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기획> 가습기살균제 참사, 그후 ②가해 기업들의 짬짜미 그림자

정보 공유에 몰래 회의까지

[일요시사 취재1팀] 오혁진 기자 = 사회적참사 특별조사위원회의 세월호·가습기살균제 사건 진상규명 활동이 지난 6월 마침표를 찍었다. 작은 성과가 있었으나 피해자와 유족의 눈높이에 맞는 결과물을 내놓지 못했다는 평가를 받았다. <일요시사>는 사참위 가습기살균제 사건 진상규명 소위원회가 4년 가까이 조사해온 결과물을 입수했다. 이 보고서에는 가습기살균제 원료를 만든 SK케미칼과 애경산업의 만행이 적나라하게 담겨있다.

SK케미칼과 애경산업(애경)은 가습기살균제 참사의 원흉이라고 불린다. 가습기살균제 원료인 폴리헥사메틸렌구아니딘(PHMG)·염화에톡시에틸구아니딘(PGH)과 클로로메틸아이소티아졸리논(CMIT)·메틸아이소티아졸리논(MIT)을 만든 SK케미칼은 사정기관의 조사와 수사가 시작되자 증거인멸과 피해자 회유 등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사회적 책임을 회피하려 했다.

SK케미칼·애경
팀 꾸려 대응

SK케미칼의 참사 대응 과정을 조사한 사회적참사 특별조사위원회 가습기살균제 진상규명소위원회(특조위)는 SK케미칼과 애경이 사건을 공동으로 대응해왔다고 봤다. 실제 양사 임직원은 여러 차례 회의를 진행했다. 이들 기업은 환경부와 공정거래위원회 국회, 검찰 등에 대한 공동 대응 방향을 논의하기 위해 2017년 10월18일과 2017년 11월1일 두 차례 대면 회의를 진행했다.

<일요시사>가 입수한 ‘AS 미팅’이라는 이름의 회의록에는 총 6명의 인물이 등장한다. 대부분 회사 고위 관계자였다. 이들은 주로 ▲공정위 표시광고법 위반 재조사 관련 사안 ▲형사사건 관련 모니터링 ▲환경부 실험 관련 모니터링 ▲가습기살균제 피해구제를 취한 특별법 개정안 관련 사안 ▲옥시의 SK에 대한 정보공개청구 관련 사안 등을 논의했다.

SK케미칼과 애경은 먼저 검찰 내부 동향을 알아봤다. 첫날 회의에서 양사는 “새로 부임한 형사2부 박종근 부장검사는 검찰 동향 모니터링 중이기는 하나 공정위로부터 자료 등을 받은 것이 없고 당장 조치를 취할 계획은 없다고 함” “현재 기존에 가습기 사건 담당하던 검사들이 흩어지고 1명만 남아 해당 검사가 모니터링 업무 위주로 진행 중이라고 함” 등의 내용을 공유했다.


SK케미칼은 “85배 농도까지 폐 손상 증세가 나타나지 않고 100배의 농도를 올리니 특정 증세가 나타나기도 전에 쥐가 사망했다고 함” “수돗물과 비교 실험, PHMG와 CMIT 혼합 실험 등을 진행 중”이라며 환경부에서 가습기살균제에 사용된 원료에 대해 진행 중인 실험 내용을 애경 측에 공유하기도 했다.

2017년 환경부에서 진행 중이던 실험의 종료 시점은 12월이다. 최종보고서가 공개된 시점은 2018년 3월로 SK케미칼은 이보다 약 5개월이나 앞서 자세한 상황을 파악한 것이다.

이들은 가습기특별법 개정안의 국회 본회의 통과를 막기 위한 플랜도 세웠다. SK케미칼과 애경은 국회 상임위가 열리는 날을 파악하고 국내 최대 로펌인 김앤장에 개정안 내용을 비판하는 의견서 작성을 요청했다. 야당 측 의원에게는 법률이 통과되지 않도록 지연시킬 명분을 만들어주거나 환경노동위원회, 법제사법위원회 심사 절차에서 전문위원의 검토를 받고 진행될 수 있도록 조치하는 등의 계획을 짰다.

정부·국회·환경부 조사 대응 머리 맞대
검 수사 대비 증거인멸 공동 모의 정황

애경 출신 한 재계 관계자는 <일요시사>와의 통화에서 “당시 보수 매체를 선정해 가습기특별법 개정안에 대한 비판 기사가 나오게끔 하자는 얘기도 있었다”며 “SK도 동의했고 개정안에 대해 찬성하는 분위기가 아니라는 등의 여론을 조성하려 한 사실이 있다”고 말했다.

SK케미칼과 애경은 가습기살균제 참사 피해자를 사칭하거나 사찰하기도 했다. 앞서 피해자들은 항의 행동 밴드, 4차 접수 판정 정보 공유, 환경노출확인 피해자연합, 가습기살균제 피해자 포럼 등 온라인 커뮤니티를 개설해 활동해왔다.

특조위는 조사를 통해 SK케미칼 커뮤니케이션팀 소속 직원과 애경 직원이 네이버 아이디를 만들어 해당 커뮤니티에 가입해 피해자들의 주장과 논의 등을 수집하고 사측에 보고하거나 피해자의 게시글을 열람하는 등 피해자 및 피해자 단체를 사찰한 사실을 파악했다.


특조위에 따르면 SK케미칼 직원은 특조위로부터 출석 통보 요구를 받은 직후 업무용 PC를 교체했다. 해당 직원은 사측 법무법인 사무실을 방문해 휴대폰으로 피해자 온라인 모임에 로그인한 적이 있으나, 특조위 조사관에게는 로그인한 휴대폰이 아닌 다른 휴대폰을 제출했다.

애경산업 소속 직원의 경우 2019년 온라인 모임에서 얻은 관련 정보를 사측 임직원이 속해있는 사회관계망서비스(SNS) 대화방에 공유하기도 했다.

SK케미칼과 애경은 피해자 사찰을 통해 모은 자료를 활용해 검찰 수사 직전 증거를 인멸하는 치밀한 모습을 보이기도 했다.

<일요시사>가 입수한 검찰의 ‘SK케미칼 공소장’에 따르면 2013년 5월 SK케미칼 윤리경영부문장을 맡은 박철 전 부사장은 가습기살균제 참사의 진상규명을 통해 관련 기업에 책임을 물어야 한다는 사회적 요구가 고조됨에 따라 SK케미칼과 SK그룹에 초래할 위기 상황을 우려해 ‘가습기살균제 태스크포스(TF)’를 조직했다.

TF는 ▲SK케미칼은 PHMG를 가습기살균제 용도로 공급 및 사용되는 것을 알지 못했다 ▲미국 환경청(EPA)에 등재된 CMIT·MIT의 흡립독성 자료에 근거해 ‘가습기메이트’를 제조했고, 최초 유공에서 개발할 당시 전문가를 통해 흡입 독성 실험을 거쳐 안전성을 재차 검증했으므로 SK케미칼은 가습기메이트를 비롯한 가습기살균제의 제조·판매·원료물질 공급과 관련해 법률적 책임이 없다는 식의 대응 논리를 마련했다.

피해자 모임
가입 후 사찰

그러나 같은 해 5월부터 7월 사이 가습기살균제 TF 구성원 중 1명이 자동차소재팀에서 보관 중이던 한 대학교 실험 보고서를 발견해 검토하게 됐고 유공이 해당 대학교의 흡입독성 실험 종료 이전 유공 가습기메이트를 출시했다.

특히 실험 결과 실험 대상 쥐들에 병변이 생겨 안전성 검증을 위한 추가 실험이 필요하다는 내용이 확인됐다.

또 연구팀은 가습기살균제 성분으로 백혈구 수가 변화하는 것을 확인하고 무해성에 대한 추가 연구가 필요하다고 분석했다.

박 전 부사장은 이 보고서가 SK케미칼 관계자들의 형사책임 등 각종 법률책임을 뒷받침하는 자료가 될 것을 우려해 ‘가습기메이트는 출시 당시 안전성을 확보했으나 해당 대학교 실험 보고서는 보관하고 있지 않다는 대응 방안’을 마련했다.

검찰은 박 전 부사장과 양정일 당시 법무실장, 이광석 홍보실장 등 핵심 임직원들만 해당 내용을 비밀로 공유하기로 하는 방법으로 대학교 실험 보고서를 인멸 및 은닉하기로 공모했다고 판단했다.

2016년 8월30일 국회에서 열린 가습기살균제 국정조사특위 청문회에 출석한 김철 SK케미칼 사장은 가습기살균제의 유해성이 담긴 연구 보고서를 보관하고 있지 않다고 밝힌 바 있다.


당시 김 사장은 “서울대학교 이영순 연구팀의 연구소에 그 문서가 보관돼있지 않고 또 그 문서를 우리도 보관하고 있지 않다. 그것은 안전성 확보를 위해 저희가 마땅히 내야 하는 자료임에도 불구하고 구할 수가 없다”고 했다.

회사 서버 포렌식
관련 자료 은닉도

그러나 2019년 서울중앙지검은 압수수색을 통해 SK케미칼이 해당 보고서를 보관 중이었던 것으로 드러났다.

박 전 부사장을 포함한 SK케미칼 간부들은 가습기살균제 피해구제를 위한 특별법 위반 및 증거인멸 혐의로 재판에 넘겨져 징역형을 선고받았다.

서울중앙지법 형사15단독 주진암 부장판사는 지난 8월 30일 ▲가습기살균제 성분에 대한 서울대학교 실험보고서에 대한 증거인멸·은닉 ▲노트북 저장자료에 대한 증거인멸 ▲USB 저장자료에 대한 증거인멸 ▲외장하드 저장자료에 대한 증거인멸 혐의를 모두 유죄로 판단했다.

박 전 부사장은 2012년 서울중앙지검 형사4부장을 끝으로 퇴직한 뒤 SK그룹으로 자리를 옮긴 인물이다. 그는 SK케미칼 법무실장, SK에코플랜트 윤리경영총괄, SK가스 법무실장 등을 역임하다 2017년 부사장으로 승진했다.


SK케미칼이 지주회사인 SK디스커버리와 사업회사인 SK케미칼로 인적 분할한 뒤에도 SK디스커버리 윤리경영담당으로 근무하며 SK케미칼의 법무와 홍보 업무를 총괄했다.

박 전 부사장과 함께 재판에 넘겨진 양 전 법무실장도 같은 공소사실이 유죄로 인정돼 징역 1년6개월의 실형을 선고받았다. 판사 출신인 양 전 법무실장은 2013~2014년 SK케미칼 법무담당 임원, 2015~2018년 SK케미칼 윤리경영부문 법무실장 등으로 근무하며 SK케미칼의 법무 업무를 맡았다.

두 사람은 최근 윤리경영부문에서는 물러났으나 여전히 임원 신분을 유지 중이다.

지난 8월 기준 SK디스커버리 반기보고서에 따르면 박 전 부사장은 미등기 임원(상근)으로 이름이 올라가 있다. 담당 업무는 ‘CEO 보좌’다. 그는 SK가스 본사 임원도 겸직 중이다. 양 전 법무실장 역시 ‘사장 보좌’라는 업무를 맡고 SK케미칼 미등기 임원(상근)으로 재직하고 있다.

애경의 증거인멸은 SK케미칼보다 더 치밀했다. 법률자문을 받으면서 검찰 수사를 대비했을 정도다. 특조위 조사 결과 고광현 전 애경 사장은 2016년 1월 서울중앙지검이 가습기살균제 특별수사팀을 구성하자 홍보·총무부문장에게 애경에 대해 이뤄질 것으로 예상되는 검찰의 압수수색 등 수사에 대비한 대응 방안 마련을 지시했다.

고 전 사장의 지시를 받은 애경 총무부문장과 총무채권팀장, 법무 담당자들은 2016년 10월 국회 가습기 국정조사특위 종료 후 여러 차례 증거인멸을 감행했다.

‘AS 회의’ 만들어 사정기관 동향 파악
서울대 연구팀 보고서 철저히 은폐도

이들은 애경 직원들의 PC에서 ‘가습기살균제’ ‘가습기메이트’ ‘CMIT·MIT’ ‘MSDS’ ‘파란하늘’ 등의 검색어로 검색되는 이메일과 그룹웨어 쪽지, 기안문, 보고자료, 연구자료, 논문 등의 자료를 없앴다. 특히 애경 마케팅부서와 영업부서, CRM 부서 직원들의 PC에서 가습기살균제 제품 관련 고객 상담 및 클레임 자료 일체를 삭제하고 업무용 PC·하드디스크를 교체했다.

검찰 수사로 위기감을 느낀 고 전 사장은 애경 국정조사TFT(GA TFT)를 조직할 것을 지시하기도 했다. GA TFT 구성원들은 2016년 6월부터 2016년 10월까지 애경 직원들로부터 취합해 관리해 오던 가습기살균제 관련 자료, 애경 서버에 저장돼있는 가습기살균제 관련 파일 일체, 법률사무소에 의뢰해 분석한 애경 서버 포렌식 결과 등을 모두 점검했다.

고 전 사장은 GA TFT에 국회 국정조사가 끝난 직후 해당 자료들을 폐기 및 삭제를 지시하고, 핵심 자료들을 회사 외부의 별도 장소에 은밀히 보관하라고 명령했다.

이에 애경의 한 간부는 ▲쥐를 이용한 유공 가습기메이트의 6개월 흡입노출 시험 최종보고서(서울대 보고서) ▲애경중앙연구소 기반기술팀 혁신파트에서 위 시험보고서 자료를 요약 정리한 가습기살균제 흡입독성 자료 ▲파란하늘 맑은 가습기 관련 자료 ▲가습기메이트 출시 경위 등 가습기메이트의 안전성 검토와 관련된 주요 증거자료들을 별도의 장소에 은닉했다.

애경은 증거인멸 과정에서 김앤장으로부터 형사 관련 자문을 받기도 했다.

<일요시사>가 입수한 당시 검찰 수사기록에 따르면 애경 법무팀은 검찰 수사를 대비해 각 부서별 관련자들을 특정해 총 49명의 하드 교체를 계획하고, 김앤장에 어느 수준까지 자료를 삭제해야 하는지 등을 문의했다.

실제 애경 법무팀 대리는 김앤장 소속 변호사들과 만나 ‘회사 전산(그룹웨어 상에 등록된 기안문 등도 압수수색 대상이 될 수 있는지, 전산관리회사(AKIS)에도 압수수색이 진행될 수 있는지’를 물었던 것으로 파악됐다.

김앤장의 조언을 받은 애경은 실제 회사 서버에 대한 디지털 포렌식을 실시했다. 애경 법무팀은 포렌식 작업을 통해 확인한 가습기살균제 관련 자료들에 대해, 김앤장 포렌식팀으로부터 ‘해당 자료를 서버에서 삭제할 경우 복구 가능성이 높은지 낮은지’ 등에 대한 자문을 구하기도 했다.

김앤장 자문
철저히 대비

증거인멸 혐의로 재판에 넘겨진 고 전 사장과 애경 간부들은 2020년 4월 실형을 확정받았다. 당시 대법원 3부(주심 노태악 대법관)는 증거인멸교사 증거은닉교사 등의 혐의로 재판에 넘겨진 고 전 사장의 상고심에서 징역 2년6개월을 선고한 원심을 확정했다.


<hounder@ilyosis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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범여권 3각 권력 재편 시나리오

범여권 3각 권력 재편 시나리오

[일요시사 정치팀] 박희영 기자 = 정청래·조국·김민석 세 사람이 삼각관계로 얽혔다. 더불어민주당 정청래 대표는 연임을, 조국혁신당 조국 대표는 자당의 생존을, 김민석 국무총리는 청와대의 명을 받아 권력 싸움에 참전했다는 해석에 힘이 실린다. 세 사람이 만든 새로운 소용돌이가 여의도를 향하고 있다. 이들이 범여권 지형에 어떤 영향을 미칠지 이목이 쏠린다. 여당 대표인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 정청래 대표의 그립감이 강해졌다. 지난 3일 대의원·권리당원 1인1표제 도입을 담은 당헌 개정안이 재적 위원 과반의 찬성으로 문턱을 넘은 것이다. 이로써 오는 8월 민주당 전당대회에서부터 대의원과 권리당원이 동일한 한 표를 행사하게 된다. 존재감 굳히기 민주당에 따르면 중앙위원 총 590명 중 87.29%인 515명이 투표에 참석했다. 이 중 찬성 312명(60.58%), 반대 203명(39.42%)으로 의결 요건을 충족했다. 이후 정 대표는 긴급 기자회견을 열고 “핵심 공약이자 1호 공약이라고 할 수 있는 1인1표제를, 임기 안에 약속을 지킬 수 있게 돼 보람 있게 생각한다”며 “대한민국은 법치국가이고 모든 법의 으뜸은 헌법이다. 헌법에서 명령하고 있는 보통·평등·비밀투표, 1인 1표제는 진작에 민주당에서 시행돼야 마땅했다”고 강조했다. 이어 “1인1표 시행으로 가장 직접적인 효과는 당내 계파가 해체되는 것이라고 예상한다”며 “10년이 넘게 1인1표제, 당원이 주인이 되는 정당, 당원 주권 시대를 부르짖었는데, 드디어 마침표를 찍게 돼 개인적으로도 무한한 기쁨”이라고 소회를 밝혔다. 1인1표제가 통과되자 권리당원 사이 지지도가 높은 정 대표의 연임 가능성이 탄력을 받았다는 해석이 제기된다. 지난해 8월 치러진 전당대회서 정 대표는 전국 대의원 투표에선 46.91%로 박찬대 의원(53.09%)에게 열세를 보였으나 권리당원 투표서 66.48%의 득표율을 기록해 박 의원(33.52%)을 앞질렀다. 다만 6대 4라는 투표 결과를 놓고 정치권의 분석이 엇갈렸다. 정족수보다 16명 많은 ‘턱걸이 통과’로 리더십을 굳히기엔 명분이 약하다는 점에서다. 1인1표제 재추진에 제동을 걸던 집단의 반대표가 늘어난 것 역시 주목할 만하다. 지난해 치러진 첫 투표 당시 투표율이 62.58%로 두 달 만에 20%p 올랐지만, 반대표 역시 102표에서 203표로 두 배 가까이 늘어났다. 이에 민주당 권칠승 의원은 한 라디오를 통해 “1인1표가 갖는 대의엔 다 동의하지만 현재 민주당뿐만 아니라 대한민국 정당이 갖고 있는 당원 구조의 취약성 때문에 1인1표제하는 게 맞느냐는 것에 대한 회의는 좀 있는 것 같다”며 “후속 정비가 반드시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저는 대의엔 찬성하지만 지금 상태에서 그냥 (1인 1표제를) 적용하면 부작용이 있다”고 설명했다. 정 대표의 두 번째 승부수였던 조국혁신당(이하 혁신당)과의 합당도 여전히 불투명하다. 합당에 반대하는 최고위원들이 정 대표를 정면으로 들이 받으며 갈등이 수면 위로 떠오른 것이다. 독주하는 정청래, 승부수는 던졌는데… “합당 못해” 마주하기도 전 무산 위기 민주당 이언주 최고위원은 “혁신당과의 합당 논란이 벌써부터 차기 대권을 의식한 논의로 번져 걱정”이라며 “‘큰 배를 띄우려면 본류를 타야 한다’면서 마치 민주당을 조국 대표의 대통령 만들기 수단으로 여기는 발언까지 나오는 실정”이라고 지적했다. 이어 “지금은 이재명 대통령의 시간이지 차기 대권주자를 밀어줄 시간이 아니”라며 “야당도 아니고 여소야대도 아니고 과반 의석을 차지한 강력한 집권여당에서 대통령 지지율이 60%에 육박하는데 왜 벌써부터 이런 얘기가 나오는지 괴이하기까지 한 상황”이라고 말했다. 민주당 강득구 최고위원 역시 “어제(3일)부터 지방선거 예비후보 등록이 시작됐고 중앙당과 시도당은 후보자 공모를 진행하고 있는데 이런 시점에서 합당을 밀어붙이면 혼란만 커진다. 공천 기준, 경선 룰이 흔들린다”며 “합당 논의를 당장 멈춰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럼에도 정 대표는 전체 당원 여론조사와 토론 등을 통해 의견을 수렴하겠다며 의견을 굽히지 않고 있다. 일련의 과정에 대해 한 정치권 관계자는 “공천권만 손에 넣으면 세력은 알아서 따라붙게 돼있다. 정 대표는 ‘축구 경기에서 1대 3이나 3대 0이나 같다’고 말하면서까지 1인1표제를 밀어붙였다. 당 대표 연임에 선을 긋고 있지만 연임을 통한 공천권 확보를 포석에 뒀다고 해석하지 않을 수가 없다”며 “조 대표를 끌어들여 본격적으로 자기 세를 넓히려는 것 아니겠느냐”라고 해석했다. 정 대표가 띄운 합당론에 혁신당이 휘말리는 듯한 그림이 됐다. 그동안 혁신당 조국 대표는 민주당과의 합당에 선을 그어왔지만 현실이라는 벽에 부딪혔고, 이번 합당 논의 역시 자당을 살리기 위해 민주당의 손을 잡은 것으로 전해진다. 결국 세를 불려야 하는 정 대표와 대권주자로서 도움닫기 공간이 필요한 조 대표의 니즈가 맞아 떨어졌다는 해석이 나온다. 합당 테이블이 마련되기도 전 민주당 내 집안싸움이 불거지면서 혁신당과의 논의조차 시작하지 못했다. 합당 논의에 촉각을 세우는 사이 이번에는 혁신당이 추진하는 토지공개념을 놓고 이견이 갈렸다. 이언주 최고위원이 토지공개념에 반대 의사를 표하자 조 대표가 “헌법재판소가 합헌이라고 판시한 것. 어이없다”고 맞받아치면서 새로운 갈등의 씨앗이 뿌리를 내린 것이다. 꼿꼿한 자존심 토지공개념이 난타전으로 번진 이유는 최근 집값 등 부동산을 저격하는 이재명 대통령과의 행보와도 맞물려 있다는 분석이다. 이 최고위원은 “토지공개념은 과거 공산주의 몰락 이전 토론의 대상이 될 수 있었을지 모르지만 AI 대전환과 글로벌 자본 유치, 기술 경쟁이 국가의 생존 과제가 된 지금의 시대 현실과는 분명한 괴리가 있고, 시대착오적이라는 평가를 피하기 어렵다”고 주장했다. 이어 “대통령이 강력한 부동산 공급 대책을 내놓고 있는데 토지공개념 입법화를 주장하는 조국혁신당과의 합당 주장이 대두되면 대통령의 건강한 개혁 의지마저 희석되고 곡해돼 공격받을 여지가 크다”고 강조했다. 혁신당이 주장하는 토지공개념은 토지의 사유재산권을 전면 인정하되, 공공의 이익을 위해 필요한 경우 그 이용을 제한할 수 있다는 원칙을 골자로 한다. 지난 2일 열린 ‘신토지공개념 입법추진단 출범식 및 토론회’서 혁신당 차규근 의원은 입법을 비판한 여당을 향해서는 “하나부터 열까지 모두 틀린 주장”이라고 지적했다. 차 의원은 “토지공개념은 토지의 사유재산권을 전면 인정하되, 공공의 이익을 위해 필요한 경우, 이용을 제한할 수 있다는 원칙”이라며 “헌법재판소도 1989년 토지거래허가제 사건 판결에서 모든 사람의 생존권을 보장하기 위해 토지 소유권은 절대적인 권리가 될 수 없으며, 공공복리 증진을 위해 의무와 제약을 수반하는 방향으로 변화해 왔다고 판시했다”고 설명했다. 이 최고위원의 주장을 반박하기도 했다. 차 의원은 민주당 강령을 언급하며 “토지 재산권 행사의 합리성을 담보하는 제도적 장치를 구축해 지대 수익으로 인한 경제 왜곡과 불평등을 방지한다고 명시돼있다”며 “현재 시행 중인 토지거래허가제와 개발이익환수제 역시 모두 토지공개념에 기반한 제도”라고 꼬집었다. 혁신당과의 합당 논의가 진행 중인 민주당 일각에서는 민감하게 반응하고 있다. “토지공개념을 포기하지 않는 한 합당 논의는 불가능하다”는 주장까지 제기됐다. 그럼에도 혁신당이 이를 추진하는 이유는 혁신당이 민주당에 흡수 합당되는 것만은 피해야 한다는 분위기 때문인 것으로 전해진다. 민주당에 혁신당 DNA가 섞이는 게 아닌, 혁신당의 정체성을 잃지 않으면서 민주당과 함께하는 그림을 그려야 한다는 점에서다. 논의를 띄운 이상 합당을 하든 약속을 파기하든 결과가 나와야 한다. 그러나 “주판알을 굴렸을 때 합당 가능성이 낮다”는 게 한 여의도 관계자의 전언이다. 로망을 현실로? 이 관계자는 “어떤 방법으로든 조 대표가 민주당과 함께한다면, 차기 당권을 놓고 정 대표와 경쟁할 수도 있을 것”이라고 봤다. 이어 “두 사람(정 대표, 조 대표) 모두 대권주자로서 욕심이 있다. 시기가 언제가 됐든 다음 대선을 위해 경쟁하는 사이가 될 것”이라며 “종래에 서로를 집어삼키려는 계파 싸움으로까지 번질 우려가 있다”고 전했다. 조 대표를 등에 업고 빠른 보폭으로 걷는 정 대표의 시선 끝에는 김민석 국무총리가 있다는 해석이 나온다. 김 총리가 “당 대표에 로망이 있다”고 말하면서 8월 전당대회 출마설에 스스로 불을 지핀 것이 화근이다. 여기에 청와대에서까지 김 총리를 차기 당 대표로 세우려 한다는 분석이 나오면서 정 대표의 셈법이 더욱 빨라졌다는 해석이다. 그동안 김 총리의 대표 도전설은 꾸준히 회자했다. 지난달 23일 국무총리실은 공지를 통해 서울시장 선거 여론조사에서 김 총리 이름을 빼달라고 요청했고, 이에 정치권 일각에서는 김 총리가 서울시장이 아닌 민주당 당 대표를 노리는 게 아니냐고 봤다. 여기에 김 총리가 한 유튜브를 통해 정 대표와 차기 대표 자리를 놓고 경쟁할 수 있다는 관측에 대해선 “민주당의 당 대표는 굉장히 자랑스러운 일이기 때문에 당연히 로망은 있다”고 말하면서 본격적으로 불씨를 댕겼다. 다만 김 총리는 “세상(일)이 욕심을 낸다고 되는 것이 아니라는 점은 안다. 욕망의 정치로 뭔가를 풀려고 하지 않는 편”이라며 조심스럽게 입장을 전했다. 그러던 중 민주당-혁신당 합당 논쟁에 김 총리가 뛰어들면서 당권을 둘러싼 경쟁이 시작됐다는 관측이 다시 나왔다. 김 총리는 지난 2일 서울 종로구 총리공관에서 열린 기자간담회에서 “이런 시점, 이런 방식으로 진행될 줄은 몰랐다”며 정 대표의 합당 방식을 꼬집었다. 그러면서 “민주당은 뿌리 깊은 정당이기에 당원들의 뜻을 묻는 민주적 절차를 반드시 거쳐야 하며 그렇지 않으면 통합 자체가 누구에게도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강조했다. 김 총리는 당 대표 선출 전당대회 출마설과 관련해 “(앞서 대표직에 대해 언급한) 로망이라는 단어가 이렇게 많은 말들을 불러올지는 몰랐다”며 “(당시 대표 출마 여부는 직접적으로 묻지 않기에) 국정에 전념한다고 했고, 오늘 기자간담회 내용을 주의 깊게 보면 굉장히 강력한 국정 전념 의지가 담겨있다는 것을 알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어 “앞으로는 서울시장 선거로 본인(김민석)이 할 생각 없는데 서울시장 선거와 관련돼 거론되는 것이 국정 운영에 도움도 안 돼 거론되는 일이 없었으면 좋겠다”며 “당과 관련한 부분에 대해서도 제가 대표라는 평소 로망을 이야기한 것이고 또 합당 등 모든 문제들은 당의 질서 속에서 충분히 논의될 것으로 보고 제가 더 이상 현재 당내 문제와 연관돼서 소환되거나 호출되거나 이러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김민석 카드’ 청와대가 띄웠다? “당 대표 로망” 한마디에 ‘술렁’ 이후 김 총리는 3일 페이스북에 올린 글에서 전날 신년 기자간담회를 언급하며 “기자간담회의 핵심은 한층 높은 ‘책임감’으로 국정에 ‘전념’한다는 것이다. 정책 관련한 질문에는 훨씬 적극적으로 답하겠다”며 출마 의지가 없음을 강조했다. 김 총리가 거듭해서 출마설에 선을 긋지만 계속해서 이름이 오르내리자 정치권 일각에서는 이를 정 대표의 대항마로 김 총리를 띄우기 위한 청와대의 물밑작업으로 봤다. 김 총리는 지난 총선 상황실장을 맡아 합을 맞춰오는 등 이 대통령과 연이 깊은 인물로 이 대통령의 의중인 ‘명심’을 등에 업어 민주당 수석최고위원 자리까지 오르기도 했다. 지난 2024년 민주당 전당대회서 김민석 의원의 최고위원 후보로 출마했지만, 사전 득표율이 저조했다. 이에 이재명 대표 후보는 첫 지역 순회 이후 김 후보와 함께 차 안에서 유튜브 라이브를 진행하면서 “(김 후보) 왜 이렇게 표가 안 나오느냐”며 “제 선거를 도와주느라 본인 선거(운동)를 못 해 결과가 잘못되면 어쩌나 부담된다”고 언급했다. 이후 민주당 커뮤니티 등에서는 “이재명이 김민석을 낙점했다”는 글이 퍼졌고, 빠르게 순위가 뒤집혀 단숨에 수석최고위원으로 올라섰다. 이처럼 청와대에서 정청래 체제의 힘을 빼기 위해 다시 한번 ‘김민석 카드’를 띄우고 있다는 해석이 나온다. 청와대가 정 대표를 견제하는 것은 정 대표가 ‘당원 주권 정당’ 등을 명분으로 당을 강하게 쥘 것을 우려했기 때문이라는 점에서다. 한 여권 관계자는 “정 대표의 행보가 모두 이해는 간다. 명분도 좋다. 문제는 시기가 너무 빨랐던 것”이라며 “이재명정부 출범 극초기부터 갈등이 불거졌다. 청와대 입장에서는 대놓고 발톱을 드러내는 정 대표가 장기간 민주당을 주무르는 게 달갑지 않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민주당은 지방선거를 앞두고 집안싸움이 격화하는 것을 경계하고 있다. 혁신당 역시 합당 논의가 잘 풀리지 않을 경우 조 대표의 탓으로 돌리는 것을 우려하는 것으로 전해진다. 지방선거가 끝나는 대로 정치권의 시선은 8월 민주당 전당대회로 쏠리는 만큼 6월 전 합당 논의가 매듭을 지을지가 최대 관건이다. 숨길 수 없는 불편한 심기 혁신당 황현선 인재영입위원회 부위원장(전 사무총장)은 자신의 SNS를 통해 이 대통령과 김 총리, 정 대표를 모조리 언급하며 현 상황을 직격했다. 황 위원장은 “이 싸움(합당)의 최대 피해자는 이 대통령이다. 언젠가 후계 전쟁이 벌어질 것을 예상했겠지만 집권 1년도 안 돼 심각한 내분에 직면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이어 “친K(김민석 국무총리) 세력이 선공을 하고, 선방 맞은 친J(정청래 대표)의 반격도 시작될 것”이라며 “지금은 대통령 눈치보며 권력투쟁을 벌이겠지만 총선에 다다를수록 눈치 보지 않는 싸움이 될 것”이라고 꼬집었다. <hypak28@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