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기획> 가습기살균제 참사, 그후 ③공정위-가해 기업 수상한 상부상조

팁까지 주고받고…몰래 한 스킨십

[일요시사 취재1팀] 오혁진 기자 = 사회적참사 특별조사위원회의 세월호·가습기살균제 사건 진상규명 활동이 지난 6월 마침표를 찍었다. 작은 성과가 있었으나 피해자와 유족의 눈높이에 맞는 결과물을 내놓지 못했다는 평가를 받았다. 사참위 가습기살균제 사건 진상규명 소위원회가 4년 가까이 조사해온 결과물을 입수한 <일요시사>는 공정거래위원회와 SK케미칼 간의 유착 의혹에 대해 알아봤다.

가습기살균제 피해자들은 공정거래위원회가 가해기업들 중 SK케미칼에만 유독 약한 모습을 보였다고 주장한다. 가습기살균제 원료인 폴리헥사메틸렌구아니딘(PHMG)·염화에톡시에틸구아니딘(PGH)과 클로로메틸아이소티아졸리논(CMIT)·메틸아이소티아졸리논(MIT)을 만들었음에도 제대로 된 처벌을 받지 않았다는 것이다. 실제 공정위는 SK케미칼에 대해 무혐의라는 면죄부를 던져줬다.

전관 미팅에…
조사 않고 무혐의

공정위는 2011년 9월 가습기살균제 피해자와 시민단체의 신고로 제조·판매업체들에 대해 조사하기 시작했다. 처음 조사 대상이 된 기업은 애경산업과 이마트다. 이들 기업은 CMIT·MIT 성분이 포함된 가습기메이트, 이플러스 가습기살균제를 판매한 사업자였으나 2012년 2월14일 서울지방공정거래사무소장(심사관) 전결로 무혐의 처분을 받았다.

이 과정에서 심사관은 표시·광고 행위의 책임자이자 제조원 및 라벨 표시에 관여했던 SK케미칼은 조사하지 않았다.

사회적참사 가습기살균제진상규명소위원회(특조위)는 공정위가 법령상 충분한 조사 기간이 있었음에도 자세한 사실관계 확인 없이 안건을 처리했다고 봤다. 통상 공정위 신고가 접수된 후 사건처리까지는 4~5개월 정도의 시간이 소요된다.


그러나 공정위는 충분한 조사기관과 법령상 조사업무 협조를 받을 수 있는 기관들이 있었음에도 적극적으로 사안을 검토하지 않았다.

특히 SK케미칼로부터 받았다며 애경이 공정위에 제출한 안전성 검토자료에는 ‘안전성이 155배 확보돼 안전역(Margin of Exposure) 판단 기준인 100배보다 크므로 제품의 안전성이 확보됐다’고 적혀 있었으나, 이 자료는 2016년 국회 가습기살균제 국정조사에서 전문가에 의해 안전성을 확보한 것이 아니라 오히려 위험하다는 것을 입증한 자료였다.

이외에도 공정위는 표시광고법 제5조(표시·광고 내용의 실증 등)에 따라 실증자료의 객관성과 타당성을 판단하기 위한 업계, 학계 등 관련 전문가의 의견이나 자문을 구하지 않았다. 표시광고법에 따르면 공정위는 조사 대상이 된 기업이 제출한 실증자료가 요청한 내용에 따르지 않아 보완의 필요가 있는 경우 보완을 요청해야 한다.

또 사업자가 제출한 실증자료를 심사할 때 표시·광고에서 주장하는 내용과 직접적인 관계가 있는지를 판단해야 한다. 제출된 실증자료가 객관적이고 과학적인 자료라 하더라도, 실증자료에서 입증한 내용이 실제로는 표시·광고에서 주장하는 내용과 관련이 없는 경우 표시·광고 내용에 대한 합리적인 근거로 인정되지 않는다.

두 번째 조사인 2016년도 결과는 같았다. 신고를 접수받은 서울지방공정거래사무소는 2016 국회 가습기살균제 국정조사 업무(자료 제출) 등을 맡았다. 당시 사건 접수를 검토했던 공정위 실무관계자들은 사안의 중요성을 들어 태스크포스(TF) 구성이나 공정위 본부 차원의 재조사를 제기했으나 김학현 당시 공정위 부위원장은 새로운 신고사건으로 보고 서울사무소 처리를 지시했다.

전관예우 규제책? “오히려 늘었다”
“12·16·18년 모두 부실·소극적 대응”

결국 사건의 중대성을 감안하지 않은 당시 부위원장의 판단 및 공정위의 지원(본부 차원의 TF구성 등) 부재는 이후 부실 조사를 초래했다.


2012년과 같은 사건이라고 판단한 공정위는 애경과 SK케미칼이 제출했던 ‘가습기메이트 표시·광고 관련 소명’ 자료도 들여다보지 않았다. 이들 가해기업이 제출한 자료는 2012년과 마찬가지로 안전성 검토와는 관련 없는 자료들이었다.

정치권과 언론의 비판이 이어지자 공정위는 2017년 9월29일부터 12월13일까지 가습기살균제 TF를 구성해 운영했다. TF는 공정위의 2012년 사건처리와 관련해 SK케미칼을 조사하지 않은 행위가 잘못되지 않았다고 판단했다.

CMIT·MIT 주성분 가습기살균제에서는 폐섬유화 소견이 발견되지 않았다는 질병관리본부의 동물 실험 결과 발표 내용(2012년 2월)이 주된 근거였다.

해당 사건 제품의 기사성 신문광고의 광고행위 종료일(처분시효 기산점)은 기사 게재 시점 등 행위 시점으로 판단했고 2012년 사건 처리 당시 기사성 신문광고의 처분시효가 도과돼 질본의 결론에만 의존할 수밖에 없었다는 것이다.

그러나 TF는 2016년의 판단은 잘못됐다고 인정했다. TF가 지적한 공정위의 사건 처리는 다음과 같다.

▲CMIT·MIT 함유 가습기살균제 제품의 인체 유해 가능성이 존재함에도 공정위가 인체위해성이 명확히 증명되지 않았다며 위법성 여부를 판단하지 않고 심의절차를 종료한 것은 표시·광고법의 입법 취지에 맞지 않음 ▲사안이 중대했음에도 전원회의가 아닌 소회의에서 처리한 점 ▲공정위 소회의를 유선통화로 심의 진행하면서 피해자 현황 등 중요 사실을 논의하지 않은 점 등이다.

TF는 공정위의 이 같은 부실행정을 지속하면서 SK케미칼을 포함한 가해 기업들에 대한 추가 조사와 재심의를 권고했다.

공정위는 가해 기업 조사 중 전관이 포함된 기업관계자와 면담을 진행했다. 특조위는 공정위의 해당 행위가 기업에만 일방적인 진술 기회를 준 것이라고 판단했다. 소극적 심의 절차를 거치는 과정에서 심의를 운영하는 주심위원이 사건과 관련된 자료를 부실하게 확인한 상황이었기 때문이다.

사실상
면죄부

<일요시사>가 입수한 특조위 가습기살균제 참사 보고서에 따르면 김성하 전 공정위 상임위원은 내부규정을 어겼다.

공정위 고시 공정위 회의 운영 및 사건절차 등에 관한 규칙 제30조 제2항과 제3항을 보면 심의 절차와 조사 관련 면담을 진행하는 담당자는 피심인 일방만을 접촉해서는 안 된다. 특히 상임위원이 사건 당사자를 면담할 경우 담당 심결보좌 입회하에 설명을 청취해야 하고 입회한 직원은 사건 당사자의 방문일시 및 목적·내용 등을 방문일지에 기록하도록 규정하고 있다.

그러나 공정위 직원은 기업관계자 14인이 2016년 8월3일부터 8월9일까지 주심위원을 방문할 때 방문일지를 작성하지 않았다.


같은 해 SK케미칼 측은 관계사를 통해 가습기살균제 사건에 관여하는 공정위 직원을 접촉했다. SK하이닉스에 재취업한 공정위 과장 출신 A씨는 심의 개최 약 한 달 전인 7월15일과 심의 당일인 8월12일 공정위 조사부서인 서울사무소에 방문했다.

8월12일은 공정위는 소회의 심의가 진행된 날이다. 이 심의엔 기업 측 대리인도 참석했다. 공정위는 1주일 뒤 ‘유해성이 입증되지 않았다’며 사실상 ‘무혐의’ 조치인 심의 절차 종료를 결정했다. 이 사건을 신고했던 가습기살균제 피해자는 사건이 처리되는 동안 심의위원을 만나지 못한 데 이어 소회의도 참석하지 못했다.

2018년 국회에 제출된 공정위 재취업자 출입기록에는 A씨가 주심과 두 차례 면담 자리를 가졌다. 공정위 조사관 출신 한 관계자는 “공정위 직원이라면 이름 1명만 적어도 타 기관·기업 관계자와 자유롭게 드나들 수 있다”며 “안에서 정확히 몇 명이서 미팅을 했는지는 확인하기 어려울 것”이라고 말했다.

당시 공정위 퇴직자와 사건 담당자의 접촉을 규제하는 장치는 전무했다. 표시·광고법 등과 관련해 사업자에 대한 법적 제재 수위를 결정하는 공정위 회의가 사실상 법원의 1심 기능을 하기 때문에 퇴직자와 심의위원의 만남이 적절치 않다는 비판이 상당했다.

퇴직자와
심의위원

공정위의 마지막 조사는 2017년에 시작됐다. 가습기살균제 진상규명에 힘쓰겠다고 공언한 김상조 전 공정위원장은 “2016년 심의종료 결정할 당시 처분시효는 지난해 5월까지고, 향후 환경부가 실험을 통해 CMIT·MIT의 인체 위해성 인과관계를 입증할 경우 언제든 과징금 부과, 경고 등 제재가 가능하다”고 밝힌 바 있다.


이후 환경부는 2017년 9월경 공정위에 유해성 관련 공문을 보냈다. 공정위 사무처는 내부적으로 SK케미칼과 애경산업에 각각 250억원과 81억원 한도 내에서 과징금을 부과하고 전 대표이사 등을 형사 고발하는 내용의 심사보고서까지 작성했지만, 최종 결론은 뒤집혔다.

공정위는 SK케미칼과 애경, 그리고 유사 제품을 자체 브랜드(PB) 상품으로 판매한 이마트에 시정명령과 과징금을 부과했다. 과징금은 SK케미칼 3900만원, 애경산업 8800만원, 이마트 700만원이 각각 부과됐다.

각 기업에 적용된 혐의의 처분시효가 지났다는 지적이 제기되면서 공정위와 가해기업 간 소송이 진행되기도 했다. 서울고등법원은 2019년 10월 SK케미칼이 ‘시정명령 및 과징금 납부 명령을 취소하라’고 제기한 소송에서 원고 승소 판단했다.

법원은 이마트와 애경이 각각 제기한 시정명령 취소 행정소송에서도 공정위 패소를 판결했다. 재판부는 “2011년과 2016년 조사는 동일한 사실관계에 대한 조사”라며 “기본적 사실관계가 동일한 이상 그에 대해 두 번 이상 조사를 하면서 그때마다 조사의 단서를 달리했거나 새로 적용법령을 추가했다고 해서 조사의 대상이 달라지거나 새로 생기는 것은 아니다”고 판단했다.

판결 직후 피해자들은 “공정위가 손 놓고 있는 사이, 기업이 인체에 무해하다는 광고로 사람을 죽여도 아무런 처분을 받지 않는다는 선례를 만들어 준 셈”이라면서 비판에 나섰다.

표시광고 행위 책임 조사 검토도 안 해
부적절한 만남 후 면죄부 던져준 정황

그러나 대법원 2부(주심 천대엽 대법관)와 3부(주심 김재형 대법관)는 지난 4월 애경·SK케미칼이 공정위를 상대로 낸 시정명령·과징금납부명령 취소소송 상고심에서 원고 승소로 판결한 원심을 깨고 사건을 서울고법으로 돌려보냈다. 대법원은 애경과 SK의 위법 행위가 종료되는 시점을 다시 따져봐야 한다며 달리 판단했다.

2012년 3월 개정된 공정거래법은 ‘위반행위 종료일로부터 5년’이던 기존의 제척기간을 ‘조사 개시일로부터 5년 또는 행위 종료일로부터 7년’으로 바꿨는데, 두 업체의 위반 행위가 개정 공정거래법 시행일(2012년 6월) 이후에 끝났다면 새로운 제척기간이 적용되므로 공정위 처분이 유효할 수 있다고 대법원은 설명했다.

대법원은 “공정위가 조사에 착수한 시점 전후에 걸쳐 위반 행위가 계속된 때는 그 위반 행위가 종료된 시점에서야 비로소 ‘최초로 조사하는 사건’이 된다”며 “공정거래법이 정한 조사 개시일은 ‘위반 행위 종료일’로 보는 것이 타당하다”고 판시했다.

대법원은 표시광고법을 위반한 상품이 유통될 수 있는 상태가 계속되는 이상 상품 수거 등 시정조치가 완료될 때까지 위법 상태가 계속된다고 밝혔다. 위법 상태가 끝나는 때는 ‘생산 중단’이나 ‘적극적으로 수거하기 시작한 시점’이 아니라 시중에서 문제의 상품이 모두 사라져 소비자가 더는 피해를 보지 않는 ‘위반 행위 종료일’이라는 것이다.

대법원은 애경과 SK가 2011년 8월 말부터 표시광고법을 위반한 가습기살균제를 생산·유통하지는 않은 것으로 보이지만, 이후에도 제3자에 의해 유통된 적은 있다고 했다. 그럼에도 원심(서울고법)은 공정위 처분이 제척기간을 지난 점만 따졌을 뿐 그 처분 내용이 적정한지는 제대로 심리하지 않았다고 지적했다.

이처럼 가습기살균제 참사에 대한 공정위의 조사가 마무리될 줄 알았으나 지난달 29일 헌법재판소가 가습기살균제 관련 광고성 온라인 기사도 공정위 조사 대상이라는 결정을 내리면서 상황은 반전됐다. 2016년 조사 당시 공정위는 기자 이름이 쓰인 2005년의 온라인 기사는 심의 대상에서 제외했다.

그러나 헌재가 기사 형식이라도 광고로 볼 수 있고, 처분시효가 지나지도 않았다고 판단하면서 상황이 달라졌다. 해당 기사 3건은 여전히 구글과 언론사 홈페이지에서 찾을 수 있다. 헌재는 ‘당시 공정위가 사건을 종결할 때까지 인체 위해성 여부가 판단되지 않았으므로 거짓·과장 광고로 보고 행정처분과 고발을 할 가능성도 있었다’고 지적했다.

마지막 기회
일부로 놓았나

이번 공정위의 조사는 속도전이 될 전망이다. 표시광고법상 제품이 마지막으로 판매를 위해 마트 등에 진열된 시점을 기준으로 공소·처분시효를 계산하기 때문이다. 공정위 관계자는 “사건 처분시효와 공소시효가 오는 31일까지라 헌재 결정이 나온 이후 바로 현장조사에 들어갔다”며 “최대한 빨리 결론을 내고 검찰에 고발하는 등의 조치를 취할 것”이라고 말했다.

공정위가 이달까지 결론을 내지 못하면 과징금이나 시정명령을 부과할 수 없고, 검찰에 고발하더라도 공소시효가 지나 기소가 불가능하다.


<hounder@ilyosis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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범여권 3각 권력 재편 시나리오

범여권 3각 권력 재편 시나리오

[일요시사 정치팀] 박희영 기자 = 정청래·조국·김민석 세 사람이 삼각관계로 얽혔다. 더불어민주당 정청래 대표는 연임을, 조국혁신당 조국 대표는 자당의 생존을, 김민석 국무총리는 청와대의 명을 받아 권력 싸움에 참전했다는 해석에 힘이 실린다. 세 사람이 만든 새로운 소용돌이가 여의도를 향하고 있다. 이들이 범여권 지형에 어떤 영향을 미칠지 이목이 쏠린다. 여당 대표인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 정청래 대표의 그립감이 강해졌다. 지난 3일 대의원·권리당원 1인1표제 도입을 담은 당헌 개정안이 재적 위원 과반의 찬성으로 문턱을 넘은 것이다. 이로써 오는 8월 민주당 전당대회에서부터 대의원과 권리당원이 동일한 한 표를 행사하게 된다. 존재감 굳히기 민주당에 따르면 중앙위원 총 590명 중 87.29%인 515명이 투표에 참석했다. 이 중 찬성 312명(60.58%), 반대 203명(39.42%)으로 의결 요건을 충족했다. 이후 정 대표는 긴급 기자회견을 열고 “핵심 공약이자 1호 공약이라고 할 수 있는 1인1표제를, 임기 안에 약속을 지킬 수 있게 돼 보람 있게 생각한다”며 “대한민국은 법치국가이고 모든 법의 으뜸은 헌법이다. 헌법에서 명령하고 있는 보통·평등·비밀투표, 1인 1표제는 진작에 민주당에서 시행돼야 마땅했다”고 강조했다. 이어 “1인1표 시행으로 가장 직접적인 효과는 당내 계파가 해체되는 것이라고 예상한다”며 “10년이 넘게 1인1표제, 당원이 주인이 되는 정당, 당원 주권 시대를 부르짖었는데, 드디어 마침표를 찍게 돼 개인적으로도 무한한 기쁨”이라고 소회를 밝혔다. 1인1표제가 통과되자 권리당원 사이 지지도가 높은 정 대표의 연임 가능성이 탄력을 받았다는 해석이 제기된다. 지난해 8월 치러진 전당대회서 정 대표는 전국 대의원 투표에선 46.91%로 박찬대 의원(53.09%)에게 열세를 보였으나 권리당원 투표서 66.48%의 득표율을 기록해 박 의원(33.52%)을 앞질렀다. 다만 6대 4라는 투표 결과를 놓고 정치권의 분석이 엇갈렸다. 정족수보다 16명 많은 ‘턱걸이 통과’로 리더십을 굳히기엔 명분이 약하다는 점에서다. 1인1표제 재추진에 제동을 걸던 집단의 반대표가 늘어난 것 역시 주목할 만하다. 지난해 치러진 첫 투표 당시 투표율이 62.58%로 두 달 만에 20%p 올랐지만, 반대표 역시 102표에서 203표로 두 배 가까이 늘어났다. 이에 민주당 권칠승 의원은 한 라디오를 통해 “1인1표가 갖는 대의엔 다 동의하지만 현재 민주당뿐만 아니라 대한민국 정당이 갖고 있는 당원 구조의 취약성 때문에 1인1표제하는 게 맞느냐는 것에 대한 회의는 좀 있는 것 같다”며 “후속 정비가 반드시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저는 대의엔 찬성하지만 지금 상태에서 그냥 (1인 1표제를) 적용하면 부작용이 있다”고 설명했다. 정 대표의 두 번째 승부수였던 조국혁신당(이하 혁신당)과의 합당도 여전히 불투명하다. 합당에 반대하는 최고위원들이 정 대표를 정면으로 들이 받으며 갈등이 수면 위로 떠오른 것이다. 독주하는 정청래, 승부수는 던졌는데… “합당 못해” 마주하기도 전 무산 위기 민주당 이언주 최고위원은 “혁신당과의 합당 논란이 벌써부터 차기 대권을 의식한 논의로 번져 걱정”이라며 “‘큰 배를 띄우려면 본류를 타야 한다’면서 마치 민주당을 조국 대표의 대통령 만들기 수단으로 여기는 발언까지 나오는 실정”이라고 지적했다. 이어 “지금은 이재명 대통령의 시간이지 차기 대권주자를 밀어줄 시간이 아니”라며 “야당도 아니고 여소야대도 아니고 과반 의석을 차지한 강력한 집권여당에서 대통령 지지율이 60%에 육박하는데 왜 벌써부터 이런 얘기가 나오는지 괴이하기까지 한 상황”이라고 말했다. 민주당 강득구 최고위원 역시 “어제(3일)부터 지방선거 예비후보 등록이 시작됐고 중앙당과 시도당은 후보자 공모를 진행하고 있는데 이런 시점에서 합당을 밀어붙이면 혼란만 커진다. 공천 기준, 경선 룰이 흔들린다”며 “합당 논의를 당장 멈춰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럼에도 정 대표는 전체 당원 여론조사와 토론 등을 통해 의견을 수렴하겠다며 의견을 굽히지 않고 있다. 일련의 과정에 대해 한 정치권 관계자는 “공천권만 손에 넣으면 세력은 알아서 따라붙게 돼있다. 정 대표는 ‘축구 경기에서 1대 3이나 3대 0이나 같다’고 말하면서까지 1인1표제를 밀어붙였다. 당 대표 연임에 선을 긋고 있지만 연임을 통한 공천권 확보를 포석에 뒀다고 해석하지 않을 수가 없다”며 “조 대표를 끌어들여 본격적으로 자기 세를 넓히려는 것 아니겠느냐”라고 해석했다. 정 대표가 띄운 합당론에 혁신당이 휘말리는 듯한 그림이 됐다. 그동안 혁신당 조국 대표는 민주당과의 합당에 선을 그어왔지만 현실이라는 벽에 부딪혔고, 이번 합당 논의 역시 자당을 살리기 위해 민주당의 손을 잡은 것으로 전해진다. 결국 세를 불려야 하는 정 대표와 대권주자로서 도움닫기 공간이 필요한 조 대표의 니즈가 맞아 떨어졌다는 해석이 나온다. 합당 테이블이 마련되기도 전 민주당 내 집안싸움이 불거지면서 혁신당과의 논의조차 시작하지 못했다. 합당 논의에 촉각을 세우는 사이 이번에는 혁신당이 추진하는 토지공개념을 놓고 이견이 갈렸다. 이언주 최고위원이 토지공개념에 반대 의사를 표하자 조 대표가 “헌법재판소가 합헌이라고 판시한 것. 어이없다”고 맞받아치면서 새로운 갈등의 씨앗이 뿌리를 내린 것이다. 꼿꼿한 자존심 토지공개념이 난타전으로 번진 이유는 최근 집값 등 부동산을 저격하는 이재명 대통령과의 행보와도 맞물려 있다는 분석이다. 이 최고위원은 “토지공개념은 과거 공산주의 몰락 이전 토론의 대상이 될 수 있었을지 모르지만 AI 대전환과 글로벌 자본 유치, 기술 경쟁이 국가의 생존 과제가 된 지금의 시대 현실과는 분명한 괴리가 있고, 시대착오적이라는 평가를 피하기 어렵다”고 주장했다. 이어 “대통령이 강력한 부동산 공급 대책을 내놓고 있는데 토지공개념 입법화를 주장하는 조국혁신당과의 합당 주장이 대두되면 대통령의 건강한 개혁 의지마저 희석되고 곡해돼 공격받을 여지가 크다”고 강조했다. 혁신당이 주장하는 토지공개념은 토지의 사유재산권을 전면 인정하되, 공공의 이익을 위해 필요한 경우 그 이용을 제한할 수 있다는 원칙을 골자로 한다. 지난 2일 열린 ‘신토지공개념 입법추진단 출범식 및 토론회’서 혁신당 차규근 의원은 입법을 비판한 여당을 향해서는 “하나부터 열까지 모두 틀린 주장”이라고 지적했다. 차 의원은 “토지공개념은 토지의 사유재산권을 전면 인정하되, 공공의 이익을 위해 필요한 경우, 이용을 제한할 수 있다는 원칙”이라며 “헌법재판소도 1989년 토지거래허가제 사건 판결에서 모든 사람의 생존권을 보장하기 위해 토지 소유권은 절대적인 권리가 될 수 없으며, 공공복리 증진을 위해 의무와 제약을 수반하는 방향으로 변화해 왔다고 판시했다”고 설명했다. 이 최고위원의 주장을 반박하기도 했다. 차 의원은 민주당 강령을 언급하며 “토지 재산권 행사의 합리성을 담보하는 제도적 장치를 구축해 지대 수익으로 인한 경제 왜곡과 불평등을 방지한다고 명시돼있다”며 “현재 시행 중인 토지거래허가제와 개발이익환수제 역시 모두 토지공개념에 기반한 제도”라고 꼬집었다. 혁신당과의 합당 논의가 진행 중인 민주당 일각에서는 민감하게 반응하고 있다. “토지공개념을 포기하지 않는 한 합당 논의는 불가능하다”는 주장까지 제기됐다. 그럼에도 혁신당이 이를 추진하는 이유는 혁신당이 민주당에 흡수 합당되는 것만은 피해야 한다는 분위기 때문인 것으로 전해진다. 민주당에 혁신당 DNA가 섞이는 게 아닌, 혁신당의 정체성을 잃지 않으면서 민주당과 함께하는 그림을 그려야 한다는 점에서다. 논의를 띄운 이상 합당을 하든 약속을 파기하든 결과가 나와야 한다. 그러나 “주판알을 굴렸을 때 합당 가능성이 낮다”는 게 한 여의도 관계자의 전언이다. 로망을 현실로? 이 관계자는 “어떤 방법으로든 조 대표가 민주당과 함께한다면, 차기 당권을 놓고 정 대표와 경쟁할 수도 있을 것”이라고 봤다. 이어 “두 사람(정 대표, 조 대표) 모두 대권주자로서 욕심이 있다. 시기가 언제가 됐든 다음 대선을 위해 경쟁하는 사이가 될 것”이라며 “종래에 서로를 집어삼키려는 계파 싸움으로까지 번질 우려가 있다”고 전했다. 조 대표를 등에 업고 빠른 보폭으로 걷는 정 대표의 시선 끝에는 김민석 국무총리가 있다는 해석이 나온다. 김 총리가 “당 대표에 로망이 있다”고 말하면서 8월 전당대회 출마설에 스스로 불을 지핀 것이 화근이다. 여기에 청와대에서까지 김 총리를 차기 당 대표로 세우려 한다는 분석이 나오면서 정 대표의 셈법이 더욱 빨라졌다는 해석이다. 그동안 김 총리의 대표 도전설은 꾸준히 회자했다. 지난달 23일 국무총리실은 공지를 통해 서울시장 선거 여론조사에서 김 총리 이름을 빼달라고 요청했고, 이에 정치권 일각에서는 김 총리가 서울시장이 아닌 민주당 당 대표를 노리는 게 아니냐고 봤다. 여기에 김 총리가 한 유튜브를 통해 정 대표와 차기 대표 자리를 놓고 경쟁할 수 있다는 관측에 대해선 “민주당의 당 대표는 굉장히 자랑스러운 일이기 때문에 당연히 로망은 있다”고 말하면서 본격적으로 불씨를 댕겼다. 다만 김 총리는 “세상(일)이 욕심을 낸다고 되는 것이 아니라는 점은 안다. 욕망의 정치로 뭔가를 풀려고 하지 않는 편”이라며 조심스럽게 입장을 전했다. 그러던 중 민주당-혁신당 합당 논쟁에 김 총리가 뛰어들면서 당권을 둘러싼 경쟁이 시작됐다는 관측이 다시 나왔다. 김 총리는 지난 2일 서울 종로구 총리공관에서 열린 기자간담회에서 “이런 시점, 이런 방식으로 진행될 줄은 몰랐다”며 정 대표의 합당 방식을 꼬집었다. 그러면서 “민주당은 뿌리 깊은 정당이기에 당원들의 뜻을 묻는 민주적 절차를 반드시 거쳐야 하며 그렇지 않으면 통합 자체가 누구에게도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강조했다. 김 총리는 당 대표 선출 전당대회 출마설과 관련해 “(앞서 대표직에 대해 언급한) 로망이라는 단어가 이렇게 많은 말들을 불러올지는 몰랐다”며 “(당시 대표 출마 여부는 직접적으로 묻지 않기에) 국정에 전념한다고 했고, 오늘 기자간담회 내용을 주의 깊게 보면 굉장히 강력한 국정 전념 의지가 담겨있다는 것을 알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어 “앞으로는 서울시장 선거로 본인(김민석)이 할 생각 없는데 서울시장 선거와 관련돼 거론되는 것이 국정 운영에 도움도 안 돼 거론되는 일이 없었으면 좋겠다”며 “당과 관련한 부분에 대해서도 제가 대표라는 평소 로망을 이야기한 것이고 또 합당 등 모든 문제들은 당의 질서 속에서 충분히 논의될 것으로 보고 제가 더 이상 현재 당내 문제와 연관돼서 소환되거나 호출되거나 이러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김민석 카드’ 청와대가 띄웠다? “당 대표 로망” 한마디에 ‘술렁’ 이후 김 총리는 3일 페이스북에 올린 글에서 전날 신년 기자간담회를 언급하며 “기자간담회의 핵심은 한층 높은 ‘책임감’으로 국정에 ‘전념’한다는 것이다. 정책 관련한 질문에는 훨씬 적극적으로 답하겠다”며 출마 의지가 없음을 강조했다. 김 총리가 거듭해서 출마설에 선을 긋지만 계속해서 이름이 오르내리자 정치권 일각에서는 이를 정 대표의 대항마로 김 총리를 띄우기 위한 청와대의 물밑작업으로 봤다. 김 총리는 지난 총선 상황실장을 맡아 합을 맞춰오는 등 이 대통령과 연이 깊은 인물로 이 대통령의 의중인 ‘명심’을 등에 업어 민주당 수석최고위원 자리까지 오르기도 했다. 지난 2024년 민주당 전당대회서 김민석 의원의 최고위원 후보로 출마했지만, 사전 득표율이 저조했다. 이에 이재명 대표 후보는 첫 지역 순회 이후 김 후보와 함께 차 안에서 유튜브 라이브를 진행하면서 “(김 후보) 왜 이렇게 표가 안 나오느냐”며 “제 선거를 도와주느라 본인 선거(운동)를 못 해 결과가 잘못되면 어쩌나 부담된다”고 언급했다. 이후 민주당 커뮤니티 등에서는 “이재명이 김민석을 낙점했다”는 글이 퍼졌고, 빠르게 순위가 뒤집혀 단숨에 수석최고위원으로 올라섰다. 이처럼 청와대에서 정청래 체제의 힘을 빼기 위해 다시 한번 ‘김민석 카드’를 띄우고 있다는 해석이 나온다. 청와대가 정 대표를 견제하는 것은 정 대표가 ‘당원 주권 정당’ 등을 명분으로 당을 강하게 쥘 것을 우려했기 때문이라는 점에서다. 한 여권 관계자는 “정 대표의 행보가 모두 이해는 간다. 명분도 좋다. 문제는 시기가 너무 빨랐던 것”이라며 “이재명정부 출범 극초기부터 갈등이 불거졌다. 청와대 입장에서는 대놓고 발톱을 드러내는 정 대표가 장기간 민주당을 주무르는 게 달갑지 않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민주당은 지방선거를 앞두고 집안싸움이 격화하는 것을 경계하고 있다. 혁신당 역시 합당 논의가 잘 풀리지 않을 경우 조 대표의 탓으로 돌리는 것을 우려하는 것으로 전해진다. 지방선거가 끝나는 대로 정치권의 시선은 8월 민주당 전당대회로 쏠리는 만큼 6월 전 합당 논의가 매듭을 지을지가 최대 관건이다. 숨길 수 없는 불편한 심기 혁신당 황현선 인재영입위원회 부위원장(전 사무총장)은 자신의 SNS를 통해 이 대통령과 김 총리, 정 대표를 모조리 언급하며 현 상황을 직격했다. 황 위원장은 “이 싸움(합당)의 최대 피해자는 이 대통령이다. 언젠가 후계 전쟁이 벌어질 것을 예상했겠지만 집권 1년도 안 돼 심각한 내분에 직면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이어 “친K(김민석 국무총리) 세력이 선공을 하고, 선방 맞은 친J(정청래 대표)의 반격도 시작될 것”이라며 “지금은 대통령 눈치보며 권력투쟁을 벌이겠지만 총선에 다다를수록 눈치 보지 않는 싸움이 될 것”이라고 꼬집었다. <hypak28@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