과 책임하에 의료 농단을 해결하면 된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지지해주셨던 모든 분에게 우선 사과의 말씀을 드린다”며 “이유가 어떻든 회장 취임 전부터 탄핵하겠다고 마음먹고 있던 자들에게 빌미를 주어 넘어간 것 자체가 제 잘못”이라고 주장했다. 또 의협의 근본적인 개혁의 첫걸음으로 의협 대의원회 폐지 등을 내용으로 하는 민법상의 사원총회를 개최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사원총회는 민법에 규정된 사단법인의 최고의사결정 기관이다. 의협 최고의결기구로 알려진 대의원총회보다 상위에 있고 정관의 규정으로 폐지할 수 없다. 사원총회는 이사가 필요하다고 생각하는 경우나 총 사원 5분의 1 이상이 회의의 목적 사항을 제시해 청구하는 경우 소집될 수 있다. 반격 시작 내부 갈등? 올해 2월 시작된 정부와 의료계의 갈등이 10개월째로 접어들었다. 온갖 말이 오갔지만 되짚어보면 조금도 좁혀지지 않은 평행선 상황이 계속되는 모양새다. 정부와 의료계의 대치 상황이 길어질수록 ‘의료 붕괴’는 가시화되고 있다. 한 의료계 관계자는 이렇게 말했다. “이제는 정말로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다.” <jsjang@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