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비자 뒤통수 친 기업들 백태

알고도 모른척…외국계의 두 얼굴

[일요시사 취재1팀] 양동주 기자 = 대국민 사기극을 벌였던 몇몇 기업들이 아직도 정신을 못 차리고 있다. 소비자를 기만한 것도 모자라 정부의 지침마저 철저히 무시했던 정황이 연이어 드러나는 형국이다. 진정성이 결여된 이들의 행태 때문에 애꿎은 소비자들만 발을 동동 굴러야 하는 처지에 몰렸다.

코웨이, 옥시, 코스트코, 폭스바겐, 이케아. 이들에게는 공통점이 있다. 근래에 달갑지 않은 구설로 대중들에게 집중포화를 맞았다는 점이다. 자신들을 향한 부정적인 시선을 피하고자 꼼수를 부리는 건 예사고 책임을 회피하려 했던 정황도 심심치 않게 드러났다. 도의적 책임에서 벗어나고자 했던 술수쯤으로 해석해도 무리는 아니다.

모르쇠 일관
연이은 사기

국내 정수기 시장 1위인 코웨이가 얼음정수기에서 중금속이 검출됐다는 사실을 알고도 1년간 소비자에게 이 사실을 밝히지 않았던 것으로 드러나 논란이 일고 있다. 코웨이는 지난해 7월부터 시중에서 수거한 얼음정수기 29개 제품을 대상으로 자체 조사를 벌인 결과, 일부 제품에서 정수기 내부에서 얼음을 만드는 핵심 부품이 벗겨지면서 금속가루가 떨어진다는 사실을 파악했다.

금속가루 중에는 대표적인 중금속인 니켈이 포함돼 있었다. 일각에서는 벗겨진 니켈이 얼음을 모아두는 곳에 떨어졌기 때문에 정수기 물에 들어갔을 가능성을 우려하고 있다. 김동현 코웨이 대표는 홈페이지를 통해 “문제가 된 정수기는 2014년 4월부터 2015년 12월까지 설치된 얼음정수기 중 일부로 제품교환 등 개선조치를 취해왔다”며 사과의 글을 올렸다. 정수기 사용자들에게 렌탈비 전액 환불까지 검토 중이다.

그러나 사태가 수습되길 바라는 코웨이의 의중과 상관 없이 이번 사태는 갈수록 확대되고 있다. 정부부처가 합동으로 ‘코웨이 정수기의 니켈 검출 논란’에 대응하기로 한 까닭이다. 지난 6일 정부부처 관계자의 말을 종합해보면 산업통상자원부(국가기술표준원)와 환경부, 한국소비자원은 앞으로 니켈이 검출된 코웨이의 얼음정수기 결함 여부와 위해성을 조사해 발표할 계획이다. 


부처 합동 대응은 분명 이례적인 일이다. 산업부와 환경부의 소관법률이 다르기 때문에 부처별 조사가 원칙이다. 정수기만 놓고 보면 현행법상 정수기 물의 유해성은 환경부가, 정수기의 부품 결합은 산자부가 관리해왔다. 정부가 이번 사안을 크게 받아들인다고 해석할 수 있는 대목이다.

정부는 “최대한 빠른 시일 내 조사결과를 발표하겠다”는 입장이지만 이번 조사에는 상당한 시간이 걸릴 것으로 보인다. 학술적 연구나 제도적 기준이 없는 니켈의 함유량을 밝혀내는 게 조사의 관건이다.  

외국계 기업
윤리성 도마

흥미로운 점은 소비자를 우롱하는 기업의 몰지각한 행태가 외국계 기업에서 두드러진다는 사실이다. 이들은 자신들에게 가해지는 압박을 외면하거나 사태가 커진 이후에나 보여주기 식으로 처리에 나서는 등 국내 소비자들을 무시하는 행동을 보여주면서 사태를 더욱 키웠다는 비판을 받고 있다. 집중포화를 맞고 있는 옥시레킷벤키저가 대표적이다.

검찰이 5년 만에 가습기살균제 사건 수사에 착수하면서 가습기살균제 기업 관계자를 잇달아 소환하기 시작한 게 옥시에게는 치명타였다. 옥시는 수십명의 사망자를 낸 PHMG인산염 성분의 가습기 살균제를 지난 2001년부터 제조·판매하는 과정에서 '유해 가능성'에 대한 회사 내외부 전문가의 경고를 무시하고 원인미상 폐질환의 원인으로 가습기 살균제를 지목한 보건당국의 조사 결과를 반박하는 보고서까지 조작 및 은폐했다는 의혹을 받고 있다.
 

지난 4월, 박근혜 대통령은 청와대 국무회의를 통해 “생활 화학제품 안전 관리에 미흡한 부분은 없는지, 사각지대는 없는지 다시 한 번 점검해서 미진한 부분은 조속히 보완할 것”이라며 “재발 방지에 최선을 다해야 한다”고 당부했다.

대통령까지 나서 가습기살균제 사태에 관심을 보이자 가습기살균제 최대 가해 업체로 지목된 옥시는 사과문을 발표하고 피해자 앞에 섰다. 지난 5월2일 기자회견장에 나타난 아타 울라시드 사프달 옥시레킷벤키저 한국 대표이사는 가습기살균제 피해자를 향해 고개를 숙이며 5년 만의 늦은 사과를 전했다. 하지만 5년이나 늦어진 옥시의 사과는 진실성이 떨어진다는 것이 피해자들의 입장이다.


코웨이 정수기 중금속 검출 파장
‘깔보나’ 우습게 보고 무시 지적

옥시 측은 이달 안에 전문가 패널을 구성하고, 1·2등급 판정을 받은 옥시 사용 피해자에 대한 보상안을 마련하겠다고 밝힌 상태다. 2013년에 내놓은 기금 50억원과 4월22일 발표했던 사과문에서 약속한 기금 50억원은 3·4등급 피해자들을 위해 사용할 예정이라고도 덧붙였다. 사태에 대한 진화작업으로 옥시가 발표한 보상 방법이다.

그러나 옥시는 사태를 해결하기 전부터 이중적인 행보를 보였던 것으로 알려지면서 사태 수습은 더욱 요원해지고 있다. 상호를 변경한 과정에서부터 의도적인 술수가 드러났다고 바라보는 시각도 상당수다.

옥시는 2011년 말 주식회사를 유한회사로 변경했다. 2014년에는 사명에서 옥시를 완전히 빼고 레킷벤키저의 앞글자만 딴 RB코리아로 바꿨다. 기존 법인을 해산하고 주주와 임원, 상호를 모두 넘겨받은 채 새로운 법인으로 탈바꿈한 셈이다.

파산했을 때 주주와 사원의 책임이 제한되는 유한회사는 외부감사 및 공시 의무에서 벗어난다. 주식회사보다 폐쇄적인 성격을 띄며 조직 변경 사실도 외부에 잘 알려지지 않는다. 검찰은 가습기 살균제 사망 사건의 책임에서 벗어나고자 옥시가 조직 변경을 한 것으로 보고 있다.

코스트코홀세일의 경우 옥시사태의 역풍을 맞은 경우다. 옥시 사태가 한창 부각되던 지난 5월 외국계 창고형 대형마트인 코스트코는 한동안 관련 제품을 판매해 빈축을 샀다. 당시 코스트코는 옥시 제품에 대한 할인행사를 진행한 데 이어 온라인몰에서도 다수의 옥시 관련 제품을 판매했다.

대다수 유통체인에서 옥시 제품을 팔지 않겠다고 언급한 것과 전혀 다른 접근법이다. 대형마트에 이어 소셜커머스와 오픈마켓, 백화점, 홈쇼핑, 편의점까지 국내 유통업체들은 잇따라 옥시 전 제품을 판매하지 않기로 결정한 바 있다. 심지어 약사들까지 개비스콘, 스트렙실 등 옥시의 일반의약품을 팔지 않겠다고 나서 묘한 대조를 이뤘다.

문제의 코스트코는 <포춘>이 선정한 2014년 세계에서 존경받는 기업 12위에 오른 기업이다. 코스트코가 국내 소비자들로 부터 거둬들인 지난해 매출액은 3조2000억원에 이른다. 이 때문에 국내에서 막대한 수익을 거둬들인 외국계 기업이 국내 소비자 정서를 무시한 채 영업이익에만 몰두하고 있다는 비판을 낳기도 했다.

나중에 걸려도 
솜방망이 처벌

폭스바겐이 국내 소비자를 무시하는 처사 역시 옥시 못지않다. 폭스바겐은 자사 차량에 대한 연비조작 사건(디젤게이트)이 터진 이후 미국에서 대규모 피해 보상책을 내놓고 사죄의 뜻을 밝혔지만 국내에서는 별다른 입장을 취하지 않고 있다.

지난해 10월 환경부가 차량 배출가스 재순환장치(EGR)에 대한 조사에 착수하면서 불거졌다. 당시 환경부는 티구안 유로5 차량 등에서 일정조건에 이르렀을 경우 EGR 장치가 고의적으로 작동 중단되도록 조작(임의설정)됐다고 결론 내렸다. EGR 작동이 중단되는 조건은 급가속 및 에어컨 가동, 핸들조작 여부 등이다.

이들 조건은 실내인증 과정에서는 작동하지 않는 기능들이다. 이 점에 주목해 환경부는 폭스바겐이 처음부터 주행연비를 높일 의도를 갖고 실내인증기준만 통과되도록 EGR 장치를 조작한 것으로 판단했다.


이후 환경부는 폭스바겐코리아에 리콜을 명령하면서 계획서에 배출가스 저감장치를 조작했다는 ‘임의설정’ 문구를 삽입하라고 요구했다. 그러나 이를 폭스바겐이 계속 거절하면서 리콜은 차질을 빚었고 폭스바겐이 제출한 리콜계획안은 벌써 3차례나 반려됐다.
 

이런 상황에서 폭스바겐의 고의적인 배출가스 조작 혐의를 뒷받침하는 또 다른 증거가 드러나면서 파장이 더욱 커지고 있다. 폭스바겐이 5년 전 환경부로부터 배출가스 과다 배출이 적발돼 개선 요구를 받았지만 이를 무시한 정황이 드러난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폭스바겐은 진정성 있는 사죄를 하지 않고 있다. 배출가스 저감장치 조작 사실이 밝혀진 후 신문광고, 인터뷰, 국정감사 등을 통해 사과의 뜻을 전했지만 검찰수사 결과에 대해서는 별다른 입장 표명이 없는 상태다. 이렇다 보니 리콜은 차일피일 미뤄지고 있으며 구체적인 보상계획도 아직까지 세워지지 않았다.

최악의 경우 폭스바겐에게 솜방망이 처벌이 내려질 수도 있다. 대기환경보전법 등 관련법에 임의설정에 대한 뚜렷한 제재 방안이 없기 때문이다. 환경부가 임의설정 혐의로 과징금 부과 조치를 내린 폭스바겐 차량만 12만5522대(15개 차종)에 달하지만 관련법에 임의설정 위반에 대한 과징금 상한선이 차종당 10억원으로 제한돼 총액은 141억원에 불과하다. 리콜 명령을 지키지 않은 채 배짱을 부릴 수 있는 근본적인 이유도 여기에 있다.

업계 관계자는 “전 세계에서 같은 혐의로 추궁당하는 폭스바겐은 피해자 구제와 배상에 천문학적인 금액을 투입할 예정인데 유독 국내에서는 고자세를 취한다”며 “처벌 수위가 느슨하다고 해석할 수 있는 사안”이라고 꼬집었다.

옥시·이케아·폭스바겐…
한국 고객만 ‘봉’ 취급


이케아는 모호한 리콜 기준을 앞세우다 된서리를 맞은 케이스다. 특히 미국에서 어린이 안전사고의 논란에 중심에 섰던 ‘말름(MALM) 서랍장’의 경우 미국과 캐나다와는 달리 국내에서 리콜 계획을 밝히지 않아 지탄을 받았다.

해당 제품은 지난해 미국에서 아이 2명이 사망하는 사고의 발단이 됐던 제품이다. 최근에도 아이 1명이 같은 사고를 당했다. 서랍장 사고가 계속 발생되는 것은 서랍장이 벽에 고정돼 있지 않기 때문이다.

이케아는 이 제품에서 사고가 연달아 발생하자 서랍장 구매고객에게 벽고정 ‘키트’를 제공하는 대안을 내놨지만 다시 사고가 이어지면서 결국 제품 리콜에 나선 바 있다. 하지만 한국에선 똑같은 기준이 적용되지 않았다. 서랍장으로 인한 사고가 없었기 때문이다. 결국 국가에 따라 차별화를 적용한 리콜 조치가 소비자들로부터 빈축을 사게 됐고 결국 국내에서도 뒤늦게나마 환불 조치를 결정했다.
 

지난 6일 이케아코리아는 “말름 제품을 구입한 고객은 고객센터를 통해 환불을 받을 수 있다”고 언급했다. 다만 이케아코리아는 이번 조치가 공식 리콜이 아니라며 환불 가능 여부를 홈페이지에 공지하거나 국내 판매량을 밝힐 계획이 없다고 전했다.

업계에서는 소비자원의 리콜 권고와 산업통상자원부 국가기술표준원의 안전성 조사 착수로 여론이 나빠지자 이케아가 조용히 환불을 진행하기로 한 것으로 보고 있다.

이케아코리아는 “제품의 안전한 사용을 위해 가구를 고정하는 것의 중요성을 알리는 캠페인을 진행했다”며 “서랍장이 안전하게 고정된 경우에 대해서는 어떠한 사고도 보고받은 적이 없다”고 설명했다.

발뺌 급급하다
몰래 사태수습

문제는 제아무리 여론이 들끓어도 솜방망이 처벌이 예상된다는 점이다. 특히 외국계 기업들의 고압적인 자세는 매번 논란이 되고 있다. 정부와 소비자가 우습게 여긴다고 해석할 수밖에 없는 사안이다. 옥시와 폭스바겐 사건에서 드러났듯이 정부는 외국 업체에 유독 약한 모습이다. 부실조사에 늑장대응, 책임 떠넘기기가 단골 메뉴다. 옥시 건은 환경부의 독성물질 유해검사가 부실했고 질병당국의 대처도 늦었다. 연루기업에 대한 처벌은 허위광고 과징금 5200만원이 전부였다.

폭스바겐도 마찬가지였다. 소관부처인 환경부는 일이 벌어진 지 2개월 뒤에야 리콜 명령을 내리고 대표 고발도 한참 뒤에야 했다. 심지어 폭스바겐은 리콜 계획서를 두 번이나 엉터리로 제출하는 만행을 저질렀다.


<djyang@ilyosisa.co.kr>

<기사 속 기사> MBK는 토종? 외국계?

코웨이를 비롯해 굵직한 기업들을 손에 쥐고 있는 MBK파트너스는 종종 외국계 사모펀드라는 오해를 받곤 한다. 하지만 MBK파트너스는 토종 사모펀라고 보는 게 타당하다. 국내법인으로 등록돼 있다는 점이 이를 뒷받침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MBK파트너스가 소위 말하는 외국계 먹튀자본 쯤으로 인식되는 건 MBK파트너스의 자금 원천이 대부분 외국계이기 때문이다. 세간의 시선이 곱지 못한 이유도 여기에 있다.

실제로 MBK파트너스는 설립 당시 “진짜 아시아계라 말할 수 있는 첫 기업인수합병(buyout) 펀드”라는 평가를 받았다. 2006년 <월스트리트저널(WSJ)>은 “MBK파트너스가 반 외자정서로 한국시장에서 승승장구하고 있다“고 언급하기도 했다. <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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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례가 뭐죠?” MZ가 바꾼 추석 풍경

“차례가 뭐죠?” MZ가 바꾼 추석 풍경

[일요시사 취재1팀] 안예리 기자 = 우리에게 추석은 차례를 지내거나 귀향을 하는 것이 익숙한 명절이었다. 그러나 최근 몇 년 사이 명절을 보내는 방식이 크게 달라졌다. 특히 차례를 지내는 비중은 줄어들고 MZ세대를 중심으로 긴 연휴를 활용한 여행, 단기 아르바이트, 자기계발 등을 하는 것이 새로운 문화로 자리 잡고 있다. 최근 여론 조사 결과에 따르면 추석에 차례를 지내겠다고 응답한 비율은 40%대 초반에 그쳤다. 절반 이상은 차례를 지내지 않겠다고 답한 것이다. 불과 한 세대 전만 해도 당연하게 여겨지던 차례와 제사가 더 이상 필수가 아니게 된 셈이다. 알바 우선 통계청 조사에서도 명절 의례를 간소화하거나 아예 하지 않는 가정이 해마다 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차례를 지내는 대신 긴 연휴를 여행으로 보내려는 수요가 뚜렷하게 증가했다. 한국인 1000명을 대상으로 한 여행 중개 플랫폼 스카이스캐너 설문조사에 따르면 응답자의 약 77%가 이번 추석 연휴에 여행 계획을 세웠다고 응답했다. 특히 해외여행 비중이 크게 늘었다. 10년 전 대비 명절 여행에 긍정적인 인식이 37%에서 70%로 2배 가까이 상승했다. 검색 데이터에 따르면, 추석 연휴 기간 인기 여행지는 일본(43.1%)이 1위였고, 이어 베트남(13.2%), 중국(9.6%), 태국(7.5%), 대만(6.2%) 순이었다. 도시별로는 일본 후쿠오카(20.2%)가 가장 높은 검색 비율을 기록했으며, 오사카(18.3%), 도쿄(15.4%), 방콕(8.9%), 타이베이(8.0%)가 뒤를 이었다. 여행을 가지 않고 명절 연휴를 일터에서 보내는 사람들도 많아졌다. 긴 연휴를 활용해 “돈을 벌겠다”는 사람들이 늘면서 단기 아르바이트 수요도 급증했다. 당근마켓과 같은 알바 커뮤니티와 플랫폼에는 “추석 알바 구합니다”라는 글이 다수 올라왔다. 한 20대 청년은 “쉬는 날이 길어 잠깐이라도 일을 하려 한다”고 밝혔고, 한 대학생은 “여행 경비를 마련하기 위해 선물세트 포장 알바에 지원했다”고 말했다. 특히 명절 기간에는 업무강도가 높아 평균 시급의 1.5배를 지급하는 경우가 많다. 평상시에 근무할 때보다 더 많은 돈을 벌 수 있는 기회이기도 하다. 이 때문에 많은 청년들이 명절 시즌 알바를 노리고 있다. 이 같은 상황에 맞춰 구인·구직 플랫폼들은 ‘추석 알바 채용관’을 운영하며 수요를 모으고 있다. 백화점과 대형 마트, 도·소매점과 전통시장에서 단기 인력을 모집하고, 선물용 고기·과일 세트 포장, 택배 상·하차, 진열·판매 등의 일자리가 집중적으로 생겨났다. 절반 이상 “안 지내요” 77%가 여행 계획 세워 지난해 추석 구인 구직 사이트 알바천국 조사에서는 응답자 중 절반 이상(53.9%)이 단기 용돈 벌이를 위해, 22.2%는 고물가로 인한 지출 부담 때문에, 18.2%는 여행 경비나 등록금 등 목돈 마련을 위해 명절 알바를 계획했다고 답했다. 이는 명절을 단순히 휴식 시간으로 보내지 않고, 생계와 목표 달성을 위한 수단으로 활용하는 사람들이 늘고 있음을 보여준다. 집에 머무는 사람들 사이에서는 ‘자기계발하며 추석 나기’가 새로운 문화로 자리 잡고 있다. 혼자 추석을 보내는 일명 ‘혼추족’ 중에는 독서나 온라인 강의, 어학 공부, 자격증 준비 등에 연휴를 투자하는 사례가 늘고 있다. 스터디 카페와 도서관을 찾는 이용객이 증가했다는 조사도 나왔다. 일부 출판사나 문화 기획사에서는 명절 연휴에 맞춰 북콘서트 같은 행사를 열기도 했다. 명절이 휴식 기간만이 아닌 스스로를 계발할 수 있는 기회로 활용되고 있는 것을 알 수 있는 대목이다. 이 같은 양상은 가족 모임에도 영향을 받았다. MZ세대는 가족·친척 모임을 스트레스로 인식하는 경우가 많다. 한 청년은 “친척들과 모이면 취업·결혼 얘기 등으로 잔소리를 들어 스트레스를 받는 경우가 많은데, 그러느니 차라리 그 시간에 자기계발을 하는 것이 더 유익하다”고 말했다. 과거처럼 친척 모임에 시간을 할애하기보다, 필요한 경우에만 가족을 만나고 나머지 시간에는 개인활동에 집중하는 방식이다. 연휴를 도심에서 보내는 ‘혼추족’을 겨냥해 유통·외식업계도 다양한 이벤트를 내놓고 있다. 수도권 맛집 가이드, 추석맞이 전시·공연, 집콕형 OTT·게임 프로모션 등이 대표적이다. 편의점과 HMR(가정 간편식) 업체는 명절 한정 도시락·한상 차림 제품을 늘리고, 명절 기간 반값·카드 제휴 할인 등 단기 판촉을 강화하고 있다. 추석 선물 시장도 과거와는 다른 양상을 보이고 있다. 예전에는 굴비·한우·고급 과일 세트 등 전통 품목이 중심이었지만, 최근에는 실속형·소포장 선물세트가 늘었다. 대표적으로 대형마트에서는 고급 커피·차 세트, 수제 디저트처럼 가볍게 주고받을 수 있는 소포장 구성이 인기를 끌고 있다. “일과 자기계발이 더 유익해” 명절 스트레스 가족 모임 불참 온라인몰에서는 올리브 오일, 참기름, 견과류, 꿀 등 건강 지향 소품목 세트가 매출 상위에 오르기도 했다. 실속형·소포장 선물을 찾는 배경에는 고물가 부담과 1~2인 가구 증가가 있다. 소비자들은 예전처럼 고가 선물을 준비하기보다, 실용적이고 보관이 편리한 상품을 선택하는 경향을 보인다. 또 명절을 함께 보내는 가족 규모가 줄면서 필요한 양만큼만 담긴 선물세트가 ‘부담 없는 선택’으로 자리 잡았다. 가격 대비 효용을 중시하는 MZ세대 소비자층도 이 같은 흐름을 이끌고 있다. 모바일 선물하기 판매는 전년 추석 대비 두 배 이상 늘었고, 온라인몰도 같은 기간 선물세트 매출이 2배 가까이 증가했다. 편의점 앱을 통한 선물세트 매출은 연중 대비 100% 이상 신장세가 관측됐고, 패션·라이프스타일 플랫폼의 선물하기 거래액도 두 자릿수 증가를 이어가고 있다. 마켓컬리는 추석 기간 한시 선물하기 서비스를 운영하며 홍삼·화장품 등 선물 품목을 확장했다. 명절 식문화 자체도 간편화 된 흐름이 뚜렷하다. 1인 가구 1012만명, 2인 가구 600만명으로 소규모 가구가 크게 늘어난 가운데, 대형마트의 간편 차례상 매출은 최근 3년 연속 증가했다. 편의점의 냉장·냉동 HMR 매출은 두 자릿수 증가했고, 명절 한정 도시락은 1인 가구 밀집 상권에서 판매 비중이 높았다. 이번 추석에도 이런 흐름에 맞춰 대형 마트는 간편 차례상·냉동 밀키트 대형 할인전을, 편의점 4사는 명절 도시락 출시와 제휴 할인행사를 연달아 내놓고 있다. 밀키트와 같은 간편식의 수요가 증가한 데에는 물가 상승이 영향을 미쳤다. 소비자 설문에선 추석 전체 지출 예산이 평균 71만2000원으로 전년 대비 26%가량 늘었다는 응답이 나왔다. 지출 중에는 부모 용돈·선물 비중이 절반을 웃돌았고, 차례상 비용·내식 비용도 적지 않았다. 품목별로 과일·수산물·햅쌀·송편 등의 차례상 음식 가격 부담이 커지면서, 수입 축산물 고려 비율도 늘었다. 이 때문에 “차례상 형식을 간소화하자”는 분위기가 형성됐다. 선택의 시대 추석을 준비하는 한 30대 가정주부는 “지금은 시대가 많이 바뀌어서 차례를 안 지내거나 설에 한 번만 지내는 집이 많다. 고물가 시대에 음식을 다 준비하는 것은 부담되는 것 같다. 그런 형식적인 것은 간소화하더라도 차례를 지내는 행위에 의미가 있으니 상관없는 것 같다”고 말했다. <imsharp@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