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비자 뒤통수 친 기업들 백태

알고도 모른척…외국계의 두 얼굴

[일요시사 취재1팀] 양동주 기자 = 대국민 사기극을 벌였던 몇몇 기업들이 아직도 정신을 못 차리고 있다. 소비자를 기만한 것도 모자라 정부의 지침마저 철저히 무시했던 정황이 연이어 드러나는 형국이다. 진정성이 결여된 이들의 행태 때문에 애꿎은 소비자들만 발을 동동 굴러야 하는 처지에 몰렸다.

코웨이, 옥시, 코스트코, 폭스바겐, 이케아. 이들에게는 공통점이 있다. 근래에 달갑지 않은 구설로 대중들에게 집중포화를 맞았다는 점이다. 자신들을 향한 부정적인 시선을 피하고자 꼼수를 부리는 건 예사고 책임을 회피하려 했던 정황도 심심치 않게 드러났다. 도의적 책임에서 벗어나고자 했던 술수쯤으로 해석해도 무리는 아니다.

모르쇠 일관
연이은 사기

국내 정수기 시장 1위인 코웨이가 얼음정수기에서 중금속이 검출됐다는 사실을 알고도 1년간 소비자에게 이 사실을 밝히지 않았던 것으로 드러나 논란이 일고 있다. 코웨이는 지난해 7월부터 시중에서 수거한 얼음정수기 29개 제품을 대상으로 자체 조사를 벌인 결과, 일부 제품에서 정수기 내부에서 얼음을 만드는 핵심 부품이 벗겨지면서 금속가루가 떨어진다는 사실을 파악했다.

금속가루 중에는 대표적인 중금속인 니켈이 포함돼 있었다. 일각에서는 벗겨진 니켈이 얼음을 모아두는 곳에 떨어졌기 때문에 정수기 물에 들어갔을 가능성을 우려하고 있다. 김동현 코웨이 대표는 홈페이지를 통해 “문제가 된 정수기는 2014년 4월부터 2015년 12월까지 설치된 얼음정수기 중 일부로 제품교환 등 개선조치를 취해왔다”며 사과의 글을 올렸다. 정수기 사용자들에게 렌탈비 전액 환불까지 검토 중이다.

그러나 사태가 수습되길 바라는 코웨이의 의중과 상관 없이 이번 사태는 갈수록 확대되고 있다. 정부부처가 합동으로 ‘코웨이 정수기의 니켈 검출 논란’에 대응하기로 한 까닭이다. 지난 6일 정부부처 관계자의 말을 종합해보면 산업통상자원부(국가기술표준원)와 환경부, 한국소비자원은 앞으로 니켈이 검출된 코웨이의 얼음정수기 결함 여부와 위해성을 조사해 발표할 계획이다. 


부처 합동 대응은 분명 이례적인 일이다. 산업부와 환경부의 소관법률이 다르기 때문에 부처별 조사가 원칙이다. 정수기만 놓고 보면 현행법상 정수기 물의 유해성은 환경부가, 정수기의 부품 결합은 산자부가 관리해왔다. 정부가 이번 사안을 크게 받아들인다고 해석할 수 있는 대목이다.

정부는 “최대한 빠른 시일 내 조사결과를 발표하겠다”는 입장이지만 이번 조사에는 상당한 시간이 걸릴 것으로 보인다. 학술적 연구나 제도적 기준이 없는 니켈의 함유량을 밝혀내는 게 조사의 관건이다.  

외국계 기업
윤리성 도마

흥미로운 점은 소비자를 우롱하는 기업의 몰지각한 행태가 외국계 기업에서 두드러진다는 사실이다. 이들은 자신들에게 가해지는 압박을 외면하거나 사태가 커진 이후에나 보여주기 식으로 처리에 나서는 등 국내 소비자들을 무시하는 행동을 보여주면서 사태를 더욱 키웠다는 비판을 받고 있다. 집중포화를 맞고 있는 옥시레킷벤키저가 대표적이다.

검찰이 5년 만에 가습기살균제 사건 수사에 착수하면서 가습기살균제 기업 관계자를 잇달아 소환하기 시작한 게 옥시에게는 치명타였다. 옥시는 수십명의 사망자를 낸 PHMG인산염 성분의 가습기 살균제를 지난 2001년부터 제조·판매하는 과정에서 '유해 가능성'에 대한 회사 내외부 전문가의 경고를 무시하고 원인미상 폐질환의 원인으로 가습기 살균제를 지목한 보건당국의 조사 결과를 반박하는 보고서까지 조작 및 은폐했다는 의혹을 받고 있다.
 

지난 4월, 박근혜 대통령은 청와대 국무회의를 통해 “생활 화학제품 안전 관리에 미흡한 부분은 없는지, 사각지대는 없는지 다시 한 번 점검해서 미진한 부분은 조속히 보완할 것”이라며 “재발 방지에 최선을 다해야 한다”고 당부했다.

대통령까지 나서 가습기살균제 사태에 관심을 보이자 가습기살균제 최대 가해 업체로 지목된 옥시는 사과문을 발표하고 피해자 앞에 섰다. 지난 5월2일 기자회견장에 나타난 아타 울라시드 사프달 옥시레킷벤키저 한국 대표이사는 가습기살균제 피해자를 향해 고개를 숙이며 5년 만의 늦은 사과를 전했다. 하지만 5년이나 늦어진 옥시의 사과는 진실성이 떨어진다는 것이 피해자들의 입장이다.


코웨이 정수기 중금속 검출 파장
‘깔보나’ 우습게 보고 무시 지적

옥시 측은 이달 안에 전문가 패널을 구성하고, 1·2등급 판정을 받은 옥시 사용 피해자에 대한 보상안을 마련하겠다고 밝힌 상태다. 2013년에 내놓은 기금 50억원과 4월22일 발표했던 사과문에서 약속한 기금 50억원은 3·4등급 피해자들을 위해 사용할 예정이라고도 덧붙였다. 사태에 대한 진화작업으로 옥시가 발표한 보상 방법이다.

그러나 옥시는 사태를 해결하기 전부터 이중적인 행보를 보였던 것으로 알려지면서 사태 수습은 더욱 요원해지고 있다. 상호를 변경한 과정에서부터 의도적인 술수가 드러났다고 바라보는 시각도 상당수다.

옥시는 2011년 말 주식회사를 유한회사로 변경했다. 2014년에는 사명에서 옥시를 완전히 빼고 레킷벤키저의 앞글자만 딴 RB코리아로 바꿨다. 기존 법인을 해산하고 주주와 임원, 상호를 모두 넘겨받은 채 새로운 법인으로 탈바꿈한 셈이다.

파산했을 때 주주와 사원의 책임이 제한되는 유한회사는 외부감사 및 공시 의무에서 벗어난다. 주식회사보다 폐쇄적인 성격을 띄며 조직 변경 사실도 외부에 잘 알려지지 않는다. 검찰은 가습기 살균제 사망 사건의 책임에서 벗어나고자 옥시가 조직 변경을 한 것으로 보고 있다.

코스트코홀세일의 경우 옥시사태의 역풍을 맞은 경우다. 옥시 사태가 한창 부각되던 지난 5월 외국계 창고형 대형마트인 코스트코는 한동안 관련 제품을 판매해 빈축을 샀다. 당시 코스트코는 옥시 제품에 대한 할인행사를 진행한 데 이어 온라인몰에서도 다수의 옥시 관련 제품을 판매했다.

대다수 유통체인에서 옥시 제품을 팔지 않겠다고 언급한 것과 전혀 다른 접근법이다. 대형마트에 이어 소셜커머스와 오픈마켓, 백화점, 홈쇼핑, 편의점까지 국내 유통업체들은 잇따라 옥시 전 제품을 판매하지 않기로 결정한 바 있다. 심지어 약사들까지 개비스콘, 스트렙실 등 옥시의 일반의약품을 팔지 않겠다고 나서 묘한 대조를 이뤘다.

문제의 코스트코는 <포춘>이 선정한 2014년 세계에서 존경받는 기업 12위에 오른 기업이다. 코스트코가 국내 소비자들로 부터 거둬들인 지난해 매출액은 3조2000억원에 이른다. 이 때문에 국내에서 막대한 수익을 거둬들인 외국계 기업이 국내 소비자 정서를 무시한 채 영업이익에만 몰두하고 있다는 비판을 낳기도 했다.

나중에 걸려도 
솜방망이 처벌

폭스바겐이 국내 소비자를 무시하는 처사 역시 옥시 못지않다. 폭스바겐은 자사 차량에 대한 연비조작 사건(디젤게이트)이 터진 이후 미국에서 대규모 피해 보상책을 내놓고 사죄의 뜻을 밝혔지만 국내에서는 별다른 입장을 취하지 않고 있다.

지난해 10월 환경부가 차량 배출가스 재순환장치(EGR)에 대한 조사에 착수하면서 불거졌다. 당시 환경부는 티구안 유로5 차량 등에서 일정조건에 이르렀을 경우 EGR 장치가 고의적으로 작동 중단되도록 조작(임의설정)됐다고 결론 내렸다. EGR 작동이 중단되는 조건은 급가속 및 에어컨 가동, 핸들조작 여부 등이다.

이들 조건은 실내인증 과정에서는 작동하지 않는 기능들이다. 이 점에 주목해 환경부는 폭스바겐이 처음부터 주행연비를 높일 의도를 갖고 실내인증기준만 통과되도록 EGR 장치를 조작한 것으로 판단했다.


이후 환경부는 폭스바겐코리아에 리콜을 명령하면서 계획서에 배출가스 저감장치를 조작했다는 ‘임의설정’ 문구를 삽입하라고 요구했다. 그러나 이를 폭스바겐이 계속 거절하면서 리콜은 차질을 빚었고 폭스바겐이 제출한 리콜계획안은 벌써 3차례나 반려됐다.
 

이런 상황에서 폭스바겐의 고의적인 배출가스 조작 혐의를 뒷받침하는 또 다른 증거가 드러나면서 파장이 더욱 커지고 있다. 폭스바겐이 5년 전 환경부로부터 배출가스 과다 배출이 적발돼 개선 요구를 받았지만 이를 무시한 정황이 드러난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폭스바겐은 진정성 있는 사죄를 하지 않고 있다. 배출가스 저감장치 조작 사실이 밝혀진 후 신문광고, 인터뷰, 국정감사 등을 통해 사과의 뜻을 전했지만 검찰수사 결과에 대해서는 별다른 입장 표명이 없는 상태다. 이렇다 보니 리콜은 차일피일 미뤄지고 있으며 구체적인 보상계획도 아직까지 세워지지 않았다.

최악의 경우 폭스바겐에게 솜방망이 처벌이 내려질 수도 있다. 대기환경보전법 등 관련법에 임의설정에 대한 뚜렷한 제재 방안이 없기 때문이다. 환경부가 임의설정 혐의로 과징금 부과 조치를 내린 폭스바겐 차량만 12만5522대(15개 차종)에 달하지만 관련법에 임의설정 위반에 대한 과징금 상한선이 차종당 10억원으로 제한돼 총액은 141억원에 불과하다. 리콜 명령을 지키지 않은 채 배짱을 부릴 수 있는 근본적인 이유도 여기에 있다.

업계 관계자는 “전 세계에서 같은 혐의로 추궁당하는 폭스바겐은 피해자 구제와 배상에 천문학적인 금액을 투입할 예정인데 유독 국내에서는 고자세를 취한다”며 “처벌 수위가 느슨하다고 해석할 수 있는 사안”이라고 꼬집었다.

옥시·이케아·폭스바겐…
한국 고객만 ‘봉’ 취급


이케아는 모호한 리콜 기준을 앞세우다 된서리를 맞은 케이스다. 특히 미국에서 어린이 안전사고의 논란에 중심에 섰던 ‘말름(MALM) 서랍장’의 경우 미국과 캐나다와는 달리 국내에서 리콜 계획을 밝히지 않아 지탄을 받았다.

해당 제품은 지난해 미국에서 아이 2명이 사망하는 사고의 발단이 됐던 제품이다. 최근에도 아이 1명이 같은 사고를 당했다. 서랍장 사고가 계속 발생되는 것은 서랍장이 벽에 고정돼 있지 않기 때문이다.

이케아는 이 제품에서 사고가 연달아 발생하자 서랍장 구매고객에게 벽고정 ‘키트’를 제공하는 대안을 내놨지만 다시 사고가 이어지면서 결국 제품 리콜에 나선 바 있다. 하지만 한국에선 똑같은 기준이 적용되지 않았다. 서랍장으로 인한 사고가 없었기 때문이다. 결국 국가에 따라 차별화를 적용한 리콜 조치가 소비자들로부터 빈축을 사게 됐고 결국 국내에서도 뒤늦게나마 환불 조치를 결정했다.
 

지난 6일 이케아코리아는 “말름 제품을 구입한 고객은 고객센터를 통해 환불을 받을 수 있다”고 언급했다. 다만 이케아코리아는 이번 조치가 공식 리콜이 아니라며 환불 가능 여부를 홈페이지에 공지하거나 국내 판매량을 밝힐 계획이 없다고 전했다.

업계에서는 소비자원의 리콜 권고와 산업통상자원부 국가기술표준원의 안전성 조사 착수로 여론이 나빠지자 이케아가 조용히 환불을 진행하기로 한 것으로 보고 있다.

이케아코리아는 “제품의 안전한 사용을 위해 가구를 고정하는 것의 중요성을 알리는 캠페인을 진행했다”며 “서랍장이 안전하게 고정된 경우에 대해서는 어떠한 사고도 보고받은 적이 없다”고 설명했다.

발뺌 급급하다
몰래 사태수습

문제는 제아무리 여론이 들끓어도 솜방망이 처벌이 예상된다는 점이다. 특히 외국계 기업들의 고압적인 자세는 매번 논란이 되고 있다. 정부와 소비자가 우습게 여긴다고 해석할 수밖에 없는 사안이다. 옥시와 폭스바겐 사건에서 드러났듯이 정부는 외국 업체에 유독 약한 모습이다. 부실조사에 늑장대응, 책임 떠넘기기가 단골 메뉴다. 옥시 건은 환경부의 독성물질 유해검사가 부실했고 질병당국의 대처도 늦었다. 연루기업에 대한 처벌은 허위광고 과징금 5200만원이 전부였다.

폭스바겐도 마찬가지였다. 소관부처인 환경부는 일이 벌어진 지 2개월 뒤에야 리콜 명령을 내리고 대표 고발도 한참 뒤에야 했다. 심지어 폭스바겐은 리콜 계획서를 두 번이나 엉터리로 제출하는 만행을 저질렀다.


<djyang@ilyosisa.co.kr>

<기사 속 기사> MBK는 토종? 외국계?

코웨이를 비롯해 굵직한 기업들을 손에 쥐고 있는 MBK파트너스는 종종 외국계 사모펀드라는 오해를 받곤 한다. 하지만 MBK파트너스는 토종 사모펀라고 보는 게 타당하다. 국내법인으로 등록돼 있다는 점이 이를 뒷받침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MBK파트너스가 소위 말하는 외국계 먹튀자본 쯤으로 인식되는 건 MBK파트너스의 자금 원천이 대부분 외국계이기 때문이다. 세간의 시선이 곱지 못한 이유도 여기에 있다.

실제로 MBK파트너스는 설립 당시 “진짜 아시아계라 말할 수 있는 첫 기업인수합병(buyout) 펀드”라는 평가를 받았다. 2006년 <월스트리트저널(WSJ)>은 “MBK파트너스가 반 외자정서로 한국시장에서 승승장구하고 있다“고 언급하기도 했다. <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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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한길 유니버스’ 절대 불가능한 이유

‘전한길 유니버스’ 절대 불가능한 이유

[일요시사 정치팀] 박형준 기자 = 국민의힘에 입당한 한국사 강사 전한길씨가 국민의힘 행사에서 영향력을 과시하다가 큰 물의를 일으켰다. 전씨는 국민의힘에서 ‘보수의 김어준’을 꿈꾸는 것 같다. 전씨는 과연 김씨가 15년 동안 구축했던 영향력을 단번에 얻을 수 있을까? 국민의힘에 입당한 한국사 강사 전한길씨가 지난 8일, 대구 EXCO에서 진행된 국민의힘 전당대회 대구·경북지역 합동연설회에서 큰 물의를 일으켰다. 전씨는 지난 3월 창간한 <전한길뉴스> 소속 언론인 자격으로 참석했다. 선거판 난장판 하지만 전씨는 언론 취재의 한계를 넘어 반탄(탄핵 반대) 성향 후보들의 연설 도중 응원하면서 분위기를 띄웠다. 반대로 찬탄(탄핵 찬성) 성향 당 대표·최고위원 후보들이 연설할 때마다 “내부 총질” 혹은 “배신자” 등 원색 비난을 했다. 이날 김근식 최고위원 후보는 전씨를 직접 지칭해 “부정선거 음모론에 빠지고, 계엄을 계몽령이라고 정당화하는 사람들과 어떻게 같이 투쟁할 수 있겠느냐”면서 비난했다. 그러자 전씨는 김 후보에게 욕설하면서 자신의 지지자들을 격동시켰다. 찬탄 성향 조경태 당 대표 후보가 연설할 땐 자리에서 일어나 한 손을 들고 항의하는 등 지지자들의 조 후보 비난을 유도했다. 그러자, 찬탄 성향 일부 당원들이 전씨에게 물병을 던지면서 항의했다. 한 당원은 전씨에게 “난 20년 차 당원인데, 입당한 지 한 달밖에 안 된 당신이 왜 이런 난동을 부리느냐”고 따져 물었다. 국민의힘 지도부는 전씨의 전당대회 출입을 막기 위해 대의원이 아닌 일반 당원의 행사장 출입을 금지했다. 이어 전씨에 대한 징계 가능성도 내비쳤다. 그러자 전씨는 <전한길뉴스> 발행인 신분을 내세워 “언론 탄압”이라며 반발했다. 이처럼 전씨는 국민의힘 당원과 언론인이란 신분을 왕래하면서 국민의힘 전당대회에 개입하고 있다. 지난달 31일과 지난 7일엔 시사평론가 고성국씨 등과 함께 주최한 ‘자유 우파 유튜브 연합 토론회’에 각각 장동혁·김문수 당 대표 후보를 출연시켜 ‘면접’을 보는 위력을 국민의힘 내외에 과시했다. 특정 진영의 강경파를 대상으로 언론사·유튜브 채널 등을 운영하면서 힘을 과시하는 모델로는 방송인 김어준씨가 있다. 김씨는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의 친문(친 문재인) 강경파 성향 당원·지지자를 대상으로 라디오·유튜브 방송을 진행하면서 당 전체를 좌지우지하는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다. 당 대표 후보들을 면접하는 형식은 김씨가 지난해 3월 자신의 유튜브 방송 ‘김어준의 다스뵈이다’에 민주당 총선 후보자였던 이언주·전현희 의원과 안귀령 대통령실 부대변인을 출연시켜 객석의 청중에게 큰절을 시킨 것과 비슷하다. 김씨가 지난 6월 기획·진행한 ‘더 파워풀’ 콘서트엔 ▲문재인 전 대통령 ▲민주당 정청래 대표 ▲김민석 국무총리 등 다수의 민주당 내 유력 정치인이 참석했다. 입당하자마자 영향력 과시 물의 당원·언론인 오가며 전대 개입 김씨는 지난 2011년 팟캐스트 방송 ‘나는 꼼수다’ 공동 진행자로 활동하면서부터 민주당에 대한 영향력을 키워왔다. 물론 김씨가 15년 동안 구축한 영향력을 전씨가 단기간에 얻긴 어렵다. 이 때문인지 전씨는 국민의힘에 입당하자마자 ‘10만 당원 양병설’ 등을 주장하면서 당 대표 선거에 출마할 가능성을 내비쳤다. 하지만 국민의힘 전당대회에 출마하기 위해선 당비를 3개월 이상 납부하고, 연 1회 이상 교육을 받은 책임당원이어야 한다. 전씨는 지난 6월 온라인으로 입당했고, 당 대표 후보 등록일은 지난달 30일부터 단 이틀 동안이었다. 따라서 전씨는 당 대표 선거에 출마할 수 없었다. 출마 길이 막힌 전씨는 전당대회에서 당원·언론인 신분을 교차하면서 자신을 따르는 당원들을 선동해 영향력을 과시하려고 한다. 하지만 전씨는 김씨가 민주당에서 막강한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게 된 구조를 이해하지 못한 것으로 보인다. 민주당과 주변 진영 전체를 둘러싼 질서는 20세기 초·중반에 활동했던 이탈리아 사회주의자 안토니오 그람시의 헤게모니 이론이 갖는 틀과 비슷하다. 그람시는 “자본주의는 견고하게 발전할 것”이라는 대전제를 토대로 “언론·문화 등 각 분야에 진지를 구축해 참호전으로써 상대 세력을 약화해야 한다”는 사상을 정리했다. 각 분야에 구축한 진지는 결정적인 시기에 전개할 기동전의 전초기지 역할을 한다. 자본주의 구조가 뿌리내리면서 러시아 2월·10월 혁명과 같이 한순간에 모든 것을 뒤집는 혁명은 사실상 불가능해졌다. 그람시는 주도권 다툼으로써 체제 내 혁명을 추구하는 취지의 사상을 구체화했다. 우리나라에선 소련 해체가 가시화되던 1980년대 후반부터 기존 노동운동에 문화·예술운동을 접목하는 단체가 활동하는 등 각계에서 다른 방향의 노동운동을 전개하는 것으로부터 시작된다. 민주당을 받치는 양대 축은 각계의 시민단체들과 진보 성향 매체들이다. 대규모 정치 이벤트가 진행될 땐 민주당 지원 사격을 맡으면서, 정치적 명분과 정당성을 구축·홍보하는 역할을 맡는다. 또 민주당에 인력을 공급하는 역할도 한다. 주요 선거 등 대규모 기동전이 필요한 상황에선 각자의 진지에서 일시에 뛰쳐나와 물량을 공급하는 식이다. 이 같은 구조를 상징하는 사람이 민주당 윤미향 전 의원이다. 정의기억연대 대표로 오랫동안 활동하던 윤 전 의원은 민주당을 통해 국회의원이 됐지만, 횡령 의혹이 유죄로 확정돼 의원직을 잃었다. 같은 당 추미애 의원 등 민주당 일각에선 윤 전 의원의 사면을 강하게 지지했고, 결국 8·15 광복절특사를 통해 사면·복권됐다. 민주당과 그람시 하지만 시민단체와 매체는 대중을 직접 동원하기가 어려운 데다, 매체는 언론 고유의 한계가 있다. 시민단체 역시 시민들의 참여가 부실하다는 핸디캡을 떠안을 수밖에 없는 구조적 문제도 존재해 왔다. 이 때문에 삼각 구조를 받쳐줄 또 하나의 하부 구조가 필요했다. 이 문제를 해결해준 사람이 바로 김씨였다. 김씨는 지난 1998년 ‘안티 <조선일보>’라는 깃발을 내걸고 <딴지일보>를 창간한 후 풍자·B급 정서·유머를 지향해오고 있다. 당시 <딴지일보>에선 포장마차에서 어묵을 찍어 먹는 용도로 내는 간장의 위생 상태를 취재해 기사화하거나 국가혁명당 허경영 명예대표의 대권 도전 과정을 풍자하는 등 ‘신선한 B급 정서’를 지향해 독자적인 인기를 누렸다. 하지만 한편으로 김씨에게 평생 따라다닐 놀림거리를 남겼다. 김씨가 <딴지일보>의 채무를 해결하기 위해 여성용 성인용품을 판매했고, 성인남녀의 만남을 중개하는 사이트를 개설했던 탓이다. 보수 성향 유권자들은 여전히 김씨를 비판하면서 당시의 전력을 함께 언급한다. 이후 김씨는 ▲황우석 박사 옹호 ▲영화감독 겸 코미디언 심형래씨 옹호 등 숱한 논란을 일으켰다. 특히 황 박사 옹호는 그럴 듯한 음모론을 제시하면서도 설득력 있는 근거는 제시하지 않는 김씨의 특성과 깊이 맞물린다. 당시의 논란도 김씨에 대한 비판론을 형성하는 중심축이다. 그랬던 김씨가 막강한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게 된 계기로는 크게 2가지를 들 수 있다. 하나는 ‘문재인 대통령 만들기’를 처음 시작했다는 것이었고, 다른 하나는 팟캐스트 ‘나는 꼼수다’ 공동 진행자 중 1명으로 활동했단 것이었다. 김씨는 당시 민주당 백원우 의원이 노무현 전 대통령 영결식장에서 이명박 당시 대통령에게 거친 항의를 말리고 고개 숙여 사과하는 문 전 대통령을 주목했다. 이후 김씨는 문 전 대통령의 킹메이커를 자처했고, 이는 ‘나는 꼼수다’ 진행 이후 문 전 대통령의 대세론으로 이어졌다. ‘나는 꼼수다’는 김씨 특유의 B급 정서·음모론이 이명박정부에 대한 다양한 불만과 맞물려 대성했던 방송이었다. ‘나는 꼼수다’는 현재까지 이어지는 김씨의 성향을 구체화한 방송이라고 볼 수도 있다. 해당 팟캐스트의 상징으로 통하는 “쫄지 마”는 여전히 회자된다. ‘나는 꼼수다’는 구체적인 사실관계 검증엔 큰 관심을 두지 않았다. 명확한 당파성을 매개로 특정 정당·진영 사람들이 선호할 음모론과 괴담을 이미 밝혀진 사실관계와 섞어 전달하는 것에 집중했다. 진실과 거짓의 경계선을 적당히 왕래하면서 민주당 지지를 극대화하는 것이 주된 목적이었다. 영웅과 악당들 이는 집단의식으로 연결됐고, 김씨에겐 거대한 영향력을, 민주당엔 거대한 지지 집단을 만들어줬다. 김씨는 ‘나는 꼼수다’를 통해 단순·명쾌한 이분 구도를 완성했다. 그를 선호하는 민주당 지지자의 정치관은 “보수진영이란 거대한 악에 맞서 싸운다”는 것이다. 이는 정의로운 주인공이 지구 정복을 노리는 악당의 무리에 맞서 싸우는 어린이용 만화의 서사와 크게 다르지 않다. 아울러 현재 민주당 핵심 지지 세대로 알려진 4050세대가 미국의 마블 시네마틱 유니버스를 선호하는 것과 연결해볼 수 있다. 이 세계관엔 초월적인 힘을 갖고 모든 생명체의 절반을 죽여 우주를 정화하려는 악당에 맞서는 영웅들이 등장한다. 이 세계관에 결정적인 영향을 준 사건은 지난 2009년 노무현 전 대통령 사망사건이었다. 이들에게 노 전 대통령 사망사건은 거대 악당과 싸워야 하는 당위성을 제공해주는 절대적인 명분이었다. 김씨가 이 사건에 주목하고, 상주로서 백 전 의원의 항의를 제지하던 문 전 대통령을 주목한 것은 당연한 순서였다. 우리 고전문학 중 전설은 김씨의 평소 주장과 비슷한 서사 구조를 띠고 있다. 전설은 능력이 뛰어난 주인공이 현실의 한계에 좌절하고 무너지는 비극적인 구조를 취한다. 또 설득력을 부여해야 많은 사람에게 퍼질 수 있어서 실제 존재하는 지역·지명을 매개로 그럴듯하게 전개된다. 여기엔 각박한 현실을 바꿔줄 새로운 영웅의 출현을 기대하는 민중의 소망이 담겨있다. 그래서 조선시대엔 “정씨 성을 가진 영웅이 새 나라를 만들어 왕이 될 것”이란 취지의 예언서가 오랫동안 돌아다녔다. 김씨의 주장은 21세기판 전설이라고 할 수 있다. 김씨는 민주당과 주변 진영을 취약한 상황에서 거대한 악에 도전하는 영웅으로 묘사하고, 지지자들은 그 영웅담에 환호한다. 그러면서 “거대한 악에 맞서 싸우는 영웅을 또 잃을 수 없다”는 공감대를 공유한다. 그들은 “대통령을 지켜야 한다”는 같은 목표를 공유한다. 김씨는 ‘김어준 유니버스’ 혹은 ‘민주 유니버스’를 만들었고, 지지자들은 관객을 넘어선 참여자로서 희열과 보람을 느낀다. <한국일보>는 지난 2017년 이들의 세계관을 소개하면서 “대통령이 국민을 지켜야지, 왜 국민이 대통령을 지켜야 하느냐”고 비판했다. 완전히 다른 ‘B급 정서’ 카타르시스·도파민 차이 김씨는 ▲세월호 고의 침몰설 ▲천안함 피격 사건 관련 가짜 뉴스 살포 ▲코로나19 대구 확산설 등 주장을 이어가면서 지지자들에게 정치적 카타르시스와 도파민을 제공했다. 그들이 김씨를 통해 느낀 카타르시스와 도파민은 고스란히 민주당의 정치적 자양분이 됐다. 그래서 총선 출마 후보들은 김씨가 보는 앞에서 지지자들에게 큰절을 해야 했다. 윤석열 전 대통령이 지난해 12월 비상계엄을 선포하면서 체포 대상 중 1명으로 김씨를 지목했던 것은 김씨에게 엄청난 이익이 됐다. 당시 계엄군은 김씨가 진행하는 유튜브 채널 ‘김어준의 겸손은 힘들다 뉴스공장’ 스튜디오 주변을 통제했다. 김씨는 지난해 12월13일 국회에서 “계엄군이 국민의힘 한동훈 전 대표를 사살한 후 북한 소행으로 공작하려고 했다”면서 “정보 출처는 국내에 대사관이 있는 우방국”이라고 주장했다. 이후 “그 우방국은 미국 아니냐”는 의문이 제기됐지만, 미국은 국무부·주한미국대사관을 통해 이를 부인했다. 반면 민주당 최민희 의원은 자신의 페이스북을 통해 “‘김어준님’의 증언을 허구로 단정하고 비난부터 하는 것은 무모하다”고 주장했다. 국민의힘과 보수 세력은 민주당과 그 주변 세력처럼 정교한 조직체를 만들지 못했다. 보수 세력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스피커 역할은 전씨와 전광훈 사랑제일교회 목사가 맡고 있다. 하지만 이들은 김씨처럼 진영 전체를 들썩일 수 있는 정치적 유머 감각과 설득력을 갖추지 못했다. 카타르시스와 도파민을 제공하지도 못한다. 이 때문에 이들의 주장은 강경 보수 지지자들 외 국민 사이에서 웃음거리로 전락한 지 오래고, 국민의힘 내부서도 강하게 비판한다. 국민의힘이 지난 2022년 대선과 지방선거에서 이겼을 당시엔 민주당에 비판적인 2030세대 남성과 6070세대를 아울러 민주당을 지지하는 4050세대와 2030세대 여성을 포위한다는 ‘세대포위론’ 전략이 제시됐다. 그러나 윤 전 대통령과 개혁신당 이준석 대표가 불화 끝에 결별하면서 이 연합은 얼마 가지 못해 해체됐다. 당시 승리를 주도했던 국민의힘 지지층은 이 대표 특유의 합리주의를 지지하는 젊은 유권자와 강경 보수를 지향하는 노년 유권자로 분열됐다. 전씨는 많은 공무원 제자를 거느린 유명 한국사 강사였다. 따라서 적절히 순화된 주장과 교묘하게 선정한 정치적 입지를 섞어서 정치 전면에 나섰더라면, ‘보수의 김어준’이 될 수도 있었다. 하지만 전씨는 김씨와 달리 그럴듯한 이야기를 구성하고 유머를 섞는 능력을 보여준 적이 없다. 전씨의 옛 제자들은 그를 강하게 비판하고 있다. 절대로 정치 전면에 나서지 않는 김씨와 달리, 직접 국민의힘에 입당해 당 대표 선거에 출마하려 하는 등 적당히 선을 긋지도 않는다. 정치인들이 알아서 자신의 스튜디오에서 큰절을 하게 만드는 김씨와 달리, 전씨는 스스로 영향력을 과시하기 위해 전당대회서 눈에 띄는 행동을 했다. 전에겐 없는 것들 무엇보다 김씨가 “이 대통령을 능가하는 영향력을 가진 것 아니냐”는 설까지 나올 정도로 강력한 영향력을 구축하기까지 15년이 걸렸단 사실도 제대로 통찰하지 못한 것으로 보인다. 결정적으로 국민의힘은 정치 구조를 통찰하지 못해 민주당이 장기간 공들여 구축한 정치 구조체를 갖추지 못했다. 그런데도 전씨는 ‘전한길 유니버스’ 제작을 멈추지 않는다. 과연 전씨는 ‘보수의 김어준’이 될 수 있을까? <ctzxp@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