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헛발질’ 몰락한 처럼회 막전막후

화려한 비상 끝 날개 없는 추락

[일요시사 취재1팀] 장지선 기자 = ‘날개 없는 추락’이다. 집권여당 시절 화려하게 비상했던 때가 까마득하게 느껴질 정도다. 당 대표의 ‘호위무사’ 역할로 주목을 받았던 과거와는 위상이 완전히 달라졌다. 더불어민주당 초선 의원 모임으로 알려진 ‘처럼회’ 이야기다. 

‘행동하는 의원모임 처럼회’(이하 처럼회)는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 내 초선 의원 모임으로 2020년 6월 만들어졌다. 처럼회엔 최강욱·김남국·장경태·민형배·김용민 의원 등이 속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처음에는 공부모임 성격이 강했던 이들 모임은 검수완박(검찰 수사권 완전 박탈) 정국 당시 선봉에 나서면서 주목받기 시작했다. 

문재인정부
잘나가다가

최강욱 의원(당시 열린민주당 대표)은 “본받을 분들에겐 배우고 누구처럼 못된 짓은 하지 말자는 다짐도 있고 늘 근본을 생각하자는 뜻도 있다”고 처럼회의 명칭에 대해 말했다. 처럼회는 검찰 이슈서 특히 존재감을 드러냈다. 문재인정부가 강하게 드라이브를 걸었던 검찰개혁에 발을 맞추면서 강성 민주당 지지층의 구심점으로 떠올랐다.

처럼회 소속 의원 가운데 대다수는 친이(친 이재명)계로 분류된다. 문정부서 불거진 ‘조국 사태’ 당시 조국 전 법무부 장관을 적극적으로 옹호했다. 한동훈 법무부 장관 인사청문회 때는 공격수를 자처하면서 민주당 이재명 대표의 강성 지지층인 개딸(개혁의 딸)의 높은 지지를 받고 있다.

당초 검수완박 정국 자체가 처럼회의 입법으로 시작됐다. 2020년 공소청법 제정안과 검찰청법 폐지안을 발의했다. 민주당 김용민 의원이 발의한 법안은 수사‧기소를 분리하고 검사의 직무 중 ‘범죄수사’를 삭제하는 내용이 골자다. 검찰 권한을 축소하는 수준을 넘어 없애는 쪽으로 방향을 잡은 것이다.


이후 검찰청법과 형사소송법을 개정해 검찰의 권한을 축소하는 방향으로 검수완박 정국이 갈무리됐다. 그럼에도 처럼회의 검찰개혁 시도는 끝나지 않았다. 정권교체가 이뤄지자 윤석열정부를 향한 공격도 이어졌다. 소속 의원이 20여명 정도인 정치 모임에 170석 거대 야당이 휘둘리고 있다는 지적이 당내 안팎에서 불거졌다.

민주당 김용민 의원은 지난 17일 ‘이해충돌 방지법에 위반될 경우 대통령은 거부권을 행사할 수 없다’는 내용의 국회법 일부개정안을 대표 발의했다.

김 의원은 “헌법 제53조제2항을 보면 대통령이 법률안에 이의가 있을 때 재의를 요구할 수 있도록 규정하고 있는데 고위공직자의 이해충돌 우려가 있는 상황일 경우 국회의원은 국회법 제32조의5에 따라 이해충돌 우려가 있는 안건 등에 대한 회피 조항이 규정돼있다”고 설명했다. 

검찰개혁 주도 강성 모임
대다수 친이재명계 분류

그러면서 “하지만 대통령의 경우 이해충돌의 상황 속에서도 재의권에 대한 별도의 규정이 없어 제도 정비의 필요성이 시급하다”고 발의 배경을 밝혔다. 대통령이 공직자의 이해충돌 방지법에 위반될 경우 거부권을 행사할 수 없도록 법을 개정해 대통령의 권력 남용을 방지한다는 취지다. 

김 의원은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공수처)법 개정안도 발의했다. 공수처가 진실과 정의를 외면하고 부정한 목적으로 부당하게 사건을 처리하거나 인사권자가 원하는 결과를 얻기 위해 불공정하게 재판을 진행하는 등 법 왜곡으로 법치주의를 훼손한 판·검사에 대해서도 수사할 수 있도록 한다는 취지다. 

공수처법 개정안의 근거로 판검사의 부당한 사건 처리와 불공정한 재판 진행을 ‘법 왜곡’으로 규정하고 이를 처벌한다는 형법 개정안도 발의했다. 눈길을 끄는 부분은 개정안 발의에 처럼회 소속 의원들이 대거 참여했다는 점이다. 심지어 ‘코인 사태’로 민주당을 탈당한 김남국 의원도 공수처법 개정안 발의자 명단에 이름을 올렸다.


국민의힘은 당장 반발했다. 국민의힘 유상범 수석대변인은 “대통령의 거부권은 입법부에 대한 행정부의 견제 수단으로서 삼권분립의 가치가 반영된 것은 물론, 헌법에 규정된 대통령의 고유권한”이라고 반박했다. 그러면서 “민주당은 자신들이 ‘절대 선’ 이라도 되는 줄 아는 것인가”라고 꼬집었다. 

형법 개정안에 대해서도 지적했다.

윤석열정부
역풍 맞아

유 수석대변인은 “불공정의 판단은 과연 누가 하는 것이며 이재명 대표에게 죄가 있다 판결하고 송영길 전 대표도 문제 있다는 수사 결과가 나오면 불공정하다고 주장할 것이 뻔하지 않은가”라고 반문했다. 그러면서 “민주당은 지금까지 자행한 ‘입법폭주’도 모자라 법 위에 군림한 채 ‘입법탈주’로 치달으며 법치의 근간을 흔들고 민주주의 근본마저 짓밟는 역사의 죄를 짓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문제는 처럼회가 강하게 나갈수록 그 반작용도 상당하다는 점이다. 민주당 내에서도 처럼회가 자제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일각에서는 ‘모임 해체론’까지 불거지고 있다. 그 배경으로 처럼회 소속 의원의 ‘헛발질’이 꼽힌다. 처럼회 핵심 멤버로 꼽히는 의원들이 여러 논란에 휘말리면서 ‘손절’ 분위기가 감지되고 있다.

김남국 의원은 거액의 가상화폐(코인) 보유·투자 의혹으로 몸살을 앓고 있다. 김 의원의 코인 의혹은 이미 개인적인 사안을 넘어 당 전체로 번지는 모양새다. 대선자금 관련 의혹까지 불거지면서 게이트 형태로 확대될 가능성도 제기된다. 총선이 채 1년도 남지 않은 시점에 치명적인 악재가 불거진 셈이다. 

지난 25일, 서울 여의도 국회 본회의서 이른바 ‘김남국 방지법’으로 불리는 코인 관련 개정안도 만장일치로 처리됐다. 국회의원을 포함한 고위공직자의 재산 신고‧공개 대상에 가상자산을 포함하도록 하는 공직자윤리법 개정안, 국회의원이 국회에 신고하는 ‘사적 이해관계 등록’ 대상에 가상자산도 포함하도록 한 국회법 개정안 등이다.

국회법 개정안은 부칙으로 국회의원의 가상자산 보유 현황 및 변동내역을 내달 말까지 국회윤리심사자문위에 등록하도록 하는 내용도 포함됐다. 

20~30대
지지율↓

김 의원의 코인 의혹은 20~30대 청년층 지지율에 직격탄을 날렸다. 여론조사 전문기관 리얼미터가 미디어트리뷴 의뢰로 지난 15일부터 19일까지 닷새간 18세 이상 유권자 2504명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 5월3주차 정당지지도는 국민의힘 38.5%, 민주당 42.4%로 나타났다. 민주당은 전체 지지율서 국민의힘에 앞섰지만 20~30대서 크게 떨어진 결과를 받았다. 20대서 12.9%p(47.9%→35.0%), 30대서 8.5%p(47.8%→39.3%) 떨어진 것.

배철호 리얼미터 수석전문위원은 “직전 조사에 영향을 주지 않았던 ‘김남국 코인’ 이슈가 본격적으로 작동한 결과”라고 평했다. 민주당의 지지율 하락은 국민의힘과 윤석열 대통령의 지지율 상승으로 이어졌다. 반사이익을 본 셈이다.

문제는 이런 상황서도 처럼회가 ‘김남국 감싸기’에 나서고 있다는 점이다. 처럼회 소속 양이원영 의원은 지난 19일 SBS 라디오서 “코인 투자를 하는 국민이 600만명이 넘는다고 한다”며 “코인 투자가 비도덕적이냐”고 반문했다. 김 의원의 코인 투자에 도덕적 문제가 있느냐는 질문에 대한 답이다.


처럼회 소속 유정주 의원도 이날 자신의 SNS에 “불법과 투기는 그 무엇이든 근절돼야 한다”면서도 “그러나 일반화시키며 그 행위 자체를 범죄시하는 것, 이슈 따라 끝도 없는 삼만리가 되는 것도 지양해야 하지 않을지”라고 적었다. 처럼회의 김남국 의원 비호에 당내 안팎에서는 비판의 목소리가 나왔다. 

일각에서는 처럼회가 김 의원의 코인 의혹을 이미 알고 있었다는 주장도 제기됐다. 최강욱 의원의 도덕성 논란에 불을 지핀 ‘짤짤이’ 논란이 사실은 김남국 의원의 코인을 뜻한 것이라는 말이 나왔다. 짤짤이 논란은 지난해 4월28일, 민주당 내 온라인 화상회의를 하던 중 김 의원이 화면에 보이지 않자 최 의원이 ‘지금 짤짤이 하는 것이냐’고 물었던 일을 말한다. 

‘무소불위’ 입법폭주 비판
코인 의혹 김남국 비호 중

당시 회의에 여성 보좌관이 함께 자리하고 있었고 몇몇은 최 의원의 발언이 성적 행동을 뜻하는 ‘XXX’로 들렸다며 굉장히 부적절한 발언이자 성희롱이었다고 지적했다. 최 의원의 발언은 6·1 지방선거를 앞두고 민주당에 악재로 불거졌다. 당시 박지현 공동비대위원장은 당윤리심판원에 해당 발언에 대한 조사를 지시하기도 했다. 

윤리심판원은 최 의원에게 ‘당원권 정지 6개월’의 중징계를 내렸다. 최 의원은 윤리심판원의 결정을 인정할 수 없다며 재심을 청구해 현재 재심 과정이 이어지고 있다. 최근 손병관 <오마이뉴스> 기자가 지난해 8월25일 최 의원과 인터뷰한 내용을 공개했다. 손 기자는 인터뷰 과정서 최 의원이 코인을 짤짤이로 표현했다는 내용을 언급했다. 

선거를 한 달여 앞두고 불거졌던 최 의원의 발언이 김 의원의 코인 사태와 연결되는 듯한 상황이 연출되면서 처럼회의 자정 작용에 대한 비판이 나오고 있다. 여기에 처럼회 소속 장경태 의원 역시 2021년 8월, 김 의원의 코인 거래와 관련해 이미 알고 있는 듯한 발언을 한 사실이 드러나면서 기름을 붓는 모양새다. 


처럼회의 헛발질은 이뿐만이 아니다. 한동훈 법무부 장관 인사청문회 때는 말 그대로 ‘망신살’을 샀다. 당시 민주당은 최강욱‧김남국‧김용민‧이수진‧민형배 의원을 앞세워 한 장관을 공격했지만 역공에 망신만 당했다. 당시 김남국 의원은 한 장관의 조카가 이모(이씨 성의) 교수와 공저한 논문을 딸과 그 이모(어머니의 자매)가 공저한 것으로 착각해 “딸이 이모와 같이 논문을 쓰지 않았느냐”고 사실과 다른 내용으로 다그쳤다. 

최강욱 의원도 영리법인 ‘한국쓰리엠’이 한○○으로 표시돼있는 것을 한 장관의 딸 한모양으로 착각해 엉뚱한 공세를 펴기도 했다. 해당 내용이 담긴 유튜브 영상의 조회수가 급상승하면서 민주당에 대한 민심이반으로 이어졌다. 반면 한 장관의 인지도와 인기는 청문회를 기점으로 크게 올랐다. 

총선 전
악재될까

민주당 내부서도 부글부글 끓어오르던 처럼회 해체론은 김남국 의원의 코인 의혹이 불거지면서 거세지고 있다. 민주당 박지현 전 공동비상대책위원장은 지난 16일 “이 대표는 어디 있느냐”고 비판하면서 “폭력적 팬덤과 이제는 결별해야 한다. 김남국 의원을 비호하는 처럼회를 해체하고 처럼회를 떠받드는 극성 팬덤정치를 확실히 끊어내라”고 요구했다. 

<jsjang@ilyosisa.co.kr>

 

<기사 속 기사> 처럼회 탈퇴 강성희
“의정활동에 도움 안 돼”

진보당 강성희 의원이 처럼회서 탈퇴했다.

강 의원은 지난 23일 자신의 SNS에 “최근 공정사회포럼(처럼회) 가입이 뜻하지 않은 논란을 불러와 의정활동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판단으로 탈퇴의 뜻을 대표님께 전했다”고 적었다.

처럼회는 민주당 내 모임이면서 국회 의원연구단체로 ‘국회 공정사회포럼’이라는 이름으로 등록돼있다.

소속 정당에 관계없이 구성원이 될 수 있다. <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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탈세보다 무서운 산재와의 전쟁

탈세보다 무서운 산재와의 전쟁

[일요시사 취재1팀] 장지선 기자 = 이재명 대통령이 ‘산재와의 전쟁’을 선포했다. 건설 현장에서 근로자가 사망하는 사건을 줄이겠다는 취지다. 이 대통령이 칼을 휘두르자 기업은 납작 엎드렸다. 이 대통령의 행보를 보는 시각은 엇갈린다. 산재 사망사고가 끊이지 않는 만큼 단호한 조치가 필요하다며 환영하는 의견과 구조적 문제를 뒤로하고 기업 ‘잡도리’만 하고 있다는 의견 등이다. 건설업계에 칼바람이 불고 있다. 미국발 관세나 국내 경기 문제가 아니다. 산업재해(이하 산재)가 건설 현장을 뒤흔드는 중이다. 대통령은 여러 현안 중 산재로 인한 사망사고 근절을 국정 과제 첫머리에 올린 듯한 모습이다. 대통령 한마디 이재명 대통령이 반복되는 산재 사망사고의 고리를 끊겠다고 나섰다. 산재 사망사고가 발생한 기업을 법과 제도를 통해 처벌하겠다고 선언했다. 발언 수위도 나날이 세지고 있다. 본보기가 된 기업은 대통령이 일으킨 칼바람을 온몸으로 맞는 모양새다. 지난 5월 고용노동부가 발표한 1분기 ‘산업재해 현황 부가 통계’에 따르면 올해 1~3월 재해 조사 대상 사고 사망자는 총 137명(잠정)으로 지난해 같은 기간(138명)보다 1명(0.7%) 줄었다. 사망사고 건수도 같은 기간 136건에서 129건으로 7건(5.1%) 감소했다. 업종별로는 제조업이 29명으로 지난해보다 2명, 기타 업종(건설업과 제조업 이외 업종)이 38명으로 6명 감소했지만 건설업은 71명으로 오히려 7명 늘었다. 노동부는 부산 기장군 건설 현장 화재와 서울-세종고속도로 교량 붕괴 등 대형 사고의 영향으로 건설업 사망자 수가 증가했다고 분석했다. 지난 2월14일 부산 기장군 반얀트리 리조트 신축 공사장에서 불이 나 6명이 숨졌다. 또 같은 달 25일, 경기도 안성시 서울-세종고속도로 건설 현장 교량 상판 구조물이 붕괴해 4명이 목숨을 잃는 사고가 일어났다. 규모별로는 상시 근로자 50인(건설 업종은 공사 금액 50억원) 미만 사업장에서 올해 1분기 사망자는 83명으로 지난해보다 5명(6.4%), 사망사고 건수는 83건으로 7건(9.2%) 늘었다. 반면 50인 이상 대형 사업장과 대규모 공사 현장에선 사망자 54명, 사고 건수 46건으로 각각 6명, 14건 줄었다. 사망사고 유형별로는 ‘추락’ 62명, ‘끼임’ 11명, ‘물체에 맞음’ 16명으로 지난해와 비교해 각각 1명, 7명, 5명 감소했다. 화재와 폭발로는 10명, ‘붕괴’ 사고로는 11명이 목숨을 잃었다. 지자체별로는 경기(31명), 서울(17명), 경북(15명), 부산·전남(12명), 경남(11명), 충남(9명), 강원·울산(6명) 순으로 많았다. 산재로 인한 사망은 건설 현장에서 일어날 수 있는 최악의 사고다. 정부는 산재 사망사고를 줄이기 위한 각종 대책을 내놨다. 2022년 1월부터 시행된 중대재해처벌법(이하 중처법)도 그중 하나다. 중처법은 근로자의 사망사고 등 중대 재해가 발생했을 때 기업의 경영 책임자 등이 안전 보건 관리 체계 구축 등 의무를 위반한 것으로 확인되면 처벌하도록 하는 내용이 골자다. 취임 이후부터 직접 챙겨 국정 운영 계획에도 포함 문제는 실효성이다. 중처법이 시행된 이후에도 건설 현장에서 근로자가 죽는 일이 계속 일어나고 처벌은 ‘솜방망이’ 수준에 그친다는 지적이 끊이지 않았다. 결국 이 대통령이 칼을 빼 들었다. 이 대통령은 지난 12일 “비용을 아끼기 위해 누군가의 목숨을 빼앗는 것은 일종의 미필적 고의에 의한 살인, 또는 사회적 타살”이라고 비판했다. 필요하면 법을 개정해서라도 ‘산재 공화국’이라는 오명을 벗겠다는 뜻도 밝혔다. 이 대통령은 이날 국무회의에서 “일상적으로 산업 현장을 점검해서 필요한 안전조치를 하지 않고 작업하면 엄정하게 제지해야 하지 않을까 싶다”며 “제도가 있는 범위 내에서 할 수 있는 최대의 조치를 해달라”고 주문했다. 사고 위험이 큰 업무를 하청과 외주를 통해 해결하는 ‘위험의 외주화’ 현상에 대해서도 지적했다. 이 대통령의 산재 사망사고 근절 ‘드라이브’는 점진적으로 거세지고 있다. 초기에는 주무 부처에 대책을 요구했다면 최근에는 직접 목소리를 내고 움직이는 식이다. 대통령이 직접 나서서 산재를 줄이라고 지시했는데도 불구하고 사망사고가 이어지자 특유의 행동력을 보이고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실제 이 대통령이 고용노동부에 산재 관련 종합 대책을 주문한 뒤에도 ▲인천 맨홀 작업 노동자 질식사 ▲포스코이앤씨 노동자 끼임사 ▲경기 의정부 아파트 신축 현장 노동자 추락사 등의 사고가 일어났다. 불과 한 달 새 일어난 일이다. 지난달 6일 인천 계양구 병방동의 한 도로 맨홀 안에서 지하 시설물 조사 작업 중이던 노동자 1명이 의식을 잃고 1명은 실종됐다. 이들은 결국 사망했다. 조사 결과 이 사고는 용역 계약 위반에 따라 허가 절차 없이 진행하다가 발생한 인재로 드러났다. 법으로도 안 됐는데… 숨진 근로자는 산소 마스크 등 안전 장비를 제대로 착용하지 않은 채 작업하다 유독가스에 중독된 것으로 알려졌다. 당시 이 대통령은 “현장 안전 관리에 미흡한 점이 있었는데 철저히 밝히고 법령 위반 여부가 있었는지를 조사해 책임자를 엄중히 조치하라”며 “후진국형 산업재해가 다시는 발생하지 않도록 현장 안전관리를 정비하고 사전 지도·감독을 강화하는 등 관련 부처도 특단의 조처를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하지만 지난달 28일 포스코이앤씨가 시공하는 경남 함양-울산고속도로 의령나들목 공사 현장에서 사면 보강 작업을 하던 60대 근로자가 천공기(지반을 뚫는 건설기계)에 끼어 숨지는 사고가 일어났다. 포스코이앤씨 시공 현장에서만 올해 들어 4번째 일어난 사망사고다. 지난 1월 경남 김해 아파트 신축 현장 추락사고, 경기도 광명 신안산선 건설 현장 붕괴사고, 대구 주상복합 신축 현장 추락사고 등도 줄을 이었다. 이 대통령은 “똑같은 방식으로 사망사고가 나는 것은 결국 죽음을 용인하는 것이고 아주 심하게 얘기하면 법률적 용어로 미필적 고의에 의한 살인”이라고 질타했다. 그러면서 “(산재 사망사고가 나면) 여러 차례 공시하도록 해서 투자를 안 하고 주가가 폭락하게 (해야 한다)”고도 말했다. 여름휴가를 마치고 복귀 첫 일성도 산재 관련 발언이었다. 이 대통령은 “앞으로 모든 산업재해 사망사고는 최대한 빠른 속도로 대통령에게 직보하라”고 지시했다. 산재 사망사고를 직접 챙기겠다는 의지를 다시 한번 천명한 것이다. 사과문 내고 또 반복되다 지난 9일 강유정 대통령실 대변인을 통해 전해진 이 대통령의 발언은 전날인 8일 경기 의정부 신축 아파트 공사 현장에서 안전망 철거 작업을 하던 50대 근로자가 6층 높이에서 떨어져 숨진 사고가 영향을 미쳤다. 이 대통령이 선포한 ‘산재와의 전쟁’에 기업은 바짝 얼어붙은 상황이다. 지난달 25일 경기 시흥 SPC 삼립 공장을 방문해 ‘중대산업재해 발생 사업장 현장 간담회’를 열었다. 해당 공장은 지난 5월 50대 여성 노동자가 작동 중인 컨베이어벨트에 끼어 사망했고 2022년과 2023년에도 여성 노동자가 각각 소스 교반기와 반죽 기계에 끼어 숨지는 등 중대 산재가 빈번하게 일어났던 곳이다. 이 대통령은 이날 간담회에서 SPC 근로자의 노동 시간 등을 자세히 물었다. 그러면서 “(산재가) 심야에 대체적으로 발생하고 12시간씩 4일간 일하다 보면 사실 심야 시간에 힘들다. 주의력이 떨어질 수밖에 없다”며 “심야 장시간 노동 때문에 생긴 일로 보여진다”고 말했다. 이 대통령의 지적에 SPC 회장을 비롯해 그룹 관계자들이 쩔쩔맨 것으로 전해졌다. SPC그룹은 이 대통령이 다녀간 지 이틀 만인 지난달 27일, 8시간 초과 야근을 폐지하겠다는 대책을 내놨다. 제품 특성상 필수적인 품목 외에는 야간 생산을 최대한 없애 공장 가동 시간을 축소하겠다는 것이다. 또 주간 근무 시간도 점진적으로 줄여 장시간 근무로 인한 피로 누적, 집중력 저하, 사고 위험 등을 사전에 차단하겠다고 밝혔다. 포스코이앤씨는 지난달 29일 담화문을 내고 고개를 숙였다. 정희민 전 대표이사는 “어제(28일) 사고 직후 모든 현장에서 즉시 모든 작업을 중단했고 전사적 긴급 안전 점검을 실시해 안전히 확실하게 확인되기 전까지 무기한 작업을 중지하도록 했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협력업체를 포함한 모든 근로자의 안전이 최우선 가치가 되도록 필요한 자원과 역량을 총동원해 근본적인 쇄신 계기로 삼겠다”며 “또다시 이런 비극이 발생하는 일이 없도록 사즉생의 각오와 회사의 명운을 걸고 안전 체계의 전환을 이뤄내겠다”고 말했다. 하지만 정 전 대표의 사과는 엿새 만에 또다시 일어난 사고로 빛이 바랬다. 지난 4일 오후 경기 광명시 옥길동 광명-서울고속도로 민간투자사업 제1공구 현장에서 미얀마 국적 30대 근로자가 감전돼 심정지 상태로 발견됐다. 이 근로자는 병원으로 이송된 지 8일 만인 지난 12일 의식을 회복했다. 높아진 발언 수위·제재 조치 “왜 기업만 잡도리?” 의견도 정 전 대표는 사의를 표명하고 물러났다. 연이어 산재사고가 일어난 포스코이앤씨는 ‘본보기’가 될 가능성이 커진 상황이다. 일단 이 대통령은 포스코이앤씨에 대한 건설 면허 취소, 공공 입찰 금지 등 법률상 가능한 방안을 모두 찾아서 보고하라는 지시를 내린 바 있다. 국내 건설 면허 취소는 현행 건설산업기본법상 최고 수위의 징계다. 1994년 성수대교 붕괴 책임이 있던 동아건설산업에 내려진 사례가 유일하다. 건설 면허가 취소되면 신규 사업을 할 수 없고, 다시 면허를 취득한다고 해도 수주 이력이 없기 때문에 관급공사를 따내는 것이 사실상 불가능하다. 경찰은 사고 관련 수사 전담팀을 만들고 고용노동부 안양지청과 함께 포스코이앤씨와 하청업체에 대한 압수수색에 돌입했다. DL건설도 대표이사를 비롯한 임원진 전원이 공사 현장에서 발생한 사망사고에 책임을 지고 일괄 사표를 제출하는 등 납작 엎드렸다. 특히 이 대통령이 휴가에서 돌아와 산재 관련 발언을 한 직후 터진 사고여서 충격파가 더 컸다. DL건설에서 사표를 제출한 임직원은 80여명, 공사를 중단한 현장은 44곳에 이른다. 이재명정부는 산재사고로 인한 사망자 비율을 2030년까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평균 수준인 1만명당 0.29명까지 끌어내리는 방안을 추진하기로 했다. 지난해 우리나라에서 발생한 산재로 인한 사망자 비율은 1만명당 0.39명으로 OECD 평균을 크게 웃도는 실정이다. 이 같은 내용은 ‘이재명정부 국정 운영 5개년 계획’에 포함됐다. 이 대통령이 지난달 수석보좌관 회의에서 “전 세계에서 또는 OECD 국가 중 산업재해율, 사망재해율이 가장 높다는 불명예를 이번 정부에서 반드시 끊어내겠다”고 의지를 드러낸 부분을 국정과제로 담은 것이다. 구조 문제 나 몰라라 일각에서는 이 대통령이 지나치게 건설업계만 잡고 있다는 지적도 제기된다. 관련 법과 제도가 시행되고 있는데도 사망사고가 끊이지 않는다면 구조적인 문제도 살펴봐야 한다는 것이다. 수주 경쟁이 과열되면서 저가 입찰이 늘고 안전관리에 소홀해지는 점이 산재로 이어지는 식의 고리를 끊어야 진정한 의미의 ‘근절’이 이뤄질 것이라는 분석도 있다. <jsjang@ilyosisa.co.kr>