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주 롤스로이스’ 범서방파 나씨 소름 돋는 정체

  • 김성민 기자 smk1@ilyosisa.co.kr
  • 등록 2024.06.24 11:42:40
  • 호수 1485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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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태촌 오른팔서 고깃집 사장으로

[일요시사 취재1팀] 김성민 기자 = 만취 상태로 롤스로이스 승용차를 운전하다 뺑소니 사고를 낸 50대 남성의 정체가 범서방파 간부 나모씨로 드러났다. 나씨는 지난달 25일 오후 8시쯤 서울 강남구 논현동의 도로에 정차된 차를 들이받은 뒤 달아나다 붙잡혔다. 경찰은 수사 과정서 나씨가 범서방파를 사실상 이끌어 온 관리 대상 조직폭력배라는 사실을 파악했다. 

경찰에 따르면 나씨는 이날 술을 마신 채 차를 몰다 주차된 차량을 들이받은 뒤 현장을 벗어난 혐의(도로교통법상 음주운전 및 사고 후 미조치 등)를 받고 있다. 사고 충격으로 차량이 밀리면서 인근에 서 있던 50대 주차 안내 직원이 다리를 다쳤다.

음주 운전 사고
“날 몰라?” 윽박

나씨는 사고 직후 피해 차량 주인에게 “내가 누군지 아느냐? 이름 석 자만 대면 아는 사람”이라며 되레 화를 냈다고 한다. 그러다 경찰이 출동한 것을 확인하고는 현장을 벗어났다가 인근서 10여분 만에 검거됐다. 나씨의 사고 당시 혈중알코올농도는 면허 취소 수준(0.08% 이상)이었던 것으로 조사됐다. 마약간이시약 검사에서는 음성이 나왔다.

나씨는 2010년쯤 범서방파의 우두머리 자리에 오른 것으로 알려져 있다. 범서방파를 지배하던 김태촌은 앞서 교도소서 복역하다가 출소한 1989년 양모씨를 자신의 후계자로 지목했다고 한다. 하지만 양씨가 2010년쯤 제주도로 내려가면서 나씨가 그의 자리를 물려받은 것으로 파악됐다.

경찰은 나씨의 신병을 확보한 뒤 수사를 마무리하는 대로 검찰에 송치한다는 방침이다. 경찰 관계자는 “사건의 중대성과 도주 우려 등을 고려해 구속영장을 신청했다”고 설명했다.


잠잠하던 원로 조직폭력배의 일탈 행위가 드러나면서 나씨의 과거사도 재조명받고 있다. 나씨는 지난 2007년 세상을 떠들썩하게 한 A 그룹 총수 보복폭행에도 연루됐던 거물로 알려졌다. 

2007년 5월 A 그룹 김모 회장의 보복폭행 사건을 수사한 서울경찰청은 당시 청담동서 B 식당을 운영하던 나씨를 소환조사했다. 경찰은 나씨의 음식점을 압수수색한 결과 사건이 발생한 그해 3월8일 저녁, A 그룹 법인카드로 식대를 계산한 매출전표를 찾아냈다.

당시 범서방파 행동대장 오모씨와 A 그룹 김모 비서실장이 함께 식사를 했다는 첩보를 입수해 수사를 벌였다.

범서방파 출신 관계자는 <일요시사>와 인터뷰서 당시 상황에 대해 “나씨가 A 그룹 보복폭행 사건에 직접적인 역할을 했다고 보긴 어렵지만, 범서방파가 개입해 진두지휘한 것은 맞다”고 설명했다.

A 그룹 보복폭행 사건은 2007년 3월8일 새벽 서울 청담동 G 노래방(가라오케)서 술을 마시던 김 회장의 둘째 아들이 북창동 S모 클럽서 종업원으로 일하는 8명과 시비가 붙어서 싸움을 벌였다가 집단 폭행을 당하는 바람에 심하게 부상을 입으면서 시작됐다.

‘총알 택시’ 운영하던 잡배서 거물로
연예인 단골로 유명 ‘청담동 그 집’

김 회장이 업소를 찾아가자, 불만있으면 와보라는 식으로 종업원이 명함을 던지고 갔다고 한다. 이에 격노한 김 회장은 아들을 폭행한 인물에게 보복을 가하기 위해 사람을 시켜 G 가라오케를 통해 S 클럽 종업원들을 불렀다.


S 클럽 종업원들은 자신들 5명에 노래방 종업원 3명을 끼워서 대신 내보냈는데 그들은 김 회장의 경호원들에게 청계산으로 끌려가 폭행을 당했다. 이들이 고통을 견디지 못하고 사실 폭행을 저지른 것은 자신들이 아니라고 호소하자 김 회장은 경호원들을 이끌고 가게로 쳐들어갔다.

북창동 S 클럽에 도착한 김 회장은 “내 아들 폭행한 놈들을 끌고 오라”는 말에 가게 측이 폭행 가담자를 데려오자, 김 회장의 아들이 자신을 폭행한 사람에게 직접 주먹으로 보복을 가했다고 한다. 이때 종업원들도 경호원에게 폭행당했으며 쇠파이프와 전기 충격기까지 동원한 것으로 드러났다.

수사에 나선 경찰은 나씨에게 B 식당에 온 사람이 김 비서실장과 오씨가 맞는지, 이들 두 명을 연결하는 역할을 했는지, 오씨의 지시로 폭행 현장에 인력을 동원했는지 등을 조사했다.

경찰은 또 주 피의자인 김 회장이 “청계산에도 가지 않았고, 폭행도 하지 않았다”는 기존 진술을 번복했기 때문에 이날 김 비서실장, 사택 경비 용역업체 직원 등 5명, D 토건 김모 사장 등을 모두 재소환했다. 경찰은 범서방파 행동대장 오씨와 D 토건 김모 사장, G 가라오케 장모 사장 등이 각각 조직폭력배 등 외부인력을 동원했다고 봤다.

경찰은 이날 오씨가 캐나다로 출국하기 전 김 회장 측으로부터 조폭 동원의 대가로 3억원을 받았다는 의혹과 관련해 오씨에 대한 계좌 추적을 실시했으며, D 토건 김 사장을 상대로 인력 동원 부분을 집중 추궁하기도 했다. 

전날 자진출두한 G 가라오케 장 사장은 경찰 조사에서 “사건 당일 북창동 S 클럽에 갔지만 룸에 들어가지는 않고 주변에 있었다. 같이 간 사람들은 있는데 조폭은 아니다”라고 주장했다.

수입산
한우로 

경찰은 장씨가 A사 측 누구의 부탁을 받고 현장에 갔는지, 직접 폭행을 하지는 않았는지 추후 더 조사했다. 수사관계자는 “쇠파이프와 전기봉으로 폭행했다는 피해자 진술은 있지만 증거를 확보하지 못했기 때문에 피의자·참고인 조사가 중요하다”며 “가능하면 주중에 사건을 검찰에 송치할 예정”이라고 말했다.

결과적으로 나씨는 조직폭력배 범서방파 출신이며, 2007년 A 그룹 회장 폭행 사건 당시 A 그룹 간부와 범서방파가 B 식당서 회합을 했다는 결론이 나왔다. 나씨가 운영하던 B 식당은 평소 연예인과 운동선수 등 유명인사들이 즐겨 찾는 소문난 한우 고깃집으로 잘 알려져 있다.

나씨가 마냥 연예인들과 좋은 관계를 유지하는 것은 아니었다. 일례로 나씨의 가게를 방문했던 배우 최모씨는 나씨와 언쟁을 벌이다가 결국 쌍방폭행으로 이어져 경찰조사를 받았다고 한다. 나씨의 한 측근은 “최씨가 날린 주먹에 눈을 다친 나씨는 처음엔 보복하려고 했으나, 이를 기회 삼아 최씨와 친분을 맺었다”고 전했다. 

폭행 사건 이후 두 사람은 실제로 친해졌고 언제 가더라도 식사 중인 연예인 한두 명은 볼 수 있다는 소문이 날 정도로 북새통을 이뤘다.

나씨 말에 의하면 B 식당을 찾는 이들 중 연예인을 포함한 방송 직종에 종사하는 사람들이 손님 중 약 40%에 이른다고 한다. 24시간 종일 영업에 연중무휴로 3년째 계속 문을 열어놔 야간촬영이나 휴일 활동이 많은 연예인들에게 입소문이 났다.


잘나가던 나씨는 B 식당을 운영하면서 30여t에 이르는 수입 소고기를 한우 고기인 것처럼 허위 표시한 혐의로 구속된 바 있다.

2007년 9월7일 대법원 1부(주심 고현철 대법관)는 수입 갈비살과 안창살 등을 판매하면서 한우로 허위표시 해 판매한 혐의 등으로 기소된 나씨에게 식품위생법 위반죄 등을 인정해 징역 2년에 집행유예 3년, 벌금 10억원을 선고한 원심을 확정했다.

김태촌
자금줄

재판부는 판결문서 “피고인들이 인터넷과 방송 매체를 통해 최상급 한우만 엄선해 판매한다고 홍보하고, 식당 내부에 한우 사육 사진을 게시하는 등의 방법으로 외국산 수입 갈비살·안창살 30여t이 마치 한우 고기인 것처럼 허위표시한 것은 식품위생법 위반이라고 인정한 원심 판결은 옳다”고 밝혔다.

앞서 2004년 수입소고기를 한우로 둔갑시켜 팔았다는 혐의로 대구지검에 구속됐을 때 나씨의 가게를 드나들던 단골 연예인 12명 정도가 그를 구명하기 위한 확인서를 써줘 화제가 됐다. 당시 연예인들이 구명활동에 나선 이유는 여러 가지 설이 있지만, 나씨의 가게를 드나들면서 선물을 받는 등 융숭하게 대접받았기 때문이라는 말이 유력하다.

그가 운영하는 가게를 두고 일각에선 김태촌의 ‘자금줄’로 부르기도 했다.


나씨는 음식점 경영보다 ‘사채놀이’를 통해 많은 돈을 벌어들인다고 알려졌다. 그 증거로 지난 2003년 ‘굿모닝시티’ 사기 분양으로 세상을 떠들썩하게 한 윤모 회장에게 20억원을 빌려주고, 40억원을 받으려다 경찰에 잡히기도 했다. 이 과정서 자신의 재력과 인맥을 과시하듯 법무부 장관과 검찰총장을 지낸 김태정 등을 변호사로 선임해 세간의 이목을 끌었다.

나씨의 암흑가 진출은 총알택시를 불법으로 운영하면서 시작됐다. 일반 차량을 이용해 불법으로 승객을 태우는 일명 ‘나라시 택시’를 운영하고 관리한 나씨는 심야에 터미널이나 기차역 등의 장소서 손님을 모아 제법 돈을 벌었다고 전해진다.

당연히 당국에는 불법으로 규정돼있으며, 150km/h 이상을 우습게 찍는 총알택시로 유명하다. 고속도로에서는 차량 성능에 따라 250km/h까지 올려 어둠을 가르고 질주하는 것이 특징이다.

이후 인천 ‘뉴송도호텔’서 일어난 칼부림 난동 때 낫을 들고 활개 친 것을 계기로 김태촌의 신임을 얻어 오른팔의 자리에 올랐다.

다사다단했던 암흑가 2인자
MZ조폭으로 이어진 범서방파

도박 사건에 연루돼 반대파 조직에 납치·폭행된 사건에 휘말리기도 했다. 경찰에 따르면 나씨를 납치 폭행한 폭력조직은 국제PJ파로, 조직 두목이 나씨에게 전화해 “큰 도박판이 벌어지고 있으니 2억을 준비해서 나오라”고 유인했다.

그후 먼저 기다리고 있던 상대 조직원이 탄 차가 나씨를 납치해 경기 기흥휴게소까지 끌고 갔으며, 나씨는 차 안에서 당한 무차별 폭행으로 갈비뼈 등을 다쳤다. 그는 감시가 허술한 틈을 타 차에서 탈출해 경찰에 신고했고, 납치했던 국제PJ파 조직원 6명은 도주한 것으로 알려졌다.

경찰 관계자에 의하면 현재 범서방파의 조직원 수는 총 100여명 정도로 추산되나, 김태촌 사후 세력 확장을 꾀하는 신진 무리는 20~30대 젊은 세대로 이어졌다.

최근에는 한 투자사 대표 C씨가 범서방파·이천연합파 등 기존 조폭 구성원들 중 1983년생이 모여 결성된 조직폭력배 ‘불사파’를 동원해 구속 기소됐다. 불사파 조직원은 서울 강남구서 갤러리를 운영하는 피해자를 협박·폭행해 미술작품 등 금품을 갈취하려 한 혐의(특수강도미수·폭력행위 등 처벌에 관한 법률 등 위반)로 구속됐다.

서울경찰청 강력범죄수사대는 투자사 대표 C씨 등 9명을 구속 송치했다고 지난해 9월27일 밝혔다. 불사파 조직원들은 ‘1997년작 영화 <넘버 3>에 등장하는 조폭 이름서 영감을 얻어 작명했다’고 진술한 것으로 전해졌다.

경찰에 따르면 C씨는 미술작품 투자금 28억원에 대한 이자 등을 회수한다는 명목으로 미술작품 ‘○○○ 100호’를 빼앗기 위해 지난 8월1일 피해자를 감금했다. C씨가 동원한 조폭들은 피해자에게 ‘살해하겠다’고 협박했다.

피해자가 해당 작품이 없다고 호소하자, 이들은 87억원의 채무상환을 요구하고 피해자 남편의 연대보증을 강요했다. C씨 일당은 피해자에게 ‘87억원의 빚이 있다’는 진술을 강제로 녹음하게 하고, 스마트폰에 위치 공유 애플리케이션을 설치해 행적을 추적하기도 했다.

C씨 등은 피해자에게 ‘조폭 등을 시켜 묻지마 살인 방식으로 살해하겠다’고 협박한 혐의, 피해자 양손을 탁자 위에 올리게 한 뒤 샤프펜슬로 손등을 내리친 혐의도 받는다.

사건·사고
잇달아 연루

C씨가 1983년생 조폭들이 모인 MZ 조폭 ‘불사파’를 동원한 사실도 확인됐다. 불사파는 정기적으로 지역별 모임을 하면서 결속을 다져온 것으로 파악됐다. 이들은 일정한 직업이 없음에도 월세 1300만원짜리 강남 고급 아파트 등에 살면서 고가의 외제차를 몰았다. 감금·폭행·협박에는 C씨가 동원한 귀화 조선족 폭력배도 가담했다. 경찰은 아직 신원을 확보하지 못한 피의자 3명을 조속히 검거하겠다고 전했다.

<smk1@ilyosis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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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제성 없는 ‘내란 TF’ 겉핥는 내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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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요시사 취재1팀] 오혁진 기자 = 이재명정부가 내란을 방조하거나 간접적으로 가담한 이들을 가리기 위해 TF를 구성했다. 내년 1월까지 공무원 75만명을 대상으로 참여·협조 여부를 조사한다. 일부 기관은 자체적으로 판단해 TF를 구성하는 걸 두고 고민하고 있다. TF는 강제성이 없으며, 이미 조사를 끝내 인사에 반영한 기관도 존재한다. 헌법 존중 정부 혁신 TF(태스크포스)는 중앙행정기관 49곳에 구성됐다. 구체적으로 각 부처 25곳이 포함됐다. TF는 총 48개다. 활동 목표가 인사에 합리적으로 반영하기 위한 것이라지만 각 기관 안팎에서 논란이 일고 있다. 사실상 내란 특검팀(조은석 특별검사)의 연장선이 아니냐는 것이다. 방조·간접 가담자들 김민석 국무총리는 지난달 24일 TF 실무 책임자들과 첫 간담회를 갖고 “TF의 조사 활동은 대상, 범위, 기간, 언론 노출, 방법 모두 절제돼야 한다”고 말했다. 김 총리는 이날 정부서울청사에서 열린 간담회에서 “절제하지 못하는 TF 활동과 구성원은 즉각 바로잡겠다”면서 “TF 활동의 유일한 목표는 인사에 합리적으로 반영하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앞서 이 TF는 공무원 75만명의 ‘내란 참여·협조’ 여부를 개인 휴대전화까지 제출받아 조사한다는 방침 등이 인권침해란 논란이 일었다. 총리실에 설치된 ‘총괄 TF’는 이날까지 부처 25곳을 포함한 기관 49곳에서 TF 48개가 출범했다. 국무조정실·국무총리비서실로 구성된 총리실에 단일 TF가 설치되면서 TF 숫자는 하나 줄었다. TF는 대부분 10~15명으로 구성됐지만, 전체 인원이 많은 국방부(53명), 경찰청(30명), 소방청(19명) 등은 대규모 조사단을 꾸렸다. TF 48개의 총인원은 정부 내부 인사 536명을 포함해 661명에 달한다. TF 48개 중 32개에 외부 인사 125명이 참여했고 그중 76명(60.8%)은 법조인, 31명(24.8%)은 학자, 18명(14.4%)은 시민단체 관계자 등이 참여했다. TF는 ‘내란의 사전 모의나 실행, 사후 정당화, 은폐’를 한 공무원은 ‘내란 참여’로, ‘내란의 일련의 과정에 물적·인적 지원을 도모하거나 실행’한 공무원은 ‘내란 협조’를 한 것으로 보기로 했다. 적발된 공무원에게는 내년 2월13일까지 ‘징계’나 ‘승진 배제’ 같은 인사 조치할 방침이다. 또 ‘내란 행위 제보 센터’를 설치해 동료 공무원들에게 제보·투서를 받고, 의심 공무원은 개인 휴대전화를 들여다보기로 했다. 한 정부 관계자는 “의혹이 상당하다고 판단되면 대상자의 휴대전화를 제출받아 들여다볼 예정이다. 의혹이 상당한 데도 조사에 협조하지 않으면 수사 의뢰까지 가능한 선을 정했다”고 말했다. 법조계에서는 TF 조사 권한을 두고 이견이 나온다. 형사가 아닌 행정 절차이지만 일반적인 조사가 아닌 만큼 행정법이 지켜져야 한다는 분석이 지배적이다. 공무원 75만명 전방위 조사 문제없나 형소법 원칙 유명무실…권력남용 소지 한 서초동 변호사는 “영장 없는 조사를 두고 많은 문제 제기가 이뤄질 수밖에 없다. 행정조사기본법에 따르면 인사상 불이익으로 압박하거나 진술을 강요하면 직권남용 혐의가 성립될 수 있다. 최소한의 범위를 규정하고 조사해야 하는데 TF가 정한 선이 어느 지점까지인지가 핵심일 것 같다”고 조언했다. 국회도 과거 비슷한 문제를 지적한 바 있다. 국회입법조사처는 2022년 발간한 ‘권력적 행정조사의 쟁점 및 개선 과제’ 보고서에서 행정조사 과정에서 영장주의·진술거부권이 침해될 수 있다고 분석했다. 행정조사에서 수집된 자료가 수사기관으로 넘어가 형사 처벌 근거로 활용되는 경우가 적지 않다. 형사소송법상 원칙이 유명무실해지고, 국가권력이 남용될 소지도 있다. 업무용 PC나 이메일에서는 변호사와 상담한 내용까지 확보되는 사례도 있어 변호인의 조력을 받을 권리가 위축될 가능성도 있다. 행정조사 위법성과 관련해서는 판례도 존재한다. 지난 2012년 서울고법은 기관이 업무용 휴대전화 통화 기록과 문자메시지를 동의 없이 확보해 공무원을 해임한 사건에서 이를 위법한 증거수집으로 보지 않았다. 법원은 기관이 통신비를 부담했고, 감사 목적이 공익적이었다고 판단했다. 대법원도 상고를 기각했다. 조직 내부 감사는 세무조사·공정거래위원회 조사·근로감독 등과 달리 별도의 법적 근거가 불명확한 경우가 많아 조사의 한계 역시 모호하다는 평가도 나온다. 정부 차원의 대규모 내부 감사가 법적 문제를 일으킨 선례 역시 많지 않다. 민간인의 TF 참여도 새로운 논란이다. 정부는 감사부서 공무원 외에 민간인을 포함하거나 아예 외부 전문가로만 구성된 TF를 둘 수 있다는 지침을 내렸다. 명확한 법적 근거 없이 민간인이 공무원에 대해 조사권을 행사하는 셈인데, 정부는 TF 설치를 위한 별도 입법을 마련하지 않았다. 논란 불구 조사 시작 공직사회는 뒤숭숭한 분위기다. 조사 기준이 모호해 억울한 문책 인사가 발생할 수 있다는 우려가 적지 않다. 반면 계엄을 방관했거나 동조한 세력을 처벌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상당하다. 핵심 조사 대상으로 거론되는 기관은 기획재정부·국방부·행정안전부·경찰·검찰·법무부 등이다. 기재부의 경우 최상목 전 기재부 장관 겸 경제부총리가 대통령 권한대행까지 겸했다. 최 전 장관이 12·3 비상계엄 당시 윤석열 전 대통령으로부터 국가비상입법기구 예비비 편성 등 계엄 지시 문건 등을 받고 1급 고위직들을 소집해 회의를 연 바 있어, 당시 회의에 참석했던 이들이 조사 대상이 될 것으로 보인다. 지난 10월 국회 국정감사 때 김동일 전 예산실장과 신중범 전 대통령실 경제금융비서관 등이 아시아개발은행(ADB)과 아시아거시경제감시기구(AMRO)로 파견되기 직전 명예 퇴직금을 수령한 것을 두고 ‘해외도피’ 논란이 제기되기도 했다. 외교부는 이번 국감에서 비상계엄 직후 대통령실이 외교부 장관 명의로 ‘합법적 계엄’이란 내용의 공문을 주미한국대사관에 보내고, 이를 ‘3급 기밀’로 지정한 점을 지적받은 바 있다. TF가 가동되면서 외교부 인사는 사실상 ‘중단’ 상태다. 외교부는 애초 올해 말까지 1급 인사를 마무리할 계획이었지만, TF 활동이 시작되면서 어렵게 됐다. 새 정부가 출범한 지 반년이 다 되어가지만, 그동안 외교부 실·국장 및 재외 공관장 인사가 거의 이뤄지지 않았다. 외교부 인사는 특임 대사 임명과도 맞물려 있지만 인사 속도는 더디기만 하다. 특히 현 정부는 특임 대사를 확대하려는 움직임을 보이고 있어 외교부는 신경을 곤두세우고 있다. 특임 대사는 직업 외교관이 아닌 전문가·정치인·학자 등을 대통령이 재외공관장으로 임명하는 제도다. 주요 공관장 인사가 늦어지면서 사안이 터졌을 때 제대로 대응할 수 있느냐는 우려가 나오고 있다. 지난 9월 미국 조지아주 현대자동차·LG에너지솔루션의 합작 배터리 공장 건설 현장에서 발생한 한국인 불법구금 사태 당시에도 조지아주를 관할하는 주애틀란타총영사직은 공석이었고, 캄보디아 사태 때도 주캄보디아 대사직이 비어있었다. 필요는 한데… 이중 감사 검찰 TF는 최근 검찰 내부망인 ‘이프로스’에 다음 달 12일까지 제보용 익명 게시판과 별도의 이메일 계정을 통해 관련 제보를 받겠다고 공지했다. 단장은 구자현 검찰총장 대행이 김성동 대검 감찰부장과 주혜진 대검 감찰1과장이 각각 부단장과 팀장을 맡아 10여명이 참여했다. 법무부에 설치된 TF 역시 같은 날 공지를 게시했다. 법무부에선 정성호 법무부 장관이 TF 단장을 맡고 내외부 인사 10여명이 구성원으로 참여한다. 법무부는 내부 익명 게시판을 통해 제보를 접수하는 한편, 검찰과 별도의 이메일 계정을 개설해 운영할 예정이다. 경찰은 경무관 승진, 총경 인사를 앞두고 숨죽이는 분위기다. 앞서 계엄 수사로 조지호 경찰청장 등 수뇌부가 재판에 넘겨졌지만, 계엄 당시 국회 출입 통제나 체포조 투입에 관여됐던 간부 상당수는 기소를 피했다. 국방부는 이중 감사 논란이 일고 있다. 이미 12개 기관을 대상으로 내부 감사를 진행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안규백 국방부 장관은 취임 직후 감사관실 주도로 중령급 이상 간부를 전수 조사해 지난주 보고서를 대통령실에 제출했고, 이는 이번 3성 장군 인사에도 반영된 것으로 알려졌다. 국방부는 총리실의 지시에 따라 기존 감사자료를 제출하는 수준에서 협조할 것으로 알려졌다. 감사관실은 조사본부를 합류시켜 TF를 꾸릴 것으로 보인다. 지난 국방부의 자체 감사는 합참 현역 장교뿐 아니라 본부 군무원과 민간 공무원까지 포함한 대대적 감사였다. 지난 9월 진영승 합참의장 취임 이후, 권대원 합참차장을 제외한 합참 장군 전원과 2년 이상 근무한 중령·대령에 대한 대규모 인적 쇄신이 실제로 단행됐다. 합참의 지시에 따라 장교들의 진급이 보류되거나 보직이 변경됐다. 국정원은 이미 이종석 국정원장 취임 이후 직원들의 비상계엄 관련 여부 등 내부 조사를 마쳤다. 특히 의무적으로 TF를 구성해야 하는 기관이 아니다. 국정원은 지난 8월 첫 1급 인사를 단행하고 최근까지 2∼4급 인사를 마무리했다. 애매한 의혹 제기 투서 남발 우려 일부 기관 자체 판단 별도 TF 설치 이 인사는 이 원장 취임 이후 진행한 내부 조사 결과를 반영한 것으로 전해졌다. 앞서 국정원은 이 원장 취임 두 달 만인 8월 1급 간부 20여명의 인사를 단행하면서 그간 정권이 바뀐 뒤 1급 간부를 모두 교체하던 관행과 달리 윤석열정부에서 임명된 간부들을 일부 유임시켰다. 국정원은 대통령 직속 기관이다. TF 설치를 두고 대통령실이 직접 관리할 수 있다. 정부 관계자는 “본래 정권이 바뀔 때마다 신임 국정원장이 취임하면 국정원은 윗선 지침이 없어도 원장 지시하에 내부적으로 감찰이나 조사를 철저하게 해 왔다”며 “대통령실에서 직접 관리해 TF 조사가 이뤄져도 추가로 드러날 문제는 없을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국회 정보위원회 간사인 더불어민주당 박선원 의원은 지난달 4일, 국정원 국정감사 이후 브리핑에서 “국정원이 불법적 비상계엄 상황에서 내란·외환 정보수집 기능이 제대로 작동하지 못했다는 점을 인정했다”면서 “국정원은 국정원법 4조에 따라 내란죄·외환유치 관련 자료를 특검에 이미 제출했고 계엄 시 국정원 역할 재정비와 실효적 안보조사체계 복원을 추진하겠다고 보고했다”고 밝힌 바 있다. “인권침해 진정이 들어온 기구를 인권위가 설치하면 모순”이란 이유로 TF 설치를 거부했던 국가인권위원회는 TF 구성 반대 의결 과정에서 절차상 흠결이 지적되자 다음 전원위원회에 다시 상정해 논의하기로 했다. 앞서 인권위와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이하 공수처) 등 독립기관은 TF 설치를 자율적으로 판단하기로 정해졌다. 안창호 인권위원장은 지난달 24일 열린 제21차 전원위원회에서 “정부에서 부처 내 헌법존중 TF를 자율적으로 만들라는 권고가 있는데 어떻게 할 것이냐”고 위원들에게 물었다. 이에 한석훈 위원이 구두로 안건 발의를 제안했다. 이후 안건 발의자로 참여한 김용원·이한별 위원 포함 발의자 세 명과 강정혜·김용직 위원, 안 위원장 등 6인이 ‘TF 구성 반대’에 손을 들면서 의결됐다. 부역자 남았나 인권위 안팎에선 자율적 설치라고 해도, TF 설립 취지에 비쳐 조사 대상이 될 수 있는 위원들이 안건을 즉석에서 상정해 반대 의결까지 한 건 부적절했다는 비판도 나왔다. 특히 반대 의견을 낸 안 위원장과 김용원 위원 등은 지난 2월 ‘윤석열 방어권 안건’ 의결에 찬성해 특검에 내란 선동·선전 혐의로 고발된 상태다. <hounder@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