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주 롤스로이스’ 범서방파 나씨 소름 돋는 정체

  • 김성민 기자 smk1@ilyosisa.co.kr
  • 등록 2024.06.24 11:42:40
  • 호수 1485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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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태촌 오른팔서 고깃집 사장으로

[일요시사 취재1팀] 김성민 기자 = 만취 상태로 롤스로이스 승용차를 운전하다 뺑소니 사고를 낸 50대 남성의 정체가 범서방파 간부 나모씨로 드러났다. 나씨는 지난달 25일 오후 8시쯤 서울 강남구 논현동의 도로에 정차된 차를 들이받은 뒤 달아나다 붙잡혔다. 경찰은 수사 과정서 나씨가 범서방파를 사실상 이끌어 온 관리 대상 조직폭력배라는 사실을 파악했다. 

경찰에 따르면 나씨는 이날 술을 마신 채 차를 몰다 주차된 차량을 들이받은 뒤 현장을 벗어난 혐의(도로교통법상 음주운전 및 사고 후 미조치 등)를 받고 있다. 사고 충격으로 차량이 밀리면서 인근에 서 있던 50대 주차 안내 직원이 다리를 다쳤다.

음주 운전 사고
“날 몰라?” 윽박

나씨는 사고 직후 피해 차량 주인에게 “내가 누군지 아느냐? 이름 석 자만 대면 아는 사람”이라며 되레 화를 냈다고 한다. 그러다 경찰이 출동한 것을 확인하고는 현장을 벗어났다가 인근서 10여분 만에 검거됐다. 나씨의 사고 당시 혈중알코올농도는 면허 취소 수준(0.08% 이상)이었던 것으로 조사됐다. 마약간이시약 검사에서는 음성이 나왔다.

나씨는 2010년쯤 범서방파의 우두머리 자리에 오른 것으로 알려져 있다. 범서방파를 지배하던 김태촌은 앞서 교도소서 복역하다가 출소한 1989년 양모씨를 자신의 후계자로 지목했다고 한다. 하지만 양씨가 2010년쯤 제주도로 내려가면서 나씨가 그의 자리를 물려받은 것으로 파악됐다.

경찰은 나씨의 신병을 확보한 뒤 수사를 마무리하는 대로 검찰에 송치한다는 방침이다. 경찰 관계자는 “사건의 중대성과 도주 우려 등을 고려해 구속영장을 신청했다”고 설명했다.


잠잠하던 원로 조직폭력배의 일탈 행위가 드러나면서 나씨의 과거사도 재조명받고 있다. 나씨는 지난 2007년 세상을 떠들썩하게 한 A 그룹 총수 보복폭행에도 연루됐던 거물로 알려졌다. 

2007년 5월 A 그룹 김모 회장의 보복폭행 사건을 수사한 서울경찰청은 당시 청담동서 B 식당을 운영하던 나씨를 소환조사했다. 경찰은 나씨의 음식점을 압수수색한 결과 사건이 발생한 그해 3월8일 저녁, A 그룹 법인카드로 식대를 계산한 매출전표를 찾아냈다.

당시 범서방파 행동대장 오모씨와 A 그룹 김모 비서실장이 함께 식사를 했다는 첩보를 입수해 수사를 벌였다.

범서방파 출신 관계자는 <일요시사>와 인터뷰서 당시 상황에 대해 “나씨가 A 그룹 보복폭행 사건에 직접적인 역할을 했다고 보긴 어렵지만, 범서방파가 개입해 진두지휘한 것은 맞다”고 설명했다.

A 그룹 보복폭행 사건은 2007년 3월8일 새벽 서울 청담동 G 노래방(가라오케)서 술을 마시던 김 회장의 둘째 아들이 북창동 S모 클럽서 종업원으로 일하는 8명과 시비가 붙어서 싸움을 벌였다가 집단 폭행을 당하는 바람에 심하게 부상을 입으면서 시작됐다.

‘총알 택시’ 운영하던 잡배서 거물로
연예인 단골로 유명 ‘청담동 그 집’

김 회장이 업소를 찾아가자, 불만있으면 와보라는 식으로 종업원이 명함을 던지고 갔다고 한다. 이에 격노한 김 회장은 아들을 폭행한 인물에게 보복을 가하기 위해 사람을 시켜 G 가라오케를 통해 S 클럽 종업원들을 불렀다.


S 클럽 종업원들은 자신들 5명에 노래방 종업원 3명을 끼워서 대신 내보냈는데 그들은 김 회장의 경호원들에게 청계산으로 끌려가 폭행을 당했다. 이들이 고통을 견디지 못하고 사실 폭행을 저지른 것은 자신들이 아니라고 호소하자 김 회장은 경호원들을 이끌고 가게로 쳐들어갔다.

북창동 S 클럽에 도착한 김 회장은 “내 아들 폭행한 놈들을 끌고 오라”는 말에 가게 측이 폭행 가담자를 데려오자, 김 회장의 아들이 자신을 폭행한 사람에게 직접 주먹으로 보복을 가했다고 한다. 이때 종업원들도 경호원에게 폭행당했으며 쇠파이프와 전기 충격기까지 동원한 것으로 드러났다.

수사에 나선 경찰은 나씨에게 B 식당에 온 사람이 김 비서실장과 오씨가 맞는지, 이들 두 명을 연결하는 역할을 했는지, 오씨의 지시로 폭행 현장에 인력을 동원했는지 등을 조사했다.

경찰은 또 주 피의자인 김 회장이 “청계산에도 가지 않았고, 폭행도 하지 않았다”는 기존 진술을 번복했기 때문에 이날 김 비서실장, 사택 경비 용역업체 직원 등 5명, D 토건 김모 사장 등을 모두 재소환했다. 경찰은 범서방파 행동대장 오씨와 D 토건 김모 사장, G 가라오케 장모 사장 등이 각각 조직폭력배 등 외부인력을 동원했다고 봤다.

경찰은 이날 오씨가 캐나다로 출국하기 전 김 회장 측으로부터 조폭 동원의 대가로 3억원을 받았다는 의혹과 관련해 오씨에 대한 계좌 추적을 실시했으며, D 토건 김 사장을 상대로 인력 동원 부분을 집중 추궁하기도 했다. 

전날 자진출두한 G 가라오케 장 사장은 경찰 조사에서 “사건 당일 북창동 S 클럽에 갔지만 룸에 들어가지는 않고 주변에 있었다. 같이 간 사람들은 있는데 조폭은 아니다”라고 주장했다.

수입산
한우로 

경찰은 장씨가 A사 측 누구의 부탁을 받고 현장에 갔는지, 직접 폭행을 하지는 않았는지 추후 더 조사했다. 수사관계자는 “쇠파이프와 전기봉으로 폭행했다는 피해자 진술은 있지만 증거를 확보하지 못했기 때문에 피의자·참고인 조사가 중요하다”며 “가능하면 주중에 사건을 검찰에 송치할 예정”이라고 말했다.

결과적으로 나씨는 조직폭력배 범서방파 출신이며, 2007년 A 그룹 회장 폭행 사건 당시 A 그룹 간부와 범서방파가 B 식당서 회합을 했다는 결론이 나왔다. 나씨가 운영하던 B 식당은 평소 연예인과 운동선수 등 유명인사들이 즐겨 찾는 소문난 한우 고깃집으로 잘 알려져 있다.

나씨가 마냥 연예인들과 좋은 관계를 유지하는 것은 아니었다. 일례로 나씨의 가게를 방문했던 배우 최모씨는 나씨와 언쟁을 벌이다가 결국 쌍방폭행으로 이어져 경찰조사를 받았다고 한다. 나씨의 한 측근은 “최씨가 날린 주먹에 눈을 다친 나씨는 처음엔 보복하려고 했으나, 이를 기회 삼아 최씨와 친분을 맺었다”고 전했다. 

폭행 사건 이후 두 사람은 실제로 친해졌고 언제 가더라도 식사 중인 연예인 한두 명은 볼 수 있다는 소문이 날 정도로 북새통을 이뤘다.

나씨 말에 의하면 B 식당을 찾는 이들 중 연예인을 포함한 방송 직종에 종사하는 사람들이 손님 중 약 40%에 이른다고 한다. 24시간 종일 영업에 연중무휴로 3년째 계속 문을 열어놔 야간촬영이나 휴일 활동이 많은 연예인들에게 입소문이 났다.


잘나가던 나씨는 B 식당을 운영하면서 30여t에 이르는 수입 소고기를 한우 고기인 것처럼 허위 표시한 혐의로 구속된 바 있다.

2007년 9월7일 대법원 1부(주심 고현철 대법관)는 수입 갈비살과 안창살 등을 판매하면서 한우로 허위표시 해 판매한 혐의 등으로 기소된 나씨에게 식품위생법 위반죄 등을 인정해 징역 2년에 집행유예 3년, 벌금 10억원을 선고한 원심을 확정했다.

김태촌
자금줄

재판부는 판결문서 “피고인들이 인터넷과 방송 매체를 통해 최상급 한우만 엄선해 판매한다고 홍보하고, 식당 내부에 한우 사육 사진을 게시하는 등의 방법으로 외국산 수입 갈비살·안창살 30여t이 마치 한우 고기인 것처럼 허위표시한 것은 식품위생법 위반이라고 인정한 원심 판결은 옳다”고 밝혔다.

앞서 2004년 수입소고기를 한우로 둔갑시켜 팔았다는 혐의로 대구지검에 구속됐을 때 나씨의 가게를 드나들던 단골 연예인 12명 정도가 그를 구명하기 위한 확인서를 써줘 화제가 됐다. 당시 연예인들이 구명활동에 나선 이유는 여러 가지 설이 있지만, 나씨의 가게를 드나들면서 선물을 받는 등 융숭하게 대접받았기 때문이라는 말이 유력하다.

그가 운영하는 가게를 두고 일각에선 김태촌의 ‘자금줄’로 부르기도 했다.


나씨는 음식점 경영보다 ‘사채놀이’를 통해 많은 돈을 벌어들인다고 알려졌다. 그 증거로 지난 2003년 ‘굿모닝시티’ 사기 분양으로 세상을 떠들썩하게 한 윤모 회장에게 20억원을 빌려주고, 40억원을 받으려다 경찰에 잡히기도 했다. 이 과정서 자신의 재력과 인맥을 과시하듯 법무부 장관과 검찰총장을 지낸 김태정 등을 변호사로 선임해 세간의 이목을 끌었다.

나씨의 암흑가 진출은 총알택시를 불법으로 운영하면서 시작됐다. 일반 차량을 이용해 불법으로 승객을 태우는 일명 ‘나라시 택시’를 운영하고 관리한 나씨는 심야에 터미널이나 기차역 등의 장소서 손님을 모아 제법 돈을 벌었다고 전해진다.

당연히 당국에는 불법으로 규정돼있으며, 150km/h 이상을 우습게 찍는 총알택시로 유명하다. 고속도로에서는 차량 성능에 따라 250km/h까지 올려 어둠을 가르고 질주하는 것이 특징이다.

이후 인천 ‘뉴송도호텔’서 일어난 칼부림 난동 때 낫을 들고 활개 친 것을 계기로 김태촌의 신임을 얻어 오른팔의 자리에 올랐다.

다사다단했던 암흑가 2인자
MZ조폭으로 이어진 범서방파

도박 사건에 연루돼 반대파 조직에 납치·폭행된 사건에 휘말리기도 했다. 경찰에 따르면 나씨를 납치 폭행한 폭력조직은 국제PJ파로, 조직 두목이 나씨에게 전화해 “큰 도박판이 벌어지고 있으니 2억을 준비해서 나오라”고 유인했다.

그후 먼저 기다리고 있던 상대 조직원이 탄 차가 나씨를 납치해 경기 기흥휴게소까지 끌고 갔으며, 나씨는 차 안에서 당한 무차별 폭행으로 갈비뼈 등을 다쳤다. 그는 감시가 허술한 틈을 타 차에서 탈출해 경찰에 신고했고, 납치했던 국제PJ파 조직원 6명은 도주한 것으로 알려졌다.

경찰 관계자에 의하면 현재 범서방파의 조직원 수는 총 100여명 정도로 추산되나, 김태촌 사후 세력 확장을 꾀하는 신진 무리는 20~30대 젊은 세대로 이어졌다.

최근에는 한 투자사 대표 C씨가 범서방파·이천연합파 등 기존 조폭 구성원들 중 1983년생이 모여 결성된 조직폭력배 ‘불사파’를 동원해 구속 기소됐다. 불사파 조직원은 서울 강남구서 갤러리를 운영하는 피해자를 협박·폭행해 미술작품 등 금품을 갈취하려 한 혐의(특수강도미수·폭력행위 등 처벌에 관한 법률 등 위반)로 구속됐다.

서울경찰청 강력범죄수사대는 투자사 대표 C씨 등 9명을 구속 송치했다고 지난해 9월27일 밝혔다. 불사파 조직원들은 ‘1997년작 영화 <넘버 3>에 등장하는 조폭 이름서 영감을 얻어 작명했다’고 진술한 것으로 전해졌다.

경찰에 따르면 C씨는 미술작품 투자금 28억원에 대한 이자 등을 회수한다는 명목으로 미술작품 ‘○○○ 100호’를 빼앗기 위해 지난 8월1일 피해자를 감금했다. C씨가 동원한 조폭들은 피해자에게 ‘살해하겠다’고 협박했다.

피해자가 해당 작품이 없다고 호소하자, 이들은 87억원의 채무상환을 요구하고 피해자 남편의 연대보증을 강요했다. C씨 일당은 피해자에게 ‘87억원의 빚이 있다’는 진술을 강제로 녹음하게 하고, 스마트폰에 위치 공유 애플리케이션을 설치해 행적을 추적하기도 했다.

C씨 등은 피해자에게 ‘조폭 등을 시켜 묻지마 살인 방식으로 살해하겠다’고 협박한 혐의, 피해자 양손을 탁자 위에 올리게 한 뒤 샤프펜슬로 손등을 내리친 혐의도 받는다.

사건·사고
잇달아 연루

C씨가 1983년생 조폭들이 모인 MZ 조폭 ‘불사파’를 동원한 사실도 확인됐다. 불사파는 정기적으로 지역별 모임을 하면서 결속을 다져온 것으로 파악됐다. 이들은 일정한 직업이 없음에도 월세 1300만원짜리 강남 고급 아파트 등에 살면서 고가의 외제차를 몰았다. 감금·폭행·협박에는 C씨가 동원한 귀화 조선족 폭력배도 가담했다. 경찰은 아직 신원을 확보하지 못한 피의자 3명을 조속히 검거하겠다고 전했다.

<smk1@ilyosis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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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독> 국방부, 내란 문건 ‘대청소 프로젝트’

[단독] 국방부, 내란 문건 ‘대청소 프로젝트’

[일요시사 취재1팀] 오혁진·김철준 기자 = 12·3· 내란 사태와 관련된 국방부 문건이 대규모로 파쇄된 것으로 파악됐다. 이 조치는 오영대 전 인사기획관의 지시로 이뤄졌다. 오 전 기획관은 검찰 특수본과 재판서 정보사와 수사2단 인사안의 문제점을 증언했던 인물이다. 자신이 비상계엄에 적극적으로 가담한 사실을 숨기기 위해 수사에 협조한 것으로 의심되는 대목이다. “올해 초 신년맞이 대청소라면서 문서를 대량으로 파쇄했다.” <일요시사>와 접촉한 국방부 직원들의 말이다. 파쇄된 문건들은 12·3 내란 사태와 관련된 자료라고 한다. 지시자는 오영대 전 국방부 인사기획관이다. 검찰 수사에 협조했던 인물로 알려져 있으나 실상은 다르다는 게 군 내부자들의 주장이다. 뭘 숨기나 안규백 국방부 장관이 지난달 말 취임하면서 시작한 첫 번째 군 개혁은 인사다. 신임 인사기획관에 일반 공무원 출신인 이인구 군사시설기획관을 임용한 건 안 장관이 강조해 왔던 ‘군 문민통제’와도 맞닿아 있다. 인사기획관은 본래 예비역 장성이 맡아왔다. 이 신임 기획관의 전임자였던 오 전 기획관도 예비역 준장 출신이다. 군 내부에서는 국방부에 여전히 12·3 내란 사태에 협조한 군인들이 남아 있다고 지적한다. 핵심으로 인사기획관실의 총괄과이자 인사기획관의 일정, 예산 등을 모두 관리하는 인사기획관리과가 언급된다. 다수의 국방부 관계자들은 “오 전 기획관은 물러났지만 책임져야 할 다수의 인물이 아직 자리를 보전하고 있다”고 전했다. 이 부서의 간부들은 전부 육군사관학교 출신이다. 과장 김모 대령은 오 전 기획관이 대령이었을 때 소령으로 근무했고, 총괄 이모 중령은 오 전 기획관이 특전사 여단장을 역임했던 1공수여단서 중대장과 707중대장을 거쳤다. 장군인사팀장 김모 대령은 김용현 전 국방부 장관이 수도방위사령관으로 근무했던 시절 비서실장을 역임하기도 했다. 김 전 장관과 가깝거나 육사 출신인 이들이 국방부 인사의 핵심부서인 인사기획관리과에 포진하면서 계엄 실행을 위한 보직 이동이 이뤄진 셈이다. 김 전 장관은 실제 대통령경호처장일 때부터 노상원 전 국군정보사령관과 군 인사에 대해 논의했다. 직무에서 배제되지 않은 인사기획관리과 간부들은 ‘장관이 모든 책임을 오 전 기획관에게 묻는 형식으로 퇴직을 시켰으니 우리는 지시를 받아 어쩔 수 없이 한 것처럼 조용히 지내면서 정부초기 개혁의 소나기만 피하면 진급 가능’이라며 서로서로 쉬쉬하고 있다고 한다. <일요시사> 취재를 종합하면 인사기획관리과 간부들은 내란 이후인 지난해 12월 중순 오 전 기획관의 지시에 따라 문건 파쇄를 계획했다. 김 전 장관이 물러난 이후 인사기획관리과장 김 대령 및 총괄인 이 중령 외에는 계획되지 않은 대면보고는 금지했고 내부 보안에 심혈을 기울였다. 인사과 간부들 계엄 실패 후 12월 계획···1월 파쇄 “지시자는 검찰 수사 응했던 오영대 전 인사기획관” 한 달여 뒤 이 중령은 모든 과에 ‘신년맞이 대청소’를 하라고 전파했다. TF 자리 배치와 오래된 문건을 정리한다며 유독 인사기획관리과만 복도로 책상을 빼고, 대량 세절이 가능한 세절실을 예약해 엄청난 양의 문서들을 파쇄했다. 여기엔 내란 핵심 파일도 포함된 것으로 파악됐다. 안 장관은 이와 관련해 국회에서 오 전 기획관에게 여러 차례 질문한 바 있다. 당시 오 전 기획관이 당황해하며 우물쭈물하는 모습이 담긴 동영상이 퍼지기도 했다. 이 중령은 동영상을 보며 웃는 직원들의 명단과 안 장관에게 제보한 인물을 색출하기 위해 탐문 활동을 벌여 오 전 기획관에게 추정해 보고했다. 이들은 모두 오 전 기획관으로부터 승진추천, 성과상여금, 각종 포상 등 인사상 불이익을 본 것으로 전해진다. 이들이 문건을 파쇄한 이유는 내란에 적극적으로 가담했기 때문으로 보인다. 내란 당일 오후 10시가 넘은 시각임에도 퇴근하지 않고 사무실에 있던 오 전 기획관의 지시를 받은 이 중령은 각 과의 총괄 담당자들을 소집해 ‘계엄 선포가 됐는데 선제적으로 인사 관련 조치를 왜 안 하냐’ ‘합참에는 계엄사령부가, 지작사령부에는 지역계엄사령부가 곧 창설될 텐데 각 군 본부 및 지작사와 인사 지침을 협의해 계엄령 취지에 맞게 배포하라’고 강조했다. 특히 오 전 기획관은 계엄 해제 결의안이 국회 본회의 테이블을 통과했음에도 합동참모본부 전투통제실에서 이 중령에게 “(계엄이) 해제되긴 했는데 다시 시행될 수도 있으니 빨리 계엄사 창설 지원을 위한 인사 조치를 완성하고 지작사 병력에 대한 휴가 지침 및 통제 등 건의 사항을 받아보라”고 지시한 것으로 알려졌다. 오 전 기획관은 내란 직전까지 김 전 장관의 의중에 따라 군 인사를 반영했다. 최근 내란 특검팀이 군 장성급 인사 자료 확보에 나선 것도 이에 관해 들여다보기 위한 것으로 확인됐다. 특검팀은 최근 국방부 장군인사팀과 육군본부 장군인사실 등을 압수수색해 해당 부서 내 인사 관련 파일 등을 확보했다. 정치권에선 지난 2023년 11월과 지난해 4월 이례적인 인사가 이뤄졌다는 지적이 제기됐다. 진급에 절박한 군 인사들을 계엄 실행 세력으로 활용했단 의혹이다. 더불어민주당 추미애 의원은 “윤석열정부 장군 인사는 특이하고, 이례적인 경우가 유독 많았다”며 “인사를 통해 군을 장악하고, 내란을 준비했다는 의혹 관련 특검의 철저한 수사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2·3차 계엄 대비 문건 없애” 증거 인멸 국회서 해제 불구 지작사와 인사 논의? 내란중요임무종사 혐의로 재판에 넘겨진 여인형 전 방첩사령관, 이진우 전 수도방위사령관, 곽종근 전 특수전사령관은 지난 2023년 11월 인사에서 소장에서 중장으로 진급했다. 박안수 전 계엄사령관은 ‘75주년 국군의 날 행사기획단장 겸 제병지휘관’ 등 한직에서 2023년 10월 육군참모총장에 발탁됐다. 지난해 4월엔 지휘부에 이어 작전본부 인사가 이어졌다. 원천희 당시 육군 소장이 4차 진급으로 합참 정보본부장으로 승진했고, 이승오 소장은 군단장을 거치지 않고 합참 작전본부장으로 진급했다. 안찬명 당시 육군22사단장은 임명 5개월 만에 합참 작전부장으로 보직을 옮겼다. 통상 사단장은 1년 반~2년가량 보직을 맡는다. 군 안팎에서 이례적이란 평가가 나왔던 이유다. 경질 위기이던 문상호 전 정보사령관은 유임됐다. 그는 지난해 6월 정보사 군무원의 블랙요원 명단 국외 유출 사건 및 박민우 전 정보사 100여단장과의 갈등 등으로 논란의 중심에 섰다. 당시 국방부 장관이던 신원식 전 안보실장은 지난해 8월 국회에서 “후속 조치를 강하게 할 생각”이라고 언급했지만, 다음 달 본인이 장관직에서 물러났다. 검찰 비상계엄 특별수사본부는 군 관계자에게서 “노 전 사령관과 김 전 장관이 장군들 인사에 대해 논의했고 오 전 기획관에게 전달됐다”는 진술을 확보한 바 있다. 위기감을 느낀 오 전 기획관은 특수본 수사에 적극적으로 협조하기 시작했다. <일요시사>가 입수한 오 전 기획관의 특수본 진술조서를 보면 그는 “신원식 (전 국방부) 장관이 저와 원천희 국방부 정보본부장에게 문 전 사령관에 대한 보직해임·정보사령관 교체 검토를 지시했으나 지난해 9월6일, 김 전 장관이 취임하면서 문 전 사령관에 대한 ‘현 보직 유지’를 지시했다”며 “납득하기 어려운, 이해하기 어려운 인사였다”고 했다. 앞뒤 달랐다 오 전 기획관은 “(문 전 사령관이 박 준장으로부터 고소당한 혐의가) 어느 정도 사실로 확인됐지만 문 전 사령관에 대한 인사 조치는 없었다”며 “공론화된 문제고 어느 정도 사실로 확인됐는데도 이렇게 유야무야 넘어가는 일은 거의 없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hounder@ilyosisa.co.kr> <kcj5121@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